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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8)

역사 속의 고려와 조선에는 많은 정변이 교차하면서 권력에서 내쳐진 죄인들은 죽음만 면했을 뿐 왕의 처소와 격리되는 고난 속에서 연명해야 했으니 바로 유배였다. 그 유배자 중에는 권력다툼의 패배자로 전락해 실의에 빠진 채 성은(聖恩)만 학수고대한 파락호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처럼 유배의 고난과 좌절을 한민족 역사를 통틀어 으뜸가는 학문으로 승화시킨 불굴의 도전자도 적지 않았다. 거친 해풍의 풍토에다 왕도(王都)로 부터 섬이나 다름 없이 격리된 경북동해안은 상처 받은 이들을 보듬어 민초들과 새로이 교류하거나 문학을 배태시키는 장이 되었다. 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절해고도와 다름 없는 유배지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조선시대 이름난 유배자들의 이야기와 그 유배의 현장을 답사한 사진들로 꾸며 최근 발간돼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유배의 고난 속에서 `낙관이냐, 낙담이냐`의 두 유형으로 대별되는 유배자들의 처신이 한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중죄인의 경우 방구들조차 성하지 않은 허술한 오두막에다 탱자나무로 좁고 높게 애워싸게 해 하늘 조차 잘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개구멍으로 밥을 넣어주는 위리안치의 형벌. 아무리 고관대작이었더라도 아전이 고약한 마을에 처해지면 온갖 구실로 제재를 받고 평민에게 조차 행패를 당하기 일쑤였던 당시의 기록들이 유배의 처지를 실감케 한다.유배지의 비참한 현실이 왕의 침소에 까지 이르렀던지 영조 때는 몇몇 예를 제외하면 흑산도처럼 험하거나 무인도에는 유배를 금했다.하지만 이 책에서 유배지는 주로 제주도, 백령도 등 섬이며 심지어 남해의 거제도도 등장하는데도 우리 경북동해안 일대는 어떤 언급도 없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과 영덕, 영해 등 일대에 숱한 유배인들의 이야기와 작품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도 이 책은 간과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 와서 과거 유배지로서 우리 지역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정약용과 같은 `걸출한 유배 종결자`의 이야기를 전남 강진군에 선점당한 채 압도돼 스토리텔링으로 재해석하거나 문화관광의 요소들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포항 남구 장기면과 영덕군, 경남 기장은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한양에서 3천여리의 거리이므로 유배형 가운데 가장 엄중한 죄인이 주로 보내졌다. 오죽했으면 조선 태종대에 대속(代贖), 이른바 유배의 거리 대신 돈으로 대체가 가능해지면서 이 지역의 액수가 2~3위에 오르게 됐겠는가.□ 중세가 선호한 유배지, 장기▲ 장기초등학교 교정에는 우암 송시열이 심었다고 알려진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포항 장기 출신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 한 교수와 고위 관료, 군 장성과 기업인들이 수두룩하다. 장기사람들은 향토사 연구에도 포항 전역에서 인정 받을 만큼 남다른 열의를 보여 지난 2006년에는 장기발전연구회가 향토사 연구총서인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장기에 우암 송시열에서 다산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량과 학자가 머물고 갔으며 그 영향으로 학문을 숭상하고 선비를 존경하며 충절과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풍토가 조성됐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물론 한국사 전체에서 장기는 인접한 월성이 신라의 근거지로서 천년동안 누렸던 융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나눈 곳이었음을 감안할 때 지나친 겸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면 고려와 조선에 들면서 신라의 터전이 차별로 인해 뛰어난 철기문화와 천년 수도의 배후지로서 축적한 문화가 쇠퇴했다가 다시 부활했다는 언급을 생략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여하튼 장기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는 귀화 위구르인 설장수가 정몽주 피살 당시 일파로 몰려 유배된 기록을 시작으로 지금의 검찰총장인 대사헌 홍여방은 유배됐다가 사면돼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단종 복위운동 당시 형조참판이던 사육신 박팽년의 인척들은 관노로 영속돼 장기현의 관노로 내려왔다. 연산군 대에 대사간 양희지가 사초문제가 발단이 된 무오사화에 휘말려 유배됐으며 기사환국 때 영의정 김수흥, 신임사화 때 판서 신사철 등도 고초를 겪었다.이밖에 왕의 잘못을 간하는 언론의 역할을 하는 직무 특성상 미움을 받기 일쑤였던 종3품 사간 가운데 이세진, 정술조, 송영 등은 파직돼 유배나 다름 없는 장기현감으로 온 인물들이다.□다산 정약용과 우암 송시열▲ 다산은 지금 장기중학교 교정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숲을 거닐며 시 `유림만보`를 지은 것으로 전한다. /장기발전연구회 제공다산은 18년에 걸친 유배의 생애에서 7개월 10일(약 220일)을 장기에서 첫 시작한 뒤 17년을 강진에서 보냈다. 그는 첫 유배가 주는 부담과 고통으로 인해 가장 혹독한 경험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장기에 머문 동안 빼어난 사실주의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강진에서 이뤄낼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불후의 저작을 예고했다. 장기 땅에 첫 도착한 그의 마음은 기성잡시의 한수를 통해 전해진다. `산머리에 쓸쓸한 민가 마흔 채/ 기울어진 성문이 시든 꽃 속에 있네/ 물 마실 샘은 한 곳도 없어/ 성에다 줄 매달아 수차를 쓰라 하네/ 조해루 용마루에 저녁놀이 붉게 물들 무렵/ 관리가 나를 몰아 동쪽으로 나왔네/ 시냇가 자갈밭에 초가집 한 채/ 늙은 농부 만나서 주인 삼았네.`그는 장기에서 기성잡시 27수, 장기농가 10수, 고시 27수 등 130여 수의 리얼리즘 한시와 남인의 예론에 관한 시비를 논한 기해방례변, 한자 발달사를 다룬 삼창고훈, 한자 자전류 이아술 6권, 농어민의 비참한 질병치료를 돕고자 한 의서 촌병혹치 등을 남겼다. 이곳에서 한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세편 전한다. 다산의 사실주의가 돋보이는 장기농가 10수 중 제5수에서는 특유의 근면성과 휴머니즘에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에서 언급된 고약한 현지 아전이나 백성과는 다른, 장기사람들과의 정도 옅보인다.`새로 깐 병아리 작기가 주먹만해/ 여리고 노오란 털이 어여쁘기 짝이 없네/ 그 누가 어린 딸 공밥 먹는다고 말하는고/ 꼼짝 않고 붙어 앉아 솔개 쫓는 것을.`촉망받는 개혁가의 꿈이 좌절된 다산은 변방의 민초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정작 그들은 지치고 불안했을 서울내기 유배 초년생을 경계하지 않고 보듬었다.일국을 좌우한 우암 송시열은 다산보다 120여년 앞서 장기에 보내졌다. 사단법인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펴낸 `한권으로 보는 포항의 역사`는 두 사람의 장기 유배를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비교했다. `다산의 자취는 오직 시문에만 남아 있지만 우암은 토호들의 손으로 세운 생사당인 죽림서원으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이는 다산의 `기성잡시`를 거론한 것으로 `죽림서원이 마산리의 남쪽에 있으니/(중략)/촛불 들고 멀리서 찾아가도 반기지 않고/시골 사람들 아직도 송우암만 이야기하는구나`는 내용이다.장기발전연구회의 노력으로 인해 지금 장기에는 노론의 거두 송시열과 대표적 남인인 다산이 시기를 달리한 앙숙임에도 한 자리에 두 개의 사적비로 남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또 다른 유배지 영덕▲ 다산사적비의 모습.`영덕군지`에 따르면 영영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50여명이 유배지 영덕을 거쳐 갔다. 대표적 인물은 고려 예문관 대제학 윤신걸, 신돈의 전횡을 비판한 신현, 정도전과 남은 등에 대한 권력 집중을 비판한 변중량, 단종 3년에 세조에 의해 관노가 된 김처선 등이다. 조선의 대문호 윤선도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제대로 못 모셨다는 죄로 8개월 간 유배되는 동안 시와 부 20여수를 남겼다.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9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7)

한반도의 20세기는 1905년 을사늑약, 1910년의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식민의 굴욕으로 부터 그 질곡의 시대가 예고됐다. 해방과 내전,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의 골짜기에서 변방 민초들의 삶은 더욱 팍팍했다. 하지만 백성을 돌볼만한 여력이 없는 나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의병의 기개가 이땅 곳곳에서 터져 나왔기에 오늘 우리는 감히 민족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또 남북이 갈라진 내전의 땅에 학도병들이 흘린 눈물과 피는 저 대로를 활보하는 청년들의 웃음 속에서 아름답게 부활하고 있다.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새 세상을 하늘에 빌다- 정신문화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 포항 기개의 상징, 산남의진경상도의 대표적 의병전쟁인 영양 일월산 전투에는 포항 출신 의사들이 참여해 큰 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인 흥해 곡강 출신 최세윤은 뒷날 산남의진(山南義陳)의 3대 대장으로서 포항은 물론 한국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산남은 문경새재 이남의 영남을, 의진은 의병의 군대를 일컫는데 아들의 의로운 죽음을 아버지가 이어받고(정환직 부자), 장남과 지아비의 연이은 죽음에 어미마저 동행한 충절(최세윤 가족)이 펼쳐졌다. 거의(擧義)의 시작은 삼남(경상, 전라, 충청) 도찰사 등을 역임한 시찰사 정환직(1844~1907)이 고종 황제로부터 `경이 화천지수(華泉之水)를 아는가?`라고 적힌 밀지를 받게 되면서 부터다. 제나라 환공을 적의 추격에서 탈출시킨 봉추부의 고사를 통해 고종은 나라를 되찾는데 힘써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에 1905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정환직은 장남 정용기(1862~1907)에게 뜻을 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가문을 보존하라고 했다. 하지만 의로운 아들이 순순히 따랐을 리는 없었다.광무 10년(1906) 2월 정용기는 62세인 아버지를 대신해 3천여명의 의병을 규합해 대장으로 추대됐으며 군호는 산남의진으로 정했다. 의병들은 영천, 신령, 청송, 진보, 흥해, 청하 등 곳곳에서 일병기지를 습격해 크고 작은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1907년 9월1일 북구 죽장면 입암리 주막에서 식사하는 일병들을 급습했다가 주변에 매복해 있던 영천수비대에 포위돼 정용기 등 의병 40여명이 전사했다. `산남의진 입암지변`으로 명명된 이날의 비극은 민가 수십채를 방화하고 수십명의 양민들을 학살한 침탈로 이어져 의병전쟁사에서 최초의 민간인 참화로 기록되고 있다. 64세의 노구를 이끌고 2대 대장이 된 정환직은 크고 작은 전과를 거뒀으나 1907년 12월 청하면에서 체포돼 영천 교외에서 총살당했다. 1908년 3월 3대 대장이 된 최세윤은 포항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하지만 매 전투마다 의병수의 30% 이상이 전사하는 참상 끝에 그해 7월 경주시 양북면에서 체포된 최세윤은 10년형을 언도받은 뒤 1916년 8월 11일간의 단식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 윤영덕은 천리길을 걸어 시신을 모셔와 반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뒤를 따랐으며 아들 산두는 일병의 모진 고문 끝에 부모를 따랐다. □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경북의 후기 항일의병전쟁은 대개 1906년 봄부터이다. `태백산의 호랑이`로 불리며 일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신돌석은 1906년 3월 영덕군 축산면 도곡2리에서 영해진을 기병했다가 영해와 강릉을 의미하는 영릉의병으로 개칭했다. 신돌석은 영덕, 영해, 울진, 영양, 진보, 청송과 강원도 삼척, 강릉, 원주까지 진출해 일병을 공격했다. 그 명성이 전국에 떨쳐 1907년 음력 11월 경기도 양주에 모인 전국의 의병장들은 `13도 의병 창의대진소`를 결성하며 그를 교남창의대장으로 선출했다. 신돌석 의병의 공적은 독자적인 전투에 더불어 산남의진 등 인근의 의병진과 연합작전을 전개함으로써 더욱 전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신돌석은 1908년 후반기 들어 일병의 토벌이 강화되고 겨울이 되자 부대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혹한을 피하도록 했다. 몇몇 측근들과 잠행을 계속하던 장군은 1908년 12월12일 지품면 눌곡리 두집매(집 두채가 있다는 뜻)에서 예전의 부하이던 김상호, 상열, 상태 삼형제에 의해 31세의 나이에 피살됐다. 영덕군지에는 일병의 피살 보고서에 이들 이름 대신 기록된 김도룡, 김도윤이 본명일 것으로 추정해 기록돼 있다. 장군의 묘는 1971년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인천상륙작전의 열쇠, 장사맥아더 장군은 6·25전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군사전문가들 조차 성공 확률을 `5천분의 1`로 점치며 만류했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성동격서`의 양동작전용으로 영덕 장사 해안 상륙을 선택했다.1950년 8월24일 대구, 밀양에서 대부분 중·고교생인 772명의 대원으로 창설된 독립 제1유격대대, 명부대는 15일여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채 9월13일 LST 문산호로 부산항을 출발했다.다음날 새벽 4시 30분 장사해안에 도착한 문산호는 태풍 케지아로 인해 좌초됐지만 오후 2시 50분 상륙에 성공, 적군의 주 보급로인 포항~영천 방면 국도를 완전 차단하고 17일까지 적군 2군단 정예부대 2개연대의 북상 공격을 격퇴했다. 이어 19일 오후 3시30분 해상철수용 LST 조치원호로 철수를 완료했지만 미처 승선하지 못한 유격대원 40여명은 끝까지 저항하다 전원 전사했다.장사상륙작전에서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으며 유격동지회원 38명이 생존해 있다. 좌초된 문산호의 선체 대부분은 주민 등이 고철로 팔아 넘겼으며 해저에는 아랫부분만 잔해가 있는 것으로 파악돼 있다. 장사상륙작전은 포항·안강지역 전투의 적 김무정 군단 예하 제5사단에서 정예부대 2개 연대와 4대의 전차를 장사로 분산하게 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총 반격의 계기가 됐다. 또 적의 전투력 약화는 국군 제3사단이 형산강을 도하하여 북진하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진 전투`였던 장사상륙작전은 이제 역사속에서 부활했으며 정부는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해 장사상륙작전기념공원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의 요충, 형산강 공방전▲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의 7번국도 변에 건립돼 있다가 현재는 철거된 안강전투승전기념관.사단법인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포항과 경주 일대를 무대로 지난 2002년 발행한 역사인문지리서인 `형산강`에는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 인동리 동쪽산에 건립돼 있다가 수년전 철거된 안강전투 승전비의 비문이 인용돼 있다. 8월9일 침공해온 적 제7사단은 (포항)기계에 침입한 뒤 17일까지 필사적으로 공세를 되풀이했으나 우리 수도사단과 제17연대의 피어린 역습으로 이를 좌절시켰다. 22일부터 병력을 증강해 다시 내습한 적에 15일간 결사적인 지연전을 감행했다. 달포에 걸친 이 지구의 전투에서 적 294명을 사로잡고 전차 2대 격파, 사살 2천328명의 전과를 거뒀다.포항 형산강 일대 전투는 1950년 8월11일 학도의용군 전투, 형산강 방어전 등 포항지구 전투, 포항 비학산전투, 기계 탈환전으로 구분되는 기계·안강 전투로 요약된다.포항은 항구시설을 갖춘 교통 요지로 이를 점령하면 영천, 대구, 경주 방면 진출이 가능해 포항지구는 피아에 그만큼 중요했다. 이 가운데 8월11일 제3사단의 후방지휘소 포항여중(현 포항여고)에서 벌어진 학도병들의 혈투는 영화 `포화 속으로`와 서울 동성중 3년생 이우근의 피 묻은 편지 등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의성지구에서 9일 저녁 도착해 있던 학도의용군 71명은 이날 새벽 4시께 인민군의 기습을 받았다. 이들은 영일비행장에 주둔 중이던 미 해병대에서 구해온 M1소총 68정, 수류탄 3발, 탄환 2만발로 무장해 북의 정규군과 혈투를 벌인 끝에 김춘식 등 57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미해병 비행대와 북한군이 접전한 포항 중심부는 폐허로 변했으며 결국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6

한방·보건·복지분야 특성화 인재 양성의 요람

대구한의대는 `지역사회와 함께 세계화를 선도하는 대학`을 목표로 비전 실현을 위해 한의과대학, 한방산업대학, 보건치료대학, 웰빙복지대학, 국제문화정보대학 등 5개 단과대학 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한방·보건·복지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2012년부터 학문분야별 특성화를 가속하기 위해 지역 전략사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토대로 학부(과)가 지닌 강점과 잠재력은 최대로 활용하고, 유사 특성들은 유기적으로 결합해 교육과 연구분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방의료 및 간호분야에 특화된 수성캠퍼스, 보건·복지분야에 특화된 삼성캠퍼스, 한방산업을 선도하는 오성캠퍼스 등 3개 캠퍼스별 특화 체제를 구축했다.◆ 한의약산업 선도하는 수성캠퍼스와 오성캠퍼스특성화 대학으로서의 위상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교육혁신과 부단한 교육 환경 개선 및 연구력 증진에 매진하고 있다.특히, 수성캠퍼스와 오성캠퍼스가 주축이 되어 견인하는 한의약 산업의 성장성과 잠재력은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최근 국가 5대 미래산업선도기술개발사업 중 천연물신약 개발 부문에 참여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원,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중국 천진국제생물의약연합연구원(TJAB) 등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과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과 한의약 산업에 관련된 연구를 위한 상호 연구·교류협약을 잇달아 체결했다.대형 국책 연구사업인 지식경제부 광역경제권 연계협력사업, 교육과학기술부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MRC), 지식경제부 지역연구산업 육성사업(RIS) 등에 연이어 선정되며 우수한 연구력을 인정받았다.◆ 인성을 갖춘 지식인 양성의 요람 삼성캠퍼스체험학습을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인성과 예절을 갖춘 지식인 양성을 목적으로 삼성캠퍼스 내에 전통 한학촌을 조성했다. 한학촌에서는 명심보감 등 인문학적 지혜를 담은 고전강좌와 전통예절교육, 문화체험 행사 등 다양하고 유용한 각종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특히, 매년 해외 자매결연 대학인 미국 이스턴켄터키대학, 러시아 울랴노브스크대학, 중국 화남사범대학, 일본 오사카 교육대학, 우즈베키스탄 국립미술디자인대학 등에서 파견된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KCP)은 이질적인 문화간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으며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 구실을 하고 있다.◆ 캠퍼스의 국제화 추진세계 문화가 공존하는 캠퍼스의 국제화와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역점적으로 추진해 현재 16개국 45개 대학 및 기관과의 교류 협정을 체결했다. 또 교환학생, 복수학위제, 교비지원 어학연수단, 해외인턴쉽 제도, 해외현장학습, 한국문화 및 의료연수 등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의 국제적 감각과 실무능력을 배양하는데 힘쓰고 있다.국제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면제(교환학생에 한함)하거나 소정의 해외학습장학금을 부여하고 파견 기간에 따라 3학점부터 18학점까지 학점을 인정해 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해 보다 많은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또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는 캠퍼스 문화 정착을 위해 학부와 대학원에 입학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각종 문화행사 및 전용 강좌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국립의과대학과의 의료연수 프로그램은 전통한의학의 우수성을 대외에 알릴 뿐 아니라, 본교 재학생들에게 서양의학 강의를 듣고 러시아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 취업률 증가 슈퍼리더 프로젝트 가동대구한의대는 `입학하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무한 책임의식 아래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고 학생이 만족하는 실무형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2004년 전국 최초로 정부기관과의 취업지원 협약체결을 필두로 2010년 대구·경북지역 소재 4년제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또 3년 연속 대학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지원대학 선정, 청년직장체험프로그램 운영기관 및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청년취업아카데미 양성학과에 선정되기도 했다.취업지원관제도, 청년취업아카데미, 중소기업 체험학습, 취업박람회 개최, 취업 관련 교과목 운영, 취업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취업프로그램 운영과 대학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매년 전국 상위권의 취업률을 달성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학교기업 설치로 성공모델 창출지역 한방산업 인프라와 연계해 한방산업체의 수요에 맞는 한방소재 개발과 제형개발, 생산 및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구·경북 한방산업 육성과 함께 한방화장품 전문 인력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2004년 전국 최초의 학교기업인 `기린허브테크`를 설립, 한방소재를 활용한 민감성 한방허브크림인 매향(梅香)과 소월(素月)의 시(詩)를 생산해 지역 한방산업 전문 유통기업을 통해 론칭했다.2008년부터는 대학 독자적인 유통망 확보를 위해 한의학의 대표적인 원방인 `경옥고`를 현대과학으로 발전시킨 한방 기능성 화장품 자안(慈顔)브랜드를 독자 개발해 출시했다.우수한 연구력과 기술개발력을 바탕으로 한방화장품(자안), 한방건강음료(홍삼경옥골드) 등의 제품 개발로 매년 매출액이 급격히 신장하고 있으며, 한방화장품 제조ㆍ생산에 독보적인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모범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아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정지원 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4년제 대학 최초로 화장품약리학과를 개설, 현장실무형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학교기업 및 산업체 현장실습을 연계한 교육으로 전국 최상위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일반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연계체계는 고급 전문인력 육성에 밑바탕이 되어 학교기업과 화장품산업 경쟁력 제고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11-16

