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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주 파도소리길에 주상절리 꽃 피었다

파도소리길을 걸었다. 바다 옆에 살다 보니 파도 소리가 들려도 듣지 않았다. 읍천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하면서 걷는 이 길이 ‘파도소리길’이라니 파도가 보였다. 그리고 찰싹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 구간을 일컫는다. 데크로드, 정자, 벤치, 구름다리 등 해안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는 2012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읍천항에는 초성을 형상화한 조각이 부두 여러 곳에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하서항의 등대는 하트를 품은 자물쇠 모양으로 사람이 그 안에 서서 인증샷을 찍기에 좋아 일부러 찾는 이들이 많다. 우리도 사진을 찍는 사이 등대 주변에서 낚시하던 젊은이들이 월척을 잡아 올려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경주에서 시작해 포항, 영덕, 울진까지 바다를 끼고 해파랑길이 달려간다. 이 길을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경주는 파도소리길, 포항 바다계단길, 영덕 모래 돌 섬 길, 울진 돌물 어울림길이다. 곳곳에 주상절리와 돌출한 지층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파도소리길에는 부채꼴 주상절리부터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운 주상절리, 바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1㎞ 남짓의 짧은 해안에 모두 모여 있어 가히 ‘주상절리의 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특히 둥글게 펼쳐진 형태의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인 규모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둥근 연못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둥글게 배열된 주상절리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부채꼴 형태의 주상절리는 둥근 구덩이에 고인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벽면이 둥글기 때문에 용암은 둥글게 고이게 되고, 차가운 벽면에 닿은 용암의 표면에서부터 육각형의 형태를 남기면서 금이 가게 된다. 둥근 벽면 쪽에서 식어서 갈라지기 시작한 틈은 용암이 계속 식어가면서 원의 중심부를 향해 계속 갈라진다. 한편 둥근 연못으로 용암을 흘려보낸 용암길에서 식은 용암의 흔적도 볼 수 있는데, 부채꼴 주상절리 오른편에 길게 누운 주상절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누워 있는 주상절리들은 용암 수로 양 벽면에서부터 갈라져 들어왔기 때문에 누워 있는 형태의 기둥이 된다. 길옆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우뚝 솟아 있어 그리로 향했다. 4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달팽이처럼 빙글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오를 때마다 경주 곳곳을 찍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솜씨가 뛰어나 상을 받은 사진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니 사방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렀다. 날씨가 좋아 바다 멀리까지 보였다. 해국같이 활짝 핀 부채꼴 주상절리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미디어아트 세 가지가 바다 풍경과 어우러져 볼만했다. 파도가 폭포가 되어 쏴아 쏟아지는가 하면, 꽃잎이 확 번지며 떠올랐다. 주상절리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형상화해 볼거리를 마련했다.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탐방 인원이 5인 이상 단체 해설 예약 가능하다. 4인 이하는 현장 안내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현장 안내센터는 △포항 호미곶·여남동 △경주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읍천항·골굴사 △영덕 해맞이공원 △울진 지질공원센터·덕구온천·평해 사구습지에 있고 탐방 희망 3일 전까지 신청 가능하다. 안내센터가 없는 지질명소의 해설을 원할 경우 동해안 지질공원 사무국에 별도 문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Tel. 054-783-9195/geopark@knu.ac.kr)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04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소소하고 소중한’전

주말 늦은 오후 아이와 산책을 나섰다. SNS를 살펴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특별전이 눈에 들어와 급히 나섰다. 누군가에겐 벼르고 세운 여행지들이 경주사람들에겐 흔한 산책 코스가 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은 국립경주박물관은 여전히 붐볐다. ‘소소하고 소중한’이란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산책코스가 그렇듯 경주에서 어지간한 유물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풍문으로 듣기에 어른들은 곧잘 어린 시절 유물 파편으로 소꿉놀이를 했다고 했다. 그 정도로 흔한 것이 토기 파편들이다. 드라마 지나가는 행인 1보다 배역이 적은 그들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처음 만난 대상은 중층 유리구슬이었다. 유리 위에 금박을 입히고 다시 유리를 입히면 금구슬이 된다고 한다. 신기한 한편 탐날만큼 예뻤다. 그 다음은 금동손이다. 머리 잃은 불상, 손 잃은 불상은 자주 만났지만 홀로 남은 ‘손’은 낯설다. 만든이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작고 귀여운 손 안에서도 부처님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깨어진 항아리들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항아리마다 자신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항아리 주인들은 그들의 항아리가 이곳에 이렇게 놓여질거라 예상했을까. 원도심에 갈 때면 자주 찾는 중심상가 주차타워 부지에서 발견되었다는 동물 모양 벼루는 개구리를 닮았다. 어쩌면 휴대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벼루는 동일한 모양의 기념품이 있다면 바로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어지는 사자와 짐승 얼굴무늬 꾸미개도 마찬가지다. 두 마리의 사자는 씨익 웃는 모습이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귀여운 외형덕에 아이의 반응도 좋다. 바독돌 앞에는 오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기가 준비되어 있는데 사람들 대기가 많아 다음을 기약했다. 직물코너에선 요즘 뜨개질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남기는 메모에도 가장 관심이 있는 유물로 직물을 선택했다. 잠시후 드디어 만났다. 특별전으로 이끌었던 대상이었던 나무로 만든 빗이다. 하루를 계획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 모두 함께 하는 빗이다. 저 빗 주인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자신의 머리 혹은 가족의 머리를 빗기며 만들어갔을 일상들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모르는 이에겐 흔한 돌맹이에 불과했을지 모를 숫돌과 석기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끝으로 만난 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조선 전기 작품으로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세상 빛이 반가워서일까. 은은한 미소와 여유로워 보이는 자세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또하나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은 각각의 유물을 담당한 큐레이터에 대한 소개다. 중간중간 재밌게 소개된 그들의 안내는 전시의 맛을 한껏 더해주었다. 옆에 없지만 함께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특별전 관람은 당연하고 소소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일상을 채워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특별전은 오는 3월 9일까지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27

꽃 피우기에 늦은 때란 없다

한동안 따스한 햇살에 몸이 녹아내리더니 또 꽃샘추위다. 창문이 덜컹덜컹 바람에 흔들리며 쉽게 봄이 오지 못함을 되새겨준다. 봄이 봄다워지기 위해 아직 몇 번의 몸살이 더 남았을까. 이월의 끄트머리에서 너무 성급히 봄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조금 변해 있다. 산책길에 발견한 버들개지 보송한 솜털에도 봄기운이 묻었다. 어떤 일이든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색을 바꾸고 땅을 녹이고 거죽을 뚫으며 봄은 오고 있다. “봄이 봄다워지기까지 / 언제고 한번은 이렇게 / 몸살을 하는가보다 /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정희성 시 ‘꽃샘’ 요즘 시대에는 꽃피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티비에서 91세 할머니를 보았다. 책을 읽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그 연세에도 마라톤을 하셨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열다섯 바퀴씩 도는 할머니의 열정은 젊은이의 열정 저리가라였다. 삼십 년을 마라톤을 해오신 할머니가 일 년에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만도 몇십 군데였다. 오로지 책을 읽고 배우는 기쁨을 위해 마라톤을 하는 할머니는 정말 대단했다.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하기에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 마라톤을 한다니 누가 이 할머니를 노인이라 할 것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힘든 마라톤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그 열정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나이는 아무런 걸림돌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 우리 모임에는 바리스타 할머니가 계신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실버 카페에서 일하신다.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도 하셨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으신다. 할머니 바리스타의 커피는 뭔가 다르다. 젊은 사람이 뽑는 커피와는 다른 연륜과 내공이 담긴 커피라 더욱 그윽한 향을 내는 것 같다. 꽃 피우는 일은 그저 되지 않는다. 엄혹의 시기를 기다림과 인내로 건너와야 한다. 중년을 지나면 이미 꽃피우기는 늦었다며 이 나이에 뭘 하겠냐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데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꽁꽁 언 땅에 새싹이 돋고 마른 나뭇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누구에게나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이 있다. 비록 꽃샘추위가 바람을 몰고 와 발목을 잡아도 포기하지 말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올봄에는 원하는 꽃 하나씩은 피워보자. 그 꽃으로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누군가는 커다란 용기를 얻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뜻을 버리지만 않으면 어느 나이에도 꽃은 핀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27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꽃샘추위의 시샘 속에서 졸업과 입학으로 축하 꽃다발이 분주히 오가는 시즌이다.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대변하듯 마무리와 동시에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유치원생이나 대학원생이나 다를 바 없다. 학생의 대다수가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도 예외 없이 졸업과 입학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2월 8일 흥해읍에 위치한 방송대 포항시학습관에서 포항총동문회 총회 및 48·49대 학생회장 이·취임식과 함께 49대 포항시학생회 출범식이 있었다.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슬로건으로 25년 한해를 맡게 된 49대 포항시학생회장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이재민씨다. 3월 1일 포항시학생회 주관으로 같은 장소에서 2024년도 졸업식과 2025년도 신·편입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 포항 죽도시장에서 느끼는 그 생동감과 열정은 지역민의 학구열에 까지 영향이 미친다. 방송대 포항시학생회 소속 2024년도 졸업자 중 23명이 14개 학과에서 ‘성적 우수상’을 받는다. 학생회 출범 시기도 대구·경북 지역대학 총학생회(43대)보다 포항시학생회(49대)가 더 빠르다. 그러나 25년도 1학기 정시 인원이 203명으로, 신·편입 인원이 최대 700여명이었던 전성기 대비 절반수준으로 꾸준히 감소하면서 지난해까지 포항시학습관에서 이루어지던 출석수업이 2025학년부터는 대구 달서구 소재 대구·경북 지역대학으로 옮겨진다는 것이 학교 방침이다. 영덕, 울진, 경주, 영천 등 인근 지역 학생들까지 이용하던 포항시학습관을 두고 출석수업을 위해 장거리를 다녀야하는 학생들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학우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재민 학생회장은 포항시학습관에서 출석수업이 계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학교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양질의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학생회는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 학교에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로써 기능한다. 학교와 학생회가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학문적 성취와 개인의 발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평생직장이 힘들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직장과 병행이 가능한 방송대에서 국가자격증을 취득한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유아교육과 정교사 자격증, 식품영양학과 국시 응시 자격증 등 교육학과에서 지정 이수과목을 이수하면 교육부장관이 발급하는 국가자격증인 ‘평생교육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학위보다 학습자체가 목적이라면 한 달 영어 학원비로 수준 높은 강의와 체계적인 수업이 있는 방송대 영어영문학과가 더 효율적이다. 배움의 의지는 삶에 생동감을 준다. 정국(政局)이 불안하니 국민이 깨어있어야 함을 더 실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글을 몰라 억울함을 당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제함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글로 인해 문맹률이 아주 낮다. 이는 배움을 부추기며 방송대처럼 열려있는 곳에서 평생을 공부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된다. 호연지기로 채워진 자존감이 가슴에 충만해지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614D 不亦君子乎)’라는 공자 말이 무색해진다. 새로이 출범한 49대 방송대 포항시학생회가 열정 넘치는 학우들과 함께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밝고 생동감 넘치는 사회의 한 조각이 되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27

