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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치킨 마이크와 해병대원

“1945년 미국 콜로라도 양계장에서 대가리가 잘린 닭이 살고 있었다. 주인 로이드가 도끼로 닭 모가지를 내리친 뒤 몸뚱이만 살아서 대가리 없는 닭, 마이크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안창섭 시, ‘치킨 마이크’ 부분) 대가리가 잘린 채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마이크’를 꿈꾸며 멀쩡한 닭의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쳤다. 일확천금의 희박한 확률을 위해, 인간의 쾌락과 유희를 위해 수천마리의 닭이 비참하게 죽임 당한 것이다. 돈벌이 서커스의 목적으로 닭의 대가리를 자른 인간의 잔인함은 밀렵으로 멸종된 북부흰코뿔소와 절멸 위기에 놓인 호랑이, 마운틴고릴라, 향유고래, 마구잡이로 도살된 소와 돼지에게도 뻗쳤다. 인간은 다른 종들은 물론 인간까지 타자화해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전쟁을 일으켜 인간끼리 죽이고, 조화롭던 자연을 파헤친 폐허에 혐오와 갈등, 전염병과 집단학살, 그리고 방사능 오염수와 플라스틱 쓰레기만을 남겨두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시작된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인류세’라고 한다. 대개 지능이 낮은 사람을 가리켜 ‘닭대가리’라고 부르는데, 탐욕을 위해 전 지구의 황폐화와 생명체의 멸종을 초래한 인간은 스스로 제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친 “겁 대가리 없는 닭”이다. ‘치킨 마이크’는 곧 인간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근대적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술문명과 산업화, 자본에의 탐욕으로 망가진 이 세계를 인간의 손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근대주의는 자연스럽게 생태, 환경 담론과 이어진다. 근래 들어 전 세계의 관심사는 신유물론이다. 신유물론은 인간이 더 이상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동물, 식물, 유기물은 물론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등 비인간존재들이 새로운 주체가 되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꾸짖는 영화와 문학 작품들은 신유물론의 구체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이처럼 근대 너머로 나아가려하는데 아직까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근대적 지배논리에 뇌가 절여진 인간들이 있다. 전근대 아니 원시시대보다 더 끔찍한 그들의 야만적 행위는 인신공양에 미쳐 있던 중세 아즈텍인들의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경남 거제의 한 식당 마당에 있던 개들을 향해 한 시간 동안 비비탄 총을 난사한 20대 해병대원들과 그 일행 이야기다. 목줄에 매여 도망도 갈 수 없는 개들에게 수천 발의 비비탄을 쏴 결국 한 마리가 죽고 나머지 두 마리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나? CCTV에 촬영된 학살 장면을 보며 치가 떨렸다.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다. 그들은 예비 살인마다. 그런 짓을 해놓고는 “개들이 물어서 정당방위를 위해 비비탄총을 쐈다”며 비겁하고 졸렬한 핑계를 대는 걸 보니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만 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그 부모도 가관이다. “개값을 물어주겠다”는 망발은 제대로 된 인간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부모나 자식이나 다 ‘닭대가리’다. 아니다. ‘닭대가리’는 물론 “개보다 못하다”거나 “짐승 같다”는 말은 닭과 개와 짐승에게 실례다. 그 자식들과 부모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으며 나아가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도 안 될 악마적 존재들이다. 때로 공동체는 집단의 안전과 이익에 위협이 되는 이질적 존재들을 추방, 격리시킴으로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들의 악마 같은 학살 행위는 현대적 법 제도에서는 물론 비인간존재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포스트모던 신유물론의 담론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저 재미로 동물을 죽인 학살자이자 훗날 사람한테도 똑같이 할 예비 살인마들에게는 입대 무효처리, 징역형, 신상공개, 공공기관 취업제한 같은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다.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의 소속 부대는 피해자에게 “공론화시키지 말아달라”며 은폐를 시도했다. 국민들은 지금 철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군과 사법부를 지켜보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7-06

여름날의 마음가짐

요즘 자기 전 매일 취침 명상을 하고 있다. 정말 졸리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하고 자려고 하는 편인데, 오늘도 치열하게 산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순간이자 내일을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다 잡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유독 생각이 많은 걱정거리를 잠시 미뤄두기 위해, 또는 하루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도망친다면 오히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면을 보게 된다거나 오히려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잠이 들면 어쩐지 다음날 아침까지 피곤해지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정신과 몸 상태에 집중할 수 있는 명상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몸이 뒤척일 때마다 나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한한 어둠의 세계, 나는 두 눈을 감고서 내 방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고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내면의 깊이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시선을 돌려 이마의 한 가운데에 머무른다거나,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의 사이, 배꼽, 오른쪽 허벅지에 있던 시선의 무게를 왼쪽으로 옮겨가 잠시 머물러 볼 수도 있다. 생각을 몸에 집중하는 동안은 신기하게도 온갖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며 편안함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럴 땐 꼭 7년 전 여름, 더위를 피하려 찾은 경주 불국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불자들 사이, 기둥 옆에 몸을 숨겨 가만히 앉아 있었고 시원한 나무 바닥을 손으로 쓸며, 지금 내가 감내하고 있는 마음의 고통에서 조금 물러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한참 빌었다. 그 시간은 마치 전생이나 희미한 꿈결 같았고, 한참을 앉아 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예약해둔 경주 시내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그곳에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단 대학생 3명과 퇴사 후 홀로 경주를 찾았단 언니가 있는 6인실 방을 배정받았다. 우리는 주로 그때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었고, 앞다투어 그간 숨겨두었던 비밀을 구덩이에 발설하듯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마음은 가볍지만 어쩐지 묘한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무척 방황하던 시기였기에 그때의 힘듦을 눈을 감고 떠올리라고 한다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시큰시큰 아릿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또 다른 걱정과 새로운 불안으로 또다시 잠 못 들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덜 상처받고, 덜 노력하고, 덜 힘들지 않기 위해 나는 무척 애쓴다.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대도, 아니 어쩌면 더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힘을 내어 할 수 있는 것이 명상인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고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결국 스스로 찾은 적막 속에서 평안에 다다르게 된다. 순간을 알아차리고 편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동시에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더욱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면 드디어 하루의 스위치를 끌 수 있게 된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생각의 조절이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로워지며, 결국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선택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수 있게 된다. 내가 내 정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긴박한 상황이 오더라도 한 발자국 멀리 벗어나 사건으 바라보게 되고, 집에 돌아와선 온전한 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쉼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회사에서 내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들, 하루에 끝내야 하는 일과등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이 시간들이 내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저번주 주말엔 현재 내 마음가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여름의 경주로 향하는 기차를 끊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다 편히 몸을 뉘일 한옥 숙소도 마련해두고, 그곳에서 어떤 것을 먹을지 어떤 길을 걸을지 찾아보며 또다시 시작되는 한 주의 시작을 기다린다. 억지로 편안함을 이끌고 행복에 다가가기보단, 그저 힘을 빼고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 조금씩 노력하며 집중한다면 결국 내가 하려 했던 목표는 이루어지고 결국 편안함과 행복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여름날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윤여진(소설가)

2025-07-06

취향과 옳음, 그 사이

우연한 계기로 21년째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질병으로 죽으면 다시 길냥이를 들여서 많을 때는 네 마리를 키운 적도 있고, 지금도 12년 째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 기사에는 눈이 간다. 지난 2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이 A씨가 자기 반려견을 공격한 개의 주인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A씨 손을 들어주었다는 기사도 그 중 하나다. 피해견 견주는 개 치료비 80만원, 본인 손 다친 치료비 3만원에 위자료 200만원을 더해 283만원을 청구했는데 승소한 것이다. 사건 발생일이 2023년 9월이라고 하니 거의 2년 동안 재판한 셈이다. 이 기사가 특별했던 것은 A씨가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반려견과 교감해와 A씨에게 개는 가족에 준하는 존재였다고 했기 때문이고, 이 판결을 반대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위자료가 2백만 원일 수는 없으므로 재판부가 개를 실제 가족이라고 간주한 것은 아니다. 개가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해 견주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매체에서 뉴스로 다뤘다는 것은 위자료 지급이 여전히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댓글에는 판사가 사람과 개를 구분 못 한다는 비난부터 밴에 개 5마리 태우고 가면 버스전용차선으로 가도 되느냐는 조롱까지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실제로 현행 민법(98조)에서는 동물을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으로 본다. 그러나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와는 달리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때 주인은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이 죽은 뒤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상)을 겪는다. 그래서 이런 사고에 대해 법원도 정신적 피해 부분을 인정해준다. 위자료 산정을 둘러싼 논란에는 동물의 위상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담겨 있다. 키우는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주 글쓰기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는 주제로 쓴 글에도 이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동물 학대와 유기도 문제지만 지나친 동물 사랑도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설날에 강아지 떡국을 마련하거나 집을 비울 때 강아지를 비싼 호텔에 맡기기도 하고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화장하고 납골함을 마련하는 사람들의 세태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사람과 동물을 다르게 보는 것을 ‘종 차별’이라며 비판한다. 피터 싱어의 목적은 동물 착취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 논리를 확대해서 동물 복지를 추구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이런 이론을 동원할 것도 없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는 옳음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이기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의 취향이나 관심을 존중해야 하듯이 정말로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동물에게 인간 문명을 적용하려 드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동물들의 이익관심(interests)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피터 싱어의 말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06

