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잘하는 `꼴통` 호중이를 만나 교사 사명감 느꼈죠”
영화 `파파로티`에서, 한때 전도유망한 성악가였던 나상진(한석규 분)은 어쩌다가 시골의 예술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가 돼 천재 고등학생인 이장호(이제훈 분)를 가르친다. 그 `상진`의 실제 인물인 서수용 교사(53)를 김천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났다. 파파로티는 화제의 영화였고, 그 배경이 김천예고고, 서수용 교사는 `장호`의 실제 인물인 김호중(22)을 가르친 음악교사다. 외부 일로 자리를 비웠던 서수용 교사는 이신화 김천예고 전 교장, 주광석 김천예고 교장, 박경식 김천예고 예술부장과의 점심 자리에 뒤늦게 합류했다.
영화에서, 이신화 교장 역할을 하는 장덕생(오달수 분) 교장은 나상진의 후배로 나오지만, 이신화 교장은 서수용 교사의 김천고등학교 선배이면서 한일중학교 은사다. 이신화 교장은 이전에 한일중학교 교장이었다.
이신화 교장은 서수용 교사를 김천예고로 오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연은 이처럼 오래고도 길다.
식사 후, 김천예고 도서관에서 단둘이 마주앉자 서수용 교사는 “영화가 개봉된 지도 오래됐으니 영화와 실제를 비교하면서 얘기해보자”고 했다.
반가운 제안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를 어떻게 다르게 풀어나갈까를 고민하던 참이었으니까.
서수용 교사는 영남대 음대 졸업 후, 세계적인 테너를 꿈꾸면서 독일로 유학을 갔다. 아헨음대 성악과를 다니고 칼스루에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면서 10년을 보내다 성대 결절로 꿈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강사 등으로 또 10년을 보냈고, 김천예고에서 10년을 더 보낸 그는 “대학교수는 할 줄 알았는데 겨우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김호중을 만나면서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온 게 호중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홀런드 오퍼스(Mr. Holland`s Opus)`를 언급했다. 김호중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고 짐작된다.
서수용 교사는 김천고등학교에 입학해 미술공부를 하려고 미술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고1 음악 시간 때 `봄처녀`를 불렀는데, 음악교사인 이안삼 선생이 “너 노래에 재능이 있다. 성악을 해라”고 해 방향을 전환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김천예고에서의 교사 생활은 자괴감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정도 애착도 없었지만, `그래도 예술고니까`라고 자위하면서 4~5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귀가 트였고,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됐다. 그때 호중이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도 변했다. 홀런드가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또 제이콥스 교장의 “교육은 학생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말에 변화한 것처럼.
영화 `파파로티`에서, 상진은 장호가 검은 승용차에 어깨들까지 대동하고 전학온 첫날 자동차 접촉사고로 대면하면서 그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장덕생 교장의 “받아들이는 것이 교육자의 사명”이라는 말에 장호를 학교에 들여놓지만, 서수용 교사는 지난 2008년 6월, 김천고 1년 후배인 모 예술고 교사로부터 김호중을 소개받았다. 그 후배는 “노래 잘한다, 꼴통이다, 학교에서 잘리게 됐다”면서 김호중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골목길에서 그를 만나려고 20~30분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짜증이 날 무렵이었다. 한눈에 조폭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김호중이 나타났다. K1 청소년 챔피언 출신으로 예사롭지가 않은 그가 인사를 하자,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노래나 한 곡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인근의 피아노 연습실로 데려갔다.
그러자 대뜸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을 목도 풀지 않고 거침없이 부르더란다. 고등학생이 부르기엔 어려운 곡이었다. 내재한 소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끼고 “무단결석하지 마라. 폭력도 행사하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김호중은 김천예고로 전학 왔다. 서수용 교사는 그에게 “내가 너를 노래로 평생 먹고살게 해주겠다. 내 전 재산도 걸겠다”고까지 했다.