언제나 그 자리에 ‘안동 제비원 석불’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은 고려시대인 11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안동사람들에겐 ‘제비원 석불’ 혹은 ‘이천동 석불상’, ‘제비원 미륵’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오도산 남쪽 기슭 거대한 바위벽 전체 높이 12.38m, 너비 7.23m에 달하는 크기에 선으로 몸통을 새기고 2.4m 높이의 머리 부분을 조각하여 얹어 놓은 불상이다. 화강암 석벽 머리의 뒷부분은 평면의 자연석을 그대로 두고 앞면만 얼굴을 조각하였다. 얼굴은 자비로운 미소를 띤 모습이고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9AFB: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솟아 있다. 양손은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설법할 때 취하는 아홉 종류의 손 모양 중 하나인,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제비원 석불은 오랜 세월 지역민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미륵불 어깨에 앉아 소풍 기념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도로가 닦이기 전 비포장도로에서 멀리 미륵을 배경으로 나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제비원 불상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옛날 석공 기술을 가진 어느 형제가 살았는데 조각 솜씨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최고의 조각가는 둘이 있을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불상을 먼저 만든 자는 살아남고 늦게 만든 자는 죽기로 약속하고 시합에 들어가게 된다. 동생은 열심히 돌을 갈아 다듬었으나 형은 빈둥빈둥 놀기만 하다 약속한 날이 임박하자 미륵의 머리만 조각하고 큰 바위에 얹어 불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부처의 몸체부터 만드느라 기간 내에 완성하지 못한 동생은 그만 죽고 말았고 형이 만든 불상이 지금껏 내려오는 제비원 석불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 ‘제비원 이야기’로도 각색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의 맞은편에 수직 암벽이 서 있어 두 암벽 사이에 석굴처럼 좁은 공간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 미륵전 불단이 있어 가정의 평화와 소원성취를 바라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비원 석불은 안동시 이천동 산2번지, 안동에서 영주 가는 국도에서 언제나 온화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날 일이 있다면 잠시 들러 심신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것도 좋겠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2-25

두 영웅이 자리한 절벽…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안동 부용대에 오르는 길, 영하의 날씨지만 바람 한 줄기 없이 하늘은 구름 한 점 띄우지 않고 푸르러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우리 일행만 오르는 숲길엔 새소리만 들렸다. 화천서당 주차장에서 물 위에 뜬 연꽃 같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까지는 금방이다. 숨이 차기도 전에 도착한 우리 눈에 하회마을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탄성을 부르는 경치다. 기와집이 이마를 맞대고 머리를 잘 다듬은 초가가 가끔 섞인 동네, 하회탈춤 판이 벌어지는 유서 깊은 동네가 강을 휘감는다. 과거 이 마을에서는 담장을 만들 때 돌을 섞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을이 물에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는 풍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동네를 감싸는 소나무 숲은 만송정이다. 류성룡의 맏형 류운용이 동네에서 바라보이는 절벽의 살기운을 막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비바람도 막아주니 일석이조였다. 햇살에 윤슬이 강 위로 쏟아져 눈이 부시다. 배 한 척이 그림처럼 모래톱에 누웠다. 하회 건너편에 류성룡 선생은 탄홍 스님의 도움을 받아 옥연정사를 마련한 다음 이 집에 대한 기록을 ‘옥연서당기’로 남겼다. 선생은 호를 서애(西厓:서쪽 벼랑)로 짓고 마을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외로운 ‘고라니의 삶’을 살아가길 원해 강 건너 절벽 아래 지었다. 주차장에서 옥연정사로 향하자, 고양이가 길 안내를 맡는다. 앞서가다 야옹아 부르니 돌아와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또 앞장선다. 잘 따라오라는 소리같다. 마당에 들어서니 용트림하는 소나무가 비스듬히 하늘을 받치고 섰다. 서당채의 이름은 세심재(洗心齋)이다.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루 감록헌은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 구비 바라보네’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한 칸이 있으며 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다.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遠樂齋)라 하였는데,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방에 기거하며 징비록을 서술하셨다. 고양이를 따라 간죽문으로 나갔다. 이 길로 절벽의 좁은 길을 따라가면 겸암정사에 도달할 수 있는 층길이 있는데 지금은 일반인들이 다니기에 위험하여 폐쇄되었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화천서원 반대편 내리막길로 가면 나온다. 조심조심 내려가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강의 물결이 일품이다. 자꾸만 서서 바라보게 만든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데도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송사리가 노닐 것만 같고, 손을 뻗으면 물결이 만져질 것만 같다. 류성룡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이 건립한 정사 앞에는 나이 많은 나무가 우리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봄 마중하며 늠름하게 하늘을 우러렀다. ‘겸암(謙菴)’은 자신의 능력과 덕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스승인 퇴계 이황이 15세 문하생 류운룡의 학문적 재질과 성실한 자질에 감복하고 지어 준 것이다. 정면의 ‘겸암정(謙菴亭)’ 편액은 퇴계가 쓴 것이다. 얼마 전 일본 마쓰야마의 가류산장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었다. 함께 간 아들이 우리나라에 이보다 풍경 좋은 누각이 더 많아 감흥이 없다고 한 이유가 겸암정사를 두고 한 말 같다. 하지만 문이 잠겨 마루에 오르지는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오래된 건물을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사람의 숨결을 쏘이고 발길이 오르내려야 한다. 경회루와 진주 촉석루의 마루도 사람이 오르자 벌레 먹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 마루에 올라 류씨 형제의 시선으로 하회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여기 오는 사람 모두가 같을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25

요즘 대세 소비 트렌드, ‘아는 맛’이 뜨겁다

요즘 대세인 소비 트렌드는 레트로(복고) 감성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익숙한 ‘아는 맛’에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다. 레트로는 과거의 스타일, 디자인, 문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을 말하는데 패션에서부터 식품과 게임, 영화 등 일상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는 맛인 레트로 열풍은 최근의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한 소비자들의 지갑 열기가 어려워진 영향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생활형편·경기 등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100.7에서 12월에는 88.4로 떨어졌다. 이 사이를 레트로 마케팅이 파고들었다. 아는 맛이 아날로그의 추억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성세대에게는 단순히 추억의 맛을 전할 뿐 아니라 젊은 세대와의 공감과 연결의 역할도 함으로써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MZ세대인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에서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레트로가 더 두드러진다. 이들은 디지털 세대이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아날로그 감성과 경험 등 옛날 것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2030의 젊은이들은 지금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옛날처럼 LP판을 통해 듣거나 그 시절 추억의 음식을 맛본다면 부모님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7080년대 TV 광고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품 등 당시의 디자인을 활용한 재출시, 필름 카메라, 굿즈들은 소비자들에게 여전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들은 SNS로 소통하고 그들의 레트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소통과 공유의 문화가 되었다. 단순 제품 소비가 아닌 스토리와 출시 당시의 사회문화적 경험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개봉이 이어지고 있는 영화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부터 극장 예매 사이트에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죽은 시인의 사회 등 반가운 영화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몇몇은 현재도 상영 중이다. 비긴어게인, 미드나잇인파리, 이터널 션샤인도 재개봉해 관객들을 맞았다. 오래된 영화가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는 것은 옛 영화를 다시 보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관으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서다. 20년 전 만들어진 영화가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될 때 관객들에게 영화는 새롭게 다가온다. 재개봉 영화가 추억을 소환하는 건 당연하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감정과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고 관객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소중한 추억을 나누는 기회가 된다. 영화관에서는 관객을 다시 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재개봉한 영화 ‘해리포터’를 본 시민 A(43)씨는 “해리포터 팬인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바쁜 아이들과 대화도 하고 덕분에 책도 구입했다. 재개봉 덕분에 예전에 놓쳐버린 명작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레트로에 사람들이 끌리는 이유는 예전의 감성이 느껴지면서 새롭게 재해석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존경과 미래에 대한 창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소통의 매개체도 된다. 전 세대와 공감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아는 맛’ 레트로가 앞으로도 사랑받아야 할 이유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25

