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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독도경비대 유영재 상경

서울도 이제 많이 쌀쌀해졌겠구나. 수능 시험은 잘 쳤을 것으로 믿는다. 대학입학 준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네 모습을 생각하니 아련해지네.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입대를 한 지 벌써 1년이 다돼가면서 계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소대에는 이제 나를 가르쳐주던 선임들보다 새로운 후임들이 더 많아.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가르쳐줘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사소한 것이라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간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소대 막내로 독도에 처음 들어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얼마 전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날은 도서지역 합동훈련도 했는데 실전처럼 훈련하면서 겉만 번지르한 독도경비대원이 아닌 진정한 독도경비대원으로서 더욱 뿌듯함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단다.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떨 때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외로움을 타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네 오빠는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철저히 국토수호를 하고 있단다.사실 입대 전 나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전역을 하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걸 보니깐 뒤처진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너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사실 피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어느덧 20대 중반이라는 꼬리표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취업은 취업대로 걱정이었으니 말이다.그렇게 한 달 정도 걱정을 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으로 독도경비대라는 것을 알게 됐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시 한 번 이 식상한 문장 하나가 내 뇌리에 박히더라고. 이번에는 가슴 깊이 다가왔지.대한건아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져야 하는데 이왕 하는 군 생활 정말 멋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도경비대 입대를 신청하게 됐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고 부모님께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잘해내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단다.또한, 그 만큼 노력하고 있고. 지난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지리 시간에 독도경비대원 오빠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는 네가 기억나. 그때 나는 한창 전입신고를 마치고 소대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시기였다.너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지 너는 모를 거다. 정말 고마웠단다. 동생아. 이제 그만 줄여야 할 것 같네.스스로 잘 해내리라 믿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기면서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나 또한 대한민국 민족의 섬 독도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독도경비대원 오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파이팅!

2013-11-11

독도경비대 독수리 지역대 김영웅 수경

어머니, 아버지 막내아들 김영웅입니다.훈련소에서 어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꾹 참은 채 입대한 날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의경으로서 마지막 계급인 수경을 달았습니다.울릉경비대와 독도를 오가면 이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세 번째 독도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군 생활의 마지막, 저 자신의 태도나 심경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상황에서 급한 마음과 초조함이 사라지고 여유를 가지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곳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를 갖고 생활하게 된 독도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산과 바다, 좋은 경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꼭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올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지금까지의 독도생활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관광객을 맞는 마음입니다. 어르신들이 독도에 많이 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시며 내 자식 같다며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뭉클하고 코가 시큰거립니다.우리 모든 대원들이 저와 똑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응원을 들으면 독도경비대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문득 처음 육군훈련소에 면회 오셨을 때 부모님께 독도경비대에 지원했다고 뜬금없이 말씀드렸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됐지만 네가 진정으로 가고 싶다면 가라고 응원해주시던 말씀이 큰 힘이 됐습니다. 남은 군 생활을 멋지게 하고, 그 어느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시간과 경험을 얻었습니다.어머니, 아버지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얼른 전역해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경험과 운치를 밤새도록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충성!

2013-11-04

독도경비대 독수리 지역대 김용준 일경

대한민국에서 가장 태양이 먼저 떠오르는 곳, 대한민국 영토의 최동단인 이 곳 독도에서 쓰는 편지다. 독도에 온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새들의 고향`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도에 그 많은 괭이갈매기들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독도에 오기위해 울릉도에서 약 200리 뱃길을 따라 배들이 접안지 근처로 다가오면 독도경비대원들은 도열을 해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접안지 근무를 시작한다. 독도 땅을 밟고 환호하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나온다. 때로는 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도 계신다. 독도의 멋진 경관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고 태극기나 `독도사랑`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많은 분들이 독도를 오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어느 날 양팔이 온전치 못한 아저씨가 다가와 “수고가 많네”라며 과자와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넸다. 양손이 없어서 짧은 양팔로 태극기를 들고는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극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겨우 사진을 찍었다. 떠나면서 아저씨는 “내가 몸이 성했더라면 자네처럼 독도를 지켰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뭉클한 진한 감동이 뇌리를 스쳤다. 독도를 지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또 어느 날은 정신지체 장애 우들이 독도를 찾았다. 다들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손도 잡아주고 포옹도 했다. 그 중 한 꼬마가 멋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커서 멋진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꼬마와 기념사진을 찍고 나중에 꼭 멋진 경찰이 돼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그 꼬마에게 부끄럽지 않는 독도경비대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근무를 마치고 바라보는 독도는 너무나 아름답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노을이 가득 퍼진 수평선과 그 아래로 지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멍해질 때도 있다.독도는 몇 백만 년 동안 거친 파도와 모진 바람을 견디어 왔다. 앞으로도 독도는 영겁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수백만 년의 삶을 산 독도에 비하면 나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지만 독도는 나에게 큰 폭풍처럼 깨우침을 준다. 독도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디딜 그 때의 그 기분과 다짐으로 독도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겠다.

