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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잠든 ‘고녕가야의 맥박’ 되살려야

등록일 2025-10-26 15:47 게재일 2025-10-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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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 후 방치된 대심리 고분 모습.

경북 예천에는 고녕가야의 숨결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대구에서 문경을 지나 예천으로 향하는 길, 관광버스 행렬은 낙동강을 따라 나란히 흘러간다.

낙동강 서편에서 태동한 고녕가야는 오래도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었으나, 식민사학의 그늘 속에서 지워지고 왜곡되었다. 그러나 예천 또한 함창과 맞닿아 내성천 상류에 자리하며, 고대 가야 세력의 자취를 짙게 품고 있다.

예천군청 뒤 봉덕산 기슭에는 대심리 고분군이 있다. 수십 기의 무덤은 도굴의 상처만 남긴 채 봉토만 앙상하다. 안내판 하나가 “예천의 소중한 유산”이라 적고 있으나, 자세한 설명조차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2020년 9월 4일 국내 일간지에 보도된 발굴 기사, “원삼국, 삼국시대 묘 3기와 200여 점 유물 발견”은 잠시 희망을 주었지만, 그 후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치 땅속에서 다시 갇힌 혼처럼. 이제 문화재청과 학계가 이 침묵을 깨야 한다.

특히 ‘원삼국’이라는 명칭은 일본 학계가 만든 인위적 구분이다. 삼국의 서막을 ‘삼국시대’라 바로 불러야 한다. 이름은 곧 정신이기 때문이다. 예천 고분군의 봉토분은 가야식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고분 상판석의 웅장함은 창녕 비화 지역, 함창 오봉산 고분군과 닮았다. 길이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돌을 옮긴 고대인의 지혜와 공동체적 힘 앞에서 경외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도굴과 방치 속에서 석실만 드러난 고분은 무관심의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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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개돌이 노출된 대심리 고분.

예천의 고분군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가야의 혼과 맥박이 살아 있는 터전이다. 후손들이 명당이라 여겨 세운 현대식 무덤조차 원래는 천 년 고분의 일부였다. 사철나무 무성한 봉분 앞에 서면, 작은 산봉우리로 착각했던 언덕이 사실은 역사의 증언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낙엽과 흙에 덮인 모습은 서글프다. 만약 그곳이 제대로 복원된다면, 예천은 고대 국가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예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원의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또한 안내판이 없으면 산으로 착각될 정도로 방치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무덤을 파헤쳐 가야의 보물을 반출했고, 지금도 그 유물은 일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되찾아야 할 우리의 뿌리이자 혼이다.

예천은 함창과 맞닿은 땅, 곧 고녕가야의 문화권이다. 그곳의 고분은 땅속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이다. 이제 우리는 그 흔적을 복원하고,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야만 예천에 잠든 고녕가야의 맥박이 다시금 힘차게 뛰기 시작할 것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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