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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새해 첫날 7.6 강진… 전국서 문화재 구조대 3900명 달려와”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노토반도 강타 600여명 숨지고 등록된 문화재만 460여건 피해 현장 투입 전문가•자원 봉사자 불상•고문서 등 200여건 구출 1월 26일은 ‘문화재 방재의 날’ 전국 사찰•성곽 소방훈련 시행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무너지는 돌담 앞에서 7월의 교토, 한여름 특유의 습한 바람이 국제회의장 문틈을 타고 들어왔다. 리쓰메이칸대 국제회의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의 학자와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제19회 문화유산과 역사 도시 재해 저감 심포지엄이 막을 올린 7월 12일 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했다. 불과 반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든 노토반도 지진의 상흔이 여전히 생생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일본 발표자들에게 향했다. 피해를 겪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앞으로 다가올 재난에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가장 먼저 연단에 선 이는 요시토미 신타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 교수였다.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문화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억"이라면서 "그러나 최근 재해의 빈도가 높아지며 이 기억을 잃을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장은 고요해졌다. 이어폰을 꽂은 통역사들의 속삭임만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눈을 내리깔고 메모지에 빠르게 펜을 움직였고, 누군가는 화면에 떠오른 피해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무너진 기와, 무더기로 쌓인 석재, 불에 그을린 목조 건물이 빔프로젝터에 비쳤다. 요시토미 교수의 발언은 경고이자 선언이었다. 일본은 수십 년간 방재 연구기관을 세우고 문화재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왔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연쇄 재난 앞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노토반도 지진의 교훈 이날 가장 주목받은 발표자는 하라다 이시카와현 교육위원회 문화재과장이었다. 그는 단상에 올라 목례를 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시작했다. “새해 첫날, 진도 7.6의 강진이 노토반도를 강타했다. 사망자는 600명을 넘었고 전파된 주택만 6000여 동에 달했다”. 그는 스크린에 띄운 슬라이드를 가리키며 “한겨울 단수와 정전 속에서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흩어지고 버려지는 문화재를 볼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진은 문화재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발굴 현장은 무너지고 옛 사찰의 불상은 기둥에 깔려 부서졌다. 이시카와현에 등록된 문화재는 국·현 지정만 881건, 시·정촌 지정까지 합하면 2400건이 넘는데, 무려 460여 건이 피해를 입었다. 돌담이 갈라지고, 목조 건물은 반쯤 주저앉았으며 수백 년 된 고문서는 빗물에 젖어 갈기갈기 찢어졌다. 하라다 과장은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피해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주민은 차 안에서 추위를 견뎌야 했고 그 와중에 문화재는 폐기 위기에 내몰렸다”라면서 당시의 긴박함을 회상했다. 이때 투입된 것이 ‘문화재 구조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전문가와 자원봉사자 3900여 명이 피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무너진 집터에서 불상과 고문서를 꺼내 임시 보관소로 옮겼다. 구출된 건수만 200여 건. 박물관, 지자체, 연구자들이 함께 나선 전례 없는 협력의 장이었다. 하라다 과장은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직면한 한계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응급조치는 무료로 시행했지만, 본격 수리에 들어가게 되면 소유자의 부담이 크다. 생활 재건이 우선인 상황에서 문화재 복구는 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등록 문화재 문제도 이야기했다. 등록 절차가 길어 피해가 나도 지원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앞으로는 지정·등록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석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재는 공공재이면서도 사유재산인 경우가 많아 보호와 소유의 경계가 늘 고민거리였다. ◇ 연구소에서 현장까지 일본의 문화재방재 정책은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면 소유자와 지자체는 반드시 방재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문화청은 내진 보강과 방화 시설 구축에 재정 지원을 한다.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는 그 정책을 연구와 현장으로 연결하는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충격을 교훈 삼아 2003년 설립한 이 연구소는 교토라는 역사 도시를 기반으로 전통 건축물의 내진 보강 기술, 시민 방재 훈련, ICT 활용 아카이브 구축 등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요시토미 교수는 특히 ‘시민 참여’를 강조한다. 매년 1월 26일은 일본의 ‘문화재 방재의 날’. 이날은 전국 사찰과 성곽에서 일제히 소방 훈련이 시행된다. 불을 피운 모의 훈련에서 주민들이 소화기를 들고 뛰어드는 모습은 이제 교토의 흔한 풍경이 됐다. 교토의 전통 가옥 밀집 지역에서는 ‘시민 소화전’도 설치됐다. 2024년 1월, 교토 니넨자카에서 발생한 화재가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은 것도 이 장비 덕분이었다. 주민이 직접 물을 뿌려 불길을 초기에 잡은 것이다. 일본은 문화재를 디지털로 보존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3D 스캔과 드론 촬영으로 기록을 남기고, 지진 위험 지역 문화재의 위치를 디지털 대장으로 관리한다. 노토반도 지진 때도 이러한 데이터가 신속한 대응에 큰 힘이 됐다. 교토 심포지엄은 화려한 선언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재난을 겪은 도시가 흘린 눈물과 땀을 나누는 자리였다. 일본은 노토반도 지진을 계기로 문화재 구조대라는 혁신을 세웠고 국가·지자체·연구기관·주민이 함께하는 방재 체계를 다져왔다. 그러나 미등록 문화재의 사각지대와 소유자 부담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심포지엄과 인터뷰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문화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의 기억이며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자산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도 중요한 울림을 준다. 방재 없는 보존은 허상이고, 기억을 지키는 일은 국경을 넘어선 공동의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글·사진/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02

반복되는 지진·폭우·산불… 소중한 문화재 방재 ‘경고등’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2016년 경주·2017년 포항 강진 불국사·보경사 등 기와 떨어져 훼손땐 100% 원형 복원 불가능 장마에 부여 고분군 토사 유실 작년 국가유산 69곳 직접 피해 한국형 방재 시스템 구축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지진이 흔들어 놓은 문화유산의 현장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은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줬다.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당시 불국사 등 목조건축 문화재에서 지붕 기와가 탈락하는 등 비구조적 피해가 확인됐다. 이듬해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5.4) 때도 보경사와 내연산 사찰 등에서 기와 탈락과 구조 부재 손상 등이 이어졌다. 문화재 피해 건수는 31건에 달했다. 복원 과정에서의 취약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국보·보물 문화재 10점 중 7점은 파손되더라도 복원에 반드시 필요한 정밀 실측조사 보고서가 없어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보 24호 경주 석굴암과 보물 1744호 불국사 대웅전은 지진이나 화재로 훼손될 경우 보고서 부재로 인해 100%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 문화재청 자료 결과, 목조건축 국보·보물 180점 가운데 9점은 ‘정밀실측조사보고서’가 없다. 여기에는 불국사 대웅전 외에도 대구 파계사 원통전, 제주 향교 대성전 등이 포함된다. 석조문화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총 571점 가운데 70% 이상이 자료조차 없다. 경주 석굴암을 비롯해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충주 고구려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3년 문화재청 의뢰로 한국지진공학회가 실시한 지진재해 안전성 평가에서도 전국 석조문화재 152점 가운데 30점이 ‘경계’ 등급을 받아 내진 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호’는 23점, ‘보통’은 99점에 그쳤다. 이 평가는 지반 조건, 주변 환경, 구조 및 부재 구성, 보존 상태 등을 지표로 삼아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결과다. 문화재청은 경주·포항 지진 이후 뒤늦게 ‘문화재 내진 보강 종합대책’을 마련해 정밀 안전진단과 보강 공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산불, 불길 속에 사라져간 역사 지난 3월 경북과 강원, 경남을 휩쓴 대형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 보존사에서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불길은 의성 고운사와 안동, 청송, 영양, 정선, 울산, 하동까지 이어지며 보물 2건을 포함한 문화재 30건을 집어삼켰다. 국가지정문화재 11건, 시·도지정문화재 19건이 피해를 입었다. 의성 고운사의 연수전과 가운루(보물)는 불길에 휩싸여 흔적만 남았다. 수백 년간 불교문화를 품어온 전각 두 채는 이번 산불로 완전히 사라졌다. 관덕동 석조보살좌상,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등 불상 유물도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안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인 구리측백나무숲 0.1㏊가 불에 탔고 만휴정 원림, 백운정, 개호송 숲 등이 잇달아 훼손됐다. 청송 역시 피해가 컸다. 기곡재사, 병보재사 등 수많은 고택과 재사가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영양의 천연기념물 답곡리 만지송은 가지 일부가 훼손됐으며 울산 울주군의 목도 상록수림은 0.1㏊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강원 정선의 명승 백운산 칠족령 일대는 0.5㏊가 소실돼 경관이 크게 손상됐다. 하동에서는 고려 장군 강민첨을 기리는 두방재의 부속 건물 두 채가 전소됐고 수령 900년을 자랑하던 두양리 은행나무도 일부가 불에 탔다. 사실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의 오랜 적이다. 2005년 강원 양양 산불로 사적 제495호 낙산사가 전소됐고 2008년에는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이 방화로 무너져 내렸다. 2010년 부산 범어사에서는 보물 제1461호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거나 훼손됐다. 한 승려는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폭우가 삼킨 성곽과 고분 지난해 장마철 쏟아진 기록적 폭우는 전국의 문화유산을 휩쓸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산불이 화마라면, 홍수는 또 다른 파괴자였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장마철 국가 유산 피해·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69곳의 국가 유산이 직접 피해를 입었고 9곳의 주변 지가 파손돼 총 78곳에서 풍수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속속 보고됐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에서는 막새기와 두 장이 떨어져 나갔고, 강원 철원 한계산성(사적)의 천제단 석축 일부가 무너졌다.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백제역사유적지구)은 만하루 누각이 침수되고 성벽 일부가 붕괴됐으며 부여 왕릉원 고분군(사적)에서는 봉분 사면이 일부 무너져 토사가 유실됐다. 또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는 담장이 무너지고 내아·동헌의 기와가 떨어졌으며 성벽과 기둥까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 일본, 고베 대지진 계기 문화재 방재 체계 강화 19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에도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대규모 피해를 계기로 정부는 지진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고 건축물 내진 성능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 내진 보강 사업은 문화재를 포함한 주요 건축물까지 확대됐다. 특히 일본은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로 지정해 왔다. 이는 1949년 화재로 소실된 호류지 금당(사찰의 중심 전각)을 교훈 삼아 1955년부터 시작된 제도로 문화청 주관 아래 지방자치단체·소방·주민이 함께하는 합동 훈련과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화재를 비롯한 재난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예방 중심의 체계가 자리 잡은 것이다. ◇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의 과제 한국 역시 더 이상 복구 중심의 대응에 머물 수 없다. 앞으로는 △문화재별 위험도 평가와 맞춤형 관리계획 수립 △3D 스캔을 활용한 디지털 아카이빙 확대 △지진·산불·홍수에 대응하는 통합 매뉴얼 마련 △주민 참여형 방재단 운영과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진은 기와를 흔들었고, 산불은 사찰을 태웠으며, 폭우는 성곽과 고분을 무너뜨렸다. 자연재해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차 없이 집어삼키고 있다. 복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방과 대응, 기록과 교육을 결합한 한국형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미래 세대와 이어지는 다리를 지켜내는 일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26

바다 끼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코 끝엔 커피 향내가…

공학자들은 ‘바퀴’를 인류 역사를 괄목상대시킨 효과적인 발명품으로 지목한다. 비행기가 생기기 전 바퀴 달린 수레는 인간과 물품의 이동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에 증기기관에 더해지면서 기차가 등장한다. 1804년. 영국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 만든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22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한국도 도시 곳곳을 기차가 연결하고 있다.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흔해졌다. 8개월 전엔 부산(부전)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도 완전 개통됐다. 지난달 중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울산을 출발해 8박9일간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까지 취재여행을 했다. 기차에 편안하게 앉아 푸른 파도 부서지는 해변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각 지역이 동해선 개통 이후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수도권 관광객 북적이던 ‘강릉 커피거리’ 부산•경북 사투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와 바다와 가장 인접한 구간은 강릉~정동진 상행선 오른쪽•하행선 왼쪽 창가가 ‘명당’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동해선 철길 지나는 도시들, 사회·경제적 상승효과 기대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동해선 철도의 역이 만들어진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도 크건 작건 ‘철도 개통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향후 더 큰 사회·경제적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건 불문가지. 일본 간사이대학 아베 세이지(安倍 誠治) 교수의 논문 ‘일본 고속철도의 미래’는 향후 동해선이 지나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대목이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효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 재개발 효과다. 신칸센은 도시간의 시간거리를 단축시켜 사람들의 행동권이나 상권의 확대를 가져왔다. 신칸센의 개업에 의해 가장 변모한 것이 신칸센역 주변이다. 신칸센역의 개설에 따라 역 주변의 터미널 기능이 향상되고, 거기에 동반해 도시 구조가 변화하고, 교통 체계의 재편이나 중심 업무지역의 형성이 촉진됐다.” 강릉에 도착한 첫날. 창해로 일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강릉 커피거리’를 찾았다. 제법 큰 규모의 커피숍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지금까진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 1월 동해선 개통 이후론 가게에서 부산과 경북 사투리가 자주 들을 수 있다”며 웃었다. 다음날 산책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들른 경포대해수욕장에선 우즈베키스탄 부자(父子)를 만났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대구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둘은 대구를 출발해 포항과 삼척을 거쳐 강릉으로 휴가를 온 터였다. 강릉과 정동진의 해변에선 동해선 열차 탑승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베 세이지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기차가 지나는) 역 주변 땅값이 올랐는데,토카이도 신칸센의 연선 중 가장 변모한 곳이 신요코하마역과 신오사카역 주변이다. 게다가 신칸센역에 인접한 호텔이나 백화점,다양한 점포가 신설돼 활기찬 공간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수요가 개척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거리의 매력도 만들어졌다. 토카이도 신칸센의 개업은 연선지역의 도시 재개발과 지역 개발의 촉진제가 됐던 것이다.” 지가(地價) 상승과 고급 숙박시설의 신축, 늘어나는 상점이 가져올 지역경제 활성화, 여기에 도시 재개발의 촉진…. 일본의 과거 사례는 동해선이 지나는 여러 도시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이긴 하지만.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려면… 동해선 기차의 매력은 무엇보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특히 갓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라면 이를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낭만으로 느낄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연인과 부부만은 아니리라. 그러니, 9일간 10번 이상 동해선 기차를 타고 남북을 오르내린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려 한다. 바다와 가장 인접해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건 정동진-강릉 구간이다. 10분 가까이 출렁이는 해변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기차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물론이다. 동해-정동진 구간과 묵호-동해 구간에서도 짧은 시간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상행선 기차의 경우 오른쪽 창가 좌석, 하행선일 경우엔 반대로 왼편 창가 좌석이 ‘바다 전망 명당’이다. 그러니, 동해선 기차를 예약할 때 참조하시기를. 삼척∼강릉, 기차와 자동차 중 어떤 게 빠를까? ‘ITX 마음’·‘누리로’ 1시간 소요 휴가철·명절엔 열차 이용 편해 올해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을 운행하는 기차는 편안함과 속도 2가지 면에서 모두 자동차를 압도할 수 있을까? 소박한 실험은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마음먹었으니 미룰 것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삼척역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은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지인에게 맡겼다. 삼척역에서 강릉역까지의 거리는 약 60km. 지난 7월 중순의 평일 낮. 교통 정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삼척역을 출발한 자동차는 1시간 6분 만에 강릉역 앞에 도착했다. 교통 법규와 규정 속도를 정확하게 지키며 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기차의 삼척역-강릉역 구간 운행 소요 시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동차와 거의 비슷하다. 하루 8편이 운행되는 이 구간을 ‘ITX 마음’과 ‘누리로’ 열차는 빠르게는 1시간 1분, 느린 경우 1시간 7분이면 달려간다. 물론, 동해안 휴가철이거나,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라면 “기차가 훨씬 빠르다”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 차원에서 보자면 기차의 손을 들어줄 이들이 더 많을 듯하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시원한 맥주나 사이다 한 잔 마시며 유유자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기차여행이 자동차여행을 압도하는 부분이 분명하다. 동해선 개통 이후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자동차를 집에 두고 동해선 기차에 오른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빙그레 짓는 웃음. 이건 깨끗하고 연착 없는 ITX와 누리로 열차가 만들어준 미소가 아닐까 싶다. <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소중한 전통 목조 건축물, 자동소화설비 없이 산불에 노출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흥인지문(보물)·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도 설치 안돼 기후변화로 산불 발생 조건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15%나 상승 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등 문화재별 특성 맞춰 확충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괴물 산불’이 삼킨 문화재 지난 3월 영남권 하늘은 붉은 연기와 불길로 뒤덮였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둑한 하늘 아래 산등성이마다 불덩이가 튀어 오르며 전선을 따라 불길이 번졌다. 마을 사람들은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허겁지겁 짐을 챙겼지만 거센 화염 앞에 대부분의 살림살이는 두고 달아나야 했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멍하니 타들어 가는 집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산불로 5개 시·군의 주택 4457채가 불에 탔고, 27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도 350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 산림은 약 10만 ㏊에 이르러 서울시 면적을 크게 웃돌았다. 강풍 탓에 물줄기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불길은 바람결에 따라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진화작업에 나선 한 소방대원은 “물이 닿기도 전에 불길이 다음 능선으로 넘어가 있었다”며 당시의 무력감을 전했다. 문화재 피해는 더욱 뼈아팠다. 천년 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가 전각 대부분을 잃었고, 안동 만휴정 원림과 청송의 고택, 서당 등도 불길에 휩싸였다. 안동 지산서당·구암정사, 영양 송석재사 등 조선시대 건축물 또한 상당수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폭발음처럼 ‘쾅’ 하고 기와가 튀어 오를 때마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매캐한 연기는 골짜기를 메우며 호흡을 막았고, 불길이 옮겨 붙은 나무들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주민 박모씨(68)는 떨리는 목소리로 “산 전체가 불을 뿜는 괴물 같았다. 그 앞에서는 사람도, 기계도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년 고찰 고운사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길은 대웅전 기단까지 파고들며 불상을 위협했다. 사찰 관계자는 “소방대가 철수한 뒤에는 두 손 놓고 불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허탈하게 무너진 절터를 바라보며 “집이 타는 것도 서럽지만, 조상들이 지켜온 유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니 더 가슴이 미어진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는 건물을 삼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산속에서 지켜온 천년의 기억까지 함께 태워버렸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잿빛 기와 조각과 그을린 기둥뿐이었다. 현장에서는 “문화재를 지키기에는 우리의 방재 체계가 너무 허술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노인은 “나라가 재난지역 선포만 할 게 아니라, 애초에 문화재를 지킬 방법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자동소화설비 ‘제로’···제도의 공백 이번 피해는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니라 예견된 재난이었다. 지난 6월 서울 성북동 명승 ‘성북동 별서’ 내 목조건축물 송석정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결국 소방당국은 기와 지붕을 굴착기로 철거하는 ‘파괴 진화’에 나서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비단 송석정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의원실이 국가유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목조 문화유산 대부분은 자동소화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서울 흥인지문(보물),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등 국가적 상징물도 포함돼 있다. 제도의 허점도 뚜렷하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자동소화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전통 사찰·문화재·종교시설은 예외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목조 문화재 상당수가 여전히 소화기나 소화전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다. ◇ 반복되는 관리 부실 국가유산청이 지난 4년간 소방 점검을 벌인 결과에 따르면, 138건의 개선 권고 중 절반을 넘는 70건(50.7%)이 소화기 문제였다. 여기에는 ‘안전핀이 빠진 소화기’, ‘노후로 인한 기능 저하’, ‘감지기 미작동’ 등 시설 기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례들이 포함됐다. 특히 점검 지적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2년 19건, 2023년 20건, 그리고 2024년 2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경북 지역의 구체적 현장 점검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안동 봉정사에서는 ‘소화기 분산 배치 필요’, 하회마을 양진당에서는 ‘부엌에 소화기 비치 필요’, 청송 후송당 고택에서는 ‘주기적 점검 요망’이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소화시설 외에도 화재 대응 핵심 장비의 고장 사례가 잇따랐다. 자동화재속보 통신선 불량, 불꽃·연기 감지기 미작동 등 58건의 설비 문제가 최근 4년간 지적됐다. ◇ 기후위기와 산불 기후위기가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방재 체계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평균 기온은 약 1.8도가 상승했다. 여기에 가뭄과 강풍이 겹치면서 산불은 갈수록 대형화·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평균 546건에 이른다. 특히 2022년에는 756건으로 가장 많은 건수가 기록됐고, 피해 면적도 2만4797㏊에 달했다. 이처럼 산불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전통 목조건축물 등 국가유산은 언제든 재난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영남권 산불 또한 이러한 기후 조건이 겹친 결과였다. 당시 순간 풍속은 시속 20m를 넘었고, 건조주의보가 이어진 탓에 불길은 순식간에 확산했다. 국제 연구기관 ‘세계기상특성(WWA)’은 이번 한국 대형 산불을 분석하며 “기후변화로 인해 유사한 조건이 발생할 확률이 약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역시 평균보다 15%가량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 대안은? 문화유산 방재 체계의 취약성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뒷걸음질에 머물러 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목조 문화재와 같은 국가유산에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다. 일본 문화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문화재 방재 지침과 매뉴얼을 전국적으로 보급했으며,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방재 시설 설치와 내진·방화 강화에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자체와 주민, 연구기관이 합동으로 방재 훈련을 정례화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도시방재연구소'는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 방재 시뮬레이션 훈련과 재난 대응 매뉴얼 보급이 정례화됐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를 통해 공유된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 방재 기관 설립과 더불어, 자동소화설비·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문화재별 특성에 맞춰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가 함께하는 재난 대응 네트워크를 제도화해 초기 대응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뿌리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삶의 자산이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이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 복구가 아니라, 피해를 막아내는 선제적이고 과학적인 방재 시스템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여행자들의 발길 이끄는 바다와 숲의 매혹적인 결합

