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멈춰 있던 제도가 다시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 사회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더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온 주체였다. 광장에서, 일상에서, 제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정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여전히 오래된 피로와 불신이 남아있다. 법적 판단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신뢰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 신발끈을 꽉 묶고, 앞으로 다가올 다음 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언제나 도입부에선 망설임이 먼저 떠오른다. 막상 쓰기 시작한 서술도 자꾸 지우게 된다. 적확한 표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과 언어 사이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본격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까지는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만큼은 다르다. 마침표가 가까워졌다는 확신은 이전에 쌓아 올린 문장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해방되는 듯한 감정이 따라온다.
우리는 오늘의 장면을 마지막처럼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정말 마침표를 찍어도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누구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첫 문장을 넘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구체적인 상상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사회를 떠올리는 바람.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 상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은 증명되었다. 그것은 낙관이 아니라 일종의 증거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제도의 권위가 아니라 결국 시민의 손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왔다. 추운 날 광장에서 함성을 보탰고 조용한 일상에서도 무게를 견뎠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말 없는 연대 안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왔다.
실망과 피로가 반복되며 어떤 희망에도 쉽게 기대지 않는 태도가 굳은살처럼 마음에 자리잡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냉소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태도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회복을 다시 배워야 한다. 들끓는 다음은 이성의 테두리에 담아내고 무뎌진 감정은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상처는 질문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문을 쏟아냈다. 사유가 공론의 언어로 이어지고 제도로 연결될 때 희망은 지속된다. 정치가 제때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반복되는 피로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민이 쓴 문장을 정치가 지워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욕망이 우리의 언어를 가로채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헌재 판결로 물러난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두 번째다. 그 숫자의 무게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단 한 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코 가벼운 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수가 아니다. 쉽지 않은 세상을 쉽지 않게 바꿔 가는 시민이 존재해 왔다는 증거다. 법이 움직이기 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결론도 쉽게 믿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계속하여 번복되어 왔고 너무 자주 진실이 지연되어 왔다.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정직하다고 믿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써 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환호도 단죄도 아니라고. 결국 일상의 지속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단어를 놓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다음 장면이 희망의 형태를 띠고 있기를 바란다.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첫 문장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은 언제나 이러한 문장들 위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