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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현장중심 직업교육·전문인력 양성 특성화 大學

대경대학은 2013학년도 입시에서 1천928명을 각 학과 단위별로 모집하며 수시 1·2·3차에서 전체 입학정원의 75%인 1천449명을 선발한다. 1, 2차 정시를 통해 110명(5%)을, 대학의 특성화 교육 환경과 맞물리는 창의적인 인재를 위해 입학사정관제로 전형의 20%를 선발한다. 또 입학 후 1학기를 마치고 적성을 고려해 전공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전공학부를 신설했다.3차 수시모집은 오는 27일까지, 정시모집 1차는 12월 21일부터 2013년 1월 18일까지, 정시 2차 모집은 2013년 1월 21일부터 3월 2일까지 모집한다.전체 36개 전공학과 학부 중 5개 학과 이상이 국내 및 해외대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학과를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개설해 성공적인 직업교육과 특성화 교육환경을 열어가고 있다. △세계직업교육의 리더 양성대경대학의 교육목표는 `세계직업교육의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다.올해 개교 20주년인 대경대는 전문인을 양성하고자 철저한 실무중심으로 직업교육 캠퍼스 환경을 마련해 현장에 강한 대학으로 평가받으며 예능, 예술, 문화 특성화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대학설립 초기부터 연극, 영화, 방송, 뮤지컬과를 개설하고 현장출신의 교수들을 대거 캠퍼스로 영입해 지역에서 가장 먼저 특성화 캠퍼스 환경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뮤지컬과는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전국대학생 뮤지컬 경연대회 부문에서 `페임`으로 금상(1위)을 받는 등 특성화의 분명한 색깔을 찾았다.대학 관계자는 “문화, 예술, 예능 분야의 모든 교육환경이 대학 특성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어 가능한 것으로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며 “관련 학과들이 각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대경대학만의 특성화 교육이 정착한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전공 체험프로그램 개방과 특성화 교육대경대학은 이러한 장점을 내세워 모든 관련 학과를 외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개방하고 있다.유아, 어린이, 중. 고생, 외국인 관광객과 일반인 등 연간 2천여명 이상이 대학에서 제공하는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나만의 향수를 만들 수 있는 향수체험관을 지난 5월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학생이 재배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며 숙성시키는 공간인 `DK 와이너리`를 세계의 와인을 시음하며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했다.집중교육을 위해 도입한 슈퍼학점제도 뿌리를 내리며 특성화 교육에 일조하고 있다.슈퍼학점제는 연극연출방송학부와 뷰티디자인학부, 호텔조리학부에 시행된다. 전공 교수 3인 이상이 수업에 참여해 집중교육을 하는 제도로 수업의 테마는 전공자들이 설정하며 8시간 이상을 이수하면 5학점이 주어진다.대경대학의 독창적인 교육 패턴은 4년제 대학하고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특징이다.뷰티, 헤어, 호텔조리, 호텔매니지먼트 등의 학과는 해당 실습실에서 외부 손님을 맞고 운영과 경영, 전문성을 익히고 있다.이처럼 문화·예술·예능 특성화 교육과 직업교육을 목표로 하는 사회실무계열, 보건계열 등 특화중심의 교육은 수도권에도 잘 알려져 재학생 48%가 서울, 경기권에서 지원하고 있다.“수년 전만 해도 대구·경북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예술학과들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해마다 대구· 경북으로 역 지원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처럼 경쟁력을 가졌다.대경대학의 특성화 교육은 산학 일체형 교육인 CO-OP, 슈퍼학점제, 학내기업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CO-OP 교육은 재학생이 산업·기업현장에 참여해 현장업무를 습득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으로 기업 입사 후 유연하게 업무에 임할 수 있는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학내기업은 기업의 환경을 캠퍼스 내에서 흡수하며 적응력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전문적인 학습과 현장 분위기를 살리고 소득도 올려 큰 호응을 얻고 있다.뷰티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운영하는 `TK 미용실`은 언제나 손님으로 넘쳐나고 호텔 조리학과와 호텔 매니지먼트학과 재학생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42번가 레스토랑도 음식조리는 호텔 조리학과 학생이, 음식 서빙과 손님 접대는 호텔 매니지먼트 학생들이 맡아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취업 경쟁력 학과 강세이러한 경쟁력은 지난 2013학년도 수시모집 1차에 평균 4.6대1의 경쟁력을 나타냈다. 국내 유일 학과인 동물조련이벤트과는 34명 모집에 304명이 몰려 11.1대1, 수입차 딜러 양성소인 자동차딜러과는 5.1대1의 경쟁력을 각각 보였다.크루즈 승무원을 양성하는 관광크루즈승무원과는 5.2대1 등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학과에 지원자 쏠림현상이 나타났다.자동차딜러과는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딜러를 육성했고 1학년 2학기 이상의 재학생이라면 수업과 동시에 딜러 활동이 가능하다.예술학과와 관련된 뷰티, 모델, 호텔조리, 경호, 방송MC, 뮤지컬, 연극영화, 영화방송제작, 연예매니지먼트, 동물조련 등과 같은 계열들이 큰 강세를 보이고 있고, 실무중심의 학과와 취업과 유리한 학과들인 사회복지, 경호행정, 부사관, 안경광학, 호텔매니지먼트, 호텔 제과제빵, 항공운항, 피부미용, 헤어디자인과, 분장예술 등은 지원자들의 지원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보건계열인 간호과, 임상병리과, 병원의료행정과도 강세다. 지난해 보건계열 평균 경쟁률은 37.9대 1로 나타났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11-26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20)

최근 한 방송사의 교양프로그램을 통해 잘 알려졌듯이 유럽의 근세 국가 중 네덜란드를 세계 최고의 무역국 반열에 올리며 국부를 일군 주역은 바로 청어잡이에 나선 어업인들이었다. 하지만 사농공상의 신분제에 강박돼 있던 조선의 어민들은 `뱃놈`의 천대를 받으며 백정이나 다름 없는 최하위 신분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식솔을 건사하기 위해 험한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칼바람 속에 거친 노동을 감수해야 했으며 때론 해안선을 침략하는 외적에 맞서 항쟁의 최선봉에 서기도 했다. 고난 속에 단련된 원형질의 강인함은 이제 경북동해안 사람들의 심성에 심어져 정체성의 한 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 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어로금지령에서 사점(私占)까지 우리 역사, 특히 산업사를 살펴보면 유독 수산업에 관한 기록이 상당한 부족함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도 패총 속에서 낚시바늘과 어망의 석추 등이 발견돼 선사 시대에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어로작업이 짐작되고 있다. 특히 경북동해안 울진의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어선의 제작 시기는 세계 최고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수산업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역사적 홀대의 뿌리는 깊다.철기문화의 시작과 함께 열린 삼국시대에서 어업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고작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어량(魚梁)`을 통해 하천이나 얕은 해안에 고정적인(정치) 어구를 설치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가 유입된 이후에는 백제 법왕 즉위 원년(599)에 내려진 살생 금지령으로 어로행위가 금지됐을 정도이다. `영덕군지`에 따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법흥왕 16년(529) 살생 금지와 어구 소각의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어업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각종 어구와 어장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개국 초기부터 토지와 마찬가지로 왕자들이나 권문세가에 하사되거나 수탈 대상이 됐다. 특히 후기에 들어서면 정치와 세제의 문란으로 권문세가가 토지를 다투어 점유하면서 어량도 포함시켜 어민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특이한 점은 元(원)나라의 다루가치가 함경도나 경상도에서 고래기름을 구했다는 기록을 통해 동해안을 중심으로 포경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이에 비하면 조선기에는 비교적 풍부한 자료가 남아 있는 편이다.건국 후 어업제도 개혁을 통해 어장의 불법 사점(私占)을 국유화 해 어세를 징수케 했으며 성종 대의 경국대전에는 빈민들에게 3년씩 어업면허와 유사한 권한을 준 것으로 보아 어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어장국유제는 또 다시 사점의 성행으로 문란해져 균역법 시행으로 재개혁되는 등 굴곡을 거듭하다가 1880년대 부터 한반도의 어자원 수탈에 나선 일본 어민들에 의해 잠식돼 갔다. 특히 정어리는 1937년 동해에서 140여만t이 어획돼 당시 단일어장에서 단일 어류로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비참한 어촌의 실상다산 정약용은 1801년 3월9일 나이 40세에 첫 배소(配所)인 포항 장기땅에 도착해 7개월 열흘 동안 머물며 18년간의 유배를 시작한다. 다산의 기록을 통해서도 당시 어촌의 곤궁한 실상은 잘 드러난다.당시 다산은 장기읍성 동문에 올라 해돋이를 구경하거나 신창리 앞바다에 나가 어부들의 고기잡이를 구경했다.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해녀의 물질을 구경(`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짠 바다 들락날락 맑은 연못같이 하`-「아가사」)했으며 잡힌 오징어 등 물고기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비유하기도 했다. 또 그는 실학자답게 어부들이 칡넝쿨을 쪼개 만든 그물로 고기를 놓쳐 버리는 것을 보고 무명과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 것을 권고하고 부식을 막기 위해 소나무 삶은 물에 그물을 담갔다가 사용할 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전해 들은 현감은 `백성이 입을 옷감을 짤 무명도 없는데 어떻게 무명실로 어망을 짜겠느냐`며 호통을 쳐 묵살했다고 한다.다산은 이처럼 어리석고 오만한 관리들이 장기의 어민들을 수탈한 상황도 `장기농사` 10수 속에 담아놓았다. `상추잎에 보리밥 싸서 파 고추장 섞어 먹세/ 금년엔 넙치마저 구하기 어렵구나/ 잡는 족족 말려서 관청에 바쳤으니`.또 다른 문헌을 통해 해난 사고에 희생되는 어민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기발전연구회가 발간한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에 따르면 `승정원일기`숙종 37년 2월10일에는 68명이 한꺼번에 바다에 나가 빠져 죽어 휼전(恤典)을 베푼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한 근대 유럽에서도 청어잡이에 나선 어민의 3분의 1이 해난 사고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기록을 고려할 때 전근대적 어로 현실에 놓인 조선 어민들의 희생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제국주의의 야욕을 키워가던 일본의 어민들이 침탈의 선봉에 선 기록도 안타깝다. 1895년(고종 32·을미년)에는 장기군 근해에서 어물을 빼앗고 배와 그물을 파괴했으며 육지로 침범해 인가에 난입해 백성을 위협하고 부녀자를 잡아가는 등 작폐가 심각했다.□노동요가 위로한 어심(漁心)민요는 민중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향토성과 민족성을 담아 가락으로 표현한 양식이다.그중에서도 노동요는 의식요, 유희요와 달리 노동이 주는 육체의 고통과 불만을 덜고 노래를 통해 즐겁게 수행하기 위한 지혜에서 고안됐다.경북동해안에도 구수한 사투리를 담은 어업 노동요가 전해지는데 주로 그물당기는 소리, 고기 푸는 소리, 노젓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이 가운데 포항의 `그물당기는 소리`는 `명사십리 해당화야 이여차/ 너 꽃 진다 설워 마라 이여차/ 명년 춘삼월 돌아오면 이여차/ 너는 다시 피건만은 이여차/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여차-`. `멸치 그물 당기는 소리`는 `모여 소리 나거들랑/ 동네 사람 다 붙어라/ 이여 소리만 잘하며는/ 모든 고기 다 잡힌다`의 내용이다.영덕의 어업노동요는 노물리의 창자(唱者)들의 덕분에 `영덕군지`에 잘 채록돼 있으며 내용도 풍부한 편이다.`노 젖는 소리`는 `-/ 한주먹을 누어놓고 (이하 반복)어허 저서보자/ 이자지차 잘도 전다/ 젖는 노를야 저사가고/ 노는 사람은 다틀랬다/ 일물에 일사공아/ 허리깡 화장아야/ 이차저차 저서간다/ 홍물에 화장수로구나/ 탁주 한되를 마셨으면/힘이나 벌떡나게/ 이수저수 다보내고/ 우리 고향 다돌아왔다`(천연출, 1972년).`가래노래`는 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선후창으로 `어허 가래요(선) 어허 가래요(후, 이하 반복)/ 그물코가 삼천리라도/ 걸릴날이 있다드니/ 오늘날로 걸렸구나/ 은가락지도 여게서 난다/ 온갖 색시도 여게서 난다/ 비바리도 여게서 난다/ 까끄무도 여게서 나고/ 젓아보자 젓아보자/ 육천리 먼먼길에/ 팔이 아파 우에젓노/ 젖는 노를 멈추지 말고/ 빨리 젓어보자/ 세월 봄철아 가지를 마라/ 알뜰한 청춘 다 늙는다`(김유근, 1972년).`마개노래`는 어장의 그물을 당기거나, 배를 육지로 당겨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의 선후창으로 `어허 마개야(선) 에이아라 돌려보자(후, 이하 반복)/ 고기도 고기도 많이 들었다/ 방에(방어) 카나(랑) 광에(광어)카나 많이도 들었다/ 어허 마개야/ 운반선을 맥히기 실어보자/ 우리 앞에 대어놓고/ 군사들아 군사들아/ 일을 알뜰히 알뜰히 해여보자/ 한치기만 씨리면(실으면) 술이 한말이다/ 방에 한마리 후비나라(훔쳐놓아라)/ 집에 구수가 소주 한빙 먹어보자/ 먹자주의다 먹자주의다/ 방에 한마리 천원 받는다/ 천원 받으면 술이 두말이다/ 여러기 먹어도 남는다/ 전주(주인) 보면 도둑놈 칸다/ 우리들은 먹어보자/ 그래 안된다 소주한잔 주자/ 내일일라 광에 한마리 후비자/ 그마 술먹자`(고천수, 1972년)□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26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우뚝 서다

대구 엑스코가 지난해 5월 확장 개관하며 전시공간 확대와 오디토리엄 신설로 대형 전시회 및 컨벤션 동시개최와 개별 전시회의 규모 확대 등으로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도약하고 있다. 2011년 5월 19일 지방에서는 최초로 전시장 확장을 완료한 엑스코는 지난해에 이어 2012년에도 전시회 및 국제행사 개최의 괄목할 만한 양·질적 성장을 이루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엑스코는 2001년 최초 개관된 복층구조 전시장으로 인한 전시회 효과 반감으로 주최자들로부터 선뜻 전시회 개최를 꺼려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국제 규모의 전시회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나 지난해 확장공사를 완료하며 전시공간이 종전 1층의 전시공간(3천872㎡)이 1만4천415㎡로 확대되고 오디토리움 등이 신설되며 국제 규모의 대형전시회와 컨벤션을 동시에 개최할 수 있게 됐다. 개별전시회 규모도 확대되는 등 시너지효과가 커졌으며 행사 관람객과 전시 주최자들에게 만족도를 크게 높여주는 등 엑스코 확장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먼저 2011년 디지털케이블TV쇼, 대한민국축산박람회, 대한민국과학축전, 우수시장박람회와 2012년 대한민국그린키퍼전시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디자인코리아 등의 대형전시회를 유치·개최했으며, 2013년도에는 국제상하수도전시회, 경향하우징페어, 세계에너지총회 전시회 등 전시장 전체를 사용하는 대형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전시회 뿐만 아니라 2011년 아태인공와우이식학회, 세계폐기물협회 연차대회, 독일여행자총회와 2012년 세계곤충학회, 세계생명공학대회, 국제수지상세포학회 등과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2015년 세계물포럼 등 국내·외 치열한 경쟁을 벌여 유치에 성공한 행사도 타 도시에 앞서 국제 규모의 전시장(2만㎡)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특히, 대형 국제회의 등 컨벤션 행사는 엑스코 확장으로 각종 회의실(중·대형 34실)과 극장식 회의실인 오디토리움(1천600석)을 갖춰 대형 전시회와 국제회의를 동시에 개최할 수 있는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도약함과 아울러 앞으로도 국내·외 컨벤션행사 유치경쟁에도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엑스코 확장 효과는 그동안 규모의 한계로 인해 어려웠던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지난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기간 중 개최된 삼성스마트뮤직페스티벌(6천440㎡), Rain 콘서트(6천440㎡), 포스코 고객초청 행사(6천778㎡), 조용필 콘서트(1만5㎡), 현대백화점 개장기념 콘서트(1만5㎡) 등 대형 공연과 금년도에 램넌트 컨퍼런스(1만5㎡), 메리케이코리아 컨퍼런스(1만5㎡) 등 다양하고 차별화된 대형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국제 규모의 전문전시장을 갖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엑스코는 앞으로 지역 중소기업 수출 극대화를 위한 브랜드 전시회 육성 기반과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에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전시컨벤션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대구의 국제화가 가속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지역의 전시산업 육성을 위해 전시회 규모를 올해 320만㎡, 250만 명에서 2014년 600만㎡, 500만 명으로 확대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전시회인 그린에너지엑스포, 대구국제섬유박람회, 국제소방안전박람회, 국제광학전 등을 글로벌 국제전문전시회로 육성 지원하며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신규 전시회인 물 산업 엑스포, 로봇클러스터 등을 더욱 발전시켜 전시회와 수출상담회 등 무역알선 병행, 전시회별 맞춤형 바이어 초청, 전시회와 관광프로그램을 연계시켜 나갈 계획이다.대구시 안국중 경제통상국장은 “국제규모의 전시장 및 회의실을 갖춘 엑스코가 지역 연관산업과의 상승효과로 중소기업 판로를 다변화하고, 전시회의 대형화 및 국제화로 타 시·도 전시산업에 비교우위를 선점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사회공헌으로 이미지 제고 앞장”▲ 박종만 엑스코 사장지난해 5월 확장 개관한 엑스코가 대형 전시회와 국제 규모의 컨벤션 유치에서 괄목할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박종만 엑스코 사장은 오는 2014년까지 전시회 규모를 2012년보다 배 이상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박사장에게 전시공간 확대와 향후 엑스코의 발전계획을 들어봤다.-엑스코 확장으로 인한 효과는.△지난해 5월 확장 개관하며 확장으로 엑스코의 전체 전시·컨벤션 면적은 기존보다 2배가량 늘어났고 중·대형 전시회를 동시 개최하거나 국제규모 대형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데 됐다. 오디토리움(1천500여석)과 회의실(34개) 등 컨벤션 회의 시설도 대폭 강화되어 국제회의 유치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이로 인해 확장 이후 새롭게 유치했던 디지털케이블TV쇼, 대한민국과학축전, 디자인코리아 등 1만㎡ 이상을 사용하는 대형전시회가 확장이전과 비교해 3배 가량 늘었으며(4건 → 13건), 내년 개최 예정인 국제상하수도전시회, 세계에너지총회, 2015년의 세계물포럼 등의 대형 국제행사의 유치가 가능했다.-엑스코를 2배 가량 확장하며 오히려 가동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전시공간이 2배 가량 늘어나며 초기에는 가동율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확장이전인 2010년과 2012년의 전시장 사용연면적을 비교해보면 62%나 증가했으며 지난해와 비교해도 약 20%가 증가되고 있다.2013년 이후에도 대형 행사들이 많이 유치되어 있으며 기존의 지역특화산업을 기반으로 한 엑스코 자체 전시회들도 규모 확대를 실현해가고 있는 만큼 3~4년 이내 적정가동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내년도 사업계획과 목표는.△지난해 확장 개관하며 올해는 전시회 규모와 국제화에 첫 발을 디뎠다면 내년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성장을 통하여 일류 전시컨벤센션터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이다.우선 2013년에는 자체기획전시회 개최 15건, 전시회 유치 50건, 컨벤션 유치 35건 등을 통해 사업매출 235억, 가동율 55%를 달성하겠다.또 자체 기획 전시회의 국제화, 대형화, 전문화, 서비스 차별화를 통한 국내외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국제기구와의 네트워킹 확대를 통한 전시컨벤션 유치 강화,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고부가가치 수익구조 창출, 제도개선을 통한 업무의 효율성 및 투명성 제고, 공익기업으로서 사회공헌활동 등을 통한 이미지 제고 등에 노력하겠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2-11-26

바오로가 꾸짖은 타락의 도시 코린트, 지진으로 황폐화

행복했던 이틀간의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돌아온 다음날이다. 오늘의 첫 번째 관광은 코린트 운하다. 코린트로 가는 도중 `메가라`란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천년의 흐름 속에 한 계절이 지나듯 자동차로 후딱 지난 곳이지만 메가라는 철학사에서 빛나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소피스트 철학자 에우클레이데스(BC 450~380)가 메가라 철학 학파를 창설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즉 `A이지 A는 아니다.`와 같은 명제논리학(命題論理學)을 창시한 학파로 스토아학파 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 지역이다. 요즘 메가라는 아테네 변방 도시로 농사와 양계를 많이 하는 농촌 마을이다.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지나 코린트 운하에 도착했다.운하(運河)는 물길이다. 바다와 바다, 바다와 강, 강과 강을 이어 만든 물길. 그 길을 통해 인간은 빠름을 꿈꿨다. 세계 최대의 운하는 162.5km의 수에즈 운하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와 인도양을 잇고 있다. 82km의 파나마 운하는 카리브 해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다. 이런 운하에 비하면 코린트 운하는 그 길이와 폭이 짧다. 운하 위로 놓인 다리 한쪽 전망대에서 양쪽 끝을 볼 수 있다.코린트 운하는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한 바퀴 돌지 않고 남 그리스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코린트만과 사로니카만)을 연결해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방면으로 빨리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총 길이 6.3km(6천343m)의 바닷길이다. 평균 높이는 80m이고 폭은 24m다.운하 위에 놓인 다리 전망대에서 짙푸른 운하를 내려본다. 양옆으로 가파른 절벽 바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6.3km를 뚫으면서 300km의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빨리 가고 싶은 바람은 기원전에도 있었다. 한 눈으로 봐도 빤히 보이는 지름길이 있는데 돌아서 가야 한다니……. 거센 태풍의 바다를 거치지 않고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 반대편 바다까지 끌고 간 일도 있었다. 그것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서 가는 것보다 시간과 경비를 덜 쓸 수 있기 때문이다.AD 67년 로마의 네로 황제는 노예 6천명을 동원해 운하를 뚫기 위해 삽을 들었다. 하지만 운하를 시작한 다음 해 죽게 되자 그 뒤를 이은 갈바(Galba) 황제는 경비 문제로 사업을 중지시켰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1881년 다시 시작해 1893년 완공하게 됐다.운하를 구경한 우리는 곳에서 7km 떨어진 해발 575m의 아크로코린트(Acrocolinth) 성으로 향했다. 아크로(Acro)란 높은 곳을 가리킨다.가파른 산길 아크로코린트 성문을 지나자 성채 밖으로 인구 3만의 코린트 마을이 펼쳐진다. 코린트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기원전 8세기에는 25만 정도의 인구가 머문 거대 상업 도시로 발전했다. 기원전 27년 아카이아(펠로폰네소스 반도) 속주 총독부로 승격되면서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양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리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그런데 이 도시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 코린트 전서에서 보듯 타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도시다.산꼭대기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제관(무녀)의 여자들이 천 명 이상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산 밑의 사내들과 불륜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그것도 부자(父子)를 끼고 노는 무녀도 있었다. 에페소에서 그런 소식을 접한 사도 바오로가 코린트 사람을 향해 쓴 편지가 코린트 전서다.`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18:11)바오로 사도가 코린트에 머문 기간은 기원후 51년, 52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로 찾는 곳이 코린트다. 코린트는 후일 지진에 의해 황폐화된다. 아크로코린트(Acrocolinth) 성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아랫마을도 내려본 우리는 코린트 박물관으로 이동했다.내려가는 도중 최 형이 코린트의 `피레네의 샘`에 얽힌 신화를 들려준다.“피레네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잘못 날아온 원반에 그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죠. 자식을 잃은 피레네는 밤낮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눈물이 몸을 녹여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그곳을 `피레네 샘`이라고 하죠.”유적(遺蹟)을 담으로 사용하고 있는 낡은 집 옆길을 지나자 박물관이다. 코린트 박물관은 1931년에서 1932년까지 미국 고고학자 스튜어트 톰슨에 의해 지어졌으면 1950년 현재의 규모로 확장했다.그리스의 다른 박물관처럼 실내 박물관과 외부로 나누어 관람할 수 있는데 실내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비잔틴시대까지의 유물이 있다.표를 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의 방이 나온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 정도로 뛰어난 의술의 신이다. 환자를 치료하면 그 환자는 나은 부분을 작은 조각품으로 만들어 기증했다. 여자의 젖가슴은 물론이거니와 남성의 성기 등 신체의 많은 부위가 전시돼 있다. 그만큼 성생활의 문란으로 질병이 창궐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귀와 발도 그 크기가 다양하다.단층의 박물관에는 4개의 방으로 분야별로 유물을 전시해 놓았는데 어수선할 정도로 작품이 많다. 네로 황제의 두상을 비롯하여, 니케의 여신상, 청동거울, 포도넝쿨 부조, 도자기, 유리공예, 가면, 방패, 조각상 등 다양하다. 하물며 석관에 사람의 유골도 보인다.나의 눈을 특별히 끌어당긴 것은 비잔틴 시대에 만든 모자이크다. 술의 신이며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를 위한 모자이크다. 원근법에 따른 입체적 느낌이 드는데 네 장의 꽃잎을 펼쳐놓은 듯 섬세하게 만들었다. 바닥에 깔렸던 것을 벽에 걸어 놓은 것이란다.실내 박물관 전시물을 이쪽저쪽 둘러보고 밖으로 나갔다. 넓은 공터 곳곳이 역사의 한 갈림길에서 코린트의 위용을 보여주던 건물 자리다. 기원전 6세기에 제작된 대표적 건물 아폴론 신전을 왼편으로 두고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탐방로 양 옆으로 돌들은 누워있다. 성한 것보다 깨져서 마모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 올리브도 자라고 소나무도 자란다.산쪽(아크로코린트)으로 기둥 세 개가 있다. 로마제국의 황제 옥타비아누스 신전이다. 나머지 부분은 다 무너지고 달랑 기둥 세 개가 하늘을 받치고 있다. 학술, 문예를 장려해 로마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그였다. 로마의 초대 황제(BC 63~AD 14) 카이사르의 양자로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이차 삼두 정치도 시행했던 인물이다.아고라(Agora) 옆길로 관공서가 자리잡고 또 술집터도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시대를 초월해 다 비슷비슷함을 발견하게 된다. 레카이온 거리 끝 연단(베마)은 총독이나 관리가 연설을 하던 곳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곳은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로마 총독 갈리오가 이곳에서 바오로 사도를 심문했기 때문이다. (사도 18: 12-17)이동하면서 최 형이 들려주었던 `피레네 샘`도 보고 목욕탕, 수세식 공중화장실도 만난다. 아폴론 신전으로 향했다. 아폴론 신전은 원래 38개의 기둥이었는데 현재 7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잦은 지진과 훼손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많은 유물을 제자리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많기 때문에 흔한 유물이고, 그렇기에 별로 소중해 보이지도 않은 느낌이다. 흩어진 유물을 낡은 시대의 지폐처럼 멍하니 바라본다. 멍한 시간 안으로 수천 년이 햇살처럼 촘촘 스미고 있다.계속