300명 군사로 30만 페르시아군 물리친 레오니다스왕

늦은 점심을 오후 3시 넘어 칼람바카(Kalambaka)에서 3대째 영업하고 있는 `레스토랑 메테오라`에서 먹었다. 뷔페였다. 대형 솥 12개에 다양한 음식을 푸짐하게 제공하였다. 대를 이어 하는 식당답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은 많았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난 칼람바카 마을을 벗어나기 전 성스테파누스 수도원을 되돌아봤다. 우뚝! 수도원을 끌어안은 메테오라 바위가 성인(聖人)처럼 우리를 향해 손 흔든다. `바이바이! 여행객이여 은총이 가득하길!`얼마쯤 달리자 길옆으로 강 하나가 긴 꼬리를 잇는다. `피니오스`강이다. 피니오스 강은 아폴론과 다프네에 얽힌 신화가 흐르는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 에로스는 금화살을 아폴론의 어깨에 맞추고, 첫눈에 만나는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사랑의 상대가 다프네다. 반면에 다프네는 에로스의 은화살을 맞게 되는데 그것에 꽂히면 첫눈에 띄는 사람을 영원히 미워할 수밖에 없다. 애증의 역학관계에 아폴론과 다프네는 쫓고 쫓기게 된다. 아폴론이 시도 때도 없이 쫓아오자 결국 다프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월계수란 나무로 변한다. 아폴론은 그 가지로 전차경기의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는 신화다.피니오스 강은 테살리아 평야를 가로지른다. 해 뜨고 지는 풍경을 지평선 끝으로 볼 수 있는 평야다. 테살리아는 그리스 13개 주 가운데 한 주로 중심지는 라리사市다. 이곳에선 밀, 옥수수, 목화, 채소 등 많은 식물을 재배한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평야 가운데로 뚫려있다. 한여름 땡볕 가뭄에도 식물들은 무성하고 푸르다. 이동 중 멀리 피니오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선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농작물과 꿀, 약초를 팔았다. 원탁의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자 서비스로 시원한 수박을 준다. 수박 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단 것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것 역시 피니오스 강이 흐르는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것이다. 다시 출발한 승용차가 오랜 시간 달리다 들른 곳은 테르모필레(Thermopylae) 온천이었다. 테르모필레의 테르모(thermo)는 온도계(thermometer)의 앞 글자에서 보듯 `뜨겁다`를 의미하고, 필레(pylae)는 문(gate)을 뜻한다. 자연 온천 특유의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온천으로 갔다. 노천온천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다. 우린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거짓말처럼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 이 물줄기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흘러내린 물줄기다. 우리처럼 발만 담그고 있는 그리스 사람이 우리를 향해“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코리아”“코리아! 삼성! 가고 싶은 나라죠. ……이곳을 종종 찾는데 온천욕을 하면 기분이 좋죠. 일광욕을 함께 할 수 있어 해수욕만큼 좋죠.”`삼성`이란 말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기업 `포스코`란 말을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분은 아미아(Amia)에 산다고 했다. 온천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마을이란다.입장료도 없다. 그냥 노천 온천 밖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면 된다. 족욕을 즐긴 난 물이 나오는 원천지를 구경할 겸 상류로 올라가는데 현지인이 막는다. 위락시설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단다. 온천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캠핑투어장도 보인다. 온천은 큰 도로에서 가깝기 때문에 운전하는 사람들이 피로를 풀겸 잠시 들러 쉬었다 가기도 한다. 노천온천에서 휴식을 취한 우린 그곳과 가까운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로 옮겼다. 테르모필레는 지명의 상징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다. 아테네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동편은 바다, 서편은 높은 산으로 영화 `300(삼백)`의 스토리가 된, 세계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천혜의 요새다.기념비 광장에 도착했을 때 일광 형 형수가 말한다.“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삼백` 개봉할 때 봤어요. 그 배경이 이곳이라니?”넓은 공터 뒤쪽으로 20여 미터 울타리 대리석 기단을 쌓고, 가운데 부분에 흰 대리석을 높인 다음 그 위 긴 창을 들고 있는 청동 인물을 올렸다. 청동 인물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조국 그리스를 위해 목숨 바친 `레오니다스(Leonidas)`왕이다. 그 밑 양편으로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장면도 부조로 새겼다.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엄청난 대군(역사가 헤로도토스는 264만1천명의 병사라 함, 어느 책은 170만명, 현대의 학자는 30만명 정도로 추정)을 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바로 3차 페르시아 전투다.대군 앞의 그리스 연합군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 정예병 300명, 노예병 7천명을 이곳에 남기고 나머지 아테네 연합군을 철수시켰다.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는 `레오니다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했다.레오니다스는 대꾸했다.`와서 가져가라.`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레오니다스 동상 밑에는 당시 그가 말했던 말이 두 단어로 새겨져 있다.이것 외에도 스파르타 군인의 용감성은 불세출의 명언으로 많이 회자된다. 스파르타 군인 `디에네케스`에게 동맹국 트라키아의 주민이 하얗게 질린 채로 찾아왔다.“페르시아 모든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면 화살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릴 정도입니다.”그 말에 디에네케스는 너털웃음을 웃으며“잘됐군. 그럼 우리 군대는 그늘에서 전투할 수 있겠군.”그만큼 페르시아의 많은 군사에 대항하는 스파르타 군인의 임전무퇴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일화다.그리스와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전투 이전에도 두 번이나 싸웠다. 첫번째는 기원전 492년이었고 두번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다. 이곳의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실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이런 전투에 대한 기록은 헤르도트스의 명저 `역사`를 비롯하여 풀루타르크 `영웅전` 및 여러 책에 등장하는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다.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광장 옆에는 전투에 따른 설명과 당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그렇다고 델포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거창한 유물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래 전 기록에 따른 기념물을 세웠기에 후세의 사람들은 그곳을 찾고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이다.광장 밖에는 머리와 팔이 없는 또 하나의 조각상도 보인다. 무명용사비다.전쟁에는 숱한 영웅호걸이 탄생한다. 영웅호걸과 그들 밑에서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영토는 지켜지고, 역사는 존재하는 것일 게다. 2천5백년 전 테르모필레 전투는 유럽과 아시아를 지리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된 전투다. 그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저 중동 곳곳에서 배턴을 이어받듯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에서 허황되게 떠올려본다계속

2012-11-16

신비의 왕국 대가야 역사와 자연이 오롯이 숨쉬는 곳

고령군 제1호 자연휴양림인 `미숭산 자연휴양림`이 개장했다.미숭산 자연휴양림은 미숭산 줄기가 주위를 감싸고 왼쪽으로는 문수봉 줄기가 뻗어내린 아늑하고 포근한 곳에 자리잡아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산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들어마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최고의 조망권에 대형 숙박시설미숭산 자연휴양림은 고령군 고령읍 신리 산 45-17번지에 위치했으며 이달 6일 개장식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총 41억5천만원을 들여 2010년 4월 착공, 2년 6개월의 공사를 거쳐 완성됐다.해발 250~300m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속에 35.8ha 규모에 숙박시설(5동/7실), 세미나실(1실/33평), 관리동, 숲속 화장실, 다목적 운동장, 등산로, 주차장 등을 갖췄다.특히 숙박시설은 19평·21평·34평형으로 타 휴양림보다 공간이 넓고 대가족 및 친목단체모임에 적합하게 특화되어 있다.이용요금은 평일 및 비수기 7~10만원, 휴일 및 성수기 14~20만원이다. 휴양림에서 연결된 문수봉 등산로는 가볍게 올라 가까이의 미숭산과 멀리 가야산과 비슬산을 조망하기에는 그만이다.휴양림 오른쪽에는 미숭산 줄기가 감싸듯 흐르고 왼쪽은 문수봉 줄기가 뻗어내리고 있다. 앞쪽에는 청정 수질을 자랑하는 신리저수지가 위치해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또 대가야 박물관,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우륵박물관, 산림녹화기념숲 등 고령군 주요관광지에서 20분(10㎞)이내 접근 가능한 장점도 갖추고 있다. 또 휴양림에서 500미터 거리에 위치한 계곡부에 `대가야 고령 생태숲`을 내년 3월 준공할 예정으로 조성하고 있다.예약은 홈페이지(www.misungsan.com)를 통해 하면 되고 문의는 (054)956-6226 또는 (054)950 - 6311로 하면 된다.◇미숭산 정기 받은 역사 속 왕국 고령은?미숭산의 정기를 받은 고령은 경상북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고령읍에서 합수하여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고령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청동기 시대이며 삼한시대 대가야의 전신인 반로국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반로국이 성장하면서 주변 세력을 병합해 대가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후기 가야의 맹주로 그 세력을 떨쳤다.그러나 신라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562년(진흥왕 23) 9월 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斯多含)이 이끄는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대가야는 시조 이진아시에서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년간 존속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700여기에 이르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낙동강 중류의 좌안에 55㎞가 접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수운을 이용해 관물과 공물을 운반하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이즈모, 중국 남제와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최근의 도로 교통은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하고 김천,통영간 남부내륙고속철도 건설 확정과 대구 광주간 고속철도 추진으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낙동강의 비옥한 사질토에서 생산되는 신화 창조의 비밀에 방영된 우곡 그린수박, 개진 감자, 성산 메론, 고령딸기, 다산 향부자 등 친환경특작물이 사계절 생산되고 있다.고령은 대가야의 수도이었으나 역사속에 감추어진 신비의 왕국이다. 수 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특히 대가야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대가야 전문박물관인 대가야 박물관과 고대 순장문화를 그대로 재현 해놓은 왕릉전시관, 가야금을 창제하신 악성 우륵 선생의 탄생지로서 그 유업을 기린 우륵 박물관, 대가야 역사를 전문 테마로 한 대가야역사테마 관광지, 가야금을 형상화한 낙조가 아름다운 강정 고령보 등 수많은 볼거리들이 있다.인구는 10월말 현재 3만5천438명이며 민선 5기 이후 1천여 명이 늘었다. 농촌지역에서 출생률 저하와 자연적인 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증가 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고령군은 인구증가를 위해 인구증가시책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다양한 정책들을 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주여건이 좋아야 인구가 늘어난다고 인식하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행복도시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특히 88고속도로와 남부내륙 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되고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사통팔달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고 가야산의 맑은 물과 좋은 공기는 뚜렷한 사계절과 함께 살기에 최적지다. 8개 읍면 중 절반인 4개면이 낙동강과 연접해 있고 낙동강 총 연장 521km 중 1/10인 55km에 달하는 긴 연접구역과 184만평에 달하는 넓은 하천둔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2개의 다목적 명품 보와 친수문화광장, 생태공원, 체육시설 강변 캠핑장, 자전거길 등 다양한 친수시설이 조성돼 있다.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이 32km 정도 통과하는데 이 구간에는 제방과 하천의 자전거길이 일반도로와 MTB도로, 농로를 이용한 자전거길과 함께 어울려 수려한 강변풍경과 더불어 환상적인 자전거길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지금도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이에 따라 변모된 강을 효율적인 유지관리와 적절한 개발계획을 통해 지역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삼고자 `낙동강 고령프로젝트 종합발전계획`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POST 낙동강, 고령시대`를 열고 있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12-11-15

`상주농특산물` 거대 美 시장 공략 출사표

한미FTA 등으로 농축산물의 수입개방 파고가 점점 드세지면서 국내 농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어 자구책이 시급한 실정이다.정부와 지자체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작목전환을 비롯해 차별화·특성화 등에 주력하고 있지만 근원적인 해답은 구하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시점에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를 표방하는 상주시가 과감하게 세계 제1의 농산물 수출 대국인 미국을 전략적으로 역공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상주시의 미국 공략이 여타 지자체의 농산물 수출전략에도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탁상공론에 그칠지 전국 농업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성백영 상주시장을 만나 미국 시장 진출의 의미와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상주 시장개척단의 미국활동은.△지난 10월 1일부터 8일까지 미국 동부의 뉴욕, 워싱턴DC를 거쳐 LA한인축제 농산물 EXPO까지 미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이번 시장개척단의 특징은 상주 농업을 대표하는 지역의 3개 조합장과 생산농가가 판촉활동에 동참해 직접 미국 현지시장을 둘러보면서 현지인들의 소비 행태라든지 구매 패턴을 몸소 경험하고 파악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았나.△이번 시장개척단의 활동은 크게 세 개 부분으로 나눠 얘기할 수 있다.첫째는 BCS사 수출상담, 뉴욕한인청과협회 및 무궁프로듀스와의 MOU체결, LA한인축제 농산물EXPO 농산물 판촉활동 등 농산물수출 확대를 위한 홍보,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둘째는 뉴욕한인청과협회, 워싱턴한인연합회, 워싱턴상주향우회, LA상주향우회를 비롯한 현지공관 방문 등 미국 한인사회와의 만남을 통해 우의를 돈독히 했다.셋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신 낙동강시대 주역으로 급부상하는 상주의 주요시정과 발전상을 소개하면서 시장개척단의 활동사항을 적극 홍보했다.이러한 다양한 현지 활동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 동부지역에 상주의 우수 농특산물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장개척단의 방미활동 결과와 구체적인 성과는.△우선 세계 최대의 농식품 소비국인 미국시장에 상주 우수 농산물의 수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데 있다.뉴욕한인청과협회와 LA Moo Gung Produce와의 MOU체결을 통해 새로운 수출선을 구축했고 각계각층의 한인들과 만나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혔다는 것도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실제 뉴욕 방문시 수출상담을 했던 BCS사 데이비드 유 사장이 지난 10월 상주시를 방문해 대미배수출단지, 상주RPC, 서상주포도수출단지 등을 둘러보면서 상주배 70t(2억7천여만원)을 수입하기로 약속했고 현재 수출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또 상주시와 MOU를 체결한 LA의 무궁프로듀스(대표 정혜숙)도 상주포도 30t을 수입키로 하고 지난 10월 19일 서상주농협에서 1차로 포도 10t을 선적했다.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수출개척단의 미국시장 활동성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농산물 수출증대에 큰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상주시가 농산물 해외 수출에 중점을 두는 특별한 이유는.△상주는 예로부터 농경문화의 발상지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초기 철기시대의 탄화미가 상주에서 발견됐고 삼한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공검지가 상주에 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배, 오이, 포도, 양봉을 비롯해 육계와 한우에 이르기까지 그 생산량과 품질면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농산물 시장의 대내외적인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라 국내 농산물도 변화의 물결을 비켜 갈 수 없게 됐고 특히 물량수급에 제약을 받고 있다.농민들이 애써 가꾼 질 좋은 친환경 우수농산물이 과잉공급 될 때는 수출을 통해서만 물량수급을 조절할 수 있고 가격폭락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수출 확대만이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키워드라 생각하며 과잉생산 등 유사시 위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수출증대를 위한 상주시의 향후 계획은.△현재 상주에는 대미배수출단지 등 5개의 농림식품부지정 원예전문수출단지가 있고 3개의 경북도 지정 수출단지가 있다.그러나 8개 전문단지가 모두 100ha 미만으로 소규모이다. 그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아 막상 해외 바이어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출 수 없는 경우가 많다.또 올해는 초봄 우박피해로 지역 수출물량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배 수확량이 크게 감소해 9월말 수출실적이 1천200여t밖에 되지 않아 올해 수출목표 4천800t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농산물 수출시장은 무한정 넓다. 원예전문단지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수출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적어도 단지당 150ha 이상의 규모화가 필요하다.또 시는 수출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구도 신설할 계획이다. 현재 직원 1명이 상주시 전체의 수출관련 지원업무를 전담하고 있어 능동적이고 폭넓은 업무 지원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출시장 개척 등 마케팅 업무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올 연말 조직개편시 수출업무 지원을 전담하는 수출지원담당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상주지역내의 수출농가와 법인 등지에서 거래를 하고 있는 소규모 수출회사는 약 20여개가 넘는다.따라서 소규모 수출회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수출대금 미지급 등의 사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는 반증이다.뿐만 아니라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최고 품질의 우수 농산물들이 해외시장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이러한 취약 조건을 해소하고 체계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전략품목의 육성과 신규품목의 개발, 운송통관, 해외마케팅 업무까지 총괄할 수 있는 유통 전문단체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다면 현재 원예조합과 지역농협이 공동출자해 조직한 상주시공동사업조합법인의 기능과 인력을 보강해 유통공사 기능을 전담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보겠다. 필요하다면 상주시도 출자에 참여하도록 하겠다.현재 자연 재해 등에 의해 수확량이 감소할 경우 국내 시장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수출농가가 내수시장으로 물량을 돌려 당초 약정한 수출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이러한 농업인들의 의식도 점차 변화시켜 어떠한 경우에도 약정한 물량은 수출이 되도록 해 해외바이어와의 끈끈한 신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수출농가와 단체, 수출회사, 행정이 힘을 합쳐 수출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주배, 사과 등 주력 품종의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나아가 포도, 복숭아, 막걸리, 곶감, 쌀, 국화, 접목선인장, 신선배추 등의 다양한 수출 품목 개발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2-11-13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16)

경북동해안은 바다를 중간에 두고 일본과 마주 한 지리적 특성 상 고대에서 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왜의 노략질과 전쟁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신라 천년 동안에는 수도 방위의 최전선이었으며 한낱 변방의 신세에 처한 조선에서도 국토 수호의 보루이자 중심무대였다. 이러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려말에는 포항에 통양포수군만호진이, 조선시대에는 영일진이 설치돼 수군이 주둔했으며 오늘날에는 최정예 해병대의 고장이기도 하다.칼날 같은 샛바람을 맞으며 높은 파도를 헤치고 단련된 경북동해안의 민초들은 거듭되는 외침의 시련 속에서도 한반도의 등뼈를 지켜냈으며 그 자부심은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글 싣는 순서3부=고난에 단련된 국토의 등뼈 16)변방, 국토수호의 현장- 항쟁117)포화에 휩싸인 근현대사- 항쟁218)위리안치를 이겨낸 유배문학19)후천개벽을 도모한 땅- 동학20)험한 노동을 감내한 민초들□임란의 격전지, 포항 골곡포(骨谷浦)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나타나는 왜적의 동해안 침입은 수십회에 이르는데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후반까지 왜구 및 왜병의 진격로이자 격전지가 바로 포항이었다. 내물왕 38년(393) 5월에는 5일 동안 금성을 포위하고 공격한 왜적들이 굳건한 옹성에 막혀 퇴각하다 이를 추적한 보병 4만명에게 포위돼 독산(포항 북구 신광면 소재지)에서 대패하고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 개포(포항 북구 월포리)는 신라 이래로 수군진(鎭)이 설치돼 병선이 배치되고 3곳에 해자를 설치했는데 바닷바람이 너무 심해 고려 우왕13년(1387)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되면서 통양포(포항 북구 두호동)로 이동한다. 문헌에 따르면 통양포만호진에는 병선 8척, 수군 218명이 배치돼 있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남지역은 초기의 치욕적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전직 문관이나 유생들이 선봉에 서서 의병을 결성했다. 이는 관북지방의 의병장이 주로 전·현직 무관인 것과 대조가 되는데 충성심과 자존심이 강한 영남의 사림들이 무장항전의 지도자로 나선 결과이다. 당시 경주부 관할이던 포항지역 의병장은 남구 대송면 사정리 출신의 수월재 김현룡과 그 형제들, 임란 후 북구 신광면 우각리에 은거하며 종군 경험을 용사일기(龍蛇日記, 용=조선, 뱀=왜)에 남긴 오의정 이의온, 해일당 이설, 남강 이여랑 등이 대표적이다.이 가운데 창의장군(倡義將軍)으로 불린 수월재는 5형제가 의병장으로 나서 우정과 우호, 두 사람이 전사하는 아픔을 `형제산 남쪽의 강물은 푸르구나. 혼이여 혼이여 돌아가기 더디지 말게. 몸을 가벼이 여겨 순국하였으니 유감 없으리. 효도는 집에서만 아니고 충으로 옮겼구나.`라는 시 `서천초혼가`를 남겼다.포항 북구 송라면 화진해수욕장은 대표적 격전지이다. 왜의 보급부대가 백사장에 침입해 주둔하자 이 지역 의병들이 송라면 대전리 대동숲에 매복해 있다가 야간에 급습해 새벽까지 3전 3승의 혈전을 거듭했다고 한다. 임란 이후 이 일대를 골곡포(骨谷浦)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마을 북쪽에서 벌어진 격전으로 전사자들의 유골과 활촉이 지난 1930년대 이전까지도 간간이 발견됐다고 전한다.이후 북구 청하면 일대의 지역 유지들은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에 화진해수욕장에서 위령제를 열어 호국의 원혼들을 위로하고 있다.□의병항쟁사의 기념비, 경주성 탈환20만의 왜군은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침입해 21일에는 영남의 거진(巨鎭)인 경주읍성을 함락시켰다. 왜군은 좌로, 중로, 우로의 세 길로 나눠 한양을 향해 북상했는데 경주는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담당한 좌로에 위치한 격전지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공성 작전 끝에 9월 8일 탈환한 경주성 전투의 영웅은 문천회맹(蚊川會盟)을 중심으로 한 경주부 일대 의병과 함께 비격진천뢰를 활용한 장수 박의장의 공이 컸다. 그가 쓴 관감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9월초 7일에 용감한 군사만을 뽑아서 밤중에 성을 덮쳐 진천뢰(震天雷)를 터뜨리니 적병이 불에 타 죽은 자가 수없이 많았다. 적이 넋을 잃고 소리지르며 당황하더니 이튿날 밤에 부산으로 도망쳐가거늘 추격하여 30여명을 죽이고 성을 탈환했다. 성안에는 아직 창고에 곡식이 4만여 석이나 있었다`.조선군은 경주성 탈환으로 국토의 동로(東路)를 확보하게 돼 왜군의 보급로와 통신망을 차단하는 성과를 이뤘다. 국왕이 국토의 끝 의주로 피하고 왜군이 평양성과 회령에 진출한 상황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한 의병과 관군은 고립 상황에서 자력으로 왜군을 격퇴함으로써 경상좌도에 생기가 돌게 됐다.임란이 끝난 뒤 조정은 공을 세운 9천60명을 표창했다. 특히 의병들에게는 선무원종공신록권을 1, 2, 3등급으로 나눠 주었는데 경주부원은 1등 13명, 2등 33명, 3등 63명 등 109명이 포함됐다. 경주 의병활동에서는 한 집안에 의병장이 여럿 있었다는 점이 특이한 점으로 평가되고 있다.□임란 명장들을 배출한 영덕영덕은 임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명장들의 출신지이다.경주부 판관으로 경주성 수복을 이뤄낸 박의장 장군은 영해 원구 출신이다. 개전과 동시에 부산성에서 정발 장군 휘하의 중위장으로 참전해 전몰한 장희식 장군은 영덕읍 화개리 출신이다.또 하양전투에서 공을 세운 박홍장 장군, 영해의 군기시판관 남의록, 영일현령 김난서, 김제군수로서 공을 세운 뒤 전사한 영해 출신 정담 장군 등이 대표적이다.또 의병 가운데 찰방 조현, 생원 이함, 유학 백현룡 등은 홍의장군 곽재우의 화왕진에 합류해 활약했다.왜군은 평해 백암과 영해 서쪽 창수면 삼계리와 수리 쪽으로 진격해 왔는데 영해 경계에는 1592년 음력 7월 25일 이후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영해에 침입한 왜군은 모리길성과 추월종장, 고교원종 등 장수의 부대로 서울을 점령한 뒤 강원도로 침입한 일부가 동해안으로 남하했다.영해전투는 해흥 백인국, 신규년, 배태원 등의 의병장이 참전했다. 이들은 남하하는 적을 맞아 관군과 함께 창수면 위정계곡에 매복해 적을 습격하려고 했으나 왜군의 선발대를 본진으로 오인해 공격하다가 대병력에 역포위돼 신규년을 비롯한 대다수가 전사했다.이밖에 영덕 출신 김기하, 성하 형제는 정유재란 때 울산 서생포 근처의 창암에서 김기하가 전사했지만 김성하는 명장 마귀와 함께 왜적에 대승을 거뒀다. 왜군의 주력부대 통과지점이며 후방보급로인 대구의 공산성 전투에서도 영해 출신 이함, 백인경 등이 공을 거뒀다.□마분동에 새겨진 울진의 항쟁울진에 왜군이 침입한 것은 행주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이 서울을 벗어나 일부가 경상도 해안으로 퇴각한 시기로 추정된다. 울진의 향토사가들은 임진왜란전황도를 통해 왜군이 강릉과 삼척을 거쳐 영해까지 내려간 점에서 이를 유추하고 있다. 왜병의 공격에 김언륜은 고산성에 주둔하던 주호 장군을 찾아가 의논하고 의병을 모집했다. 또 갈령을 넘은 왜군이 부구와 죽변으로 치닫자 덕천리 마분동 십장곡에서 김천상 등의 부장을 모아 작전을 세웠다.하지만 적을 매복작전으로 급습한 김장군은 반격작전에 휘말려 28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이때 역전분투했던 이 골짜기를 분투곡(奮鬪谷)으로, 사람과 말이 수없이 죽어 쌓였다 하여 마을이름이 마분동(馬墳洞)으로 붙여졌다고 전한다. 대장을 잃은 휘하 장수 김천상 등 9명은 고목리 구장곡에 모여 통곡하다가 손가락을 깨물어 받은 피를 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뒤 선조가 파천한 의주로 향했다고 하지만 이후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울진읍 고성리 구만동 출신인 주호는 서면 소광리의 안일왕산성에 피신했다가 돌아와 300여명의 의병을 모집했다. 8월말에 왜병들이 `남무묘법연화경`의 주문을 쓴 깃발을 앞세우고 쳐들어 오자 옹성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몰사했다고 전한다.그 부인 장씨는 왜군이 능욕하려 하자 끝까지 기개를 지키며 맞서다 순절했는데 한 왜군이 기록을 전함으로써 7년 전란이 끝난 뒤 선조 36년(1603년) `봉열대부사재감첨정`의 벼슬이 주호에게 하사되고 장씨 부인에게는 영인(令人)이라는 작위가 주어졌다고 전한다.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 때는 기성 사람 김응선이 아우 응남과 함께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서울로 진군하던 중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에 통곡하다가 의병들을 해산시키고 귀향했다. 하지만 그는 일생 동안 타인과 접촉을 끊고 지내다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12

