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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 없던 일 되나

정은경 복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22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의료 서비스의 지역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정부 대책을 발표했다. 그 방안으로 내놓은 대책은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료 사관학교 설립, 국립대 의대 신설 등이다. 지역의사제는 기존의 의대 정원 중 일정 비율을 지역에 근무하도록 별도 선발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도 도입을 위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는 것으로 정 장관은 밝혔다. 또 공공의료사관학교는 공공보건의료기관 등에서 일할 의사를 양성하는 곳으로 공공의대와 같은 개념이라고 밝혔다. 국립대 의대 신설에 대해 정 장관은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료사관학교 설립과는 별도로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밝힌 내용의 대부분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근거한 것들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료사관학교 설립과 인천과 전북에 공공의대 설립, 전남에 국립의대, 경북에 국립의대 설립을 밝힌 바 있다. 포항시가 10년 가까이 지역 현안으로 추진했던 포스텍 내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에 관한 언급은 이 자리에서 없었다.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포항의 강점인 바이오산업 육성과 열악한 지방 의료 여건 개선을 목적으로 포항시, 경북도, 포스텍이 2018년부터 추진해온 지역 역점사업의 하나다. 현재는 포항시의 최대 현안으로 남아 있다. 2023년 말, 포항시는 연구중심 의대설립을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까지 벌여 20만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 이강덕 포항시장은 “시민의 간절한 의지를 총 집결해 균형발전과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연구중심 의대설립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장관의 공공의료 강화 방안에 빠졌다고 사업 추진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며 포항시가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업이면 연구중심 의대설립에 대한 포항시의 추진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정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업의 추진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2025-09-24

나경원과 추미애의 전쟁

국민의힘이 나경원 의원을 국회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간사로 보낼 때부터 불화는 이미 예고됐다. 왜냐? 법사위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위원장으로 앉아있었기 때문. 둘은 양당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다선의 여성 의원이다.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2002년 당시 이회창 대통령후보 여성특별보좌관으로 정치계에 들어와 원내대표까지 지낸 5선의 중진급 국회의원. 추미애 의원 역시 판사로 생활하다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6선인 추미애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최다선 국회의원이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세칭 ‘추-나 대전(추미애와 나경원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추 위원장이 주도하는 법사위에서 나 의원의 간사 선임은 불발됐고, 그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막말로 국회는 또 한 번 눈총을 받았다. 추 위원장과 나 의원의 불화는 이후로도 지속됐다. 지난 22일에도 위태위태하던 법사위에서 다시 한 번 폭탄이 터졌다. 국민의힘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막는 추 위원장에게 나 의원이 “야당 의원 입틀막 하는 게 국회인가”라고 쏘아붙이자, 추 위원장이 “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느냐. 이렇게 하는 게 윤석열 오빠에게 도움이 되느냐”라고 되받은 것. 그날 ‘추-나 대전’ 이후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은 추 위원장의 발언이 여성 모욕이라며 반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럼 윤석열이 오빠지, 언니냐?”라며 추 위원장을 감쌌고. “법사위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현장이 돼버렸다”며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추 위원장과 나 의원, 여야 법사위원들은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24

‘법사위 난장판’ 매일 봐야하는 국민은 괴롭다

국회 법사위가 연일 난장판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6선)이 위원장을 맡은 후 국민의힘 간사(나경원 의원·5선) 선임에 제동을 걸면서 시작된 이른바 ‘추·나 대전’이 트리거가 됐다. 그동안 상임위 간사 선임은 통상 각 당의 추천을 존중해 별다른 이의 없이 호선으로 처리해왔다. 그러나 추 위원장은 이번에 간사선임 안건을 상임위 전체표결에 부쳐 무산시켜 버렸다. 국회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법사위는 지난 22일에는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실시 계획서’와 관련 증인·참고인 출석 안건을 기습상정해 의결했다. 이날은 ‘검찰개혁 입법 청문회’ 자리였는데, 추 위원장이 예고도 없이 조 대법원장 청문회 계획서를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국민의힘이 반발하며 퇴장하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도 사전에 몰랐다고 한다. 추 위원장은 이날 오전에는 ‘정치 공작 가짜뉴스 공장 민주당’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또 고성과 막말이 오갔고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민주당 내에선 내년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도는 추 위원장이 강성 당원들의 여론을 의식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 모양이다. 문제는 ‘법안통과의 최종관문’인 법사위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까지 늦어지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여야가 공통발의한 ‘K스틸법’이다. 이 법안은 여야가 살얼음판 특검정국 속에서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우리 눈앞에 닥친 민생경제와 외교안보 위기를 고려하면 지금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타개책을 마련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민주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야당의 목소리를 아예 뭉개 버리면, 민심을 대변하는 입법부 기능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지적했듯이, 이참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집권당이 독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별로 여야가 교체하는 방식으로 운영해볼 필요도 있다.

2025-09-24

트럼프의 압박과 대한민국의 선택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은 언제나 강압과 거래의 언어로 특징지어져 왔다. 미국산업을 살린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동맹국들에게 일방적인 금전적 요구를 던지며 ‘수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협상방식을 고수한다. 미국이 한국에게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며 압박한다는 보도는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수락했으나, 한국은 일단 ’협상의 가치조차 없다‘며 거부했다. 그런 결과, 굵직한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건설을 중단하고 투자계획을 철회했으며 기술자와 전문인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문제는 트럼프식 통상정책이 오히려 미국 산업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량실업의 지속과 인력공백의 연장, 생산기반의 붕괴 등 미국 산업계는 다면적인 충격을 만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철수는 첨단기술과 숙련된 노동력이 빠져나가는 구조적 공백을 의미한다. 한국이 스스로 과대평가하거나 섣부른 승리감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 자본과 기술을 국경을 넘어 이동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신뢰, 노동환경 협조와 국제적 연대 없이는 ‘기술강국’의 지위도 한순간에 취약해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를 드러낸다. 첫째,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초강대국이라도 동맹을 협력 파트너가 아닌 ‘강탈 대상’으로 대하면 서로 간에 신뢰를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 기업들이 보여준 ‘NO’는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질서가 일방적 압력에 쉽게 흔들리지 않음을 상징한다. 이에 더해 유엔을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한국은 일방적 압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며 동맹도 대등한 파트너십 위에 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국제무대에서의 이러한 태도는 기업의 결정과 맞물려, 한국이 더 이상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제적으로 드러내며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미국 스스로 ‘신뢰 자산’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다. 초강대국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국제 사회가 미국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신뢰, 그 무형자산이야말로 패권의 핵심이었다. 동맹을 압박하고 거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방식이 이어진다면, 미국의 리더십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나아가 세계질서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상황의 의미는 승리가 아니라 강압적 산업정책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자존심에 있다. 새로운 국제 질서를 향해 어떤 가치와 원칙을 세워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트럼프의 무리한 일방적 요구를 거부하는 장면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겠지만, 앞으로 대한민국과 세계가 함께 만들어 갈 신뢰와 연대의 체계야말로 국제 사회가 주목해야 할 진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유엔 무대에서 드러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태도 또한 그 출발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나라의 이익을 위한 국가의 결정에는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배어있어야 한다. 느닷없는 경제위기를 불러올지도 모를 미국의 부당한 압박에는 지혜롭게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9-24