올해 1월 1일 운행을 시작한 ITX-마음 열차는 경북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 강원도를 여행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 사실을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김경택 부연구위원의 논문 ‘동해선 개통의 영향과 교통 정책’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늘어선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추암해변’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 관광객들 끊이지 않아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무릉계곡’ 옛사람이 왜 ‘신선이 살던 곳’이라 했는지 절로 이해 철마다 얼굴 달리하며 관광객 반기는 다양한 명소 인심 좋은 상인들과의 만남이 여행의 즐거움 더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ITX-마음 열차는 태화강역, 포항역, 삼척역, 동해역을 거쳐 강릉역까지 운행된다. 부산, 대구, 경주 등에서 강릉까지 교통수단별 통행시간과 비용을 살펴보면, 부산-강릉 구간은 자가용 4시간 16분(8만8600원, 톨게이트 및 연료비 포함), ITX-마음 4시간 49분(3만4900원), 시외버스 6시간 3분(4만3700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통행시간만 보면 부산-강릉 구간에서는 자가용이 가장 빠르나, 통행비용은 ITX-마음이 두 배 이상 저렴하다. 특히 통행시간을 시간가치로 환산한 후 통행비용을 합한 값인 일반화 비용을 보면 ITX-마음이 가장 경제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삼척으로 향한 건 지난 7월 19일. 적지 않은 비가 쏟아졌지만 기차 안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삼척은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서있는 해변과 울울창창한 청정 숲을 지닌 강원도 들머리의 관광도시다. ▲삼척, 바다와 숲의 행복한 결합 이뤄내고 여행자 반겨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이사부길’은 매혹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높고, 은빛 모래가 10리를 이어지는 맹방해변 또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관광 명소다. 소나무, 유채꽃, 벚꽃이 철마다 얼굴을 달리하며 여행자를 반긴다. 왼편으로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40여 분 유유자적 달리는 레일바이크도 삼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기자 역시 직접 레일바이크에 올라 그 인기를 실감했다. 삼척의 환선굴, 대금굴, 이끼폭포, 소한계곡, 검봉산 자연휴양림은 바다가 가진 매력과는 또 다른 짙푸른 매혹을 여행자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삼척은 바다와 숲의 매력적인 결합을 이뤄낸 후 관광객을 기다리는 도시. “천만 관광도시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삼척시의 의지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행의 추억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법. 기자의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면 삼척엔 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상인이 몇 있었다. 일부 지역 관광지 상인들과 달리 목소리 높여 호객을 하지 않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은 정직한 가격으로 활어를 판매하는 횟집 주인, 성실한 태도로 음식을 만들어 점잖게(?) 판매하는 두부요리 전문식당 상인을 삼척에서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개통된 동해선 철길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삼척으로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손님이 많아지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종여일(始終如一)의 자세로 장사를 이어갈 상인이 비단 삼척만이 아닌 동해선이 통과하는 도시 곳곳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집’이 아닌 ‘길’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여행자가 같은 심정이리라. ▲동해 무릉계곡에서 만난 나비와 절경 자랑하는 추암해변 삼척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15~16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동해역. 그 일대에도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풍경이 적지 않다. 먼저 추암해변. 어떤 곳이냐고? 간략하게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을 아래 옮긴다. “추암해변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안 절벽과 고운 백사장이 아름답다. 해변의 크기는 작지만 절경을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추암해변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그중 추암 촛대바위는 사계절 내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선 기차를 타고 동해역에 갔다면 거리가 조금 멀어도 꼭 가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이다. 삼척의 숙소에서 일찍 일어난 새벽. 무릉계곡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너무나 화려한 색깔의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를. 어떤 형용사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어째서 옛사람들이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그 계곡을 ‘신선이 살았던 공간’이라 했는지 이해될 듯도 했다. 동해선 철길은 바다와 숲이 조화를 이뤄낸 삼척과 무릉계곡의 비경을 간직한 동해로 가는 길을 보다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강원도 관광산업의 효자’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기차·도보여행 마니아가 바라본 ‘동해선’⋯ 포항에 거주하는 김대균(65)씨는 기차와 도보여행 마니아다. 동해선이 개통된 후 10여 번을 기차에 올랐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곳곳을 오갔다. 지난 7월 말. 그를 만나 동해선 이용 소감과 함께 향후 개선됐으면 하는 점을 물었다. -올해 1월 1일 동해선이 온전히 열렸다. 상반기 통계를 보면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동해선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당신 역시 동해선 ‘단골 이용자’라고 들었는데. “6개월간 열 번 정도 동해선을 탔다. 직장을 다녔더라면 주말에 이용했겠지만, 이젠 퇴직한 상태라 주중에 자주 다녔다. 처음엔 토·일요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이젠 코레일 앱 사용법을 익혀 조금은 쉽게 예약을 하게 됐다.” -동해선을 타고 경북은 물론, 강원도 각지를 다녀온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선 여행지가 있다면 추천 부탁한다. “삼척, 울진, 강릉, 정동진 등 동해안 전체가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다. 어느 한 곳만을 특정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우엔 영덕을 추천하고 싶다. 갈 때는 포항에서 열차를 타고가 돌아올 때는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어서 온 적이 있다. 꼬박 1박2일이 결렸는데, 그 과정에서 동해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동해선이 강릉을 넘어 속초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동해선 철길을 오가는 요즘 기차와 예전 기차를 비교하면 어떤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다. ITX와 누리로 기차는 최신형이고 깨끗하다, 연착도 거의 없다. 내가 예순다섯이다. 젊을 땐 중앙선 낡은 기차와 털털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강원도에 다녔다. 단축된 시간과 쾌적함을 보자면 지금의 변화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동해선 애용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차를 이용해 동해선이 지나는 조그만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광지와 식당, 숙소 정보를 꼼꼼하게 담은 구체적인 여행안내서가 출간되고, 그게 역마다 무료로 비치됐으면 한다. 지역마다 있는 관광안내소 직원들이 더 친절하고 전문적인 관광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2

끊어진 철길 이어지니 ‘핫플 관광지’로 거듭나는 경북동해권

장기화되는 경제 불황에 중국산 저가 철강의 덤핑 공세.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압박’ 등의 악재가 겹친 2025년 오늘. 포항시는 고민에 빠져 있다. 철강업체 포스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포항 경제의 등뼈다. 그게 휘청이고 있는 것. 그렇기에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은 포항시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 위기의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첨단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21세기형 유망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의 활성화가 유효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올해 초. 부산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 철도가 완전 개통됐다. 포항시는 동해선 철길을 지나는 경상북도 도시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 또한 가장 크다. 포항은 동해선을 통해 유입되는 관광객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시 발전에 접목시키고 있을까? 관광·비즈니스 두 토끼 잡기 나선 포항 풍부한 관광자원 활용한 새 활로 모색 외국인관광객 유입 위한 편의시설 확충 전시컨벤션센터 건립 등 경쟁력 키워가 울진·영덕, 반짝이는 아이디어 속출 관광시설 이용료 일부 ‘지역화폐’로 환급 관광 명소 방문 미션땐 성공 기념품 지급 요금 60% 지원해주는 ‘관광택시’ 운영도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적지 않은 관광 자원...‘드라마의 인기’가 포항의 인기로 일단 관광 인프라 차원에서만 보자면 포항시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동해선 철도는 물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KTX와 SRT 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영일대해수욕장을 필두로 시원스런 해변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청정 계곡이라 불러도 좋을 내연산과 운제산에 자리한 보경사와 오어사는 드라마틱한 설화를 간직한 고찰(古刹)이다. 현대인은 건강관리를 위한 가장 쉬운 방편으로 ‘걷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일만 북파랑길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걷기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포항의 보물’ 같은 관광자원. 이외에도 동해선 철도를 타고 포항을 찾는 이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은 적지 않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포항운하에서 즐기는 크루즈, 경상북도수목원,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어시장인 죽도시장…. 게다가 얼마 전부턴 ‘갯마을 차차차’ ‘동백꽃 필 무렵’ 등 인기 높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각광받는 게 포항이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엔 평일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촬영이 진행된 장소를 찾는다. 청하시장과 구룡포 석병리, 곤륜산과 월포해수욕장 등이 그렇게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된 곳들이다. 동해선 개통과 함께 관광산업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포항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확충과 해외 마케팅 전략 수립, 여기에 관광과 비즈니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전시컨벤션센터의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포항시청 관광산업과의 설명이다. 어쨌건 현재 포항은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미래 유망산업인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과 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런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진군과 영덕군도 동해선 특수...지역 경제에 긍정 효과 지난달 중순. 포항에서 출발하는 누리로 기차를 타고 울진을 향했다. 상쾌한 느낌을 주는 하늘색으로 디자인 된 기차는 1시간 30여 분을 달려 울진역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낚시꾼들에게 ‘은어 낚시의 성지’로 불리는 왕피천에 가면 청정한 자연 풍광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고 했다. 울진역에서 멀지도 않았다. 기대감을 안고 택시에 올랐다. 울진에서 오랜 시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유인수 씨는 “1월에 동해선이 완전히 뚫리면서 승객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울진군 차원에서도 관광객 유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울진에선 관광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여행자가 원하는 곳을 데려다주고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 시스템인데, 군청에서 금액의 60%를 지원해주니 이용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자가용이 아닌 기차를 타고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라며 유씨가 환하게 웃었다. 지난 7월 22일엔 동해선 철도 개통을 기념해 ‘1만원 관광열차’도 운행한 곳이 울진군이다. 강원도 강릉역을 출발해 울진의 주요 관광지와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울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이 여행상품은 사용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왕피천 케이블카의 이용 요금은 1만2000원. 티켓을 구매하면 지불한 돈의 절반인 6000원이 담긴 카드를 준다. 그 카드를 제시하면 울진군 관내에서 음료나 기념품을 사거나 할인받을 수 있다. 이 또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울진군이 만들어낸 좋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맛집’이 ‘전국 맛집’으로 신분 상승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울진역에서 도보로 5~10분이면 도착하는 한 식당은 ‘얼큰한 짬뽕’으로 또 하나의 울진 명물이 됐다. 평일에도 점심시간이면 가게 앞에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 맛은 어땠냐고? 명불허전(名不虛傳). 유명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덕 역시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아름다운 해변도시 가운데 하나다. 달콤한 복숭아와 다양한 해산물이 있고, 사파이어빛 바다와 맑은 하천이 출렁이는 영덕군은 이미 예전부터 이름난 관광지였다. 지난 5월엔 산불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는 영덕을 위해 코레일 대구본부가 ‘영덕 마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동해선 영덕역을 방문한 관광객이 지역 관광 명소 일곱 곳에서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기념품을 주는 행사였다. 영덕군 또한 사전 예약을 하면 역을 출발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후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영덕 관광택시 타보게’ 사업을 선보이고 있다. 울진군과 마찬가지로 영덕군이 금액의 60%를 내고, 관광객은 이용 요금의 40%만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시절 한때 ‘철도교통의 불모지’로 불리던 경상북도의 소도시들이 동해선 완전 개통을 계기로 ‘관광 도시’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동해선 개통 맞은 포항시, 향후 계획은? 야간 관광상품 개발 등 다양한 마케팅 펼쳐 경주·울진·영덕·울릉 4개도시와 박람회 참가 등 공동 홍보도 총력 새로운 환경에선 그 환경에 맞출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포항시는 ‘동해선 완전 개통’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고, 향후 어떤 비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포항시청 관광산업과 윤천수 과장과 신세영 마케팅팀장을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동해선 개통 이후 방문객 추이는? “포항역 승·하차 인원은 매월 1만8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설 명절이 포함된 1월과 가정의 달인 5월엔 연휴 효과로 이용객 수가 다소 늘기도 했다. 향후 연계 관광 상품 개발 등의 마케팅으로 동해선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포항을 거쳐 가는 동해선의 매력은 무엇이라 보는지.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포항시는 이런 매력을 극대화하고 관광객의 체류를 유도하기 위해 ‘야간 관광상품’을 운영 중이다. 포항은 낮은 물론 밤도 아름다운 도시다. 그 매력을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한다. 특히 해상 누각이 있는 영일대의 야경과 예술성과 조형미를 갖춘 스페이스 워크의 밤 풍경을 추천하고 싶다. -동해선으로 이어지는 다른 도시와의 협력은? “경북 동해권 관광진흥협의회를 통해 포항, 경주, 울진, 영덕, 울릉 5개 도시가 함께 공동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 박람회 참가, 홍보영상 및 홍보물 제작, 수도권 지하철 광고 등을 통해 동해선 관광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강원도와는 관광안내 책자를 상호 비치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동해선 철길이 불러온 긍정적 시그널은 무엇인지. “그간 동해안 지역은 7번 국도에만 의존해온 탓에 교류와 왕래 기능에 한계가 있었다. 동해선 개통은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접근 경로가 다양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른 상승효과가 적지 않다. 철도 여행을 선호하는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제공된 것이기에. 앞으론 관광 콘텐츠 고도화와 철도 관련 기반시설 확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할 듯하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8-05