2013-10-28

독도경비대 현무지역대 이성빈 일경

차가운 새벽바람 사이를 가르며 우리 현무지역대의 우렁찬 구호가 독도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헬기장에서의 체조와 구보로 힘찬 아침을 맞고, 이제 막 날기 시작한 어린 괭이갈매기들도 어색한 비행 연습을 하면서 하루를 맞는다.아침 인원점검이 끝나면 근무표를 보며 오늘의 일정을 숙지하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방문하는 여객선들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돌변하는 독도 인근 파도 때문에 혹시나 여객선이 접안을 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오늘은 파도가 잠잠해 접안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 독도경비대의 동료 괭이갈매기 들도 분주히 날아다니는 걸 보니 손님 반길 준비를 하는가 보다.오전 10시, 높은 파도를 뚫고 씨라워호가 접안에 성공해 240여 명의 관광객들이 독도를 밟을 때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독도를 보며 흐느끼기에 달려가 무슨 일인지 여쭈었다. 독도를 밟고자 작년부터 5번 배를 탔지만, 날씨 탓에 모두 실패하고 마침내 오늘 독도 땅을 밟게 됐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생전에 독도를 못 밟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제야 사라진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쉬웠는지 연신 손을 흔들어 주신다. “독도경비대! 파이팅! 수고하세요!” 일본이 터무니없이 역사를 왜곡하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 주장하지만, 독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바로, 독도는 `대한민국 경찰`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또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나라 국민 수백 명이 독도를 방문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이곳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소한 행동부터가 진정 우리 국민이 우리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믿는다.저녁 8시, 노을지는 건너편 서도를 바라보며 후임 한 명과 관측근무를 서고 있다. 찬바람이 뺨을 쳐대고 있지만 우리는 오른쪽 어깨에 멘 총 끈을 꽉 쥔 채, 서로 솔직담백한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본다. 독도경비대로 지원하게 된 동기와 근무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달콤했던 첫사랑이야기 등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근무시간 종료가 코앞이다. 독도경비대로 지원해 처음 독도에 발을 딛던 순간과 그때의 전율을 잊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과거 독도 의용수비대 선배님들과 국민의 염원을 이어받아 우리 땅 독도를 굳건히 사수할 것을 맹세한다. 충성!

2013-10-21

독도경비대 김관훈 일경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아들 김관훈입니다.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하다가 독도에 들어와서야 편지를 올립니다. 독도 입도 전 약 50일간의 훈련을 잘 마치고 이달 1일 독도로 왔습니다. 원래 50일 훈련을 마치면 이사준비로 한 주 정도의 시간을 주는데 이번 경우에는 해상날씨 및 여러 변수로 이사준비를 3일 만에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훈련으로 지친 체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이사준비를 해야 했기에 힘들었을 텐데 저희 대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이런 대규모 이사는 처음이었기에 생소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휘요원들과 선임들의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가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울릉도에서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독도에서 저희를 맞아준 청룡소대와 인수인계를 마치고 약 7시간에 걸친 이사를 시작했고 선임·후임 할 것 없이 모두 열심히 참여해 재미있고 즐겁게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중간에 점심으로 먹은 주먹밥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취사 대원들이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해준 주먹밥이라 그런지 더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가 끝날 무렵 관측 근무를 서게 됐는데 자연경관이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신비한 광경에 압도돼 있는데 더불어 해가 지면서 연출된 석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맞이한 레이더 근무는 저를 당황케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장비에, 용어에, 근무방식은 저에게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을 가져주었습니다. 이렇게 지금 저는 새로우면서 다양한 일들을 맞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성장해 매 휴가마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늘 어머니, 아버지가 강조하신 것처럼 받은 도움보다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타인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군 생활을 하며 어머니, 아버지의 바람에 응답할 수 있는 아들로 성장하겠습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충성!

2013-10-14

독도경비대 청룡지역대 곽동훈 상경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던 이번 여름도 지나갔다. 하루하루 제대일을 손꼽아 세는 대한민국 군인들, 그리고 예비역이면 지금 이 하루의 더딤을 누구보다 공감하지 않을까. 글을 쓰기전에 앞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고생하는 대한민국 군인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친다.이곳 독도경비대의 취사는 힘들다. 보통의 식당대원들이 다 그러하듯이 주된 업무는 `취사` 즉 밥 짓는 일이다. 이곳은 오전 6시만 되도 언제 새벽이 왔었느냐는 듯 날이 훤하다.지난달 23일 월요일의 아침 메뉴는 비엔나볶음, 쇠고기 미역국이었다. 아침은 비교적 간단한 메뉴여서 밥 짓기가 한결 수월하다. 아침점호가 끝남과 동시에 독도경비대의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점심메뉴는 찜닭, 고구마맛탕, 육개장이다. 독도에서의 메뉴는 육류는 많지만, 채소류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독도 입도 시에 50일치의 음식재료를 한꺼번에 사들여 와야 하고 냉동 보관이 어렵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전에 식단표를 미리 짠다. 물론 20대의 혈기왕성한 대원들은 언제나 고기요리를 선호하기 때문에 채소의 빈자리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지역 대의 식당대원으로서 균형잡힌 식단을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일반인들이 보기에 군인들의 한 끼가 화려해 봐야 얼마나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도경비대 청룡지역 대 식당대원들의 역량은 꽤 높은 수준이다. 자랑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경찰청 측에서 요리 경연대회를 주최해서 독도경비대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 본다. 이렇게 한 끼 한 끼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또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섬이라는 특성상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할 수 없고, 물·전기 등의 자원을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늘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 내야 한다.독도경비대 생활이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기에 오늘 하루도 씩씩하게 살아간다. 독도경비대의 식당대원으로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요리를 만들어 내자. 남은 군생활의 그날까지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충성!

