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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협조’ 넘어 법적 권한 부여한 국가 차원 ‘통합지휘 체계’ 필요

지난 3월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에서 발생한 영남권 산불이 발생하면서 신불 진화 체계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산불 진화 체계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역점을 두고 정비 중”, “산림청, 소방청,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통합 지휘체계를 운영하며 산불 발생 시 일사천리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평소 산불 예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형 산불로 번졌다고 진단한 뒤 해외 산불 대응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산불대응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통합 지휘체계 필요…“명령체계 가까운 법적 권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통합 지휘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지성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산림청과 소방청 등으로 나뉜 산불 대응 체계가 초동 진화에 혼선을 불러왔다”며 “재난안전관리법과 산림보호법 등 법령을 일치시켜 지휘체계에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산불방지센터에 인력과 장비 동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림청, 소방청, 국방부, 지자체가 사전 협약에 따라 지원 공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현행 ‘협조’ 체계를 ‘명령’에 가까운 법적 권한으로 격상시키는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사무실에 자리한 컨트롤 타워는 현장을 통제하기보다 법적 지휘권자인 자치단체장 임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응 과정에서 일관성이 유지되고 참여기관간 역할 분담이 명확히 나뉘도록 중앙기관은 지원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국가산불센터(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와 같은 통합 지휘 체계와 함께 한국 특성에 맞게 ‘현장 중심 지휘체계’도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고 회장은 “NIFC 기능에 더해 미국 산불 사고지휘시스템(ICS·Incident Command System) 코디네이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ICS는 대형산불 발생 시 여러 기관 간 대응 실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표준화된 현장 지휘 관례 체계다. 그는 또 “산림청과 산불과 관련된 예방, 진화에 필요한 정보 체계는 상황실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기에 NIFC를 참조할 만하다. NIFC 내 각 기관 대표가 참여하는 국가 다기관조정그룹(NMAC·National Multi-Agency Coordinating Group)은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며 “코디네이션은 산불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그 전에 대응 기관별 교육 훈련 등을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NIFC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NMAC 조정 아래 기관 대표들이 헬기, 진화 인력, 장비 배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화 특히 진화 중심 대응 시스템에서 예방 대응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포르투칼과 캐나다는 ‘산불은 반드시 발생한다’는 전제로 예방과 피해 최소화 전략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진화 중심, 사후 복구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국외 사례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진화중심에서 예방·피해 최소화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주택 방어, 주민 교육, 산림 구조를 바꿔 화재 및 피해를 낮추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불 발생 전 연료관리 등 위험 요인 제거와 산불 감시·예찰 인원을 확충해 예산을 우선 배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고 회장도 형식적인 재난 대응 훈련이 아니라 초대형 산불에 대비한 실제적인 예방 훈련이 이뤄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불이나 침수 피해 관련, 좋은 장비와 통신 시스템이 있다 해도 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제대로 된 대응이 되지 않거나 사고가 더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 연습이 있어야 실제 상황에서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캐나다의 파이어스마트(FireSmaet)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산불 예방에 있어 ‘주민참여형 연료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이어스마트는 캐나다 전역 산불 위험을 줄이고 지역사회 산불 탄력성을 높이고자 고안된 종합프로그램이다.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 7가지 핵심 원칙 하에 운영되고 있다. 이는 각 지역 파이어스마트 코디네이터와 지역 대표 등이 주도하고 실행한다. 포르투칼 역시 시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를 중심으로 예방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집 주변과 거주지를 관리하는 공동체 기반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각 마을 단위에 직접 화재 위험 줄이기 위한 노력을 주민 주도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이 연구위원은 “주민이 주도적으로 집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고, 지자체가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주민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연료 제거, 주택 방어 등을 계획하고 모의 훈련을 실행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산불 위험도가 높거나 과거 산불 피해가 높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같은 파이어스마트 시범 사업 추진도 좋은 방향으로 판단된다”면서 “또 주민이 집 인근지역 산불 위험요인을 신고하고, 지자체가 즉각 대응하는 커뮤니티 기반 경보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한국형 파이어스마트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고 회장도 “산불방지학은 불이 일어나는 3요소로 화원, 연료, 기상을 꼽는다. 숲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화원과 기상은 대처가 어렵다 해도 연료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불이 붙지 않고 또 불이 번지더라도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불의 매개와 사람이 사는 공간을 이격하는 등 평소에도 관리를 하면 좋은데 한국은 관련 정책 제도가 미흡하다. 연료를 평상시 관리하지 않는 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당국의 임무 소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주민들이 산불 경각심을 알리고 연료 관리에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며 “캐나다의 파이어스마트 프로그램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98%가 사유지인 포르투칼이 공공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위원은 “산불위험이 높은 사유림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일시적으로 진입해 연료 제거 및 방화선 설치를 할 수 있는 조례를 개정하고, 사유림 소유자에게 보상금,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산업조합, 지자체, 마을단위에서 연료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사유림주 동의 시 소유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공공이 관리하는 방안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림 구조 다변화 필요성 제기 산림 구조의 다변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포르투칼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는 한국 화재 시스템을 조언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단일 수송 식생 구조는 화재 확신을 빠르게 만드는 위험 요인”이라며 산림 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위원도 “단순히 숲가꾸기에 대한 환경단체의 비판보다는 최근 대형 산불을 교훈삼아 참나무 등 내화수종과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숲가꾸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도 주변과 마을에 인접한 산지는 주민과 함께 연료를 제거하고, 산불 확산이 우려될 때 일부 구역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온난화 등 영향으로 한국 숲 식생이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바뀌고 있다며 초대형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침엽수 위주 인공조림이 아닌 자연식생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정환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은 “국립공원은 산림청 손을 타지 않기 때문에 숲이 자연스럽게 활엽수로 변했다”면서 “활엽수가 많아 산불이 발생할 경우 지표화로 땅으로만 가게 된다. 수관화도 비화 현상도 없어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수관화란 나무의 잎과 가지가 타는 불로, 지표화에서 시작해 수간을 거쳐 수관으로 강한 화세로 퍼지는 위험한 산불을 뜻하는데 혼효림이 조성된 숲은 활엽수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가지들이 수증 역할을 하면서 수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산불 예방 장기 로드맵을 수립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이 연구위원은 “포르투칼 사례와 같이 5년 혹은 10년 단위 산불 관리 계획을 수립해 임도·조림·토지이용 규제 등 구조적 변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8

“산불은 인간 활동에 의한 파괴… 다차원적 교육·정책 필요”

“포르투칼 국민이 문제다” 포르투칼 화재와 관련한 직언이다. 포르투칼에서 발생하는 모든 화재 중 98%는 인위적 발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방대한 면적의 산간을 집어삼키며 국민들의 속까지 타들어가게 만들었던 대형화재는 성묘객의 라이터불에서 시작됐다. ‘설마’라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작은 행동이 어마어마한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때문에 산불 등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과 ‘교육’이 꼽힌다. 인구 대비 인위적인 화재 발생 건수가 불균형적으로 높기로 악명높은 포르투칼 역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르투칼은 1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7년 대형 산불 이후 AGIF라는 농촌 화재 통합 관리 기관을 설립하고 산불 뿐 아니라 산림과 인접한 농촌까지 아우르는 ‘농촌 화재’를 예방하고 관리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주민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티아고 올리베이라(Tiago Oliveira) AGIF 이사회 의장은 “AGIF는 산불을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주로 인간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인재(人災)’로 본다. 비의도적, 반복적, 구조적인 인재가 산불의 주된 원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파괴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때문에 더 많이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행동 변화야말로 산불 예방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올리베이라 의장은 다양한 부처가 힘을 모아 기후변화, 산불, 토지 관리, 자원 연계 등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교육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교육은 단순 캠페인이 아닌 정책의 기둥”이라 말했다. 이어 “AGIF는 교육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캠페인 이상, 정책적으로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로 본다. 이와 관련해 농업·환경·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어린이와 청년 세대에 대한 교육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AGIF는 주민들이 정책을 수용하는 수동적 입장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단속, 홍보 위주로 산불 예방 교육이 전개되고 있는 반면, 포르투칼은 보다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교육을 통해 시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실제 산불 발생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올리베이라 의장은 “2023년부터는 예방 투자에 따른 효과가 가시화됐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AGIF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집 주변과 거주지를 관리하는 ‘공동체 기반’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각 마을 단위에서 직접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한 예방 활동을 주민 주도로 시행하도록 안내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Vilas Seguras)’이 있는데 산불에 취약한 지역의 나무를 미리 없애거나 집 주변 (연소 물질 등)을 정리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포르투칼은 주민들의 의식 고취와 적극적 행동을 위해 주민들이 나무 벌목, 잡초 제거, 위험 지대 정비 등 실제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군경과 시골경찰이 직접 고령자 가구들을 방문해 불법행위 예방과 안전 안내를 실시한다. 지자체는 고령 주민 및 취약계층을 위해 직접 나서 산불 방지를 위한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의 경우 AGIF의 기술인력이 직접 투입돼 지역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다. 이와 함께 지자체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도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또 성공적으로 화재 예방 시스템이 안착된 지역이 다른 지역과 교류하고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워크숍도 진행하는 등 유사한 조건의 지자체가 경험과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하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AGIF는 산불 예방을 위해 주민과 지자체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압력과 인센티브의 병행”을 꼽았다. 단순한 ‘홍보’나 ‘캠페인’이 아니라 강제 및 지원이 결합된 정책을 추진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을 및 가구 단위로 일정 반경(통상 50~100m) 내 연료 제거 의무를 법제화하고, 이를 위반할 시 실제 수백 유로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사유지의 경우 소유주가 직접 청소를 하지 않을 경우, 정부나 읍·면·동 단위에서 대체 집행 후 비용 청구를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주민 자원봉사 등을 통해 이들의 실적에 따라 수당이나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등 보상책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한 인식 개선을 넘어 법제화를 통한 강제력과 의무 발생으로 효과를 높이는 방책이다. 이같은 정책은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포르투칼 북부 브라간사(Bragança) 지역이 연료 감소 및 주민 행동 전략을 도입했는데 이듬해 여름 발생한 대규모 산불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산불 초기만 해도 대형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됐지만 마을 인근에서 화재 확산이 차단된 것이다. 해당 화재 후 지역 주민 다수가 “초기에는 불안했지만 처방화(prescribed fire·숲의 연료를 사전에 없애는 전략)가 마을을 지켜줬다”고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AGIF는 산불 예방을 위해 명확한 정책 프레임을 구성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술·제도·행정·교육·인센티브 결합을 통해 주민과 주체의 현실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덕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AGIF는 지금까지의 화재 예방 정책과 방향을 유지·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AGIF 올리베이라 의장은 “기존 정책 방향과 전략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예산확보를 통해 실행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민감 산림 소유자들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한편 정치권의 지원과 지지도 확보해 더욱 효과적인 정책과 제도를 실행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AGIF가 정부와 정책, 지자체와 주민을 활용하는 방식은 국내에서도 배울 점이 적지 않다. 한국 역시 고령화 및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처럼 안일한 단속·경고 시스템으로는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불이 발생한 후 진화단계에 대한 대응이 주로 논의되고 있는 단계를 뛰어넘어 산불 예방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재정적 유인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의식 고취와 능동적 활동을 이끌어내는 제도 시행,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따른 인력 부족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 지역과 지역 간 연계를 통한 효율적인 예방 교육 및 전략 실행 등 다각도에서 대응 전략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7

‘농촌 화재’로 패러다임 확장… 예방 중심의 다각적 시스템 전환

불이과(不貳過).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같은 마음가짐은 대형 재난 및 사고에 꼭 필요한 태도지만 실제 이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달랐다. 2017년 백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화재 후 포르투갈은 두팔을 걷어붙였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이 되면 고온 건조해져 산불 발생 위험이 매우 높은 포르투갈은 ‘불이 나면 진화한다’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단순히 ‘산불’ 개념이 아닌 ‘농촌화재’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역할을 나눠 화재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산불통합지휘기관인 AGIF를 필두로 포르투칼은 화재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 7월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아 포르투갈이 운영 중인 농촌 화재 통합 관리 기관(AGIF)을 찾아 포르투갈이 대형 화재 후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정책으로 화재와 맞서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농지는 물론 도시 외곽까지 아울러 산림부·농업·환경부·지자체 이어 토지소유자까지 책임·역할 부여 전국적 위험도 지도화 작업 실시 한국 현장대응 체계 잘돼있지만 재발방지 위한 방법은 부재 상태 티아고 올리베이라 AGIF 의장 “소나무 중심 식생 빠른 확산 요인 수종 다양화 등 구조적 관리 필요”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산불 위험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고온, 강풍, 낮은 습도 등 극단적인 포르투갈 기후와 산림과 주거지역이 혼재된 지역적 구조는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에 더해 농촌인구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Tiago Oliveira)는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토지 이용에 변화가 많았고, 방치되는 농림 지역도 늘어나면서 산림관리 및 화재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민간 화재 대응과 달리 미흡했던 산림 화재 시스템까지 더해지며, 결국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AGIF는 2017년을 ‘비극의 해’로 기억한다. 당시 산불은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했다. 포르투갈 당국은 전국적으로 1700명 이상의 소방관을 파견했지만 페드로강그란드 도로를 덮친 화마를 막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차량 안에서 화염에 휩싸여 숨졌다. 사망자는 무려 120여 명. 이 사건에 대해 AGIF 측은 “사건 이전까지는 다들 진화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고를 기점으로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를 계기로 들여다 본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AGIF 측은 “과거 20년동안 포르투갈 소방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검토를 시작했다. 소방대, 감독관 등의 전문지식이 부족했고 화재 전술이 미흡했으며 컨트롤타워 부재도 심각했다. 천연자원 관리부터 화재발생시 지원체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왔고, 산불예측서비스 또한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AGIF 측은 “미흡한 점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는 수년간 존재해 왔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미미했다”면서 “2017년 실태조사 후 발화방지, 화재의 재료가 되는 연료감소방법, 산불화재 경계 통제 전술과 전문지식 탑재 등을 중점에 둔 새로운 정부기관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AGIF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AGIF는 단순히 화재 진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예방 중심’의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 특히 AGIF는 산불 뿐만이 아니라 농촌 화재까지 개념을 확장했다. 포르투갈 내에서 실제 발생하는 화재의 대다수는 ‘산림 내부’가 아닌 ‘농촌 지역’ 또는 ‘산림과 인접한 비산림 지역’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근처에서 일어난 화재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단순히 ‘산불’ 개념만으로는 실제 화재 발생시 대응 전략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AGIF는 개념전환을 시도해 산림뿐 아니라, 목초지, 방치된 농지, 도시 외곽까지 아우르는 다각도의 예방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정책 프레임도 전환시켰다. ‘산불’은 산림부 문제로 치부됐지만 ‘농촌화재’는 농업부, 환경부, 지자체, 민간토지소유자까지 다양한 다수의 주체에게 책임과 역할을 부여했다. AGIF는 “개념 전환이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화재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통해 ‘농촌화재’ 개념의 필요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EU 및 OECD와의 정책 공유를 통해 ‘다른 선진국들도 이 용어를 채택하고 있다’는 공감대와 정책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포르투갈 내에서 정착된 ‘농촌화재’는 단순한 표현 변경을 넘어 위험도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시작점이 됐다. 통합 농촌 화재 관리 시스템을 국가 전략 전반에 체계적으로 반영했고 위험이 도사리는 모든 농촌공간을 관리 대상으로 확장했다. 전국단위로 위험도 지도화 작업을 실시해 ‘어디에 사람이 거주하며, 더 위험한 곳은 어디인가’를 찾고 위험 구역을 재설계했다. 또 화재 대응과 예방을 위한 활동에는 산림청, 농림부, 환경부 외에도 내무부(공공안전, GNR(국가헌병), 지방경찰), 교육부, 언론, 지자체, 민간 소유주 등 다양한 주체가 조직적으로 참여하도록 재구성했다. 내무부와의 협업을 통해 경찰 등 공공안전 조직도 예방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했으며, 교육 및 언론과 협력해 화재 인식 전환 캠페인도 병행했다. 무엇보다 농촌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 대해 인력, 장비, 훈련, 보조금 등 각종 공공자원을 차등 배분했고 ‘정책적 긍정차별’을 활용, 물리적·사회적으로 취약한 지역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배정했다. 실질적인 안전 확보와 구조, 사후 복원 등 모든 관점에서 자원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엇보다 포르투갈 산림의 97%가 민간 소유라는 점을 감안한 정책을 추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숲정비 비용 등 관리 실적에 따른 보조금을 지원하고, 에너지 작물, 방재용 수액채취, 특용작물 도입 등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화재가 발생할 요인을 줄이고 화재 시 대형화 방지에도 힘썼다. AGIF는 “O proprietário para limpar tem que receber dinheiro, tem que ter um investimento.(소유자가 정비하려면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적재적소 보상이 적극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방적 관점에서는 진화중심에서 예방중심으로 전환했다. 2017년 화재 당시 당시 소방력, 장비 등 진화 자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기상조건, 인적자원 소진 등으로 대형 산불 확산을 막지 못했던 경험을 발판삼아 산불이 퍼지지 않게 만드는 구조적·생태적·사회적 조건 자체를 바꾸는 해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방이 진화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높다”는 경제적 설득과 “불을 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는 목표의식도 함께였다. 이같은 모든 변화는 데이터와 기술 전문성, 중립성에 기반한 신뢰와 객관성, 국제사회의 기준과 외부 평가를 활용한 설득력 있는 접근 방식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화재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부터 대대적인 시스템 전환, 적절한 지원정책 등 구체적 시행까지 포르투갈은 AGIF를 주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국내 시스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재 전문가들이 보는 한국의 시스템은 현장 진화와 대응에 집중하는 체계는 잘 구축돼 있지만 화재 재발 방지를 위한 방법은 부재한 상태다. 단순히 화재 발생 시 진화하는 방법론을 넘어서 ‘화재를 막는 법,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AGIF 이사회 의장인 티아고 올리베이라는 국내 화재 시스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기자에게 “한국처럼 소나무 중심의 단일 수종 식생 구조는 화재 확산을 빠르게 만드는 주요한 위험 요인”이라면서 “특히 단일수종의 밀식림에서 화재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산림 구조의 다양화, 방화대 조성, 사전 연료 제거 등의 ‘구조적 관리’가 핵심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단순히 진화 자원을 증강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불이 나기 전에 어떻게 막을 것인가’ 라는 시각으로 대응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6