푸른 쉼표 하나 ‘콕’ 찍어가는 회색빛 공업도시 울산의 대반전

어쩔 수 없다. ‘회색빛 공업도시’라는 선입견을 뗄 수 없는 명찰처럼 달고 지내온 도시가 울산광역시다. 지난 세기.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주역 가운데 하나지만, 칙칙한 ‘주홍 글씨’를 쉽사리 지워내지 못했다. 기자의 생각도 보편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보지 않고, 여행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울산에 관한 선입견과 주홍 글씨의 색채가 더 강하게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최근 부산광역시(부전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강릉시로 가는 동해선 기차가 멈추는 곳 가운데 하나인 태화강역 인근에서 이틀을 머물며, 울산을 돌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울산은 관광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느낌을 받은 것. 그런 감정을 실질적으로 증폭시킨 울산의 여행지를 딱 2곳만 꼽으라면 ‘대왕암 출렁다리’와 ‘장생포 고래박물관’ 일대를 지목하고 싶다. 왜냐고? 아래가 그 이유다. 포항역~울산 태화강역 1시간5분 소요 ‘장생포고래박물관·대왕암 출렁다리’ ‘태화강 국가정원’ 시티투어 2개 코스 비수기엔 3000원으로 투어버스 이용 아슬아슬 낭만 쌓는 ‘대왕암 출렁다리’ 고래잡이 재현한 ‘장생포 고래단지’선 반세기 전 어촌 풍경 산책하듯 감상 ‘고래문화마을~영상관~고래박물관’ 1.3㎞ 모노레일 위에선 울산이 한눈에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상반기 이용객 100만 명, 부정할 수 없는 동해선 인기 최근 한국철도공사는 근래 개통된 6개의 기차 노선 이용자 숫자를 조사해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노선은 다름 아닌 동해선. 6개 노선 이용객 250만 명 중 동해선 기차에 오른 여행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노선은 강릉과 부전, 강릉과 동대구를 운행하는 동해선을 필두로, 서울·청량리에서 부전을 오가는 중앙선, 판교와 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선, 홍성에서 서화성으로 가는 서해선, 홍성-평택-천안-홍성 구간을 차례대로 순환하는 포승·평택선, 대곡과 의정부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 교외선이다. 이 가운데 동해선이 이용자 숫자 면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동해선 기차를 타고 부전-강릉 사이를 오간 여행자는 1일 평균 5500명이다. 그러니, 누적 승객이 99만2000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 티켓을 구하기 위한 ‘예약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지난 15일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ITX-마음 1252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을 향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5분. 날렵하게 디자인된 빨간색 기차의 깔끔한 객실은 쾌적했고, 도착도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줬다. 6월 중순 일본에서 타본 신칸센이나 선더버드 기차 못지않았다. 태화강역엔 울산의 주요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는 버스와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대왕암 출렁다리 등을 오가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동해선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울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이 2가지 코스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걸 선택해 지역 주요 명소를 보다 손쉽게 돌아보는 게 가능하다. 시티투어 버스의 승차권 가격은 7월 현재 3000원. 비수기라 50%가 할인되고 있으니, 시내버스 2번 탈 돈으로 하루 종일 5~6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게 가능한 셈이다. 이른바 ‘가성비’도 좋다. ▲기차 타고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를 찾은 청춘들은… 울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왕암 일대와 고래박물관을 오가는 시티투어 버스에 탔다. 한산한 평일이었으니 주말에 비해 관광객은 적었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 울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빼놓고 싶지 않은 관광지 대왕암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짙푸른 바다가 사람들을 반긴다. “울산 최초의 출렁다리이자 동구 최초의 대규모 상업관광시설. 대왕암공원 내 해안산책로의 햇개비에서 수루방 사이를 연결하며, 길이 303m, 높이 42.55m 규모로 만들어졌다. 중간 지지대 없이 한 번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전국 출렁다리 중 경간(徑間) 장로의 길이가 가장 길며, 바다 위로 이어진 다리이기에 대왕암 주변의 해안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긴 다리는 사파이어 빛을 닮은 동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다. 기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에 왔다는 20대 젊은 연인이 출렁다리 가운데서 장난을 친다. 남자친구가 짐짓 다리를 흔들 것처럼 폼을 잡으니, 조그만 키의 여학생이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정작 얼굴은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웃고 있다. 청춘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빛나고 아름다운 것. 이런 시 한 편이 절로 떠올랐다. 제 힘에 이 무거운 다리 흔들릴 리 없건만 끙차, 소년은 다리를 흔든다 까짓 다리 위 흔들림이 무서울 까닭 없지만 꺄악, 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청춘의 연애는 출렁다리 위에서 유치하고 유치해서 아름답고. ▲울산에 갔다면 ‘고래의 고향’ 장생포를 빼놓으면 서운하지 동해선 기차의 유유자적한 낭만과 대왕암 출렁다리의 아슬아슬한 낭만을 함께 맛보며 환하게 웃는 청춘남녀를 뒤로 하고, 고래박물관과 장생포 일대를 편하게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는 울산 장생포 고래관광단지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울산, 그 가운데서도 장생포는 ‘고래의 마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포경업(捕鯨業)이 금지되기 전엔 적지 않은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풍경이 드물지 않게 펼쳐진 곳. 고래잡이배(捕鯨船)의 작살수와 고래 해체 전문가는 한때 의사와 변호사도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직업이다. 울산의 어르신들은 아직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조성된 울산 고래문화마을은 예전 장생포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방문자들의 탄성을 불러낸다. 익살스런 인형과 낡은 건물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낸 반세기 전의 어촌 풍경은 정겹고 애틋하다. 기자 역시 거기에 매료돼 오랜 시간 머물며 산책하듯 관광을 즐겼다. 실물 크기의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대 암각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야외 공간도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래박물관 지척에서 티켓을 구입해 모노레일에 올랐다. 고래문화마을-입체영상관-고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1.3km 노선. 30여 분 남짓 모노레일에 타고 있으면 출렁이는 장생포 바다와 고래문화마을, 울산대교와 울산공단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자가 거길 찾은 건 7월 중순. 아직 꽃잎을 채 떨구지 않은 수국이 푸른색 전등처럼 반짝이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샛노란 단풍이 수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니, 어느 계절에 찾아도 좋을 듯했다. 조그만 전시관에서 커다란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을 보던 80대 어르신이 곁에 선 아내에게 말했다. “세상 좋아짔고 울산도 좋네. 기차 타모 1시간이믄 온다 아이가. 살아있으모 내년에 또 오자.” 두 분은 부산에서 온 관광객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니 원시의 동해처럼 아득해졌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추억은 맛과 향기로부터… 기차여행 먹거리 다시 풍요로워지길

미나토 쓰루가 플로트 홀(Minato Tsuruga Float Hall).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엔 화려하고 거대하며, 독특한 수레 3대가 전시돼 있다. 그걸 ‘산차(山車)’라고 부른다. 5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높이가 10m에 가까운 산차가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을 초입 쓰루가 6개 마을의 자존심을 건 ‘야마’들 귀한 재료로 장식한 ‘야마막’ 두르고 퍼레이드 장관 도야마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 그 자체로 구경거리 ‘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 장식부터 맛까지 일품 포항 ‘물회’, 영덕과 울진‘대게’, 겨울 강릉 ‘도루묵’ 등 동해선 특산물 도시락 상상만으로도 입맛 다시게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만약 가을이 시작될 때 쓰루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산차의 윗부분엔 중세시대 일본의 유명 장수를 형상화한 인형이 놓인다. 내가 유심히 본 산차엔 화려한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인형이 올라있었다. 이시다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공한 병사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 한국인이 볼 땐 ‘우리 조상들을 욕보인 악당’이지만, 일본에선 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학자(學者) 스타일 장수였다고 한다. 가을의 초입인 매년 9월 4일이 되면 쓰루가의 6개 마을이 자존심을 걸고 ‘산차’를 장식해 일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게히신궁(氣比神宮) 앞에 모인다. 이어서 장관이라 부를 만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 도시 최고의 마츠리(祭·축제)다. 쓰루가 시민들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행렬을 보려 몰려든다고. 산차의 앞뒤와 좌우를 장식하는 ‘산차막(山車幕)’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에 걸쳐 10~15자(3~4.5m) 크기의 천에 수를 놓는다. 금과 은, 희귀한 염료가 다량 사용될뿐더러, 일본의 신화(神話)와 구전(口傳)을 한 폭의 막(幕) 속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가격이 한국 돈 1~2억 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그렇기에 오랜 시간 ‘산차막’을 만들어온 사람은 한국의 무형문화재급 대접을 받는 장인(匠人)들이다. 만약 당신이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9월 초순 쓰루가를 방문한다면 위에 열거한 정보를 염두에 두고 ‘산차 행렬’을 지켜보면 어떨까? 세상 무엇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조용하고 한산해서 평화로운 여행지 도야마(富山) 도야마는 오사카, 교토, 나라, 쓰루가와 함께 이번 취재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본 도시들 중 하나다. 언급된 다섯 개의 여행지 중 가장 조용하고 한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한 평화롭게 보였다. 한자로는 ‘富山(부산)’이라 쓰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많은 관광지 도야마는 어떤 내력을 가진 곳일까? 이 궁금증에 ‘나무위키’가 답한다. “남쪽에는 일본 알프스 중 하나인 히다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히다 산맥과 가미이치마치와 다테야마마치에 걸친 쓰루기다케(劔岳)는 해발 2999m에 달한다. 일반 등산객이 오를 경우 위험도가 가장 높은 산이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쓰루가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도야마역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걸린다. 포항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보다 조금 더 길다. 오전 11시경 오사카를 출발했으니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큰 기대 없이 신오사카역 상점가에서 도시락을 하나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일본인들은 이 도시락을 에키벤(えきべん)이라 부른다고. 도야마를 찾았던 때는 6월 중순. 그럼에도 햇살은 눈이 부셨고, 날씨는 한국의 7월 같았다. 도야마역 주변은 밝고 환하면서도, 괴괴한 정적이 맴돌고 있었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느닷없는 무더위를 피해 숙소에 잠시 누웠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도야마는 메밀국수(soba)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했다. 마침 역 지척에 이른바 ‘도야마 메밀국수 맛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도야마 시내를 돌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트램(tram)이다.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른 여러 대의 노면전차(路面電車)가 자동차, 버스와 나란히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다. 도야마역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트램 티켓을 판매하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엔 도심 번화가를 30분가량 순환한 후 출발지인 도야마역으로 돌아오는 트램에 올라섰다. 쓰루가에 도시의 주요 관광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가 있다면, 도야마엔 백화점·대형 마트·관공서·은행·우체국 등이 밀집한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가 있었다. 폭염 속에 땀을 흘리면서라도 ‘걸어서 낯선 도시의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여행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반면 ‘나는 편하고 빠르게 도시를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도야마에선 ‘순환선 트램’ 탑승을 권한다. 도야마엔 비단 도심 순환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2~3개의 노선에서 트램이 운행 중이니, 어느 노선을 선택하건 한국에서라면 경험해보기 쉽지 않은 ‘노면전차 타기’를 즐기시길. ▲일본 기차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준 ‘에키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의미하는 에키벤을 처음 맛본 건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역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였다. ‘소고기덮밥’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도시락 아래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발열제가 작동해 데워 먹도록 해뒀으니, 따끈하게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처럼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곤 했다. 그것들도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에키벤은 편의점 도시락과는 레벨이 달랐다. 에키벤은 보통 한국 돈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 정도로 값이 형성돼 있는데,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먹다보면 그런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먹고 싶어지는 것. 에키벤에 매료된 기자는 도야마역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올 때도 ‘새우튀김 에키벤’을 샀고, 심지어 쓰루가에 머물 땐 일부러 역까지 걸어가서 ‘장어구이 에키벤’을 사와 숙소에서 먹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도시락 모두가 장식에서부터 맛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주던 ‘대전역 가락국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추억은 향기와 맛으로부터 온다. 일본인들에겐 기차여행의 즐거움이 에키벤에 있다면, 20세기 한국 기차여행의 행복감 속엔 사이다와 삶은 계란, 맥주와 훈제 소시지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었고, 젊은 세대의 입맛도 변했다. 20세기의 운영 방식으로 한국 기차여행의 먹을거리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없다. 동해선 기차여행의 인프라 확장과 프로그램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 특산물을 재로로 만든 도시락 개발’이 돼야 마땅한 이유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도시엔 갖가지 물고기와 벌건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대게 등 싱싱한 해산물이 얼마나 많은가. 포항역에선 ‘물회 도시락’, 영덕역과 울진역에선 ‘대게 도시락’, 겨울의 강릉역에선 ‘도루묵 도시락’을 사서 동해선 기차에 올라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기자 하나만일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7-22

동해에 최적화된 돌김 품종 개발, 어촌 새 수익 모델로 육성

높은 파도, 급한 경사의 해안선, 영양염류(질소, 인)의 부족, 계절에 따른 극심한 수온 변화까지…. 동해는 김 양식장이 들어서기에 불편한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갯벌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유기물질과 다도해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형성해 파도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일찍이 양식장이 번창한 서해, 남해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고 동해에서 김 재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엔 2세기 경 김(해조류) 채취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구룡포에서 암해태(岩海苔)를 장려했다는 문헌도 나온다. 울릉도 죽암리에서 겨울철 한철 생산되는 돌김은 이미 식도락가들의 ‘Must Eat’ 필수템이 되어 있기도 하다. 김 양식업 위기가 현실화되는 가운데서도 어민 고소득 품목에 돌김 등 해조류들이 부상함에 따라 경북도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돌김 종(種)을 규명하고 양식 시설을 구축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024년 ‘육상김양식 개발연구’ 수립 포항·영덕등 자생 김 품종 종묘 육성 흥해 자생 ‘둥근돌김’ 유력 후보 중 하나 연안 양식 보다 스마트양식장에 무게 김양식 기술 성공 땐 민간·식품사 이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2024년 ‘육상 김양식 연구 계획’ 수립… 첫걸음 경북도는 스마트 양식장 등 김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2024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 계획’을 수립했다. 또 5억 원을 들여 지역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지역 특성에 맞는 종자를 채취한 후 배양 테스트를 거쳐 양식장 활성화 및 기술 표준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북도, 전남도, 삼척시 등 자치단체와 풀무원, 대상 등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김 양식 현장 조사를 벌이며 세부 전략을 다듬고 있다. 경북도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릉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서식, 자생하는 돌김의 품종을 분석하는 일이다. 옛날 문헌에 동해안 지역에 돌김이 다수 자생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실제로 지역별로 독특한 품종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종자를 복원시켜 이를 숙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도는 현재 해안가의 자생 김 채취는 ‘가내(家內) 어업’ 형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전통어업’에서 경북도 김 양식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현지답사 외에도 해조류와 관련된 고문헌들을 조사하며 지역 돌김 양식의 채취지역, 품종, 유통 등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 동해안 환경, 영양 수온, 식생에 맞는 품종 개발 그동안 서, 남해안의 김 샘플에 집중해 온 경북도는 최근 들어서는 경기도와 경북 동해 지역의 돌김 종자를 주목하고 있다.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수 온도와 영양, 여건 등이 차이가 나 서 남해안의 종자를 무조건 들여오는 것은 다소 위험 요소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경북도가 선호하는 종(種)은 ‘긴잎돌김’과 ‘둥근돌김’종자다. 특히 둥근돌김은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서 채취된 것이어서 관심도가 더 높다. ‘돌김속’에 속하는 홍조류 일종인 둥근돌김은 이름처럼 둥근 주름이 많고 모란꽃처럼 포개진 형태를 하고 있다. 짙은 보라색을 띠며 크기는 3~10cm 안팎이며 깨끗한 바위 표면에 부착하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경북도는 위의 두 종(種) 외에도 동해안 환경, 수온, 식생에 맞는 자연산 돌김 종자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해삼먹이생물동(棟)’을 일부 개조해 배양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자 배양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들어갔다. □ 원근해 양식서 육상 김양식장으로 방향 전환 경북도는 2년 여 연구 과제를 수행해오면서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다. 처음 입안(立案) 단계에선 동해안 연안 및 외해(外海) 양식을 구상했었지만 여러 한계에 부딪혀 계획을 일부 수정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 연근해 양식장을 설치하려면 ‘지주식(支柱式)’이나 ‘부류식(浮流式)’을 선택해야 하는데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장대를 꽂아 그물망을 설치하는 지주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스치로폼이나 부표로 그물을 띄우는 부류식도 동해의 파도, 수온 상황에서는 역시 많은 약점이 있다. 경북도는 이런 동해안의자연적인 한계상황 때문에 여러 번 노선을 변경했다. 김 양식 업계와 경북 동해안 어민들 사이에선 그간 다소 에너지가 소모되긴 했어도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북도의 돌김양식은 육상 김양식, 스마트 양식에 무게가 쏠린다. 이에 따른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부안의 ‘지평선 김양식장’같은 스마트양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풀무원처럼 대형 수조에서 김을 생산하는 ‘중성포자방식’이다. 전자(前者)의 경우 바다양식장을 육상으로 옮겨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시설을 갖춰야 한다. 고집적, 고밀도 방식으로, 상당한 시설 투자는 필수적이다.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류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줘야 하기 때문에 AI, IoT 등 스마트 시설도 갖춰야 한다. 지주식, 부류식의 경우 유묘(幼苗) 확보를 위해 배양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육묘를 위한 조개류나 굴 껍질을 활용한 패각(貝殼) 배양시설을 따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풀무원의 예처럼 ‘중성포자방식’을 택할 경우도 육묘 배양을 위한 실험실과 성장 재배를 위한 대형 수조는 필수적이다. 이곳 역시 실내 김 양식을 위한 스마트, IT 환경 설치는 불가결 요소다. 다만, ‘중성포자방식’은 유묘들이 중성(中性)상태에서 스스로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리사상체 배양실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 돌김계획 완성되면 민간, 식품회사에 이전 현재 경북도수산자연연구원에서는 유리사상체 배양실을 마련하고 종묘 육성을 위한 패각(貝殼)사상체 시설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래양식팀 이영준 팀장은 “내년부터 경북도는 본격적으로 육상 김양식 배양기술 개발과 적합한 모델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의 자체 개발 돌김 품종의 사업화 여부는 2030년 이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경북도의 3단계에 걸친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경북도에서 개발한 김양식 기술을 민간에 이전 하고 확보된 돌김 종자를 어가(漁家)나 원하는 식품사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100년 동해 어민들을 먹여 살릴’ 우수 김 종자가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국 원장도 “웰빙시대를 맞아 남해의 김이 K-푸드 시대를 열어갔다면 동해의 돌김은 거친 입자를 바탕으로 한 ‘조미(調味) 김’으로 슈퍼푸드의 새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 고대사 ‘김 자료’ 첫 등장 지역이 동해 지역 해양에 적합한 종자 육성으로 승부 “우리나라 고문헌에서 김(해조류) 채취에 대한 최초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경북도입니다. 국제 해양산업의 트렌드도 어획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김 역사, 인문학의 태동지인 경북도에서 김 양식에 나선 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필연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 양식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을 만나 현 상황과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많은 해조류 어업자원 중 왜 돌김인가? △한반도 역사에서 김에 대한 자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포항이다. 2세기 연오랑세오녀가 바위에서 채취한 돌김, 미역 등 해조류는 근기국에서 널리 유통되고 일본에까지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 인문학적 상징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김에 대한 역 연구가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동해에서 김양식을 추진하는데 많은 핸디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 김 양식에 대한 연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북도에서도 돌김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경북도가 육상 김양식 사업에 나선 이유는? △지금 지구촌 해양산업의 트렌드는 어획 중심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수온 상승과 산성화로 상당수 해역에서 어류 자원이 감소하거나 어장이 이동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IoT), AI, 로봇 등 스마트 양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시켰다. 동해는 남해보다 수온이 차고 한·난류가 교차해 양식에 불리한 요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온성 어종이나 해조류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사업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동해에 적합한 김 종자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2012년에 국립수산과학원이 ‘김 21호’를 개발했다. 생육이 빠르고 고(高) 영양가인데다 병 저항성까지 강해 김산업 확대와 어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경북도도 이번 프로젝트의 승부 포인트를 우수한 종자 확보로 보고 있다. 현재 지역에 자생(自生)하는 돌김은 물론 서, 남해안의 종자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스마트 김양식, 육상 김 양식에만 집중할 것인가? △동해안의 여러 지형, 생태, 기후, 환경적 요인 탓에 원근해 양식장 설치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해(外海) 양식장 설치를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동해와 환경이 비슷한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앞바다에서 ‘명지 김’(일명 낙동김)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고, 동해안에도 후포나 구룡포, 영일만 등에 파도, 풍랑에서 안전한 곳들이 일부 있어 양식장 설치도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0