2013-10-07

독도경비대 김환 일경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그저 우연히 이뤄지는 만남은 없으며, 어떤 만남이든 그 이유는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만남이 있으며, 이러한 만남은 모두 소중하다. 내가 지금 발을 디딘 이곳 독도의 독도경비대 또한 내 인생에서의 어떤 소중한 만남을 위한 필연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는데 동도에는 우리 독도경비대가 있고, 서도에는 독도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김성도, 김신열 독도 이장님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독도에 입도하고 며칠 뒤, 동향근무를 끝마치고 접안지에 있는데 서도 김신열 할머니께서 기동복에 적힌 나의 이름을 유심히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갔다. 근무 때문에 며칠간 접안지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다른 대원들에게 전해 듣기로 할머니께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었다.며칠 뒤 할머니는 손자와 나의 이름이 똑같아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김씨 부부의 외손자 이름이 김 환이었다.내가 경험한 21년,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입대 중에 독도라는 장소에서 이렇게 알게 되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외로운 섬 독도. 그곳에서 당신도 외로우셨을 텐데 접안지에 내려가 있는 짧은 순간만이라도 나를 손자처럼 대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늠름한 손자가 되고자 노력해야겠다.며칠 뒤 태풍으로 잠시 울릉도에 계시다가 들어온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근무 중인 나에게 다가왔다. 예전부터 홍합밥 한 번 만들어 먹이고 싶다고 자주 말했는데…. 나는 그냥 하는 말이겠지 싶어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뜻이 확고한 것 같아, 진짜로 가도 되겠느냐고 여쭤보니 할아버지께서 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지휘요원 분들과 동행 하에 이장님 댁에 방문했다.나는 할머니를 도와 식사 준비를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해녀 출신이었던 할머니께서는 직접 잡은 가지각색의 자연산 독도해산물로 진수성찬을 차렸다. 명불허전. 독도는 황금어장이라는 말이 손색 없을 정도였다.음식의 맛에서 할머니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도로 돌아오는 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육지가 있는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하지만, 막사로 돌아가는 순간 그러한 기분은 독도경비대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을 흔들 수도 있기에 잠시 접어두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아들, 손자, 친구이기 이전에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대한민국 최동단을 지키는 경찰이기에…. 충성!

2013-09-30

독도경비대 청룡지역대 신재민 일경

오늘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날이다. 보통 사람들은 독도를 떠올린다면 아름다운 괭이갈매기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인도를 상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괭이갈매기들이 하늘을 날면서 단체로 실례(?)를 저지르면 독도경비대 기동복이 괭이갈매기의 변에 뒤덮이기도 하고 동도의 독도경비대 건물과 서도의 주민가옥도 온통 변으로 널려있다.더욱이 여름이면 관광객이 하루에도 수백여명이 오기 때문에 독도가 무인도라는 말은 사실상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이유로 독도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작업은 보통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 고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우리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한 상태로 모아두었다가 주기적으로 쓰레기 처리용 선박에 싣는다. 하루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과정이 길어서 쓰레기 처리를 하는 날이면 모두가 심한 악취에 시달린다. 내가 속한 독도경비대 청룡지역대는 쓰레기 처리과정때는 전 대원이 힘을 합쳐 신속하게 해치운다. 인력으로 선착장까지 내리는 일도 있다. 수직 높이만 어림잡아도 약 90m를 오가는 작업인데 수평 이동거리까지도 만만찮다.독도는 청정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쓰레기 처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솔직히 귀찮을 법한 담배꽁초를 줍기도 이곳 독도에 오면 누가 안 시켜도 하게 될 정도로 독도 청정화에 힘을 쏟는다.쓰레기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봉지가 터져서 곤란할 때도 있다. 쓰레기를 다시 담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람에 날아간 쓰레기가 독도를 더럽힐까봐 걱정이다.쓰레기 처리를 하면서 선임들의 노련함과 신속함, 근면함은 나에게 큰 본보기가 됐다. 계급이 높다고 떠넘기지 않는 태도가 우리 청룡지역대 선임 대원들의 장점이자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날이 습해서 그랬는지 쉬고 있어도 서서히 지치게 되는 하루다. 깔끔해진 독도의 자연을 벗삼아 저 멀리 독도 망망대해에 내린 황혼 끝자락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이번에 배운 교훈을 앞으로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충성!