Fire Smart 커뮤니티 모델의 현장

경북 산불의 주요 원인은 성묘객의 실화로 인한 불씨 발생으로 확인됐다. 2025년 3월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성묘객이 묘지 정리 중 라이터와 술병 뚜껑을 사용해 불을 붙인 것이 최초 발화로 추정되며,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소나무 밀집 지형 등이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사소한 부주의가 대형 피해로 이어졌기에 산림 내 화기 사용과 안전수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산불 예방에 대한 주민 의식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주민 참여와 예방 교육이 핵심으로, 산불 위험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둔 캐나다의 ‘파이어 스마트(Fire Smart)’ 프로그램은 한국 산불 관리 정책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마을단위 방위선 ‘파이어 스마트’ 주 정부가 펀딩자금 등 지원하고 규제·개발 등 문제 해결 역할 도맡아 산불피해 완화 전문가들은 조직적으로 직거래 시장·축제장 등 ‘다중시설’이나 가정집 등 찾아다니며 예방 교육 실시 ‘지역사회 공동체 인증제도’는 인식 변화·참여도 제고 ‘일등공신’ 파이어 스마트는 캐나다 전역 산불 위험을 줄이고 지역사회 산불 탄력성읖 높이고자 고안된 국가 프로그램이다. 지역 사회·정부·주민이 협력해 취약 지점을 개선하고 마을 단위 방어선을 구축하는 종합 정책으로, 단순한 불 끄기가 아닌 ‘불이 번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파이어 스마트는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의 7가지 핵심 원칙으로 운영된다. 이는 각 지역 파이어스마트 코디네이터와 지역 대표 등에 의해 실행된다. 지난 7월 방문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파이어스마트 BC’에서는 80여 명에 이르는 코디네이터들에 의해 프로그램이 기획·운영되고 있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단순한 산불 대응 교육을 넘어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 산불방지(FireSmart) 프로그램 책임자는 “‘파이어 스마트 BC’ 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 예방 위주로 옮겨갔다. 실제로 바람 등으로 인해 산불을 대응하는 데 굉장히 한계가 있다 보고, 지금은 예방 중심으로 지역 사회 사람들에 대한 교육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며 “집을 조성하거나 나무를 심고 꾸몄을 때 주민들의 행동이 변화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산불은 ‘정부만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공동 책임’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본지는 파이어 스마트 프로그램 책임인 한나스위프트를 통해 주민 중심 예방 활동, 실행 과정 등 파이어 스마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를 살펴봤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산불을 단순한 재난이 아닌 ‘공존해야 할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는 전환의 한 축으로 여겨진다. 이런 인식은 기관의 전략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는가. =산불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이다. 굉장히 나쁜 것이 아닌 생태계에서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며 실제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불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을 억제한다는 차원이 아니고 불에 대해서 ‘불이 났을 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 불이 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적응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로 옮겨갔다. 그래서 불이라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관리는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주민들도 무조건 불을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불이 난 후 대응을 해야 된다 등의 자세에 벗어나 불이 난 다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더불어 주민들도 공동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산불 대응은 전통적으로 주정부, 연방정부의 역할로 여겨졌다. 특히 주민들은 ‘피난 대상’이 아닌 ‘대응 주체’로서 주민을 포지셔닝하는 접근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파이어 스마트 BC가 예방의 주체로 나서게 된 계기는. =산불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완화하는 데 있어 지역 사회가 굉장히 중요하다. 파이어 스마트라는 게 원래는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 먼저 시작한 움직임이다.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위험을 경감시키기 위해 시작했던 움직이고, 주 정부가 이를 인정하고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펀딩 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 지역 정부에 지원한다든지, 원주민들 공동체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규제 개발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그 정책을 받아들이고, 실천 했을 때 주민들에게 리베이트를 줘서 행동을 유도하거나 인증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주민들이 모여 공동 대응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파이어 스마트 7대 원칙은 각기 다른 지역 여건과 적용 방식이 있다. 이 원칙들이 어떻게 현실에 맞게 조정되고 적용됐는가. =각각의 지역사회가 자기 특성에 맞게 해결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산불을 한 번 경험했던 지역과 경험하지 않았던 지역의 주민들의 행동과 대응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산불을 경험하지 않은 쪽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다. 이 경우 교육 위주로 접근한다. 그래서 직거래 농민 시장 등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 중심으로 교육을 한다. 즉, 산불 위험이 별로 없었던 지역이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바뀌었을 때 주민들이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산불을 이미 경험했던 지역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7가지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보면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저희들의 교육이나 정책을 수용한다. 일례로 자신들의 집을 산불에 훨씬 잘 대응할 수 있는 집으로 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불 예방 프로그램이 지역 정부나 커뮤니티 입장에서 ‘매력적인 유인’이 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쓰는가. =예를 들어 산불 피해 완화 전문가들을 조직해 활동한다. 이들은 각 집을 방문해 집들이 산불에 대해 얼마나 취약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평가해주고 집 주인들에게 권고한다. 또 지역 정부와 협력해 각종 주택 규제 기준들에 조언을 해준다. 공원 같은 경우 연료 저감이라고 해서 불에 탈 수 있는 것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각종 안내판을 붙여 공원에 오는 사람들에게 산불에 대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을 알려주면서 교육 효과도 누린다. 이 외에도 지역사회 축제 등에 참석해 부스를 설치해 주민들을 만나 적극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레프리젠터티브’(representative)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일종의 지역사회 챔피언이라 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아주 모범적이고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이어 스마트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주민 인식을 바꾸는 데 노력해 왔다.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는가.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인증 제도’다. 이런 인증 제도를 받은 공동체에서는 공동으로 자기들이 산불 위험을 감수하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한다. 자기 집 정원에 탈 수 있는 연료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한 번 화재가 난 뒤 어떤 집이 더 잘타는지를 연구했는데, 대체적으로 파이어 스마트에서 제시했던 권고 사항을 지킨 집들은 화재를 덜 당했다는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 공동체 인증하고도 연결이 된다. -파이어 스마트 인증 제도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2021년 시작한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판매자들과 협약을 맺어 구매자들로 하여금 산불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를 테면 식물판매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식물 판매시 태그를 붙여 구매자가 구매 단계부터 어떤 식물이 산불에 대해 강한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해당 식물은 어느 종이어도 상관없고 구매자들은 어느 구획이든 심을 수 있다. 식물판매처 뿐 아니라 건설 자재를 판매하는 숍, 철물소 등과도 파트너를 맺어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과정에서도 산불 취약 자재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65군데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이 중에는 캐나다의 유명 체인점들도 있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향후 어떤 분야에 가장 역량을 집중할 계획인가. =도시 설계를 하고 건축물 규제를 하고 있어 새로 집을 짓거나 기존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산불에 대응하는 원칙들이 정책이나 규제를 통해서 파이어 스마트가 적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또 보험 산업과 연계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택 소유자가 파이어 스마트에서 얘기한 권장 사항들을 실천했을 때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산불에 대응하는 행동들을 집주인들이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 외에 산불이 일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을 짓는데 산불에 취약한 자재를 쓰는 등 행동에 대해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떤 방식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려고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3

전통 모델·위성 감지·AI 기술 결합 ‘다층 대응’ 구축한 캐나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산림 면적을 보유한 나라 중 한 곳이다. 캐나다는 전체 국토 면적이 약 998만 ㎢에 달하는데 약 38%인 347만 ㎢가 산림으로 구성돼 있다. 캐나다 산림 면적은 세계 산림 면적의 약 9%에 해당할 정도로 넓어 그만큼 산불이 잦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더해 지구 온난화 가속화에 따른 ‘열돔 현상’이 캐나다를 뒤덮으면서 매년 수천 건의 산불과 맞서 싸우고 있다. 캐나다 산림청(NRCan)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캐나다에서 산불로 소실된 면적은 약 5만3천㎢로 캐나다 산림 면적의 1.5%가 불에 탔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온·건조·강풍 등 극단적 기상 조건이 빈번해진 탓에 산불 발생 가능성과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산불 발생 변수에 대비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는 한발 앞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산불 예방 활동에 집중하는 동시에 예기치 못한 산불이 일어나더라도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캐나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캐나다산불정보시스템(CWFIS·Canadian Wildland Fire Information System)을 통해 첨단 예측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기술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파이어스마트(FireSmart) 프로그램을 통해 ‘산불 피해 최소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온난화 ‘열돔현상’에 매년 수천 건씩 산불 발생 2500여 기상관측소 데이터 활용하는 CWFIS 산불위험지수·화재행동예측지도 만들어 대비 정확도 위해 2029년엔 ‘소형위성’도 띄울 계획 지역사회-정부-주민 협력 ‘파이어스마트’ 가동 교육·식생관리 등 ‘피해 최소화’ 환경구축 힘써 전통 시스템에서 첨단 예측으로 캐나다 산림청이 운영 중인 CWFIS는 위성 관측, 기상 데이터, 식생 정보 등을 매일 통합해 전국의 화재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국가 플랫폼이다. CWFIS는 캐나다 및 미국을 포함한 2천5백여개의 기상관측소 데이터를 활용해 기상관측자료, 연료상태, 지형자료 등을 파악하고 산불 위험지수 및 화재행동예측을 지도로 만들어 산불 위험에 대비한다. 산불 지도화를 통해 통해 산불이 발생했을 때 대응 자원을 즉각 배치할 수 있고, 지자체나 일반 시민이 지역 화재 위험도를 확인하고 빠르게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 위성 관측을 통해 산불 발생을 감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산불 대응 기관들이 산불 초기 대응에 신속하게 나설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등 전략을 수립하는 자료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Forest Fire Behaviour Prediction(FBP·산불확산예측)’ 시스템은 바람, 습도, 연료 종류에 따른 화재의 확산 속도와 강도를 예측하는 모델로, 현장 소방대와 지방정부가 자원 배치와 대피 판단에 활용하고 있다. 다만 데이터의 품질과 현실 적용에 있어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어 캐나다는 최근 위성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첨단 산불 예측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캐나다 우주국의 ‘‘WildFireSat’ 프로젝트는 소형 위성 여러 대를 띄워 캐나다 전역의 열 신호와 연기를 실시간 감지하기 위한 것으로 2029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FBP등 모델의 정확도를 위성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발화 초기의 작은 불씨까지 포착해 대응하는 것이 목표다. 이같은 노력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여러 차례 대형 산불을 겪으면서 나름의 대책들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발표한 종합대책에는 기상청과 산림청을 주축으로 ‘드론·위성·CCTV를 활용한 입체적 산불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계획 단계로 구체적 실행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기상청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산불 대응에 있어 기상 관측 및 예보, 경보 발령 등 역할이 대부분이다. 산불 발생 후 진화, 자원 배치, 화재 확산 속도 예측 등은 주로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등에서 맡고 있어 통합된 시스템 하에서 인공지능에 기반한 산불 대응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주변국이나 캐나다·미국처럼 산불발생 가능성과 화재행동 예측, 자원배치까지 아우르는 종합 예측 모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산림청 및 국립산림과학원 등이 전국 각 지역별 지형과 산림 현황, 기상청 예보 정보(온도·습도·풍속 등)를 활용해 산불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예측 제공하는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으로서는 산불 예측과 확산 모델 전체를 커버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하고, 산불 예방에 주력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 비해 연료(낙엽, 식생 밀도)상태, 지형의 복잡성, 국지 기후 등 변수 반영에 취약한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및 발전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정부 주도 개발 동시에 지역사회-주민 협력 프로그램 마련 이와 함께 산불 피해를 줄이고자 지역 사회-정부-주민이 협력하는 파이어스마트(FireSmart)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파이어스마트는 캐나다 전역 산불 위험을 줄이고 지역사회 산불 탄력성을 높이고자 고안된 종합프로그램이다. 파이어스마트는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 7가지 핵심 원칙 하에 운영되며, 이는 각 지역 파이어스마트 코디네이터와 지역 대표 등이 주도하고 실행한다. 지난 7월 방문한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파이어스마트 BC’의 경우 ‘지역사회 중심 예방문화 확대’를 목표로 산불 위험 인식을 높이고 예방과 완화에 필요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산불 위험지역 내 산불 확산 원인이 될 수 있는 나뭇가지나 낙엽 같은 ‘연료’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위험을 줄이는 식생 관리부터 각 주의 공공 정책과 통합 토지 이용 계획, 법률 명령 등을 정비해 화재에도 잘 견디는 건축자재로 주택을 짓는 등 방법을 통해 생존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산불은 ‘정부만이 아닌 주민들과의 공동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주민 중심에서 산불 예방 활동 및 실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한 점이 특징이다. 신문, TV 등 전통적 방식에 더해 SNS 등 젊은 층이 향유하는 플랫폼을 통해 산불 예방과 행동 요령, 파이어스마트 BC 활동 관련 홍보·소통 등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지방자치단체-소방 등이 산불 예방과 안전에 공감하고 대처 요령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한마디로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산불 예방 활동인 셈인데 이는 국내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산불의 직접적 피해자는 다름 아닌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은 비단 산과 임야 뿐 아니라 도시 주택과 도로, 학교 등 주거지역을 위협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9년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연이 피해를 입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의 생활과 생명을 위협했다. 때문에 산불이 ‘주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같은 점에서 ‘불이 나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주민과 힘을 함께 모으겠다는 캐나다의 정책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2

