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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구미시, 지속성장 가능한 `젊은 도시`로 힘찬 발돋움

구미시가 2013년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었다. 인구 증가에다 공단 노후화 단지 구조고도화 등으로 각 기관이 선정한 연초 목표 달성 또한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인구 증가는 아파트 등 주거시설 공급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또다시 인구 유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올해에도 유지시켰다. 그 결과 구미시는 연내 42만 인구 달성이 가능해졌고, 역동적이고 지속적인 성장 가능한 젊은도시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성장엔진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역내 인구는 지난 10월말을 기준으로 41만 9천228명으로 올연말 42만 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구증가율은 도내 1위. 구미시의 꾸준한 산업단지 확충과 일자리 창출 등 타지에서 구미로 정착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 원인이다. 이런 조건 덕에 구미시는 올해 지역산업정책대상 종합대상, 대한민국 소비자신뢰 대표 브랜드(예스구미) 대상 기관우수상 등 21개를 수상했으며 남유진 시장도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 등 개인상을 3개나 받는 쾌거를 이뤘다.△근로자수, 포항시보다 많아구미가 역동적인 사실은 근로자 수가 11만명을 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내 최대 규모 도시 포항을 상회하는 것으로,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특히 구미 근로자는 젊은 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도시가 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는 앞으로의 도시 성장 기반 잠재력이기도 하다. 도시 계획 관계자들과 경북도는 현재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구미가 인구 면에서 포항을 제치는 일은 시간 문제일뿐이라는 견해가 많다. 일각에서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에 힘입어 구미는 투자유치 11조원, 5공단 조성등도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다.이 중심에는 남유진 시장이 있다. 그는 특유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다양한 기업지원정책을 펼쳐 올해 LG디스플레이 신규투자 8천326억 원등 지난 7년간 총 283개사 11조 4천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구미5공단, 4공단 확장단지 등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으로 6년만에 구미공단 면적이 70% 증가했으며, 16.5㎢(500만평) 규모의 신규공단 조성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유치를 위한 기반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착공한 구미국가산업 제5단지 9.34㎢, 4단지 확장단지 2.46㎢, 구미경제자유구역 4.7㎢ 조기조성 등은 구미의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며,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세대교체도 시기 적절한 시책으로 주목받는다. 또 4공단 외국인 투자지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첨단기업 유치와 더불어 노후화된 1공단의 구조 고도화가 착실히 진행 중에 있어 구미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구미 최초 1공단이 조성된 1968년 이후 4공단 조성이 완료된 2011년 까지, 기존공단(1~4공단) 24.4㎢(737만평)이 조성되는데 43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에 비해, 5공단 구미하이테크밸리 9.3㎢(283만평), 확장단지 2.46㎢(74만평) 등 357만평 공단 조성은 2008년 이후 불과 6년여 만에 성사시켜 구미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시는 또 현재 경제자유구역 4.7㎢(142만평)의 조기조성을 위해 산업부 등 중앙정부에 꾸준히 건의하고 있다.△ 활발한 기업유치와 고용창출 공단 조성은 기업 유치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창출 효과로 나타나 2013년 4월말 기준 지역별 사업체노동력조사(대구고용노동청 발표)결과 구미시는 종사자수에서 도내 1위(165,431명)를 차지했으며, 종사자 증가율도 +3.3%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어난 인구증가세로 주택 미분양 문제가 거의 해소 돼 현재 구미에는 집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집이 남아돌아 문제인 다른 시군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것이다.지역이 활활세를 유지하다보니 주택업체들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올 해 아파트 신규분양 3천793세대의 분양이 완료된 것은 수요 인프라 기반이 받쳐준다는 증거로, 내년에도 1천300여 세대 분양계획이 이미 잡혀 있다. 구미시는 주택 재개발재건축 추진 활성화로 관련법령 개정 등 주택정비사업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구미는 이런 추세에 힘입어 지난 9월 지역의 아파트매매가 상승률이 10.08%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 순조롭게 진행구미의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5공단과 확장단지 등 대형 프로젝트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5공단 대상지역 보상 보상 집행액은 11월 현재 2천109억 원으로 마무리 돼 향후 구미 경기활성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후화 된 1공단 구조고도화 사업도 세대교체를 발 빠르게 진행해 비워있는 한국전기초자 1, 2,3공장은 LG이노텍(주) 등 18개사가 입주하여 스마트기기용 광학기기 사업 분야에서 5천130억원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또한, 옛 동국무역, 한국합섬의 공장이 있었던 지역은 부지를 분할해 필요한 중소기업의 입주가 이루어졌으며, 1공단 내 휴폐업 부지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구)대우일렉트로닉스 부지의 성공적 구조고도화 사업추진의 경험을 토대로, 적기에 원하는 기업에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구미국가산업단지 제1단지에 있는 구미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를 109만평(3.6㎢)으로 확대 지정받아 당초 지정면적 94만평에 (구)대우전자 및 동국무역 부지 15만평이 더해졌고, 이에 따라 지구 내 벤처기업들이 법인세와 소득세 50% 감면 등 각종 세제 지원을 받게 되어 벤처기업체 경영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여 1공단 투자 활력에 청신호가 켜졌다.△녹색 명품도시 목표구미는 그동안 산업도시, 회색의 공단도시로 불려져 왔다. 그러나 구미는 지난 7년간 건강한 변신을 거듭했다. 남유진 시장이 2006년 취임 후 공약사업으로 시작된 일천만그루 나무심기운동은 대표적 사례다. 걸어서 5분 안에 시민 누구나 쾌적한 자연의 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안에 구미를 녹색공간으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산림청 선정의 2012 한국의 가로수길 62선에 구미의 도시숲 3개소가 뽑혔으며, 옥성 초곡소하천이 2013 아름다운 소하천 가꾸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이어서 2013 도시녹화운동 전개 우수사례 공모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또한,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낙동강 일원은 시민들의 환경, 생태, 레포츠, 휴식공간으로서 변모됐다. 2012년 준공된 낙동강체육공원은 도심 가까운 하천둔치에 9종48면의 체육시설과 산책로 15km, 피크닉장 등 시민여가공간이 함께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레포츠 활동과 다목적 시민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미시는 중장기 마스터플랜인 낙동강 구미 7경 6락 리버사이트 프로젝트수립으로 구미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문화, 레저, 관광을 연계하는 친환경 수변복합레저파크로 조성하기 위한 미래 청사진을 완성하여 낙동강 중심 녹색수변도시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유진 구미 시장경북 최대 역동적 도시 시민들 적극 참여 때문남유진 구미 시장 인터뷰 “공단 조성과 인구 증가 등 지역 발전이 목표했던 방향으로 차근차근 잘 가고 있다. 머잖아 인구 50만 시대 달성도 가능할 것이다”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 11만명이라는 것은 구미가 그만큼 젊고 성장 동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현재의 상태에 도달하는 데에는 시민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전국적 이슈된 구미 불산누출사고 발생 당시 시민들이 보여 준 헌신적인 자세 등 그동안 구미가 어려울 때마다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시정에 협조해 주었다면서 이런 자세가 전제되었기에 지금 구미는 경북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가 되고 미래의 초석이 조성된 것이라고 덧붙였다.남유진 시장은 “그 동안 집중해 온 도시의 외적성장과 질적성장, 그리고 세계속의 명품도시 시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민안전과 복지 등의 분야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구미/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3-11-19

철강인·시민 하나된 화합의 장, 지역 뿌리산업 미래 보다

경북매일신문과 포항시, 포항상의, 포항철강관리공단, 포항시노사민정협의회가 공동 주최·주관한 2013 포항철강산업대전 노사민정 어울림한마당, 포항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5, 16일 이틀 동안 해도 공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철강산업대전 영광의 수상자들과 참여업체 전시부스, 인기가수의 신나는 공연, 시민들의 어울림 한마당 등 행사의 이모저모를 화보에 담았다. 참가업체 보안유지 신경전… 시민 “철강제품 신기”○…포항에서 처음 열리는 박람회 성격의 철강산업대전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신경전도 수준급. 포스코LED는 개막 하루전날 일찌기 전시부스를 완료해 주목 받기도. LED업체답게 각종 전구를 이용한 다양한 모양의 전시홀을 구성했고, 상품을 증정하는 즉석 이벤트까지 마련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특히 다른 업체에서 벤치마킹 할까봐 극도의 보안속에 전시홀을 마련했고, 개막 당일 전시부스홀 앞을 흰 천으로 막아 지나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전시부스 구성을 놓고 동종업계끼리 과열 경쟁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관심을 끌기도. 후판 가공업인 제일테크노스와 융진은 전시부스 구성을 놓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다른 업체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융진은 세계 1위라는 현수막까지 전시부스 앞에 내놓고 홍보에 열을 올렸고, 제일테크노스는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홍보하기도. 이들 두 기업의 부스대결을 본 다른 업체 관계자는 “마치 기업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축소판 같다”며 “서로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펼쳐져 보기 좋았다”고 칭찬.○…철강업체 전시장을 둘러 본 시민들은 다양한 철강제품을 보고 놀라는 분위기. 특히 코스틸의 전시장 앞에 전시된 각종 못과 생활용품을 본 한 시민은 “포항에 이런 걸 만드는 공장도 있었느냐”며 “처음 접해 본 철강제품이 신기하다”고 했다. 코스틸 직원이 전시된 못을 좀 가져가도 된다고 하자 고맙다며 인사한 뒤 한손 가득 들고 사라지기도.○…이날 철강산업대전 대상 및 부문별 수상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권용덕(37) 동국제강 중앙기술연구소 연구원의 다섯살짜리 아들 형욱군이 직접 꽃다발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고, 마케팅부문상을 받은 김달삼(49) 시노펙스 전무이사는 이날 서울출장중인데도 상을 받기 위해 KTX를 타고 급히 내려왔다 올라 가기도. 또 포스코 임직원들은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류호문(81) 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에게 꽃다발을 전달, 주위를 흐뭇하게 했다.  사진=이용선기자/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3-11-18

“허허벌판 영일만서 `세계최고 철강회사` 기적에 한몫 했죠”

“4년만에 포항을 찾았는데, 올 때마다 자꾸 달라지는 것 같아요.마치 고향에 온 것 처럼 푸근합니다”2013 포항철강산업대전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류호문(81·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회장은포항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선 포스코의자랑스러움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그는 영일만을 포항제철소 입지로 선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허허벌판이었던 영일만 모래사장을오늘날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지난 15일 포항 영일대에서 만난 그는포항제철소 입지선정과정에서의 겪었던숱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300만평 모래사장 가진 영일만은 축복받은 곳1967년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이 구체화되자 정치권 실세들이 연고지 쪽으로 유치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여러 통로로 압력을 행사했어요.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충남 비인, 이후락 비서실장은 경남 울산을, 김윤기 건설부장관은 전남 보성을, 백진기 건설부 국장은 경북 칠포를 각각 후보지로 내세웠죠. 그리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에서는 삼천포를 적지로 지목했어요. 그때 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올바른 입지선정에만 매달려야겠다고 결심했죠.또 대형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항만기능, 적절한 면적(약 300만 평 기준), 견고한 지질, 공업용수 확보, 후방 교통여건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전국을 돌아보았지만, 그런 기준을 충족시킬 곳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홋카이도의 도마코마이, 도쿄(東京)만과 오사카만에 있는 가와사키제철과 일본강관, 규슈의 야하다(八幡)제철소에 이르는 수많은 제철소를 살펴보며 참고했죠. 국내로 돌아와 동해안 묵호항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남해안, 서해안 전역을 훑어가며 적소 찾기에 나섰죠.당시 전국 해안선을 두루 답사했는데도 그때는 일본과 같이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KISA의 총괄회원사였던 미국 코퍼스의 존스(Jones)씨가 경북 칠포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을 했죠. 이미 가본 곳이라 가고 싶지 않았지만 존스씨는 정부가 추천한 곳이니 한반 가봐야 한다고 부추겼죠.일정을 줄이기 위해 4인승 세스나 비행기를 빌려 타고 포항 해병대 비행장에 내린 후 택시를 이용하는 일정이었는데, 포항 상공에서 지금의 포항제철소 자리를 내려다보는 순간 아!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딱 맘에 들었어요. 지금와서 느끼지만 포항은 축복받은 땅이고, 이것이 바로 신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991만7천355㎡(약 300만 평)가량의 모래사장이 소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시가지와의 거리도 적당한 데다 해안이 만(灣)으로 돼 있어 항만입지 또한 최적이었죠.아름다운 소나무숲이 아깝기는 했지만 국가적 대업을 위해서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돌아오자마자 백진기 국장을 찾아가 포항에 적소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죠. 하지만 백 국장은 “거기는 모래사장인데, 예부터 사상누각(沙上閣)이라는 말이 있는데 되겠느냐”며 심하게 반대했죠. 모래 기반이 우수한 기반이라는 것은 지질공학에 있어 상식인데도 말이죠.“ 전남 보성에 밀려 자칫 탈락할 위기도포항 영일만을 선정하기까지 난관이 무척 많았죠. 전남 보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윤기 건설부장관은 다시금 보성을 넣어 재검토하라며 용역조사를 지시했죠. 아무리 확신이 있다 해도 위의 지시로 발주한 용역조사의 대상 안에 국장이 사상누각 운운하며 반대하는 포항을 포함시킬 수는 없었죠. 그러나 일은 묘하게 흘렀죠. 당시 국내 토목기술용역사는 한국종합기술공사 하나뿐이었는데, 이름만 용역사이지 제대로 기술인력을 갖추지 못했고 당연히 용역을 수행할 능력도 없었어요. 그때 용역 계약은 했으나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기술공사가 나보고 일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 순간 아, `포항을 대상에 포함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을 맡았죠.외부에는 일체 알리지 않고 각 전문분야의 후배를 동원해 사무실 인근 여관방에서 보름동안 작업했죠. 그리고 최종 용역보고서를 인쇄했죠. 마침 그때 청와대에서 제철입지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보고서를 본 김 장관은 노발대발했죠. 자신이 밀었던 보성이 탈락하고 당초 용역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포항으로 결론이 났으니 당연했죠. 그러나 보고서를 고쳐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 보고서가 그대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됐어요. 보고서를 본 박 대통령께서는 “거 잘됐군, 이대로 하게”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신 거죠. 그렇게 해서 제철소가 포항으로 결정됐죠. 결국 일은 잘됐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백 국장은 옷을 벗고 말았죠.“ 우여곡절 많던 제2제철 선정도 엎치락 뒤치락1973년 당시 제2제철 부지선정을 놓고 6년을 끌었죠. 제가 추천한 곳은 전남 광양만과 충남 아산만이었는데, 이 두 곳은 낙동강 하구나 대호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 었어요. 하지만 당시 정부는 6개의 전략사업과 입지를 선정하면서 제2제철의 입지를 낙동강 하구로 결정, 공포했어요.뒤늦게 알게 돼 오원철 당시 제2경제수석을 찾아가 왜 낙동강 하구가 부적합한지를 설명했죠. 낙동강 하구는 홍수 때마다 토사가 흘러내려와 수심 유지가 안 되고, 만이 아니어서 태평양의 파도를 그대로 받기 때문에 아예 항구를 만들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죠. 게다가 연약지반이라 제철공장과 같은 중공업시설은 불가능하고, 더욱이 부산시민의 식수 확보도 어려운 판에 공업용수를 어디서 구하느냐고 따졌어요.하지만 오 수석은 “이미 대통령의 재가가 나고 신문에 공포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리하느냐, 어떻게든 해내야 된다”며 호통을 쳤죠. 오 수석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장예준 당시 건설부장관에게 이 사실을 알려 대통령께 보고하도록 했죠. 장관의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다시 오 수석을 불러, 낙동강 하구 외에 다른 곳의 가능성도 조사해 보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죠. 오 수석이 잔뜩 화가난 채 저를 보고 제철입지로서 적당한 다른 곳이 어디냐고 묻기에 아산만과 광양만 두 곳뿐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 두 곳과 낙동강 하구를 포함한 세 곳의 지질조사를 시작하게 됐죠.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유에스스틸에 용역을 주었는데 평가가 아산만, 광양만, 낙동강 하구 순으로 나온거죠. 낙동강 하구는 불가한 지역이라고 평가된거죠. 오 수석은 입장이 난처했는지 이번에는 현대건설에 낙동강 하구에 대해 별도로 평가용역을 주더군요. 당시 현대건설에는 입지선정 용역기능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당시 현대건설의 용역 보고서는 짐작했던 대로 낙동강하구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죠.현대그룹이 제철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보고서를 무리하게 작성했고, 내용이 모순투성이어서 검수를 거부했죠. 그러던 어느 날 오 수석이 이번에는 느닷없이 포항 북쪽에 있는 영해지구를 후보지로 들고 나오더군요. 낙동강 하구가 아닌 아산만이나 광양만으로 결정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본거죠. 당시 제철업 진출이 염원이었던 현대는 영해에 병원(현 영덕아산병원)까지 세우면서 대항했지만, 항만·용수·제품수송로의 중복 등 모든 면에서 영해가 제철소 입지로 부적합 했죠.그러던 어느 날 박태준 당시 포철 사장이 “대통령께서 오 수석과 함께 내일 헬기로 제철소 입지 때문에 충청남도 가로림만을 둘러보자고 하는데 이 지역은 어떤가”라고 물었죠. 나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조목조목 들어 가로림만의 부적절성을 설명했죠. 박 대통령은 인접한 대호지구를 내려다보고 박태준 사장에게 “여기도 한번 조사해보라”고 지시했죠. 또 아산을 지날 때는 “아산이 좋긴 좋단 말이야”하면서 주위를 훑어보았죠. 이날 동행하면서 박 대통령은 박태준 사장에게 “어차피 제2제철도 자네가 맡아 해야 할 것이니 입지선정도 자네가 알아서 하게”라고 지시했었죠. 그날부로 결정권이 박태준 사장에게 넘어갔죠. 오 수석이 6년이나 넘게 결정을 못 보니 대통령께서 박 사장에게 넘긴거죠. 그때 이미 포스코에서 제2제철 입지를 아산만으로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건설부로 보내온 상태라 내심으로는 안심했어요. 그런데 반년쯤 후에 포철에 근무하던 후배가 찾아와서 “큰일났다, 아산이 아니고 대호지구로 결정됐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지요.“ 박 대통령 서거 후 결국 광양으로 바꿔네덜란드의 네데코사, 일본 항만컨설턴트, 가와사키제철 등 세 군데의 용역업체 가운데 두 군데서 대호지구를 추천했었죠. 곧바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다음날 만나 그동안의 상황을 소상히 얘기했죠. 김 부장은 편지를 쓰면 그 것을 대통령께 전해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날 밤새 편지를 작성해 이튿날 아침 일찍 김 부장을 통해 대통령께 전달했죠. 일종의 상소문이었죠.김재규 부장은 나의 중학교 선생님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죠. 묘한 인연이지요. 바로 그날 아침 10시께 청와대에서 즉각 장관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다음 날 고재일 건설부장관과 같이 청와대 회의실에 들어서니 신현확 부총리, 오원철 경제수석, 최각규 상공부장관, 박태준 포철 사장과 정명식 건설본부장 등이 앉아 있었죠.박태준 사장은 보고를 통해 대호지구, 아산만, 가로림만 순으로 용역 결과가 나왔다면서 대호지구로의 결단을 대통령께 요청했다. 대통령이 좌중의 의견을 묻자 모두들 `이견 없다`고 했었죠. 이때 건설부장관이 나에게 설명할 기회를 줬어요. 차근차근 설명했죠. 항만·용수·지질 등 제철소 입지조건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대호지구의 부적절성과 아산의 적절성을 설명했죠. 그때 대통령께서 “아산이 좋긴 좋은데, 제철은 공해산업이니까 가급적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시더군요. 저는 안 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뻘구덩이 대호지구에는 호안축조만 2년, 준설에 3년, 지반개량에 3년 등 10년이 걸려도 제철소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고 폭탄선언을 했었죠.결국 건설을 맡을 현대·대림·동아·삼환 4개사가 두달이상 용역을 수행한 결과 모두가 대호지구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었죠. 그런데 나중에 현대가 슬그머니 의견을 수정한 거예요. 결국 현대만 대호지구를 추천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산만을 추천해 3 대 1로 아산만이 결정됐죠. 결국 아산만으로의 결정이 확정된 6개월 후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제2제철은 다시 광양만으로 변경됐죠.류호문 회장은· 1932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 1956년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1965년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 수공학· 1956년 해무청 시설국 토목기사건설부 특정지역국 항만과항만국 토목기정건설부 산업입지국장· 1981년 대한준설공사 사장· 1982년 서울시농구협회장· 1987년 제동흥산 사장· 1991년 한진종합건설 사장한국항만협회 이사/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3-11-18

