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창업주 사저로 사용된 ‘선혜원’ 리모델링 후 복합문화공간 재탄생 ‘선혜원 아트프로젝트’ 첫 전시회 김수자 개인전 ‘호흡–선혜원’ 개최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한옥 선혜원은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사저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SK의 미래를 논의하던 이 공간은 3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한다. ‘선혜원 아트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김수자 작가의 개인전 ‘호흡-선혜원’(2025년 9월 3~10월 19일)이 열렸다.
입구에는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시선을 위로 두니 ‘선혜원(鮮慧院)’이라 새겨진 현판이 위엄 있게 걸려있다. 이 곳은 경흥각(京興閣), 하린당(賀隣堂), 동여루(同輿樓) 세 동이 디귿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선경(鮮京)을 흥하게 한다’는 뜻의 경흥각, ‘이웃을 돕는다’는 하린당, ‘사회와 함께 한다’는 동여루. SK의 창업 철학이 깃든 이름들이다. 한옥의 격조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고요하고도 품격 있는 기운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가파른 계단 끝에서 마주한 창연문(昌演門)은 마치 사찰의 일주문을 연상시킨다. 경건한 분위기의 문을 지나면 높고 기품 있는 지붕 선을 가진 경흥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길을 끄는 지붕 위 잡상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긴다, 왼편의 ‘建賢戠人源株百(건현시인원주백)은 SK그룹 창업주와 후계자 그리고 100주년(2053) 등을 상징하며, 오른편에는 SUPEX(Super Excellent)의 경영철학을 형상화한 토우들이 놓여 있다. 잡상은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상징물로 선혜원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경흥각 내부에 들어서면 한옥의 품격이 곧 예술이 된다. 바닥 전체가 거울로 마감되어 천장의 목재 구조와 관람객의 모습이 끝없이 반사된다.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관람자는 ‘걷는 행위’ 자체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전통과 현대, 개인과 타자가 공존하는 시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경흥각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전환시킨 작가의 대표 연작 ‘보따리’는 이동, 정체성, 기억을 품는다, 여행을 하거나 이사를 할 때 소지품을 천에 싸서 묶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 도구 ‘보따리’를 현대 미술 언어로 끌어올려 이주와 디아스포라 그리고 삶의 흔적을 담는 이동식 보금자리로 재해석 한다.
거실 역할을 하는 하린당에는 조선백자 달항아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반구형도자기가 전시 되어 있다. 두 그릇을 맞붙인 비대칭 구조는 보름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 그리고 보따리를 연상시킨다. 지하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는 해와 달이 상징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래층에 전시된 세 개의 ‘보따리’ 작품이 또 다른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화장실조차도 예술의 일부다.
전시 관람 후 동여루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바라본 경흥각 전경은 웅장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절제의 미를 보여준다. 한때 재벌이 거주하던 사저이자 기업의 역사를 품은 이 한옥이 이제는 예술의 무대로 거듭난다. 김수자의 개인전 ‘호흡-선혜원’은 전통과 현대, 공간과 인간의 ‘숨’을 하나로 엮는다.
시간별 예약제로 운영되는 덕분에 관람객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옥의 고요함을 만끽하며 유유자적한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선혜원은 기업의 철학이 예술로 승화된 공간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작가와 더 깊은 예술이 머무는 ‘예술의 성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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