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기계면의 봉좌산 기슭에 있는 분옥정도 지난 8월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기에 찾아봤다. 기계읍을 흐르는 기계천 옆길을 따라오다 보면 울창한 기계숲 맞은 편에 분옥정(噴玉亭)이란 표석이 있다. 다리를 건너 사과밭 사이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폐교된 기남초등학교 자리에 농촌체험센터가 있고 한참 올라가면 아담한 마을 끝에 분옥정이 자리하고 있다. 안내문을 읽고 고택 마당으로 들어가니 400년 된 노송과 모양 좋은 향나무가 맞이하고 한시비(漢詩碑)를 지나 들어간 넓은 잔디밭에는 일암정(逸菴亭)이 있고 오른쪽에 낡은 정자가 있어 개울까지 내려가 봐도 현판은 걸려있지 않았다. ‘옥(玉)을 뿜어낸다’는 보물 정자-분옥정을 찾았는데 현판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와서 안내판을 읽고 개울가에 있다는 정(丁)자형 건물을 찾아보니 아까 보았던 그 정자다. 둘러보니 마루 밑에 땔감이 수북한 보물 같지 않은 낡은 정자다. 이건 보물이 아닌데…. 하고 갸웃거리며 나오는데 마침 주민 한 분이 지나가기에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유적지를 지키는 유사(有司)라면서 친절하게도 열쇠를 가져와서 정자의 문을 열고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찾던 현판이 걸려있었다. 분옥정과 청류헌(聽流軒) 화수정(花樹亭) 용계정사(龍溪精舍) 4개가 가지런히 걸려있고 지금 분옥정 현판은 모각(模刻)이고 진품은 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라고 알려 준다.
낡은 정자 기둥을 쓸어보며 좁은 계곡 건너 바위벽을 보니 붉고 노란 낙엽이 엉겨 붙어 예쁜 각시옷처럼 곱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서 발목까지 덮히는 낙엽들을 밟으며 맑은 개울물에 손 씻고 층층이 쌓여진 퇴적암의 긴 연륜을 헤아려본다. 바위틈에서 계곡물 떨어지는 모습이 옥구슬 떨어지는 모습처럼 보였을까?
봉좌산 쪽으로 몇 걸음 올라가니 바로 위에 세이탄(洗耳灘)이라는 표석이 있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돈옹(遯翁) 김계영이 난세와 결별하며 ‘귀를 씻는다’는 뜻으로 반석에 새겨놓은 개울이다. 무지개 모양 나무다리 밑으로 내려가니 넓은 바위 위에 고인 물에 낙엽이 쌓여 있다. 낙엽을 쓸어내고 살펴봐도 긴 세월 동안 계류에 마모된 세이탄의 음각은 찾을 수 없었지만 시끄러운 속세의 소리에 귀를 씻었듯 나도 두 귀를 씻어봤다. 이제 마음도 씻고 귀도 씻었으니 마음도 맑아지려나….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인 문화유산은 겨레의 정체성과 국민 생활을 간직한 사적(史蹟)들이니 노후한 건물들을 좀 더 깨끗하게 보수 관리하여 정신적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저녁 햇살이 봉좌산 위에 걸려 석양이 덮여오는 분옥정을 나오며 조용한 용계지 못 옆길에 차를 세우고 둑으로 올라가니 우람한 거목 두 그루가 수 백년 연륜을 허물벗 듯 갈라진 둥치를 못가에 드리우며 까만 철새들의 날개짓을 품어주고 있다.
기계면은 파평 윤씨, 기계 유씨, 영월 신씨의 삼태사(三太師)를 배출한 지방이기도 하다. 세조묘가 있어 몇몇 고인돌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