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 막내아들 필규입니다. 지난 첫 휴가때 독도에 가더니 의젓해져 왔다고 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가족들이 또 보고 싶지만 접안 지에서 선박 조사할 때 관광객들이 “독도를 잘 지켜 달라. 수고한다”면서 손에 쥐여주는 것이 간식거리가 뭐든 자꾸 해주고 싶어 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지게 합니다.독도는 날씨가 좋고 파도가 잔잔한 날이 아니면 배를 접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하루에도 몇 번씩 선박 운항 예정이 바뀌고 독도에 다 와서 접안도 못해보고 울릉도로 되돌아 가야 하는 여객선들을 흔히 봅니다.그래서 독도의 자연경관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배에서 내리시는 아주머니들이 하는 행동도 정말 정감 넘치고 독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실감 나는 순간입니다.독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 독도경비대에 지원할 때 독도를 내가 직접 수호하겠다는 의지와 결연함을 다시 굳건하게 하도록 동기부여가 됩니다.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오늘도 독도를 위해 아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휴가 때 뵙겠습니다.사랑합니다. 충성!
2014-05-07
독도경비대 소대 교체일이 다가왔다. 독도 근무를 다음 소대에 넘겨주고, 그리고 우리 소대의 울릉도 복귀 이사를 위해 바쁘다. 장비와 보급 물품관리로 며칠 동안 파김치가 됐다. 그래도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이 과정도 배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번 근무까지 벌써 2번째 독도 근무가 끝났다. 100일의 생활로 독도가 더 이상 낯선 곳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기와 물을 아껴야 하고 외부에서 오는 위문품과 음식에 웃는 것이 익숙한 생활이 됐다.독도경비대원들에게는 요일 개념이 없다.하루하루가 변함없이 비슷해 시간도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다. 독도에서의 시간은 LTE 속도처럼 빠르다고 한다. 종교활동도 대원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된다. 기독교인인 나는 성경읽기와 기도를 요일에 상관없이 한다.독도경비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독도 방문객들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먹을거리 선물이다. 평소 식사때 먹는게 부실한 건 아니지만 과자와 음료수를 마음껏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독도 방문객들이 선물로 먹을거리를 건네줄때 행복 호르몬이 막 분출되는 듯하다. 독도 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외부인 접견이다. 날씨가 좋으면 2천여명 넘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언론 취재와 고위인사 방문도 잦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이후 방문객수가 크게 줄어 안타깝다.외부인이 방문했을때 위험한 절벽과 돌풍으로 다치지 않게 동행한다. 외부시선이 있는 것을 고려해서 근무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이제 허영심에 들떠 어깨가 들썩거릴 때가 아니라 생각한다. 진정한 독도 수호의 사명감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근무하는 것만이 우리가 국가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충성!
2014-04-28
`시작의 땅 독도` 울릉도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시킨 후 내부를 둘러보다가 먼지 낀 낡은 액자에서 발견한 아주 공감 가는 문구였다.독도는 우리나라의 최동단이기에 해가 가장 빨리 뜨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아침의 시작을 알린다. 내게도 독도는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시작`이라는 의미가 상응하는 독도는 내게 뜻 깊고 더욱 의미 있다.하지만, 이치대로 시작이 있기에 끝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이번 독도 생활 50일을 끝으로 독도경비대로서의 활동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삼시세끼 밥을 먹고 체육관에서 탁구도 치고 내무반에서 TV를 보는 등 일상은 과거가 되고,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칼바람과 싸우며 마주 보았던 망망대해와 관광객들의 안전을 도모하며 소통했던 접안지도 추억이 될 것이다.그러나 마침표는 새로운 단락을 알리는 시작의 기호이기도 하다. 독도에서 군 생활을 하며 진정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자문했고 점점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희미하고 두루 뭉실했던 나의 이상은 어느새 보다 또렷해지고 명확해지기 시작했다.이렇듯 독도에서의 군 생활은 나를 새로운 목표점을 향해 새로운 시작선 상에 서게 해주었다.그리고 나는 독도 생활을 함으로써 기존에 간과하며 지낸 전력, 물 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자원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외로운 섬 독도를 외롭지 않게 365일 24시간 1분1초도 빠짐없이 내내 감싸주고 지켜주는 우리 독도경비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마지막인 이번 독도생활을 끝으로 내가 입고 있는 혹한 복 및 기동복을 포함한 전투복 오른쪽 팔 상단에 있는 `독도경비대`라는 명표는 떼어지겠지만 나 `천호준`을 수식하는 `독도경비대`라는 명표는 영원히 떼어지지 않을 것이다. 충성!
