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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착착… 韓-베트남 모범적 사례되길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고,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베트남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국가 중 하나다.갈수록 ‘국경’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서로 다른 정치·이념 체계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떼어놓기 힘든 우방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국가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봉화군은 이런 시대적 추세와 유사한 민족성에 주목해 몇 해 전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에 진력하는 중이다.2017년 11월 당시 대통령이던 문재인이 고려로 망명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을 언급한 이후 2018년 초엔 응웬 부 투 주한 베트남 대사가 봉화군 충효당(임진왜란 때 순국한 화산 이씨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지은 사당)을 찾았다.이어 같은 해 봄에는 봉화군 대표단이 베트남을 방문해 우호·교류의향서를 전달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태동지인 박린성 뜨선시에서 열리는 덴도 축제에 참가한 것도 이때부터.베트남마을 조성을 위한 양국의 협력과 교류는 2019년에도 이어져 봉화군 대표단이 거듭해 덴도 축제를 찾았고, 지난해 12월엔 박현국 군수가 베트남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인 주석을 만나 MOU를 체결했다.지난 5월 초순 역시 군수와 군의회 의장을 포함한 17명의 봉화군 관계자들이 하노이와 뜨선시를 찾아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갈 봉화 베트남마을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베트남 현지 분위기 또한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호의적5월 1일부터 5일까지 취재를 위해 베트남 하노이와 박린성 뜨선시를 돌아봤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뒤흔들고 있는 ‘K-팝’과 ‘K-드라마’의 열풍은 베트남에서도 그 위력을 과시 중이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선 어렵지 않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기자가 탑승한 버스에 오른 몇몇 청년들은 핸드폰을 통해 베트남어 자막이 달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그들은 원체 많은 한국 여행자를 봐 온 터라 낯선 외국인에게 가질 수 있는 경계심도 거의 없어 보였다. 수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선 하노이 중심가엔 한국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적지 않았다. 불고기와 비빔밥 등 ‘K-푸드’의 위세도 대단했다.통역을 맡아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베트남 10~20대가 한국 문화와 음식에 열광한다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계층에선 한국과 베트남간의 교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베트남 박린성과 뜨선시 인민위원회 고위급 간부들이 봉화군이 추진하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는 건 현재 취재를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 배경엔 제갈공명에게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으나 결코 항복하지 않았던 베트남 장수 맹획에 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故事)가 있고, 초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베트남 현대사가 있다.자존심이라면 한국인도 이에 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당당한 태도가 없었다면 5천 년 내내 지속됐던 숱한 외침과 내환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터.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역시 양국의 모범적 협력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주목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이달 초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계속) “베트남과 한국 잇는 가교 역할에 보람”인터뷰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 지난 5월 1일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현지 취재를 위해 하노이에 갔다. 그날은 마침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가 업무를 위해 하노이를 찾았던 때. 급하게 연락해 리 대사의 하노이 사무실을 찾았다.그는 8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의 31대손으로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했다. 한국 이름은 이창근. 인터뷰 자리엔 ‘리 왕조’ 탄생 축제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도 동석했다.-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사를 맡은 건 언제부터인지.△2017년이다. 3년 임기인데 현재 연임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임명을 받았다. 나는 화산 이가(花山 李家)고,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기서 살았다. 조상의 땅인 베트남과 30대 중후반까지 살아온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어린 시절에도 당신의 뿌리가 베트남에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숙부가 혈통에 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그에게 1천 년 전 베트남 왕족이었던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도 베트남 관련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고, 대학 땐 화산 이씨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숙부는 1975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단절되면서 세상을 떠났다.-1990년대 한국-베트남 수교가 재개된 후 귀화했다고 들었다.△내 중시조(中始祖)는 1226년 고려 고종 13년에 망명한 이용상이다. 그는 고려와 베트남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나 역시 미력하나마 그런 삶을 살고 싶어 1994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에 정착했다. ‘리 왕조’를 기억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가 여기서 자리 잡는데 큰 힘이 됐다.-현재 경북 봉화군이 베트남마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환영할 일이다. 베트남마을 조성은 한국과 베트남이 보다 친숙한 나라가 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화산 이씨들은 ‘한국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엔 리 왕조가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봉화군이 관련된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게다가 봉화엔 우리 조상을 모신 충효당도 있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조성에 필요한 자금도 보태고 싶다.-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어느 정도 되는가.△대략 2천여 명 정도다. 적은 숫자이니 종친회 활동이 다른 가문 같지 않지만, 소수라 결속력은 더 강하다. 베트남마을 조성 등의 계기가 생긴다면 더 잘 뭉치지 않겠는가.(웃음)-한국과 베트남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았는데.△두 나라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애국심과 효심을 높이 받드는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 이질적인 민족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리 왕조’가 존중의 대상인 듯하다.△왕조가 생겨난 것을 기념해 해마다 ‘덴도(DO-temple) 축제’를 열고,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리 왕조’ 태조의 동상도 서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베트남인들이 내 조상이 다스렸던 시기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향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지.△내겐 태어난 한국과 뿌리가 있는 베트남 모두 중요하다. 두 나라는 오래 전부터 교류를 해오던 사이였다. 그런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다. 베트남은 30대 이하 인구가 다수인 젊은 국가다. 교육열과 발전가능성 또한 높다. 한국과 베트남이 윈윈(win-win)하는 사이로 동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23

다낭 여행자 한 해 100만명… ‘경상북도 다낭시’ 불리기도

불과 50~60년 전엔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과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엄혹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 사이에 실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친구 이상의 나라’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짙푸른 바다가 유혹하는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다낭(Da Nang)을 찾는 한국 여행자는 한 해에 100만 명. 그중엔 경북도민도 수없이 많다.허니,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곳을 ‘경상북도 다낭시(市)’ 혹은 ‘경상북도 다낭군(郡)’이라 부르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뿐 아니다. 근래에 들어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베트남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한국 농촌에서 노인들을 대신해 각종 농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도와주는 베트남 계절근로자 역시 봉화군을 포함한 경북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봉화군이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됐다. 여기에 봉화군은 베트남과 관련된 주요한 유적지까지 가졌으니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상징할 공간을 우리 고장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충분하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奉化 忠孝堂)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800여 년 전. 베트남 북부를 통치하던 리 왕조의 직계 후손 중 일부가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려로 망명한다. 고려 왕실은 이들을 깍듯한 예법으로 받아들여 우리 땅의 일원으로 살게 했다. 그들이 바로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봉화엔 화산 이씨 장발(長發)의 강직한 품성과 애국심을 기려 세운 유적이 있다. 이름하여 충효당. ‘두산백과’는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자리한 이곳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경상북도 기념물로 1750년경 후손과 유림에서 조선 선조 때 사람인 이장발(1574~15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했다. 이장발의 자는 영백(榮伯)으로, 어려서부터 재질과 의지가 굳어 배움에 부지런했고 효성이 지극했다.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열아홉 어린 나이에 편모슬하의 가장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전사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못다 한 충효의 마음을 읊은 시를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나라에서 순국의 공을 치하하고자 공조참의의 직위를 추증하고 출생지인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었다. 충효각은 정자 뒤편에 있다.”사선을 넘어 베트남에서 고려로 왔을 때 따스하게 맞아준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어 ‘제2의 고향’이라 할 고려와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화산 이씨’는 이장발만이 아니었다.리 왕조의 직계손이자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李龍祥·리 왕조 6대 왕의 일곱 번째 아들) 역시 고려를 침탈한 몽골 군대에 용맹하게 맞섰다. 다시 ‘두산백과’를 인용한다. 이런 내용이다.“1253년 12월.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 정착해 살던 웅진성 동쪽 화산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과 목책을 쌓아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용상에게 관직을 내리고, 옹진 화산 지역 30리 인근과 식읍 2천호를 선사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제수를 내리고, 화산관(花山館)의 문미에 수강문(受降門)이란 글자를 써주기도 했다.” ◆봉화군과 리 왕조의 태동지 박린성 뜨선시의 공통점충효의 정신과 인간 사이의 예법을 중시하는 건 긍정적 측면에서의 유교적 전통이다. 봉화군은 아직 그런 전통이 남아있는 고장. 이는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기자는 지난 4월에 봉화 충효당을, 5월 초순엔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市)를 찾았다.충효당 앞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말과 뜨선시 덴도((DO-temple)축제 현장에서 만난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의 이야기는 그 뜻이 서로 통했다. 요약해 전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한국과 베트남은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걸 높은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선열을 존중하고, 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자, 효녀에 얽힌 설화가 흔한 건 두 나라가 비슷하다.”그런 소프트웨어의 동질성 때문일까? 충효당이 위치한 봉화군 봉선면과 리 왕조가 시작을 알린 뜨선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외부적 환경, 즉 하드웨어까지 닮아있었다.2023년 초여름 현재. 봉화군은 충효당 일원에 베트남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실증하듯 지난 1일엔 5일간의 일정으로 박현국 봉화군수를 단장으로 한 ‘봉화군 교류단’이 리 왕조의 발원 지역인 뜨선시를 방문했다.여기엔 봉화군의회 김상희 의장과 박동교 부의장 등도 동행했다. 올해 봉화군의 주요 시책 중 하나인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베트남 정부와 박린성, 뜨선시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방문 일정을 리 왕조 건국을 기념하는 덴도축제 기간에 맞춘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이 일정을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뜨선시의 환대는 800년 전 이용상을 받아들인 고려 왕실의 그것처럼 살가웠다.지난 5월 3일 저녁. 맛깔스런 베트남 전통요리로 차려진 환영 만찬을 준비한 뜨선시 측에선 건축을 전공한 황 바 휘 시장이 봉화 베트남마을에 들어설 건축물에 관한 자문을 약속했고, 부엉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한국의 부지사격)은 한국-베트남 문화교류를 위해 올 하반기 공연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한 결과물로 만들어질 베트남마을이날 봉화군 교류단은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화산 이씨’와 관련된 유적지인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이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박린성과 뜨선시 관계자들에게 설명했다.“역사·문화·휴양을 테마로 한 베트남역사관, 전통공연장, 연수·숙박·교육시설, 정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국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에 만찬에 참석한 베트남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사실 이번 자리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봉화군과 박린성, 봉화군과 뜨선시 간의 교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지난 2018년엔 봉화군 관계자들이 응웬 티 킴 응언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 베트남마을 조성에 협조를 부탁했고, 2019년에는 응구옌 투 꾸인 박린성 인민위원장(한국의 도지사격)을 단장으로 하는 우호교류단이 봉화군을 찾아 충효당을 둘러봤다. 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를 미리 살핀 것.설화 또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그 끈을 놓치지 않은 베트남 리 왕조와의 교류는 8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구체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박순교 경북대 특임연구원의 논문 ‘花山君 李龍祥(화산군 이용상)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베트남, 미시적으로 봉화군과 뜨선시 사이 우호의 출발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전승에 의하면 대월(리 왕조) 출신 이용상은 고려 고종 치세에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이거했다. 황해도 웅진 화산에 정착한 그는 얼마 뒤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고려 조정으로부터 화산군에 책봉되었고,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리 왕조의 혈손인 그의 존재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선린의 가교이자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16

베트남 ‘리 왕조’와봉화군 연결고리는

국가와 국가 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호도 없고, 불화도 없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 역시 그랬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베트남전쟁. 한국군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군대와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다.1992년 수교가 이뤄지기까지 19년 동안 베트남은 한국 대중들에게 적성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런 불화가 있기 1천여 년 전 한국과 베트남은 호의적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던 사이였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를 연구한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려의 왕이 위기에 처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의 정치적 망명을 흔쾌히 받아들여 작위를 주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성을 사용하게 해 우리나라로의 정착을 적극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지금의 베트남 북부 박린성(省) 뜨선시(市)에서 태동한 ‘리 왕조’는 216년 동안 지속되며 8명의 왕을 탄생시켰다. 1대 왕인 태조 이공온은 베트남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동상을 세울 정도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다.바로 이 태조 이공온의 후손이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고, 그들의 후손인 이장발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다. 그 공로가 인정돼 세워진 것이 봉화군 봉성면의 충효당.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협력은 여러 부문에서 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두 나라의 우호적 관계는 해마다 20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베트남을 찾는 것에서 확인된다.봉화군은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몇 해 전부터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베트남 주석과 박린성장, 뜨선시장 등도 이 사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본지는 매주 수요일 5회에 걸쳐 기획기사 ‘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를 연재할 예정이다. 고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와 봉화군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16면/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5-09

1226년 베트남 ‘리 왕조’ 7대손 이용상, 망명객으로 고려 정착

1960~1970년대에 걸쳐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비극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한 우방국 중 하나가 됐다.양국 사이 교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 돼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봉화군은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봉화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 출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이장발(李長發·1574~1592)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효당(忠孝堂)이 자리해 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겨우 열여덟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두고 전장에 뛰어들어 전사한 이장발은 1226년 고려에 정착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李龍祥)의 후손.본지는 5회에 걸친 연재기사를 통해 리 왕조의 흥망성쇠와 현재 베트남인들이 평가하는 리 왕조, 베트남 박닌성 뜨선시와의 교류·협력 속에서 베트남마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봉화군의 오늘을 면밀하게 점검하고자 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한국에선 고려가 태동해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던 1009년. 지금의 베트남 북부에 독립된 왕국이 건설된다. 탕롱(현재 명칭 하노이)을 도읍으로 한 ‘리 왕조’다.1대 왕 태조 이공온은 당시 강위력한 힘을 가졌던 중국의 군대를 격퇴한 문무겸비(文武兼備)의 인물. 베트남인들은 ‘리 태조’를 기리며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 중앙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았다.‘환검’(還劍·칼을 돌려받다)이란 뜻을 가진 호안끼엠은 국가적 재난이 닥칠 때면 거북이가 칼을 물고 나와 나라를 구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하는 호수다.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공간.그런 곳에 리 태조를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건 베트남인들이 리 왕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베트남 리 왕조 후손 이용상은 왜 고려에 왔을까리 왕조는 216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다. 과거제도를 도입하고, 국립대학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베트남이 안남(安南)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한 것도 리 왕조였다. 알다시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수확되는 쌀을 ‘안남미(安南米)’라고 부른다.그러나, 어떤 왕조도 흥할 때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쇠락의 시기가 있는 법. 리 왕조의 고종 이용한 시대에 들어서며 이반된 민심이 백성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리 왕조의 마지막 왕 혜종(惠宗)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딸을 왕으로 세우면서 2세기에 걸친 리 왕조의 시대가 저문다.오늘날과 같은 선거의 형식이 아닌 무력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이 잇따르는 게 고대 왕국들의 특징. 리 왕조의 혈족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이용상(李龍祥)은 리 왕조 태조의 7대손. 그는 주변에서 친인척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1226년 일이다. 리 왕조를 주제로 다룬 여러 논문에 따르면 소수의 측근들만을 데리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이용상이 도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이다.당시 고려의 왕 고종(高宗)은 이용상 일행을 내치지 않고 따스하게 맞이했다. 화산군(花山君)이란 작위(爵位)까지 내렸다.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망명객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이용상은 몽골군이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앞장서 싸움으로써 은혜를 깊이 새기고 살았음을 보여주었다. ◆800년 전에도 베트남과의 교류는 빈발했다인하대학교 전임연구원 허인욱은 ‘高宗代 花山 李氏 李龍祥(고종대 화산 이씨 이용상)의 高麗(고려) 정착 관련 기록 검토’라는 논문을 통해 이미 800여 년 전부터 베트남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이와 동시에 이용상에 관한 보다 상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베트남 왕족 출신으로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에 관한 이야기는 화산 이씨 집안의 족보에 전한다. 현재 전하는 화산 이씨 집안의 가장 오래된 족보는 1921년에 해주에서 이승재가 간행한 ‘花山李氏世譜’(화산이씨세보)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의 베트남 리 왕조 탈출과 고려 정착 등의 내용은 ‘花山君本傳’(화산군본전)에 기재돼 있다. 이용상과 관련한 사실은 1925년의 ‘개벽’과 1928년의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일찌감치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이 내용은 고려시대에 베트남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이와 관련해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조흥국 교수는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고려로 이주한 리 왕조의 망명객 이용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전략)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유교적 전통에 입각해 가정에 충실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효심이 지극하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이주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인 13세기 초 베트남의 왕족이 한국에 와서 花山 李氏(화산 이씨)를 창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화산 이씨의 始祖(시조)인 李龍祥(이용상)이 베트남인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언론과 학계는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후략)”매우 적은 숫자가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을 피해 타국으로의 이주를 결행했던 이용상을 포함한 리 왕조 사람들.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1천70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그럼에도 이용상이 고려의 군사들과 함께 원나라 기병대의 말발굽 앞에서도 당당하게 저항했듯, 리 태조와 화산군 이용상의 후예인 이장발도 일본군의 조총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봉화 충효당’을 세워줄 정도의 기개였다. ◆이장발의 충효정신 서린 봉화에 베트남마을 조성을충효당이 자리한 봉화는 베트남에 뿌리를 둔 화산 이씨,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베트남과 쉽게 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그렇기에 ‘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의 주요한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였다.이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박현국 봉화군수는 지난해 12월 리 왕조의 태동지인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와 ‘우호협력 강화 협약서’를 체결했다.이미 몇 년 전부터 봉화군과 뜨선시는 베트남마을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왔다.체결식이 열린 날 항 바 위 뜨선시 인민위원장(한국의 시장격)은 “봉화 베트남마을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역사적 뿌리를 공감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물론 앞으로 전폭적인 협력도 약속했다.이에 박현국 군수는 “베트남마을의 성공적인 조성은 봉화군과 뜨선시의 우의를 다지는 것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의 동반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2020년 이전엔 한 해 200만 명을 넘나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오갔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하노이를 여행할 때 리 왕조를 떠올렸을 듯하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 2023년 봄. 베트남으로 향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고 있다.이를 감안해 지난 3일엔 베트남관광총국 응우엔 쭝 칸 총국장이 주한 베트남관광청을 찾았다.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관광대사는 화산 이씨 31대손 이창근(베트남 이름 리 쓰엉 깐)씨. 두 사람은 베트남 관광 홍보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는 역사와 관광 외의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봉화군 역시 지난 3월 국내 각지에 거주하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을 충효당으로 초청했고, 거기서 베트남마을 조성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09

