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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혈액투석 등 병고와 싸웠던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차례 사선을 넘나들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말년에는 정기적으로 신장 혈액 투석을 받고 입원을 반복하는 등 고통을 겪었지만 꾸준히 대외 활동을 벌이는 등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강한 `인동초`였다.그가 처음 육신의 고통을 짊어지게 된 사건은 1971년 5월24일 벌어진 의문의 교통사고였다. 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전남 무안에서 지원유세를 하던 중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살해 기도 의혹이 일었던 이 사고로 그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고 여생을 불편한 다리로 지내야 했다.유신 이래 5년반의 투옥, 3년여의 망명, 6년반의 가택연금으로 신체의 자유마저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그는 80년 5.17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이처럼 수차례 생사의 문턱을 오르내렸던 김 전 대통령은 고문 후유증 탓인지 찬바람을 극도로 싫어해 한여름에도 경호원들이 에어컨의 찬바람을 막아야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네번째 도전만에 대선에 승리, 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2년 4월 과로와 위장장애 등으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해 국민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2003년엔 관상동맥 확장시술을 받았고 이후 주기적으로 매주 세차례씩 신장 혈액 투석을 받아 왔다.또 국정원 도청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05년에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 등으로 2차례 입원하는 등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기도 했으나, 이후 잦은 병원 신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외부 활동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건재를 알려 왔다.그러다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돼 영결식장에는 휠체어를 탄 채 등장했다. 당시 주변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회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며 건강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결국 반평생을 괴롭혀 온 육신의 고통을 조용히 내려놓고 영면했다./연합뉴스

2009-08-19

반세기 정치역정… 한국 현대사 질곡 투영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후광(後廣)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었다.“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그가 헤쳐나간 반세기 정치역정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마침내 인동초(人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가 놓지 못했던 남북화해라는 화두는 미완의 유업으로 남았다.■섬소년에서 정치인의 길로김 전 대통령은 목포 앞바다에 솟아있는 섬, 하의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가 전답을 팔아 뒷바라지해 준 덕분으로 목포로 유학,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합격했다.졸업 후 강제징집을 피해 일본인이 운영하던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해방 후 이 회사 관리인으로 사업수완을 발휘, 목포일보까지 경영하는 등 청년실업가로 성장했다.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좌우익을 망라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좌익계열이 주도권을 잡자 환멸을 느껴 탈퇴했다. 그러나 건준에 몸을 담은 이력은 그를 평생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 멍에였다.54년 실시된 제3대 민의원 선거 때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쓴 잔을 마신 그는 56년 장 면 박사가 이끌던 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64년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 때에는 본회의장에서 5시간19분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연설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해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40대 기수론에서 6월 항쟁까지71년 첫 대선 도전에서 97년 4수 끝에 최고 통치권자에 오르기까지 36년간의 대권 도전사는 좌절과 재기의 반복이었다.67년 7대 총선에 당선된 뒤 그해 5월 한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원내총무 경선에서 첫 대결을 펼치지만 고배를 마셨다.그러나 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철승 의원의 막판 지원으로 YS를 누르고 이듬해 대선에 나섰으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95만표차로 석패했다.그의 대권 도전은 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도약한 계기가 됐지만 긴 가시밭길에 들어서게 만든 원인이 됐다. 박정희 정권이 정적으로 지목, 탄압을 본격화한 것이다.유신이 선포된 72년부터 87년 6.29 선언까지 17년의 시간은 납치와 망명, 투옥, 연금으로 점철된 암울했던 시기였다. 73년 일본 도쿄에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돼 수장당할 뻔했으나 미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74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 민주 구국선언`을 주도했다가 3년간 복역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79년 10.26 사태로 복권, 정치일선에 컴백했지만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다시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던 그의 꿈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무산됐고,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사형에서 무기, 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돼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 번 벗어났지만 82년말 미국으로 쓸쓸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양김 분열 후 정권교체까지그는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YS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했다. 당시 YS로 단일화될 경우 민주진영의 정권교체가 보다 유력시되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권력욕 앞에서 갈라졌다.대선에서 노태우,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면서 민주진영으로부터 지역주의에 기댄 야권 분열의 책임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김 전 대통령 스스로도 훗날 “당시 내가 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옳았다”고 회고했다.92년 12월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대권 3수에 실패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홀연히 영국 유학을 떠났다. 곡절 많은 정치인생에 마침표가 찍히는 듯한 순간이었다.93년 7월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통일운동에 전념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다 95년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치전면에 복귀했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최대 실세였던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손잡았고, `DJP 공조`는 외환위기를 맞아 `준비된 대통령` 탄생을 갈망하는 국민 여론을 타고 정권교체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DJ정부 출범… 불운했던 말년국민의 정부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감격을 누릴 여유도 없이 당선 다음날부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의 벽을 허물어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견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측근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YS처럼 조기 레임덕에 빠지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퇴임후 그는 외부활동과 정치적 발언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지자 “북미관계가 안 돼서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햇볕정책 책임론을 반박했고, 2007년 대선 전에는 여당의 대통합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그의 `한마디`는 퇴임 후에도 민주당과 전통적 지지층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가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주문하는 등 왕성한 정치활동 때문에 현실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는 등 대정부 투쟁의 선봉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연합뉴스

