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쉼의 통점

등록일 2025-04-02 18:50 게재일 2025-04-03 17면
스크랩버튼
배문경수필가
배문경수필가

새벽에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곁에 둔 핸드폰을 더듬어 누르자 한 시다. 배가 아파서 잠결에 깬 것인지, 갱년기 불면증인지 겨우 한 시간 눈을 붙였다. 이즈음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두 시간 잤다 싶으면 번쩍하고 눈꺼풀이 걷히면 이후 잠들 수가 없다.

잠들기 전 일이 떠올랐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몰려왔다. 동시에 위가 비틀리며 따갑게 통증을 유발했다. 손바닥으로 통증 부위를 둥글게 문질렀다. 위가 부은 것인가. 위액분비가 심한가. 원인을 찾다 수년 전 그녀를 만나던 장면으로 생각이 날아갔다.

연말에는 행사가 많았다. 대구 K 호텔은 화환이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소속된 문학회의 화환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열기가 추위를 녹여내고도 남았다. 이미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이 큰 행사를 주관하는 홍 선생님과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리허설 중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진행 관계자가 이럴 때는 시간에 쫓겨 걱정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밝고 화사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화색 좋은 그녀들을 보며 경주에서 온 서너 명인 우리 일행들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급하게 들어서던 그녀를 봤다. 적당히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정돈된 옷이 잘 어울렸다. 그녀의 꽤 잘 쓴 글을 접한 이후 스타를 쫓는 팬처럼 올 때마다 그녀를 먼저 찾아 인사를 나눴었다. 반갑다고 다가가는 순간 그녀의 발에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남색 플라스틱에 흰 줄이 두 줄 그어져 있는 실내서 싣는 신발, 이 추위에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정장을 한 모습이었다. 중학교 과학 교사라고 전해 들었다. 별것 아닌 듯이 “아~ 슬리퍼 신었네요. 인주샘!” 그제야 자신의 발을 보더니 잊고 그냥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나도 마주 보며 그럴 수 있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문학 장르에서 큰 상을 받고 두각을 나타냈으며 촉망받는 작가였다. 나는 잘 가던 대구로의 행보가 쉽지 않아지고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한 번씩 떠올랐지만 바쁜 일상으로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시간은 그렇게 거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문득문득 그녀의 소식이 바람결에 날려와 내게 소식을 전했다.

문득 일상을 마감할 즈음에 그녀가 뇌리에 와서 박힌 건 이상했다.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치자 수상 소식과 아름다운 모습도 몇 컷이 보였다. 지인의 홈피가 열리고 그녀의 글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녀의 이름 아래에 괄호 속에 생몰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태어난 해와 생을 마감한 해가 다 적힌 건…, 믿기지 않아 전화를 돌려 지인에게 확인을 시도했다. “아까운 사람이지. 스트레스로 인한 위암이었어.”

시인으로 우뚝 서고 싶었던 그녀는 높은 서울로의 진출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때론 무엇에 꽂히면 앞뒤 좌우 없이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어찌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인지,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루지 못한 꿈과 좌절감으로 시커멓게 속이 탔을 그녀를 암으로 몰아넣은 모양이었다.

새벽 위통을 견디기 위해 물을 들이켰다. 위액이라도 중화시켜야 속이 덜 아플 것이었다. 근래 전에 없던 위통이 왜 새벽 한 시에 나를 깨운 것인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나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수시로 굶고 수면 부족에, 이곳저곳에 있는 행사에 초대되거나 직접 치러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종종거릴 때가 많다. 나의 뇌리를 스친 그녀의 기억은 나의 현재 상황을 일깨웠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가. 바쁜 일상에서 내가 놓치고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잊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나를 쳐다본다. 어떡할 거냐고 무슨 대답을 바라는 듯이, ‘쉼 때론 쉼이 필요해’라고 뱃속의 무엇인가가 여행도 하고 너를 위해 오직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라고 타일렀다. 내일 이른 시간으로 위내시경을 예약하며, 오직 나를 위한 쉼 시간도 예약했다.

Essay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