소규모 황금노선 운항 성공 ‘투자 선순환’ 부른다

□ 에어포항, 우여곡절 겪으며 포항공항에서 사라지다포항의 하늘길 관문인 ‘포항공항’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활주로 재포장공사 이후 취항 항공사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다.이에 포항시·포항시의회·포항상공회의소·포항지역발전협의회가 국토교통부와 아시아나항공을 방문해 35만여 명이 참가한 경북 동남권 주민들의 서명부를 전달하는 등 항공기 재취항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김포행 대한항공의 재취항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아시아나가 운영하던 제주노선이 없어져 ‘절반의 성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운항횟수 축소, 노선의 단일화, 지속적인 재정지원부담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자 아예 민자 유치를 통한 지역 저가 항공사 설립으로 돌아섰다.설립 초기, 한중 합자사업 형태로 추진되기로 했으나 당시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로 인해 무산된 후, 동화전자가 초기 자금 1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2월 7일 포항∼김포 노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항에 나섰다.포항∼제주 노선과 김포∼포항 노선에 편도 총액 1만원이라는 파격적 할인도 운항 초기에 실시하며 이용률이 최고 85.5%에 달하는 등 인기를 얻기도 했다.하지만, 할인기간 이후 책정된 정상 가격이 KTX 요금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고,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박리다매’정책을 펼치며 잠재 고객들을 발굴하고 유지시켜온 행보와는 달리 에어포항은 그자리에만 머물렀다. 점차적으로 승객이 줄어들었고 최저 이용률이 40.4%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이에 에어포항은 매달 4억∼5억원 가량 적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고, 경영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더욱이 에어포항이 보유한 항공기 2대 운행에 적합한 인력 수준이 많아야 90명으로 업계가 분석했지만, 무려 120명을 고용하며 자금압박을 가중시켰다.또한 외부 투자자와 합리적인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임원진들의 절반 가량이 군 출신으로 배치돼 있어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할만한 대책도 성사시키지 못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경우, 군 출신들은 대부분이 비행기 조종사에 그쳤고, 경영진과 임원진들은 모두 타 항공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적을 낸 바 있는 ‘검증된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러한 문제점이 중첩되다보니 결국에는 ‘매각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기존 동화전자에서 신설 소형항공사 법인인 베스트에어라인으로 대주주가 바뀌게 됐다.동화전자 투자분의 15% 정도를 인정하는 조건과 동화전자의 기존 채무 50억 정도를 상환하기로 했고, 직원 고용도 보장해주기로 한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그러나 이미 ‘곪아있던’ 에어포항의 기존 채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고 베스트에어라인 측도 결국 기존 직원들을 대거 권고사직 등의 형태로 해고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급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직원들이 노동청 등에 소송을 내는 사태로 악화되는 등 회사의 명운이 더욱 암울해져만 갔다.이어 보다못한 경북도와 포항시가 출자지원금 40억원을 에어포항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이미 포항공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것으로 알려진 에어포항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끝내, 지난해 12월 1일부터 포항∼김포 노선, 12월 10일부터 포항∼제주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당시 에어포항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불편함과 실망감은 컸다.에어포항을 회사 출장용으로 자주 이용하던 한 시민은 “회사와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고 무엇보다도 업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어 자주 애용했다”며 “하지만 무턱대고 이리 운항을 중단해버리는 것은 이용객들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운항 중단 당시, 에어포항(베스트에어라인)은 중단 이유로 비행하던 CRJ-200기종이 지난 2007년부터 생산이 중단돼 정비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서라고 설명했고, 이후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기자회견에서 ‘포항 본사 사무실을 철수해 서울로 직원을 집중시키겠다’고 말한 뒤, 보잉 기종의 도입과 새 노선을 준비 중이라며 ‘장밋빛 계획’을 내세웠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에어포항의 재기가 어렵다고 본 포항시도 ‘새로운 지역항공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추가 투자자 등의 확보가 어려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시는 이에 포항공항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한항공의 포항∼제주 노선 재운항에 초점을 맞췄고, 지난 9월 16일 이 노선이 운항을 시작했다.그러나 대한항공이 기존에 수익을 내지 못해 시의 재정지원금을 받아온 김포∼포항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면서, 포항공항의 온전한 하늘길이 또다시 무산돼 버렸다.□ 포항 지역항공사 다시 취항하나세계 3대 항공사 사우스웨스트(South West)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 텍사스 댈러스는 요즘들어 가장 급부상하고 있는 ‘핫’한 도시다.미 연방 인구조사국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 사이 텍사스 주 댈러스 대도시권(댈러스-포트워스-알링턴) 인구는 14만6천238명이 증가하며 전체 인구 740만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신생아 수(10만 2천423명)가 사망자 수(4만5천826명)을 크게 상회했고, 국내 전입자 수가 전출자보다 5만8천829명 많아 미국내 최고를 기록했으며, 해외 유입 인구도 3만798명에 달했다.댈러스의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교통’편의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통 인프라 구축이 뛰어나 기업들이 사업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기업들이 사업 정착을 하면서 일자리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고 이에 뒤따른 부가사업도 증가하고 있다.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위치하면서 한인사회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10만명이 웃돈다고 추산되는 한인사회의 규모가 3만명 이상 더욱 늘 것으로 한인사회는 전망하고 있다.한인 김모(43)씨는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들어오면서 한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입지 선정에 까다롭기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선택은, 타 유수기업들에서도 반영되는 만큼 댈러스의 발전이 더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러브필드 공항의 터줏대감인 ‘사우스웨스트’항공사는 우리나라 포항공항 격인 러브필드 공항에서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국내 노선을 확장시켜 왔다.‘10분 턴’ 등 빠른 회전율로 특히, 시간이 촉박한 비즈니스맨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이러한 신뢰가 결국 기업들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평가다.댈러스 주민인 KIM(50·여)씨는 “대학생 때부터 사우스웨스트를 애용해왔다”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노선이 구축돼 지역 교통의 자랑거리이다”고 말했다.사우스웨스트 기장 출신인 빌 콜씨는 ‘에어포항’의 좌초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인 운영’이었다고 일갈했다.우선, 전문 경영인들과 회계사 등이 구성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최소 노선을 구비하고, 최소 인력으로 ‘여러번’ 운항하는 실리적인 운영방식을 보여야 흑자운영에 접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흑자운영이 전제돼야 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대해 추가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순환’구조가 형성된다고도 했다.빌 콜씨는 “포항 지역항공사가 재부활하려면 우선 시민들 중에서 사업자 등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나 지자체가 이러한 과정을 도우며 머리를 맞대 작지만 강한 항공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첨언했다.에어부산 측도 마찬가지다.에어부산 관계자는 “우리 에어부산도 초기에 일정부분 자금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황금노선이라 지칭되는 서울∼부산 노선의 성공을 위해 집중했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의 에어부산이 자리잡게 되는 큰 힘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울릉공항도 올해 말까지 설계공모를 마친 뒤 오는 2023년 공사에 돌입, 2025년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울릉도의 관광 수요는 물론이거니와, 포항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세운 새로운 ‘지역항공사’가 이를 통해 국내 노선 확장을 시도할 수 있어 그 존재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된다는 것이 업계 전현직 관계자들의 평가다.특히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비행시간이 1시간 정도로 짧고, 최소 6∼7시간이 걸리는 등 육지와 연결되기 위한 시간과 비용 모두 단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황금노선’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13

안전·편리·경제성 집중… 영남권 제1항공사 자리잡게 했다

□ 12년간 에어부산이 걸어온 길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8월, 부산시와 부산 지역 상공계가 힘을 합쳐 부산국제항공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 참여를 통해 에어부산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재출범했다. 에어부산은 지역의 항공교통 편의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2008년 10월 27일, 부산∼김포 노선으로 첫 취항했다. 당시 항공기 2대, 임직원 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 항공사였다. 포항의 지역항공사였던 에어포항과 비슷한 규모였다. 하지만 취항 초부터 일관되게 회사의 핵심가치인 안전성·편리성·경제성을 잘 지켜가며 운영해온 결과, 2019년 현재 26대의 항공기, 국내외 39개 노선, 1천400명이 넘는 임직원이 근무하는 LCC 대표 항공사로 거듭났다. 특히 취항 첫해인 200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점유율이 1.4%에 불과했지만 6년 만인 2014년에 점유율 34.5%를 기록하며 대형 항공사를 제치고 김해국제공항 이용객 1위 항공사로 등극했다. 현재는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에서 총 32%의 이용객 점유율을 차지해 명실상부 영남권 제1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 하늘길 확장의 일등공신, 에어부산지역의 항공 교통 편의 증진을 사명으로 출범한 에어부산은 2008년 부산∼김포 노선 취항 후 지속적으로 지역의 하늘길을 넓혀왔으며, 현재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승객 중 가장 많은 승객이 에어부산을 이용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는 가까운 해외 지역의 직항 노선이 없어 인천공항까지 가서 항공편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반대중교통수단은 수도권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유독 항공편만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 비해 노선 수나 운항횟수가 매우 적었다. 이러한 열세는 지역민들이 인천공항까지 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가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에어부산의 설립 목적 중 또다른 한 가지였다.에어부산은 현재 국내 7개, 국제 32개 등 총 39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초창기 당시에는 인기 노선이 아니었던 부산∼타이베이, 부산∼마카오 노선 등 신규 노선을 발굴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현재와 같은 인기 노선으로 만들었다. 또한 기존 대형항공사의 인천발 독점 노선이었던 몽골 울란바토르 노선에 어렵게 진입해 승객들의 선택폭을 넓혔으며, 대만 가오슝, 중국 시안 노선 등 부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노선도 적극적으로 개발·취항해 새로운 여행 수요를 창출했다.한국공항공사의 항공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은 약 1천700만 명으로 본격적으로 이용객 수가 증가한 2010년과 비교해 약 900만 명이 증가했다. 지난해 에어부산의 이용객은 600만여 명으로 2010년 대비 약 400만 명 증가했다. 김해공항 이용객 증가분의 절반 수준인 44% 이상을 담당하며 김해공항 전체 이용객 증가를 이끈 것이다.특히 에어부산이 국제선을 첫 취항한 2010년 이후의 전체 이용객 수 증가 추이와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수의 증가 추이가 같은 증가폭을 보이는 점을 감안해보면, 김해국제공항의 이용객 및 항공수요 증대의 일등공신이 바로 에어부산임을 알 수 있다.□ 에어부산의 성공 비결에어부산에는 독특한 이벤트도 있다. 7년째 ‘웃음 전용기’행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 이는 사우스웨스트의 직원 및 고객들의 웃음 유도 이벤트와도 흡사 닮아있다.올해는 코미디언 변기수와 오나미가 일일 승무원으로서 참여해 기내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이 행사는 매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에어부산의 대표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코미디언들의 유쾌한 입담과 기내방송을 진행하며 이용객들의 웃음을 자아내 ‘타면 즐거운’ 에어부산의 이미지 창출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음료 제공과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공연 관람 티켓 증정, 에어부산 굿즈 등 경품 추첨 이벤트도 에어부산에서만 이뤄지는 진풍경이다. 에어부산의 승무원들이 직접 야구장에 등장해 시구를 하는 행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구 경기 관람시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평소 기내 안전방송을 하듯이 안내하는 색다른 장면도 연출됐다.지역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의 개발을 통해 에어부산을 알림과 동시에, 향후 국내외 노선 개척시 잠재 이용고객을 미리 선점하는 기대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마케팅 효과가 에어부산의 탑승 자체의 매력을 전달해 이용객들로부터의 좋은 반응도 얻고 있다.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의 ‘2018년 항공교통서비스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에어부산은 ‘예약 및 발권의 용이성’과 ‘탑승 수속의 용이성’, ‘정보제공의 적절성’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이용자 만족도 1위에 올라섰다.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에어부산은 부산지역 사람들의 애향심을 크게 자극하는 이미지인 ‘부산 갈매기’모양을 로고로 사용해 일명 ‘끼룩이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고 있다.“항공사 규모·조건 맞는 틈새노선 발굴 중요해”인터뷰 ▶▶ 박진우 에어부산 홍보팀 과장-에어부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부산국제항공으로 창립됐다. 부산시와 부산상공계 기업체들이 십시일반해 투자금을 모아 시작했다. 특히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에어부산의 산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부산시와의 가교 역할, 아시아나 기업 유치 등 혁혁한 도움을 주셨다. 사우스웨스트의 ‘허브 켈러허’와 비슷한 역할을 하셨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가 대주주로 참여했고 이때 ‘에어부산’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해 10월 비행기 2대로 부산∼김포 노선을 취항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LCC 항공사 운영의 애로사항은.△LCC가 안전하지 않다는 막연한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선행 과제였다. 이에 안전 관련 투자에 초기 역량을 집중했다. 기존 대형항공사로부터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영업과 계약부분 등 지역 여행사들이 에어부산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는 ‘텃세’가 존재했다. 또한 운항승무원을 채용해 양성하면 일부를 대형항공사에서 빼가기도 했다.-에어부산을 자랑한다면.△가장 안전한 항공사이자 정부로부터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LCC 항공사가 ‘에어부산’이라고 자부한다. 국내 3대 서비스 평가기관에서도 LCC 중 유일하게 최고 7년 연속 등 1위를 계속 선점하고 있다. 안전에서도 검증됐고 지역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항공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특히 부산지역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일반사무직 인원의 70%가 지역 출신으로 구성돼 있고 올해로 12년째인 에어부산은 직원수 기준으로 부산 기업 중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포항 거점 LCC 항공사 설립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에어부산은 2014년부터 대한항공을 제치고 김해공항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이 과정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 대형항공사뿐만 아니라 KTX·SRT 등과도 경쟁해야 했다. 이에 출장 수요가 많은 점에 착안해 신속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에 주력했다.항공사는 또한 자본금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데, 포항에서도 주요 대기업·중소기업들이 십시일반해 지역 하늘길 창출에 도움을 주는 방식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넉넉한 자본금은 곧 안전과 서비스로의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토부에서도 최근 신규 LCC 항공사 면허 발급시에도 자본금 헤드라인을 따로 정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지역항공사 설립을 준비하는 포항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각 지역에 맞는 항공사는 그 존재가치가 분명하다. 유럽의 경우, 소형항공기를 운항하는 지역항공사가 많이 있다. 포항지역에 맞는 노선을 우선 검토해야 하고, 울릉공항이 신설되는 것을 대비해 울릉 노선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조건 특정 노선을 고집하기보단 항공사 규모와 조건에 맞는 틈새노선을 발굴해 특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06

