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관광의 미래 ‘동해선’ 로컬 매력을 잇다 - 울산광역시
어쩔 수 없다. ‘회색빛 공업도시’라는 선입견을 뗄 수 없는 명찰처럼 달고 지내온 도시가 울산광역시다.
지난 세기.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주역 가운데 하나지만, 칙칙한 ‘주홍 글씨’를 쉽사리 지워내지 못했다. 기자의 생각도 보편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보지 않고, 여행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울산에 관한 선입견과 주홍 글씨의 색채가 더 강하게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최근 부산광역시(부전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강릉시로 가는 동해선 기차가 멈추는 곳 가운데 하나인 태화강역 인근에서 이틀을 머물며, 울산을 돌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울산은 관광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느낌을 받은 것.
그런 감정을 실질적으로 증폭시킨 울산의 여행지를 딱 2곳만 꼽으라면 ‘대왕암 출렁다리’와 ‘장생포 고래박물관’ 일대를 지목하고 싶다. 왜냐고? 아래가 그 이유다.
포항역~울산 태화강역 1시간5분 소요
‘장생포고래박물관·대왕암 출렁다리’
‘태화강 국가정원’ 시티투어 2개 코스
비수기엔 3000원으로 투어버스 이용
아슬아슬 낭만 쌓는 ‘대왕암 출렁다리’
고래잡이 재현한 ‘장생포 고래단지’선
반세기 전 어촌 풍경 산책하듯 감상
‘고래문화마을~영상관~고래박물관’
1.3㎞ 모노레일 위에선 울산이 한눈에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상반기 이용객 100만 명, 부정할 수 없는 동해선 인기
최근 한국철도공사는 근래 개통된 6개의 기차 노선 이용자 숫자를 조사해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노선은 다름 아닌 동해선. 6개 노선 이용객 250만 명 중 동해선 기차에 오른 여행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노선은 강릉과 부전, 강릉과 동대구를 운행하는 동해선을 필두로, 서울·청량리에서 부전을 오가는 중앙선, 판교와 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선, 홍성에서 서화성으로 가는 서해선, 홍성-평택-천안-홍성 구간을 차례대로 순환하는 포승·평택선, 대곡과 의정부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 교외선이다.
이 가운데 동해선이 이용자 숫자 면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동해선 기차를 타고 부전-강릉 사이를 오간 여행자는 1일 평균 5500명이다. 그러니, 누적 승객이 99만2000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 티켓을 구하기 위한 ‘예약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지난 15일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ITX-마음 1252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을 향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5분.
날렵하게 디자인된 빨간색 기차의 깔끔한 객실은 쾌적했고, 도착도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줬다. 6월 중순 일본에서 타본 신칸센이나 선더버드 기차 못지않았다.
태화강역엔 울산의 주요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는 버스와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대왕암 출렁다리 등을 오가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동해선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울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이 2가지 코스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걸 선택해 지역 주요 명소를 보다 손쉽게 돌아보는 게 가능하다.
시티투어 버스의 승차권 가격은 7월 현재 3000원. 비수기라 50%가 할인되고 있으니, 시내버스 2번 탈 돈으로 하루 종일 5~6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게 가능한 셈이다. 이른바 ‘가성비’도 좋다.
▲기차 타고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를 찾은 청춘들은…
울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왕암 일대와 고래박물관을 오가는 시티투어 버스에 탔다. 한산한 평일이었으니 주말에 비해 관광객은 적었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
울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빼놓고 싶지 않은 관광지 대왕암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짙푸른 바다가 사람들을 반긴다.
“울산 최초의 출렁다리이자 동구 최초의 대규모 상업관광시설. 대왕암공원 내 해안산책로의 햇개비에서 수루방 사이를 연결하며, 길이 303m, 높이 42.55m 규모로 만들어졌다. 중간 지지대 없이 한 번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전국 출렁다리 중 경간(徑間) 장로의 길이가 가장 길며, 바다 위로 이어진 다리이기에 대왕암 주변의 해안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긴 다리는 사파이어 빛을 닮은 동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다.
기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에 왔다는 20대 젊은 연인이 출렁다리 가운데서 장난을 친다. 남자친구가 짐짓 다리를 흔들 것처럼 폼을 잡으니, 조그만 키의 여학생이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정작 얼굴은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웃고 있다.
청춘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빛나고 아름다운 것. 이런 시 한 편이 절로 떠올랐다.
제 힘에 이 무거운 다리 흔들릴 리 없건만
끙차, 소년은 다리를 흔든다
까짓 다리 위 흔들림이 무서울 까닭 없지만
꺄악, 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청춘의 연애는 출렁다리 위에서 유치하고
유치해서 아름답고.
▲울산에 갔다면 ‘고래의 고향’ 장생포를 빼놓으면 서운하지
동해선 기차의 유유자적한 낭만과 대왕암 출렁다리의 아슬아슬한 낭만을 함께 맛보며 환하게 웃는 청춘남녀를 뒤로 하고, 고래박물관과 장생포 일대를 편하게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는 울산 장생포 고래관광단지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울산, 그 가운데서도 장생포는 ‘고래의 마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포경업(捕鯨業)이 금지되기 전엔 적지 않은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풍경이 드물지 않게 펼쳐진 곳.
고래잡이배(捕鯨船)의 작살수와 고래 해체 전문가는 한때 의사와 변호사도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직업이다. 울산의 어르신들은 아직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조성된 울산 고래문화마을은 예전 장생포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방문자들의 탄성을 불러낸다.
익살스런 인형과 낡은 건물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낸 반세기 전의 어촌 풍경은 정겹고 애틋하다. 기자 역시 거기에 매료돼 오랜 시간 머물며 산책하듯 관광을 즐겼다.
실물 크기의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대 암각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야외 공간도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래박물관 지척에서 티켓을 구입해 모노레일에 올랐다. 고래문화마을-입체영상관-고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1.3km 노선. 30여 분 남짓 모노레일에 타고 있으면 출렁이는 장생포 바다와 고래문화마을, 울산대교와 울산공단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자가 거길 찾은 건 7월 중순. 아직 꽃잎을 채 떨구지 않은 수국이 푸른색 전등처럼 반짝이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샛노란 단풍이 수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니, 어느 계절에 찾아도 좋을 듯했다.
조그만 전시관에서 커다란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을 보던 80대 어르신이 곁에 선 아내에게 말했다.
“세상 좋아짔고 울산도 좋네. 기차 타모 1시간이믄 온다 아이가. 살아있으모 내년에 또 오자.”
두 분은 부산에서 온 관광객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니 원시의 동해처럼 아득해졌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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