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 자리한 일본인 가옥거리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목조 가옥과 일본식 기와지붕, 미닫이문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하며 남긴 생활의 흔적을 지금의 우리에게 전한다.
이 거리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구룡포가 동해안 어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대거 정착해 어업권을 장악했고, 집과 상점을 짓고 마을을 형성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진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꼭 들러볼 만한 장소다. 이곳은 1920년대 일본 상인의 저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전시관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구룡포 근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내부에는 생활용품, 가구, 어업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외형과 함께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를 생생히 체감할 수 있다.
거리 한쪽에 놓인 계단에는 당시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들이 떠난 후, 구룡포 주민들은 시멘트를 발라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시멘트가 발린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날 수 있는 충혼탑은 해방 이후 지역을 지켜낸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흔적 위에 세워진 충혼탑은, 그 자체로 시대가 남긴 상처와 극복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구룡포’는 ‘아홉 마리의 용이 바다로 승천했다’는 전설로부터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를 형상화한 9마리 용 조각상이 구룡포를 지키듯 서 있어, 마치 전설 속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듯한 특별한 인상이 남았다.
이곳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더 잘 알려진 장소가 되었다. 주인공 동백이 운영하던 가게 ‘까멜리아’의 배경을 비롯해 극의 주요 장면들이 바로 이 거리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일본인 가옥거리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문화·관광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기념품 가게들도 여럿 만날 수 있다. 포항 바다를 형상화한 소품부터 재미있는 디자인의 상품까지 다양한 기념품이 즐비했는데, 시민기자 역시 집게 모양 빨간 볼펜으로 추억을 챙겼다. 손에 쥐자 마치 이곳에서의 기억을 집어 온 듯한 기분이 들어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계단에 새겨진 이름과 충혼탑, 그리고 근대역사관과 용 조각상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와 전설을 되새기게 했고, 드라마 촬영지와 기념품 가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해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거리는 기억을 간직하고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