직원을 사랑한 사우스웨스트, 탄탄한 조직력 비결 됐다

□ 직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사우스웨스트설립 초기, 임원인 킹이나 라마 뮤즈 등은 사원용 선술집에 가서 직원들과 격의 없이 맥주를 마시는 일이 흔했다. 일례로 이런 모습을 본 경쟁사 브래니프 조종사들은 놀라서 맥주 잔을 떨어뜨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특히 킹과 라마 뮤즈는 직원들의 만남을 통해 승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승객들의 반응을 궁금하게 여겨 물었다고 한다. 킹은 현장에 나가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겼다고 알려졌다. 한달에 25∼30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항 현장을 점검할 기회를 가졌다. 심지어 킹은 1971년에 현장에 나가 최전선에서 뛰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날을 제정함으로써 이러한 행동을 하나의 기준으로도 확립했다.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 그는 올해 1월 3일(미국 현지시간) 87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사우스웨스트 제공□ 의사소통이 핵심이다사우스웨스트의 창업 첫해는 매우 어려웠다. 자원은 풍부하지 못했고 이용 승객수도 많지 않았다. 비행기 연료조차 두달씩이나 라마 뮤즈의 개인 신용카드로 구입해야 할 정도였다.지상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것도 낡아서 잘 가동되지 않았다. 때때로 직원들은 아주 낡았거나 버린 장비를 구해다가 대체품으로 사용했다. 한창 브래니프와 사우스웨스트 사이에 치열한 법정공방이 오갈 때여서 갈등이 심했지만, 브래니프 정비공들은 부품이나 도구를 사우스웨스트에게 빌려주기도 했다.어쩌면 불쌍하게 생각했거나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을 공산도 크다. 업계 기준으로 볼 때 지상 장비가 불충분하고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사기는 어느 회사 못지 않았다고 한다.열성적이고 직업 윤리가 강한 직원들은 항상 중진들과 격의 없이 의사소통을 했고 ‘재미를 추구하는’기업문화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외인구단이었던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사우스웨스트 초창기 직원들은 상당수가 다른 항공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당시 망해버린 퍼듀 항공사 출신이 많았고 군대 출신들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사우스웨스트의 문으로 들어오게 됐다.이런 사람들은 실직이 얼마나 뼈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직원들은 남들보다, 다른 경쟁 항공사들보다도 더 잘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10분 턴’ 등도 이러한 절박한 마음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오게 된 정책이였다고 회상한다.조종사, 승무원, 정비공 등도 틈만 나면 기내로 들어가 좌석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수화물을 정리하는 일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들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실제로도 정말 해냈다.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때 금기사항이 2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못해’와 ‘그건 내 일 아니야’였다. 이러한 생존 전략은 창의적인 정신만 함양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유대 의식을 아주 단단하게 단련시켰다.인터뷰 ▶▶ 빌 콜(BILL COLE) 전 사우스웨스트 기장험난했던 법정 소송과 갖가지 방해 공작에도 사우스웨스트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성공했다. 이러한 전설을 남긴 초창기 직원들은 아직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이 강하다. 22년 동안 사우스웨스트 항공기를 조종했던, 창립자 중 한 명인 허브 캘러허와 개인적으로도 교류가 있었던 빌 콜 전 기장을 만났다.-본인의 소개를 부탁한다.△이름은 빌콜, 올해로 77세다. 현재는 러브필드 공항 근처에 위치한 항공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사우스웨스트는 물론이고 지역 투자자들이 합심해 만든 비행역사의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고 있다.1965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전 참전도 한 경력이 있다. 대한민국도 군 복무 당시 임무 수행차 들린 적이 있어 친근하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 동안 사우스웨스트에서 기장으로서 일을 했다. 마지막 2년 동안은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성공한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에도 사고사례가 있었는지.△기체 결함 정도는 있어도 큰 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무 당시 단 한번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고도 옆의 비행기 펜이 고장나 조각이 날라오면서 우리 비행기 창가 승객 1명이 맞아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 기장과 부기장이 침착하게 대처해 비행기를 급강하시켜 산소마스크를 내려오게 했고 대형 인명피해를 막아냈다. 우리 사우스웨스트는 조종사 훈련이 굉장히 철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비상상황에 대응 방법도 이미 숙지해 항상 승객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사우스웨스트에 도움을 준 기관, 정부 등이 있다면.△정부는 우리에게 도움을 거의 안줬다. 거의 개인투자자들 중심이었다.새로운 지역항공사도 지자체나 우리의 ‘캘러허’같은 의지가 강한 인물이 나서서 투자자를 모으는게 우선으로 보인다. 사우스웨스트 설립자도 종잣돈을 가지고 개인 투자자들을 모아 시작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를 자랑한다면.△최고의 직장이었다.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사우스웨스트를 직장으로 가진 건 축복이었다. 일하면서 은행에 예금도 잘 되있고, 직원들간 소통도 잘돼 서로 잘 뭉쳤다.특히 허브 캘러허는 나에게 있어 영웅이었다. 기존의 리더가 아닌 전혀 색다른 타입의 리더였다. 다른 항공사는 해고를 잘 하는데 사우스웨스트는 정말 큰 이유가 아니면 해고를 안한다.그래서 직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흔히 회사가 어려울때 하는 정리해고도 우리 회사는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실수를 해도 기간을 주고 개선하도록 도와준다.-회사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면.△뭐니뭐니 해도 허브 캘러허가 제일 기억이 난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소속감을 느끼도록 항상 배려했다. 한번은 내가 조종사였을 때 공항에 내리면서 마주쳤는데 캘러허가 “조종사, 차가 어딨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 주차장에 있다”하니, 캘러허가 “1번 게이트에 내 차가 있으니 같이 가자”라며 운전해줬다. 캘러허는 항상 직원들에게 친근했고 스킨십도 서스럼없이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직원들을 안고 키스하기도 했다.또한 내가 아들과 야구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캘러허가 담배를 입에 물고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와 시구하는 등 그는 정말 자유분방하면서도 그릇이 크게 느껴진 사람이었다.요즘에는 컴퓨터로 하지만 옛날에는 조종사들이 모여 노트에 몇시에 비행기를 타는지 기록하는 ‘파일럿 라운지’가 있었는데 캘러허가 항상 매일 아침 나와 인사하고 ‘우리’라는 개념을 상기시켰다.콜린 법률사무장도 기억에 남는다. 사우스웨스트 조직 문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사우스웨스트 문화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어느날 직원들에게 줄 먹을 것을 챙겨온 적이 있는데 직원들과 얘기하다가 “우리 이날을 문화의 날로 만듭시다”라며 즉흥적으로 제안해 실제 기념일이 정해지기도 했다.-포항시를 기반으로 했던 저가항공사가 최근 운항을 중단했다. 항공사를 두고 싶어하는 포항시에 조언을 한다면.△논리적으로 봐도 이용자가 시민들이다. 시민 중 사업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커뮤니티 등 단체를 만들어 ‘우리는 지역항공사를 원한다’라는 슬로건으로 항공사 창립 또는 유치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대기업들의 지원을 받는 것도 좋을 듯하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30

고향 지킨 ‘뚝심’, 직원과 이익 나눈 ‘파격’ 통하다

□ 댈러스의 토종 공항, 러브필드댈러스 러브필드(DALLS LOVE FIELD) 공항은 지난 1917년에 군공항으로 개항해서 1927년부터 민항기를 취급하고 있다.러브필드의 ‘러브(LOVE)’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닌 191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조종사 모스 러브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THE REASON PEOPLE HAVE ALWAYS LOVED LOVE FIELD(우리가 러브필드를 러브(사랑)해온 이유’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스웨스트의 본사 역시 이 공항에 있다.러브필드 공항은 단순한 공항으로 보기보단 댈러스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함께해온 공항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 당하기 전, 1962년 11월 22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러브필드 공항에 첫발을 내딛은 바 있다.그때 미국 정계는 혼란한 상태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민권을 앞세운 정책이 각계에서, 특히 극우세력들의 거센 반발을 받는 상황이었다.케네디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텍사스 주 지역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의도로 댈러스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역사로 남기기 위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다운타운 딜리 플라자에 ‘6층 박물관(6th floor museum)’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에는 현재까지도 케네디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한 미국 갤럽의 조사결과, 미국인의 60% 이상은 여전히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었고 오스왈드 단독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러브필드 공항에서 내린 케네디 대통령은 시가지에 오픈카 종류인 전용차를 타고 부인과 행진하다가 암살범 오스왈드에 의해 모두 3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한발은 전용차를 빗나갔고,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과 텍사스 주지사를, 나머지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직격했다.오스왈드는 대통령 암살을 위해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다른 곳에 비해 덜 눈에 띄면서도 대통령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이기에 딜리 플라자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박물관에는 당시 행진 이후의 스케쥴이었던 댈러스 지역 유지들과의 만남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통령의 총격소식을 듣고 손을 모은 채 회복을 기도하는 사진 등 역사의 흐름이 여실히 소개되고 있다.박물관에서 만난 텍사스 주민 앤더슨 씨는 “러브필드 공항은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로 케네디 대통령 방문 역사는 물론, 현재 댈러스 발전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교통인프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한 사우스웨스트지금의 댈러스 제1공항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이 완공되어가는 당시, 사우스웨스트는 기존의 러브필드 공항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서 공항 관리공단 측에 신공항으로 옮겨 가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전했다.댈러스 도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러브필드 공항이 도시에 빨리 들어가 일을 보고 싶어하는 출장자들에게 안성맞춤 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들을 상대로 도심에서 30분이나 떨어진 포트워스 공항으로 발착지를 옮겨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사우스웨스트의 입장이었다.하지만, 1968년 채권 규정에 의하면, 신공항은 항공사들의 이착륙비와 시설 사용비 등 공항 이용료를 통해 공항 시설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기로 되어 있었고 만약 손실이 발생하면 공항 관리공단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결국 이전에 사우스웨스트가 휴스턴의 인터컨티넨털에서 하비로 옮겨 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휴스턴과 포트워스 일대의 항공사들은 또다시 사우스웨스트의 공항 비이전 고집을 괘씸하게 생각해 1972년 6월 6일, 법원에 고소한다.또다시 법정 싸움에 돌입한 사우스웨스트는 32일간의 심리 끝에 ‘러브필드 공항에 머물러도 좋다’는 판결을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연방 대법원에서도 상소를 ‘이유 없음’으로 기각했다.오히려 1975년 2월 14일 사우스웨스트를 공격한 브래니프와 택사스 인터내셔널이 미 정부에 의해 기소됐다. 혐의는 사우스웨스트의 정당한 영업 행위를 방해해 그들을 항공업계로부터 쫓아내려 했다는 것이었다.브래니프와 텍사스 인터내셔널은 ‘이의 없음’으로 혐의를 인정했고 10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1977년, 러브필드 공항을 사수하기 위한 5년간의 법정공방은 사우스웨스트의 승리로 끝났다.물론 33회에 걸친 사법부 및 행정부 처분을 거치면서 사우스웨스트는 전국의 법원이나 행정부 중 가보지 않은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경험(?)을 쌓았다.이후에도 1979년에 연방의회가 포트워스 공항을 살리기 위해 러브필드에서 장거리 영업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자, 사우스웨스트는 해당 조항에서 취항이 허가된 인근 주에 미니 허브를 만들어서 환승환적을 해가면서까지 영업했다.해당조항은 지난 2006년에 폐기됐고 사우스웨스트는 사랑하는 러브필드를 지켜냈다. 더욱이 공항에서 나가는 도로 이름마저 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의 이름을 따 ‘허브 캘러허 웨이’로 바꿔버렸다.□ 러브필드 사랑만큼 색다른 조직 운영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하는 사우스웨스트는 그 애향심만큼이나 조직운영에서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사우스웨스트의 정신을 키워온 캘러허는 1978년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인사부에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라’라는 특별 주문을 했다.사우스웨스트는 유머가 많은 사람일수록 변화에 잘 적응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창조적이며 또 보다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놀 때 열심히 놀고 남들보다도 더 건강하다는 것.사우스웨스트는 직장 분위기가 밝지 않으면 생산성, 창조성, 적응성을 떨어뜨리며 직원 채용 기준에서 유머를 최우선 조건으로 설정함으로써 직장 안팎에서 즐거움, 자부심, 재미 등을 찾아가는 방법을 고민한다.특히 직원을 자원 이상의 존재로 여긴다. 직원 채용에 통일된 하나의 근본 원칙으로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유머 감각은 물론이고, 남들에게 베풀 줄 아는 이타심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중요 기준이다. 즉, 태도를 본다는 것인데 실제로 항공업계에서는 파격적인 회사 제복인 버뮤다 반바지를 입을 용의가 있냐고 물어보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탈락시켰다.모험정신을 본다는 의미로,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하려고 달려든다는 정신을 함양시키는 문화로써 사우스웨스트에 유난히 장기 근속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로도 들고 있다.‘10분 턴’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자세가 이미 입사에서부터 만들어짐을 볼 수 있다.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의 이익도 직원들에게 나눠줄 만큼 파격적이다. 1973년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직원을 위한 이익 나누기 계획을 도입해다.오늘날에도 모든 사우스웨스트 직원은 채용된 다음해 1월 1일자로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사우스웨스트는 세전 소득의 15%를 이익 나누기 계획에 배정한다. 1970년대에 사우스웨스트는 사원들의 임금 양보를 요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주식을 나눠 준 유일한 항공사였다.1973년 이래, 매년 이익을 내온 사우스웨스트는 이익을 직원들에게 나눔으로써 오히려 주가가 몇배로 뛰어오르는 진풍경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익 나누기는 중역들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0-23

