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대구 중구 건강대학에서 가을 정취 속에 어르신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시조 한 수에 인생을 담다–박인로와 조선의 시인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특강은 대구가톨릭대 국어교육과 박상영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조선시대 시조를 통해 문인들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조의 본질을 짚다: 개념, 형식, 역사적 흐름
강연은 시조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 형식적 특징과 역사적 전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그 시절의 유행가라고도 할 수 있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인 시조는, 단순한 운문 형식을 넘어, 조선조 문인들의 철학과 감정을 담아낸 삶의 기록임을 강조하며,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적인 울림을 전하는 장르임을 일깨웠다.
여말선초에서 퇴계 이황까지: 사상과 감정의 흐름
박 교수는 여말선초의 대표 시조인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통해 당시 정치적·사상적 배경과 시조 탄생에 대해 설명한 뒤, 이어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을 소개하며 그의 유교 사상과 처사적 삶의 흔적을 시조 속에서 어떻게 엿볼 수 있는지를 재미나게 풀어냈다. 이황의 시조는 그가 44세 때 관심을 가진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20여 년간 연구한 최종 결과물이었기에 그 감동이 배가 되었다. 즉 단순한 교훈을 넘어, 자연과 인간, 도덕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한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르신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이어 노계 박인로의 ‘조홍시가’, ‘사친’ 등 ‘효’를 주제로 한 시조를 함께 낭송하며,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관련하여 6살 육적이 부모를 생각하며 귤을 품었다는 육적회귤(陸績懷橘) 고사를 비롯해, 민손 이야기, 서포 김만중 이야기, ‘목주가’ 등 다양한 내용들을 곁들이며 ‘효’의 정신이 어떻게 문학 속에 녹아들었는지를 설명했다. 나아가 현대 작품 속에서도 ‘효’의 가치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연결해 어르신들의 삶과 감정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고산 윤선도의 시조도 깊이 있게 다뤄졌다. 젊은 시절 작품인 ‘견회요’를 비롯해, 중년 이후에 지은 ‘산중신곡’의 ‘오우가’, ‘산중속신곡’의 ‘증반금’, ‘어부사시사’, 그리고 66세에 정계에 복귀했다가 다시 은퇴하며 지은 ‘몽천요’까지, 윤선도의 시조를 통해 그의 한평생 삶의 굴곡과 자연에 대한 애정, 정치적 현실에 대한 성찰을 함께 나누었다. 시조 속에 담긴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의 내면이 어우러진 풍경은 어르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연은 단순한 문학 강의에 그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조선조 양반의 한평생을 시조를 통해 되짚으며, 인간이 살아가는 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시조 속 문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이번 특강은 우리의 고전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을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였다. 시조라는 고전 문학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을 울리는 살아있는 언어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권정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