3·1절을 맞으니 떠오르는 민족 저항시인 심훈

심훈 106주년 삼일절이 다음 주다. 새삼 심훈(沈熏)이 생각난다. 당진 출신인 그는 35년 짧은 생(1901~1936)을 마감했다. 시 ‘상록수’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계몽가이자 민족 저항시인이다. 특히 그는 일제에 넘어간 조국의 아픔을 여러 시를 통해 절규했다. 심훈은 열아홉 살이었던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한다. 이로 인해 체포돼 옥고를 치른 그는 연희전문 문과에 재학 중, 그날의 감격을 되살리기 위해 시를 쓴다. 그게 바로 ‘그날이 오면’이다. 광복된 조국의 그날을 열정적으로 그려낸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애국민족 저항시 중의 하나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3·1절에 광복의 그 우렁찬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아쉬움 없이 눈을 감겠다는 시인의 당찬 의지와 외침을 느껴봤으면 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시 ‘그날이 오면’ /손수여 시민기자

2025-02-23

노랫가사 개사하며 풍류 즐겨

풍류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이나 또는 그러한 생활이나 태도를 말한다. 다른 말로 풍월이란 말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한다는 뜻의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풍류놀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활동 중 하나로, 자연 속에서 예술과 여유를 즐기는 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는 자연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 한가하게 즐길 수가 잘 없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게 현대판 풍류놀이다. 풍류회에서 하는 풍류놀이는 우리 가요를 재해석해서 가사를 패러디해보는 일이다. 우리 가요 한곡을 선정하여 10명의 회원이 각자마다 개사를 하는데 주제가 다양하다. 자연 풍광을 주제로 하는 이, 효를 주제로 하는 이. 우정을 주제로 하기도 하고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월례회 날은 각자 개사한 가사를 대구생활문화센터 음악실을 대관하여 원곡 음원에 맞추어 발표를 한다. 각자는 가수가 되어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화감독인 신재천 회원은 댐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그리며 남정희 원곡의 새벽길을 패러디해서 ‘내 고향 합강’을 노래했다. “능금꽃 피는 고향 뛰어놀던 초동친구/ 지금은 타관객지에 무얼 하며 살아가나/ 봄이면 풍호정에 여인들의 화전놀이/ 여름엔 강변에서 천렵하며 놀던 추억/ 그 시절이 그립구나 나의 고향 합강아” 김윤숙 시인은 남인수 원곡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사랑 품은 팔공산’으로 바꾸었다. “정기 어린 팔공산에 흐르는 달빛/ 동화사 풍경소리 그윽하구나/ 갓바위에 새긴 사랑 별도 달도 빛나는 밤/ 언제나 그대와 함께라면 음~음~음~음~” 고영애 시인은 박경원 원곡 ‘만리포 사랑’을 개사했다. “은발은 휘날리고/ 주름 훈장 잡혀도 마음은 싱그러운/ 우리들이 가는 길 그리워 애가 타도 달을 보듯 별 보듯/ 노을 진 저녁하늘 붉게 붉게 물든다” 한대곤 회원은 신세영 원곡의 ‘전선야곡’을 ‘칠순 야곡’으로 가사를 지었다. “세월 흘러 일흔 줄에 자유의 몸이 되어/ 어디서나 언제라도 내 멋대로 살아간다./ 칠십여 년 한평생을 갈고닦은 내 인생/ 이제부터 마음 열고 나의 일을 하련다/ 아 아 즐겁게 살련다” 전영귀 시인은 배호 원곡 영시의 이별을 시절 안녕으로 했다. “단풍잎이 가을비에 젖어 우는 팔공로/ 계절 앞에 너와 나는 덧없이 슬펐다/ 찬란한 오색 빛도 지난 날의 한순간/ 아쉬움도 묻어두면 추억 갈피 시절아 안녕” 김임백 시인은 백난아 원곡 ‘아리랑 낭랑’을 ‘새해 소망’으로 지어보았다. “새해 여는 첫 길 위에 소망 꽃이 피어난다/ 어둠은 멀리 사라지고 찬란한 빛 손짓하네/ 이 길은 모두 함께 걷는 희망의 길/ 넘어져도 우리 꿈만은 빛을 잃지 않아요” 자신이 직접 만든 가사로 노래를 부르면 즐기다 보니 풍류회의 한마당은 어느덧 절정에 도달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2-23

저항권(抵抗權)으로 위장한 폭력

석종출 시민기자 2025년 1월 18일 저녁에서 19일 새벽 사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에 저항하는 일부 국민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방화를 시도한 사건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행동을 합리화 하려는 시도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법률용어 사전에 의하면 ‘저항권’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에 의하여 저항할 수 있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라고 하면서 실정법상으로 승인된 국민의 권리는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저항권을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있다. 대법원(1980년 5월 20일) 판결에는 저항권 이론을 재판의 근거, 규범으로 채용, 적용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나 헌법재판소(1997년 9월 25일)는 저항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라고 하는 긍정설이다. 헌법재판소의 저항권 행사요건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 또는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되며,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이라는 소극적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라고 요건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경우에도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말하면서 앞서 언급한 저항권을 주장하지만 폭력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한 상임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만약 헌법재판소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국민은 헌재를 두들겨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기에 이런 막말이 용인되는지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이러한 막말이 공공연한 것의 큰 원인은 국민의 뜻을 볼모로 하는 편향된 극단적 사고이며 선동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주사회에서 폭력적 행동은 금기되어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가면 결국은 온세상이 장님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또 한나 아렌트는 “폭력은 결코 권력을 창출하지 못한다. 폭력은 권력의 도구일뿐 결국은 권력을 파괴한다”면서 “폭력이 진정한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는 “어둠은 어둠을 밀어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밀어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저항권으로 위장한 폭력을 용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석종출 시민기자

2025-02-23

“내방가사는 조선 여성의 삶을 담아낸 진솔한 기록”

내방가사란 조선시대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과 감정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문학 작품이다. 특히 영남지역 양반가에서 크게 유행했던 탓에 다른 곳보다 우리지역에서의 전승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2022년 11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목록에 내방가사를 등재하면서 내방가사는 문학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 가치까지 평가를 받게 된다. 이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대구와 경북에서 내방가사 전승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가 여럿 있어 화제다. 안동에서 활동하는 내방가사전승보존회(회장 이선자)는 이 분야의 대표적 단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단체로는 내방가사문학회(회장 권숙희), 영남내방가사연구회(회장 장한규), 영남가사연구회(회장 이홍자) 등이 있다. 이들 단체들은 대구 용학도서관에서 매년 영남가사문학 어울마당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7회째 행사도 준비 중이다. 회원들은 행사를 통해 회원간 유대를 넓히고 한편으로는 내방가사 전승에도 힘을 쏟는다. 내방가사문학회 권숙희 회장은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한 여성집단 문학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특히 “내방가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내방가사 문학회는 주로 여성들 중심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 유일의 여성집단 문화란 특징이 그런 흐름을 이끌어 왔다. 지금도 많은 여성 원생들이 내방가사 연구에 관심을 갖고 발굴과 풀이, 홍보활동에 나서고 있다. 권숙희 영남가사문학회장 권 회장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내방가사 내용에는 여성들의 고단함과 애환들이 많이 담겨져 있는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여성 개인의 단순한 기록으로만 보지 말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눌린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료로 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내방가사는 조선 말기부터 안동을 중심으로 주로 영남지역 양반가 여성들이 창작한 한글 문학이 많다. 초기에는 유교적 가치를 전파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나 이후 개인적 고백, 사회 비판, 민족적 저항으로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했다. 형식적 특징으로 4음보를 기본으로 하며 한글을 익힌 여성이면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었다. 내방가사 문학회 회원인 유정자씨는 “내방가사 문학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다”며 “역사와 문학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단체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2-23