기술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해야

지난 2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BBC방송에 고대 이집트인의 전체 인간유전체 서열(full human genome sequence) 분석 성공 기사가 실렸다. 1902년 이집트의 누와이라트에서 발견된 남성 유해의 치아에서 추출한 시료를 분석했다. DNA 분석으로 갈색의 눈과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피부색은 짙거나 검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뼈와 치아의 화학 분석으로 남성이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자랐으며, 동물성 단백질과 밀·보리 등을 먹은 것으로 분석했다. 60대에 사망했으며 키는 157.4∼160.5㎝로 추정했다. 남성의 DNA 중 이집트나 모로코 등 당시 북아프리카 쪽 혈통 80%에 메소포타미아 쪽 혈통 20%로 분석했다.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에 따르면 생존 시기는 기원전 2855년에서 기원전 2570년경으로 발표했다. 놀라운 과학기술이다. 5천 년도 더 지난 뼈와 이빨 분석만으로 얻은 결과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면 이것보다 더 한 일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영역을 대체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 IoT 기술, 로봇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서비스로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은 정확한 의료 진단과 성공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이다. 여러 분야의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로 우리 삶은 나아질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신뢰할 수 없다고 설문에 답했다. 이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부당한 사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도 하지만 한 순간에 인간의 문명을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 기술 개발이 우선이라 윤리적인 면을 다루는 기술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유전자 조작 기술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도덕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공지능의 사용으로 개인의 인권이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으며, 민감한 개인 정보의 유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생명윤리 문제를 불러온다. 과학기술과 정보의 불평등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은 과학기술 개발에만 중점을 두기에 많은 사람이 불안감을 느낀다. 과학기술의 성과에 급급해 우리에게 닥칠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시점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성급하게 개발에만 몰두하며, 앞으로 인간이 겪어야 할 심각한 부작용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개발 단계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넘어갈 때, 보다 건강한 과학기술의 토양을 다질 수 있다. 미래엔 인간이 중심에 서고 자연 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개발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측면만큼이나 기술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7-06

李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 기대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한 달째를 맞아 연일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지난 4일 대전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으로 자원배분이 다 몰리면서 나머지 지역은 전부 생존 위기를 겪는 상황이 됐다“고 했고, 하루 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한달 기자회견에서도 앞으로 예산 배정에 있어 비수도권 지역 발전에 힘이 실리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거리에 따른 가중치 표를 만들어 정부 정책 결정, 지방교부세, SOC(사회간접자본)결정, 예산 배정을 할 때 지침으로 삼겠다”고 했다. 지방균형발전 영향분석을 법률상 의무화하는 방법도 고려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다양한 국가 현안 중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정책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 대부분 집권 초기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해 왔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됐다. 지역균형발전은 반드시 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대통령실이 광주 민·군 공항 이전 TF를 꾸려 문제 해결을 주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 K2 민·군공항 이전도 마찬가지지만, 대도시 군공항은 소음과 도심확장 제한 등으로 도시발전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군공항이전 사업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결국 국가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배분하는 과정이다. 지난 문재인·윤석열 정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해 왔지만, 수도권 여야 의원들의 막강하고 조직적인 파워를 이길 수 없어 물거품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정권과는 다르게 압도적인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민들은 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2025-07-06

천재와 범재(凡才)

얼마 전에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아마데우스’는 1984년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1985년에 개봉되었다. 당시 나는 음악에 문외한(門外漢)이었는데, 동생이 입장권을 구해준 덕에 난생처음 음악영화를 보는 귀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실은 16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영화에 몰입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불세출(不世出)의 천재 작곡가다. 그의 적대자로 설정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모차르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재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영화 전편(全篇)에 깔린 살리에리의 절망적인 한탄과 출구 없는 상황은 마침내 그를 치매 수준의 노인으로까지 몰고 가는 극적인 결말로 우리를 인도한다. 40년 전 ‘아마데우스’를 처음 보았을 때나, 이번에 다시 보고 나서도 나를 사로잡는 문제의식은 천재와 범재에 관한 것이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어떤 특별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를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밀로스 포만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면모를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모차르트는 집 안에 있는 당구대에서 공을 굴리면서, 아내와 잡담을 해가면서 능수능란하게 작곡한다. 반면에 살리에리는 오직 작곡에만 몰두하면서 하나하나의 음을 직접 피아노로 확인해야 근근이 작곡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저한 대조가 영화 전편에서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남달리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식에게 가혹할 정도로 음악 훈련을 시켰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에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시기하고 선망하는 살리에리의 신을 향한 분노와 바닥 모를 절망이 강조된다. 그런 까닭에 관객은 천재 모차르트와 범재 살리에리 사이의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간극(間隙)을 곳곳에서 확인한다. 천재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는 만화가 이현세 선생의 일화로 들었다. 타고난 만화가의 자질을 가진 동료의 아스라한 높이에 전혀 미칠 수 없었던 이현세는 하루에 100장씩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년 동안 그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이현세는 천재 동료가 넘을 수 없던 절망과 탄식의 관문을 먼저 통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리에리와 이현세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소회는 단출하다. 그것은 거대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해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다. 사람들은 피눈물 나는 처절한 연습과 반복으로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르는 초인적인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그것은 딴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은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범재로 이뤄져 있다. 양자의 조화로운 공존과 협력으로 세상은 전진해왔다. 다수 범재가 소수 천재를 겁박(劫迫)하는 21세기 정치지형은 우리에게 ‘아마데우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속삭인다. 다수와 소수가 공영하는 세상을 꿈꾸는 아침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06

일본의 지진 괴담

지난 3일 일본 가고시마현 남단에 있는 오카라 열도에서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최근 10일 동안 무려 1000회 이상의 지진이 발생, 일본인들을 긴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다. 실제로 지진 피해도 컸다. 일본 남서부 해안을 따라 형성된 난카이 해저협곡은 필리핀판과 일본판이 충돌하는 곳으로 100년-150년 주기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주목받는다. 일본 정부도 앞으로 30년 내 이곳에서 80%의 확률로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사망자가 3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도 했다. 최근 오카라 열도에서 일어난 지진은 일본의 인기만화 예지몽 속의 지진예측과 심해어의 연이은 출몰 현상과 맞물려서 일본 사회에 신빙성 있게 지진설을 유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카라 열도에서의 지진과 난카이 대지진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지진 발생에 대비하라는 당부는 한다. 일본은 2011년 2만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과 그와 유사한 지진 피해를 경험한 나라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익숙하지만 강한 트라우마다. 최근 대지진 괴담이 퍼지면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확 줄고 있다. 일본은 지질학적으로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일본의 지진 괴담이 괴담으로 그친다면 다행이겠으나 실제로 일어난다면 일본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학계서는 일본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 대공황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를 한다. 국제사회가 일본 지진 괴담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6

부산 어린이 화재사고 남의 동네 일 아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남겨진 자매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부산에서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2일 밤 11시쯤 부산시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8살, 6살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4일에도 부산시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 10살, 7살 자매가 숨진 일이 있었다. 불과 10여 일 만에 똑같은 사고로 어린이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자 우리 사회가 크게 충격에 빠졌다. 두 사고는 모두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안타깝게 했다. 또 노후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비한 초기 진압장비가 없었던 점도 비슷하다. 사고 경위를 꼼꼼히 살펴 정부 차원의 근본대책을 마련해야겠다. 정부도 부산 어린이 화재 참변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고, 우선 저소득가구를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집중 지원하고, 심야돌봄에 대한 수요 조사도 벌이기로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복지부의 아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주 양육자가 아동을 방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6.5%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수급 가구의 방임 경험 비율은 38.9%로 일반 가구보다 1.5배나 높았다. 또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경우 방임 비율이 30.7%에 달해 20%를 기록한 다른 소득구간보다 높았다 고 한다. 위의 조사를 근거로 보면 저소득 맞벌이 가구에서 어린이 방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경제활동을 위해 부모가 모두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고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취약점이 보완돼야 하는 문제도 있으나 저소득 가구의 어린이를 보호할 심야돌봄이나 아동청소년 야간보호 사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이번 아파트 화재 어린이 참사가 부산에서 일어났지만 전국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부산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지자체 등은 적극적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2025-07-06

