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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너진 교권, 위기의 교육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의 교육현실이 참담하다. 2년차 신규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사면초가(四面楚歌)의 환경 속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티던 교사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가 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교단을 떠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추모집회에서 동료교사들은 “교권침해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이 현실이 정상이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선생님들이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학생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교권도 중요하다. 수업하는 교사 옆에서 학생이 드러누워 휴대폰을 사용해도 이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니 기가 막힌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성희롱·욕설을 하는가 하면,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니 교육 백년대계는 공염불이다.학부모들의 갑질과 악성 민원은 또 어떤가?자녀가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면서 담임교사에게 ‘황당한 갑질’을 한 학부모가 ‘교육부 사무관’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학부모들의 폭언·폭행·협박이 점입가경이며, 최근 5년간 교사를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이 무려 1188건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교사들은 ‘왜 아동학대를 무릅쓰고 생활지도를 해야 하느냐’, ‘참 교사는 단명 한다’는 등 자조적인 한탄이다. ‘폭탄 학부모’나 ‘폭탄 학생’을 ‘명퇴도우미’라고 부른다는 교단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는 “교육은 반드시 가르침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이 세계 속에서 진정한 한 인간 존재로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교육은 죽었다. 공동체의식, 남에 대한 배려, 사회화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교육은 무의미하다. 교권이 무너졌으니 교육이 무너진 것이다.교권 회복을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교권을 약화시키는 ‘학교폭력법’과 ‘아동학대법’은 개정되고, 유명무실한 교권보호위원회의 실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학생의 수업방해를 제재할 수 있는 교사의 권한과 수단이 있어야 하고, 교사의 정당한 학생지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면책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사가 송사를 당했을 때 신경 쓰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절실하다.갑질 학부모들의 성찰과 반성도 중요하다. ‘생물학적 탄생은 부모의 몫’이지만 ‘사회적 재탄생은 교육의 몫’이다.잘못된 자식사랑은 자녀에게 독이 된다. 교권이 무너지면 그 피해가 자녀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걸핏하면 경찰·검찰·법원에 호소하는 ‘교육의 사법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사법적 승패는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승자가 없는 싸움일 뿐이다.교육정상화는 교육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상호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각 주체들은 권리에 앞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풍토 속에서 참 교육은 불가능하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해하고 소통해서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교육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2023-08-28

‘김영란 법’과 경기(景氣)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추석(9월 29일)을 앞두고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등 선물 가액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의 속칭 ‘김영란 법(청탁금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물 상한액 인상이 목적이다.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농·축·수산업계와 문화·예술계 등의 피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개정안에 따라 농수산물과 가공품의 선물 상한액을 평상시 10만원(설날·추석 20만원)을 15만원(설날·추석 30만원)으로 상향했다. 선물기간은 설날과 추석 전 24일부터 설날과 추석 후 5일까지다. 다음 달 5일부터 10월 4일까지 추석 선물 상한액 적용이 가능하다.올해 시행 7년 차인 ‘김영란 법’은 그간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금품수수와 같은 불공정 관행을 대폭 개선했다. 청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농축수산업계 등 관련 단체들은 농촌에서 농업 생산비 증가와 자연재해에 따른 작황 부진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돼 왔다며 상한액 인상을 주장해왔다.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에 선물 가액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식사가액 3만 원은 그대로 두었다. 이처럼 김영란 법은 긍정적인 측면 외에도 사회·경제 현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덕분에 민생 활력을 저하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잖다. 축산 분야 생산자들은 인상 폭이 물가 상승률 등을 따르지 못해 기대 밖이라는 반응이다. 실효성에 의문표를 단다.현실과 맞지 않는 가액 기준과 인상 폭, 적용 대상 등을 이유로 해당 법률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정치권은 역풍을 우려, 묵묵부답이다. 부정부패 척결과 경기의 상관관계에 고개가 갸웃한다. 법은 현실과 부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8

고딕건축 발상지-파리 북부의 생 드니 성당

서양미술사에서 통용되는 몇몇 용어들은 특정 미술을 낮추어 부르기 위해 악의적으로 고안되었다. 르네상스 끝 무렵 잠깐 등장한 매너리즘,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준 인상주의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세에 나타난 고딕의 경우도 그렇다. 고딕(Gothic)이라는 단어 안에는 벌써 고트족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야만족의 미술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이것은 미술사적으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이다. 고대를 모범으로 한 자신들의 업적에 가치를 더할 의도로 앞선 시대를 ‘암흑’으로 규정하고 그 때 유행한 건축 양식을 고딕이라 불렀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이 야만스럽다고 평가했던, 그래서 고딕이라고 불렀던 건축은 실제로는 고트족의 유산도 아닐뿐더러 야만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신비로운 빛을 직접 경험했거나 끝없이 솟아 오른 쾰른 대성당의 장엄함 앞에서 압도당한 경험이 있다면 중세를 감히 암흑이라거나 야만적이라 섣불리 폄하하거나 폄훼하지 못할 것이다.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대략 1150년 무렵으로 한 세기 이상의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로마네스크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전 유럽에 확산되고 있을 때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건축은 높고 웅장한 몸집을 완성하기 위해 두꺼운 벽체와 육중한 기둥을 필요로 했다. 고딕역시 높이를 지향했다. 신을 향한 충성심일까? 종교권력의 욕망일까? 구원에 대한 끓어 넘치는 간절함일까? 무엇이 중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높은 교회를 짓게 했는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고딕으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더 높아졌고 더 화려해졌다. 더 높아졌지만 무게를 덜어낸 듯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장식성 풍부한 창틀 트레이서리(tracery)가 파사드 벽면 빈 공간을 수놓듯 채우면서 시각적 무게가 더욱 줄어 들었다. 고딕이 지닌 수직 상승적 외형은 건물 외부를 장식한 첨탑을 통해 보다 강조된다. 고딕은 어떻게 무게를 극복하고 높이를 추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화려함을 통해 고딕은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고딕이 처음으로 발달한 곳은 프랑스 수도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 드 프랑스지역이다. 특히 파리 북부에 위치한 생 드니(Saint Denis) 성당 주보랑 부분에서 처음으로 고딕의 건축형식이 등장했다. 생 드니 성당은 프랑스 왕가의 무덤으로 기능하던 곳으로 파리의 수호성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게 봉헌된 교회이다.성인 디오니시우스, 프랑스식 발음으로 생 드니는 3세기 중엽 갈리아 지역 복음화를 위해 교황 성 파비아누스가 파견한 일곱 명의 성직자 중 한 사람이었다. 파리의 초대 주교로 임명된 디오니시우스는 기독교를 전파하다 체포되어 로마의 신 메르쿠리우스를 경배하던 언덕에서 참수를 당했다. 그 언덕을 지금은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몽마르트르(Montmartre)라고 부른다.전설에 따르자면 참수당한 디오니시우스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으로 몇 킬로 미터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자신의 무덤 자리에 이르러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4세기 후반 그곳에 처음으로 지어진 교회가 생 드니이다. 생 드니 성당에 고딕의 건축원리를 적용한 사람은 1122년 생 드니 수도원장으로 임명된 쉬제르(Suger)이다. 이미 일 드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로마네스크를 대체하는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대성당들이 건축되는 것을 목격한 수도원장은 생 드니 수도원 교회를 개축하면서 보다 치밀한 방식으로 고딕의 건축 언어를 적용했다. 교회 건축에서 주제단이 위치하고 성직자들의 자리가 마련된 곳을 내진(Choir)이라고 한다. 내진을 밖에서 돌아가며 감싸는 통로를 주보랑(Ambulatory)라고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미술사 처음으로 고딕의 건축 구조를 만날 수 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08-28