`12년 표류` 달성공원 동물원, 어디서 빛 볼까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과연 언제, 어디로 옮기게 될까.그동안 1천800억원에 달하는 이전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구시는 최근 들어 민간 투자자가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전 협의가 계획되는 등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본격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이에 따라 현재 수성구와 달성군은 서로 동물원 이전을 두고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서로 자신들의 지역이 최적지임을 내세우면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12년간 표류한 달성공원 동물원 본격화여기에 달서구와 동구 등도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혹시나 하는 입장에서 대구시의 최종 결정만을 기다리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중구는 동물원이 이전되면 달성토성 복원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고 핵심사업인 근대골목투어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그동안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지체되면 애써 따낸 국비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어 하루빨리 이전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또 서구는 달성토성 주변 노후주택 밀집지인 비산2·3동 일대에 100억원 규모의 도심재생 프로젝트(2013~2017년)를 추진할 계획으로 있어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이런 상황에서 대구시는 1천800억원에 달하는 동물원이전 사업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민간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에 지난 2007년부터 삼성에버랜드 등 지역 연고기업을 비롯한 6~7개사와 접촉을 가졌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외면당했다.■수성구는 땅값이 달성군의 4배수성구는 12년전 대구시가 대구스타디움 인근인 삼덕동 구름골지구 11만3천여㎡(축구장 15배 규모)를 동물원 이전 예정부지로 결정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이렇다 할 해법이 없다면 최초 결정지로 가야 한다는 게 수성구의 입장이고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한 주민들의 피해 보상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수성구의회 박민호 의원은 지난달 개최된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구름골로의 동물원 이전에 대한 타당성과 역사성을 조목조목 제시하면서 민간투자자를 내세우면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대구시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심지어 이곳은 대구스타디움과 체육공원, 대구미술원, 대구야구장(건립예정) 인접지에 동물원까지 들어서면 이 일대가 일약 `복합레저문화단지`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다만 달성군 하빈면보다 땅값 보상비가 4배나 더 비싸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박민호 수성구 의원은 “당초 계획이던 사파리(자동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관람) 형태는 나중에 검토하고 우선 체험 중심의 동물원을 만들면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한 주민들과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달성군은 교통 등 인프라 부족달성군 대구교도소의 하빈면 이전이 확정되면서 주민들에게 지역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이른바 인센티브로 동물원을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46명으로 구성된 동물원유치위원회를 결성하고 하빈면의 대평리 등 5곳을 이전 후보지로 대구시에 추천했다. 달성군의회도 옛 달성군 청사(남구 대명동) 매각대금 일부를 동물원 이전 관련 인프라 확충에 써야 한다며 달성군을 압박하면서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달성군 하빈면 일대는 수성구에 비해 교통여건이 좋지 않고 인프라 구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병오 동물원유치위원장(63)은 “동물원이 달성 전체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어 반드시 유치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규모와 비용 축소도 가능중구와 서구는 동물원을 에워싸고 있는 달성토성(사적 제62호)과 관련된 특화사업이 차질을 빚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중구는 동물원 이전후 달성토성 복원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핵심사업인 근대골목투어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물원 이전이 지체되면 애써 따낸 국비도 반환해야 할 처지다.서구는 토성복원으로 중구의 근대골목투어가 활성화되면 인접지인 비산동으로의 관광객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구시는 늦어도 내년부터 동물원 이전을 시작해 오는 2016년까지 마무리하고 내년 1월에는 입지를 선정할 예정이다.대구시 재정을 고려해 민자 유치를 희망하지만 사업자가 없을 경우 규모를 줄여 시가 직접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면서 이러면 당초 예상 사업비 1천800억원에서 800억원 안팎으로 줄인다는 입장이다.특히 민간투자가 극히 제한적일 경우에는 대구시는 새 동물원의 면적을 4만9천500㎡(1만5천평) 규모에다 사업비도 100억~200억원으로 낮출 계획까지 잡고 있다.규모를 축소해가면서도 대구시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을 더 미룰 수 없는 것은 대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달성토성 복원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국비 62억여 원을 확보했지만 동물원이 이전되지 않아 복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인프라와 균형발전 중 선택지자체간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구시의 동물원 이전 결정은 인프라 구축으로 기반을 갖춘 지역을 선정해 관광 등 효과를 높이느냐, 지역 균형발전을 배려한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이지만 핵심적인 키는 민간 투자자가 될 전망이다.최근엔 동물원 이전부지로 달서구 도시철도 2호선 종점인 문양역 일대가 부상했다. 이는 일부 민간업자가 운영수익을 감안해 지하철 역세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대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고 문양역 일대를 포함해 지금까지 거론된 후보지 모두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11월중 입지선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며 용역결과에 관계없이 후보지 중 민간투자자만 나선다면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재정 이유로 부지 재검토 주민들 분노케 하는 일”▲ 수성구의회 박민호 의원수성구의회 박민호(52) 의원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에 대해 할 말이 많다.“달성공원 동물원이 수성구 삼덕동 구름골 일대로 오지 않는다면 이전을 전제로 명명된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명도 우습게 돼 버린다”면서“혼돈을 야기하고 역명 변경에 따른 비용도 상당한데도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일관성 없는 대구시 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박 의원은 “대구시 지난 1993년 수성구 삼덕동과 연호동 일대에 동물원 등의 조성을 위한 대구대공원 설립 도시계획시설 결정과 지난 2000년 도시공원법에 따라 구름골 동물원 조성계획을 수립한바 있다”며 “20여년간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한 대구시가 이제와서 백지화하려는 의도를 보여 황당하고 당혹스럽다”고 밝혔다.특히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20일 도시자연공원정비 계획에 따라 대공원에서 해제하면서도 삼덕동 산89번지 일원을 근린공원 그대로 둔 것은 동물원부지로 재지정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이런상황에서 대구교도소 이전 승낙에 대한 반대급부로 달성군 하빈면에 동물원을 이전해 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또“이제와서 뚜렷한 설명도 없이 재정상의 이유로 동물원 이전 부지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은 20년동안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면서 “원점으로 다시 돌리자는 대구시의 일관성 없고 근시안적인 행정에 실망하고 있다”고 대구시에 대한 불만을 대신했다.“김범일 대구시장이 지난달 6일 대구시의회 본회의 답변에서 동물원 이전은 주민들이 희망하는 지역을 우선 검토 하겠다고 답변해 시행정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그대로 보였다”며 말한 박민호 의원은“이는 지자체별로 유치 경쟁과 수성구와 달성군의 힘겨루기는 물론 갈등까지 조장하는 부채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박 의원은“그동안 수성구는 대구시를 믿고 있었지 유치할 의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며“거의 완벽한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수성구를 제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박민호 의원은 “대구시의 재정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 대규모의 사파리 형태의 동물원 보다는 현장체험 중심의 동물원으로도 가능하다”면서“대구시에서 계획중인 여러형태의 장밋빛 그림을 쫓아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살아온 주민들을 더이상 분노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2-11-12

잘 가르치는 대학 + 취업 잘되는 대학 명성

오는 2014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대구가톨릭대는 2014년 제2창학 원년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경산의 효성캠퍼스(본교)와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캠퍼스(신학대학), 대명동 루가캠퍼스(의과대학, 간호대학, 대학병원)를 갖추고 있다. 재학생은 1만5천여명으로 16개 단과대학에 11개 학부(22개 전공), 63개 학과, 일반대학원과 교육대학원 외 7개 특수대학원, 부설 중·고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가톨릭계 대학이다.최근엔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하양까지 연장되는 방안이 국토해양부의 심의를 통과하면서 학교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교과부 국책사업 `3관왕`대구가톨릭대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3대 국책사업인 ACE사업, LINC사업, 교육역량강화사업에 모두 선정돼 연간 90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세 가지 사업에 모두 선정되기는 무척 어려운 것으로 특히 ACE사업과 LINC사업에 동시에 선정된 대학은 전국 200개 4년제 대학 중 15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로 평가된다.대구가톨릭대가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10년 이른바 `잘 가르치는 대학`인 ACE사업 선정이다. 전국 11개 대학만 선정하는 사업에 당당히 뽑혔다.소병욱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그동안 다져온 교육 내실화가 인정을 받은 것으로 ACE사업과 LINC사업에 모두 선정돼 명실상부한 학부교육을 선도하는 중심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며 “ACE사업을 통해 학부교육의 내실화를, LINC사업을 통해 산학협력시스템을 다져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양성에 필요한 대학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됐다”고 밝혔다.ACE사업 선정 이후 교양교육원과 교수법혁신본부가 신설됐고 전문직 양성을 목표로 법정대학에는 공직자양성센터가, 경상대학에는 CEO양성센터가 구성됐다. 국가고사지원본부가 신설돼 전문직이나 공무원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의사, 약사 등 각종 면허증과 국가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본격 지원하고 있다.특히 창의력과 융·복합적 사고능력을 배양하고, 다문화 이해 및 진로능력을 높이는 교양교육은 교양교육의 틀을 확실히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인성·창의성을 갖춘 다문화적 전문인 양성대구가톨릭대의 인재상은 인성·창의성을 갖춘 다문화적 전문인 양성으로 이기적인 지식인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하며 다문화적 능력과 포용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이를 위해 인성교육과 다문화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난 1996년 전국 대학 최초로 인성교육 전담부서인 인성교양부(2011년 인성교육원으로 명칭 변경)를 설치해 조직적인 인성교육을 17년째 실천하고 있다.인성교육원은 임종체험, 장애체험, 노인생애 체험교육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비롯해 학습윤리와 정직교육을 하며 한 해 4천여명의 학생이 참가해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청소, 말벗 되기, 목욕 등의 노력봉사를 한다.여름방학에는 몽골봉사단을 파견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전 세계인과 세상을 포용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다문화교육원을 신설해 다양한 다문화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된 다문화연구소는 한국 다문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취업교육에 올인하다대구가톨릭대는 `취업이 잘되는 대학`으로 명성을 쌓고 있다.`입학했으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교육자적 사명으로 2010년 취업교육 전용시설인 취업·창업센터를 건립해 취업 관련해 모든 교육프로그램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하고 있다.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단계별로 조직된 취업교육을 받는다. 취업교육교수들을 임용해 방과 후 취업준비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취업에 필요한 각종 취업프로그램 이수, 자격증 취득, 공모전 입상 등을 점수화해서 일정 포인트 이상을 획득한 학생에게 학기별로 지급하는 `CU Good Point 장학금`도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 결과 2010~2011년 대구·경북 대형대학(재학생 1만 명 이상) 가운데 2년 연속 취업률 1위를 달성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취업지원역량 인증제 시범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외취업 프로그램에 잇달아 선정되는 등 해외취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의약·보건·생명과학 분야 특성화 박차메디 유니버시티(Medi University)를 목표로 의약·보건·생명과학 분야의 특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의대, 약대, 의료과학대, 간호대 등 의료 관련 단과대학 4개를 고루 갖추고 있으며(2013학년도 의료·생명산업대학 신설), 여기에 자연대 생명과학분야 및 공대의 의공학 유관 분야, 사회과학대의 사회복지·심리학 등 유관 분야, 의과학연구소 등 11개 유관 연구소 및 연구센터 등을 총망라해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영적·정신적 치료를 아우르는 전인적 치유를 연구하는 `바이오 메디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특히 최근 LINC사업 선정으로 이 분야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첨단 바이오·의료 산업 융합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자연대학, 의료과학대학, 공과대학, 호텔관광대학, 디자인대학, 사회과학대학 등 6개 단과대학, 22개 학과가 참여해 학문 간, 산업분야별 연계 첨단바이오 의료 제품의 개발 및 상품화, 제품인증 및 품질관리, 디자인 및 마케팅까지 FULL CYCLE 산학협력 지원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공부하는 학생 팍팍 밀어준다.1인당 장학금 지급액이 연간 157만3천원으로 대구·경북지역 5개 대형대학 가운데 가장 많다. 학업성적이 꼭 우수하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각종 연구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활동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주 좋아한다.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장학금을 많이 주자는 게 학교의 방침이다. ACE 사업 선정에 따라 CU-ACE 장학금, 학업성취도 우수 장학금 등을 신설했는데 학습의욕이 아주 높은 학생이나 성적 향상 폭이 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른 대학에서 보기 드문 CU HONORS 장학금(8가지)은 파격적 혜택으로 눈길을 끈다.2천7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는 지역 대형대학 가운데 최고의 수용률(20.1%)을 자랑한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학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11-12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⒂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화주의에 바탕한 무모한 쇼비니즘(국수주의)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 까지 미칠 해악을 간과한 역사적 과오로 전락할 숙명이다. 당대의 특정한 이익을 위해 왜곡된 역사는 동시대인들, 특히 지식인들의 양심을 좀 먹고 공범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배운 학생들에게 축적되는 지식은 차라리 무지 보다 열등하며 후대에 조작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국가적 역량은 또 얼마나 낭비되는지를 우리는 현대 일본에서 목격하고 있다. 식민사관으로 인해 한국사는 심하게 왜곡됐고 신라의 삼국통일이 일국의 제패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오욕(汚辱)의 거울처럼 폄훼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신라는 한반도의 빛나는 문화의 정수와 서역의 선진문물까지 융화시켜 다시 세계 속으로 내보낸 문화 강국이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비단의 길은 서라벌에 닿아15)신라의 달빛, 아시아에 비치다 □한국의 첫 세계인, 혜초(慧超)신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는 다른 서역의 선진문물을 직간접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서기 668년 삼국통일의 시기를 전후해 선각자들은 당과의 교류를 넘어 실크로드로 진출했다.이 가운데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 석굴에 남아 있는 신라의 흔적은 오늘에 까지 전해지고 있다. 프랑스 고고학자 폴 펠리오가 1908년 돈황 막고굴의 17호 석굴, 이른바 장경동(藏經洞)에서 수습 또는 약탈해간 문서에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돼 있다.승려 혜초가 경주를 출발해 이란 동북부의 니샤푸르에 이르기 까지 4년간 `다섯 천축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기록`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저작은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이다.뿐만 아니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보다 약 550년 앞선 역작으로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혜초의 뛰어난 지식과 식견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8세기 당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풍습과 문화, 경제, 정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갖게 됐다.많은 동서양 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신비한 승려의 실체를 몰라 연구를 거듭하던 중 결국 일본의 학자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신라승임이 규명됐다.혜초 외에도 도축승(渡竺僧), 즉 천축국(인도)으로 건너간 승려는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현태(玄泰), 원표(元表) 등 9명에 이른다. 또 도당승(渡唐僧) 중 신라 왕손인 원측(圓測)은 현장의 수제자였으며 지장(地藏)은 중국 4대 불교 성지의 하나인 구화산 성지의 창시자이자 안휘성에 벼농사를 전파하는 등 중국 내에서도 추앙받은 신라인이었다.돈황석굴에서는 혜초 뿐만 아니라 신라인으로 추정되는 박원홍과 원장 형제와 관계된 계약문서가 발견됐으며 석굴 220호(642년), 335호(686년), 332호 등 몇군데에는 신라인이 직접 묘사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미지의 세계, 서역으로 나아간 신라인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중세 아랍에 비친 신라인 아랍인들에게 신라는 이상향과 `황금의 나라`로 기록돼 있다.마끄디시의 `창세와 역사서`(966)에는 적힌 신라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동쪽에 신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그곳이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이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신라인 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며 식사 때는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중세 아랍을 대표하는 세계지도의 작성자 이드리시(1091~1166)는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에서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해 다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그곳이 매우 풍족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은 너무나 흔한 바, 심지어 그곳 주민은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지도에서 신라를 섬으로 기록한 수준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는 기록인데 이는 직접 신라를 다녀간 서역인이나, 세계로 나아간 신라인이 각기 제 경험을 과장한 결과일 것이다.분명한 것은 신라는 기원을 전후 해 1천여년동안 알타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황금문화대의 동단에서 전성기를 구가했음을 이 기록과 유물들에서 알 수 있다. 황금문화는 고차원의 문화로서 그 향유 민족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금관의 나라` 신라의 위상은 세계 고대 금관 10구 중 6구가 신라(1구는 가야)의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에 진출한 신라의 수출품아랍, 이슬람세계에 수출된 신라의 물품은 비단과 검, 도기와 담비 가죽, 사향, 마안(馬鞍), 범포, 육계(肉桂), 키민카우, 쿠란잔 등 11종(6~7종 토산품, 2~3종 외래품)이었다. 그리고 일본 정창원(正倉院)의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11년(752) 일본에 수출된 각종 향료와 약재, 안료와 염료, 기물 등 품목이 약 45종이었으며 그 중 일부는 중개무역품이었다.경북대 주보돈 교수 등에 따르면 신라문화의 중심지 경주는 내륙과 바다가 만나는 교차로로서 북방과 남방의 문화 등을 호수처럼 받아들였다.그 결과, 4세기 경에는 북방적, 고조선적, 낙랑적, 해양적 요소 등이 신라문화의 실체를 이루고 고구려의 영향이 가미됐다. 이러한 통합성에다 특유의 독창성이 가미된 신라문화는 다시 해양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 터키 개최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 야심찬 추진경북도는 내년 8월31일부터 9월22일까지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을 터키 현지에서 개최한다.지자체로서는 전례가 없는 이 같은 해외문화교류는 `아시아 역사문화의 자존`과 `유럽 문화의 수도`라는 해외 두 지자체 간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며 그 근거를 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정립하려고 한다.경북도는 한국문화의 모태인 신라문화를 재조명함으로써 경상북도를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자 이번 기획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중동 및 비교문화 전문가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박사 등 각계 전문가들로 경주실크로드 프로젝트 기획위원회를 구성해 기획회의를 거듭 열었다. 이어 지난 10월 31일에는 경주에서 경북도 경주실크로드프로젝트 업무협약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을 공표했다.구체적인 기본틀은 학술적 재조명과 스토리텔링,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경주 실크로드학을 정립함으로써 신라 마케팅, 신 한류문화 창조, 경제영토 확장의 3대 목표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이를 위해 학술 부문에서는 논문공모와 데이터 베이스 구축, 국제 학술대회를, 미디어 제작에서는 탐방기 및 기행문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및 방영을, 국제협력에서는 중국 섬서성 시안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와 자매결연, 미국 실크로드 프로젝트 재단과 공동사업을, 마케팅 부문에서는 기획탐사, 요요마 초청공연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학술부문은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타슈켄트와 카이로, 테헤란에서 개최하고 유물과 복식, 음식과 건축물 등 전 분야의 학술지를 발간할 계획이다. 미디어 제작은 경주실크로드 대감을 편찬하고 황금과 철을 포함한 금속문화와 불교 등의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국제협력에서는 해외 자매도시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실크로드 지도에 경주를 표기하는 등 수정을 협의하고 거점도시 5개국과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한다. 마케팅 부문은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의 졸업 항해와 연계해 실크로드 탐사단을 운영하고 실크로드 포토챌린지대회를 열고 이스탄불 현지에서 심사를 통해 우수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또 중장기 과제로서 경주실크로드재단을 설립하고 국립경주실크로드문화관을 200억원 전액 국비 투입해 오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경주문화엑스포공원 내에 건립할 계획이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9