2014-04-21
눈 깜빡했더니 내가 일경 계급으로 독도에 와 있다. 입도 날엔 갈매기가 떼 지어 날아다니며 변을 공중에 수놓으며 환영인사를 했다. 밤에도 오징어 배 때문에 갈매기들은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날아다니다가 그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조용히 잠이 든다.울릉도에서 예비대 생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동쪽 끝에서 군 복무를 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칼바람 부는 날 등대 밑에서 관측근무를 서고 있으면 여기가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외딴 섬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가끔은 그런 생각에 외로움이 움트기도 한다. 감상에 빠져 사색에 들기도 한다. 문득 떠오르는 친구들이 그리워 휴가 날을 손꼽아 보지만 육지에 있는 친구들은 그때쯤 군대에 가버리고 없다.이렇게 기분이 적적해지면 책을 보기도 하고 운동도 하며 맘을 달래본다. 지금은 다들 자기생활에 바빠 만날 수 없지만, 각자 맡은 일에 열심이다. 독도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고, 밟을 수 있는 독도 땅이라고는 접안지 밖에 없다. 독도의 명물인 삽살개 `천사`와 `서도`조차 볼 수 없다.그럼에도 여기서 머무는 그 짧은 시간 일분일초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배에 다시 탑승할 시간이 임박해도 배로 바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항상 머무는 우리로서는 지금 그런 기분을 잘 모르겠지만, 전역 후 언젠가 이곳에서의 추억이 그리워 접안 지를 밟게 되면 막사가 그리워 계단을 올라가려다 막아서는 독도경비대원을 보며 야속해하지는 않을까?어느덧 독도에 입도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날씨가 안 좋아 배를 받아본 적도 별로 없고 이곳 생활에 적응해가는 독도 초보이지만, 관광객들의 소중한 발길을 생각해서라도 이 곳을 지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군기를 다 잡아 임무에 집중해야 겠다고 다짐한다.누군가가 말했다. 교육이란 것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자기가 뭘 배우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 있는 동안의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아직은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독도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엔 내가 무엇을 배워서 어떤 일을 했고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날까지 난 이곳 독도에 내 청춘을 바칠 각오다. 충성!
2014-04-14
독도경비대원으로서의 임무를 위해 3월 3일에 입도, 독도에서 생활 한지 한 달이 넘었다. 울릉경비대에 전입한 후 정신없이 생활하면서 독도에 입도하길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독도에 입도하게 됐다.학업을 위해 오랜 호주생활을 하며 독도에 관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된 독도경비대. 처음 자대(울릉경비) 배치 받을 때 동기 중 가장 늦게 독도에 입도한다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이것 때문인지 독도에 입도하는 배를 타고 가는 순간엔 그 누구보다 설렜다.독도에서 관측 근무를 선다. 근무 서는 지역은 막사가 있는 지역의 바람과는 달리 태극기가 항시 높이 펄럭일 만큼 강한 바람이 분다. 나에게는 너무 매섭게 느껴진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도 전 식당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가 식당으로 나의 발을 끈다.오늘의 아침 메뉴는 소시지 채소볶음으로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에 항상 식당대원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해가 뜨자 매섭던 바람도 조금 잦아들고 맑고 드넓은 바다에 비친 햇살을 보며 잠시 여유를 가져 봤다.독도에 들어가면 가장 예쁜 갈매기를 데려와 달라고 농담으로 한 친구가 있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지역이라 그런지 갈매기 중 누가 가장 예쁜지 가려낼 순 없었다.내가 독도에 입도 후 처음으로 울릉도에서 여객선이 들왔다. 하지만, 높은 파도 때문에 배가 접안에 성공하지 못했다. 관측근무가 있어서 접안 지에 내려가 가까이서 손을 흔들어 주진 못하고 멀리서라도 먼 길을 찾아와준 관광객들에게 서로 아쉬움을 달래며 서로 손을 흔들었다. 이른 시일 내에 날씨가 좋아져서 관광객들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저녁식사 후 개인정비시간, 운동을 하고자 체육관으로 향했다. 독도에서는 넓지 않은 활동 범위 때문에 몸 관리를 위해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한다. 오늘도 계획한 만큼의 운동량을 채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오늘은 유난히 몸을 건강히 키워서 독도에서 건강히 군 복무 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지금은 각자의 일로 여러 곳에서 바쁘겠지만 입대하기 전까지 좋은 추억들을 만든 친구들이 보고 싶은 날이다.그래서 집에 전화해 안전부도 전하고 친구들과 서로 소식을 전했다. 자랑스러운 독도경비대의 임무를 건강하게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내일도 모두가 힘찬 하루 보낼 수 있길 희망한다. 충성!