산불과의 싸움 변수는 ‘하늘’ 美 통합 대응 전략서 배운다

지난 3월 말, 영남권을 휩쓴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은 초속 25m/s의 강풍을 타고 불길이 삽시간에 확산되며 수천 헥타르의 산림을 삼켰다. 산불발생지역 지자체는 각자도생해야 했고, 진화 헬기 투입은 늦었다. 그 사이 화마는 밤낮을 쉬지 않고 번졌고, 불길이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것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대형 산불, 그것도 산악 지형이 험한 한국 특성상 헬기가 필수 요건이나 열악한 장비는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키웠다. 한국은 산불의 헬기 진화율이 80%에 달할 만큼 산불 진화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지난 영남권 산불 때 산림청 보유 헬기 50대 중 35대만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러시아제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 수입이 끊겨 운용이 불가능했고, 7대는 1980~90년대 도입한 600리터급 소형 헬기라서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할 수가 없었다. 헬기가 필수인 지형의 한국이 갖가지 이유로 현장 투입이 어려운 상황과 달리 미국은 민간과 계약을 통해 산불 관리 항공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 중이다. 한국이 대형 산불에도 헬기 운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태와 함께 이와 다른 미국의 시스템을 소개한다. 항공기·인력 등 조정·배분하는 ‘NIFC’ 1~5단계 대비 데이터 기반 우선순위 정해 언제든 투입 가능한 민간항공기와 계약 전문소방대원 ‘스모크점퍼’도 현장 급파 美 전문가들 “韓, 산림청·소방청·지자체 헬기 통합 운용 컨트롤타워 필요” 조언 헬기 운영 한계 드러낸 우리나라 현재 국내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헬기는 △산림청 산림헬기 △소방청 소방헬기 △지방자치단체 임차헬기로 나뉜다. 산림청 소속 헬기는 2025년 2월 기준 총 50대인데 기령 20년 이상인 헬기가 44대(88%)에 달해 노후화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다. 소방청 소속 헬기의 경우 총 32대로 이중 8대만이 2천~4천L급 담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자체는 총 81대의 임차 헬기를 민간항공업체로부터 빌려 사용하고 있지만 기령 20년 이상이 74대에 달하며, 그마저도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임차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노후 기종이라도 계약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운영체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산불은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행 대응 체계에서는 산불이 발생하면 시장·군수·구청장이 초기 진화를 지휘하고 관할 헬기만 투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 임차헬기만으로 조기 진화를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강풍과 함께 넘어온 산불에 맞닥뜨려야 했던 영양군은 당시 임차 보유 중이던 진화헬기 1대를 임차 업체 소속 조종사와 함께 현장에 투입했다. 그마저도 30년전 생산된 노후헬기로 산불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산불이 발생할 경우, 산림청과 지자체 헬기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며 “야간운항이 가능한 헬기가 3대뿐이라는 점도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산불 대응시에는 신속한 대응이 우선이나 법체계마저 이를 가로막는다. ‘항공안전법’상 야간 산불진화는 비행안전 확보를 위한 특별 운항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국토교통부 고시 「회전익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 제10절(회전익항공기 야간 산불진화 추가기준 10.3.1.가)에서는 회전익항공기의 야간 진화가 ‘주간부터 해당 지역의 지형·장애물을 숙지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결과적으로 야간 산불은 헬기로 진화할 수 없는 시간대가 되기에 산불 진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상황 “항공 자원, 하나의 시스템으로 전국 단위 배분” 산림청과 소방청, 각 지자체가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 국내 시스템과 달리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산불 대응 시스템으로 꼽히는 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 운영을 통해 모든 항공 자원을 한 개 시스템 하에 두고, 전국 단위로 배분하는 극효율의 체계를 운영 중이다. 여러 기관이 모여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정보와 인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NIFC는 전국단위로 필요한 항공기나 인력을 모두 센터에서 조정해 배분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자원을 조정하는 담당처는 NIFC 내에 있는 전국 산불 조정센터(NICC·National Interagency Coordination Center)다. 주로 국토부와 산림청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있어 관계 부처 간 대응과 협력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 NICC관계자는 “산불 발생시 로컬 디스패치(비상 상황시 화재 진압 소방대원 투입 조정센터)에서 자체적 해결이 가능한 경우 외에 전국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시 인적 및 장비 요청을 진행한다”면서 “1~5단계까지의 준비상태(Preparedness Level)를 거치는데 기상청, 정보기관, 산불 관리 담당 등 세 곳이 협력해 정보를 통합하고 결정한다. 산불이 여러 곳에서 발생할 경우 헬기, 항공기, 인력 같은 대규모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감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며 “데이터 기반으로 어느 지역에 헬기를 우선 배치할지, 어떤 규모의 인력을 투입할지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각 지자체 및 기관부처가 초기 대응을 도맡는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NICC가 보유한 항공 자원의 경우 정부 소유 항공기보다 민간 소유 항공기가 더 많이 계약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필요할 시 언제든 투입이 가능한 항공기 수량이 항시 확보돼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NICC 관계자는 “NICC가 보유한 대부분 항공기는 개인소유, 민간항공사다”면서 “계약기간 동안 민간 계약자들은 상시 대기 상태로 있다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 항공기를 제공하며 출동 시 추가 비용을 지급받는다”고 설명했다. 항공기와 함께 전문 훈련을 받은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도 산불 대응력을 높인다. NIFC에 소속된 기관중 미국 산림청(USFS)이 직접 운영하는 Great Basin Smokejumper Base(스모크 점퍼들의 훈련·출동·보급 거점)에서는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훈련·교육하고, 항공 출동을 지휘한다. 이들은 산불 전문 소방대원인 스모크점퍼(Smoke jumper)로,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전문대원이다. 주로 도로나 접근로가 없는 깊은 산속에서 산불 초기 대응을 하는 데 적합한 인력인 이들은 낙하 후 불길 근처에서 방화선을 만들어 불이 번지지 않도록 가연물을 제거하거나 작은 불길을 직접 진화하는 등 불길을 끊어 내며, 산불이 대형 재난으로 번지지 않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이 역시 한국의 상황과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은 크게 산불특수진화대, 산불예방진화대, 공중진화대로 나눠 산불 진화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산불예방진화대가 대부분 비중을 차지하는데 6개월~1년 계약을 체결한 기간제인데다 전문적인 직무 교육도 받지 않는다. 미국이 빠르게 초기 진압을 가능케 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반면, 국내 산불예방진화대는 주로 산불 예방과 잔불 정리 작업을 맡는데 지난 영남권 산불과 같은 대형 산불에는 진화에 직접 투입된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다. 실제 당시 경남 산청에서는 창녕군청 소속 예방진화대원 3명이 작업 도중 목숨을 잃었다. 국내도 모자라다, 국제 협력 체계 갖춘 미국 미국의 NIFC 시스템은 확실하게 산불을 진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민간 계약자들과 계약을 통해 산불 현장에 지체없이 투입할 수 있는 항공기를 확보해두고, 이 항공기를 이용해 스모크점퍼들과 같은 전문 인력을 현장으로 보내 산불 악화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로도 모자라 캐나다, 멕시코, 뉴질랜드, 포르투갈 등과 국제 협력 체계를 갖추고 있다. NIFC 관계자는 “1982년부터 NIFC와 협력을 시작했다. 이들 국가와 협력을 위해 공통적으로 ICS(Incident Command System)라는 표준화된 대응체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IFC와 협력관계를 맺은 이들 국가는 화재 발생시 인적 자원 등을 지원한다. 미국 NIFC 역시 호주 화재 발생시 인력을 투입했고, 올해도 캐나다로 600명의 소방관을 지원했다. 이에 더해 NIFC 관계자는 “필요한 경우에 따라 군과도 밀접한 연락을 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면서 “또 산불만이 아니라 허리케인 등 다른 자연재해에도 투입될 수 있는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군(軍)과 민간, 정부 기관이 명확히 역할을 나눈 통합 구조를 운영중이며, 산불 대응에서 나아가 허리케인, 대형 산업화재, 원전 사고 등에도 동일한 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대비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을 들은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도 장기적으로 산림청·소방청·지자체의 헬기를 통합 운용할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예측과 협력, 훈련을 통해 ‘책임론’에서 벗어나 통합 체계를 구성했고 ‘누가 움직일 것인가’가 아니라 ‘함께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산불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고 있다. 견고한 대비 체계를 구축해 시간을 확보한 덕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1

준비된 시스템·촘촘한 협력… 미국의 ‘예방 최우선’ 대응

“불은 경계가 없다.”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Boise)에 위치한 국가 산불 공동 대응 센터(NIFC, 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 관계자의 말이다. 그 말 그대로다. 불은, 특히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다. 올해 초 경북지역에 발생한 산불도 소백산맥을 타고 하염없이 타들어갔다. 때문에 산불재발방지를 위해선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 미국은 산불을 ‘진압’이 아닌 ‘관리’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여러 기관이 모여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정보와 인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컨트롤타워조차 오락가락인 한국과 비교되며, 배울 점 또한 적지 않다. 화재대응정보 통합·자원조율기구 운용 중앙서 진화 자재 투입 등 ‘신속한 대처’ 산불예측데이터 제공 기상 시스템부터 항공적외선탐지기 등 고도화 장비 갖춰 지역사회 교육·협력 네트워크도 ‘탄탄’ 한국은 ‘전문기관 설치’ 논의만 수년째 NIFC: 아홉 기관이 모인 ‘협력 본부’ NIFC는 9개 연방기관(△미국 산림청:USFS △토지관리국:BLM △국립공원관리청:NPS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청:FWS △미국 토착민 업무국:BIA △연방 비상관리청:FEMA △미국 국방부:DOD △국립기상청:NWS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협력하는 기구다. 이들이 협력하고 있는 NIFC는 직접 진화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전국의 화재 대응 정보를 통합하고 자원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보이시 현지에서 만난 NIFC관계자는 “NIFC는 처음 군부와 국토부, 기상청 등 3개 기관이 뭉쳐 시작했는데 화재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여러 기관들이 힘을 합치게 됐다”면서 “연방기관들이 속해 있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고, 군부가 함께 하기에 비행기 및 헬기 등도 빠른 투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자원 조정의 중심, NICC NIFC 센터 내 핵심 조직인 전국 산불 조정센터(NICC·National Interagency Coordination Center)는 전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고, 250개의 지역 디스패치 센터(비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소방대원들을 조정하는 센터)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는다. 이 곳에서는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차, 헬리콥터 등 모든 자재들을 관리하고 있다. 일례로 항공 진압 요청 등도 모두 NICC를 거친다. 센터 매니저인 션 피터슨(Sean Peterson)은 “전국에 10개로 나뉜 지역구마다 소규모 센터가 있는 구조다. 총 250개 로컬 디스패치가 있으며, 각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들은 로컬센터를 통해 산불의 위치, 규모, 기상 상태, 필요 인력 등이 NICC로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즉, 현장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올라오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중앙에서 장비, 인력 배치 등이 이뤄져 현장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A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A지역이 가진 자원이 모두 소진됐을 때 2단계로 인근 B주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B주의 지원 여력도 소진되면 NICC 지원이 이뤄진다. 상세하게 각 대응 단계를 나눠 빠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데다 꼭 필요한 곳에 자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설계한 시스템이다. NICC 매니저는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시즌엔 모두가 헬리콥터를 원한다”면서 “그럴땐 산불 진화 중요도와 필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NICC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우선순위를 정해 자원을 배정하고 지원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진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기상·통신·탐지…과학기술이 뒷받침하는 산불 대응 NIFC는 기상, 통신, 탐지 등을 통해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RAWS(Remote Automatic Weather Stations)에서는 미국 전역 331개의 자동 기상 관측소가 산불 예측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RAWS의 앨런 헤스터(Alan Hester)필드 섹션장은 “RAWS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이동식 장비로, 산불이 나면 현장 근처로 직접 가져다 놓는 이동식 장비”라며 “기상청의 도심 기상관측과 달리 사람이 없는 위험 지역을 관측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역에 331개의 RAWS가 설치돼 있으며, 이를 통해 기온·습도·풍향·풍속·강수량·자외선 등의 자료가 수집된다. 이처럼 보다 고도화된 기상 시스템을 올초 발생한 경북산불에 적용할 수 있었다면 보다 빠른 진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산불 당시 국내 기상청도 보관·관측차량 현장 파견, 실시간 강풍 정보 제공 등 총력 지원을 펼쳤지만 산불 진화 후 기성청 실시간 대응 한계가 명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상청도 초고속 대형산불 대응을 위한 시스템 개선, 재난 발생시 신속한 분석과 전달 체계 마련 등 계획을 밝힌 바다. 화재 현장에서 필요한 통신장비도 NIFC가 강조하는 시스템 중 하나다. NIICD(National Interagency Incident Communications Division)는 1만 2,000대의 무전기와 중계 장비 등을 갖추고 산불 현장에서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다. 마크 힐튼(Mark Hilton) 국장은 “깊은 산악지대에서는 통신이 생명”이라며 “현장에 관련 기기를 설치해 소방대 간 통신망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장 투입 소방관들은 보다 넓은 지역에서, 보다 많은 인원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힐튼 국장은 “거대한 산불이 발생하는 곳은 통신망이 약하기에 이런 기기는 필수적이며, 기기를 더 설치하면 무전 거리를 더 넓힐 수도 있다”면서 “주파수 교체, 중복 주파수 관리 인원 등도 배치돼 현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Infrared Scanner(항공 적외선 탐지기)도 효율적 도구로 꼽힌다. 항공기에 장착해 사용하는 이 탐지기는 1만4천피트(4.2672km) 상공에서 작은 불씨까지 감지해 화재의 중심·확산 방향을 지도와 겹쳐 분석하고 산불화재 현장의 온도까지 파악해줘 정확한 화염지도를 만들고,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게 돕는다. 또 GBISC(Great Basin Incident Support Cache·물자 창고)는 약 2000평 부지에 텐트, 호스, 식사 키트, 장비 등 산불 대응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같은 물자창고는 15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산불이 많이 발생한 지난해 기준 8300만 달러(약 1000억원) 규모의 재고량을 확보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다. 연방 토지관리국(BLM) 운영은 국내 도입시 산불 예방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NIFC에 속한 BLM은 미 내무부 산하 최대 규모이자 가장 복잡한 화재 대응 프로그램인 ‘BLM Fire’을 운영한다. 공공 토지 산불 관리를 직접 담당하면서 선제적 토지 관리 및 대국민 공공 교육까지 병행하고 있는데 특히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산불이 전체 산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식, 대중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 산불 보호계획(CWPP), Firewise 프로그램, 대중 교육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 화재 위험이 높은 시기에는 지역사회와 협력해 일시적인 활동 제한, 공공 토지 폐쇄도 시행하고 있다. BLM 관계자는 “산불은 행정 경계 또한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이 ‘all-hands, all-lands’(모두의 손으로, 모두의 땅을) 접근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화재는 자연현상이지만, 사람의 부주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지역사회 교육과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NIFC 센터 내 추모 공간에는 임무 중 순직한 350명 이상의 소방관을 기리는 보라색 리본이 걸려 있다. 그 리본은 단지 기억의 상징이 아니라, 미국이 산불과 싸워온 긴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거치며 미국은 산불 대응에 있어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배웠다. 한국은 어떨까.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각종 대책이 거론되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 들어서는 경우는 극히 적다. 일례로 진화대원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며 거론된 훈련 센터 설립은 3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4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현안보고에서 민주당 문대림 의원도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에게 들어보니 필요한 기술은 선배들에게 구두로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며 “미국은 전국화재합동센터(NIFC) 등 전문기관이 있지만 우리는 논의만 수년째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견고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다. 여러 기관이 한 데 모여 과학과 데이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숲은 푸르름을 잃고 까만 재로 뒤덮일 수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11-10