기암괴석 위 하늘의 수도원… 불가사의 건축물

새벽이었다. 일찍 눈을 뜬 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7시 넘어 카메라와 시집 한 권을 들고 살며시 밖으로 빠져나왔다.호텔 뒤편의 기암괴석이 나를 내려본다. 그 풍경을 카메라로 찍는다. 참 많이도 찍는 사진이다.여행 출발 전 노트북을 챙겼다. 외국 여행 중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룸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5유로를 내란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물론 그것이 강점이면서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로비로 가니 벌써 다른 곳으로 출발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성지다. 지금 출발하는 사람들은 전날 수도원을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몇 대의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조용하다. 주차장 근처 수영장에 놓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 시집을 넘긴다. 시는 함축미를 갖고 있어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여행에서 보는 유물 역시 한 편의 시를 읽듯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세월의 정으로 쪼아 마모된 곳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하늘엔 하현달이 떠 있다. 여행 중에 만난 하현달이라 그랬을까? 그 자체가 조각난 하나의 유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역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한 시간 남짓 밖에 머물다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고 일행들과 9시35분 호텔을 출발했다. 칼람바카 메테오라(METEORA)는 단어 자체가 종교적이다. 칼람바카는 `은수자(隱修者)`를 뜻하고,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는, 하늘 바로 아래`를 의미한다. 평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그야말로 신령스럽다. 평균높이 300미터이며, 가장 높은 곳은 550미터란다. 기암괴석은 `007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 등 많은 영화의 배경도 되었다.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 수도원이 많을 때는 24개였다. 현재는 6개뿐이다. 루사노스 수도원, 발렘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 트리아스 수도원, 스테파노스 수도원(수녀원)이다. 우린 세 곳을 보기로 했다.이곳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12세기다. 두피아니의 기둥으로 불리는 바위 꼭대기에 있던 파나이아 두피아니란 성모 마리아 예배실이 시초다. 이후 시대에 따라 새로운 수도원이 건축되었는데 가파르고 협소한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공간이 좁은 편이다.처음으로 찾은 곳은 가장 큰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다. 방문객의 편리를 위해 요일별로 문을 열고 닫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쉬는 날이란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컷 찍고 이동한 곳은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 발렘(Barlaam) 수도원이다. 발렘 수도원은 두 번째로 큰 수도원으로 1350년 발렘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어 이오니아에서 온 수도자 테오파네스(Theophanes)와 넥타리오 아프사라데스(Nektarios Apsarades)가 1542년 완성하였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밟으며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여성들은 치마를 둘러야했다. 그것은 규칙이다. 큰 정육면체에 가까운 성당에 들어서자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이 아름다운 성화로 그려져 있다. 테베 출신의 프랑고 카텔라노(Frango Katelano)라는 유명한 성화가가 1548년 그린 성화(Icon)다. 성화를 보면서 잠시 묵상하고 오래 전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로 발을 옮겼다. 나무로 만든 대형 오크통이 보인다. 포도주를 빚을 때 사용했던 것인데 눈대중으로 보더라도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는 될 것 같았다. 1만3천리터를 담을 수 있었단다. 그곳 옆에는 과거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절벽 문이 있다. 즉 절해고도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을 위한 식량과 의복 등 가장 간단한 것들을 보급할 수 있는 통로다. 맞은편으로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 보인다. 트인 공간에서 슬며시 아래를 내려본다. 낭떠러지다. 현기증이 인다. 오래 전 도르래를 이용하여 사람도 올리고, 물건도 올렸던 장소다. 세속과 단절할 수 있는 곳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던 곳이 수도원이다. 발렘수도원 박물관에 들러 그곳에서 머물렀던 수도자들의 옛 모습도 엿본다. 수도자들이 사용하던 의복과 성구, 성경 필사본 등 다양한 것들이 많다.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그 자체가 기도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워질 당시 모든 성인들에게 봉헌되어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이라고도 한다.차분한 맘으로 발렘수도원을 벗어난 우리는 칼람바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스테파노스 수도원으로 향했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일명 바실리까(황제) 수도원이라고 부른다. 1192년부터 사람이 머물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수도원으로 완공되었는데 1333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가 머물렀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얻게 되었다. 1798년부터 성 하랄람보스(Charalambos or Haralambos)를 기념하는 교회가 되었고, 그 분의 유골을 모시고 있는 수도원으로 1961년 수녀원으로 바뀌었다. 통로 벽에는 성경 구절 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다.`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로니시카 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무릇 여행도 그와 같아야 함을 발견한다. 새로운 만남에 기뻐하고,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정이 될 때 여행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대부분의 수도원은 위치와 크기만 다를 뿐이지 안의 구성은 비슷하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의 성화는 진한 것이 화려하다. 수녀원으로 바뀌고 1951년 출생으로 천사의 화가라 불리는 봐시오스 토소소니스(Vlasios Tsotsonis)가 복원했단다.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나와 우리 일행이 오후 2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성 니콜라스 아나파사스(St. Nicholas Anapafsas)수도원이다. 1388년 세워져 1628년 확장한 수도원으로 돔의 작은 교회에는 크레타 출신의 성화가 테오파네스(Theophanes Strelitzas, Cretan)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또 한 곳에는 에덴 공원의 아담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조 선생께서 그림을 설명한 후 그리스 정교회 미사 특징을 설명한다.“정교회 미사는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각은 성경, 성상, 사제, 이웃을 보는 것이고, 청각은 찬양기도, 후각은 향내음과 사람내음, 촉각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직접 만지며, 미각은 성체인 빵을 나누어 먹는데서 정교회의 거룩한 미사는 완성됩니다.”수도원의 4대 덕목이라며 회개, 기도, 순종(복종), 겸손에 대해서도 덧붙인다.그러면서 그리스어 `이뽀아꾸오(내가 듣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미심장하다.오래 전 수도원에 안토니오라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단다. 외출에서 돌아온 원장이 안티니오를 부르자 관 속에 있던 그가 `예, 나갈 거예요.`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수도자들의 복종에 대한 4대 덕목을 강조한다.밖으로 나서며 성물상점에 들렀다. 성물을 취급하는 상점엔 나무에 성상을 그린 아이콘이 많다. 이곳 특산품이다. 많은 상품 중 원형으로 된 떡살무늬 조각물 하나를 구입했다. 수도원을 벗어나며 떡살무늬에 새긴 글씨의 뜻을 물어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란 내용이란다.신앙인에게 그 문구야말로 영원히 마음에 새겨야 할 문구 같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기념물 하나로 여행이 그냥 즐거워진다. 그 모든 것에 감사! 또 감사!계속

2012-11-09

대구경북첨복단지, 세계적 의료허브로 도약한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가 지정 3년만인 2013년까지 단지조성 인프라 구축과 지원 시스템을 완료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 글로벌 의료산업 RD 허브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구경북첨복단지는 `첨단의료산업 글로벌 RD 허브`를 비전으로 2038년까지 30년간 총 4조6천억 원(국비1조1천억, 지방비 9천억, 민자 2조6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다. 합성신약과 IT기반 의료기기를 특성화해 2013년까지 인프라 구축과 지원 시스템을 완료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대구시 동구 혁신도시지구 내 103만㎡의 규모로 조성되는 첨복단지의 핵심 인프라인 정부시설(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지원센터, 실험동물센터, 임상시험신약생산센터)은 부지 7만100㎡, 연면적 5만1천507㎡, 소요예산 3천65억 원(국비 2천646억, 시비 419억원) 규모로 내년 11월 준공될 예정이다.지자체시설(커뮤니케이션센터)도 부지 1만112㎡, 연면적 1만7천825㎡, 소요예산 403억 원(시비) 규모로 내년 7월 준공을 목표로 건립 중에 있다.특히, 대구시는 첨복단지 성공의 핵심요인은 기업·정부 연구시설, 민간RD 기관 등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며 현재까지 한국뇌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등 10개 국책연구기관, 메디센서 등 23개 기업과 투자유치 MOU를 체결했다.시는 지난 6월 연구시설용지와 대구 연구개발특구 의료RD지구 제조시설용지 첫 동시 일반분양에 이어 11월중 전체 클러스터용지의 23.5%(첨복단지 18%, 연구개발특구는 29%) 수준으로 2차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다.또 첨복단지 내 첨11-1(3,945㎡) 1필지를 `중소·벤처기업 공동연구센터(가칭)` 부지로 지난 7월31일자로 추가 분양, 9월말 분양계약을 마쳤고 1, 2차 일반분양 외 나머지 필지는 국책 연구기관과 영향력 있는 기업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분양대상에서 제외했다.분양은 입주희망기업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053-790-5110~4), 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대구기술사업화센터(053-592-8361~4)와 입주심사에 따른 입주계약을 맺고, LH와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된다.부지 분양가는 정부 및 대구시의 자금지원을 통해 조성원가가 293만원 보다 크게 낮은 3.3㎡당 197만원 수준으로 낮게 결정됐으며 지하철 역세권이다. 성서공단의 경우 3.3㎡당 300~500만원 수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력있는 분양가라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또한 입주 기업들에게는 법인세·소득세 5년간 감면, 취득세 면제, 재산세 최대 13년간 감면, 부지대금 일시 납부시 13.5% 할인, 5년간 무이자 분납, 의료연구 관련 각종 특례 인정 등 파격적인 세제·재정지원이 이루어지며 핵심 인프라 시설의 기술지원을 바로 옆에서 받을 수 있다.이밖에 주변에 안심역 등 4개의 지하철역과 연결된 진입도로, 4차순환도로 관통 등 최고 수준의 교통인프라와 팔공산 자락, 수변공원, 과학고 등 정주환경도 매우 뛰어나 투자가치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부지를 매입해서 연구소를 짓기 어려운 기업은 아파트형인 `중소·벤처기업 공동연구센터`에 입주하면 된다. 현재 21개 업체가 입주의사를 밝혀와 초기 분양률이 70%는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사업자에게는 취득세 75% 감면, 입주자는 취득세 100%, 재산세 13년, 법인세·소득세 5년간 감면의 혜택이 주어진다.시는 중장기적으로 입주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바로 옆 2개 필지 1만321㎡도 공동연구센터 입주구역으로 지정해 중소벤처기업 집적지구로 육성할 계획으로 기업 입주는 2014년 5월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최운백 대구시 첨단의료산업국장은 “첨복단지 용지 일반분양과 관련, 첨복단지는 정부와 대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국책사업인 만큼 입주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며 “최적의 정부 핵심연구시설 지원서비스가 있는 첨복단지와 RD특구에 기술력 있는 좋은 기업들이 많이 입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정부 지원·국내외 우수기업 유치 필수”▲ 김유승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첨복단지를 대한민국 의료산업 허브로 구축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첨복재단 김유승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산학연에서 의뢰·발굴된 미성숙 첨단기술을 대상으로 상용화 가능성을 판단, 공동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관련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을 통해 첩복단지를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욕심이다.-첨복단지 지정 이후 성과는.△핵심연구시설과 커뮤니케이션센터가 내년에 준공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 한의학연구원의 입주가 확정됐으며, 6개업체가 단지내 연구소 설치 의향을 밝혀 놓은 상태이다.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공동연구센터내에도 21개 중소벤처업체가 입주의사를 밝히는 등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첨복단지 발전의 핵심요소인 연구인력과 연구장비 도입은.△현재 글로벌 수준의 기업·연구소 출신 연구인력 48명을 채용했고 올해 말까지 64명, 2013년에는 192명을 채용하고 향후 2017년까지 500여명의 연구인력을 확충나갈 계획이다. 연구장비는 2013년 하반기 센터준공에 맞춰 차질없는 기업지원을 위해 총 1천151억 원의 사업비로 연구장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센터별 기반기술확보 및 외부연구시설의 공동연구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우선 구축하고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의 강점과 약점은.△첨복단지의 강점은 입주기업에 대해 법인세·소득세는 5년간 감면, 취득세 면제, 재산세도 최대 13년간 감면해 주며, 일시에 부지대금을 납부할 경우 13.5%를 할인해 주고, 5년간 무이자 분납 혜택 등 파격적인 세제·재정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의료연구 관련 각종 특례가 인정되고 정부에서 건립하고 있는 핵심연구시설인 4개센터의 기술지원을 바로 옆에서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가장 매력적이다.또 국비와 시비로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 연구개발관련 RD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맞춤형 인력양성, 국내외 우수 연구인력 및 인프라 공동 활용 등의 특별지원을 받을 수 있다.그러나 대도시의 정주환경 및 뛰어난 문화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거주하길 희망하는 우수한 연구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으며 국제공항의 부재로 인해서 해외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방문 및 국제 행사 참석유도에 어려움이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가 세계적인 의료허브가 되기 위한 조건과 이를 충족할 방안은.△첨복단지 성공에는 정부 지원과 우수기업 유치가 필수이다. 첨단의료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40년까지 정부가 지원 육성하게 되어 있으며 지경부, 보건복지부, 교과부 등 부처간 원활한 협력을 통해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메디밸리의 역할인 의료산업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우수 의료기기, 의약품 업체 유치를 위해 대구시와 첨복재단이 협력해 신약 및 의료기기 관련 타겟 기업에 집중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국내 국책 연구기관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등지의 국제적인 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중에 있다.-대구경북첨복단지가 개발 가능성이 높은 신약과 의료기기는.△대구·경북첨복단지의 특성화 분야는 합성신약·IT기반첨단의료기기이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고 최근 글로벌 의료시장 수요를 반영해 연구분야를 차별화, 특성화해 나갈 계획이다.현재 신약은 `뇌질환`, `대사성질환`, `항암` 관련분야, 의료기기는 `뇌·심혈관 질환`, `노인성 질환`, `암질환`분야에 대해 특성화할 계획이며, 앞으로 관련 분야에 대한 핵심요소기술을 구축, 국내 기업에 대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고 나아가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 나갈 계획이다.신약개발지원센터는 한국인에게 쉽게 유발하는 종양, 대사질환, 뇌신경질환의 표적치료제 개발분야에 특성화하여 수요자 맞춤형 공동연구 활동을 진행하며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는 `뇌·심혈관 질환`, `노인성 질환`, `암질환` 에 대한 의료기기개발 특화를 목표로 의료영상기술, 생체신호기술, 의료로봇기술에 대한 핵심요소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 맞춤형 개발을 통한 신규시장 창출을 유도하고 개발제품에 대한 국내외 특허분석 등 상품화 및 마케팅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2-11-05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⒁

옛 사마르칸트국 아프라시압 도성터 벽화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사절단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 가운데 황색 예복과 바지를 입고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을 비롯해 삼국 사신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데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당영립왕회도, 이른바 왕회도로 불리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근거는 삼국이 중국을 넘어 이른바 서역 국가들과도 교류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런데 가장 늦게 세력을 키운 후발주자의 한계를 넘어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는 유독 두 나라와 다른 독특한 대외관계를 펼쳐 나갔다. 고구려와 백제는 비교적 중국 문물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초원의 길을 통해 중국 못지 않은 서역의 문물을 직접 수입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비단의 길은 서라벌에 닿아15)신라의 달빛, 서역에 비치다 □ 동북아에 꽃핀 로마문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유리공예가 중 한사람인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67). 그는 지난 2002년 317쪽 분량에 원색 사진을 다량 수록한 `로마 문화의 왕국 - 新羅`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 날개표지의 광고 문구는 정작 역사의 당사자인 우리들이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단정을 내려 눈길을 끈다.`고대사가 바뀐다! 동아시아에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로마 문화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신라다! 출토유물과 신발견의 고대 기록사료 등, 실제 자료에 의해 신라의 수수께끼를 해명한다.`저자는 삼국 중 경쟁 두 나라와 달리 중국을 우회해 로마 문화를 직수입하고 있던 신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문물이 선진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갈파한다. 요시미즈는 신라가 중국으로부터 한자, 불교 등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6세기 전까지는 북방 초원(草原)의 길을 통해 중앙아시아 및 중동, 그리고 흑해·지중해 연안의 로마 식민지와 물적·인적 교류가 왕성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흐름을 타고 유리 공예품, 황금칼, 장신구 등 물건들 뿐만 아니라 정신과 사고 등을 포함하는 로마 문화가 유입됐다는 것이다.이후 476년 게르만족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아시아에 걸쳐 있었던 로마 식민지가 황폐됨으로써 문화 교류의 상대가 사라지면서 신라는 중국에 조공하고 중국의 문물을 적극 수입하게 됐다. 요시미즈는 신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나오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책의 끝을 맺는다.`신라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당과 밀접한 교류를 함으로써 약소국이면서도 곧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를 통일했다. 소국 신라가 가졌던 이러한 반도통일의 에너지는 과거 로마 문화를 수용하던 시대에 쌓아 올려 중국 문화와는 다른 에너지를 잠재적으로 축적했기 때문이었다.`신라 예찬가 요시미즈가 관련 저작에 이르게 된 계기는 1974년 발굴된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코발트 블루의 작은 玉구슬에 대해 듣게 되면서 부터이다. 경주박물관으로 달려간 요시미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 하나밖에 없는 초상옥(肖像玉)으로서 디자인, 제작방법, 상감된 인물 등으로 추정할 때 틀림없이 로마 세계에서 만들어진 구슬`이라고 단정했다. 이후 아시아 대륙의 끝머리에 붙은 신라에 로마의 액세서리가 전해진 경로를 연구해 신라가 로마문화의 왕국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서역의 흔적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동 98호 남분 및 북분 등 경주 일대에 산재한 5~6세기 신라고분에서는 20~80여점의 각종 유리기구가 발굴됐다. 요시미즈가 격찬한 인면유리구슬인 `미소짓는 상감옥`을 비롯해 이들 유물은 4~5세기경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후 서역계 상인들에 의해 흑해와 남러시아에서 스텝로, 이른바 초원의 길과 해로를 통해 신라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인숙 경기도박물관 관장 등 학자들은 이들 로만 글래스의 직수입과 별도로 유리구슬용 진흙재(材) 틀 등 유리 제작 관련 유물들이 출토된 사례를 토대로 수입된 유리 원자재를 가공해 한국형 구슬도 제작됐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보석류로서는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지방에서 산출되던 슬슬(瑟瑟)과 호탄 일대의 옥이 서역상인들에 의해 신라에 까지 도입돼 사용됐다. 특히 일반적으로 에머랄드로 해석되는 슬슬은 귀족의 부인들로 부터 수요와 애착이 높아 급기야 법령이 공포돼 진골녀와 육두품 여자들의 빗 장식에 대한 사용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앞서 통일의 안정기조에 안주한 신라 귀족층은 7세기 문무왕 대를 전후해 수입품 등의 사치와 향락에 탐닉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당시 신라 수도 금성은 풍요로운 당나라 장안 생활을 모방하려는 사치풍조와 무분별한 수입 개방으로 도시문화가 오염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결국 흥덕왕 9년(834년)에 사치외래품을 금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법령이 공포됐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양모로 짠 페르시아 카페트나 깔개 종류도 신라에 전해졌다. 삼국사기에는 문양 있는 모직 카페트나 모직 담요를 지칭하는 `구수`와 사찰이나 왕실의 상과 옥좌에 사용한 모직깔개인 `답` 등을 육두품이나 오두품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 기록이 나온다.서역 상인들이 한반도에 진출해 신라와 고구려인들을 직접 접촉했다는 근거들도 확인된다.7세기 중반의 경주 고분에서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있는 투르크계 중앙아시아인 형상의 토용이 여러 점 출토됐다. 또 일본서기에는 한반도의 삼국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낙타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 경주실크로드는 동서문물의 교섭 루트로서 그 역할이 3천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문명사는 사막의 길, 초원의 길, 바다의 길로 나뉘어진 실크로드를 통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쪽 끝은 신라였다는 사실이 그동안 끊임 없이 근거를 확보해 왔다.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신라 절정기인 8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경주에 문화가 전파되는 속도는 1년 남짓이었다. 신라고승들이 새롭게 편찬되거나 소개된 불경들을 중국에서 구해보는데는 1개월여가 걸렸다.평균 100마리의 낙타를 포함한 규모의 오아시스 캬라반이 20~30t의 화물을 싣고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에 까지 이르는 시간은 6~7개월로 추정하고 있다. 8천500km에 이르는 거리를 하루 40km씩 이동할 경우 7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이희수 교수는 동서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4대 도시를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압바스 이슬람제국의 수도 바그다드,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신라 수도 경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탈리아의 첨단 패션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시스템처럼 천년전에도 첨단을 걷는 세계문화인식과 유행이 존재했다는 상상력에 이를 수 있다.경북대 주보돈 교수는 신라 문화가 곧 한국 고대문화를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또 불국사나 석굴암과 같은 독창적인 문화적 총체를 배태할 수 있었던 역량은 여러 문화 요소를 축적하고 융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경주 남산 일대에 존재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문화유산도 신라인들의 개방성과 독창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라고 그는 단언했다.신라의 1천년에 걸친 서역 선호 풍조는 차츰 퇴조했으며 중국 문화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서역과 직접 접촉하며 쌓은 뛰어난 예술적 안목과 기량은 한국의 저 빛나는 민족문화를 살찌우고 여전히 우리 핏속에 이어지고 있다. 경주는 아시아의 동쪽에서 세계와 교류하며 여러 문화를 자기화 해내는 용광로였으며 한반도에 세계의 도시, 국제도시를 구현해냈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5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⒀