‘호쿠리쿠 패스’로 기다림 없이… 쾌적한 ‘선더버드 19호’

지난 6월 중순. ‘선더버드(thunderbird)19호’ 기차에 올랐다.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敦賀)로 달렸다.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됐다. 한국도 한때, 또는 지금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등으로 기차를 호칭했었지. 선더버드도 마찬가지다. 헌데, 조금 더 재밌다. 기차 이름이 ‘천둥새’라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선더버드’를 고귀한 영혼을 지낸 새로 숭배했다고 한다. 어쨌건.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질서 지키기’ 탓이었을까? 달리는 기차 객실 안에선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도, 통로를 뛰어다니는 아이도, 사소한 이유로 시시콜콜 다투는 승객도 없었다. 깊은 산 속 절처럼 조용한 기차 내부. ‘호쿠리쿠 패스’로 하루 전 미리 예약을 하고 좌석을 배정받았으니, 신오사카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길지 않았던 기차 여행은 더없이 쾌적했다. 한국의 ITX나 KTX처럼 객실과 화장실 청소 상태도 좋았다. 드문드문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얼핏 보기에도 향과 맛이 다 괜찮아 보였다. 한자로 ‘돈하(敦賀)’라 읽는 일본의 떠오르는 관광지 쓰루가. 거긴 어떤 도시일까? 짤막한 소개를 ‘위키백과’를 통해 들어보자. “쓰루가시(敦賀市)는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도시다. 고대부터 항구가 번성했다. 호쿠리쿠 지방과 간사이 지방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메이지시대 이후엔 철도를 비롯한 육상 운송수단의 발달로 교통 요지가 됐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다시마가 특산물이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들 “느린 기차가 낭만적이었지” 선더버드19호 기차는 늦은 오후 쓰루가역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사전에 파악한 정보가 있으니, 항구 도시의 싱싱한 생선으로 만든 요리와 다시마를 우려내 갓 지은 솥밥을 먹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없다. 여행자의 즐거움 중 최고는 여행지의 맛집을 찾아가는 게 아니던가. 쓰루가역 앞에 늘어선 식당 가운데 하나를 골라 출입문을 열었다. 70대로 보이는 오너 셰프의 능숙한 칼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가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업력이 반세기에 가깝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도미 뱃살을 번철에 굽고, 따끈한 일본식 된장국에 찜통에서 요리한 새우, 거기에 생강 줄기까지 갖춘 저녁 정식을 청했다. 한국 돈으로 1만6000원 정도였으니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맛?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곳에서 식당 주인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라는 일본 노인 하나를 만났다. 70대 중반인 그도 혼자서 저녁을 먹으러 온 터였다. 이름은 도토가와 유우지(都外川 勇二). 젊은 시절부터 쓰루가항구를 오가는 배를 수리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기자는 일본어를 하지 못한다. 다행히 식당 주인의 딸이 중간에서 소통을 도와줬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가 뒤죽박죽 섞인 독특하고 해괴한(?) 인터뷰였다. “나이가 적지 않으신데 독한 일본 소주를 잘 드시네요.” “뭐 그렇지. 험한 일 하는 사람이라 그래. 자네는 어디서 뭘 하러 쓰루가에 왔나?” “한국에서 왔습니다. 일본 철도여행에 관해 궁금해서요.” “그렇군. 나도 어린 시절엔 오사카나 나고야로 아주 느리고 낡은 기차를 타고 다녔지.” “아, 그래요? 그때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무슨 옛날이야기를... 짧게 오사카 처녀와 연애를 했는데, 50년 전엔 기차가 너무 느렸어. 마음은 벌써 그 여자가 사는 오사카에 가있는데, 이놈의 기차는 더디게만 달리지…. 그래도, 그때가 낭만적이었어. 그나저나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내 술 한 잔 받아.” 오사카에서 쓰루가로 가기 전 또 한 명의 나이 지긋한 일본인을 만났다. 미조하타 히로시(溝畑宏·65). 그는 한국을 수백 번 오고간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통(韓國通)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재는 ‘공익 재단법인 오사카관광국’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자가 일본을 찾았던 때는 ‘2025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고 있던 시기.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문어 인형을 머리에 쓰고 인터뷰에 나섰던 그는 “엑스포 기간에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으며, 사람들도 친절한 오사카로 많은 한국인이 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보자면 당연한 부탁이었다. 그런 뻔한 이야기보다 정작 기자의 마음을 찡하게 했던 건 미조하타 이시장의 마지막 말. “일본의 신칸센이나 한국의 KTX처럼 빠른 기차로 오사카 주변의 매력적인 도시를 돌아보는 것 참 좋지요…. 근데, 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느린 기차가 더 좋아요”라는.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타더라도, 여행은 여유롭게 어떤 인간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마찬가지. 그러니 몇몇 노인들이 ‘느린 기차의 서정(抒情)’을 그리워한다고, 일본의 신칸센과 선더버드, 한국의 KTX와 ITX를 멈춰 세우고, 20세기 기차를 가져와 동해선 철로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 바뀐 환경에선 적응이 중요하다. 그러니, 시속 300km의 현란한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을 타더라도, 마음만은 관광객 특유의 느긋함을 가지는 게 21세기형 기차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자세가 아닐지. 그런 차원에서 권하고픈 쓰루가의 유용한 여행 아이템이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くるくる敦賀バス)’다. 한국식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쓰루가 투어 버스’쯤 되겠다. 역 바로 코앞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엔 쓰루가시(市) 곳곳의 인기 좋은 관광지만을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한국 돈 5000원가량을 운전기사에게 지불하면 ‘1일 자유티켓’을 사는 게 가능하다. 그것만 가지고 있다면 추가 요금 없이 하루에 100번도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다. 1회 승차는 2000원을 받으니, 2~3군데 관광지만 오가도 본전은 뽑는다. 게다가 자유티켓엔 40대 이상 한국 관광객의 추억을 소환하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메텔’과 ‘철이’가 프린팅 돼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자는 일본 사람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 그 티켓엔 ‘기차로 우리 도시에 와서 흥미로운 장소를 여유롭게 돌아보라’는 여행자를 향한 일종의 은유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두툼한 참다랑어 회를 얹은 초밥과 어른 손바닥보다 큰 가리비 구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쓰루가 수산시장과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해변, 호쿠리쿠 지역을 수호하기 위해 축조된 게히신궁(氣比神宮) 등이 이름도 재밌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를 타고 돌아본 곳들. 쓰루가가 ‘떠오르는 일본의 신흥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론, 숙소 공동목욕탕에선 인도 첸나이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늦은 밤 주점에선 저 먼 동유럽의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왔다는 청년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쓰루가의 유명 관광지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추억’을 머리와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어느 곳을 가도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디를 가봐야 할까?”라는 물음이 이어질 듯하다. 추천한다. 쓰루가 투어 버스를 타고 다소 고적(孤寂)한 동네에 내려 5~10분쯤 걸으면 만나볼 수 있는 ‘미나토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이다. 거기가 어떤 곳이냐고? 궁금증이 증폭되면 답을 얻었을 때 만족감이 더 커진다. ‘산차회관’에 대한 소개는 다음 회에.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5

3대 걸쳐 돌김 양식 노하우 축적, 세토내해 양식장 ‘평정’

‘전지적 김의 시점에서’ 세노수산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금언(金言)이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로 시작하는 한국 속담도 있지만 양식업자들에게 이 ‘한길 물속’은 각자의 수십 년 지식과 경험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수온과 광량(光量), 영양, 염도에 따라 천양지차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육묘 배양에서 수확에 이르는 약 6개월 기간 이 시기 세노수산 직원들의 모든 주파수는 김과 맞춰진다. 김처럼 생각하고 해초처럼 느껴야 대상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본격 육묘 작업, 패각에서 어린묘 배양 매년 2000여장 김발 설치, 연간 10t 수확 수확한 돌김 원형 그대로 건조, 식감·향 일품 양념김·김밥용 김 등 20여가지 가공김 생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이렇게 10년을 거듭하면서 세노수산은 자신들 만의 독특한 김양식법을 완성했다. 현재 세노수산의 선진 양식 법은 가와현 뿐만 아니라 인근 혼슈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세노 수산 ‘환자채’(幻紫菜)는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가사오카시, JR오카야마가 2015년 11월 실시한 ‘제3회 고향 우수식품’에서 ‘고향 살리기 프로젝트 우수상’ 을 받았다. □ 김밥용 ‘스사비놀리’와 돌김 ‘환자채’ 생산 ‘스사비놀리’와 돌김 ‘환자채’ . 세노수산은 두 종류의 김을 생산한다. 스사비놀리는 우리가 ‘판(板)김’이라고 부르는 김밥용 김이고, 환자채(幻紫菜, 뿌려 먹는 김 종류)는 세노수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돌김이다. 이 두 김은 생육시기가 한 달 정도 어긋나 있어 작업에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공정이 겹칠 때는 양식과 가공을 동시에 할 때도 해야 할 때도 있어 심야까지 작업이 이어질 때도 있다. 세노수산에서 본격적인 작업은 5월에서 9월에 이르는 약 5개월에 집중된다. 먼저 5월이 되면 김망 세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마당에 김망이 쌓이기 시작하면 본격 어기(漁期)의 시작을 의미한다. 취재진이 현지를 방문했을 때 세노수산 앞 방파제엔 김망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세노 유키(妹尾祐輝) 씨는 “깨끗이 씻겨진 김망은 그물에 달린 이물질들을 모두 제거한 후 9월 쯤 인공 채종(採種)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세척이 끝난 김망은 다시 중첩망(重疊網) 작업에 들어간다. 그물의 전체 구조를 살피며 차곡차곡 질서 있게 중첩, 배열해 흔들림이 없도록 단단히 살피는 과정이다. 김망 준비가 끝나고 9월이 되면 본격 육묘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김 씨앗은 패각(貝殼)에서 키운다. 배양된 유엽(幼葉)은 수조로 옮긴 후 양식그물에 활착 시킨다. 김망(그물)이 감긴 수차를 회전시켜 접목 시키는 방식이다. 물레방아가 수류를 일으키면 물결을 따라 씨앗들이 그물에 달라붙게 된다. 유엽 정착이 확인되면 바다로 싣고 나가 그물을 양식장에 펼친다. 수온이 21도 이하가 되면 김망을 해상(海上)에 노출시켜 유엽(幼葉)의 싹을 크게 키운다. 김은 햇빛, 건조에도 강하기 때문에 그물을 오랜 시간 해면 위로 올려도 생장에 지장이 없다. 이 작업을 ‘건출’(乾出)이라고 부른다. 세노수산에서는 매일 새벽 6시부터 이 작업을 계속한다. □ 2000여채 그물에서 연간 10t 이상 김 생산 육묘가 끝난 그물은 일단 냉동 보관했다가 수온이 18도 이하로 내려가면 김망을 해상에 펴는 데 이 작업을 하리코미(Harikomi)라고 부른다. 10월 하순이 되면 ‘단장’(單張)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단장이란 포자가 붙은 김 그물을 한 장씩 낱장으로 바다에 설치하는 과정을 말한다. 세노수산에서는 매년 2000장 정도의 그물을 해상에 펴고 있다. 단장을 끝낸 김망은 약 한 달 후 수확에 들어간다. 육묘, 단장을 끝낸 김망이 성체로 자라 수확을 하는데 1~2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완전히 자란 김은 약 10~20cm 정도인데 이것들은 모구리선이라는 전용 선박을 이용해 수확한다. 첫 수확 한 김은 전체 김 중 색채도 좋고 맛이 부드러워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세노수산에서는 이 ‘첫 따기’로 수확한 김을 활용해 각종 가공식품을 생산한다. 타카유키 씨는 “세토내해에서 자란 돌김은 단맛과 씹는 맛이 뛰어나고 특유의 향기와 세토 우치의 풍부한 맛이 꽉 채워져 있다”고 설명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식감도 일품이라, 여러가지 요리에 뿌려 먹으면 음식의 풍미를 좋게 해준다는 것. 11월부터는 수확기의 연속이다. 작황이 좋은 때는 3월 초까지 수확에 이어져 소득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수온이 올라가거나 해류, 영양, PH 등 악조건에 노출되면 12월에 모든 작업이 끝날 때도 있다. 수확한 돌김(환자채)는 원형 그대로 건조시킨다. 그래야 채취 당시 본래의 맛과 향기가 그대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김밥용 김 ‘수사비놀리’는 양식장 근처에 공장으로 직행한다. 가공 목적에 따라 절단된 후 깨끗이 씻어 기계로 탈수, 건조, 박리(剝離) 공정을 거치면 김밥용 김인 판김이 완성된다. 2000여 채 그물에서 생산되는 김(연간 10t)이 워낙 많아 11월부터 3월까지는 가공 공장이 24시간 동안 풀가동을 한다고 한다. 현재 세노수산에서는 판김(김밥용 김), 환자채, 양념김 등 20여가지 가공 김을 판매하고 있다. 맛과 풍미가 워낙 뛰어나 한번 맛을 본 손님들은 대부분 재구매로 이어진다고 한다. [인터뷰] 세노수산 세노유키(妹尾祐輝) 대표 고온 해수에 강한 돌김 개발 특허 준비 최근 열대 어류 급증 양식장 파괴 심각 “옛날에는 그물만 쳐 놓아도 바다가 다 알아서 키워줬지만 환경이 변했습니다. 이젠 어부가 바다에게 묻고 답을 구해야 합니다. ‘어부와 바다의 지혜로운 상생(相生)’, 바로 세노수산이 추구하는 영업 전략입니다.” 조부, 부친 세노 타카유키(妹尾孝之)에 이어 3대째 세노수산을 운영하고 있는 세노유키씨를 만나 그의 김양식 성공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고온의 해수에서도 생육이 가능한 김 종자를 개발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현재 변리사를 통해 특허 출연 중에 있다. 올해 내로 라이센스를 확보하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종묘 상업화, 생산 확대 등 사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해수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는 종묘로 주목 받으면서 각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20 여년 사이 세토내해 김 양식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들었다. △옛날 카사오카 앞바다는지주, 부표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김 양식이 성업했었다. 10여년 사이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폐어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몇 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해수 온난화 외에 김 양식을 위협하는 변수는 없나?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열대어 같은 열대성 어류가 급증하고 있다. 바다 생태계 변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쳐도 문제는 열대어들이 김을 먹이로 삼으면서 어장이 황폐화되고 있다. 단순히 유엽(幼葉)을 뜯어먹는 차원이 아니라 성체(成體)까지 사냥에 나서며 전체 생산량의 30~40%를 먹어 치우고 있다. 현재 세노수산의 가장 큰 적은 해수 온난화보다 열대어종의 급증으로 인한 양식장 파괴다. -연간 김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 △돌김과 판김(김밥용 김) 전체 생산량은 약 10t 정도 된다.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양도 줄고 상품성도 떨어져 걱정이다. 아직은 판김 생산이 80%고 돌김(이와노오리)은 20% 정도다. 자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전량 가공식품으로 활용해 사업성이 어느 정도 담보 되는 편이다. -김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로 확보도 중요할 것 같다. 환자채(幻紫菜)를 시식해 보았는데 조미를 한 것처럼 맛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산, 가공된 김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상당수 단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도쿄나 오사카에 있는 온라인 단골들이 휴가나 여행 중에 일부러 가게를 찾아오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김양식장은 해수온난화로 조업 일수가 20~30% 줄어들고 있다. 일본도 난류로 인한 양식장 피해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우리는 조부 때부터 50년 가까이 김 양식장을 경영해왔다. 솔직히 2대까지는 자연이 주는 대로 거두어도 창고가 늘 가득 찼다. 세토내해에도 10여년 전부터 온난화라는 자연 재앙이 일상화 되었다. 다행히 부친 때부터 쌓아온 노하우가 있어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종자를 조금씩 개량해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특허등록이 완료되면 해외에 종자 수출, 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카사오카시에서 한상갑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3