영남권 대형산불, 예방부터 진화까지 ‘구멍난 시스템’ 화 키워

지난 3월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은 물론 울산, 경남 지역에서 산불이 확산되면서 영남권 전역이 산불로 뒤덮였다. 2000년 동해안 산불의 4배가 넘는 규모로 문화재 손실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산림과 주거지의 경계가 밀접하고 강풍 통로와 급경사 지형, 고령화된 인구 분포, 불법 소각과 관리 사각지대 등이 겹쳐 산불 피해가 유난히 컸다. 이번 초대형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대형 살수 헬기 부재 등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기획 시리즈로 이번 우리나라 산불 대응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대형 산불을 맞닥뜨렸던 포르투칼·캐나다·미국 지역의 산불 대응 방안이 주는 교훈과 대책도 면밀히 살펴봤다.<편집자주> 지난 3월 의성 등 영남권 삼킨 ‘괴물 산불’ 산림청·소방청·지자체 등 따로따로 대응 대피경보조차 제대로 전달못해 혼선 빚어 산불 피해지 복원에 대부분 ‘침엽수’ 식재 ‘불쏘시개’ 된 소나무가 ‘불의 통로’ 만들어 진화헬기·장비·인력부족까지 총체적 난제 “예방 중심 대응책 등 장기적 로드맵 필요” 우리나라 산불 발생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봄에 주기적으로 비가 내려 산불 발생이 적었던 2024년을 제외하고는 2017년부터 해마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산불 위치정보를 토대로 산림청이 만든 산불다발지역 지도는 서울, 인천, 대구 등 인구 밀집 지역에 산불 위험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대형 인명 피해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경고한다. 그런데 이 같은 경고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의성 등 영남권 전역을 집어삼킨 산불이 발생했다. 이른바 ‘괴물 산불’로 불린다. 사망자 27명을 포함해 총 183명의 인명피해와 10만 4004ha의 산림이 불에 탔고, 주택 3848동과 농어업시설 6106건, 농기계 1만7158대 등에 피해를 입혔다. 이 외에 의성에 있는 고운사 등 전통사찰, 국가유산 등의 피해도 상당했다. 정부는 재난 대응 최고 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진화 작업을 전개했지만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진화 작업이 장기화됐다. 산림 훼손에 따른 주거지 파괴 등은 지방소멸이라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도권 일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현장은 ‘혼선만’ 이번 영남권 산불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난 대응 체계를 문제삼고 있다. 우선적으로 컨트롤타워 문제가 꼽힌다. 지역의 한 소방 소장은 “산불이 나면 산림청 지휘를 받아야 한다”며 “산림청의 산불대응은 소수 인력에 불과해 산불 대응 체계가 너무 빈약하다”고 진단했다. 산림청·소방청·지방자치단체 간 산불대응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국회 입법조사처의 ‘최근 산불대응 관련 주요 쟁점 및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산불대응 주관기관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해당법 시행령에 따라 산림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산불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산림보호법’ 제37조 및 제38조에 따르면 중·소형산불의 경우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대형산불의 경우 시·도지사가 각각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장을 맡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산림보호법이 산불대응 주관기관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어, 일선 현장의 지휘체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행 산불대응 발령 기준에 따르면 시·군·구 차원의 초기 대응이 어려울 뿐 아니라 적기에 협조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영남권 산불이 대표적이다. 산불 초기 당시 강풍이 불면서 확산세가 컸고 이로 인해 현장에선 시·군·구, 산림당국, 소방관서 간 혼선이 발생했다. 산불 피해를 직접 겪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는 주민 대피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에게 대피 경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대피명령이 지연된 사례가 있다. 산불 현장을 지켜봤던 민영권 산청난개발대책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마을에 산불이 내려와 주민들이 불을 끄러 가는데도 ‘대피 명령’ 하나가 안내려 왔다“며 “재난 대응 관련한 대응 메뉴얼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산림은 산림청, 산불 대응은 소방청이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정환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은 “산림청에서 말했던 산불 대응 시스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쪽에서 ‘이쪽으로 가라’, 저쪽에서는 ‘저쪽으로 가라’ 이런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산불 대응을 빨리 하지 못한다“며 “일원화가 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에서 봤을 때 불에 대한 전문가는 소방청”이라며 “산불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소방청에 이관하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10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대구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도 나왔다. 지난 3월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순직한 대원의 장녀가 이 대통령에게 “아버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산불 진화 업무가 제대로 된 체계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드린다”며 산불 진화 업무를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산불 진화 체계 재정비 문제는 대통령실에서 역점을 두고 정비 중”이라며 같은 대형 화재 참사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산림 정책 ‘숲 가꾸기’ 대형 산불 원인으로 지목 산림청의 소나무 단순림 숲가꾸기 정책도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수분이 적고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활엽수에 견줘 산불 발생 시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 지속 시간도 2.4배 길다. 소나무보다 활엽수가 불에 강하며, 산불 확산을 막는 데에는 활엽수림이 더 유용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산림당국은 산불 피해지 복원 등 인공조림 땐 침염수를 더 많이 심고 있다. 산림당국의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인공조림 현황을 수종별로 살펴보면 소나무를 포함한 침엽수는 13만5000ha를 차지한 반면 활엽수는 9만ha에 그쳤다. 정 운영위원은 “소나무 이파리는 불이 붙으면 숯처럼 빨갛게 날림 상태로 번지고, 불을 머금은 솔방울은 수류탄처럼 터져 인근 숲과 강 건너까지 불을 확산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립공원은 산림청 손을 타지 않기 때문에 숲이 자연스럽게 활엽수로 변했다”며 “활엽수가 많아 불이 지표화로 땅으로만 가지 수관화도 비화 현상도 없어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리용 임도가 불을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 집행위원장은 “이번 산불에도 임도를 따라 불이 번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며 “불을 끄기 위한 길이 오히려 불의 통로가 됐다”고 지적했다. 정 운영위원도 “소나무림은 불이 수관화해 임도를 덮어버린다”며 “내부 온도가 1600도 이상으로 치솟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산림 당국이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진화 헬기와 장비 부족, 인력 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산불은 대형화되고, 산불 발생 빈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산불 진화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산림 정책으로는 산불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형 산불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커지는 산불 위험에 대응할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지성 경남연구원 박사는 “기후 변화 등으로 대형 산불이 많이 나고 있다”며 “장기적인 로드맵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산불 대응이 산림청과 소방청으로 나뉘어 있어 초동 진화에 혼선이 생긴다는 점을 거론하며 “재난안전관리법과 산림보호법 등 관련 법령을 일치시켜 지휘체계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산불방지센터에 인력과 장비 동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산림 전문가들은 단편적인 대응을 넘어선 구조적인 전환, 즉 기후 현실을 반영한 예방 중심의 재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산불 위험이 높은 나라들의 산불 대응 정책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9

‘동해선 K-관광’ 매력 한눈에 인터랙티브 페이지 본지 홈피 공개

영상과 사진, 기사가 어우러져 동해선의 매력과 주변 관광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페이지가 본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경북매일, 울산매일, 강원도민일보 3사는 지난 5월부터 함께 동해선 관련 기획과 취재를 시작했다. 2025년 1월 개통된 동해선의 현황을 점검하고,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일대에 산재한 관광지가 만들어갈 미래 청사진을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동해선이 통과하는 주요 관광도시들에게 벤치마킹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철도여행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도 찾았다. 그곳에서 9일간 오사카, 교토, 나라, 도야마, 쓰루가 등을 기차로 오가며 철도가 만들어낸 일본 관광도시의 면모를 가감 없이 확인한 것. 기차 이용자와 철도 관계자들 인터뷰 또한 병행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여름엔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포항, 울산, 삼척, 동해, 강릉을 돌아보며 지역의 관광 실태와 각각의 지자체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펼쳐 나가고자 하는 계획을 점검했다. 역시 기차를 이용해서였다. 이런 과정과 결과를 기사와 사진, 동영상에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향후 동해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인터랙티브 기사 링크: 동해선 K관광의 미래-로컬 매력을 잇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0-30

지자체 실정 맞는 방재 시스템으로 문화재 살린다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말로만 하는 방재, 현장은 ‘구멍투성이’ 2008년 숭례문 화재는 한국 문화재 방재 정책의 분기점이었다. 문화재청은 이후 IoT 기반 무인 경비, 1·2차 감지구역을 활용한 화재·침입 경보, 정기 안전 점검과 재난 유형별 매뉴얼 등 ‘한국형 방재’의 틀을 세웠다. 2030년까지 목조 국가 유산 방재시설을 고도화하고 2040년까지 석조·동산 문화재까지 첨단 설비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2021년 문화재청의 방재환경 모니터링 결과는 냉혹했다. 경북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은 감지기와 소화전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귀래정은 자동화재속보설비와 CCTV가 아예 없었다.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은 화재 수신기가 이쑤시개로 고정돼 있었고, 동화사 대웅전은 전기배선 노후와 관제 모니터가 불량으로 방치돼 있었다. 현장 전문가들은 “설비가 있어도 관리 인력이 부족해 유사시 제대로 작동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까지 겹치며 위험은 더욱 커졌다. 경주는 지정문화재만 900여 건으로 전국 최다를 자랑하지만, 태풍·폭우·산불 등 복합재난에 가장 취약하다. 2016년 지진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을 무너뜨렸고 태풍 ‘힌남노’는 불국사·석굴암 인근 산사태를 불러왔다. 산림의 18%가 소나무 재선충으로 고사해 산불 확산 위험도 크다. ‘종이 매뉴얼’에 머문 방재 대책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경고다. ◇ “문화재도 생명이 있고 유한하다···재난 대비가 곧 생명선” 경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형석 연구원은 문화재 보존을 ‘영원한 가치’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재를 과거의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생명이 있고 유한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며 보존 구역에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생명을 연장하려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경주의 지형과 산림 구조를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그는 경주가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지정 문화재만 900여 건에 이르며 산림의 18%가 소나무 재선충 피해를 입어 산불 확산 위험이 특히 크다고 말했다. 불이 붙기 쉬운 소나무 위주의 식생은 “산불을 키우는 연료가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2016년 경주 지진과 태풍, 가을 집중호우가 석굴암과 불국사를 반복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의 설명이다. 대책을 묻자 김 연구원은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다. 일본은 모든 문화재 건조물에 ‘문화재 보존·활용계획’을 세우고 국가·지자체·민간이 협력하는 체계를 갖췄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청이 정책과 재정을, 지자체가 지역 방재계획을, 소유자가 일상 점검을 담당하며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문화재 레스큐’가 즉시 가동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주민 훈련과 매뉴얼 정비, 방화문·스프링클러 설치, 내진 보강,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이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에 대해 김 연구원은 한국의 산악 지형이 일본보다 산불 위험이 훨씬 크다고 지적하며 사건 후 특별 예산으로 단기 복구에 나서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재해는 늘어날 것이며 문화재 방재를 사회적·교육적 가치로 공유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문화유산도 재난 환경 변화에 맞춰야” 백민호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국가 유산이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이 오늘날 재난 취약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화재는 과거의 기후와 사회 조건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기후 변화로 재난 양상이 변했고 과거 안전지대였던 입지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문화재를 영원한 존재로만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구조적·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하고 관리 인력과 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국가 유산이 재난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 “역사성과 장소성이 문화유산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사찰·산중 유적처럼 인적이 드문 곳이 많아 전기·소방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기후가 변하면서 과거엔 안전했던 입지가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재난 환경 변화와 관련해서는 과거에는 마을과 산사가 공생하며 숲을 관리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줄고 숲은 울창해져 오히려 불길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불은 과거보다 확산 속도가 빠르다. 지진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백 교수는 “2005년 낙산사 산불,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법은 정비됐지만, 문화유산은 전국에 흩어져 있고 환경이 모두 달라 일률적 적용이 어려워서 개별 유산의 특성과 위치를 반영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 소화설비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관을 매립하고 못을 박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문화재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시설 설치가 어렵다고 한 백 교수는 “전력 차단이나 지형 제약으로 실제 화재 때 장비가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어 설치만큼 유지·관리, 현장 대응 역량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설계·시공·유지관리를 일원화하고 현지 관리자가 장비를 직접 조작·훈련하도록 하는 시스템이고, 우리는 관리 업체가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바뀌면서 도면과 현장이 달라지는 데다 장비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구조적 대책과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 백 교수는 “물리적 설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매뉴얼을 현실화해야 하고, 문화재는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재를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국가·지자체·민간이 함께하는 ‘한국형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16