전남 구례 오산

`우리들 산악회`에서 이번 산행은 구례 오산과 사성암이란 연락을 받고 사전 정보를 입수할 요량으로 구례군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행정기관의 메인화면에서 두 가지 홍보가 나오는데 하나는 `오산과 사성암`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아골 단풍축제`를 알리는 내용이다. 또한 `구례10경` 가운데 9경에 속하는 오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오산은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해 있는 해발 531m의 호젓한 산으로 자라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 등반이나 단체소풍 코스로 사랑받는 정취어린 산이다.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암벽에는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조각돼 있는데 이를 마애여래입상이라 한다.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원효, 도선, 진각, 의상 등 네 성인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글이다.이 내용만 봐도 지리산, 섬진강 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구례군의 명소 중에서 오산 사성암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즐거운 산행을 그려본다.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4시간 산행정상오르면 지리산 자락·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모습 한눈에우리들 산악회원을 태운 관광버스는 88올림픽 길을 달려 오전 10시 반경에 구례군 문척면 죽연마을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주차장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산행을 준비한다. 어느 행사처럼 산행 홍보 말을 듣고 플래카드를 걸고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구례 오산 등산은 수월한 편이다. 등산코스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1코스는 죽연주차장을 출발해 사성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에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하산하는 4시간 반가량의 산행이다.2코스는 죽연주차장- 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능괭이갈림길- 용서폭포를 거쳐 용서마을을 지나 동해마을로 오는 코스로 6시간 50분이 소요된다.이번 우리들 산악회의 등산 일정은 죽연마을에서 사성암과 오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1코스의 일부 구간이다. 그러나 필자는 산행을 연장해 매봉, 선바위, 둥주리봉을 거쳐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긴 산행일정을 택했는데 오산 등산의 1코스에 해당된다.오전 10시40분경에 죽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길 초입의 콘크리트길이 끝난 지점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너덜지점에 돌탑들이 있다. 어느 등산로에서든 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만나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평이한 길로 1시간 남짓 올라가니 기암절벽위에 터를 잡은 사성암이 나타난다. 출발지에서 2.2km의 거리다. 여기에는 산행하는 사람들보다 불자들이나 일반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가을 등산도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특히 구례에 유명한 산수유나 벚꽃이 피는 봄철은 오산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풍경과 어울려 멋진 장관을 만들어낸다.사성암은 암반 위에 만들어져 있는 관계로 어느 사찰에서 보는 마당이 없다는 게 특색이다. 사차건물이 오산으로 오르는 절벽에 하나씩 세워져있으니 그 자체만 하더라도 볼거리가 된다.누가 이곳에 힘들게 사찰을 지었을까? 그 의문부터가 고행을 수행하는 길의 시초다.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산은 바위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겨서 명명된 이름으로 `사성암사적`에 의하면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고 해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기록이다.필자는 먼저 사선암 법당에 찾아들어 20분간 예불을 올렸다. 등산을 하면서 사찰에 들려서 매양 하는 것이지만 소원하는 것은 가족의 평안이고, 오늘 등산 온 일행들의 무사 귀환과 함께 필자가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예술소비운동의 대중화와 지역내에서 문화예술이 활기를 찾기 위한 나름대로의 바람들이다.기도를 마치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본다. 법당 왼편에 지장전, 도선굴, 소원바위가 있다. 또한 사선암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정도 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있는데, 고려 초기에 조성됐다고 한다. 일설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산왕전, 도선굴을 지나 산 위를 7~8분 오르니 바로 오산 정상이 나타난다. 오산 정상은 암봉으로 돼 있는데, 팔각정 정자가 있어 그 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다. 저 위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도 아름답다.구례군청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 홍보하고 있는 `오산 사선암`이다 보니 명성에 걸맞게 주변의 풍경이 비경이다. 사찰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 있으니 개인의 종교관을 떠나서 사서암은 누구나 한번쯤은 볼만한 건물이다.일행들과 함께 오산 정봉(530.8m)에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다음 행선지인 둥주리봉으로 향한다. 여기서 동행한 우리들 산악회 회원들은 다시 하산하여 다른 행차를 하게 된다. 필자는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오산 등산의 명품지인 등주리봉까지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하산할 계획이다.산세나 등산길도 그렇지만 호젓한 등산이 시작된다. 조금 전만 해도 사선암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많은 사람들의 복잡함 속에 있었는데 그들 무리를 빠져나와서 혼자 걷는 기분도 좋다.오산에서 매봉을 거쳐 둥주리봉으로 걸어가는 길은 혼자다. 단풍철에는 산악회에서 주로 단풍이 곱게 찾아드는 명산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전국 산을 다녀보면 알려지지 않은 산도 그 경치가 빼어나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다.400m쯤 지나니 매봉(528m)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둥주리봉까지 4.2km이다. 원래 이 길 선바위산책길 1.1km 거리는 등산하기 편안한 길로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사색하며 걷는 길로써는 안성맞춤이다.선바위전망대에 도착하여 혼자서 주변을 살펴본다. 가을햇살이 따갑다. 멀리 구례쪽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이 잔잔히 눈앞에 펼쳐진다. 섬진강을 소재로 하는 숱한 글이 많지만 강은 그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안고서 묵묵히 흐르는 것이다.조금 전에 여럿사람과 올랐던 사선암이 오른쪽에 보인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몇십 분 전이고 거리로 따져도 1km 남짓한데, 함께 산을 올랐던 일행들이나 절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시공에서 멀어졌고 굳이 말하자면 과거 속으로 흘러간 것이다.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선바위에 올랐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둥주리봉까지는 3km인데, 잘 다듬어진 소나무 숲길로 나 있어 정말 마음이 편안한 등산이다.이름 없는 등성이 무명봉에 홀로 올랐다가 헬기장 인근에 다다르니 벌써 1시 40분이나 됐다.소나무가 있는 전망좋은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면서 가져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테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천천히 식사를 하고나서 주변의 풍경도 즐긴다.때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난 후에 등산을 계속해 배바위를 지나 삼거리 전망 테크에서 등산 온 일행을 만났다. 이곳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일행이었는데 그들은 목재 테크에 자리를 깔고서 때늦은 오찬을 하면서 오후의 가을소풍을 즐기고 있었다.이번 등산길에서 다른 평이한 길과는 다르게 암반길을 조금 걷다보니 주봉이 나타났다. 이곳이 동주리봉이다. 오산에서 일행과 헤어져 혼자 등산을 시작한지 2시간 반이 걸려 여기까지 왔다.마지막 산 정상(690m)에서 전망을 본다. 지리산이 가까워서인지 저 멀리로 보이는 산들의 산세가 웅장해 보인다.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산은 전국 어디를 가나 풍경이 아름답다. 게다가 오늘은 혼자서 자연의 경치를 살피면서 호젓하게 걷다보니 더 많은 생각을 가지면서 등산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자연을 좋아해 답사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문화적인 성숙도는 낮다. 등산을 하고서는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리를 깔고서는 술을 먹고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꼴불견들도 자주 보인다.특히 가을에는 단풍놀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연에 대한 방종자들이 많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거의가 산에 와서 놀고 난 뒤에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방치하는 등 성숙한 등산문화가 없다. 산에 와서는 자연을 느끼고 자기를 뒤돌아보고 해야 되는데, 자신만 생각하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그래서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이제 동해마을 쪽으로 하산하면 일정이 끝난다. 둥주리봉에서 동해마을 쪽으로 가는 등산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아 필자는 집중해 마을로 하산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20분이었고, 국도를 따라 30분 걸어서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오늘 사선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까지 코스를 완주하는데 총 5시간 10분이나 걸렸다.이번 산행은 다른 산행과는 달리 도중에 일행과 헤어져 홀로 등산을 했다. 자연을 배우며 한창 무르익는 가을볕을 이고 호젓한 가을 등산을 하니 마음의 여유가 쌓인다. 한편으로 등산하는 동안 자신에 대해서도 성찰해본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또 앞으로 가치 있게 살아갈 날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인생철학까지 두루 생각나게 한 의미 있는 등산이었다.구례 10경 중 하나인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사선암과 밑으로 섬진강을 굽어보는 오산의 풍경은 빼어났다. 기도처로서도 유명한 곳이지만 주변 전망도 워낙 좋아 자연의 길로 통하는 구례군이 자신 있게 홍보해도 손색이 전혀 없는 곳이다.그러니 “오산을 오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다시 가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이곳 오산과 사선암을 찾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15

“포항 발전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발전 이끌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13일 포항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포항시청과 고향인 북구 흥해읍 덕성1리의 덕실마을과 신광리 선영, 죽도시장, 포항운하 현장을 찾아 고향사람들을 만났다. △ 포항시청이날 오전 10시 10분 포항시청 정문에 도착했다. 포항시민과 공무원들이 시청 출입구에 길게 늘어서 큰 박수로 이 전대통령을 맞이했다. 3층 현관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기관장들과 환담한 뒤 시청 대회의실에 들어섰다.지역 기관장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영상물 시청을 한 뒤 고향방문 소감을 밝혔다.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첫 공식 방문으로 고향을 찾게 돼 감개무량하다. 고향은 늘 가슴 설렌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고향은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 대임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항상 도움을 준 고향 사람들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했다.이어 “포항에 올 때마다 엄청난 발전 속도를 느낀다. 어릴 적 기억을 못할 정도다. 대한민국의 발전속도를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과 환경 등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포항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격려했다.이 전대통령은 이와 함께 감사나눔운동에 대한 칭찬도 했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에서 감사나눔운동을 한 것은 참 잘한 것이다. 대통령 재임시절 교육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작은 도시 포항의 감사나눔운동을 자랑했다”고 운을 뗀 뒤 “남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를 만드는 바탕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갈등과 분열도 없을 것이다. 감사나눔 운동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다”고 칭찬했다.이 전 대통령은 또 “세계 2차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원조를 주는 국가가 된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됐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세계가 대한민국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선진화된 대한민국은 선진화된 위상에 걸맞게 민주화도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대한민국은 이제 더이상 약소국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대등한 21세기 강대국으로 민주화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이다. 이제 도전정신과 용기를 갖고 이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은 항상 국가발전의 중심이었고 이제 포항의 발전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덕실마을오전 11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덕실마을을 찾자 마을 주민과 동문들, 기관 단체장, 상공인 등 200여 명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맞이했다.이 전 대통령은 덕실마을 회관에서 마을 주민들을 만난 뒤 덕실관에 들러 그동안 활동했던 자신의 사진과 게시물들을 둘러보고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자신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청하지도`를 덕실관에 기증했다. 청하지도는 조선시대였던 지난 1872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자신의 고향인 청하현(현재 포항시 북구 청라면·송라면 일대)의 현감이 제작·복원해 올린 지방지도다.이후 주민간담회에서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자랑거리인 포항물회와 영일만친구 막걸리 등으로 오찬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문중 사람들과 고향 사람들, 친구들을 드디어 만났다”며 “지난 5년의 임기 동안 지지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여러분 덕분에 세계적 금융위기가 찾아왔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그리움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대통령이 되어 버린 이웃사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다.이 전 대통령의 이웃사촌이자 먼 친척이라 소개한 조규자(75)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는 일본에 살았지만 이곳에 와서는 먹고살기가 빠듯해도 나눌 줄 아는 인심 좋은 가족이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직접 만든 조청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데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도 조청을 준비해 왔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복원된 자신의 생가를 둘러본 이 전 대통령 내외는 이후 북구 신광면 만석리의 선영을 참배했다. △죽도시장오후 3시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북 동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죽도어시장을 방문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또 죽도시장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뒤늦게 이 전 대통령임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담아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이 전 대통령 내외는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오징어와 고등어 등 싱싱한 수산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곳에 있던 많은 시민들은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 오징어를 맨손으로 비닐봉지에 담는 이 전 대통령을 보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또 어떤 이들은 갑작스러운 전 대통령 내외의 방문에 놀라워하며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포항운하오후 3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찾은 포항운하건설현장에도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가 잇따랐다.이 자리에는 자신의 후배인 영흥초등학교 학생들과 동지고등학교 학생 등 총 80여명이 자신의 선배이자 전 대통령을 반기며 태극기를 흔들었다.후배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한 이 전 대통령은 동지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교가를 목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이후 포항운하물관리센터에서 이병석 부의장과 박승호 포항시장 등에게 자세한 포항운하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산업화가 이뤄졌으니 이제는 자연보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포스코가 있는 포항이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바뀌면 포항의 이미지도 함께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포항공항을 향하기 전 다시 한번 동지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난 이 전 대통령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대통령이었던 대선배를 만난 동지고등학교 2학년 김창현 군은 “TV로만 보던 선배님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밝게 웃었다.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항공항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며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