본지가 그동안 독자들과 나눠본 연오랑 세오녀의 세계는 역사이든, 신화이든 우리 지역의 정체성이 선진 문물의 바다 건너 전달과 교류의 한 상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명확한 역사의 세계에서 우리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과학의 힘으로 바다를 건너 세계와 교류하고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볼 때가 됐다. 그 과학의 원리를 작동시킨 시작은 마땅히 현실적 동기가 우선이었다. 신라를 둘러싼 주변국들과 외교를 통해 세력을 불리고 물산을 위해 교역하는 한편 선진문물의 수용을 위한 유학의 항로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바다 너머의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이 최초의 씨앗이었음이 분명할 진데 경북동해안에 터전을 마련한 이 땅의 사람들은 험하게 일렁이는 대양을 돌파할 용기와 지혜 또한 갖고 있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항해와 조선의 脈은 이어져…14실크로드, 한반도 동쪽에 이르다15)잊혀진 옛 항로- 116)잊혀진 옛 항로- 2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신라의 항해술과연 신라인에게는 저 화려한 문화예술적 안목과 유물을 오늘에 남겨 놓은 것처럼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항해술이 없었을까?이 물음에 대해 서기 838년 바다를 통해 당나라에 입당한 일본의 유명한 유학승 엔닌은 미국의 한 동양학 교수에 의해 하나의 기록 또는 해답을 남기고 있다.라이샤워 교수가 `입당구법 순례행기`(入唐求法 巡札行記)를 번역한 `엔닌의 당나라 여행`(Ennin`s Travels in Tang China)에 따르면 세계사적 견지에서 볼때 9세기 경 당나라를 중심으로 한 신라와 왜 등 3국간 국제해상교역은 당대의 첨단을 걸었다. 또 그는 장보고를 `한국 무역 황태자`(Korean merchant prince) 라고 표현했으며 당시까지도 동북아 바다의 주인공들은 아직 신라 사람들이었다고 적고 있다.라이샤워가 당시 신라 사람들이 바다의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비단 동북아 해상교통의 중심이 청해진에 있었고, 국제무역의 주도권을 장보고가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속에는 신라인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항해술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이 책에는 신라와 일본 뱃사람의 항해 역량에 대한 비교도 눈길을 끈다.엔닌이 당나라까지 바다를 건너 갔다가, 일본 배를 타고 산동반도 남해안까지 이르는 동안 항해는 매우 파행적이었다. 하지만 귀국 때 그를 태운 신라 선박들은 일본까지 8일만에 도착하는 등 큰 대조를 보였다. 또 다른 차이는 일본 사절단의 귀족들은 일본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60명의 신라인 타수(舵手)와 선원들을 고용했다.최근식 교수의 `신라해양사연구`는 신라의 뛰어난 항해술을 뒷받침하는 항해계기로 나침반의 원리인 지남기(指南器)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특히 장보고 선단의 항해사는 지문항법·천문항법·수문항법 등을 모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문항법은 육상이나 섬의 모양과 목표물을 보고 항해하는 것이고 천문항법은 해와 별자리 등 천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수문항법은 물의 깊이나 색깔을 파악해 위치를 알아내는데 장보고는 이들 항해술로 해류와 바람이 다른 한반도 남해와 서해, 남중국해 등을 자유자재로 다녔다.당시 신라와 당과의 무역로는 두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 방면에서 흑산도를 거쳐 중국의 상하이(上海) 방면으로 통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도 남양만에서 황해를 건너 중국의 산둥반도 덩저우(登州)로 가는 길이었다.신라인의 해상활동이 활발해지자 덩저우 일대에서 양쯔강 하구의 연안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여, 이 지역에는 신라인들을 통괄하며 자치를 맡아보는 신라소라는 관청이 설치되고 도회지에는 신라인의 자치구역인 신라방이 형성되기도 했다.신라의 항해술로 인해 아랍인과의 교역도 가능했다. 물론 육로 교류도 활발했겠지만 무역상들이 개척한 바닷길로 인해 고구려, 신라, 가야, 왜, 백제 등 5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라에서만 로마풍의 유리구슬과 로만 글래스, 석류석, 황금보검, 정밀 세공된 금 부장품등이 발견되고 있다.□신라의 조선술지난 8월 삼한매장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울진군 죽변면 등대 일원 도시계획도로 부지 내에서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7천500년전 신석기시대 목선(木船)과 노() 조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울진의 목선 유물은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됐던 환목선(丸木船)에 이어 두번째 세계최고 수준의 목선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전문가들은 또 소재는 단단한 녹나무로 만든 판재상의 목선편(板材狀木船)으로 추정되며 낚시(釣針) 축부(軸部, 몸체) 등의 유물 등과 동해안의 지형적인 여건 등을 감안할 때 목선을 이용한 어로행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경북동해안에서 일찌기 발달한 조선(造船)의 역사는 비록 뭍에서 물놀이용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경주 임해전(臨海殿)에서 발굴된 목선으로 이어졌다.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고구려·백제의 조선술을 계승·발전시켜 조선술이 더욱 발전했다. 839년 일본 조정에서는 신라에서 큰 풍랑도 능히 견뎌내는 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라 배를 주문하도록 했다. 또 840년 기록에는 일본의 대마도사가 풍랑으로 한 해에 4번이나 조공 공물을 바다 속에 빠뜨리자 일본 조정이 가지고 있던 신라 배 6척 중 1척을 나눠줄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 배는 우수한 기술로 일본에 여러 척 수출되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장보고의 암살 후 신라의 동북아 제해권이 소멸된 것처럼 신라의 조선술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식 교수는 신라의 해양사 연구를 통해 신라 무역선이 중국 선박을 모방했다는 인식에 반기를 들고 신라만의 독창적인 `신라선`형 범선이 엄연히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신라선`이 일본의 국가사업에도 사용됐다는 점에 주시한다.대양항해에 적합한 첨저형(尖底型) 구조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 유럽에서는 겨우 13세기 초에 나타났다는 선미타(船尾舵)라는 조타장치를 이 범선에 이미 설치했다는 것은 당시 조선술의 발달 정도를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 무역선은 목적항으로 직항하여 항해 일수와 정박 일수를 줄이고 가동률을 높여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데, 신무왕의 즉위 사실이 지방에까지 즉각 전달된 것이나 외국으로의 선박의 운항 일수가 오늘날의 정기선 운항 일수와 비슷하다는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신라무역선이 이미 직항로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학설이다.엔닌도 `신라 배는 작지만 날렵하고 강하다. 또 동남풍과 서남풍을 이용해 남쪽으로 항해하는 역풍항해까지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포항 일대의 선박과 해운업1924년 부산항 화물 중 전국 2위동빈내항 일대 선박수리업 등 성업▲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복원해낸 신라배의 모습.지난 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포항의 동빈내항 일대 부둣가에서는 선미가 특이하게 둥근 모습에 흰색 페인트를 칠한 대형 목제 상선들이 물길을 거슬러 오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 수송선들은 당시 일본에 까지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사진 마저도 구해 볼 길이 없는 추억이 됐다.포항시사에 따르면 포항항의 대일본 무역액은 1934년에 651만2천668원이었으며 주요 품목은 쌀과 사과, 방어, 전복, 대구, 청어 등 농수산품과 석탄, 비료 등이었다.1924년 통계에 따르면 부산항에 출입하는 화물 중 포항 지방의 것이 마산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를 차지해 포항항이 경북의 관문이자 주요 무역항이었음을 알 수 있다.당시의 선박들은 지금처럼 터빈기관이 아닌 소구(燒球, hot bulb)기관, 이른바 `야끼다마`를 사용했다. 당시의 기술 수준에서 선박의 기관 고장이 잦았던 만큼 대형 선박들은 수리를 위해 동해안 각지에서 포항의 조선소까지 와야만 했다.또 이 일대를 중심으로 한 선박 관련 산업도 형성돼 일본에서 매입한 중고선들을 현해탄을 건너 몰고 와서는 낡은 기관을 수리해 멀쩡하게 둔갑시키는 몇몇 기관사들은 여러 선주들이 앞다퉈 모셔가느라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소구기관에서 터빈으로 넘어가는 선박기술을 습득하는 시기를 놓침으로써 어부나 일용직 건설노동자 등으로 사회계층이 강등되기도 했다.이와 함께 포항의 동빈동 일대 부둣가는 이들 조선소의 하청을 맡아 부품들을 전문 수리하는 이른바 `철공소`들이 밀집돼 호황을 누렸으며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다.경북동해안은 강원도에 까지 명성을 날린 목제 어선 목수들이 이른바 `배를 모으(제작)며`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계원2리와 구룡포읍 병포리, 울진군 죽변항 일대에는 국내산 소나무나 일본산 수입 스기목을 재료로 하는 소형 조선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성업했지만 이제는 연안 어업의 쇠퇴와 FRP 재질의 선박에 밀려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1-02

경북도 외국인투자유치 최우수기관상 대통령상 받아

경북도가 1일 `2012 외국기업의 날`행사에서 전국 외국인투자유치 최우수기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김관용 도지사가 도정의 목표를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올인(다 걸기)해서 얻은 성과다. 이번 경북도의 최우수기관 수상은 전국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외국인투자유치실적, 투자유치기반조성 등 환경개선 노력과 프로젝터 수행 실적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됐다. 경북도는 앞서 2004년, 2007년에 도 투자유치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어 3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김관용 도지사는 민선 4기인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 투자유치의 달인이라는 명성도 얻게 됐다.민선 5기 출범 27개월만에 13조7천억 규모 투자 달성세번째 수상…`투자 달인` 명성■올 목표치의 90.8% 달성한 투자유치 실적▲ 김관용 경북도지사김관용 지사의 민선 5기 투자유치 목표는 20조원이고, 출범 2년3개월 만인 지난 9월 말 현재 투자유치 규모는 13조 7천261억원이다. 목표의 68.6%를 달성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목표액 5조1천억원의 90.8%인 4조 6천320억원에 달하고 있다. 도민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한 도지사를 비롯한 투자유치 담당공무원들의 노력 결과라 볼 수 있다.대외적으로는 유럽의 경제위기 등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북한의 김정일 사망 등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불안감, 대내적으로는 기업의 수도권집중화 현상 및 국내기업의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투자여건이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 낸 성과라 더욱 돋보인다.■민선 5기 일자리 목표는 22만개경북도는 2010년 7월 1일부터 시작된 민선 5기 출범과 함께`투자유치 20조원 달성`과`일자리 창출 22만 개`를 도정의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도민에게 공약한 투자유치 20조원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연도별, 권역별, 산업별 세부계획을 수립, 시행중에 있다. 연도별 투자 계획은 2010년 하반기 2조 2천억원, 2011년 4조 6천억원, 2012년 5조 1천억원, 2013년 5조 5천억원, 민선 5기 마지막 해인 2014년 상반기에 2조 6천억원 등이다.김관용 경북지사를 비롯한 경북도의 투자유치 전략은 시스템 구축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선 5기 시작과 함께 `투자유치본부`와 `일자리경제본부`로 조직을 투 톱 체제로 개편한데 이어 기존 투자유치과를 투자유치단으로 격상했다.투자유치단장은 외부공모를 통해 민간전문가를 영입했으며, 2011년 1월에는 국내외 투자기업들의 신속한 정보수집과 발 빠른 대응을 위해 KOTRA IKP(Invest Korea Plaza) 건물에 `경상북도 투자유치 서울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또 도내 기투자기업의 안정적인 기업활동 지원을 위해 투자유치단 내 유치기업관리팀을 신설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특히, 외국인투자기업 유치를 위해 전국 자치단체에서는 유일하게 2007년부터 `경상북도-KOTRA 협력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투자 유망기업 및 타깃기업을 위주로 투자유치 상담 및 활동을 전개하고자 KOTRA 해외무역관 12개소를 거점무역관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경북도는 투자환경 및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포항 및 구미에 외국인전용단지를 마련해 무상임대 등으로 투자환경 개선과 포항외국인학교도 설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투자유치는 지사, 부지사 등이 콘트롤타워김관용 도지사는 지난 1월 새해 벽두 직접 일본 도레이사를 방문했다. 사카기바라 회장을 만나 투자유치활동을 하기위해서였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기업하기 좋은 경북의 환경을 적극성으로 설명하는 등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를 이끌어 냈다. 김 지사의 올해 투자유치활동 반경은 10월 현재 해외 투자유치활동만 18회에 이르고 있다.이인선 정무부지사도 일본 2회, 중국 1회, 미국 1회를 다니며 팔을 걷어부쳤고, 행정부지사도 인도를 돌며 투자활동을 벌였다. 도청 고위 간부들 또한 유치 대상 국가를 일본, 미주, 유럽 등 전통적인 투자유치국과 함께 신흥 자본국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으로 확대하고, 이를 전담할 별도의 `대륙별 T/F팀`을 발족시키는 등 해외 글로벌 기업 유치에 심혈을 쏟았다. 그 결과, 유치 분야도 제조업 위주에서 관광·레저, 금융, 물류, 보건의료 등 지식서비스업 등으로 업종이 다양화됐다. 도는 앞으로는 투자금액 위주에서 고용창출이 많은 기업을 중점 유치할 방침이다.도는 유치기업에 대한 사후관리에도 철저를 기하고 있다. 도와 시·군에서 투자 유치한 기업은 해피모니터 위촉, 투자유치기업 임직원 대상 간담회 및 워크숍 개최, 방문 프로그램 및 소규모 숙원사업 지원 등 다양한 시책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 또 도내 177개 외투기업과 바쁜 업무로 해피모니터 간담회에 참석지 못한 기업을 위주로 도와 시군에서 현장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하는 방문 프로그램을 60회 운영해 30건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도 했다. 해피모니터, 방문 프로그램 및 투자유치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되는 각종 고충사항은 10억원의 사업비로 회사주변 환경정비, 가로등 설치, 도로·교통시설 등 기업의 숙원사업을 해결해`기업하기 좋은 경북`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38개소 공단 신규조성 등 투자유치 기반 박차경북도는 투자기업이 희망하는 시기에 부지를 제공하고자 부족한 산업용지를 신속히 조성해 맞춤형 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도내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 6곳, 일반산업단지 31곳, 농공단지 55개소 등 모두 92개소가 조성되어 있고, 부족한 산업용지 해결을 위해 국가산업단지 3곳, 일반산업단지 26곳, 농공단지 9곳 등 모두 38개소를 신규로 조성중에 있다. 도는 빠른 시일 내 심규단지를 개발, 투자기업에 제공할 방침이다.도는 또 도민의 일자리 창출 중심의 실속 있는 투자유치를 위해 기존의 유치전략을 재정립해 다각적인 투자유치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서비스산업 분야도 중점 대상이다. 낙동강, 백두대간, 동해 등 경북도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복합리조트, 대기업 및 대학교 연수시설, 낙동강 수변형 친환경 테마파크 등 `江·山·海`를 활용한 환경 관광관련(ECO MICE) 산업을 적극 유치한다는 것이다.동해안 및 울릉 관광개발, 3개 문화권(유교, 불교, 신라)과 관광단지(감포, 안동, 청송 등) 내 호텔, 쇼핑, 아울렛, 골프장 등 문화·관광·레저산업을 적극 유치키로 했다. 미래 경북의 성장동력이 물 산업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 동해 심층수와 낙동강 등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북도는 21세기 물의 시대를 맞아 세계 물 산업 시장규모가 2015년 1천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물 산업의 도내 집적화를 위해 국내외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또 수자원, 수처리, 물 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해 경북도가 물 산업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다각적인 유치활동을 펼친다.■김관용 경북도지사 인터뷰2007년에 이어 두 번째 받는 상이어서 의미가 더 깊다. 300만 도민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도민의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복지시책이라는 신념하에 도청 정문에 `취직 좀 하자``일자리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구호를 붙여놓고 일해 왔다. 도지사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매일 출퇴근 때 도민 일자리 창출을 다짐하자는 각오를 다지기위해서였다.문제는 앞으로다.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경북도도 예외가 아닌 만큼 허리띠를 더 졸라멜 생각이다. 특히 미래산업 변화에 따른 발 빠른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만큼 교통축의 변화와 신도청 등 경북도 발전전략과 연계한 유치전략을 세우겠다. 백두대간, 동해안, 3대 문화권 등 경북도만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자연자원과 문화를 바탕으로 서비스산업, 관광·레저, 농·식품 가공산업 등 실속있는 투자 유치를 펼 방침이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2-11-02

그리스신화에 델포이는 `세계의 배꼽` 옴파로스

오늘의 유럽(Europe)이란 어원은 그리스어`에우로페(그리스어: Ευρωπη)`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에우`는 넓음, `로`는 눈을 뜻한다. 즉 `시각의 넓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만약 유럽에서 그리스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체성 혼란으로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럽연합(EU)과 같은 거대 조직은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와 인접한 그리스 문명은 그만큼 유럽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영어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의 언어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리스 땅에는 지구의 중심이며 자궁이라고 여긴 옴팔로스(Omphalos:배꼽)가 있다.바로 델포이(Delphoe)다.한여름 머리 위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건조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파르나쏘스 산 왼편으로 델포이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파르나쏘스 산은 높이가 2천457m로 포키스·프티오티스 · 보이오티아 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도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가는 길에 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휴게소는 없지만 파르나쏘스 산 서편으로 자리잡은 `아라코바`란 예쁜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산 중턱에 전형적인 그리스 풍의 흰 벽, 붉은 기와 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길 하나를 밧줄처럼 내려주고 있다. 사진 몇 컷을 찍은 우린 밧줄(길)을 타고 아라코바 마을로 올랐다.아라코바는 마을 뒤쪽으로 스키장이 있어 겨울이면 유럽인들이 찾는 휴양지다. 스키뿐만 아니라 파스타, 양모, 수예로 널리 알려진 부자마을이다. 아라코바에서 다시 쉬었다 출발한 승용차가 델포이 유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옛날옛적 그곳엔 왕뱀 퓌톤과 그의 짝 퓌티아가 살고 있었다. 활 잘 쏘는 아폴론이 화살로 퓌톤을 죽였다. 그리고 퓌티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아폴론 신전의 제관(예언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당시 국가적 중요한 사안인 전쟁, 식민지 건설 등이 있을 때마다 왕들은 이곳에서 신탁을 청했다. 신탁의 신전이기 때문에 그리스 곳곳에서 봉헌된 보물로 아폴론 신전 창고는 가득했다.한낮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할 겸 야외보다 실내 박물관을 먼저 견학하기로 했다.박물관 입장료는 야외 관람까지 포함해 9유로(1만3천원 정도)다.델포이 유적 관광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실내 박물관과 아폴론신전 부근, 위쪽 전차경기장, 그리고 도로 밑 톨로스 부분이다. 그 공간이 넓기 때문에 시간의 안배가 필요하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실내 박물관을 관람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델포이는 고대 그리스의 4대 제전 가운데 하나인 퓌티아 제전을 기원전 582년부터 4년마다 열었던 곳이다. 퓌티아 제전은 체육대회와 연극대회로 구분되는데 아폴론 신전 바로 뒤쪽으로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차 경기장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당시 경기의 우승자에겐 월계관을 수여했다.델포이 실내박물관은 아르카이크 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델포이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 차이 없다. 당시 난 혼자 이곳을 찾았다. 또 다시 박물관 유물을 만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박물관에는 부서진 돌조각들의 해체와 결합, 부조와 환조들이 널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망가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차 기사(약 180cm)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곤 마부가 마차를 몰고 가는 것처럼 4두 마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청동 기사는 시칠리아 섬의 겔라(Gela)를 다스리던 참주(지역 왕) 폴리잘로스(Polyzalos)가 델피에 바친 봉헌물이다. 폴리잘로스가 기원전 478년경 퓌티아 게임의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서 바쳤다. 시칠리아는 현재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는 이곳의 영향력 아래였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대부분의 유물이 없어지고 파괴되었음에도 이것은 기원전 373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기에 약탈을 피할 수 있었고 1896년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실내 박물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 중의 하나는 옴팔로스(Omphalos) 앞이다. 이 돌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토해냈던 `돌` 이라고도 하고, 제우스가 지구 끝까지 보냈던 두 독수리가 되돌아왔을 때 만난 지점으로 지구의 중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끼줄(양모)처럼 돋을 무늬가 이어진 옴팔로스는 아폴론 신전 북쪽에 있었다. 또한 낙소스 섬에서 바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굴은 여자, 몸은 사자에 새의 날개를 가졌다. 기둥을 포함해서 높이가 12m나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 정면에서 방문객을 내려 보았다고 한다. 기원전 580년 경 아르고스에서 바친 쿠로스 상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로 알려졌다. 이런 조각과 함께 벽면 부조는 아폴론 신전의 박공부분, 헤라클레스의 전쟁 장면 등 다양하다. `여인 기둥상`, `목 잘린 여인상`, `시시포스 1세 동상`, `무희의 기둥`, `헤라클레스상`, `청동방패`, `아폴론 두상`, `악기들 들고 술을 따르는 아폴론 도자기` 등 긴 시간 각종 전시물을 보고 나오려 할 때 `삼발이 솥`이 보였다. 많은 책에서 인용하는 유물이다. 이 솥은 헬레네가 트로이아(=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 스파르타로 되돌아가면서 바다에 던진 솥이다. 이 황금 솥은 코스 섬에 사는 고기잡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나왔는데 `가장 현명한 철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탈레스, 비아스, 솔론 3사람에게 주었더니 모두 사양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쳐졌다고 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신탁의 무녀들이 앉았던 의자도 삼발이 의자다.실내 박물관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톨로스`로 향했다.기원전 4세기 초 사모스의 테오도로스라는 건축가가 지은 원형신전 톨로스는 박물관 도로 아래쪽에 있다. 수많은 돌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원형의 모습대로 제 자리를 찾아 돌 하나하나 놓으려 했지만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돌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아티가(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펜테리 지역에서 가져온 돌로 건축하였다고 한다.톨로스를 구경한 후 실내 박물관 옆 아폴론 신전으로 향했다.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함께 고대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탁소였다. 주변 방대한 유물들이 그야말로 노천박물관이다. 톨로스나 아폴론 신전에 대한 속살 깊은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아고라, 참배로, 보물창고(아테네 보물창고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 김나지움(체육관), 아폴로 신전, 극장을 구경한다. 비탈에 쌓은 돌들이 정교하다. 아테네, 아르고스, 시키온, 시프노스 등 곳곳 지역에서 봉헌한 봉헌창고 흔적을 훑어볼 때 `너 자신을 알라`란 글자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새겨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길이 60m, 폭 23m의 기단과 38개의 기둥(현재 6개 남아 있음)이 있었던 아폴론 신전과 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견학한 후 위쪽 전차 경기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이미 더위로 지친 상태다. 강렬한 빛으로 사진을 찍어도 액정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일행 대표로 서둘러 올라가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온다. 전차 경기장의 길이는 178m, 폭은 25m로 7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6년 전에도 문 닫을 시각이라 숨 가쁘게 올라갔다 내려왔던 곳이다.여행엔 오지도 않은 미래의 시간이 지금의 시간을 서두르게 할 때가 많다. 그래도 여유롭게 이동하는 이번 여행이다. 그렇기에 폭염도 한층 즐겁게 느껴진다.계속

2012-11-02

지역민과 아름다운 동행 위해 희망나눔 동분서주

■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울진원자력본부는 현재 6개 호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2개 호기는 건설 중이다. 그리고 추가로 2개 호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6개 호기가 생산한 전기 발전량은 우리나라 총 전력량의 9.4%에 해당할 정도로 대한민국 전력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또 울진원전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울진군에 납부한 지방소득세와 지역자원시설세 총액은 1천952억6천30만원에 이른다. 지역자원시설세외에 기금지원사업과 사업자지원사업 등을 펴고 있다. 2011년도까지 지역에 지원된 총 기금지원사업금액은 2천915억원이고, 사업자지원사업비는 808억에 달한다.울진원전의 2011년 지역경제 기여도는 총 1천442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41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에는 협력회사를 포함한 울진출신 종업원 총 832명이 수령한 급여는 405억3천여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지방세 및 전력산업기반기금은 476억원으로 울진군 예산총액 4천240억원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울진원전이 직접 시행한 사업자지원사업비는 총 105억원으로 지역복지사업에 42억원, 지역문화진흥사업에 20억원을 지원했다. 또한 신규인력 채용 등으로 인한 직원 수 증가에 힘입어 타지역출신 종업원 소비액도 2010년 249억5천만원에서 271억3천여만원으로 증가했다. ■ 지역사회 `공존·공영`의 길 울진본부는 지역사회와 `공존·공영`을 위해 지난 2004년 `울진사랑봉사대`를 창단했다. 지역주민들과 지역사회의 후미진 곳을 찾고 건강한 지역공동체 건설을 위해 본격적으로 팔 소매를 걷어부친 건 지난 2006년이다. 이들이 한 줌의 따뜻한 볕을 나눈 것도 올해로 6년째이다.김세경 울진원자력본부장은 “한수원이 원자력에너지 산업의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원자력 안전성을 최종심에 두는 `기술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하는 안전성 우위의 경영정책`과 함께 건강한 지역사회를 가꾸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는 `지역 상생의 가치 실현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울진원전의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펼치는 사업이 유독 시선을 끄는 것은 전 직원들의 `자발적인 비용 마련과 발품`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회공헌활동 재원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성된 `러브펀드` 1억9천여만원,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 1억2천여만원, 사업자 지원사업비 6억5천여만원 등 모두 9억6천여만원에 이른다. 직원들의 러브펀드 가입계좌수는 1만5천765계좌, 1인당 평균 9.9계좌로 직원참여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사택부녀회(회장 이상인, 실버벨봉사대)가 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그동안 울진군종합자원봉사단체와 합동으로 2011년도 군내 최초로 울진에서 열린 제49회 경북도민체전을 비롯한 울진뮤직팜페스티벌, 워터피아 페스티벌, 울진군자원봉사자대회 등 지역 각종 행사에 참여해 대대적인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했다.울진군보건소와 이동목욕 봉사활동, 사회적기업인 드림엔해피워크와 사랑의 집수리 봉사 활동, 울진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의 구석구석을 돌보는 돌보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울진원전 `1부서 1자매마을 봉사활동`은 총 79개 부서가 79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해 매년 어버이날 행사 지원은 물론 독거노인 방문, 마을 어르신 온천 체험행사 지원, 벼베기, 농산물 수확 돕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총 524회의 자매마을 봉사활동을 벌이며 지역사회 공헌을 통한 상생의 가치를 실현했다. ■ 사랑의 봉사대 `눈부신 활약` 울진원전 사랑의 봉사대(대장 김세경 본부장)는 명실상부한 지역상생의 전도사로 자리잡았다. 사랑의 봉사대는 직원들로 구성된 `블루벨 봉사대`와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실버벨 봉사대`로 짜여 있다. 두 개의 팀제 운영을 통해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봉사 영역은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와 장애인 및 거동불편노인 이동목욕 봉사활동, 사랑의 집수리 봉사, 사랑의 김장담그기, 밑반찬 나누기, 관내 장애인 단체 생필품 지원, 주변지역 어르신 건강관리, 미래 세대 위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 농어촌 일손돕기, 다문화 가족 지원, 지역 역사문화 바로알기 체험 프로그램 등 사회전부분에 걸쳐 있다. 사랑의 봉사대는 출범한 지 8년째, 태풍과 가뭄 등 혹심한 자연재해 현장에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등 소외 계층의 곁에서 따뜻한 먹을거리와 삶의 용기를 북돋우는 값진 땀방울을 쏟았다. 울진원전 사랑의 봉사대는 주변지역 독거노인 120가구에 매월 1회씩 사랑의 밑반찬 배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면, 죽변면 소재 42개 마을과 자매결연한 원전자매 부서는 매월 1회 씩 자매마을 내 독거노인 120가구에 밑반찬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실버벨 봉사대인 사택부녀회도 북면 소재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30가구에 매월 2회씩 밑반찬을 직접 장만, 배달해 주고 있다. 특히, 주변지역 내의 집안사정이 넉넉지 못해 방과 후 거리를 쏘다니는 초중등 학생들을 모아 방과 후 공부방도 개설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소중한 도서는 전 직원들이 한 권, 두 권씩 모아 아이들에게 소중한 양식으로 되돌렸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울진 지역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아인슈타인 프로젝트`를 실시, 수험생을 둔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아이슈타인 프로젝트는 서울대 등 명문대학생들을 초빙, 매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입시 교육을 지도하는 이른바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지식 나눔` 프로그램이다. 또, 집안의 여력과 노동력 부족으로 보수할 엄두도 못내는 북면, 죽변면 등 주변지역 내 165가구를 대상으로 `집 수리 지원사업`을 펼치며 값진 구슬땀을 흘렸다.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역주민들의 건강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해 울진군의료원과 1억여원의 예산으로 5개월 동안 울진읍 주민 800여 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와 흉부 컴퓨터단층촬영 등 53개 항목에 대한 무료 검진을 했다. 올해도 북면지역주민 500여명을 대상으로 검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 들어 한수원 전직원 10만시간플러스 특별봉사활동 운동의 일환으로 기존 봉사활동과는 별도의 봉사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울진군노인요양원 환경정화 활동, 나곡4리 농가 일손돕기, 바다지킴이 해양정화활동 등 울진본부 전직원이 참여해 자율적으로 활발한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울진원전 직원들은 `아름다운 동행`의 목적지인 `나눔을 통한 상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이들의 발걸음에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동안 스스로 가꿔온 `정성과 땀방울`이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2-11-01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올 가을 축제 물결로 `넘실`