2009-08-19

“큰별 졌다”… 전국 애도 물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서거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3김 정치`를 직접 경험했던 노·장년층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는 물론 영·호남 등 지역을 막론하고 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일하는 박수만(60)씨는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고 민주화에 헌신했던 분이 갑자기 서거했다고 하니 무척 울적하다”고 슬퍼했다.소상공인 이형진(56·경기 안양)씨는 “이 시대의 국가원로를 잃어 너무 슬프다. 노 전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도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을 계획”이라며 “기업을 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대화와 민족공존의 정신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지`였던 영남 지역도 안타까움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울산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최성길(47)씨는 “여러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지면서도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결국 대통령이 된 분”이라며 “이런 강한 의지는 국가원수로서 큰 귀감”이라고 말했다.부산에서 지난 20여년간 `영원한 DJ맨`의 길을 걸어온 정오규(48) 전 통합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빛을 밝혔다”면서 “정치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김태일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은 “김 전 대통령은 지역발전을 위해 밀라노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에 대해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지역간 편견이 없어지고 국민이 진정으로 손잡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희망했다.민주화와 남북대화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이광호(56) 부산 민주공원 관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남북의 화해와 협력,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경기 안산 탈북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의 최경숙(45·여) 총무는 “`우리집`은 김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1년 남북을 잇자는 의미에서 `다리공동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면서 “남북화합과 평화통일에 애쓴 거목이 쓰러져 안타깝다”고 슬퍼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전남 지역의 슬픔은 남달랐다.광주 지역 대표적 재야 원로인 조비오(71) 신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더 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발전, 남북교류와 통일의 기틀을 닦은 `평화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김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홍수(87)씨는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강한 친구라 병마를 떨치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다니 허망하기 그지없다”고 흐느꼈다.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1년 남짓 살았던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 3통 권영숙(56·여) 통장은 “대통령과 한동네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면서 “좀 더 오래 사시길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남기헌(50)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이 세계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2009-08-19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18일 오후 1시43분 다발성 장기부전으로제15대 대통령이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께 향년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연세세브란스병원 측은 이날 폐렴 증세로 37일째 입원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밝혔다.병원 측은 김 전 대통령이 1시35분경 심장이 정지했고,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40분께 다시 심장이 뛰었으나 3분후인 43분께 서거했다고 전했다.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 증세가 호전되면서 같은달 22일 일반병실로 옮기기도 했었다.그러나 바로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로 치료를 받아왔다.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박창일 연세대학교 의료원장은 2시 35분께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박지원 의원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했다”고 밝혔다.이어 박 의원은 “쾌유를 빈 국민과 의료진에 감사한다”면서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임시 빈소를 마련해 이희호 여사 등 가족과 정부와 잘 조율해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박 의원은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자 “여사님께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이어 박창일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하셨다”면서 “7월13일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마지막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서 심장이 멎으셨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셨다”고 말했다.박 원장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폐색전증, 다발성 장기부전증 등의 증세”라고 밝힌 뒤 임종 직전 “사실상 심폐소생술이 의미없는 단계였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09-08-19