2014-04-07
드디어 울릉도에서 50일간 예비대(울릉경비대)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입대 5개월 만에 독도경비대의 이름을 달고 독도에 입도했다. 처음 독도 땅을 밟았을 때 독도를 지킨다는 사명감, 뿌듯함과 더불어 독도경비대에 지원할 때가 문득 떠올랐다. 지난해 6월에 아버지와 TV를 보다가 독도를 지키고 수호하며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독도경비대의 소식을 처음 접했다.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에 힘입어 지난해 7월 26일 독도경비대 시험을 보게 됐는데 운 좋게도 단번에 합격, 자랑스러운 우리의 땅 독도를 수호할 수 있게 됐다.내가 입대 전부터 지금까지 독도에 대해서 TV나 신문, 매스컴에서 독도에 관한 소식들이 많이 나오고 아직도 일본이 말도 안 되는 자국 땅이라고 우기는데, 이런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인인 내가 지킨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 벅차고 기뻤다. 부모님도 독도경비대 합격 소식을 듣고 뿌듯해 하셨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고 독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쉽사리 독도에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독도에 살고 독도를 경비하는 나 자신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낀다.이제 독도에 입도한지 3주차이지만, 하루하루 경관을 볼 때마다 대단히 아름답고, 천연기념물 336호인 독도를 50일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벅차고 행복하다.독도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부모님이다. 입대 전에 속도 많이 상하게 하고 힘들게 한 일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내이 너무 철이 없고 바보 같지 않았나 생각한다.독도경비대에 입대를 기점으로,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나 자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고 부모님에게 효도할 줄 아는 아들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충성!
2014-03-24
오늘 (18일) 대한민국 최동단 독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보게 된다. 독도에서 일출은 이제는 익숙해 질만 한 풍경이지만 그날만큼은 좀 다르다. 22번째 생일을 독도에서 맞기 때문이다.입대 전만 해도 나에게 생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하다. 비록 외딴섬에서 케이크 한 조각도 먹지 못하지만, 우리 땅 독도를 지키며 보람찬 하루를 보낼 22번째 생일은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다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 때문에 사실 입대 전에는 고향인 울산에서 의무경찰 복무를 계획했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독도경비대에 대해 알게 됐고 똑같은 군 복무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2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 또한 남자로서 승부욕을 불태우는데 한몫했다. 결국, 부모님과 여자 친구를 설득한 끝에 지원하게 됐고 당당히 합격해 독도경비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관측대원들과 함께 접안지에 내려가서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여객선과 관광객을 맞이할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부모님만큼 연세가 드신 분들이 와서 요깃거리를 손에 쥐여주실 때면 아들처럼 생각해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여고생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때면 올해 고교에 입학한 여동생도 저만큼 컸으려나 생각이 든다. 얼른 전역해서 돌아오라는 동생에게 5월에 휴가를 나갈 테니 시험이 끝나면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겠다고 약속했다.우리 땅 독도에서 지내다 보면 사회에선 당연시 누리던 삶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새삼 느낀다. 이런 인내의 시간을 겪는 나에게 함께 동고동락하는 청룡지역대원들과 지휘요원 분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또 하나의 `가족`이다. 그 중 지역대장님은 겉으론 엄하시지만 속은 따뜻한 아버지 같은 분이다. 종종 탁구도 같이하고 근무, 훈련, 생활 측면에서 대원의 입장이 돼 생각해 준다. 젊은 감각과 센스를 가졌기에 대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다.독도근무 6년차의 노련미에 매번 감탄할 뿐이다. 옛말에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은 입에 쓰다” 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외롭고 힘들다고 느끼는 이 순간이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되고 내 인생에 한 번뿐인 값진 경험이란 것을 잘 알기에 오늘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충성!
2014-03-18
독도경비대 예비지역대의 울릉도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울릉경비대에서 150일간의 독도입도 준비를 끝내고 독도에 입도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이사준비가 한창이다. 독도에 들어갈 때에는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어제 미리 실어두었던 짐을 다시 한 번 점검한 뒤 울릉(사동)항으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하니 50일 동안 우리 청룡지역대원들이 먹을 것을 실어놓은 부식차량과 독도까지 데려다줄 독도 평화호가 미리와 대기하고 있었다.울릉 항에 도착하자마자 부식을 배에 싣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2개 조로 나누어 한 조는 부식을 싣고 한 조는 짐을 실었다. 그 많던 짐을 옮기기 시작할 땐 “언제 다 옮기고 출발할까”라며 답답했지만, 소대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하나하나 옮기기 시작하자 어느새 다 싣고 출발준비를 기다리고 있다.배가 출발하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이사준비를 했던 대원들은 모두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3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창밖으로는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다.첫 독도 근무인 대원도 있고 나처럼 두 번째인 대원도 있다. 독도의 친숙함! 150일 만에 오는 독도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설레고 반가웠다. 배가 무사히 접안, 50일간 독도근무를 한 현무지역대원들과 인사를 한 뒤 우리는 바로 짐을 내렸다. 내릴 때에는 현무지역대원들도 도와줘서 빨리 내릴 수 있었다.우리도 울릉도로 들어가는 현무지역대원들의 짐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각자의 짐을 싣고 내린 뒤 그동안 독도근무를 했던 대원들은 배에 오르고 우리는 배 앞에 서서 배가 출발할 때 작별인사를 나눴다.배가 떠나고 몇몇 대원들은 바로 관측근무와 레이더 근무에 투입됐다. 남은 대원들은 접안지에서 막사로 짐을 올린 뒤 부대 짐을 먼저 풀고 개인 짐도 정리했다.독도로의 이사가 완전히 끝나고 난 뒤 우리는 한시름 놨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잠시 독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정신없이 독도의 첫날밤은 깊어갔다.대한민국 온 국민의 관심 독도! 대한민국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 독도! 그런 독도를 지키는 것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독도를 사랑하고 목숨 바쳐 지킬 것을 맹세한다. 충성!