2012-11-23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9)

경북의 혼(魂)을 밝혀보는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클로즈업되는 사상(思想)은 동학(東學)이다. 올해는 동학이 창도된 지 152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 근대 태동기 사회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집권층과 지도층은 무기력했다. 계층 간의 갈등은 깊어만 갔고, 사회구조의 변동과 향촌 질서의 변화는 사회 변혁의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1860년 경주 출신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했다. 동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양반과 상인을 차별하지 않고, 노비제도를 없애며 여성과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를 추구하여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경북동해안은 우리나라 사회변혁의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현장이다. 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수운 최제우와 동학의 교리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1824~1864)는 순조 24년(1824) 10월18일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선비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리학을 공부하고 성장해 가면서 당시 왕조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기성적 가치관이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을 구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나섰다. 이 구도의 길에서 민중을 구제할 수 있는 새길을 찾은 것이 동학(東學)이었던 것이다. 수운 선생의 원 이름은 제우(濟愚)가 아니었다. 원래 `제선(濟宣)`이란 이름을 `우민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으로 `제우(濟愚)`라 개명했다.최제우는 서양에서 침투해오는 서학에 대한 대항의식으로 우리 민족도 한울님인 천주의 천도(天道)를 깨우쳐서 다시 민족부흥의 정신적 기초를 마련한다는 신념에서 자신의 `천도`를 동학이라 했다. 모든 사람이 신분차별 없이 시천주의 인간존엄 주체가 돼 성(誠)과 경(敬)의 덕을 닦으면 모두가 군자가 될 수 있다는 평민의 인간자존 의식을 깨우쳤다.한편으로 그의 동학은 왕조사회의 쇠망을 대담하게 예언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새시대가 도래한다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당시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대한 `척왜양이(斥倭洋夷)`의 민족자주적 저항의식을 서민들의 마음 속에 불어넣었다.왕조 해체기에 피지배층인 백성들에게 신흥종교로 탄생한 동학은 그 교세가 날로 커졌다. 이를 본 조정은 이 동학교문을 민중의 반란조직처럼 위험시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혐의를 씌워 교주 최제우를 체포하였다. 그리하여 최제우는 1864년 대구 장대에서 `사도(邪道)난정(政)`이란 죄목으로 순교하게 됐다. 민족자주, 인간존중, 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한 그의 민본주의사상은 그가 순교한 후 갖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나날이 번창해 갑오농민전쟁에서 3·1 독립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대민족사의 정신적 주류가 됐다. □포항·경주에 남은 최수운의 유적경주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있는 구미산(龜尾山) 자락에 천도교의 발상지 용담정(龍膽亭)이 자리잡고 있다. 구미산은 거북 구(龜)와 꼬리 미(尾)를 합해 `오랜 뒤끝`이라 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장소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수운 대신사는 21세 때부터 도(道)를 얻고자 10년이라는 긴 구도(求道)의 여정(旅程)을 가지고 있어 전국에 전설처럼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포항시 남구 구룡포에도 이와 관련된 유적이라 전하는 곳이 있다. 구룡포 후동리(厚洞里) 남쪽 산아래 마을에 불성사(佛聖寺)란 절이 있다. 마을 뒷산에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불을 켜` 놓고 기도를 한다고 해 `불썬바우`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원효대사와 최제우가 이 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한다.1859(己未)년 10월에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기도는 계속되다가 경신년(1860) 4월5일 밤에 드디어 하느님의 계시를 받게 됐다. 이후 수운 대신사는 양산 천성산 내원암(內院庵), 또는 적멸굴(寂滅窟) 등지에서 49일 기도를 수행했고 마침내 고향인 경주 현곡면 구미산에 위치한 용담정에 돌아오게 된다. 용담정은 수운 대신사의 부친(최옥)이 학사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수운 선생은 `불출산외(不出山外)`라는 네글자를 문 위에 써 붙이고 `여기서 도를 깨닫지 못하면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라는 굳은 맹세를 했다. 수도에 전념한지 6개월 만에 그는 `한울님이 사람의 몸에 모셔져 있다`는 `시천주(侍天主)`를 깨닫게 된다. 그 날이 바로 수운(최제우) 대신사가 무극대도를 받은 1860년 4월5일이다. 이와같이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장소인 `용담정`을 천도교에서는 최고의 성지로 꼽고 있다. 그러나 수운 대신사 순도 이후 용담정은 방치돼 왔다. 그후 중건과 퇴락을 거듭하던 용담정은 1974년 경주국립공원에 편입됨으로써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고 천도교인의 성금으로 1975년 오늘의 모습을 갖춘 용담정을 준공했다. □ 포항에 은거한 해월 최시형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 선생의 동상은 황성공원에 세워져 그가 태어난 황오동을 향해 있다. 그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토박이 경주 사람이다. 초명은 경상이고, 호는 해월(海月)이다. 해월 선생은 청년이 돼 동학을 알게 됐고 수운으로부터 도통을 이어 받은 뒤 평생을 숨어 살며 동학 사상의 기반을 닦고 키워나간 불굴의 혁명아였다. 선생은 심한 탄압 속에서도 포교활동을 통해 교세를 확장하면서 의식과 제도를 정착시켜 교단 조직을 정비했다. 동학을 크게 성장시킨 선생은 교조신원운동과 갑오농민전쟁에도 참여했다.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해월 선생은 5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의 집 머슴살이 등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17세에 현재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신광면 기일동에 있었던 조지소(造紙所)의 고용공이 되었다. 19세에 밀양 손씨를 맞아 결혼한 뒤 처가가 있는 흥해에서 살았다. 그는 용담정에 있었던 수운 선생이 은거해있을 집을 주선해 흥해 매곡리(지금의 매산리) 손봉조라는 신도의 집을 소개했다. 해월은 현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의 검곡(속칭 금등곡)에 살았다. 이때 수운선생은 접주제를 확립하고 16개 지역의 접주를 임명했는데 경주, 영덕, 영해, 영양, 청하, 연일, 장기 등 현재의 경북 동해안 지역이 모두 포함됐다.28세 때 마북에 이사해 농사짓던 최시형은 마을 대표인 집강(執綱)에 뽑혀 6년동안 소임을 수행했는데 일을 잘 처리해 마을 사람들이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해월은 최제우(崔濟愚)가 동학을 포교하기 시작한 철종 12년(1861) 6월 37세 때에 동학에 입교했다. 한달에 3~4차례씩 최제우를 찾아가 설교를 듣고 의범(儀範)을 배웠으며 집에 있을 때는 명상과 극기로 도를 닦기에 힘써 하늘의 소리를 듣는 등 여러 가지 이적(異蹟)을 체험했다고 한다. 1875년 `도(道)는 용시용활(用時用活)하는 데 있으니 때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며 이름을 때를 따라 순응한다는 뜻의 시형(時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97년 손병희(孫秉熙)에게 도통을 전수한 뒤 1898년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 6월 교수형을 당했다. □ 영덕 이필제의 난1871년 음력 3월10일(교조 최제우의 순교일) 영덕군 창수면(옛 영해부 서면) 신기2리(우정동) 병풍바위에서 전국의 동학인 600여명이 모여 천제를 지내고 횃불과 죽창을 들고 영해부성에 입성한 뒤 부사를 처단하는 일이 일어났다. 영해부 입성을 성공한 다음날 오후 동학교도들은 자진 철수했다.이 사실은 갑오농민전쟁보다 23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여기에는 해월 선생이 참가하고 이필제가 선봉이 됐다. 관변기록의 참가자수가 600여명이니 실제는 더 많았을 것이다. 이것은 동학교도들이 중심이 된 농민군이 대규모로 거병한 혁명적 사건이었다.그 후 관군의 대대적인 탄압이 계속돼 참가했던 50여명이 체포돼 죽임을 당하고 이필제는 그 해 8월 문경에서 열린 유생들의 모임에 갔다가 체포돼 서울로 압송된 뒤 지금의 서울시청 뒤 무교동에서 처형됐다.□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23

향긋한 솔향 벗 삼아 걷고 또 걷고…

자연 경치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풍광을 가진 봉화군이 지역의 특색인 원시 그대로의 산림자원을 활용해 걷기 길을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다.`봉화 솔숲 길. 그 향기로운 산책`을 주제로 코스를 개발한 봉화 솔숲 길은 팸 투어를 통한 코스의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을 모색했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표현한선보일 듯 말 듯한 외씨버선과 같은 아름다운 길의 모습에서 유래한 외씨버선 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영양·봉화·영월 4개 군이 연계협력사업단이 3년 계획으로 조성된 전체길이 170㎞나 되는 고요한 사색과 치유의 숲길이며 보부상의 발자국이 오랜 흔적으로 새겨진 백성들의 옛길 탐방로다.그중에서 걸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신비한 길` 봉화 외씨버선 길로 떠나는 마음을 전한다.자연의 신비와 역사와 전통이 함께하는 봉화구간인 `봉화 춘양면사무소~ 서동리~애당리~춘양목산림체험관`으로 이어진 17.6km로 약 5~6시간이 소요되는 길이 열렸다.봉화는 한반도의 허리라 할 백두대간 태백과 거기서 갈비 뼈대처럼 굽이쳐 나온 소백의 틈 약백지간 사이에 자리한 천연의 정토 고요한 분지 속의 땅이었다.바깥으로는 태백산과 청량산, 소백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는 문수산, 구룡산, 선달산과 옥돌봉의 품에 장독의 물처럼 잔잔히 담겨 있는 춘양면 서벽리 두내 약수터를 출발해 외씨버선 길의 `조붓하고 갸름한 맵시`가 서서히 드러나는 숲길에 접어들면 비로소 그의 순진한 속살을 조금씩 엿볼 수 있다.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이 조성 중인 아늑한 문수산 자락의 숲에는 곧으며 단단하고, 늘씬한 금강송 소나무인 춘양목의 군락지가 펼쳐 있다. 고고하고 멋스러운 자태는 한눈에 보아도 귀함을 느낀다.솔향 가득한 숲을 지나 주실령 고개를 걸어본다. 고개에서 바라보는 봉화의 산과 숲은 지상의 낙원이요, 그야말로 천국이다. 금강송 그늘을 지붕 삼아 춘양목 숲을 지나고 나면 솔 향기 냄새가 섞인 바람을 벌컥벌컥 물 대신 마신다. 눈이 환하게 뜨이는 듯하다. 마음 또한 편안하게 열리고 혼탁했던 내 안의 어지러운 찌꺼기가 말끔하게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박달령에 도착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면, 태백에서 소백으로 백두대간을 잇는 길목임을 알 수 있다.박달령에서 오전약수탕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봉화 외씨버선 길 걷기 여행은 내 몸과 마음으로 만나고 교감했던 모든 것들의 고마움을 되새길 소중한 기회가 되는 시간일 것이다. 또한, 나의 눈과 마음이 향하는 대로 걸음을 옮겨주었던 다리와 발, 건강한 허파와 심장은 나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주변관광지◆만산 고택 춘양면 의양리 288 연락처 054-672-3206 사진 2000년 4월10일 경북민속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것으로,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1846~1934)이 고종 15년에 지은 집으로 13실 100명이 체험할 수 있는 고가체험 숙박도 할 수 있다.◆닭실마을 봉화읍 유곡리 963 연락처 054-674-0963조선 중종 때 문신 충재 권벌(1478~1548)선생의 유적지로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제례 때 사용했던 500년 전통의 한과도 유명하다.◆도심리 장수마을도심2리는 자체 생산되는 임업자원을 관광상품화할 수 있도록 목공예품 제작 작업장을 마련하고 목공예 공구를 비치하여 도마, 탁자, 등 목공예 체험장을 연중 개방해 운영하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달구지 타기, 소죽 끓이기 등 다양한 농촌체험행사를 운영하고 있다.◇맛집▷동궁회관 (054-672-2702)엄나무 돌솥밥과 엄나무 송이돌솥밥을먹을 수 있는 곳▷춘양 홍가네 (054-673-3395)당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흔하지 않은 당귀 밥은 여성들 에게 좋다고 한다.▷애당식당 (054-672-8213)50년 전통을 자랑,메뉴는 묵 밥과 손칼국수가 전부다. 직접 묵을 쑤고 묵 밥을 만들고, 직접 반죽해서 손칼국수를 만든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인화원 (054-672-8289)1년 내내 송이돌솥밥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에 하나다. 송이요리를 주 메뉴로 하고 있다.▷송이식당 (054-673-4788)전국 최초 송이 국밥을 판매, 값싼 음식의 대명사인국밥에 고기 음식재료인 송이를 넣을 수 있는 건,송이 채취가 가능한 송이 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봉화/박종화 기자pjh4500@kbmaeil.com

2012-11-22

1983년 국내 첫 중수로 원전시대 열어 역사적 의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한수원(주)월성원자력본부.국내 전력 사업을 주도하는 이 원전기지가 최근 연일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이곳에서 수십 년간 가동됐던 국내 최초 `중수로형` 원전 월성 1호기의 운영허가 기간이 오는 20일 만료되면서 `계속운전` 여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월성 1호기는 현재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규제기관에서 안전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월성 1호기의 운명이 결정된다. 월성 1호기가 지난 30년간 걸어온 길과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사에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1983년 4월 경북 월성군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당시 월성 1호기의 상업운전은 고리 1호기에 이은 국내 두 번째 원전이자, 국내 첫 번째 중수로 원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경수로형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이 한창이던 1973년 4월, 캐나다원자력공사(AECL) 총재가 가압중수로형 원자로 방식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장기원전개발계획` 원자력 개발 분야에 참여할 뜻을 전했다. 같은 해 6월 정부가 중수로 조사단을 구성해, 캐나다에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 월성 1호기 건설의 시발점이었다.중수로는 경수로에 비해 `건설비`는 조금 높지만,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캐나다 등 여러 국가로부터 연료 공급이 가능해 당시 미국을 통해서만 공급이 되던 농축 우라늄에 비해 연료의 조달이 용이했다. 이는 에너지 안보측면을 고려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경수로와 달리 연료 교체를 위해 원자로의 운전을 멈추지 않아도 돼 이용률이 높다는 것도 중수로형 원전 도입의 결정적 이유였다.월성 1호기가 건설되던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설계·시운전·건설 관리를 모두 선진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월성 1호기 건설은 고리 1호기와 마찬가지로 건설 주체인 계약자가 모든 권한을 갖는 턴키방식으로 진행됐고, 월성 1호기의 건설 주체인 AECL는 175명의 기술진을 우리나라에 파견했다.AECL이 효율적으로 월성 1호기를 건설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건설허가 시점 기준으로 62개월 만에 준공 성과를 거두는 획기적인 공기 단축을 이뤄냈다. 이로써 1983년 4월 22일 월성 1호기 준공식을 거행하고 우리나라 중수로 원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월성원전은 지난 30년 동안 월성 1호기의 안전성 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설비를 개선하고 보강해 왔다. 2003년 주기적안전성평가 후속 조치로 2009년 4월부터 2011년 7월까지 발전소의 압력관 교체와 주요부품 교체 등 총 9천여건에 대한 대규모 설비개선이 성공적으로 시행했다.이 결과 설비개선 전후 대비, 안전성이 대폭 향상됐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중대 사고에 대비해 안전설비를 한층 강화했다. 노심 손상 시 발생할 수 있는 수소를 제거하는 수소제거설비(PAR)를 설치해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수소 폭발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진 자동 정지 설비, 원자로 비상 냉각수 외부 주입 유로 설치 등 안전강화 조치를 했으며 후속조치도 지속 추진하고 있다.월성 1호기는 안정적인 연료 공급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5년 4월 1일부터 1년 동안 평균 98.4%의 이용률을 기록해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전 271기 가운데 이용률 1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30년간 평균이용률 86.2%로 세계 이용률 1위를 총 4차례 달성했다.또, 1998년 5월 중국 진산원전 측과 시운전 훈련 계약을 체결해 월성원전 현장에서 중국 진산 시운전 요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 중수로 원전 운영기술이 중수로 원전의 종주국인 캐나다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임을 과시했다.2008년에는 우리나라에 중수로 기술을 제공했던 캐나다에 원전 관련 기술을 역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캐나다의 세계적인 원전 회사인 브루스 파워에 원전 연료 취급계통 설계 개선을 통한 운영 및 정비 최적화를 위한 기술자문에 착수하면서 중수로 운영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했다.특히, 월성 1호기는 캐나다 포인트레프로 원전에 비해 1년 늦게 설비개선에 착수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일정 내에 성공적으로 압력관 교체와 설비개선을 완료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월성 1호기는 캐나다가 해결하지 못한 원자로관 설치 부위인 튜브시트의 표면조도 불량 문제를 밝혀내고, 노심내부의 정밀한 가공을 위해 특수 폴리싱 장비를 개발해 문제를 해결, 중수로 개발국인 캐나다에도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등 월성원자력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다.월성 1호기의 성공적인 설비개선 진행은 계속운전을 추진 또는 준비하고 있는 해외 동일노형 원전에게는 적극 벤치마킹할 만한 롤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건설 당시보다 안전… 계속운전 안되면 역사 오점”▲ 이청구 월성원전본부장.-월성1호기 안전성을 장담할 수 있나.△기술자의 양심을 걸고 말한다. 계속운전은 무엇보다 안전성 확보가 중요하다. 난 35년간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했고, 충분히 안전하다. 이미 시설개선으로 새 발전소라 할 만큼 기기를 새것으로 많이 바꾸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이 완벽하게 안심할 수 있도록 시설을 지속적으로 교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원전 운영에 있어 인재(人災)도 있었는데.△원전은 다양한 안전설계 개념이 적용되어 있다. 작은 문제나 고장이 생기면 자동으로 정지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적 실수도 마찬가지이다. 실수가 있으면 안전하게 정지된다.그래도 실수를 하지 않도록 더 세밀하게 신경을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지나치게 직원들을 압박해서 주눅들게 하면 안 된다. 누구든지 주눅들면 긴장되고 떨려서 하지 않던 실수도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자긍심을 심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월성1호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한국 원전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계속운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월성 1호기는 차관을 빌려 우리나라 산업을 키우기 위해 힘들게 만든 시설이다. 우리들의 부모, 형제, 누나들이 밤새워 만든 신발, 옷가지 등을 팔아서 번 돈으로 세운 발전소이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몸 아끼지 않고 일했다. 발전소 시설을 계속 개선하며 기름 치고 닦아서 새 발전소처럼 유지해왔다. 누가 봐도 새시설과 같다. 이런 시설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원자력 발전 역사에 큰 오점이 될 것이다.경주/윤종현기자

