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거기서 발을 접질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매일 걸어서 다니던 길이었다고
아는 길이었다고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수없이 내치던 당신의 등이 떠올랐다
어디로 쏟아져야 하는 걸까 나는
결정을 미루는 사이 발목은 사라지고
택시를 불렀다
누구도 생각나지 않아서
마음을 놓아도 되는 사람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런 건 없는 줄 알지만
네가 좋아하는 섬세한 각도
15도 경사가
나는 공포라 했다
-주향숙,‘경사로’전문 (‘너는 야구를 좋아하는 걸까 야구공을 좋아하는 걸까’, 2025. 시인동네)
어떤 고통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접질린 상처는 처방전이 없는 것일까. 화자는 사람의 관계에 있어 안전에 대한 침해가 어떤 상처로 남는지 보여 준다. 특히 심리적 안전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은 무엇보다 화자가 필요로 했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화자의 존엄에 가해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한 부정적 힘이‘하필’이라는 경사를 인식하게 한다. 사람마다 어김없이 접질리는 각도가 있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섬세한 각도’는 “아는 길이었다고 /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사실에 있다.
화자의 하필을 읽으며‘나의 하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접질리는 일’ 자체가 공포라기보다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떤 경사지에 위험이라는 팻말을 붙여 두고 경계의 선을 그어야 한다면 그곳은 마음의 전쟁터가 될 것이기에.
트라우마는 사후적이다. 이를테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언제 다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 수없이 내치던 당신의 등이 떠올랐다”는 언술처럼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했다가 시간을 거슬러보았을 때 사고로, 폭력으로 인지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어디로 쏟아져야 하는 걸까/ 결정을 미루”게 된다는 언술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느먼의‘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의 빠른 판단과 느린 판단 사이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그것이 왜 생기고 어떻게 작용을 하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인격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칸트가 말한 존엄이다. 건강한 상호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친밀감과 연대감을 낳는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좋은 상호성은 오로지 가족이나 부부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만 행해지곤 한다. 대칭적 상호성이‘적당한 신뢰감과 적당한 거리감’에 있다면 화자가 추체험한 합법적 경사 15도의 각도는 대칭성을 갖기 어려운 하필의 경사가 되는 것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자리, 폐허를 딛고 시립도서관이 개관했다. 주향숙 시인의 인용되지 않은‘풍장’이라는 시편에서 “심장은 도려내어/ 까슬까슬 바람에 내어 말려야겠다”는 기표를 읊조리며 “택시를 불렀다 / 누구도 생각나지 않아서”때마침‘트라우마센터’가 도서관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마음을 놓아도 되는 사람을 갖고 싶다고”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