2013-11-14

상주시, 대한민국 농업 선도·세계시장 개척 앞장

쌀과 배 생산량은 경북1위, 곶감은 전국시장의 60%를 차지, 명실상부한 전국1위. 전체인구중 농업 인구수가 36%인 상주는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로 불린다. 상주농업의 현황과 장점을 살펴본다.농업인구 36%·경지면적 도내 최대로 `농업수도` 명성전국시장 60% 차지 곶감에 쌀·배·육계 등 최고 경쟁력국립 교육농장 등 인프라 추진, 귀농·귀촌 유치도 활발□대한민국 농업수도 선포상주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공검지`가 있어 역사적으로도 농업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낙동강유역의 넓은 평야와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수도작이 잘 발달해 있으며 전통 농경문화의 중심지로서 풍부한 농업문화자원도 보유하고 있다.농업은 상주시의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가구수 4만4천981호중 농가가 1만5천903호(36%)이고 전체 인구수 10만4천여명 중 농업 인구수는 3만8천508명(36%)에 달한다.경지면적은 2만6천187ha(논 1만5천511ha, 밭 1만676ha)로 도내에서 가장 넓고 곶감은 전국시장의 60%(전국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이 2만884t, 양봉 786t, 육계 311만8천수로 전국1위, 명실상감 한우는 전국2위, 쌀과 배는 경북1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농산물 총생산 조수익은 연간 1조 2천억원을 넘어 1억 이상 고소득 농가가 1천500여 호나 돼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상주시는 올해 전체예산 5천957억원중 전년대비 82억원이 증액된 약 1천17억원(17%)을 농업 인프라구축과 생산기반조성, 저장, 가공, 유통, 농업기술교육 등 농업·농촌분야에 지원하고 있다.상주시는 민선5기 출범과 더불어 지난 2011년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임을 대·내외 천명하는 선포식을 가졌다. 이어 2011년 12월에 `대한민국 농업수도 상주`라는 업무표장 등록을 해 상주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이후 상주시는 상주농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면서 2013-2017년까지 4대목표 4대전략 732개 세부과제를 설정하고 올해부터 농업 전 분야에 걸쳐 단계별로 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세계화를 향한 상주 농업 육성상주농업의 주요 육성 분야는 쌀, 곶감, 말, 누에와 명주, 포도, 사과, 배, 오미자, 한우, 양봉, 육계 등을 꼽을 수 있다.상주 곶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2005년부터 상주곶감산업 육성을 위해 시청 산림공원과 내에 곶감전담팀을 신설해 재배, 가공 기술교육 체계화를 통한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전처리위생시설(HACCP)을 추진하고 있다. 곶감의 저장·보관·유통 방법에 대한 개선과 연구는 물론 종합적인 곶감산업 기반 구축을 통해 상주곶감의 세계시장 석권도 넘보고 있다.상주쌀은 예로부터 토질이 좋아 밥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생산량 또한 도내 1위로 `쌀 산업 선진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상주의 슬로시티 친환경 녹색농업은 `국민과 자연이 함께 하는 친환경 녹색산업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2015년까지 무농약 이상 인증농가 3천600호를 육성하고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을 전체 재배면적 대비 12%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상주는 포도 생산량 경북3위, 배 생산량 경북1위, 사과 생산량 경북 8위 등 주요 과수 주산지로 2004년 한ㆍ칠레 FTA체결 이후 과수 재배농가 생산시설 현대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특히 대체과수명품화사업,다목적농가형저온저장고지원사업,에너지이용효율화사업, 화훼경쟁력제고사업, 잠업명품화사업 등을 통해 FTA체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원예특작 농가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상주시는 국제규모의 승마장을 보유한 승마도시로서 말산업 육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전국 말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축산유통과 내에 말 산업팀을 신설해 착실히 기반을 다져오고 있는데 2013년부터 승용마, 경주마 생산농가 육성을 위해 경북도와 함께 예산을 확보하고 구입자금, 관세 등에 대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마장 건설이 영천시로 확정되자 지자체간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을 피하기 위해 그 방향을 승용마와 식용마 쪽으로 돌리고 승용마 육성센터건립, 에코힐링 호스파크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세계시장 진출 확대상주시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업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식품 해외수출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국제통상T/F팀을 출범시켰다.2013년도 수출 목표를 지난해 135억원 대비 207%가 증가한 300억원으로 잡았으며 3년후에는 농특산품 1천억원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올해는 농특산물 해외수출 전략프로젝트를 가동해 캐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등지로 2천312t(76억원)을 수출했는가 하면 뉴질랜드에 첫 참배 수출망을 확보 하기도 했다.시는 상주 농산물 세계 진출을 위해 미국 데이비스시, 중국 의춘시, 대만 기륭시 등과 자매결연을 하고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수출 유통사업단을 발족하고 농산물 원예수출단지 확대조성, 농식품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 마인드 제고 등 7대 전략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국 귀농귀촌 1번지 상주시는 지난해 4월, 귀농·귀촌추진을 위해 10명의 인원으로 T/F팀을 구성했으며 올해 4월 5일에는 서울 사무소에 이어 부산과 경남지역 귀농귀촌인 유치를 목적으로 부산사무소를 추가 개설했다.특히 매년 500가구 5년간 3천가구 유치를 목표로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시책과 지원을 펼치고 있다.이 결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벌써 434가구 724명(지난달 21일 기준)의 귀농·귀촌인을 유치했다.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해 입주자 주도형 소규모 전원마을을 조성하고 농가 소득지원 사업, 농가주택수리비 지원, 영농 정착금 지원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시는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베이비 부머 세대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상주만이 가지는 색깔있는 시책과 여건을 적극 홍보하는 세일즈 행정을 펼치고 있다.□농업 인프라 구축 활발상주는 대한민국의 농업을 선도 하기위한 농업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그 위상에 맞는 관련 인프라를 하나씩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국립 교육농장 건립=상주시 낙동면 장곡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8만6천㎡ 면적에 2만6천㎡ 규모의 국립 교육농장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 조성=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70ha(21만평) 규모의 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를 조성한다.△경북 생명건강산업 특화단지 조성=상주시 함창읍, 이안, 은척면을 중심으로 슬로시티와 양잠 문화가 연계된 경상북도의 특화된 생명건강산업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상주 농수산물도매시장 건립=상주시 화산동 일원에 2014년~2016년까지 3만평 부지에 농산물 공판시설, 수산물종합유통물류센터, 야외테마공원을 조성해 농업 물류의 중심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상주 농업의 비전상주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구 비율과 경지면적이 넓어 농사짓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농업기반과 역사성을 살려 농업 수도의 명성을 높이고 농업을 상주시의 역량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현재 전국 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주곶감은 고품질화를 통한 세계진출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인지도에서 미흡한 상주쌀은 품종개량을 통한 고품질화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옛 명성을 찾아 나갈 계획이다.성백영 상주시장은 “상주 농업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 주력 산업인 만큼 농사짓기 좋은 여건과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최대한 활용해 농업 중심도시로 발전 시켜 나갈 것”이라며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농촌 힐링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행정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3-11-12

취임 1년여 만에 흑자 전환…“열정·도전정신으로 일에 매진”

적자에 허덕이던 경상북도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가 공원식 사장이 지난해 6월 1일 취임 후 흑자체제로 전환했다.경북관광공사는 민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부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며 출범을 앞두고 일었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를 신호탄으로 경북도가 도청 내에 있던 관광마케팅 관련 업무를 내년부터 모두 관광공사로 이관시키기로 하는 등 관광공사가 경북관광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공원식 사장을 만나 그간의 경영성과와 변화된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보문단지 274억원 등 총 300억원 민자 유치… 공격적 마케팅 `한몫``이스탄불-경주 엑스포` 관광자원·특산품 홍보, 관광객에 깊은 인상미래 경북관광 “타지역과 차별화된 명품관광 콘텐츠 발굴 노력할터”-관광공사가 재도약하게 된 배경은.◆ 관광공사와 경북관광개발공사의 합병에 따른 법률상 근거 부재, 양도차익에 따른 법인세 문제, 지방공기업법 개정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이병석 국회부의장님과 김태환 국회안전행정위원장님, 김관용 도지사님, 도의회 등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이 없었다면 경북관광공사의 설립은 불가능했다.경영자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그걸 합리적으로 조직에 적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도전 정신을 화두로 놓고 일에 매달리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적자였던 회사가 흑자경영으로 전환했는데 1년 6개월 사이를 다시 짚는다면.◆ 포항시의회의장과 경북도정무부지사를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사업 전체를 펼쳐 놓고 들여다보면서 사업단위를 쪼갤수 있는 대로 쪼개고 공통점이 있는 작은 단위를 묶어 거기다 이름을 붙여주고 패턴화시키는 단순한 작업을 했더니 엄청난 시너지가 나왔다.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인 2012년에 64억원의 적자가 났다.사장에 취임하고 유사업무와 지원부서 통폐합을 통해 15개팀을 13개팀으로 줄였다.휴그린 골프장은 신규채용 없이 자체인력으로 전환배치만 했는데 10억원이 절감됐고, 식당을 아웃소싱한 결과 4억원의 예산이 절감됐다.공격적인 마케팅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 2008년부터 5년 동안 토지매각 수익이 평균 73억원에 불과했지만 취임하고 나서 보문관광단지 274억원, 안동 관광단지 26억원 등 총 300억원의 민자를 유치했다.영천보현산천문전시체험관건립 체결을 맺으면서 30억원의 수익이 창출됐다.이렇게 해서 올 연말까지 100억원의 흑자가 예상된다.-공공기관들이 비리와 부정부패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관광공사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 9월말부터 2주간 감사원으로부터 경북관광개발공사 시절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관광공사 설립과 관련한 사항, 휴그린 골프장과 유교랜드 공사 등 대형공사와 신입사원 채용, 세입세출 문제, 국고 보조금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감사가 진행됐는데 어떠한 지적 사항도 없이 잘 마무리 됐다. 오히려 감사관들이 감사우수기관 사례로 지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우리 공사는 2012년 종합청렴도 8.67점으로 16개 기타 공직유관 단체 중 내부 청렴도 1위를 차지한 우수기관이다.-`이스탄불-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서 관광공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 공원식 경북관광공사 사장.◆ 경주는 고대도시로는 이스탄불, 로마, 아테네, 서안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스탄불-경주 세계 문화엑스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이 행사의 한 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우리 공사는 이스탄불에 22개 시군 홍보관을 운영, 경북도내 지역의 문화와관광자원, 특산품을 알렸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지인은 물론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루에 평균 7만명이 홍보관을 찾아 당초 80만명 목표를 2배나 되는 160만명이 홍보관을 찾았다.-경북도청의 관광마케팅업무가 공사로 이관된다는데 그 내용은.◆ 경북도청 업무의 공사 이전은 공사가 해당업무에 대해 경북도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고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적자에서 흑자전환, 공격적 마케팅, 조직 안정 등이 업무이관을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관광공사 설립 주요 취지가 `경북문화관광 총괄 콘트롤타워 역할`과 `관광전담 공기업 설립으로 지자체 주도의 관광개발 추진`이며,이관업무는 경북도의 관광마케팅업무 중 32개사업이다.이러한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담부서 설치 필요성에 따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기존 관광마케팅팀을 마케팅본부로 승격시키고 본부안에 마케팅 업무를 수행할 3개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미래핵심산업인 관광산업을 경상북도가 선도하기 위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것은.◆ 관광산업은 결국은 차별화된 가치 발굴에 있다.서울의 북한산과 똑같다면 서울시민들이 포항 내연산은 찾지 않을 것이다. 내연산에는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을 지내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이런 점을 발굴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관광공사의 역할이다.경북도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갖고 있지 않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찬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경주는 신라가, 안동은 유교문화가 있다. 포항의 과메기와 도심의 해수욕장, 국제 불꽃 축제가 있다.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마케팅을 하느냐에 따라 경북의 관광미래가 달렸다고 본다.경북도만이 갖고 있는 강과 산, 바다, 그리고 IT문화와 스토리를 잘 조화시켜 타 지역과 차별화된 경북만의 명품관광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다.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3-11-08

서울 도봉산

인구 1천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는 등산하기에 딱 좋은 명산들도 많다. 한강을 굽어보면서 북쪽에 우뚝 솟은 북한산과 도봉산, 남쪽에 자리한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시민들에게 훌륭한 등산을 제공해준다. 지난달에는 등산동호회원들과 함께 서울의 양대 명산 중 하나인 북한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혼자서 도봉산에 오르기로 했다. 인연이 되니 보름사이에 서울의 명산 두 곳을 오를 기회가 생겨서 기분 좋게 도봉산을 다녀왔다.이번에는 개별 등산이다. 간단한 등산장비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는 등산을 하러가는 사람들이 많다. 도봉산에도 가고 의정부 쪽이나 동두천의 산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자료를 보고 등산길을 선택했는데, 도봉산역에서 하차하여 산악박물관-쌍줄기약수터- 도봉서원- 천축사- 마당바위- 신선대를 거쳐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다.도봉서원-천축사-자운봉-우이동유원지 코스 6시간 소요신선대 오르면 선인·만장봉 등 늠름한 모습 장관… 풍광 최고도봉산 등산은 오르내리는 코스가 많다.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길이 많다보니 등산 출발지점이 여러 곳에 있다.하루 등산코스로는 대개가 도봉동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도봉동매표소- 도봉서원- 도봉산장, 천축사와 마당바위를 지나 자운봉에 올랐다가 우이암을 거쳐 우이동유원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데 6시간가량 소요된다.3시간 30분 걸리는 반나절 코스는 도봉동과 도봉산장을 거쳐 자운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두 가지를 선택한다. 첫째는 우이암-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고, 둘째는 포대능선 안부-회룡사-회룡동으로 내려오는 길이다.도봉산역에서 내린 필자는 함께 내린 등산하러가는 청년 일행에게 등산로 초입을 대략 묻고서는 그들을 따라서 걷는다. 많은 등산인들이 가족 또는 지인들과 함께 유쾌한 기분으로 도봉산 산행을 시작한다.“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으로,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거나.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고…” 필자는 도봉산 등산길을 시작하면서 원로가수 송민도씨의 노래 `행복한 일요일`을 콧노래로 부르면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가을산행을 마음에 그려본다.북한산국립공원 도봉매표소를 지나 곧장 가다보니 산악박물관이 나타났다. 2011년 10월 1일에 개방된 이 박물관에는 국내 등산인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사용했던 장비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그 가운데 모형으로 만들어진 암벽과 빙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반용 헬멧과 각종 빙설장비, 피켈 등이 전시돼 있는데, 자료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산악인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됐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등산길에 올라 광륜사 절을 거치고 계속 직진하니 쌍줄기약수터가 있다.여름철에는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힘들고 목이 마른 등산인들에게는 휴식터가 된다. 일부 등산인들이 약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지만 필자는 젊은 사람 일행을 따라 계속 행보를 한다.도봉서원에 도착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서원으로는 유일하다는 도봉서원은 조광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1573년 지방유학자들이 뜻을 모아 조선시대 유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인데, 1696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함께 모셔졌다고 한다.계곡을 거쳐 길을 올라가는데 물이 적다. 여름철에는 이 일대에는 등산인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할 것이지만 가을에 계곡을 찾는 사람들은 적다. 도봉산대피소를 지나 등성이를 오르니 등이 하나둘 보이고,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천축사 절이 나타난다. 입구에 불상들이 모여 있는데 얼굴과 손동작이 모두 다르다.천축사는 도봉산 선인봉에서 동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옥선암을 세웠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서 100일 기도를 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고 하여 절을 개축하고서 천축사라 부르게 됐다고 하다.천축사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 뒤에 우뚝 솟은 선인봉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보면 볼수록 위엄을 느끼고 도봉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선인봉의 풍경을 매료되면서 숲길과 바윗길을 헤쳐 드디어 마당바위에 도착했다.마당처럼 넓어 붙여진 마당바위에는 많은 등산인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필자도 등산객 속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멀리 서울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가까운 노원구, 도봉구 지역인데 아파트촌이다.도봉의 정상 턱밑에서 잠시 쉬면서 도봉의 진면목을 느껴본다. 전국의 많은 산을 다녀보고 있지만 어느 산이라도 그 산의 매력은 다 있다. 항상 산을 올라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올라온 길과 내려갈 길이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어떤 때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 아름다운 길은 다 나 있는 것이다.올해 서울지역의 단풍 절정기는 10월 27일이라 한다. 그리고 이곳 도봉산에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시기는 10월 하순이라고 하는데 때맞추어 잘 찾아왔다. 마당바위에서 신선대,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힘든 코스다. 그러나 단풍을 보면서 또한 가을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정취를 느끼며 걸으니 발걸음도 자못 가볍다.도봉산 정상인 자운봉 옆에 있는 신선대에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암반으로 되어 있는 등산로는 철책이 있고 발 내디딜 곳을 잘 찾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앞에 오르는 사람들과 부딪힘을 신경쓰면서 드디어 신선대에 올랐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한지 5시간이 거의 되어 간다.이곳에서 주변의 풍경들은 정말 멋있다. 가까이 보이는 같은 도봉산의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늠름한 모습도 장관인데다가 북한산이나 멀리 시내의 풍경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신선대의 이름을 괜히 신선대라 하였겠는가. 그만큼 풍광이 좋다는 뜻일 게다.다시 조심스럽게 암반 길을 내려와 이번 등산의 하이라이트인 도봉산의 중보인 자운봉으로 향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길을 내려와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자운봉 쪽으로 오른다. 공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르는 참이라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드디어 도봉산의 주능선에 우뚝 솟은 최고봉에 올랐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 `경기의 금강`이라 불리는 자운봉(740m)에 올라 가을빛이 한창 무르익는 사통팔방의 풍경들을 바라보면 잠시 나를 잊게 된다. 그저 무아지경의 황홀경이다.감격의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진한 감동에 마음마저 멍멍해진다. 도봉산 등산을 결심하고 혼자서 올라온 길이 저 멀리 보인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지금 이 순간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감동의 도봉산 산행이었다. 이제 하산하는 것은 길대로 따라 내려가면 되지만 가을의 산행에서 명산 도봉이 내게 가져다준 의미는 신선하고 장엄한 느낌이다.정상이서 내려오는 길이 암반으로 되어 위험한지라 하산하면서 딴 생각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정말 이곳 도봉산을 잘 왔구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놓는다.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사람들을 따라 온 곳을 찾아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이번 등산코스로 도봉산 코스를 선택하여 혼자서 올라본 가을 산의 풍광들이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끄트머리에서 의미가 있는 필자의 `가을, 도봉산 일기`를 적어본다.▲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8