“우주강국 코리아” 발사준비 끝

나로호 발사대로 이동·19일 오후 카운트다운… 성공 기대감 고조 “우주강국 코리아! 힘찬 발걸음을 떼다.”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 쏘아올릴 `나로호(KSLV-1)`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됐다. 17일 오전 8시15분 약한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문이 활짝 열리자 나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바탕에 자랑스러운 태극 마크와 `대한민국 나로`를 몸에 새긴 나로호는 느리지만 힘차게 첫 걸음마를 했다.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이동차량 2대에 실린 나로호는 무인 조종으로 조립동에서 1.5km 떨어진 발사대로 이동했다. 조립동을 나와 1시간30여분만에 발사대에 도착한 나로호는 연료공급선 및 시스템 운용을 위한 최종 점검을 거쳐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역사적인 발사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게 된다. 이날 나로우주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낀 가운데 약한 안개비가 내려 연구진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나로호가 이동할 때에는 성공적인 발사를 예고하듯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기도 했다. 나로호가 발사대로 이동해 사실상 발사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나로우주센터 주변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앞 봉래면 진입도로에는 경찰 차량이 나와 검문 준비에 들어갔으며 나로우주센터 입구는 군·경 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육상은 물론, 나로우주센터 앞 해상과 상공도 일반 선박과 항공기의 출입이 제한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나로호 발사가 임박해옴에 따라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인근 봉래면과 고흥읍내 곳곳에는 `성공발사`를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휴가철을 맞아 우주센터를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로우주센터를 찾은 문선옥(37·여)씨는 “아이들과 우주과학관을 보러 왔는데 구경을 못해서 아쉽다”며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돼 우리나라가 우주강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리나(10)양은 “TV에서만 보던 나로호를 모형이지만 직접 보니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로호는 19일 오후 4시40분에서 6시20분 사이에 발사되며 지상과의 첫 교신은 발사된 지 12~13시간 지나 이뤄질 전망이다./연합뉴스

2009-08-18

`나로호` 카운트다운… `우주 강국` 희망 쏜다

드디어,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이번 나로호 발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쏘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현재 나로호는 1, 2단 로켓이 완전 조립되고 과학기술위성 2호도 탑재된 상태”라며 “나로호는 발사 54시간 전인 17일 발사대로 이동해 이렉터를 이용해 수직으로 세워져 발사대에 고정된 뒤 발사 하루 전인 18일 최종 리허설이 실시된다”고 밝혔다. 나로호의 발사시간은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약 2시간 이내로 잡혀 있다고 교과부는 전했다. 교과부는 발사를 위한 최종 준비 상황과 발사 당일의 기상조건에 따라 발사가 연기될 수 있음을 고려해 오는 26일까지를 발사예비일로 설정했다.`이제는 우주기술 자립`한국형발사체 KSLV-II 개발 시동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발사되고 나면 같은 모델로 내년 4월 나로우주센터에서 두번째 시험발사된다. 이후 정부는 항공우주 기술자립에 초점을 맞춘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본격화한다. 먼저, 우주기술 개발의 자립화를 위해 핵심기술 확보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우주개발 사업을 통해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을 자립화할 수 있도록 위성체와 발사체 추진 일정 및 전략을 재조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한 대학의 기초기술연구 지원을 확대해 원천기초 연구능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오는 2016년까지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기간에 총 3조6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특히 나로호에 이어 한국형발사체(KSLV-II) 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이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 개발 및 발사를 말하며 오는 2018년까지 10년간 진행될 예정이다./연합뉴스