농심천심(農心天心)의 황금 혼문이 펼쳐지기를 바라며

최근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 백범 김구 선생이 떠오른다.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 ‘높은 문화의 힘’을 갈망했었다. 그런 김구 선생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지켜본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높은 경제적·문화적 위상은 일제강점기를 힘겹게 버텨내고 해방 이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오로지 국가 공동체의 경제발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희생 덕분일 것이다. 또한 국가 산업의 측면에서 짧은 기간 눈부신 성장의 바탕에는 저렴한 가치로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였던 대한민국 농업·농촌의 희생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농협은 지난 8월 창립 64주년을 맞아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의 가치를 재조명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농민이 존경받으며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 구현을 위해 ‘농민의 마음이 하늘의 뜻’이라는 농심천심(農心天心)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경북 시골에서 태어나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에 입사하여 어느덧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다. 그동안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내 자신은 과연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얼마나 이웃들과 공감하며 살아왔었는지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농업은 인간 활동과 자연생태계 기능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생산물 수확과 더불어 그 외부효과로 경관 보전, 사회·문화 보존, 환경개선 등 다원적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 지자체, 많은 농업 유관기관과 단체들이 국가 생명산업인 농업을 지켜나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4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미래전략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도시민들의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과거 10년간 13.8% 하락하였으며,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인지도 조사에서는 “잘 모른다”라는 답변이 응답자의 66.7%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니 농협에 근무하는 직원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계속되는 가뭄, 폭설과 폭우, 저온 현상 등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보호무역주의, 국제분쟁은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우리의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우리의 생존과 연결되기에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한 관심과 지원은 다른 어느 산업 분야 보다 우선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농심천심’의 근본은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24절기를 알아야 하고,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농업은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탄생시키고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하며,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 앞으로 전 국민이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알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 구현을 위해 ‘농심천심’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드리며, 오늘도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200만 농민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전경수 농협중앙회 대구본부장

2025-09-24

파크시티와 로버트 레드포드

지연씨와 두현씨는 내가 미국 유타주 프로보에 있을 때 가장 친했던 부부였다. 자주 안부를 묻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부부였다. 어느날 지연씨가 한 시간만 가면 예쁜 도시가 있는데 놀러 가자고 했다. 무조건 좋다며 채비없이 나섰다. 프로보는 높은 워새치산맥이 도시의 북쪽에 버티는 도시였는데, 그 산맥을 가로질러 갔다. 가을날의 빛 좋은 산 풍경도 예뻤고, 가는 길 도로에서 마주치는 험한 산줄기, 깊은 계곡, 그 어디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는 참 재미있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내내 감탄하면서 도착한 파크시티는 예상 밖의 별천지였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상점과 집들이 중심도로를 따라 즐비해 있었다. 집 모양은 거의 비슷한데 색깔만 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형색색의 집들은 모두 리조트였다. 곧 겨울이 닥치면 이 도시는 스키어들로 북적댈 거라고 했다. 아직 겨울이 아닌 평일 도시의 오후는 한산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중심가를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도시 구경을 했다. 대부분 기념품 상점이었고, 곳곳에 동상이 있었다. 벤치 옆에 곰이 있고, 조금 더 가면 기념품 가게 옆에 광부의 동상, 또 조금 더 오르면 인디언 추장의 동상이 무심하게 있었다. 박물관이라 적혀 있는 곳을 들어갔다. 원래 이곳이 원주민이 있던 곳이었고, 개척 시대에 은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스키 경기가 여기에서 열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과연 가게에서 나와 눈을 위로 둘러보니 도시를 둘러싼 산에는 온통 스키슬로프가 마치 혈관 같이 드러나 있었고 도시 위로 스키리프트가 전선처럼 빼곡하였다. 지연씨가 더 예쁜 데가 있다며 안내한 곳은 한 리조트였다. 자연친화적인 외관은 전혀 리조트 같지 않았다. 실내를 구경하면서 복도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선댄스 영화제라면 그 유명한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창립한 독립영화제인데? 그때부터 나는 지연씨에게 영화배우인 그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실로 지연씨 부부는 탈북해서 미국에 정착하게 된 케이스였기에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었다. 내가 그 배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의 영화 중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몇 번이나 봤는지,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은 매년 학생들에게 영화감상을 시켰다는 둥, 그가 감독으로도 유명해서,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카데미상도 받았다는 얘기를 쉴 새없이 지껄였다. 그 로버트 레드포드의 유서 깊은 장소에 이렇게 와 있다는 나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연씨는 깔깔 웃으면서 나를 숲속의 한 바위 앞으로 안내했다. “그래서 여기 선댄스(SUNDANCE)라고 적혀있군요.” 나는 그 돌 옆에서 감개무량한 포즈를 취했다. 며칠 전 로버트 레드포드가 유타주 선댄스 그의 집에서 영면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8년 전 그날이 문득 생각났다. 그를 추모하고 싶어 넷플릭스로 ‘흐르는 강물처럼’과 ‘밤에 우리 영혼은’을 다시 보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9-24

사탕부케

여자는 족히 칠십은 되어 보였다. 옷은 스키니에 반짝이 스팡클이 달린 치마를 입었고 구두는 현란한 빨강색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며 갈아 신은 실내화 사이로 보이는 발톱에도 빨강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정자”라고 하면 노인이 알 거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이 그녀를 만나자 “오라버니, 오라버니 저예요. 정자” 라고 방문객이 큰소리로 말하자 어르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정자네. 우예 알고 왔노” 거의 이삼 십 분이 지나도록 호호 하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들고 온 사탕부케를 든 노인이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외출을 신청했다. 날이 날인만큼 잘 다녀오시라는 말과 보호자가 어르신을 다시 잘 모시고 오셔야한다는 규칙을 설명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차에 올랐다. 서너 시간 후에 돌아온 노인은 신이 나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옛날 내가 젤 좋아하던 동생인데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좋네. 같이 맛난 밥도 묵고, 묵혀두었던 이야기도 좀 풀어놓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라는 말을 던지고는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방으로 가볍게 걸어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조차 그 동생과 한참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 날 온나, 같이 나가보자 하하하” 노인은 젊은 날 부동산을 통해 큰 부를 이루었다고 했다. 건물과 땅들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요양원을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래도 남은 건물 하나에서 집세가 꼬박 꼬박 나오는 모양이었다. 칠년 전만 해도 그다지 상노인은 아니었기에 무료하고 지겨운 시간을 억지로 보내며 적응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TV를 켜두었다. 스케줄 따라 색종이로 무엇을 만들고 때론 떡을, 피자를 만들어도 그는 함께 하지 않았다. “머스마가 무슨 그런 일을 하냐” 고 도리어 짜증을 냈다. 다행히 하루 두 번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에게 큰 낙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탈출구였으나 젊은 날 핀 담배로 인해 폐의 기능이 이삼십 프로밖에 안 남았다는 닥터의 진단에 삶에 낙이 없다고 낙담했다. 이틀 후 다시 정자씨가 찾아왔다. 옷은 첫날보다 더 대담해져 있었다. 이후 그녀는 자주 요양원을 찾았고 일상이 지겨웠던 노인에게는 봄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겹고 지겨운 나날에 벚꽃엔딩 노래 같은. 주보호자께 외출 소식을 전하자 외출을 자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 옛날부터 아버지랑 한때 어울렸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거의 며칠이 멀다하고 둘은 땅을 본다며 외출했다. 자식들이 부탁한 사정을 이야기하자 버럭 화를 내며 “지그가 뭘 안다꼬. 내가 우째 지내는데 쓸데 없이. 내가 지그 살만큼 해줬으면 됐지” 그의 목소리는 노기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 충족되지 않던 자유가 상황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인지 아프다거나 숨이 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늘 ‘부동산을 보는데 내가 잘 보니까 데리고 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외출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어느 날부터 그들은 자주 만나지 않았다. 오라버니를 수시로 외치던 여인이 약속을 하고는 자꾸 어기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못 만나며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헛헛한 마음을 이해하기도 했지만 전화기를 붙들고 “여보세요, 여보세요”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화를 내며 전화기를 침대에 던지기도 했다. 어느 날 어르신을 뵈며 “건물의 세는 잘 나오고 있지요?”라고 묻자 “그거 정자한테 이전했다” 그 말에 놀라서 “파셨어요?”라고 묻자 “그냥 정자 앞으로 서류를 이전만 하고 당장 돈이 없다고 해서 돈 받을 곳이 있는데 그때 준다고 하더라” 는 믿기지 않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돈을 받고 팔아야지, 이전부터 하면 어떡해요“ 라고 얘기하자 어르신은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믿을 만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뒤돌아서며 보니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내가 미쳤지, 미쳤어” 라고 연신 같은 소리를 혼잣말로 하고 있었다. 걸어둔 사탕부케를 바라보는 노인을 슬쩍 지나치며 보았다. /배문경 수필가