흥미로운 그림 보러 경주시청 2층으로 오세요

경주는 문화와 관광을 두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도시다. 그리고 그 명성에 맞게 무료로 진행되는 문화행사와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경주예술의 전당 내 전시장을 비롯 지역 내 사설 갤러리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경주시청 2층 로비는 10여 년 전부터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시장실을 기준으로 양쪽 벽면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전시 공간이다. 매년 연초에 전시 공모를 통해 작가들을 선정한다. 대관료는 무료며 소액의 리플릿 제작비까지 지원되는 이유로 모집 공고가 뜨면 바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덕분에 시청을 방문하면 정기적으로 바뀌는 수준 높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엔 평면의 캔버스 속에서 공간 접기라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김정자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따뜻한 느낌과 낭만이 함께 느껴지는 화면 속에서 인물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풍경은 면이 접혀짐으로 공간이 변화하는 특별함을 준다. 그녀는 화면 속에서 자연이나 대상물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재해석한다. 그 것들을 다양한 면으로 접고 공간을 확장해서 자연의 색을 변화시키고 조화롭고 신비한 조형미로 표현하여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공간여행을 시도한다. 이는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과 ‘공간 접기’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다면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보다 열린 세계로의 확장을 모색함으로써 극적으로 소통을 통해 삶을 긍정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김 작가는 이 세계 속에서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 이번 작업은 초원의 들판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핑크뮬리, 초록의 풀밭, 몽환적인 느낌의 보랏빛 풍경들이 딱딱한 공간을 부드러우며 낭만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끝으로 현대에 지친 사람들에게 가상의 공간여행으로 삶의 힐링과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5년 1월 20일에서 3월 2일까지 경주시청 갤러리에서 열린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20

걷기가 주는 혜택에 빠져보자

이월도 중순을 넘어선다. 입춘이 지났지만 추위는 여전하다. 겨우내 추위 핑계로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더니 몸이 굳는 느낌이다. 곧 여행 일정도 잡혀 있어서 체력 보강도 할 겸 걷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와 조금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아직 겨울이 묻은 바람이 마주 선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주택가를 지나 들판으로 접어든다. 조금만 걸으면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시골 사는 혜택이다. 늦추위 때문인지 길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찻길을 건너 숲길 가까이 다다랐다. 철길 옆 작은 찻집 외벽에 시화가 걸려 있다. 물끄러미 서서 읽어본다. 천천히 내게로 스며드는 시구, 산책길이 풍성해진다. 길가로 마른 풀 덩굴이 바람이 흔들린다. 쭉 펼쳐진 밭들을 보니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배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허형만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 시인이 말하였듯 들판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뜻을 곰곰 되새기며 멈추지 않고 걷는다. 강가에 다다랐다. 문경의 영강 줄기이다. 체육공원과 이어진 강가에 서니 강물이 윤슬로 가득하다. 순간 짧은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멈춘다. 세상에 어떤 것이 저보다 아름다울까.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내 생애 몇 번이나 더 있을까’라는 어느 시인의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의 눈부신 반짝임이 거기 다 들어 있다.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갈대가 손을 내민다. 겨울을 맨손으로 지나와서 물기가 말랐다. 어디 먼데 다녀온 친구처럼 강바람이 반갑다 뺨을 만진다. 물 위로 오종종 물새들이 모여 있다. 가장자리에 얼음이 얼어 있어도 발 시리지 않은 모양이다. 부지런히 자맥질하는 몇 마리도 보인다. 작은 짐승도 제 먹을 것 찾아 여념 없음이 기특하다. 모자에 마스크로 무장한 노인 둘이 나란히 걷고 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도 천천히 걷고, 털조끼를 입고 되똥되똥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도 걷는다. 걸으면서 아름드리 소나무도 황홀히 올려다보고 마른 물풀의 휘어진 허리에도 눈을 준다. 다시금 걷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차를 타고 휭 지나갔으면 보이지 않았을 많은 것들이 걸으면 볼 수 있다. 작가나 시인들은 그래서 걷기를 즐겼다. 걸으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영감을 얻었다. 춥다고 웅크려 있던 마음에 저절로 드넓은 자연의 기운이 채워진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이제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모두 걷기를 시작해 보자. 바쁜 일상을 사느라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만날 수 있다. 걸음이 쌓일수록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봄도 성큼 더 다가올 것이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20

해설이 있는 클래식 최정호의 힐링음악과 함께하다

오래전, 포항 효자아트홀에서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클래식’ 공연을 보며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렵게만 느껴져 클래식이란 장르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도 금난새 지휘자가 독특한 화법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곡을 해설 한 후 시작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포항에서도 고전음악 클래식을 곡 해설과 더불어 지휘자와 연주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오케스트라,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포항미르치과 신관 10층 미르아트센터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90분 동안 최정호의 금요음악감상회가 열린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알고 싶어 하는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지난 금요일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로망스 2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2악장 안단티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 라르고’ ‘라단조 협주곡 작품 974 2악장 아다지오’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등을 즐겼다.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제목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돈 후안’은 17세기 스페인의 신부 출신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인물이다. 같은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그 많은 여인을 사랑으로 대했다면 돈 후안은 당시 비도덕적인 사회분위기에 걸맞게 그 많은 여성을 농락대상으로 삼는다. 항변하러 온 능욕당한 한 여인의 아버지마저 살해한 돈 후안은 그의 무덤 앞을 지나다 만난 석상을 집으로 초대한다. 초대된 석상은 죽음의 전령으로 난봉꾼 돈 후안의 사악함이 신의 처벌을 받는다. 1888년 슈트라우스는 독일 작가가 쓴 ‘돈 후안’의 장편 시를 읽고 감명 받아 교향시를 작곡한다. 교향시의 대가인 그가 25세 때 작곡한 첫 교향시다. 교향시는 문학, 철학, 미술, 자연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다. 안드리스 넬슨스의 지휘아래 ‘돈 후안’의 난잡함이 신에게 처벌받는 순간을 거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20분간 묘사된다. 음악가들은 진정 천재다. 어떻게 시를 오선지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눈을 감고, 죽어가는 그를 상상하며 듣는다. 전율이 인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곡들도 곡 해설과 지휘자,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취한 후 플롯과 하프,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를 듣는다. 듣는 맛이 다르다. 팝송 DJ가 꿈이었던 어린 최정호는 중학교 때 차비를 아껴 열정적으로 LP판을 모으면서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고등학생 때는 오페라에 눈 뜨며 마니아가 된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 후 포항시립합창단 단원을 거쳐 현재는 포항시립교향악단 사무장으로 재직 중이다. 포항MBC 라디오의 ‘즐거운 오후2시’ 프로그램에 매주 토요일 출연하여 재즈, 팝, 영화음악 등을 16년간 다루었고, 극동방송에서는 매일 저녁 클래식 음악 DJ를 했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 해설과 각종 음악회·도서관·소공연장·복지회관 등에서 인문학 강의도 많이 하는 그는 클래식음악 해설에도 열정적이다. 지역마다 클래식음악 동호회는 많지만 해설이 있는 동호회는 흔치않다. 클래식이나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최정호의 해설이 있는 금요음악감상회’에서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전음악을 즐기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참 좋을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20

따라 쓰며 곱씹는 글맛 필사의 매력 속으로

요즘 필사(筆寫) 열기가 뜨겁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문장을 정성스레 옮겨 적는 데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게 그 이유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손으로 따라 쓰며 곱씹는 재미에 독서하는 깊은 맛도 더해진다. 그 인기에 서점가는 필사 관련 노트 책을 따로 두는 공간을 마련할 정도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관련 책이 10위 안에 드는 건 당연하다. 온라인에서의 SNS 인증샷을 시작으로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필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련 모임이 여럿이다. 필사 노트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건 자연스런 모습이다. 때아닌 필사 열풍이다. 필사책은 시집이나 소설, 에세이 등 기존의 정형화된 것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니체, 소펜하우어의 문장, 한강 작가의 필사 노트와 비상계엄으로 인한 2030 세대의 헌법 필사가 그 분위기를 뜨겁게 데웠다. 헌법 필사책은 지난달 1,036% 증가했고 품귀현상까지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필사 열풍을 따라 드라마 대본, 가수의 노랫말까지 다양한 필사책이 출판되고 있다. 평소에 아침마다 좋아하는 시를 필사한다는 직장인 A(34)씨는 “시를 필사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도 필사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따라 쓰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사의 의미도 새롭게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필사는 문해력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숏폼에 익숙해진 MZ세대는 긴 글을 읽거나 낯선 어휘를 마주하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은 어휘력과 문해력에 관한 책에 관심도가 높은데 그만큼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자신들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뤼튼이나 챗GPT, 얼마 전에 우리들을 놀라게 한 딥시크 등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글쓰기 감각은 점점 더 무뎌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MZ세대가 주목한 게 바로 필사다. 키보드 대신에 손으로 써 내려가는 과정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기억과 인지력 상승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초등고학년 자녀를 둔 40대 학부모 B씨도 “아이들과 최근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필사하니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들 글씨 연습하기도 좋다. AI 시대 문해력과 독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데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필사는 아날로그적 행위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차분히 정돈하고 몰입감을 주는 활동이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옮겨 적으며 천천히 느끼는 글맛은 느리다. 그 느림이 정신적 위안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필사는 자기 계발과 동시에 힐링을 주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활동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로 필사를 공유함으로써 교류의 즐거움도 느낀다. 필사 모임으로도 이어지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필사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깊이 음미하고 감동적인 문장을 자신의 손 글씨로 다시 느끼는 과정에서 창작에 대한 열망도 생긴다. 필사가 단순히 따라 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만의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올해도 손으로 따라 쓰는 필사의 열풍은 쭉 이어질 것 같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18