칠곡의 가을, 마을마다 사람마다 인문학 사랑 빠지다

`칠곡의 마을! 인문학을 만나다` 란 주제로 지난 9월29일 시작된`2013 칠곡 평생학습 인문학 축제`가 지난달 27일 북삼 숭오리 감따기체험과 농악과 시골길걷기체험을 마지막으로 한달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인문학 축제는 기산면의 `어르신 잔치 및 꿈꾸는 시어터의 마당놀이`를 시작으로 8개 읍·면별로 14개 동네를 돌며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마을축제형태로 열렸다. 지난달 18, 19일 양일간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이 메인행사로 스타트를 끊은 뒤 지난 10월 내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면서 칠곡은 풍성한 인문학 체험의 장이 됐다.13만 군민과 함께한 축제는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칠곡군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평생학습의 장인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시작하여 마을공동작업장, 체육공원, 장터, 마을회관, 아파트공원, 강변 등에서 사람냄새를 풍기면서 인정을 나누었다.8개 읍·면 14개 동네 특색 살려 진행체험프로그램 강화로 전세대 아울러 □ 인문학 마을축제이야기칠곡군에서 시도한 마을축제는 전주민이 함께 배우고 즐기고 참여하는 나눔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과 운영 주체 간 상호정보교환의 장과 문화, 교육, 복지를 포함한 학교, 동네, 가족이 하나 되는 새로운 축제문화 형성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혼자하면 삶의 일부이지만 함께하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목표로 축제를 시작했다.▲ 인문학 북 콘서트칠곡의 평생학습 인문학축제는 다양함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먼저 창조지역사업 공모사업인 인문학도시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자체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문학콘텐츠를 개발하여 인문학축제에 반영하여 성공된 프로그램을 선별하여 지난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문학의 첫걸음인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을 시작으로 칠곡군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메인개회식과 개막공연 `만두와 깔창` 연극, 40개의 학습동아리무대, 인문학 골든벨, 은빛가요제, 고은시인초청 북콘서트, 향사 박귀희명창 학술세미나 등의 각종행사와 50여개의 평생학습체험부스를 통해 군민과 인문학의 만남이 이루어졌다.축제를 만든 관계자는 “체험프로그램강화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요소를 부각한 축제로 지역주민이 자치단체의 행정과 정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삶의 질 향상과 생활만족도에 기여 되었다면 축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밝혔다. □ 주민의 힘으로 인문학을 세우다칠곡군민들은 한달여간 진행된 인문학 축제를 통해 바쁜 일상으로 만나지 못했던 이웃주민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졌고 잊고 지내던 삶의 소중한 부분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다.백선기 칠곡군수는 인문학축제를 마치면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이란 삶의 가치를 다루는 일이다. 문학이나 역사 또는 철학이 오늘의 밥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계속되는 인생에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생의 굴곡에서 한편의 시가 삶을 지탱하는 위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며 “평생학습의 바탕이 탄탄한 칠곡에서 인문학의 꽃이 활짝 피어 새로운 칠곡, 잘사는 칠곡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도시로 만들어 전국에서 가장 주민이 행복한 도시로 만드는 초석과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문과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며,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칠곡/윤광석기자 yoon777@kbmaeil.com

2013-11-08

강원도 오대산

아름다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은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계절이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야외 활동에 알맞은데다가 볼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함께 가자고 등산회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 철이다.이번 등산에서는 오대산으로 정하고, 일행들과 떨어져 일요일 아침에 출발지점인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오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을 본다. 모처럼 혼자 차를 타고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 여유로움을 가져본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 길에 이르니 여기저기에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들이 나타난다.상원사-사자암-비로봉-소명골 9km 코스, 8시간 소요100년된 전나무 자리잡은 `오대산 옛길` 가을정취 만끽진부면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 상원사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였다. 아직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아 연락을 취하고서는 주변을 살피며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일행들과 합류하여 상원사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등산을 시작했다.이번 오대산 등산코스는 상원사절- 사자암- 적멸보궁-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 미륵암을 지나 소명골로 해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일정으로 돼 있다. 산행거리는 약 9km로 8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나와 있다.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강릉시 일부에 있는 산으로 비로봉(1천563m)을 주봉으로 동대산(1천434m), 두로봉(1천422m), 상왕봉(1천491m), 호령봉(1천561m)등 1천m가 넘는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등산을 시작하고 전나무 숲길을 300m 지나다보면 상원사로 오르는 계단길이다. 계단길이라 조금 가파르지만 등산로 초입에 있는데다가 넓고 평탄하게 되어 있어 오르기 쉬운 편이다. 일명,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다.이 길을 걸으면서 오대산은 평이한 등성이라 등산하기가 어렵지 않고, 등산길에는 상원사나 적멸보궁,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월정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주위의 풍경에 여유로움이 있어 번뇌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본다.상원사에 도착하여 조요한 아침 산사의 진면목들을 본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년)에 신라의 보천과 효명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어졌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이다. 그 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성지로 이름을 빛낸다고 한다.상원사에는 국보 중에서 동종(36호)가 있고 문수동자상(221호)가 있다. 동정각에 유리 칸막이 속에 있는 동종은 우리나라 현존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종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있는 5층석탑 등을 잠시 둘러보고서 일행들은 다음 코스인 중대암으로 오른다.중대산에 도착하여 사자암을 둘러보고 난 후에 불교도들에게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적멸보궁을 향해 길을 걷는다. 사자암에서는 1.4km 거리에 있는데, 적멸보궁까지 돌길을 깔고 계단을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는 기도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기 편리하기 위함인데 가급적 자연상태를 살리면서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을 정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적멸보궁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도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부처님 진성사리를 가져와 봉안했는데, 여기 말고도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과 함께 5대 적멸보궁이다.이곳에서 가족 건강을 축원하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다. 잠시 쉬다가 비로암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지점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1.5km인데,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의 거리가 1.5km로 이번 등산 코스 중에서는 험난한 편이다.다시 비로봉을 향해 오른다. 이 일대에서는 벌써 단풍이 다 지고 상원사 계곡으로 내려갔다. 단풍나무에는 마른 잎들이 달려 있거나 나무 잎사귀가 이미 떨어진 상태다. 조금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등성이의 풍경은 벌써 가을이 지나 겨울로 가는 형색이다.이곳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을 비롯해 오대산의 산등성이 완만한 능선은 눈이라도 오게 되면 설경이 멋있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벌써 마음속에서 이곳의 풍경과 함께 눈 내린 설원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오대산 가운데 하나의 봉우리인 비로봉(1천 563 km)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20분이다. 정상에 서서 멀리 산들을 조망해본다. 강원도 산이라 하나 산세가 완만하니 편안한 마음이 든다. 일행들은 여기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정상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한다.그리고는 또 하나의 오대산 봉우리인 상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가을 단풍이 끝나버린 산길을 가을햇볕을 이고 1시간 남짓 거리를 걸으니 상왕봉이 나타난다. 돌무더기 옆의 상왕봉(1491m) 정상에 서서 오대산의 가을을 감상한다.다시 상왕봉을 내려서서 하산을 한다. 가다보면 직진하여 오대산의 한 봉우리인 두로령으로 가는 길과 우회전하여 상원사로 내려가는 북대사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일행들은 일정 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미륵불이 있는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온다.여기서부터 큰 경사가 없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미륵암을 찾아 잠시 구경하고서는 상원사로 내려가는 임도를 만나 편안한 산행을 계속한다. 길 주변에 있는 거대한 참나무도 볼거리다. 밋밋한 산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내려오니 아침에 출발했던 상원사 주차장에 이르니 오후 3시가 됐다.아침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옛길을 보행으로 탐방하지 못했다. 이 길은 2011년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최고상인 `아름다운 생명길`을 받았으니 만큼 유명해진 길이다.길 전체의 느낌은 100년이 넘는 수령의 전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가운데 계곡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잔잔한 물, 아기자기한 시골길의 풍경이 넘쳐나는 콩밭길, 숲길,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만나는 단풍들은 계절 맛을 흠뻑 젖게 한다.월정사 주차장에서 반야교까지 1.5km 구간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 곳에서 상원사 입구까지는 비포장도로다. 일행들이 산행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길은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걷는 비포장도로의 옛길이다.본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들어가면서 이 길을 걸어야 하지만 필자는 하산길에 이 길을 택했는데 역코스다. 들어가는 길에서 `참된 나` 를 찾는 것이라면, 나오는 이 길은 자연과 동화되고 나서 `자아` 를 버리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선재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니 앞에 월정사가 보인다. 좋은 풍광에 고운 생각을 하다 보니 6km가 넘는 옛길을 금방 온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다. 월정사에 도착하여 법당에 들렸다가 나와서는 경내를 살펴본다.월정사는 선덕여왕 12(643년) 자장율사가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여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라 한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 만화, 현해 스님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름난 사찰이다.오늘 강원도 오대산 찾아 능선을 타고,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로 계곡에 머물고 있는 가을단풍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났다.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는 그 비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배우기 위해 떠나온 오대산 산행 길.가을산행은 마음을 채우기 위함보다 비우기 위해 간다. 그 비움의 미학은 마음을 살찌우게 하고 아름다운 생각들을 가지게 하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복잡한 인간생활에서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기 위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의 기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1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

해양실크로드와 신라기조연설 고대 `비단길` 오늘날 `바다길`에 적용▲ 김문경 숭실대학교 명예교수기원전 139년 중국 한나라 무제는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대월씨국에 장건을 사신으로 파견했다. 13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장건이 서역의 지리·민족·풍속 등에 관해 얻은 지식은 매우 많았다. 이후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를 이어주는 고대 교통로를 따라 많은 사람과 산물이 오갔고, 특히 중국의 특산품인 비단이 서역으로 수송되면서 `비단길(Silk Roed)`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구학자들은 이 `초원의 길(Step Route)`만을 비단길이라고 한정지어 불러왔지만, 동서문물교류사연구가 깊어지면서 오늘날 이는 `바다의 길(Sea Route)`에도 함께 적용되고 있다.이슬람제국의 전성기에 태어난 세계적 지리학자 알 마스오디는 자신의 저서 `항금초원과 보석`에서 신라를 언급하며 `그곳으로 간 외국인은 공기가 맑고 물이 좋으며 자원이 풍부해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신라시대 규모는 작지만 서양 문명과 교역이 이뤄졌음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이나 흥덕왕릉 무인상에서의 심목고비 등은 서역인임을 의심할바 조차 없는 것들이다.특히 신라말이 되면 경주에서 가까운 영일만이나 울산만에서 출발하여 서북쪽으로 횡단하여 내주에 이르는 바닷길도 이용됐다. 이는 중국의 당국사보에도 기록돼 있다. 또한 거란족이 남하하는 신라하대에는 계림을 출발하여 남해안을 지나 흑산도 부근에서 바다를 건너 양자강이나 남중국으로 직항한 것으로도 나타난다.서역 문명과의 교역은 신라인들이 모여 살던 중국 광주에서 형성된 `신라방`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귀한 서·남방 상품들은 이러한 교역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경주는 중국 장안에서 유행하던 서역풍의 정취를 닮아가고 있었으며 그런점에서 `삼십오금입택`으로 표현되던 특수부유층들은 인도의 공작미 등 사치성 소비재를 제공해 주는 무슬림의 왕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혜초가 본 인도·중앙아시아 혜초 행로, 실크로드 핵심지역 관통▲ 정병삼 교수 숙명여자대학교길은 인간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고 교류와 소통을 낳는다. 인류의 역사는 길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신라인 혜초는 구법자의 길을 생애 내내걸었다. 인도까지 여정의 그 길엔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막지못했다.그가 걸은 외롭고 힘든 구법 행로를 살펴보면 우연히도 오늘날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핵심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그는 대한민국의 선국적 세계인이자 동양이 낳은 걸출한 세계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대륙의 끝, 서단까지 다녀와서 쓴 왕오천축국전 같은 견문록을 남긴 전례는 더더욱 없다.그는 용기만 앞세운 수행자가 아니었다. 애틋한 연민을 간직한, 너무나 인간적인 한국인이었다.신라 계림에서 태어나 열 여섯살때 당나라로 간 혜초는 가는길이 현재 해로설과 육로설로 나눠지지만 그 길은 이후 업적에 비하면 큰 의미는 없다.그는 당나라에서 밀교의 전통을 이어받고 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 다섯나라와 중앙앙시아는 물론 멀리 아랍까지 여행했다. 그래서 흔히들 최초의 외국 사절이라고도 일컫는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구법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그리워 눈물짓던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타향에서 7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너무나 크다.특히 아랍의 지배력이 확대되는 격변기의 중앙아시아를 순력한 혜초가 남긴 아랍과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 소그드 제국과 투르크 등 중앙아시아 일대의 광범위한 나라들에 대한 탐방과 인상적인 전문(傳聞) 기록은 동서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제시한다.해양실크로드 교역항 말라카역사·문화 고도 말라카, 혼합문화 완성▲ 홍석준 교수 목포대학교항구 도시는 육지와 섬을 해상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하나의 거점 역할을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예외가 아니다. 1403년에 건설된 말레이시아의 역사적인 항구도시 말라카는 그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말라카는 중국 명나라가 바다 지배를 확대할 땐 왜소했지만 명나라 장군 쳉허가 300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와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에 걸쳐 7번의 항해를 시작하고, 북방의 위협에 직면한 조정이 내부로 관심을 돌린 사이 급속 성장한다. 말라카에 드나드는 중국선박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 틈을 타 투르크, 아르메닝, 아랍, 아프리카, 유럽의 상인들이 빈번히 왕래하면서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무역의 거점이 된 것이다. 특히 말라카는 그 과정에서 이슬람교가 유입돼 술탄제가 확립된 말라카 왕조가 들어섰는데, 외래문화를 수용·통합하는 과정에서 혼합문화를 일찍이 완성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말라카가 해상도로의 중심에서 동서문명이 이곳을 통해 교차한 역사의 도시로 성장한 이면에는 북으로는 인도차이나 반도, 서로는 말라카 해협, 남으로는 수마트라와 자바, 동으로는 남중국해로 연결되는 자연환경이 큰 역할을 했지만 해상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도시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다문화를 일찍이 받아들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이었다 할 수 있다.서양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적 색채가 서로 혼합된 `말라카디움`(cara Melaka)이 만들어 진 것도 그런 맥락의 하나다.말레이시아 정부는 현재 말라카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해 관광산업화 하려 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집단이 넓은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모습이야 말로 그 어떤 유물과 유적에 비해서도 손색없다. 이질적인 외래문화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장보고와 동아시아 해상교역 장보고 개설 청해진, 공무역 넘어서 교역▲ 이유진 교수 숭실대학교9세기 초 신라인의 해외진출과 국제교역 활동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해상왕`으로 알려진 장보고(張保皐)다. 그는 당시 중국으로 간 것은 극심한 자연재해와 식량기근으로 말미암아 자활의 길을 찾아 바다를 건넸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는 그러나 그 후 당나라 문물을 접하면서 눈을 떳고 또 신라인들이 당나라 해적들에게 잡혀와 노비로 팔리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신라로 귀국 후 흥덕왕의 재가를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나라 서주(徐州)를 상대로 해상무역을 주도했다.일반적으로 청해진이 설치되기 이전의 동아시아 교역은 사신의 왕래를 통한 공무역 체제가 전부였다. 공무역은 공물과 회사품의 교환을 통한 교역으로 관시(官市)나 호시(互市)를 개설해 사신들에게 교역을 맡긴 것으로 민간 교류와는 차이가 있다.그런 점에서 당나라에서 흑산도와 남해안을 거쳐 일본의 기타큐슈에 이르는 국제무역 항로의 중간지점에 장보고가 개설한 청해진은 공무역을 넘어선 교역을 이루어 내 사실상 해양실크로드 교류의 한 축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특히 당시 장보고는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면서 황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당-신라-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을 주도하기까지 했다.장보고가 당시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산둥성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짓고 이곳을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자 왕권 다툼에까지 뛰어들어 신무왕이 왕위에 오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 등을 미뤄 신라 해상교류 무역의 활발했고 그 영역이 지대했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장보고가 이룩한 당-신라-일본의 해상교역 활동이야말로 오늘날 동아시아 해상교역 네트워크의 출발지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선사시대의 한일교류실크로드 종착역 논쟁 추가연구 거쳐야▲ 이창희 박사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선사시대의 한일교류와 해양실크로드 속의 한일교류와는 시기적으로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는 나라를 해양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따라 지난 1991년 일본의 옛 수도인 나라현의 나라공원에 실크로드교류관을 조성한데 이어 1998년에 대규모의 실크로드박람회를 개최한 바 있다.그러나 그후부터 다소 잠잠하다. 실크로드 루트를 연구하고 재현하면 역사적으로 신라라는 국가가 먼저 나올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이는 당시 신라 등의 문물이 일본으로 전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알다시피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간사이 지방에 이르기까지의 해양루트는 갑작스럽게 개척된 것이 아니고 그 오래전부터 피할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일각에서는 한일 양지역의 관련성이 뚜렷해지는 것은 약 2만년전에 출현한 세석인문화를 통해서라는 학설도 있다.한일 양지역에서 상호교류가 나타난 것은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이고, 철기시대에서부터는 대륙에서 시작된 한반도→일본으로의 문화전파가 지속됐다 할 수 있다. 특히 금속기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물자는 물론 상당수 인력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이러다보니 서일본 각지에서는 영남지역에 철기와 원료를 입수하기 위해 한반도와 교류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이러한 배경속에 세토나이카이 교역루트가 발달하게 됐고, 이는 삼국시대로까지 이어지며 해양실크로드 종착역이 일본 노선이라는데 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경주 신라가 실크로드의 동쪽지역 종착역이라고 하면 이는 일본 주장과 다소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이는 앞으로 역사적으로 이를 어떻게 고증, 입증시킬 것인가는 하는 과제를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각계 각층에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3-10-31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1