‘복구보다 예방’ 일본 문화재 방재 정책···성공 사례로 배운다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찰엔 방화문·스프링클러 설치 산림 인접 지역 방화대·내진 보강 홍수·쓰나미엔 모래주머니 활용 지자체, 지역 맞는 방재계획 수립 사찰 고택 소유자, 일상점검·보존 주민 주도적 참여 ‘복구보다 예방’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제도적 기반과 법적 토대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은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을 기초로 한다. 이 법은 1949년 나라 호류지 금당 화재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금당 내부 벽화가 불타버리자 ‘국가의 보물도 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사회적 충격이 확산했고, 문화재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후 이 법은 대형 지진과 화재를 거치며 방재 조항이 강화됐다. 현재는 문화청이 정책과 지침을 마련하고 내진 보강과 방재 설비에 대한 재정 지원을 맡는다. 지자체는 지역 문화재에 맞는 방재계획을 수립하고 사찰이나 고택 같은 소유자는 일상 점검과 보존을 담당한다. 대형 재해 발생 시에는 문화청 주도로 ‘문화재 레스큐’가 가동돼 전문가가 파견되고 관·민 협력으로 응급조치가 이뤄진다. ◇ 교토 니넨자카 화재 2024년 1월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 니넨자카에서 발생한 화재는 일본 문화재 방재 정책의 성과를 보여준 대표 사례다. 좁은 골목길에 전통 목조 건물이 밀집한 이곳은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화재 발생 직후 주민들이 시민용 소화전을 가동해 불길을 초기 단계에서 잡는 데 성공했다. 이 소화전은 교토시와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가 협력해 설치한 장치로 평소 주민 훈련을 통해 사용법이 공유돼 있었다. 덕분에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불길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교토시는 이 사건을 ‘지역 공동체가 주체가 된 문화재 방재의 모범’으로 평가했다. ◇ 노토 반도 지진 2024년 1월 1일 발생한 규모 7.6의 노토 반도 지진은 이시카와현 전역에 큰 피해를 남겼다. 사망자가 수백 명에 달했고, 수십 건의 지정 문화재가 붕괴하거나 손상됐다. 그러나 2007년 지진 이후 내진 보강을 거친 건물은 이번에도 무사했다. 문화청과 이시카와현은 즉각 ‘문화재 레스큐’를 가동해 전문가를 파견, 붕괴 건물에서 불상과 고문서를 반출하고 응급 조치를 시행했다. 특히 이시카와현은 문화재 위치를 디지털 대장으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일부 시설은 방화·내수 보존상자와 반출 매뉴얼을 사전에 준비해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었다. 문화청은 “사전 보강, 긴급 레스큐, 디지털 관리, 현장 장비 준비가 결합된 다층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 도시형 문화재 방재와 주민 협력 교토·나라와 같은 전통 도시는 목조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화재 확산 위험이 높다. 일본은 이런 곳에 ‘연단건물’ 개념을 적용해 건물군 단위의 내화성을 높이고 피난로를 확보하고 있다. 교토시는 골목마다 소형 소화 펌프와 호스를 비치하고 주민들이 이를 직접 다루는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또 전통 가옥 내부 통로를 활용해 화재 시 대피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주민 참여는 제도화된 훈련으로 이어진다. 일본은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해 전국 문화재 현장에서 일제히 방재 훈련을 실시한다. 교토는 여름에도 한 차례 추가 훈련을 시행한다. 문화청은 “문화재 방재는 지역사회가 주체가 될 때 실질적 성과를 거둔다”고 강조한다. ◇ 미래 전망과 과제 일본은 최근 ICT, AI, 드론, 3D 스캔 등 첨단 기술을 문화재 보호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문화청은 2023년 기준 3만 건 이상의 문화재를 디지털 아카이브화했으며 일부는 디지털 트윈으로 복원해 재난 발생 시 신속 복원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드론은 지진과 홍수 이후 문화재 피해 현황을 신속히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기후변화로 폭염, 산불, 홍수 같은 재해가 잦아지면서 문화재는 더욱 큰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은 복원보다 예방에 무게를 두고 정책을 재설계하고 있다. 한국 역시 산불로 인한 문화재 피해가 잦은 만큼 일본의 예방 중심 정책과 주민 참여형 성공 사례는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 교토가 주는 교훈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은 법과 제도, 성공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책상 위 자료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민이 있다. 기자는 해답을 얻기 위해 7월 13일 교토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 내부는 마치 재난의 기록관 같았다. 벽면에는 지진과 화재로 무너진 문화재 사진과 복구 과정을 담은 패널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요시토미 신타 교수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일본의 경험과 한국이 참고할 과제를 조목조목 말했다. 요시토미 신타 교수는 “일본 문화재 건조물은 한국보다 산중 입지가 적어 산불 피해 사례가 드문 대신에 모든 건조물은 ‘문화재 보존·활용계획’을 작성해 방재계획에 포함하면서 연구기관과 연계해 고도화된 방재계획을 마련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재보호법’을 기반으로 국가·지자체·민간이 협력한다”라면서 "문화청은 정책과 재정 지원을, 지자체는 지역 문화재 방재계획을, 소유자는 일상 점검을 담당한다. 대형 재해 시에는 문화재 레스큐 체제가 가동된다”고 문화재 방재 체제를 설명했다. 자연재해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 평상시 주민 훈련과 매뉴얼 정비가 이뤄지고, 사찰에는 방화문·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다고 했다 또, 산림 인접 지역은 방화대를 두고 지진에는 내진 보강을 실시하며, 홍수·쓰나미에는 모래주머니·고상화·디지털 아카이브를 활용한다고 했다. 요시토미 신타 교수는 “한국은 산악 지형 문화재가 많아 산불 위험이 높다. 일본은 지형적 위험이 적어 대비가 부족했지만 앞으로 강화가 필요하다”라면서 “문화재는 전통 기법을 유지해야 하므로 내화 자재로 교체하기는 어려워서 물 공급·효과적 방수·피해 최소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재해는 늘어날 것이고, 사건 후 특별 예산으로 단기 대응하는 방식은 지속적이지 못하다"라면서 "문화재 방재를 사회적·교육적·공동체적 가치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09

“새해 첫날 7.6 강진… 전국서 문화재 구조대 3900명 달려와”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노토반도 강타 600여명 숨지고 등록된 문화재만 460여건 피해 현장 투입 전문가•자원 봉사자 불상•고문서 등 200여건 구출 1월 26일은 ‘문화재 방재의 날’ 전국 사찰•성곽 소방훈련 시행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무너지는 돌담 앞에서 7월의 교토, 한여름 특유의 습한 바람이 국제회의장 문틈을 타고 들어왔다. 리쓰메이칸대 국제회의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의 학자와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제19회 문화유산과 역사 도시 재해 저감 심포지엄이 막을 올린 7월 12일 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했다. 불과 반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든 노토반도 지진의 상흔이 여전히 생생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일본 발표자들에게 향했다. 피해를 겪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앞으로 다가올 재난에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가장 먼저 연단에 선 이는 요시토미 신타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 교수였다.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문화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억"이라면서 "그러나 최근 재해의 빈도가 높아지며 이 기억을 잃을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장은 고요해졌다. 이어폰을 꽂은 통역사들의 속삭임만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눈을 내리깔고 메모지에 빠르게 펜을 움직였고, 누군가는 화면에 떠오른 피해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무너진 기와, 무더기로 쌓인 석재, 불에 그을린 목조 건물이 빔프로젝터에 비쳤다. 요시토미 교수의 발언은 경고이자 선언이었다. 일본은 수십 년간 방재 연구기관을 세우고 문화재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왔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연쇄 재난 앞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노토반도 지진의 교훈 이날 가장 주목받은 발표자는 하라다 이시카와현 교육위원회 문화재과장이었다. 그는 단상에 올라 목례를 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시작했다. “새해 첫날, 진도 7.6의 강진이 노토반도를 강타했다. 사망자는 600명을 넘었고 전파된 주택만 6000여 동에 달했다”. 그는 스크린에 띄운 슬라이드를 가리키며 “한겨울 단수와 정전 속에서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흩어지고 버려지는 문화재를 볼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진은 문화재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발굴 현장은 무너지고 옛 사찰의 불상은 기둥에 깔려 부서졌다. 이시카와현에 등록된 문화재는 국·현 지정만 881건, 시·정촌 지정까지 합하면 2400건이 넘는데, 무려 460여 건이 피해를 입었다. 돌담이 갈라지고, 목조 건물은 반쯤 주저앉았으며 수백 년 된 고문서는 빗물에 젖어 갈기갈기 찢어졌다. 하라다 과장은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피해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주민은 차 안에서 추위를 견뎌야 했고 그 와중에 문화재는 폐기 위기에 내몰렸다”라면서 당시의 긴박함을 회상했다. 이때 투입된 것이 ‘문화재 구조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전문가와 자원봉사자 3900여 명이 피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무너진 집터에서 불상과 고문서를 꺼내 임시 보관소로 옮겼다. 구출된 건수만 200여 건. 박물관, 지자체, 연구자들이 함께 나선 전례 없는 협력의 장이었다. 하라다 과장은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직면한 한계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응급조치는 무료로 시행했지만, 본격 수리에 들어가게 되면 소유자의 부담이 크다. 생활 재건이 우선인 상황에서 문화재 복구는 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등록 문화재 문제도 이야기했다. 등록 절차가 길어 피해가 나도 지원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앞으로는 지정·등록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석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재는 공공재이면서도 사유재산인 경우가 많아 보호와 소유의 경계가 늘 고민거리였다. ◇ 연구소에서 현장까지 일본의 문화재방재 정책은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면 소유자와 지자체는 반드시 방재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문화청은 내진 보강과 방화 시설 구축에 재정 지원을 한다.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는 그 정책을 연구와 현장으로 연결하는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충격을 교훈 삼아 2003년 설립한 이 연구소는 교토라는 역사 도시를 기반으로 전통 건축물의 내진 보강 기술, 시민 방재 훈련, ICT 활용 아카이브 구축 등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요시토미 교수는 특히 ‘시민 참여’를 강조한다. 매년 1월 26일은 일본의 ‘문화재 방재의 날’. 이날은 전국 사찰과 성곽에서 일제히 소방 훈련이 시행된다. 불을 피운 모의 훈련에서 주민들이 소화기를 들고 뛰어드는 모습은 이제 교토의 흔한 풍경이 됐다. 교토의 전통 가옥 밀집 지역에서는 ‘시민 소화전’도 설치됐다. 2024년 1월, 교토 니넨자카에서 발생한 화재가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은 것도 이 장비 덕분이었다. 주민이 직접 물을 뿌려 불길을 초기에 잡은 것이다. 일본은 문화재를 디지털로 보존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3D 스캔과 드론 촬영으로 기록을 남기고, 지진 위험 지역 문화재의 위치를 디지털 대장으로 관리한다. 노토반도 지진 때도 이러한 데이터가 신속한 대응에 큰 힘이 됐다. 교토 심포지엄은 화려한 선언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재난을 겪은 도시가 흘린 눈물과 땀을 나누는 자리였다. 일본은 노토반도 지진을 계기로 문화재 구조대라는 혁신을 세웠고 국가·지자체·연구기관·주민이 함께하는 방재 체계를 다져왔다. 그러나 미등록 문화재의 사각지대와 소유자 부담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심포지엄과 인터뷰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문화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의 기억이며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자산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중요한 울림을 준다. 방재 없는 보존은 허상이고, 기억을 지키는 일은 국경을 넘어선 공동의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글·사진/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02

반복되는 지진·폭우·산불… 소중한 문화재 방재 ‘경고등’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2016년 경주·2017년 포항 강진 불국사·보경사 등 기와 떨어져 훼손땐 100% 원형 복원 불가능 장마에 부여 고분군 토사 유실 작년 국가유산 69곳 직접 피해 한국형 방재 시스템 구축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지진이 흔들어 놓은 문화유산의 현장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은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줬다.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당시 불국사 등 목조건축 문화재에서 지붕 기와가 탈락하는 등 비구조적 피해가 확인됐다. 이듬해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5.4) 때도 보경사와 내연산 사찰 등에서 기와 탈락과 구조 부재 손상 등이 이어졌다. 문화재 피해 건수는 31건에 달했다. 복원 과정에서의 취약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국보·보물 문화재 10점 중 7점은 파손되더라도 복원에 반드시 필요한 정밀 실측조사 보고서가 없어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보 24호 경주 석굴암과 보물 1744호 불국사 대웅전은 지진이나 화재로 훼손될 경우 보고서 부재로 인해 100%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 문화재청 자료 결과, 목조건축 국보·보물 180점 가운데 9점은 ‘정밀실측조사보고서’가 없다. 여기에는 불국사 대웅전 외에도 대구 파계사 원통전, 제주 향교 대성전 등이 포함된다. 석조문화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총 571점 가운데 70% 이상이 자료조차 없다. 경주 석굴암을 비롯해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충주 고구려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3년 문화재청 의뢰로 한국지진공학회가 실시한 지진재해 안전성 평가에서도 전국 석조문화재 152점 가운데 30점이 ‘경계’ 등급을 받아 내진 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호’는 23점, ‘보통’은 99점에 그쳤다. 이 평가는 지반 조건, 주변 환경, 구조 및 부재 구성, 보존 상태 등을 지표로 삼아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결과다. 문화재청은 경주·포항 지진 이후 뒤늦게 ‘문화재 내진 보강 종합대책’을 마련해 정밀 안전진단과 보강 공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산불, 불길 속에 사라져간 역사 지난 3월 경북과 강원, 경남을 휩쓴 대형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 보존사에서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불길은 의성 고운사와 안동, 청송, 영양, 정선, 울산, 하동까지 이어지며 보물 2건을 포함한 문화재 30건을 집어삼켰다. 국가지정문화재 11건, 시·도지정문화재 19건이 피해를 입었다. 의성 고운사의 연수전과 가운루(보물)는 불길에 휩싸여 흔적만 남았다. 수백 년간 불교문화를 품어온 전각 두 채는 이번 산불로 완전히 사라졌다. 관덕동 석조보살좌상,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등 불상 유물도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안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인 구리측백나무숲 0.1㏊가 불에 탔고 만휴정 원림, 백운정, 개호송 숲 등이 잇달아 훼손됐다. 청송 역시 피해가 컸다. 기곡재사, 병보재사 등 수많은 고택과 재사가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영양의 천연기념물 답곡리 만지송은 가지 일부가 훼손됐으며 울산 울주군의 목도 상록수림은 0.1㏊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강원 정선의 명승 백운산 칠족령 일대는 0.5㏊가 소실돼 경관이 크게 손상됐다. 하동에서는 고려 장군 강민첨을 기리는 두방재의 부속 건물 두 채가 전소됐고 수령 900년을 자랑하던 두양리 은행나무도 일부가 불에 탔다. 사실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의 오랜 적이다. 2005년 강원 양양 산불로 사적 제495호 낙산사가 전소됐고 2008년에는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이 방화로 무너져 내렸다. 2010년 부산 범어사에서는 보물 제1461호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거나 훼손됐다. 한 승려는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폭우가 삼킨 성곽과 고분 지난해 장마철 쏟아진 기록적 폭우는 전국의 문화유산을 휩쓸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산불이 화마라면, 홍수는 또 다른 파괴자였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장마철 국가 유산 피해·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69곳의 국가 유산이 직접 피해를 입었고 9곳의 주변 지가 파손돼 총 78곳에서 풍수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속속 보고됐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에서는 막새기와 두 장이 떨어져 나갔고, 강원 철원 한계산성(사적)의 천제단 석축 일부가 무너졌다.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백제역사유적지구)은 만하루 누각이 침수되고 성벽 일부가 붕괴됐으며 부여 왕릉원 고분군(사적)에서는 봉분 사면이 일부 무너져 토사가 유실됐다. 또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는 담장이 무너지고 내아·동헌의 기와가 떨어졌으며 성벽과 기둥까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 일본, 고베 대지진 계기 문화재 방재 체계 강화 19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에도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대규모 피해를 계기로 정부는 지진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고 건축물 내진 성능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 내진 보강 사업은 문화재를 포함한 주요 건축물까지 확대됐다. 특히 일본은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로 지정해 왔다. 이는 1949년 화재로 소실된 호류지 금당(사찰의 중심 전각)을 교훈 삼아 1955년부터 시작된 제도로 문화청 주관 아래 지방자치단체·소방·주민이 함께하는 합동 훈련과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화재를 비롯한 재난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예방 중심의 체계가 자리 잡은 것이다. ◇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의 과제 한국 역시 더 이상 복구 중심의 대응에 머물 수 없다. 앞으로는 △문화재별 위험도 평가와 맞춤형 관리계획 수립 △3D 스캔을 활용한 디지털 아카이빙 확대 △지진·산불·홍수에 대응하는 통합 매뉴얼 마련 △주민 참여형 방재단 운영과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진은 기와를 흔들었고, 산불은 사찰을 태웠으며, 폭우는 성곽과 고분을 무너뜨렸다. 자연재해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차 없이 집어삼키고 있다. 복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방과 대응, 기록과 교육을 결합한 한국형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미래 세대와 이어지는 다리를 지켜내는 일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26

