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관광의 미래 ‘동해선’ 로컬 매력을 잇다
오사카(大阪)는 메트로폴리탄이다. 한국이라면 부산, 인도라면 뭄바이, 중국이라면 상해, 미국이라면 뉴욕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야기.
메트로폴리탄의 특성 중 하나는 인근 중소도시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변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흐름까지 주도한다는 것이다.
“일본 혼슈(개개의 일본 섬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섬)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상업과 공업이 발달했으며 오래전부터 긴키(오사카, 교토, 나라 등 7개 지역)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는 백과사전의 설명은 오사카가 가진 위상을 간략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일본의 철도 교통망을 보더라도 오사카는 크고 작은 인근 도시와 멀리 수도인 도쿄, 또 하나 일본의 주요 고도(古都)인 나고야 등을 신칸센과 선더버드(Thunderbird·일정 구역을 운행하는 일본의 열차명)를 비롯한 각종 형태의 기차로 연결하고 있다.
혼슈 중서부 위치한 긴키지방의 중심지 ‘오사카’
도쿄~오사카 고속철도 110년 전부터 이미 계획
신칸센·선더버드 등 각종 기차들로 전국과 연결
‘오사카∼나라’ ‘오사카∼교토’ 오가는 철도 노선
신칸센 15분·전철 40∼50분 등 당일치기로 충분
역 앞에는 각각의 관광지행 버스들 줄지어 대기
목적지 팻말 든 안내원이 처음 찾는 여행자 도와
외국여권 소지자 전용 ‘호쿠리쿠 패스’ 구입하면
별도 비용 들지 않아 장기여행자들에 ‘안성맞춤’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일본은 이미 110년 전부터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고속철도를 고민하고 계획했다. 한국의 고속열차 KTX가 2004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한 세기가 더 빨랐다. 이에 관해 쓴 샬롬엔지니어링 최경수 고문의 논문 '일본 新幹線(신칸센)의 歷史(역사)와 고속철도 차량‘의 서두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1910년대에는 도쿄~오사카간 고속신선 ‘일본 전기철도’를 부설하는 계획이 민간으로부터 나왔지만 허가를 받지 못해 실현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현실적인 고속열차 개발은 만주를 횡단하는 남만주 철도(滿鐵)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만철(滿鐵)은 전철화 이전 철도에 증기기관차가 견인하였지만 1435mm 국제 표준궤간(일본은 광궤라고 부름)을 사용한 고규격 노선이었으며, 보수적인 일본 철도성(鐵道省)과는 한 선을 그은 선진적인 시도였다.”
▲도톤보리의 관광객들 “여길 왔으니 교토와 나라는 가야죠”
포항에서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계절 무관하게 관광객들로 축제장을 방불케 하는 ‘핫 스폿’ 도톤보리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1km 남짓의 오사카 운하 양쪽으로 수백 개의 기념품점과 식당, 주점이 밀집해 있는 곳.
누군가가 농담처럼 “도톤보리 글리코 간판 앞에서 들리는 언어는 절반이 한국어, 절반은 중국어”라고 말한다. 가보면 알게 된다. 그건 농담이 아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글리코 간판’ 앞에서 글리코를 흉내 내는 여행자들이 친구나 식구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쁘다. 나 홀로 여행자는 카메라 렌즈를 제 얼굴 쪽으로 돌려 기어코 ‘셀프 컷’이라도 찍어야 오사카에 왔다는 실감이 나는 모양.
그렇다면 수만 명 관광객들에게 도톤보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글리코 간판은 대체 뭘까? AI에게 물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글리코상(글리코 간판)은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상징적인 조형물로 1935년 설치된 마라토너 형상의 간판입니다. 일본 제과회사 글리코의 광고판으로 90년간 6번의 변화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철제 부족으로 철거된 후 1955년 재설치되며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2014년 6대 글리코상은 LED조명과 이벤트 영상 송출기능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글리코 간판 아래 늘어선 수십 개의 야외 주점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막 시작된 더위를 식히며 일본식 어묵과 타코야키(문어풀빵)를 안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인 커플과 친구 사이라는 영국인 남녀에게 물었다.
“내일은 뭘 할 생각이야?”