경주의 가을이 신라 천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각종 문화행사로 꽃 피고 있다.특히 `신라천년의 비상(飛上)`을 슬로건으로 한 제40회 신라문화제 기간에는 당시 신라 향(香) 내음으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키는 등 전통문화계승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또한 차(茶) 문화의 발상지가 경주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는 등 경주의 위상이 문화행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제7회 경주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국내외 태권도 관계자 및 40개국 2천여명의 태권도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25일 화려하게 개막했다,30일까지 6일간 선수들이 겨루기와 품새로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이 대회는 외국 선수들에게 태권도의 발상지가 경주임을 홍보하는 중요한 체육행사이기도 하다.지난해 성공적으로 치른 2011경주WTF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때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보여준 경주의 훈훈한 인정과 친절했던 이미지와 함께 조직위원회 홍보위원들이 해외 협회와 클럽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친 결과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국내외 선수들이 참가했다.조직위원회는 지난해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때와는 달리 보문단지보다는 시내의 게스트하우스, 모텔 등에 가능한 해외선수단 숙소를 배치하고, 축구공원 5, 6구장에 보조연습장과 계체장을 설치했다.특히 태권도관련 유적지 관광을 위한 시티투어 때는 시내중심상가와 전통시장을 경유하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태권도문화 보급을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 제40회 신라문화제`신라천년의 비상(飛上)`을 슬로건으로 한 신라문화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향토문화제로서 `시민참여형 축제`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얻으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경주시의 축제 비전을 제시했다.올해 신라문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 몰이를 위한 연예인 초청 공연행사 중심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기획 단계부터 오로지 경주가 갖고 있는 천년문화 유산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 특징이다.지난 12일 축제의 시작을 알린 것도 23개 풍물단체 등, 1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경주 전역을 돌며 축제의 흥을 돋운 `길놀이`와 신라 천년의 드높은 기상을 잘 표현한 대규모 풍물공연인 `천년의 소리와 몸짓`으로 홍보를 했다.또 신라고 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의미를 더한 `매소성 전투재현`도 신라문화제의 개막식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매소성 전투재현`에는 국내 최정상급 무대와 음향, 조명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감나는 전투신과 함께 풍물공연과 특수효과를 곁들여 관람객들에게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생생한 감동을 선물했다.또 13일 경주 봉황대 중앙로에서 펼쳐졌던 줄다리기 등 민속경연도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가을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대성황을 이뤘으며 특히, 줄다리기 대회는 시민 화합의 장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황성공원 일원에 마련된 전통문화 체험장인 `신라촌`과 `화랑촌`에서도 옛 신라인들의 지혜와 화랑의 기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친구와 연인 등 젊은 층을 겨냥해 승마체험, 발굴체험, 신라토기 만들기, 신라의상체험, 주령구 체험, 왕관만들기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 참여할 수 있는 볼거리를 많이 만들었다.특히 올해 신라문화제 기간 중 경주 예술의전당에서는 우리 전통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국악계의 최대 잔치인 `제31회 대한민국 국악제`가 함께 열려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대한민국 국악제에는 유명 국악인 오정해씨를 비롯해 이생강 명인, 신영희 명창 등 기라성 같은 국악인 등 대한민국 최고의 춤과 소리와 악기가 한자리에 모여 경주를 국악의 향연으로 수놓았다.이밖에 신라문화제 등 경주를 주제로 한 전국사진공모전과 한글·한시백일장, 고운서예대전, 신라미술대전, 시조경창대회 등이 행사 기간 경주 곳곳에서 펼쳐져 전통 문화 계승의 맥을 이어갔다. ◆ 차(茶) 문화의 발상지 경주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 크게 발전했으며, 신라시대 때는 단순한 식음료를 넘어 불교 수행의 수단으로, 이른바 선차(禪茶)의 개념이 확립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매월당 김시습(1435~1493)에 의해 유·불·선을 통합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차(韓茶)가 창시됐며, 이는 곧 초암차(草庵茶)로서, 경주 남산 용장사 `초암`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그래서 천년고도 경주가 우리나라 차 문화의 발상지로 꼽히기도 하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차 문화의 확산을 위해 제40회 신라문화제 기간 동안 체험행사가 열렸다.최양식 이사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를 통해 전통문화의 발상지인 경주가 `축제의 도시`로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며 “전문가들과 시민의견을 경청하여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를 발굴하여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2-10-29

삼국유사 첫 설화 `연오랑 세오녀`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였다.하지만 삼국사기 조차 왕들의 정확한 대수를 정리하기 힘들었을 만큼 초기 신라왕실은 안정화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연은 `제8대 아달라왕 4년`이라며 자신있게 기록했다. 이는 운수납자 (雲水衲子)로 바람과 구름처럼 전국을 떠돈 승려였던 일연이 지금 포항 오천읍의 천년 고찰인 오어사(吾魚寺)에 머물렀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민속학자처럼 주민들로 부터 인근에 전해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듣고 취재했을 것이며 자신이 쓴 역작에서 첫 설화로 싣기에 이르렀다.`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가 바다로 나가 해조류를 채취하다가 갑자기 바위가 그를 업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하길 “이 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다”라며 왕으로 세웠다(일본 제기帝紀를 살펴 보면 그 전후로 신라 사람이 왕이 된 자가 없으므로 이것은 변방 읍의 소왕이지 진짜 왕은 아닐 것이다). 세오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찾으러 갔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을 보았는데 역시 그 바위에 오르자 그 바위가 또한 그녀를 싣고서 전처럼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의아하게 생각하여 아뢰며 왕에게 바쳐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를) 귀비로 삼았다.이때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으니 일관이 아뢰길 “해와 달의 정기가 내려와 우리나라에 있었으나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괴이한 일이 초래된 것입니다”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오도록 하였다. 연오가 말하길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짐의 왕비가 짠 고은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하면서 곧 그 비단을 주었다.사신이 돌아와 아뢰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냈다. 그 후에 해와 달이 그 전처럼 되니 그 비단을 어고에 보관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 이름을 `귀비고`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장소 이름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3권 영일현조 김종직(金宗直)記`등을 인용한 `일월사적비`에 따르면 (포항의)일월지(日月池) 근처에 일월신을 모시는 천제당(또는 일월사당)이 있어 신라 때는 조정에서, 고려·조선 때는 영일현감이 친히 제사를 올리고 이 사당에 모신 신위를 일월신이라 부르고, 이 신위가 연오랑 세오녀 신위라고 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해병부대 내에 3천여평의 일월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매년 9월 중양절에 일월 제의를 행했으나 강점기 때 제단이 철거되었다고 한다.

2012-10-29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⑿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일본이 근현대를 통틀어 세계를 주름잡는 선진국 대열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편입된 후 최정점에 섰던 역사를 본다면 만용에 가까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내린 우월감에는 선진문물을 공급했다는 문화적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삼국유사에 실린 작은 설화에 불과한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 속에는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경북동해안의 선진 문물 전파의 역사와 함께 태양 숭배 사상이 암시돼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우리는 결국 이 지역이 풍부한 문화가 깃든 삶의 터전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한 근거지임을 알 수가 있다.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13)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114)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215)잊혀진 옛 항로- 116)잊혀진 옛 항로- 2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학자들, 한일 교류 통로로 포항 영일만·경주 감포 등 꼽아日, `이마지 유래기`에 섬 최초 도착자로 옛 신라 남녀 기록포항 등 고구려 영향권 답게 삼족오의 태양사상도 연관□ 선진 문물의 전파자포항대학 배일용 전 교수가 사학자 천관우와 이홍식, 김정배 등의 자료를 연구한 결과 등에 따르면 사로국은 2세기 중반 아달라왕대에 이르러 영일만 일대를 실질적인 지배영역으로 복속하여 포항의 흥해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동해안의 지역을 확보하게 된다.이에 따라 연오랑과 세오녀를 중심으로 한 (포항이 근거지인) 근기국의 토착세력은 압박을 받게 되자 신라에 대한 복속을 피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일본서기와 고사기 등 일본 역사서를 재인용하더라도 일본고대사는 고대 한국인의 이주와 문화전파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고 있다. 따라서 배용일 등은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의 이즈모시를 중심으로 한 산음(山陰)지역 변읍의 왕과 왕비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는 진구(神功)황후에 대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천일창`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지 사료에 따르면 천일창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는 구실로 일본에 상륙해 정벌한 것으로 기록돼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연관성이 분석되고 있다.이는 이영희교수의 `노래하는 역사`에서도 확신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데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2세기 중엽을 전후해 경북 동해안의 태양숭배 집단 등 토착세력이 비단과 제철 등 선진 기술문화를 갖고 일본의 출운(出雲) 지역이나 북구주(北九州)지방에 진출한 것이 유력하다. 특히 일본 학자는 연오세오고(延烏細烏考)를 통해 부부의 출발지를 영일현으로 보고 도착지를 일본 은기국(隱岐國)의 지부도(知夫島)로 파악하기 까지 했다.□ 신화인가, 설화인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라 경주에서 동해로 내왕하는 주요 통로는 포항 영일만, 경주시 감포, 울산만의 세가지 항로가 있다. 고대 한일 양국이 영일만을 통해 교류하던 길은 거리와 항, 조류와 풍향의 영향을 고려할 때 필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영일과 같은 위도 36도 선상에 있으며 현 시마네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의 한 박물관에는 구니비키(국인·國引) 전설 그림이 전시돼 있다. 지난 1999년 포항문화방송의 특집프로그램에서 현지 전문가는 이 그림이 신라의 호미곶을 인용한 것으로 파악하며 한반도의 문명과 재화가 일본으로 전파되기를 염원한 것과 연관 있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결국 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는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의 인물로 결론내리고 있다.많은 근거 가운데 해류와 바람을 이용할 때 포항에서 출발하면 자연스럽게 닿게 되는 시마네현에 남은 흔적들도 인용되고 있다. 이 중 시마네현 본토에서 배로 두시간 거리의 오키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파악된 `이마지 유래기`에는 최초로 섬에 도착한 사람이 가라의 사로국(신라의 옛 이름)에서 온 목엽인 남녀로 기록돼 있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오키섬의 선조가 연오랑 세오녀라고 보고 있다. `포항市史`에 따르면 시마네 현 이즈모 시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린다.이곳에 고대왕국을 건설했다는 스사노오미코토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로 추앙되는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행실이 나빠 고천원에서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났다. 하지만 곧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돌아와 이즈모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물론 이설(異說)도 있다.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이영희교수는 연오랑이 간 곳은 이즈모가 아니라 다파나국, 즉 지금의 효고현을 중심으로 한 교토부 및 우쿠이현 일대와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 서북쪽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신화가 역사가 될 때 그 속의 인물은 역사 속에서 더 구체성을 띠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한 현실은 실타래가 풀리듯 이해의 골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연오왕 추모제일본 이즈모시에는 매년 음력 10월에는 일본의 신이 전부 모인다는 이즈모다이사가 열린다. 이때는 일본 창세기의 신을 모셨다는 히노미사키 신사 안에 있는 한국신사라는 현판이 붙은, 포항 방향의 왼쪽으로 향한 작은 신사에서 연오왕 추모제가 열린다. 이즈모시 카라가와쵸 산정에 있는 카라카마 신사의 카마는 가마솥이라는 의미로 용광로를 상징하고, 연오랑이 돌배를 타고 왔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암선`(岩船) 옆에는 이를 설명하는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영일의 정신적 뿌리는 일월 신앙연오랑 세오녀에는 모두 까마귀를 뜻하는 오(烏)가 포함돼 있다. 또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에는 태양에 관한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포항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사실 등이 종합돼 예로 부터 일월향으로 불리어왔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포항을 삼족오 일월신화와 일월신앙의 중심지로 규정하고 있다.영일만이라는 양곡(暘谷)이 고대 한민족 문명권의 삼족오태양 신화가 이동 전승된 귀착지로서 한국의 대표적 태양(일월)신화의 성지라는 것이다.삼족오 신앙과 관련해 삼족오 문양 중 태양 안에 삼족오가 세발로 서 있는 것을 `일중삼족오`라 하며 태양 안에 날아가는 모습을 `금오`라 할 만큼 삼족오는 곧 까마귀이며 태양이다. 역사적으로 신라지역인 경북동북부의 영풍, 안동, 봉화, 청송, 울진, 영덕, 영일지역에서 고구려 지명이 나타나 있다.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고구려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으로 영일의 북쪽인 청하와 흥해는 5세기경까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또 영일만 지역은 태양과 삼족오를 뜻하는 烏와 日月 관련 인명과 지명이 2천년 동안 현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오세오, 일월, 영일, 도기야, 오천, 세계, 일월지, 일광, 중명 등이 그것이다. 배용일 전 교수는 일생을 건 연구를 통해 영일만은 새로운 양곡의 개척지, 즉 일본 건국신화의 출발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세우기에 이른다.□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0-29

WCC(World Class College) 선정 대구권 대학을 가다

WCC(World Class College)란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전문대학이란 뜻이다. 교과부가 지난 2011년 7개 대학을 선정한 이후 올해 4개대학이 추가로 선정돼 전국 146개의 전문대학중 11개 대학뿐이다. 지역에서는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이 지난해에 선정됐고, 올해는 경북전문대학이 추가로 포함됐다. WCC에 선정되면 명예와 함께 정부로부터 평균 5억원에 이르는 교육역량강화 자금이 지원되며 학사학위 전문심화과정과 산업체 위탁교육이 가능한 등 각종 혜택이 쏟아진다. 하지만 선정과정은 교육역량강화사업, 재정건전성, 기관역량, 고객평가 등 4단계로 나뉘어 세부평가를 한 후 최종 감사원 감사결과를 반영해 선정하는 만큼 전문대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구권에서 WCC대학으로 선정돼 전문대학을 선도하고 있는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의 기초 펀드멘틀을 알아봤다.영진전문대학기업 맞춤형 주문식교육 성공사례 2011년 NCSI조사서 전 업종 1위기업 맞춤형 주문식교육으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대학의 경쟁력은 다양한 평가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교과부의 2012년 취업률 통계조사에서 79.3%의 취업률을 기록, 전문대학 `가` 그룹(전문대학 졸업자 2000명 이상)에서 지난해 이어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전문대학으론 유일하게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전문대학부문 10년 연속 1위는 물론 2011년도 NCSI조사에서도 전업종 1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실시한 2012 존경받는 대학에도 선정됐다. 지역 전략산업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학과로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신계열을 꼽고 있다.△컴퓨터응용기계계열뿌리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해 온 대표적인 학과다. 전문대학 최초로 현장실무형 H.Q.T.(High Quality Technician)양성을 목표로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들과 맞춤형 인력 양성 과정을 개설, 교육을 실시해 기업체의 인력 채용 만족도를 크게 높였다.최근 3년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중공업분야 기업체들과 협약을 통해 해당 기업체의 요구에 맞춘 협약반을 운영하고 있다.`삼성전자 금형반`은 2010년 협약과 함께 3차원 CAD금형 설계/제작, 사출성형기술 실무 등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해 지난해 첫 수료자 21명 전원을 이 회사에 진출시켰다.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과도 두산그룹 협약반을 40명으로 구성, 양질의 우수한 인재 공급에 나섰다. 이 계열은 재학생이 산업체로 진출하기 전에 전공실무능력을 보증하는 졸업인증제도를 2001년부터 전국 대학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전자정보통신계열대기업에 가장 많이 취업 성적을 낸 학과가 전자정보통신계열이다. 2012학년도 졸업생 가운데 306명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 2011·2012학년도 대기업 취업률이 60%를 넘는다. 다양한 기업과 맞춤형 주문식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기업 협약반이 많다. SK그룹의 SK하이닉스와는 지난 7년간 성공적으로 협약반을 운영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제일모직, LG그룹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 LG전자와도 취업 약정형 주문식교육 협약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8월부터 국내 일본투자기업 협약반도 개설, 운영에 들어갔다. 취업뿐만 아니라 국내 우수 4년제 대학교와 연계교육 협약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무시험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한국의 주문식 교육, 세계화 나서겠다”▲ 최재영 영진전문대 총장■ 최재영 영진전문대 총장 인터뷰“영진만의 특화교육인 주문식교육을 완성시키겠습니다”최재영사진 총장은 지금까지 주문식교육이 안착단계였다면, 앞으로는 이 제도를 완성시켜 그야말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양성으로 승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올해 처음 실시한 입도선매 수시1차의 호응을 발판으로 삼아 내년에는 `입도선매 명품 주문식교육` 과정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전략산업분야 학과인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신계열에 시범적으로 이 과정을 운영,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등록금 전액 면제는 물론 최신 시설의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대학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최 총장이 이 과정을 실행하게 된 동기는 지난 8월 실시한 입도선매과정 수시1차 모집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 인문계고 출신은 내신 2등급 이내, 전문계고 출신은 1등급이어야 지원이 가능한 이 교육과정에 평균 3.2대 1의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이다.최 총장은 “한국의 주문식 교육이 세계화, 즉 글로벌스탠다드가 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전문대학의 고유영역인 실무중심의 교육, 낭비 없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영남이공대학취업률 통계 2년연속 전국 2위 등정부재정지원 사업서 실적 쏟아내영남이공대학교의 최근 실적은 한마디로 대단하다.취업률 통계조사에서 2년 연속 전국 2위, 창업선도대학 선정,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대학 최다 선정, 글로벌 인턴십 전국 1위, 평생학습중심대학 선정, 중소기업계약학과 주관대학 선정, 학사제도개선시범대학선정 등 대학의 기초지표를 반영하는 각종 정부재정지원 사업에서 우수한 실적들을 쏟아내고 있다.그만큼 대학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적들이며 이모든 것을 총망라한 것이 지난해 WCC 선정이다.△메카트로닉스 분야 과감한 투자영남이공대학교는 교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공계열 중심의 전문대학이다.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약 70%에 다다를 만큼 이공계열 학과구성이 높았고 그에 따른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산업체의 변화에 부응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특성화 자금을 이용한 과감한 시설투자로 인해 이젠 전국을 대표하는 메카트로닉스 분야의 최강자로 거듭났다. 이공계 학과들의 선전은 지난해 WCC선정, 취업률 2년 연속 전국 2위 달성, 국가고객만족도 조사 전국1위 등 1968년 개교 이래 최고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메카트로닉스 분야로 분류되는 기계, 자동차, 전기·전자, 의료기기, 컴퓨터등 관련학과들의 특징은 취업률과 취업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지난해 건강보험연계 취업률을 살펴보면 기계계열 75%, 자동차계열75%, 전기자동화과 81%, 전자정보계열 81%, 컴퓨터계열 83%로써 평균 취업률 73% 상회하며 특히 전기자동화과는 졸업생 117명중 81명이 소위 말하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할 만큼 취업의 질 또한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전국 유일 지멘스 아카데미 개원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인 지멘스의 전문기술인력양성이 가능해졌다.영남이공대와 지멘스코리아는 지난 8월 관계자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멘스의 대표적 교육프로그램인 SCE 와 SMSCP 교육에 대학 협약식을 가졌고 곧바로 지멘스아카데미 개원식도 개최했다. 지멘스는 독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멘스 제품 전문기술자 양성프로그램이다.영남이공대학에 지멘스아카데미가 설립됨으로써 지멘스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국내 모든 사업장에서 손쉽게 재직자 재교육과 신입기술자 교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할 터”▲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인터뷰“WCC대학의 위상과 취지에 걸맞게 우리나라 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호성사진 총장은 WCC대학선정으로 학내외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올해 1차수시모집에서 전년도 보다 무려 2천200여명이 늘어난 1만5천300여명이 지원해 학내관계자들도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이를 배경으로 지난해 전면 장학생만 430명에 달했고 반 장학금 역시 약 1천여명의 학생이 받고있어 이미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자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그저 이루어진게 아니라 재학생과 더불어 교직원들의 분발이 절대적 이었다고 강조했다.예를들어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컴퓨터 활용능력, 외국어 능력, 전공자격증 특강 등을 듣기위해 교실마다 북적이고 있다고 말했다.이 총장은 “이제 고등교육 제도가 2년제 4년제라는 이분법적 학제구분에서 탈피, 교육의 기능에 따라 직업교육대학 일반대학 연구중심대학으로 구분되고 있다”며 “향후 산업구조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2-10-29