유홍준 교수가 들려주는 겸재 정선

얼마 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유홍준 교수 강의를 들었다. 인터넷으로 좌석 예매를 하자 5분 만에 매진이었다. 그의 유명세로 인한 티켓 파워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맞춰 원화홀에 가니 책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줄이 길었다. 아, 우리 집 책꽂이에 가득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화인 열전’이 안타까운 순간이다. 최근에 사서 읽은 그의 사적인 이야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도 재밌었다. 그 책을 들고 저 줄에 섰다가 자필 사인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늦은 후회를 했다.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그렇듯 강의는 재밌었다. 강의 장소가 경주라 ‘신라’의 뜻이 무엇일까로 시작해 경주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가 있는 명활산성을 말할 때 역시 여러 역사 지식을 섭렵하였구나 싶었다. 강의를 들으며 옛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밝아졌다. 여러 화가 이름이 나왔지만 김홍도와 정선의 그림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 그림이나 글씨는 나이가 들어 그릴수록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젊어서 그린 것과 비교해 보여주니 객석에서 탄성이 동시에 나왔다. 단발령에 올라서서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그린 36세의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아름답고도 웅장한 풍경을 화폭 안에 담아냈다. 72세 노년의 정선이 무르익은 필치로 그린 금강산의 풍경은 덜어낼 것을 다 덜어내고 몸에 힘까지 다 빼고 편안해진 금강산이라 보는 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구달바별’의 작품은 21세기에 정선이 금강내산을 다시 그린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LED가 화선지가 되고, 컴퓨터그래픽(CG)이 붓끝이 됐다. 생명력 넘치는 웅장한 금강산의 모습을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연출했다. 작품은 온통 반짝이는 자개로 표현한 금강산의 풍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어 CG로 만들어진 실제에 가까운 금강산 절경이 나타나 화면을 통해서나마 금강산의 ‘진경’을 엿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45세 되던 1720년에는 하양 현감으로 나가 6년간이나 재직하며 부근의 충청도 일대와 영남 일대의 명승들을 두루 유람하고 사생하며 구학첩과 영남첩을 그리며 진경산수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58세 되던 1733년에는 청하 현감으로 나가 내연산삼용추등 영남과 관동 일대까지 두루 사생하며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76세 되던 1751년 윤5월 하순에는 거의 한 달이나 지속되던 장맛비가 그치며 개이기 시작하는 인왕산의 생생한 모습을 묵직하고 깊은 쇄찰법으로 과감하게 쓸어내려 인왕제색도를 완성함으로써 겸재 진경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작을 창조하였다. 강의를 듣고 일행과 함께 경주문화관1918 전시를 관람했다. 자료화면에 나왔던 그림을 손으로 만져가며 느꼈다. 또 명활산성의 위치를 모른다는 회원이 있어서 보러 갔다. 진평왕릉에 주차하고 명활산성까지 걷는 선덕여왕길도 알려주었다. 그때 경주의 아름다운 능선 너머로 해가 졌다. 붉어지는 노을에 우리는 명화를 보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좋은 강의 덕분에 자연을 보는 눈도 더 밝아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5분 만에 매진되었던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시민이 더 좋은 강의와 전시를 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 청하에서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니 더 반가운 일이다. 포항 월포 용산 등산로에 겸재 정선길이 있다. 몇 해 전 그 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를 발견하고 반가워 사진을 찍었더랬다. 강의를 듣고 그 길에 다시 섰다. 그런데 정선길 이정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걸까?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까지 생각해 그렸던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용산을 서성이게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18

벌써 20년 ‘봉화를 찾는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IMF 직후 명퇴자를 중심으로 붐을 이뤘던 귀농, 귀촌이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귀농 열풍이 일었던 2006년 무렵 봉찾사(봉화를 찾는 사람들 약칭) 카페가 생기고 1만 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가입해 활동했다. 하루 700~800명이 방문했고, 정기모임과 비정규모임 등을 운영하여 봉화 귀농귀촌 플랫폼 역할을 했다. 현지인과 귀농인, 예비귀농인 함께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잡이 역할과 버팀목으로 함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생계형 귀농인,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귀촌인, 고향을 찾는 사람들, 은퇴 후 노후를 전원에서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정을 나누는 장으로 벌써 20년이 됐다. 봉찾사 카페는 SNS 발달로 지금은 5천여 명의 회원과 하루 200여 명의 방문으로 예전 같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다. 초창기 50~60대에 봉화로 귀농귀촌한 이들이 현재는 60대부터 80대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봉화는 숲속 도시로 산간지대에 전원주택을 지어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존에 형성된 마을과 조금씩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부부가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면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고, 병원은 어떻게 다녀야 하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흔히들 나이 들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약 83세다.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6년을 더 산다고 한다. 실지 농촌 마을에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많다. 올해같이 눈이 많이 오는 해는 집 앞에 눈을 치우고, 병원에 가야 한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군 보건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과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 자칫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 2023년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인이데 비해 건강수명은 73.1세라고 한다. 10여 년 가까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들의 귀농 정책은 쏟아져 나오고, 은퇴자를 유입하기 위해 전원주택지 분양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마음 놓고 노후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나이 들어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머무르기보다는 살아온 환경에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단순한 거주 지원을 넘어 익숙하게 살아온 곳에서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통합재가 서비스, 재택 의료서비스 등을 살펴봐야 할 시기가 됐다. 봉화도 지방 소멸을 걱정하며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을 살리기 위해 지역의 특화산업을 육성해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청년 귀농 정책도 필요하지만, 노인들이 행복하게 살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도 중요하지 않을까. 끝까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건강한 정주 환경과 복지 기반이 조속히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2-18

비우고 내려놓은 수행자 선시 같은 절제미를 탐구한 시

“그렇다/다 다/아닌 것이 없다/없는 것 또한 없다/그러니 다다//가지려고도/찾으려고도/그 자리에 다 있다/잠을 자고 잠을 깨고는/연속이다//그치지 않고 있는/그 소리를/보고 들음이어라//” 위의 시는 권대자 시인의 한영 동시집 ‘양들의 수업’에 수록된 ‘다 다’이다. 이 시 ‘다 다’의 ‘다’는 한 음절의 퍽 흥미로운 낱말이다. 부사로서 ‘남김없이, 모조리, 몽땅, 전부. 모두, 마카’ 등의 의미로, 시적 화자는 첫 어절 “그렇다”의 무한 긍정으로 시작하여 ‘다’ 그려내었다. 우주 안의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공이요, 공이 물질이니….”(‘반야심경’ 일부 해설)라는 불법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상과 철학은 “기가 만물을 작동시키며, 그 만물이 사람의 감흥을 자아낸다.(氣之動物 物之感)”고 한 당(唐)의 비평가 종영의 ‘시품’‘상품서’에 보인 품평이 바로 그렇게 겹쳐지는 기쁨을 즐기게 된다. 한 마디로 권대자 시인의 동시는 실천궁행의 선시(禪詩) 변용이다. 형식은 동시답게 쉬운 듯 친근하게 다가서지만 내용은 아는 만큼 보이게 한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삶의 수행 곧 불심에서 비롯된 철학으로 보인다. 그의 티 없이 맑은 동심은 비우고 내려놓은 수행자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2-16

사진은 예술이다

나는 피사체를 보는 순간 셔터를 누르며, 스스로 행복에 빠진다. 이유는 카메라에 담긴 영상의 막연한 기대감과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에서 현재 디지털카메라로 기종이 바뀌어도 작품활동을 한 지 40여 년이 흘렀다. 계획되지 않은 자연과 사물을 촬영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예술이면서도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순간의 감동 속에 사실성과 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사진예술이라 하겠다. 세상 인정이 마구 변하는 이때 그래도 한 가닥 변치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잡아 두려는 심사 때문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세상사를 소중히 기록해 간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사진은 다양한 표현 양식을 발전시켜 왔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사진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기록성이다. 사진은 예술의 한 장르이기 이전에 삶의 한 단면을 담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시작이 됐으며, 오늘날에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이 예술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그 삶의 단면에 담긴 사실성과 진실성에 담긴 아우라(aura·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삶의 한순간을 영원히 지속 보존케 하며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며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작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은 쉽게 빨리 변해간다.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리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행복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오래 변치 않고 지속되어 가기를 바란다. 사진은 내가 아는 한 이러한 내 열망을 가장 잘 담아내는 매체이다. 나는 사진을 통하여 무상한 삶과 덧없는 세상의 찰나들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영원하고자 하는 내 삶의 열망을 실현한다. 따라서 내가 숨 쉬는 한 나는 사진작업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벌써 40년의 세월 동안 카메라와 함께하고 있다. 매번 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이런 결과는 사진작가로의 희망인 ‘대구시사진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사진대전 추천작가’ ‘대한민국 현대 미술대전 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국제교류전’ 출품 등 숱한 기록을 남기게 했다. 나는 사진작가로 진입하려는 초보 작가들에게 나의 견해를 들려주어 사진예술에 푹 빠져 보는 계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사진동아리 팀들을 찾아 연혁을 독자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사진촬영 기법들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02-16