2012-11-19

방치된 저수지, 아름다운 농촌 명소로 `탈바꿈`

농촌마을 인근 저수지 경관을 활용한 생태공원 조성최근 농촌지역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도민들의 여가활동,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이에따라 경북도는 저수지 주변에 산책로, 운동시설을 설치하고 방치된 저수지를 정비하는 등 아름다운 농촌 경관 조성에 나섰다.농촌마을 인근 저수지 경관을 활용한 생태공원을 조성해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명소화와 함께 지역민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이 사업에는 특히 21세기 선진형 복지 농어촌 건설 책임을 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경북도 농촌개발과가 앞장서고 있다.경북도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도내 농촌마을 인근 저수지 경관을 활용한 생태공원 조성 추진 실태를 살펴본다.□생태공원이란 생태적 요소를 주제로 한 자연관찰 및 학습을 위하여 공원녹지를 생태적으로 복원, 보전하며, 이용자들에게 식물, 동물, 곤충들이 자연환경 속에서 성장, 활동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제공된 장소. 즉 소생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접근, 관찰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원을 말한다.생태원리에 근거해 조성 측면에서는 도시 속에 야생생물의 서식처를 도입하되, 생태계 질서(종 다양성, 생태적 건전성, 지속가능성 등)에 의해 스스로 유지되도록 조성된 공원, 건강한 야생경관을 도입하고, 최소에너지 투입에 의해 유지관리가 가능하도록 조성된 공원이다. 생태환경적으로는 타 공원과 비교하면 비교우위성에 존재가치를 두고 조성된 공원이다.□생태공원 조성 추진배경농촌지역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도민의 여가활동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주민 요구에 부응코자 저수지 주변에 산책로, 운동시설 설치에 나섰다.또 방치된 저수지를 정비하고 아름다운 농촌 경관을 조성하는 등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명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추진내용도는 지난해 접근성이 높은 저수지, 접근도로 등의 교통여건이 양호하고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저수지, 마을경계로부터 500m 이내인 저수지, 주민 수요도가 높은 저수지, 자연부락에 인접해 수변공원 조성 때 주민 이용도가 높은 저수지를 대상으로 저수지 인근 마을 내 주택(자연부락) 50호 이상인 마을을 선정해 도비와 시 군비 등 1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지구당 2억5천만원을 들여 산책로, 정자, 소공원, 조경수, 연꽃식재, 포토존, 운동시설 등을 조성한다.지난해 11월 시군별 조성 가능한 저수지 현황을 조사했다. 그 후 18개 시군 20개소를 대상지로 자연 부락 인접한 저수지 기초조사를 했다.도는 3개 팀 6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현지심사와 우선순위를 검토해 김천 오룡지, 문경 과곡지, 영덕 구이지, 울진 못단골 등 4개 시군 4개 저수지를 사업지로 확정했다.이에 도는 지구당 2억5천만원 등 10억원을 들여 지난 1월 착공,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업성과경북도는 전국 최초로 마을 인근 저수지 생태공원 조성계획 수립 및 시행으로 문경, 영덕, 울진에 수변공원 조성을 완료하고 김천은 조성 중에 있다.도는 쾌적한 저수지 생태공원 조성으로 주민들의 여가 쉼터로 탈바꿈토록 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수변공원 조성으로 지구별 인근 마을 주민들은 물론 외부 관람객이 증가하는 등 삶의 터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사업효과마을 쉼터, 생활체육공간 조성 등으로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이 차별화된다.경관 조성에 따른 마을을 찾는 방문객 증가로 소득향상은 물론 농업기반시설인 저수지에 대한 효과적 관리가 기대된다.□경북도의 향후 계획올해 4개 시군 4개 지구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경북도는 2013년에는 10개 시군 10지구로 지구당 2억5천만원을 들여 저수지 생태공원을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특히 경북도의 최초 시행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2014년부터 새로운 신규사업으로 채택, 전국으로 확대시킨다는 계획이다.△ 파급 효과마을 인근 저수지 생태공원 조성으로 새로운 쉼터 문화공간 창출이 큰 소득이다.또 친환경 생태공원을 조성해 본격적인 저수지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농촌마을 정주환경 개선으로 도민의 삶의 질 개선에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또한, 저수지의 농업용수 기능뿐만 아니라 생태 공원조성을 통한 도민의 운동, 여가, 휴식 등의 복합공간 조성이 눈에 띈다.특히 농촌마을 정주환경 개선으로 경북 도정의 최대 목표인 지역민 일자리 창출, 도시민의 방문 증가에 따른 지역 소득 창출로 살맛나는 농어촌 건설에 이바지하게 된다.□지구별 현황 △ 문경 과곡지 생태공원문경시 산양면 과곡리 717번지 일원의 면적 6천790㎡에 지난 1월부터 2억5천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오는 12월 준공하게 된다.문경 과곡지 생태공원에는 자연석쌓기 길이 300m, 폭 2m의 자연석 쌓기와 탐방 데크설치, 황토포장, 462본의 연꽃 식재 등 자연경관을 활용해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영덕 구이지 생태공원영덕군 영덕읍 덕곡리 지내의 면적 7천500㎡에 2억5천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오는 12월 아름다운 생태공원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구이지 생태공원에는 토공 및 잔디 블록, 경계석 등을 설치하고 2개소의 포토존, 목재계단, 평데크, 403주의 갯버들식재, 4주의 등나무, 210본의 연꽃식재, 운동시설 등을 갖췄다.△ 울진 못단골 생태공원울진 평해읍 오곡1리 못단골지 일원의 면적 5천㎡에 사업비 2억5천만원으로 오는 12월 새롭게 탄생할 생태공원의 효과가 기대된다.못단골 생태공원에는 자연석 쌓기, 관찰데트 설치, 연상홍 400주, 배롱나무 10주 등 410주의 조경수를 식재했다.또 평의자 12개소, 파고라 2조, 음수대, 운동시설 등을 설치해 이용객들을 맞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천 오룡지 생태공원김천시 개령면 신룡리 346번지 일원의 면적 1만㎡에도 2억5천만원을 들여 오는 12월 생활 활력소가 될 생태공원 준공을 기다리고 있다.오룡지 생태공원에는 부지 및 기반시설 조성으로 주차장, 산책로, 운동시설, 정자(쉼터) 등을 설치했다.최 웅 경북도 농수산국장은 “도는 농촌을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쾌적한 환경은 물론 적절한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생태공원 등을 조성해 귀농이나 현 거주자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희망의 장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또 “농촌마을 인근 저수지 경관을 활용한 생태공원을 조성해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명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건설 의지를 보였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2-11-19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8)

역사 속의 고려와 조선에는 많은 정변이 교차하면서 권력에서 내쳐진 죄인들은 죽음만 면했을 뿐 왕의 처소와 격리되는 고난 속에서 연명해야 했으니 바로 유배였다. 그 유배자 중에는 권력다툼의 패배자로 전락해 실의에 빠진 채 성은(聖恩)만 학수고대한 파락호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처럼 유배의 고난과 좌절을 한민족 역사를 통틀어 으뜸가는 학문으로 승화시킨 불굴의 도전자도 적지 않았다. 거친 해풍의 풍토에다 왕도(王都)로 부터 섬이나 다름 없이 격리된 경북동해안은 상처 받은 이들을 보듬어 민초들과 새로이 교류하거나 문학을 배태시키는 장이 되었다. 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절해고도와 다름 없는 유배지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조선시대 이름난 유배자들의 이야기와 그 유배의 현장을 답사한 사진들로 꾸며 최근 발간돼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유배의 고난 속에서 `낙관이냐, 낙담이냐`의 두 유형으로 대별되는 유배자들의 처신이 한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중죄인의 경우 방구들조차 성하지 않은 허술한 오두막에다 탱자나무로 좁고 높게 애워싸게 해 하늘 조차 잘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개구멍으로 밥을 넣어주는 위리안치의 형벌. 아무리 고관대작이었더라도 아전이 고약한 마을에 처해지면 온갖 구실로 제재를 받고 평민에게 조차 행패를 당하기 일쑤였던 당시의 기록들이 유배의 처지를 실감케 한다.유배지의 비참한 현실이 왕의 침소에 까지 이르렀던지 영조 때는 몇몇 예를 제외하면 흑산도처럼 험하거나 무인도에는 유배를 금했다.하지만 이 책에서 유배지는 주로 제주도, 백령도 등 섬이며 심지어 남해의 거제도도 등장하는데도 우리 경북동해안 일대는 어떤 언급도 없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과 영덕, 영해 등 일대에 숱한 유배인들의 이야기와 작품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도 이 책은 간과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 와서 과거 유배지로서 우리 지역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정약용과 같은 `걸출한 유배 종결자`의 이야기를 전남 강진군에 선점당한 채 압도돼 스토리텔링으로 재해석하거나 문화관광의 요소들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포항 남구 장기면과 영덕군, 경남 기장은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한양에서 3천여리의 거리이므로 유배형 가운데 가장 엄중한 죄인이 주로 보내졌다. 오죽했으면 조선 태종대에 대속(代贖), 이른바 유배의 거리 대신 돈으로 대체가 가능해지면서 이 지역의 액수가 2~3위에 오르게 됐겠는가.□ 중세가 선호한 유배지, 장기▲ 장기초등학교 교정에는 우암 송시열이 심었다고 알려진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포항 장기 출신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 한 교수와 고위 관료, 군 장성과 기업인들이 수두룩하다. 장기사람들은 향토사 연구에도 포항 전역에서 인정 받을 만큼 남다른 열의를 보여 지난 2006년에는 장기발전연구회가 향토사 연구총서인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장기에 우암 송시열에서 다산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량과 학자가 머물고 갔으며 그 영향으로 학문을 숭상하고 선비를 존경하며 충절과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풍토가 조성됐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물론 한국사 전체에서 장기는 인접한 월성이 신라의 근거지로서 천년동안 누렸던 융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나눈 곳이었음을 감안할 때 지나친 겸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면 고려와 조선에 들면서 신라의 터전이 차별로 인해 뛰어난 철기문화와 천년 수도의 배후지로서 축적한 문화가 쇠퇴했다가 다시 부활했다는 언급을 생략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여하튼 장기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는 귀화 위구르인 설장수가 정몽주 피살 당시 일파로 몰려 유배된 기록을 시작으로 지금의 검찰총장인 대사헌 홍여방은 유배됐다가 사면돼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단종 복위운동 당시 형조참판이던 사육신 박팽년의 인척들은 관노로 영속돼 장기현의 관노로 내려왔다. 연산군 대에 대사간 양희지가 사초문제가 발단이 된 무오사화에 휘말려 유배됐으며 기사환국 때 영의정 김수흥, 신임사화 때 판서 신사철 등도 고초를 겪었다.이밖에 왕의 잘못을 간하는 언론의 역할을 하는 직무 특성상 미움을 받기 일쑤였던 종3품 사간 가운데 이세진, 정술조, 송영 등은 파직돼 유배나 다름 없는 장기현감으로 온 인물들이다.□다산 정약용과 우암 송시열▲ 다산은 지금 장기중학교 교정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숲을 거닐며 시 `유림만보`를 지은 것으로 전한다. /장기발전연구회 제공다산은 18년에 걸친 유배의 생애에서 7개월 10일(약 220일)을 장기에서 첫 시작한 뒤 17년을 강진에서 보냈다. 그는 첫 유배가 주는 부담과 고통으로 인해 가장 혹독한 경험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장기에 머문 동안 빼어난 사실주의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강진에서 이뤄낼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불후의 저작을 예고했다. 장기 땅에 첫 도착한 그의 마음은 기성잡시의 한수를 통해 전해진다. `산머리에 쓸쓸한 민가 마흔 채/ 기울어진 성문이 시든 꽃 속에 있네/ 물 마실 샘은 한 곳도 없어/ 성에다 줄 매달아 수차를 쓰라 하네/ 조해루 용마루에 저녁놀이 붉게 물들 무렵/ 관리가 나를 몰아 동쪽으로 나왔네/ 시냇가 자갈밭에 초가집 한 채/ 늙은 농부 만나서 주인 삼았네.`그는 장기에서 기성잡시 27수, 장기농가 10수, 고시 27수 등 130여 수의 리얼리즘 한시와 남인의 예론에 관한 시비를 논한 기해방례변, 한자 발달사를 다룬 삼창고훈, 한자 자전류 이아술 6권, 농어민의 비참한 질병치료를 돕고자 한 의서 촌병혹치 등을 남겼다. 이곳에서 한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세편 전한다. 다산의 사실주의가 돋보이는 장기농가 10수 중 제5수에서는 특유의 근면성과 휴머니즘에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에서 언급된 고약한 현지 아전이나 백성과는 다른, 장기사람들과의 정도 옅보인다.`새로 깐 병아리 작기가 주먹만해/ 여리고 노오란 털이 어여쁘기 짝이 없네/ 그 누가 어린 딸 공밥 먹는다고 말하는고/ 꼼짝 않고 붙어 앉아 솔개 쫓는 것을.`촉망받는 개혁가의 꿈이 좌절된 다산은 변방의 민초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정작 그들은 지치고 불안했을 서울내기 유배 초년생을 경계하지 않고 보듬었다.일국을 좌우한 우암 송시열은 다산보다 120여년 앞서 장기에 보내졌다. 사단법인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펴낸 `한권으로 보는 포항의 역사`는 두 사람의 장기 유배를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비교했다. `다산의 자취는 오직 시문에만 남아 있지만 우암은 토호들의 손으로 세운 생사당인 죽림서원으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이는 다산의 `기성잡시`를 거론한 것으로 `죽림서원이 마산리의 남쪽에 있으니/(중략)/촛불 들고 멀리서 찾아가도 반기지 않고/시골 사람들 아직도 송우암만 이야기하는구나`는 내용이다.장기발전연구회의 노력으로 인해 지금 장기에는 노론의 거두 송시열과 대표적 남인인 다산이 시기를 달리한 앙숙임에도 한 자리에 두 개의 사적비로 남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또 다른 유배지 영덕▲ 다산사적비의 모습.`영덕군지`에 따르면 영영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50여명이 유배지 영덕을 거쳐 갔다. 대표적 인물은 고려 예문관 대제학 윤신걸, 신돈의 전횡을 비판한 신현, 정도전과 남은 등에 대한 권력 집중을 비판한 변중량, 단종 3년에 세조에 의해 관노가 된 김처선 등이다. 조선의 대문호 윤선도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제대로 못 모셨다는 죄로 8개월 간 유배되는 동안 시와 부 20여수를 남겼다.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9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7)

한반도의 20세기는 1905년 을사늑약, 1910년의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식민의 굴욕으로 부터 그 질곡의 시대가 예고됐다. 해방과 내전,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의 골짜기에서 변방 민초들의 삶은 더욱 팍팍했다. 하지만 백성을 돌볼만한 여력이 없는 나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의병의 기개가 이땅 곳곳에서 터져 나왔기에 오늘 우리는 감히 민족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또 남북이 갈라진 내전의 땅에 학도병들이 흘린 눈물과 피는 저 대로를 활보하는 청년들의 웃음 속에서 아름답게 부활하고 있다.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정신문화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 포항 기개의 상징, 산남의진경상도의 대표적 의병전쟁인 영양 일월산 전투에는 포항 출신 의사들이 참여해 큰 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인 흥해 곡강 출신 최세윤은 뒷날 산남의진(山南義陳)의 3대 대장으로서 포항은 물론 한국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산남은 문경새재 이남의 영남을, 의진은 의병의 군대를 일컫는데 아들의 의로운 죽음을 아버지가 이어받고(정환직 부자), 장남과 지아비의 연이은 죽음에 어미마저 동행한 충절(최세윤 가족)이 펼쳐졌다. 거의(擧義)의 시작은 삼남(경상, 전라, 충청) 도찰사 등을 역임한 시찰사 정환직(1844~1907)이 고종 황제로부터 `경이 화천지수(華泉之水)를 아는가?`라고 적힌 밀지를 받게 되면서 부터다. 제나라 환공을 적의 추격에서 탈출시킨 봉추부의 고사를 통해 고종은 나라를 되찾는데 힘써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에 1905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정환직은 장남 정용기(1862~1907)에게 뜻을 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가문을 보존하라고 했다. 하지만 의로운 아들이 순순히 따랐을 리는 없었다.광무 10년(1906) 2월 정용기는 62세인 아버지를 대신해 3천여명의 의병을 규합해 대장으로 추대됐으며 군호는 산남의진으로 정했다. 의병들은 영천, 신령, 청송, 진보, 흥해, 청하 등 곳곳에서 일병기지를 습격해 크고 작은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1907년 9월1일 북구 죽장면 입암리 주막에서 식사하는 일병들을 급습했다가 주변에 매복해 있던 영천수비대에 포위돼 정용기 등 의병 40여명이 전사했다. `산남의진 입암지변`으로 명명된 이날의 비극은 민가 수십채를 방화하고 수십명의 양민들을 학살한 침탈로 이어져 의병전쟁사에서 최초의 민간인 참화로 기록되고 있다. 64세의 노구를 이끌고 2대 대장이 된 정환직은 크고 작은 전과를 거뒀으나 1907년 12월 청하면에서 체포돼 영천 교외에서 총살당했다. 1908년 3월 3대 대장이 된 최세윤은 포항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하지만 매 전투마다 의병수의 30% 이상이 전사하는 참상 끝에 그해 7월 경주시 양북면에서 체포된 최세윤은 10년형을 언도받은 뒤 1916년 8월 11일간의 단식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 윤영덕은 천리길을 걸어 시신을 모셔와 반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뒤를 따랐으며 아들 산두는 일병의 모진 고문 끝에 부모를 따랐다. □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경북의 후기 항일의병전쟁은 대개 1906년 봄부터이다. `태백산의 호랑이`로 불리며 일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신돌석은 1906년 3월 영덕군 축산면 도곡2리에서 영해진을 기병했다가 영해와 강릉을 의미하는 영릉의병으로 개칭했다. 신돌석은 영덕, 영해, 울진, 영양, 진보, 청송과 강원도 삼척, 강릉, 원주까지 진출해 일병을 공격했다. 그 명성이 전국에 떨쳐 1907년 음력 11월 경기도 양주에 모인 전국의 의병장들은 `13도 의병 창의대진소`를 결성하며 그를 교남창의대장으로 선출했다. 신돌석 의병의 공적은 독자적인 전투에 더불어 산남의진 등 인근의 의병진과 연합작전을 전개함으로써 더욱 전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신돌석은 1908년 후반기 들어 일병의 토벌이 강화되고 겨울이 되자 부대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혹한을 피하도록 했다. 몇몇 측근들과 잠행을 계속하던 장군은 1908년 12월12일 지품면 눌곡리 두집매(집 두채가 있다는 뜻)에서 예전의 부하이던 김상호, 상열, 상태 삼형제에 의해 31세의 나이에 피살됐다. 영덕군지에는 일병의 피살 보고서에 이들 이름 대신 기록된 김도룡, 김도윤이 본명일 것으로 추정해 기록돼 있다. 장군의 묘는 1971년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인천상륙작전의 열쇠, 장사맥아더 장군은 6·25전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군사전문가들 조차 성공 확률을 `5천분의 1`로 점치며 만류했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성동격서`의 양동작전용으로 영덕 장사 해안 상륙을 선택했다.1950년 8월24일 대구, 밀양에서 대부분 중·고교생인 772명의 대원으로 창설된 독립 제1유격대대, 명부대는 15일여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채 9월13일 LST 문산호로 부산항을 출발했다.다음날 새벽 4시 30분 장사해안에 도착한 문산호는 태풍 케지아로 인해 좌초됐지만 오후 2시 50분 상륙에 성공, 적군의 주 보급로인 포항~영천 방면 국도를 완전 차단하고 17일까지 적군 2군단 정예부대 2개연대의 북상 공격을 격퇴했다. 이어 19일 오후 3시30분 해상철수용 LST 조치원호로 철수를 완료했지만 미처 승선하지 못한 유격대원 40여명은 끝까지 저항하다 전원 전사했다.장사상륙작전에서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으며 유격동지회원 38명이 생존해 있다. 좌초된 문산호의 선체 대부분은 주민 등이 고철로 팔아 넘겼으며 해저에는 아랫부분만 잔해가 있는 것으로 파악돼 있다. 장사상륙작전은 포항·안강지역 전투의 적 김무정 군단 예하 제5사단에서 정예부대 2개 연대와 4대의 전차를 장사로 분산하게 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총 반격의 계기가 됐다. 또 적의 전투력 약화는 국군 제3사단이 형산강을 도하하여 북진하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진 전투`였던 장사상륙작전은 이제 역사속에서 부활했으며 정부는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해 장사상륙작전기념공원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의 요충, 형산강 공방전▲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의 7번국도 변에 건립돼 있다가 현재는 철거된 안강전투승전기념관.사단법인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포항과 경주 일대를 무대로 지난 2002년 발행한 역사인문지리서인 `형산강`에는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 인동리 동쪽산에 건립돼 있다가 수년전 철거된 안강전투 승전비의 비문이 인용돼 있다. 8월9일 침공해온 적 제7사단은 (포항)기계에 침입한 뒤 17일까지 필사적으로 공세를 되풀이했으나 우리 수도사단과 제17연대의 피어린 역습으로 이를 좌절시켰다. 22일부터 병력을 증강해 다시 내습한 적에 15일간 결사적인 지연전을 감행했다. 달포에 걸친 이 지구의 전투에서 적 294명을 사로잡고 전차 2대 격파, 사살 2천328명의 전과를 거뒀다.포항 형산강 일대 전투는 1950년 8월11일 학도의용군 전투, 형산강 방어전 등 포항지구 전투, 포항 비학산전투, 기계 탈환전으로 구분되는 기계·안강 전투로 요약된다.포항은 항구시설을 갖춘 교통 요지로 이를 점령하면 영천, 대구, 경주 방면 진출이 가능해 포항지구는 피아에 그만큼 중요했다. 이 가운데 8월11일 제3사단의 후방지휘소 포항여중(현 포항여고)에서 벌어진 학도병들의 혈투는 영화 `포화 속으로`와 서울 동성중 3년생 이우근의 피 묻은 편지 등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의성지구에서 9일 저녁 도착해 있던 학도의용군 71명은 이날 새벽 4시께 인민군의 기습을 받았다. 이들은 영일비행장에 주둔 중이던 미 해병대에서 구해온 M1소총 68정, 수류탄 3발, 탄환 2만발로 무장해 북의 정규군과 혈투를 벌인 끝에 김춘식 등 57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미해병 비행대와 북한군이 접전한 포항 중심부는 폐허로 변했으며 결국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6

한방·보건·복지분야 특성화 인재 양성의 요람

대구한의대는 `지역사회와 함께 세계화를 선도하는 대학`을 목표로 비전 실현을 위해 한의과대학, 한방산업대학, 보건치료대학, 웰빙복지대학, 국제문화정보대학 등 5개 단과대학 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한방·보건·복지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2012년부터 학문분야별 특성화를 가속하기 위해 지역 전략사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토대로 학부(과)가 지닌 강점과 잠재력은 최대로 활용하고, 유사 특성들은 유기적으로 결합해 교육과 연구분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방의료 및 간호분야에 특화된 수성캠퍼스, 보건·복지분야에 특화된 삼성캠퍼스, 한방산업을 선도하는 오성캠퍼스 등 3개 캠퍼스별 특화 체제를 구축했다.◆ 한의약산업 선도하는 수성캠퍼스와 오성캠퍼스특성화 대학으로서의 위상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교육혁신과 부단한 교육 환경 개선 및 연구력 증진에 매진하고 있다.특히, 수성캠퍼스와 오성캠퍼스가 주축이 되어 견인하는 한의약 산업의 성장성과 잠재력은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최근 국가 5대 미래산업선도기술개발사업 중 천연물신약 개발 부문에 참여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원,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중국 천진국제생물의약연합연구원(TJAB) 등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과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과 한의약 산업에 관련된 연구를 위한 상호 연구·교류협약을 잇달아 체결했다.대형 국책 연구사업인 지식경제부 광역경제권 연계협력사업, 교육과학기술부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MRC), 지식경제부 지역연구산업 육성사업(RIS) 등에 연이어 선정되며 우수한 연구력을 인정받았다.◆ 인성을 갖춘 지식인 양성의 요람 삼성캠퍼스체험학습을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인성과 예절을 갖춘 지식인 양성을 목적으로 삼성캠퍼스 내에 전통 한학촌을 조성했다. 한학촌에서는 명심보감 등 인문학적 지혜를 담은 고전강좌와 전통예절교육, 문화체험 행사 등 다양하고 유용한 각종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특히, 매년 해외 자매결연 대학인 미국 이스턴켄터키대학, 러시아 울랴노브스크대학, 중국 화남사범대학, 일본 오사카 교육대학, 우즈베키스탄 국립미술디자인대학 등에서 파견된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KCP)은 이질적인 문화간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으며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 구실을 하고 있다.◆ 캠퍼스의 국제화 추진세계 문화가 공존하는 캠퍼스의 국제화와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역점적으로 추진해 현재 16개국 45개 대학 및 기관과의 교류 협정을 체결했다. 또 교환학생, 복수학위제, 교비지원 어학연수단, 해외인턴쉽 제도, 해외현장학습, 한국문화 및 의료연수 등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의 국제적 감각과 실무능력을 배양하는데 힘쓰고 있다.국제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면제(교환학생에 한함)하거나 소정의 해외학습장학금을 부여하고 파견 기간에 따라 3학점부터 18학점까지 학점을 인정해 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해 보다 많은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또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는 캠퍼스 문화 정착을 위해 학부와 대학원에 입학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각종 문화행사 및 전용 강좌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국립의과대학과의 의료연수 프로그램은 전통한의학의 우수성을 대외에 알릴 뿐 아니라, 본교 재학생들에게 서양의학 강의를 듣고 러시아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 취업률 증가 슈퍼리더 프로젝트 가동대구한의대는 `입학하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무한 책임의식 아래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고 학생이 만족하는 실무형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2004년 전국 최초로 정부기관과의 취업지원 협약체결을 필두로 2010년 대구·경북지역 소재 4년제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또 3년 연속 대학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지원대학 선정, 청년직장체험프로그램 운영기관 및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청년취업아카데미 양성학과에 선정되기도 했다.취업지원관제도, 청년취업아카데미, 중소기업 체험학습, 취업박람회 개최, 취업 관련 교과목 운영, 취업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취업프로그램 운영과 대학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매년 전국 상위권의 취업률을 달성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학교기업 설치로 성공모델 창출지역 한방산업 인프라와 연계해 한방산업체의 수요에 맞는 한방소재 개발과 제형개발, 생산 및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구·경북 한방산업 육성과 함께 한방화장품 전문 인력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2004년 전국 최초의 학교기업인 `기린허브테크`를 설립, 한방소재를 활용한 민감성 한방허브크림인 매향(梅香)과 소월(素月)의 시(詩)를 생산해 지역 한방산업 전문 유통기업을 통해 론칭했다.2008년부터는 대학 독자적인 유통망 확보를 위해 한의학의 대표적인 원방인 `경옥고`를 현대과학으로 발전시킨 한방 기능성 화장품 자안(慈顔)브랜드를 독자 개발해 출시했다.우수한 연구력과 기술개발력을 바탕으로 한방화장품(자안), 한방건강음료(홍삼경옥골드) 등의 제품 개발로 매년 매출액이 급격히 신장하고 있으며, 한방화장품 제조ㆍ생산에 독보적인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모범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아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정지원 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4년제 대학 최초로 화장품약리학과를 개설, 현장실무형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학교기업 및 산업체 현장실습을 연계한 교육으로 전국 최상위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일반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연계체계는 고급 전문인력 육성에 밑바탕이 되어 학교기업과 화장품산업 경쟁력 제고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11-16