2013-09-16

독도경비대 청룡지역대 강윤근 상경

지난 8월28일 태풍 `콩레이`가 대한민국까지 상륙하려고 했다. 이 태풍 영향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여객선 입출항이 전면 중단됐다. 식사시간 막사에서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순간적으로 강풍이 불어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독도에서는 갑작스런 돌풍이 불면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헬기장이나 구 접안지 쪽은 굉장히 위험해 비명횡사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독도 의용수비대 시절에는 추락사 하신 분도 있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해보면 돌풍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등대 앞에 위령비를 지날 때마다 숙연해지는 이유다.지난 1일(일요일) 독도경비대와 울릉경비대 전체가 긴장했다. 김귀찬 경북지방경찰청장이 부임후 첫 독도를 방문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긴장했다. 평소라면 아침밥 먹고 근무까지 쉬었겠지만, 오늘은 일어나서 내무반 정리부터 머리 손질까지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저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릴 때 긴장을 많이 해서 배까지 아팠다. 헬기에서 내리는 청장을 향해 힘차게 `충성` 구령을 외쳤다. 대원 한 명씩 일일히 악수하면서 따뜻하게 독려해 줬다. 식사도 대원들과 함께 격없이 편안하게 했다. 오기 전에는 계속되는 긴장감에 어깨마저 경직됐지만 직접 뵙고 나니 자상한 아버님같은 인상이었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였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대원들에게 나도는 `독도는 타임머신`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이 말을 깨닫는게 벌써 소대가 교체된 이후 3주일이 지났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바쁜게 좋다. 그만큼 근무에 집중하고 독도라는 외로운 섬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가끔은 접안지에 내려가 관광객을 안내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오랜만에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아지곤 한다. 동해 바다 최동단 끝에서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근무에 만전을 기한다.충성!

2013-09-09

독도경비대 청룡소대 원용재 이경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깨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왔지만, 대원들은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여객선 접안지 근무를 나가고 나는 오전 10~12시 등대 관측근무 준비를 하는데, 다행히 비가 그쳤다. 비가 온 뒤여서 바람이 차가웠지만, 독도를 지키겠다는 열정으로 추위를 날려버렸다. 오늘은 일요일(8월25일)이다. 하지만, 독도에서는 주말이 따로 없이 1주일 내내 근무를 서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등대로 가서 근무를 섰다. 근무하러 갈 때마다 요즘 발전시설을 교체하는 아저씨들과 웃으며 인사를 한다.오늘 메뉴는 삼겹살! 육지에선 흔히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이지만, 섬에서는 특히 독도에서는 아주 귀한 음식이다. 오랜만에 대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간만에 회식이라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찔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대원들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다.오늘 특이사항으로 발전기교체를 위해 물과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독도에서는 물과 전기가 매우 귀하고, 다른 대원들을 위해서 물과 전기를 최대한 아껴야겠다고 다짐했다.3일 만에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독도 여객선 접안지로 내려갔다. 하지만, 오늘 임무는 계단 관측근무. 계단 앞에서 무장한 채, 허가받지 않은 관광객들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막는 역할이다.오랜만에 관광객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지만, 평소처럼 복장을 착용하고 근무에 임했다. 오전의 여객선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와서 신기하기도 하고 말을 걸까 무섭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다들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부담이 덜했다.관광객들은 우리에게 수고한다며 격려의 말과 함께 손에 조그마한 과자를 쥐어주시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분도 있어 뿌듯함을 느낀다. 독도!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는 독도. 이러한 독도를 나는 오늘도 이 한 몸바쳐 지키고 또 지킨다. 충성!

2013-09-02

독도경비대 청룡지역대 한성준 상경

지난 12일(월요일)은 두 달여간 수고를 해준 앞 소대와 근무교대가 있었다. 선발대로 지난 9일 들어와 잠시나마 함께 근무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어려움과 외로움들 속에서 든든히 독도를 지켜준 그들이 고마웠다. 독도에 입도하고 다음날 나에게 큰 비보가 전해졌다. 불과 이틀전까지만해도 제대하면 꼭 같이 학교축제의 노래대회에 나가자고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한 후배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 한동안 이를 받아들이질 못했고, 독도라는 너무 먼 곳에 있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줄 수 없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하루만 눈물 흘리고 다시 `정말 멋있다`,`부럽다`며 항상 치켜 세워준 멋진 독도경비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동생에게 떳떳해지자는 다짐을 했다.지난 22일 목요일 `SBS 동물농장`에서 삽살개 촬영을 위해 방문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간혹 접안지에서 관광객 분들이 묻곤 했다. 독도에 있다는 삽살개가 어디에 있는지, 접안지에 데려오면 안 되는지. 같이 살아서 익숙해서 평소엔 `얘가 밖에선 그렇게 유명한가….` 싶었는데, 이처럼 방송촬영까지 하게 된걸 보았을 땐 독도경비대가 밀린 기분에 부러움과 질투도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연`으로 같이 촬영하고 TV에까지 나가게 되자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앞으로 우리 보물단지 녀석! 명성에 해 끼치지 않도록 자주 목욕시켜야겠다.독도에 온 후, 근무가 끝나면 내무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대원들과 다르게 나는 자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상황실에서 보내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다름 아닌 `지박령`. 본래 뜻은 죽은 귀신이 자신이 살던 곳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 곳을 떠돈다는 뜻인데 언제나 상황실에 앉아있어 신기하다는 이유로 대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소대 행정업무 및 독도 상황실업무`라는 보직을 갖고 있는 것보다도 상황실에 있으면 편안해서일까. 항시 많은 전화와 업무가 넘치는 독도경비대 상황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즐겁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생활을 하고, 바쁜 업무로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로 독도 근무의 초반을 복기할 수 있게 됐다.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 멋진 사나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충성!