2009-08-17

운명의 19일 16시 40분… 미리보는 발사 순간

온 국민이 기대감에 부풀어 숨죽이며 지켜볼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의 실제 발사진행 과정을 미리 보면 어떨까. 일단 나로호의 발사 시점은 오는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2시간 이내로 잡혀 있으며 당일 기상조건 등을 감안해 구체적 발사 시점이 정해질 예정이다. 발사를 위해서는 먼저 발사 예정일로부터 최소한 사흘 전(D-3)에는 발사체 조립과 관련한 모든 작업이 완료된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인 나로호는 이때까지 고체모터동에서 상단부조립, 위성시험동에서 위성조립, 발사체 종합조립동에서 1, 2단 발사체 조립 등의 과정을 각각 거치게 된다. 모든 조립이 완료된 발사체는 발사 54시간 전에 트랜스포터를 이용해 발사대까지 이송된다. 이동은 수평으로 실시하며 이후 이렉터를 이용해 나로호를 수직으로 세워 발사대에 고정시키게 된다. 나로호가 발사대에 설치되고 나면 발사를 위해 나로호의 연료와 전기 계통을 중점적으로 점검하는 등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발사 하루전(D-1) 나로호가 장착된 상태에서 최종 리허설을 실시하게 된다. 이어 발사 약 4시간 전부터는 발사대 기계와 공급장비를 연결시켜 1단 발사체에 쓰일 연료(등유)와 산화제(액체산소) 주입, 고압가스 충전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는데, 주입과 충전 개시가 결정되면 모든 발사준비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 이어 발사 예정 시간 18분전 실제 발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이후 발사 예정시간까지 모든 기기가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기상 상태와 주변 환경 역시 발사에 이상이 없을 경우, 발사 15분 전부터 자동 발사기능이 작동하면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이륙과 음속돌파, 페어링 분리, 1단 분리, 위성 분리까지 자동화 시스템하에서 `비행 시퀀스`가 진행된다. 발사 준비 및 발사는 발사지휘센터(MDC)와 발사체 통제센터(LCC)가 있는 발사통제동(MCC)에 모든 상황을 총괄 지휘한다. 발사 후 200여초 뒤 위성을 감싸고 있던 페어링이 떨어져 나가고 발사체 1단이 분리된다. 이후 고도 200㎞쯤에서 2단 킥모터(고체연료 엔진)가 연료를 다 태우고 난 뒤 100여초 후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가 분리된다. 이 시점에서 나로호 발사의 성공 여부는 확인된다. 과학기술위성와 지상국(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과의 첫 교신은 발사 후 약 13시간 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연합뉴스

2009-08-17

지구 저궤도 진입하는 `나로호` 어떻게 구성됐나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는 100㎏급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지구 저궤도(지상 300~1천500㎞)에 진입시키는 발사체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로 1단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2단은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했다. 나로호의 총중량은 140t 규모이며, 총길이와 직경은 각각 33m와 2.9m다. 나로호 발사체 1단부(하단) 액체추진기관은 연료로 등유(케로신)를, 산화제로 액체산소(LOX)를 각각 사용한다. 터보펌프 방식의 추진제 공급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추력은 170t급이다. 액체산소 산화제를 싣고가는 이유는 우주발사체가 공기가 희박한 대기권 밖을 비행해 나가면서 등유를 태우는 데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산소는 130t의 무게가 나가는 추진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체 로켓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액체 엔진 로켓은 액체상태의 연료 및 산화제를 연소실로 각각 분사한 후 혼합시켜 연소시키며 추력을 얻는다. 구조가 비교적 복잡하며 소요되는 구성 부품이 많으나 추진력이 크기 때문에 대형 발사체의 주엔진으로 많이 사용한다. 추력 8t급의 발사체 2단부(상단) 고체추진기관은 고체 킥모터 1기를 사용하고 있다. 고체 연료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가 혼합된 고체 형태의 추진제를 사용하고 부품 수가 적고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제작성이 좋아 대형 발사체의 보조추력 장치로 사용된다. 발사작업이 비교적 간단하고 신속성을 갖춰 군사용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공기 저항이 심한 지구 상공 40~70㎞까지는 추진력이 강한 액체로켓을 사용하고, 이어 고체로켓을 점화시켜 소형 과학기술위성 2호를 타원 궤도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로호에 실려 발사되는 과학기술위성 2호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광주과학기술원 등이 공동 개발했다. 2년 동안 경사각 80도로 지구 저궤도를 돌게 될 과학기술위성 2호는 프레임 타입의 위성구조체다. 이 위성의 크기는 615x673x898㎜이고 무게는 99.4kg급 소형위성이다. 또 이 위성은 복합소재 태양전지판, 이중머리 별추적기, 디지털 태양센서, 펄스형 플라즈마 추력기, 소형위성용 탑재컴퓨터, X-밴드 송신기 등 다양한 핵심 위성기술과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 주탑재체와 레이저반사경 부탑재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는 물체에서 방사되는 마이크로파 대역의 자연 에너지(잡음신호)를 초광대역, 저잡음, 고감도 수신기를 이용해 물체의 밝기온도를 검출하는 주 시스템이다. 이는 우주용 2개 주파수를 통해 마이크로파 대역에서의 지구의 밝기온도를 측정, 지구의 수증기 양, 구름 속의 물 함유량 등을 산출함으로써 기상관측을 수행한다./연합뉴스