300명 군사로 30만 페르시아군 물리친 레오니다스왕

늦은 점심을 오후 3시 넘어 칼람바카(Kalambaka)에서 3대째 영업하고 있는 `레스토랑 메테오라`에서 먹었다. 뷔페였다. 대형 솥 12개에 다양한 음식을 푸짐하게 제공하였다. 대를 이어 하는 식당답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은 많았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난 칼람바카 마을을 벗어나기 전 성스테파누스 수도원을 되돌아봤다. 우뚝! 수도원을 끌어안은 메테오라 바위가 성인(聖人)처럼 우리를 향해 손 흔든다. `바이바이! 여행객이여 은총이 가득하길!`얼마쯤 달리자 길옆으로 강 하나가 긴 꼬리를 잇는다. `피니오스`강이다. 피니오스 강은 아폴론과 다프네에 얽힌 신화가 흐르는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 에로스는 금화살을 아폴론의 어깨에 맞추고, 첫눈에 만나는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사랑의 상대가 다프네다. 반면에 다프네는 에로스의 은화살을 맞게 되는데 그것에 꽂히면 첫눈에 띄는 사람을 영원히 미워할 수밖에 없다. 애증의 역학관계에 아폴론과 다프네는 쫓고 쫓기게 된다. 아폴론이 시도 때도 없이 쫓아오자 결국 다프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월계수란 나무로 변한다. 아폴론은 그 가지로 전차경기의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는 신화다.피니오스 강은 테살리아 평야를 가로지른다. 해 뜨고 지는 풍경을 지평선 끝으로 볼 수 있는 평야다. 테살리아는 그리스 13개 주 가운데 한 주로 중심지는 라리사市다. 이곳에선 밀, 옥수수, 목화, 채소 등 많은 식물을 재배한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평야 가운데로 뚫려있다. 한여름 땡볕 가뭄에도 식물들은 무성하고 푸르다. 이동 중 멀리 피니오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선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농작물과 꿀, 약초를 팔았다. 원탁의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자 서비스로 시원한 수박을 준다. 수박 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단 것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것 역시 피니오스 강이 흐르는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것이다. 다시 출발한 승용차가 오랜 시간 달리다 들른 곳은 테르모필레(Thermopylae) 온천이었다. 테르모필레의 테르모(thermo)는 온도계(thermometer)의 앞 글자에서 보듯 `뜨겁다`를 의미하고, 필레(pylae)는 문(gate)을 뜻한다. 자연 온천 특유의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온천으로 갔다. 노천온천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다. 우린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거짓말처럼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 이 물줄기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흘러내린 물줄기다. 우리처럼 발만 담그고 있는 그리스 사람이 우리를 향해“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코리아”“코리아! 삼성! 가고 싶은 나라죠. ……이곳을 종종 찾는데 온천욕을 하면 기분이 좋죠. 일광욕을 함께 할 수 있어 해수욕만큼 좋죠.”`삼성`이란 말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기업 `포스코`란 말을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분은 아미아(Amia)에 산다고 했다. 온천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마을이란다.입장료도 없다. 그냥 노천 온천 밖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면 된다. 족욕을 즐긴 난 물이 나오는 원천지를 구경할 겸 상류로 올라가는데 현지인이 막는다. 위락시설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단다. 온천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캠핑투어장도 보인다. 온천은 큰 도로에서 가깝기 때문에 운전하는 사람들이 피로를 풀겸 잠시 들러 쉬었다 가기도 한다. 노천온천에서 휴식을 취한 우린 그곳과 가까운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로 옮겼다. 테르모필레는 지명의 상징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다. 아테네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동편은 바다, 서편은 높은 산으로 영화 `300(삼백)`의 스토리가 된, 세계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천혜의 요새다.기념비 광장에 도착했을 때 일광 형 형수가 말한다.“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삼백` 개봉할 때 봤어요. 그 배경이 이곳이라니?”넓은 공터 뒤쪽으로 20여 미터 울타리 대리석 기단을 쌓고, 가운데 부분에 흰 대리석을 높인 다음 그 위 긴 창을 들고 있는 청동 인물을 올렸다. 청동 인물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조국 그리스를 위해 목숨 바친 `레오니다스(Leonidas)`왕이다. 그 밑 양편으로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장면도 부조로 새겼다.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엄청난 대군(역사가 헤로도토스는 264만1천명의 병사라 함, 어느 책은 170만명, 현대의 학자는 30만명 정도로 추정)을 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바로 3차 페르시아 전투다.대군 앞의 그리스 연합군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 정예병 300명, 노예병 7천명을 이곳에 남기고 나머지 아테네 연합군을 철수시켰다.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는 `레오니다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했다.레오니다스는 대꾸했다.`와서 가져가라.`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레오니다스 동상 밑에는 당시 그가 말했던 말이 두 단어로 새겨져 있다.이것 외에도 스파르타 군인의 용감성은 불세출의 명언으로 많이 회자된다. 스파르타 군인 `디에네케스`에게 동맹국 트라키아의 주민이 하얗게 질린 채로 찾아왔다.“페르시아 모든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면 화살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릴 정도입니다.”그 말에 디에네케스는 너털웃음을 웃으며“잘됐군. 그럼 우리 군대는 그늘에서 전투할 수 있겠군.”그만큼 페르시아의 많은 군사에 대항하는 스파르타 군인의 임전무퇴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일화다.그리스와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전투 이전에도 두 번이나 싸웠다. 첫번째는 기원전 492년이었고 두번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다. 이곳의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실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이런 전투에 대한 기록은 헤르도트스의 명저 `역사`를 비롯하여 풀루타르크 `영웅전` 및 여러 책에 등장하는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다.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광장 옆에는 전투에 따른 설명과 당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그렇다고 델포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거창한 유물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래 전 기록에 따른 기념물을 세웠기에 후세의 사람들은 그곳을 찾고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이다.광장 밖에는 머리와 팔이 없는 또 하나의 조각상도 보인다. 무명용사비다.전쟁에는 숱한 영웅호걸이 탄생한다. 영웅호걸과 그들 밑에서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영토는 지켜지고, 역사는 존재하는 것일 게다. 2천5백년 전 테르모필레 전투는 유럽과 아시아를 지리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된 전투다. 그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저 중동 곳곳에서 배턴을 이어받듯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에서 허황되게 떠올려본다계속

2012-11-16

신비의 왕국 대가야 역사와 자연이 오롯이 숨쉬는 곳

고령군 제1호 자연휴양림인 `미숭산 자연휴양림`이 개장했다.미숭산 자연휴양림은 미숭산 줄기가 주위를 감싸고 왼쪽으로는 문수봉 줄기가 뻗어내린 아늑하고 포근한 곳에 자리잡아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산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들어마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최고의 조망권에 대형 숙박시설미숭산 자연휴양림은 고령군 고령읍 신리 산 45-17번지에 위치했으며 이달 6일 개장식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총 41억5천만원을 들여 2010년 4월 착공, 2년 6개월의 공사를 거쳐 완성됐다.해발 250~300m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속에 35.8ha 규모에 숙박시설(5동/7실), 세미나실(1실/33평), 관리동, 숲속 화장실, 다목적 운동장, 등산로, 주차장 등을 갖췄다.특히 숙박시설은 19평·21평·34평형으로 타 휴양림보다 공간이 넓고 대가족 및 친목단체모임에 적합하게 특화되어 있다.이용요금은 평일 및 비수기 7~10만원, 휴일 및 성수기 14~20만원이다. 휴양림에서 연결된 문수봉 등산로는 가볍게 올라 가까이의 미숭산과 멀리 가야산과 비슬산을 조망하기에는 그만이다.휴양림 오른쪽에는 미숭산 줄기가 감싸듯 흐르고 왼쪽은 문수봉 줄기가 뻗어내리고 있다. 앞쪽에는 청정 수질을 자랑하는 신리저수지가 위치해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또 대가야 박물관,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우륵박물관, 산림녹화기념숲 등 고령군 주요관광지에서 20분(10㎞)이내 접근 가능한 장점도 갖추고 있다. 또 휴양림에서 500미터 거리에 위치한 계곡부에 `대가야 고령 생태숲`을 내년 3월 준공할 예정으로 조성하고 있다.예약은 홈페이지(www.misungsan.com)를 통해 하면 되고 문의는 (054)956-6226 또는 (054)950 - 6311로 하면 된다.◇미숭산 정기 받은 역사 속 왕국 고령은?미숭산의 정기를 받은 고령은 경상북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고령읍에서 합수하여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고령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청동기 시대이며 삼한시대 대가야의 전신인 반로국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반로국이 성장하면서 주변 세력을 병합해 대가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후기 가야의 맹주로 그 세력을 떨쳤다.그러나 신라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562년(진흥왕 23) 9월 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斯多含)이 이끄는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대가야는 시조 이진아시에서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년간 존속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700여기에 이르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낙동강 중류의 좌안에 55㎞가 접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수운을 이용해 관물과 공물을 운반하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이즈모, 중국 남제와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최근의 도로 교통은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하고 김천,통영간 남부내륙고속철도 건설 확정과 대구 광주간 고속철도 추진으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낙동강의 비옥한 사질토에서 생산되는 신화 창조의 비밀에 방영된 우곡 그린수박, 개진 감자, 성산 메론, 고령딸기, 다산 향부자 등 친환경특작물이 사계절 생산되고 있다.고령은 대가야의 수도이었으나 역사속에 감추어진 신비의 왕국이다. 수 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특히 대가야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대가야 전문박물관인 대가야 박물관과 고대 순장문화를 그대로 재현 해놓은 왕릉전시관, 가야금을 창제하신 악성 우륵 선생의 탄생지로서 그 유업을 기린 우륵 박물관, 대가야 역사를 전문 테마로 한 대가야역사테마 관광지, 가야금을 형상화한 낙조가 아름다운 강정 고령보 등 수많은 볼거리들이 있다.인구는 10월말 현재 3만5천438명이며 민선 5기 이후 1천여 명이 늘었다. 농촌지역에서 출생률 저하와 자연적인 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증가 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고령군은 인구증가를 위해 인구증가시책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다양한 정책들을 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주여건이 좋아야 인구가 늘어난다고 인식하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행복도시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특히 88고속도로와 남부내륙 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되고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사통팔달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고 가야산의 맑은 물과 좋은 공기는 뚜렷한 사계절과 함께 살기에 최적지다. 8개 읍면 중 절반인 4개면이 낙동강과 연접해 있고 낙동강 총 연장 521km 중 1/10인 55km에 달하는 긴 연접구역과 184만평에 달하는 넓은 하천둔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2개의 다목적 명품 보와 친수문화광장, 생태공원, 체육시설 강변 캠핑장, 자전거길 등 다양한 친수시설이 조성돼 있다.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이 32km 정도 통과하는데 이 구간에는 제방과 하천의 자전거길이 일반도로와 MTB도로, 농로를 이용한 자전거길과 함께 어울려 수려한 강변풍경과 더불어 환상적인 자전거길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지금도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이에 따라 변모된 강을 효율적인 유지관리와 적절한 개발계획을 통해 지역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삼고자 `낙동강 고령프로젝트 종합발전계획`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POST 낙동강, 고령시대`를 열고 있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12-11-15

`상주농특산물` 거대 美 시장 공략 출사표

한미FTA 등으로 농축산물의 수입개방 파고가 점점 드세지면서 국내 농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어 자구책이 시급한 실정이다.정부와 지자체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작목전환을 비롯해 차별화·특성화 등에 주력하고 있지만 근원적인 해답은 구하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시점에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를 표방하는 상주시가 과감하게 세계 제1의 농산물 수출 대국인 미국을 전략적으로 역공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상주시의 미국 공략이 여타 지자체의 농산물 수출전략에도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탁상공론에 그칠지 전국 농업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성백영 상주시장을 만나 미국 시장 진출의 의미와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상주 시장개척단의 미국활동은.△지난 10월 1일부터 8일까지 미국 동부의 뉴욕, 워싱턴DC를 거쳐 LA한인축제 농산물 EXPO까지 미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이번 시장개척단의 특징은 상주 농업을 대표하는 지역의 3개 조합장과 생산농가가 판촉활동에 동참해 직접 미국 현지시장을 둘러보면서 현지인들의 소비 행태라든지 구매 패턴을 몸소 경험하고 파악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았나.△이번 시장개척단의 활동은 크게 세 개 부분으로 나눠 얘기할 수 있다.첫째는 BCS사 수출상담, 뉴욕한인청과협회 및 무궁프로듀스와의 MOU체결, LA한인축제 농산물EXPO 농산물 판촉활동 등 농산물수출 확대를 위한 홍보,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둘째는 뉴욕한인청과협회, 워싱턴한인연합회, 워싱턴상주향우회, LA상주향우회를 비롯한 현지공관 방문 등 미국 한인사회와의 만남을 통해 우의를 돈독히 했다.셋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신 낙동강시대 주역으로 급부상하는 상주의 주요시정과 발전상을 소개하면서 시장개척단의 활동사항을 적극 홍보했다.이러한 다양한 현지 활동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 동부지역에 상주의 우수 농특산물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장개척단의 방미활동 결과와 구체적인 성과는.△우선 세계 최대의 농식품 소비국인 미국시장에 상주 우수 농산물의 수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데 있다.뉴욕한인청과협회와 LA Moo Gung Produce와의 MOU체결을 통해 새로운 수출선을 구축했고 각계각층의 한인들과 만나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혔다는 것도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실제 뉴욕 방문시 수출상담을 했던 BCS사 데이비드 유 사장이 지난 10월 상주시를 방문해 대미배수출단지, 상주RPC, 서상주포도수출단지 등을 둘러보면서 상주배 70t(2억7천여만원)을 수입하기로 약속했고 현재 수출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또 상주시와 MOU를 체결한 LA의 무궁프로듀스(대표 정혜숙)도 상주포도 30t을 수입키로 하고 지난 10월 19일 서상주농협에서 1차로 포도 10t을 선적했다.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수출개척단의 미국시장 활동성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농산물 수출증대에 큰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상주시가 농산물 해외 수출에 중점을 두는 특별한 이유는.△상주는 예로부터 농경문화의 발상지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초기 철기시대의 탄화미가 상주에서 발견됐고 삼한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공검지가 상주에 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배, 오이, 포도, 양봉을 비롯해 육계와 한우에 이르기까지 그 생산량과 품질면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농산물 시장의 대내외적인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라 국내 농산물도 변화의 물결을 비켜 갈 수 없게 됐고 특히 물량수급에 제약을 받고 있다.농민들이 애써 가꾼 질 좋은 친환경 우수농산물이 과잉공급 될 때는 수출을 통해서만 물량수급을 조절할 수 있고 가격폭락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수출 확대만이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키워드라 생각하며 과잉생산 등 유사시 위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수출증대를 위한 상주시의 향후 계획은.△현재 상주에는 대미배수출단지 등 5개의 농림식품부지정 원예전문수출단지가 있고 3개의 경북도 지정 수출단지가 있다.그러나 8개 전문단지가 모두 100ha 미만으로 소규모이다. 그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아 막상 해외 바이어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출 수 없는 경우가 많다.또 올해는 초봄 우박피해로 지역 수출물량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배 수확량이 크게 감소해 9월말 수출실적이 1천200여t밖에 되지 않아 올해 수출목표 4천800t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농산물 수출시장은 무한정 넓다. 원예전문단지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수출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적어도 단지당 150ha 이상의 규모화가 필요하다.또 시는 수출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구도 신설할 계획이다. 현재 직원 1명이 상주시 전체의 수출관련 지원업무를 전담하고 있어 능동적이고 폭넓은 업무 지원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출시장 개척 등 마케팅 업무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올 연말 조직개편시 수출업무 지원을 전담하는 수출지원담당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상주지역내의 수출농가와 법인 등지에서 거래를 하고 있는 소규모 수출회사는 약 20여개가 넘는다.따라서 소규모 수출회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수출대금 미지급 등의 사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는 반증이다.뿐만 아니라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최고 품질의 우수 농산물들이 해외시장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이러한 취약 조건을 해소하고 체계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전략품목의 육성과 신규품목의 개발, 운송통관, 해외마케팅 업무까지 총괄할 수 있는 유통 전문단체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다면 현재 원예조합과 지역농협이 공동출자해 조직한 상주시공동사업조합법인의 기능과 인력을 보강해 유통공사 기능을 전담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보겠다. 필요하다면 상주시도 출자에 참여하도록 하겠다.현재 자연 재해 등에 의해 수확량이 감소할 경우 국내 시장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수출농가가 내수시장으로 물량을 돌려 당초 약정한 수출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이러한 농업인들의 의식도 점차 변화시켜 어떠한 경우에도 약정한 물량은 수출이 되도록 해 해외바이어와의 끈끈한 신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수출농가와 단체, 수출회사, 행정이 힘을 합쳐 수출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주배, 사과 등 주력 품종의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나아가 포도, 복숭아, 막걸리, 곶감, 쌀, 국화, 접목선인장, 신선배추 등의 다양한 수출 품목 개발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2-11-13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6)

경북동해안은 바다를 중간에 두고 일본과 마주 한 지리적 특성 상 고대에서 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왜의 노략질과 전쟁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신라 천년 동안에는 수도 방위의 최전선이었으며 한낱 변방의 신세에 처한 조선에서도 국토 수호의 보루이자 중심무대였다. 이러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려말에는 포항에 통양포수군만호진이, 조선시대에는 영일진이 설치돼 수군이 주둔했으며 오늘날에는 최정예 해병대의 고장이기도 하다.칼날 같은 샛바람을 맞으며 높은 파도를 헤치고 단련된 경북동해안의 민초들은 거듭되는 외침의 시련 속에서도 한반도의 등뼈를 지켜냈으며 그 자부심은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 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후천개벽을 도모한 땅-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임란의 격전지, 포항 골곡포(骨谷浦)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나타나는 왜적의 동해안 침입은 수십회에 이르는데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후반까지 왜구 및 왜병의 진격로이자 격전지가 바로 포항이었다. 내물왕 38년(393) 5월에는 5일 동안 금성을 포위하고 공격한 왜적들이 굳건한 옹성에 막혀 퇴각하다 이를 추적한 보병 4만명에게 포위돼 독산(포항 북구 신광면 소재지)에서 대패하고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 개포(포항 북구 월포리)는 신라 이래로 수군진(鎭)이 설치돼 병선이 배치되고 3곳에 해자를 설치했는데 바닷바람이 너무 심해 고려 우왕13년(1387)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되면서 통양포(포항 북구 두호동)로 이동한다. 문헌에 따르면 통양포만호진에는 병선 8척, 수군 218명이 배치돼 있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남지역은 초기의 치욕적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전직 문관이나 유생들이 선봉에 서서 의병을 결성했다. 이는 관북지방의 의병장이 주로 전·현직 무관인 것과 대조가 되는데 충성심과 자존심이 강한 영남의 사림들이 무장항전의 지도자로 나선 결과이다. 당시 경주부 관할이던 포항지역 의병장은 남구 대송면 사정리 출신의 수월재 김현룡과 그 형제들, 임란 후 북구 신광면 우각리에 은거하며 종군 경험을 용사일기(龍蛇日記, 용=조선, 뱀=왜)에 남긴 오의정 이의온, 해일당 이설, 남강 이여랑 등이 대표적이다.이 가운데 창의장군(倡義將軍)으로 불린 수월재는 5형제가 의병장으로 나서 우정과 우호, 두 사람이 전사하는 아픔을 `형제산 남쪽의 강물은 푸르구나. 혼이여 혼이여 돌아가기 더디지 말게. 몸을 가벼이 여겨 순국하였으니 유감 없으리. 효도는 집에서만 아니고 충으로 옮겼구나.`라는 시 `서천초혼가`를 남겼다.포항 북구 송라면 화진해수욕장은 대표적 격전지이다. 왜의 보급부대가 백사장에 침입해 주둔하자 이 지역 의병들이 송라면 대전리 대동숲에 매복해 있다가 야간에 급습해 새벽까지 3전 3승의 혈전을 거듭했다고 한다. 임란 이후 이 일대를 골곡포(骨谷浦)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마을 북쪽에서 벌어진 격전으로 전사자들의 유골과 활촉이 지난 1930년대 이전까지도 간간이 발견됐다고 전한다.이후 북구 청하면 일대의 지역 유지들은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에 화진해수욕장에서 위령제를 열어 호국의 원혼들을 위로하고 있다.□의병항쟁사의 기념비, 경주성 탈환20만의 왜군은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침입해 21일에는 영남의 거진(巨鎭)인 경주읍성을 함락시켰다. 왜군은 좌로, 중로, 우로의 세 길로 나눠 한양을 향해 북상했는데 경주는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담당한 좌로에 위치한 격전지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공성 작전 끝에 9월 8일 탈환한 경주성 전투의 영웅은 문천회맹(蚊川會盟)을 중심으로 한 경주부 일대 의병과 함께 비격진천뢰를 활용한 장수 박의장의 공이 컸다. 그가 쓴 관감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9월초 7일에 용감한 군사만을 뽑아서 밤중에 성을 덮쳐 진천뢰(震天雷)를 터뜨리니 적병이 불에 타 죽은 자가 수없이 많았다. 적이 넋을 잃고 소리지르며 당황하더니 이튿날 밤에 부산으로 도망쳐가거늘 추격하여 30여명을 죽이고 성을 탈환했다. 성안에는 아직 창고에 곡식이 4만여 석이나 있었다`.조선군은 경주성 탈환으로 국토의 동로(東路)를 확보하게 돼 왜군의 보급로와 통신망을 차단하는 성과를 이뤘다. 국왕이 국토의 끝 의주로 피하고 왜군이 평양성과 회령에 진출한 상황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한 의병과 관군은 고립 상황에서 자력으로 왜군을 격퇴함으로써 경상좌도에 생기가 돌게 됐다.임란이 끝난 뒤 조정은 공을 세운 9천60명을 표창했다. 특히 의병들에게는 선무원종공신록권을 1, 2, 3등급으로 나눠 주었는데 경주부원은 1등 13명, 2등 33명, 3등 63명 등 109명이 포함됐다. 경주 의병활동에서는 한 집안에 의병장이 여럿 있었다는 점이 특이한 점으로 평가되고 있다.□임란 명장들을 배출한 영덕영덕은 임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명장들의 출신지이다.경주부 판관으로 경주성 수복을 이뤄낸 박의장 장군은 영해 원구 출신이다. 개전과 동시에 부산성에서 정발 장군 휘하의 중위장으로 참전해 전몰한 장희식 장군은 영덕읍 화개리 출신이다.또 하양전투에서 공을 세운 박홍장 장군, 영해의 군기시판관 남의록, 영일현령 김난서, 김제군수로서 공을 세운 뒤 전사한 영해 출신 정담 장군 등이 대표적이다.또 의병 가운데 찰방 조현, 생원 이함, 유학 백현룡 등은 홍의장군 곽재우의 화왕진에 합류해 활약했다.왜군은 평해 백암과 영해 서쪽 창수면 삼계리와 수리 쪽으로 진격해 왔는데 영해 경계에는 1592년 음력 7월 25일 이후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영해에 침입한 왜군은 모리길성과 추월종장, 고교원종 등 장수의 부대로 서울을 점령한 뒤 강원도로 침입한 일부가 동해안으로 남하했다.영해전투는 해흥 백인국, 신규년, 배태원 등의 의병장이 참전했다. 이들은 남하하는 적을 맞아 관군과 함께 창수면 위정계곡에 매복해 적을 습격하려고 했으나 왜군의 선발대를 본진으로 오인해 공격하다가 대병력에 역포위돼 신규년을 비롯한 대다수가 전사했다.이밖에 영덕 출신 김기하, 성하 형제는 정유재란 때 울산 서생포 근처의 창암에서 김기하가 전사했지만 김성하는 명장 마귀와 함께 왜적에 대승을 거뒀다. 왜군의 주력부대 통과지점이며 후방보급로인 대구의 공산성 전투에서도 영해 출신 이함, 백인경 등이 공을 거뒀다.□마분동에 새겨진 울진의 항쟁울진에 왜군이 침입한 것은 행주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이 서울을 벗어나 일부가 경상도 해안으로 퇴각한 시기로 추정된다. 울진의 향토사가들은 임진왜란전황도를 통해 왜군이 강릉과 삼척을 거쳐 영해까지 내려간 점에서 이를 유추하고 있다. 왜병의 공격에 김언륜은 고산성에 주둔하던 주호 장군을 찾아가 의논하고 의병을 모집했다. 또 갈령을 넘은 왜군이 부구와 죽변으로 치닫자 덕천리 마분동 십장곡에서 김천상 등의 부장을 모아 작전을 세웠다.하지만 적을 매복작전으로 급습한 김장군은 반격작전에 휘말려 28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이때 역전분투했던 이 골짜기를 분투곡(奮鬪谷)으로, 사람과 말이 수없이 죽어 쌓였다 하여 마을이름이 마분동(馬墳洞)으로 붙여졌다고 전한다. 대장을 잃은 휘하 장수 김천상 등 9명은 고목리 구장곡에 모여 통곡하다가 손가락을 깨물어 받은 피를 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뒤 선조가 파천한 의주로 향했다고 하지만 이후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울진읍 고성리 구만동 출신인 주호는 서면 소광리의 안일왕산성에 피신했다가 돌아와 300여명의 의병을 모집했다. 8월말에 왜병들이 `남무묘법연화경`의 주문을 쓴 깃발을 앞세우고 쳐들어 오자 옹성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몰사했다고 전한다.그 부인 장씨는 왜군이 능욕하려 하자 끝까지 기개를 지키며 맞서다 순절했는데 한 왜군이 기록을 전함으로써 7년 전란이 끝난 뒤 선조 36년(1603년) `봉열대부사재감첨정`의 벼슬이 주호에게 하사되고 장씨 부인에게는 영인(令人)이라는 작위가 주어졌다고 전한다.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 때는 기성 사람 김응선이 아우 응남과 함께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서울로 진군하던 중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에 통곡하다가 의병들을 해산시키고 귀향했다. 하지만 그는 일생 동안 타인과 접촉을 끊고 지내다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2