2013-08-26

독도경비대 진승현 상경

습한 장마철이 끝나고 뜨거운 태양빛이 작열하는 요즘 접안 지에 선박확인을 하러 내려갈 때면 콘크리트 복사열과 바다표면에 비치는 햇살 때문에 눈이 시린다. 어제만 해도 무더위로 인해 땀이 얼마나 났는지 온몸의 모공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커진 기분이었다.이러한 접안지 근무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독도를 방문하시는 여러 민간인 분들의 따뜻한 악수 한 번과 포옹 한 번 그리고 업무, 근무 시간 외의 접안지에서 하는 수영인 것 같다.무더위와 먹파리, 모기 같은 여러 부수적인 문제점들로 인해 힘이 들고 맥이 빠질 때 독도를 찾아준 국민들이 수고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무더위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전 소대와 독도소대교체를 하고 나서 근 몇 십일을 아무 장비 없이 수영하다가 며칠 전부터 스노클링 장비가 위문품으로 들어와서 난생 처음 스노클링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독도 바닷속은 내가 생각했던 광경보다 더욱더 푸르렀고 아름다웠다.특히 이틀 전 고무보트를 타고 서도 물골 쪽으로 이동하며 새롭게 보게 된 서도 탕건 봉의 안쪽 비경과 삼형제 굴 바위 사이 구멍을 고무보트로 거침없이 달려갔을 때 얼굴에 스쳤던 바닷바람은 겪을 때마다 늘 설레고 짜릿했다.서도 물골 주변의 바닷속은 참돔, 대황 무리 등 온갖 바다 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묘한 느낌을 전달했다. 흡사 내가 한 마리의 바다거북이 가 돼 바다표면 위에서 지켜보는 듯한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느낌이 매우 좋아 몇 시간을 바닷속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다 보니 경비대 막사로 도착했을 때는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여느 때와 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7일, 울릉, 독도 경비대의 특공무술 전수 및 숙달 담당책임자인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회장이 직접 독도경비대를 위문차, 방문했다.독도에서는 15명의 대원들이 한군데 모여 특공무술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협소해 햇빛이 가장강한 시간대에 헬기장에서 특공무술을 연마하게 된다.작열하는 태양빛, 눅눅한 바닷바람 그 어떠한 것도 우리 현무소대의 특공무술에 대한 열정을 녹이지 못했다.이번 여름 독도가 나의 군 복무에 있어서 마지막 독도 근무이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충성!

2013-08-12

독도경비대 박상재 상경

`애 앵~~`오후 3시 사이렌 소리가 독도의 정적을 깨뜨렸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FTX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전 대원은 개인 총기를 들고 각자 맡은 위치로 일사불란하게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동도에 있는 등대, 헬기장, 선박 접안지 등과 서도 선착장뿐만 아니라 고무보트를 이용해 해상 경계까지 강화한 독도경비대대원들은 서로서로 무전 교신을 통해 상황을 주고 받는다.과거 오래전부터 호시탐탐 우리의 독도를 노리고 있는 일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발사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저희 독도경비대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여 긴장을 늦추지 않고 훈련을 하고 있다.훈련이 끝난 후 대원들은 다시 각자의 보직에 맡는 위치로 돌아간다. 관측대원은 육안을 통한 해상감시와 울릉도에서 오는 관광선박 맞이, 레이더 대원은 레이더를 통한 해상감시, 발전대원은 우리가 쓸 전기와 물을 만드는 일을 한다.모든 대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생활해서 그런지 하나같이 생각이 똑같다. `시간 정말 빠르다` 오죽했으면 선임들로부터 내려오던 말 중에 독도생활은 `타임머신`이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실제로 대원들끼리 `오늘 며칠이야?` 또는 `오늘 뭔 요일이야`라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달력을 보고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독도에서는 주말, 공휴일 없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벌써 집을 떠나 독도경비대에 입대한 지 12개월 차가 됐다. 독도경비대로 오고 나서 생각과 행동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의 걱정도 많다. `너무 멀리 있지 않느냐`, `힘들지 않겠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등의 이유였다. 어찌 됐건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문제였기 때문에 지체 없이 독도경비대에 지원한 것이다. 걱정하던 부모님께서도 독도를 지킨다니 정말 자랑스럽다며 응원을 해준다.전 국민이 관심을 가져주는 독도, 대한민국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 땅 독도에서 그 누가 자기 땅이라 우겨도 국민의 뜨거운 성원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 땅 독도, 철통같이 지키겠다. 충성!