‘무조건 성공’ 보장 없어… ‘지역관광 상생’ 전략 세워야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지난 10월 18일 ‘목포해상케이블카’ 탑승체험을 한 후 정인채 새천년종합건설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도지사가 직접 케이블카 사업을 맡은 건설사에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이는 그만큼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전남도청에 따르면 새천년종합건설은 850억원을 투자해 목포 북항∼유달산∼고하도를 잇는 총 연장 3천234m(해상 820m·육상 2천414m)의 목포해상케이블카를 조성해 지난 9월 개통했다. 이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운행거리와 전 세계 최고 지주 높이 155m를 자랑하고 있다. 목포해상케이블카 개통 이후 18일까지 33일간 케이블카를 탑승한 이용객 수는 21만1천여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6천400명이 이용한 셈이다. 주중 5천여명, 주말 1만여명이 이용하는 등 케이블카 개통으로 목포를 찾는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서남해안을 대표하는 명품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김 지사는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최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새천년종합건설의 아낌없는 투자와 헌신에 감사드린다”며 “전남 서남해안의 아름다운 섬과 바다 등을 세계적 해양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전남의 새천년 비전인 ‘블루투어(Blue Tour)’ 실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지역 사회가 똘똘 뭉쳐 케이블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경우도 있다.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전형적인 예다.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의 경우 이를 백지화시킨 환경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와 관련해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추진위원회는 지난 10월 10일 양양군 양양읍 남대천 둔치에서 ‘환경부 규탄 범도민 궐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앞서 환경부는 지난 9월 16일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과 관련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자연환경과 생물 다양성 등에 미칠 영향과 사업 승인 부대조건의 이행 방안을 검토한 결과, 환경 가치 훼손이 심각하고 보완 대책도 미흡해 사업이 재검토돼야 한다”며 부동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15년 8월에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낸 이후 4년 만에 이러한 결정이 떨어지자,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환경부는 적폐를 내세워 강원도와 양양군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사업을 불허하려면 일찍 할 것이지 수년 동안 끌어오다가 이제 와서 부동의 한 환경부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즉각 반발했다. 김진하 양양군수 역시 “양양군민 모두가 단합된 힘으로 밀고 나가자”고 밝히는 등 민관이 하나 돼 케이블카 사업을 다시 재개하기 위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들 사례 외에도 통영케이블카의 성공으로 촉발된 케이블카 건설 사업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수많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다. 포항을 비롯해 강화, 춘천, 화성, 거제 등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케이블카 사업에 뛰어드는 등 전국이 케이블카로 들썩이는 상황이다.□ 양날의 검, 케이블카그렇다면 케이블카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사업일까.여수해상케이블카의 경우 출발은 좋았으나, 현재 시와 업체가 소송을 벌이며 시끄러운 상황이다. 사업 시작 당시 운영업체에서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지역사회 환원 명목으로 내기로 했었지만, 이를 약 2년 전부터 거부하며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어 업체 측은 지난 2016년 만들어 여수시에 기부한 오동도 주차타워도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지를 최근 내비치고 있어 지역 사회와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이는 기본적으로 민자사업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데, 사천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천바다케이블카의 경우 “민자사업 이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관광 사업의 경우 서로 상생하는 ‘공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천시시설관리공단 박태정 이사장은 “우리나라 케이블카 중 케이블카 수익만으로 제대로 돌리는 곳이 절반도 될까 말까다”며 “사천시와 같이 시설공단이나 공사가 하는 것이 버티는 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카의 미래에 대해 “어느 시점에 가면 분명히 인건비가 나오지 않을 경우가 있다”면서 “만약 시에서 운영한다면 적자분에 대한 보전이 되면서 재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겠지만, 개인 회사는 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 이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실패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케이블카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이와 관련해 “이 상태로 가면 5년 내나 10년 내 적자로 가지 않을까 싶다. 다른 것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주변에서 연계하고 소비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로서의 케이블카를 강조했다. 즉 주변과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부분은 민자 사업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을 내비친 것이다.그는 “개인이 한다면 주변 땅을 다 사서 하지 않는 이상 서로 상생하는 점은 불가능하다. 케이블카를 실컷 지어놨더니 주변 식당이나 상가가 돈을 벌어가는 상황이 온다면 사업주는 어떤 판단을 내리겠나. 고철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10년을 해야 본전을 찾을 것이다. 그 이후를 돌아봐야 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포항은 아직 시작단계, 지역 사회와 충분한 소통 필요민자 사업 이슈 외에 지역민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는 해운대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상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지역사회는 찬반 논란이 가열되며 둘로 쪼개진 상황이다. 반대 측에서는 “공공재인 부산 앞바다가 기업에 사유화되고, 동백유원지와 이기대가 상업 개발로 환경이 훼손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찬성 측에서는 “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연간 31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케이블카 도입은 필수다”라고 맞서고 있다.포항의 경우 아직 시가 업체와 MOU만 맺은 상황이어서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타 지자체의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사업 실패 확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지 선정부터 사업 추진 방식까지 전부 백지화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민을 포함한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소리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더라도 지역 관광과의 상생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다. 만에 하나 케이블카가 수익성 저조로 폐쇄돼 흉물로 전락한다면, 영일만관광특구 지정으로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포항 관광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입지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하다. 포항의 현 사업지인 영일대해수욕장과 관련해 타 케이블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풍광이 걱정스럽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즉 동해 자체가 지평선 외에 볼 것이 없는 상황에, 영일대 해수욕장의 나름 장점인 포스코 야경의 경우에도 “산업단지라는 정서가 관광적인 목적으로 크게 와 닿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상생의 손으로 대표되는 일출 명소이자 호미반도 해안둘레길로 이미 풍광의 우수성이 입증된 호미곶과 같은 최적의 장소는 제외하고, 굳이 주거지와 상가가 몰려 있는 영일대해수욕장을 고집하는 것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계획대로 영일대해수욕장이 사업지가 된다면, 해수욕장과 바로 인접해 있는 주민들과의 갈등 또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이미 국제적인 행사로 거듭나고 있는 포항국제불빛축제만 하더라도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생기는 소음과 인파는 분명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여수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여수는 섬지역이고 교통이 평지와 비교하면 제한돼 있어서 일시적으로 몰리면 여파가 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며 “포항의 경우에도 케이블카 사업지 인근에 주거지가 있다고 하는데, 복잡한 곳에 설치하게 되면 교통 문제가 가장 걱정이다”고 밝혔다.사업 타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케이블카는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가 중요하며, 어떤 연령층을 주요 타깃으로 잡느냐에 따라 이 연계의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사업 초기단계부터 고령층을 중심으로 정적이고 휴양적인 프로그램으로 짤 것인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활동적이고 체험적인 프로그램을 짤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잡아나가야 한다.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케이블카가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전국에서 너도나도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케이블카 자체가 ‘레드오션’이기 때문이다.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파이만 늘어나면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포항시가 단순히 “MOU만 맺었으니 끝”이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19-10-21

‘어떻게 하면?’ 끊임없는 질문이 항공사 날게 했다

교통은 지역의 발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까지 모두 큰 강의 유역이다. 하나같이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다는 장점과 함께 교통이 편리하다는 특징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실크로드 또한 세계 각국으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로이다. 중국 비단의 로마로의 무역, 당제국과 비단길 무역, 불교의 전래 유통로, 몽골 제국와 동남아시아 및 해상 비단길까지 아우르고 있다. 현재 실크로드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의해 철도, 항로 등 신 비단길이 형성되고 있다.동해를 끼고 있는 포항시도 최적의 교통망 개설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환동해 물류중심도시도약의 길이 열려 있다.하지만, 인구 50만의 도시에 비해 하늘길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포항시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지역항공사 ‘에어포항’은 임금체불, 경영난 등으로 취항 10개월여만에 운항을 중단했다. 미국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두고 있는 세계 3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사례를 토대로 날개가 꺽인 포항의 저가항공사 재취항 가능성을 짚어봤다.□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은 정신에 있다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회사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신념, 의무, 사명감 등이 있다. 사우스웨스트도 예외는 아니다.이 회사 직원들은 단순한 수익을 내기 위한 고용된 직원이라기보다 스스로 항공사업에 동참한 ‘십자군 운동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신적 토대가 바로 사우스웨스트의 최저운임 유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직원들은 평상시에도 ‘우리 비행기를 타는 손님들을 어떻게 하면 잘 보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을까, 저비용 때문에 우리 회사 비행기를 타는 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해드릴 수 있을까’ 등을 수시로 확인하는 원칙을 고수한다.이러한 원칙들을 사우스웨스트가 포기했다면 미국 소비자들이 혜택받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요금 인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익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수익을 추구하는 이면에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바로 이러한 정신적 원칙에 기인하고 있고 이 점은 회사 창립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역사를 보면 용기와 인내로 점철돼 있다. 미국 항공 업계 역사상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처럼 극적인 투쟁을 거쳐 항공업에 진출한 유래가 없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샌안토니오의 사업가이면서 자그마한 항공 서비스 회사를 소유한 콜린 킹과 그를 지원하는 은행가 존 파커의 합작품이었다.1966년 킹은 대형 비행기를 가지고 텍사스 주의 주요 3개 도시를 운항하는 새로운 항공 회사를 만들겠다는 기획서를 들고 현재까지도 사우스웨스트의 역사적 인물로 일컬어지는 ‘허브 캘러허’를 찾아간다.캘러허는 처음엔 이 아이디어가 황당하다고 생각했으나, 흥미도 가지고 있어 사업구상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1967년 3월 15일, 캘러허는 에어 사우스웨스트 컴퍼니(현재 사우스웨스트)의 법인 설립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다.킹은 캘러허의 도움을 받아 사업 구상을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며 최초의 종자 자본을 모금했다. 2차 자본 모집에도 박차를 가했고, 정계의 정치적 도움도 요청했다. 결국 2차 자금 모집에서 킹, 캘러허, 내글리(캘러허의 처남), 피스(샌안토니오의 변호사·사업가·정치가) 등 4명의 사업가는 54만 3천 달러를 거두게 됐다.1967년 11월 27일 캘러허는 사우스웨스트의 신청서를 텍사스 항공 위원회에 제출했고 1968년 2월 20일, 항공위원회는 이 신청을 허가했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하늘에 비행기를 띄워 보기도 전에 브래니프, 트랜스 텍사스, 컨티넨털 항공사 등 기존 항공사들로부터 법적인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어려움 속에 싹튼 기업 정신기존 항공사들이 항공 위원회가 사우스웨스트에 항공업 면허증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이들 항공사들은 사우스웨스트가 취항하려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신규 회사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양측의 소송은 너무나 치열해 ‘텍사스 리포트’지는 한때 독자들에게 연예 오락이 따로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캘러허와 기존 항공업체를 대변하는 변호사들 사이의 법정 싸움이 매일 벌어졌으며 1심 법원에서 사우스 웨스트가 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것은 허가할 수 없다는 판결마저 내려졌다.종잣돈도 소송 비용으로 다 써버린 탓에 사우스웨스트 이사회 이사들은 피곤한 데다 좌절감마저 느꼈다.이사회 중 일부 이사들이 차라리 손절매하고 회사 설립 구상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마저 내놓았다.하지만 ‘파이터’캘러허는 당시 “여러분, 한 번만 더 싸워 봅시다. 내가 계속 회사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서겠습니다. 나에게 주는 변호사 비용의 지불을 무기한 연기해도 좋습니다. 또 각종 법정 비용은 내 호주머니에서 대겠습니다”라며 설득했다.캘러허의 열변과 사자후가 통했는 덕분이였을까.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엎고 사우스웨스트의 손을 들어주게 됐고 결국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업 면허를 받게 됐다.사우스웨스트가 중요한 싸움에서 이겼지만, 기존 항공사들은 ‘끈질긴 방해공작’을 그만두지 않았고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며 향후 몇년 동안에도 여러번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다행히 타 항공사에서 백전노장으로 알려진 라마 뮤즈를 신임 대표 이사로 영입하면서 희망의 불씨가 재차 살아났다. 뮤즈는 항공업계 친구들 및 관련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7백만달러의 자금을 추가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사우스웨스트의 초창기 법정싸움은 직원들을 오히려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직원들은 댈러스 모닝 뉴스나 댈러스 타임스 헤럴드 등 지역 신문지에서 본인들의 회사 전망이 암울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회사와 함께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경쟁 속에서 생존 전략을 찾아내다사우스웨스트는 저운임 정책을 혁신적으로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항공 업계는 민간 항공국에서 승인받은 균일한 운임을 책정했다.항공사들은 시장은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있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고 바라봤다. 항공료 인하는 곧 수입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존 항공사들은 항공기 수송에 문제가 생기거나 비용이 상승하면 곧장 항공료를 올렸다.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이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낮은 운임과 훌륭한 서비스를 연결시키면 얼마든지 새로운 승객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봤다.1973년이 되자 수익이 어느 정도 나기 시작한 상태에서 뮤즈는 리오그란데 밸리 일대에 눈독을 들이고 할링언 공항에 추가 취항을 신청한다.이 판단은 정확했고 당시 텍사스 인터내셔널이 심한 노사 분규에 휘말린 상태에서의 밸리 일대 공백을 정확히 노려 기존 승객수의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하는 성과를 거둔다.증가의 원인으로는 사우스웨스트의 낮은 운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탈 기회를 줬기 때문이고, 이를 통해 박리다매 가격 정책의 성공을 한번 더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또한 지금도 회자되는 ‘10분 턴’전략을 실시해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비행기를 빠른 시간 안에 회전시켜 정기 스케줄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 항공업계 내에서 정시 발착을 가장 잘 지킨다는 전통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기장 등 조종사와 타 부서 직원들도 비행기 출항 준비에 부서 구분없이 협력한 것이 비결이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16