이용자 위주 서비스·자연스런 환승 동선 ‘철도왕국’ 이름값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오사카(大阪)는 메트로폴리탄이다. 한국이라면 부산, 인도라면 뭄바이, 중국이라면 상해, 미국이라면 뉴욕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야기. 메트로폴리탄의 특성 중 하나는 인근 중소도시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변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흐름까지 주도한다는 것이다. “일본 혼슈(개개의 일본 섬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섬)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상업과 공업이 발달했으며 오래전부터 긴키(오사카, 교토, 나라 등 7개 지역)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는 백과사전의 설명은 오사카가 가진 위상을 간략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일본의 철도 교통망을 보더라도 오사카는 크고 작은 인근 도시와 멀리 수도인 도쿄, 또 하나 일본의 주요 고도(古都)인 나고야 등을 신칸센과 선더버드(Thunderbird·일정 구역을 운행하는 일본의 열차명)를 비롯한 각종 형태의 기차로 연결하고 있다. 혼슈 중서부 위치한 긴키지방의 중심지 ‘오사카’ 도쿄~오사카 고속철도 110년 전부터 이미 계획 신칸센·선더버드 등 각종 기차들로 전국과 연결 ‘오사카∼나라’ ‘오사카∼교토’ 오가는 철도 노선 신칸센 15분·전철 40∼50분 등 당일치기로 충분 역 앞에는 각각의 관광지행 버스들 줄지어 대기 목적지 팻말 든 안내원이 처음 찾는 여행자 도와 외국여권 소지자 전용 ‘호쿠리쿠 패스’ 구입하면 별도 비용 들지 않아 장기여행자들에 ‘안성맞춤’ 일본은 이미 110년 전부터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고속철도를 고민하고 계획했다. 한국의 고속열차 KTX가 2004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한 세기가 더 빨랐다. 이에 관해 쓴 샬롬엔지니어링 최경수 고문의 논문 ‘일본 新幹線(신칸센)의 歷史(역사)와 고속철도 차량’의 서두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1910년대에는 도쿄~오사카간 고속신선 ‘일본 전기철도’를 부설하는 계획이 민간으로부터 나왔지만 허가를 받지 못해 실현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현실적인 고속열차 개발은 만주를 횡단하는 남만주 철도(滿鐵)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만철(滿鐵)은 전철화 이전 철도에 증기기관차가 견인하였지만 1435mm 국제 표준궤간(일본은 광궤라고 부름)을 사용한 고규격 노선이었으며, 보수적인 일본 철도성(鐵道省)과는 한 선을 그은 선진적인 시도였다.” ▲도톤보리의 관광객들 “여길 왔으니 교토와 나라는 가야죠” 포항에서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계절 무관하게 관광객들로 축제장을 방불케 하는 ‘핫 스폿’ 도톤보리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1km 남짓의 오사카 운하 양쪽으로 수백 개의 기념품점과 식당, 주점이 밀집해 있는 곳. 누군가가 농담처럼 “도톤보리 글리코 간판 앞에서 들리는 언어는 절반이 한국어, 절반은 중국어”라고 말한다. 가보면 알게 된다. 그건 농담이 아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글리코 간판’ 앞에서 글리코를 흉내 내는 여행자들이 친구나 식구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쁘다. 나 홀로 여행자는 카메라 렌즈를 제 얼굴 쪽으로 돌려 기어코 ‘셀프 컷’이라도 찍어야 오사카에 왔다는 실감이 나는 모양. 그렇다면 수만 명 관광객들에게 도톤보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글리코 간판은 대체 뭘까? AI에게 물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글리코상(글리코 간판)은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상징적인 조형물로 1935년 설치된 마라토너 형상의 간판입니다. 일본 제과회사 글리코의 광고판으로 90년간 6번의 변화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철제 부족으로 철거된 후 1955년 재설치되며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2014년 6대 글리코상은 LED조명과 이벤트 영상 송출기능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글리코 간판 아래 늘어선 수십 개의 야외 주점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막 시작된 더위를 식히며 일본식 어묵과 타코야키(문어풀빵)를 안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인 커플과 친구 사이라는 영국인 남녀에게 물었다. “내일은 뭘 할 생각이야?” 구운 가지와 소고기 꼬치를 먹던 그들에게선 입이라도 맞춘 듯 동일한 답변이 돌아왔다. “교토와 나라에 가야지.” 아마 한국과 중국 관광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라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을 게 분명하다. 기자 역시 2년 전 짧았던 3박4일의 오사카 여행에서 두 도시를 갔었고, 거기로 가는 기차와 버스 안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봤으니까. 그렇다면, 두 도시의 어떤 매력이 오사카를 찾은 외국인을 매혹하는 것일까? 신오사카역에서 JR 서일본이나 킨키 일본철도를 타고 40분가량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나라는 과거엔 야마토(大和)로 불렸다. 여기에 ‘나무위키’의 부연이 따라 붙는다. “794년 수도가 교토로 옮겨질 때까지 고대 일본의 중심지로서 발전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호류지가 있다. 시내엔 사슴을 풀어놓은 나라공원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슴공원 인근엔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가 있다.” 교토는 그 도시 사람들이 가진 자긍심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고대 일본의 도읍이었던 교토는 1천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일본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다. 또한, 청수사를 필두로 금각사와 은각사 등이 가진 매력이 여행자에게 높은 만족감을 선물하는 도시. 그러니, 교토는 때때로 천년왕국 신라의 중심지이자 예술적 완성도가 빼어난 미려한 사찰 불국사를 가진 한국의 경주와 비교되기도 한다. ▲오사카-교토·오사카-나라, 빠르고 편안한 기차로 일본에 도착한 둘째 날과 셋째 날. 각각 나라와 교토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두 도시 모두 기차로 왕복했다.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본어나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한국어 안내판이 역과 주요 관광지 곳곳에 있으니 나 홀로 여행자도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신오사카역에서 교토로 가는 기차의 종류는 고속열차 신칸센부터 작은 간이역까지 모두 정차하는 낡은 전철까지 다양하다. 15분 만에 빠르게 교토에 도착하고 싶다면 신칸센을 타면 되고, 5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오사카 교외 경치를 감상하고픈 사람은 전철을 선택하면 된다. 전철도 40~50분이면 교토역과 나라역에 이른다. 만약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계획하고 오사카에 갔다면 서일본 여객철도주식회사가 판매하는 ‘호쿠리쿠 패스’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사카를 출발해 교토와 나라를 오가는 쾌속열차는 물론,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쓰루가, 도야마 등의 신흥 관광지로 가는 기차까지 약정된 기간 안이라면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이용이 가능하니까. 호쿠리쿠 패스는 외국 여권 소지자만 살 수 있고,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일본에서 실물 티켓을 받는 게 가능하다. 나라역에 내리면 동대사와 사슴공원 등으로 가는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정차해 있다. 일본인 특유의 빈틈없는 친절함(?)은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도 발휘된다. 관광객이 몰리는 휴일이나 휴가철이면 각각의 버스 목적지를 알려주는 팻말을 든 안내원이 처음으로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를 돕는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팻말에 영어와 중국어가 쓰인 건 불문가지. 교토행 기차에서 내려 청수사나 금각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도 나라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저 팻말을 든 안내원을 따라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서고 탑승 순서를 기다리면 끝이다. 오사카 외곽의 풍광을 즐기며 덜컹이는 기차로 짧은 시간을 달려가 역에서 내린다. 바로 코앞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로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다. 공원에서 귀여운 사슴에게 먹이도 주고, 교토 청수사 아래 일본식 가옥에서 시원한 녹차빙수를 먹으며 일상 탈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사카로 돌아갈 때는 역순으로 ‘관광지-버스-기차’를 이용하면 당일치기 교토 여행과 나라 여행이 마무리된다. 오전 11시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교토와 나라의 주요 여행지 1~2곳을 돌아보고,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5시 이전에 오사카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선 흠 잡을 걸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관광객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축적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시스템과 노하우의 차이 탓인지, 올해 초 방문했던 동해선 울진역과 삼척역에선 일본 철도여행이 준 만족감을 맛보기 힘들었다. ‘오사카-나라·오사카 교토 기차여행’에서 확인한 이용자 위주의 서비스와 물 흐르듯 자연스런 환승 동선은 동해선 철로가 지나는 지자체가 향후 철도관광 인프라를 조성할 때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08

10년 연구 끝에 해수온난화 걱정 없는 ‘돌김 종자’ 개발

갑작스런 해양 환경 변화와 김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경북도도 ‘돌김 양식’으로 컨셉을 잡고 사업화를 시도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영양류가 풍부하고 파도에서 비교적 안전한 남해안이 김양식으로 특화된 반면 파고(波高)가 높고 물이 맑은 동해안에서는 돌김 양식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경북도는 ‘돌김 양식장 사업 공모’에 나서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발걸음이 더디다. 돌김 자체가 해류(海流)나 파고 등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직은 지역 자치단체별로 해안 지형 특성과 과거 채취 사례를 들여다보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취재진의 검색망에 돌김 양식으로 특화된 일본의 한 양식장이 포착되었다. 일제 강점기 총독부는 구룡포 일대에 김 양식을 장려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 일과도 묘한 연결성이 감지되었다. 일본 오카야마현 카사오카시의 ‘세노수산’(妹尾水産)이란 김 양식장이었다. 작목 부문도 경북도가 육성하려고 하는 ‘돌김’ 이었고 대규모 양식장으로 사업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자체 생산 라인까지 갖추고 있어 경북도의 선도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세토내해의 돌김 양식장을 직접 방문해 동해안의 돌김 양식장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세토내해 한복판 위치 양식장 최적 50년 간 3대 걸쳐 독자적 종묘 개발 “김맛은 씨앗이 결정” 종자로 승부 난류에도 끄떡 없는 우량 씨앗 특허 독자 개발 ‘환자채’ 전국서 주문 쇄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최적의 양식장 조건을 갖춘 세토내해 대표적 해양국가인 일본도 일찍부터 김 산업에 나서 전국 각지에서 김 양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큐슈 아리아케해(有明海)를 중심으로 한 사가현이나 치바현의 이스미시 등에서 현재 대량생산이 이뤄지며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기후현 야마가타시에서는 강에서 자라는 민물김 ‘카와노리’의 양식이 성업해 독특한 식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김 양식은 연안 해역 정화라는 환경 차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바다 물속 이산화탄소와 영양염을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해 생태계에 유익을 끼치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오카야마현의 카사오카시는 세토내해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의 조수 흐름이 부딪치는 위치인데다 영양이 풍부해 양식장으로써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토내해 물빛은 보통 흐린 녹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김은 플랑크톤과 수중에 녹아있는 질소, 인, 규소 등을 흡수하며 성장한다. 오카야마현의 앞바다도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폐수로 인한 적조현상이 크게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수질 개선을 위해 1973년 ‘세토우치법’을 제정했다. 배수총량 규제, 하수처리장 증설 등이 추진되며 겨우 수질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 50년 역사 세노수산 독자적인 종묘 개발 카사오카시의 세노수산은 50여 년 전에 세노 타카유키(妹尾孝之)씨가 이곳에 정착한 후 가업을 일으켰고 현재는 3대 가힘을 모아 양식장과 식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노수산은 일본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돌김(일본에서는 岩海苔) 양식에 성공해 화제가 된 회사다. 무려 10여 년의 각고의 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세노수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돌김 종자는 ‘환자채’(幻紫菜 )라는 종묘다. 이 김은 가루나 조각으로 만들어 음식 위에 뿌려 먹는 ‘아오노리김’의 재료로 쓰인다. 야키소바나 센베이(전병)에 들어가는 김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세노수산의 주력 상품인데다 지명도가 높아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 든다고 한다. 이 돌김 종자인 환자채는 일반 양식 김 종자인 ‘수사비놀리’에 비해 종묘 과정이 훨씬 까다롭다. 기후나 수온에 따라 종묘의 관리가 힘들고 유묘(幼苗) 활착률도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온의 조절이 힘든 양식장 환경에서는 종(種)의 부착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종자들의 활착 여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김의 포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너무 미세해 관찰에 큰 애를 먹는다. 세노수산은 이런 힘든 과정을 10년 넘게 반복하며 이곳 환경에 맞는 최적의 종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카사오카시에는 많은 김 양식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독자적인 종묘를 개발해 양식에 응용한 곳은 세노수산이 유일하다. 종묘와 관련된 기술은 세노수산의 ‘영업비밀’ 영역이어서 접근이 까다롭다. 취재 전에 회사 측은 양식 전반에 걸친 개론(槪論)적인 영역은 협조해줄 수 있지만 ‘특허’와 관련된 전문 영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해왔다. 다만 매년 종묘를 채취할 때 종자 중 난류에 강한 품종을 정교하게 블렌딩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노 만의 특별한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오늘의 세노수산을 만들지 않았나 한다. □ ‘김은 씨앗에서’ 우량종자 개발 ‘김맛은 씨앗에서 결정된다’ 세노수산이 금언처럼 여기고 있는 말이다. 10~15μm 미만인 김의 씨앗은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로 영역인 씨앗들을 다루는 작업이 쉽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세노수산에서 쓰는 김 씨앗은 모두 혼합종이다. 결실(結實)한 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개량해서 쓰기 때문이다. 양식장에서 가장 활성화된 포인트에서 우량 종자를 채취하고 여기에 맛이 좋은 품종을 혼합해 개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매년 블렌딩을 거듭하면서 최적 조합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타카유키 씨는 “매년 검증된 같은 종을 사용하면 수확은 안정되겠지만 바다의 환경도 매년 바뀜으로 그때마다 종자를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김의 씨앗은 굴 껍질 속에서 배양한다. 패각에서 배양된 유엽(幼葉)은 수조에 담겨진 후 김망에 감긴 수차를 회전시켜 활착을 시도한다. 물레방아가 수류(水流)를 일으키면 물결을 따라 씨앗들이 그물에 달라붙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작업자들은 중간중간 회전을 멈추고 그물에 씨앗이 잘 달라붙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엽들이 망(網)과 그물에 정착 된 것이 확인되면 양식장으로 싣고 나가 정식으로 그물에 부착한다. 이렇게 3주가 지나면 세노수산은 비로소 수확철을 맞는다. 양식장에 김이 본격적으로 자라는 과정, 직원들은 이 과정을 ‘김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때’라고 말한다. 매일 새벽 바다에 나가 생육을 관찰하고 성장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부가 김을 사육하고, 재배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인간이 김에 눈을 맞춰 다가가는 양방향 소통 과정이라는 것. 김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의 세노수산을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세토내해와 포항의 인연은? 3세기 근기국 유민 세토 진출 일제땐 內海 어민 구룡포 이주 규슈, 시코쿠, 혼슈 세 섬에 둘러 쌓인 세토내해는 한반도 특히 포항과도 많은 인연이 닿아 있다. 육지 속의 바다(內海) 특성과 리아스식 해안 지형 탓에 세토 내해에는 옛날부터 해적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조정의 골칫거리로 등장하는 ‘왜구’(倭寇)는 대부분 세토내해의 출신들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곳의 해적들을 해군에 편재해 조선 침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개화기 대한제국에 한일 양국의 문물을 교환하던 통신사의 주 항로도 부산-대마도-세토내해를 거쳐 오사카-도쿄로 이어지는 라인이었다. 세토내해와 포항과의 인연은 3세기 근기국(勤耆國) 연오랑세오녀 설화 때부터 시작된다. 근기국 멸망 이후 망명길에 나선 이주민들은 주로 시마네현, 돗토리현에 정착했다. 이들은 다시 본토 동쪽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들 중 한 갈래가 내륙의 산맥을 너머 오카야마(岡山), 카사오카 지방에 정착했다. 이 근처엔 4000여 개의 고대 고분이 산재해 있는데 이 무덤의 출토 유물들은 신라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원삼국 시대 이후 뜸해졌던 포항과 세토내해와의 인연은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이어지게 된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뱃길이 열리면서 구룡포엔 일본 어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구룡포 이주민들은 대부분 세토내해 지방의 어민들이었다. 당시 내해의 연안 어장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공동어장이 좁고 열악한 데다 조합들이 특권을 독점해 핵심 어업권을 모두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민들에게 구룡포는 신천지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그물만 드리우면 정어리, 삼치, 오징어, 고등어가 산더미처럼 잡혀 그물이 찢길 정도였다고 한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구룡포에 세토내해 어민들을 위한 거주촌이 본격적으로 형성 되었다. 그중 특히 가와현 출신 어민들이 많았는데 이는 초기부터 어민 이주를 주도해 온 하시모토 겐기치(橋本善吉)가 그곳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룡포는 물론 포항시 중앙동, 동빈정 등에 일본인 상가, 가옥 거리를 형성하며 포항 경제의 큰 축을 형성했다. 1945년 패전 이후 이들의 대부분이 고향 으로 떠나면서 포항과 세토내해와의 1500년에 걸친 긴 인연도 끝나게 된다. /일본 카사오카시에서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07-06

