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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뉴스

영천에 2023년까지 집진필터 실증 지원센터 구축

[영천]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2023년까지 영천시에 대기환경 집진필터 실증 기반시설을 구축한다고 11일 밝혔다.영천시와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2020년 산업혁신기반구축사업에 최종 선정됐다.이로써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고효율 집진필터 실증 플랜트를 도입하는 등 관련 기업 지원사업을 추진한다.이 사업은 산업현장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집진필터 실증을 위한 기반구축사업이다.2023년까지 국비 80억에 경북도·영천시 각 25억 등을 더해 총 사업비 130억원을 투입, 영천시에 집진필터 실증지원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이에 집진필터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집진필터소재 국산화 역량 강화, 실증평가 표준화 제정으로 관련 기술경쟁력 제고를 통한 집진필터 보급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집진필터는 화력발전소나 아스콘, 시멘트 공장, 폐기물 소각장 등에서 발생되는 미세분진을 제거해 외부로 내보내는 여과 집진장치이다.연구원은 실제 환경과 동일한 집진필터의 실증테스트 관련 기반 시설 인프라를 구축해 산업 환경별 집진필터 실증을 지원할 방침이다.특히 소재-모듈-완제품에 대한 실증평가 및 집진필터 소재의 표준화·인증 방법을 고안해 관련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강혁기 한국섬유개발연구원장은 “현재 집진필터는 실사용에 앞서 성능검증을 위한 프로세스가 부족한 실정이다”며 “이번 실증 사업과 연계해 향후 영천시에 개발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필터 특화 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고 했다. /조규남기자

2020-08-11

"통합신공항 수혜 누리자" 영천시, 대응책 마련 나서

【영천】  영천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의성 비안, 군위 소보로 이전을 확정함에 따라 배후지 영천발전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다.5일 시에 따르면 김호섭 부시장 주재로 신공항 배후지 및 K-2 후적지 개발에 따른 지역 발전방향과 대응책을 모색하고자 정책회의를 열고 기업유치와 교통망 확충, MICE 산업 조성, 농산물 수출 및 식품개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했다.이날 기업과 관련해, 통합신공항은 기업의 물류처리 능력을 크게 개선하기 때문에 신속한 화물수송, 물류비 부담 감소 등 기대효과로 항공물류와 밀접한 기업들의 투자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이에 따라 현재 추진 중인 산업단지(스타밸리, 일반산업단지 공영개발, 대창, 고경일반 산업단지, 투자선도지구 등)를 차질 없이 조성하고, 기업유치, 신공항과 영천을 연결하는 교통망 확충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논의됐다.또한 경마공원, 치산캠핑장, 보현산권 관광벨트 등 영천 대표 관광지들의 접근성 향상으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 등 숙박시설과 함께 기업 바이어들이 머물고 워크숍도 할 수 있는 MICE 산업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아울러 항공기를 통한 지역 농산물의 수출판로 개척,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기내식 식품 등 가공 식품 개발도 필요성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 됐다.김호섭 부시장은 “영천은 지리적으로 의성 비안, 군위 소보 통합신공항 이전부지와 직선거리로 50km정도 떨어져 있지만,  상주-영천 고속도로, 중앙선 복선철도와 연결돼 30분 이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교통, 관광, 농업분야에서 신공항 조성에 따른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며 “오늘 제시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수차례 회의를 열어, 9월 중 구체적인 발전방안을 만들어 내겠다”고 밝혔다./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2020-08-05

영천시 시설관리공단 공식 출범

【영천】 영천시 시설관리공단(이사장 김재훈)은 1일 도남동 시설관리공단 사무실에서 출범식을 갖고 힘찬 첫 발을 내디뎠다. 사진출범식에는 최기문 영천시장을 비롯한 도의원 지역 기관·단체장 등 50여명이 참석해 공단 출범을 축하했다.설립 추진 7년여 만에 결실을 맺은 시설관리공단은 경영지원팀, 문화관광팀, 휴양시설팀 등 3개 팀으로 구성됐다.이사장과 일반직 12명, 기간제근로자 45명 등 총 58명이 근무한다.김재훈 이사장은 출범사를 통해 “친절과 고객만족의 감동경영과 창조와 발상전환의 혁신경영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임과 동시에 지역 일자리 창출, 품격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 관리 비용 절감이라는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최기문 시장은 “공공성과 수익성의 조화와 전문적이며 앞서가는 경영기법으로 효율적이며 체계적인 시설물 관리와 함께 시민과 관광객들이 만족하는 고객중심의 공단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한편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받아 관리 운영할 주요시설로는 영천시청 부설주차장, 종량제봉투 판매 등, 영천한의마을, 보현산댐짚와이어, 치산캠핑장,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보현산별빛테마마을, 별빛야영장, 보현산댐캠핑장 등 9개 사업이다./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2020-07-01