포항시립 포은흥해도서관에서 여유를 즐기다

봄날 같던 겨울이 입춘을 만나더니 외려 기온이 뚝 떨어진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깨진다’ 등의 속담이 옛 어른들의 경험치에서 얻어진 것처럼 올해 입춘은 유난히 더 추운 듯하다. 입춘이 지나고 겨우내 내리지 않던 눈까지 내리는 날, 따끈한 커피 한잔 챙겨들고 포항시립 포은흥해도서관으로 향한다. 뚜껑이 있는 텀블러의 음료는 반입 가능하다. 설 명절에 내려온 아들이 연휴동안 공부할 곳을 찾아다니다 포은흥해도서관을 만난다. 연휴동안 도서관들이 모두 휴관일 때, 3월 중 개관을 앞둔 신축 도서관으로 임시개관 운영 중이었다. 지난 1월 22일 임시개관 이후 누구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가능하다. 아직 정식 개관전인 도서관을 4층까지 둘러보는 동안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실내 분위기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 둘러보는 내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예고 없이 터진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이용객이 많다. 넓은 도서관임에도 빈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지열발전소 건립과정에서 발생한 ‘촉발지진’의 발원지는 흥해읍이었다. 그만큼 지진 피해가 컸던 흥해 지역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하고 피해지역 재건을 위한 ‘흥해 특별 재생사업’이 추진되었다. 그 일환으로 마산사거리에 위치한 지진 당시 전파된 대성아파트 부지에 복합 문화공간인 포은흥해도서관과 나란히 재난트라우마센터 및 북구보건소를 통합 건립한다. 흥해읍 마산사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흥해 특별 재생 사업으로 추진된 또 하나의 흥해복합커뮤니티센터는 흥해소방서(119안전센터) 맞은편에 있다. 수영, 탁구, 요가, 배드민턴, 헬스 등 잘 갖춰진 실내 체육시설은 저렴한 강습료로 시설 이용이 부담스럽지 않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던 주민이 “일일 3000원으로 우현동까지 가지 않고 수영을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한다. 65세 이상은 월 1만5000원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어 “우리 동네에 실내수영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거들던 어르신의 발걸음이 활기 차 보인다. 그러나 흥해전통시장 식당가 상인은 이런 신축건물들이 사뭇 못마땅하다. 이미 2007년에 개관한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 만으로도 지역민의 문화 활동에 부족함이 없는데다 커뮤니티센터 부지 거주민과 지역에서 나름 큰 주거단지였던 대성아파트 거주민들이, 기대했던 주상복합아파트가 아닌 공공시설이 들어서며 많은 이들이 흥해읍을 떠나 타동(他洞)으로 이사를 갔다. 지역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읍민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조금은 불편해진 시선으로 포은흥해도서관을 다시 찬찬히 둘러본다. 비치된 책장들이 아직은 많이 비어있지만 읽을 책은 충분하다. 음악자료실에는 추억 속 명곡을 LP판으로도 즐길 수 있다. 예쁜 의자들과 책상이 있는, 카페보다 더 아름답고 아늑하게 꾸며진 그 곳은 앙증맞은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층을 잇는 쉼터 공간에서 책 한 권으로 사색도 즐기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청장년들이 빈틈없이 앉아 공부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지역민의 눈에 곱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용객이 타지 사람이 많아서 일까? 흥해읍 마산사거리에 훤칠하게 들어선 재난트라우마센터·북구보건소가 지진으로 힘들었던 지역민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이 되고, 카페 같은 도서관은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힐링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13

앞선 이들의 노고 덕에 풍요로운 오늘이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시댁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설에는 차례를 지내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그저 잘 계시려니 했는데 몸이 아파서 무척 고생하셨단다. 마음이 짠했다. 윗 동서이지만 나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형님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막내 동서를 한번도 야단치지 않고 늘 이쁘게 봐주는 고마운 형님이다. 다섯 형제의 둘째 며느리지만 첫째 아주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제사며 각종 집안일은 항상 형님이 다 맡아서 해왔었다. 어릴 때부터 고생이라면 진력이 나게 해온 형님은 늦은 나이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연약한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물류센터에서 판매장으로 물건을 배송하는 일이었다. 형님은 체구도 작고 마른 몸이라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에는 취약했다. 거기다 장 수술을 크게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함에도 새벽 4시면 일을 나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형님을 모델로 쓴 시이다.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줄이 있네 / 얽히고설킨 푸른 거미줄 / 그녀의 다리에 언제부터 거미가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네 / 어미의 헌 자궁을 발길질할 때부터인지 / 여덟 달 만에 세상에 나와 / 버둥거리며 울 때부터인지 / 기집애가 배워서 뭐 하냐며 / 아궁이에 던져진 교과서가 불타던 때부터인지 //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 한 마리 사네 /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 남의집살이할 때 / 아마도 거미는 그녀의 슬픔처럼 집을 짓기 시작했으리 / 가난한 남편 만나 식당 종업원으로 돌아칠 때 / 그 다리에서 푸른 핏줄 뽑아내어 / 한 줄 한 줄 지었으리 // 중늙은이가 된 그녀가 / 물류센터에서 온갖 상자를 나를 때 / 다리에 지어진 그 집 푸르게 울었네 / 뒤엉킨 슬픔들이 이무기처럼 울었네”- 엄다경 시 ‘하지정맥류’ 작은 몸으로 무거운 물건을 오래 나르다 보니 형님 다리에는 시퍼런 하지정맥류로 가득했다.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파서 썼던 시이다. 이번에는 더는 버티지 못한 무릎이 완전히 고장이 난 모양이다. 양 무릎을 다 수술하고 회복하느라 고생 고생한 소식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그동안 못 배운 죄로 몸 무너지는 줄 모르고 죽자 살자 일만 하고 산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울먹이는 가여운 분. 내 아픔 아무도 모르더라며 이제 내 몸 아끼면서 나만 생각하고 살겠다고 하소연한다. 형님을 보면 한 세대 차이인데 우리 윗세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지난했는지가 보인다. 여자라고 못 배우고 순종하는 삶만 살아야 했던 가슴에 한이 가득한 분들. 어쩔 도리 없는 시대의 슬픔에 마음 먹먹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넘치는 시대, 지금을 사는 젊은 층은 윗세대 어른들의 이런 희생과 노고를 얼마나 알까 싶다. 변화하는 시대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의 삶이 이렇게 여유 있고 풍요로운 데에는 한 시절을 온몸으로 밀고 살아 내어온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공부하는 내게 자신은 못 배운 게 한이라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엄마처럼 늘 응원해주던 고마운 형님. 곧 영양제라도 사 들고 가서 맛있는 밥 한번 대접해야겠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13

‘초현실주의 100년의 환상: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특별전’을 가다

1924년 지구 건너편에선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가 경주예술의전당 4층 갤러리해에서 열리고 있다. 2024년 한수원 아트페스티벌 ‘초현실주의 100년의 환상: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특별전’이다. 이 전시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작품 약 100점과 함께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긴 콧수염의 사내 살바도르 달리, 오묘한 빛의 집 풍경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호안미로 등 익숙한 이름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 가능하다. 이들뿐만 아니라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초현실주의는 꿈이나 상상을 표현한 예술이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언급했던 이론적인 부분은 접어두고 오직 감상에 집중하기로 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초현실주의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채식주의자가 고깃집 앞에서 웃고 있는 소나 돼지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막스 에른스트다. 막스 에른스트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지라도 그가 발전시킨 기법은 전 국민 중 꽤 많은 비율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바로 ‘프로타주’ 기법으로 문지르기다. 어릴 적 동전을 공책이나 교과서 아래에 두고 연필심으로 열심히 문지른 기억이 날 것이다. 막스 에른스트는 그냥 문지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재질의 느낌을 살려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되어 혼만 났다는 극명한 차이가 있지만. 막스 에른스트의 상상들을 뒤로하고 자주와 보라의 경계에 놓인 벽 위로 마그리트의 인물사진이 등장했다.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찍힌 사진을 함께 동행했던 아이는 전시물들 중 가장 좋아했다.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실물 사진을 볼 수 있는 점도 이번 전시 중 만족한 부분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가기 전 기대했던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생생한 색으로 펼쳐낸 유화작품이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 중 막스 에른스트의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초록의 수풀 속 곱게 핀 꽃들 사이로 숨어있는 위협적인 존재들. 날카로운 이는 금방이라도 평화로운 풍경을 물어 뜯어버릴 듯하다. 작품명에서 보이듯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풍자적으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평범하게 살기엔 지나치게 풍부한 감정을 가진 작가들이 전쟁을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이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인물이라 평한 호안 미로. 허기가 만들어내는 환각 상태에 이르기 위해 말린 무화과 몇 조각을 먹으며 버텼다니 작품을 보는 내내 묘하게 허기가 느껴졌다. 잡아당기고 싶은 꼬리를 가진 의자 작품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오는데 살바도르 달리가 남긴 말이 적혀있다. “레스토랑에서 구운 바닷가재를 주문하면, 왜 구운 전화기를 내오는 일이 단 한 번도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이 이 전시의 요점이 아닌가 싶다. 전시는 2024년 12월 24일부터 2025년 5월 11일까지 진행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전시설명 프로그램은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에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13

안동시 전용 서체 ‘이육사체’ 보실래요?