호미곶 등대에 새겨진 한일 근대사의 이면

포항시 남구 대보면에 위치한 호미곶등대사진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그 점등 시기를 두고 1903년과 1908년 12월 등 이론(異論)이 있는데 그 건립 배경을 들여다보면 일제 강점 직전 약소국으로서 겪은 한국 근대사의 이면이 드러난다. 지난 1967년 고 박일천은 `일월향지`를 통해 `장기갑 등대의 괴이`라는 제목 아래 고종 광무 50년인 1901년 일본 실습선 `응웅환`의 표류와 등대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당시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러일 전쟁을 준비하는 등 세력 확장에 나선 가운데 나가사키상선학교 실습선 응웅환에 교사와 생도 30여명을 승선시켜 우리 해역의 해류와 어족, 수심 등을 조사하고 다녔다. 하지만 영일만 장기곶을 지나가다 암초에 부딪혀 조난을 당해 승선자 전원이 익사(이는 착오이며 사망자는 4명)하는 사고를 당했다. 일제는 조선이 연안 해난시설을 갖추지 않아 일어난 인재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생트집을 잡았다. 이에 못이긴 조정은 국비로 일본인에게 공사를 맡겨 우리 지역에서 최고, 최초의 등대를 세우게 됐다.이에 일대의 주민들은 `(국토의) 호랑이 꼬리에 불을 지르니 등대가 무너지면 불바다가 된다`며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또 하나 일본은 등대수로 본토의 살해 혐의 죄수를 임명해 유배의 벌로 삼았는데 피해자의 아들이 복수에 나서 그와 가족들을 살해한 참극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2012-10-26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⑾

고대의 연오랑세오녀에서 부터 시작해 신라의 대외 진출 해상로,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한반도의 해안선을 괴롭힌 왜구의 출몰, 근대사의 일제 수탈에 이르기까지 경북동해안은 일의대수(一衣帶水)로 이어진 일본과 끊임 없는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반도에서 대양으로 나아가는 도전정신과 진취성, 새 문물을 주고받는 주역으로서의 개방성을 체득해나갔다. 또 외적의 침략에는 변방의 전사로서 항쟁의 대열에 나서기도 했다. 본지는 기획특집 `경북의 혼` 제2부에서 문물 교류와 해양 진출의 교두보가 돼 온 경북동해안에 이어진 역사적 연원과 그 정체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12)도전의 시대 무역항로는 열리고13)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114)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215)잊혀진 옛 항로- 116)잊혀진 옛 항로- 2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일의대수(一衣帶水)의 땅흔히 한국과 중국, 일본의 관계, 특히 한일 간 애증의 역사를 거론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일의대수`이다.어원은 중국의 역사서인 `남사(南史)`의 `진본기(陳本紀)`에서 찾을 수 있다. 수(隋)나라의 문제(文帝)가 진(陳)나라를 공격하면서 양국 사이를 흐르는 양쯔강(양자강)을 두고 한 말로서 `한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고 할 만큼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한해협을 현해탄이라 하지만 그 폭이 넓지 않아 두 나라 정치인들이 의원 외교 석상에서 단골처럼 등장시키는 수식어가 돼 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일본과 마주 보고 선 경북동해안에게 연오랑 세오녀 대(代)에 꽃핀 대 일본 교류와 우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으며 저항과 극복으로 점철됐다.국내 연오랑 세오녀 연구는 주지하다시피 배용일 전 포항대 교수에 의해 새로운 지평들이 개척돼 왔다. 그의 `연오랑 세오녀 일월신화 연구` 등의 저작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까지도 영일만지역에는 `왜(倭) 가는 배 같다`라는 말이 전하고 있었다. 이는 배가 수십척씩 선단을 이뤄 지나가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오래전에도 일본과 해상로를 통한 이주와 교류가 얼마나 빈번하고 규모가 컸는지를 짐작케하는 비유인 것이다.이처럼 지리적 여건과 항해의 역사적 배경으로 판단할 때 영일만과 인근의 경주, 영덕과 울진 등 경북동해안은 고대로부터 일본과 울릉도, 남해 등지와의 해상교류 통로가 돼 왔다. 특히 영일만과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은 거의 같은 위도인 북위 36도 상에 있는 오키섬과 이즈모, 마쓰에 등이다. 신라에서 이곳으로 가는 항로는 첫째 영일만-대마도-이키시마-하카다만-오키섬-이즈모 구간, 둘째 영일만-오키섬-이즈모 구간 등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지난 1999년 포항MBC의 보도에 따르면 영일만에서 해류를 이용해 실험을 한 결과 부유물이 두번째 해로를 통해 표류했으며 실제 우리 동해안의 각종 쓰레기가 오키섬의 구니가 해안으로 떠내려가고 있다.이를 근거로 할 때 영일만 등 경북동해안과 일본 간 왕래의 기착지인 오키섬은 고대에 역사와 지리적으로 한국과 일본 문명을 이어주는 중계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필원잡기`와 `동국여지승람`의 문헌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학자들도 오키섬이 한반도 이주민이 정착을 주도해 이룬 고장이라고 인정하고 있다.□풍부한 어염(魚鹽) 등 물산본지는 지난 2009년 5월 11일 발견된 포항중성리신라비를 특종 보도함으로써 현존하는 최고 신라비로 인정받는데 한 역할을 한 바 있다. 중성리비의 존재가 확인되기 전에는 지난 1989년 4월 6일 발견된 영일냉수리신라비가 현존 최고 신라비로서 국보 264호로 지정됐다. 이 두 비석에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내용을 종합하면 재산 분쟁에 관련된 내용들이 확인되고 있다.경북 동해안에서 재산 분쟁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재화가 이 지역에서 생산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이 재화를 두고 여러 연구가 있지만 결국 동해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어염(魚鹽)과 해산물이 주요 대상이 됨을 알 수가 있다. 일찍이 고구려가 동예 지역의 어염 확보를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신라 또한 동해에서 생산된 물산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이는 당시 신라왕실 및 귀족들 간에 매우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 지역의 중요성을 잘 알 수가 있다. 또 비옥하고 넓은 농경지에서 생산된 양곡도 신라 왕경에 상당한 재화를 제공했음을 각종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지난 2009년 10월 포항시청에서 열린 포항 중성리 신라비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에 실린 논의 경작 면적을 분석한 결과 경주가 약 1천70결, 포항이 약 1천36결로 나타났다. 고대부터 해안지역인 포항이 내륙인 신라의 수도 경주의 관문지역으로서 거의 비슷한 농지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신라 국가와 귀족들의 재정 유지를 위한 최적의 인접 배후지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사부(異斯夫)의 우산국 정복신라는 중고(中古)기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을 하며 대외적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는데 동북방 진출은 동해안 연근해 해로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방의 거점 확보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동해안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임명했다. 신라는 이를 통해 최전방 군사기지에서 한반도 중부의 동해바다로 나가는 출항지를 확보해 우산국 정복의 기반을 구축했다. 왕실 출신 진골 귀족으로 유능한 이사부는 귀족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원하고 동해안 진출과 가야 정복 등 무인의 역할과 국사 편찬 등 문인의 역할로 신라가 후진의 열세를 극복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는 업적을 남겼다.우산국은 당시 신라에 조공을 거부할 만큼 동해상에서 하나의 독립된 해상세력으로 상당한 위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구려와 왜와의 해상교통로 중간 경유지에 있는 우산국의 정복으로 신라는 양자의 교섭을 차단하는 이익을 확보했다. 이로써 신라는 동해의 중북부 해역을 무대로 하여 연해주로 부터 한반도 동해안, 일본 열도까지 포괄하는 관계 속에서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또 하나, 우산국을 정복할 당시 이사부 수군의 출항지에 대해 울진지역설, 강릉과 삼척 등 강원도지역설 등 이론이 있지만 현재 울릉도와 독도가 경상북도에 속한 만큼 별도의 언급은 생략한다.□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0-26

비잔틴 건축의 걸작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의 감동

그리스 도착 둘째 날 델포이와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그리스 정교회의 모범됨을 볼 수 있는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Monastery of Hosios Loukas)에 들르기로 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일행은 큰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작은 가방 하나씩 챙겼다. 시간을 절약하며 많은 곳을 구경할 방법을 찾다 보니 현지 여행사를 물색하게 되었는데 그리스에서 20여 년 살면서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는 조 선생과 닿게 되었다. 그가 9인승 봉고차를 끌고 나타난 것은 오전 8시 조금 넘어서였다. 우리는 산뜻한 맘으로 차에 올라 출발했다. 길 곁의 건물 벽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그리스 글자와 그림들이 영화 필름처럼 이어졌다. 어디든 마찬가지다. 붉은색, 청색, 검은색….경제 불안에 따른 불만을 그렇게 표출한 것도 그 중에는 많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공항에서 아테나로 들어오면서도 그런 낙서를 숱하게 보았다. 폐가처럼 짓다 만 건물도 여러 채 보았다.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길 옆 건물에서도 그랬다. 실물 경제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 같았다.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자랑했던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에도 `그리스 총파업 또 다시 마비`란 제목이 종종 타이틀로 뜬다. 긴축과 동시에 이뤄지는 증세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들의 목소리는 크다. 현재도 금융 수혈은 진행중이다. 창 밖을 보던 난 광장 가운데 있는 조형물에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갔다.`이카로스의 추락!`그랬다. 철로 만든 조각품이 로터리 가운데 땅에 박히듯 거꾸로 놓여있다. 이카로스의 추락은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란 것을 가르치는 그리스 신화다.아테네가 미노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왕.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로, 법을 제정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죽어서는 저승의 재판관이 됨)와의 전쟁에서 패했을 때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는 사람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잇감으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일부러 포로가 되어 크레타로 갔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 사이에 낳은 황소를 닮은 괴물이다. 그는 매일 사람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다.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탈출한다. 공주에게 탈출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라비린토스(Labyrinthos : 미궁)를 만든 다이달로스였다. 이것을 안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 속에 가뒀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라도 탈출할 수 없는 미궁. 손재주가 좋았던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한다. 날기 전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너무 높은 하늘은 밀랍이 녹으니 올라가지 마라.` 란 주의를 준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오르다 그만 바다로 추락하여 죽는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올려 섬에 묻었는데, 이 섬을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카로스의 추락` 신화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 경제가 이카로스의 추락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게 된 것을 가이드 겸 운전을 담당한 조 선생은 이야기한다.“그리스 경제의 몰락에는 정치인들의 썩어 빠진 부패와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낙천적 성격이 끌고 온 것입니다.”이 말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상은 좋지만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일 때, 백성은 허황된 꿈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차는 시내를 벗어나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다 산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 좌측으로 테베 마을을 멀리 두고 있다. 테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의 신화 발상지이다. 이어서 파르나쏘스 산이 보이는 곳 가까이 `레테(망각의 강)`란 신화와 관련된 곳을 지난다.그리스는 곳곳이 신화의 배경이며 고전의 터전이다. 신화는 스토리 텔링으로 이카로스 아버지가 만든 깃털 날개를 달고 세계 곳곳으로 날아간다. 오늘의 첫 목적지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였다.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은 델포이에서 37km 떨어진 곳으로 스테리 헬리콘 산기슭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도원으로 걸어가는데 앞쪽 계곡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수도원 입구 앞 넓은 공터에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성지순례로 그곳을 찾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한가해 보이는 것이 평화롭다. 고된 삶의 길에서 정적인 수도원을 찾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며 지친 영혼에게 신선한 바람을 넣어주는 일이다.나무 그늘에서 오밀조밀한 수도원 전체의 모습을 바라본다. 참 예쁘다. 건축의 낯섦이 이국의 모습을 확 느끼게 한다. 연붉은 벽돌로 쌓은 독특한 건축물이 건축미학의 모델이 될 것 같다.그리스는 그리스 정교가 국교다. 국민 대부분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하고, 죽으면 영결미사를 드린다. 성인의 성화가 그려진 작은 문을 통과하자 대성당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은 그리스 중세 비잔틴 교회 중 그리스 신화 속 물의 요정 `다프네`란 이름을 따온 다프니(Daphni) 수도원,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모자이크 벽화로 유명한 키오스 네아모니(Nea Moni) 수도원과 함께 199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이들 수도원들은 중기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서로 떨어져 있지만 건축의 형식이나 장식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호시우스 루카스 성인은 953년 56세 때에 7개월을 더 살고, 8시간만에 돌아가셨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겸손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치유와 예언의 능력(은사)을 갖고 있었다. 962년 크레타가 이슬람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의 예언처럼 크레타는 동방교회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날도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한다. 지하 한 방에는 루카스의 관도 모셔져 있다. 십자가 형태로 꾸며진 대성당(Katholikon:카톨리콘) 안으로 들어갔다. 사면의 벽은 성화로 가득했다. 둘레의 사각형 건물들이 중앙의 대성당 높은 팔각형 돔을 둘러싸고 있다. 작은 방들을 대성당 둘레에 건축함으로써 실내 공간의 용적률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각 방의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게 꾸몄다. 교회 바닥과 벽면과 천정의 대리석,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 풍부한 장식들 하나하나가 최고의 예술품으로 정교하고 조화롭고 호화롭다. 아치형의 천장에는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조화롭게 프레스코화가 이어진다. 예수의 생애도 있고, 사도들의 모습도 있다. 중앙부 돔의 지름은 9m다. 비잔틴 건축 양식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듯 성화를 올려본다. 천 년 이상의 역사 속에는 한 생애의 삶이 바톤을 이어받듯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외벽을 본다. 돌과 벽돌과 흙으로 쌓은 외벽이 연한 황토색으로 붉다. 밖에서 보는 건물 곳곳의 창문도 아치형으로 정교하고 멋지다. 빼어난 건축인의 손길이다. 천년 전의 출발이 지금도 진행되고 천년 후에도 진행될 것이다. 그것은 이승을 벗어나 후세에 대한 천국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것이 확실함을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에서 본다.

2012-10-26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⑽

▲ 조선시대의 풍수학자 이성지가 예언한 대로 영일만 모래바람 속에 세워진 포항제철소 건설 현장의 항타 파일은 흡사 대나무의 모습이다.본지는 지난 8월부터 기획특집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를 연재해 경북동해안에 내재된 역사문화사회적 원류를 고찰함으로써 경북의 정체성에 또 하나의 곶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 이를 위해 지난 8회에 걸쳐 `제1부 경북동해안 철기문화를 꽃 피우다`를 통해 선사시대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를 무대로 초기 국가들의 명멸(明滅)과 정치경제문화의 발전에서 鐵器(철기)가 첨단소재의 정점에 서는 과정을 짚어봤다.이제 본지는 포항을 중심으로 싹튼 철기문화의 씨앗이 포스코의 영일만 신화를 통해 숙명처럼 실현되는 과정에 이름으로써 제1부를 마무리하고자 한다.글 싣는 순서1부=경북동해안 철기문화 꽃피우다1)프롤로그2)한반도 철기문화의 뿌리3)경북동해안은 고인돌 왕국4)경북 동해안의 소국5)동예인들의 후예6)신라가 진한지역을 통일하다7)철을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8)철기문화발전의 최적지 영일만9)고래의 고장 영일만10)철기문화의 맹아, 포스코 신화 낳다조선 풍수학자 이성지, 현재 제철소 인근 유람하다“대나무가 나면 수만명 살 곳… 모래밭 없어져” 예언영일만 척박한 환경 극복 `한국 근대화` 상징 우뚝□ 쇠부리터의 고장 영일만본지는 이번 특집을 통해 경북동해안에서 포항의 철기 유적과 유물이 북구는 흥해읍 옥성리, 마산리, 학천리, 성곡리, 대련리, 냉수리 등에서 발견됐음을 거론했다. 기록에 의하면 북구에는 이밖에 죽장면 상옥리 무쇠골의 철광산, 기북면 성법리 일대의 철물 생산이 기록돼 있으며 남구에도 호동 고분군의 철기유적과 도심이 들어선 이동의 무소마을, 대보면 대보리 단야(鍛冶) 유적지 등이 산재해 있다.또한 블루밸리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장기면 일대에도 이른바 쇠부리터(야철지, 冶鐵址)로서 방산리 불미골이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06년 향토사학자 이상준씨 등 장기발전연구회가 발간한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등의 자료에 따르면 `불미`란 `풀무`의 사투리로서 대장간이나 제철소에서 용철로(熔鐵盧)의 연소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기를 분사하는 장치이므로 제철소가 있던 골짜기임을 짐작케하는 근거이다. 장기에는 또 계원2리 적석(赤石)마을이 철이 생산된 곳으로 전하며 산서리 월산마을에는 1960년대까지도 수연(水鉛, 몰리브덴, 스텐레스강 등의 합금재료) 광산이 있어 `쇠점이`즉, 쇠붙이를 판매하던 점포라는 마을이름이 있었다.역사나 신화적으로도 연오랑세오녀 신화 등을 통해 이미 영일만 일대가 남구 동해면 도구리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철기문화를 일본으로 전파하는 요충이 됐다는 학설이 근거를 더하고 있다. `노래하는 역사`의 저자 이영희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는 예로부터 형산강과 남구 오천읍 일대는 사철(砂鐵)을 건져 낸 무쇠의 내였고, 신화의 무대인 청림동 일월지(日月池)는 쇠부리터의 중심지며, 그 우두머리가 연오랑과 세오녀라고 주장해왔다.□ 철강산업 맹아론에 대한 경계이처럼 포항이 제철의 중심으로서 오늘 대한민국 철강의 산업기지가 됐다는 맹아론(萌芽論)에는 경북동해안에 철강산업을 위한 천혜의 조건이 갖춰져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히 확인된다. 또 그 취지 만큼이나 학계는 물론 산업계 연구소들의 고증도 상당한 성과를 낸 덕에 포항은 국내 철강사의 보고로서 충분히 자리잡고 있다.하지만 향토사학자 강호진씨(포항 영일중 교감)가 지난 1988년 계간 `포항연구`창간호에 실은 `영일 호동 폐고분군 조사보고`에 따르면 국내에는 과거 영일군 오천면의 `연일57호`를 비롯해 영남에만 모두 24곳의 철광산과 야철지 등이 산재해 있다. 구체적으로 경주 전곡면, 경산군 남천면, 달성군 거창면, 경남의 양산군 물금면, 김해군 대동면, 하동군 악양면, 동래구 망미동 등이 그곳이다.따라서 곳곳에 철광산이나 그 유적이 산재했다는 근거만으로 이곳이 현대 제철산업의 부지로 천혜의 땅임을 강조하는 맹아론이라면 견강부회라는 반박에 빌미가 될 수 있다. 특히 이 땅에 꽃핀 철기문화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중세봉건제 하 조선을 거치면서 퇴락할 대로 퇴락하고 일제는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은 조선에서 황해도 겸이포와 청진을 낙점하고 제철소를 가동했다.□포스코, 신화가 현실이 되다결국 찬란했던 민족문화와 제철 과학기술은 끊어질 듯 명맥만 유지한 채 이어지다가 마침내 지난 1960년대 포항종합제철의 건설로 혁명과 같은 전기를 맞게 된다. 자생적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척박한 시기에 토목과 금속 등 당대 한국의 일류 공학자들과 함께 제철소 후보지를 검토하던 박태준에게 영일만이 선택된 것이다. 그에게 모래 바람이 불어대던 경북동해안의 한 포구는 제품과 원료 수송선 접안을 위한 깊은 수심과 부지 면적 등 제반 조건은 물론 북한의 공격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최적의 입지로 확정됐다.이는 근대적 세계관에 어느 만큼 근접했을지 알 수 없는 조선의 한 풍수학자에 의해 일찍 예견됐다는 흥미로운 일화로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관상감에 근무하며 천문, 지리, 지상, 잡학의 대가였던 이성지(李聖至)가 친구를 만나고 유람도 할 겸 어룡사(魚龍砂) 부근에 찾아온다. 어룡사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과 북, 즉 포항제철소 부지와 포항 송도해수욕장 전역의 옛 지명이다.그는 현지의 선비들과 함께 이 일대를 둘러본 뒤 `서편의 운제산이 십 리쯤만 떨어졌어도 수십만의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며 `이만한 지형이라도 좀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지방선비들이 `풀 한 포기 없는 백사장에 어찌 수십만의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라며 믿으려 하지 않자 다음과 같은 시를 뇌었다.`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동천래 회망무사장)`즉,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 명이 살 곳이니라. 서쪽 문명이 동방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는 뜻이다. 그의 예언 대로 하늘을 찌를 듯한 제철소 굴뚝이 대나무처럼 우뚝우뚝 서고 포항은 이제 인구 53만명의 특정시로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모래바람을 극복한 경북의 혼하지만 이 같은 신화에 이르기까지 영일만의 척박한 환경은 포스코의 시작에 큰 걸림돌이었다. 건설 요원들은 사막전의 병사와 같았고 건설사무소는 독일군 영웅의 야전지휘소를 연상케한다며 애칭이 `롬멜하우스`였다.1968년 6월15일 부지 성토 및 정지 착공식 이후 포항제철의 창업 주역과 영일만의 해풍에 단련된 경북동해안의 건설 역군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농어민의 아들과 함께 `산업의 쌀`,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에 매달렸다. `보릿고개의 나라`, 한국의 근대화는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라는 국가적 모험이 성공함으로써 식민지배에 이은 한국전쟁 60여년 만에 `세계 7대 무역대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기적을 낳게 됐다. 이로써 먼 옛날 신화의 세계가 암시하고 선사와 역사의 유적으로 배태된 철기문화는 영일만에서 현실이 됨으로써 경북의 혼 속에 첨단의 경쟁과 도전·극복의 기질이 숨쉬고 있음을 증명해냈다.1부 끝□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2012-10-23