2014-03-10
대다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관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나 또한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이곳 독도에서 근무하면서 평소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독도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영토분쟁 문제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독도는 크게 우리 경비대가 있는 동도와 주민숙소가 있는 서도로 나뉘는데 독도경비대원으로서 독도의 지형지물은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서도다. 지난 12일, 서도 탐방의 기회를 얻게 됐다.독도경비대 보트를 이용해 높은 파도를 헤치며 서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동도와는 달리 적막함과 삭막함 속에 주민 숙소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봄부터 가을까지는 이곳 서도에서 김성도씨 부부가 거주하고, 울릉군청 독도관리사무소도 운영되지만, 겨울엔 기상조건 등의 이유로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작한 서도 원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끝없이 이어진 계단은 동도에서 떨어져 보기만 했던 것과는 다르게 70도에 육박하는 가파른 경사와 무릎 높이까지 오는 높은 계단은 대원들을 사족 보행하게 하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게다가 곳곳에 떨어져 나간 난간과 낙석들은 서도가 살아온 거친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추운 날씨임에도 땀이 나고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서도에서 바라보는 동도의 전망은 대원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서도를 한 바퀴 돌면서 사진으로만 봐왔던 지네 바위, 군함 바위, 가재바위를 서도에서 내려다보며 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위이름 맞추기에 열을 올렸다.서도의 정상 대한봉을 넘어 서쪽에 있는 몽돌해안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발아래 탕건 봉이 보였다. 바위의 형상이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가 갓 아래에 받쳐 쓰던 탕건과 비슷하다 해 탕건봉이라 불리게 됐는데, 그 웅장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몽돌해안에 도착해 독도의 유일한 자연식수 발원지인 물골로 가려 했으나 아쉽게도 파도가 높아 발을 돌려야 했지만, 서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대원들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오늘 이러한 값진 경험은 춥고 외로운 겨울 독도 근무 중인 대원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돼 오늘도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각자의 위치에서 철통 경계 근무에 임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충성!
2014-02-17
열정과 자부심으로 임하던 독도수호 임무. 근무 후 전우들과 겨루던 탁구 시합, 그리고 식판 가득 채워 먹던 꿀맛 같은 급식도 요즘 저의 처진 어깨에 힘을 주지 못한다.왜냐하면, 오늘은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이별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핼쑥해진 얼굴과 표정은 숨길 수 없나 보다.독도에 함께 근무하는 전우들은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의 말을 하지만, 아직은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지 그랬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원망도 적지 않게 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며 힘들었을 것과, 하기 어려운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여자 친구 입장도 백번 이해하기에 모든 감정을 눌러 담고 멀리서 지켜봐 줄 수밖에 없나 보다.모든 것을 놓고 싶지만,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 어두운 영향을 미칠 수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독도수호 임무에 충실한다. 평소 그렇게 하기 싫던 훈련도 손동작 발동작 하나까지 열정을 담아 보고 개인 정비 시간에도 가만히 생각할 틈 없도록 숨이 탁 막힐 만큼 헬스도 하고, 소홀하던 한국사 공부에도 집중해 본다.평소 친구들에게 잘 하지 않던 안부전화도 전화번호부 뒤적이며 돌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아직은 공감되지 않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말이 공감되리라 믿는다.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기에는 독도를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어렵기에, 외로운 섬 독도에서 제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전우와 함께 우리 민족의 땅 독도를 지켜나가려고 한다.독도를 지켜봐 주시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제가 몸담은 우리 땅 독도에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멋진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고자 오늘도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쳐본다.