2013-08-05

독도경비대 백주호 일경

독도경비대 백주호 일경나는 독도경비대 상황실에서 서류 등을 작성,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독도 접안지에 내려가 선박 및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는 일과는 달리,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다 보니 울릉도에서 복무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종종 느낀다.그래서인지 독도에 들어와 근무할 때마다 더욱더 부모님과의 통화가 잦아지는 것 같다. 딱히 드릴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5분 정도의 짧은 통화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된다.그러던 중 그저께 어머니께서 다음 주 중으로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독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휴가를 나가지 않아도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고, 현재 사는 서울에서 독도까지 먼 길을 와주신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근무 시간이 끝나면 독도경비대 이발 대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정비를 취하다가도 다른 대원이 이발을 부탁하면 즉시 원하는 스타일대로 머리를 손질해준다.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군인 아저씨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부대 내에서는 ㎜단위로 신경 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발병으로서 맡은 역할이 절대 가볍지 않다.그래도 단순한 스타일을 반복해서 자르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처음 머리손질 해줄 때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러던 중 어제 부대장님이 저에게 이발을 부탁했다. 이발 대원이라는 역할을 맡은 지 반년 만에 처음으로 지휘 요원이 저의 손님이 되는 순간이었다.어찌나 떨리던지, 단 한 번의 잘못된 손짓이 부대장님의 멋진 외모를 손상시킬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한테 본인의 머리를 맡길 정도로 저의 실력을 믿는다는 사실에 기뻤다.다행히 이발은 무사히 끝났고, 더욱 멋지게 변한 부대장님을 바라보니 뿌듯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역시 이발 대원이 보람을 느낄 때는 상대방이 한층 더 깔끔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변할 때인 것 같다.오늘(26일)은 2013년 대망의 현무 탁구대회 개막식이 열린 날이다. 개막식으로 일경 계급의 대원 둘이 맞붙었는데 21대1이라는 점수 차이로 싱겁게 승부가 끝나 같은 계급이어도 현격한 실력 차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울릉경비대 4개 지역대 중 하나인 저희 현무지역대에는 탁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과연 대회가 끝나는 3일 후에 누가 웃을지 굉장히 궁금해진다.물론 나는 이번 탁구 대회에서 3일도 못 버티고 내일 중으로 끝날 것 같지만 말이다. 충성!

2013-07-29

독도경비대 박민규 수경

지난 일주일간 독도에는 패기 넘치고 용감한 우리 독도경비대원들의 충성소리가 울려 퍼지지 못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불볕더위주의보가 내려져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날씨예보가 무색할 만큼 최근 며칠 독도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20일) 아침, 거칠고 높은 파도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저 독도 주위만을 돌던 씨스타 2호는 결국 독도에 접안 하지 못했다. 멀리서 봐도 멀미가 날 정도로 휘청거리던 씨스타 2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배 밖으로 나와 멀리서나마 손을 흔드는 관광객들의 마음은 큰 위안이 된다. 우리와 인사하진 못했지만 `제2의 독도 경비대`인 갈매기 떼가 우리를 대신해 배 위를 날아다니며 관광객들을 맞아 줬다.매일 관광객을 맞고자 오르락내리락하던 70도가 넘는 수직으로 뻗은 333개의 계단을 바라보며 `이번 주 빨래 양이 줄어 당번들은 좋아하겠군`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지만, 환희와 감동의 표정으로 독도에 내리던 관광객들을 며칠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또 나에게는 그들에게 `충성!` 경례를 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는 힘들게 독도를 찾아와 `만세!`하고 소리칠 순간 기대하고 있었던 관광객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입대 전 10여 년간 해외에서 거주하며 네, 다섯 나라를 거쳐 내가 돌아온 곳은 바로 이곳 내 나라,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영토 독도였다.10년 가까이 해외 생활을 하며 또래보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독도는 커녕 대한민국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대한민국 청년으로 이 안타까운 현실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제대 후에도 외국으로 나가겠지만 난 더욱 당당히 알릴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지킨 대한민국 최동단 작은 섬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약 2년 전 `독도경비대 의경 1기`로 지원하며 여러 면접관 앞에서 외쳤던 지원 동기다.독도경비대원 의무경찰 1기, 독도에서 맞은 성탄절, 2013년 새해 첫날 일출, 독도에서의 생일, 그리고 독도 제대… 어느 하나 의미 없지 않은 것들이 없다. 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대한민국 첫 일출의 햇살, 그 햇살 아래로 바윗돌까지 훤히 비치는 투명한 바다, 마치 8·15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듯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비행, 독도 전역을 뛰어다니는 용맹한 삽살개 `서도`의 모습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임이 분명하다.뉴욕의 타임스퀘어, 베이징의 만리장성이 그 아름다움으로 세계적인 찬양을 받듯이 독도의 아름다움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독도와의 이별은 아쉽기만 하지만 제대 후 남들보다 더 많은 곳에 독도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언제나 배경음을 깔아주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에 `그래도 갈매기랑 놀면 재미있긴 하겠다`라는 어머니의 농담도, 갈매기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기상할 날도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걸 문득 느끼며 한 번 더 독도 땅을 밟아본다.새벽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가는 길엔 삽살개 `서도`가 잠도 안 자고 기다린 건지 반갑게 뛰어와 우리의 무거운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준다. 녀석도 나와 함께 내무반으로 걸어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는 듯 내 뒤를 쫓아와 꼬리를 흔들었다. 짧게 자른 서도의 모습이 마치 갓 들어온 이등병을 연상케 했다.