물부족 적극 대처로 가뭄·홍수 예방 큰 효과 기대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천277㎜로 세계 평균 807mm의 1.4배이다. 그러나 높은 인구 밀도로 1인당 수자원 강수량은 세계 평균(1만6천427㎥/년))의 16%인 2천629㎥/년에 지나지 않는 국제적으로 물 부족 국가이다. 또 연 강수량의 70% 이상이 6~9월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자원 총량의 27%만을 사용하고 있어 물 이용 효율성도 낮은 실정이다. 또한, 지구 온난화 등 기상변화로 가뭄과 홍수가 빈번해져 미래 물 부족에 대처하려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북도와 한국농어촌공사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가상변화로 초래되는 물 부족에 대처하고 홍수조절능력 증대는 물론 수질개선과 생태복원 등 다양한 효과가 기대된다.□ 둑 높이기 사업이란?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노후화로 붕괴 위험성이 있거나 홍수나 가뭄 피해가 우려되는 4대강 유역 96개 저수지를 대상으로 기존제방 덧쌓기 등 둑 높이기와 여수토 확장, 전동식 수문 및 소수력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농업용 저수지의 담수능력을 향상시키고 노후화된 수리시설을 보강해 재해 예방 및 홍수조절 능력을 행상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특히,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기존 저수시설을 보강하는 사업으로 신규 댐 개발보다 환경적 위해요소가 적어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4대강 사업의 목적을 달성토록 하는 최선의 대안이다. □ 경북지역 사업개요경북지역은 2009년부터 연차적으로 2012년까지 19개 지구에 총 3천766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낙동강수계 31개 사업지구의 61.3%를 차지하고 있다.지금까지 추진상황으로 2009년도 예천 운암지를 비롯해 봉화 창평지, 청송 구천지 등 3개 지구를 착공하고 2010년 나머지 16지구를 착공해 4대강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사업을 마무리한다.반면 낙동강 수계의 31개소 중 경북 19개, 대구 1, 경남 11개소 중 낙동강 수계 31개소에 6천667억원이 투입되며 낙동강 수계 31개소를 포함 전국 96개소에 2조2천986억원이 투입된다.□ 경북지역 둑 높이기 사업지2009년에 착수한 봉화 봉성의 창평, 안동 풍산의 만운, 청송 부남의 구천 저수지이다.또 2010년에는 예천 용문의 운암, 상주 공검의 오태와 지평, 구미 옥성의 옥성, 영주 풍기의 삼가, 청송 진보의 고현과 갈평, 경산 용성의 송림, 영주 단산의 단산, 봉화 재산의 동면 저수지가 착수됐으며, 의성 구천의 조성 저수지는 지구가 취소됐다.또 의성 옥산의 금봉1, 의성 가음의 가음, 영천 임고의 임고, 성주 벽진의 봉학, 고령 덕곡의 덕곡, 봉화 봉성의 금봉2 저수지 등 19개 지구는 낙동강 내이며, 낙동강 외에 울진 원남의 매화, 포항 기계의 온천 저수지 등 2개소이다.□ 4대강 사업과 연계, 지역명소 개발경북도와 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해 `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도 추진한다. 기존 개별단위 사업 위주로 추진해 오던 농촌지역개발을 농어촌이 가진 자원과 연계·개발해 테마가 있는 농촌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것.농업용 저수지의 친환경적인 개발을 통해 주변에 아름다운 친수 공간을 조성하고 농촌의 자연경관과 우수한 어메니티 자원을 활용해 마을 주민과 도시민들에게 휴식처와 쉼터를 제공하는 도·농교류의 공간을 조성한다.또 저수지를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시설이 아니라 다원적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농촌지역 생활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활력이 넘치는 휴양공간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여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주기로 했다.따라서 저수지 수변에 숙박 및 휴양시설, 승마공원, 농산물 직거래장터 등과 같은 농업생산·유통, 문화, 복지, 휴양, 농촌관광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조성해 생태·관광형, 휴양·레저형, 역사·문화형 등 각 지역 특성에 맞는 형태로 개발한다. □ 둑 높이기 사업의 기대 효과△ 가뭄 피해 예방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쉽게 표현해서 물을 담는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사업인 만큼 수량이 부족한 갈수기에 대비해 더 많은 물을 가둠으로써 안전영농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이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목적 및 다양한 기능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추가로 확보되는 2억 4천만㎥의 수량은 소양강 댐의 1년 하천 유지용수 공급량인 2억 5천5백만㎥ 과 맞먹는 양이며, 80만 톤 저수지 300개소를 조성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또 저수지의 물은 갈수기에 집중적으로 방류해 농어촌지역 소하천의 건천화를 방지하고 4대강 본류의 하천 유지유량을 증대시키게 된다.△ 수질개선 및 수변 생태계 복원 등에 기여이처럼 하천의 유량이 증대되면 수질개선과 생태계가 보전되고 농촌의 수변 환경이 개선되면 인근지역주민의 생활환경 개선은 물론 도·농 교류 활성화에 따른 농가소득 증대 등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된다.△ 홍수 등 재해예방둑 높이기 사업 대상 저수지 96개소 중 30년 이상 노후 저수지는 62개소로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설 사업정보물 안전진단 결과 C, D 등급의 낮은 등급을 받은 저수지도 78개소 달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실정이다. 이처럼 노후화된 시설물에 대한 둑 높이기 사업은 기존제당 덧쌓기와 후면 덧쌓기 등을 통해 저수지 단면을 확대하고 노후제방을 보강해 안전도를 높이게 된다. 또 추가 확보된 저수용량을 홍수조절 공간으로 활용해 전보다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하류부 농경지화 가옥 등 홍수피해 위험도 경감시킨다.△ 청정에너지 생산수량이 풍부하고 낙차가 큰 저수지는 소수력 발전을 병행한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녹색농촌을 만드는 등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으로 인한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 향후 대책생명이 깨어나는 강,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저수지의 둑을 높여 저수량을 확보하고, 우기에는 홍수조절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홍수 및 가뭄 피해예방과 수질개선, 생태복원 등을 동시에 달성하는 사업이다.물의 수요와 공급을 과학적으로 통제, 관리함으로써 농어촌지역 주민들에게 친숙하고,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변 환경을 돌려줄 수 있고, 특히,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활패턴이 변화하고 인구가 증가해 더 많은 수자원이 필요해짐에 따라 사업의 성공적 수행이 더욱 필요한 상황에 있다.경북도와 한국농어촌공사는 앞으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과 저수지 및 농어촌 소하천 수변 환경 개선을 통해 지역주민의 생활환경 개선 및 도·농교류 활성화에 따른 소득증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농어촌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업을 추진한다.최 웅 경북도 농수산국장은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전 지구가 완료되면 도내 기존 저수지 5천568개소의 총 저수량 4억 200만㎥의 13%인 5천200만㎥의 농업용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어 이는 성주댐 유효저수량의 1.8배에 해당하는 수량이다”며 “장래 예견되는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하천유지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낙동강 수계 하천생태계와 자연환경 보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2-10-22

“항만 운영 경험 바탕으로 물동량 유치 최선”

- 영일만항이 개장 3주년을 맞이했다. 누적물동량 30만TEU의 의미는?△ 2009년 개장 초기에는 월평균 1천 TEU 정도였다. `괜히 시작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조했다. 현재 월평균 1만 2천 TEU 정도의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다. PICT(포항영일신항만주식회사)와 포항시 등 관련 기관이 물동량 유치와 항로개설에 적극적인 포트 세일을 펼친 결과다.- 최근 포항~부산 연안선 노선 폐지로 물동량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실태와 문제점을 얘기해달라.△ 개장 초기 주 타켓으로 꼽혔던 대구·경북의 물량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포스코·현대제철에서 수입하는 고철·부자재 등을 부산항을 통해 들여오게 된 것이 연안선 운항의 계기다. 육상운송으로 처리했던 물량이다. 한진해운은 월 4천 TEU를 처리하면 채산성이 있다고 했고, 향후 수익 발생 때 PICT와 수익을 배분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하역비를 낮춰준 것이다. PICT가 한진해운을 대신해 화주 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월 4천 TEU를 초과해도 한진해운 측은 연안선 면세유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영업성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역비 인상 요청에 한진해운이 난색을 보였고, 계약이 만료되는 11월 중순 운항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어쨌든 연안선 운영으로 금전적인 손실을 보았다. 긍정적인 효과는 없었나?△ 개장 초기 항만활성화와 홍보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PICT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항만의 발전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해상운송을 통한 화주의 실질적 물류비 절감을 실현해, 화주들에게 컨테이너 터미널 이용 효과를 인식시켰다. 향후 직항선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물동량 확보 대책은?△ 사실 연안선 운항 중단은 우리 측에서도 대비했던 사안이다. 2010년부터 물동량 확보에 전념했다. 올 하반기에는 쌍용자동차 외에도 마쯔다 자동차를 유치했다. 2013년에는 올해와 비교해 물동량이 약 100%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첫째, 포스코 선재의 컨테이너화로 동남아 수출 물동량 증가가 예상된다. 또 부산항 환적 외항선사와 영일만항 기항도 협의 중이다. 이와 함께 중국, 동남아의 연안선 이용 화물을 영일만항 직항으로 전환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일부는 직항으로 전환했다. 러시아에 스틸하우스를 수출하고 포스코 부원료와 조사료 등을 수입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원전 피해 지역인 센다이에 제오라이트 수출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동안의 항만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물동량 유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김상현기자 shkim@kbmaeil.com

2012-10-22

“영일만항 경쟁력 분명히 있다”

▲ 박승호 포항시장지난해 6월 장기초등학교. 장기 산딸기 축제 행사장에서였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인사말을 한 뒤 흥을 돋우려고 `영일만 친구`를 불렀다.박 시장은 이 노래를 좋아하고 듣는 사람에게서 “와” 소리가 나오게 할 만큼 잘 부른다. 박 시장에게 `영일만`이 각별하기 때문일 것이다.포항이 포스코로 상징되는 `영일만 신화`에 이어 영일만항에서 도시의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영일만 르네상스`다.“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 니카타까지 얼마나 걸리죠? 아무리 빨라도 5일은 걸립니다. 훈춘-나진항을 이용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틀이면 됩니다. 영일만항은 분명히 경쟁력이 있는 항입니다” 박 시장의 첫마디였다. 중국 동북 3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15일 `추진력`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박승호 시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글 싣는 순서① 동북아 거점으로 육성되는 훈춘② 경제기술개발구 장춘③ 훈춘 포스코물류단지 개발 청사진④ 동북3성 진출 기업의 목소리⑤ 영일만항 물량 유치의 난제(1)⑥ 영일만항 물량 유치의 난제(2)⑦ 영일만항 활성화의 관건끝- 항만의 활성화는 대형 화주 유치가 있어야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가 가능하다. 현재 추진 상황은 ?△ 포항에는 세계적인 철강기업 포스코가 있고 철강 공단 안에도 잠재적인 물동량이 많다. 포항시의 적극적인 일대일 마케팅으로 지난해 12월 포스코의 벌크 방식 수출을 컨테이너로 전환한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포스코 창립이래 4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말레이시아 파시르구당과 베트남 호찌민으로의 컨테이너 물동량도 증가할 전망이다. 쌍용자동차의 러시아 KD(Knock Down) 수출이 2010년부터 시작됐고 현재 연간 3만대나 된다. 마쯔다 자동차 역시 내년부터 연 2만 5천대 이상 수출될 예정이다.- 영일만항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 소개하면.△ 인센티브는 크게 화주와 포워딩 업체를 위한 이용장려금과 선사에 지급되는 항로연장지원금, 특화항로 개설과 관련한 운항손실보조금으로 나뉜다. 화주와 포워딩 업체가 영일만항을 통해 수출·입을 하면 유치물량에 따라 최대 TEU당 4만 원의 이용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영일만항을 기항하는 선사에는 3억 원 이내에서 3년간 항로연장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특화항로를 개설한 선사에는 2년 동안 손실액의 50% 이내에서 연간 10억 원의 운항손실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영일만항 인근에는 부산항, 울산항 얼마 전 개장한 마산항 등 경쟁 항만이 많다. 영일만항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영일만항은 지리적인 특수성으로 러시아와 중국 동북 3성의 물동량에 대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동북 3성 물동량의 동해 출구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항만으로 머지않아 이들 지역과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쌍용 자동차·일본 마쯔다 자동차의 수출은 대 러시아 수출기지로 영일만항이 최적지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나.- 항만 성장에는 다양한 항로개설은 필수요건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영일만항 기항 선사는 고려해운, STX팬오션 등 5개 선사다. 이들은 러시아 3개 항로, 중국 2개 항로, 일본 1개 항로, 동남아 1개 항로 등 7개 항로 10항 차를 운항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러시아 자루비노,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노선과 일본 고베, 오사카 등 항로를 개설함으로써 13개 항로 18항 차로 늘려 서비스할 계획이다. 또 총사업비 2천89억 원의 국제·연안여객선부두 등의 조기 건설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여객선터미널 건설을 대비해 영일만항과 일본 마이즈루항을 잇는 크루즈선이 올 5월과 7월 2회 시험 입항했다. 현재 일본 측에서 더 적극적으로 항로 개설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영일만항을 이용하는 대구·경북 물동량이 전체 물동량의 1%밖에 안된다. 어떻게 할 건가?△ 부산항과 경쟁해야 하는데 규모, 항로와 항차 수 등 항만서비스 측면에서 영일만항과 부산항은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으로 가는 고가의 전자제품 등이 나진항을 이용하는 때가 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소한 동북 3성 지역으로 수출되는 물량은 영일만항으로 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 인프라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또 배후단지 조성을 통해 물류를 생산·가공·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부산항 등 타항만의 이용 화물을 유치해 항만을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포항의 철강 산업을 자동차, 선박, IT 등 다양한 산업과 접목시켜야 한다. 또 냉동창고가 없으면 검역을 할 수가 없어서 농수산물 수출입이 불가능하므로 냉동창고 건립이 시급하다./김상현기자이 특집 기사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2-10-22

원자력발전소 `자동정지`는 사고예방 위한 안전장치

국내 원자력 발전소가 잇따라 고장 정지하면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 측에서는 “고장으로 자동정지가 되는 것은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안전성 문제가 원전 고장이나 정지와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이청구사진 월성원자력본부장으로부터 들어 봤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자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나. △`원자력발전소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접하면 국민들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큰 문제가 생겼다`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커진 분위기에다가 원자력 자체가 일반인들은 자세히 알기 어려운 전문 기술의 영역이어서 더욱 오해하기 쉬운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가장 안전한 상태는 안전하게 `정지`하는 것이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전하게 정지시킨 후 확인하고 정비해 운전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전`을 위해 `자동 정지`하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원전 `정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이는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다.원자력발전소 자동정지는 실제로 `기기`가 고장나지 않았는데 잘못된 `정지신호`로 정지되는 경우도 있다.이를 거짓 정지신호(False Signal)라고 하는데 이때도 발전소는 일단 자동 정지된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소가 잘 정지된다는 것은 안전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게 정지한 후 고장난 부분을 정비하거나 오신호 발생 원인을 완전히 규명하고, 완벽한 상태의 원자력발전소로 만들어 다시 전기를 생산한다.-원자력발전소 `고장`과 `사고`에 대한 구분.△일반인들의 생각에 고장도 사고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원자력업계는 고장과 사고를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우리는 일반적으로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어느 부위에 문제가 생겨 멈춰 서면 `고장`이라고 하지 `사고`라고 하지 않는다. `사고`는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와 충돌 또는 도로 난간을 들이받거나 행인을 치는 등 차량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친 경우를 말한다.원자력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의 개념도 이와 같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핵연료가 상당 수준 손상되거나 방사성 물질의 외부 누출 또는 시설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고장`이란 인명이나 방사선 환경 피해 없이, 부품이나 설비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등의 상태가 발생했을 때를 말한다.-한국 원전은 IAEA 기준 4등급 이상 사고가 있었나.△단 1건도 없었다.원자력발전소도 가끔 `고장`이 발생해 운전을 멈추는 경우는 있지만, 국내 원전은 1978년 고리1호기 가동 이후 30년이 넘는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고장 또는 사고 등급을 `0등급`부터 `7등급`까지 8단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수치가 클수록 큰 사건을 의미한다.`0등급`은 경미한 고장으로 `등급 이하`, `1~3등급`은 `고장`, `4~7등급`은 `사고`로 분류한다. 이 기준은 IAEA와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국(OECD/NEA)에 의해 1992년 3월에 제안됐으며 59개국의 주요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다.한국의 원전은 IAEA 4등급이상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고, 방사선 피해 등이 발생하거나 원자력 시설에 중대한 손상을 입힌 사례도 없다.-국내 원전과 해외원전 `고장정지율 비교 △고장 정지가 아무리 안전과 무관하다고 해도 사소한 고장이라도 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최근 원전 고장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고장정지는 세계 원전과 비교해 아주 적은 편이라는 게 원자력계의 발표다.지난해 국내 21기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모두 7건의 고장 정지가 발생해 고장 정지율 0.33%를 기록했다. 원전 1기당 평균 0.3회 고장정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가 호기당 2회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원전 건전성은 아주 높은 편이다.하지만 우리나라 원전도 도입 초창기인 1980년대 중반까지 호기당 연 5건으로 고장이 잦았다. 원전의 속성상 준공 초기 발전 시설이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에 고장이 잦은 것도 원인이었고 운영기술이 미숙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운전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1998년 이후에는 호기당 연 1건 미만으로 감소해 세계 최고 수준의 운영기술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2-10-22

신화가 전하는 인류 최초 법정 아레이오스 파고스

이번 주부터 하재영 시인의 그리스 기행문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반도국이면서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하고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꽃피운 나라입니다. 현재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낙천적인 그리스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수많은 문화유적을 지역마다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재영 시인의 `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아레이오스 파고스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밟았던 곳을 다시 밟는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나라 그리스.아테네 공항에서 5유로 티켓을 끊고 탄 버스는 펑 뚫린 길을 벗어나 시내버스처럼 곳곳 에 멈춰 손님을 태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들어서며 나는 지난 번 찾았던 곳을 떠올렸다.파르테논 신전, 아고라, 제우스 신전, 모나스티라키, 오모노이아, 고고학 박물관….6년 전 겨울이었다. 흰색이 주조색인, 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사는 그리스 아테네에 들어서며 난 내 여행 이력에 새로운 곳을 보탰다는 설렘으로 온몸은 충만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호 `아크로폴리스(Acropolis=우뚝 솟은 곳이란 뜻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음)`을 바라보며 후일 다시 이곳을 밟을 수 있을까? 다시 찾는다면 누구랑 동행하게 될까?그런데 또 밟는다. 가까이 지내는 문우 두 명과 나, 그리고 그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여성 셋, 그렇게 여섯 명이 한 팀이 되어 떠난 여행이라 의미는 각별했다. 이 여행을 위해, 조각난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처럼 일행들은 시간의 자투리를 모으기 위해 땀흘렸다. 시간 조각보 위에 돈을 모으고 일정을 짜고,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것이다.공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지나 버스는 종점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내린 버스엔 공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다시 탔다. 신타그마 광장 가까운 숙소에 짐을 푼 우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일정을 협의했다. 우선 아크로폴리스로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벽면에 걸린 그리스 지도를 보았다. 섬, 섬, 섬…. 그리스는 섬이 많은 나라다.그 섬마다 신화 한 자락 끈을 잇고 있는 신화의 나라이기도 하다.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 응달을 따라 일행은 발을 옮겼다.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높은 온도에 비해 응달은 시원했다. 길가의 상점을 기웃기웃하며 더딘 걸음으로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아레스의 언덕이란 뜻)에 올랐다. 반질반질한 바닥은 수천년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미끄러웠다.신화에 따르면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인류 최초의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딸 알카페를 겁탈하려는 아리로티오스(포세이돈의 아들)를 죽였다. 결국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올림포스 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정당방위로 인정하여 무죄 선고를 한다. 바로 그 장소가 아레이오스 파고스다. 현재 그리스 대법원의 이름도 아레이오스 파고스다. 이런 신화적 요소가 있는 이곳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보듯 아테네 기독교 전파와 밀접한 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서 전교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시내를 배경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어서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이 닫혔다.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오후 2시 45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 우린 다음에 구경하기로 하고 아크로폴리스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필로포스(Philopos) 언덕으로 향했다. 필로포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남서쪽에 있는 낮은 산이다. 그곳엔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기 전까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동굴 속에서 머물렀다고 한다.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스승이며 `너 자신을 알라!`란 말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다. 기원전 470년 경 태어나 폴리스의 신들을 모독하고 젊은이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받은 사람이다. 하늘 중심의 신화적 철학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을 주창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키케로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다.“고 했다. 입구는 쇠창살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하다. 아테나엔 이곳보다 더 가치를 부여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우린 필로포스 언덕 위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고, 남쪽의 피레우스(Pireus)항도 내려보았다. 피레우스항은 아테나로 들어오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다. 대부분의 크루즈 투어도 이곳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올려볼 수 있는 올리브 나무 그늘에 앉아 이번 여행 일정을 짠 최 형의 설명을 듣는다.“….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의 여신 아테네를 모신 신전으로 다른 여신들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도리아식 건축의 백미죠.”최 형의 이야기를 들은 우린 올리브 나무 그늘로 이어진 길을 밟으며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향했다. 내가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당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 동편에 있었다. 전시실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단보다 낮은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유적을 주로 전시했다. 그런데 그 사이 새롭게 박물관을 건설하고 그곳에 있던 유물을 옮긴 것이다. 일설에는 영국에서 빼앗아간 유물(특히 `엘긴 마물`)을 되찾으려 했는데 `당신 나라에는 그런 유물을 보관할 박물관이 없잖느냐?`며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에 건설했다고도 한다. 그렇기에 옮긴 박물관엔 `뉴`자를 접두사로 붙이고 있다.`와!`정문을 통과했을 때였다. 박물관 내부로 가기 위해서는 강화유리를 밟아야 하는데 그 아래쪽은 유물 발굴 모습 그대로다. 그야말로 오래된 역사의 현장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곳에서 발행한 브로슈어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 남쪽 300미터 떨어진 곳에 베르나르 추우미(1944년생으로 뉴욕에서 활동)와 아테네에서 활동하는 ARSY의 미카엘 포티아디스가 설계한 2만1천평방미터의 건물로 1만4천평방미터의 전시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건물은 4층으로 되어 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가게, 카페와 짐을 보관하는 방이 있고, 비탈진(slopes) 통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양 옆으로 고대의 도자기, 부조들을 전시한다. 2층(level 1)에는 아크로폴리스의 에렉테이온(Erectheion) 신전 여인상과 파르테논 이전 및 로마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3층(level 2)에는 기념품 가게와 아크로폴리스를 전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고, 4층(level 3)은 파르테논 갤러리로 파르테논 신전을 원형 형태로 기둥과 부조, 석상을 배치하여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우리 일행은 흩어져 천천히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4층으로 관람했다. 유물유적 4천여 점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하루 중 몇 시간으로 둘러본다는 일은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식이 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작품들을 감상한다. 많은 것들이 눈에 익다. 전에 왔을 때 꼼꼼히 훑어본 작품들이고 또 책을 통해 본 작품들이다.전에 왔을 때 메모했던 글을 상기한다. `이것은 여러분이 조금 전 파르테논 신전 박공에서 보았던 니레아스상이죠. 상체는 인간이지만 꼬리를 보세요. 뱀입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죠. ….이곳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시 물질을 이루는 원소로 생각했던 불, 물, 새(공기)를 상징합니다.`이런 설명은 4층 파르테논 갤러리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내부엔 파르테논 신전을 설명하는 비디오 실이 있어 지친 발길을 멈추고 쉴 수 있다.신화란 무엇일까? 역사란 무엇일까? 문화란 무엇일까?여행 첫날 고대문화의 진수를 보면서 우리 문화를 생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든 국립 경주박물관이든 박물관에 있는 조상의 흔적이 현재의 우리 문화를 창출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낯선 땅에서 새롭게 발견한다.계속

201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