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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파이데이

등록일 2025-03-13 18:28 게재일 2025-03-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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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이다. 굳이 ‘하얀날’이라 하지 않는다. 남자가 마음에 있는 여자에게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날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0년대 일본 제과업체의 마케팅 전략으로 탄생하였고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다져갔다는 사연과 짝을 이루는 날이지만 우리 조선 시대에도 처녀와 총각의 사랑 나눔 날이 있었다. 가을에 노랗게 익은 은행알을 주워 보관해 두었다가 경칩 날에 함께 까먹으며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랑을 확인했다고 한다. 암수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봄날에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더니 주말엔 중국과 몽골 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와서 온 천지에 누렇게 흙먼지 뿌리고 대기의 질을 나쁘게 할 것이라는데 화이트데이에 황토 먼지(yellow dust)를 뿌리게 되면 봄 내음이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려는 청춘남녀가 흙비에 젖게 되지는 않을지…. 이날 인연을 맺지 못하면 다음 4월 14일 솔로(solo)들은 흑갈색 짜장면을 먹게 되는 ‘블랙데이’의 외로움을 맛보게 된다. 4월에도 짝을 찾지 못하면 5월 14일 ‘옐로우데이’에 노란 카레를 먹으며 연애운을 빌어야 하는가…. 이날은 또 ‘로즈데이’라고도 하니 예쁜 장미 한 다발 주고받으며 사랑스러운 날을 보내야겠지.

이렇게 언제부턴가 매달 14일을 특별한 날로 정하고 젊음의 연애문화를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포틴데이(14일)’ 문화다. 즉, 1월 다이어리데이, 6월 키스데이, 8월 그린데이, 10월 와인데이, 12월 허그데이 등이 있고, 또 같은 숫자가 중복되는 3·3 삼겹살데이, 4·4 클로버데이, 6·6 고기데이, 8·8 라면데이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11·11 빼빼로데이까지…. 이러한 비공식 기념일은 상술의 한 방편이겠지만 소비자와 관련 기업의 상호 작용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자발적 참여문화가 그 기반에 깔려있으며, K-팝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영향이 크고 소비도 촉진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 던져본다, “기념일 참 많데이!”

또 3월 14일은 201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수학의 날’이기도 하고 ‘파이데이’(π day)라고도 한다. 원의 지름과 원둘레 간의 기본 상수인 원주율 3.1415와 같기 때문이다. 이날 각급 학교에서는 갖가지 수학 관련 행사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또 그 발음이 둥근 빵 파이와 같아서 파이데이(pie day)라고 하여 파이 나누어 먹고 파이 굽기 대회도 하며 3·14마일 달리기도 한다니 참 재미있는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날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여전히 뿌연 하늘 아래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은 듯 헤맨다. 황사를 뒤집어쓴 듯 마음을 덮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극복하고 싱그러운 봄의 맑은 화이트데이를 만끽하려면 파이 대신에 파릇한 봄나물 캐서 전을 부쳐 먹으며 햇볕도 쬐고 행복 호르몬을 많이 만들어 봄을 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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