2025-09-24

식어가는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자유의 여신상이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이자 큰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신이 담긴 자유와 기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역사학자 애덤스가 1931년 출간한 ‘미국의 서사시’에서 처음 언급됐다. 그는 “미국인의 꿈은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많은 외국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 곧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민자들이 꿈꾸는 만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불평등, 인종차별, 이민자 소외, 계급의 고착화 등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탓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0%는 “성실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대해 부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이젠 옛말이 됐다는 미국 사회 분위기를 전하는 조사다. 트럼프 미국 정부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미국 전문직 취업 비자(H-1B) 수수료를 현행보다 100배를 올려 받기로 했다. “미국인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발 자국 우선주의가 아메리칸의 꿈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고 있는 모양으로 느껴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3

위기의식 커지는 국힘, 기댈 곳은 민심뿐

권성동 의원을 시작으로 당 주요 인사들에 대한 강제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란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 국민의힘이 뒤숭숭한 분위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3일 “의원들 두세 명만 모여도 어김없이 특검 수사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최근에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송언석 원내대표를 비롯해, 나경원·김정재·윤한홍·이만희 의원에게 검찰이 의원직 상실형의 실형을 구형하자 당내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내란·김건희·해병대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른 국민의힘 현직 의원만 10여 명에 이른다. 3대 특검이 이미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진행한 현역 의원은 권성동 의원 외에 TK 출신 추경호(달성)·임종득(영주·영양·봉화)·조지연(경산) 의원, 그리고 윤상현·이철규·김선교 의원 등이다. 이 중 이철규·조지연 의원은 참고인 신분으로 압수수색을 당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피의자 신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특검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에서 당사로 바꿔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 외에도 당시 국회 원내대표실 안에 있었던 의원 모두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특검은 지난 2022년 보궐선거 공천 개입과 관련해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윤상현 의원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선 김선교 의원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 상병 특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으로 임종득 의원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에 더해 행정안전부는 서울·부산 등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에 대한 비상계엄 가담 의혹 진상 조사에도 착수한 상태다. 수사 향방에 따라 특검 칼날이 당 전반을 겨눌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으로선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과 민생은 함께하지만 내란 관련 세력에게 관용은 없다. 내란과 민생을 철저히 분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1일 국민의힘이 동대구역 앞에서 개최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는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조희대 대법원장 사퇴요구)이 트리거가 됐겠지만, 특검 수사에 대한 불안감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국민의힘의 산실인 대구에서 열린 장외집회는 ‘국민적 분노’로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보수진영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추석 연휴 전까지 대전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면서 강도 높은 장외투쟁을 이어간다니 어떤 성과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다만, 국민의힘이 명심해야 할 부분은 장외투쟁이 오히려 민심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구집회에서도 일부 드러났지만 성조기를 들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세력이 집회에 섞여 들 경우,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의힘이 지금 기댈 곳은 민심밖에 없지 않는가.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9-23

국힘 장외여론전, 추석민심에 어떤 변수 될까

국민의힘 지도부가 지난 21일 동대구역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데 이어 22일에도 대구·경북(TK)에 머물며 지역 민심을 파고 들었다. 이날 오전에는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상공인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 후, 곧 바로 경산산업단지공단을 찾아 ‘중소기업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경산산단에는 한미 관세 협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부품업체가 밀집해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조찬간담회와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구의 폐업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저에게 큰 책무로 다가왔다“면서 ”최근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 미국발 관세 정책, 내수 침체라는 삼중고로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당이 앞장서서 돕겠다“고 약속했다. TK 최대현안인 통합신공항 건설 사업과 관련해서도 “기부 대 양여 방식의 한계와 과도한 리스크로 속도가 잘 나지 않고 있다. 금융비용의 국비 지원을 위해 특별법 개정 등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대구 건설경기 악화 문제도 언급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미분양 주택 매입 정책이 대구에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당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25일엔 대전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재명 정부의 ‘실정’을 알리는 여론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추석 전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영남권에 이어 충청권과 수도권에서도 당력을 총동원해 장외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최고위원도 “야당을 없애기 위한 작업을 하는 여당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이같이 장외 여론전에 나선 배경은 민주당의 ‘내란당’ 공세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특검 수사가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20여 명을 향하고 있는 만큼 저항은 불가피하고, 결국 장외투쟁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장외투쟁이 추석민심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2025-09-23

APEC 경주 바가지, 관광지 이미지 망친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경주지역 숙박업소에서 바가지 요금 시비가 일어나 경주시가 논란 차단에 나섰다. 경주시는 주낙영 시장 명의의 공문을 발송하고 각 숙박업소의 투명한 요금운영을 당부하고, 바가지 요금 근절 현수막을 도심 곳곳에 설치했다. 주 시장은 공문을 통해 “최근 불거진 바가지 요금 시비로 경주시 숙박업소 전체가 비판을 받는다”며 “합리적이고 투명한 요금 책정으로 신뢰를 높여 다시 찾고 싶은 경주 이미지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APEC과 관광 시즌이 겹치면서 경주지역의 숙박요금이 평소보다 최고 9배나 폭등했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경주시는 “9배 폭등은 객실 유형 차이 등으로 다소 과장된 사례”라고 해명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평소 요금의 2~3배 높게 받는 곳이 수두룩하다. 평소 5~6만원 하던 숙소가 15만원으로 올랐다. 큰 행사나 관광 시즌이 되면 바가지 요금이 기승을 부리는 경우는 흔하다. 숙박업소뿐 아니라 식당 등 서비스 업소에서도 바가지 요금 시비가 자주 논란이 된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표보다 제주도 렌터카 요금이 더 비싸다”는 관광객의 불만이 이를 대변한다. 내국인 관광객이 국내 여행 기피의 가장 큰 이유는 바가지 요금이라는 여론조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역사 관광도시이자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역사도시다. 특히 다음 달 말에는 경주에 세계 정상과 2만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글로벌 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만남으로 세계의 이목이 경주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경주가 세계적 관광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주 시장은 시민의 노력과 정성이 모이면 경주의 품격과 매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APEC의 성공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개최지 경주의 위상도 높아진다. 숙박 요금 등 작은 것부터 깨끗하고 투명하며 친절한 관광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25-09-23

고통은 성장의 자산

봄꽃은 얼음을 깨뜨린 자리에서 피어나고, 강은 바위를 깎아내며 길을 낸다. 성장과 변화는 언제나 고통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때로는 실패의 쓴맛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히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당신은 나쁜 경험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불같이 화를 내는가, 기가 죽고 움츠러드는가, 아니면 피하려 하거나 무시해버리는가?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마다 자신을 좀 더 알게 된다. 고통은 우리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가 미루고 싶은 것을 결정하게 하고, 피하고 싶은 문제를 처리하게 하거나 내키지 않는 변화를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은 고통스런 경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통이 단순한 상처로 끝나지 않고, ‘성장의 자산’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의미 있는 목표이다. 개인의 꿈과 기업의 비전 등 고통을 감내할 이유가 뚜렷해야 한다. 둘째, 인내와 훈련이다. 즉각적인 회피보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힘이 필요하다. 셋째, 피드백과 학습이다.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을 체계화해야 한다. 넷째, 지속적 회복력이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궂은 날도 있게 마련이다. 내 꿈을 향하여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걸림돌을 디딤돌로, 지렛대로 활용하는 지혜로 회복탄력성을 갖는 것이다. 다섯째, 공동체적 지지이다. 개인은 멘토·동료, 기업은 리더십과 문화가 뒷받침이 될 때 더 큰 효과가 나타난다. 고통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것을 의미로 바꾸는 힘을 길러야 한다. 견뎌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고통은 짐이 아니라 자산이 된다. 실패에서 배우는 태도는 고통을 지혜로 바꾸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는 고통을 희망으로 바꾼다. 도요타자동차는 일하는 과정에 작은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개선을 이어간 끝에 월드 클래스 기업이 되었고, 김연아 선수는 수없이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세계 정상에 올랐다. 위기의 고통 속에서 체질을 바꾸어 세계 속으로 거듭나는 기업들이 있고, 그들은 고통을 성취로 꽃피우는 전략과 지혜가 있었다. 역경이 닥치면 우리는 그 속에 그대로 머물 수가 없다. 싫어도 움직여야 한다. 이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전진인가, 후진인가? 고통을 경험하면서 더 나아지는가, 나빠지는가? 그런 경험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는가, 걸림돌이 되는가? 워런 레스터(Waren Lester)의 말처럼, ‘성공의 비결은 좋은 패를 쥐는 것이 아니라 나쁜 패를 쥐고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고통의 시기가 성장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한다. 독일과 일본이 2차 대전의 패전의 고통을 딛고 일어섰고, 우리 나라도 6·25의 잿더미에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60여 년 만에 경제 10대 강국, ‘한강의 기적’을 이루듯 고통은 성장의 자산이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9-23

