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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등록일 2026-02-08 16:42 게재일 2026-02-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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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1970년 초 나에게 동네 골목길은 지금 축구장의 절반 크기였다. 또래 아이들과의 모든 놀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기억으로 가득하다. 반골 축구, 자치기, 마리, 구슬치기, 연탄 던지기 심지어 야구까지 안되는게 없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보다도 동네 골목길에서 어울린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옛 생각에 동네 골목길을 찾았다. 어른 두 명이 지나가면 꽉 차 보이는 이 좁은 길을···. 

그때는 그렇게 작은 몸이었던가. 이제는 보기 힘든 흙투성이 골목길에서 친구, 동생 그리고 형들과 함께 밤늦도록 누비던 그 길에서 나는 우리 동네 어른들과 집마다 키우던 강아지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그때의 부모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차 몇 대 다니지 않는 70년대의 2차선 도로는 한참을 걸어야 건너는 대로였다. 그 길 건너 골목길 한쪽 편 우리 집 마당 작은 꽃밭의 한가운데 풍성히 그리고 담벼락에 잔뜩 기울어 뾰족이 담 밖을 내다보는 검붉은 장미와 조금조금 경계 지어진 꽃밭 돌 틈 사이로 소담소담 올라온 노랑 빨강 채송화가 한창일 때의 향기로운 기억의 냄새가 나를 감싸며 옅은 미소를 배어나오게 한다. 길지 않는 좁다란 골목길에서의 추억들이 지금보다도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으로 남아있다니 행복했던가 보다. 옛 모습과 비슷이 남아있는 큰길 건너 첫 번째 모퉁이 돌아 세 번째 집 그리고 딱딱한 회백색 시멘트 깔려진 그때와 다른 골목길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공간에 오롯이 남아있는 골목길은 여전하다.

골목길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었다. 그곳은 삶이 이루어지는 가장 낮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자,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생활의 무대였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이자 교실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계획되거나 설계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관계와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문화의 핵심은 ‘우연한 만남’에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치고, 의도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쌓인 관계가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고, 다툼을 해결하며 사회를 배웠다. 경쟁보다 어울림이 먼저였고, 효율보다 관계가 우선이었다. 골목은 삶의 속도를 여유롭게 늦추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골목은 점점 사라지거나 기능을 잃었다. 흙길은 시멘트로 덮였고, 놀이는 위험과 소음으로 규정되었다. 골목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실내와 조그마한 화면 속으로 옮겨갔고,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졌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편리함이었지만, 그만큼의 공백도 함께였다.

이제 다시 골목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골목은 지역 문화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의 골목은 변했을지라도, 기억 속 골목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기억은 한 개인의 추억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싶은지를 이야기한다. 골목길 문화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감각이자 특별한 공간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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