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가을의 속삭임, 성주에서 만난 예술의 온기

등록일 2025-10-23 15:37 게재일 2025-10-24 12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노진아·서해영·제승규 등 23인의 조형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 ‘Paradox’ . 

지난 11일, 추석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만학도 동기들은 가을 기운이 부드럽게 스며든 경북 성주군 월항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과거 문예지 출판 기념회를 함께 치렀던 인연을 따라, 변화한 공간을 기대하며 찾은 복합 문화공간이 있었다. 그 이름은 아트리움 모리와 브런치 카페 트리팔렛이다.

고요한 시골 마을 어귀에 위치한 아트리움 모리는 한때 제조 시설이던 공간을 완전히 정리하고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해 있었다. 본관 전시장 아트리움 모리, 미디어 및 설치 중심의 아트스페이스 울림, 청년 작가 레지던시 공간 유촌창작스튜디오, 문화·상업 기능을 함께 지닌 아틀리에 샘,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의 축인 브런치 카페 트리팔렛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공간을 연 구복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흔들림 없이 우직한 산처럼, 여린 작가와 맑고 투명한 작품들을 듬직하게 품어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 말처럼, 아트리움 모리는 단지 전시만 보여 주는 장소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을 담아내는 ‘예술의 그릇’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Second alt text
임도 작가의 개인전 ‘잠 못 드는 이들의 나이테’.

본관에서는 임도 작가의 개인전 ‘잠 못 드는 이들의 나이테’가 전시 중이었다. 우리는 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 조용히 쌓인 결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며 작가의 내면과 깊게 마주하려는 듯한 집중이 이어졌다. 작품은 말없이 속삭였고, 우리는 그 침묵을 듣고자 귀 기울였다.

본관을 나와 아트스페이스 울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선 두 개의 전시가 만학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구영웅 작가의 작품 ‘Particles – 별, 고을’. 집 모양의 캔버스를 중심으로, 빛나는 판이 중첩되어 화면을 채웠다. 영웅신화처럼 찬란한 색채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관람자는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갈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두 번째로는 노진아·서해영·제승규 등 23인의 조형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 ‘Paradox’. 이 전시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설치 장치와 관람객 간 상호작용이 시도된다. 우리도 장치와 눈빛과 대화로 소통을 시도했는데, 인공지능이 응답할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 공간에 스며들었다.

전시 관람 후 우리는 카페 트리팔렛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유리로 둘러싸인 실내에서 들판과 산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지고, 자연을 배경으로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더불어 전시장과 카페를 연계한 관람 할인제도는 방문객이 공간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머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었다.

한 지역 예술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의 예술 생태계 속에서, 아트리움 모리처럼 지속성과 정체성을 가진 복합 문화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귀한 일이다.”

그의 말처럼 모리는 2022년 개관 이후 전시 규모를 점차 확장했고, 청년작가 공모전 ‘모리 영 아티스트’를 운영하며 레지던시 공간까지 갖춘 예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왔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공간을 마련하는 이 복합 문화공간이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다만, 공간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 측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구복순 대표의 초심과 의지 외에도, 지자체의 지원과 관심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날의 동기생들의 나들이는 단순한 문화 체험을 그 이상으로, 예술과 삶이 조용히 섞이는 순간을 만나는 기회였다. 아트리움 모리와 트리팔렛은 그 감성을 오래도록 간직해 줄 추억의 장소로 우리들 마음에 새겨졌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