茶馬古道를 거닐며

어딘가 떠나고 싶고 누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로소 가을이라 했던가. 풀벌레 소리 청아해지는 만큼 하늘은 더욱 높푸르러 가고 그야말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 서늘한 바람따라 자연을 벗삼거나 어디론가 훌쩍 길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어쩌면 옛적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마방들에게도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 차(茶)를 팔기 위해 길 떠나기 최적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말이나 노새를 이용해 중국 운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사고파는 상인을 가리키는 ‘마방(馬幇)‘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고산준령으로 향하는 길을 떠났으리라.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수년 만에 되돌아오는 말몰이꾼들에게 있어서의 차마고도는 삶의 의지와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숙명적인 생계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주요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이기도 하다. 즉 차와 말을 교역하던 길로써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연결하는 이 길을 통해 운남의 명물인 차 이외 비단의 수출로였으며 말ㆍ소금ㆍ약재ㆍ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뤄져 실크로드의 전성기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고대의 무역로였다. 그러나 생존과 생계를 위해 단순히 차와 말을 사고파는 물물교환의 거래나 교역의 길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도시와 나라가 연결되며 문화의 교류와 상업활동의 교역을 이뤄주는 차마(車馬) 무역의 역사적인 길이 되어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전파, 교류되면서 나라의 운명까지 바꿔 놓은 질곡의 길이기도 했다. 천 길 낭떠러지의 협곡과 5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기에 새나 쥐가 다니는 조로서도(鳥路鼠道)라고도 하는 차마고도는 세상에서 가장 좁고 가파르며 힘든 길이지만, 주변 풍광이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운 길로 드러나면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릴 정도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산길과 벼랑길로 이뤄진 차마고도를 직접 걸으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떠할까? 코스모스와 산양이 반기는 해발 2500여 미터의 차마객잔~중도객잔~관음폭포까지의 차마고도 트레킹 내내 이어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은, 필설로 못다할 감흥으로 다가왔다. 병풍같이 둘러쳐진 옥룡설산 허리의 운무가 선계와 속세를 구분 짓는 듯 걷혔다 피어나기를 반복하고, 까마득한 발 아래의 산비탈에 다닥다닥 아찔하게 붙어 있는 집들과 구절양장으로 이어지는 비탈길 그 밑으로는, 깎아지른 호도협 협곡의 세찬 물굽이가 옥룡(玉龍)처럼 꿈틀대며 금사강의 유장함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일월문화원에서 주관한 해외문화탐방으로 올해는 중국 서남쪽 변경지역에 26개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문화와 풍부한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색상으로 표현되는 칠채운남(七彩云南)의 길을 다녀온 것이다. 그 길 가운데 차마고도 행보는 그야말로 무한한 즐거움(樂無窮)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차마고도낙무궁은 호도협 물굽이에 옥룡설산의 위용과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것 같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9-23

“울릉도는 망하지 않았다"…울릉도 망치는 것은 삼겹살 아닌 왜곡된 프레임

“드디어 울릉도 망했다” 구독자 49만 명을 가진 한 유튜버가 내건 제목이다. 그는 제작 영상에서 바가지요금, 불친절, 삼겹살 논란을 이유로 관광객이 절반 가량 줄어들 것을 예고했다. 이 영상은 하루 만에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확산됐다. 일부 언론도 “울릉도 이러다가 망한다”는 등 검증없이 잇따라 추측성 기사를 쓰면서 ‘울릉도 몰락’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웠다. 과연 그럴까. 실제 울릉도의 관광통계를 들여다보면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확인된다. 지난 6월 말 삼겹살 파동이 일었지만 7월 울릉도 관광객은 3만9864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보다 16.3% 늘었다. 울릉썬플라워크루즈 운항 중단도 과거의 적자 누적이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울릉썬플라워크루즈는 운항을 시작한 이후 올해 가장 많은 관광객을 수송하기까지 했고, 삼겹살 파동 이후 지난 여름 성수기 두 달(7~8월) 동안의 이용객은 지난해보다 19.2%나 증가했다. 이런 수치는 한때 논란이 된 주민의 바가지요금·불친절·비곗덩어리 삼겹살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유트버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울릉을 무차별 폭격해댔다. 마치 울릉 주민들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 들었고, 그로 인해 여객선이 경영난으로 운항을 멈춘 것 처럼 비치게 하려고 온갖 장난질을 했다. 물론 몇해 전 보다 전반적으로 관광객이 감소한 것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교통’과 ‘환경’이라는 요인으로 발생했다. 세계 최고 속력을 자랑하던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기관고장으로 운항을 중단했고, 코로나19 이후 폭발한 해외여행 수요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복합요인을 무시한 채 일부 유튜버와 언론은 ‘울릉도 주민 탓’으로 몰아갔다. 울릉 주민들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울릉도는 지질공원 팸투어, 문화·역사 체험, 해양관광 프로그램 등으로 관광 콘텐츠를 확장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망했다’는 자극적 제목 하나는 그간 쌓아온 울릉군과 주민들의 노력을 송두리째 흔든다. 왜곡된 프레임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극적 콘텐츠가 낙인효과를 키운다. 부정적 이미지가 외부에 각인되면, 다시 회복하는 데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관광은 신뢰 산업이다. 울릉도는 ‘망했다’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다’는게 진실이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9-23

허위신고엔 더 무거운 처벌을

학교나 백화점처럼 다중이 밀집된 곳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허위 신고를 하거나, 특정한 공간에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공간에 게재하는 행위는 용서 받기 힘든 범죄다. 이런 악의적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공권력의 낭비를 부른다. 앞서 언급한 허위 신고나 거짓 게시글이 문제가 될 때면 사회 안전과 민생 치안에 집중해야 할 경찰 인력이 적지 않게 동원돼 수색과 검문에 나서야 한다. 아무 소득 없는 헛수고에 국민들의 귀한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반복되는 허위 신고와 인터넷 거짓 게시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화풀이나 재미로 한 행동이 폐가망신을 부를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 것. 최근 여러 사람이 반길만한 판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3년 신림역에서 여성들을 살해하겠다고 허위 살인 예고 글을 올린 최모(31)씨에게 ‘4300만원을 정부에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법무부가 다중 살인사건 대비를 위해 투입된 인적·물적 손해에 대해 최씨의 책임을 물으며 시작됐다. 최씨가 사람을 죽이겠다는 글을 올린 후 체포될 때까지 703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낭비된 시간과 인력을 감안하면 4300만원도 큰 배상액이라 보기 어렵다. 이번 사례는 정부가 살인 예고 글을 올린 범죄자를 상대로 민사 책임을 물은 소송에서 나온 첫 번째 판결이다. 이제 판례가 생겼으니 향후 열릴 유사 사건에 대한 재판도 이 판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민은 허위 신고와 악의적 거짓 게시글엔 더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이런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22

APEC 만찬장 변경, 졸속행정 아닌가

불과 한 달여를 앞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행사의 공식 만찬장이 경주박물관에서 경주 라한호텔 대연회장으로 돌연 변경되는 일이 벌어졌다. 21개국 세계 정상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공식 만찬장이 행사 임박해 갑자기 바뀌는 것은 드문 일이라 장소 변경 사유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APEC 준비위원회는 19일 회의를 열고 “경주박물관 내 신축건물 대신 공식 만찬장을 라한호텔에서 진행한다”고 밝히고 “더 많은 인사를 초청할 수 있도록 장소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준비위 측이 행사 규모를 모르고 건물을 신축하지 않았을 터인데 변경 사유가 미심쩍다. 이미 95% 공정을 보이고 있는 박물관 내 부지에 신축하던 만찬장은 APEC CEO 써밋 등 기업인과 정상 간 네트워크 허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80억원 들여 신축한 만찬장이 당초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해 예산이 낭비되고, 장소가 변경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미리 대처하지 못한 졸속행정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하다. 특히 장소가 박물관에서 호텔로 바뀌면서 역사문화 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려했던 당초 취지가 무색해져 경북도민과 경주시민에게 안긴 실망감도 크다. APEC 준비위가 당초 경주박물관을 만찬장으로 정한 배경에는 경주박물관이 우리나라 문화역사 박물관으로서 대표성이 인정되고 이곳에 세계인의 이목을 모아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를 알려보자는 취지에서다. 경주박물관에는 신라금관과 에밀레종을 비롯해 8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이중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국보만 13점, 보물도 30점에 이른다. APEC 공식 만찬장은 21개 정상들이 모이는 APEC 행사의 사실상 꽃이라 불릴만큼 세계인의 이목이 주목되는 곳이다. 2004년 부산의 누리마루 공식 만찬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유명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경주는 포스트 APEC을 통해 APEC 개최지로서 문화역사 도시 경주를 세계적 관광도시로 키우려 하고 있다. 만찬장 변경으로 그 계획의 일부가 손실을 입었다.