2014-02-10
설날 아침, 할머니 댁에 전화를 드렸는데,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독도에서 걸려온 전화에 가족 모두가 저의 목소리에 집중됐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 친척 분들은 저에게 고생이 많다, 차례는 지냈느냐며 관심과 질문이 쏟아졌다. 가족과 함께 옆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으며 그리운 마음을 달랬다.어제는 설날 차례 상 준비를 위해 오후 내내 대원들이 모여 부침개 등 음식을 장만했다. 한정된 재료 탓에 조촐한 차례 상이었지만 정성은 가득했다.지나치게 많이 준비해서 버리기보다는 조상님께서 깨끗하게 물려주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물려주는 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설날 오후에는 민속놀이를 했다.첫 번째로 제기차기. 사실 우리 세대들은 평소에 제기차기 같은 민속놀이를 해보지 않아서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지휘요원 분들은 대원들보다 훨씬 능숙하게 10개, 20개를 차는데 대원들은 그저 놀란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임무별로 팀을 나눠 차례로 제기를 찼다. 관측근무 팀이 압도적으로 2위인 레이더 팀과 28개의 격차를 벌리며 1위를 달렸다. 레이더 근무 팀의 마지막 순서로 통신팀장이 제기를 차는데 아주 안정적으로 30개를 넘기셔서 막판 역전승으로 1등을 했다. 믿기 어려운 역전승을 한 레이더 팀은 모두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뛰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두 번째 경기는 윷놀이다. 윷놀이는 달리고 잡는 지략과 전술이 중요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수가 나와야 하는 놀이다.제기차기에서 역전승으로 승점 3점을 보유했던 레이더 팀은 윷놀이 막판 꼴찌의 위기에 처했으나 분대장의 기적과 같은 윷, 개의 수로 앞서 달리던 상대팀의 두 말을 다 잡아 또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이끌어 내어 2등을 해 승점 합산 결과 종합우승을 차지했다.종합우승 부상으로 레이더 근무 팀 전원 독도 임무 완수 후 울릉도에서 주중 외출 1회 포상을 받았다. 개인상은 제기차기에서는 가장 많이 찬 대원과 윷놀이에서는 윷이 가장 많이 나온 대원에게 전통시장상품권을 줬다. 수상자들이 정말 부러웠다.비록 고향에서 가족들과 설날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독도경비대라는 또 하나의 가족들과 즐거운 설을 보낼 수 있어서 저희 독도경비대원들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2014-02-03
독도경비대에 입대하고 두 번째 입도를 하게 됐다. 지난해 여름 보았던 독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눈 덮인 새하얀 독도의 모습은 훨씬 크고 웅장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처음 독도에 입도했을 때보다도 약간은 더 긴장되고 설렜다. 하지만 막상 배에서 내려 발 디뎌보니 어딘가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아마도 저번 여름 독도에서 생활한 50일, 짧다 하면 짧고 길다 하면 길 수도 있지만 그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이미 독도가 내 마음 깊숙이 새겨졌던 것 같다.이번 소대교체 전후로 한동안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이 거셌었는데 독도에 입도하는 당일도 눈이 많이 내려 배가 접안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파도는 그리 거세지 않았고 독도에 인접했을 땐 날이 차츰 맑아지고 눈이 그쳐 무사히 입도할 수 있었다.갑자기 풀린 날씨 덕에 우리는 무사히 소대교체를 완료할 수 있었다. 독도로 소대교체를 하고 3일째 되는 날, 오전 조그마한 문제가 발생했다. 독도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조양호라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에 문제가 생겨 독도의 북쪽 약 1해리 떨어진 곳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당시 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조양호 선장의 다급한 전화가 상황실로 걸려왔다. 문제가 생겨 선박이 기동할 수가 없어 선원 12명이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전화를 끊고 우리는 다급히 동해해양경찰과 독도 근해에서 배회 중이던 해양경비함정에 연락을 취했다.당시 해양경비함정은 독도의 동쪽 8해리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연락을 받고 표류 현장으로 신속히 이동했고 약 10분에 걸쳐 어선 스크루에 감긴 밧줄을 제거했다.겨울이라 해무가 끼어 시정이 좋지 않았고 파도도 약 3m 정도로 거셌는데 자칫 조금만 늦었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이 모든 상황이 끝나기까지 약 1시간 30분가량이 흘렀지만 체감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비록 독도의 겨울바람이 거세고 매섭다 할지라도 독도경비대원들의 굳건한 마음만은 꺾을 수 없을 것이다.새해가 밝은 2014년 독도가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사실은 변함 없을 것이며 독도경비대가 독도수호 임무에 충실히 임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변함없을 것이다. 충성!