▲ 배규성 교수 영남대학교동해, 7세기부터 해상실크로드와 연결해양실크로드와 동해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는 두 갈래가 있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다. 실크로드 무역의 핵심은 비단과 향신료다. 중동 등지에서의 교역 상인들은 중국 등지에서 비단과 향신료를 사들여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그것은 교역을 활발하게 했고, 서양 문물 등은 국경을 넘어 신라에까지 이른다. 신라 왕릉 등에 서역문화가 보이는 이유다. 실크로드 사업은 분야별로 탐험, 무역, 동서문화교류 및 융합, 미술, 종교와 사상전파 등으로 나뉠 수 있다.당시는 종교는 물론 흑사병이라는 질병도 실크로드와 무관치 않다. 실크로드는 어쩌면 지금도 그 맥을 같이한다. 동북아 각국의 실크로드 전략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철도를 통한 실크로드와 에너지 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확장 노선, 남서부를 연결하는 동남아 노선,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와 중앙아시아의 가스전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동해안까지 연결하는 에너지가 그 단적인 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와의 통상, 물류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에 골몰하고 있지 않는가.7세기 지도와 8,9세기의 무역과 통상루트를 볼때 동해가 실크로드와 깊숙히 연결됐음을 알 수 있는데, 여전히 동해는 환동해 실크로드의 중심이다. 특히 에너지, 철도, Digital Silk Roads(DSR) Project 등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와 관련, 한국의 전략은 통상, 물류의 루트 및 환경협력도 중요하지만, 남북한 철도연결과 TSR연결 프로젝트와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이 핵심인 만큼 민관 모두 전력을 다해야 한다.작금에 있어 환동해 실크로드 협력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일본의 영토분쟁이다. 일본-러시아간 남쿠릴열도 분쟁, 일본-중국간 센카쿠열도와 다오위다오 분쟁, 일본과 한국간 독도문제 등은 환동해 실크로드의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영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길·인간·바다` 창의적 통찰 우선해야해양 인문학적 의미해양실크로드 탐험의 해양인문학적 차이의 해답은 경상북도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획기적인 기획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먼저 경북을 신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화하고, 문화 융성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KORE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북도와 해수부가 나서 `2014 해양민국 뿌리찾기 해양실크로드 대장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해양실크로드의 구성요소로는 길(Road), 인간(Human), 바다(Sea)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다.길은 개척, 도전, 용기의 집적을 의미하며 경험적 이해와 문화적 축적으로서의 연속성을 말한다. 인간은 차이와 변화, 선택의 총체로 융합적 사유와 호모 노마드적 속성을 일컫는다. 바다는 넓이와 깊이, 유동적인 물의 광장을 의미하며 창의적 사고와 과학기술의 구체적 실현이다. 이처럼 해양실크로드는 바로 물질, 즉 비단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물질에 가해진 인간 노동의 결과, 물질에 투영된 서로 다른 삶의 형태, 물질을 통해 구현된 인간의 문화 혹은 문명질서, 인간의 경험적 사고로 창조된 물질의 새로운 차이 등도 포함하고 있다.여기서 바로 소비 상품으로서의 한류, 정보 산업으로서의 한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으로서의 한류를 짚어볼 수 있다. 한류는 새로운 물음을 안고,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시도다. 이렇듯 자본주의 과정에 영합하는 한류는 문화적 상품화로 전락하기 쉬우며, 원동력이 되는 문화적 정체성 확립 없이는 곤란하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성과의 사후 활동을 위한 전문기획 및 연구 커뮤니티 구성이 무엇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이 밖에도 성과물의 효율적 관리 및 전시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경북도와 해수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웅서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 탐사로 새 과학적 지식 도출 가능탐험의 해양과학적 활용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반면 육지는 표면적의 29%에 불과하다. 특히 남반구는 표면적의 80%가 바다이므로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서식지이다.우리는 해양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는다. 해양에서는 생물자원, 광물자원, 에너지자원, 수자원, 공간자원 등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구의 기후조절과 오염물질의 정화, 물류의 교통로 등의 역할을 한다.해양과학(Ocean Science)은 바다에 대한 과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해양과학은 모든 과학적인 법칙과 방법을 활용해서 바다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다학제적 과학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해양과학은 해양에 대한 순수과학뿐만 아니라 응용분야인 공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학문이다. 물리해양학과 화학해양학, 생물해양학, 해양지질학과 지구물리학, 해양공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된다. 최근에는 해양과학이 해양정책과 같은 사회과학, 해양고고학과 같은 인문과학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역사적으로 유명한 해양과학 탐사는 제임스쿡(James Cook)의 항해, 비글호항해, 챌린저호탐사, 프램호탐사, 메테오르호 탐사, 글로마챌린저호 탐사 등이 있다.제임스쿡의 항해로 지도가 현대의 지도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비글호 항해는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챌린저호탐사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해양과학 탐사의 기틀이 마련됐다.해양실크로드 탐사 기회를 이용해 해양과학적 조사를 함으로써 새로운 해양과학지식을 얻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해양실크로드 탐사 루트를 따라가며 그 해역에서 기존에 알려진 해양과학지식이나, 해양박물관과 수족관 등 기항지의 해양과학관련 시설물에 대한 단행본을 출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동철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허왕후 이동경로, 해상루트 2개 암시기상·해류로 본 항로 검토실크로드의 루트에 대해 위키피디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비교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육상실크로드 이외에 지중해~홍해~인도양~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실크루트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끊겨 있다.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서해~동중국해~남중국해를 지나 말라카해협을 통해 동인도양 벵골만까지 연결된 2개의 해상루트를 보여준다. 이 2개의 해상루트는 김해 가락국의 허왕후가 인도 갠지스강 중부의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 의하면 서기48년 5월~7월 사이 약 3개월에 걸쳐 이동했다고 한다.아시아대륙 동안에서부터 아프리카 해안에 이르기까지의 몬순기후 즉, 해륙풍과 표층해류 및 기압배치도를 분석해보면 갠지스강하구에서부터 안다만~말라카해협을 통과한 후 베트남해안과 해남도~중국남해안~중국동해안을 따라서 산둥반도까지 오는 동북아시아 바닷길은 이 계절에 가장 안전한 해상루트임이 틀림없다.그러나 대만해협을 지나 백제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산둥반도와 옹진반도를 잇는 루트가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계절풍 이외에 태풍 등의 변수가 있으므로 해상루트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양쯔강하구 역에서 제주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상루트가 장보고의 청해진 시대에는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11월~12월 1천400t급 온누리호를 타고 거제 장목에서 출발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쳐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옛날 허왕후의 이동경로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탐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온누리호는 평균 속력이 12~14노트며, 15일 정도 소요됐었는데 범선의 속력을 약 2~5노트라고 가정하면 온누리호보다 3배~6배 정도 소요될 것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북도의 해양실크로드 탐험은 신라인의 개방성과 진취성 등 정신적인 계승과 함께 경제 협력 구축이라는 실질을 도모하며 추진하길 권한다.▲ 김기복 해양과학기술원 연구선지원실장원양구역 항해 가능한 3천t급 선박 필요탐험선박 안전성 확보 제안해양실크로드를 문화·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탐험 선박은 안전성 확보를 가장 우선시 해야 한다. 선박에 관해 특히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선박은 해상 항해에 종사함으로 육상과는 달리 해양 기상으로 인해 특별한 위험이 따른다.또 항해 기간이 길어서 육상으로부터 격리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행동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선박이 해상에서 흔히 예상되는 위험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 즉 감항성을 갖추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고, 만일 비상시 위험에 빠진 경우에 인명의 안전을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요구된다.특히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은 관계법에 의거 최소 자격 요건은 제3종선인 여객선 이외의 선박으로서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총톤수 500t 이상의 선박으로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원양구역을 운항하는 10노트 이상의 최고 속력을 갖춘 배의 길이 60m 이상인 외항선이어야 한다.최소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해적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총기·도검으로 무장한 해적이 62.6%로서 흉포(凶暴)화 추세는 지속되고 있어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요구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을 위해선 원양구역을 항행할 수 있는 원양급인 3천t 이상의 선박을 이용해 해적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안전항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양경찰청이 보유한 3011 훈련함은 해양경찰 최초 훈련함인 `바다로함`은 정부기관 최초로 실전 배치된 4천200t급으로 길이 121m, 선폭 16m, 최대속력 18노트 규모로 100여명의 교육생이 동시에 생활하며 훈련할 수 있도록 준비된 함정이어서 비교적 안전하다.또 한국해양대학교가 소유한 6천686t급 한바다호도 250여명이 승선할 수 있고, 그동안 쌓은 풍부한 항해 경험 등에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으로는 최적이라 할 수 있다.

2013-10-31

신라는 육지 이어 바닷길로 세계를 누빈 `해양강국`

미리보는 `한바다호` 1만5천500km 대장정2014 해양실크로드 탐험로는 7개국 9개항을 거치는 1만5천500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대탐험의 코스는 한국(경주·울산·포항)~중국(닝보·광저우)~필리핀(다낭·호이안)~인도네시아(자카르타·족자카르타)~말레이시아(포트클랑·말라카)~인도(콜카타·탐룩)~스리랑카(콜롬보)~인도(캘리컷·고아)~이란(반다르아마스). 이번 해양실크로드는 한국해양대학교 `한바다호`를 타고 탐험길에 나선다. 7개국 9개 항(港)의 탐험길을 미리 가본다.고려 사행관 찾아 해상왕 장보고 흔적 되새겨중국해상의 무역거점, 닝보일명 영파라고 부르기도 하는 닝보는 송나라를 찾았던 고려 사신과 상인들이 묵었던 고려 사행관(고려사관 유적기념관)을 찾아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을 되새겨 본다. 이곳 사행관 자리에는 장보고의 흉상이 있는 신라방 위치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12월 해상실크로드 문화주간을 정해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은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가해양경제 시범구다. 서양상인들 자주 드나든 15~19세기 중계무역항베트남의 보석, 다낭 호이안베트남어로 `큰 강의 입구`라는 의미의 다낭은 인구 80만명이 사는 베트남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의 청룡부대가 처음 주둔한 곳이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호이안은 참파왕국 때부터 중국, 일본을 비롯해 포르투갈, 프랑스 등 서양국가의 상인들이 빈번히 드나들면서 15~19세기 중계무역항으로 해양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을 형성했던 고대항구도시. 지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말레이시아 최초 왕국으로 해상무역 중심지 東亞 무역거점, 말레이시아 말라카말라카는 15세기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말레이시아 최초의 왕국이었던 말라카 왕국은 1511년 포르투갈에 점령돼 아시아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로 알려졌다. 이슬람과 포르투갈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중국과 말레이 현지 문화가 퓨전된 바바뇨냐인들의 음식 등 다양한 문화가 퍼져 있다. 중국인 거리 정화사원이 도시중심부에 있다. 1757~1840년 서구무역 허가된 中 유일 무역항해양실크로드 관문, 광저우중국 해양실크로드 관문인 광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1757년부터 1840년까지 서구 무역이 허가된 중국 유일의 무역항. 명나라 때 남해제국(동남아시아) 조공선의 입항지로 청나라 중기 90년 동안 광저우 입항한 외국 선박은 무려 5천척에 달했다고 한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메달 주제도 해양실크로드였고, 해양실크로드 박물관도 지난 2009년 건립됐다.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하멜의 중간 기착지동양최고 식민도시, 印尼 자카르타옛 이름은 네덜란드인이 세운 식민도시인`바타비아`다. 인도의 고아와 함께 서양인들이 동양에 건설한 최고의 식민도시 가운데 한 곳. 1653년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하멜은 인도 고아를 거쳐 이곳에 머물렀고,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하기도 했다. 이곳서 동쪽에 있는 족자카르타는 지난 2005년 경북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세계 최대 불교사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보로부드르 사원이 있다.문명개척자 혜초가 중국 무역선 타고 도착한 곳혜초 도착지, 인도 콜카타(캘커타)지난 1772년부터 140년간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캘커타)는 2001년 도시이름이 캘커타에서 콜카타로 바뀌었다. 문명개척자 혜초가 723년 중국 광저우에서 무역선을 타고 출발해 인도에 처음 도착한 곳이다. 이곳을 `아시아의 등촉`이란 시로 일제 식민지 하의 한민족에게 감동과 큰 힘을 불러 일으키게 한 시인 타고르의 고향이기도 하다. 15세기 이후 대서양~인도양~태평양 잇는 요충지삼국유사의 스리랑카 콜롬보망고나무가 무성한 해변에서 유래한 콜롬보는 15세기 전까지 아랍-인도간의 향신료, 도자기, 보석 무역항으로 번창한 곳. 15세기 이후에는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잇는 교역항의 요충지였다. 411년 중국 최초의 인도 순례승으로 알려진 법현이 불교공부를 위해 2년간 체류하기도 했으며 소승불교 유산이 잘 간직돼 있다. 삼국유사의 용성국이 스리랑카 북부에 위치한 아아가디이파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 13세기부터 스파이스향신료 무역거점지로 부상유럽 동방진출 창구, 인도 캘리컷인도 남서부에 있는 코지코드의 옛 이름은 캘리컷으로 중세에는 인도 서부 해안의 향료무역 중심지였다. 13세기경부터 많은 이슬람 상인들이 이 지역 특산물 스파이스, 즉 향신료를 얻기위해 몰려 들었다. 지난 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다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첫발을 디디면서 유럽의 동양진출이 시작됐다. 캘리컷 해안을 후추라고도 불렀다.해양대 실습생 등 200명 탐험대 구성 서역 교역루트 답사내년 개천절 대탐험 출발 2015년 1월1일 이란 이나 터키 입성2015년에 열리는 `경주 실크로드 문화축제`도 전세계에 홍보경북도가 2014년도에 계획한 `해양 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은 올해 실시한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연결선상에 있다.신라가 당시 육로뿐만 아니라 바다를 거쳐 페르시아 등 서역문명과 교류한 루트를 재현시켜 신라문화의 폭넓은 활동을 재조명한다는 것이다.경북도는 2014년 해양실크로드 탐험이 마무리되면 육로와 바닷길이 도전을 향한 한국 청년들의 탐험로로 크게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렇게 될 경우 경주로부터 출발하는 한류가 실크로드를 따라 지금보다 더 많이 퍼져 나갈 것이란 분석이다.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경북도청 김남일 본부장은 “신라시대 혜초는 가죽장화를 신고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나라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또 스마트폰을 들고 한류의 열풍을 몰고 다니며 해양과 육로 실크로드를 갈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멋지고 감격스런 장면아닌가” 라고 반문했다.경북도의 2014년 해양실크로드 사업 목적은 우리국민들의 국제화·개방화·해양탐험 정신을 재조명하고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교류, 창조적 해양산업발전과 해양국민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골자다.또 2015년 개최예정인`경주 실크로드 문화축제`를 적극 홍보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대목.해양실크로드 사업은 2014년 상반기 중에 세미나개최와 관련 해외도시 교류 등 을 거쳐 해양 실크로드 탐험대가 2014년 10월3일 대장정에 오른다.경북도는 개천절을 탐험 시작일로 잡은 것은 바다 사정도 있지만 그만큼 이 사업이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탐험대는 한국해양대 실습생 150명과 기록 등 지원단 50명 등 모두 200여 명으로 구성되며 2015년 1월1일까지 3개월간의 일정이다.경상북도, 해양수산부, 경주시가 공동 주관하고 KIOST, 한국 해양재단, 한국 해양대학교, 대한민국 해군, 부산, 울산, 포항, 경주, 울릉, 화성, 삼척, 완도, 한국 해양소년단연맹, 독도 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등이 후원한다.해양 실크로드의 문화 역사적 재조명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 혜초비 제막, 해양 실크로드 탐험 기록 등 갖가지 사업이 펼쳐지고, 국내에서도 경기도 화성(당은포), 전남 완도(장보고 유적지), 울산(신라무역항, 처용 유적지), 부산 (해양대학교), 울릉도 (독도해양과학기지) 등 국내 해양거점과 연계, 시너지 효과를 높일 방침이다.해외 구간은 실크로드 해양 탐험 루트 7개국 9개 연안항을 탐험하고 이란 입성 후 이란 이스파한시 또는 터키 이스탄불 입성하는 안이 유력하다.경북도는 해양실크로드 대장정 동안 터키구간의 바다 인접국가인 7개국과 국제교류를 추진하며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혜초 바닷길과 쿠쉬나메 서사시의 `이란왕자 귀국 루트(해로)`도 둘러본다.경북도는 2014년에 해양 실크로드 사업의 연구를 통해 논문 발표와 자료 DB화와 해양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 국제학술회의 등 다양한 기록산업도 연중 내내 부대사업으로 함께 추진한다.이를 위한 해양관련 신시장 개척, 인도와 이란 니쇼부와 등 혜초 유적지 혜초비 제작, 혜초 뮤지컬 선상 공연 등 해양 역사문화와 연계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도 현재 기초 작업이 한창이다.경북도는 이 사업을 위해 지난 2일 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호` 사용 업무를 협의하고 30일에는 경북매일신문과 공동으로 힐튼 경주호텔에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보는 해양 실크로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김남일 본부장은 “`해양 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은 해상제국 신라 문물교류의 장이었던 해양실크로드 재조명을 통해 해양탐험정신과 해양문화를 계승·발전해 대한민국의 창조적 해양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또 김 본부장은 “경주는 이미 올해 육지를 통한 올해 실크로드 탐험 성공으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면서 2014년에 해양실크로드 탐험을 성공리에 마무리 해 신라가 육지와 바다라는 길을 통해 세계속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할 방침”이라며 경북도가 추구하는 이 사업의 목표는 경북지역이 세계속의 해양 거점, 문화거점이었음을 도민들이 함께 공유, 경북의 발전 초석을 다지는데 있다고 했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3-10-31