용이 된 신라 문무왕, 경주 문무대왕암

청명한 하늘과 드넓은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 사이로 거대한 암초가 눈에 들어온다. 감포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에 웅장하게 솟아오른 자연 암초다. 동해의 거센 파도가 바닷가로 들이치는 것을 막는 이 거대한 암초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을 몰아내어 통일 신라를 이뤘던 문무왕(文武王·재위 661~681)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문무왕은 신라의 일반적인 장례가 아니라 화장하여 바다에 산골(散骨)하는 장례 의식을 유언으로 남겼다. 문무왕의 유언은 비교적 세세하게 남아있다. 경주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문무왕릉비를 발견했는데, 비의 뒷면에 유언이 새겨져 있었다. 문무왕의 업적을 세세히 나열하고, 태자의 왕위 계승을 왕의 관 앞에서 하길 바란다. 이는 왕권을 높이고 태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간소한 장례와 화장을 당부하였고, 통합된 삼국 사회에 대한 의견도 제시한다. 문무왕이 죽자 평소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대왕암에서 뼈를 뿌렸다고 한다.신라는 동해안에 인접하여 바다를 통한 교류가 많고, 3~5월에 왜의 침입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특히 신라 인근의 바다는 대기가 불안정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용오름 현상이 잘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물이 있는 곳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라에도 당연히 오래된 용신앙이 있었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으며, 석탈해의 설화에서도 세상을 통치하는 용왕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라의 용신 숭배는 문무왕 시기에 불교와 융합하면서 호국신앙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나당전쟁이 일어나자 문무왕은 불교 법사 명랑(明朗)에게 승리할 수 있는 비법을 물었고, 명랑은 용궁에서 배워왔다는 비법을 전수한다. 문무왕은 사천왕사라는 절을 세워 당나라 배를 두 차례 침몰시켰다. 문무왕은 사후 자신의 유언대로 불교를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는 동해의 용이 되었다. 그 후 아들 신문왕에게 김유신과 함께 나타나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건넨다. 당시 사람들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영험하게 여겼고 아직도 용신앙은 이 지역에 남아있다. 기우제는 지낸 것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때는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지금도 1년 내내 무속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문무대왕암의 중앙에는 수면에서 깊이 1.2m의 십자형의 수로가 있고 그 중앙에는 거북이 모양처럼 보이는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수로는 입수구와 출수구의 높이를 달리하여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정하고 수로의 벽을 정비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중심부의 큰 암석을 석실의 덮개돌로 여겨 그 아래 부장품이나 봉인된 항아리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암초 위의 물을 빼고 조사한 결과 석실도 부장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을 문무대왕이 잠든 곳으로 여기는 것은 감은사와 이견대, 문무왕릉비, 사천왕사 등과 같은 문무왕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 여러 기록에서 문무대왕암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감은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불교의 힘으로 왜구를 격퇴하고자 짓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에 완공된 절이다. 현재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절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큰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통일신라 초만해도 해수면이 지금보다 1m 이상 높아 감은사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왔으며, 실제로 감은사지 터 인근에 나루터도 발견되었다. 감은사 주춧돌 아래는 다른 사찰들과 다르게 틈이 있다. 사찰이 땅에서 살짝 떠 있을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금당의 오른쪽 아래쪽에는 기록과 일치하는 용혈도 발견되었다. 이 용혈은 강으로 이어졌다가 문무대왕암이 있는 바다로 연결된다. 신문왕이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이 대왕암에서 지내다 강을 타고 용혈을 통해 감은사에 드나들 수 있도록 마련된 통로로 알려져 있다. 감은사는 고려 몽고침입 때의 화재로 주춧돌과 탑 두 개만 남아있다.이견대는 문무대왕암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지어졌다. 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이 상봉한 곳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노래한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의 부자상봉을 기뻐하며 대를 만들었다고도 하며, 만파식적을 얻고 기뻐하여 만들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문무왕에 대한 제례를 지내던 장소이자 왕권을 강화하기에 좋은 곳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왜의 침공을 경계하기에도 좋은 지리적 거점이었다.문무왕을 화장하여 동해에 산골했고, 사람들은 그가 동해의 용이 되었다고 믿었다. 현재 문무대왕릉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남아있고, 대대로 영험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염원처럼 굳건히 버티며 동해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거대한 자연 암초, 문무대왕릉의 전경이 저 멀리 바다 위에 펼쳐진다. 청명한 하늘이 몹시도 선명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8-28