`12년 표류` 달성공원 동물원, 어디서 빛 볼까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과연 언제, 어디로 옮기게 될까.그동안 1천800억원에 달하는 이전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구시는 최근 들어 민간 투자자가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전 협의가 계획되는 등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본격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이에 따라 현재 수성구와 달성군은 서로 동물원 이전을 두고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서로 자신들의 지역이 최적지임을 내세우면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12년간 표류한 달성공원 동물원 본격화여기에 달서구와 동구 등도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혹시나 하는 입장에서 대구시의 최종 결정만을 기다리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중구는 동물원이 이전되면 달성토성 복원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고 핵심사업인 근대골목투어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그동안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지체되면 애써 따낸 국비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어 하루빨리 이전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또 서구는 달성토성 주변 노후주택 밀집지인 비산2·3동 일대에 100억원 규모의 도심재생 프로젝트(2013~2017년)를 추진할 계획으로 있어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이런 상황에서 대구시는 1천800억원에 달하는 동물원이전 사업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민간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에 지난 2007년부터 삼성에버랜드 등 지역 연고기업을 비롯한 6~7개사와 접촉을 가졌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외면당했다.■수성구는 땅값이 달성군의 4배수성구는 12년전 대구시가 대구스타디움 인근인 삼덕동 구름골지구 11만3천여㎡(축구장 15배 규모)를 동물원 이전 예정부지로 결정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이렇다 할 해법이 없다면 최초 결정지로 가야 한다는 게 수성구의 입장이고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한 주민들의 피해 보상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수성구의회 박민호 의원은 지난달 개최된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구름골로의 동물원 이전에 대한 타당성과 역사성을 조목조목 제시하면서 민간투자자를 내세우면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대구시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심지어 이곳은 대구스타디움과 체육공원, 대구미술원, 대구야구장(건립예정) 인접지에 동물원까지 들어서면 이 일대가 일약 `복합레저문화단지`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다만 달성군 하빈면보다 땅값 보상비가 4배나 더 비싸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박민호 수성구 의원은 “당초 계획이던 사파리(자동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관람) 형태는 나중에 검토하고 우선 체험 중심의 동물원을 만들면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한 주민들과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달성군은 교통 등 인프라 부족달성군 대구교도소의 하빈면 이전이 확정되면서 주민들에게 지역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이른바 인센티브로 동물원을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46명으로 구성된 동물원유치위원회를 결성하고 하빈면의 대평리 등 5곳을 이전 후보지로 대구시에 추천했다. 달성군의회도 옛 달성군 청사(남구 대명동) 매각대금 일부를 동물원 이전 관련 인프라 확충에 써야 한다며 달성군을 압박하면서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달성군 하빈면 일대는 수성구에 비해 교통여건이 좋지 않고 인프라 구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병오 동물원유치위원장(63)은 “동물원이 달성 전체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어 반드시 유치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규모와 비용 축소도 가능중구와 서구는 동물원을 에워싸고 있는 달성토성(사적 제62호)과 관련된 특화사업이 차질을 빚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중구는 동물원 이전후 달성토성 복원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핵심사업인 근대골목투어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물원 이전이 지체되면 애써 따낸 국비도 반환해야 할 처지다.서구는 토성복원으로 중구의 근대골목투어가 활성화되면 인접지인 비산동으로의 관광객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구시는 늦어도 내년부터 동물원 이전을 시작해 오는 2016년까지 마무리하고 내년 1월에는 입지를 선정할 예정이다.대구시 재정을 고려해 민자 유치를 희망하지만 사업자가 없을 경우 규모를 줄여 시가 직접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면서 이러면 당초 예상 사업비 1천800억원에서 800억원 안팎으로 줄인다는 입장이다.특히 민간투자가 극히 제한적일 경우에는 대구시는 새 동물원의 면적을 4만9천500㎡(1만5천평) 규모에다 사업비도 100억~200억원으로 낮출 계획까지 잡고 있다.규모를 축소해가면서도 대구시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을 더 미룰 수 없는 것은 대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달성토성 복원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국비 62억여 원을 확보했지만 동물원이 이전되지 않아 복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인프라와 균형발전 중 선택지자체간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구시의 동물원 이전 결정은 인프라 구축으로 기반을 갖춘 지역을 선정해 관광 등 효과를 높이느냐, 지역 균형발전을 배려한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이지만 핵심적인 키는 민간 투자자가 될 전망이다.최근엔 동물원 이전부지로 달서구 도시철도 2호선 종점인 문양역 일대가 부상했다. 이는 일부 민간업자가 운영수익을 감안해 지하철 역세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대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고 문양역 일대를 포함해 지금까지 거론된 후보지 모두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11월중 입지선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며 용역결과에 관계없이 후보지 중 민간투자자만 나선다면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재정 이유로 부지 재검토 주민들 분노케 하는 일”▲ 수성구의회 박민호 의원수성구의회 박민호(52) 의원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에 대해 할 말이 많다.“달성공원 동물원이 수성구 삼덕동 구름골 일대로 오지 않는다면 이전을 전제로 명명된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명도 우습게 돼 버린다”면서“혼돈을 야기하고 역명 변경에 따른 비용도 상당한데도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일관성 없는 대구시 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박 의원은 “대구시 지난 1993년 수성구 삼덕동과 연호동 일대에 동물원 등의 조성을 위한 대구대공원 설립 도시계획시설 결정과 지난 2000년 도시공원법에 따라 구름골 동물원 조성계획을 수립한바 있다”며 “20여년간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한 대구시가 이제와서 백지화하려는 의도를 보여 황당하고 당혹스럽다”고 밝혔다.특히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20일 도시자연공원정비 계획에 따라 대공원에서 해제하면서도 삼덕동 산89번지 일원을 근린공원 그대로 둔 것은 동물원부지로 재지정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이런상황에서 대구교도소 이전 승낙에 대한 반대급부로 달성군 하빈면에 동물원을 이전해 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또“이제와서 뚜렷한 설명도 없이 재정상의 이유로 동물원 이전 부지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은 20년동안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면서 “원점으로 다시 돌리자는 대구시의 일관성 없고 근시안적인 행정에 실망하고 있다”고 대구시에 대한 불만을 대신했다.“김범일 대구시장이 지난달 6일 대구시의회 본회의 답변에서 동물원 이전은 주민들이 희망하는 지역을 우선 검토 하겠다고 답변해 시행정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그대로 보였다”며 말한 박민호 의원은“이는 지자체별로 유치 경쟁과 수성구와 달성군의 힘겨루기는 물론 갈등까지 조장하는 부채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박 의원은“그동안 수성구는 대구시를 믿고 있었지 유치할 의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며“거의 완벽한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수성구를 제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박민호 의원은 “대구시의 재정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 대규모의 사파리 형태의 동물원 보다는 현장체험 중심의 동물원으로도 가능하다”면서“대구시에서 계획중인 여러형태의 장밋빛 그림을 쫓아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살아온 주민들을 더이상 분노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2-11-12

잘 가르치는 대학 + 취업 잘되는 대학 명성

오는 2014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대구가톨릭대는 2014년 제2창학 원년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경산의 효성캠퍼스(본교)와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캠퍼스(신학대학), 대명동 루가캠퍼스(의과대학, 간호대학, 대학병원)를 갖추고 있다. 재학생은 1만5천여명으로 16개 단과대학에 11개 학부(22개 전공), 63개 학과, 일반대학원과 교육대학원 외 7개 특수대학원, 부설 중·고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가톨릭계 대학이다.최근엔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하양까지 연장되는 방안이 국토해양부의 심의를 통과하면서 학교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교과부 국책사업 `3관왕`대구가톨릭대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3대 국책사업인 ACE사업, LINC사업, 교육역량강화사업에 모두 선정돼 연간 90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세 가지 사업에 모두 선정되기는 무척 어려운 것으로 특히 ACE사업과 LINC사업에 동시에 선정된 대학은 전국 200개 4년제 대학 중 15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로 평가된다.대구가톨릭대가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10년 이른바 `잘 가르치는 대학`인 ACE사업 선정이다. 전국 11개 대학만 선정하는 사업에 당당히 뽑혔다.소병욱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그동안 다져온 교육 내실화가 인정을 받은 것으로 ACE사업과 LINC사업에 모두 선정돼 명실상부한 학부교육을 선도하는 중심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며 “ACE사업을 통해 학부교육의 내실화를, LINC사업을 통해 산학협력시스템을 다져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양성에 필요한 대학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됐다”고 밝혔다.ACE사업 선정 이후 교양교육원과 교수법혁신본부가 신설됐고 전문직 양성을 목표로 법정대학에는 공직자양성센터가, 경상대학에는 CEO양성센터가 구성됐다. 국가고사지원본부가 신설돼 전문직이나 공무원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의사, 약사 등 각종 면허증과 국가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본격 지원하고 있다.특히 창의력과 융·복합적 사고능력을 배양하고, 다문화 이해 및 진로능력을 높이는 교양교육은 교양교육의 틀을 확실히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인성·창의성을 갖춘 다문화적 전문인 양성대구가톨릭대의 인재상은 인성·창의성을 갖춘 다문화적 전문인 양성으로 이기적인 지식인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하며 다문화적 능력과 포용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이를 위해 인성교육과 다문화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난 1996년 전국 대학 최초로 인성교육 전담부서인 인성교양부(2011년 인성교육원으로 명칭 변경)를 설치해 조직적인 인성교육을 17년째 실천하고 있다.인성교육원은 임종체험, 장애체험, 노인생애 체험교육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비롯해 학습윤리와 정직교육을 하며 한 해 4천여명의 학생이 참가해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청소, 말벗 되기, 목욕 등의 노력봉사를 한다.여름방학에는 몽골봉사단을 파견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전 세계인과 세상을 포용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다문화교육원을 신설해 다양한 다문화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된 다문화연구소는 한국 다문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취업교육에 올인하다대구가톨릭대는 `취업이 잘되는 대학`으로 명성을 쌓고 있다.`입학했으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교육자적 사명으로 2010년 취업교육 전용시설인 취업·창업센터를 건립해 취업 관련해 모든 교육프로그램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하고 있다.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단계별로 조직된 취업교육을 받는다. 취업교육교수들을 임용해 방과 후 취업준비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취업에 필요한 각종 취업프로그램 이수, 자격증 취득, 공모전 입상 등을 점수화해서 일정 포인트 이상을 획득한 학생에게 학기별로 지급하는 `CU Good Point 장학금`도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 결과 2010~2011년 대구·경북 대형대학(재학생 1만 명 이상) 가운데 2년 연속 취업률 1위를 달성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취업지원역량 인증제 시범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외취업 프로그램에 잇달아 선정되는 등 해외취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의약·보건·생명과학 분야 특성화 박차메디 유니버시티(Medi University)를 목표로 의약·보건·생명과학 분야의 특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의대, 약대, 의료과학대, 간호대 등 의료 관련 단과대학 4개를 고루 갖추고 있으며(2013학년도 의료·생명산업대학 신설), 여기에 자연대 생명과학분야 및 공대의 의공학 유관 분야, 사회과학대의 사회복지·심리학 등 유관 분야, 의과학연구소 등 11개 유관 연구소 및 연구센터 등을 총망라해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영적·정신적 치료를 아우르는 전인적 치유를 연구하는 `바이오 메디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특히 최근 LINC사업 선정으로 이 분야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첨단 바이오·의료 산업 융합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자연대학, 의료과학대학, 공과대학, 호텔관광대학, 디자인대학, 사회과학대학 등 6개 단과대학, 22개 학과가 참여해 학문 간, 산업분야별 연계 첨단바이오 의료 제품의 개발 및 상품화, 제품인증 및 품질관리, 디자인 및 마케팅까지 FULL CYCLE 산학협력 지원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공부하는 학생 팍팍 밀어준다.1인당 장학금 지급액이 연간 157만3천원으로 대구·경북지역 5개 대형대학 가운데 가장 많다. 학업성적이 꼭 우수하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각종 연구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활동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주 좋아한다.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장학금을 많이 주자는 게 학교의 방침이다. ACE 사업 선정에 따라 CU-ACE 장학금, 학업성취도 우수 장학금 등을 신설했는데 학습의욕이 아주 높은 학생이나 성적 향상 폭이 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른 대학에서 보기 드문 CU HONORS 장학금(8가지)은 파격적 혜택으로 눈길을 끈다.2천7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는 지역 대형대학 가운데 최고의 수용률(20.1%)을 자랑한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학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11-12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⒂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화주의에 바탕한 무모한 쇼비니즘(국수주의)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 까지 미칠 해악을 간과한 역사적 과오로 전락할 숙명이다. 당대의 특정한 이익을 위해 왜곡된 역사는 동시대인들, 특히 지식인들의 양심을 좀 먹고 공범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배운 학생들에게 축적되는 지식은 차라리 무지 보다 열등하며 후대에 조작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국가적 역량은 또 얼마나 낭비되는지를 우리는 현대 일본에서 목격하고 있다. 식민사관으로 인해 한국사는 심하게 왜곡됐고 신라의 삼국통일이 일국의 제패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오욕(汚辱)의 거울처럼 폄훼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신라는 한반도의 빛나는 문화의 정수와 서역의 선진문물까지 융화시켜 다시 세계 속으로 내보낸 문화 강국이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비단의 길은 서라벌에 닿아15)신라의 달빛, 아시아에 비치다 □한국의 첫 세계인, 혜초(慧超)신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는 다른 서역의 선진문물을 직간접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서기 668년 삼국통일의 시기를 전후해 선각자들은 당과의 교류를 넘어 실크로드로 진출했다.이 가운데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 석굴에 남아 있는 신라의 흔적은 오늘에 까지 전해지고 있다. 프랑스 고고학자 폴 펠리오가 1908년 돈황 막고굴의 17호 석굴, 이른바 장경동(藏經洞)에서 수습 또는 약탈해간 문서에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돼 있다.승려 혜초가 경주를 출발해 이란 동북부의 니샤푸르에 이르기 까지 4년간 `다섯 천축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기록`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저작은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이다.뿐만 아니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보다 약 550년 앞선 역작으로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혜초의 뛰어난 지식과 식견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8세기 당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풍습과 문화, 경제, 정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갖게 됐다.많은 동서양 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신비한 승려의 실체를 몰라 연구를 거듭하던 중 결국 일본의 학자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신라승임이 규명됐다.혜초 외에도 도축승(渡竺僧), 즉 천축국(인도)으로 건너간 승려는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현태(玄泰), 원표(元表) 등 9명에 이른다. 또 도당승(渡唐僧) 중 신라 왕손인 원측(圓測)은 현장의 수제자였으며 지장(地藏)은 중국 4대 불교 성지의 하나인 구화산 성지의 창시자이자 안휘성에 벼농사를 전파하는 등 중국 내에서도 추앙받은 신라인이었다.돈황석굴에서는 혜초 뿐만 아니라 신라인으로 추정되는 박원홍과 원장 형제와 관계된 계약문서가 발견됐으며 석굴 220호(642년), 335호(686년), 332호 등 몇군데에는 신라인이 직접 묘사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미지의 세계, 서역으로 나아간 신라인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중세 아랍에 비친 신라인 아랍인들에게 신라는 이상향과 `황금의 나라`로 기록돼 있다.마끄디시의 `창세와 역사서`(966)에는 적힌 신라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동쪽에 신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그곳이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이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신라인 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며 식사 때는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중세 아랍을 대표하는 세계지도의 작성자 이드리시(1091~1166)는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에서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해 다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그곳이 매우 풍족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은 너무나 흔한 바, 심지어 그곳 주민은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지도에서 신라를 섬으로 기록한 수준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는 기록인데 이는 직접 신라를 다녀간 서역인이나, 세계로 나아간 신라인이 각기 제 경험을 과장한 결과일 것이다.분명한 것은 신라는 기원을 전후 해 1천여년동안 알타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황금문화대의 동단에서 전성기를 구가했음을 이 기록과 유물들에서 알 수 있다. 황금문화는 고차원의 문화로서 그 향유 민족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금관의 나라` 신라의 위상은 세계 고대 금관 10구 중 6구가 신라(1구는 가야)의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에 진출한 신라의 수출품아랍, 이슬람세계에 수출된 신라의 물품은 비단과 검, 도기와 담비 가죽, 사향, 마안(馬鞍), 범포, 육계(肉桂), 키민카우, 쿠란잔 등 11종(6~7종 토산품, 2~3종 외래품)이었다. 그리고 일본 정창원(正倉院)의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11년(752) 일본에 수출된 각종 향료와 약재, 안료와 염료, 기물 등 품목이 약 45종이었으며 그 중 일부는 중개무역품이었다.경북대 주보돈 교수 등에 따르면 신라문화의 중심지 경주는 내륙과 바다가 만나는 교차로로서 북방과 남방의 문화 등을 호수처럼 받아들였다.그 결과, 4세기 경에는 북방적, 고조선적, 낙랑적, 해양적 요소 등이 신라문화의 실체를 이루고 고구려의 영향이 가미됐다. 이러한 통합성에다 특유의 독창성이 가미된 신라문화는 다시 해양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 터키 개최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 야심찬 추진경북도는 내년 8월31일부터 9월22일까지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을 터키 현지에서 개최한다.지자체로서는 전례가 없는 이 같은 해외문화교류는 `아시아 역사문화의 자존`과 `유럽 문화의 수도`라는 해외 두 지자체 간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며 그 근거를 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정립하려고 한다.경북도는 한국문화의 모태인 신라문화를 재조명함으로써 경상북도를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자 이번 기획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중동 및 비교문화 전문가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박사 등 각계 전문가들로 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 기획위원회를 구성해 기획회의를 거듭 열었다. 이어 지난 10월 31일에는 경주에서 경북도 경주실크로드프로젝트 업무협약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을 공표했다.구체적인 기본틀은 학술적 재조명과 스토리텔링,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경주 실크로드학을 정립함으로써 신라 마케팅, 신 한류문화 창조, 경제영토 확장의 3대 목표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이를 위해 학술 부문에서는 논문공모와 데이터 베이스 구축, 국제 학술대회를, 미디어 제작에서는 탐방기 및 기행문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및 방영을, 국제협력에서는 중국 섬서성 시안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와 자매결연, 미국 실크로드 프로젝트 재단과 공동사업을, 마케팅 부문에서는 기획탐사, 요요마 초청공연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학술부문은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타슈켄트와 카이로, 테헤란에서 개최하고 유물과 복식, 음식과 건축물 등 전 분야의 학술지를 발간할 계획이다. 미디어 제작은 경주실크로드 대감을 편찬하고 황금과 철을 포함한 금속문화와 불교 등의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국제협력에서는 해외 자매도시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실크로드 지도에 경주를 표기하는 등 수정을 협의하고 거점도시 5개국과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한다. 마케팅 부문은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의 졸업 항해와 연계해 실크로드 탐사단을 운영하고 실크로드 포토챌린지대회를 열고 이스탄불 현지에서 심사를 통해 우수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또 중장기 과제로서 경주실크로드재단을 설립하고 국립경주실크로드문화관을 200억원 전액 국비 투입해 오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경주문화엑스포공원 내에 건립할 계획이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9