문화·예술융성의 새로운 길 연 글로벌교류 신모델

경북도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 성과경북도가 올해 추진한 `Korea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천년왕국 신라인의 기상을 이어가고, 한국문화의 모태인 신라문화를 재조명해 경북의 정체성과 혼(魂)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실크로드 주요 국가와의 국제교류·통상 강화로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 등에 경제영토를 세계 속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가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융성의 새 길을 열고, 인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교류라는 21세기 신모델로 제시한 이 사업의 실상과 추진 과정, 성과 등을 살펴본다.신라문화 학술조명·역사기록으로 한국실크로드학 정립실크로드 3대간선·5대지선 담은 기행문·도록 등 발간세계에 `동단기점 경주` 알리며 경북과 한국문화도 홍보□경북도 경제영역 확장 교두보 역할`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한국문화 모태인 신라문화의 학술적 재조명, 역사화(기록), 범국민 참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실크로드학을 정립하고 신라마케팅과 신(新) 한류문화 창조, 경제영토 확장으로 글로벌 대한민국과 경상북도의 브랜드 파워를 더 높이는 문화와 산업을 아우르는 융합 프로젝트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8월 신실크로드 시대에 맞춘 `실크로드 프로젝트`추진을 제안하면서 추진됐다. 역사, 문학, 콘텐츠 등 국내 최고 전문가가 나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며 세부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경북도가 2013년 역점사업으로 설정, 거의 모든 부서가 힘을 보탰다.경북도는 이 사업의 사회적 수용성 확보와 정부와 도민 참여 차원에서 신라문화를 통해 이념과 갈등을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에 동서양의 밝은 미래를 위한 창조, 화합 실현 등을 목적으로 제시했다. 도는 특히 학술적 뒷받침을 위해 국제학술회의 개최, 실크로드 논문 공모, 데이터베이스 구축, 실크로드 학술상 제정 등 학술적 재조명 사업 추진으로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지금까지 부족했던 학계 및 산업계의 관심 고조와 글로벌 기록·역사화 사업을 위해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 탐방기 및 기행문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실크로드 포토북 제작을 추진해 신라인의 문화와 발자취를 새로운 시각에서 기록했다.또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중국과 중앙아시아 등 실크로드 주요 국가(도시)인 중국 섬서성,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주, 이란 이스파한 등 주요 거점 국가와의 우호협정 체결과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 설치, 실크로드 국제기구 등과의 협력 등으로 신(新) 한류전파와 통상 강화로 경북도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제사회 홍보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 나선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는 이 사업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성과 먼저 학술적 재조명이 돋보인다.지난 7월 초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막이 오른 신라 재조명은 중앙아시아와 한반도 등에서 발견된 고대 실크로드 유물·유적의 연관성을 밝히고, 대한민국 실크로드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조명했다. 또 `하나의 실크로드, 북방 초원의 길`이라는 주제의 발표와 토론에서 신라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유적은 통념적으로 중국 중원을 거쳐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례지만, 경주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들은 북방과의 관련을 보여주며 실크로드의 독자 개척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후 국내외 석학들의 연구·발표를 통한 네트워크 강화로 실크로드 한반도 연장을 지속적으로 국제학계에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냈다.7월 22~23일에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고대 동서교역·문화교류의 거점 도시인 중국 둔황을 주제로 `둔황, 실크로드와 한국의 문화교류 및 둔황학의 국제화와 해외 둔황학`이라는 내용으로 `중국 둔황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를 중국 란저우에서 개최했다. 실크로드 교역의 오아시스, 동서무역의 중개지점이며, 종교·문화·지식의 융합으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실크로드의 관문인 둔황과 한국과의 문화교류 흔적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한 자리였다. 이 회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 한국 소장 중앙아시아·둔황 자료 및 연구 성과를 소개함으로써 한국 실크로드학의 학술적 위상을 높여줬다. 특히, 전 세계 실크로드 연구기관과 활발한 교류를 하는 국제둔황프로젝트 영국본부(IDP London)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으로 실크로드의 한반도 연장을 지속적으로 국제학계에 각인시키며 관심을 이끌어냈다.이 사업을 통해 발굴한 글로벌 기록·역사화도 큰 성과로 꼽힌다.경북도는 서구 및 중국 중심의 실크로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크로드학의 저변 확대와 연구활성화를 위한 `코리아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에도 매달렸다. 문명교류사 및 실크로드학 분야의 한국적 정립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정수일 소장)와 함께 실시한 이 사업은 실크로드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모두 포함한 대한민국 최초의 실크로드 사전 발간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특히 실크로드 3대 간선 중 초원로와 오아시스로를 대상으로 한 실크로드 도록(육로편)도 발간, 의미를 더했다. 실크로드에 관한 국내 최초의 전문 사전 및 도록 발간은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으로서 우리 역사문화 속의 교류상을 발굴·복원해 우리의 교류사적 위상을 대내외에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1세기 세계화와 교류,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실크로드학에 대한 종합적 지식체계가 구축돼 연구 저변을 넓혔음은 물론 지속적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또한 실크로드 동단인 경북도 경주의 기원에 관한 역사·문화를 영상으로 재조명해 한반도 중심의 실크로드학 정립과 국민적 공감대 확산 및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이 자료는 로마·인도·중국 등 실크로드 국가와 신라가 상호 교류를 한 사실을 국내외에 알려 줌으로써 경상북도 경주에 대한 실크로드 동단 기점으로서 역사성과 당위성을 홍보하는데 주효했다.실크로드 거점도시 간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는 실크로드 프로젝트 사업이 얻은 미래 자산이다.실크로드라는 문화를 함께 공유함에 따라 국제우호협력의 새로운 개척에다 실크로드 거점국가 간 미래 지향적인 우호교류 등 향후 나타날 동력이 적잖은 것이다. 실크로드 거점도시인 중국 섬서성과의 자매결연,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주와의 우호협력체결, 이란 이스파한과의 우호협력 선언 등의 거점 지역들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상호협력 네트워크 구축은 그 단적인 예다. 또 실크로드 거점국가 교류협력 상징사업의 목적으로 중국의 시안,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란의 이스파한, 터키 이스탄불,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 등 5개국 5개소의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를 설치하며 우호를 다졌다.우호협력 마지막 기념비는 오는 11월 4일 경북 경주시 엑스포 공원에 설치된다. 실크로드 거점국가와의 우호협력을 기념하고, 경상북도가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실크로드 국가와의 지속적인 교류강화를 추진하는 다섯 번째 실크로드 우호협력 비석이다. 국제사회 홍보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도 이 사업의 성공에 초석이 됐다.문명교류 통로인 실크로드를 재조명한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는 1차와 2차로 나누어 운영했는데, 총 2만947km의 긴 여정을 통해 과거 실크로드 상의 신라인들의 흔적을 찾아 답사하며 경주가 동단 기점임을 확인했다. 또 태권도, 전통국악, 전통탈춤 등을 공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에 맞춰 터키에 입성, 신라 경주와 경북을 홍보하는 대미를 장식했다.대한민국 미래 설계하는 국가사업이 돼야▲ 김관용 경북도지사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관련,“`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지자체에서 시작하지만, 지자체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 최대 중점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 지사는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후대를 위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어서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역사적 소명”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앞으로 장기플랜을 수립해 국가와 긴밀하게 논의,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노력을 배가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현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융성 시대를 경북이 선두에 서서 열어나가겠다”며 이는 300만 도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도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세계 첫 해양실크로드 종합학술연구 큰 의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해양실크로드 붐이 일고 있다”국내 최초로 30일 경주힐튼에서 열린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 소장은 “인문, 역사, 과학기술적 접근이 밀접하게 이뤄지는 심포지엄은 아직 없었다”며 성공적인 심포지엄이라고 정리했다.그는 해양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해양실크로드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리된 게 없다는 것.정 소장은 “해양실크로드는 전 세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연구, 정리된 것이 없다”며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개척에 쓰였을 뿐이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 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이 해양실크로드의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정 소장은 “해양실크로드 탐험의 해양과학기술적 검토라는 세 번째 주제를 통해 해양 탐험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져 과거 찬란했던 신라 역사를 비롯한 우리 문화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그는 경북도가 추진 중인 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합한 `실크로드 엑스포`의 중요성을 부각했다.그는 “최근 경북도가 성공리에 마친 경북도 실크로드 탐험대는 1단계이며, 내년에 실시하는 경북도 해양실크로드 탐험대는 2단계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심포지엄은 2단계 사업의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이다. 1, 2단계 탐험이 모두 마무리되는 2015년,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역사 문화를 통해 새로운 비전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경주문화유적 통해 세계의 문화 재발견 가능▲ 펑위레이 中 실크로드잡지사 대표온전한 경주 문화유적을 통해 전 세계의 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펑위레이 중국 실크로드잡지사 대표는 30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경북도, 경북매일신문 주최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지난 1992년 창간된 실크로드잡지사는 중국의 육상 실크로드는 물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권 해양 실크로드 등을 통해 전 세계에 걸친 역사·문화 교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그는 육상 실크로드의 중심인 중국 역시 해양 실크로드는 걸음마 단계로 이번 심포지엄이 주는 의미가 매우 뜻 깊다고 강조했다.펑위레이 대표는 “중국은 육로를 통한 실크로드 발견은 많은 진전이 있으나 해양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초창기이다. 광저우성, 닝파 등 중국 일부 해안 지역에 실크로드 연구소가 있으나 광범위한 소통이 없는 실정”이라며 “경북도가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과거 역사를 고증하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특히 그는 해상 강국 신라의 문화 유산이 온전히 남아 있는데 주목했다.펑위레이 대표는 “해상 실크로드의 길목인 말레이시아 말리자 지역에는 고대유적이 바다로 인해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 역사 고증에 어려움이 많이 뒤따랐다”면서 “반면 경주는 천년전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 전 세계 문화 교류를 찾아 보는데 중요한 지역이다”고 진단했다.그는 “심포지엄 참가에 앞선 지난 29일 경주 문화 탐방을 통해 많은 유적을 봤다”면서 “흥덕왕릉 서역인상과 괘릉 입구의 문인석은 중동지역과의 대외교역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이는 육상 실크로드가 아닌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가 교역을 펼쳤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로 인해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신라시대의 다양한 대외 교역을 통해 전 세계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김기태기자 kkt@kbmaeil.com/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2013-10-31

만산홍엽 설악산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산에 들에 단풍이 붉게 물들면서 행락객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데, 북쪽 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산까지 시차를 두고 국토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기상청에 의하면 이달 중하순 절정에 달한 설악산 단풍이 차차 남하하면서 10월의 넷째 주말(26~27일)에는 속리산까지 내려가고, 11월 첫째 주말(2~3일)에는 전북 내륙과 경남·북으로 번져 가야산, 팔공산에 이르며, 11월 둘째 주말(9~10일)에는 전국에서 제일 단풍이 잘 들기로 이름난 내장산까지 절정기를 이룬다고 한다. 가을 등산은 이왕이면 단풍이 잘 드는 산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그저 산이면 족하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형상들은 어느 산이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나 내려올 때의 마음가짐이 항상 같지만 때로 하산 길에서는 오늘도 즐거운 산행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대청봉 정상 오르면 울산바위·동해바다 `한눈에`불교 대표 순례지 봉정암 5대적멸보궁 중 하나필자가 생각해도 산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나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이다. 그래서 이번에 찾은 곳이 설악산인데, 지난 6월에 이어 올해의 단풍이 절정기를 이룬 시기에 또 찾아왔으니 못 잊어서 그리운 산 찾아서 또 왔다는 것이 나에게 해당되는 셈이다.특히 이번 등산은 대청봉과 소청봉, 그리고 봉정암에서 1박할 계획으로 특별손님과 함께 왔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신이 나는 행차였다.지금까지 숱한 산행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만 해주던 집사람이 이번에는 봉정암에서 철야기도도 할 겸해서 함께 가자고 했으니 설악산 코스가 산을 처음 타는 사람에게는 걱정도 되지만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절정기를 맞아 부부가 함께 가는 등산이니 여간 기쁘지 않다.새벽 4시 40분에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강원도의 험준한 산과 협곡을 이리저리 돌아 오전 10시경에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에 도착했다. 당초에는 한계령에서 산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산의 깊은 곳에서 정수리를 타고 싶다는 집사람의 청을 받아들여 출발지를 변경했다.등산하는 사람들이나 일반인들도 설악산엔 자주 와봤을 것이다. 불교도들은 봉정암에 들려 기도를 했을 터이고 상춘객들은 봄이나 가을에 설악의 절경을 음미해봤을 테고, 또한 등산인들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설악의 자연과 함께한 기쁨이 있으리라.특히 설악산 등산은 산불조심기간에는 일시적으로 등산로가 폐쇄된다. 허용 시기는 매년 5월16일부터 11월 14일까지와 12월16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다. 그리고 설악산은 시간적으로도 통제가 되는데 입산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오후 1시까지는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때로는 등산객들이 등산도 하면서 일출장면도 볼 겸 야간 등산을 즐기기도 하는데 대청봉에 올라 동해바다에서 뜨는 일출장면은 명품이라 한다.설악산 등산코스는 여러 군데다. 당초 한계령에서 시작하려던 계획을 바꾸어서 오색에서 출발했는데 이 코스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어 산행코스 가운데 험로로 유명하다.설악산 오색분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서는 조심스럽게 등산을 시작한다. 필자는 집 사람과는 처음으로 등산하는 관계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평소에 발목과 무릎 쪽이 좋지 않아 신경을 쓰는 상태인데 무사히 이번 등산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초입부터 돌계단이 시작된다. 설악산 중에서 오색 코스는 정상인 대청봉까지 가장 짧은 구간이지만 정상까지는 거의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전문가들도 힘들어하는 곳이다. 경사도가 있는 계단코스를 만난 집사람은 처음부터 힘들어 한다. 오늘 봉정암에서 기도를 하는 게 집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지만 산에 오르는 초입부터 수행하는 자세로 올라야 한다.주변 산에 단풍이 울긋불긋 들어 아름다운데, 붉고 노랗고 물든 단풍 천지다. 집사람은 힘이 들어 조금 오르다가 쉬기를 반복한다. 봉정암에 기도하러 간다는 마음과 부근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과 자연 풍광이 없었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고전분투한다.등산에서 초행자가 몇 명 있는 관계로 일행들은 힘을 북돋우며 천천히 진행한다. 자주 쉬면서도 힘들게 제1쉼터까지 왔다. 쉬엄쉬엄 제1쉼터를 지나 한 시간 남짓 걸으니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설악폭포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쉼 없이 물이 흘러내린다.설악폭포에서 잠시 쉬다가 제2쉼터를 향해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힘들게 2쉼터를 지났고, 이제 대청봉에 오르는 최대 난코스을 맞았다. 어려움이 있는데도 여기까지 아픔을 참아가면서 여기까지 온 집사람이 고맙다. 나는 계속 집 사람과 처음 등산 온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험난한 길이다.집사람의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을 때로는 부축해주면서 힘들게 오르다 보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럿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변에 있는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를 보면서 다시 힘을 얻는다.드디어 대청봉에 올랐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정상에 오르고 나니 갑자기 겨울 날씨다. 몸을 따뜻하게 한 뒤에 주변을 살펴본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이고 동해안의 바다위에 떠 있는 배들도 보인다.우리 일행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단풍놀이 온 행락객들이 `대청봉 1천707m`이라 쓰인 정상 표지석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는 숱한 등산을 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까지는 아내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오른 산이어서 기념을 남겼다. 설악을 배경삼아 함께 한 이 순간은 상대를 존경하고 위해주는 경건함이 신비감으로 다가온다.이제는 중청봉으로 가는 길은 하산길이다. 조심조심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매주 등산으로 단련된 등산 마니아들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초보등산가들에게는 하산할 때가 조심스럽다. 이미 오르느라 지친 몸에 기운이 없으면 하체가 후들거리거나 내려오면서 꼬일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산에 갈 때에 등산 스틱이 필수인 것이다.같은 산세의 중청봉 정상에 올라 전망을 구경하고서 다시 내려 소청봉 대피소를 지난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힘은 들지만 자연경관이 너무 좋아 견디고 있다는 말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봉정암으로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봉정암에 도달했다. 등산을 시작한지 8시간만인데, 일반 등산인들보다 1시간 반이나 지체된 상태다. 전문등산인들도 힘들어하는 코스인데, 초행길에 나선 몇 사람들은 오죽하랴! 집사람은 딸아이와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봉정암에 올라야 한다는 일념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에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봉정암은 강원도 설악산의 소청봉에 있는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에서 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이 사찰은 우리나라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기도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 사람과 저녁 공양을 하며 오늘 오른 산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집 사람이 보람있어 하는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고 행복한 마음이었다. 여태껏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혼자서 즐긴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이제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새벽안개 속으로 아침햇살이 서서히 퍼져가는 산사에서 느끼는 감정은 수행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 오욕칠정이 멎은 듯한 순간이다. 인생의 지나온 길과 현재의 존재 가치나 앞으로 살아갈 이생의 길목을 조용히 반추하는 진실의 시간인 것이다.점점 밝아오는 신선한 아침을 맞으며 한줄기 생각이 마음속으로 스쳐지나간다. 이번 설악을 찾아와 여럿 사람들과 힘든 돌계단을 오르고 고생한 파노라마 같은 순간들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는 등산의 길에서 항상 고맙게 대해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할 인생 좌우명 같은 생각들이다.“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이 /사람 마음을 혹하게 하는가. //신비의 설악을 감고 돌아 /명당이 된 봉정암에서 /오랫동안 참선하는 사이에 /내심에 가득 찬 기도는 /자연을 닮고 싶다는 욕심 뿐. //별빛마저 고운 밤에 /한밤을 지세우고서 /경건히 맞는 이 아침이 /가슴 아리게 다가섬은 /수행길이 멀다는 아쉬움인데 //힘들어도 서럽지 않게 사는 법을 /설악은 묵언으로 말해주고 있다.”지금까지 많은 등산을 했지만 이번 등산은 의미가 깊다. 가을이 익는 설악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차 아내와의 동행이 마냥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게 된 의의 `설악의 묵언` 시처럼 인생길을 동행하면서 참된 가치와 사랑을 자연에서 배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봉정암에서 1박을 하고서 2일차 등산은 오세암과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로 가서 이번 등산을 마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코스의 등산기는 필자가 지난 6월에 등산을 다녀와서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코스에 대해 자세한 등산기 경북매일 6월 14일자를 쓴 적이 있어 참고할 것을 당부하면서, 그 구간에 대한 별도의 등산기는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어쨌든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에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든다는 설악산을 1박 2일간 다녀온 이번 등산은 내겐 의미가 깊다. 특히 그 일행 가운데 등산에는 초보인 집사람과 친구분이 따라 나서서 동행한 소중한 시간들은 등산이 인생같다는 훌륭한 가르침이어서 고마움을 느낀다.▲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25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트레킹