쪼잔해 보이면 큰 정치 못한다

김진국 고문 오늘(28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취임 1주년이다. 1년 전 그는 대선 패배 5개월 만에 77.77%를 얻어 당 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 사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전하고 있다. 이 대표의 ‘리스크’가 그대로 민주당에 부담을 주고 있다.대선에 패배하자마자 대표로 복귀한 건 이례적이다. 경쟁자들은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갑옷’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수사의 진척이 더 빨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 방패’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를 네 번 받았다. 곧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도 소환될 예정이다. 구속 영장 청구가 임박했다. 내년 4월 총선이라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에서도 논란이다.검찰이 정치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가 사법의 치외법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에는 부패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불만도, 걱정도 거기 있다. 분명한 증거만 있다면 정치 부패는 엄단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희망이다.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다운 당당함보다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려는 안간힘 같은 인상을 준다. 어떤 탤런트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했다. 국민의 믿음을 먹고, 희망을 대변하는 지도자라면 쪼잔한 행보는 피해야 한다.검찰이 30일 소환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이번 주에는)“일정상 도저히 제가 시간을 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일(24일) 오전에 바로 조사받으러 가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거부해 24일 출석은 무산됐다. 또 8월 31일까지 소집해놓은 임시국회 회기를 ‘25일까지’로 단축했다. 비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이다.검찰도 소환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내일 오전 가겠다”라는 통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해보라는 뜻이다. 이 대표 조사에 반영해야 할 이화영 전경기도 부지사의 재판이 이 대표 지지자들의 방해로 지체되고 있다. 이 대표는‘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본회의에서 투표해야 한다. 민주당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찬성하라고 말하면 된다.당당하면 소환 날짜가 무슨 상관인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서 조사받겠다고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쪼잔해 보인다. 불체포 특권을 던지기로 했으면 부를 때 나가면 된다. 한 사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피하려고 국회의 회기를 줄이고, 날짜로 씨름하는 것 역시 좀스럽다.이 대표는 변호사다. 재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체질일 수 있다. 그럴수록 국민 눈에는 혐의가 짙어진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범죄 혐의의 사실 여부다. 대장동 개발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삼킨 민간 업자들로부터 특혜의 대가가 없었나. 백현동 특혜의 대가는 없었나.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이용해 방북하려 한 것은 아닌가.이런 의혹들에 정면으로 답변해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증거를 대라’,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라며 ‘법비’(法匪)나 쓰는 법 기술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무죄 가능성이 1%만 있어도 일반 국민은 보호받는다. 일반 국민은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무죄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다르다.검찰이 어떻게 하든, 국민이 무죄라고 믿어야 한다. 더구나 출석 시기나 국회투표의 유불리를 따지는 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방어는 ‘진실’이다.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가 모두 쌍방울 대납을 인정했다. 김 전 회장이 조폭 출신이라고 공격한다고 뒤집을 수 없다. 더구나 경기도 법인카드로 음식을 사 먹고, 생활용품을 사들인 것을 모른다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다. 공무원을 머슴이나 하녀처럼 부리고도 모른다고 해서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 해외여행, 골프를 함께 한 부하직원을 모른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설령 그렇게 재판은 넘길 수 있어도, 국민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나. 공직자의 가장 큰 악덕은 거짓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7

마침내 초대받은 연주회

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처럼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 의자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공기를 정비하듯 잔기침들 다듬는 사이독주의 예열이듯 소름 돋는 다리 사이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전율을 견디느라 다리가 다 녹아나도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없이 사라질 뿐―정수자,‘무반주첼로 의자’전문 (파도의 일과, 2021)정수자 시인이 선곡한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감상해 보려고 한다. 실은 시인이 주목한 대상은 첼로도 연주자도 아닌 첼로 연주자가 앉은 의자이다. 말하자면 철저히 의자의 입장으로 듣는 첼로 연주라고 해야 할 것 같다.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지만 바흐 시대에는 첼로가 매우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 독주곡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악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수 세기 동안 이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독주 작품이 아니라 연습용 음악 정도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첼리스트가 앉는 의자에 입각하여 “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이라고 클래식의 바운더리에서 외따로 떨구어 놓고 있다. “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이라고 말이다. 음악은 영혼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정수자 시인이 그려내는 첼로 연주는 마치 클래식 음악의 세계가 초대받지 못한 파티 같은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진다.기실 이 작품은 저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바흐의 ‘첼로 모음곡 2번 d 단조’의 연주 영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즉석 연주회의 영상 속 로스트로포비치는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의자에 앉아 연주한다. 그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후 모든 감정을 담은 그의 얼굴에는 아낌없이 쏟아부은 연주자의 온 영혼이 담겨있다.하여 시인은 바흐의 첼로 연주곡에 감상자인 자신을 곡에 삽입하여 마치 의자에 체감되는 첼로의 전율하는 현을 의자 자신이 온몸으로 감내하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의자는 “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 연주장의 “공기 중에” 조심스럽게 퍼지는 현을 “정비하듯”“잔기침들 다듬으며” 연주 전 한껏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주가 무르익을수록 의자의 다리에“소름”이 돋는다. 이제 의자는 첼로 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고조된“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 장벽도 연주도 탈주를 감행한다. 마침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를 작은 의자는 “다리가 다 녹아나도”견디며 그 경이로운 현의 전율을 체득한다. 이희정시인 우리가 정수자 시인의 시를 현대시조나 정형시라고 부를 때 발견하게 되는 언어의 형상은 무반주 첼로의 현으로 대입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슴을 손끝으로 누르고 떨리는 혀끝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뒤, 가지런히 고르는 고독한 마음의 현이다.마찬가지로 시인이 매번 마음이 약동하는 순간이 아니라, 감정이 잦아드는 마지막 순간에 대해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주의 절정에서 고조되는 감동의 격정이 아닌 감정이 고요해지는 순간에 대한 이 명연주는 혼이고 영혼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연주한 의자는 첼로의 음역만큼 깊이 파고든다. 어떤 연주든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 연주의 의미가 된다. 이 숭고한 의자의 연주는 삶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완전한 고요와 아름다움의 순간이 될 것이기에.“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 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 없이 사라질 뿐”