2014-01-27
어느덧 내 나이는 21살.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이라면 이행해야 할 국방의 의무를 다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독도경비대에 입대하기전 `독도 일기`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그 책에는 독도를 수호하는 독도경비대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독도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나의 뜨거운 청춘을 바쳐도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이은 채 독도경비대에 지원했지만 약 28대 1이라는 너무나도 치열한 경쟁 속에 3번 만에 당당히 합격하고서야 그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다.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강인한 몸과 마음이 필요한 곳이 독도다. 그래서 독도에 들어가기 전에 50일 동안 울릉도에 있는 예비대(울릉경비대)에서 강인한 심신을 단련하는 훈련을 받는다. 특공무술, 독도 접안지에서의 돌발 행동 저지를 위한 방패술,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하는 총검술, 실제 전투상황을 대비한 서바이벌과 레팰 훈련 등 정말 고된 시간을 이겨냈다.그런 혹독한 훈련들을 이겨내면서도 독도를 지키겠다는 생각만 하면 훈련으로 인한 피곤함도 눈 녹듯이 사라진다. 독도경비대로서 처음으로 입도할 때의 그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다시 입대하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 하면 단연 독도경비대를 지원하겠다.가끔 유치원생들이나 중·고등학교 학생들로부터 “독도경비대 아저씨들, 독도를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우리 독도경비대는 어느 특전사 부대가 와도 부러워할 최고의 부대라고 자신한다.독도경비대는 대한민국 최동단에서 2014년 가장 이른 아침 해를 맞았다. 올해도 더욱더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경계 근무로 어느 누구도 독도에 대한 야욕을 갖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충성!
2014-01-06
독도경비대가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마냥 멋있고 든든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막상 독도경비대에서 생활해보니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혹독한 고통을 견뎌야만 비로소 자부심을 느끼는 독도 경비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독도 입도 전 거치는 울릉경비대(울릉읍 사동리)에서 50일간의 예비대 훈련은 온몸에 멍과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웠다. 전역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선임들도 목소리가 쉴 때까지 악을 쓰고 고된 훈련을 받았었다.특공만술을 익히며 입안에 흙이 씹힐 때까지 흙바닥을 뒹굴고, 전술 훈련을 위해 팔꿈치와 무릎에 생채기를 내며 격하게 서바이벌 훈련을 하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레펠 훈련까지 수료해야 입도 할 수 있다.처음 독도에 갔었던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이기며 333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비지땀을 쏟아내야 했었고, 무수한 갈매기 사이로 독도 인근에 수상한 선박이 없나 땡볕에 서서 감시해야 했다.두 번째 들어간 이번 겨울에는 관측 근무 중 칼날 같은 겨울바람에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추위를 참았다. 한바탕 바람과 싸우고 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손과 발이 저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한번은 관측 근무를 서다가 갈매기가 우는소리에서 `형아! 형아야!`하는 어린 동생의 목소리로 착칵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린 적도 있었다.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고향을 생각하면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이름조차 외로운 독도에서 남몰래 눈시울을 붉힌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독도 경비대에 자원, 군 복무를 하는 것을 단 한 번 도 후회해 본 적 없다. 왜냐하면, 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훗날 독도가 한국 땅 이라는 증거로 독도에 상주했던 경찰 중 한 명으로 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독도 접안지에 오는 관광객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또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우리 아들, 지켜줘서 고맙다.`, `우리 손자, 고생이 많지?` 이런 말 한마디에 쌓여왔던 피곤도 사라진다. `국민 여러분! 어떤 위협과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 땅 독도를 수호하겠습니다. 독도 경비대의 독도수호에 대한 의지는,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활활 타오르는 성화(聖火) 입니다` 충성!
2013-12-30
“전체 차렷, 충성! 2013년 12월31일 백호지역대 일석점호 인원보고, 점호준비 끝!”독도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3번째이다.그동안 지난 시간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인도 유학 당시 간간이 뉴스에서 언급되는 독도 분쟁 문제는 언제나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그때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 애국의 불씨가 꿈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한국에 와서 아버지의 추천으로 입대를 알아본 결과 독도경비대가 내 눈에 쏙 들어왔고, 뉴스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독도를 내가 지킨다는 그 벅찬 마음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마침내 나는 2012년 9월에 백호지역대로 전입을 했다. 독도에 올 때마다 매번 다르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처음 독도에 발을 내디뎠을 땐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라 선임들을 따라다니며 생활 및 근무를 배우고, 독도 접안지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훈련을 철저하게 했다.그리고 그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독도경비대에서 강남스타일을 모티브로 한 UCC를 만들어 독도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독도에서 처음 레이더 근무를 봤을 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정말 많았다. 통신 장비를 다루다 보니 다소 생소했고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으로 근무를 하다 보니 피곤한 면이 없지 않았다.하지만, 접안지 근무를 하러 내려가면 가족 같은 국민 여러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제 군 생활에서 내게 마지막이 될 독도 근무를 서고 있다.선임관이 되어 후임들에게 그동안 지냈던 독도에서의 생활 방식을 가르쳐 주고, 특히 신임대원에게는 좀 더 따뜻한 관심을 주며 어느덧 최고 선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이따금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일들이 연거푸 닥쳐오지만,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그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이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다가올 2014년에도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열렬한 성원이 있는 한 우리 대한민국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오늘도 어김없이 독도를 깨우는 대원들의 힘찬 구령 조정과 독도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으로 새해를 맞이한다.충성!