바다 끼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코 끝엔 커피 향내가…

공학자들은 ‘바퀴’를 인류 역사를 괄목상대시킨 효과적인 발명품으로 지목한다. 비행기가 생기기 전 바퀴 달린 수레는 인간과 물품의 이동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에 증기기관에 더해지면서 기차가 등장한다. 1804년. 영국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 만든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22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한국도 도시 곳곳을 기차가 연결하고 있다.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흔해졌다. 8개월 전엔 부산(부전)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도 완전 개통됐다. 지난달 중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울산을 출발해 8박9일간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까지 취재여행을 했다. 기차에 편안하게 앉아 푸른 파도 부서지는 해변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각 지역이 동해선 개통 이후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수도권 관광객 북적이던 ‘강릉 커피거리’ 부산•경북 사투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와 바다와 가장 인접한 구간은 강릉~정동진 상행선 오른쪽•하행선 왼쪽 창가가 ‘명당’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동해선 철길 지나는 도시들, 사회·경제적 상승효과 기대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동해선 철도의 역이 만들어진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도 크건 작건 ‘철도 개통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향후 더 큰 사회·경제적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건 불문가지. 일본 간사이대학 아베 세이지(安倍 誠治) 교수의 논문 ‘일본 고속철도의 미래’는 향후 동해선이 지나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대목이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효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 재개발 효과다. 신칸센은 도시간의 시간거리를 단축시켜 사람들의 행동권이나 상권의 확대를 가져왔다. 신칸센의 개업에 의해 가장 변모한 것이 신칸센역 주변이다. 신칸센역의 개설에 따라 역 주변의 터미널 기능이 향상되고, 거기에 동반해 도시 구조가 변화하고, 교통 체계의 재편이나 중심 업무지역의 형성이 촉진됐다.” 강릉에 도착한 첫날. 창해로 일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강릉 커피거리’를 찾았다. 제법 큰 규모의 커피숍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지금까진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 1월 동해선 개통 이후론 가게에서 부산과 경북 사투리가 자주 들을 수 있다”며 웃었다. 다음날 산책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들른 경포대해수욕장에선 우즈베키스탄 부자(父子)를 만났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대구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둘은 대구를 출발해 포항과 삼척을 거쳐 강릉으로 휴가를 온 터였다. 강릉과 정동진의 해변에선 동해선 열차 탑승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베 세이지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기차가 지나는) 역 주변 땅값이 올랐는데,토카이도 신칸센의 연선 중 가장 변모한 곳이 신요코하마역과 신오사카역 주변이다. 게다가 신칸센역에 인접한 호텔이나 백화점,다양한 점포가 신설돼 활기찬 공간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수요가 개척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거리의 매력도 만들어졌다. 토카이도 신칸센의 개업은 연선지역의 도시 재개발과 지역 개발의 촉진제가 됐던 것이다.” 지가(地價) 상승과 고급 숙박시설의 신축, 늘어나는 상점이 가져올 지역경제 활성화, 여기에 도시 재개발의 촉진…. 일본의 과거 사례는 동해선이 지나는 여러 도시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이긴 하지만.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려면… 동해선 기차의 매력은 무엇보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특히 갓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라면 이를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낭만으로 느낄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연인과 부부만은 아니리라. 그러니, 9일간 10번 이상 동해선 기차를 타고 남북을 오르내린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려 한다. 바다와 가장 인접해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건 정동진-강릉 구간이다. 10분 가까이 출렁이는 해변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기차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물론이다. 동해-정동진 구간과 묵호-동해 구간에서도 짧은 시간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상행선 기차의 경우 오른쪽 창가 좌석, 하행선일 경우엔 반대로 왼편 창가 좌석이 ‘바다 전망 명당’이다. 그러니, 동해선 기차를 예약할 때 참조하시기를. 삼척∼강릉, 기차와 자동차 중 어떤 게 빠를까? ‘ITX 마음’·‘누리로’ 1시간 소요 휴가철·명절엔 열차 이용 편해 올해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을 운행하는 기차는 편안함과 속도 2가지 면에서 모두 자동차를 압도할 수 있을까? 소박한 실험은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마음먹었으니 미룰 것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삼척역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은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지인에게 맡겼다. 삼척역에서 강릉역까지의 거리는 약 60km. 지난 7월 중순의 평일 낮. 교통 정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삼척역을 출발한 자동차는 1시간 6분 만에 강릉역 앞에 도착했다. 교통 법규와 규정 속도를 정확하게 지키며 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기차의 삼척역-강릉역 구간 운행 소요 시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동차와 거의 비슷하다. 하루 8편이 운행되는 이 구간을 ‘ITX 마음’과 ‘누리로’ 열차는 빠르게는 1시간 1분, 느린 경우 1시간 7분이면 달려간다. 물론, 동해안 휴가철이거나,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라면 “기차가 훨씬 빠르다”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 차원에서 보자면 기차의 손을 들어줄 이들이 더 많을 듯하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시원한 맥주나 사이다 한 잔 마시며 유유자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기차여행이 자동차여행을 압도하는 부분이 분명하다. 동해선 개통 이후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자동차를 집에 두고 동해선 기차에 오른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빙그레 짓는 웃음. 이건 깨끗하고 연착 없는 ITX와 누리로 열차가 만들어준 미소가 아닐까 싶다. <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소중한 전통 목조 건축물, 자동소화설비 없이 산불에 노출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흥인지문(보물)·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도 설치 안돼 기후변화로 산불 발생 조건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15%나 상승 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등 문화재별 특성 맞춰 확충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괴물 산불’이 삼킨 문화재 지난 3월 영남권 하늘은 붉은 연기와 불길로 뒤덮였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둑한 하늘 아래 산등성이마다 불덩이가 튀어 오르며 전선을 따라 불길이 번졌다. 마을 사람들은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허겁지겁 짐을 챙겼지만 거센 화염 앞에 대부분의 살림살이는 두고 달아나야 했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멍하니 타들어 가는 집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산불로 5개 시·군의 주택 4457채가 불에 탔고, 27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도 350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 산림은 약 10만 ㏊에 이르러 서울시 면적을 크게 웃돌았다. 강풍 탓에 물줄기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불길은 바람결에 따라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진화작업에 나선 한 소방대원은 “물이 닿기도 전에 불길이 다음 능선으로 넘어가 있었다”며 당시의 무력감을 전했다. 문화재 피해는 더욱 뼈아팠다. 천년 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가 전각 대부분을 잃었고, 안동 만휴정 원림과 청송의 고택, 서당 등도 불길에 휩싸였다. 안동 지산서당·구암정사, 영양 송석재사 등 조선시대 건축물 또한 상당수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폭발음처럼 ‘쾅’ 하고 기와가 튀어 오를 때마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매캐한 연기는 골짜기를 메우며 호흡을 막았고, 불길이 옮겨 붙은 나무들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주민 박모씨(68)는 떨리는 목소리로 “산 전체가 불을 뿜는 괴물 같았다. 그 앞에서는 사람도, 기계도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년 고찰 고운사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길은 대웅전 기단까지 파고들며 불상을 위협했다. 사찰 관계자는 “소방대가 철수한 뒤에는 두 손 놓고 불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허탈하게 무너진 절터를 바라보며 “집이 타는 것도 서럽지만, 조상들이 지켜온 유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니 더 가슴이 미어진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는 건물을 삼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산속에서 지켜온 천년의 기억까지 함께 태워버렸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잿빛 기와 조각과 그을린 기둥뿐이었다. 현장에서는 “문화재를 지키기에는 우리의 방재 체계가 너무 허술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노인은 “나라가 재난지역 선포만 할 게 아니라, 애초에 문화재를 지킬 방법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자동소화설비 ‘제로’···제도의 공백 이번 피해는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니라 예견된 재난이었다. 지난 6월 서울 성북동 명승 ‘성북동 별서’ 내 목조건축물 송석정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결국 소방당국은 기와 지붕을 굴착기로 철거하는 ‘파괴 진화’에 나서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비단 송석정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의원실이 국가유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목조 문화유산 대부분은 자동소화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서울 흥인지문(보물),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등 국가적 상징물도 포함돼 있다. 제도의 허점도 뚜렷하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자동소화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전통 사찰·문화재·종교시설은 예외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목조 문화재 상당수가 여전히 소화기나 소화전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다. ◇ 반복되는 관리 부실 국가유산청이 지난 4년간 소방 점검을 벌인 결과에 따르면, 138건의 개선 권고 중 절반을 넘는 70건(50.7%)이 소화기 문제였다. 여기에는 ‘안전핀이 빠진 소화기’, ‘노후로 인한 기능 저하’, ‘감지기 미작동’ 등 시설 기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례들이 포함됐다. 특히 점검 지적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2년 19건, 2023년 20건, 그리고 2024년 2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경북 지역의 구체적 현장 점검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안동 봉정사에서는 ‘소화기 분산 배치 필요’, 하회마을 양진당에서는 ‘부엌에 소화기 비치 필요’, 청송 후송당 고택에서는 ‘주기적 점검 요망’이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소화시설 외에도 화재 대응 핵심 장비의 고장 사례가 잇따랐다. 자동화재속보 통신선 불량, 불꽃·연기 감지기 미작동 등 58건의 설비 문제가 최근 4년간 지적됐다. ◇ 기후위기와 산불 기후위기가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방재 체계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평균 기온은 약 1.8도가 상승했다. 여기에 가뭄과 강풍이 겹치면서 산불은 갈수록 대형화·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평균 546건에 이른다. 특히 2022년에는 756건으로 가장 많은 건수가 기록됐고, 피해 면적도 2만4797㏊에 달했다. 이처럼 산불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전통 목조건축물 등 국가유산은 언제든 재난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영남권 산불 또한 이러한 기후 조건이 겹친 결과였다. 당시 순간 풍속은 시속 20m를 넘었고, 건조주의보가 이어진 탓에 불길은 순식간에 확산했다. 국제 연구기관 ‘세계기상특성(WWA)’은 이번 한국 대형 산불을 분석하며 “기후변화로 인해 유사한 조건이 발생할 확률이 약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역시 평균보다 15%가량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 대안은? 문화유산 방재 체계의 취약성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뒷걸음질에 머물러 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목조 문화재와 같은 국가유산에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다. 일본 문화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문화재 방재 지침과 매뉴얼을 전국적으로 보급했으며,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방재 시설 설치와 내진·방화 강화에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자체와 주민, 연구기관이 합동으로 방재 훈련을 정례화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도시방재연구소'는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 방재 시뮬레이션 훈련과 재난 대응 매뉴얼 보급이 정례화됐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를 통해 공유된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 방재 기관 설립과 더불어, 자동소화설비·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문화재별 특성에 맞춰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가 함께하는 재난 대응 네트워크를 제도화해 초기 대응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뿌리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삶의 자산이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이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 복구가 아니라, 피해를 막아내는 선제적이고 과학적인 방재 시스템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여행자들의 발길 이끄는 바다와 숲의 매혹적인 결합

올해 1월 1일 운행을 시작한 ITX-마음 열차는 경북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 강원도를 여행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 사실을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김경택 부연구위원의 논문 ‘동해선 개통의 영향과 교통 정책’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늘어선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추암해변’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 관광객들 끊이지 않아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무릉계곡’ 옛사람이 왜 ‘신선이 살던 곳’이라 했는지 절로 이해 철마다 얼굴 달리하며 관광객 반기는 다양한 명소 인심 좋은 상인들과의 만남이 여행의 즐거움 더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ITX-마음 열차는 태화강역, 포항역, 삼척역, 동해역을 거쳐 강릉역까지 운행된다. 부산, 대구, 경주 등에서 강릉까지 교통수단별 통행시간과 비용을 살펴보면, 부산-강릉 구간은 자가용 4시간 16분(8만8600원, 톨게이트 및 연료비 포함), ITX-마음 4시간 49분(3만4900원), 시외버스 6시간 3분(4만3700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통행시간만 보면 부산-강릉 구간에서는 자가용이 가장 빠르나, 통행비용은 ITX-마음이 두 배 이상 저렴하다. 특히 통행시간을 시간가치로 환산한 후 통행비용을 합한 값인 일반화 비용을 보면 ITX-마음이 가장 경제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삼척으로 향한 건 지난 7월 19일. 적지 않은 비가 쏟아졌지만 기차 안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삼척은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서있는 해변과 울울창창한 청정 숲을 지닌 강원도 들머리의 관광도시다. ▲삼척, 바다와 숲의 행복한 결합 이뤄내고 여행자 반겨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이사부길’은 매혹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높고, 은빛 모래가 10리를 이어지는 맹방해변 또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관광 명소다. 소나무, 유채꽃, 벚꽃이 철마다 얼굴을 달리하며 여행자를 반긴다. 왼편으로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40여 분 유유자적 달리는 레일바이크도 삼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기자 역시 직접 레일바이크에 올라 그 인기를 실감했다. 삼척의 환선굴, 대금굴, 이끼폭포, 소한계곡, 검봉산 자연휴양림은 바다가 가진 매력과는 또 다른 짙푸른 매혹을 여행자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삼척은 바다와 숲의 매력적인 결합을 이뤄낸 후 관광객을 기다리는 도시. “천만 관광도시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삼척시의 의지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행의 추억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법. 기자의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면 삼척엔 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상인이 몇 있었다. 일부 지역 관광지 상인들과 달리 목소리 높여 호객을 하지 않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은 정직한 가격으로 활어를 판매하는 횟집 주인, 성실한 태도로 음식을 만들어 점잖게(?) 판매하는 두부요리 전문식당 상인을 삼척에서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개통된 동해선 철길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삼척으로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손님이 많아지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종여일(始終如一)의 자세로 장사를 이어갈 상인이 비단 삼척만이 아닌 동해선이 통과하는 도시 곳곳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집’이 아닌 ‘길’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여행자가 같은 심정이리라. ▲동해 무릉계곡에서 만난 나비와 절경 자랑하는 추암해변 삼척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15~16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동해역. 그 일대에도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풍경이 적지 않다. 먼저 추암해변. 어떤 곳이냐고? 간략하게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을 아래 옮긴다. “추암해변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안 절벽과 고운 백사장이 아름답다. 해변의 크기는 작지만 절경을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추암해변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그중 추암 촛대바위는 사계절 내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선 기차를 타고 동해역에 갔다면 거리가 조금 멀어도 꼭 가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이다. 삼척의 숙소에서 일찍 일어난 새벽. 무릉계곡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너무나 화려한 색깔의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를. 어떤 형용사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어째서 옛사람들이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그 계곡을 ‘신선이 살았던 공간’이라 했는지 이해될 듯도 했다. 동해선 철길은 바다와 숲이 조화를 이뤄낸 삼척과 무릉계곡의 비경을 간직한 동해로 가는 길을 보다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강원도 관광산업의 효자’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기차·도보여행 마니아가 바라본 ‘동해선’⋯ 포항에 거주하는 김대균(65)씨는 기차와 도보여행 마니아다. 동해선이 개통된 후 10여 번을 기차에 올랐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곳곳을 오갔다. 지난 7월 말. 그를 만나 동해선 이용 소감과 함께 향후 개선됐으면 하는 점을 물었다. -올해 1월 1일 동해선이 온전히 열렸다. 상반기 통계를 보면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동해선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당신 역시 동해선 ‘단골 이용자’라고 들었는데. “6개월간 열 번 정도 동해선을 탔다. 직장을 다녔더라면 주말에 이용했겠지만, 이젠 퇴직한 상태라 주중에 자주 다녔다. 처음엔 토·일요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이젠 코레일 앱 사용법을 익혀 조금은 쉽게 예약을 하게 됐다.” -동해선을 타고 경북은 물론, 강원도 각지를 다녀온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선 여행지가 있다면 추천 부탁한다. “삼척, 울진, 강릉, 정동진 등 동해안 전체가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다. 어느 한 곳만을 특정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우엔 영덕을 추천하고 싶다. 갈 때는 포항에서 열차를 타고가 돌아올 때는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어서 온 적이 있다. 꼬박 1박2일이 결렸는데, 그 과정에서 동해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동해선이 강릉을 넘어 속초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동해선 철길을 오가는 요즘 기차와 예전 기차를 비교하면 어떤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다. ITX와 누리로 기차는 최신형이고 깨끗하다, 연착도 거의 없다. 내가 예순다섯이다. 젊을 땐 중앙선 낡은 기차와 털털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강원도에 다녔다. 단축된 시간과 쾌적함을 보자면 지금의 변화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동해선 애용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차를 이용해 동해선이 지나는 조그만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광지와 식당, 숙소 정보를 꼼꼼하게 담은 구체적인 여행안내서가 출간되고, 그게 역마다 무료로 비치됐으면 한다. 지역마다 있는 관광안내소 직원들이 더 친절하고 전문적인 관광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2