2023-08-27

시민과 함께 열어 갈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이강덕 포항시장 지난 7월 20일 포항의 미래를 새롭게 쓸 역사적인 겹경사를 맞이했다. 바로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예비타당성 조사 최종 통과를 한꺼번에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국가 경제 안보와 탄소 중립을 선도할 미래 신산업 혁신도시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뜻깊은 경사였다. 무엇보다도 이들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50만 시민의 응집된 뜨거운 열망과 단합된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아울러 경북도와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도·시의원과 기업, 시민·사회·경제단체와 교육기관 등 지역 사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돼 지혜와 역량을 모은 것 역시 큰 원동력이 됐다.그동안 우리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차전지와 수소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자 노력했고, 차별화된 RD 인프라와 기업 투자 환경을 마련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방사광가속기 등 풍부한 산학연 RD 기관 및 우수한 인재, 광역 교통망 보유 등 강점을 바탕으로 2019년 배터리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받아 전국 유일 4년 연속 우수 특구로 선정되었으며,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및 국제공인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 등 신산업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또한 시의회와의 협력을 통해 이차전지·수소 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조례를 선제적으로 제정한 것을 비롯해 전담 조직(배터리첨단산업과·수소에너지산업과)을 신설하면서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 근거, 추진 동력 또한 마련했다.이러한 선제적 노력의 결실로 포항은 2027년까지 이차전지 관련 기업으로부터 14조원에 이르는 투자가 약속되어 있고, (주)한수원의 연료전지 발전소가 준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연료전지 전문기업 FCI 생산공장도 곧 착공할 예정이다.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예타통과는 그동안 축적된 역량과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로 포항이 제철보국에 이은 전지보국(電池報國)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혁신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따라서 이제는 특화단지와 클러스터를 더욱 고도화 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맞춤형 후속 전략의 본격 추진을 통해 기업 상생 산업 생태계 조성과 도시와 기업 동반 성장의 핵심인 혁신 인재양성 등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경북도 등 유관기관과 함께 이차전지 특화단지 및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추진단을 출범하고 기업 협의체를 구성해 특화단지·클러스터의 조속한 구축과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기업이 원하는 상생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또한 배터리 글로벌 혁신특구, 수소특화단지, 기회발전특구 등 규제 특례·세제 혜택 등으로 기업의 지방 이전과 혁신 성장을 촉진할 투자유치 인프라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국제 규모의 컨퍼런스, 포럼 등을 지속 개최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포항이 가진 미래 비전과 성과를 대내외에 알릴 계획이다.이러한 노력을 통해 글로벌 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신산업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첨단산업 생태계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갈 계획이다. 세계 1위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도시로 도약할 비전과 세부 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해 오는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 생산, 양극재 매출액 70조원, 고용 창출 1만5천명을 달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소 분야도 2030년까지 기업 70개사 유치와 3천600여명의 고용을 이끌어 내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 인구가 들어와 살기 좋은 정주 여건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계속해가겠다.포항시민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위대한 저력을 갖고 있다. 또한 포항은 제철산업을 통해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특별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50만 시민과 함께 전지보국(電池報國)의 일념으로 포항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대한민국 신산업 혁신과 지역균형 발전을 주도해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8-27

사실과 믿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처리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미 2021년에 방류를 결정했고, 올해 1월에 구체적인 방류시기를 예고한 터라 그 동안 이 문제로 찬반양론이 분분했는데, 방류가 시작되고 나니 인터넷이 더 뜨거워졌다.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쌓이게 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일과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 시스템이 파괴되어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면서 시설 내 용수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로 오염되었다. 이 원자로 연료봉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투입하고 있어서 원전에서 매일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올림픽 수영장을 500개 넘게 채울 수 있는 양이 1000여 개 탱크에 저장되어 있는데 한계에 다다라 2021년에 방류를 결정하고 이번에 첫 방류를 시작했다. 하루 약 460톤씩 17일간 7,800톤을 방류하고, 내년 3월까지 같은 방식으로 세 번 더 방류한다고 한다. 현재 저장된 오염수를 모두 방류하는 데 30년을 잡고 있다.문제는 이 오염처리수에 삼중수소라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기준에 맞게 희석시켰다고는 하지만, 이 위험물질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는 않는 실정이라 많은 시민이 반대하고 있다. 내 지인들은 대부분 반대 의견이라 반대에 기울다가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에 반박할 거리가 마땅치 않다. 반대하는 입장의 논거는, 일본이 한국과 가까우니까 위험하지 않겠느냐거나 막연히 안전하지 않다고만 할 뿐인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는 논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삼중 수소가 자연에도 있다는 사실, 방류기준이 리터당 1만 베크렐(삼중수소 등 핵물질의 방사능 측정 단위)인데, 현재 방류하는 물의 삼중 수소 농도는 그보다 6배 낮은 1500베크렐이라는 사실, 해류의 흐름으로 보면, 방류된 물이 한국으로 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 쪽으로 갔다가 한국 근해에 오는 데는 3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방류를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게다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과 해일로 ALPS처리 되지 않은 방사능 물질이 많이 방류되었는데, 그 후 10여 년간 태평양의 방사능 물질 농도와 수산물을 조사 결과 위험한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다 알아도 불안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가장 근원적인 불안의 실체는 원자력에 대한 불안이다. 그러나 원자력을 반대하는 것과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국면에서 시급히 해결할 과제는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비호감과 불신이다. 믿음에는 사실뿐 아니라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고 싶고, 미워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가 여러 실책으로 비호감을 쌓아온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국민의 오염처리수 불안을 해소하는 지름길은 국민을 위해 정부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2023-08-27