10월 이때쯤이면 누구든지 단풍이 곱게 물드는 산을 찾게 마련이다. 정기적으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을산을 많이 가봤을 테지만 멀지 않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아무래도 등산이 불편하기에 가을등산을 자주 간다. 여름 무더위 속의 등산은 얕은 산이나 계곡 또는 바다와 붙어있는 곳을 즐겨 찾게 마련이지만 등산하기 좋은 시기라 해도, 높은 산이나 장거리 시간을 요하는 먼 길을 다녀오고서는 때로는 가벼운 등산이나 트레킹코스를 생각해본다.지난번 연속하여 서울 북한산과 강원도 춘천의 오봉산을 다녀오는 등 장거리 등산을 했고, 다음번에는 강원도 설악산을 계획하고 있어 이번에는 비교적 가까운 코스를 택했다.충북 괴산에 있는 얕은 산과 호수를 끼고 잘 만들어진 트레킹코스, 산막이옛길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450m 두개 산봉우리 거쳐 괴산댐 호수길 따라 걷는 코스한반도 전망대 올라 산 아래 내려다 보면 호수·마을풍경 한눈에산행을 하면서 여행이라 하니 어색할 것 같지만 산행도 일종의 멋진 여행인 것이다. 산을 타고 오르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삶의 지치거나 혼돈된 자세를 다시 정리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등산은 사람들에게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번 산행은 450m 남짓한 두 개의 산봉우리를 거쳐 괴산댐 호수가에 잘 조성된 길을 따라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느끼는 여유 있는 코스다. 아침에 떠나온 버스는 2시간 채 못되어 괴산댐 호수가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단히 준비하고서 10시경 본격적인 등산 행로에 올랐다.참고로 괴산은 등산하기 좋은 산들이 35개소나 있는데 그 중에서 1천m를 넘는 산은 연풍면의 백화산(1천63m)와 조령산(1천25m)이며, 나머지 산들은 해발 500m에서 900m에 이르는 산들이다. 이번에 오르는 등잔봉과 천장봉은 400m 높이의 산이라서 명산 등산코스에는 없지만 산막이옛길과 연계하여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 코스다.이번에 오르는 산 등산로 가운데 일부가 산막이 옛길과 일부 겹치는데, 요즘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나 관광객들에게 괴산 산막이옛길 트레킹 코스는 소문이 나 있다. 등산 초보들도 인근에 있는 400m대의 산봉에 올랐다가 내려와서는 옛길을 걷는 코스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산막이 옛길은 2009년 괴산군이 13억원을 들어 괴산댐 호수 수변을 따라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4km 길을 옛 흔적을 그대로 살려 복원한 산책길이다. 지금은 입소문이 퍼져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데 사시사철이 좋지만 특히 10월말의 이곳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주변의 괴산댐은 지난 1957년 초 순수한 우리 기술로 최초로 준공한 댐이기에 괴산군민들은 상징적인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산막이옛길은 괴산댐 호수와 어우러지며 한국의 자연미를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산막이 옛길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 반하게 된다.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소나무동산과 정사목, 노루샘까지는 옛길코스와 같다. 초입 길부터가 산과 호수, 그리고 소나무숲길이 어우러진 길인데 소나무동산이란 말처럼 이 길가에는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숲길가에는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등산을 시작하는 마음부터 편안해져 온다.들어서는 길 초입에는 출렁다리가 만들어져 등산인이나 관광객들이 그 출렁다리에 올라 소나무밭 상공을 걷기마련인데, 높이 4m로 길이가 60m정도 이어지니 붕 뜨는 기분이 들고 출렁거리는 반동 때문에 아찔한 생각도 들지만 기분이 좋다.산짐승들이 내려와 물을 마셨다는 노루샘을 지나 등잔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 산과는 달리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하고 그 높이가 해발 400m대라 힘이 들지 않는다. 일행들은 노루샘에서 900m 거리에 있는 등잔봉 정봉을 힘들지 않게 오른다.등잔봉에 오른 길 가운데 힘들고 위험한 등산로도 있지만 편안하고 완만한 길도 있으니 그 길로 올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산보다 쉽게 산 정봉(450m)에 올랐다. 등잔봉이란 명칭에서 직감적으로 등잔불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맞았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아들의 장원 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고 하여 등잔봉이라 불리어진다. 지금도 효험이 있어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봉우리라고 하니 온 김에 필자도 딸아이의 정진을 빌어보았다.잠시 생각하다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호수나 마을 모습들이 가을 풍경처럼 넉넉해 보인다. 등잔봉에서 내려다보니 호수를 사이에 두고 서편은 산막이 마을이고, 동편은 갈론 마을이다.이 두마을은 옛길 트레킹 코스가 명소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데 지금은 형편없는 촌의 분위기를 떨쳤다. 일행들은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10월의 나들이를 즐기다가 다시 행장을 메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하산을 하다가 조금 더 올라가면서 걷다보니 한반도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우리가 가끔씩 사진이나 TV에서 보아왔던 우리나라 국토지형을 닮은 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물굽이 흘러가는 저편으로 산세가 이어지면서 흡사 한반도 모양과 비슷하다.조금 오른쪽에서 봤다면 한반도 모양이 더 잘 나왔을 것인데 생각하면서 완만한 산길을 걸어서 천잔봉으로 향한다. 산길이라 평길을 걷는 것보다는 힘이 들 테지만 그런대로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300m 정도 산을 타고 오르니 천장봉 정상이다.천장봉(天藏峰)은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울창한 노송과 더불어 장관을 이뤄 그 풍광의 수려함에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놓은 봉우리”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그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괴산호수나 산야들의 모습들이 아름답다는 것이다.일찍이 하늘도 감춰놓은 비경의 산 정상 위에서 일행들은 자리를 깔고 점심식사를 하고서는 휴식을 취하면서 산 아래의 풍경 이쪽저쪽을 둘러본다. 가을 날씨 속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히 천장봉이라 부를만하다.하산을 시작하여 부지런히 걷는다. 한참 내려오다가 삼거리 길을 만나는데 계속 직진을 하면 삼성봉으로 가는 길이고, 좌회전을 하면 진달래 동산이 있는 진달래능선을 거쳐 바로 산막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심한 내리막길이다.산 아래 있는 산막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산에 막혔다는 오지마을이다. 그 마을 윗쪽엔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노수신(1515~1590)이 을사사화때 이곳으로 유배와서 살은 수월정이 있다. 노수신은 명종2년에 진도로 귀양가 19년 살다가 이곳 산막이 마을로 옮겨온 지 2년 만에 선조가 즉위하면서 복원됐고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산막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노수신의 10대손인 조선후기 선비 노성도(1819~1893) 덕분이다. 그는 조상의 자취를 따라 산막이 마을을 찾았다가 마을을 둘러싼 달천의 비경에 반해 `연하구곡`이라 이름지었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연하구곡은 모두 물에 잠겼지만 노수신이 유배생활하던 적소 주변은 빼어난 절경으로 오늘날 관광명소로 변했다.일행들은 산막이마을길을 택해 내려와 잘 정리된 옛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이제 괴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명소로 자리 잡았고,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번져 지난해만해도 13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이 옛길 트레킹 코스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트레킹코스로 불리고 있는데, 혹자는 이 길 대신에 부산 이기대 길을 꼽기도 한다.옛길로 접어들어 나무로 된 테크에서 풍경을 구경하고는 올레길을 계속 내려서면서 일행들은 주변의 풍경들을 조망하면서 잠시 쉰다. 이제 편한 길 몇 군데만 거치면 아침에 출발했던 주차장이 나온다.산막이 마을에서 주차장까지는 24개의 명소가 있다. 앉은뱅이가 샘물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는 앉은뱅이약수가 있고, 참나무가 마치 옷벗은 미녀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붙인 `옷벗은 미녀참나무`가 있으며, 1960년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호랑이굴이 산책로 옆에 재현되어 있다.호수전망대에서 그림같은 호수를 보면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사진을 찍거나 여행의 여유를 즐긴다. 필자도 호숫가를 배경으로 산길 옆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가을의 대표적인 꽃 코스모스를 보면서 감회에 젖는다.이번 등산은 400m 남짓되는 비교적 낮은 산봉우리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지만, 등잔봉에 오르는 두 개의 길, `힘들고 위험한 길`과 `편안하고 완만한 길`은 마치 인생 길처럼 생각된다. 누구든 힘든 여정보다는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이지만 힘든 길을 완주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은 그만큼 클 것이다.청정자연 속의 `신 산책로 1번지`로 이름난 이번 괴산 산막이옛길 등산이 필자에게 마치 가을동화처럼 잔잔히 파고드는 것은 가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에 행차했다는 것이고, 옛길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는 흡족함에서 이리라.▲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18

서울 북한산 `숨은벽·백운대`

이번 등산은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으로 정해졌다. 필자가 서울에 거주할 때에도 일찍부터 알게 된 북한산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등산을 하다 보니 뒤늦게 북한산을 오르게 되었다. 북한산이라! 등산가가 아닐지라도 국민 가운데 유아들을 제외하고서는 아마 북한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산이고, 어렸을 적에 불렀던 동요에서 이미 `북한산`이란 단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필자가 북한산을 안 시기도 동요를 불렀을 때로 생각된다.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렸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이 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어린 시절, 가을이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어디에도 있는 줄도 모르는 북한산 단풍과 기러기떼를 생각했던 것인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전국의 어느 산에도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됐다.암반길 등산 코스 안전수칙·사전준비 철저히백운대 정상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지는 풍광에 황홀지난주에 서울 북한산을 다녀오고서 평소에도 느낀 바지만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면에서 잘 발전돼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만은 아니다.등산 하나만 따져 봐도 그렇다. 북한산은 서울 외곽에 있으면서 그 면적이 넓어서 볼거리, 쉴 거리가 많다. 그보다는 서울의 종로구, 은평구, 강북구 등 여러 구와 고양시가 관리를 하면서도 북한산 등산코스가 잘 다듬어져 있어 어느 때든지 일반 시민들과 등산객들의 왕래가 많다.게다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인 북한산 둘레길 71.3km 길이의 총 스물 한 군데를 정비하여 어느 곳에서도 서울 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으니 시민들이 얼마나 편리할까.서울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한 북한산 등산을 위해 등산 당일 새벽부터 분주했다. 1일 등산이라 아무래도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려면 새벽부터 행차가 불가피하다. 대구에서 오전 5시 반경에 출발한 버스는 산행 들머리인 서울의 밤골공원 지킴터에 도착하는데 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다.차안에서 새벽잠을 즐긴 일행들은 오전 10시 1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은 북한산 산행의 여러 코스 가운데 상징성을 갖는 숨은벽과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가 도선사 쪽으로 내려와 일정을 마치도록 돼 있다.북한산은 정봉인 백운대(836.5m)와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 노적봉(716m)이 주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고, 이 봉우리 일대에 암봉 군들의 자태가 수려하여 북한산의 경관으로 꼽히는 곳인데, 이번 등산에서 직접 오르거나 다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어 다행이다.이번 등산은 암벽 전문 등산이 아니지만 코스로 볼 때에 암반길을 많이 걷는다는 안내를 받고서 일행들은 마음을 다지면서 등산화를 꼭 조여매기도 한다. 빼어난 북한산의 경관을 맛보려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안전수칙도 지켜야한다.밤골 매표소를 지나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입이 평길이기에 일행들의 발걸음이 가뿐해보인다.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사기막골 가는 방향으로 200m 가다보니 사기막골과 백운대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서 백운대 길을 향해 숨은벽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30분 정도의 거리가 편한 숲길이어서 쉽게 갈 수가 있다.서서히 암반이 보이고 본격적으로 암반길이 계속된다. 암반길을 따라서 조심조심 걷고 숨은벽 바로 아래에 있는 해골바위를 우회하여 전망좋은 곳에서 잠시 쉬면서 숨은벽의 또 하나의 명물로 꼽히는 해골바위를 본다. 바위의 형상이 영낙 없는 해골의 모습인데, 눈 부분의 움푹 파인 곳에 빗물이 고여 있다. 직접 올라가본 사람들은 그 물이 오랫동안 고여져 있어 썩었다는 말을 한다.잠시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서울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도봉산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또한 경기도 양주의 송추, 장흥 일대의 시가지까지 눈 아래에 펼쳐진다.다시 암반등산을 계속하여 나아가니 구멍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가 맞물려 세워진 빈 틈새로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공간이 나 있다. 일행들은 등산백을 벗어 조심조심하면서 맨몸으로 빠져나와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조금 더 오르면 숨은벽 위 고개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 숨은벽이라 하니 벽이 숨어있다는 뜻으로 필자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위용을 자랑하는 숨은벽은 북한산의 뒤태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최근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널리 알려진 탓에 이제는 `숨은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암반길을 걸으며, 숨은벽 능선을 타고 고개에 오른다. 여기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백운대까지는 500m 거리다. 서로 손을 잡아주면서 아찔한 절벽을 타고, 테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암반등산의 경계심을 가진다.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그 위에 만들어진 게양대에서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서울 시가지와 함께 인근의 경기도 땅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어느 산이든 정봉에서 갖는 느낌은 마찬가지지만 이곳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진산, 북한산의 정상이다 보니 느껴지는 맛이 새롭다.북한산의 가장 높은 백운대 정상에 서서 펼쳐지는 풍광들을 살펴보면서 기념사진을 찍고서 휴식도 취한다. 사방을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통일서원비다. 1975년 8월 15일에 한국산악회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 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 /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이다.` 라는 내용인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애국심은 잔뜩 묻어난다.그 옆에 보니 3·1운동 암각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통일서원비나 3·1운동 암각문을 만든 단체들의 열정은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좋은 자리에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비석을 세우고 암반에 글씨를 새겨야 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연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가치를 빛내는 것이 아닐까.북한산을 부르는 이름이 많았다.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 나타난다.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라는 기록이다.또한 북한산은 백운대·인수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삼각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삼각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그래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으로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 `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백운대의 넓은 암반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다음 코스인 도선사 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있는 노적봉과 용암봉을 보면서 일행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노적봉은 목포 유달산 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노적봉이 있다.노적봉을 보면서 용암문 사이에 있는 용암봉을 잠시 바라다본다. 용암봉은 그 높이가 616m이다. 그 모양이 마치 용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데, 정식 등산로가 아닌 암봉이어서 자일 등 등반장비를 갖춘 전문 등산인들이 오르는 코스로 용암문에서 용암봉 봉우리와 만경대를 거쳐 위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리지산행(암릉등반)으로 알려져 있으니 일행들은 구경만 할 뿐이다.하산 길을 재촉하여 산행 길에 있는 북한산의 유명한 사찰 도선사에 도착했다. 도선사는 조계종의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이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북한산 아래 위치한 이곳의 산세가 천년 뒤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에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1903년 혜명 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았으며, 그 후에 청담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당시 박정희 대통령 및 육영수 여사 등의 시주로 도량을 중수하였다고 알려지는데, 현재와 같은 큰 사찰로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살펴본 뒤에 식수대에서 한 바가지 물을 떠서 목을 축이고서는 다음 코스인 우이계곡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수많은 행락객들과 산악회 회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이계곡을 지나간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등산을 마치고서 뒤풀이하는 광경도 보인다. 북한산 정상을 거쳐 하산을 했지만 우리 일행들에게는 돌아갈 길이 멀다.▲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암릉으로 형성된 된 산을 힘들게 오르고 내려왔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 `왜 우리가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의구심과 자연의 섭리대로 조금만 더 천천히 라는 `슬로우의 미학`을 가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북한산을 휘감는 긴 산 그림자 속에서 보낸 이번산행은 필자에게는 더욱 소중한 의미로 다가선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11