구운 가지와 소고기 꼬치를 먹던 그들에게선 입이라도 맞춘 듯 동일한 답변이 돌아왔다.
“교토와 나라에 가야지.”
아마 한국과 중국 관광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라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을 게 분명하다.
기자 역시 2년 전 짧았던 3박4일의 오사카 여행에서 두 도시를 갔었고, 거기로 가는 기차와 버스 안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봤으니까. 그렇다면, 두 도시의 어떤 매력이 오사카를 찾은 외국인을 매혹하는 것일까?
신오사카역에서 JR 서일본이나 킨키 일본철도를 타고 40분가량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나라는 과거엔 야마토(大和)로 불렸다. 여기에 ‘나무위키’의 부연이 따라 붙는다.
“794년 수도가 교토로 옮겨질 때까지 고대 일본의 중심지로서 발전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호류지가 있다. 시내엔 사슴을 풀어놓은 나라공원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슴공원 인근엔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가 있다.”
교토는 그 도시 사람들이 가진 자긍심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고대 일본의 도읍이었던 교토는 1천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일본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다.
또한, 청수사를 필두로 금각사와 은각사 등이 가진 매력이 여행자에게 높은 만족감을 선물하는 도시. 그러니, 교토는 때때로 천년왕국 신라의 중심지이자 예술적 완성도가 빼어난 미려한 사찰 불국사를 가진 한국의 경주와 비교되기도 한다.
▲오사카-교토·오사카-나라, 빠르고 편안한 기차로
일본에 도착한 둘째 날과 셋째 날. 각각 나라와 교토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두 도시 모두 기차로 왕복했다.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본어나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한국어 안내판이 역과 주요 관광지 곳곳에 있으니 나 홀로 여행자도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신오사카역에 교토로 가는 기차의 종류는 고속열차 신칸센부터 작은 간이역까지 모두 정차하는 낡은 전철까지 다양하다.
15분 만에 빠르게 교토에 도착하고 싶다면 신칸센을 타면 되고, 5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오사카 교외 경치를 감상하고픈 사람은 전철을 선택하면 된다. 전철도 40~50분이면 교토역과 나라역에 이른다.
만약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계획하고 오사카에 갔다면 서일본 여객철도주식회사가 판매하는 ‘호쿠리쿠 패스’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사카를 출발해 교토와 나라를 오가는 쾌속열차는 물론,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쓰루가, 도야마 등의 신흥 관광지로 가는 기차까지 약정된 기간 안이라면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이용이 가능하니까.
호쿠리쿠 패스는 외국 여권 소지자만 살 수 있고,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일본에서 실물 티켓을 받는 게 가능하다.
나라역에 내리면 동대사와 사슴공원 등으로 가는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정차해 있다. 일본인 특유의 빈틈없는 친절함(?)은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도 발휘된다.
관광객이 몰리는 휴일이나 휴가철이면 각각의 버스 목적지를 알려주는 팻말을 든 안내원이 처음으로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를 돕는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팻말에 영어와 중국어가 쓰인 건 불문가지.
교토행 기차에서 내려 청수사나 금각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도 나라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저 팻말을 든 안내원을 따라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서고 탑승 순서를 기다리면 끝이다.
오사카 외곽의 풍광을 즐기며 덜컹이는 기차로 짧은 시간을 달려가 역에서 내린다. 바로 코앞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로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다. 공원에서 귀여운 사슴에게 먹이도 주고, 교토 청수사 아래 일본식 가옥에서 시원한 녹차빙수를 먹으며 일상 탈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사카로 돌아갈 때는 역순으로 ‘관광지-버스-기차’를 이용하면 당일치기 교토 여행과 나라 여행이 마무리된다.
오전 11시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교토와 나라의 주요 여행지 1~2곳을 돌아보고,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5시 이전에 오사카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선 흠 잡을 걸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관광객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축적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시스템과 노하우의 차이 탓인지, 올해 초 방문했던 동해선 울진역과 삼척역에선 일본 철도여행이 준 만족감을 맛보기 힘들었다.
‘오사카-나라·오사카 교토 기차여행’에서 확인한 이용자 위주의 서비스와 물 흐르듯 자연스런 환승 동선은 동해선 철로가 지나는 지자체가 향후 철도관광 인프라를 조성할 때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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