역행자와 삶의 운명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운명은 정해진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고 살아가는 운명선이 그려진다. 95퍼센트의 인간은 타고난 운명 그대로 살아가며, 이들을 순리자라 부른다. 5퍼센트의 인간은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을 갖고 있고 이 능력으로 인생의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 타고난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의 틀에서 벗어난 자를 역행자로 부른다. 지구촌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원칙에 따라 한 번 살다가 한 번 죽는다. 한 번 살다가는 삶에 자신의 운명선을 개척해보고자 하는 사람만이 역행자가 될 수 있고 인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농장에 있는 닭을 보면, 이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 닭은 한정된 울타리에서 산다. 닭은 유전자 명령에 따라 모이를 먹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때로는 다른 닭들과 싸움도 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닭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닭의 활동 반경도 삶의 끝도 모두 정해져 있다.인간의 삶도 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에도 울타리가 있고 이 울타리는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으로 이뤄져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의지가 있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이는 모두 망상이다. 삶의 자유를 성취하려면 생각의 변화를 주어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단련한 닭은 ‘슈퍼 닭’이 되어 울타리를 끊고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될 것이다.삶에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돈, 시간, 정신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부호 빌게이츠는 이 3가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당신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빌게이츠의 운명선 변화는 하버드 대학 1학년 중퇴하면서 시작되지만 초년시절부터 학과 수업이 끝나면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 마을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한다.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 공부가 싱거워 지하 4평 사무실에 ‘집집마다 PC를 도입하여 인류의 삶의 질을 두 배 올리겠다’라는 비전을 걸었을 때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IBM 대형 컴퓨터에서 오늘날 작은 PC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고 스마트 폰으로 발전하면서 세상은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개인은 물론 사회적 삶의 질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의식 해체의 3단계, 즉 탐색, 인정, 전환에서 왔다. 탐색을 통해서 나를 알고 주어진 삶의 요건을 인정하는 것에서 긍정의 에너지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적 나로 전환하는 것이다.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흙수저에서 출발했던 순리자 삶에서 역행자로 변신하고자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행동했는지 그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내 운명선인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두드린 만큼 열리는 것이다.삶의 운명선은 주어진 삶의 환경을 인지하고 그에 순응하는 순리자에서 전환하여 틀을 깨고 벗어나는 용기와 생각과 행동이 결정하는 것이다.

2023-08-27

‘오펜하이머’를 보는 하나의 시각

김규종 경북대 교수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인상과 미학적 인식, 그리고 감수성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호사가(好事家)는 그것을 취향(趣向)이라는 어휘 하나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그런 차이는 미학적 훈련의 결과에서 발원한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미학 훈련을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을 수용하는 기본자세부터 다르다. 대상을 읽고 보고 느끼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간파하는 능력 차이가 개인별로 크다.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영화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기저 텍스트로 삼은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평전이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영화도 세 시간을 꽉 채운다.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원자력 위원회 의장인 루이스 스트라우스(1896∼1974) 제독과 관련된 청문회 장면이었다. 한편으로는 메카시 광풍에 휩쓸린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관직에 내정된 스트라우스 제독의 공개적인 청문회가 진행된다. 전자는 오펜하이머의 수상쩍은 과거 행적을 추적하여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리는 것이 목적이다. 후자는 스트라우스 제독이 과연 상무장관직을 수행할 능력의 여부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오펜하이머도 스트라우스도 패배자로 기록된다.오펜하이머가 1953년 12월 기소되어 그 이듬해부터 보안 청문회에 소환된 최고의 원인 제공자를 평전 작가들과 놀란 감독은 스트라우스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오펜하이머의 정적(政敵)으로 등장하는 스트라우스의 내면세계를 인도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가 원자력 위원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스트라우스는 최대한 친절을 베풀지만, 자부심 넘치는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위원회 건물 바깥에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서 있다. 아인슈타인을 향해 오펜하이머가 다가가서 몇 마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를 뒤따라오는 스트라우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냉정하게 지나쳐 버린다.문제는 오펜하이머의 자유분방하고 공격적이며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정치적인 성향이 스트라우스와 지극히 대극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민주 선거로 집권한 에스파냐 좌파 정부를 전복하고자 1936년 7월 프랑코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에스파냐 내전이 발생한다. 3년에 걸친 내전으로 무려 60만의 안타까운 인명이 희생되기에 이른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을 통해서 내전으로 발생한 수많은 고아와 난민을 위해 거액을 송금한다. 스트라우스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행적까지 추적하여 그를 청문회에 세운 것이다. 오해에서 시작된 불씨가 원한으로 발전하여 복수에까지 이르는 지점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우리를 오해하고 이를 갈며 음해한다는 사실을.

2023-08-27

일주문(一柱門)

우정구 논설위원 산중의 사찰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 있다. 일주문(一柱門)이다. 불교의 철학을 담아 기둥을 한 줄로 세웠기 때문에 일주문이라 부른다.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얹는 것이 보통의 건축 양식이나 일주문은 일직선상에 있는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양식을 취한다.일주문의 백미로 부산 동래 범어사 일주문을 손꼽는다. 2006년 국내 최초로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이다. 높은 화강암의 주춧돌 위에 건물을 앉혀놓은 상체 비만형 건축물이다.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산과 계곡의 바람과 태풍에도 끄덕이 없다. 한국 불교건축이 가진 독특한 기술 덕분이다.사찰의 일주문이 모두 이처럼 특이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한줄로 기둥을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의미한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심으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이다.일주문부터는 부처님의 세계다. 비록 담벼락은 없으나 부처님 세계와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와 구분되는 문이다. 이곳을 통과한 모든 사람은 지금부터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불교 문화유산 지정이 그동안 사찰의 주요 불전 위주로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문화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주문이 무더기로 보물로 승격된다.문화재청은 올해 전국 50여 개 사찰 일주문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끝에 대구 달성 용연사, 합천 해인사 등 6곳의 일주문을 보물로 지정키로 했다. 작년 대구 동화사 등 전국 4개의 일주문이 보물로 지정된 데 이은 추가 지정이다. 일주문의 가치가 늦게나마 제대로 평가를 받아 다행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7

