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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할매 내려온다

등록일 2025-02-27 18:36 게재일 2025-0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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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벌써 2월의 끝날, 차가운 날씨가 조금 풀려 봄이 저만치 고개를 내미는 듯하고 이번 주말과 삼일절 연휴에는 전국적으로 약한 비가 예보되어있기도 하다. 음력 2월은 영동달(영등달), 제석달이라 하여, 초하룻날은 영동할매가 하늘에서 내려와 농사를 돌아보고 가정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날이라고 한다. 예부터 경상 전라의 남도 지방에서는 영동할매를 맞이하기 위해 정성 들여 굿을 하거나 마을마다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도 시골 마을 노인들은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집안 두루 복됨을 비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농촌에서는 풍년을 빌며 농업신으로 받들어 영등고사를 지내고 제주도와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에게 풍어를 빌며 영등굿을 하곤 했다. 영동할매는 바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에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내려와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보름날에 하늘로 올라 가버린다는데, 며느리를 데려오면 깨끗한 다홍치마가 얼룩지도록 비를 내리고 딸을 데려올 때는 봄바람을 살랑살랑 불어서 예쁜 치마가 휘날리도록 한다는데, 영동할매도 며느리가 미웠나 보다. 그런데 며느리 치마를 젖게 한 비에는 풍년이 들고 예쁜 딸 자랑하려던 바람에는 흉년이 든다 했으니 ‘우순풍조(雨順風調)’, 즉 비가 때맞추어 고르게 내리고 바람이 곱게 불도록 영등제(靈登祭), 풍신제(風神祭)를 잘 지내야겠다. 그래야 봄이 오는 길목, 농한기가 지나서 밭 갈고 씨 뿌리는 계절이 평온할 것이 아닌가.

어릴 때 봄학기가 시작될 즈음,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 나를 붙잡고 “영동할매 내려온다. 바람 부니까 조심해서 다니거래이….” 하시며 뺨을 부비고 옷을 추려주시던 우리 할매의 손길이 그립다. 그래서 ‘영동할매’라고 알고 있었는데 ‘영등할매’로도 부른다. 그때 엄마는 새벽녘에 우물가 장독대 위에 밥 한 그릇, 나물 한 접시, 물 한 사발 떠놓고 꿇어앉아 두 손 비비며 가족의 복을 빌었고 얇은 종이를 태워 날리며 높이 날아가라고 손을 휘저었던 소지(燒紙) 모습….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우리 민속이지만 상상 속의 영동할매 모습이 보고 싶다.

이날을 머슴날, 노비날, 구럭달개 등 많은 방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올해는 영동할매가 곱고 착한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와서 따뜻한 바람과 함께 봄비를 듬뿍 뿌려 온 가정에 평온과 함께 사랑이 넘치게 하고, 어지러운 이 나라에 밝은 기운을 뿌려주고 올라가면 좋겠다. 음력 2월 영등절을 맞아 국가 안위에 두 손을 모아 본다.

지난 25일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이 종결되었다. 11차 변론까지 거치면서 엎치락뒤치락 말싸움을 해왔던 양측은 아직도 합당한 결론으로 이끌지 못하고 재판부의 평의를 거쳐 추후 3월 중순경 고지할 것이라 하는데 만장일치의 인용을 할지 기각, 각하 등의 심판이 내려질지는 예측이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도 시작되었으니, 두 싸움이 잘 풀려서 새로운 봄날이 피어나야 될 텐데.

2월 말 지나 다시 추워질 수도 있다는 꽃샘추위도 온다지만, 이제 농한기도 지나고 있으니 쌓인 눈 녹이고 새싹을 틔우는 따뜻한 비와 바람을 보내주시기를…, “영동할매,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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