2013-12-23
“독도경비대에 지원한 이유가 뭔가요?” 독도경비대 면접시험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 말로만 하기보다 몸소 실천 하는 방법이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라고 답했다. 20대 남자로서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면 당연히 국가에 헌신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군 복무, 독도수호 이 두 가지 단어에 걸맞은 방법을 찾아 독도경비대에 지원하게 됐다.얼마 전 친구를 통해 독도경비대 지원율이 28대 1이라는 신문 기사를 봤다. 전화나 메시지로 주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내가 독도경비대에 합격한 것을 신기해하며 웃곤 한다.사실 잘난 척 아닌, 잘난 척을 하자면 체력 검정은 큰 무리가 없었다. 면접 때 뭔가 느낌이 왔다. 내가 합격하겠구나 싶었다. 면접 형식은 다수 대 다수로 질문자 여섯 명, 면접자 여섯 명이었다. 질문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데 난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앞의 면접자들의 답을 다 들으면서 나의 대답을 생각했다. 앞사람들과 중복되지 않게 말해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대답을 말하는데 질문자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됐다.이때다 싶어 내 생각과 당찬 포부들을 독도경비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발표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합격했다. 매우 기뻤다. 합격을 확인하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것 같다. 난 그렇게 독도 경비대가 됐고 울릉도 경비대를 오가며 어느덧 독도에 두 번째로 들어오게 됐다.독도경비대의 본능이랄까 어쩌면 뼛속까지 독도를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에 있을 때 많은 사람이 독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만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하지만, 독도 경비대원이 돼 보니 예상치도 못한 관광객 방문 수와 그 외 유명 인사들이 독도로 방문하고 있다. 늘 독도와 독도 경비대를 생각해주며 방문해주고 편지를 써주고 위문품을 보내주는 사람들을 보며 어떠한 고된 일들이 있더라도 나는 더욱 독도를 잘 지켜야겠다라는 생각과 “나는 독도경비대다” 라고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되새기고 굳건히 맹세하게 된다. 나를 독도경비대에 지원할 수 있게 해준 부모님, 뽑아 주신 분, 늘 격려해주는 친구들, 백호지역대에 잘 적응하게 해준 직원, 대원들, 독도를 방문하시는 분들, 독도경비대에게 편지를 써주시는 분들, 위문품을 보내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충성!
2013-12-16
독도경비대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12년이었다. 그 해에는 독도 분쟁이 잦아 매스컴에서 독도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했다.독도경비대를 지원하는 것은 일반적인 군대와 달리 좀 더 특별한 경험 그리고 독도에 대해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음과 동시에 독도를 나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자부심까지 느끼게 해줄 것 같았다.그래서 올해 독도경비대에 지원해서 독도경비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독도경비대의 일원이 되는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독도경비대를 뽑는 기준의 수준과 경쟁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선발 인원이 적고 체력 검정 수준도 높아 시험에서 떨어질까봐 우려했다. 그 우려처럼 첫 시험에선 불합격했다. 하지만, 독도경비대에 정말 가고 싶었고 두 번째 시험 준비를 위해 꾸준히 체력단련을 했고 결국 시험에 합격, 독도경비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합격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알렸더니 매우 기뻐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야 하는 군대지만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게 돼 정말 뿌듯했다. 4주간의 훈련소 2주간의 교육대 기간을 마치고 난생 처음 가보는 울릉도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기대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포항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울릉경비대로 이동했다.울릉경비대에 전입신고 후 내무반에 들어서자 훈련소, 교육대 생활과는 다르게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울릉경비대에서 생활 한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지역대로 전입하게 됐다. 전입하던 첫날 백호 소대는 울릉도에서 독도 입도 훈련을 하고 있었다. 강도 높은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선임들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독도 입도를 앞두고 우리 땅 독도를 실제로 본다는 것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무척 기대했다. 배에서 찬란하고 웅장한 독도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순간, 그리고 독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에 몸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전율과 가슴 벅찬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부모님을 독도 근무 때 초청해 절경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 환경적 요인에 의한 생활에서 불편함, 레이더 근무로 인한 바쁜 일과, 그리고 특히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 때도 있다.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독도를 지킨다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꿋꿋이 생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독도를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충성!