노년기 건강 비결은 맞춤형 운동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신체활동이란 우리 몸에서 에너지소비를 발생시키는 모든 움직임을 말하는데, 운동과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 전체가 포함된다. 이러한 신체활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할 경우 생애주기 구분 없이 질병 예방 및 건강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 신체활동은 심혈관질환, 암, 당뇨병과 같은 비감염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체활동이 부족한 사람은 활동량이 충분한 사람에 비해 사망 위험이 20~30% 높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은 2025년까지 신체활동 부족 비율을 10%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신체활동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우리나라 국민 중 신체활동 실천율이 가장 낮은 생애주기는 노년이다. 노인은 시간적 여유와 신체활동 기회가 비교적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소·근력 신체활동 구분 없이 충분한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노인이 3명 중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최근에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의 유산소 신체활동 실천율, 즉 일주일에 중강도 신체활동 2시간 30분 이상이나 고강도 신체활동 1시간 15분 이상 또는 중강도와 고강도 신체활동을 섞어서 하는 노인의 수는 33.0%로 3명 중 1명만 권장 수준만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36.6%, 여성이 30.1%로 남성이 여성보다 6.5% 높은 실천율을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감소 추세다.게다가 우리나라 노인이 최근 1주일 동안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아령, 철봉 등의 근력운동을 2일 이상 하는 근력운동 실천율은 18.3%로 6명 중 1명만 권장 수준만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30.5% 여성이 8.7%로 남성이 여성보다 21.8p 높은 실천율을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증가 추세지만 아직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이 최근 1주일 동안 걷기를 1회 10분 이상, 1일 총 30분 이상, 주 5일 이상 하는 걷기 실천율은 39.9%이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44.3%, 여성이 36.5%로 남성이 여성보다 7.8%p 높다. 이 또한 전체적으로는 감소 추이를 나타내는 가운데 남성이 15.7%, 여성이 14.5% 줄어들었고, 같은 시기의 성별 차이도 9.0%p에서 7.8%p로 1.2% 감소했다.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변인은 다양하지만, 특히 고령화에 의한 건강 악화는 신체활동 부족과 체력 저하가 가장 큰 원인이다. 노화에 의한 체력 저하는 신체활동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로 인해 감소된 신체활동량은 또다시 체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여러 정책 및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노인의 건강 악화 예방과 건강 및 체력 증진을 위한 대안으로 여러 가지 운동 프로그램을 권장하고 있다.하지만 지역사회 노인 신체활동 지원기관은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체육회로 분화되어 분절적으로 운영 중이며, 기관별로 정책 목표 및 신체활동 주제만 다를 뿐 대상과 접근전략 및 접근생활터는 거의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업대상이 중첩되거나 탈락되는 등 서비스의 효율성이 떨어져 지속성 있고 효과적인 노인 체감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더욱이 노인의 건강수준을 허약과 일반으로만 구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노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는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이 부재하여 신체적 건강증진 효과가 다소 떨어지고 운동 상해 발생 등 부정적인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기존 체육시설에 대한 노인 활용도 제고 등 장비 관련 정책도 정부 부처에서 추진 중이나 노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신체활동 친화적 환경 관련 정책과 사업은 미흡하다 할 수 있다.이미 주지하듯이 노년기의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증진을 도모한다. 아울러 신체활동 부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고혈압,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에 의한 비용부담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노인의 신체 활동 실천율은 감소하고 있으며 실천 수준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우리 국민 누구나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정부는 분절적으로 추진 중인 노인 건강사업을 체계적이고 효율화하기 위한 중앙단위의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자체는 현재 지역사회에서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는 노인 대상 운동 프로그램의 효과성 및 안전성을 진단하고 개선하여 노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허약과 일반으로 단순 구분된 운동 프로그램을 더욱 세분하고 각 분류별로 표준화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주거지역으로 노인이 자연스럽게 신체활동을 실천할 수 있는 보행 및 활동 친화적인 환경조성도 풀어야 할 과제다.

2023-08-27

ESG경영과 노동

유성찬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피브리노겐(fibrinogen)은 혈액응고인자이다. 상하서열이 확실한 개코원숭이 집단에서 계급이 낮은 원숭이일수록 혈중 피브리노겐의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낮은 계급의 원숭이는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피브리노겐의 혈중 농도가 증가한다고 한다.리처드 윌킨슨이라는 영국 노팅엄 의과대 사회역학 교수는 원숭이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심리적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로 혈중 피브리노겐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윌킨스 교수가 영국 공무원 3천300여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었는데, 공무원 직급이 낮을수록 피브리노겐 수치가 남녀차이를 떠나 모두 높게 나온다는 실험결과를 확인했다. 하위 공무원의 혈액은 낮은 계급의 개코원숭이처럼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 어딜까? 가족, 직장, 계모임, 동창회 등 사람이 만드는 조직들 중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계급의 높고 낮음이 있는 곳은 직장이다.기업에는 상하관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직장은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는 생존의 일터이다. 평화롭게 노동을 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이지만, 그렇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쟁도 있을 것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비위에도 거슬리는 일이 생길 것이다.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지만, 상하 수직적 관계에서 지시와 업무수행이 있을 뿐이라면 일상이 고통이 된다.이러한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수평적 관계, 즐거운 직장생활, 서로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터공동체, 직장인과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해주는 노동조합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중요하다.생산성도 올리고 일하기에 즐거운 노동현장, 이처럼 기업과 노동이 함께 공유하는 목표가 바로 노동현장에서 ESG경영이 될 것이다.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믿고서 노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사회에서 노동이 필요불가결한 것이기에 ‘신성한 것’이라고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이다.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家長)의 입장에서는 노동만이 생존의 제1 조건이기에 ‘착한 노동’은 맞다. 그리고 직장에서, 공장에서, 노동현장에서 ‘착한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행동’으로 가득한 분위기의 생산현장이라면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은 자연스러운 상상이다.필자는 짧은 삶의 경험이지만, 인간은 ‘착한 노동’의 방식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쟁투가 벌어져 파업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사회적 투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크게는 이 세상이 평화롭게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것은 ‘착한 노동’을 하는 가장들이다.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었을 때, 가장은 노동할 곳을 찾아 평생고용된 직장을 희망하였다. 실직만 하지 않는다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직장문화가 인권이 지켜지는 직장인가 아닌가가 중요하게 될 정도로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직장문화도 많이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그리고 중대재해법이 보여주듯이 노동현장의 안전과 환경이 더욱 중요해졌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고 가장과 그 가장의 가족들, 생존을 지켜주는 직장문화, 공장을 친환경일터로 만들어 노동자의 건강권, 환경권을 지켜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해진 것이다.또 여성동료에게 성적인 추행을 하는 것은 해고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도록 되어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 서로의 기분과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터 분위기로 변화해가고 있고 또 큰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당연히 피브리노겐의 혈중수치는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노동현장의 ESG경영이다.요즘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 극한호우는 산업혁명이후 인간이 뿜어낸 석탄, 석유. 화석연료의 이산화탄소로 인해 발생한 인류의 위기이다. ‘인류의 생존이냐, 파멸이냐’라는 기로에 선 현실에서, 노동자는 지역시민으로 변화한다.노동현장에서 퇴근하면 지역시민의 자격으로 쓰레기에서 플라스틱과 비닐, 종이를 분리하여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정성스럽게 음식물쓰레기통에다가 담게 된다. 이러한 쓰레기 분리수거 행동이 지역의 환경을 맑게 하고, 나라의 에너지산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플라스틱과 비닐, 음식물쓰레기에서 경유와 바이오가스 등 신재생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노동하는 인간에게 역사적 사명감이 있다면, 전세계의 노동자의 이름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슬로건과 목표를 세울 만하다. 실천하는 노동, 노동조합은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므로 노동조합내에서도 ESG교육을 실천하여, 이 세상의 ESG경영을 노동과 노동조합이 리드해가는 시대적 추세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2023-08-27