그는 “호중이가 학교에서 테너 고음의 상징인 하이 씨(high C)를 뚫었다”면서 “아무 데서나 노래 부르지 마라. 귀한 소리니 돈 받고 노래하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영화 `파파로티`에서, 장호의 노래를 들은 상진은 그를 폭력 조직으로부터 끄집어내려고 두목을 찾아가, “그를 놔줘라. 내 발모가지라도 내놓겠다”고 말하지만, 서수용 교사는 김호중이 조폭생활을 정리할 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김호중의 실력은 학교에 다니면서 일취월장했다. 지금 서울대에 재학하고 있는 이재명과 함께 세종콩쿠르, 수리콩쿠르 등에 출전해 나란히 1, 2등을 했다.
또 영화에서 장호는 세종콩쿠르에 늦게 도착해 탈락하자 난장판을 치다가 심사하는 틈에 돌연 무대에 나타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불러 주목을 받지만, 김호중은 정기연주회 때 이 노래를 부른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네순 도르마)`는 그때까지 고등학생이 부른 적이 없다.
서수용 교사는 김호중이 정기연주회 때 부른 `네순 도르마`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자 이를 보고 SBS 스타킹에서 출연 요청이 와 두 차례 우승하면서 `고딩 파바로티`라는 애칭을 얻었고, 스타킹을 본 영화 제작자가 영화 제작을 제의해 `파파로티`가 만들어졌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서수용 교사는 김호중이 전학 오기 전에 1등을 하던 이재명에게 “호중이의 친구가 돼 도와줘라”고 부탁을 해 이후 둘은 친해졌고 대회에도 늘 함께 나갔다.
서울의 유명 콩쿠르에 나갔을 땐데, 김호중이 슈베르트의 `숭어`를 준비 없이 불렀다가 그만 탈락했다. 그 후 15일간을 잠수했다. 퇴학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이신화 교장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해 서울에 있는 김호중의 사촌형을 통해 수배했다. 사촌형에게 끌려온 김호중은 서수용 교사에게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큰 잘못을 했다. 버리기 전에 떠나겠다. 전학을 보내 달라”고 해 가슴이 내려앉고 공든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서 교사는 죽지 않을 만큼 그를 두들겨 팼다. 그랬더니 무릎을 꿇고 빌더란다, 용서해 달라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하고 숙제를 줬다. 그때 내준 숙제가 바로 `네순 도르마`였다.
그는 “졸업 전에는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정기연주회 때 해 내더라”면서 놀라워했다. 네순 도르마는 테너의 최고 난곡의 하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2013년 새 학기가 되자 서수용 교사에게도 큰 변화가 왔다.
처음으로 1학년 1반 담임을 맡았다.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학생을 대하는 마음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임을 하니 학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더란다.
이 이야기는 빼지 말고 꼭 넣어달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신학기가 되니 지시하는 업무가 너무 많다”면서 “1주일 안에 학생 상담을 마치라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만든 상담자료는 형식적인 가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1주일 동안 학생상담을 끝내려면 호구조사 하듯 5분 안에 상담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상담할 때 1인당 30~40분은 할애해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한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학생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직무유기다.
처음에는 낯이 설어 마음을 열지 않다가 10분 정도가 지나면 울기도 하는데 “20분간 울기만 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람을 처음 보게 되면 선입견이 생기는데 그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그 이미지가 굳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쁜 이미지로 비친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사고 칠 줄 알았어”라고 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선입견을 해소하고 학생을 이해하게 되면 “그 학생이 예뻐진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소통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게 부모도 상담하면서 울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육은 학생과 부모, 교사가 서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학교폭력, 자살, 왕따 등 이러한 모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그는 학교에서 보고하라는 서류는 또 하나의 업무가 되는데 이것이 소통을 막는 일차적인 이유라고 했다. 업무 시간을 줄여서 학기 초 1주일간은 오로지 얘기하고 상담만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1주일은 학년 전체 시간으로 볼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다시 김호중 얘기를 했다. 호중이를 두들겨 패주고 난 후에 음악적으로 소통됐고, 그래서 지금의 호중이가 있게 됐다는 것이다. 김호중은 2011년 2월 김천예고를 졸업한 후 한양대 음대에 입학했다. 독일 대학의 초청으로 한동안 독일에 있다가 지금은 한양대 4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또 국내외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서수용 선생님과 같은 제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열정이 넘치는 교사들이 교단에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 해본다.
김천/최준경기자 jkcho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