영천시의회 제8대 전반기 마무리

【영천】 2018년 7월 개원한 제8대 영천시의회(의장 박종운)가 23일 전반기 성과를 돌아보며 소회를 밝혔다.제8대 전반기 의회는 박종운 의장과 조창호 부의장, 김병하 의회운영위원장, 조영제 총무위원장, 서정구 산업·건설위원장을 중심으로 의회를 이끌어 왔다.지난 2년 간 시의회는 시민의 행복과 지역의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다양한 입법 활동과 예산안 등 의안을 심의하고, 각종 사업현장을 방문 하는 등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내부적으로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내실을 다지며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제8대 영천시의회는 전반기 2년 동안 정례회 5회, 임시회 12회 등 총 17회, 173일의 회기를 운영했다.이 과정에서 ‘영천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에 관한 조례안’, ‘영천시의회 의원연구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안’ 등 8건의 의원발의 조례안을 포함한 121건의 조례안과 41건의 예산·결산안, 64건의 기타 안건을 심사 처리했다.또 행정사무감사 192건(총무위원회 89건, 산업건설위원회 103건), 예산심의, 12회의 5분 발언으로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다.개원 초부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48개소의 주요 사업 현장과 민원 현장을 찾아 시민의 작은 소리도 경청하는 데 힘썼다.‘오수동 오염 토양 반입 정화시설 설치 반대 결의문’, ‘고경면 SRF 가스화 발전소 설치 반대 성명서’ 등 시민의 어려움을 적극 해결하고자 노력했다.올해 전국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을 때 코로나19 청정지역을 만들기 위해 방역활동에 동참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한 각종 현안사항을 긴급 임시회를 통해 발 빠르게 처리했다.특히, 당초 기준중위소득 85% 이하였던 재난긴급생활비 지급기준을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로 확대해 지원 대상을 3만여 가구로 늘렸으며, 불필요한 소모성 예산 절감 대책을 통해 기준중위소득 100% 초과 가구에도 재난긴급생활비를 지급하도록 시에 적극 요구한뒤 관련예산안을 의결했다.박종운 의장은 “되돌아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지난 2년의 성과가 말해주듯 열심히 달려왔기에 후회는 없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시민을 위하는, 시민에게 신뢰받는 의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2020-06-23