주목받는 김천고의 실험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내 거주 외국인 250만 명 시대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공장은 물론 농어촌에도 영농과 어로 활동에 큰 몫을 차지한다. 매년 수만 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까지 수입해오는 마당이다. 대학들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골몰한다.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12개 대학이 몰려 있는 경북 경산의 일부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학교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재정상황이 나쁘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구멍 난 재정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현재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대략 16만 명으로 추산된다. 교육부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세계 10대 유학강국 도약’이 목표다. 어느 순간 대학들이(대부분 전문대학들이긴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정상 운영이 어려운 재정상황에 몰렸다. 매년 재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이 자리를 전문대생들이 메우는 연쇄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빈자리와 재정난 타개를 위해 대학들이 유학생들에게 눈을 돌렸다. 유학생 중 상당수는 학교에서 나가 산업체 등으로 간다. 비록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어도 필요한 산업인력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유학생들의 이탈 단속도 손 놓았다. 아예 발상을 바꿨다.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전문 교육을 해 지역 기업에 취업시키고 사회 정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대학에 이어 고교까지 유학생 유치에 뛰어들었다.경북 김천고가 내년 3월부터 16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받기로 했다. 경제 사정에 따라 장학금도 지급한다. 자립형 사립고로 명문 고교 반열에 오른 김천고는 신입생이 미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머잖은 장래에 닥칠 학생 부족 사태에 대비했다. 김천고를 따라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학교 측은 유학생 학부모의 동반 입국도 추진한다. 부모가 함께 학생의 교육 환경을 돕고 부족한 지역 일손을 메우는 방안도 세웠다.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2만6천788명이 국내에 들어왔다. 영농철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수확과 작물관리에 귀중한 손이 됐다. 지금 농어촌에는 이들이 없으면 농사지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산업현장도 당장 멈춰 설 판이다. 인력난의 한국에 한줄기 단비다. 마침 경북도도 ‘외국인 광역비자’제도를 도입, 외국인 유치에 물꼬를 텄다. 비자 발급 권한 일부를 도지사가 갖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지방정부가 지역에 필요한 인력을 주도적으로 선정해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게 됐다.세계는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인구절벽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 됐다. 무려 2천200년을 지탱해온 로마제국과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외국인을 중용해 부강한 나라가 됐다. 개방과 포용의 산물이었다.김천고가 외국인 유학생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교육에 미칠 파문과 효과가 주목된다.

2023-08-24

옛명성 찾아 나선 동성로

우정구 논설위원 1960년대부터 대구 동성로는 서울의 명동처럼 젊은이가 몰려드는 거리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곳이다.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 관광객들도 쇼핑코스로 반드시 동성로를 찾을 정도였다.40년 이상 명실공히 대구의 일등 상권으로 군림했고, 대구시민에게는 ‘시내’로 통하던 최대 번화가다. 남쪽으로는 반월당, 서쪽은 중앙대로와 종로, 북쪽은 대구역, 동쪽은 공평동일대까지 상권이 뻗혀 있어 규모면에서도 이만한 번화가는 전국적으로 드물다. 주말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활기와 젊음이 넘쳐나던 대구의 명물이다.그러나 2000년 이후 부도심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동성로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빈 점포가 늘어나는 등 눈에 띄게 상권이 위축됐다. 동성로 상권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대구백화점도 그 사이 문을 닫고 말았다.대구시가 침체된 동성로 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관광특구 지정과 청년문화 부흥, 도심공간 구조개편 등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동성로의 옛 명성을 찾아 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성로를 직접 방문하고 “동성로 상권이 살아야 대구 전체가 산다”고 말하고 “동성로를 서울 홍대거리처럼 활기 넘치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시의 후속조치로 보여진다.동성로는 대구를 상징하는 오랜 전통의 중심 번화가다. 홍 시장의 말처럼 동성로의 부흥은 곧 대구 상권의 부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동성로 명예 회복을 위한 대구시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한다면 대구시민들도 크게 환영할 것이다. 대구시의 분발을 촉구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4

가을은 오는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처서 지난 들녘에 가을빛이 어린다. 일제히 벼가 패고 빨갛게 고추가 익어간다. 호박도 누런 배를 드러내고 이따금 메뚜기가 날기도 한다. 한낮은 여전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는 자연현상이 우리 삶을 한결 수월케 한다. 엄동설한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삼복더위도 때가 되면 지나가는 자연의 섭리가 내면화 되어, 고난과 역경에도 쉽사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내성을 갖게 된다.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그것이 가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엔 겨울을, 겨울엔 봄을, 봄에는 여름을 설레는 기대로 맞게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여름의 불볕더위가 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춘하추동은 얼마나 생동적인 순환인가. 이 여름의 막바지에서 누군들 황금빛 들판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손짓하는 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지 않을 것인가.유감스럽게도 인간사회의 계절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지난 정권 동안 줄곧 불어대던 북서풍이 아직도 다 가시지를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심의 풍향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계절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직 계절의 변화를 막고 있고, 방송계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 가는 추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소강상태이나 머지않아 바람의 방향도 북서풍에서 남동풍으로 바뀔 것이다.공산사회를 흔히들 동토(凍土)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얼어붙은 땅이라는 말이다. 그 종주국 소련과 중국에는 해빙의 바람이 불어 어느 정도 눈이 녹고 얼음이 갈라지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 북한만이 유일하게 동토를 유지하고 있다. 그 냉동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돈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불어오는 북풍에 남한의 일부까지 냉해를 입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 북한에도 다양한 경로로 바람이 새어들고 있다고 한다. 냉동고에 구멍이 뚫리면 얼음이 녹을 수밖에 없듯이 머지않아 김정은 일당이 쌓아놓은 빙벽도 결국은 녹아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북서풍은 멎을 것이고 남한에도 온전한 계절이 올 것이다. 북서풍이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고 반대로 남동풍이란 자유진영의 바람을 일컫는 것이다. 최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도 바로 그 남동풍이 될 것이다.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듯 좌파들의 몰락도 머지않은 것 같다. 좌파정당 대표가 열 가지도 넘는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좌파정권 때 임명한 대법원장의 임기도 끝나가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공영방송국 이사진까지 개편되면 명실상부 다른 계절이 될 것이다. 아니 하나가 더 남았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과반수를 확보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얻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북서풍이 겨울을 몰아오고 남동풍이 봄을 데려오듯 민심의 향방에 국운이 달렸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불어가는 바람인가.