낮엔 한려수도의 눈부심이, 밤엔 다리 밝히는 황홀한 조명빛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띄운 곳인 사천만에 자리를 잡은 사천시는 경남의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상으로는 여수시부터 거제시까지 이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다. 인구는 11만5천여명이며, 시 중에서 면적은 그리 크지 않은 약 399㎢로 전국 63개 시 중 58번째로 작은 도시다. 그러나 작은 규모가 단점은 아니다. 사천은 지형 요건이 매우 뛰어난 편인데, 시의 동과 남은 고성군과 남해군을 경계해 와룡산과 바다에 걸쳐 있고 서북은 진주시와 하동군이 경계하며 지리산이 뻗어내린 산악으로 형성돼 있어 해안평야가 남북으로 전개돼 있다. 또한 덕천·사천·죽천·백천·곤양천이 흘러 수리이용이 높고 토양은 비옥하며,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어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다. 사천시는 이 외에도 한려수도의 중심 기항지이며 서부 경남의 관문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자 수산물 집산지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온화해 농수산업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은 전략산업인 항공우주산업과 더불어 사천시가 남해안 해양관광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에서 대상을 차지한 삼천포 대교와 연인들로부터 가장 가고 싶은 곳 1위를 차지한 삼천포 대교공원 등을 중심으로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룡산, 각산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거리가 넘쳐나는 해양 관광의 파라다이스다. 그리고 이러한 관광의 중심에는 사천바다 케이블카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사천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2018년 4월 개통된 이래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어 사천시가 해양관광 거점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의 바다케이블카는 통영과 여수케이블카를 합쳐놓은 국내 유일하게 바다와 산을 동시에 지나가는 명품 케이블카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단 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지난 2015년 12월 설치사업에 들어가 2018년 7월 4일 준공했으며 사천시 동서동(초양도∼각산) 일원에 위치해 있다.국비 50억, 도비 100억, 시비 448억 총 59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2.43㎞의 길이에 정류장 3곳, 캐빈 45대가 운영 중이다. 왕복 시 운행시간은 20∼25분정도 소요된다. 사천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6월말까지 128만2천123명의 탑승객이 다녀가 186억여원의 이용료 수익을 냈다.사천시가 내세우는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장점은 무엇보다 ‘산-바다-섬’을 잇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라는 점이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산 아니면 바다를 잇는 단조로운 코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섬(초양도)과 바다와 산(각산)을 잇는 3개 정류장(대방, 초양, 각산)의 승하차 시스템을 적용해 더욱 역동적이고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안전성 역시 확보했다. 10개월에 걸쳐 풍동(風動)실험을 실시한 후 자동순환 2선식을 채택해 한겨울의 매서운 바닷바람에서도 흔들림을 최소화한 든든한 안전장치로 설계됐고, 순간 돌풍과 강풍 등 돌발상황을 대비해 모든 지주에 풍향, 풍속 계측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한 구조시스템도 마련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비상 엔진으로 구동용 케이블을 돌려 비상 운행하고, 자체 모터를 가진 특수 구조차가 캐빈에 직접 접근해 승객을 안전하게 구조하게 된다.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된다는 점도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특징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지지하고 있는 철탑부분을 통과할 때마다 덜컹거리는 진동으로 공포감을 느끼는데, 사천바다케이블카는 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돼 케이블카를 타는 내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직선코스(국내 대부분의 케이블카)가 아닌 대방역사에서 각산역사로 올라가는 구간이 초양역사와 대방역사 구간보다 약 26.6도가 꺾여 더욱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며 이 무진동의 묘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그 밖에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쾌적한 캐빈의 내부 환경을 고려해 10인승 중형 캐빈을 이용하고 있으며 최대 속도 6m/s로 시간당 최대 1천300명이 이용할 수 있다. 크리스탈 캐빈은 총 45대 중 15대로 바닥이 투명 유리로 돼 있어 816m 바다 구간을 최고 높이 74m(아파트 30층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와 연계된 사천 관광사천바다 케이블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는 다른 케이블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자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사천지구에 속해 있고, 이러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 역시 케이블카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사천 8경 중 제1경인 창선·삼천포대교도 케이블카를 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케이블카 선로 자체가 이 두 대교를 따라 건설됐기 때문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사천시의 대방과 남해군의 창선을 연결하는 연륙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낮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눈부심이, 밤이면 대교를 밝히는 아름다운 빛의 조명이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케이블카가 각산 정상에 도착하면 각산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약 해발 400m에서 사천시와 삼천포대교,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는 곳인 각산 봉수대도 전망대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으로, 과거 횃불과 연기로 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던 군사 통신 수단으로 삼국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산 봉수대는 각산의 정산인 해발 408m의 고지에 있으며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연락을 창선 태방산을 거쳐 받았다. 사량도의 공수산 봉수를 고성 좌이산 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사천시 관광진흥과 박용국 관광시설팀장“충분한 관광수익 올리는친환경 시설로 인정받아 ”- 사천바다케이블카만의 장점은.△바다구간 길이가 820m다. 즉 한려해상국립공원 위를 횡단한다. 이후 각산정류장까지는 산을 올라가기 때문에 바다와 산을 모두 지나갈 수 있어 누가 봐도 인프라가 뛰어나다. 사업비를 많이 들인 만큼 케이블카도 자동순환 2선식으로 지어져 매우 안전하다. 또한 바다 구간에는 지주를 박지 않아 환경적인 면도 고려했다. 1년 반 정도 운행하는 기간 강풍으로 인한 예방적 차원에서 잠시 케이블카를 세웠던 것 등의 조치를 제외하면 사고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사천 관광에 많은 도움이 되나△많은 도움이 된다. 케이블카가 건설되고 나서 재래시장 등 지역 상인들이 관광객들이 많아졌다고 몸소 느끼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워낙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숙박을 하지 않고 식사한 한 끼 해결하고 가더라도 엄청난 규모다. 케이블카 주변 땅값도 많이 올랐다.- 사업 추진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환경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이슈가 있었으나 큰 반대가 있지는 않았다. 기존에 개발이 많이 됐던 곳이라 오히려 케이블카를 설치하길 주민들이 원했다. 바다쪽에 지주를 박게 된다면 바로 어민들이 반대에 나섰겠지만, 지주를 박지 않는 쪽으로 건설을 해서 이 문제도 해결했다.- 사업을 시작하는 지자체에게 한마디△케이블카는 누가 봐도 공해 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고 기본 목적이 운송이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주택가를 지나는 곳이 많다. 주민들이 노파심에 많은 걱정을 하는 것으로 안다. 지역에 대한 발전 등을 생각하면 대의적인 측면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도 이를 적극 어필해야 한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07

천혜의 경관이 계획된 관광인프라와 만나 세계적 명소 탄생

서울 면적의 채 두배도 되지 않는 1천100여㎢에 7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홍콩은 최근 잇따른 시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지만, 원래는 아시아 금융과 물류 허브이자 쇼핑의 메카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곳이다.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그 이유에서인지 중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 2체제라는 이름 아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이며, 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영토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된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 흔적이 남아있는 이러한 이질적인 모습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차별된 많은 매력을 갖추고 있어 연중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등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천루들의 모습,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홍콩 영화의 태생지, 중세 중국의 건축물 유적, 서양·중국·동남아시아가 혼재된 문화 등 많은 것들이 홍콩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의 인파가 몰리는 곳은 흔히 홍콩섬과 홍콩섬 맞은편이자 중국 대륙과 붙어 있는 구룡반도다. 그러나 홍콩 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 섬도 ‘의도적으로’ 관광을 위한 각종 명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선 디즈니랜드가 있으며, 그다음으로 옹핑360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한 란타우 섬 일주 관광 코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옹핑360 케이블카는 홍콩을 1박 이상 머무는 관광객들이 들르기도 좋지만, 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비행기를 환승하려고 대기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서너 시간 짬을 내 홍콩을 구경하기에 최적화됐다.한해 2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옹핑360 케이블카와 그 주변 관광지에 대해 살펴보면, 풍광은 돈을 주고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관광 인프라가 맞물려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고 방문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란타우 섬 관광의 시작지 옹핑360 케이블카홍콩 란타우 섬은 1998년 국제공항이 생기기 전까지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공항 건설 이후 해변 휴양지인 ‘디스커버리 베이’, 유원지인 ‘홍콩 디즈니랜드’, 아시아에서 가장 긴 이중 케이블 선로를 사용하는 ‘옹핑 360’까지 들어서며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 내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란타우섬의 관광은 구룡반도를 통과한 지하철이 멈추는 퉁청역에서 시작하는데, 그곳이 바로 옹핑360이 위치한 곳이다.옹핑360은 퉁청역에서 출발해 포린사가 위치한 옹핑 빌리지까지 이동한다. 길이는 5.7㎞로 총 소요시간은 25분이다. 케이블카는 스탠다드와 크리스탈 두 가지가 있는데, 크리스탈의 경우 요금은 더 비싸지만 바닥이 유리로 이뤄져 발아래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5분이라는 시간이 얼핏 길고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란타우 섬의 다채로운 풍광은 그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다. 바다와 섬을 공중에서 바라보며 이동하는 경험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출발하면 가장 먼저 퉁청 개발 지역을 지나 자연 서식지이자 낚시·조개잡이로 잘 알려진 퉁청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이 해안은 습지와 바다 식물의 독특한 조합으로도 유명하다. 이어 매일 약 1천100회의 비행이 이뤄지는 국제공항, 아시아 월드 엑스포가 먼 거리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50㎞ 길이인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릿지의 전경 또한 탁 트인 남중국해와 함께 어우러진다. 홍콩 란타우 섬, 마카오 반도와 광둥 지역의 주하이 시를 연결하는 이 다리에는 인공 섬과 해저 터널도 있다. 특히 란타우 섬 일대는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라 케이블카 역시 친환경적으로 지어졌고, 그 덕분인지 잘 보존된 경관은 하이킹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78년에 설립된 22㎢ 면적의 이 공원에는 네이 락 샨과 옹핑 북부를 비롯해 선셋 픽, 이 퉁 샨, 리 파 샨, 란타우 픽 북부 경사로와 같은 꽤 많은 인기 하이킹 명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케이블카가 옹핑에 도착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티안 탄 부처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옹핑360 케이블카와 연계된 란타우 섬 관광옹핑360 케이블카는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지만, 란타우섬 관광을 시작하는 출발지로서의 의미도 있다. 즉 케이블카만으로도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 관광 인프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옹핑 빌리지다. 이 곳은 불교 테마 마을로 옹핑의 경치 좋은 자연에 동화되도록 설계·조경된 마을이다. 식당과 각종 기념품점 외에도 붓다의 길, 원숭이 극장 등의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옹핑 빌리지를 걸어서 조금만 지나면 바로 포린사가 나온다.홍콩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티안 탄 부처상(천단대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부처상은 높이 26.4m로, 연꽃 좌석과 받침대까지 포함한 총 높이는 34m다. 250t의 청동으로 만들어져 12년 동안 주조됐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야외 부처 동상이다. 관광 목적이 아니더라도 불교계에서도 유명해 세계 각지의 승려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68개의 돌계단을 올라 3층 제단에있는 큰 불상에 도달하면 플랫폼에서 란타우 섬과 남중국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포린사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타이오라는 어촌 마을이 나온다. 타이 오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어촌 마을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상 가옥들이 유명하다. 또한 핑크 돌고래가 출몰하는 인근 바다로 떠나는 돌고래 투어도 있다. 이 외에도 청사 해변, 홍콩의 유럽이라 불리는 디스커버리 베이 등도 들를만한 곳이지만, 란타우 섬 관광의 마지막은 시티게이트 아웃렛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옹핑360의 출발지인 퉁청역에 있는데 공항과 아주 가까워 입출국을 앞두고 방문하기에도 좋다. 아웃렛이라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대형슈퍼 TASTE도 있어 이를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옹핑360 케이블카의 위상옹핑360 케이블카는 란타우 섬 관광의 처음이자 끝이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동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 짧게는 한 시간, 적어도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케이블카 이동 구간마다 꽉 채워진 자연 풍광과 건축물들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타 관광지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의 역할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런 부분은 케이블카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케이블카는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전제로 하고, 거기에다 철저한 계획을 통한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가 뒷받침돼야만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30

100m 상공서 감상하는 도심속 바다 지역경제 활성화 원동력 키워낸다

포항시가 ‘해양관광 1번지, 명품해양관광도시’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바다’를 이용한 활발한 관광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시는 지난 8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영일만 일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영일만 관광특구는 포항시 환호동에서 송도동을 잇는 약 2.41㎢(약 73만평)로 우리나라 관광특구로는 33번째다. 영일만 일대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 중앙상가 영일만친구 야시장, 죽도시장, 포항운하, 송도솔밭 도시숲 등 여러 관광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포항의 관광메카로, 연간 11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관광특구는 현재 전국 32개로 경북도는 경주시(1994년), 울진군(1997년), 문경시(2010년)가 지정돼 있다. 경북 자체로 보면 문경관광특구 지정 이래 10년만으로, 영일만관광특구는 경상북도 내 유일한 도심 속의 바다를 끼고 있는 관광특구라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포스코 야경과 국제불빛축제,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포항물회와 호미곶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영일대해수욕장’ 일대는 우수한 해양관광 자원을 품고 있어 이번 지정으로 포항관광의 브랜딩 효과 및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관광트렌드에 부합하는 관광명소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이 중에서도 포항시는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인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의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바다 위 100m 높이에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영일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상케이블카는 이미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여러 사례가 많다. 이 중에서 성공적인 곳을 벤치마킹해 포항 해상케이블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선풍적인 케이블카 인기이달 초 다도해와 유달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전남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개통했다. 3.23㎞ 코스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왕복 40분이라는 탑승 시간 동안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 목포대교, 다도해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모두 55대의 케빈이 시간당 1천200여명을 태울 수 있고, 이 중에서도 15대는 바닥까지 투명한 유리로 제작돼 발아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이를 반영하듯 추석 연휴 기간 총 3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용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케이블카 설치 열풍은 비단 목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대유행처럼 번지며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케이블카를 추진하고자 발벗고 나서는 상황이다. 어림잡아 전국 50여곳에서 관광 케이블카를 건설 중이거나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러한 인기는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로부터 촉발됐다. 지난 2008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10년 넘게 지역 관광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통영 케이블카는 해마다 140만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누적 탑승객은 올해까지 1천4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케이블카 열풍이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케이블카가 서로 경쟁하며 수익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만일의 경우 폐쇄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환경 훼손의 가능성마저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일례로 부산 해운대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운대 해상케이블카 사업의 경우 찬반 논란으로 뜨거운 상황이다.이 사업을 둘러싸고 반대 측은 민자 사업에 대한 우려와 환경 훼손을, 찬성 측은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서는 상황이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설치 사업포항시는 해상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지난 2016년 말부터 준비해 왔다. 당시에는 영일대해수욕장 일원(포항여객선터미널∼환호공원 전망대)에 580억원의 민간자본을 투입해 2019년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시일이 일 년 가량 뒤로 밀린 상황이다.이에 포항시의회에서도 올해 6월 사업 현장을 방문해 “영일대 해상케이블카는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해줄 것”을 주문하며 신속한 건설을 요구하고 나선바 있다.시는 애초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바다 위 100m 높이에서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동해를 한눈에 감상하고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을 세웠다.이는 대한민국 대표 해양도시인 경남 통영과 사천, 전남 여수 등이 해상케이블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큰 바탕이 됐다. 이들 해상케이블카 탑승객은 연간 120만명에서 많게는 200만명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도 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처럼 포항지역에서도 해상케이블카가 완공되면 1천억원 이상의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와 약 1천4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포항시는 침체된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 산악케이블카보다 해상케이블카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성공사례도 해상케이블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포항의 해상 케이블카 사업은 일단 출발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어디까지 왔나영일대 해수욕장 일원(여객터미널∼환호공원)에 추진되고 있는 포항 해상케이블카는 애초 계획대로 길이 1.8㎞, 높이 100m의 자동순환식 왕복 모노케이블카로 추진되고 있으며, 사업기간은 오는 2020년까지다. 총 사업비도 내진 적용기준을 1등급으로 상향하면서 최초 발표 당시보다 100억원 가량 증가한 687억원이 됐다.사업비 모두는 민자유치 방식으로 건설되며, 2017년 6월 제3자 제안 공모 공고를 통해 그해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엔지니어링(주)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어 진행된 수요예측과 재무모델 등 사업성 평가에서는 연간 128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나타나며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2018년 11월에는 포항해상케이블카 특수목적법인이 설립됐고, 이 법인은 2019년 5월 사업시행지로 지정 통보됐다. 8월에는 GS건설이 특수목적법인 지분의 60%를 사들이며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계기로 케이블카 건설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이달 들어서는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본격적인 사전 준비를 마쳤으며, 10월 중으로 궤도시설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는 준공할 것으로 예상된다.환호공원 쪽 탑승장은 해변공원 인근 두호동 42번지 일대로, 환호공원 내 해변공원은 동해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로 유명한 곳이다.여객선터미널 쪽 탑승장은 항구동 58-54에 위치한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으로, 여객선을 이용하는 고객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포항시 관계자는 “케이블카 사업은 포항의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사업일 뿐만 아니라, 죽도시장·포항운하·크루즈·영일대 및 송도해수욕장 등 다수 관광지 시설과 연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며 “특히 신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16