찬란한 고대문화의 고장 고령

고령군은 신비로운 가야산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을 두르고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도읍지로 많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그야말로 지역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고령군에는 대가야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놓은 대가야박물관과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가야왕릉전시관이 있다. 또한 악성 우륵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 국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관한 우륵박물관과 고대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영남학파 종조인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350여년간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는 개실마을은 전통한옥에서의 민박체험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체험도 할 수 있는 장소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또 지난 5월 준공해 올 연말까지 무료 시범운영을 하고 있는 농촌문화체험특구는 지역 농ㆍ특산물에 대한 견학·실습·구매·현지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이색관광지로 농촌관광 인프라 구축과 농가소득 창출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특히 가야토기와 가야금형상으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세계적인 명품보인 강정고령보가 다산면에 있다.지산동 44호 고분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악성 우륵의 숭고한 얼 기린 우륵박물관사계절 즐기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까지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복합학습공간으로 인기350년 전통 개실마을서 다양한 한옥체험도낙동강 자전거길 고령구간은 강정고령보에서 출발해 개경포공원, 청룡산MTB도로, 우곡교까지 연결되는 코스로 강과 숲을 넘나들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4대강 중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길로 알려진 곳이다. 현재 추진 중인 3대 문화권사업 중 하나인 가야국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사업은 총 사업비 500억원을 들여 고령읍 고아리 회천변 일대에 가야촌, 대가야 건국설화공원, 주산성, 저잣거리 등 가야의 역사문화 자원을 재현해 관광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2016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이밖에 테마관광지내 인빈관 개관, 회천수변 자전거길 및 산책로 조성, 미숭산 자연휴양림 등 휴양공간과 농촌체험특구 내 기마문화 체험장 조성을 통해 고령지역 전체를 `종합 체험관광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 고령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개진면 개경포공원 리모델링사업 우곡면 부례지구 레저스포츠 체험밸리 조성사업, 수변탐방로 조성을 위한 낙동강 역사 너울길 조성사업,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조성, 풍경소리 숲길이 조성되면 낙동강 연안 관광벨트화로 낙동강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며 생활체육공원 및 수변 골프장 조성 등 친수 문화·레저시설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이러한 우수한 관광자원을 기반으로 우리 고령군은 2014년까지 관광객 500만명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대표축제 대가야체험축제고령군은 520년간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장기리 암각화 등 선사시대 문화유적과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한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산재한 지역으로 가야금의 창시자인 악성 우륵선생의 숭고한 얼이 숨 쉬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대가야체험축제는 이러한 역사·문화·관광자원과 지리적 여건 등을 바탕으로 대가야의 독특한 문화를 접목시킨 차별화된 교육·체험형 축제로 신비의 고대왕국 대가야의 실체를 널리 알리고 지역에 산재한 관광자원 및 고품질 농·특산물과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산적인 축제로서 2005년부터 매년 4월초에 개최해 오고 있다. 대가야체험축제는 올해 9회째 개최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 최우수축제 3년 연속 지정 및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축제에 6년 연속 지정되고 2013년도에는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 우수축제로 지정돼 성공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앞으로도 독특한 소재의 지속적인 프로그램 발굴로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축제, 지역 이미지를 제고하는 문화축제, 경제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는 마케팅 축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축제, 더 나아가 대한민국 대표축제로의 승격을 도모하고 있다. □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고대 대가야문화의 주축인 철기, 토기, 가야금을 주제로 한 체험시설과 4D영상관과 같은 첨단시설, 힐링에 적합한 숙박시설, 그밖에 물놀이장 등 다양하게 조성된 위락시설을 통해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머물 수 있는 복합 학습공간이다.약 300억원의 사업비로 2001년부터 2008년 까지 조성된 테마관광지는 주변의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 대가야고분군을 통해 역사탐방을 한 뒤 과거와 현재를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재미와 휴식을 주는 고령의 대표 관광 명소라 할 수 있다.테마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이 해를 거듭 할수록 증가하는 이유는 봄·가을에는 대가야축제와 펜션, 여름 물놀이장, 겨울 눈썰매장 등 사계절의 콘텐츠가 뚜렷하기 때문이며 특히 물놀이장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둔 가족에게는 최고의 인기상품으로 금년에도 매주 7천명 이상이 방문했다. □ 시범사업 선정 가얏고마을고령의 정체성은 대가야고, 대가야하면 가야금을 창제하신 악성 우륵을 빼놓을 수 없다.가얏고 마을은 악성 우륵 선생이 탄생한 고령읍 정정골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가야국 가실왕의 명을 받은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이 곳에서 제작해 연주하니 소리가 정정하게 울린다고 해 `정정골`이라 불리는 마을로서 악성 우륵선생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7년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에 공모해 가야금의 또 다른 말인 `가얏고`를 붙여 가얏고 마을이라 불리고 있다.가얏고 마을은 주산과 미숭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인근에 조성된 미숭산 자연휴양림과 더불어 풍광이 아름다워 삶에 지친 도시인들의 재충전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마을 옆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고 제작체험을 할 수 있으며, 가얏고 마을에서는 100여명이 함께 가야금 연주체험도 할 수 있다.요즘 각급 학교에서 대가야를 배우고 가야금을 연주 해보기 위해 청소년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데 작년 한해 1만2천여명이 다녀갔다. 가족단위로 가야금 연주체험을 해보고 싶다면 경북 고령 가얏골마을에 찾아오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곽용환 군수는 “고령은 악성 우륵선생 등 대가야의 역사가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며 “가족단위나 단체관광객들에게는 체험활동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관광지”라고 강조했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13-10-08

`세계 문화의 창구` 안동국제탈춤축제

`꿈꾸는 세상, 영웅의 탄생`을 주제로 10일간 안동을 달궜던 `안동국제탈춤축제2013`. 올해도 100만여명의 인파를 불러 모으면서 6일 성황리 폐막됐다.지난달 27일 개막한 안동국제탈춤축제는 인구 17만 중소도시 지역 문화역량으로 외국공연단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등 세계적 축제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안동시에 따르면 올해 축제에는 외국인 4만2천여명을 포함해 총 98만4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선유줄불놀이가 있었던 지난 5일 하회마을에만 5천여 명의 외국인이 찾는 등 외국인 관광객 수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안동시는 이러한 외국인들의 관심에 대해 최근 CNN-go의 탈춤축제 추천과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G20정상회담 참석 당시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과 인터뷰에서 하회마을을 대표관광지로 추천한 것을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각 공연장마다 관람객들이 성황을 이루면서 2억원 이상의 입장권이 판매되는 등 이번 축제로 인한 지역 경제유발효과도 600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안동대학교 지역사회발전연구소는 지난해 110만여명이 다녀간 축제에서 생산유발 343억4천361만원, 부가가치유발 159억1천964만원, 소득유발 130억6천558만원 등 633억원이 넘는 이익창출이 있었다고 분석했다.지난해 대비 예매율 32% ↑·공식홈피 접속률도 38% 늘어탈 관련 콘텐츠 대폭 진화… 중소도시 문화역량으로 세계 감동□ 해외서 먼저 러브콜 보내는 세계적 축제안동국제탈춤축제는 안동을 국제문화도시로 만들어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탈춤축제를 통해 협력한 국제교류는 중국 소수민족협의회, 서안시, 인민우호협회, 인도네시아 솔로시, 필리핀 바코로드, 태국 단사이, 인도네시아 싱가라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이스라엘 카미엘댄스페스티벌 등으로 각국 단체 및 도시와 우호협약을 맺은바 있다.▲ 인도네시아 가면공연단탈춤축제를 통해 확보된 국제적 문화외교는 문화도시 안동의 이미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관광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글로벌 시대에 안동문화를 창의적으로 확산하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 안동국제탈춤축제는 매년 10월 다음해 축제에 참여할 외국공연단 모집을 위해 150여개국 300여개 문화 단체에 초청장을 발송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세계 문화단체에 축제가 홍보되고, 일체 항공료, 공연비 없이 진행하고 있다.올해는 30여개 나라에서 참여의사를 밝혀 왔고, 이 가운데 16개국 23개 공연단이 초청됐다.국가연합지역 국제기구인 한·아세안센터 요청으로 `아세안축제(ASEAN Culture Tourism Fair)`를 안동국제탈춤축제장에서 개최하면서 이제는 해외 공연단이 먼저 참여하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났다.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열흘 동안 축제가 진행되는 축제의 주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축제의 주기성과 적극적인 홍보,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그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이를 통해 축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전년대비 예매율 32%증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접속률도 38% 증가했다. □ 세계탈놀이경연대회 등 질적 성장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인 세계탈놀이경연대회와 탈놀이대동난장이 계속적인 성장을 이뤄오고 있다.세계탈놀이경연대회의 경우 기존에는 단순히 댄스나 태권무 등에 소품으로 얼굴을 가릴 정도의 탈만 사용했으나 이제는 탈의 조형미는 물론, 캐릭터가 결합된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가진 팀들이 많아지고 있다.이는 세계탈놀이경연대회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의 가동이 주효했고 관련된 팀들이 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탈놀이경연대회 활성화는 탈이 가진 캐릭터와 상징성을 놀이로 연결되는 방식만 공유된다면 안동국제탈춤축제만의 특별한 콘텐츠로 정착되리라 전망된다.안동국제탈춤축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탈과 탈춤이 가진 보편성, 그리고 창작이 가능한 미래성과 가능성에 주목했던 축제다.축제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집된 세계의 탈은 30개국 2천여점이며, 이를 토대로 다양한 창작물과 창작공연이 제작돼 탈 관련 콘텐츠가 확대되고 있다.수집된 세계의 탈은 국내·외 전시(중국 바오샨 축제, 트루쿠메니스탄 민속공예축제, 인도네시아, 태국 IMACO 총회, 경기문화예술의 전당, 강동아트센터 등 20회)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탈춤축제는 일체 외부인력 없이 순수 지역문화인들의 힘으로 꾸며가는 축제로 지역문화 인력양성은 물론 안동문화를 타 지역으로 진출시키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또 “지역 내 젊은 인력들의 축제 참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전체적으로 활기 넘치면서도 젊어지는 분위기가 연출됐다”면서 “탈춤축제는 이제 명실상부한 안동의 문화외교 창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안동/권기웅기자 presskw@kbmaeil.com

2013-10-07

강원도 춘천 오봉산

가을등산이라 하여 쉬운 것은 아니지만 계절의 맛이 다르다 보니 여유를 갖고 자연을 둘러볼 수 있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무엇보다 열정의 한고비를 지나 이제는 결실로 치닫는 계절의 순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늘 해왔던 대로 여정을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기분인데, 이번 일요등산은 호반 도시인 강원도 춘천의 소양호 부근에 자리한 오봉산이라고 하니 전날부터 마음이 들뜬다. 일요일 아침에 일행을 태운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시내를 곧장 빠져나와 등산의 들머리인 배후령 고갯길로 달렸다.배후령에서 정상 → 청평사 → 소양댐 선착장 코스, 3시간 소요산에서 호수 내려다 보며 걷는 기분 최고… 천년 고찰 `청평사` 볼거리추석을 지나고 나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날씨다. 필자가 거주하는 영남의 남쪽지방이야 아직도 한낮에는 햇볕의 따가움이 남아 있지만, 강원도지방에는 벌써 섭씨 10도로 뚝 떨어지고 첫 서리도 내렸다고 하니 가을 맛없이 겨울이 성큼 다가서려는가 보다.이젠 추분도 지났고 보면 시기적으로 가을에 접어들었다. 인간에게 계절의 변화는 많은 영향을 주게 마련인데, 한 계절이 가고 오는 변화 속에서 그 묘미를 우리가 생활 전반에서 느낄 수 있지만 등산을 하면서 필자가 감지하는 자연의 변화는 더욱 확연하다. 언제나 제 자리에 있는 듯 보이지만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다.그동안 등산을 하면서 전신으로 체험한 자연의 모습에서 전해오는 계절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었다. 봄에 오르는 산은 삼라만상이 깨어나는 천지의 기운을 받으니 좋은 것이요,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산은 산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힘듦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그 것을 이겨내고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을 준다. 그래서 한 여름의 등산을 꾸준히 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배운 게 많다.강원도 춘천 오봉산 등산은 몇 개의 코스가 있다. 산악회에서는 배후령에서 시작하여 오봉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청평사를 들러본 후에 선착장까지 가는 코스를 선택한다. 등산 거리는 7km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 다른 코스는 배후령에서 시작하여 안부를 거쳐 바로 청평사로 내려가기도 한다.일반관광객들은 배후령을 이용하지 않고 바로 소양댐 선착장에서 청평사 선착장까지 배를 이용하고 거기서 청평사를 둘러보고 나오기도 하는데 소양댐이 생기고부터는 춘천을 찾아오는 타지역 사람들은 거리도 가깝고 해서 청평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1일 관광을 즐기기도 한다.일행을 태운 버스는 10시반경에 배후령에 도착했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여기는 배후령 정상입니다. 해발 600m`라 적혀 있다. 다른 등산에서 해발 600m이면 산의 정상과 맞먹는데 여기서는 등산 출발지인 들머리다. 오봉산 정상이 해발 779m이니 정상까지는 네 개의 봉오리를 거친 다음 5봉에 올라야 하지만 해발거리로 따지면 179m 정도다.간단히 몸을 풀고 나서 등산로를 따라 나선다. 조금 가파르기는 하나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순로 코스나 길이 나 있다. 조금 가다 보니 길가에 오색찬란한 리본 잔치가 열리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전국 산악회에서 걸어놓은 형형색색의 산악회 표지다. 이 장면을 보면서 질서정연하게 걸려있는 내용물들이 등산객들에게 볼거리를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오르는 길은 암반도 더러 있지만 평길로 이어져 편안한 흙길이 계속된다. 제1봉으로 향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강원도 산을 산행한다는 생각에서인지 나무와 산세에서 순박함이 느껴진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가을로 접어드는 산과 풍경을 마음에 담아본다.오봉산의 옛 이름은 경운산이다. 등산객에게 알려지면서 다섯 봉우리, 즉 제1봉(715m, 나한봉), 2봉(685m, 관음봉), 3봉(725m, 문수봉), 4봉(740m, 보현봉)과 5봉((779m, 비로봉)으로 편히 불려지면서 오봉산이 되었다. 그 후 소양댐이 들어서고 난 뒤에 잘 알려진 산이다. 지금은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철도 산행지,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반산행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제1봉과 2봉을 지나 청솔바위에 올랐다가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3봉, 4봉도 오봉 정상에 오르면 잘 보이고 또한 풍경이 비슷하여 그냥 능선으로 지나치기 마련이지만 오봉산의 1봉에서 5봉 사이 능선 길을 수놓고 있는 기암들은 갖가지 모양으로 인해 보면 볼수록 황홀경에 빠질만큼 매혹적이고 멋진 풍경들이다.이것들은 다 자연의 오묘한 조화인 것을 산행을 통해 체득하는 것도 필자에게는 유익한 산 지식이 되고 공부가 되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제4봉을 지나면서 보니 암반에 마치 정원사가 잘 가꾸어놓은 것처럼 소나무 한그루가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이제 오봉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가 암반이어서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하는 등 주의를 요한다. 일행들은 서로 경각심을 주면서 조심조심 정상을 향해 오른다. 드디어 오봉산 정상(779m)에 올랐다. 여기서 일행들은 쉬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기념사진 촬영도 한다. 멀리 보이는 소양댐의 수면이 그리움처럼 떠 있으면서 손짓하는듯하다.산상에서 식사시간과 휴식을 가진 후에 일행은 다시 다름 목적지인 청평사 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암반을 타고 내려 오다보니 바위 사위로 틈이 난 암반이 있는데 별도 등산길이 없으나 그 사이를 지나야하는데, 이름하여 구멍바위다.청평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두 갈래 길이다. 완경사 길은 1.6km이고, 급경사지는 100m 정도 짧은데, 등산인들은 급경사지를 따라 내려간다. 암반을 따라 하산하면서 군데군데 위험한 구간에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면서 스릴이 만점이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추락위험도 도사리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하는 길이다.하산 길에 있는 칼바위를 보고 기슭까지 내려와 평길을 걷노라면 길가에 높이가 3m조금 넘는 3층 석탑이 있다. 현재의 포장길이 생기기 전 청평사를 오가던 옛길에 만들어진 이 탑에는 당나라 공주의 사연을 새겨들었다. 중국 당나라 때 태종은 그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한다.공주가 고려 땅에 와서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황제가 청평사에 3층 석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일명 `공주탑`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일설에서는 중국 원나라 때 순제의 딸인 공주라고도 한다. 어째든 청평사에는 공주의 이야기가 얽힌 것이 많은데,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이 청평사의 대문격인 회전문이고, 공주탕 등이다.또한 청평사 인근에는 고려 때 자연의 입지를 살려 잘 만들어놓은 직사각형의 고려정원이 있다. 고려조 문벌 귀족인 이자현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자연경관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물길을 끌어들여서 정원 안에 영지를 만들었다. 영지는 연못에 오봉산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영지로도 불리어지고 있다. 고려정원을 보고서 옛사람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뛰어남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평길을 걸어 내려와서 이윽고 청평사에 닿았다.천년이 넘은 고찰인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한 당시에는 백암선원으로 불리어졌으나,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중건하여 청평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 6 ·25전쟁으로 일부 사찰이 소실됐으나 1970년대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소양댐이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진 사찰이다. 소위 `섬 속의 절`로 지금도 전국 관광객들과 등산인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청평사를 둘러보고 나서 오봉산의 산행 일정은 끝이 났다. 새벽부터 바쁘게 준비했던 걸음도 강원도 첩첩산중에 들어와 좋은 경관을 보면서 자연에 동화되는 시간을 가졌다. 힘은 들지만 매양 끝내놓고 보면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가진다. 옆에 있는 일행에게 “오늘 산행이 어떻느냐”고 물으니 “강원도 소양강 인근 산은 처음 와보는데, 산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걷는 기분이 좋다”며 흡족해한다.일행들과 함께 어울려 청평사 선착장으로 향했다. 등산복으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장면도 낭만적이다. 소양댐 선착장에 도착하여 소양댐의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등산을 시작하여 하산을 마무리하였으니 일정대로 일과는 모두 끝이 났다.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귀가 길에 올랐다.버스를 타고 의자에 편히 기대어 소양댐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지나, 춘천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소양강을 보면서 귀가 길에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여름을 가까스로 보내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떠나온 첫 산행지로서 춘천의 오봉산 코스는 좋은 선택이었고 정말 멋졌다.▲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하루 동안 느낀 바로는 마치 황혼이 지는 소양강가의 외로운 갈대밭을 서성이는 두견새처럼 호젓함이 있고, 열아홉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의 유년기를 회억하는 듯 황홀경의 신비스런 오봉산의 기암절경과 함께 어머니 가슴같이 포근한 소양호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여울지리라. 글·사진=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