울릉도 ‘중국 쓰레기 천국’ 이라 한 일부 미디어… 더 고민하고 보도했어야

환경단체인 환경재단이 울릉도 청년들과 함께 최근 울릉군 북면 현포리 웅포에서 드론을 이용한 과학적 해양쓰레기 수거에 나서 약 158l 규모의 해양오염 쓰레기를 수거했다. 이번 수거된 해양쓰레기는 낚시줄, 폐로프, 스티로폼, 페트병, 부표 등 어업 관련 쓰레기가 대부분이고, 생활 쓰레기 플라스틱 용기, 비닐류도 다수 있었다. 국적 확인 가능한 수거물중에서는 중국산 해양쓰레기가 85.1%를 차지했다. 국내 일부 미디어는 이를 문제삼았다. 울릉도가 마치 중국에서 버린 쓰레기로 큰 몸살을 앓는 것처럼 보도했다. 중국산 쓰레기로 인해 울르이 망한 것처럼 비쳐지게 한 것이다. 제목은 삽질이라도 하듯 더 어이없었다. ‘이건 정말 끔찍하다’ ,물이 가장 깨끗한 ‘울릉도’…중국 플라스틱’ 여기 울릉도 맞아?, 이러다 ‘中 쓰레기 섬 될 판’ 분통, ‘중국 때문에 망했네, 청정 울릉도에 쌓인 이것’이라는 등을 달아 네티즌들을 자극했다. 또, ‘중국 때문에 다 망했다’…‘세계 최고 수질’ 울릉도에 가득 쌓인 ‘이것’ 뭐길래? 등 자극적인 제목들이 줄을 이었다. 울릉도는 이제 청정지역이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둔갑했다고 앞다투어 보도한 것. 울릉도의 수질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의뢰한 ‘추산용천수 먹는 샘물 개발’ 용역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울릉도에서 분출되는 용천수는 생수의 생명이라고 할 미네랄 성분이 육지 생수보다 월등하고 풍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울릉 군민들도 우리나라에서 물이 가장 깨끗한 것으로 유명한 곳에서 사는 것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이러함에도 이번에 일부 미디어는 먹는 물까지 시비삼아 수질 명성을 잃고 해양쓰레기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군민들도 어이없는 험 잡기를 보고 기가 차다는 반응이다. 특히 일부 매체는 해양쓰레기에 대해 소설같은 논리를 만들기도 했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운데다 장마로 육상 쓰레기가 늘어나는 데 더해 중국·일본 등 인근 나라에서 건너온 쓰레기들까지 울릉 해역에 넘쳐난다고 보도했다. 과연 맞을까? 울릉도 북쪽 지역은 북한이다. 그러다보니 북한수역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버린 쓰레기가 간혹 떠내려오기도 한다. 또 발견되는 쓰레기를 보면 일본에서 올라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북한과 러시아 사이 해안선 일부가 있는 중국 본토 쓰레기가 울릉도에서 발견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번 수거된 쓰레기는 전체량은 1.8l 88개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출처가 확인된 페트병 등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분석하니 이중에 85%가 중국 쓰레기였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 쓰레기가 울릉도를 쓰레기 천국으로 만든 배경이 됐다. 울릉도는 동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섬 둘레가 60km에 이른다. 해안을 안은 섬에는 계절과 바람에 따라 북한, 일본, 강원도 등 한반도에서 쓰레기가 밀려오기 일쑤다. 그게 자연의 순리고 법칙이다. 이번에 중국 쓰레기가 85% 차지한 것은 중국 오징어 쌍끌이 어선 수백 척이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면서 버린 해양쓰레기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일치된 의견이다. 어선에서 버린 쓰레기가 언론보도 처럼 울릉도가 난리 날 정도로 오염될 쓰레기는 아닐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울릉에서 사단이 난 것처럼 보도됐다. 이번에 확인된 중국 쓰레기는 대부분 떠 다니는 플라스틱 종류로 확인돼 북한 수역내 조업 어선들이 내다버린 것임을 더욱 자명케 한다. 북한수역에서 중국어선들이 버린 쓰레기가 하더라도 전부 울릉도까지 도달하는 것은 성립불가능이다. 울릉도에 떠밀려 오기도 하지만 북한, 일본, 러시아 연안 등으로도 밀려간다. 북서풍 등 바람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국내 일부 미디에에서 호들갑 떠는 만큼 울릉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작은 쓰레기라도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울릉도는 동해 한 가운데 위치하고 한반도, 일본, 중국, 러시아가 에워 싸고 있어 일정 부분은 감수해야하고 주민들도 당연시 받아들인다. 특히, 울릉 샘물은 중국 해양쓰레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이번에 수거한 1.8l 페트병 88개 분량의 쓰레기가 울릉도를 오염시킬 정도는 아니다. 일부 미디어의 호들갑이 오히려 울릉도를 더 심각하게 오염시킨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7-06

‘러브버그’

올여름 수도권은 때아닌 ‘사랑 벌레’, 즉 ‘러브버그(Lovebug)’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짝짓기 상태로 날아다니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이런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지만, 도심을 뒤덮은 개체 수에 시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잦은 비 등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러브버그’가 대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수도권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이 도시 해충의 공습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도 ‘러브버그’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 지역 역시 기후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해충 문제에 대한 선제적인 대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브버그’는 다행히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거나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충 시절에는 숲 바닥의 낙엽과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성충은 꽃의 꿀을 빨며 수분 활동을 돕는 등 생태계에서는 ‘익충’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 도시에서의 대량 발생은 이야기가 다르다.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관을 해치고, 건물 외벽이나 창문, 자동차 등에 달라붙어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 특히 산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나 공원 주변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며, 사체는 자동차 도장 면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이는 생태계 교란의 신호탄이자,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수도권 지자체들은 ‘러브버그’의 대량 발생에 방역소독 위주의 ‘사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 방역은 ‘러브버그’뿐만 아니라 꿀벌과 같은 다른 유익한 곤충까지 없애 생태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수십 년간 ‘러브버그’를 겪어온 미국 플로리다주는 화학적 방제보다는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와 시민 교육에 집중한다. ‘러브버그’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가 자연 소멸하는 단기적 현상임을 알리고, 자동차 보호 덮개 사용법이나 친환경 벌레 퇴치법 등을 안내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법은 무분별한 방역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제 대구·경북 지역도 ‘러브버그’를 포함한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도시 해충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단기적인 방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선 우리 지역의 ‘러브버그’ 발생 현황과 서식 환경에 대한 정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방제 기술을 개발하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행동 요령을 제공하는 체계적인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원과 녹지 조성 시 해충의 대량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식물 종을 도입하는 등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생태적 고려를 포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러브버그’의 등장은 우리에게 불편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중요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은 곤충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03

최고의 효심

‘禮記’에 나오는 불효의 3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혼인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것. 둘째,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무조건 부모의 의지를 쫓아 부모가 옳지 못한 데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무조건 선물이나 안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선물도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와라. 고르기가 귀찮고 힘들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가 그 돈으로 알아서 잘 사용을 할게. 어찌 되었든 ‘효’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고 빨리 시집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효가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대를 잇는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첫 번째는 ‘혼인하지 않는다.’ 는 말에 방점을 찍어 불효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뿌린 부좃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들어오는 부좃돈은 다 부모 돈이고,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오는 돈은 너희들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쓸데없이 좋은 날 침 바르는 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을 잘 봐라. 그 옛날에도 자식들이 부모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그만두고 빈둥빈둥하는 꼴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리라. 네 놈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병간호 받기 싫다. 그냥 내가 아프면 예쁜 간병인 구해다 붙여주면 된다. 너희는 열심히 일해서 간병인 인건비만 보태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특히 유념할 것은 내가 병실에 누웠다고 네 엄마보고 나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 아비의 간절한 망부가(望婦歌)로 알면 되겠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다면 이건 불효 중의 불효라고 알면 되고 돈 아낀다고 얼굴 안 보고 간병인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조건이 많이 헷갈릴 것이다. 요즘 덜떨어진 노인네들은 ‘충’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데 충(忠)의 개념이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고 맹자라는 분이 분명히 정의하였다. 그래서 군신이 없는 지금엔 ‘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국민이 ‘충’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정자들이 지네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는 핑계로 교묘히 활용하고 있고 일부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추종하는 꼴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조건 ‘부모 말’이라고 해서 따라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물레 다방 김 마담에게 빠져 술이나 퍼먹고 도박을 일삼고 있으면 말려야지 아비의 권위를 위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수천 년 전에 말이 어떻게 오늘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게 쓰였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마치 ‘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그녀가 산에 간 이유가 바로 죽은 자기애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시에 엉망진창이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나도 몰래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서 일종의 환희심까지 생긴다. “아빠, 결론이 뭐고?” “그냥 돈으로 달라는 거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03