2013-07-22

독도경비대 류홍길 상경

류홍길 상경내가 독도 경비대로 지원한다고 부모님께 처음 말씀드렸을 때 위험하고 외롭고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며 막내인 저를 걱정하시면서 매우 반대 했다. 그래서 저도 그만 포기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육군으로 지원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 내가 왜 독도 경비대를 지원하려 했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또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부모님을 설득했다.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독도경비대로 뽑혀 독도로 가기 하루 전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께서 걱정하고 계실 거란 저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차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아들아 나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저희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지인 분들에게 항상 자랑을 한다. 우리 아들이 우리나라 동쪽 끝 독도를 지키는 독도경비대라고. 저는 아버지 어머니의 막내아들이다.휴가 중에도 무뚝뚝하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아들이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하게 돼 항상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훈련소에서 애써 눈물 참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1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항상 덜렁대고 부족한 아들이었지만 군 생활 하는 동안 많이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막내아들이라서 항상 걱정하시고 노심초사하시는 그 마음 잘 알고 있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완벽한 남자가 돼서 전역하겠다.오늘은 오랫동안 정든 선임 분들을 떠나보내는 전역식이 있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더 애틋하고 각별한 우리들의 우정이 저희를 울보로 만들었다.전역하는 선임 분들에게 좋은 것이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저희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소중한 마음을 담은 롤링페이퍼 한 장과, 기타와 함께 진심으로 부르는 노래뿐이다.하지만, 전역하시는 선임들도 알 것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 선임의 선임을 떠나보낼 때 느꼈을 감정 그대로였을 테니까. 집으로 가는 선임들을 태우고 울릉도로 향하는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희는 손을 흔들며 마음속에 얼굴을 새긴다.한 사람 한 사람 떠날 때마다 느낀 섭섭하고 소중한 감정,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 독도에서 생활할 때에 느낀 설렘과 기대감이 이젠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변했다.나는 이 아쉬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여객선을 맞이하며 관광객들에게 간신히 환한 미소로 먼 곳까지 와 주신데 대한 감사의 보답을 해드린다.내가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많은 박수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악수와 저희를 향한 격려, 그리고 그 관광객 분들의 저희에 대한 고마움의 눈빛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을 악수를 통해 느꼈을 때의 벅찬 가슴, 이 모든 감정들은 내가 독도 경비대를 잘 선택했다고 수백번 확신하고 다짐하게 했다.이 작은 섬, 독도에서의 값진 경험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고, 훗날 나에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제 왼쪽 가슴에 항상 독도경비대라는 자부심을 품고 근무하고 있다. 온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독도를 지키겠다.충성!

2013-07-15

독도경비대 정한영 일경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 보기만 했던 독도! 우리 땅 독도에 지난 6월22일 입도하게 됐다.애초 6월 19일 독도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장마 탓에 독도로 가는 선박이 출항하지 못해 나를 비롯한 교체 소대원들은 사흘 동안 울릉도 사동리 울릉경비대에서 대기 할 수밖에 없었다.독도에 바로 갈 수 없다는 실망감이 컸지만 울릉도에서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50일간의 독도의 생활을 그려봤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를 직접 독도에 가서 실천으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설렘과 독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을 맞이할 기대를 하니 하루 빨리 독도에 가고 싶었다.처음 독도 가는 선박을 타게 된 나는 기상으로 선박이 통제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망연자실 19일부터 3일간 울릉경비대에서 대기 하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22일 들어가게 됐다.우리가 근무하는 50일 동안 먹을 음식재료들과 생활필수품, 대원 40여 명의 짐, 소대의 필요한 짐들을 최대한 간소하게 줄이고 줄였지만, 그 양은 간단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무겁고 많은 양이었지만 현무 소대원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열심히 이삿짐을 옮겨서 생각보다 빨리 짐을 독도평화호에 실을 수 있었다.그렇게 독도에서 생활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독도평화 호에 올라탔다. 독도에서 대원들이 사용할 잠을 옮기는 작업 때문에 많이 고단했지만, 그 고단함 보다는 독도로 향한다는 설렘이 강했다.독도경비대원 선발되려면 인기있는 해병대보다 어렵다고들 할 정도로 체력테스트 및 국가관, 독도 근무 등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독도를 직접 보니 가슴이 뛰고 `아 이제 진짜 독도 경비대로서 시작이다`며 새벽부터 배에 실은 짐들을 독도에 있는 독도 경비대 막사로 옮겼다. 4개 소대가 50일씩 독도와 울릉도에서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이미 독도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던 백호 소대와 힘을 합쳐서 배에 싣고 온 짐을 내리고 다시 울릉도로 복귀하는 백호 소대의 짐을 내리는 작업을 했다.뜨거운 태양과 무거운 짐들이 저희를 힘들게 하였지만, 독도경비대라는 자부심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소대 이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이제부터 50일간 본격적인 독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데 처음 독도 경비대에 합격했을 때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우리 땅 독도를 수호해야겠다고 다짐한다.대한민국 파이팅! 독도 파이팅! 충성!