전시회·예술교육·체험까지 ‘원스톱’ 복합문화예술공간 세계 예술산업 새 기준점 제시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토르토나 지구를 문화예술지구로 만들다이탈리아 밀라노는 화려한 패션과 명품거리로 대변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여느 성공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패션 1번지 밀라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존재했다.밀라노라는 도시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패션 1번지였고 100년, 200년 뒤에도 아무 노력없이 패션 1번지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면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다.이처럼 오늘날 밀라노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업이 있다.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이다.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1983년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이라는 이름으로 토르토나 지구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슈퍼 스튜디오 13은 오픈당시 사진작가, 미술감독, 패션디자이너, 홍보전문가 등 문화예술산업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사진스튜디오 13개로 구성됐다.독립적인 시설인 개별 스튜디오에 의상실, 분장실, 음향장비 등을 갖췄고 작품제작, 사진촬영, 홍보활동 등 모든 작업이 한 번에 가능했다.불과 2∼3년 만에 유명세가 퍼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스튜디오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슈퍼 스튜디오 13은 세계 예술산업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밀라노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모아 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그런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밀라노를 국제적인 패션도시로 만드는데 마중물이 되기로 하고 또다른 벽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슈퍼 스튜디오 피우’슈퍼 스튜디오 13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전시회, 예술교육, 체험활동이 가능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와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는 패션, 커뮤니케이션, 창조영역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공간을 밀라노에 제공하고자 했다.이에 그들은 슈퍼 스튜디오 13에서 200여m 떨어진 장소에서 생산공장을 가동했던 미국계 전기조명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떠난 폐공장부지 1만7천㎡를 매입해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만들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는 현대적이고 다재다능하고 횡단하는 멀티 장소이자 패션, 예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문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발한 사람들과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또한 밀라노 패션 위크(Milano Fashion Week),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로 대표되는 각종 행사, 전시회, 컨벤션, 박람회 등 대규모 행사 개최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사내 파티, 동호회 모임, 댄스공연 등 비공식적이고 소규모로 치러지는 행사를 위한 장소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크기가 다른 공간들은 가구, 자동차, 광고 영화, TV촬영 등 어떤 종류의 서비스든 넓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한 곳에 딱 맞는 공간이며 트럭형 입구 형태라 접근하기도 용이하다. □ ‘세계적 기업이 한 곳에’ 지상 최대 디자인 쇼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매년 4월 개최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약 1주일간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서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슈퍼 디자인 쇼(Super Design Show)라는 단독행사를 마련해 디자인 위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슈퍼 디자인 쇼는 예술과 디자인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크고 작은 글로벌기업의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며 상품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다.이탈리아 자국 기업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중국, 프랑스, 덴마크, 일본, 벨기에, 영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들이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한국에서도 삼성과 LG가 슈퍼 디자인 쇼에 참여해 국가 위상을 드높였다.시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이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2천명이 넘는 기자와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고 있으며 불과 4년 만에 지상 최대의 디자인 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치아라 페렐라 팔다(Chiara Ferella Falda) 슈퍼 스튜디오 홍보팀장은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이탈리아 밀라노이지만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없이 결과를 기대한다면 그 상태 그대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도 충분히 성공적인 쇼를 보여줬지만 앞으로도 더욱 뛰어난 쇼를 만들기 위해 인도, 러시아, UAE 등 이전까지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을 유치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지셀라 보리올리슈퍼 스튜디오 그룹 창업자 인터뷰비전과 진심을 팔아라장기적 투자 바탕으로창작활동에 매진하라포항 꿈틀로,한국의 밀라노로재탄생할 것모두가 안된다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어낸 그들은 이제 신화로 남게 됐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 공동창업자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사진) 대표와 남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의 이야기다.이탈리아의 유명 잡지 클래스(Class)가 선정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힌 보리올리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나눠봤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창업배경은△남편이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이었고 나 또한 패션관련 리포터로 근무하고 있어 패션, 예술,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작품제작, 사진촬영, 전시회, 예술가양성 등 모든 과정을 한 곳에 모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실행을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주어진 돈이 많지 않았는데 밀라노 도심의 건물은 입주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간을 찾다보니 토르토나(Tortona)라는 옛 공장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폐허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교통이 좋았고 건물임대료도 매우 저렴했다. 그리하여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원조인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을 설립했는데 이곳에는 사진촬영공간, 의상실, 예술인 양성학교 등이 마련됐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1999년 토르토나 구역 내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공장 부지가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정원과 테라스, 야외공간, 사무실, 창고가 있는 1만7천㎡의 넓은 공간이었지만 매각대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은행에 대출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비즈니스 계획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고민 끝에 투자설명회를 열어 당시 3천만유로라는 많은 투자금을 모았다. 우리는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팔았고 그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매입한 건물에는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세웠다. 단순히 예술활동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예술, 패션,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가능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 탄생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가 설립된 이후 토르토나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르마니(Armani), 펜디(Fendi) 등 유명 패션브랜드들이 줄지어 이곳에 쇼룸을 만들었고 크고 작은 공방들도 들어왔다. 오직 토르토나 만을 위해 일하는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역할도 토르토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포항 ‘꿈틀로’에 조언을 부탁드리자면△슈퍼 스튜디오 그룹을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4가지가 있다.엄격한 작품선정, 최상의 품질, 혁신적인 요소, 미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끝부분에 연결돼 있는 단어는 예술이다. 아무리 뛰어난 쇼여도 예술적인 요소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밀라노를 제작의 공간에서 창조의 공간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장기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창작활동에 매진한다면 꿈틀로도 포항이라는 도시를 창조의 공간으로 충분히 탈바꿈시킬 수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21

폐허가 된 공장에서 꽃 피는 예술… 세계 문화예술 허브로 재탄생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2차 산업인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수십년간 성장하다 최근 철강산업 성장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도 4차 산업을 재도약의 기회로 판단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세계에서 3번째로 구축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약개발, 질병원인 분석, 신에너지 개발 등 부가산업을 창출할 전망이고 포항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개발 중인 수중로봇, 국민안전로봇 등은 산업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새로운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예술산업이다. 인류 역사상 문화와 예술은 대중의 소비 속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산업화시킨 것이 바로 문화예술산업인 것이다.포항시도 지역에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조성에 나서고 있다.아직까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본지는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문화예술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침체된 구도심과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이탈리아 밀라노, 전남 순천 등 타지역 사례를 살펴보고 철강도시 포항이 문화예술도시로 재도약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본다.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 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19세기 밀라노의 대표 공업지역이탈리아 북부지역 최대 도시이자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인 밀라노는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수식어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20년 가까이 지내며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밀라노이지만 정작 밀라노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이탈리아어 ‘조나(zona)’는 영어 ‘존(zone)’과 같은 의미이며 조나 토르토나는 곧 토르토나 지구를 뜻한다.밀라노 서남부에 위치한 토르토나 지구는 1865년 포르타 제노바역(Porta Genova)이 들어선 이후 외곽의 농촌에서 도심시가지 중 하나로 급성장했다.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농경지와 과수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는 공장과 주택가가 대신하게 됐다. 토르토나 지구는 나빌리오(Naviglio)와 올로나(Olona) 두 하천에서 공업용수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고 포르타 제노바역에서 유럽 전역에 화물운송이 가능하다는 뛰어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까지 약 100년간 밀라노를 대표하는 공업지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이 시기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 생수업체 비슬러리(Bisleri), 조명업체 오스람(Osram), 식가공업체 네슬레(Nestle)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르토나 지구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했다.그런데 1960년대 말 생산체계의 급격한 변화와 에너지 위기로 인해 토르토나 지구에 자리잡고 있던 기업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살도는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제노바로 옮겼으며 많은 회사들이 다른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시켰다.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석유가격이 최대 4배까지 오르는 오일쇼크 사태가 발발하자 남아있던 공장들 마저도 문을 닫거나 해외로 생산시설을 빼냈다.토르토나 지구를 가득채웠던 거대한 공장 부지는 순식간에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이 됐다. 수만평에 이르는 부지가 한꺼번에 산업유휴시설화 되면서 일대는 우범지대로 전락했다.사람들이 떠난 거리는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며 암흑도시처럼 변해갔다. □ 폐허로 변한 공장지역, 예술가들의 성지로 재탄생하다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토르토나 지구에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1983년.이탈리아의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 플라비오 루치니(Flavio Lucchini)는 패션전문기자이자 자신의 부인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a Borioli)와 함께 토르토나 지구를 찾았다.10년이 넘도록 폐건물로 방치된 포르타 제노바역 인근 옛 상들리에 제조공장을 살펴본 그들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이곳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문화예술과 관련된 제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잡지, 광고, 홍보물 등에 활용하는 사업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사진작가인 파브리시오 페리(Fabrizio Ferri)도 사업에 참여하며 슈퍼스튜디오(Super Studio)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업체는 오늘날 토르토나 지구가 밀라노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1985년에는 유명 사진작가인 카를로 오르시(Carlo Orsi)가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며 문화예술사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루시아노 포르미카(Luciano Formica)도 비슬러리 제조공장의 일부를 개조해 자신의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1987년 또다른 사진작가인 지오바니 가스텔(Giovanni Gastel)은 자신의 작업실인 가스텔 앤 어소시에티(Gastel Associati)를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로 옮긴 후 세계적인 패션작가로 거듭나게 됐다. 밀라노시는 1990년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가 사용했던 2만㎡ 규모의 대형공장 건물을 매입했고 이곳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웅장한 오페라하우스라 평가받는 스칼라극장(Teatro alla Scala)의 무대제작실로 활용하고 있다.대장장이, 목수, 세트 디자이너, 경치 기술자,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등 150여명이 근무하는 이 무대제작실은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세트조립, 기계작업 뿐만 아니라 오페라 출연자들의 합창연습실과 공연 리허설을 위한 무대공간도 마련돼 있다.이밖에 199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최후의 만찬’을 복원한 예술작품 복원전문가인 피닌 브람빌라 바르실론(Pinin Brambilla Barcillon)도 토르토나 내 비아 사보나(Via Savona)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재탄생시켰다.유명 예술가들이 토르토나 지구에 하나 둘씩 입주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젊은 예술가들도 덩달아 토르토나 지역에 입주를 희망하기 시작했다.오래된 공장 건물은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노동자들이 출퇴근길로 이용하던 철도 선로는 패션모델의 런어웨이 무대가 됐다.근래에 들어서는 아르마니(Armani), 제냐(Zenga), 토즈(Tods)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토르토나 지역에 쇼룸을 설치하고 안도 타다오(Ando Tadao),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지역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토르토나 지역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 세계 문화예술 허브 ‘토르토나’ 토르토나 지구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브레라(Brera), 람브라테(Lambrate) 등 밀라노의 또다른 시가지와 함께 분산 개최하고 있다.토르토나 디자인 위크로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2004년 설립된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주도 하에 매년 4월 열리고 있으며 전세계 160여개국에서 30만명이 넘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행사 주관업체인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디자인 위크를 포함해 토르토나 지역에서 연간 10여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점포 임대를 희망하는 기업 또는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카운슬링을 하며 토르토나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4㎡에 불과한 작은 가판대에서부터 3천㎡에 달하는 옛 공장건물에 이르기까지 입주 희망자들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작업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하는 일과 매우 흡사해 보일 수 있으나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단순히 건물을 임대해주는 것으로만 자신들의 업무를 끝내지 않는다.토르토나 지구에 입주한 사업자들이 사업설계, 세트디자인, 설비구축 등을 위해 지구 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컨설팅업체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르토나 지구 내 업체들 사이에서는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자연스레 예술가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이렇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토르토나 지구는 최근 또 한 번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토르토나 지구와 150년을 함께한 포르타 제노바역은 예전만큼 기차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100m 거리에 포르타 제노바 지하철역(Porta Genova FS)이 개통되며 기차역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대부분 기차가 인근 기차역인 산 크리스토포로역(San Cristoforo)에 멈춰서기 시작했다.밀라노시는 역 주변 공간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토르토나 지구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토르토나 지구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조프(Zoff)씨는 “토르토나 지구는 산업단지를 문화예술지구로 변모시켰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나빌리오 운하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인접해 있는 장점 등이 복합돼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최근 밀라노 내 타지역에 토르토나 지구와 같은 문화예술지구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토르토나 지구 만이 지닌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사진/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14

모든 세대가 즐길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수준높은 공연 선사 최선

# 딜레마 1. 오스트리아엔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있다. 1년에 300회 가까운 클래식, 오페라, 발레 공연이 열리지만 극장 측에선 관객 동원을 걱정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공연이 입석까지 매진될 정도니까.‘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단원들의 기량은 “경제적 안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극장 단원 330여 명은 매달 극장으로부터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넉넉한 월급을 받는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생긴 건 지금으로부터 149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향악단, 오페라단, 발레단을 후원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다.극장 설립 초기엔 귀족과 돈 많은 딜레탕트(dilettante·호사가)가 주된 후원자였다면, 지금은 세계 유수의 기업과 예술 애호가들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십억 원씩을 흔쾌히 극장에 내놓고 있다. 이들이 후원을 통해 얻는 홍보효과 역시 크다. 포항을 포함한 대구·경북지역 공연 관계자들에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엔 150년 된 공연예술 전문극장이 없고, 오페라나 발레 공연 후원에 선뜻 나서는 이들도 드문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자체나 독지가의 적극적이고 통 큰 투자 없이 대중적 토대가 미약한 클래식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딜레마 2.관객이 없는 공연장은 ‘팥소가 빠진 붕어빵’과 다를 게 없다.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다.서울과 인근 인천·경기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자그마치 2천500만 명. 한국인의 절반이 그곳에 몰려 산다. 젊은이들의 거리 공연에도 수백 수천의 관객이 들어차고, 대중예술은 물론 발레와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연예술 관계자의 한숨 소리가 크지 않다.사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서울 사람들의 비율이야 다른 도시와 큰 차이가 없을 터.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핵심’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숫자다.포항의 인구는 대략 50만 명. 서울·인천·경기의 1/50이다. 포항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1천 석 극장에 오페라나 발레 관객을 가득 채우려면 서울 공연 기획자에 비해 50배 이상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그렇다고 공연장을 채우기 위해 ‘인구 늘리기 운동’을 벌일 수도 없는 일. 그야말로 딜레마(Dilemma·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가 아닐 수 없다. 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열악한 공연 인프라·적은 인구 등악조건에도 불구시민 위한 다양한 공연 마련에 열성더 풍부한 공연 예술 위한지자체·독지가 등 후원 아쉬워 ◆ 포항 공연예술계, 역량 강화와 적극적 마케팅으로 난관 극복공연예술계가 겪는 어려움은 비단 대구·경북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대부분의 도시들이 유사한 걱정을 하고 있다.그런 까닭에 “어떻게 하면 양질의 공연을 시민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홍보의 방식을 달리하면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아줄까?”라는 건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포항시립예술단은 시민들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민이 행복한 공연서비스 제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각 예술단의 화합과 결속을 위한 조직구조 개선과 단원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립교향악단을 이끌 상임지휘자의 영입으로 구심점을 세우고, 공연기획과 홍보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전임 사무단원도 배치할 계획이다. 여기에 지휘자와 연출가를 중심으로 비전을 설정해 공연의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예술단의 특성에 따른 정기공연과 합동공연, 기획공연과 초청공연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클래식의 대중화와 전통공연의 저변 확대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포항시립예술단의 각오다. 이를 위해 학교, 기업, 복지시설로 찾아가는 공연을 기획하고 포항의 명소 곳곳에서 야외공연과 테마공연도 펼칠 예정이다.시립교향악단의 경우 클래식에서부터 팝,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며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인식을 깨는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4회의 정기공연과 44회의 찾아가는 공연, 8회의 특별공연으로 포항시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 시립교향악단. 올해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찾게 된다. 정기공연 등과 함께 복지시설과 재난 현장을 찾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희망을 돌려주겠다는 의지도 충만하다.시립합창단은 지난해 이충한 상임지휘자가 부임했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조직력을 갖추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을 넘어 세계 속에 포항을 알리는 합창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비전도 세웠다.시립연극단 또한 올해 포항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 다양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주목받는 신예 박훈영의 창작극 ‘클로즈 업’과 정기공연 ‘철로’는 이미 무대에 올려져 극장에 모인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 포항문화재단이 준비한 기대되는 공연들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제의 공연’을 여러 편 선보이고 있는 포항문화재단의 하반기 공연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7월 14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펼쳐질 가족극 ‘브러쉬’는 ‘2018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작. 그림과 음악을 결합시켜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보일 이 공연은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아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입장료도 1만원으로 저렴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듯하다. 9월 14일과 15일엔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뮤지컬 ‘시카고’를 만날 수 있다. 아이비, 김지우, 남경주, 안재욱 등이 출연하는 이 공연은 이미 관람한 수많은 관객들이 재미를 보증하는 뮤지컬이다. 찬바람이 불어올 12월이 되면 국립합창단이 포항을 찾는다. ‘2018 국립 명품시리즈’로 명명된 ‘메시아’ 공연이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것. 몇몇 클래식 전문가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곡”으로 지목한 ‘메시아’가 자신에겐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 궁금한 이들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이처럼 포항시립예술단과 포항문화재단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비엔나에 비해 열악한 공연 관련 인프라와 서울에 비해 매우 적은 ‘공연 향유 인구’라는 조건 속에서도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지속하고 있다.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클래식과 오페라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과 무용, 그림 전시회를 포항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는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문화 관련 단체에겐 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처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포항의 공연예술계에 따뜻한 박수와 격려를 전하고 있다. 이 기획 연재기사가 시작될 무렵 “한 편의 공연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쏟는 땀과 열정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식기자끝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29