기암괴석 위 하늘의 수도원… 불가사의 건축물

새벽이었다. 일찍 눈을 뜬 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7시 넘어 카메라와 시집 한 권을 들고 살며시 밖으로 빠져나왔다.호텔 뒤편의 기암괴석이 나를 내려본다. 그 풍경을 카메라로 찍는다. 참 많이도 찍는 사진이다.여행 출발 전 노트북을 챙겼다. 외국 여행 중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룸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5유로를 내란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물론 그것이 강점이면서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로비로 가니 벌써 다른 곳으로 출발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성지다. 지금 출발하는 사람들은 전날 수도원을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몇 대의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조용하다. 주차장 근처 수영장에 놓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 시집을 넘긴다. 시는 함축미를 갖고 있어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여행에서 보는 유물 역시 한 편의 시를 읽듯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세월의 정으로 쪼아 마모된 곳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하늘엔 하현달이 떠 있다. 여행 중에 만난 하현달이라 그랬을까? 그 자체가 조각난 하나의 유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역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한 시간 남짓 밖에 머물다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고 일행들과 9시35분 호텔을 출발했다. 칼람바카 메테오라(METEORA)는 단어 자체가 종교적이다. 칼람바카는 `은수자(隱修者)`를 뜻하고,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는, 하늘 바로 아래`를 의미한다. 평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그야말로 신령스럽다. 평균높이 300미터이며, 가장 높은 곳은 550미터란다. 기암괴석은 `007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 등 많은 영화의 배경도 되었다.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 수도원이 많을 때는 24개였다. 현재는 6개뿐이다. 루사노스 수도원, 발렘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 트리아스 수도원, 스테파노스 수도원(수녀원)이다. 우린 세 곳을 보기로 했다.이곳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12세기다. 두피아니의 기둥으로 불리는 바위 꼭대기에 있던 파나이아 두피아니란 성모 마리아 예배실이 시초다. 이후 시대에 따라 새로운 수도원이 건축되었는데 가파르고 협소한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공간이 좁은 편이다.처음으로 찾은 곳은 가장 큰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다. 방문객의 편리를 위해 요일별로 문을 열고 닫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쉬는 날이란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컷 찍고 이동한 곳은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 발렘(Barlaam) 수도원이다. 발렘 수도원은 두 번째로 큰 수도원으로 1350년 발렘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어 이오니아에서 온 수도자 테오파네스(Theophanes)와 넥타리오 아프사라데스(Nektarios Apsarades)가 1542년 완성하였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밟으며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여성들은 치마를 둘러야했다. 그것은 규칙이다. 큰 정육면체에 가까운 성당에 들어서자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이 아름다운 성화로 그려져 있다. 테베 출신의 프랑고 카텔라노(Frango Katelano)라는 유명한 성화가가 1548년 그린 성화(Icon)다. 성화를 보면서 잠시 묵상하고 오래 전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로 발을 옮겼다. 나무로 만든 대형 오크통이 보인다. 포도주를 빚을 때 사용했던 것인데 눈대중으로 보더라도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는 될 것 같았다. 1만3천리터를 담을 수 있었단다. 그곳 옆에는 과거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절벽 문이 있다. 즉 절해고도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을 위한 식량과 의복 등 가장 간단한 것들을 보급할 수 있는 통로다. 맞은편으로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 보인다. 트인 공간에서 슬며시 아래를 내려본다. 낭떠러지다. 현기증이 인다. 오래 전 도르래를 이용하여 사람도 올리고, 물건도 올렸던 장소다. 세속과 단절할 수 있는 곳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던 곳이 수도원이다. 발렘수도원 박물관에 들러 그곳에서 머물렀던 수도자들의 옛 모습도 엿본다. 수도자들이 사용하던 의복과 성구, 성경 필사본 등 다양한 것들이 많다.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그 자체가 기도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워질 당시 모든 성인들에게 봉헌되어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이라고도 한다.차분한 맘으로 발렘수도원을 벗어난 우리는 칼람바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스테파노스 수도원으로 향했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일명 바실리까(황제) 수도원이라고 부른다. 1192년부터 사람이 머물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수도원으로 완공되었는데 1333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가 머물렀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얻게 되었다. 1798년부터 성 하랄람보스(Charalambos or Haralambos)를 기념하는 교회가 되었고, 그 분의 유골을 모시고 있는 수도원으로 1961년 수녀원으로 바뀌었다. 통로 벽에는 성경 구절 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다.`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로니시카 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무릇 여행도 그와 같아야 함을 발견한다. 새로운 만남에 기뻐하고,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정이 될 때 여행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대부분의 수도원은 위치와 크기만 다를 뿐이지 안의 구성은 비슷하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의 성화는 진한 것이 화려하다. 수녀원으로 바뀌고 1951년 출생으로 천사의 화가라 불리는 봐시오스 토소소니스(Vlasios Tsotsonis)가 복원했단다.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나와 우리 일행이 오후 2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성 니콜라스 아나파사스(St. Nicholas Anapafsas)수도원이다. 1388년 세워져 1628년 확장한 수도원으로 돔의 작은 교회에는 크레타 출신의 성화가 테오파네스(Theophanes Strelitzas, Cretan)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또 한 곳에는 에덴 공원의 아담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조 선생께서 그림을 설명한 후 그리스 정교회 미사 특징을 설명한다.“정교회 미사는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각은 성경, 성상, 사제, 이웃을 보는 것이고, 청각은 찬양기도, 후각은 향내음과 사람내음, 촉각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직접 만지며, 미각은 성체인 빵을 나누어 먹는데서 정교회의 거룩한 미사는 완성됩니다.”수도원의 4대 덕목이라며 회개, 기도, 순종(복종), 겸손에 대해서도 덧붙인다.그러면서 그리스어 `이뽀아꾸오(내가 듣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미심장하다.오래 전 수도원에 안토니오라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단다. 외출에서 돌아온 원장이 안티니오를 부르자 관 속에 있던 그가 `예, 나갈 거예요.`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수도자들의 복종에 대한 4대 덕목을 강조한다.밖으로 나서며 성물상점에 들렀다. 성물을 취급하는 상점엔 나무에 성상을 그린 아이콘이 많다. 이곳 특산품이다. 많은 상품 중 원형으로 된 떡살무늬 조각물 하나를 구입했다. 수도원을 벗어나며 떡살무늬에 새긴 글씨의 뜻을 물어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란 내용이란다.신앙인에게 그 문구야말로 영원히 마음에 새겨야 할 문구 같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기념물 하나로 여행이 그냥 즐거워진다. 그 모든 것에 감사! 또 감사!계속

2012-11-09

대구경북첨복단지, 세계적 의료허브로 도약한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가 지정 3년만인 2013년까지 단지조성 인프라 구축과 지원 시스템을 완료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 글로벌 의료산업 RD 허브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구경북첨복단지는 `첨단의료산업 글로벌 RD 허브`를 비전으로 2038년까지 30년간 총 4조6천억 원(국비1조1천억, 지방비 9천억, 민자 2조6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다. 합성신약과 IT기반 의료기기를 특성화해 2013년까지 인프라 구축과 지원 시스템을 완료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대구시 동구 혁신도시지구 내 103만㎡의 규모로 조성되는 첨복단지의 핵심 인프라인 정부시설(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지원센터, 실험동물센터, 임상시험신약생산센터)은 부지 7만100㎡, 연면적 5만1천507㎡, 소요예산 3천65억 원(국비 2천646억, 시비 419억원) 규모로 내년 11월 준공될 예정이다.지자체시설(커뮤니케이션센터)도 부지 1만112㎡, 연면적 1만7천825㎡, 소요예산 403억 원(시비) 규모로 내년 7월 준공을 목표로 건립 중에 있다.특히, 대구시는 첨복단지 성공의 핵심요인은 기업·정부 연구시설, 민간RD 기관 등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며 현재까지 한국뇌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등 10개 국책연구기관, 메디센서 등 23개 기업과 투자유치 MOU를 체결했다.시는 지난 6월 연구시설용지와 대구 연구개발특구 의료RD지구 제조시설용지 첫 동시 일반분양에 이어 11월중 전체 클러스터용지의 23.5%(첨복단지 18%, 연구개발특구는 29%) 수준으로 2차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다.또 첨복단지 내 첨11-1(3,945㎡) 1필지를 `중소·벤처기업 공동연구센터(가칭)` 부지로 지난 7월31일자로 추가 분양, 9월말 분양계약을 마쳤고 1, 2차 일반분양 외 나머지 필지는 국책 연구기관과 영향력 있는 기업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분양대상에서 제외했다.분양은 입주희망기업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053-790-5110~4), 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대구기술사업화센터(053-592-8361~4)와 입주심사에 따른 입주계약을 맺고, LH와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된다.부지 분양가는 정부 및 대구시의 자금지원을 통해 조성원가가 293만원 보다 크게 낮은 3.3㎡당 197만원 수준으로 낮게 결정됐으며 지하철 역세권이다. 성서공단의 경우 3.3㎡당 300~500만원 수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력있는 분양가라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또한 입주 기업들에게는 법인세·소득세 5년간 감면, 취득세 면제, 재산세 최대 13년간 감면, 부지대금 일시 납부시 13.5% 할인, 5년간 무이자 분납, 의료연구 관련 각종 특례 인정 등 파격적인 세제·재정지원이 이루어지며 핵심 인프라 시설의 기술지원을 바로 옆에서 받을 수 있다.이밖에 주변에 안심역 등 4개의 지하철역과 연결된 진입도로, 4차순환도로 관통 등 최고 수준의 교통인프라와 팔공산 자락, 수변공원, 과학고 등 정주환경도 매우 뛰어나 투자가치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부지를 매입해서 연구소를 짓기 어려운 기업은 아파트형인 `중소·벤처기업 공동연구센터`에 입주하면 된다. 현재 21개 업체가 입주의사를 밝혀와 초기 분양률이 70%는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사업자에게는 취득세 75% 감면, 입주자는 취득세 100%, 재산세 13년, 법인세·소득세 5년간 감면의 혜택이 주어진다.시는 중장기적으로 입주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바로 옆 2개 필지 1만321㎡도 공동연구센터 입주구역으로 지정해 중소벤처기업 집적지구로 육성할 계획으로 기업 입주는 2014년 5월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최운백 대구시 첨단의료산업국장은 “첨복단지 용지 일반분양과 관련, 첨복단지는 정부와 대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국책사업인 만큼 입주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며 “최적의 정부 핵심연구시설 지원서비스가 있는 첨복단지와 RD특구에 기술력 있는 좋은 기업들이 많이 입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정부 지원·국내외 우수기업 유치 필수”▲ 김유승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첨복단지를 대한민국 의료산업 허브로 구축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첨복재단 김유승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산학연에서 의뢰·발굴된 미성숙 첨단기술을 대상으로 상용화 가능성을 판단, 공동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관련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을 통해 첩복단지를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욕심이다.-첨복단지 지정 이후 성과는.△핵심연구시설과 커뮤니케이션센터가 내년에 준공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 한의학연구원의 입주가 확정됐으며, 6개업체가 단지내 연구소 설치 의향을 밝혀 놓은 상태이다.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공동연구센터내에도 21개 중소벤처업체가 입주의사를 밝히는 등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첨복단지 발전의 핵심요소인 연구인력과 연구장비 도입은.△현재 글로벌 수준의 기업·연구소 출신 연구인력 48명을 채용했고 올해 말까지 64명, 2013년에는 192명을 채용하고 향후 2017년까지 500여명의 연구인력을 확충나갈 계획이다. 연구장비는 2013년 하반기 센터준공에 맞춰 차질없는 기업지원을 위해 총 1천151억 원의 사업비로 연구장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센터별 기반기술확보 및 외부연구시설의 공동연구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우선 구축하고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의 강점과 약점은.△첨복단지의 강점은 입주기업에 대해 법인세·소득세는 5년간 감면, 취득세 면제, 재산세도 최대 13년간 감면해 주며, 일시에 부지대금을 납부할 경우 13.5%를 할인해 주고, 5년간 무이자 분납 혜택 등 파격적인 세제·재정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의료연구 관련 각종 특례가 인정되고 정부에서 건립하고 있는 핵심연구시설인 4개센터의 기술지원을 바로 옆에서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가장 매력적이다.또 국비와 시비로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 연구개발관련 RD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맞춤형 인력양성, 국내외 우수 연구인력 및 인프라 공동 활용 등의 특별지원을 받을 수 있다.그러나 대도시의 정주환경 및 뛰어난 문화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거주하길 희망하는 우수한 연구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으며 국제공항의 부재로 인해서 해외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방문 및 국제 행사 참석유도에 어려움이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가 세계적인 의료허브가 되기 위한 조건과 이를 충족할 방안은.△첨복단지 성공에는 정부 지원과 우수기업 유치가 필수이다. 첨단의료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40년까지 정부가 지원 육성하게 되어 있으며 지경부, 보건복지부, 교과부 등 부처간 원활한 협력을 통해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메디밸리의 역할인 의료산업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우수 의료기기, 의약품 업체 유치를 위해 대구시와 첨복재단이 협력해 신약 및 의료기기 관련 타겟 기업에 집중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국내 국책 연구기관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등지의 국제적인 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중에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가 개발 가능성이 높은 신약과 의료기기는.△대구·경북첨복단지의 특성화 분야는 합성신약·IT기반첨단의료기기이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고 최근 글로벌 의료시장 수요를 반영해 연구분야를 차별화, 특성화해 나갈 계획이다.현재 신약은 `뇌질환`, `대사성질환`, `항암` 관련분야, 의료기기는 `뇌·심혈관 질환`, `노인성 질환`, `암질환`분야에 대해 특성화할 계획이며, 앞으로 관련 분야에 대한 핵심요소기술을 구축, 국내 기업에 대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고 나아가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 나갈 계획이다.신약개발지원센터는 한국인에게 쉽게 유발하는 종양, 대사질환, 뇌신경질환의 표적치료제 개발분야에 특성화하여 수요자 맞춤형 공동연구 활동을 진행하며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는 `뇌·심혈관 질환`, `노인성 질환`, `암질환` 에 대한 의료기기개발 특화를 목표로 의료영상기술, 생체신호기술, 의료로봇기술에 대한 핵심요소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 맞춤형 개발을 통한 신규시장 창출을 유도하고 개발제품에 대한 국내외 특허분석 등 상품화 및 마케팅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2-11-05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⒁

옛 사마르칸트국 아프라시압 도성터 벽화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사절단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 가운데 황색 예복과 바지를 입고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을 비롯해 삼국 사신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데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당영립왕회도, 이른바 왕회도로 불리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근거는 삼국이 중국을 넘어 이른바 서역 국가들과도 교류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런데 가장 늦게 세력을 키운 후발주자의 한계를 넘어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는 유독 두 나라와 다른 독특한 대외관계를 펼쳐 나갔다. 고구려와 백제는 비교적 중국 문물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초원의 길을 통해 중국 못지 않은 서역의 문물을 직접 수입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비단의 길은 서라벌에 닿아15)신라의 달빛, 서역에 비치다 □ 동북아에 꽃핀 로마문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유리공예가 중 한사람인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67). 그는 지난 2002년 317쪽 분량에 원색 사진을 다량 수록한 `로마 문화의 왕국 - 新羅`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 날개표지의 광고 문구는 정작 역사의 당사자인 우리들이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단정을 내려 눈길을 끈다.`고대사가 바뀐다! 동아시아에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로마 문화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신라다! 출토유물과 신발견의 고대 기록사료 등, 실제 자료에 의해 신라의 수수께끼를 해명한다.`저자는 삼국 중 경쟁 두 나라와 달리 중국을 우회해 로마 문화를 직수입하고 있던 신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문물이 선진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갈파한다. 요시미즈는 신라가 중국으로부터 한자, 불교 등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6세기 전까지는 북방 초원(草原)의 길을 통해 중앙아시아 및 중동, 그리고 흑해·지중해 연안의 로마 식민지와 물적·인적 교류가 왕성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흐름을 타고 유리 공예품, 황금칼, 장신구 등 물건들 뿐만 아니라 정신과 사고 등을 포함하는 로마 문화가 유입됐다는 것이다.이후 476년 게르만족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아시아에 걸쳐 있었던 로마 식민지가 황폐됨으로써 문화 교류의 상대가 사라지면서 신라는 중국에 조공하고 중국의 문물을 적극 수입하게 됐다. 요시미즈는 신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나오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책의 끝을 맺는다.`신라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당과 밀접한 교류를 함으로써 약소국이면서도 곧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를 통일했다. 소국 신라가 가졌던 이러한 반도통일의 에너지는 과거 로마 문화를 수용하던 시대에 쌓아 올려 중국 문화와는 다른 에너지를 잠재적으로 축적했기 때문이었다.`신라 예찬가 요시미즈가 관련 저작에 이르게 된 계기는 1974년 발굴된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코발트 블루의 작은 玉구슬에 대해 듣게 되면서 부터이다. 경주박물관으로 달려간 요시미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 하나밖에 없는 초상옥(肖像玉)으로서 디자인, 제작방법, 상감된 인물 등으로 추정할 때 틀림없이 로마 세계에서 만들어진 구슬`이라고 단정했다. 이후 아시아 대륙의 끝머리에 붙은 신라에 로마의 액세서리가 전해진 경로를 연구해 신라가 로마문화의 왕국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서역의 흔적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동 98호 남분 및 북분 등 경주 일대에 산재한 5~6세기 신라고분에서는 20~80여점의 각종 유리기구가 발굴됐다. 요시미즈가 격찬한 인면유리구슬인 `미소짓는 상감옥`을 비롯해 이들 유물은 4~5세기경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후 서역계 상인들에 의해 흑해와 남러시아에서 스텝로, 이른바 초원의 길과 해로를 통해 신라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인숙 경기도박물관 관장 등 학자들은 이들 로만 글래스의 직수입과 별도로 유리구슬용 진흙재(材) 틀 등 유리 제작 관련 유물들이 출토된 사례를 토대로 수입된 유리 원자재를 가공해 한국형 구슬도 제작됐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보석류로서는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지방에서 산출되던 슬슬(瑟瑟)과 호탄 일대의 옥이 서역상인들에 의해 신라에 까지 도입돼 사용됐다. 특히 일반적으로 에머랄드로 해석되는 슬슬은 귀족의 부인들로 부터 수요와 애착이 높아 급기야 법령이 공포돼 진골녀와 육두품 여자들의 빗 장식에 대한 사용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앞서 통일의 안정기조에 안주한 신라 귀족층은 7세기 문무왕 대를 전후해 수입품 등의 사치와 향락에 탐닉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당시 신라 수도 금성은 풍요로운 당나라 장안 생활을 모방하려는 사치풍조와 무분별한 수입 개방으로 도시문화가 오염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결국 흥덕왕 9년(834년)에 사치외래품을 금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법령이 공포됐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양모로 짠 페르시아 카페트나 깔개 종류도 신라에 전해졌다. 삼국사기에는 문양 있는 모직 카페트나 모직 담요를 지칭하는 `구수`와 사찰이나 왕실의 상과 옥좌에 사용한 모직깔개인 `답` 등을 육두품이나 오두품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 기록이 나온다.서역 상인들이 한반도에 진출해 신라와 고구려인들을 직접 접촉했다는 근거들도 확인된다.7세기 중반의 경주 고분에서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있는 투르크계 중앙아시아인 형상의 토용이 여러 점 출토됐다. 또 일본서기에는 한반도의 삼국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낙타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 경주실크로드는 동서문물의 교섭 루트로서 그 역할이 3천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문명사는 사막의 길, 초원의 길, 바다의 길로 나뉘어진 실크로드를 통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쪽 끝은 신라였다는 사실이 그동안 끊임 없이 근거를 확보해 왔다.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신라 절정기인 8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경주에 문화가 전파되는 속도는 1년 남짓이었다. 신라고승들이 새롭게 편찬되거나 소개된 불경들을 중국에서 구해보는데는 1개월여가 걸렸다.평균 100마리의 낙타를 포함한 규모의 오아시스 캬라반이 20~30t의 화물을 싣고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에 까지 이르는 시간은 6~7개월로 추정하고 있다. 8천500km에 이르는 거리를 하루 40km씩 이동할 경우 7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이희수 교수는 동서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4대 도시를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압바스 이슬람제국의 수도 바그다드,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신라 수도 경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탈리아의 첨단 패션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시스템처럼 천년전에도 첨단을 걷는 세계문화인식과 유행이 존재했다는 상상력에 이를 수 있다.경북대 주보돈 교수는 신라 문화가 곧 한국 고대문화를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또 불국사나 석굴암과 같은 독창적인 문화적 총체를 배태할 수 있었던 역량은 여러 문화 요소를 축적하고 융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경주 남산 일대에 존재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문화유산도 신라인들의 개방성과 독창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라고 그는 단언했다.신라의 1천년에 걸친 서역 선호 풍조는 차츰 퇴조했으며 중국 문화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서역과 직접 접촉하며 쌓은 뛰어난 예술적 안목과 기량은 한국의 저 빛나는 민족문화를 살찌우고 여전히 우리 핏속에 이어지고 있다. 경주는 아시아의 동쪽에서 세계와 교류하며 여러 문화를 자기화 해내는 용광로였으며 한반도에 세계의 도시, 국제도시를 구현해냈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5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⒀