‘철도의 나라’ 일본서 ‘동해선 K관광’ 청사진을 그려본다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인간과 인프라(INFRA)가 크게 다를 바 없다. 벤치마킹과 반면교사는 부정할 수 없는 발전과 발달의 토대다. 잘된 것은 기꺼이 배우고, 허술하거나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목적한 바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아니, 사실 그게 변화·발전해온 인류의 역사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한국 철도 발전 역사에 주요하게 기록될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동해선의 완전 개통. 동해선은 우리 땅 남쪽 끝 항구도시 부산을 출발해 저 먼 동북쪽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철로다. 철도가 지나는 곳엔 당연지사 역이 생기고, 그 역 주변 관광지는 기차를 타고 찾아올 사람들이 지역 경제에 불러올 훈풍 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동해선이라고 다를 수 없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강릉 등 기존에 잘 알려진 지역 외에도 고래불, 매화, 흥부, 묵호 등 여행지로서 비교적 생소했던 곳의 소상공인들도 말끔하게 업장을 정비하고 앞으로 찾아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완전 개통된 동해선의 인기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현재까진 ‘폭발적’이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주말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 “주중에도 이용하는 승객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라는 게 한국철도공사의 즐거운 비명. 개통 직후엔 한 달 이용객이 18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신규 철도 노선 최다라는 게 한국철도공사의 부연이다. 그러나, 여기서 미래를 마냥 낙관한다면 곤란하다는 게 관광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주제의식 결여된 문학과 메시지 전달력 약한 영화가 팬들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듯, 알찬 콘텐츠 없는 동해선 관련 여행은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 터. 부산 출발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완전 개통’ 현재 이용승객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 ‘폭발적’ 인기 역 주변은 관광객들이 불러올 지역 경제 ‘훈풍’ 기대 일본, 한국보다 몇 세대 앞서 철도가 보편화된 나라 물류 운송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의 유용한 발 역할 첫날 오사카 간사이공항서 마주한 JR·난카이철도 우리를 숙소와 맛집 밀집한 도톤보리까지 안내할 특급열차 ‘라피트’서 일본 기차 관광을 시작해 본다 ▲‘동해선 K관광의 앞날’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배울 것인가 과거엔 한국과 일본을 ‘사이좋은 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혹한 식민 통치와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서러운 기억을 바뀐 세기에도 굳이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20세기와 달리 21세기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두 나라간 협력과 교류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서울과 부산 등의 대도시는 물론, 한국 지방 작은 도시 곳곳에서 젊은 일본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을 통해서만 한 해에 66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시작하는 게 2025년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몇 세대 앞서 철도를 통한 관광이 보편화된 나라다. 일본 전역을 실핏줄처럼 잇는 철로는 물류 운송은 물론이고, 특정 지역을 출발해 특정 지역을 돌아보며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의 유용한 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방윤형은 ‘일본은 철도의 나라’(글로벌 정보 일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은 한국과는 달라, 철도의 운영 주체에 따라 JR그룹, 사철, 지하철, 제3섹터로 나눌 수 있다. JR은 일본의 간선철도망을 운영하는 회사로 1987년 국유철도 에서 분리된 후 총 6개의 여객철도 회사와 1개의 화물철도 회사가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JR은 홋카이도에서 큐슈까지 특급열차와 신칸센을 운영하고 있으며, 토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수십 개의 광역철도 노선이 하루에도 수천만 명의 일본인을 실어 나르고 있다.” 자, 현실이 이렇다면 동해선 K관광의 청사진을 그려 가는데 일본 철도 관련 관광 인프라와 안착된 노하우를 벤치마킹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오사카-나라-교토-도야마-쓰루가를 기차로 오가다 최근 경북, 울산, 강원도에 본사를 둔 3개 신문사 기자들이 함께 오사카(大阪), 나라(奈良), 교토(京都), 도야마(富山), 쓰루가(敦賀) 등 일본의 유명 관광지 혹은, 신흥 여행지로 떠오르는 도시를 기차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포항과 울산, 강원도는 모두 동해선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지자체장은 물론, 관광업 종사자, 식당과 주점 운영자들은 동해선 완전 개통이 불러올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 도시 위상 높이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강원도는 공통적으로 지역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묶어내 동해선 개통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K관광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고심을 거듭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심과 고심이 동해선 철로가 지나는 도시 주변 관광 인프라 확충과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 프로그램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선 ‘잘하고 있는 도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향후 8주간 계속될 ‘동해선 K관광의 미래-로컬 매력을 잇다’라는 연재기사의 기획 의도와 필요성에 관한 설명을 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일본 기차 관광의 출발지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니… 지난 6월 8일 아침. 김해국제공항발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시간. 도착하면서부터 시작하게 될 8박9일의 ‘일본 기차 여행’ 사전 정보를 몇 가지 방식으로 검색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서 언급한 방윤형의 논문을 다시 짤막하게 인용한다. “오사카에는 주요 국제공항으로 간사이공항이 있다. 간사이공항을 연결하는 철도는 JR과 난카이 전기철도가 있다. 우선 JR에는 일본 오사카부 이즈미사노(泉佐野)시 히네노(日根野)역과 간사이공항역을 잇는 JR 서일본의 철도노선이다. 일본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인 간사이국제공항과 오사카, 교토를 연결하는 공항철도 노선으로 간사이국제공항이 문을 연 1994년에 처음 개통되었다.” 2년 전 가을. 대구공항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에게 음료수 한 잔을 청해 그걸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우리 비행기는 곧 후쿠오카공항에 착륙합니다”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겨우 50분 남짓의 시간이었다. 맞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마음의 거리만이 가까워진 게 아니다. 두 국가는 물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사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국을 위한 대기 시간과 면세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합한 것보다 김해공항에서 오사카 간사이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이 더 짧았다. 고작 1시간 10여 분이었으니. 비행기에서의 짤막한 상념 끝에 한국을 출발한 항공기는 일본 오사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기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형편이 넉넉하다면 비싸기로 이름 높은 일본 택시를 이용해도 좋다. 방윤형의 ‘일본은 철도의 나라’가 가장 효율적으로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가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것이다. “난카이 전철에는 특급열차인 ‘라피트’가 유명하다. 린쿠(臨空)타운역에서 간사이공항역까지는 JR과 난카이 공항선이 선로를 공유하며, 해당 구간은 JR 서일본, 난카이가 아닌 신간사이(新関西)국제공항 소유로 JR 서일본과 난카이는 신칸사이 국제공항 측에 선로사용료를 지불한다.” 간사이공항에서 여행자들의 숙소와 그들이 좋아하는 맛집이 밀집한 도톤보리까지 1시간 내에 달려갈 수 있는 기차 ‘라피트’는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예매와 발권이 가능하다. 이젠 굳이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많은 수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알고 있는 ‘비지트 재팬(Visit Japan)'을 이용했기에 일본 입국 수속은 20분 만에 끝났다. 걸음을 빨리해 간사이공항역으로 가니 기자를 도톤보리로 싣고 갈 ‘라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01

염분·PH·수온·영양, AI 자동 조절⋯ 24시간 연중무휴 수확

미국 뉴저지엔 ‘에어로팜’(AeroFarms)이라는 스마트 농장이 있다. 세계 최대 아파트형 농장인 이 회사는 IoT 센서를 이용 작물의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AI,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물의 생육 상태를 최적화한다. 수십만 평의 농지가 스마트 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 회사는 생산성을 390배나 향상시킬 수 있었다.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오늘 소개할 ‘스마트 김 양식장’은 에어로팜의 스마트 농장이 ‘바다 버전’으로 응용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치단체나 식품회사들이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드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급격한 해수온의 상승 탓이다. 전문가들은 김 생육의 적당한 해수온(5~15도)이 50년 이내 50일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갯병, 황백화 같은 질병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바다김 양식, 전문가들은 그 대안을 육상 양식장에서 찾는다. 한 번 대규모 시설 투자와 재배 시스템이 정비되면 계절, 수온의 제약에서 벗어나 연중무휴로 재배,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북도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계획을 수립하고 스마트 양식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2030년까지 ‘동해형 돌김 종자’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기술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국 육상 김 양식장, 자치단체, 연구소, 식품회사를 방문, 견학하며 기초자료를 수집해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김 양식 패러다임의 변화시대를 맞아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든 기업체와 연구소를 둘러보았다. 충북 오송 ‘풀무원기술원’ 대형 수조 ‘바이오리액터’에 양식장 환경 재현, AI로 제어 연간 24회 이상 김 수확 가능 ◆풀무원, 바이오리액터 수조로 특화 풀무원은 2021년부토 육상 김 양식 개발에 나서 양식 김을 초기 상품화 단계까지 끌어 올렸다. 2014년부터 해조류 종자 연구를 시작해 해양 양식 전반에 걸친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구축하며, 이 분야 선두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풀무원의 가장 특화된 기술은 바이오리액터로 분리는 대형 수조(水曹)다. 작은 드럼통 만한 이 생물반응조에 바다 환경을 그대로 재연해 해초를 생산하는 구조다. 풀무원 관계자는 “수조 안에는 바다와 동일한 김 생육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AI, IOT(사물 인터넷) 등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빛과 수온, 염도, 수소이온농도(PH)가 자동으로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전체 시스템의 정교한 설계는 물론 조명의 종류, 배치 간격, 수조의 재질과 용량 등도 최적화해야 된다는 것. 건물에 들어서자 연구실 한 켠에서는 수백 개의 플라스크에서 종자를 배양하고 있었다. 채묘(採苗)된 종자를 어린 묘로 양성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란 유묘(幼苗)는 바이오리액터에 옮겨진 후 성체가 될 때까지 자라게 된다. 수조에서 바로 성체(成體)로 성장시키기 때문에 양식장 같은 거치대, 지주(支柱), 그물이 필요 없다. 생물반응조에 유엽(幼葉)을 넣어 성체를 수확하는데 약 2주 기간이 소요된다. 이런 진척도라면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4회 이상의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풀무원 측은 3년 이내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육상에서 생산한 김이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 양식 기술이 축적되면 어민들에게 종자 분양, 보급 등 양식 기술을 이전하고 이를 통해 어민들은 소득 향상을 도모하고 회사 측은 안정적인 원재료 확보가 가능해 상생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김제시 진봉면 ‘지평선육상김’ 200평 공장에 스마트 시설 갖춰 온도·습도·광량·살균 원격 제어 국내 최초로 양식장 특허 등록 ◆대한민국 최초 특허 등록 ‘지평선육상김’ 김제시 진봉면에 2022년 설립된 ‘지평선육상김’은 200평 공장에 자동화 기계와 스마트 온실 제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곳은 국내 최초로 김 양식장 특허를 취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 양식의 방식, 시설, 일부 공정을 특허 낸 것이 아니고 양식장 시스템 자체를 등록했다. 이 외에도 수질정화장치를 이용한 수질관리와 살균처리 시스템,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공조 시스템, 김발 자동 이송 및 수확 시스템 등 최신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다. 지평선육상김은 김양식 방식의 주요 방식인 ‘지주식’(支柱式)’과 ‘부류식(浮流式)’의 장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일석이조, 친환경 방식을 갖추고 있다. 지평선이 자랑하는 방식은 적층(積層)식 거치대 구조. 스마트 팜의 다단계, 수직구조처럼 거치대를 다단(多段)으로 집적해서 배치하는 구조다. 좁은 면적에 시설들을 밀집해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식장 공간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 3000평의 바다 양식장엔 1.8×40m 그물이 70~80책이 설치되지만 이 곳에서는 동일 면적 기준 600책 이상의 세팅이 가능하다. 연간 5개월만 생산이 가능한 바다와 달리 연중 생산이 가능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10배 이상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지평선육상김 이정민 부대표는 “(집적화)덕분에 면적 축소, 수온유지, 사계절 생산, 최적의 광량(光量), 고품질 유기농 김생산 등 많은 장점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이런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김 생산 기간을 기존의 3분의 1로 단축시키고, 성장률을 40배 이상 높이는 기술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실험 과정 거쳐 곧 상용화 단계 진입” 풀무원기술원 이다정 연구원 “하루 종일 김을 들여다보고 퇴근하면 거실 TV 화면이 김으로 보여요.” 풀무원이 국내 스마트 김 양식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는 연구원, 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운명처럼 시작한 해조류와의 만남, 연구원들은 김과의 교류(?)를 위해 하루에 수십 장, 연간 수천 장의 김을 시식하고 있다고 한다. “5년을 공들인 김 연구인데 ‘김 새면’ 안되죠.” 불철주야 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을 만나 보았다. △바이오리액터는 풀무원의 독자 기술인가? 바이오리액터는 원래 미세조류나 미생물 배양에 활용되는 일반적인 기술이다. 풀무원은 이러한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김의 생육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제어 기술을 접목해 김 양식에 최적화된 바이오리액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육상 환경에서는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 유속(流速) 등 주요 생장 조건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풀무원은 이를 활용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생장을 유도하고, 고품질의 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은 단순 양식의 성공에 이어 궁극적으로 고부가가치 김 생산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본다. 풀무원은 육상양식 기술을 바탕으로 김의 품종 다양화, 기능성 성분 강화, 유해물질 저감 등 고품질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을 단순 식재료를 넘어 건강식품, 간편식, 화장품, 의약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 가능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CJ, 대상, 풀무원 등 식품회사들과 중소기업들이 육상 김 양식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있나 국내 해조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이제 막 실증 단계를 거쳐, 상용화 기술 개발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스마트 양식은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데이터 기반의 생산 관리와 자동화 기술이 핵심이며, 수산업과 IT 기술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풀무원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연속 양식과 수질 제어의 안정성을 확보해 왔으며, 현재는 영상 기반 생육 모니터링과 품질 분석 기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이 대규모 시설 투자 대비 경제성,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 단계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스마트 김 양식은 안정적인 생산환경, 품질 균일성, 연중생산, 위생관리,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기존 해상양식 대비 뚜렷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점은 특히 해외 수출 및 프리미엄 시장 진출 시 일관된 품질을 기반으로 한 제품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며, 중장기적인 경제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어업인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 규모의 단계적 확대와 경제성과 지속성을 겸비한 상용화 모델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9

[창간 35 특집] 수온 상승·해양 오염 걱정 NO, 스마트 김양식시대 활짝!