거리 전체가 공연 무대 함께한 모든 이들이 예술가이자 관객이었다

200m의 차없는 거리, 갖가지 공연 펼쳐져보여주기보다 스스로 즐기는 공연나이·지위·시간·공간 초월하는 홍대거리젊은 예술인 끼 펼칠수 있는 정책적 지원 필요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에 위치한 홍익대학교. 여타의 캠퍼스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그 대학과 일대 상수동-합정동을 엮어 지칭하는 ‘홍대 입구’는 이제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청춘의 해방구’ 혹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의 생산기지’를 의미하는.비단 10~20대만이 아니다. 젊음의 언어와 문화, 행동양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40~50대에게까지 ‘홍대 입구’는 낯선 명칭이 아니다. 서울 시민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驛) 9번 출구를 나와 골목을 꺾어 돌면 어울마당로가 나와요. 거기 가면 거리 공연 하는 애들이 지천일 걸요.”올해 홍익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선배의 딸에게 “금요일 밤에 거리에서 노래하거나 춤추는 젊은이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과연 그랬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5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홍대 입구 어울마당로는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하는 청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족히 200m는 넘어 보이는 차 없는 거리. 대략 10~20m 간격을 두고 통기타 공연, 힙합 공연, 보이밴드를 카피한 공연, 마임 공연까지가 다채롭게 펼쳐졌다.밤 10시가 넘었음에도 그곳은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초여름 밤의 열기로 마치 대낮 같았다. 독일의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가 ‘클래식과 오페라 공연의 메카’라면, 홍대 입구는 ‘버스킹(Busking)의 성지’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 “관객보다 내가 즐거워서 거리에 선다”는 청춘들‘버스킹’이란 행인들에게 노래와 춤, 연주 등을 보여주고 약간의 돈을 얻어내는 공연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날 어울마당로를 채운 젊은이들에게 공연 후 관객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돈’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해 보였다.아스팔트 위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한바탕 멋진 춤을 보여준 강한민(가명·19)씨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거죠. 세상엔 의사와 판사도 필요하지만 춤꾼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돈과 지위가 인간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라는 어른스런 말로 기자를 놀래켰다.강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문화·예술이 함께 하지 않는 정치·경제만의 성장은 나라를 절름발이로 만들기 십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클래식과 오페라 같은 ‘순수예술’과 더불어 ‘대중예술’이 함께 꽃을 피운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문화예술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과 록 밴드 ‘딥 퍼플’에서 기타를 연주한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의 협연은 그 생생한 사례다. 사실 21세기에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놓고 우열을 논한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행위다. “앞마을 달걀과 뒷동네 계란 중 어떤 게 맛있느냐”고 논쟁하는 것처럼.‘홍대 입구’와 인근 신촌은 1980년대부터 전위성과 실험성이 가미된 대중예술이 싹을 틔운 공간이다.록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신촌블루스’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의 우울함을 위로해줬고, 1990년대 홍대 입구 소규모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크라잉 넛(Crying Nut), 노 브레인(No Brain) 등의 펑크록 밴드는 출구 없는 세기말 젊은 영혼의 어깨를 따스하게 두드려줬다.노래는 물론 작사와 작곡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가수 김윤아 역시 그 시절 ‘미운 오리’란 이름의 밴드로 홍대 입구 클럽에서 활동했다. ◆ 젊은 예술가들에게 ‘판’ 깔아주는 정책적 지원 있어야2000년대에 들어서며 ‘홍대 입구’의 공연예술은 보다 다채롭게 발전한다. 어느 한 장르와 경향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어울마당로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1970년대 풍의 노래를 부르던 A씨(23)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홍대 입구에서 거리 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힙합과 댄스음악의 시대에 왜 하필 고풍스런(?) 통기타냐”고. 돌아온 대답이 철학자 방불이었다.“잘난 척 하는 것 같지만….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장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어떤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간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그저 공연을 펼치는 사람의 영혼이 향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밥과 빵이 사람의 육체를 키운다면, 공연예술과 문학, 미술과 영화는 인간의 정신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어울마당로에서 만난 버스커(Busker·버스킹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주장과 논리가 정연하고 뚜렷했다. ‘공연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중학교 2~3학년으로 보이는 소녀 4명에게 물었다. “늦은 시간인데 왜 집에 안 가고 있어요?” 친구라는 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이었다.“어른들은 우리에겐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알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중학생도 짜증나는 일이 많거든요. 근데 오빠들이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그래서 가끔 친구들끼리 어울려 홍대 입구로 놀러 와요.” 말을 마친 소녀들은 다시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버스킹이 한창인 어울마당로에선 보기 드문 중년남성이 있어 다가갔다. 홍익대 지척에 자리한 서강대를 졸업하고 금융 회사에서 일한다는 정경식(49)씨.그는 “요즘 부쩍 ‘이제 내게선 청춘이 사라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옛날 20대 시절도 떠오르고…. 그냥 살아가는데 위로가 돼요”라며 웃었다.이처럼 홍대 입구 ‘거리 공연’은 연주자와 댄서, 노래하는 이들은 물론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공연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홍대 입구’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예술공간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문화상품’이자 ‘관광상품’으로 만들기까지는 분명 서울시와 마포구의 지원과 노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보고 배울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서울처럼 공연을 볼 사람이 많지 않고, 문화를 소비할 이들도 적다”는 변명만으로 일관한다면, 지자체마다 외쳐대는 “문화도시 건설”은 앞으로도 헛된 캐치프레이즈에서 멈출 게 뻔하다. 공연·영화·연극·강연까지… 접할수 있는 모든 예술 한 곳에멀티플렉스 ‘KTG 상상마당’홍익대 아래 어울마당로를 걷다 보면 독특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7층 건물과 만나게 된다. 어둠이 거리를 장악한 밤이면 이 건물은 몽환적인 ‘마법의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은 커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 대신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다. ‘ KTG 상상마당(이하 상상마당)’이다.콘서트와 연극 공연, 영화 상영과 미술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 관련 이벤트가 연중 이어지는 복합 예술공간 상상마당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7년 9월 개관했다.청춘의 특권이자 책임이기도 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문화로의 행진’을 지원하는 이 공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상 7층·지하 4층으로 만들어졌다. 아담한 규모의 영화관·공연장과 함께 갤러리와 문화예술 교육 강의실, 사진 암실까지 갖춘 상상마당이 20~30대에게 특별한 장소로 활용되는 건 당연한 일.“예술가의 창작활동을 돕고, 관객과 방문자에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전달한다”는 상상마당의 슬로건은 기업의 바람직한 사회공헌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6월에도 밴드 ‘잔나비’와 버스커의 합동 공연, ‘오버 더 레인보우’라 명명된 전시회, 작가 지망생을 위한 아카데미, 예술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다른 멀티플렉스에선 보기 힘든 영화와 만날 수 있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공연도 즐기며, 내게 필요한 강의나 강연까지 접할 수 있어 한 달에 몇 번은 찾게 된다”고 하는 대학생 김현민(25)씨의 말에는 상상마당이 수행하는 역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문화계 원로들은 “무모할지라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는 청춘의 특권이다. 그 문화·예술적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 서울만이 아닌 지방 도시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하기 힘든 지적이다.글/홍성식기자·사진제공/구창웅  hss@kbmaeil.com

2018-06-22

1천명 넘게 모인 관객… 음악소리 말고는 잡음 하나 없어

# 장면 1.2018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쇤브룬 궁전에서 비엔나 필하모닉 교향악단 (Vienna Philharmoniker)의 야외 연주회가 열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가 애지중지한 아름다운 그곳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음악회가 펼쳐진 것. 연주회 시작 3~4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비엔나의 그날 날씨는 한국의 8월처럼 무더웠다. 그럼에도 연주회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중 짜증난 표정을 짓는 이는 없었다. 백발의 노신사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온 열 살 남짓 아이까지 마찬가지. 고등학생 손자와 쇤브룬 궁전을 찾은 루드비히(71)씨는 “나 역시 어린 시절엔 아버지와 함께 비엔나 교향악단 연주회를 찾곤 했다”며 “좋은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두어 시간쯤 기다리는 건 아무렇지 않다”며 유쾌하게 웃었다.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에 의지해 음악회를 찾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 다수의 관객들은 그들을 배려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최소한 비엔나 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만큼은 장애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면 2.2011년 7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비엔나 시청 건물에 수십m의 거대한 영사막이 드리워졌다.거기선 녹화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상영됐다.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야외 객석엔 1천 명이 넘는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관객석은 물밑처럼 고요했다. 끼리끼리 떠들거나 깔깔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놀라웠다. 다들 화면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오페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비엔나 시민 모두는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매너를 혹독하게 교육이라도 받는 걸까? 실내와 야외를 구별하지 않는다. 문화공연과 예술가를 대하는 비엔나 관객의 태도는 어디서나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관객들의 서로를 향한 정중함과 매너 ‘예술공연’에 대한 프로의식 돋보여소속된 단체에 문제 있으면 입단 1년차 단원도 지적… 비판정신 투철글 싣는 순서 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 관객 ‘매너’와 예술가 ‘프로의식’이 만든 비엔나 공연문화공연장에 함께 자리한 이들에 대한 배려와 예술을 향한 흠모와 존중이 비엔나 관객들을 상징한다면,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실력에 더불어 인격까지 높여가려는 프로의식은 비엔나 공연예술가의 특징이다.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쇤브룬 궁전, 문화예술기획사 등에서 만난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너나없이 “빼어난 프로의식과 비판정신이 오늘날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나 클래식 연주자, 연극배우와 발레단원은 자기가 소속된 극장이나 단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그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 입단 1년차 단원이 최고 경영자에게 극장 운영 시스템을 비판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하지만, 지적을 받는 쪽에서도 비판이 합리적이라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잘못된 관행을 바꿔나가는 것이 일상화 돼 있다고 한다.또 하나 독특한 게 있다면 비엔나의 예술가들은 행정적인 업무에도 능력을 보인다.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 내에는 재무, 서무, 홍보를 맡아보는 단원이 존재한다.성악가가 사무직원의 역할까지 겸하는 것이다. 재무와 홍보 등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없어도 합창단은 원활하게 운영된다.“문화예술을 잘 아는 사람이 그와 관련된 행정업무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비엔나의 공연예술가들에겐 있다. 비엔나를 떠나오던 날. 케른트너 거리를 다시 찾았다. 미려하게 우뚝 선 국립 오페라극장의 분수대 인근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그날도 클래식이나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것인지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멋진 공연과 만날 수 있다면 몇 시간의 기다림이 대수인가”라고 말하는 관객들. 매너와 정중함을 갖춘 그들의 기다림을 설렘으로 바꿀 정도니 비엔나 공연예술가들의 ‘실력’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2018년 초여름 비엔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은 물론, 관객을 기다리는 연주자와 성악가 역시 행복해보였다.비엔나 문화예술기획사 WCN 송효숙 대표한국의 미성숙한 티켓문화 아쉬워재능있는 음악가에 국가관심 필요비엔나의 공연예술과 문화가 지닌 특징은 무엇이며, 어떤 힘이 이 도시를 ‘클래식과 오페라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시켰을까?세계 각국의 공연예술가를 가까이서 만나온 비엔나의 문화예술기획사 WCN(World Culture Networks) 송효숙 대표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아래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연주되는 비엔나 시내 카페에서 송 대표와 나눈 이야기다.-비엔나에서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1996년 대기업 법인장이었던 남편을 따라 가족 모두 비엔나로 왔다. 2년 후 IMF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됐고, 여러 환경이 잘 갖춰진 비엔나에서 아이들 교육이라도 시키고자 남게 됐다. 여기서 지내다보니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생동하고 있는 클래식을 자주 접하게 됐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가들도 만났고,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WCN이다. 음악을 통해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잇고, 한국의 공연예술가를 유럽에 소개시키겠다는 꿈도 생겼다.”-한국과 오스트리아 관객의 가장 큰 차이가 뭔가.“연령층이다. 한국에 비해 비엔나는 공연을 관람하는 이들의 나이가 많다. 클래식을 지금의 대중가요처럼 듣던 시기에 그 음악을 사랑했던 중년층 이상이 공연장을 주로 찾는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극장들은 미래의 관객을 위해 청소년들에게는 제일 좋은 좌석을 5유로(약 7천원)에 예약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관객 연령층이 낮다는 것은 미래 한국 클래식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WCN을 해오며 보람됐던 순간과 마음 아팠던 순간은.“한국 연주자들이 유럽 무대에 데뷔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쁘다. 클래식 연주자가 유럽에서 데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력이 좋다고 모두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한국 연주자를 더 많이 유럽 무대에서 소개시키는 것, 이 부분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 믿고 있다. 비엔나의 많은 유학생들이 좋은 실력을 가졌음에도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 힘겨워 할 때면 우리도 가슴이 아프다.”-한국 클래식 공연문화는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한국은 공연에 대한 관심은 상당한데 티켓문화가 아직 덜 성숙된 듯해 아쉽다.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성장을 멈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이 주위에 많다. 국가나 기업이 관심이 기울였으면 한다. 그들이 한국의 이름으로 세계적 콩쿠르에 나가 좋은 결과를 얻어내며 성장한다면 그것이 결국 한국의 이름을 높이는 일 아닌가. 그 옛날 바하, 헨델, 모차르트, 슈만 등 유명한 작곡가들도 모두 가난했다. 그러나 그들 곁엔 후원을 아끼지 않은 귀족과 왕이 있었다. 비엔나 교향악단도 전 세계 기업들의 후원이 단원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힘이 비엔나의 공연예술을 지탱하고 있는지.“축적된 클래식 역사와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아름다운 음악이 그 힘이다.”-비엔나 공연문화예술 관계자들의 특징은.“그들은 약속과 신뢰라는 단어를 소중하게 여긴다. 공연의 기획부터 계약, 그리고 진행까지가 바로 이 약속과 신뢰 아래서 진행된다. 유럽은 한국보다 일의 진행이 많이 느리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이 유럽인들과 함께 일하는 게 때론 어렵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에 ‘느리지만 정확한’ 유럽 사람들의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왈츠와 알프스의 근사한 풍경이 있는 오스트리아는 작지만 멋진 나라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 외에도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과 미적 완성도 충만한 비엔나의 역(驛)들을 설계한 건축가 오토 바그너도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번쯤 비엔나를 찾아 문화예술의 향기를 느껴보시길 권한다.”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제공/WCN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15