2009-08-17

한국 첫 우주발사체 성공 확률은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발사가 오는 19일로 확정되면서 이제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0년대 이래 1990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뤄진 우주발사체 발사의 통계를 보면 전체 4천379건의 발사 시도가 있었으며 발사 성공률은 91.1%로 집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음으로 과학기술위성 2호를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는 나로호 발사와 마찬가지로 해당국에서 첫번째로 위성을 발사했을 때의 성공률은 27.2%에 불과한 실정이다. 역대 자국 땅에서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우주클럽(Space Club) 9개국 가운데서도 첫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옛 소련), 프랑스, 이스라엘 3개국 정도다. 이번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나로호는 러시아 측이 1단 로켓, 우리가 2단 로켓 개발을 맡는 등 한국-러시아 공동으로 개발, 완료됐으며 이번에 첫 시험발사 단계에 와있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의 핵심적인 기술인 1단 로켓을 개발한 러시아의 발사 성공률은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는 195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통계치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2천770건) 및 가장 높은 발사 성공률(93.5%)을 자랑한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러시아의 절반 정도인 1천316건의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가 있었고 성공률은 87.5%다. 나라호 개발 및 발사 수행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조광래 발사체연구본부장은 16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확률과 관련해 “발사 시스템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발사를 위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며 “여러 시험을 거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9-08-17

“실패는 없다” 나로호 막바지 준비

“우주강국 코리아를 향한 힘찬 발걸음...실패는 없다!”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한국 우주 역사를 새로 쓸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나로우주센터는 발사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기술로 만든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우주로 쏘아 올릴 발사체의 조립은 이달 초 이미 마쳤고 현재는 조립동에서 최종 점검을 진행 중이다. `나로호`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패는 없다”..최종 점검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는 `나로호` 상단부와 위성에 전력을 공급할 배터리를 충전 중이며 17일 발사체 이동을 위한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150여명의 연구원들은 휴일도 잊은 채 막바지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나로호` 발사일이 지난달 30일에서 이달 11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19일로 조정되면서 발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연구원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발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발사체를 발사대로 옮기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날씨 등 큰 변수가 없으면 17일 발사대로 이동할 계획이다. 발사체는 17일 오전 조립동을 나와 1.5km 떨어진 발사대까지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 이동차량 2대에 실려 옮겨진다. 나로우주센터 관계자는 “발사체 조립 등 사실상 발사를 위한 준비는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연구원 모두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만큼 성공적으로 발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발사 성공` 기대에 부푼 나로도광복절이자 휴일인 15일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는 관람객 5천여명이 다녀갔다. 7월부터 휴가철을 맞아 우주과학관에는 평일에도 평균 1천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가족단위로 우주과학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나로호` 모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우주과학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발사 성공을 기원했다./연합뉴스