2025-09-22

끝없는 與野대치, 국민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여야가 끊임없이 정면충돌하면서 출구 없는 대치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동대구역 앞에서 ‘야당 탄압·독재 정치 국민 규탄 대회’를 열며 거리로 나섰다. 보수정당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5년 8개월만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대한민국이 인민 독재로 달려가고 있다. 방해되면 야당도, 검찰도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다”면서 “이재명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향해선 “이재명과 김어준의 똘마니를 자처하고 있다. 반헌법적 정치 테러 집단의 수괴”라고 맹비난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저는 이재명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는다. 유죄 취지 파기환송 재판만 속개되면 당선 무효 아니냐”고 공격했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까지 이런 장외 집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25일에는 대전에서, 27일엔 서울에서 최고위 회의와 집회를 열 방침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야당탄압과 독재정부’ 이슈를 최대한 부각시켜 민심을 흡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도 이날 거친 말을 쏟아냈다. 정청래 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장외집회를 두고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 ‘투정’”이라며 “국감은 야당의 시간인데 가출한 불량배를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는 글을 올렸다. 장동혁 대표를 향해서는 “윤석열 내란 수괴 똘마니 주제에 어디다 대고 입으로 오물을 배설하냐”고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란세력에 관용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여야가 사생결단식 싸움을 이어가면서 정치는 완전히 실종된 분위기다. 대내외적으로 악재가 가득한 우리나라 경제여건이나 어려운 민생을 조금이나마 고려한다면 여야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며칠 전 열려다가 취소한 ‘민생경제협의체’를 가동하면 자연스럽게 협상테이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금처럼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면 결국에는 민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저급한 수준의 정치판을 봐야 하는 국민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2025-09-22

선물과 뇌물의 경계, 마음속에 답이 있다

“선물을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선물을 인정해 주고, 그 가치를 잘 살려 주고, 즐겨 주고, 좋아해 주는 것이다.”(최송목의 저서 ‘사장의 품격’ 중에서)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서 선물 문화에 대한 고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선물은 분명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선물은 뇌물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갈등과 불편함을 반복해 왔다.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했다. 공직 사회와 기업을 흔들던 ‘명절 선물세트 관행’은 이제 법의 테두리 속에서 사라졌다. 한우·굴비·상품권이 오가던 시대에는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늘 불편한 마음을 감췄다. 받는 이는 ‘대가를 치러야 하나’ 하는 부담을, 주는 이는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반복했다. 이때 선물은 이미 뇌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김영란법은 선물과 뇌물 사이의 모호한 공간을 잘라냈다. 5만 원, 10만 원이라는 가액 기준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로써 주는 사람은 ‘여기까지는 괜찮다’는 확실한 선을 긋고, 받는 사람은 ‘거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얻었다. 제도의 도입은 곧 청렴 문화로 이어졌다. 이제는 선물을 받는 순간 ‘혹시 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제도 시행 이후 공직사회의 풍토가 맑아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불필요한 의심과 눈치가 사라졌고, 선물 본래 의미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선물은 결국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대가를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뇌물이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분명해질수록, 주고받는 풍경은 덜 화려해졌지만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9-22

셀프 세족례

언제부턴가 새 버릇이 생겼다. 아니, 버릇이라기보다 새로 하게 된 ‘셀프 세족례(洗足禮)’라고 하는 게 낫겠다. 새 셀프 세족례 전에는 발을 손으로 만지며 씻는 일은 뜸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불려 굳은살을 각질 제거 돌로 밀 때나, 뗄 거나 씻을 것이 묻었을 경우 외는 거의 발을 만지지 않았다. 보통은 바가지로 물을 양발에 한두 번 붓고 말거나, 물을 부으면서 한쪽 발바닥으로 다른 쪽 발의 등을 몇 번 문지르는 정도였다. 젊은 날부터 오랫동안 성당의 봉사자 활동을 하면서 여러 번 세족례를 받아보기도 했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은 모범을 따라, 성목요일 미사 때 사제가 선정된 12명 신자의 발을 씻는 예식이 세족례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면서도 형식적 예식으로 치부하고 실생활에서 몸과 발, 여러 지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안다는 것과 깨닫고 행하는 삶의 거리가 북극성만큼이나 멀었다. 나이 들어가며 피부가 건조해지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때, ‘몸에서 아픈 소리가 난다’라고도 했다. 젊은 날 어른들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는, 다른 나라 얘기처럼 그냥 흘려보냈었다. 한데, 어느 날 자신에게도 닥친 문제라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이 느끼는 바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자기 몸이 여러 지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비로소 바라다보았다. 이 무렵부터 발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지체처럼 발을 두 손으로 꼼꼼히 씻었다. 발이 자신을 위해 고난을 겪은 흔적이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발가락 사이엔 때가 많이 끼었고, 뒤꿈치는 굳은살이 늘어났으며, 박힌 티눈도 커진 걸 새삼 알아챘으니 말이다. 때, 굳은살, 티눈 모두가 온몸의 압박을 견뎌내며 죽어간 발의 세포들일 터. 발을 씻고 나면, 끝으로 맑은 물로 발을 헹구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것이 ‘발을 다른 지체들처럼 대접하는 행위 곧, 셀프 세족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온몸을 떠받치고 걸어가야 하는 버거운 몫을 말없이 해내는 존재가 발이다. 이유 없이 천대받기도 하는 존재도 발이다. 가슴에서 맨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만일, 발이 없다면 인간은 문명은커녕, 생존조차도 못했을 터다. 발 못 쓰는 장애우를 보면 금방 그 소중함을 알고도 남는다. 사람이 여러 지체로 이루어진 생명 유기체라면, 국가는 사람으로 조직된 유기체다. 따라서, 국가도 지체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지체가 서로 이어져 유지, 발전하는 유기체가 국가이기에 생명 유기체와 닮았다. 국가의 지체는 지도층, 관리층. 감독층, 실무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발에 해당하는 지체는 실무층이며 근로자, 농어민, 소상공인 등이 그들이다. 국가란 몸의 발 역할을 감당하는 실무층이 무시되거나 소외당하고 저소득 구조에 가난하다면, 이는 자유민주주의 복지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보편복지가 아니라, 꼭 필요한 저소득층을 도와주고 돌보는 선별복지가 요구된다. 셀프 세족례가 발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데서 나왔듯이···. /강길수 수필가