끊어진 철길 이어지니 ‘핫플 관광지’로 거듭나는 경북동해권

장기화되는 경제 불황에 중국산 저가 철강의 덤핑 공세.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압박’ 등의 악재가 겹친 2025년 오늘. 포항시는 고민에 빠져 있다. 철강업체 포스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포항 경제의 등뼈다. 그게 휘청이고 있는 것. 그렇기에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은 포항시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 위기의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첨단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21세기형 유망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의 활성화가 유효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올해 초. 부산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 철도가 완전 개통됐다. 포항시는 동해선 철길을 지나는 경상북도 도시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 또한 가장 크다. 포항은 동해선을 통해 유입되는 관광객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시 발전에 접목시키고 있을까? 관광·비즈니스 두 토끼 잡기 나선 포항 풍부한 관광자원 활용한 새 활로 모색 외국인관광객 유입 위한 편의시설 확충 전시컨벤션센터 건립 등 경쟁력 키워가 울진·영덕, 반짝이는 아이디어 속출 관광시설 이용료 일부 ‘지역화폐’로 환급 관광 명소 방문 미션땐 성공 기념품 지급 요금 60% 지원해주는 ‘관광택시’ 운영도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적지 않은 관광 자원...‘드라마의 인기’가 포항의 인기로 일단 관광 인프라 차원에서만 보자면 포항시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동해선 철도는 물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KTX와 SRT 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영일대해수욕장을 필두로 시원스런 해변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청정 계곡이라 불러도 좋을 내연산과 운제산에 자리한 보경사와 오어사는 드라마틱한 설화를 간직한 고찰(古刹)이다. 현대인은 건강관리를 위한 가장 쉬운 방편으로 ‘걷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일만 북파랑길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걷기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포항의 보물’ 같은 관광자원. 이외에도 동해선 철도를 타고 포항을 찾는 이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은 적지 않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포항운하에서 즐기는 크루즈, 경상북도수목원,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어시장인 죽도시장…. 게다가 얼마 전부턴 ‘갯마을 차차차’ ‘동백꽃 필 무렵’ 등 인기 높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각광받는 게 포항이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엔 평일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촬영이 진행된 장소를 찾는다. 청하시장과 구룡포 석병리, 곤륜산과 월포해수욕장 등이 그렇게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된 곳들이다. 동해선 개통과 함께 관광산업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포항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확충과 해외 마케팅 전략 수립, 여기에 관광과 비즈니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전시컨벤션센터의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포항시청 관광산업과의 설명이다. 어쨌건 현재 포항은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미래 유망산업인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과 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런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진군과 영덕군도 동해선 특수...지역 경제에 긍정 효과 지난달 중순. 포항에서 출발하는 누리로 기차를 타고 울진을 향했다. 상쾌한 느낌을 주는 하늘색으로 디자인 된 기차는 1시간 30여 분을 달려 울진역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낚시꾼들에게 ‘은어 낚시의 성지’로 불리는 왕피천에 가면 청정한 자연 풍광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고 했다. 울진역에서 멀지도 않았다. 기대감을 안고 택시에 올랐다. 울진에서 오랜 시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유인수 씨는 “1월에 동해선이 완전히 뚫리면서 승객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울진군 차원에서도 관광객 유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울진에선 관광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여행자가 원하는 곳을 데려다주고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 시스템인데, 군청에서 금액의 60%를 지원해주니 이용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자가용이 아닌 기차를 타고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라며 유씨가 환하게 웃었다. 지난 7월 22일엔 동해선 철도 개통을 기념해 ‘1만원 관광열차’도 운행한 곳이 울진군이다. 강원도 강릉역을 출발해 울진의 주요 관광지와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울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이 여행상품은 사용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왕피천 케이블카의 이용 요금은 1만2000원. 티켓을 구매하면 지불한 돈의 절반인 6000원이 담긴 카드를 준다. 그 카드를 제시하면 울진군 관내에서 음료나 기념품을 사거나 할인받을 수 있다. 이 또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울진군이 만들어낸 좋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맛집’이 ‘전국 맛집’으로 신분 상승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울진역에서 도보로 5~10분이면 도착하는 한 식당은 ‘얼큰한 짬뽕’으로 또 하나의 울진 명물이 됐다. 평일에도 점심시간이면 가게 앞에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 맛은 어땠냐고? 명불허전(名不虛傳). 유명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덕 역시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아름다운 해변도시 가운데 하나다. 달콤한 복숭아와 다양한 해산물이 있고, 사파이어빛 바다와 맑은 하천이 출렁이는 영덕군은 이미 예전부터 이름난 관광지였다. 지난 5월엔 산불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는 영덕을 위해 코레일 대구본부가 ‘영덕 마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동해선 영덕역을 방문한 관광객이 지역 관광 명소 일곱 곳에서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기념품을 주는 행사였다. 영덕군 또한 사전 예약을 하면 역을 출발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후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영덕 관광택시 타보게’ 사업을 선보이고 있다. 울진군과 마찬가지로 영덕군이 금액의 60%를 내고, 관광객은 이용 요금의 40%만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시절 한때 ‘철도교통의 불모지’로 불리던 경상북도의 소도시들이 동해선 완전 개통을 계기로 ‘관광 도시’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동해선 개통 맞은 포항시, 향후 계획은? 야간 관광상품 개발 등 다양한 마케팅 펼쳐 경주·울진·영덕·울릉 4개도시와 박람회 참가 등 공동 홍보도 총력 새로운 환경에선 그 환경에 맞출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포항시는 ‘동해선 완전 개통’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고, 향후 어떤 비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포항시청 관광산업과 윤천수 과장과 신세영 마케팅팀장을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동해선 개통 이후 방문객 추이는? “포항역 승·하차 인원은 매월 1만8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설 명절이 포함된 1월과 가정의 달인 5월엔 연휴 효과로 이용객 수가 다소 늘기도 했다. 향후 연계 관광 상품 개발 등의 마케팅으로 동해선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포항을 거쳐 가는 동해선의 매력은 무엇이라 보는지.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포항시는 이런 매력을 극대화하고 관광객의 체류를 유도하기 위해 ‘야간 관광상품’을 운영 중이다. 포항은 낮은 물론 밤도 아름다운 도시다. 그 매력을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한다. 특히 해상 누각이 있는 영일대의 야경과 예술성과 조형미를 갖춘 스페이스 워크의 밤 풍경을 추천하고 싶다. -동해선으로 이어지는 다른 도시와의 협력은? “경북 동해권 관광진흥협의회를 통해 포항, 경주, 울진, 영덕, 울릉 5개 도시가 함께 공동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 박람회 참가, 홍보영상 및 홍보물 제작, 수도권 지하철 광고 등을 통해 동해선 관광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강원도와는 관광안내 책자를 상호 비치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동해선 철길이 불러온 긍정적 시그널은 무엇인지. “그간 동해안 지역은 7번 국도에만 의존해온 탓에 교류와 왕래 기능에 한계가 있었다. 동해선 개통은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접근 경로가 다양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른 상승효과가 적지 않다. 철도 여행을 선호하는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제공된 것이기에. 앞으론 관광 콘텐츠 고도화와 철도 관련 기반시설 확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할 듯하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8-05

푸른 쉼표 하나 ‘콕’ 찍어가는 회색빛 공업도시 울산의 대반전

어쩔 수 없다. ‘회색빛 공업도시’라는 선입견을 뗄 수 없는 명찰처럼 달고 지내온 도시가 울산광역시다. 지난 세기.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주역 가운데 하나지만, 칙칙한 ‘주홍 글씨’를 쉽사리 지워내지 못했다. 기자의 생각도 보편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보지 않고, 여행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울산에 관한 선입견과 주홍 글씨의 색채가 더 강하게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최근 부산광역시(부전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강릉시로 가는 동해선 기차가 멈추는 곳 가운데 하나인 태화강역 인근에서 이틀을 머물며, 울산을 돌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울산은 관광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느낌을 받은 것. 그런 감정을 실질적으로 증폭시킨 울산의 여행지를 딱 2곳만 꼽으라면 ‘대왕암 출렁다리’와 ‘장생포 고래박물관’ 일대를 지목하고 싶다. 왜냐고? 아래가 그 이유다. 포항역~울산 태화강역 1시간5분 소요 ‘장생포고래박물관·대왕암 출렁다리’ ‘태화강 국가정원’ 시티투어 2개 코스 비수기엔 3000원으로 투어버스 이용 아슬아슬 낭만 쌓는 ‘대왕암 출렁다리’ 고래잡이 재현한 ‘장생포 고래단지’선 반세기 전 어촌 풍경 산책하듯 감상 ‘고래문화마을~영상관~고래박물관’ 1.3㎞ 모노레일 위에선 울산이 한눈에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상반기 이용객 100만 명, 부정할 수 없는 동해선 인기 최근 한국철도공사는 근래 개통된 6개의 기차 노선 이용자 숫자를 조사해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노선은 다름 아닌 동해선. 6개 노선 이용객 250만 명 중 동해선 기차에 오른 여행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노선은 강릉과 부전, 강릉과 동대구를 운행하는 동해선을 필두로, 서울·청량리에서 부전을 오가는 중앙선, 판교와 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선, 홍성에서 서화성으로 가는 서해선, 홍성-평택-천안-홍성 구간을 차례대로 순환하는 포승·평택선, 대곡과 의정부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 교외선이다. 이 가운데 동해선이 이용자 숫자 면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동해선 기차를 타고 부전-강릉 사이를 오간 여행자는 1일 평균 5500명이다. 그러니, 누적 승객이 99만2000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 티켓을 구하기 위한 ‘예약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지난 15일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ITX-마음 1252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을 향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5분. 날렵하게 디자인된 빨간색 기차의 깔끔한 객실은 쾌적했고, 도착도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줬다. 6월 중순 일본에서 타본 신칸센이나 선더버드 기차 못지않았다. 태화강역엔 울산의 주요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는 버스와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대왕암 출렁다리 등을 오가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동해선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울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이 2가지 코스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걸 선택해 지역 주요 명소를 보다 손쉽게 돌아보는 게 가능하다. 시티투어 버스의 승차권 가격은 7월 현재 3000원. 비수기라 50%가 할인되고 있으니, 시내버스 2번 탈 돈으로 하루 종일 5~6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게 가능한 셈이다. 이른바 ‘가성비’도 좋다. ▲기차 타고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를 찾은 청춘들은… 울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왕암 일대와 고래박물관을 오가는 시티투어 버스에 탔다. 한산한 평일이었으니 주말에 비해 관광객은 적었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 울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빼놓고 싶지 않은 관광지 대왕암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짙푸른 바다가 사람들을 반긴다. “울산 최초의 출렁다리이자 동구 최초의 대규모 상업관광시설. 대왕암공원 내 해안산책로의 햇개비에서 수루방 사이를 연결하며, 길이 303m, 높이 42.55m 규모로 만들어졌다. 중간 지지대 없이 한 번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전국 출렁다리 중 경간(徑間) 장로의 길이가 가장 길며, 바다 위로 이어진 다리이기에 대왕암 주변의 해안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긴 다리는 사파이어 빛을 닮은 동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다. 기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에 왔다는 20대 젊은 연인이 출렁다리 가운데서 장난을 친다. 남자친구가 짐짓 다리를 흔들 것처럼 폼을 잡으니, 조그만 키의 여학생이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정작 얼굴은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웃고 있다. 청춘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빛나고 아름다운 것. 이런 시 한 편이 절로 떠올랐다. 제 힘에 이 무거운 다리 흔들릴 리 없건만 끙차, 소년은 다리를 흔든다 까짓 다리 위 흔들림이 무서울 까닭 없지만 꺄악, 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청춘의 연애는 출렁다리 위에서 유치하고 유치해서 아름답고. ▲울산에 갔다면 ‘고래의 고향’ 장생포를 빼놓으면 서운하지 동해선 기차의 유유자적한 낭만과 대왕암 출렁다리의 아슬아슬한 낭만을 함께 맛보며 환하게 웃는 청춘남녀를 뒤로 하고, 고래박물관과 장생포 일대를 편하게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는 울산 장생포 고래관광단지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울산, 그 가운데서도 장생포는 ‘고래의 마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포경업(捕鯨業)이 금지되기 전엔 적지 않은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풍경이 드물지 않게 펼쳐진 곳. 고래잡이배(捕鯨船)의 작살수와 고래 해체 전문가는 한때 의사와 변호사도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직업이다. 울산의 어르신들은 아직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조성된 울산 고래문화마을은 예전 장생포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방문자들의 탄성을 불러낸다. 익살스런 인형과 낡은 건물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낸 반세기 전의 어촌 풍경은 정겹고 애틋하다. 기자 역시 거기에 매료돼 오랜 시간 머물며 산책하듯 관광을 즐겼다. 실물 크기의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대 암각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야외 공간도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래박물관 지척에서 티켓을 구입해 모노레일에 올랐다. 고래문화마을-입체영상관-고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1.3km 노선. 30여 분 남짓 모노레일에 타고 있으면 출렁이는 장생포 바다와 고래문화마을, 울산대교와 울산공단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자가 거길 찾은 건 7월 중순. 아직 꽃잎을 채 떨구지 않은 수국이 푸른색 전등처럼 반짝이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샛노란 단풍이 수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니, 어느 계절에 찾아도 좋을 듯했다. 조그만 전시관에서 커다란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을 보던 80대 어르신이 곁에 선 아내에게 말했다. “세상 좋아짔고 울산도 좋네. 기차 타모 1시간이믄 온다 아이가. 살아있으모 내년에 또 오자.” 두 분은 부산에서 온 관광객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니 원시의 동해처럼 아득해졌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추억은 맛과 향기로부터… 기차여행 먹거리 다시 풍요로워지길