바다의 로또, 해양 반도체로 불리는 김이 산업 대전환 시대를 맞았다. 해양 오염, 해수 온난화라는 복병을 만나 김 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 양식업자들은 전통적 바다 양식에서 벗어나 스마트 양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바다의 반도체 김, 스마트 양식 시대를 열다’ 시리즈를 준비했다. 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부터 국내 김 산업의 변화, 일본의 양식장 탐방기까지 5회에 걸쳐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웰빙시대 맞아 힐링푸드 새롭게 주목 ‘바다의 반도체’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K-컬처 열기 타고 미·일·유럽서 인기 최근 해수온 상승·해양 오염 ‘복병’ 등장 바다 양식장 황폐화로 어민 수입 급감 전통적 양식 한계 극복 육상 재배 시도 정부 350억 투입 스마트 김산업 장려 지자체·식품업계 ‘육상김’ 본격 경쟁 투자대비 경제성 확보 사업 성패 좌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흰 쌀밥에 김 한 장 얹어서 먹는 맛이란...’ 김은 오랫동안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미식(味食) 코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수많은 음식 중에 김이 이렇게 ‘국민 푸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우리 민족과 정서적 공감을 함께해 왔음을 뜻한다 하겠다. 그렇다고 인류사 측면에서 김이 항상 양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김은 한때 해양 쓰레기, 가축 사료 취급을 받으며 식탁에서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ESG, 웰빙 요리시대를 맞아 김은 ‘힐링푸드 아이콘’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우리 식탁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산업적 가치도 뛰어나다. 현재 한국에서 김은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원(7억 8000만 달러)을 돌파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명사인 라면을 앞질렀다. 이처럼 꽃길을 걷던 김 산업에도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바로 해양 오염과 해수 온난화다. 현재 한국 김의 주산 생산지인 남해안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미세 플라스틱 등 오염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육상 김 양식장’이다. 경북도도 돌김 양식장 개발,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에 나서고 있다. 게장과 함께 밥도둑으로 유명한 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자. ◆K푸드 김밥, 세계의 소울푸드로 등장 2023년 미(美)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모녀가 김밥을 먹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음식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세라 안(安)씨가 올린 이 영상은 조회 수 1100만회를 넘기며 K푸드 김밥의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세라 안씨가 김밥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된 후 미국 ‘트레이더조’ 냉동 김밥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전역에 500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당시 매진 사태로 식재료를 공급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이 덕에 이곳 냉동 김밥을 납품하던 구미의 식품업체 ‘올곧’이 초대박을 터트렸다. 올곧은 김밥 250톤 초도 물량을 순식간에 완판 시킨 이 사건 때문에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한 달 넘게 철야 근무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한국 김밥이 갑자기 미국에서 터져(?)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그 전조(前兆)를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김 사재기’를 든다. 당시 TV에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시장에서 ‘김매장 털이’를 하는 장면은 사실은 K-푸드 김의 데뷔를 알리는 서막 이었던 것이다. 거친 방사형(放射形)에 두꺼워 식감이 질겼던 일본 김에 비해 얇고 감칠맛이 나는(가격도 30% 수준인) 한국 김에 관광객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불을 지핀 한국 김 열기는 K-컬처 인기에 힘입어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스낵을 먹는 듯한 바삭한 식감과 환상의 조미(調味)는 단숨에 세계인들의 입맛을 빼앗아 버렸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해조류 열풍과 건강식에 대한 열기도 단숨에 한국 김을 판매고 최상위에 랭크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 요리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2021년 한국 김 스낵을 950만 달러나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53%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의 추격에 맞서 아직도 ‘아마존 프랑스’ 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스마트양식장 전환 120여국에 수출되며 K푸드 위상을 떨쳤던 한국의 김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며 주춤하게 되는데 바로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다. 보통 김은 5~15도 수온에서 생육되는데 1년 중 이 온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10월부터 다음에 4월까지 약 150일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해수온이 상승하면서 채묘(採苗) 시기가 9월 초에서 9월 말로 2~3주 늦춰졌다. 이는 김 생산 시기가 한 달 가량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어가(漁家) 수입도 20%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기후 변화로 인한 해양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 양식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김 양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바다 양식이 기후, 수온 등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데에 비해 육상에서는 수온은 물론 염도, PH, 영양분 등 재배 환경을 자유롭게 콘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해양수산부가 2024년부터 5년간 350억 예산을 투자해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황색화, 갯병 등 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100배 이상 높일 수 있어 경제성에서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불붙은 육상 김 양식 전쟁, 대기업들도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먼저 CJ제일제당은 2018년부터 육상 김 양식 개발에 참여해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전용 배지를 개발했다. 대상(주)도 2023년부터 고흥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5년간 20억 원을 투자한다. 바이오리액터로 불리는 수조를 이용해 김양식에 나선 풀무원도 이미 월 10kg의 실험용 물김을 생산하고 있다.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은 “양식장에 AI, IOT(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면서 생산 효율화를 앞당겼고 스마트 센서 기반 모니터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험실 환경에서 많은 진척을 이루고 있는 스마트 김 양식이 과연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로 이어질지가 앞으로 과제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고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갈텐 데, 과연 투자 대비 아웃-풋(경제성)이 나와줄 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한 김 유럽 고대 인골서 해조류 흔적 일본 조몬시대 패총서 김 발견 ‘연오랑세오녀’ 설화에도 등장 해조류의 일종인 김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우리 식탁을 지켜왔다. 2023년 영국 요크대학은 유럽 전역의 28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74명 유골의 치아를 분석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 유골 치석(齒石) 분석에서 이들 대부분이 선사시대부터 이미 해조류를 섭취해왔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제까지 김 소비의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극동지역보다 3000년 이상 앞선 것이어서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조몬(繩文)시대 패총 유적지에서도 해조류의 흔적이 발견돼 기원전 1만3000년 무렵 일본에서도 김이 식용으로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인류들이 강가,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로, 채집 생활을 했다고 볼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대 중국인들이 해조류를 식용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우리 사서(史書)에 김이 처음 등장하는 건 삼국유사. 제1권 ‘연오랑세오녀’편에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물론 김을 뜻하는 ‘해의’(海衣) ‘해태’(海苔)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해초’(海草)가 전후 문맥으로 김, 미역 등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서기 157년 경 동해안 에서는 김이 식용으로 채취되었고 원시적 형태이지만 일본과 무역, 상업적 유통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2

국내서 해외로 이어진 사회공헌활동 ‘뜨리마 까시, 포스코’

◇ 뜨리마 까시, 포스코“저는 포스코가 도와 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힘을 보탤 겁니다.”지난달 30일 찔레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에서 약 2㎞ 떨어진 꾸방사리(Kubangsari) 마을.납시아씨(Napsiah·55·여)는 거실과 방 2개가 딸린 집에서 자식 내외, 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찔레곤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집 안은 맞바람이 들어 시원했다. 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납시아씨의 집은 포스코가 ‘스틸빌리지’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포스코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포스코1%나눔재단, 포스코 비욘드 봉사단 등 포스코 사회공헌 역량을 총 동원해 찔레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인근 저개발 지역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펼쳤다.봉사자들이 직접 지은 집이라 다소 투박하지만 깨끗한 하얀 벽, 하얀 타일이 깔린 납시아씨의 집은 이 동네 집 중 비교적 신식이다. 납시아씨는 집을 찾아온 취재진을 반기며 포스코 덕분에 편안한 집에서 잘 수 있게 됐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그는 “포스코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자고 가도 좋다”며 “포스코가 도와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꾸방사리 마을에 거주하는 마스투아(Mastuah·55·여)씨도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마스투아 씨가 살던 집은 빗물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몇 달 씩 매일같이 비가 쏟아지는 우기(雨期) 동안엔 마스투아씨와 가족들은 비에 젖은 축축한 바닥을 닦고, 또 닦아야 했다. 포스코는 2018년 마스투아씨 집에 방 두개와 거실이 있는 새 집을 선물했다. 마스투아 씨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집이 무너질까봐 늘 불안했는데 새 집이 생긴 뒤로 편하게 잘 수 있다”고 밝혔다.찔레곤 현지에서 포스코가 받는 사랑을 한 눈에 체감할 수 있었다.스틸빌리지 사업으로 포스코는 주택 25세대 외에도 화장실 30개소, 학교 건물 3개소, 쓰레기 처리시설 1개소를 새로 지었다. 3년이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에는 포스코그룹 임직원들, 포스코 비욘드 봉사단, 해비타트 봉사단 등이 개인 시간을 쪼개 참여했다.마을에는 스틸빌리지 사업을 통해 시설을 보수한 초등학교도 있다. 하교를 하던 아이들이 취재진과 포스코 직원들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녔다. 익숙한 듯 크라카타우 포스코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나누자,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뜨리마 까시’(terima kasih·감사합니다)를 외쳤다.크라카타우 포스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빈부격차가 심해 찔레곤 제철소 인근 저개발 지역은 사람들이 흙바닥에 나무 판자로 지은 집에 거주하는 등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며 “특히 학교, 유치원, 보육시설 등 교육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아, 스틸빌리지 프로젝트를 할 때도 미래세대 아이들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시설 개선도 함께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공헌 프로그램포스코는 크라카타우 포스코를 건설한 직후부터 제철소가 위치한 찔레곤의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해왔다. 2013년 인도네시아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2015년, 포스코는 크라카타우 포스코 사회적 기업, PT.KPSE (Krakatau POSCO Social Enterprise)를 설립했다. PT.KPSE는 포스코 1%나눔재단 기금 7억원과 KOICA 기금 7억원을 투입해 설립된 포스코의 자회사형 사회적 기업이다.PT.KPSE는 특별한 설립 배경이 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가동 초기, 인근 마을 청년들이 생계를 이유로 자재를 훔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돈을 벌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생긴 일이었다. 포스코는 지역 빈곤층에게 드리운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민들이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 ‘PT.KPSE’다.PT.KPSE의 사업은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이 역량 개발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PT.KPSE는 6개월 단위로 30명씩 인성 교육, 직업역량 강화 교육 등을 실시한 후 교육을 이수한 지역민을 공장 환경 정비 요원 등으로 채용해 지속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마을 주민 대상으로 소규모 창업 지원 교육도 실시하고, 제철소가 위치한 인근 공단에 취업할 수 있도록 컴퓨터, 워드 등 기본 직무 능력 교육도 제공한다. 사회적 기업 운영으로 발생하는 이윤의 70%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공헌기금으로 재환원해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2015년 설립 이후 2023년 상반기까지 총 378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2022년까지 237명이 취업에 성공했다.포스코만의 특별한 사회공헌 활동의 정점은 포스코 커뮤니티 러닝센터(P-CLC, Community Learning Center)다. 2022년 스틸빌리지 사업 일환으로 개관한 찔레곤의 다목적 시설인 CLC는 현재 PT.KPSE에서 운영하고 있다. 시 정부에서 제공한 연면적 약 661.16㎡(200여 평) 규모의 부지에 세워진 지상 2층의 ‘스틸’ 건물은 낮은 목재주택들이 즐비한 찔레곤 마을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지역 주민들의 교육시설이자 문화 공간인 CLC에는 강의실, 컴퓨터실, 도서관 등 지역민들의 역량 개발을 위한 시설들이 자리해 있다. 인근 지역에서 드물게 에어컨이 있는 이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P-CLC에 들어서자 한국에서 온 포스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다 인도네시아로 파견을 간 직원들이었다. 현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포스코 주재원, 현지 직원들은 ‘아요 스망앗’(Ayo Semangat·파이팅합시다)이라는 봉사단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포항제철소에서 하고 있는 재능봉사활동과 유사하다. 이날 직원들은 P-CLC에 조만간 들어설 한국어 학교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다.크라카타우 포스코는 제철소 인근 지역사회 청년 및 보육시설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위한 ‘K-Dream 한글학당’을 지난 7일 개원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한국인 임직원과 통역사 직원이 학생들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치며, 약 1년간의 교육과정 운영 후 우수학생은 크라카타우 포스코 및 협력사로 직원으로 채용을 추진할 계획이다.포스코 생산기술전략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지난해 9월부터 크라카타우 포스코 열연 공장장을 맡고 있는 이정희 부장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포스코 직원들답게 인도네시아에서도 주재원들이 봉사활동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며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게 눈에 보이니 봉사하는 직원들의 의욕도 함께 올라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지역 주민들이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PT.KPSE 아리(Mr. Arie) 대표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했다.그는 “PT.KPSE가 들어서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며 “PT.KPSE는 지역민들에게는 ‘희망’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공헌 프로그램들 보다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시민’ 글로벌 임팩트, 그 원류는찔레곤을 감동시킨 포스코 커뮤니티 러닝 센터, 재능봉사단 아요 스망앗을 보면 포항의 ‘포스코 나눔스쿨’,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회사형 사회적 기업 PT.KPSE는 장애인 고용 사업장인 ‘포스코 휴먼스’를 닮았다. 포스코가 국내에서 펼치고 있는 기업시민 활동이 이들의 원류이기 때문이다.기업의 사회 공헌 개념이 낯설었던 창립 초반부터 포스코는 사회환원과 지역상생에 매진해 왔다. 창립 후 광양제철소 건설이 완료될 때까지 포스코는 작은 어촌이었던 포항의 인프라 건설에 중점을 두고 사회공헌 활동을 개진했다. 문화시설인 효자아트홀 개관, 실내체육관 건립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주목할 점은 미래세대 육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86년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포스코의 선견지명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 주의가 강화되면서 지역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며, 지역 대학들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포스텍은 굳건히 국내 최정상 이공계 대학의 아성을 지키고 있다.연이어 설립한 실용화 기술 전문연구기관인 RIST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포스코, 포스텍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포항이 산업 연구 도시로 발전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포스텍-RIST-포스코로 이어지는 산학연 협력 체계는 지방 소멸 시대 포항이 지닌 주요 자산이다. 든든한 산학연 협력 체제가 있기에 비수도권 지역으로서는 드물게 벤처기업들도 포항을 주목하고 있다. 체인지업그라운드 등 포스코의 벤처 지원 사업과 맞물려 미국 CES에서 주목한 유망스타트업 그래핀스퀘어는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전기차 배터리 플랫폼 기업 피엠그로우, 협동로봇 전문기업 뉴로메카 등은 포항에 공장을 신설했다.조업이 안정된 90년대 이후에는 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했다. 포항테크노파크, 환호해맞이공원 건립을 지원하고, 프로축구단 스틸러스를 설립해 지역 문화 발전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사업도 꾸준히 개진했다. 실직자를 위한 실업기금, 연말 불우이웃돕기, 수재의연금 등으로 900여 억원을 출연했다.포스코의 사회공헌활동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임직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1991년부터 포스코는 각 부서와 포항의 마을, 단체, 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어 봉사활동, 교류활동을 펼쳤다. 2003년부터는 포스코봉사단을 창단해 더욱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직원들이 휴일을 활용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봉사활동에 참여한 인원만 누적 5천55명으로, 누적 봉사시간은 11만 시간이 넘는다.나눔과 봉사 문화가 있었기에,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크라카타우 포스코 역시 기업시민 활동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포스코 관계자는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를 만들며 포항과 강건한 상생관계를 만들어낸 사례가 있듯, 인도네시아에서도 모범적인 지역 상생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인도네시아에서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17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지원과 규제 완화 필요”