본지가 그동안 독자들과 나눠본 연오랑 세오녀의 세계는 역사이든, 신화이든 우리 지역의 정체성이 선진 문물의 바다 건너 전달과 교류의 한 상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명확한 역사의 세계에서 우리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과학의 힘으로 바다를 건너 세계와 교류하고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볼 때가 됐다. 그 과학의 원리를 작동시킨 시작은 마땅히 현실적 동기가 우선이었다. 신라를 둘러싼 주변국들과 외교를 통해 세력을 불리고 물산을 위해 교역하는 한편 선진문물의 수용을 위한 유학의 항로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바다 너머의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이 최초의 씨앗이었음이 분명할 진데 경북동해안에 터전을 마련한 이 땅의 사람들은 험하게 일렁이는 대양을 돌파할 용기와 지혜 또한 갖고 있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실크로드, 한반도 동쪽에 이르다15)잊혀진 옛 항로- 116)잊혀진 옛 항로- 2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신라의 항해술과연 신라인에게는 저 화려한 문화예술적 안목과 유물을 오늘에 남겨 놓은 것처럼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항해술이 없었을까?이 물음에 대해 서기 838년 바다를 통해 당나라에 입당한 일본의 유명한 유학승 엔닌은 미국의 한 동양학 교수에 의해 하나의 기록 또는 해답을 남기고 있다.라이샤워 교수가 `입당구법 순례행기`(入唐求法 巡札行記)를 번역한 `엔닌의 당나라 여행`(Ennin`s Travels in Tang China)에 따르면 세계사적 견지에서 볼때 9세기 경 당나라를 중심으로 한 신라와 왜 등 3국간 국제해상교역은 당대의 첨단을 걸었다. 또 그는 장보고를 `한국 무역 황태자`(Korean merchant prince) 라고 표현했으며 당시까지도 동북아 바다의 주인공들은 아직 신라 사람들이었다고 적고 있다.라이샤워가 당시 신라 사람들이 바다의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비단 동북아 해상교통의 중심이 청해진에 있었고, 국제무역의 주도권을 장보고가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속에는 신라인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항해술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이 책에는 신라와 일본 뱃사람의 항해 역량에 대한 비교도 눈길을 끈다.엔닌이 당나라까지 바다를 건너 갔다가, 일본 배를 타고 산동반도 남해안까지 이르는 동안 항해는 매우 파행적이었다. 하지만 귀국 때 그를 태운 신라 선박들은 일본까지 8일만에 도착하는 등 큰 대조를 보였다. 또 다른 차이는 일본 사절단의 귀족들은 일본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60명의 신라인 타수(舵手)와 선원들을 고용했다.최근식 교수의 `신라해양사연구`는 신라의 뛰어난 항해술을 뒷받침하는 항해계기로 나침반의 원리인 지남기(指南器)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특히 장보고 선단의 항해사는 지문항법·천문항법·수문항법 등을 모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문항법은 육상이나 섬의 모양과 목표물을 보고 항해하는 것이고 천문항법은 해와 별자리 등 천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수문항법은 물의 깊이나 색깔을 파악해 위치를 알아내는데 장보고는 이들 항해술로 해류와 바람이 다른 한반도 남해와 서해, 남중국해 등을 자유자재로 다녔다.당시 신라와 당과의 무역로는 두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 방면에서 흑산도를 거쳐 중국의 상하이(上海) 방면으로 통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도 남양만에서 황해를 건너 중국의 산둥반도 덩저우(登州)로 가는 길이었다.신라인의 해상활동이 활발해지자 덩저우 일대에서 양쯔강 하구의 연안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여, 이 지역에는 신라인들을 통괄하며 자치를 맡아보는 신라소라는 관청이 설치되고 도회지에는 신라인의 자치구역인 신라방이 형성되기도 했다.신라의 항해술로 인해 아랍인과의 교역도 가능했다. 물론 육로 교류도 활발했겠지만 무역상들이 개척한 바닷길로 인해 고구려, 신라, 가야, 왜, 백제 등 5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라에서만 로마풍의 유리구슬과 로만 글래스, 석류석, 황금보검, 정밀 세공된 금 부장품등이 발견되고 있다.□신라의 조선술지난 8월 삼한매장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울진군 죽변면 등대 일원 도시계획도로 부지 내에서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7천500년전 신석기시대 목선(木船)과 노() 조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울진의 목선 유물은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됐던 환목선(丸木船)에 이어 두번째 세계최고 수준의 목선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전문가들은 또 소재는 단단한 녹나무로 만든 판재상의 목선편(板材狀木船)으로 추정되며 낚시(釣針) 축부(軸部, 몸체) 등의 유물 등과 동해안의 지형적인 여건 등을 감안할 때 목선을 이용한 어로행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경북동해안에서 일찌기 발달한 조선(造船)의 역사는 비록 뭍에서 물놀이용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경주 임해전(臨海殿)에서 발굴된 목선으로 이어졌다.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고구려·백제의 조선술을 계승·발전시켜 조선술이 더욱 발전했다. 839년 일본 조정에서는 신라에서 큰 풍랑도 능히 견뎌내는 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라 배를 주문하도록 했다. 또 840년 기록에는 일본의 대마도사가 풍랑으로 한 해에 4번이나 조공 공물을 바다 속에 빠뜨리자 일본 조정이 가지고 있던 신라 배 6척 중 1척을 나눠줄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 배는 우수한 기술로 일본에 여러 척 수출되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장보고의 암살 후 신라의 동북아 제해권이 소멸된 것처럼 신라의 조선술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식 교수는 신라의 해양사 연구를 통해 신라 무역선이 중국 선박을 모방했다는 인식에 반기를 들고 신라만의 독창적인 `신라선`형 범선이 엄연히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신라선`이 일본의 국가사업에도 사용됐다는 점에 주시한다.대양항해에 적합한 첨저형(尖底型) 구조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 유럽에서는 겨우 13세기 초에 나타났다는 선미타(船尾舵)라는 조타장치를 이 범선에 이미 설치했다는 것은 당시 조선술의 발달 정도를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 무역선은 목적항으로 직항하여 항해 일수와 정박 일수를 줄이고 가동률을 높여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데, 신무왕의 즉위 사실이 지방에까지 즉각 전달된 것이나 외국으로의 선박의 운항 일수가 오늘날의 정기선 운항 일수와 비슷하다는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신라무역선이 이미 직항로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학설이다.엔닌도 `신라 배는 작지만 날렵하고 강하다. 또 동남풍과 서남풍을 이용해 남쪽으로 항해하는 역풍항해까지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포항 일대의 선박과 해운업1924년 부산항 화물 중 전국 2위동빈내항 일대 선박수리업 등 성업▲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복원해낸 신라배의 모습.지난 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포항의 동빈내항 일대 부둣가에서는 선미가 특이하게 둥근 모습에 흰색 페인트를 칠한 대형 목제 상선들이 물길을 거슬러 오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 수송선들은 당시 일본에 까지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사진 마저도 구해 볼 길이 없는 추억이 됐다.포항시사에 따르면 포항항의 대일본 무역액은 1934년에 651만2천668원이었으며 주요 품목은 쌀과 사과, 방어, 전복, 대구, 청어 등 농수산품과 석탄, 비료 등이었다.1924년 통계에 따르면 부산항에 출입하는 화물 중 포항 지방의 것이 마산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를 차지해 포항항이 경북의 관문이자 주요 무역항이었음을 알 수 있다.당시의 선박들은 지금처럼 터빈기관이 아닌 소구(燒球, hot bulb)기관, 이른바 `야끼다마`를 사용했다. 당시의 기술 수준에서 선박의 기관 고장이 잦았던 만큼 대형 선박들은 수리를 위해 동해안 각지에서 포항의 조선소까지 와야만 했다.또 이 일대를 중심으로 한 선박 관련 산업도 형성돼 일본에서 매입한 중고선들을 현해탄을 건너 몰고 와서는 낡은 기관을 수리해 멀쩡하게 둔갑시키는 몇몇 기관사들은 여러 선주들이 앞다퉈 모셔가느라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소구기관에서 터빈으로 넘어가는 선박기술을 습득하는 시기를 놓침으로써 어부나 일용직 건설노동자 등으로 사회계층이 강등되기도 했다.이와 함께 포항의 동빈동 일대 부둣가는 이들 조선소의 하청을 맡아 부품들을 전문 수리하는 이른바 `철공소`들이 밀집돼 호황을 누렸으며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다.경북동해안은 강원도에 까지 명성을 날린 목제 어선 목수들이 이른바 `배를 모으(제작)며`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계원2리와 구룡포읍 병포리, 울진군 죽변항 일대에는 국내산 소나무나 일본산 수입 스기목을 재료로 하는 소형 조선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성업했지만 이제는 연안 어업의 쇠퇴와 FRP 재질의 선박에 밀려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2

경북도 외국인투자유치 최우수기관상 대통령상 받아

경북도가 1일 `2012 외국기업의 날`행사에서 전국 외국인투자유치 최우수기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김관용 도지사가 도정의 목표를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올인(다 걸기)해서 얻은 성과다. 이번 경북도의 최우수기관 수상은 전국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외국인투자유치실적, 투자유치기반조성 등 환경개선 노력과 프로젝터 수행 실적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됐다. 경북도는 앞서 2004년, 2007년에 도 투자유치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어 3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김관용 도지사는 민선 4기인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 투자유치의 달인이라는 명성도 얻게 됐다.민선 5기 출범 27개월만에 13조7천억 규모 투자 달성세번째 수상…`투자 달인` 명성■올 목표치의 90.8% 달성한 투자유치 실적▲ 김관용 경북도지사김관용 지사의 민선 5기 투자유치 목표는 20조원이고, 출범 2년3개월 만인 지난 9월 말 현재 투자유치 규모는 13조 7천261억원이다. 목표의 68.6%를 달성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목표액 5조1천억원의 90.8%인 4조 6천320억원에 달하고 있다. 도민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한 도지사를 비롯한 투자유치 담당공무원들의 노력 결과라 볼 수 있다.대외적으로는 유럽의 경제위기 등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북한의 김정일 사망 등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불안감, 대내적으로는 기업의 수도권집중화 현상 및 국내기업의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투자여건이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 낸 성과라 더욱 돋보인다.■민선 5기 일자리 목표는 22만개경북도는 2010년 7월 1일부터 시작된 민선 5기 출범과 함께`투자유치 20조원 달성`과`일자리 창출 22만 개`를 도정의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도민에게 공약한 투자유치 20조원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연도별, 권역별, 산업별 세부계획을 수립, 시행중에 있다. 연도별 투자 계획은 2010년 하반기 2조 2천억원, 2011년 4조 6천억원, 2012년 5조 1천억원, 2013년 5조 5천억원, 민선 5기 마지막 해인 2014년 상반기에 2조 6천억원 등이다.김관용 경북지사를 비롯한 경북도의 투자유치 전략은 시스템 구축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선 5기 시작과 함께 `투자유치본부`와 `일자리경제본부`로 조직을 투 톱 체제로 개편한데 이어 기존 투자유치과를 투자유치단으로 격상했다.투자유치단장은 외부공모를 통해 민간전문가를 영입했으며, 2011년 1월에는 국내외 투자기업들의 신속한 정보수집과 발 빠른 대응을 위해 KOTRA IKP(Invest Korea Plaza) 건물에 `경상북도 투자유치 서울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또 도내 기투자기업의 안정적인 기업활동 지원을 위해 투자유치단 내 유치기업관리팀을 신설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특히, 외국인투자기업 유치를 위해 전국 자치단체에서는 유일하게 2007년부터 `경상북도-KOTRA 협력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투자 유망기업 및 타깃기업을 위주로 투자유치 상담 및 활동을 전개하고자 KOTRA 해외무역관 12개소를 거점무역관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경북도는 투자환경 및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포항 및 구미에 외국인전용단지를 마련해 무상임대 등으로 투자환경 개선과 포항외국인학교도 설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투자유치는 지사, 부지사 등이 콘트롤타워김관용 도지사는 지난 1월 새해 벽두 직접 일본 도레이사를 방문했다. 사카기바라 회장을 만나 투자유치활동을 하기위해서였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기업하기 좋은 경북의 환경을 적극성으로 설명하는 등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를 이끌어 냈다. 김 지사의 올해 투자유치활동 반경은 10월 현재 해외 투자유치활동만 18회에 이르고 있다.이인선 정무부지사도 일본 2회, 중국 1회, 미국 1회를 다니며 팔을 걷어부쳤고, 행정부지사도 인도를 돌며 투자활동을 벌였다. 도청 고위 간부들 또한 유치 대상 국가를 일본, 미주, 유럽 등 전통적인 투자유치국과 함께 신흥 자본국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으로 확대하고, 이를 전담할 별도의 `대륙별 T/F팀`을 발족시키는 등 해외 글로벌 기업 유치에 심혈을 쏟았다. 그 결과, 유치 분야도 제조업 위주에서 관광·레저, 금융, 물류, 보건의료 등 지식서비스업 등으로 업종이 다양화됐다. 도는 앞으로는 투자금액 위주에서 고용창출이 많은 기업을 중점 유치할 방침이다.도는 유치기업에 대한 사후관리에도 철저를 기하고 있다. 도와 시·군에서 투자 유치한 기업은 해피모니터 위촉, 투자유치기업 임직원 대상 간담회 및 워크숍 개최, 방문 프로그램 및 소규모 숙원사업 지원 등 다양한 시책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 또 도내 177개 외투기업과 바쁜 업무로 해피모니터 간담회에 참석지 못한 기업을 위주로 도와 시군에서 현장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하는 방문 프로그램을 60회 운영해 30건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도 했다. 해피모니터, 방문 프로그램 및 투자유치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되는 각종 고충사항은 10억원의 사업비로 회사주변 환경정비, 가로등 설치, 도로·교통시설 등 기업의 숙원사업을 해결해`기업하기 좋은 경북`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38개소 공단 신규조성 등 투자유치 기반 박차경북도는 투자기업이 희망하는 시기에 부지를 제공하고자 부족한 산업용지를 신속히 조성해 맞춤형 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도내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 6곳, 일반산업단지 31곳, 농공단지 55개소 등 모두 92개소가 조성되어 있고, 부족한 산업용지 해결을 위해 국가산업단지 3곳, 일반산업단지 26곳, 농공단지 9곳 등 모두 38개소를 신규로 조성중에 있다. 도는 빠른 시일 내 심규단지를 개발, 투자기업에 제공할 방침이다.도는 또 도민의 일자리 창출 중심의 실속 있는 투자유치를 위해 기존의 유치전략을 재정립해 다각적인 투자유치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서비스산업 분야도 중점 대상이다. 낙동강, 백두대간, 동해 등 경북도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복합리조트, 대기업 및 대학교 연수시설, 낙동강 수변형 친환경 테마파크 등 `江·山·海`를 활용한 환경 관광관련(ECO MICE) 산업을 적극 유치한다는 것이다.동해안 및 울릉 관광개발, 3개 문화권(유교, 불교, 신라)과 관광단지(감포, 안동, 청송 등) 내 호텔, 쇼핑, 아울렛, 골프장 등 문화·관광·레저산업을 적극 유치키로 했다. 미래 경북의 성장동력이 물 산업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 동해 심층수와 낙동강 등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북도는 21세기 물의 시대를 맞아 세계 물 산업 시장규모가 2015년 1천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물 산업의 도내 집적화를 위해 국내외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또 수자원, 수처리, 물 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해 경북도가 물 산업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다각적인 유치활동을 펼친다.■김관용 경북도지사 인터뷰2007년에 이어 두 번째 받는 상이어서 의미가 더 깊다. 300만 도민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도민의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복지시책이라는 신념하에 도청 정문에 `취직 좀 하자``일자리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구호를 붙여놓고 일해 왔다. 도지사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매일 출퇴근 때 도민 일자리 창출을 다짐하자는 각오를 다지기위해서였다.문제는 앞으로다.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경북도도 예외가 아닌 만큼 허리띠를 더 졸라멜 생각이다. 특히 미래산업 변화에 따른 발 빠른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만큼 교통축의 변화와 신도청 등 경북도 발전전략과 연계한 유치전략을 세우겠다. 백두대간, 동해안, 3대 문화권 등 경북도만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자연자원과 문화를 바탕으로 서비스산업, 관광·레저, 농·식품 가공산업 등 실속있는 투자 유치를 펼 방침이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2-11-02

그리스신화에 델포이는 `세계의 배꼽` 옴파로스

오늘의 유럽(Europe)이란 어원은 그리스어`에우로페(그리스어: Ευρωπη)`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에우`는 넓음, `로`는 눈을 뜻한다. 즉 `시각의 넓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만약 유럽에서 그리스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체성 혼란으로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럽연합(EU)과 같은 거대 조직은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와 인접한 그리스 문명은 그만큼 유럽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영어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의 언어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리스 땅에는 지구의 중심이며 자궁이라고 여긴 옴팔로스(Omphalos:배꼽)가 있다.바로 델포이(Delphoe)다.한여름 머리 위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건조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파르나쏘스 산 왼편으로 델포이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파르나쏘스 산은 높이가 2천457m로 포키스·프티오티스 · 보이오티아 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도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가는 길에 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휴게소는 없지만 파르나쏘스 산 서편으로 자리잡은 `아라코바`란 예쁜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산 중턱에 전형적인 그리스 풍의 흰 벽, 붉은 기와 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길 하나를 밧줄처럼 내려주고 있다. 사진 몇 컷을 찍은 우린 밧줄(길)을 타고 아라코바 마을로 올랐다.아라코바는 마을 뒤쪽으로 스키장이 있어 겨울이면 유럽인들이 찾는 휴양지다. 스키뿐만 아니라 파스타, 양모, 수예로 널리 알려진 부자마을이다. 아라코바에서 다시 쉬었다 출발한 승용차가 델포이 유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옛날옛적 그곳엔 왕뱀 퓌톤과 그의 짝 퓌티아가 살고 있었다. 활 잘 쏘는 아폴론이 화살로 퓌톤을 죽였다. 그리고 퓌티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아폴론 신전의 제관(예언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당시 국가적 중요한 사안인 전쟁, 식민지 건설 등이 있을 때마다 왕들은 이곳에서 신탁을 청했다. 신탁의 신전이기 때문에 그리스 곳곳에서 봉헌된 보물로 아폴론 신전 창고는 가득했다.한낮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할 겸 야외보다 실내 박물관을 먼저 견학하기로 했다.박물관 입장료는 야외 관람까지 포함해 9유로(1만3천원 정도)다.델포이 유적 관광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실내 박물관과 아폴론신전 부근, 위쪽 전차경기장, 그리고 도로 밑 톨로스 부분이다. 그 공간이 넓기 때문에 시간의 안배가 필요하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실내 박물관을 관람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델포이는 고대 그리스의 4대 제전 가운데 하나인 퓌티아 제전을 기원전 582년부터 4년마다 열었던 곳이다. 퓌티아 제전은 체육대회와 연극대회로 구분되는데 아폴론 신전 바로 뒤쪽으로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차 경기장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당시 경기의 우승자에겐 월계관을 수여했다.델포이 실내박물관은 아르카이크 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델포이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 차이 없다. 당시 난 혼자 이곳을 찾았다. 또 다시 박물관 유물을 만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박물관에는 부서진 돌조각들의 해체와 결합, 부조와 환조들이 널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망가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차 기사(약 180cm)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곤 마부가 마차를 몰고 가는 것처럼 4두 마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청동 기사는 시칠리아 섬의 겔라(Gela)를 다스리던 참주(지역 왕) 폴리잘로스(Polyzalos)가 델피에 바친 봉헌물이다. 폴리잘로스가 기원전 478년경 퓌티아 게임의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서 바쳤다. 시칠리아는 현재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는 이곳의 영향력 아래였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대부분의 유물이 없어지고 파괴되었음에도 이것은 기원전 373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기에 약탈을 피할 수 있었고 1896년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실내 박물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 중의 하나는 옴팔로스(Omphalos) 앞이다. 이 돌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토해냈던 `돌` 이라고도 하고, 제우스가 지구 끝까지 보냈던 두 독수리가 되돌아왔을 때 만난 지점으로 지구의 중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끼줄(양모)처럼 돋을 무늬가 이어진 옴팔로스는 아폴론 신전 북쪽에 있었다. 또한 낙소스 섬에서 바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굴은 여자, 몸은 사자에 새의 날개를 가졌다. 기둥을 포함해서 높이가 12m나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 정면에서 방문객을 내려 보았다고 한다. 기원전 580년 경 아르고스에서 바친 쿠로스 상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로 알려졌다. 이런 조각과 함께 벽면 부조는 아폴론 신전의 박공부분, 헤라클레스의 전쟁 장면 등 다양하다. `여인 기둥상`, `목 잘린 여인상`, `시시포스 1세 동상`, `무희의 기둥`, `헤라클레스상`, `청동방패`, `아폴론 두상`, `악기들 들고 술을 따르는 아폴론 도자기` 등 긴 시간 각종 전시물을 보고 나오려 할 때 `삼발이 솥`이 보였다. 많은 책에서 인용하는 유물이다. 이 솥은 헬레네가 트로이아(=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 스파르타로 되돌아가면서 바다에 던진 솥이다. 이 황금 솥은 코스 섬에 사는 고기잡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나왔는데 `가장 현명한 철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탈레스, 비아스, 솔론 3사람에게 주었더니 모두 사양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쳐졌다고 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신탁의 무녀들이 앉았던 의자도 삼발이 의자다.실내 박물관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톨로스`로 향했다.기원전 4세기 초 사모스의 테오도로스라는 건축가가 지은 원형신전 톨로스는 박물관 도로 아래쪽에 있다. 수많은 돌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원형의 모습대로 제 자리를 찾아 돌 하나하나 놓으려 했지만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돌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아티가(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펜테리 지역에서 가져온 돌로 건축하였다고 한다.톨로스를 구경한 후 실내 박물관 옆 아폴론 신전으로 향했다.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함께 고대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탁소였다. 주변 방대한 유물들이 그야말로 노천박물관이다. 톨로스나 아폴론 신전에 대한 속살 깊은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아고라, 참배로, 보물창고(아테네 보물창고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 김나지움(체육관), 아폴로 신전, 극장을 구경한다. 비탈에 쌓은 돌들이 정교하다. 아테네, 아르고스, 시키온, 시프노스 등 곳곳 지역에서 봉헌한 봉헌창고 흔적을 훑어볼 때 `너 자신을 알라`란 글자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새겨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길이 60m, 폭 23m의 기단과 38개의 기둥(현재 6개 남아 있음)이 있었던 아폴론 신전과 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견학한 후 위쪽 전차 경기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이미 더위로 지친 상태다. 강렬한 빛으로 사진을 찍어도 액정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일행 대표로 서둘러 올라가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온다. 전차 경기장의 길이는 178m, 폭은 25m로 7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6년 전에도 문 닫을 시각이라 숨 가쁘게 올라갔다 내려왔던 곳이다.여행엔 오지도 않은 미래의 시간이 지금의 시간을 서두르게 할 때가 많다. 그래도 여유롭게 이동하는 이번 여행이다. 그렇기에 폭염도 한층 즐겁게 느껴진다.계속

2012-11-02

지역민과 아름다운 동행 위해 희망나눔 동분서주

■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울진원자력본부는 현재 6개 호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2개 호기는 건설 중이다. 그리고 추가로 2개 호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6개 호기가 생산한 전기 발전량은 우리나라 총 전력량의 9.4%에 해당할 정도로 대한민국 전력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또 울진원전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울진군에 납부한 지방소득세와 지역자원시설세 총액은 1천952억6천30만원에 이른다. 지역자원시설세외에 기금지원사업과 사업자지원사업 등을 펴고 있다. 2011년도까지 지역에 지원된 총 기금지원사업금액은 2천915억원이고, 사업자지원사업비는 808억에 달한다.울진원전의 2011년 지역경제 기여도는 총 1천442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41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에는 협력회사를 포함한 울진출신 종업원 총 832명이 수령한 급여는 405억3천여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지방세 및 전력산업기반기금은 476억원으로 울진군 예산총액 4천240억원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울진원전이 직접 시행한 사업자지원사업비는 총 105억원으로 지역복지사업에 42억원, 지역문화진흥사업에 20억원을 지원했다. 또한 신규인력 채용 등으로 인한 직원 수 증가에 힘입어 타지역출신 종업원 소비액도 2010년 249억5천만원에서 271억3천여만원으로 증가했다. ■ 지역사회 `공존·공영`의 길 울진본부는 지역사회와 `공존·공영`을 위해 지난 2004년 `울진사랑봉사대`를 창단했다. 지역주민들과 지역사회의 후미진 곳을 찾고 건강한 지역공동체 건설을 위해 본격적으로 팔 소매를 걷어부친 건 지난 2006년이다. 이들이 한 줌의 따뜻한 볕을 나눈 것도 올해로 6년째이다.김세경 울진원자력본부장은 “한수원이 원자력에너지 산업의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원자력 안전성을 최종심에 두는 `기술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하는 안전성 우위의 경영정책`과 함께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꾸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는 `지역 상생의 가치 실현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울진원전의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펼치는 사업이 유독 시선을 끄는 것은 전 직원들의 `자발적인 비용 마련과 발품`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회공헌활동 재원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성된 `러브펀드` 1억9천여만원,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 1억2천여만원, 사업자 지원사업비 6억5천여만원 등 모두 9억6천여만원에 이른다. 직원들의 러브펀드 가입계좌수는 1만5천765계좌, 1인당 평균 9.9계좌로 직원참여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사택부녀회(회장 이상인, 실버벨봉사대)가 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그동안 울진군종합자원봉사단체와 합동으로 2011년도 군내 최초로 울진에서 열린 제49회 경북도민체전을 비롯한 울진뮤직팜페스티벌, 워터피아 페스티벌, 울진군자원봉사자대회 등 지역 각종 행사에 참여해 대대적인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했다.울진군보건소와 이동목욕 봉사활동, 사회적기업인 드림엔해피워크와 사랑의 집수리 봉사 활동, 울진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의 구석구석을 돌보는 돌보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울진원전 `1부서 1자매마을 봉사활동`은 총 79개 부서가 79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해 매년 어버이날 행사 지원은 물론 독거노인 방문, 마을 어르신 온천 체험행사 지원, 벼베기, 농산물 수확 돕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총 524회의 자매마을 봉사활동을 벌이며 지역사회 공헌을 통한 상생의 가치를 실현했다. ■ 사랑의 봉사대 `눈부신 활약` 울진원전 사랑의 봉사대(대장 김세경 본부장)는 명실상부한 지역상생의 전도사로 자리잡았다. 사랑의 봉사대는 직원들로 구성된 `블루벨 봉사대`와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실버벨 봉사대`로 짜여 있다. 두 개의 팀제 운영을 통해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봉사 영역은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와 장애인 및 거동불편노인 이동목욕 봉사활동, 사랑의 집수리 봉사, 사랑의 김장담그기, 밑반찬 나누기, 관내 장애인 단체 생필품 지원, 주변지역 어르신 건강관리, 미래 세대 위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 농어촌 일손돕기, 다문화 가족 지원, 지역 역사문화 바로알기 체험 프로그램 등 사회전부분에 걸쳐 있다. 사랑의 봉사대는 출범한 지 8년째, 태풍과 가뭄 등 혹심한 자연재해 현장에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등 소외 계층의 곁에서 따뜻한 먹을거리와 삶의 용기를 북돋우는 값진 땀방울을 쏟았다. 울진원전 사랑의 봉사대는 주변지역 독거노인 120가구에 매월 1회씩 사랑의 밑반찬 배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면, 죽변면 소재 42개 마을과 자매결연한 원전자매 부서는 매월 1회 씩 자매마을 내 독거노인 120가구에 밑반찬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실버벨 봉사대인 사택부녀회도 북면 소재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30가구에 매월 2회씩 밑반찬을 직접 장만, 배달해 주고 있다. 특히, 주변지역 내의 집안사정이 넉넉지 못해 방과 후 거리를 쏘다니는 초중등 학생들을 모아 방과 후 공부방도 개설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소중한 도서는 전 직원들이 한 권, 두 권씩 모아 아이들에게 소중한 양식으로 되돌렸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울진 지역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아인슈타인 프로젝트`를 실시, 수험생을 둔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아이슈타인 프로젝트는 서울대 등 명문대학생들을 초빙, 매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입시 교육을 지도하는 이른바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지식 나눔` 프로그램이다. 또, 집안의 여력과 노동력 부족으로 보수할 엄두도 못내는 북면, 죽변면 등 주변지역 내 165가구를 대상으로 `집 수리 지원사업`을 펼치며 값진 구슬땀을 흘렸다.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역주민들의 건강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해 울진군의료원과 1억여원의 예산으로 5개월 동안 울진읍 주민 800여 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와 흉부 컴퓨터단층촬영 등 53개 항목에 대한 무료 검진을 했다. 올해도 북면지역주민 500여명을 대상으로 검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 들어 한수원 전직원 10만시간플러스 특별봉사활동 운동의 일환으로 기존 봉사활동과는 별도의 봉사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울진군노인요양원 환경정화 활동, 나곡4리 농가 일손돕기, 바다지킴이 해양정화활동 등 울진본부 전직원이 참여해 자율적으로 활발한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울진원전 직원들은 `아름다운 동행`의 목적지인 `나눔을 통한 상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이들의 발걸음에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동안 스스로 가꿔온 `정성과 땀방울`이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2-11-01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올 가을 축제 물결로 `넘실`