탄력받는 경북 이모작 사업, 농업 새역사 쓰길

경북도가 야심차게 추진한 농업대 전환 이모작 공동영농 사업이 성과를 바탕으로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2023년 문경 영순지구를 시작으로 처음 시작한 이모작 공동영농 사업은 지난해 문경, 영덕, 구미지역에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현재까지 도내 21개지구(공동영농 지구 17곳, 들녘 특구 4곳)에서 이모작 영농사업을 벌이고 있다. 경북도는 “올해 상반기 중 총 530ha의 벼 재배지가 옥수수 등 다른 작물로 전환됐다”고 밝히고 농민소득 증대 등 농가의 반응이 좋아 이모작 영농사업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경북도의 이모작 공동영농 사업은 농촌인구의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변화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경북도의 농업대전환 사업이다. 기존의 벼농사에 의존하던 농지를 콩과 옥수수 등 타 작물로 대체해 이모작을 경영하고, 운영은 공동영농조합 법인에 맡기는 형태다. 2023년 문경 영순지구를 시범지구로 선정해 시작한 결과, 사업에 참여한 영순지구 농민들은 벼농사 때보다 두 배의 수익을 얻었다. 이 사업이 농촌의 인력난 등을 해소하고 농가소득까지 올리자 농림식품부가 내년부터 이모작 공동영농사업을 국가 시책사업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2030년까지 이모작 공동영농 100개소 면적 9000ha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 계획대로 되면 경북의 벼농사 재배면적이 10%가량 감축돼 쌀 공급과잉의 문제도 해결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모작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성공하면 농업대전환을 통해 쌀값을 해결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농업대전환이 농민의 호응과 함께 재배면적이 증가하는 것은 이모작 영농의 성과가 뒷받침 된 때문이다. 농민소득이 증대되면 농촌의 고질적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특히 이모작 영농의 기법을 현대화시키면 젊은이들의 귀농도 기대할 수 있다. 소득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농촌지방 소멸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경북도가 야심차게 시작한 농업대전환 이모작 공동영농이 위기의 대한민국 농업을 획기적으로 바꿀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2025-07-03

TK신공항도 광주처럼 정부가 직접 챙겨야

국민의힘 박형수(의성·청송·영덕·울진) 의원이 지난 1일 국회 예결위 질의에서 광주 민·군 공항 이전추진 방식을 거론하며, “동일한 이유, 동일한 사업방식으로 진행되는 대구·경북(TK)신공항 이전 문제도 정부가 직접 챙겨달라”고 요구했다. 광주공항 이전 사업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대통령실이 직접 TF를 꾸려 정부에서 문제 해결을 주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박 의원은 “광주와 대구공항은 시민 소음피해, 군사시설로 인한 도심 확장 한계 등의 이유로 이전사업이 시작됐다. 둘 다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TK신공항 사업도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과 형평성에 맞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영하(대구 달서갑) 의원도 지난달 30일 이두희 국방부 차관에게 “전국 군공항 이전사업은 모두 대통령 직속 TF에서 논의돼야 한다”면서 “민간 투자자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어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신공항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본다. 결국 국가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사실 대구·광주 군공항 이전 사업은 정치권이 ‘쌍둥이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 대통령도 광주행사에서 밝혔듯이, 도심 군공항이전 사업은 정부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이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군공항 이전 시 정부 재정지원이 가능하도록 명시한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만들지 않았는가. 박형수 의원의 질의에 대해 기획재정부 임기근 2차관은 “대통령실 TF 구성은 됐지만 아직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TK신공항도 동일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국가 지원과 관련해 비슷한 요구가 있는 만큼 형평성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TK신공항 사업도 ‘광주공항 TF’의 의제로 삼는 것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듯이, 대구시와 경북도, 정치권은 대통령실에서 공항 이전 TF가 가동될 때 TK신공항 사업도 TF 의제에 포함돼 논의될 수 있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5-07-03

왕들의 피서법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한 여름 더위를 어떻게 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 가나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어 실내에 들어서만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1700년대 중국 청나라 황제들은 베이징에서 수백km 떨어진 허베이성 청더시에 여름 별장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피서 별장으로 불리는 청더시의 여름 별장은 황제가 머무는 동안 정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외국사절의 접견도 이곳에서 행해짐으로 이곳은 여름철이면 청나라의 제2수도가 된다. 여름 별장의 규모가 564만㎡에 이르니 현존하는 중국 최대 궁궐공원이라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중국과는 달리 아무리 더워도 궁궐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창덕궁 후원에서 더위를 피했다. 찬 계곡물에 발을 담가놓고 부채를 부치며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더위를 달랬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름철 더위가 크게 다를 바 없을 터인데 임금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고작 이것이 다다.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반(水飯)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반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22대 정조 임금은 더위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다고 만족할만한 곳이 있느냐 지금 있는 장소에서 만족하고 참고 견디면 여기가 서늘한 곳이라 말했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여름나기를 걱정한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옛 왕들보다 시원한 피서를 즐길 수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3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반려 인구 1500만의 시대, 이제 우리도 인구 셋 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동물보호와 동물복지를 위한 제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개 식용금지법이 2027년 2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이전보다 강화되는 동물보호 방안들이 담긴 ‘동물복지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세부적인 동물보호 방안들을 아우르는 법 개정안이 하나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규정한 민법 개정안이다. 21대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던 이 법안은 작년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다시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이 한마디가 법전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법률관계를 구성하는 권리라는 것을 다룬다. 우리 민법은 이 권리의 주체를 자연인과 법인으로, 권리의 객체는 물건으로 한정한다.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제기되었던 천성산 터널 소송이 각하되었던 이유도 도롱뇽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권리의 객체는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인데, 이것을 민법은 ‘물건’이라고 칭한다. 동물은 법률적으론 권리의 객체 곧 물건일 뿐인 것이다. 동물이 책상, 탁상시계와 같은 물건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주인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요크셔테리어를 차량으로 충격해 피해 견이 평생 치료받아야 할 뇌 손상 상해를 입은 사건에서 법원은 가해자에게 해당 연령의 요크셔테리어 종의 시가 약 100만 원과 정신적 손해배상금 5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할 뿐이었다. 피해 견은 15년 이상을 함께 산, 주인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반려견이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어도 해당 견종의 시가를 넘는 치료비는 배상받을 수 없다. 물건을 손괴했다면 물건의 시가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수리비를 배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과 동물을 똑같이 취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상실로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 그저 식탁 다리가 하나 부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민법에 규정하면 동물은 단순한 권리의 객체인 물건도, 권리의 주체인 자연인도 아닌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면 동물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피해에 대한 배상도 실제 입은 고통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고, 동물이 물건 지위에서 벗어나는 만큼 동물보호나 생명존중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법에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것으로 규정한지 오래다. 미국은 주인이 사망할 경우 남겨진 반려동물의 돌봄을 위한 유산 신탁 제도까지 법제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을 넣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은 동물보호를 위한 단계로 차근차근 나아가면 된다. 가장 약한 생명인 동물에 대한 존중과 인식 변화는 곧 사람의 생명에 대한 귀히 여김으로, 또 우리가 사는 지구와 생태계에 대한 귀히 여김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03

MRI 한 장에 수백만 원… 반려동물도 ‘건강보험’ 사각지대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지만, 의료체계 만큼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진료비는 병원마다 들쭉날쭉하고 공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보호자들 사이에선 “동물이 아픈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병원비가 무섭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KB금융그룹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한 달 평균 약 19만 원의 양육비를 지출한다. 사료, 간식, 배변용품, 예방접종 등 기본 비용 외에도 병원비가 가세하면 부담은 급증한다. 실제 포항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반려견 디스크 치료에 수백만 원을 지출했다. 그는 “사람은 MRI 촬영도 건강보험 덕에 수십만 원 선이지만, 강아지는 검사 하나에 수백만 원이 들어 대출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진료비의 법적 기준 조차 없다는 점이다. 보호자들은 진료 전 비용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고, 치료가 끝난 뒤 고지되는 청구서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단순 엑스레이 촬영조차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차이가 나며, 중성화 수술도 병원마다 방식과 가격이 제각각이다.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는 가정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구조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저소득 보호자의 경우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생명권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PDSA(People’s Dispensary for Sick Animals)’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 진료를 제공한다.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도 40%를 웃돈다. 스웨덴은 보험 가입률이 90%에 달하며, 정부가 진료 항목과 수가를 직접 관리한다. 일본은 민간보험사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운용하며 최대 70%까지 진료비를 보장한다. 이들 국가는 민간보험과 공공지원의 조화를 통해 반려동물 의료의 형평성과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돈 있는 사람만 치료받는 구조’를 지양하고, 모든 보호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의료의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료비 공개 수준의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며, 공공의료 항목 일부에 대해 국가가 보조하거나 민간보험을 유도·지원하는 방식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동물의료보험제도는 앞으로 인구 감소시대에 가족과 반려동물을 포함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복지 장치의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7-03