열흘간 계속된 전투, 사생결단으로 돌격

6·25전쟁 참전용사 김점철 옹.경북에서 6.25 전쟁의 전환점을 이룬 또 한 곳의 전투가 영천지구 전투다.국군 제2군단 예하 제8사단이 1950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보현산 방어선까지 진출해 영천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 제15사단과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격퇴하고 영천을 지켰다.1950년 9월2~13일 돌격전 전개6중대 3개소총 소대원 수백명대부분 전사하거나 부상 당해점령한 고지에 퍼붓는 포탄 공격끝까지 버텨 인민군 후퇴 이끌어이 전투에서 적은 5개 연대 1만2천명으로 추산되는 병력과 전차 12대, 76mm 곡사포 38문과 122mm 곡사포 18문이 투입됐다. 반면 아군은 7개 연대 1만5천명과 105mm 곡사포 26문, 57mm 대전차포 6문에 그쳤다. 병력면에서는 아군이 다소 우세했지만, 화력은 적이 월등히 앞섰다. 아군은 열세한 화력을 공군력으로 보충했다. 11일간 치열한 전투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아군은 이 전투에서 3천799명의 적을 사살하고 309명을 포로로 붙잡았다.전차 5대, 장갑차 2대, 각종 화포 14문, 소화기 2천327정, 차량 85대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반면 아군은 29명이 전사하고, 148명이 부상당했으며, 48명이 실종됐다.이 전투에 참전했던 김점철 옹(90.8사단 21연대 6중대 2소대 하사)을 만나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되돌아 봤다.-언제 입대했습니까?△6·25사변 1년 전 입대해 광주 21연대에 배속됐습니다. 다시 강원도 삼척으로 가서 보병 8사단에 예속돼 48개월 동안 8사단에서만 복무했습니다.-영천전투는 어떤 과정으로 참전했는지요.△6.25전쟁 1년 전 태백산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전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주문진으로 가서 주문진에서부터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적 탱크 앞에서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강릉, 대관령, 제천, 단양, 소백산, 풍기, 영주, 영천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저항을 못하고 후퇴를 거듭했습니다.-영천까지 후퇴과정도 들려 주십시오.△인민군들이 “니(네)가 부산 앞바다에 빠져 죽을래, 일본으로 도망갈래”라고 조롱하며 우리를 밀고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후퇴를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배가 고프면 빈집에 들어갔습니다. 뒤주를 뒤져 쌀이 있으면 생쌀을 먹기도 했고, 취사된 밥이 오면 밥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후퇴를 거듭하다 영천까지 왔습니다.우리는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3개월간 이발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 입었습니다. 총을 멘 거지 꼴로 후퇴를 했습니다.낙동강을 건너면서 많은 전우들이 죽었습니다. 낙동강을 건넌 뒤 다리 한 칸을 폭파하기도 했습니다. 인민군이 쏜 기관총에 많은 전우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밤길을 걸으며 많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설움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영천 화북면 전투가 치열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영천 시내에 인민군이 진입했습니다. 우리는 영천 위쪽인 화북면에 있었습니다. 인민군이 영천을 완전 점령하면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지요. 그래서 사생결단으로 돌격을 했습니다. 난생 처음 돌격을 해봤습니다. 10일 연속 전투한 것도 처음 입니다. 뒷심 무른 쪽에서 후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인민군은 10일 동안 견디지 못하고 결국 후퇴했습니다.-돌격할 때 심정을 어땠습니까?△피아간 500m 이상 벗어나 있으면 사격을 하지 않습니다. 유효사거리가 넘으면 사격을 하지 않습니다. 공격출발선부터 인민군의 집중 사격이 시작됩니다. 총알이 바위나 돌에 맞으면 ‘윙윙’ 소리를 내며 튀기도 하고, 튄 총알이 땅 속에 박히기도 합니다. 엎드려 직사탄을 피하기도 합니다. 돌격 중 작은 돌이 있어도 그 옆에 엎드려 직사탄을 피하면서 돌격지점까지 나아갑니다. 적진의 개인 참호로부터 40m가 돌격지점입니다. 수류탄을 던질수 있는 거리가 40m 되니까요. 선임하사가 진지 주변에서 돌격앞으로 하면 수류탄 뇌관을 뽑아서 적진으로 던집니다. 그러면 적진에서도 인민군 방망이 수류탄이 날아옵니다. 수류탄이 교차하면서 터집니다. 도망갈 틈도 없습니다. 엎드려서 피하기도 하고, 가슴으로 수류탄이 굴러오면 손으로 젖히기도 합니다. 이런 것 처음으로 겪어 봤습니다.돌격지점에 가서 그냥 후퇴하기도 합니다. 수류탄을 던질 기회를 못 잡고 후퇴합니다. 9월 2일부터 13일까지 돌격전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6중대 3개 소총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 1개 소대로 재편해 끝까지 싸웠습니다.-무섭지는 않았습니까.△무섭죠. 고지를 점령 못하면 총살이다. 뺏기면 총살이다란 지휘관의 명령에 이판사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그러던 중 후퇴했던 인민군이 우리가 점령했던 고지에 포탄을 있는대로 퍼부었습니다.다시 고지를 뺏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뺏은 고지를 악착같이 사수했습니다. 고지를 사수하다보니 적 포탄이 고지에 마구 떨어졌습니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탄착점이 생깁니다. 거기서 포격이 끝날 때까지 버텼습니다. 그날 저녁까지 버터냈습니다. 그랬더니 최후승리를 했습니다. 인민군은 그 이튿날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영천전투로 받은 훈장을 수여증으로 보관하신다던데.△팬티 옆에다 비상용으로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 4등 무공훈장 수여증을 보관했습니다. 그 수여증은 6.25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가져 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받은 훈장인데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소대가 돌격전 때 1개 부대 병력을 잡았어요.-특진은 언제 했습니까.△1951년 북한으로 진격하다 포위돼 포위망을 뚫고 나와서 특진을 했습니다. 이등상사(현재의 중사)로 그때부터 계속 선임하사를 했습니다. 소대원들을 생각하면 선임하사 위치에서 탈영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당시를 회고하니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요?△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오늘따라 전우들이 무척 보고싶습니다.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올해는 6.25전쟁 70주년되는 해입니다. 참전용사들의 나이가 90세 전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각 기관단체에서 참전용사를 초청해 특별한 위로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늘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국민들과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독교계 등에 감사드립니다.※김점철 옹은 1930년 7월 7일 전남 화순에서 출생했다.1948년 8월에 입대한뒤 전쟁 뒤 1953년 7월 제대했다. 김 옹은 육군 제8사단 제21연대 제2대대 제6중대 제2소대 소총소대 일원으로 영천대회전(永川大會戰)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훈장은 영천시에 기증했다./조규남기자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