2013-07-08

독도경비대 백호지역대 경비대장 이광섭 경감

오늘(지난 22일)밤 왜 이리 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괭이갈매기도 이 밤은 조용하다. 입도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56일이 지나 교대 시간이 됐다. 이제 아침이 밝으면 두 달여 동안 정들었던 독도를 떠난다. 대원들과 함께 울릉도에 있는 울릉경비대로 돌아간다. 독도에 입도 할 때는 신임대원들이 많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훌륭한 지휘요원들과 대원들의 헌신 노고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그동안의 독도 접안 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울릉도를 출발해 독도에 들어오는 많은 탐방객의 애국심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 유모차, 지팡이에 의지해 독도 땅을 밟고 감격해 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 갈매기 배설물이 쌓여 있어도 엎드려 절을 하며 뽀뽀하는 아저씨, 어린 고사리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어린 새싹, 너무나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세계 각국에서 참가, 독도에서 출발하는 코리아컵 국제 요트대회 제2구간 레이스를 보면서 독도가 세계 속의 섬, 대한민국 섬임이 다시 한 번 더 입증됐고, 고사리 손에서 80세가 넘은 노인들까지 독도 사랑하는 뭉클한 마음을 느끼면서 독도를 경비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했다.지금까지 7만 3천 명의 독도 방문객을 맞이하며 30분간의 짧디 짧은 만남의 기쁨과, 이어진 안타까운 이별의 순간들…“안녕 하세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요, 안녕히 가세요.” 기상악화로 그 먼 길 뱃멀미에 시달리며 찾아왔건만 접안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회항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눈에 선하다,이 모두가 거룩한 우리 땅!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열망, 대한민국 국민의 애국심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느꼈다. 어제 접안 지에서 독도의 신에게 큰 절로 고사를 올리고, 경찰관으로 점지해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과 신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고, 우리 독도 무사안녕과 영원을 빌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다음에 독도에 들어올 때는 눈보라가 치는 엄동설한이 될 것 같다. 눈보라, 폭풍 치는 등 근무 환경이 악조건일수록 독도의 소중함을 더욱 간절하게 느낄 것이다.나와 함께한 백호지역대 대원들의 노고와 헌신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리며, 독도여! 건강한 모습으로 올 겨울에 다시 만나자.

2013-06-24

독도경비대 백호소대 공지훈 일경

저는 이번 독도에 입도하기 전에 `독도경비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독도로 오기 전에 얼마나 떨릴까, 독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접안지 근무를 하며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50~60대쯤 돼 보이는 아저씨 한 분께서 저에게 오시더니 사진을 좀 찍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했다.그리고는 저에게 카메라를 건네시는데 두 손을 굉장히 떨고 계셨다. 저는 아마 그 떨림이 우리의 땅 `독도`를 밟았다는 가슴 벅찬 감동의 기쁨과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그 생각은 며칠 동안이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신임대원 시절 혼자 더블백을 안고 독도를 밟기 위해 배 안에서 설렘 가득한 긴장을 안고 있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사진을 다 찍은 후 그분께서 “정말 고맙다. 근데 빈손으로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외로운 섬 독도로 찾아 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오히려 본인께서 빈손으로 와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더는 독도가 외로운 섬이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이 일을 포함해 접안지 근무를 하다 보면 `독도, 독도경비대`를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관심과 사랑을 갖고 독도를 방문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많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독도경비대`로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더욱 `대한민국의 땅, 독도`를 굳건히 지킬 것을 맹세해 본다.충성!

2013-06-17

독도경비대 김명윤 일경

김명윤 일경지난 4일 청소년 명예독도경비수호대 행사가 열렸다. 이곳 독도에 와서 여러 행사를 접했지만,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경비대원 업무를 체험하는 일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한선교 의원이 기획하고, `수지희망 꿈 터`가 주관한 `청소년 명예 독도경비 수호대` 발대식을 독도에서 갖고 청소년들은 이광섭 독도경비대장, 독도경비대원과 함께 독도경비대원을 체험하는 것이다.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침략전쟁부정 및 야스쿠니 심사참배,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한 요즈음 이러한 행사는 우리에게 있어 뜻 깊을 수밖에 없었다.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키는 첫 걸음은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독도를 지키는 이러한 실천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청소년들은 우리 경비대원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곳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밥은 어떻게 먹어요?” “어디서 자요?” “이곳 생활은 어때요?” 천진난만하게 이곳 생활에 대해 물어보며 한 여학생은 또 이렇게 물어왔다. “독도에서 왜 근무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순간 멈칫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는 우리 땅에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야”여학생이 어떤 의미로 이러한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여학생의 짧은 질문과 나의 대답은 독도생활에 잠시 지쳐 있던 초심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독도에서 근무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맙다, 이런 소중한 땅을 지켜주어서”수많은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의 고마움을 받았던 지난날 들이 부끄러워 반성하게 됐다.청소년들은 경비대원 체험을 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풍선에 각자 소망을 담아 하늘로 날리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하늘로 날아가는 오색빛깔 풍선을 보며 언젠가 미래의 독도 지킴이인 우리 청소년들이 일본의 어떠한 행동과 망언에도 흔들림 없이 독도를 지켜나갈 안보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앞으로도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독도사랑을 위와 같이 실천해 나가길 희망해본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소년들 덕분에 나 또한 많은 것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이곳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된 것을 떠나, 독도수호는 우리의 삶인 동시에 운명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는 한, 독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 영토다. 독도를 목숨 바쳐 지키겠다.충성!

201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