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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얼굴을 가져가라.”

등록일 2025-07-27 19:17 게재일 2025-07-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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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그들이 내 얼굴을 원하다면

여기 있는 얼굴을 가져가도 좋다.

시간의 일부였던 얼굴,

더는 시간의 일부가 아닌 얼굴,

시간에서 벗어난 얼굴.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한 얼굴이 스쳐간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어부, 농부, 석공, 주부, 교사, 미화원, 조산사, 기계공.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그들,

그곳에 살다가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그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어떤 얼굴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내 얼굴을 가져가라. 여기 내 얼굴이 있다.

더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얼굴,

풍경처럼 닳아버린 얼굴, 수면처럼 주름진 얼굴.

 

나는 닐스 비크, 내게는 배가 있다.

나는 이 배를 얼굴들로 가득 채우고 피오르를 건넜다.

―프로데 그뤼텐 장편소설, 150쪽 부분.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2025. 다산책방)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르웨이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소설을 ‘시적 산문’이라고 평한 바 있다. 여기 노르웨이의 작가, 프로데 그뤼텐(Frode Grytten)의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 그러한 시적인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가. 인구 1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는 노르웨이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뉘노르스크어다. 작가는 욘 포세와 더불어 이 언어로 작품을 집필하는 몇 안 되는 노르웨이 작가 중 한 명이다. 흔히 시를 쓸 때 더 적합한 언어로 알려져 있다.(손화수, 역자의 말 참조)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인용 구절과 도입부에서 짐작하다시피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양옆에 자리한 도시와 섬마을을 이어주는 한 페리 운전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작품이 소개하는 인물 닐스를 통해 우리는 평범함 속에는 항상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는 삶의 비의를 발견할 수 있다. 닐스의 시간과 공간을 스쳐간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얼굴들이 기록되어 있다.

초상화(portrait)의 라틴어 어원에는 ‘끌어당기다’라는 뜻이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의 배를 탔던 수많은 ‘얼굴’을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끌어당김으로써 기록한다. 이때 어떤 기록은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되고, 그가 살아간 공간과 시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사람이 된다. 여기서 기록이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으로, 실은 주인공 닐스 비크의 ‘항해일지’이다. 그는 무엇을 기록했는가. “날씨와 바람, 정치와 지리” 외에 그가 한 낙서와 신문에서 베껴 적은 ‘글귀’들의 가치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일지에 우리의 삶이 기록된다면 어떤 얼굴일까.

울진과 영덕 방향 국도변에는 포항의 신도시 초곡리로 꺾이는 구간이 있다. 그 ‘틈새’에 스타벅스 카페가 개점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확 트인 시골을 에두른 논(NON View)의 공간이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이 생경하고 이질적인 풍경이 바깥의 이미지로써 흥미로울 것이다. 말하자면 프레임이 없는 빈 공간일 텐데, 그곳을 기억으로 채워 나가며 쓰는 일은 비롯된다. 도시와 시골 사이의 얼굴은 점점 더 낯설어져 가는 현실 속의 공간과 소멸해 가는 기억의 공간 사이에 떠 있는 어떤 의식(意識)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기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숲도, 바다도 아닌 부재하는 풍경, 즉 없음의 풍경이다. 미시적인 뷰의 압도하는 풍광과 대비되는 소외의 풍경에 가깝다. 매번 사람으로 붐비는 이 기이한 공간의 통창 밖은 기실은 어떤 집의 가장, 농부의 경작지로서의 일터일 것이다. 이때 “농부”라는 존재와 그 일터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 씬처럼 내가 방문하지 않은 시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지난겨울, 황량한 논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건초더미는 사라지고 어느새 초록의 모가 키를 키우며 흔들리고 있는 눈앞의 풍경이 그렇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같은 날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일 하늘색이 변하고 구름의 모양이 바뀌는 가운데 반복된 일상을 지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이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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