죽도동 연하실비 주점

조금 구라를 때려 칠엽굴(七葉窟)*에 버금가는 난장의 소굴(巢窟)이라 할 만하다 좌측과 우측이 침을 튀겨며 싸워도 그 독성의 곰팡이가 꽃으로 피는 곳 맑은 피가 난무하는 따스한 광장 이기심이 배려로 바뀌는 희한한 유전인자를 내재한 약간의 돌연변이들이 꼼지락거리며 시대를 노려보고 있다 독재에 가까운 주인의 횡포와 무례를 쌍욕으로 잠재우는 단련된 내공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길을 가라고 부축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 나날들이 소금으로 설탕으로 고춧가루로 온갖 음식에 녹아 있어 계절의 변화와 파도의 향기까지 누릴 수 있는데, 헛소리하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 이런 선한 강적에게는 얼른 굴복하는 것이 최선임을 나는 배운다 세상에 술집은 많고 개소리는 송도바다에 가서 풀면 되기 때문이다. *칠엽굴 : 인도 왕사성 부근 비파라산에 있는 석굴로 부처 당시 500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합송함으로써 제1차 결집이 이루어진 곳. …… 이곳은 주인의 독재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다. 잘못 씨부리면 욕도 엄청 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바르게 살아온 자신감이 충만한 예쁜 교만이 가득하다. 마음이 늘 쓸쓸한 우리에게는 감추어둔 최후의, 비장의 장소 혹은 무기가 된다. 아무에게도 소개하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광장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잡놈들의 대장이자 ‘따까리’임을 자처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02

청보리 바람이 머무는 섬

바람결마저 푸르렀던 5월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사는 섬 중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에 다녀왔다. 가파도는 이름에 얽힌 설이 여럿 있었다. 파도가 섬을 덮었다고, 생긴 모양이 가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물결이 더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가파도는 섬의 특성상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해도 섬에 들어갈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도 모슬포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그날의 마지막 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출렁이는 수면 위로 뱃머리가 천천히 나아갔다. 저 멀리 구름 아래 떠 있는 섬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내 가슴은 기대감으로 설렜다. 상동포구에 다다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제주올레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를 걸었다. 그러나 마음에 닿는 곳이 보이면 샛길로 빠져 해안도로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했다. 오솔길 따라 쉬엄쉬엄 걷다가 숨이 멎을 듯한 청보리의 물결을 보았다. 푸름이 바람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며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풀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포항에서 살아온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구만리 보리밭에 간다. 언덕 위에서 바다를 향해 살랑살랑 나붓거리는 보리를 보며, 늘 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을 체감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의 물결이 계절을 지나가게 하고, 보릿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어느 시절의 꿈처럼 다가오곤 했다. 나에게 들숨마다 봄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푸른 숨결인 보리를 섬에서도 만났다. 가파도를 뒤덮은 푸르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다. 봄빛을 머금은 청보리는 바람 따라 쉼 없이 출렁였다. 마치 바다 위에 또 다른 바다가 피어난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보리의 이마는 가볍게 눌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 질서 있고도 유연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한흑구 선생님의 수필 「보리」를 떠올렸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누리는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한흑구 선생님께서는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 창작되어야 하고, 철학이 그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실제로 그의 수필집 ‘동해산문’을 읽어 보면, 시적인 명문장들이 빛을 발했다. 보리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내가 섬 안으로 스며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은 내 등을 떠밀지도 앞서 끌고 가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머물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소망전망대가 나왔다. 높은 곳이라 해도 해발 20.5m로 언덕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뜻밖에도 크고 넓었다. 보리와 바람, 낮고 둥근 지붕들, 그리고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제주 본섬과 한라산은 감동적이었다. 가장 낮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본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그 순간, 마치 땅끝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발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펼쳐지고, 시선 끝에는 구름을 이고 선 한라산이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말없이 하나로 엮여 있는 섬은 오래된 시간처럼 존재했다. 바다와 바람 사이에 떠 있는 가파도에서, 나는 높이와 깊이의 감각을 동시에 느꼈다. 멀리 있는 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고 나의 마음은 고요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침잠했다. 가파도에서 만난 섬사람들은 말수가 적었다. 그들은 밭일을 하다가도 바다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곧바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보리처럼 허리를 숙이고 살아가는 강인한 눈빛의 사람들을 보니 내 가슴이 뭉클했다. 섬의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보리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함께였다. 섬사람과 청보리는 바람에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섬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머무름의 끝이 곧 떠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배에서 뒤돌아보니, 섬은 점점 멀어지고 청보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남은 보리는 더 넓고 깊게 자라고 있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7-02

만성 통증, 교감신경의 비명

몸이 아플 때 우리는 흔히 근육이 뭉쳤다, 염증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특히 어깨, 목, 허리, 무릎 등 일상에서 자주 겪는 만성 통증은 ‘자세 탓’, ‘노화’, ‘디스크 때문’이라며 넘기기 쉽다. 그러나 자세를 고치고 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계속되고 재발한다면 단순한 구조 문제가 아닌 더 깊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교감신경의 항진이라는 자율신경계의 이상 신호다. 우리 몸은 자율신경계를 통해 내장, 혈류, 호흡, 체온, 호르몬을 조절한다. 이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며, 교감신경은 긴장과 활동을, 부교감신경은 회복과 안정을 담당한다. 현대인은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 정신적 긴장 속에서 거의 24시간 교감신경 항진 상태에 놓여 있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말초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하며 심박수는 증가하고, 위장 기능은 억제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근육으로의 혈류 공급이 나빠지고 노폐물과 젖산이 쌓이면서 만성적인 통증이 유발된다. 목과 어깨가 결리고 허리가 뻐근하고 턱이 뭉치고 머리가 조이듯 아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교감신경의 과도한 항진은 수면장애, 소화불량, 안절부절 못함, 가슴 답답함, 안면홍조, 잦은 소변 등 다양한 자율신경 실조 증상을 함께 동반한다. 결국 통증은 단순한 국소 문제라기보다는 교감신경의 비명이자 몸 전체가 보내는 구조신호인 셈이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전신 상태를 기울, 간기울결, 담음, 어혈 같은 개념으로 설명해왔다. 스트레스로 기가 정체되면 간의 소통 기능이 저하되고 열이 위로 치받으며 혈류가 막히고 담음이 쌓인다. 자율신경의 교란이 말초에 미치는 영향을 풀어낸 한의학적 표현이다. 치료의 핵심은 통증 부위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침 치료는 경혈을 통해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을 활용한 자율신경 치료는 성상신경절과 미주신경 등에 작용하여 교감신경의 과흥분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하다. 몸의 전신적인 자율신경만 조절 가능한 것이 아니라 비염이나 턱관절 두통 요통 등 몸의 각 부분의 문제와 통증도 그 부위의 자율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한약 역시 중요한 치료축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간기울결에는 소시호탕에 치자를, 울화가 열로 변한 경우 황련이 들어가는 처방을, 불면과 심계에는 산조인탕이나 천왕보심단을, 담음과 어혈이 얽힌 통증에는 반하백출천마탕, 계지복령환 등을 체질과 증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진통이 아닌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방식의 접근이다. 우리는 종종 통증을 참고 넘긴다. 그러나 지속적인 통증은 교감신경의 과흥분이라는 경고일 수 있다. 통증을 단순히 불편한 증상이 아니라 몸의 균형이 깨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신체와 정신, 구조와 에너지, 자율신경까지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교감신경의 비명을 듣고 제대로 응답할 때 통증은 비로소 가라앉는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도움을 받는 것이 몸을 살리는 길이다. 오늘 당신의 통증도 자율신경의 언어일지 모른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02