수백년 이상 체화된 클래식 문화의 집대성 ‘공연예술의 본향’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다른 표현을 떠올릴 수 없는 올드타운(Oldtown·옛날 도심). 그 가운데 자리한 칼스플라츠(Karlsplatz)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면 137m의 아찔한 높이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슈테판성당(Stephansdom)이 보인다.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케른트너 거리(Kerntner Street). 0.6km를 직선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 양 옆으로 예쁘게 꾸민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도자기와 티셔츠에 새겨 넣은 기념품점들이 가득하다.해마다 유럽과 북미, 남미와 아시아 관광객 수백 만 명이 찾는 곳. ‘지구 위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 길의 끝에 ‘무언가’ 있다.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곳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이라는 건 누구나 알게 된다. 왜냐? 건물의 사방을 둘러싸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여행자들 때문이다.사실 오스트리아는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이 탄생한 곳이라 불러도 무방한 나라다. 초등학생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하이든 등이 태어난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뿐 아니다. 비엔나는 베토벤과 브람스가 수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불멸’에 가까운 곡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머물렀던 도시다. 그런 역사가 있으니 그곳에 ‘세계 최고의 공연장’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1869년 객석 2천여석의 극장 완공1년에 300회 가까운 공연 열리고다양한 가격대 입장료에 입석까지예술을 원하는 사람에 차별없어글 싣는 순서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 ◆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함께 포용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클래식 공연과 더불어 관악과 현악, 타악과 노래까지 결합된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메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다.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는 옛 도심의 성벽을 부수고 말의 발굽 모양과 유사한 커다란 순환도로를 만든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이때 국회의사당, 시청, 몇몇 미술관과 함께 조성됐다. 극장이 완성된 것은 1869년. 완공 기념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가 공연됐다. 객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2천여 석에 가깝다.클래식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풍문을 통해 한 번은 들어봤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규정짓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Metropolitan Opera House)와 더불어 이 극장을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이라 부른다.네오 르네상스 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된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외부와 내부가 모두 아름답다.극장으로 들어가는 계단 위에 달린 무지막지하게 큰 샹들리에와 보석처럼 반짝이는 로비의 바닥, 짙은 붉은색 관객석과 황금빛으로 장식된 천장화, 거기에 예전엔 왕이나 왕비, 공작과 후작, 백작이나 남작만이 앉을 수 있었다는 멋들어진 발코니까지.그러나 1년에 300회 가까운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이 극장은 이제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사실 100년 전만 해도 왕족·귀족과 평민은 좌석만이 아니라 출입구까지 따로 사용했다. 물론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비싼 좌석은 현재도 300유로(한화 약 37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돈이 부족해 좋은 공연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의 선진적 문화마인드가 3유로(3천700원)짜리 입석을 만들어냈다.힘들겠지만 두어 시간 동안 서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거나,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귀한 관객’이 될 수 있다. ◆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비하인드 스토리사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건 2011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여행에선 건물의 외부만을 구경했을 뿐 극장 안으로 들어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운이 좋았다. 지인이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 중인 송원철(49)씨를 소개시켜줬다. 대구에서 태어난 테너 송원철은 대학 졸업 후 10년 가량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다가 ‘보다 큰 꿈을 꿀 수 있는 유럽 무대로 가고 싶다’는 열망에 독일 뉘른베르크를 향했다. 그곳에서 열정을 펼치던 송씨가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합창단 테너가 된 것은 2012년 9월.그의 안내로 극장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들만이 오갈 수 있는 복도와 대기실, 연습실과 무대 뒤편까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바쁜 일정임에도 2시간 이상을 기자에게 내준 테너 송원철과 함께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의 안내와 설명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적지 않게 알게 됐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지하에는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어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에도 객석이 그다지 무덥지 않았다는 것, 19세기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엄격했던 탓에 남녀 가수와 배우들의 대기실과 연습실이 건물의 정반대 방향에 자리해 있었다는 것, 150년 전에 설계됐음에도 무대에서 객석으로는 소리가 잘 전달되지만, 객석에서는 어지간히 크게 떠들어도 그 소리가 무대에선 들리지 않는다는 것,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은 극장 맨 위층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 관객이 볼 수 있는 무대보다 2~3배는 더 큰 출연자와 스태프들의 공간이 극장 빨간 장막 뒤에 존재한다는 것 등….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 지닌 ‘하드웨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 후 테너 송원철과 극장 내에 자리한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이제 ‘소프트웨어’에 관해 질문할 시간. 아니, 그보다 먼저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왜 서울시립합창단과 독일에서의 솔리스트(Solist) 활동을 접고 이곳의 합창단원이 됐느냐”고 물었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한 사람의 진솔한 대답이 돌아왔다.“사람에겐 명예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저는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1~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시스템이 힘들었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명예가 아니라 평생 노래하는 겁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극장 합창단이죠. 좋은 인프라와 누구나 인정하는 높은 수준도 비엔나를 찾은 이유겠지요.”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합창단원, 발레단원, 배우 등 300여 명의 예술가를 월급 주며 고용하고 있다. 한 사람만 벌어도 가족 모두가 어렵지 않게 생활할 정도로 금액도 박하지 않다.테너 송원철은 여기서 정년까지 활동할 수 있는 계약을 이미 마쳤다. ‘생활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 당신들은 노래와 춤, 연기에 집중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주시오’라는 문화·경제적 약속을 흔쾌히 맺어준 것이다.그런 편안함 속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기 때문일까? 송씨는 우스개에도 인색하지 않았다.“독일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유럽 극장 관계자들이 물어요.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들 노래를 잘 하는가? 김치 때문인가’라고요.(웃음)” ◆ 비엔나가 가진 ‘문화·예술적 힘’은 어디서…“독일엔 인구가 2만 명 이상인 도시엔 클래식과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이 반드시 있어요. 놀라운 것은 그 극장마다 1명 이상의 한국 성악가가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테너 송원철에게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유럽,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공연예술의 본향(本鄕)’으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주저함의 시간 없이 현답이 나왔다.“이곳엔 수백 년 이상 체화된 클래식에 대한 지식과 문화가 있어요. 그것들이 공연예술에 대한 이해로 나타나는 거지요. 거기에다 이곳 사람들은 오페라 한 편을 보러올 때도 많은 공부를 하고 옵니다. 한국의 문화공연 관계자와 관객들에게 한마디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말만은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흉내’가 아니라 ‘노력 속에서 얻어지는 이해’라고요.”취재와 인터뷰가 끝났다. 예술가의 혜안과 안내자의 꼼꼼함을 동시에 보여준 테너 송원철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그 순간,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수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와 송씨가 학생 때부터 흠모했다는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떠올랐다.남성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역으로 노래하는 테너. 우리는 그들을 “청각적 행복을 위해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송원철 테너가 모나코나 도밍고처럼 ‘최고의 테너’가 되기를 빌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제공/Wiener Staatsoper·Michael Poehn

2018-06-08

포항의 문화감수성 높여 시민 삶 행복으로 이끌 저력 키운다

클래식 공연 한 편, 대중문화 공연 하나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사회가 진화할수록, 그 나라가 선진적인 형태를 취해갈수록 문화예술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정치·경제·사회적 발전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의 향유 욕구도 함께 성장해온 것이 우리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수의 시민이 다양한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건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본지는 최적화된 환경에서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펼침으로써 시민들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서울 홍대 인근을 밀착 취재했다. 이번 기획보도로 포항이 공연예술이 활성화된 도시로 나아가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한다./편집자 주포항문화재단문화진흥 위한 정책 개발예술 다양성 증진 위한 노력 열성포항시립예술단30년간 지역 문화예술 책임져활력 넘치는 문화생태계 구축 최선‘클래식 어렵다’ 선입견 깨고효과적인 공연홍보 방법 고민해야글 싣는 순서 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공연문화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가설’로 잘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 그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불린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청년시절부터 클래식 공연 보는 걸 즐겼다고 한다.특히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에 관해선 고전음악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문 기자가 “당신은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 “죽음요?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천재성에 클래식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궁금해진다.송강호와 설경구 등 유명 영화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곧잘 등장한다. “학창시절 본 한 편의 대중문화 공연이 내 발길을 연극판으로 향하게 했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이처럼 공연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밝혀주는 동시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세상사를 해석하는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것 역시 공연예술이 주는 선물이다. 그렇기에 대구·경북의 지자체들은 공연장을 만들고,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포항의 경우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지역 공연문화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단체가 최근까지 진행해온 기획·정기공연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현재 포항의 공연예술 현황과 향후 바람직한 발전 방향까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 포항문화재단 “공연작 선정부터 무대 철수 때까지 마음 못 놔” 2017년 1월 1일 “포항의 문화진흥을 위한 주요 시책을 지원하고 수행한다”는 슬로건 아래 설립된 포항문화재단은 지난해 16편의 기획공연을 포항문화예술회관과 포항시청 대잠홀 무대에 올렸다.클래식 공연에서부터 뮤지컬, 무용극, 역사인물 체험극, 아동 음악극, 미술 퍼포먼스, 국악 공연 등 그 장르도 다양했다. 이 기획공연들을 관람한 인원은 모두 1만1천187명.이는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양질의 문화행사를 추진해 포항의 문화 감수성을 높인다는 재단의 설립 목적을 위해 매진한 결과다.재단 출범 직후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축하음악회엔 1천여 명의 관객들이 모여 드보르작과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했다. 이날 연주된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과 가수 김조한의 노래 역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안재욱과 정성화 등 인기배우가 출연한 포항문화재단 출범기념 뮤지컬 ‘영웅’도 2천89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2017 문예회관과 함께 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작인 국립현대무용단 공연과 성악가 황수미와 피아노 연주자 헬무트 도이치의 ‘듀오 콘서트’, 역사인물 체험극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도 문화예술회관을 찾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이외에도 포항문화재단은 한국의 전통 장례 절차인 ‘염’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 연극 ‘염쟁이 유씨’, 아동 음악극 ‘캐나다에서 찾아온 바이올린 할머니’, 매력적인 미술 퍼포먼스 ‘페인터즈 히어로’, 송년기획 ‘꿈드림 콘서트’, 문화가 있는 날 작은 음악회 ‘오픈하우스 콘서트’ 등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적 갈증을 해소시켰다.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볼 때, 그리고 관객들이 만족감을 표현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포항문화재단 공연전시팀 문혜정 대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양한 공연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이미 상반기에 무대에 올린 ‘KBS교향악단 초청 2018 신춘음악회’와 넌버벌 코미디 ‘옹알스’, 가정의 달 특집 콘서트 ‘장사익 소리판-꽃인 듯 눈물인 듯’이 호평을 받았고, 앞으로도 가족극 ‘브러쉬’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명품 뮤지컬 ‘시카고’,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국립합창단의 ‘메시아’ 공연이 포항시민들과 만나게 된다. 올해 예상되는 관객 수는 1만3천여 명.포항문화재단 관계자들은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문화예술 창작기반 조성에 힘쓰며, 예술의 다양성 증진을 지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포항시립예술단 “문화도시 포항의 위상 높일 터”“문화예술을 통해 시민의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목표 아래 30년 간 꾸준히 활동해온 포항시립예술단은 지난해 재도약의 시간을 가졌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합창’ 협연이 주목받았고, 배우와 관객 사이의 벽을 사라지게 한 연극 ‘갈매기’ 또한 좋은 평가를 얻었다.“예술단의 경쟁력 강화, 조직 분위기의 변화, 단원 역량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는 포항시립예술단. 이의 실천을 위해 시립교향악단은 유명 지휘자를 초빙해 곡 해석의 수준을 높이고, 단원들의 연습 강도 역시 높이고 있다.시립연극단은 세계적 극작가 안톤 체홉의 ‘갈매기’와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등 순수연극을 무대에 올려 지역적 한계 극복을 꿈꾸고 있다. 이런 노력은 전년대비 관객 250%, 공연수익 300% 증가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시립합창단은 음악적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100회 시립합창단 정기공연 ‘봄을 노래하다’는 화려한 의상과 생동감 있는 율동으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는 관객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시립연극단과 제4기 어린이 단원들이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린 뮤지컬 ‘어린 왕자’도 눈길을 끌었다. 회당 800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린 이 공연은 23명의 어린이 단원들에게 스스로 공연예술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상생, 도약 그리고 비상”을 올해의 비전으로 선포한 포항시립예술단은 활력 넘치는 문화생태계 구축과 문화예술 플랫폼 조성에 진력하고 있다.지난해 11월 15일 포항을 덮친 지진으로 오랜 시간 준비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시립연극단 정기공연 ‘연애의 시대’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포항시립예술단이 2018년 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진중할 수밖에 없다.“시련을 극복하고 예술의 터전 위에서 성숙한 문화시민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포항이 문화예술 도시로 발전하는데 역량을 모을 것”이라는 게 이와 관련된 시립예술단의 설명이다.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은 ‘시민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연서비스 제공’ ‘각 예술단의 특성에 맞는 정기공연, 합동공연, 기획공연, 초청공연의 활성화’ ‘클래식의 대중화’ ‘야외공연과 테마공연의 확대’ ‘포항·울산·경주의 해오름 문화동맹을 선포하는 야외 합동공연과 해오름 합창페스티벌 참가’ 등이다. ◆ 공연예술이 가진 ‘긍정적 힘’을 낙관해야…평소 초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이 진행하는 공연을 자주 관람한다는 강민정(39) 씨는 “가까운 곳에서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기쁨과 함께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며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공연들이 많아졌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입장료도 저렴해서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하지만, 지역에서 꾸준히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없지 않다. 아직도 “클래식 공연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존재하고, 공연의 효과적인 홍보 방법도 매번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공연예술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까지 만족시켜야 하는 힘겨움 또한 존재한다.하지만 현실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예술단은 “항상 시민들이 좋아할 프로그램과 예술가를 선정하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예술이 가진 긍정적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 정도 마음가짐이라면 포항이 열어갈 공연예술의 미래를 낙관해도 좋지 않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