서울남산체, 여주도자체, 평창평화체, 창원단감아삭체, 정선아리랑체, 아산이순신체, 빛고을광주체…. 모두 각 지자체가 만들어 배포한 전용 서체다. 서체의 이름만 들어도 지자체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담겨있어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지역을 홍보하는 긍정적 효과 때문인지 최근엔 지자체별로 앞다투어 전용 서체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안동시도 안동시를 대표하는 전용 서체가 있다. 지역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캐릭터 ‘엄마까투리’와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 ‘월영교’를 모티브로 한 ‘엄마까투리체’와 ‘월영교체’가 바로 그것이다. 안동을 알리고 시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제작한 안동서체는 안동시청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영상, 인쇄, 인터넷, 모바일 등의 다양한 매체에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며 특별한 허가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안동시의 전용 서체는 총 3개가 있는데 귀여운 캐릭터와 어울리는 둥글고 아기자기한 엄마까투리체와 월영교 다리 중간에 자리한 월영정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담은 월영체 그리고 바로 이육사체가 있다. 모든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시인의 친필 원본을 분석하고 구현하여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실제 활용이 가능한 디지털 글꼴로 개발한 것이다. 지난 2019년 GS칼텍스에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의 필적을 개발해 독립서체 백범 김구, 안중근, 윤동주, 윤봉길, 한용운체를 무료 배포한 바 있다. 안동시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이육사의 친필을 많은 사람들이 활용해 그 문학성과 숭고한 정신을 알리는 주목할 만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시원스레 뻗어 나간 획과 정갈한 동그라미, 섬세하고 분명한 자음과 모음의 조화로 ‘이육사체’의 아름다움이 더 널리 알려지고 쓰이길 기대해 본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2-11

‘조선명화전’

2월에 토론할 책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할 때 어느 정도 거리에서 보아야 하는지,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는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왼쪽 아래로 시선을 옮기라고 알려준다. 오래전 이 책을 읽은 뒤부터 미술관에 가면 그림 크기 대각선의 1.5배 정도 거리에서 먼저 보고, 다시 가까이에 가서 붓의 터치나 세세한 표현을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에 또 멀찍이 떨어져서 자세히 느끼려 했다. 한국의 미를 읽을 줄 어찌 알고, 경주문화재단에서 우리를 위해 획기적인 전시를 준비해주었다. 이런 우연을 경험할 때마다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시다가 옛다 하고 좋은 복주머니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감사하게도 경주문화관1918(구 경주역 건물을 전시관으로 꾸몄다.)에서 ‘경주에서 만나는 조선’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토론하는 책에 나오는 그림이 대부분 있었다.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전이지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70여 점의 명화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레플리카를 통해 조선 회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 이번 전시는 포스코의 Pos ART 기술로 강판 위에 제작했다. 작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예술을 느낀다. 작품 표면의 질감을 손으로 만져보니 감동이 달랐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그림 옆에 설명해놔서 손으로 글과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다. 레플리카는 고전 명화들을 현대기술로 복원한 고품격 복제품이다. 원작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며 섬세한 디테일과 색감을 충실히 재현해 원작에 가까운 감동을 제공한다. 맨 앞에서 우리를 맞는 그림은 강산무진도다. 책에서 알려준 한국화 감상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으며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폭 8m에 달하는 웅장한 산수화인데 실물은 보존상태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전시했다는데, 이번 레플리카전에서는 전폭을 완벽히 재현하여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9월에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촉잔도권’을 걸어가며 감상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영상으로 찍으려니 감탄이 나왔다. 그림 속의 탑은 경주의 탑의 형태와는 달라 중국의 탑인가, 자세히 만지며 보다 보니 높은 바위산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스마트폰에 하듯 손으로 확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정선의 박연폭포는 추상화 같다. 폭포가 시작하는 곳과 물이 떨어지는 곳에 검은 바위를 툭 찍고 물줄기는 한 번에 힘차게 쏴아 쏟아져서 귀가 먹먹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과감한 생략이 현대 추상화를 압도한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연당의 여인을 만나고, 화장실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에도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관동팔경 중 북한에 있어서 가보지 못하는 총석정과 강원도 여행길에 들르는 망양휴게소같은 망양정이 김홍도의 눈을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세황의 ‘매란국죽’, 신사임당의 ‘초충도’, 이암의 ‘모견도’ 등속의 작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붙어있으니 관람자를 배려한 전시다. 손으로 만져보는 그림으로 제일 좋은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수염 한 올 한 올 강렬한 눈빛까지 더듬어서 자세히 느꼈다. 김정희의 ‘세한도’ 앞에서는 그림 속 하얀 겨울을 느끼려 더 천천히 걸었다. 김홍도 ‘풍속화’의 틀리게 그린 그림을 숨은 그림 찾듯 자세히 보는 것도 재미라고 알려준 오주석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전시장 끝에는 색칠놀이하는 가족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 중이다. 우리는 1918카페에서 대추차와 팥물을 듬뿍 뿌린 찐빵을 먹으며 그림 이야기를 나눴다. 굿즈로 경주가 그려진 화투를 사서 나오니 곧 봄이 오려는지 날이 풀리고 있었다. 전시는 이달 23일까지며 토요일에는 오후 2시, 4시 도슨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11

당신의 ‘N잡’ 은 무엇인가요

바야흐로 ‘N잡러’ 전성시대다. ‘N잡러’는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N잡러’의 증가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으로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팍팍해져 직장에서 퇴근 후에도 부업까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층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장년층도 마찬가지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2024) 1분기에 부업을 한 경험이 있는 취업자는 55만명이라고 한다. 10명 중 3명은 15시간 이상 부업을 했고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등으로 비자발적인 실업자도 늘어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주 1~17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지난해에는 최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반 이상이 스스로 ‘N잡러’라고 생각했다. N잡을 하는 이유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안정적인 수입을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등이 많았다. 본업만으로 충분한 경제적 소득을 얻기 어려워 부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게 큰 이유인데 직장인들도 본업 외에 부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대부분 부업을 하는 분위기에서 본업에서의 수입과 배달일, 유튜브 등의 플랫폼 등의 부업을 병행해서 부수입을 함께 얻는다. 과거와는 달리 디지털 기술에 의한 플랫폼 일자리는 진입 장벽이 낮고 원하는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일주일에 10시간 미만의 짧은 시간을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 사는 직장인 A(34)씨는 “퇴근 후에는 배달일을 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N잡을 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회사에서 각종 수당도 많이 없어졌다. 월급만으로는 어려워 신혼일 때 여유자금 마련을 위해 더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N잡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를 보면 퇴직 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 일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한몫한다. 이는 사회초년생이나 임원진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직장인이면서 유튜버나 무인점포를 창업하기도 하고, 외국어 강사이면서 요가 강사. 교사이면서 가수나 작가, 요리사가 되는 등 다양하다. 일은 고정적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유동적이고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적 안정이 N잡러 증가의 첫 번째였다면 또 다른 이유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다. 경직된 직장생활에서 자신이 하나의 부품처럼 일할 때면 회의감이 든다. 스스로 의미를 못 느껴서이기도 한데 조금 더 나다운 일을 찾아 부업을 한다. 그 시작이 자신의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한 주도적인 방법이 된다. 본업과 균형을 맞추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다.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론 본업에 충실한 것이 첫 번째다. 부업이 늘었다는 건 하나의 일자리로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또 모바일 관련 부업거리가 늘어나 이제는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가 쉬워졌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N잡러’ 열풍은 경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11

경북매일신문 스마트시민기자단 ‘대구본사팀’ 발족

경북매일신문사는 스마트시민기자단을 경북에 이어 대구에서도 출범시켰다. 관련기사 12면  이번에 출범한 스마트 시민기자단 ‘대구본사팀’ 은 대구의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역 인사 12명이 참여했다. 앞으로 지역의 여론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알찬 소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구본사팀 시민기자들은 "서울 소식에 밀려 제대로 듣지 못한 내 고장 소식을 더 빨리 더 많이 전달하고 우리 고장의 정체성을 부각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각오를 피력했다.   대구본사팀 시민기자 발족으로 본지의 시민기자팀은 4개로 확대됐다. 앞서 2021년 12월 13일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기자 ‘알파팀’을 태동한 본지는 2022년 1월 20일에는 포항을 제외한 봉화, 안동, 울진, 경주 등의 경북 지역민 12명으로 짜여진 ‘베타팀’을 추가로 구성했다. 이어 2023년 11월 15일에는 도내 일원의 12명을 더 모집해 ‘감마팀’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동안 매주 1~2회 지면 제작에 참여해 왔다. 독자가 직접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시민기자 시스템은  양방향 소통의 시대를 맞아 미디어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본지가 시민기자 운용을 확대하는 것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대구시민기자 발족을 계기로 본지는 지방자치시대에서 시민이 중심인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지역민이 앞장서 지역의 가치를 중시하고 지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그런 사회를 만들때 비로서 지방자치의 꽃이 만개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2-09