영묘사를 찾다

영묘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처음 신라에 불법을 전하겠다는 아도에게 그의 어머니 고도령이 일러 준 칠처가람 중의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절이었다. “신라에는 부처 이전에 이미 일곱 군데의 절터가 있다.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사천왕사, 담엄사이며, 불법의 물결이 길이 흐를 곳이다. 네가 그곳으로 가서 불교를 전파하고 선양하면 석존의 제사가 동방으로 향해올 것이다.” 영묘사는 선덕여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선덕여왕이 창건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첫째는 ‘선덕왕지기삼사’ 에피소드다. 어느 겨울날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가 많이 모여 삼사일을 울었다. 겨울에 개구리가 우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듣자마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각간 알천과 필탄은 정병 2천을 뽑아 속히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으로 가라. 그곳에 적병이 숨어있을 것이다.” 여왕의 지시로 여근곡에 숨어있던 백제 군사 5백 명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의 하나로 거론되는 일화다. 또 하나는 ‘지귀설화’다. 선덕여왕은 영묘사(靈廟寺)에 자주 행차하였다. 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윗대 조령과 당시 삼국전쟁의 영령들을 모신 절이기 때문이었다. 혜공이라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스님이 영묘사의 화재를 미리 알고 새끼줄을 가져와 금당과 좌우 경루, 남문의 회랑에 둘러 묶고 3일 후에 풀라고 당부한다. 3일 뒤 선덕여왕이 행차하시고, 지귀의 가슴에서 불이 나서 그 탑을 태웠으나 오직 줄을 묶은 곳만은 면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전승되었고, 고려시대 ‘수이전’, 조선의 ‘대동운부군옥’에 심화요탑이라는 제목의 설화로 전하고 있다. 지귀는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를 짝사랑을 하였고 상사병으로 몸이 점점 여위어 갔다. 그러한 지귀의 소문은 널리 퍼졌고 소문을 듣고 지귀를 불렀다. 어리석은 지귀는 탑 밑에서 여왕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여왕이 자신의 팔찌를 빼어 지귀의 가슴에 놓고 돌아가셨다. 잠에서 깬 지귀는 그 팔찌를 보고는 여왕이 다녀갔음을 알았다. 이에 사모의 정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불귀신으로 변해 버렸다. 영묘사는 신라의 위대한 조각가인 양지가 장육존상을 만들었으며, 이때 성안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날라 도왔다고 했으며 사람들은 신라 향가 ‘풍요’를 불렀다고 했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오다.” 그러나 현재 영묘사는 경주의 지도에 없다. 칠처가람 중 절이나 절터로라도 남아있는 다른 절과는 달리 영묘사는 흥륜사에 가야만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몇 년전 흥륜사 주변에서 영묘사(靈廟寺)라고 적힌 기와 조각도 나왔고, 여기서 발굴된 ‘신라인의 미소’라 불리는 기와에도 명문이 있다. 현재 흥륜사는 사적 ‘경주 흥륜사지’로 지정돼 있으나 학계와 지역에서는 흥륜사지가 사실은 ‘영묘사지’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며칠전 선덕여왕경모회에서 찾은 흥륜사 경내엔 마침 절터 발굴 중이었다. 영묘사가 제 자리에서 제 이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02

APEC 성공과 함께 포스트 APEC도 대비하자

세계 21개국 정상과 각료, 언론인 등 2만여 명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주 행사가 불과 넉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애초부터 부산 APEC보다 준비기간이 짧았음에도 계엄과 대선 등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로 APEC 준비에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번 APEC은 새 정부 들어 맞이하는 가장 큰 국제행사이자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계에 과시하는 행사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1일 경주 APEC 현장을 찾아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외교행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품격과 지방의 가능성을 보여줄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을 반드시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개최지 경주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말이다. 인천과 제주를 물리치고 기초자치단체로서 APEC을 유치한 경주가 글로벌 국제행사 유치를 통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방도시로 이름을 날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포스트 APEC 경주는 지역으로서는 본행사 못지 않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본행사는 단 한번의 행사로 끝나지만 포스트 APEC은 경주를 세계인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기고, 이를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또 다른 준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APEC이 끝난 이후 개최도시의 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적 구상과 투자가 지금 준비돼야 한다. 경북도가 21대 대선 과정에 각 정당과 후보에게 10대 핵심 공약으로 포스트 APEC 사업을 건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신병 치료 중이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그저께 한 달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APEC을 역대급으로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APEC 기념공원, 문화전당 등 관련 인프라 확충과 신라역사문화대공원 등 포스트 APEC에 대비한 준비도 착실히 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이 문제다. 현재 APEC 준비 전체 예산 4000여 억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는 경주시로서는 포스트 APEC의 중요성을 알지만 재정 여건상 더 이상 투자 여력이 없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국가행사 품격에 걸맞는 준비를 위해선 정부의 전폭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APEC 행사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행사의 품격과 포스트 APEC에 대비한 정부의 지원이 행사 성공의 관건이다.

2025-07-02

7월 3일, ‘록의 정신’이 죽은 날

50대 이상 한국의 중년, 그 가운데 록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짐 모리슨(Jim Morrison·1943~1971)은 인간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상징 기호’로 다가온다. 54년 전 오늘은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 날이다. 27년7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갔지만, 그가 전 세계 청년문화에 미친 영향은 ‘노래로 미국을 점령했다’고 이야기되는 영국밴드 ‘비틀즈’ 이상이었다.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이자, 시인,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그는 경직된 기독교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미국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밴드를 결성해 술과 마약에 취한 채 생의 허무함을 노래할 때, 또래 청년 수십만 명이 ‘일그러진 전쟁’이라 불러 마땅한 베트남전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본 그는 분노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초현실주의 문학에 심취했던 짐 모리슨의 초기 노랫말은 염세적이고 난해하다. 그러나, 국익이란 허울뿐인 미명 아래 미국과 베트남 젊은 군인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비극과 참상을 인식한 이후엔 그의 가사가 바뀐다. ‘반전(反戰)’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인본주의’의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한 것. 이는 잘못된 미국의 정책에 저항했다는 의미다. “하늘은 재주가 승한 자를 부러워해 그를 일찍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동양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통했나보다. 청년들 사이에서 드높았던 영향력을 이용해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핵심으로 우뚝 설 수도 있었던 짐 모리슨은 베트남전이 끝나기 4년 전 숨을 거둔다. 록의 기본 정신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 아닐지. 그러니, 1971년 7월 3일은 록의 정신이 사라진 날로 기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2

산불피해 주민들은 왜 국회까지 가야 했을까

지난 3월 발생한 의성·안동·청송·영덕·영양 산불 피해 주민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일 서울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마가 집과 일터를 삼켜 우리는 길거리로 나앉았다”며 조속한 산불재난특별법 제정과 국회 차원의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이 연대집회(900여 명 참석)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22일 의성에서 시작돼 경북 북동부 지역으로 번진 초대형 산불은 피해 면적만 10만4000ha에 달한다. 축구장 6만여 개를 합친 면적이다. 이 산불로 인한 사망자만 31명에 이른다. 산림청 통계상 산불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1989년(26명)을 넘어선 역대 최다 인명 피해다. 불타버린 집과 생활터전이 복구될 때까지는 수십 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이재민들의 고통이 크다. 이재민 숫자도 2만여 명에 달한다.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위는 지난달 10일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경북 산불 피해 지원 특별법안 5건을 상정했으며, 오늘(3일) 1차 법안소위를 열어 법안을 심사한다. 법안에는 전통 사찰, 특용작물 재배 농가 등 기존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피해 대상을 포함해 실제 손실 비용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지원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산불 피해에 대한 복구가 늦어지면서 현재 이재민들의 고통은 심각한 상태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피해주민들은 “살고 있던 주택이 불에 타 5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봤지만, 보상은 210만원뿐이다”, “임시주택이 컨테이너 박스라서 무덥다. 이마저도 2년이 지나면 강제로 이주해야 해 암담하다”, “타버린 농기계 보상절차가 너무 까다롭다. 농사는 완전히 포기 상태다” 등등의 불만을 토로했다. 피해보상 내용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과 불신도 크다고 한다. 보상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는 산불피해지원 특별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피해보상뿐 아니라 이재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5-07-02

목적지인가 연결점인가

최근 포항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온 영일만대교의 예산이 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되었다. 지역 여론은 크게 실망했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낙후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지역균형발전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이를 다른 각도에서 조망해본다. 이번 삭감은 포항의 도시 정체성을 다시 묻고 지역의 미래 전략을 재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전과 대구. 두 도시는 한때 지역의 중심으로서 독자적 정체성과 상징성을 가졌었다. 대전은 충청권의 교육과 행정중심지로, 대구는 경북권의 산업과 정치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이어 KTX를 비롯한 전국 고속교통망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더이상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가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과 물류가 스치듯 지나가지만 머무르지 않는 도시. 고속도로와 철도라는 선형적 교통망 속에서 이들 도시는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연결하는 지점, 곧 중간 기착지로 재편되었다. 이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도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고유한 색깔도 사라져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일만대교가 실제로 건설되어 동해축을 따라 부산에서 강릉, 서울까지 잇는 새로운 초고속 도로망이 완성될 경우, 포항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교통망이 ‘연결되는 지점’으로 전락한다. 물류와 관광 측면에서 일정 부분 효과는 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 머물게 될 경우, 대전과 대구가 겪는 위기와 정체성의 혼란은 포항에도 예외일 수 없다. 대안은 무엇인가? 포항은 수년 전에 ‘북극항로 거점항만’이라는 담대한 비전을 내걸었다. 기후변화로 북극항로가 현실화되는 시대, 동북아 물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포항은 이 흐름 속에서 종점이 되는 지리적, 전략적 조건을 갖춘 도시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해상물류의 남단 도달지로서 영일만은 항구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최종 종착점이 될 수도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설계하고 해운업의 공공플랫폼인 수산·해양 관련 R&D 기관과 업체를 유치하며, 항만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는 물리적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는 사람과 기억, 시간과 의미가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도시는 ‘어디로부터 오고 어디로 가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린다. 종점이자 중심이던 도시들이 교통망 발달 이후 중심을 잃고 스쳐가는 공간이 되어버렸듯, 포항도 ‘연결’만을 추구하다 도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포항이 가진 ‘종점성’을 더욱 뚜렷하게 살리는 전략을 선택하여 미래도시로서 경쟁력을 쌓아가야 한다. 물론 영일만대교는 포항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자 지역의 물류와 관광인프라에 있어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공을 들여왔으므로 포기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우선순위다. 영일만대교를 집중하여 추진하되 포항이 가진 종점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북극항로 거점항만’ 전략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선택은 도시의 손에 달려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02