2025-09-22

쇼펜하우어 VS 니체

쇼펜하우어는 욕망과 권태가 인간 실존의 두 얼굴이라 보았다. 욕망은 삶의 본질이자 고통의 원인이요, 권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드러나는 삶의 공허이다. 욕망이 충족되면 권태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이렇듯 욕망과 권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회귀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겼다.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카잔차키스 자신은 욕망하지 않았으므로 두렵지 않았고,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욕망하지 않으면 불안도 없다. 고통의 뿌리가 욕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러한 욕망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생존에의 의지’의 핵심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Das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에서 밝힌 의지는, 생을 추동케 하는 맹목적 충동이자 끊임없는 욕망이다. 싯다르타의 고성제(苦聖諦. 삶이 고통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쇼펜하우어가 삶에의 맹목적 의지(욕망)로 치환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더라도 ‘권태라는 악마의 등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권태는 단순한 지루함이 아니라, 존재가 아무런 욕망을 하지 않을 때도 만족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이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권태는 단순한 무료함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 피로와 무의미’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라 보았다. 악의 꽃 마지막 부분에서, 권태를 괴물로 형상화하여 탐욕, 방탕, 허영을 능가하는 궁극의 악으로 규정하였다. 인간은 권태 속에서 공허를 견디지 못하고 술, 마약, 매춘, 심지어 폭력, 죽음까지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보들레르에게 권태는, 악의 꽃을 피우는 ‘토양’인 셈이다. 욕망과 권태의 윤회 속에서 인간은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진단에 대하여 니체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 쏘아 부친다. 쇼펜하우어에게는 억제하거나 부정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니체에게는 자기실현과 자기극복의 특급열차가 된다. 쇼펜하우어에게는 존재 자체의 무의미성이자 삶의 고통과 허탈감으로 드러나는 권태라는 이름의 악마는, 니체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삶을 자극하는 천사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욕망과 권태로부터 구원받는 방식도 달라진다. 쇼펜하우어는 금욕, 관조, 욕망과 권태의 줄임과 제거를 주장하지만, 니체는 자기 극복, 새로운 가치창조, 아모르파티를 통해 욕망과 권태를 나의 일부로 포용하여 적극 수용하길 권한다. 예술의 경우는, 쇼펜하우어에게는 고통의 세계로부터 일시적 해방 또는 위안의 도피처이지만, 니체에게는 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적극적 힘의 놀이터이다. 두 사람이 대하는 욕망과 권태에 대한 태도와 해결 방안 중 누구 것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니체를 따른다. 나로부터 분리하여 처리하여야 할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영원히 함께하는 동반자요, 내 삶의 귀한 손님으로 생각하자. 안녕! 반가워~ 나의 욕망과 권태야! /공봉학 변호사

2025-09-22

작가 윤흥길의 작은이모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어렵다. 돈 많은 사람도, 없는 사람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어렵다. 어려운 삶을 그 무게를 덜며 사는 법을 익힌 사람은 지혜롭다. 그래도 가난한 이들에게 천국이 가깝다는 말은 옳다고 생각된다. 이렇게도 생각한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들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 성스러움이 그네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의 삶 전체를 위해서는 이 생각이 없어서는 안되겠다. 소설 공부가 어찌어찌해서 윤흥길 작가 쪽으로 흐르는데, 문제작 ‘장마’며,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를, 해석을 달리해 볼 방향을 찾는다. 이 공부는 동학과 증산교와 기독교를 들락달락해야 한다. ‘장마’에서 마당에 나타난 구렁이를 죽은 삼촌의 혼령이 씌운 것으로 보고 집안일은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네” 가야 할 데로 가라는 그 달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가 문제다. 소설만으로 보이지를 않아 작가가 쓴 산문집 ‘텁석부리 하나님’(1993)을 찾아 읽는다. 거기 작가의 작은이모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은이모의 남편 되는 분은 법원에서 일했는데, ‘인공’ 치하에서 잠시 외출했다 실종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작은이모는 폐결핵까지 얻어 어린 작가의 집에 깃을 들여 함께 살았다 한다. 산문집을 통독하다, 작가의 정신세계가 기독교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음을 쉽게 깨닫게 된다. 단편소설 「집」을 보면 작가는 어려서 참 지지리 궁상도 그런 궁상은 없었던 것 같고, 정직하면서도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힘겨운 성장통과 씨름도 잦고 컸다. 그 시절, 작은이모의 깊은 신앙심이 작가를 인도해 주었더라고 한다. 가난하고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잔잔한 수면 같은 고요한 마음 세계 그대로였던 작은이모의 곱디고운 모습이 어린 작가를 헛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끌어주었다고 한다. 마지막 숨을 거두고도 마치 산 사람처럼 평화롭고 미소마저 어려있던 작은이모의 모습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너무나 ‘처연하게’, 그러면서 아름답게 상상되는 것이었다. 이 작은이모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얻어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작은 사람도, 세속에 크게 빛나지 않는 사람도, 고통이나 슬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크고도 좋은 힘이 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또 사람은 애써 크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할 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일, 이 충만함으로 늘 기쁨이 어린 삶을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누구나의 삶이 이루어내야 할 크나큰 좋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일이 아니며, 또 종교만의 일도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윤흥길 작가의 작은이모는 어린 윤흥길에게 버티는 힘을 선사한 데 머무르지 않고, 작가의 작품에 살아 읽는 이들을 움직이고, 또 그 힘이 멀리 소설 공부하는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 있었다. 고요한 충만함, 내적인 충만함이 무엇인가를 다시 곱씹어보는 새벽에서 아침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9-22

맑은 콩나물국에 비친 무른 콩나물

여행에서 돌아오니 냉장고의 콩나물이 물러 있다 무른 콩나물은 버리고 먹을 만한 콩나물은 골라 그릇에 담는다 버려야 할 것들까지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새벽의 노동 속에서도 계절이 흐르고 나는 가족을 이루었구나 좁고 기다란 식탁에는 김이 나는 콩나물국 고춧가루도 치지 않아 얼굴이 비치는 어느 아침 한 식구는 건더기를 모두 남기고 한 식구는 국의 절반을 버리고 국이 식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는 식구도 있는데 맑은 국물 위의 떠도는 얼굴들은 모두 매운 점심을 지나 어느 무른 저녁으로 갈 터이니 버리려던 콩나물의 절반을 얻은 것이 기쁘고 오늘은 가족이 모두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 있던 그 새벽의 고요가 기뻤으므로 손에 가득한 콩 비린내로 얼굴을 쓸며 해가 어디쯤에 가고 있는지 창밖을 내다본다 ―심재휘, ‘맑은 콩나물국’ 전문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2025, 문학과지성사) 심재휘 시인이 그려내는 새벽 풍경에는 콩나물과 식구라는 두 가지의 언어가 있다. 기실 콩나물과 식구는 두 개의 기표이면서 하나로 수렴된다고 하겠다. 여행에서 돌아온 화자가 냉장고에서 발견한 콩나물은 “물러 있다” 여기에서부터 화자의 새벽 노동은 시작된다. 이때 새벽이라는 물리적 시간과 식탁이라는 장소성은 ‘식구’라는 기표와 등가성을 가진다. 이들은 한 식탁에 동참하거나 늦잠으로 불참하며 화자가 골라내는 “먹을 만한 콩나물”과 “무른 콩나물”로 병치 된다. 또한 “버려야 할 것들까지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화자의 태도에서 가족을 챙기며 돌보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콩나물은 김치만큼이나 밥과 근친하는 식재료일 것이다. 여기서 콩나물은 밥처럼 자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일상어가 된다. 말하자면 콩나물국은 매일 봐도 물리지 않는 식구와 같다. 이른 아침 화자의 콩나물국은 “고춧가루도 치지 않아 얼굴이 비치는” 맑은 이미지를 표상한다. 화자의 식구들이 콩나물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여느 가족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가령 “한 식구는 건더기를 모두 남기고” “한 식구는 국의 절반을 버리고” 심지어 “국이 식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는 식구도 있는데”처럼 식구들이 여럿인 가족의 일상은 이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화자가 궁구한 새벽 노동의 극진함과 달리 가족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아침 식탁을 맞는다. 이럴 때 ‘맑은’ 콩나물국은 생활인으로서의 일과 속 지난함과 곤함을 되비추는 거울과 같다. 화자의 말처럼 콩나물국에 비친 얼굴들은 “매운 점심을 지나 어느 무른 저녁으로 갈 터”이니까. 화자가 그토록 버리지 않으려고 애쓴 ‘무른 콩나물’과 식구들의 ‘무른 저녁’ 역시 등가이다. 결국 제목 ‘맑은 콩나물국’의 외현적 형식은 ‘무른 콩나물’이 표상하는 심상을 수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디쯤에 가고 있는지 창밖을 내다보는” 화자의 시선이 좇는 ‘해’ 역시 일과를 따라 움직이는 ‘식구’와 다름이 아니니 말이다. “새벽의 노동 속에서도 계절이 흐르고 나는 가족을 이루었구나”라는 언술에서 알 수 있듯 앞서 서술된 콩나물과 같은 값의 기표들은 유기적인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어쨌든 화자는 “버리려던 콩나물의 절반을 얻은 것이 기쁘고” 무엇보다 “오늘은 가족이 모두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하다. 하여 “생각하며 서 있던 그 새벽의 고요가 기뻤”다고 고백한다. “손에 가득한 콩 비린내로 얼굴을 쓸며” /이희정 시인