◇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글로벌 전기차 허브 도약 꿈꾸다인도네시아가 전기차에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필수 원료인 니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약 2천100만t의 니켈을 보유하고 있는 니켈 세계 최대 매장국이다. 2019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기차산업 글로벌허브 국가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기자동차 생산·수출 기지로 도약하겠다는 그림이다. 아세안 국가 중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허브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자국 전기차·이차전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가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무역장벽’이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배터리 필수 원료인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했고, 현지 가공품 수출만 허용했다. 자원을 무기로 삼은 셈이다.기술력을 가진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지화율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했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생산 회사의 현지화율을 2030년 이후 80%까지 끌어올리고자 계획하고 있다.아세안 국가 사이의 국제 협력도 탄탄하기 때문에 전기차 관련 기업들은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2018년 맺은 아세안무역협정(AFTA)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차량은 아세안 회원국에 무관세로 출국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면 인근 국가인 태국, 베트남 등 다른 아세안 국가들로 진출이 용이한 것이다.국내 기업들도 빠르게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있다. 공공시설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연산 15만대 규모의 아세안 지역 첫 완성차 생산공장을 인도네시아에 준공한 뒤,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 5~7일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현대자동차는 아이오닉5, 아이오닉6, 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 등 전기차 3종으로 특별제작한 아트카 23대를 운행하며 2023부산국제박람회와 자사 전기차 라인을 홍보했다. 현대자동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배터리셀 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 중 배터리셀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합작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성능 NCMA리튬이온 배터리셀은 2024년부터 생산되는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량에 탑재될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전기차’ 블루오션에서 먹거리 찾는 포스코그룹지난달 29일 방문한 포스코 가공공장은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자카르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까라왕에 있는 포스코 IJPC 인근에는 최근 전기차 공장이 들어섰다. 포스코 IJPC는 도요타, 혼다를 비롯한 자동차 기업들이 다수 포진한 KIIC(Karawang International Industry City) 공단 내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새로 준공된 현대자동차 완성차 공장과는 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고, 2021년 5월 준공한 3공장 인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의 합작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자동차 밸류체인 한 가운데 자리잡은 것이다.포스코 IJPC는 포스코로부터 철강 제품을 수입해 고객사가 요구하는 규격으로 절단, 가공해 판매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자동차용 철강재다. 자동차 외판부터, 부품에 쓰이는 소재까지 다양한 철강재를 이곳에서 공급하고 있다. 늘어나는 철강 수요에 발맞춰 지난해 포스코 IJPC는 3공장을 신설했고, 2010년 연간 5만t이었던 판매량은 지난해 27만t을 돌파했다.포스코 IJPC 관계자는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2기투자가 성공적으로 완수되고, 인도네시아 내에서 냉연, 도금, 자동차 강판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 포스코그룹이 수행하는 밸류체인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전기차 확대 정책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일본 기업이 장악해왔던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을 한국 기업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포스코 IJPC는 판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4공장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포스코그룹은 이차전지소재 분야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니켈 생산 사업 2건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최초로 이차전지용 니켈 생산에 도전한 것이다.하나는 중국 닝보리친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 니켈 함유량 기준 연산 12만t 규모의 니켈 중간재(MHP 이Mixed Hydroxide Precipitate)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먼저 1단계로 니켈 함유량 기준 6만t 규모의 생산공장을 연내 착공해 2025년에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다. 닝보리친은 니켈 광산에서부터 제련, 트레이딩까지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사업을 한다. 이미 2021년 인도네시아 최초로 이차전지용 니켈 습식제련공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선도기업이다. 이번 협력을 통해 포스코그룹은 니켈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신흥국과의 경쟁, 포항시의 강점 찾으려면정부 주도의 강력한 전기차 산업 육성 계획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투자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 주요 배터리 공급업체인 중국 CATL은 인도네시아에 59억 6천800만달러(약 7조 3천346억원) 규모의 원자재 포함 배터리 생산 단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요타와 미쓰비시사도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전기차 생산공장 설립을 선언했다. 전세계를 ‘투자 유치 전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테슬라 기가팩토리의 유력 후보지도 인도네시아다.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유수의 이차전지 소재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포항도 최근 이차전지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되면서 ‘전기차 산업의 허브’로 발돋움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시가 이차전지 양극재 산업 특화단지로 최종 선정됨에 따라 인근 구미, 김천, 경산, 영천, 경주 등과 함께 이차전지 산업벨트를 구축해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 있다. 포항시는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 생산, 매출액 70조원, 고용창출 인원 1만 5천명을 목표로 경북도와 이차전지 특화단지 추진단을 꾸리고 국내 이차전지분야 전문가, 선도기업들로 구성된 전지보국 전문가 자문단(TF) 가동 계획을 밝혔다. 관련 기업의 동반 성장과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한 이차진저 기업 협의체도 오는 10월 발족 예정이다.포항시가 이차전지 특화단지의 성공적인 운영에 이토록 간절한 이유는 이차전지 사업 활성화가 지역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통해 생산 유발효과 23조 3천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9조 5천억원, 취업유발효과 5만 6천여 명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실제로 긍정적인 신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CNGR사와 화유코발트가 포스코그룹 및 LG화학과 손잡고 각각 1조원 가량의 포항 투자를 약속했다.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의 집적효과로 한국 기업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파격적인 규제개혁을 위한 포항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지난 4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구·경북 정책간담회에서 규제개혁추진단 위원장인 홍석준 국회의원과 김병욱·한무경 국회의원,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7개 정부 부처와 포항시, 대구상공회의소, 기업인들은 규제개혁 안건에 대해 토론했다.포항시는 원활한 기업경영과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단지계획과 관리기본계획을 조기에 변경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의 협의기간을 단축하고 우선 처리하는 ‘패스트트랙’ 처리를 건의했다.김병욱 의원은 “차세대 주력산업인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 뿐만 아니라 관련 규제 완화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포항이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규제 완화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 기조와 해외 국가들의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로 기업들의 탈(脫) 한국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유의해야할 신호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TSMC,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기업이 올해 잇따라 일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 300억엔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보조금은 100억엔 이상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는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이미 2021년 9월 10년간 재산세의 92.5%, 이후 10년은 90%, 추가 10년은 85%를 돌려받는 인센티브를 적용받았으나, 텍사스 기업프로젝트의 ‘트리플 점보 기업 프로젝트’로 선정해 고용에 따른 지원금을 추가로 제시했다. 파격적인 투자유치책, 안정적인 노사환경 등을 내세우는 해외국가들 사이에서 투자처로서 포항의 매력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인터뷰자카르타 사무소 문홍부 경북도소장인도네시아 시장이 성장하면서 지역 강소기업들의 진출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포항에는 금속 가공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어,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철강기업들의 강세는 지역기업들에게도 호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경북도는 2015년부터 경상북도 자카르타사무소를 개소해 경북도 지역 중소기업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인도네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자카르타 사무소 문홍부사진 경북도소장을 만나 지역 기업의 진출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경북도 자카르타 사무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지역중소기업 인도네시아 진출 지원이 가장 큰 업무다. 도내 수출 중소기업과 인도네시아 내 바이어를 찾아서 연결하고, 수출 상담을 지원한다. 인도네시아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현지 정보를 제공하고, 행정 절차를 도와 성공적으로 현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목표이다. 지역 기업의 제품 홍보를 위해 각종 박람회와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한국 관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북도는 K-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게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높다. 포항의 경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킹더랜드’ 등이 흥행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경북 주요 관광지, 음식 등을 여행박람회에서 홍보하고, 인스타그램을 운영해 경북도 관광지를 알리고 있다.-인도네시아 내 경북도 기업들의 활약상이 궁금하다.△중소기업들도 인도네시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산시에 위치한 기남금속은 지난해 31만 달러 규모의 맨홀뚜껑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인도네시아 진출 전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성과였다. 포항에 본사가 있는 제일연마공업도 인도네시아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다. 제일연마공업은 2002년 인도네시아 현지생산법인을 설립한 선구자다. 인도네시아에서만 공장 2곳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 연마석 제조기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새롭게 인도네시아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다른 지역 기업들에게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경북 농산물도 진출하고 있다. 경북도 사무소는 도내 농가의 해외수출 판로를 확보해 농가 수입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청송사과 수입 쿼터 300t을 확보했고, 청도 네이처팜 반건시, 상주 복숭아와 배 등을 수입했다. 올해에는 판매처를 다양화하고, 샤인머스켓 등 수입품목도 추가하고자 한다.-인도네시아 진출을 꿈꾸는 지역 기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의 성장 잠재력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경제 성장률 또한 가파르기 때문에 지역 기업도 주시해야 할 시장이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초창기 낮은 인건비가 강점이었지만 최근들어 최저임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는 추세다. 산업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대다수인 만큼 식품, 화장품 같은 경우에는 할랄인증을 받아야 하고, 한국과 다른 행정 절차도 신규 진출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어려움을 감수할 가치와 매력이 있는 시장이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지역기업들이 진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북도 자카르타 사무소는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 지역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부용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10

포스코, ‘영일만의 기적’ 넘어 ‘찔레곤의 기적’ 만든다

산업의 기초가 돼 ‘산업의 쌀’ 이라 불리는 철강. 철강 패권을 거머쥐는 것은 곧 제조업의 근간을 다진다는 뜻. 철강은 제조업 전반에 소재로 쓰이고 있기에, 제조업 발달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철강 소재 확보가 필수적이다.한국은 일찌감치 ‘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하면 후발주자지만 철강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열정은 뒤지지 않았다. 전후 최빈국이었던 1960년대 대한민국은 일관제철소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깡다구’로 만들어진 포항의 한국 최초 일관 제철소는 이후 반세기 동안 산업 성장의 기수가 돼 ‘산업의 쌀’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철강이라는 토대 위에서 한국 산업은 꽃을 피웠다.포스코가 이룬 ‘영일만의 기적’은 한국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50년 역사 속에서 어느덧 아시아 철강 산업의 희망이 됐다. 포스코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인도네시아에 건설했다.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 ◇ 영일만 신화, 인도네시아에 닿다인도네시아는 포스코의 첫 해외 일관제철소 건설 기지였다. 포스코는 2008년 인도네시아에 제철소 건설을 결정했다. 2008년 인도네시아와 한국 정부가 맺은 기본 합의를 바탕으로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인 크라카타우 스틸(Krakatau Steel)과 손잡고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 ‘크라카타우 포스코’ 를 건설했다.2000년대에 들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을 겪으며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시장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5~6%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확충과 조선업육성정책을 추진하면서 건설, 조선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그러나 인도네시아 철강 산업의 성장은 더뎠다. 2008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철강 수입 의존도는 52%. 철강 수입 증가율도 해마다 13.6% 가량 높아졌다. 철강 수요는 높은데, 철강 생산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인도네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본 포스코는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 제철소를 인도네시아에 짓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철강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하공정 설비만 해외에 건설해 반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전략을 세워오고 있었기에 상·하공정을 모두 해외에 짓겠다는 포스코의 발표는 이례적이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내 하공정 공장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일본 철강사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로 건설을 결정했다.야심찬 해외 시장 진출이었던 만큼, 건설 초기 인도네시아로 가던 포스코 직원들의 마음가짐은 비장했다. 한국과 다른 기후환경, 철강 시장 악화 등의 악재가 겹쳐 준공 이후 제철소가 안정화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영일만 신화를 만들어낸 특유의 집념으로 포스코는 포기하지 않았다.약 10년간 이어진 고군분투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21년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5억200만 달러로 창립 이래 최고점을 찍었다. 다음해인 2022년에도 2억2천1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영업이익률에서 큰 성과를 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2021년, 2022년 영업이익률은 각각 20%와 10%로, 같은 해 포스코 본사의 영업이익률을 상회했다.모두가 기피하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한 ‘뚝심’도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내에 고로부터 제품 공장까지, 상·하공정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하공정만 보유한 기업의 경우, 반제품을 수입해 가공해야하기 때문에 무역 리스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에 반해 자체 고로를 보유하고 있는 포스코는 비교적 외풍으로 인한 영향이 적어 안정적인 철강 생산이 가능하다. 향후 자동차 강판 생산라인까지 구축되면 인도네시아 철강 산업의 패권도 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자동차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지만,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것은 크라카타우 포스코 뿐이다.실제로 ‘영일만의 기적’을 넘어 ‘찔레곤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포스코는 크라카타우포스코 제철소에 고로 1기를 추가 건설해 연간 조강량을 600만t 이상으로 확대하고, 자동차 강판을 비롯한 냉연 설비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는 향후 2030년까지 1천만t 철강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야심찬 포부를 품고 있다. 포스코만의 K-기업 신화가 인도네시아에까지 널리 뻗어나간 셈이다. ◇ 포항 영일만, 역사의 시작한국 제조업을 견인한 철강 산업의 원류는 바로 포항이다. 한국 최초의 일관제철소,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생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1964년 12월 4일 제102차 경제장관회의에서 박정희 정부는 철강공업 육성계획을 의결했다. 종합제철 건설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에 당시 철강 선진국이었던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 우방국조차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아시아의 빈곤하고 작은 나라’가 추진하는 종합제철 건설에 선뜻 힘을 보태려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정부는 종합제철 건설계획안을 수립하고 국제차관단 구성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1966년에는 미국, 서독, 영국, 이탈리아 4개국 7개사와 한국에 종합제철을 건설하기 위한 기본사항에 합의하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을 발족했다. 1967년 1월 프랑스가 추가로 참여해 구성원은 5개국 8개사로 늘어났으며, 1967년 10월 종합제철 건설에 관한 기본협정을 체결했다.이후 1967년 7월 포항을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최종 입지로 선정하고,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했다.그러나 KISA 출범으로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KISA를 통한 차관 교섭이 여의치 않자, 1969년 1월 31일 정부와 박태준 사장 일행은 KISA 대표단과의 담판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경제적 타당성 부족을 이유로 KISA를 통한 차관 조달은 결국 실패했고, 1969년 9월 2일 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KISA와의 기본협정은 자동적으로 해지됐다.종합제철 사업의 좌초를 막기 위해 새로운 자금 공여처와 기술 제휴처를 확보해야만 했다. 한일 양국이 농림수산 부문에 주로 투자하기로 합의한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종합제철 건설 자금으로 전용하고 일본 철강업계의 기술지원을 받는 것만이 제철소 건설사업 실현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민관 합동 노력에 나섰다. 일본 정부를 설득해 자금을 제철소 설립에 유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일본 철강업체들의 기술협력 분위기를 조성해 극적으로 제철소 건설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정부 수립에서부터 한일 간의 기본협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무려 여섯 차례의 종합제철 건설 시도가 있었다. 결국 그 결실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자금이 마련되고 제철소 건설은 빠르게 진행됐다. 창립 2주년을 맞은 1970년 4월 1일 경북도 영일군 대송면 동촌동 건설 현장에서 포항 1기 설비 종합 착공식을 거행했다. ◇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 만든 집념, ‘아시아 철강’ 시대 이끌다포항 1기 사업은 조강 연산 103만t(톤) 규모, 1973년 7월 완공을 목표로 계획됐다. 당시 언론은 종합 착공 관련 보도를 통해 포항제철소 건설사업이 유사 이래 최대 규모 단일투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철강재 자급 촉진, 국제 수지 개선 및 고용 증대, 자주국방 능력 강화 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제철소 건설이 시작되자 박태준 사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설현장을 시찰하며 모든 건설요원들에게 “민족의 숙원사업에 동참한다는 긍지와 사명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특히 “선조들의 피값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우향우해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는 남다른 각오를 요구했다.이러한 각오는 곧 빠른 제철소 건설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열연 비상’ 사건이다. 생산설비 중 가장 앞서 1970년 10월 1일 착공했던 열연공장은 1971년 4월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계획이 여러 번 변경되면서 설계가 지연됐다. 건설업체의 자재와 인원 부족에 여름 장마까지 겹치면서 공기지연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포항종합제철은 전사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관리, 행정 직원까지 모두 투입돼 24시간 ‘돌관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밤낮없이 공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 2개월만에 5개월 분의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었다. 심지어 건설 공기를 예정보다 1개월 단축할 수 있었다.산업 역군을 자처하고 나선 직원들의 곧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 완공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1973년 7월 3일 포항제철소는 1기 종합 준공을 무사히 완수했다.박태준 사장은 종합 준공에 대해 “종합제철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온 국민의 열의의 소산”이라며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기틀이 되고 중화학공업의 핵심적인 위치를 점해 더욱 비약적인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정희 대통령은 치사에서 “초현실적인 제철소를 준공하게 된 데 대해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다”고 회고하며, “조강 연산 103만 톤의 종합제철공장을 완공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의 문턱을 넘어서 훨씬 더 깊은 곳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포항제철소가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던 박태준 사장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포항 1기 설비 건설은 국내 철강산업 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선, 전자, 건설 등 국내 수요산업에 소재를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비약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를 통해 성장한 국내 수요산업 또한 철강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든든한 수요 기반이 되며,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게 됐다. 계속/인도네시아에서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03

봉화 베트남마을, 韓-베트남 관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호안끼엠(還劍) 호수’를 찾게 된다. 서울이라면 광화문, 대구라면 두류공원, 포항이라면 영일대해수욕장처럼 외국인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까지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 기자 또한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돌아봤다.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리 왕조’의 태조 이공온(李公蘊·974~1028)의 동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우뚝하다. 이공온은 어떤 인물일까? 이 궁금증에 ‘리브레위키’가 답한다.“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지금의 하노이를 수도로 정한 황제다. 974년 박린성 뜨선에서 태어났다. 1009년 나라가 내란에 휩싸이자 학식과 인품 모두에서 존경받던 이공온이 차기 황제로 추대된다. 수도를 옮긴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각 계층간의 화합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를 발전시켰고, 주변 국가의 침탈도 막아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한 나라 수도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릴 정도라면 ‘리 왕조’와 이공온이 베트남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리 왕조’는 216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이란 세상에 없는 법. 차오른 달은 때가 되면 기운다. 왕국 통치자의 성(姓)이 ‘이씨’에서 ‘진씨’로 바뀐 것. 이어 ‘리 왕조’ 혈족들에 대한 살육이 시작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의 주인공 이장발은 베트남 ‘리 왕조’ 태조의 후손이공온의 7대손인 왕자 이용상은 목숨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을 피해 먼 고려로 몸을 피한다. 망명이었다. 고려의 왕은 이용상을 내치지 않고 예를 갖춰 맞았다.그가 처음으로 밟은 고려의 땅이 황해도 화산이기에 ‘화산 이씨’라는 성(姓)도 사용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인 1226년이다.몰락한 ‘리 왕조’의 왕족들은 이후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세월은 흘러 1392년 왕국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화산 이씨 역시 고려의 백성에서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됐다.1592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섰다. 봉화도 다르지 않았다. 봉화가 고향인 화산 이씨 가문의 장발(長發)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문경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나선다. 홀어머니를 두고 이장발이 전사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 가운데 들어서 있는 봉화 충효당은 이장발의 기개와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 조선의 유림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자그마치 8세기 가까이 이어진 ‘화산 이씨’와 ‘봉화군’의 인연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그간 한국과 베트남은 두 나라 모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변했고, 수없이 많은 통치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양국이 오래 이어온 인연의 끈은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의 비극을 떨치고,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우방국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경제와 문화 교류를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봉화군이 전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이 21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교류의 다리될 것”인터뷰 박현국 봉화군수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교류의 다리가 되고, 미래세대에겐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박현국 봉화군수의 역점 추진사업 중 하나다.베트남마을 조성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박 군수는 지난 5월 초 17명의 봉화군대표단을 구성해 ‘리 왕조’의 태동지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방문하기도 했다.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마을 조성과 관련해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묻고, 박 군수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체적인 봉화군 베트남마을의 모습을 들어봤다.-봉화군에 ‘베트남마을’이 조성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지.△나라가 서구열강에서 독립해 부강해지면 많은 국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반드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베트남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중국에서 독립해 독립된 국가를 이뤘던 베트남 ‘리 왕조’에 대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아닐까. 봉화군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가 이어지는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한국-베트남 교류와 협력의 상징이 될 베트남마을 조성의 최적지라고 믿는다.-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이 추진할 주요사업 중 하나다. 어떤 이유에서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인가.△봉화는 현재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인구 3만의 농촌지역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킬링 콘텐츠가 절실하다. 나는 우리 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마을 조성, 즉 베트남 콘텐츠 선점은 농촌 일자리, 농산물 판로 확대, 문화교류와 관광 활성화, 인구 증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봉화군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 중이다.-올해 새롭게 추진될 베트남마을 조성 관련 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우선 하드웨어적으로는 봉화 충효당과 재실을 잇는 ‘교류의 길’과 연꽃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신청해 놓았다. 대규모 사업 전 기초 인프라를 닦기 위해서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올 하반기 베트남 뜨선시 우호대표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을 통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다.-지난 5월 초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찾았다. 베트남마을 조성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 받았는지 궁금하다.△이번 방문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항 바 위 뜨선시장은 베트남 건축양식에 대한 자문을 약속했고,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사업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봉화군 우호교류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실무단 구성을 지시했다.-예상되는 고용 창출 효과, 인구 증가 효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포함한 베트남마을의 대략적인 모습은.△베트남을 생각할 때 우선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붕화군이 만들 베트남마을도 현지 주민과 베트남 다문화인, 다양한 관광객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고용 창출 및 인구 증가 등의 효과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보완용역에 반영해 연말에 가시화 시키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대를 부탁하고 싶다.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