밥상의 온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기대고 때로는 등을 돌리며 우리는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차가운 물처럼 등을 타고 흐르고, 어떤 인연은 마주 앉은 밥상처럼 온기를 나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많은 사람과 얽혔다. 시댁 식구, 남편,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 그 많은 얽힘 속에서도 나를 위한 밥상 하나는 늘 부재였다. 결혼 후 생일이 되면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에 초를 붙여 불었던 적은 있으나 생일상을 받은 적은 없다. 젊은 날 고생한 엄마는 치매 초기로 이제 막내딸 생일조차 가물가물 기억해 내지 못했고, 무심한 시어머니는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편은 늘 맛있는 걸 사 준다고 밖에서 먹자고 했고 나도 대개 그러자고 했다. 나도 바빴으니까.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도 잘못한 일도 없지만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은 늘 내 마음속에 허기를 느끼게 했다. 며칠 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가까이 지내던 언니가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생일도 아닌데 밥상을 차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언니는 “그건 네가 받는 밥상이 아니잖아”라며 웃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들어선 그날, 나는 밥상이라는 것이 품을 들여 차려지는 관계의 온기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식탁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나를 위한 생일상 같았다. 갈비찜이 메인 요리로 놓였고 잡채, 김치, 나물 몇 가지 고추와 장아찌, 그리고 김이 바삭하게 얹힌 밥 한 공기. 하나하나 정성이 담겨 있었다. “너 요즘 스트레스 많잖아.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며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 무심함 속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밥은 배만 채우는 도구가 아니었다. 마음의 허기, 관계 속의 고독, 그리고 나조차 외면하던 나를 위로하던 한 끼였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에 내 안의 오래도록 말라 있던 감정의 샘이 스르르 풀렸다. 말없이 전해진 온기가 말로는 닿지 못했던 속마음을 어루만졌다. 온기는 마음 깊은 곳의 메마름을 적시며 오래된 틈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생일은 달력에 적히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은 예정 없이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꼭 기념일이나 큰 사건이 있어야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날의 뜻밖의 배려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무 약속도 없던 하루였기에 그 밥상은 더 특별했고, 아무 말도 없이 건넨 마음이었기에 더 진하게 스며들었다.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느꼈다.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언니는 손맛으로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따뜻한 마음을 씹고 또 삼켰다. 한 그릇의 국, 한 젓가락의 나물이 단지 음식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로 다가왔다. 진심은 늘 크고 분명한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틈새에 스며든다. 그날의 밥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장을 품고 있었다. ‘네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의 문장들이 반찬 사이사이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용히 받아먹으며 일상을 다시 불러올 감각을 되찾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마음을 데워주는 밥상은 몇번이나 있었던가. 인간관계는 결국 밥상처럼 차려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국 하나 없이도 나를 배부르게 하고, 누군가는 온갖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내 마음을 비워놓는다. 언니의 밥상은 내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말없이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언어 없는 시, 몸으로 읽는 위로였다. 온기를 나누는 밥상은 사람을 살린다. 오늘도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그 밥에 마음을 얹는다. 나도 누군가의 밥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온기 있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고 싶다. /작가

2025-07-01

세르비아, 상처만 남은 도시들 ② 옛 헝가리 땅 노비사드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베오그라드 북부 노비사드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도나우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이자, 철도망과 도나우강 운하를 통하여 중부 유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그런 만큼 파괴를 부르는 전쟁의 역사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그 옛날 중부유럽을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땅이라는 뜻이다. 요새에서 시작되어 확장을 거듭한 도시라 이민족 방어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페트로바라딘 성채가 견고하게 남아 있다. 도나우강을 1차 자연방어막으로 두고 그 뒤에 튼튼한 성벽을 높게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곳 노비사드의 역사적 특징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헝가리 땅이라는 데 있다. 나치 침략으로 어쩔 수 없이 주축국에 가담했고, 패전을 당하면서 헝가리의 국토를 좁게 만든 원인이었다. 현재도 노비사드에는 헝가리 사람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오스만제국이 발칸의 맹주로 떠오르자, 베오그라드 주민이 오스만을 피해 이곳 노비사드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요새취락이 형성되었다. 그래선지 노비사드는 세르비아말로 ‘새로운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스만트루크 술탄 쉴레이만 1세가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뒤 90km 떨어진 노비사드를 그냥 둘리 없었다. 놀랍게도 쉴레이만 대제가 가톨릭 세계 본거지 오스트리아 빈을 침략할 때 소수 병력을 첨병으로 보내 페트로바라딘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성벽의 견고함이나, 지형지물을 보았을 때 그리 쉽게 공략당할 성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그랬다고 하면 그런 거다. 18세기가 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 지배에 들어가면서 절정기를 맞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곳으로 보이보디나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도시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그런 이유로 노비사드에는 정교 사원을 비롯해 유대교 사원, 가톨릭 성당 등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17개의 사원이 사이좋게 서로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일명 세르비아의 아테네로 알려진 노비사드 중심가이자 번화한 광장 ‘슬로보데(Slobode·자유) 거리’는 역사를 반대로 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저물기도 전에 남녀노소 누구랄 것도 없이 광장에 모여서 즐긴다. 사람들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웃음꽃이 만개했다. 레스토랑에 북적임도 한 몫 더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와 춤, 축제랄 것도 없는 이들 일상이다. 생소하게 생긴 길손은 귀동냥으로 흥을 얻어 어깨춤이 들썩였다. 그러던 중 파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눈의 중년 여성과 마주쳤다. 이방인을 향한 더없는 미소에 낯선 인간의 향기가 스며든다. 광장 맞은편 네오르네상스식 시청사의 웅장한 건물이 무척 매혹적이다. 중심부에 지상 60m 높이, 뿔 같은 탑이 불쑥 솟았는데, 도시 경관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개방 시간이 지난 탓에 이방인은 은혜를 입지 못했다. 이때 구름에 잔뜩 가렸던 하늘이 열리고 뾰족한 첨탑의 ‘성 마리성당’이 명암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반겼다. 하늘이 하나를 닫으며 하나를 열어 보인 게다. 파란 하늘과 성당 건물의 네거티브한 선이 매혹적이다. 구름이 심술을 부리기 전에 앵글에 담았다. 단 한 컷! 구름이 하늘을 급하게 닫는다. 상념을 깨듯 일렬횡대로 행진하듯 걸어오는 남녀 아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하나 같이 손과 입에는 담배를 물거나 들었다. 그 중 한 명은 채 여섯 살도 안 돼 보였다. 기이한 장면에 동방의 이방인은 이 땅에 난립한 신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어린 시절이 떠올라 그만두어야 했다. 즈마이 요비아 거리 역시 매일 축제날이다. 끝을 모르는 골목, 즐비하게 들어선 레스토랑의 이국적인 정취는 이방인을 더 외롭게 만든다. 요반 요바노비치 드래곤(1833~1904)의 동상이 이방인의 발길을 잡는다. 의사이자 서정시인인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 거리를 산책하였다. 1984년에 그를 기리고자 그때 모습을 재현된 기념비다. 이내 도나우공원 녹색의 한적한 공간을 지나면 도나우강 너머 페트로바라딘 요새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은빛 물길이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곳이 피의 역사가 자행된 역사의 현장이다. 강변에 서 있는 ‘희생자조각(Raid The Family)’이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월 21일부터 3일간 행해진 헝가리 파시스트들의 만행, 이들은 세르비안, 유대인, 집시 등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살육을 했다. 지구촌 어디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현장, 동상에서 눈을 감으면 더욱 생생하게 잔상처럼 나타나는 상상의 기억에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노비사드 출신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1920~2005)가 조각했다. 밝고 경쾌하기만 한 세련된 도시에 이처럼 아픈 과거가 있다니? 숙연한 마음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인간은 창조보다 폭력에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5-07-01