눈 내린 겨울, 축서사를 거닐다

그야말로 숨 가쁘게 내달리던 갑진년 청룡은 저녁노을 붉게 타는 축서사 석등을 비추며 떠나갔다. 새해 평온을 바라는 마음으로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 자락 축서사를 찾았다. 좁다란 들판을 지나고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작은 마을들이 겨울을 품고 있다. 산기슭 어귀에는 눈과 얼어붙은 계곡 사이로 또랑또랑 물소리 청아하고, 호젓한 산길에 눈이 내려 여유로운 분위기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과 일주문을 지나면 웅장한 축서사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어 불편함이 없다. 주차장 앞에 보탑성전 계단을 오르면 금강송으로 에워싸인 문수산(1206m) 자락이다. 날개를 펼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층 사리탑과 대웅전이 잘 정돈된 전형적인 절집. 장엄한 산세와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 자태도 근엄하고 엄숙하지만 눈이 내려 나지막이 엎드린 마음에 포근하고 정겹다. 겨울에 묻힌 듯 고즈넉한 대웅전 앞을 지키는 오층 사리탑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서있다. 대웅전 맞은편으로는 보탑성전과 법고, 범종이 자리했다. 축서사는 천년심산 고찰로 흔히들 영주 부석사의 모절, 또는 큰집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축서사를 먼저 짓고, 3년 후 부석사를 지어 그렇게 부른다. 축서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지었으며, 창건 설화에 의하면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있는 지림사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축서사를 지었다고 한다. 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축서사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는 경이로움이다. 봉화 8경중 축서사의 석양이 제7경일 정도로 황홀한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 산사는 쌀쌀한 추위로 삭막하지만, 소나무 숲으로부터 다가오는 공기는 더없이 부드러움이 있어 포근함을 준다. 낙락장송 금강송과 포근한 숲,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축서사는 7일간의 참선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을 운영하고 있다. 탁 트인 시야에 그림처럼 펼쳐진 높고 낮은 소백산맥 능선은 자연이 그린 경이로운 풍경이다.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과 몸이 편안해지고, 정지된 설원 속 비경은 넋을 빼앗아간다. 겨울은 기암괴석들이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금강송에 내려앉은 흰 눈은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낸다. 그 풍광의 멋과 정취에 절집과 사리탑이 어우러져 축서사의 겨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158호 고려의 석등 위로 살포시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시원스런 풍광은 이리 봐도 비경이요, 저리 봐도 절경이다. 아담하고 정갈한 석등에서 바라다보는 축서사의 석양은 그야말로 으뜸이다. 삶의 여정을 잠시 내려놓고 호젓하게 겨울 산사의 풍경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축서사의 겨울 여행을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2-06

모두가 즐거웠던 설날 윷놀이

“명절엔 함께 모여 여행을 가자.” 최씨 삼형제의 대대적인 선언이 있었던 건 지난 설날이었다. 그리고 당해 추석을 끝으로 더 이상 전을 굽지 않게 되었다. 대신 명절엔 가족이 모두 모여 여행을 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경주에서 만나 놀기로 했다. 달라진 명절 분위기에 우리 가족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 첫 여행이 이번 설날에 이뤄졌다. 두 아주버님의 노력 끝에 보현산자연휴양림에서 가장 큰 16인실 예약에 성공했다. 시 가족 모두 12명이니 적당한 크기다. 1시간 거리 가까운 곳이지만 숙박은 처음이라 아이는 몹시 설렜다. 2층짜리 나무집은 꽤 근사했다. 마침 경주에서 보기 힘든 눈까지 내렸던 터라 멋진 설경까지 더해졌다.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와 눈사람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누군가는 눈짐승이라고 했다. 찬바람에 손과 얼굴이 얼얼해질 쯤 안으로 들어가 뜨끈한 어묵과 간식을 나눠먹었다. 해가 지자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고 각자 준비해온 재료들로 식탁이 채워졌다. 평소에 먹던 명절 음식은 하나도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곧장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윷놀이는 매년 설마다 해오던 연중행사다. 간단한 상품들, 이를테면 갑티슈나 세제류, 참치캔 등 실생활에 쓰이는 소액의 물품들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경쟁률은 여느 고가의 물품 못지않게 치열하다. 거기에 청소년들에게 맞는 상품은 없다는 항의로 용돈까지 상품으로 걸렸다. 덤으로 “꽝”까지 추가해 스릴감까지 얹었다. 이번엔 특별히 시어머니 권한으로 ‘하나마나’라는 규칙까지 새로 생겼다. 윷을 던져‘하나마나’란 글자가 적힌 패가 나오면 그 앞에 모를 했던 윷을 했던 모두 무효가 된다. 이때만 해도 그 규칙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모두 알지 못했다. 역대급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윷놀이가 이뤄졌다. 팀은 세 팀으로 가족 상관없이 나눠졌다. 삼형제와 시어머니팀, 며느리팀, 손자팀으로 구성되었다. 이기는 팀은 각자 뽑기를 해서 저마다 상품을 가져갔다. “꽝”이 존재했기에 이긴다고 끝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글자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분노했다. “하나마나”는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다. 모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던지고 여러 말들을 잡고 이쯤이면 이길 것이라 확실하던 순간 “하나마나”가 나왔다. “하나마나”는 마치 일부러 오류를 심어놓은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게임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마나를 뽑으면 당사자팀을 제외하곤 모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사가 윷놀이판에 그대로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가도록 뽑지 못한 상품들이 반쯤 남아있었다. 다들 서서히 지쳐갔다. 평소보다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난 꼬맹이는 눈이 반쯤 풀려 비몽사몽 중이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순서가 되면 벌떡 일어나 윷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 중 가장 성공률 높은 뽑기 성과를 보였다. 심야의 주택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큰 웃음 속에서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윷놀이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날 단체 늦잠으로 이어졌다. 느지막이 일어난 가족들은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대형 카페로 향했다. 점심 대신 차와 빵으로 대체한 후 잠시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낯설었던 풍경이다. 아마 10년 뒤엔 또 다른 모습의 설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가족 모두가 행복한 설날이 되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06

얼음과 함께 따뜻해지는 시간, 안동암산얼음축제

2025 안동암산얼음축제가 지난 1월 18일부터 26일까지 9일간 안동시 남후면 암산유원지에서 열렸다. 설 명절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1월 25일, 암산얼음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족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안동’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간고등어와 안동찜닭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블로그를 통해 찾아간 맛집은 맛있는 음식도 맛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월영교와 안동을 대표하는 하회탈, 아기자기한 식물들까지 더해져 눈까지 즐거웠다. 식사 후에는 월영교를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암산유원지로 향했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와 주말이 맞물려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다. 축제장 주변에 닭강정, 핫도그, 소떡소떡 등 출출함을 채워줄 다양한 간식들을 파는 부스가 있어 맛있는 냄새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얼음판에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얼음 썰매가 인기 있었다. 스케이트도 많은 방문객들이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얼음 낚시를 즐기기 위해 얼음 낚시장으로 갔지만, 최대 수용인원이 다 차서 1시간 가량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얼음 썰매를 즐기기 위해 3인용 얼음 썰매를 빌려 엄마와 동생, 시민기자까지 썰매를 탔다. 썰매가 생각보다 잘 나가지 않아 셋이서 서로 번갈아가며 앞에서 끌어주다가 결국 다 같이 타고 열심히 썰매 스틱으로 얼음판을 밀었다. 대여 시간은 총 2시간이었지만, 큰 얼음판을 두 바퀴를 돌아오니 더이상 놀 수 있는 체력이 없을 만큼 지쳐버린 우리는 1시간을 겨우 채우고 썰매를 반납했다. 지쳐버린 탓에 얼음 낚시를 하자는 약속도 잊은 채, 썰매 반납 때 받은 안동사랑상품권을 가지고 안동중앙신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신시장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 생선 등이 예쁜 색감을 자랑하며 놓여있었고, 치킨과 족발, 떡볶이 같은 간식거리도 맛있는 냄새를 뿜어냈다. 우리는 배추전을 만들어 먹을 배추와 때깔 좋은 당근, 알록달록 오색빛깔 송편까지 샀다. 얼음 낚시의 아쉬움을 시장에서 달래고 대구로 돌아왔다. 이번 안동암산얼음축제는 시민기자에게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즐기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고, 올해의 추억을 한 페이지 써내려 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안동은 우리가 방문했던 명소 외에도 도산서원, 하회마을, 화회세계탈 박물관, 이육사 문학관 등의 가볼만한 곳이 많아 여행하기 좋은 도시이다.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안동 데이트를 떠나보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