2009-08-17

김범일 대구시장·김관용 경북도지사 인터뷰

10일 첨단의료복합단지 복수 유치에 성공한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는 “14개 시·도가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이뤄낸 첨복 유치는 대구·경북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인 동시에 앞으로 지역 발전에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시·도지사는 이날 정부의 발표 직후 대구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첨복단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내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총 5조6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38만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할 정부의 미래 핵심 프로젝트”라면서 “대구·경북은 세계적 첨복단지 조성을 위해 지역의 모든 역량을 모으고 다른 시·도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지도와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의 의료산업단지로 육성해 미래 국가 성장동력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대구·경북은 유치과정에서 보여준 지역민의 일치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앞으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국가과학산업단지 조성, 4세대 방사성가속기 건설 등을 반드시 성공시켜 대구·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획기적 계기로 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김 시장과 일문일답. -기대했던 단일 지정이 아닌 복수 지정에 대한 소감은. ▲분산 지정으로 두 지역 모두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면이 아쉬움으로 남으나 첨단의료복합단지 위원회와 정부의 결정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한다. 오송단지와 협력, 상생의 길을 열어 갈 것을 다짐하며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두 지역이 역할과 기능을 달리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더욱더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가 갖는 의미는. ▲대구·경북은 의료산업 육성의 기반이 잘 조성돼 첨단 의료기기 산업과 제약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으며 IT·한방산업 등 기존에 지역에 구축된 연관산업의 동반 성장효과로 고용창출, 수출증대 등이 기대된다. 또 우수 연구인력과 의료연구개발기관의 유치로 지역 전체에 새롭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고 막대한 RD 투자로 지역 대학 및 기업들도 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 -향후 일정과 계획은. ▲당장 정부의 첨단의료기기개발센터 등 핵심 시설건립을 위한 부지를 토지개발공사로부터 사들여 정부에 제공해야 하고 재단설립 등 앞으로 갈 길이 바쁘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민간 투자 부문인 첨단임상시험센터와 벤처연구센터의 설계 및 조성, 입주를 확약한 기관 유치, 보건복지가족부와 협의를 통한 첨단의료복합단지 관련 계획 수립 등도 과제다. 빠른 시일내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해 행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며 세부적인 일정은 관련 기관들과 협의해 시행해 나가겠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8-11

지역 인사들 “대구·경북이 똘똘뭉쳐 해냈다”

10일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복수 지정과 관련, 대구·경북지역 각계는 진한 아쉬움을 표하면서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국회의원 중 그동안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한구(대구 수성갑) 의원은 이날 “첨복단지의 복수 지정은 전정권에서 그쪽(충북 오송)으로 가도록 이미 방향이 설정돼 있었던 것을 이번 정권 들어 지역 정·관·민의 합심된 힘으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날 대구시청에서 가진 시·도지사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심사 결과 대구가 오송 보다 많은 격차로 1위의 점수를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대구의 첨복 입지 여건이 객관적으로 가장 좋았다”면서 “다른 지역에서 대구·경북이 정치적 힘으로 첨복단지를 유치하려 한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정권에서 다른 지역에 첨복이 가도록 의도록적으로 돼 있던 것을 이번에 대구·경북에서 정치적 논리가 아닌 실력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번 선정 준비를 위해 출향인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대구·경북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라며 “대구를 건강산업도시로 만들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의 성공에 지역민 모두가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도 “첨복 유치 과정에서 솔직히 정치적으로 부담이 많았다”고 털어놓은 뒤 “그동안 유치에 쏟은 힘 못지않게 앞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침체된 대구·경북의 분위기를 바꾸고 최고의 성장동력으로서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탈락보다야 낫겠지만 경쟁지역인 충북 오송이 수도권과 가까운 이점이 있는 만큼 대구는 앞으로 단지 조성의 성공을 위해 정부에 더 많은 요구를 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말했다. 조영래 경북대병원장은 “첨복단지는 산업체와 의료계가 손잡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며 “2곳이 선정되긴 했지만 대구는 의료와 교육,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지자체의 육성 의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8-11

민주당 “대경권 새로운 도약 발판 마련”

10일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 유치와 관련, 대구·경북지역 야당들을 “복수 유치로 인해 사업이 지장이 없도록 정부가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유치 과정에서 대구·경북의 발전과 시·도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여야가 없음을 보여줬다”며 환영의 뜻을 밝힌 뒤 “향후 정부는 분산유치로 인한 문제가 없도록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시당은 또 “첨복단지가 신서혁신도시로 유치된 것은 대구·경북의 발전과 시·도민의 행복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 일뿐 끝이 아니다”면서 “신서혁신도시에 들어서는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한민국 전체 첨단의료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모범적 사례를 창출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시·도민의 모든 역량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대구시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첨복단지 복수 지정은 경제논리를 배제하고 정치논리에 의해 이뤄진 야합”이라고 주장한 뒤 “대구시는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비록 반쪽의 성공이지만 첨복단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과 더불어 국가산업단지 조기지정, 신공항 유치를 비롯한 대구의 현안사업 등도 하루속히 마무리되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