침묵의 살인자 ‘폭염’… 녹지공간 확장은 선택 아닌 필수

찜통 더위, 살인적인 폭염, 지속적인 열대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듣는 말이다. 매년 7월과 8월의 여름을 대변하는 표현이 이제 6월부터 등장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점점 더 실감한다.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극한 더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유럽도 미국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가 지난 30일자로 보도한 유럽 국가들의 더위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극심한 더위가 유럽 남부를 휩쓸고 있으며, 스페인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46도에 달했고, 프랑스 본토 거의 전역이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극심한 더위가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를 강타했으며, 남부 유럽은 6월에 여름 첫 번째 극심한 더위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염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진단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인 구테흐스는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위험해지고 있다”며 “어떤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고 정의했다. 기후학자는 폭염의 원인을 고기압과 뜨거운 공기가 모여 형성되는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여름 기온 상승은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유럽은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섭씨 2도 이상 더 높은 온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열돔이 발생하면 더욱 심각한 폭염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의사들은 폭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것을 권장하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과 노약자들은 특별히 건강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위협적인 언어로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로 규정하기도 한다. 폭염으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사고 발생률이 높아지고 때로는 대형 산불까지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터키에서는 산불로 인해 5만 명이 넘는 주민이 대피했으며, 프랑스 남서부에서는 여름 첫 산불이 발생해 400ha가 불에 탔고, 100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매년 전세계에서 약 50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더위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기 보다 대체로 간접적인 요인으로 여겨지지만 심장, 폐, 신장 질환 등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더위에 취약해 폭염이 사망을 촉진할 수 있다. 여름철 재난이다. 폭염 재난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의사의 권고에 따라 낮 중 가장 더운 시간에는 외출을 피하고, 집이나 근처의 시원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좋다. 조용한 독서 공간인 공공도서관과 도시 숲을 찾는 곳도 좋은 선택이다. 도시의 녹지 공간이 많을수록 도시의 기온을 낮출 수 있다. 녹지는 기분을 개선하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며, 심지어 질병 회복을 가속화한다는 연구도 있다. 녹지 공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를 줄이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보고 듣고만 있을 수 없다. 도시의 녹지공간을 더욱 확장하고 예산을 증대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 방법이다. 도지사, 시장, 군수, 그리고 기초 및 광역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이트를 방문해 글을 남기자. ‘침묵의 살인자를 방치하지 말자! 이제 기후위기의 방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2025-07-01

빅데이터, 예측 경영 시대가 온다

인터넷 이후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빅데이터(Big Data)이다. 미래는 빅데이터 활용 능력에 달려있다. 세상에 데이터는 많아졌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도 많아졌다. 빅데이터 기반 예측 경영(Predictive Management using Big Data)은 기업이 내부 외부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경영 방식이다. 단순한 과거 분석을 넘어,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를 예측해 경영 전략과 실행을 조율한다. 고등학생인 딸이 출산용품 광고 메일을 받자 아버지는 매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지점장도 마케팅 팀의 실수라 생각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동안 딸의 임신 사실을 숨겨온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부모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광고 메일을 보낼 수 있었는가 놀랄 일이다. 월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수많은 고객의 구매 이력을 분석해 임산부가 보이는 특이 패턴을 찾아내는 예측 모형을 가동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예측 모형에 의해 빚어진 실제 사례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 단면이다. 이미 세계의 많은 선진기업들은 미래 경영의 해법으로서 빅데이터 분석과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하고 있다. 빅데이터 예측 경영의 절차는 첫째, 전략 정의다. 제품 수요 예측을 통한 생산계획, 불량 예측과 생산량 설정 등 예측하고 싶은 핵심 KPI(핵심성과지표) 정의를 정하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 수립, 연결이다. ERP, MES, CRM, IoT 등 다양한 시스템의 통합 관리를 통한 이상치 제거, 결측치 보정, 정규화 등 원하는 데이터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셋째, 분석 모델 설계이다. 머신러닝, 시계열 모델, 통계 모델 등 예측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것이다. 넷째, 예측 실행 및 시각화이다. 예측 결과를 대시보드화하여 직관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다섯째, 지속적 개선이다. 예측 정확도 모니터링과 피드백으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예측 경영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다. 예측 경영의 기술적 접근 방법으로는 계절성 추세를 반영한 수요, 매출 예측의 시계열 분석(ARIMA), 품질, 이탈, 고장 가능성 등 다중 분류 방법의 머신러닝, 설비 센서 분석 등 복잡한 시계열 예측의 딥러닝이 있다. 고객 유형 분류, 제품 사용 패턴 그룹화 등 클러스터링 및 분할, 강화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산라인 조건 자동 최적화 제안 등이 있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P사는 설비 예지보전 및 품질 예측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 생산 조건과 불량 패턴을 찾아 생산 제품 품질을 예측하고 대응한다. 설비 고장 가능성을 사전 감지 등으로 품질 민감 공정의 불량률 30% 이상 감소, 설비 가동률 향상 등이 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오랜 시간 MES, ERP, IoT 센서, CRM 데이터 등 시스템 생산을 구현해왔다. 이런 종합 데이터를 활용하여 제철소 제선, 제강, 압연 등 메인 공정의 연결 및 개별 공장의 생산 최적화를 구현하고, 생산 경영 효율화, 예측 경영을 실현하여 미래 경쟁력을 확보 해나가고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01

새로운 문화 아이콘 ‘詩뜨락’

때 이른 폭염의 기세가 만만찮다. 초복은 고사하고 소서마저 코앞인데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가 연일 대지를 후끈 달구고 있다. 장마가 주춤하는 틈새를 타고 잽싸게 파고드는 더위에 벌써부터 열대야가 나타나고 매미소리가 들리면서 올 여름의 폭서를 예고하는 듯하다. 암록(暗綠) 속에 붉은 등을 밝히듯 능소화가 처연하게 피어나는 어느 뜨락에서는 때 이른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진지함의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이 늘어지고 감나무와 모과나무 잎새가 반겨 맞는 뒤뜰에서는 악기의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시낭송의 목소리가 다소곳이 피어나며 간간이 웃음과 환호, 박수 소리가 터지면서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도심 속의 작은 쉼터 같은 그곳에서는 사람과 문학이 만나고, 예술과 정담이 이어지며 어울리고 교감하는 낭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른바 ‘詩뜨락(시가 흐르는 뜨락)’으로 일컬어지는 시낭송 문화마당이 누리달 끝자락에 소담스레 펼쳐진 것이다.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향의 문인을 작은 뜨락으로 초대해 시낭송회를 열고, 시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의 삶을 나누며 독자와 소통하는 시낭송 북콘서트이다. 즉, 활자로 된 시를 목소리와 음향을 곁들인 소리예술로 풀어내면서 시에 담긴 은유와 감동을 더해주고, 초대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문학과 예술적의 삶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시낭송 문화를 일궈가는 작은 발돋움이라 할 수 있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시가 흐르는 뜨락’ 중 그러한 ‘시뜨락’ 북콘서트가 벌써 열번째를 맞아 다양한 레퍼토리로 풍성하게 열렸다. 특히 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 김소월의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재조명하고 시낭송·시극·시노래·우정 시낭송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특히 어린이 출연진과 기타·아코디언 반주를 곁들인 소월 시노래를 관객들과 함께 부르며 교감하고, 100년 전의 ‘진달래꽃’ 시를 초판 그대로 충청도·전라도·함경도·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낭송하며 시극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때는 청중의 탄성과 환호가 연발했다. 그리고 시낭송 출연진들이 일일이 붓으로 쓴 시화작품을 뒤뜰의 소나무~감나무 사이의 줄에 매달아 바람 결에 살랑거리고, 또한 소월 시와 초대시인의 시를 붓글씨로 활달하게 시서(詩書)작품을 길거리에 미니 전시해 이색적인 시회(詩會)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시를 기적처럼 꽃 피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시뜨락에 그득해지며 청중들에게 문학과 음악, 예술이 어우러지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었다고나 할까? 문학과 문화는 이렇게 독자와 청중이 교감하고 호흡하며 다양한 테마로 새로운 시도를 보일 때, 지속가능한 힘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책으로 엮은 시를 복합적인 콘텐츠로 살아 숨쉬게 하는 ‘詩뜨락 북콘서트’가 지역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길 기원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01

자율주행 자동차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교통수단의 발달은 인류 생활의 편의를 높이고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인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공간을 누리게 됨으로써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동물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에서부터 배, 기차, 자동차.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은 우주 공간까지 넘나들게 했다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로 신차 배송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다. 텍사스 공장을 출발해 고속도로를 거쳐 30분 거리의 차주에게 차량을 배송했다고 한다. 운전자 없이 고속도로에서 최고 116km 속도를 내고, 교통신호등을 완벽히 소화하며 차주 집 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차량 내부와 원격조작 모두 일절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행됐다”며 이런 경우는 업계 최초라 자랑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1970년대 후반부터 초보 수준의 연구가 진행됐으나 아직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각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운행 성공은 자율주행차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자율주행차가 본격 보급되면 운전자 부주의에 의해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확 줄어든다. 현재 교통사고의 95%가 운전자 부주의에 의한 사고다. 또 교통 정체가 감소하고 교통경찰과 자동차 보험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교통혁명은 늘 기술을 넘어 인류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안겨주었다 자율주행차 시대 역시 인류의 생활방식에 또 다른 변화를 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