경주의 가을이 신라 천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각종 문화행사로 꽃 피고 있다.특히 `신라천년의 비상(飛上)`을 슬로건으로 한 제40회 신라문화제 기간에는 당시 신라 향(香) 내음으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키는 등 전통문화계승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또한 차(茶) 문화의 발상지가 경주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는 등 경주의 위상이 문화행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제7회 경주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국내외 태권도 관계자 및 40개국 2천여명의 태권도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25일 화려하게 개막했다,30일까지 6일간 선수들이 겨루기와 품새로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이 대회는 외국 선수들에게 태권도의 발상지가 경주임을 홍보하는 중요한 체육행사이기도 하다.지난해 성공적으로 치른 2011경주WTF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때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보여준 경주의 훈훈한 인정과 친절했던 이미지와 함께 조직위원회 홍보위원들이 해외 협회와 클럽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친 결과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국내외 선수들이 참가했다.조직위원회는 지난해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때와는 달리 보문단지보다는 시내의 게스트하우스, 모텔 등에 가능한 해외선수단 숙소를 배치하고, 축구공원 5, 6구장에 보조연습장과 계체장을 설치했다.특히 태권도관련 유적지 관광을 위한 시티투어 때는 시내중심상가와 전통시장을 경유하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태권도문화 보급을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 제40회 신라문화제`신라천년의 비상(飛上)`을 슬로건으로 한 신라문화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향토문화제로서 `시민참여형 축제`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얻으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경주시의 축제 비전을 제시했다.올해 신라문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 몰이를 위한 연예인 초청 공연행사 중심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기획 단계부터 오로지 경주가 갖고 있는 천년문화 유산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 특징이다.지난 12일 축제의 시작을 알린 것도 23개 풍물단체 등, 1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경주 전역을 돌며 축제의 흥을 돋운 `길놀이`와 신라 천년의 드높은 기상을 잘 표현한 대규모 풍물공연인 `천년의 소리와 몸짓`으로 홍보를 했다.또 신라고 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의미를 더한 `매소성 전투재현`도 신라문화제의 개막식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매소성 전투재현`에는 국내 최정상급 무대와 음향, 조명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감나는 전투신과 함께 풍물공연과 특수효과를 곁들여 관람객들에게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생생한 감동을 선물했다.또 13일 경주 봉황대 중앙로에서 펼쳐졌던 줄다리기 등 민속경연도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가을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대성황을 이뤘으며 특히, 줄다리기 대회는 시민 화합의 장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황성공원 일원에 마련된 전통문화 체험장인 `신라촌`과 `화랑촌`에서도 옛 신라인들의 지혜와 화랑의 기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친구와 연인 등 젊은 층을 겨냥해 승마체험, 발굴체험, 신라토기 만들기, 신라의상체험, 주령구 체험, 왕관만들기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 참여할 수 있는 볼거리를 많이 만들었다.특히 올해 신라문화제 기간 중 경주 예술의전당에서는 우리 전통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국악계의 최대 잔치인 `제31회 대한민국 국악제`가 함께 열려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대한민국 국악제에는 유명 국악인 오정해씨를 비롯해 이생강 명인, 신영희 명창 등 기라성 같은 국악인 등 대한민국 최고의 춤과 소리와 악기가 한자리에 모여 경주를 국악의 향연으로 수놓았다.이밖에 신라문화제 등 경주를 주제로 한 전국사진공모전과 한글·한시백일장, 고운서예대전, 신라미술대전, 시조경창대회 등이 행사 기간 경주 곳곳에서 펼쳐져 전통 문화 계승의 맥을 이어갔다. ◆ 차(茶) 문화의 발상지 경주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 크게 발전했으며, 신라시대 때는 단순한 식음료를 넘어 불교 수행의 수단으로, 이른바 선차(禪茶)의 개념이 확립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매월당 김시습(1435~1493)에 의해 유·불·선을 통합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차(韓茶)가 창시됐며, 이는 곧 초암차(草庵茶)로서, 경주 남산 용장사 `초암`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그래서 천년고도 경주가 우리나라 차 문화의 발상지로 꼽히기도 하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차 문화의 확산을 위해 제40회 신라문화제 기간 동안 체험행사가 열렸다.최양식 이사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를 통해 전통문화의 발상지인 경주가 `축제의 도시`로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며 “전문가들과 시민의견을 경청하여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를 발굴하여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2-10-29

삼국유사 첫 설화 `연오랑 세오녀`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였다.하지만 삼국사기 조차 왕들의 정확한 대수를 정리하기 힘들었을 만큼 초기 신라왕실은 안정화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연은 `제8대 아달라왕 4년`이라며 자신있게 기록했다. 이는 운수납자 (雲水衲子)로 바람과 구름처럼 전국을 떠돈 승려였던 일연이 지금 포항 오천읍의 천년 고찰인 오어사(吾魚寺)에 머물렀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민속학자처럼 주민들로 부터 인근에 전해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듣고 취재했을 것이며 자신이 쓴 역작에서 첫 설화로 싣기에 이르렀다.`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가 바다로 나가 해조류를 채취하다가 갑자기 바위가 그를 업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하길 “이 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다”라며 왕으로 세웠다(일본 제기帝紀를 살펴 보면 그 전후로 신라 사람이 왕이 된 자가 없으므로 이것은 변방 읍의 소왕이지 진짜 왕은 아닐 것이다). 세오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찾으러 갔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을 보았는데 역시 그 바위에 오르자 그 바위가 또한 그녀를 싣고서 전처럼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의아하게 생각하여 아뢰며 왕에게 바쳐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를) 귀비로 삼았다.이때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으니 일관이 아뢰길 “해와 달의 정기가 내려와 우리나라에 있었으나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괴이한 일이 초래된 것입니다”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오도록 하였다. 연오가 말하길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짐의 왕비가 짠 고은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하면서 곧 그 비단을 주었다.사신이 돌아와 아뢰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냈다. 그 후에 해와 달이 그 전처럼 되니 그 비단을 어고에 보관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 이름을 `귀비고`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장소 이름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3권 영일현조 김종직(金宗直)記`등을 인용한 `일월사적비`에 따르면 (포항의)일월지(日月池) 근처에 일월신을 모시는 천제당(또는 일월사당)이 있어 신라 때는 조정에서, 고려·조선 때는 영일현감이 친히 제사를 올리고 이 사당에 모신 신위를 일월신이라 부르고, 이 신위가 연오랑 세오녀 신위라고 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해병부대 내에 3천여평의 일월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매년 9월 중양절에 일월 제의를 행했으나 강점기 때 제단이 철거되었다고 한다.

2012-10-29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⑿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일본이 근현대를 통틀어 세계를 주름잡는 선진국 대열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편입된 후 최정점에 섰던 역사를 본다면 만용에 가까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내린 우월감에는 선진문물을 공급했다는 문화적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삼국유사에 실린 작은 설화에 불과한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 속에는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경북동해안의 선진 문물 전파의 역사와 함께 태양 숭배 사상이 암시돼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우리는 결국 이 지역이 풍부한 문화가 깃든 삶의 터전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한 근거지임을 알 수가 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114)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215)잊혀진 옛 항로- 116)잊혀진 옛 항로- 2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학자들, 한일 교류 통로로 포항 영일만·경주 감포 등 꼽아日, `이마지 유래기`에 섬 최초 도착자로 옛 신라 남녀 기록포항 등 고구려 영향권 답게 삼족오의 태양사상도 연관□ 선진 문물의 전파자포항대학 배일용 전 교수가 사학자 천관우와 이홍식, 김정배 등의 자료를 연구한 결과 등에 따르면 사로국은 2세기 중반 아달라왕대에 이르러 영일만 일대를 실질적인 지배영역으로 복속하여 포항의 흥해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동해안의 지역을 확보하게 된다.이에 따라 연오랑과 세오녀를 중심으로 한 (포항이 근거지인) 근기국의 토착세력은 압박을 받게 되자 신라에 대한 복속을 피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일본서기와 고사기 등 일본 역사서를 재인용하더라도 일본고대사는 고대 한국인의 이주와 문화전파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고 있다. 따라서 배용일 등은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의 이즈모시를 중심으로 한 산음(山陰)지역 변읍의 왕과 왕비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는 진구(神功)황후에 대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천일창`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지 사료에 따르면 천일창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는 구실로 일본에 상륙해 정벌한 것으로 기록돼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연관성이 분석되고 있다.이는 이영희교수의 `노래하는 역사`에서도 확신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데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2세기 중엽을 전후해 경북 동해안의 태양숭배 집단 등 토착세력이 비단과 제철 등 선진 기술문화를 갖고 일본의 출운(出雲) 지역이나 북구주(北九州)지방에 진출한 것이 유력하다. 특히 일본 학자는 연오세오고(延烏細烏考)를 통해 부부의 출발지를 영일현으로 보고 도착지를 일본 은기국(隱岐國)의 지부도(知夫島)로 파악하기 까지 했다.□ 신화인가, 설화인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라 경주에서 동해로 내왕하는 주요 통로는 포항 영일만, 경주시 감포, 울산만의 세가지 항로가 있다. 고대 한일 양국이 영일만을 통해 교류하던 길은 거리와 항, 조류와 풍향의 영향을 고려할 때 필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영일과 같은 위도 36도 선상에 있으며 현 시마네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의 한 박물관에는 구니비키(국인·國引) 전설 그림이 전시돼 있다. 지난 1999년 포항문화방송의 특집프로그램에서 현지 전문가는 이 그림이 신라의 호미곶을 인용한 것으로 파악하며 한반도의 문명과 재화가 일본으로 전파되기를 염원한 것과 연관 있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결국 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는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의 인물로 결론내리고 있다.많은 근거 가운데 해류와 바람을 이용할 때 포항에서 출발하면 자연스럽게 닿게 되는 시마네현에 남은 흔적들도 인용되고 있다. 이 중 시마네현 본토에서 배로 두시간 거리의 오키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파악된 `이마지 유래기`에는 최초로 섬에 도착한 사람이 가라의 사로국(신라의 옛 이름)에서 온 목엽인 남녀로 기록돼 있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오키섬의 선조가 연오랑 세오녀라고 보고 있다. `포항市史`에 따르면 시마네 현 이즈모 시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린다.이곳에 고대왕국을 건설했다는 스사노오미코토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로 추앙되는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행실이 나빠 고천원에서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났다. 하지만 곧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돌아와 이즈모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물론 이설(異說)도 있다.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이영희교수는 연오랑이 간 곳은 이즈모가 아니라 다파나국, 즉 지금의 효고현을 중심으로 한 교토부 및 우쿠이현 일대와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 서북쪽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신화가 역사가 될 때 그 속의 인물은 역사 속에서 더 구체성을 띠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한 현실은 실타래가 풀리듯 이해의 골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연오왕 추모제일본 이즈모시에는 매년 음력 10월에는 일본의 신이 전부 모인다는 이즈모다이사가 열린다. 이때는 일본 창세기의 신을 모셨다는 히노미사키 신사 안에 있는 한국신사라는 현판이 붙은, 포항 방향의 왼쪽으로 향한 작은 신사에서 연오왕 추모제가 열린다. 이즈모시 카라가와쵸 산정에 있는 카라카마 신사의 카마는 가마솥이라는 의미로 용광로를 상징하고, 연오랑이 돌배를 타고 왔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암선`(岩船) 옆에는 이를 설명하는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영일의 정신적 뿌리는 일월 신앙연오랑 세오녀에는 모두 까마귀를 뜻하는 오(烏)가 포함돼 있다. 또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에는 태양에 관한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포항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사실 등이 종합돼 예로 부터 일월향으로 불리어왔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포항을 삼족오 일월신화와 일월신앙의 중심지로 규정하고 있다.영일만이라는 양곡(暘谷)이 고대 한민족 문명권의 삼족오태양 신화가 이동 전승된 귀착지로서 한국의 대표적 태양(일월)신화의 성지라는 것이다.삼족오 신앙과 관련해 삼족오 문양 중 태양 안에 삼족오가 세발로 서 있는 것을 `일중삼족오`라 하며 태양 안에 날아가는 모습을 `금오`라 할 만큼 삼족오는 곧 까마귀이며 태양이다. 역사적으로 신라지역인 경북동북부의 영풍, 안동, 봉화, 청송, 울진, 영덕, 영일지역에서 고구려 지명이 나타나 있다.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고구려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으로 영일의 북쪽인 청하와 흥해는 5세기경까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또 영일만 지역은 태양과 삼족오를 뜻하는 烏와 日月 관련 인명과 지명이 2천년 동안 현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오세오, 일월, 영일, 도기야, 오천, 세계, 일월지, 일광, 중명 등이 그것이다. 배용일 전 교수는 일생을 건 연구를 통해 영일만은 새로운 양곡의 개척지, 즉 일본 건국신화의 출발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세우기에 이른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0-29

WCC(World Class College) 선정 대구권 대학을 가다

WCC(World Class College)란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전문대학이란 뜻이다. 교과부가 지난 2011년 7개 대학을 선정한 이후 올해 4개대학이 추가로 선정돼 전국 146개의 전문대학중 11개 대학뿐이다. 지역에서는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이 지난해에 선정됐고, 올해는 경북전문대학이 추가로 포함됐다. WCC에 선정되면 명예와 함께 정부로부터 평균 5억원에 이르는 교육역량강화 자금이 지원되며 학사학위 전문심화과정과 산업체 위탁교육이 가능한 등 각종 혜택이 쏟아진다. 하지만 선정과정은 교육역량강화사업, 재정건전성, 기관역량, 고객평가 등 4단계로 나뉘어 세부평가를 한 후 최종 감사원 감사결과를 반영해 선정하는 만큼 전문대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구권에서 WCC대학으로 선정돼 전문대학을 선도하고 있는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의 기초 펀드멘틀을 알아봤다.영진전문대학기업 맞춤형 주문식교육 성공사례 2011년 NCSI조사서 전 업종 1위기업 맞춤형 주문식교육으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대학의 경쟁력은 다양한 평가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교과부의 2012년 취업률 통계조사에서 79.3%의 취업률을 기록, 전문대학 `가` 그룹(전문대학 졸업자 2000명 이상)에서 지난해 이어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전문대학으론 유일하게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전문대학부문 10년 연속 1위는 물론 2011년도 NCSI조사에서도 전업종 1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실시한 2012 존경받는 대학에도 선정됐다. 지역 전략산업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학과로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신계열을 꼽고 있다.△컴퓨터응용기계계열뿌리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해 온 대표적인 학과다. 전문대학 최초로 현장실무형 H.Q.T.(High Quality Technician)양성을 목표로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들과 맞춤형 인력 양성 과정을 개설, 교육을 실시해 기업체의 인력 채용 만족도를 크게 높였다.최근 3년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중공업분야 기업체들과 협약을 통해 해당 기업체의 요구에 맞춘 협약반을 운영하고 있다.`삼성전자 금형반`은 2010년 협약과 함께 3차원 CAD금형 설계/제작, 사출성형기술 실무 등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해 지난해 첫 수료자 21명 전원을 이 회사에 진출시켰다.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과도 두산그룹 협약반을 40명으로 구성, 양질의 우수한 인재 공급에 나섰다. 이 계열은 재학생이 산업체로 진출하기 전에 전공실무능력을 보증하는 졸업인증제도를 2001년부터 전국 대학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전자정보통신계열대기업에 가장 많이 취업 성적을 낸 학과가 전자정보통신계열이다. 2012학년도 졸업생 가운데 306명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 2011·2012학년도 대기업 취업률이 60%를 넘는다. 다양한 기업과 맞춤형 주문식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기업 협약반이 많다. SK그룹의 SK하이닉스와는 지난 7년간 성공적으로 협약반을 운영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제일모직, LG그룹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 LG전자와도 취업 약정형 주문식교육 협약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8월부터 국내 일본투자기업 협약반도 개설, 운영에 들어갔다. 취업뿐만 아니라 국내 우수 4년제 대학교와 연계교육 협약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무시험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한국의 주문식 교육, 세계화 나서겠다”▲ 최재영 영진전문대 총장■ 최재영 영진전문대 총장 인터뷰“영진만의 특화교육인 주문식교육을 완성시키겠습니다”최재영사진 총장은 지금까지 주문식교육이 안착단계였다면, 앞으로는 이 제도를 완성시켜 그야말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양성으로 승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올해 처음 실시한 입도선매 수시1차의 호응을 발판으로 삼아 내년에는 `입도선매 명품 주문식교육` 과정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전략산업분야 학과인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신계열에 시범적으로 이 과정을 운영,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등록금 전액 면제는 물론 최신 시설의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대학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최 총장이 이 과정을 실행하게 된 동기는 지난 8월 실시한 입도선매과정 수시1차 모집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 인문계고 출신은 내신 2등급 이내, 전문계고 출신은 1등급이어야 지원이 가능한 이 교육과정에 평균 3.2대 1의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이다.최 총장은 “한국의 주문식 교육이 세계화, 즉 글로벌스탠다드가 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전문대학의 고유영역인 실무중심의 교육, 낭비 없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영남이공대학취업률 통계 2년연속 전국 2위 등정부재정지원 사업서 실적 쏟아내영남이공대학교의 최근 실적은 한마디로 대단하다.취업률 통계조사에서 2년 연속 전국 2위, 창업선도대학 선정,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대학 최다 선정, 글로벌 인턴십 전국 1위, 평생학습중심대학 선정, 중소기업계약학과 주관대학 선정, 학사제도개선시범대학선정 등 대학의 기초지표를 반영하는 각종 정부재정지원 사업에서 우수한 실적들을 쏟아내고 있다.그만큼 대학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적들이며 이모든 것을 총망라한 것이 지난해 WCC 선정이다.△메카트로닉스 분야 과감한 투자영남이공대학교는 교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공계열 중심의 전문대학이다.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약 70%에 다다를 만큼 이공계열 학과구성이 높았고 그에 따른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산업체의 변화에 부응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특성화 자금을 이용한 과감한 시설투자로 인해 이젠 전국을 대표하는 메카트로닉스 분야의 최강자로 거듭났다. 이공계 학과들의 선전은 지난해 WCC선정, 취업률 2년 연속 전국 2위 달성, 국가고객만족도 조사 전국1위 등 1968년 개교 이래 최고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메카트로닉스 분야로 분류되는 기계, 자동차, 전기·전자, 의료기기, 컴퓨터등 관련학과들의 특징은 취업률과 취업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지난해 건강보험연계 취업률을 살펴보면 기계계열 75%, 자동차계열75%, 전기자동화과 81%, 전자정보계열 81%, 컴퓨터계열 83%로써 평균 취업률 73% 상회하며 특히 전기자동화과는 졸업생 117명중 81명이 소위 말하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할 만큼 취업의 질 또한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전국 유일 지멘스 아카데미 개원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인 지멘스의 전문기술인력양성이 가능해졌다.영남이공대와 지멘스코리아는 지난 8월 관계자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멘스의 대표적 교육프로그램인 SCE 와 SMSCP 교육에 대학 협약식을 가졌고 곧바로 지멘스아카데미 개원식도 개최했다. 지멘스는 독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멘스 제품 전문기술자 양성프로그램이다.영남이공대학에 지멘스아카데미가 설립됨으로써 지멘스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국내 모든 사업장에서 손쉽게 재직자 재교육과 신입기술자 교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할 터”▲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인터뷰“WCC대학의 위상과 취지에 걸맞게 우리나라 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호성사진 총장은 WCC대학선정으로 학내외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올해 1차수시모집에서 전년도 보다 무려 2천200여명이 늘어난 1만5천300여명이 지원해 학내관계자들도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이를 배경으로 지난해 전면 장학생만 430명에 달했고 반 장학금 역시 약 1천여명의 학생이 받고있어 이미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자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그저 이루어진게 아니라 재학생과 더불어 교직원들의 분발이 절대적 이었다고 강조했다.예를들어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컴퓨터 활용능력, 외국어 능력, 전공자격증 특강 등을 듣기위해 교실마다 북적이고 있다고 말했다.이 총장은 “이제 고등교육 제도가 2년제 4년제라는 이분법적 학제구분에서 탈피, 교육의 기능에 따라 직업교육대학 일반대학 연구중심대학으로 구분되고 있다”며 “향후 산업구조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2-10-29

호미곶 등대에 새겨진 한일 근대사의 이면

포항시 남구 대보면에 위치한 호미곶등대사진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그 점등 시기를 두고 1903년과 1908년 12월 등 이론(異論)이 있는데 그 건립 배경을 들여다보면 일제 강점 직전 약소국으로서 겪은 한국 근대사의 이면이 드러난다. 지난 1967년 고 박일천은 `일월향지`를 통해 `장기갑 등대의 괴이`라는 제목 아래 고종 광무 50년인 1901년 일본 실습선 `응웅환`의 표류와 등대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당시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러일 전쟁을 준비하는 등 세력 확장에 나선 가운데 나가사키상선학교 실습선 응웅환에 교사와 생도 30여명을 승선시켜 우리 해역의 해류와 어족, 수심 등을 조사하고 다녔다. 하지만 영일만 장기곶을 지나가다 암초에 부딪혀 조난을 당해 승선자 전원이 익사(이는 착오이며 사망자는 4명)하는 사고를 당했다. 일제는 조선이 연안 해난시설을 갖추지 않아 일어난 인재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생트집을 잡았다. 이에 못이긴 조정은 국비로 일본인에게 공사를 맡겨 우리 지역에서 최고, 최초의 등대를 세우게 됐다.이에 일대의 주민들은 `(국토의) 호랑이 꼬리에 불을 지르니 등대가 무너지면 불바다가 된다`며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또 하나 일본은 등대수로 본토의 살해 혐의 죄수를 임명해 유배의 벌로 삼았는데 피해자의 아들이 복수에 나서 그와 가족들을 살해한 참극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201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