2025-09-21

숲이 숨 쉬는 봉화, 치유산업으로 미래를 열다

봉화는 현재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치유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예로부터 봉화는 산림과 농업, 관광 자원이 풍부한 청정지역으로,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치유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날로 감소하는 인구와 고령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 이제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단기적 대응에 머무른다면 미래 세대에게는 쇠퇴한 고향만 남길 수 있다. 이에 봉화군은 지역 자원의 특성과 정체성을 최대한 살린 ‘봉화형 치유산업’을 발굴해 나가며, 새로운 도전 속에서 지역의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치유산업은 단순한 서비스 산업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돌보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산업이다. 경제적 효과를 넘어 사회적 안정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까지 기여할 수 있는 다층적 산업으로, 일자리 창출·청년 인구 유입·지역경제 활성화 등 종합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숲이 가진 치유의 힘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산림의 다양한 자연환경 요소를 활용한 치유 활동은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완화, 정신 건강 개선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주며, 치유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봉화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품은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산림치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지다. 최근 봉화군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치유 공간, 문수산산림복지단지를 개장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문수산 자락에 조성된 이 단지는 산림휴양·교육·치유 기능이 융합된 종합 산림복지 거점으로,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봉화형 치유산업의 상징적 모델로 자리매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문수산산림복지단지는 중심지구, 체험·교육지구, 산림치유지구, 자연휴양림지구 등 4개 권역으로 나뉜다. 중심지구에는 산림치유센터가 있어 건강측정실, 족욕체험실, 명상치유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체험·교육지구는 유아와 아동을 위한 자연친화적 학습 공간으로, 아이들이 오감을 통해 자연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림치유지구는 명상숲, 힐링치유길, 요가숲 등 테마별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방문객이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자연휴양림지구는 숙박과 야영시설을 포함해 가족 단위 관광객이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정식 개장한 지 석 달여 만에 단지는 이미 방문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다양한 연령층이 치유와 휴양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만족도를 표현하고, 이 경험이 입소문을 타면서 봉화의 새로운 관광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봉화가 지향하는 ‘치유산업 선도도시’ 비전을 구체화하는 첫 성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봉화군은 문수산산림복지단지를 단순한 휴양공간을 넘어 산림치유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구현하는 핵심 거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전문 인력 양성과 프로그램 고도화, 디지털 치유 콘텐츠 확산을 통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층이 찾아오는 활력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또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정자문화생활관, 봉화목재문화체험장 등과 연계한 산림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해 봉화만의 독창적인 장기체류형 관광 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머물고 싶은 도시 봉화’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박현국 봉화군수 더 나아가 봉화군은 치유산업을 국가 정책과도 연계해 전국적 모범사례로 확산시킬 것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제공하고, 외부인에게는 봉화만의 치유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선사함으로써, 지역 정주 여건 개선과 인구 유입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치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가치이며, 동시에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다. 봉화군은 산림치유라는 미래 산업을 통해 소멸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자 한다. 문수산산림복지단지가 봉화형 치유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지역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더 나아가 봉화군이 ‘치유산업 선도도시’라는 당찬 비전을 실현하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웃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2025-09-21

가짜뉴스? 민주당이 진원지다

민주당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해 15~20배에 이르는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이다. 1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고 김영애 씨의 황토팩이 KBS의 ‘소비자 고발’ 오보로 파산했다. MBC의 광우병 보도는 정권을 무너뜨릴 기세로 전국을 뒤집어 놓았다. 스카이데일리라는 인터넷신문은 중국인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조작뉴스로 극우파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에 합당한 책임을 졌느냐 하는 문제 제기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다. 노골적인 사실 조작이 횡행하지만, 정치인이 앞장서 이를 이용한다. 내 편 가짜뉴스는 상을 주고, 상대편이면 ‘징벌’하는 식이라면, 언론자유를 핍박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이 크다. 청담동 룸살롱 폭로가 대표적이다. 김의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청담동 룸살롱 의혹을 터뜨렸다. 유튜브 채널 ‘더탐사’(옛 열린공감TV)가 한 첼리스트의 통화 녹음을 근거로 잇달아 의혹을 부풀렸다. 의혹의 당사자였던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해명, 첼리스트의 경위 설명으로 오보임이 확인된 이후에도 한동안 물고 늘어졌다. 지난달 1심에서 관련자들이 한 전 장관에게 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논란 속의 김의겸 전 의원을 이재명 대통령은 새만금개발청장으로 임명했다. 정치적 공격수로 오명을 감수하면 상훈이 있다는 전례를 만든 셈이다. 김어준, 전한길 유튜브가 논란의 중심이다. 최근에는 열린공감TV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와 비밀 회동했다고 보도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열린공감TV가 지난 5월 4인 회동의 녹음 파일을 들려줬다. 그 녹음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이어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법사위 청문회에서 이 녹음을 틀었다. 최근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대통령실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발표를 했다가 발을 뺐다. 그런데 이 영상 앞부분에 ‘해당 음성은 AI로 제작된 것으로, 특정인들이 실제 녹음한 것이 아님을 알려 드린다’라는 자막이 붙어있다. 그런데도 서 의원은 ‘제보자가 특검에서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라며 굽히지 않는다. 정청래 대표는 “억울하면 특검 수사 받고 결백을 밝히면 될 일”이라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유튜버와 욕받이 정치인 한 사람이 던지면,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가, 슬그머니 빠지는 행태가 반복된다. ‘사실이라면…’ ‘억울하면…’이라며 책임지지 않을 ‘…라면’식 흠집 내기다. 가짜뉴스를 징벌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민주당이 검찰을 비난하는 대표적 사례가 ‘논두렁 시계’다. 권양숙 여사가 받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수사 내용을 흘려 모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검찰을 대신해 수사하는 특검은 얼마나 달라졌나. 연일 확인되지 않은 추정까지 쏟아내지 않나. 문재인 정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사퇴시키고, 47개 죄목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5년 만인 지난해 1월 1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다. 오는 11월 항소심 판결이 있다. 무죄건 아니건, 대법원장은 불명예 퇴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2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조금도 같이 있기 힘든 모양이다. 정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법원장은 누구였나. 정청래 대표는 조 대법원장이 “계엄에 침묵하고 서부지법 폭동에 침묵했다”라면서 “깨끗이 물러나라”라고 요구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했을 때도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죄목 중 하나가 ‘재판개입’이다. 이제 와 대법원장이 하급심의 재판에 일일이 개입하라는 건가. 집권당인 민주당이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21