2013-12-09
백호를 기다리는 겨울 둥지 독도!올 6월 2번째 근무를 마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번째 근무를 위해 겨울 독도에 입도 했다. 우산봉 헬기장에 핀 저 왕 해국, 하늘거리는 갈대. 무사히 잘 있어준 독도가 고맙다.독도에서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선배 경찰관과 어민 위령비에 인사를 올리며 독도 영원과 우리 대원들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간절한 기도도 올렸다.입도 전 울릉군 북면 평리지역 대 송곳바위와 코끼리 바위를 벗 삼아 해안경계 100일, 울릉경비대에서 혹독한 예비대 훈련 50일은 알찬 시간이었다.그 간 백호 가족도 많이 바뀌었다. 작전팀장, 통신팀장이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이대일, 오창준, 김현중, 김웅진, 홍세영, 백용규, 권세현, 임영규 등 든든했던 아들들이 거룩한 독도수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사회와 가정으로 무사히 돌아갔다.모두가 보고 싶고 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새롭게 가족이 된 아기 백호도 고된 훈련을 소화하면서 늠름히 잘 적응하고 있어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그 간 대원들의 훈련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 장일영 울릉경비대장님, 본부 지휘 직원들, 행정대원들 등 모든 분들께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특히 호랑이 작전팀장(경사 장지원)의 독도수호 맞춤형, 강도 높은 레펠·특공무술 등 각종 훈련을 거부반응 없이 악발이 근성으로 따라준 우리 백호 아들들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입도 전 검열시범 훈련은 완벽했다. 장하고, 고맙다. 이 모두가 우리의 심장 독도를 어떤 악조건에서도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뭉쳐진 한마음이 아닐까.오랜만에 집사람과 며칠간 함께한 시간은 너무 행복했었다. 몇 달은 헤어져 있어야 하기에 걱정하는 집사람을 보면서 평소에 잘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파도는 높아지고 벌써부터 칼바람이 분다,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추위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대원들의 충만한 사기와 우리를 염려해 주시는 국민의 따듯한 정이 있지 않은가.독도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영원한 우리 땅이고 우리의 자존심이기에 우리 경찰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곳이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십시오. 충~성!
2013-12-02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국민의 염원을 가진 독도로 입도하게 된다는 독도경비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독도에 첫발을 내디뎠다.선임들과 지휘관들에게 인사를 하며 독도의 석양을 바라보며 마음속 다짐을 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 독도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비록 4주 남짓한 기간의 독도 생활을 정리하면서 인상 깊은 점들이 떠오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단연 독도 그 자체다. 접안 지에서 관광객과 함께 독도를 보았고, 독도경비대가 사는 동도의 정상을 향해 한 계단씩 오를 때의 절경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러한 절경을 관광객은 보지 못하고 독도경비대만이 볼 수 있는 것이라서 아쉬움과 자긍심이 교차하기도 했다.육지 어디에서 출발하든 울릉도를 경유 배로만 약 6시간, 며칠간 시간을 할애하면서 날씨가 좋아야 독도에 발 한번 내딛게 된다. 어렵게 독도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독도경비대원들의 통제를 야속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들은 독도를 떠나면서 한결같이 독도를 지켜줘서 고맙다, 우리의 아들, 손자 같다고 다독거려 주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독도뿐만 아니라 국민의 염원을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앞선다.4주 동안의 짧았지만, 의미 있었던 독도생활을 정리해 본다. 이렇게 떠남은 울릉도에 위치한 울릉경비대에 머물다가 새로 독도로 들어오기 위한 준비과정이다.신임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새로운 출발이라 여겨 독도를 떠나고자 짐을 싸는 것이 아쉽지만, 울릉경비대에서 훈련을 받고 다시 독도에 입도할 때는 좀 더 늠름한 대원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해 본다.충성!
2013-11-25
운이 좋은 것인지 독도경비대에 전입하자마자 바로 독도에 들어오게 됐다. 사실 독도경비대는 4개 소대(지역대)가 50일씩 교대로 근무하는 독도에서보다는 울릉도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아직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 같은 신병에게 독도는 경외감 그 자체였다.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독도는 웅장했고, 거센 파도와 사람도 날려버릴 듯한 바닷바람은 자연의 위대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독도경비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관측 근무이다. 두 시간씩 정해진 위치에서 저 멀리까지 펼쳐진 수평선을 응시하며 주변의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11월 초임에도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눈에 들어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관측 근무를 서고 있으면 여러 상황에 맞부딪히게 된다.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확인 선박 때문에 비상이 걸리기도 하고, 아무런 연락이 없는 어선 때문에 근무 내내 긴장하기도 한다.일본 순시선이 자주 독도 주변 해상에 출몰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 것이다.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긴장한 상태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지만 일본 배가 접근할 때면 대원 모두 더욱더 철통 같은 경계를 유지한다.독도에서 생활하다 보면 국내 여객선으로부터 위문품을 종종 받곤 한다. 관광객 분들이 사오는 작은 먹을거리부터 단체에서 주는 여러 가지 물품이나 음식들, 때로는 받기에 부담이 될 만큼 좋은 위문품들도 있다.사람들이 우리 독도 경비대에 이만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고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도 독도를 잘 지켜주기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위문품을 받을 때마다 항상 무언가 빚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내가 맡은 근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오늘도 새벽에 근무를 서야 한다.자다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거친 바람과 어둠 속에서 서 있어야 하지만, 외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매섭게 바다를 응시하는 나의 뒤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충성!
201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