미나토 쓰루가 플로트 홀(Minato Tsuruga Float Hall).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엔 화려하고 거대하며, 독특한 수레 3대가 전시돼 있다. 그걸 ‘산차(山車)’라고 부른다. 5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높이가 10m에 가까운 산차가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을 초입 쓰루가 6개 마을의 자존심을 건 ‘야마’들 귀한 재료로 장식한 ‘야마막’ 두르고 퍼레이드 장관 도야마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 그 자체로 구경거리 ‘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 장식부터 맛까지 일품 포항 ‘물회’, 영덕과 울진‘대게’, 겨울 강릉 ‘도루묵’ 등 동해선 특산물 도시락 상상만으로도 입맛 다시게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만약 가을이 시작될 때 쓰루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산차의 윗부분엔 중세시대 일본의 유명 장수를 형상화한 인형이 놓인다. 내가 유심히 본 산차엔 화려한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인형이 올라있었다. 이시다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공한 병사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 한국인이 볼 땐 ‘우리 조상들을 욕보인 악당’이지만, 일본에선 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학자(學者) 스타일 장수였다고 한다. 가을의 초입인 매년 9월 4일이 되면 쓰루가의 6개 마을이 자존심을 걸고 ‘산차’를 장식해 일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게히신궁(氣比神宮) 앞에 모인다. 이어서 장관이라 부를 만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 도시 최고의 마츠리(祭·축제)다. 쓰루가 시민들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행렬을 보려 몰려든다고. 산차의 앞뒤와 좌우를 장식하는 ‘산차막(山車幕)’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에 걸쳐 10~15자(3~4.5m) 크기의 천에 수를 놓는다. 금과 은, 희귀한 염료가 다량 사용될뿐더러, 일본의 신화(神話)와 구전(口傳)을 한 폭의 막(幕) 속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가격이 한국 돈 1~2억 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그렇기에 오랜 시간 ‘산차막’을 만들어온 사람은 한국의 무형문화재급 대접을 받는 장인(匠人)들이다. 만약 당신이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9월 초순 쓰루가를 방문한다면 위에 열거한 정보를 염두에 두고 ‘산차 행렬’을 지켜보면 어떨까? 세상 무엇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조용하고 한산해서 평화로운 여행지 도야마(富山) 도야마는 오사카, 교토, 나라, 쓰루가와 함께 이번 취재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본 도시들 중 하나다. 언급된 다섯 개의 여행지 중 가장 조용하고 한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한 평화롭게 보였다. 한자로는 ‘富山(부산)’이라 쓰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많은 관광지 도야마는 어떤 내력을 가진 곳일까? 이 궁금증에 ‘나무위키’가 답한다. “남쪽에는 일본 알프스 중 하나인 히다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히다 산맥과 가미이치마치와 다테야마마치에 걸친 쓰루기다케(劔岳)는 해발 2999m에 달한다. 일반 등산객이 오를 경우 위험도가 가장 높은 산이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쓰루가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도야마역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걸린다. 포항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보다 조금 더 길다. 오전 11시경 오사카를 출발했으니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큰 기대 없이 신오사카역 상점가에서 도시락을 하나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일본인들은 이 도시락을 에키벤(えきべん)이라 부른다고. 도야마를 찾았던 때는 6월 중순. 그럼에도 햇살은 눈이 부셨고, 날씨는 한국의 7월 같았다. 도야마역 주변은 밝고 환하면서도, 괴괴한 정적이 맴돌고 있었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느닷없는 무더위를 피해 숙소에 잠시 누웠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도야마는 메밀국수(soba)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했다. 마침 역 지척에 이른바 ‘도야마 메밀국수 맛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도야마 시내를 돌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트램(tram)이다.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른 여러 대의 노면전차(路面電車)가 자동차, 버스와 나란히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다. 도야마역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트램 티켓을 판매하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엔 도심 번화가를 30분가량 순환한 후 출발지인 도야마역으로 돌아오는 트램에 올라섰다. 쓰루가에 도시의 주요 관광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가 있다면, 도야마엔 백화점·대형 마트·관공서·은행·우체국 등이 밀집한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가 있었다. 폭염 속에 땀을 흘리면서라도 ‘걸어서 낯선 도시의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여행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반면 ‘나는 편하고 빠르게 도시를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도야마에선 ‘순환선 트램’ 탑승을 권한다. 도야마엔 비단 도심 순환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2~3개의 노선에서 트램이 운행 중이니, 어느 노선을 선택하건 한국에서라면 경험해보기 쉽지 않은 ‘노면전차 타기’를 즐기시길. ▲일본 기차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준 ‘에키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의미하는 에키벤을 처음 맛본 건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역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였다. ‘소고기덮밥’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도시락 아래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발열제가 작동해 데워 먹도록 해뒀으니, 따끈하게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처럼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곤 했다. 그것들도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에키벤은 편의점 도시락과는 레벨이 달랐다. 에키벤은 보통 한국 돈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 정도로 값이 형성돼 있는데,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먹다보면 그런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먹고 싶어지는 것. 에키벤에 매료된 기자는 도야마역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올 때도 ‘새우튀김 에키벤’을 샀고, 심지어 쓰루가에 머물 땐 일부러 역까지 걸어가서 ‘장어구이 에키벤’을 사와 숙소에서 먹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도시락 모두가 장식에서부터 맛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주던 ‘대전역 가락국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추억은 향기와 맛으로부터 온다. 일본인들에겐 기차여행의 즐거움이 에키벤에 있다면, 20세기 한국 기차여행의 행복감 속엔 사이다와 삶은 계란, 맥주와 훈제 소시지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었고, 젊은 세대의 입맛도 변했다. 20세기의 운영 방식으로 한국 기차여행의 먹을거리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없다. 동해선 기차여행의 인프라 확장과 프로그램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 특산물을 재로로 만든 도시락 개발’이 돼야 마땅한 이유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도시엔 갖가지 물고기와 벌건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대게 등 싱싱한 해산물이 얼마나 많은가. 포항역에선 ‘물회 도시락’, 영덕역과 울진역에선 ‘대게 도시락’, 겨울의 강릉역에선 ‘도루묵 도시락’을 사서 동해선 기차에 올라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기자 하나만일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7-22

동해에 최적화된 돌김 품종 개발, 어촌 새 수익 모델로 육성

높은 파도, 급한 경사의 해안선, 영양염류(질소, 인)의 부족, 계절에 따른 극심한 수온 변화까지…. 동해는 김 양식장이 들어서기에 불편한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갯벌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유기물질과 다도해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형성해 파도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일찍이 양식장이 번창한 서해, 남해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고 동해에서 김 재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엔 2세기 경 김(해조류) 채취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구룡포에서 암해태(岩海苔)를 장려했다는 문헌도 나온다. 울릉도 죽암리에서 겨울철 한철 생산되는 돌김은 이미 식도락가들의 ‘Must Eat’ 필수템이 되어 있기도 하다. 김 양식업 위기가 현실화되는 가운데서도 어민 고소득 품목에 돌김 등 해조류들이 부상함에 따라 경북도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돌김 종(種)을 규명하고 양식 시설을 구축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024년 ‘육상김양식 개발연구’ 수립 포항·영덕등 자생 김 품종 종묘 육성 흥해 자생 ‘둥근돌김’ 유력 후보 중 하나 연안 양식 보다 스마트양식장에 무게 김양식 기술 성공 땐 민간·식품사 이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2024년 ‘육상 김양식 연구 계획’ 수립… 첫걸음 경북도는 스마트 양식장 등 김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2024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 계획’을 수립했다. 또 5억 원을 들여 지역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지역 특성에 맞는 종자를 채취한 후 배양 테스트를 거쳐 양식장 활성화 및 기술 표준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북도, 전남도, 삼척시 등 자치단체와 풀무원, 대상 등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김 양식 현장 조사를 벌이며 세부 전략을 다듬고 있다. 경북도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릉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서식, 자생하는 돌김의 품종을 분석하는 일이다. 옛날 문헌에 동해안 지역에 돌김이 다수 자생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실제로 지역별로 독특한 품종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종자를 복원시켜 이를 숙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도는 현재 해안가의 자생 김 채취는 ‘가내(家內) 어업’ 형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전통어업’에서 경북도 김 양식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현지답사 외에도 해조류와 관련된 고문헌들을 조사하며 지역 돌김 양식의 채취지역, 품종, 유통 등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 동해안 환경, 영양 수온, 식생에 맞는 품종 개발 그동안 서, 남해안의 김 샘플에 집중해 온 경북도는 최근 들어서는 경기도와 경북 동해 지역의 돌김 종자를 주목하고 있다.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수 온도와 영양, 여건 등이 차이가 나 서 남해안의 종자를 무조건 들여오는 것은 다소 위험 요소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경북도가 선호하는 종(種)은 ‘긴잎돌김’과 ‘둥근돌김’종자다. 특히 둥근돌김은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서 채취된 것이어서 관심도가 더 높다. ‘돌김속’에 속하는 홍조류 일종인 둥근돌김은 이름처럼 둥근 주름이 많고 모란꽃처럼 포개진 형태를 하고 있다. 짙은 보라색을 띠며 크기는 3~10cm 안팎이며 깨끗한 바위 표면에 부착하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경북도는 위의 두 종(種) 외에도 동해안 환경, 수온, 식생에 맞는 자연산 돌김 종자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해삼먹이생물동(棟)’을 일부 개조해 배양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자 배양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들어갔다. □ 원근해 양식서 육상 김양식장으로 방향 전환 경북도는 2년 여 연구 과제를 수행해오면서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다. 처음 입안(立案) 단계에선 동해안 연안 및 외해(外海) 양식을 구상했었지만 여러 한계에 부딪혀 계획을 일부 수정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 연근해 양식장을 설치하려면 ‘지주식(支柱式)’이나 ‘부류식(浮流式)’을 선택해야 하는데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장대를 꽂아 그물망을 설치하는 지주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스치로폼이나 부표로 그물을 띄우는 부류식도 동해의 파도, 수온 상황에서는 역시 많은 약점이 있다. 경북도는 이런 동해안의자연적인 한계상황 때문에 여러 번 노선을 변경했다. 김 양식 업계와 경북 동해안 어민들 사이에선 그간 다소 에너지가 소모되긴 했어도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북도의 돌김양식은 육상 김양식, 스마트 양식에 무게가 쏠린다. 이에 따른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부안의 ‘지평선 김양식장’같은 스마트양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풀무원처럼 대형 수조에서 김을 생산하는 ‘중성포자방식’이다. 전자(前者)의 경우 바다양식장을 육상으로 옮겨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시설을 갖춰야 한다. 고집적, 고밀도 방식으로, 상당한 시설 투자는 필수적이다.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류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줘야 하기 때문에 AI, IoT 등 스마트 시설도 갖춰야 한다. 지주식, 부류식의 경우 유묘(幼苗) 확보를 위해 배양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육묘를 위한 조개류나 굴 껍질을 활용한 패각(貝殼) 배양시설을 따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풀무원의 예처럼 ‘중성포자방식’을 택할 경우도 육묘 배양을 위한 실험실과 성장 재배를 위한 대형 수조는 필수적이다. 이곳 역시 실내 김 양식을 위한 스마트, IT 환경 설치는 불가결 요소다. 다만, ‘중성포자방식’은 유묘들이 중성(中性)상태에서 스스로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리사상체 배양실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 돌김계획 완성되면 민간, 식품회사에 이전 현재 경북도수산자연연구원에서는 유리사상체 배양실을 마련하고 종묘 육성을 위한 패각(貝殼)사상체 시설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래양식팀 이영준 팀장은 “내년부터 경북도는 본격적으로 육상 김양식 배양기술 개발과 적합한 모델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의 자체 개발 돌김 품종의 사업화 여부는 2030년 이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경북도의 3단계에 걸친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경북도에서 개발한 김양식 기술을 민간에 이전 하고 확보된 돌김 종자를 어가(漁家)나 원하는 식품사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100년 동해 어민들을 먹여 살릴’ 우수 김 종자가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국 원장도 “웰빙시대를 맞아 남해의 김이 K-푸드 시대를 열어갔다면 동해의 돌김은 거친 입자를 바탕으로 한 ‘조미(調味) 김’으로 슈퍼푸드의 새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 고대사 ‘김 자료’ 첫 등장 지역이 동해 지역 해양에 적합한 종자 육성으로 승부 “우리나라 고문헌에서 김(해조류) 채취에 대한 최초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경북도입니다. 국제 해양산업의 트렌드도 어획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김 역사, 인문학의 태동지인 경북도에서 김 양식에 나선 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필연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 양식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을 만나 현 상황과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많은 해조류 어업자원 중 왜 돌김인가? △한반도 역사에서 김에 대한 자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포항이다. 2세기 연오랑세오녀가 바위에서 채취한 돌김, 미역 등 해조류는 근기국에서 널리 유통되고 일본에까지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 인문학적 상징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김에 대한 역 연구가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동해에서 김양식을 추진하는데 많은 핸디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 김 양식에 대한 연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북도에서도 돌김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경북도가 육상 김양식 사업에 나선 이유는? △지금 지구촌 해양산업의 트렌드는 어획 중심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수온 상승과 산성화로 상당수 해역에서 어류 자원이 감소하거나 어장이 이동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IoT), AI, 로봇 등 스마트 양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시켰다. 동해는 남해보다 수온이 차고 한·난류가 교차해 양식에 불리한 요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온성 어종이나 해조류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사업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동해에 적합한 김 종자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2012년에 국립수산과학원이 ‘김 21호’를 개발했다. 생육이 빠르고 고(高) 영양가인데다 병 저항성까지 강해 김산업 확대와 어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경북도도 이번 프로젝트의 승부 포인트를 우수한 종자 확보로 보고 있다. 현재 지역에 자생(自生)하는 돌김은 물론 서, 남해안의 종자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스마트 김양식, 육상 김 양식에만 집중할 것인가? △동해안의 여러 지형, 생태, 기후, 환경적 요인 탓에 원근해 양식장 설치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해(外海) 양식장 설치를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동해와 환경이 비슷한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앞바다에서 ‘명지 김’(일명 낙동김)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고, 동해안에도 후포나 구룡포, 영일만 등에 파도, 풍랑에서 안전한 곳들이 일부 있어 양식장 설치도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