국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국과 미국은 대(對) 한국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천500억 달러(486조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구체적 이행 방안에 서로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협상이 난황을 보인다. 이미 문서로 합의한 일본은 16일부터 자동차·부품 관세가 15%로 낮아져 한국산 자동차가 일본산에 비해 비싸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 근무하는 우리 근로자들이 비자 문제로 죄인처럼 손발이 묶인 상태로 연행되어 구금된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것도 한미 정상 간의 회담이 이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미국이 한국을 진정한 동맹과 경제 파트너로 생각하는지 의심이 든다. 상도의를 벗어난 미국의 요구는 안보를 볼모로 온갖 요구를 하고 있다. 주한 미군 부지를 달라고 요구하고 투자금을 현금으로 부담하고 투자에서 얻은 수익금의 90%까지 미국이 갖겠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내용으로 압박하니 대처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가의 모든 힘을 모아 미국의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더해 해킹 문제로 사회는 불안하고, 물가는 오르고 국민의 삶은 힘들어지는데 여당은 삼권분립의 정신을 잊고 대법원장 끌어내리기에 바쁘다. 경제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강화된 상법은 관세로 힘들어하는 산업체를 옥죄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난리인데 정부는 산업체를 살릴 의향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중소기업체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난리인데도 정부의 대응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업체를 옥죄는 일에만 열중이고 근로일수를 줄이고 근로자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느라 법을 고치기에 바쁘다. 모든 것은 때가 있지 않은가. 관세로 수출이 어려워 허덕이는 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것인지. 해고도 자유롭지 않은 한국에서 기업이 선택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재명 정부가 끝날 즈음에는 한국의 많은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기업의 가치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일하러 미국에 가서 죄인 취급을 받은 우리 국민이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다. 해킹 문제로 국민은 불안하고 해결하지 못한 관세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기업체를 위해 정부는 국가의 온 힘을 국민의 삶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관련 부서만 움직이고 여당은 대법원장을 끌어내리느라 바쁘고 기업을 옥죄는 법을 만드느라 힘을 빼기보다 다양한 각도로 미국에 우리의 입장을 전하고 관세를 타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에 보여준 대미 협상팀과 기업인들이 하나가 되어 보여준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불안한 사회다. 경제도 사회도 안정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이 있는데, 4류의 우리 정치는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제 갈 길만을 가겠다는 정치행태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힘을 모아 트럼프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과 싸워 이겨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9-21

노란봉투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주 전쯤,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웃과 동네 일을 의논하러 만났다가 대화 주제가 노란봉투법으로 이어졌다. 그 이웃은 공사 현장에서 사람 다치고 죽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렇게 패널티를 많이 주면 건축업이 위축된다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바로 며칠 전에도 유튜브 채널 부읽남TV에서 같은 논조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는 건축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죽었을 때 어떤 패널티를 주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주택 공급 소멸 정책이라며 집값 폭등을 예고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가 파업했을 때 법원에서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하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4만 7천 원씩 넣어 후원했다. 현금으로 월급을 주던 시절 노란 봉투에 담아 주었기 때문에 노란 봉투에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일부 개정한 것이다. 제2조는 근로자와 사용자, 노동쟁의의 정의 등을 규정하고 있고, 제3조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및 배상 책임을 다룬다. 9월 12일 공포된 이 법안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사용자를 근로계약 당사자만이 아니라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를 모두 사용자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종사자도 노조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원청과 협상할 수 있다. 둘째는 노동쟁의의 대상이 확대된 것인데, 이전에는 임금과 근로 조건에 직접 관련된 상황에서만 쟁의가 가능했지만. 노란봉투법에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된다. 물론 회사가 불법행위를 하거나 단협을 위반했을 때 가능하다. 셋째는 파업이나 노조 활동을 했을 때 지나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파업 때 47억 원을 청구한 것이 부당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의 폭이 확대된 것이다. 그러니 사업자 측이 반발할 것은 당연하다. 전국경제인연합은 경영권 직접 침해, 해외 투자 위축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준과 매뉴얼을 마련해서 불확실성과 남용을 방지하겠다”고 했지만, 갈등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럴 때는 오히려 철학적이고도 원론적인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롤즈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원초적 상황을 가정한다. 사회 계약 후의 내 지위를 전혀 알 수 없다고 전제했을 때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인 약자에게 최대이익이 되도록 조정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사회 정의를 고려할 때 자신이 약자가 될 경우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부읽남TV 댓글 중 한 명의 병사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장수는 패한다는 말이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사람 한두 명도 죽지 않기를 바라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죽는 병사가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그래도 그 장수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9-21

사법도시 대구

대구가 사법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이후 영남권의 사법,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대구가 한 것이다. 1895년 대구재판소가 설치됐고, 일제 강점기에는 서울과 평양을 제외하면 지금의 고등법원 격인 복심법원이 대구에 유일하게 설치됐다. 광주시에 고법이 신설된 1952년까지 지방에는 고등법원이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했다. 더불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에 반발하는 대법원을 향해 대법원을 대구로 옮기자는 제안을 해 제안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법개혁 추진 과정에서 대법원과 충돌하면서 나온 제안이라지만 김 의원은 작년 국가균형발전 명목으로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어 그의 대법원 이전이 그냥 한 말로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민주당은 5년 전에도 대구시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법원은 대구로, 헌법재판소는 광주로 이전하자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홍준표 전대구시장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 외에 사법 수도를 두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대법원의 대구 이전설 자체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 의원의 대법원 이전 제안이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압박용이라는 설과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민주당의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구 이전설이 그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현실화 되지 못할 것도 없다. 대법원의 이전은 지역발전 측면에서 메가톤급 구상이다. 김 의원의 제안이 대법원 이전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지 지켜 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1

산불이재민에겐 특별법 제정 한시가 급하다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위가 지난 18일 ‘초대형산불 피해 지원 특별법’을 의결함으로써 이재민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 경북도를 비롯한 산불피해지역의 적극적인 요구와 발빠른 대응, 정치권·정부의 협력이 이뤄낸 결과다. 산불특위는 그동안 6차례의 법안심사소위를 통해 산불 관련 5개 법안, 272개 조항을 보완해서 이날 통합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임미애(비례대표, 의성·청송·영덕·울진 위원장) 의원과 국민의힘 김형동(안동·예천) 의원이 특위 간사를 맡아 고생했다. 특별법은 이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경북도는 특별법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됨에 따라 이제 산불 피해복구와 산림 대전환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앞으로 산림정책이 ‘바라보는 산’에서 ‘돈이 되는 산’으로 대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법은 지난 3월 경북 북·동부지역을 비롯한 영남권 일대(경북 의성·안동·영덕·영양·청송, 경남 산청·하동, 울산 울주)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신체적·정신적·재산상 피해를 입은 이재민의 생활 안정과 지역 재건을 지원하는 특례조치가 담겨 있다. 주목되는 특례조치는 산림투자선도지구 신설과 산림경영특구 지정이다. ‘산림투자선도지구’는 국가와 지자체가 민간투자자와 협의해 재난지역을 투자·개발 중심지로 재창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며, ‘산림경영특구’는 영세한 개별 임가(林家)의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산림을 규모화·단지화하는 내용이다. 이철우 지사와 경북도의회 산불대책특위는 그동안 도내 5개 시·군 피해 현장을 수차례 방문해 주민 의견을 듣는 한편, 국회와 기획재정부, 산림청 관계자를 만나 특별법 제정의 긴박성을 강조해왔다. 이 지사는 지난 10일에도 국회의장과 산불특위 위원장, 여야 지도부를 만나 신속한 입법화를 요청했었다. 특별법이 특위에서 심사숙고해 다듬어진 만큼, 가급적 추석 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덜게 해주길 기대한다.

2025-09-21

2차 소비쿠폰, 장기 경제활력으로 연결돼야

정부가 오늘부터 민생회복 2차 소비쿠폰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1차 때와는 달리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에게 1인당 10만원씩 쿠폰을 지급한다, 1차 소비쿠폰 지급 이후 시중에는 매출이 올랐다는 상인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비쿠폰이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긍정 평가도 나왔다. 정부 지급의 소비쿠폰은 사용기간을 정해 놓고 소비토록 함으로써 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돈이 돌아가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 결과로 분석이 된다. 한국은행도 2차 추경 이후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0.14% 포인트 올려 잡는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올 경제 성장률을 상향한 배경으로 2차 추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비쿠폰의 지급 효과가 0.1% 이상 차지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이 시장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를 성급하게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앞으로 소비쿠폰 효과가 경기 진작의 마중물이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부정적 견해도 내놓고 있다. 소비쿠폰 사용기한이 제한돼 있어 종료 이후에는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는 소비절벽의 위험도 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소비쿠폰 지급은 경기부양 효과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물가를 자극, 인플레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정부는 소비쿠폰 지급으로 일어나는 경기진작 효과를 예의주시하며 시장의 상황을 빠르고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부가 13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시작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가 일어나야 한다. 전문가들은 소비쿠폰 지급으로 단기적 매출 증가의 촉매 역할을 충분히 한만큼 이를 장기적 경기 활성화로 이어가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수경기의 오랜 침체로 작년 한해 사업을 포기한 자영업자만 100만 명이 넘었다. 정부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소비쿠폰 지급으로 불씨를 살린 소비심리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정책 마련에 더 고심해야 할 것이다.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