2023-08-24

한여름 산행을 즐기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동문산악회가 “경북수목원 둘레길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산행 계획을 알려왔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에어컨으로도 견디기 답답하던 터라 간단히 배낭을 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따라나섰다.청하를 지나 유계리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데 산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를 않아 전조등을 켜고 조심스레 달려 경북수목원에 도착했더니 등산객이 많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조용한 수목원 길을 걸어 능선에 섰다. 간단히 몸 풀고 가슴 가득 숨 쉬어 숲의 정기를 채웠다.안내판을 보며 산행 경로를 짰다. 매봉(833m) 아랫길, 임도(林道)가 아닌 오붓한 산길로 삼거리까지 갔다가 삿갓봉길로 올라오며 한 바퀴 돌아오기로 했다. 다섯 시간쯤 걸어야 한다. 옆길로 내려가니 흐릿하던 숲이 뚫리며 물기 젖은 풀잎들이 다리에 스치고 한 구비 돌 즈음에 벌써 어깨 등어리는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라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예쁜 버섯들이 비에 젖은 갈색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 사진을 찍다 보니 길섶에 붉은 보라색 작은 꽃이 애잔스럽다. 꽃며느리밥풀, 꽃말은 ‘여인의 한’이다.이따금 만나는 통나무 계단 길은 흙이 모두 쓸려나가 앙상해져 걷기가 힘이 든다. 밑둥치가 썩어버린 고목을 어루만지며 내려가다 만난 무덤은 봉우리 흙이 무너져 내려 묘의 상석이 덥혀 잡초만 무성하고, 오르막길에서 만난 돌무지에 돌 한 개 쌓고 산신령에게 가족의 평안을 빌어 보았다.단풍나무 상수리나무가 둘러싼 쉼터에 앉아 막걸리 한 잔 벌컥 마시니 마른 목과 속이 뻥 뚫린 기분에 순간 안개도 싹 걷힌다. 한여름 산행의 땀은 이제 감각도 없다. 1시간쯤 내려오니 졸졸 물소리가 들리고 둥근 나무다리 아래에 흐르는 개울이 보인다. 삼거리다. 개울 건너 물가 자갈밭에 배낭을 벗어두고 발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발등이 간질거려 물속을 보니 버들치들이 모여들어 발가락을 콕콕 문다. 닥터 피쉬의 모습이다. 물은 무릎까지 차고, 어릴 적 발가벗고 풍덩 뛰어 들어가 물장구치던 기억, 그 ‘알탕’을 하고 싶었으나 웃통만 벗고 땀을 씻었다.둘러앉아 김밥 맛있게 먹고 한잔하고 푹 쉬었다가 일어나 삿갓봉 쪽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길 몇 걸음에 또 땀이 흥건하다. 옛 화전민들이 참나무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 터를 지나 오르노라면 갖가지 나무에 이름표가 붙어있다. 참나무 여섯 종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와는 잎의 매끈함이,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또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잎 뒷면의 갈색 털로 구분한단다.멧돼지, 고라니,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곁 눈짓하며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외솔배기에 왔다. 옛날 가래골 사람들이 청하장에 다니던 길목의 정자나무 쉼터에 250년 된 소나무가 아직도 잘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좋다.마지막 영춘정 전망대 입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곧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들 단풍 숲을 그려 본다. 숲과 둘레길, 계곡물과 바위, 꽃과 버섯을 눈에 담으며 걸어본 약12km 1만8천 보…. 훌륭한 8월의 힐링 산행길이었다.

2023-08-24

을묘일주(乙卯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두 번째는 을묘(乙卯)이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과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같은 목(木)기운으로 봄에 솟아나는 푸른 새싹의 모양이다. 동물로는 토끼다.을묘일주는 풀밭과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초원의 물상이다. 매우 명랑하고 인정이 많은 편이다. 풀과 같이 연약한 화초이고 넝쿨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외유내강형으로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향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티를 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잘 받는 여린 심성이다.내면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소녀의 마음이다. 천진난만하고 밝고 생글생글하지만 마냥 애 같지는 않다. 안으로는 은근한 끈기가 있고,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 주관을 잘 바꾸지 않으며, 좌절이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상당한 고집의 소유자다. 을묘는 3대(을묘, 임자, 신유) 고집 중 하나다.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활력이 있으며, 환경적응 능력도 뛰어나다. 겉으로는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성격이 강직하여 누구도 고집을 꺾을 수 없다. 뿌리가 강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강인함은 아니다.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문제 해결에서 탁월한 역할도 한다.19세기 영국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제인 에어’를 썼던 샬롯 브론테(1816∼1855)는 직접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고아 여자아이고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템플 선생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성이었다. 반면에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장은 브로클허스트 목사였다. 템플 선생과 이사장의 대화 한 장면이다.브로클허스트 목사가 화난 듯이 말했다. “템플 선생! 점심식사에 빵과 치즈가 함께 배급된 사실을 발견했소. 이게 어찌 된 거죠? 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동안 점심으로 이런 식사가 배급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소. 이런 개혁을 누가 시작한 거요? 무슨 권한으로?”템플 선생이 대답했다. “그 상황은 제 책임입니다. 아침식사가 형편없어서 학생들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식사 때까지 아이들을 계속 굶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 탄 음식 대신 빵과 치즈를 아이들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비천한 그들의 몸을 살찌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불멸의 영혼을 얼마나 굶겼는지에 대해서는 선생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브로클허스트 목사가 말을 멈추자 템플 선생은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학교의 지출을 줄이게 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템플 선생은 아픈 아이들과 함께 질병에 맞섰지만,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전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19세기 영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중산층 자녀들은 소녀전용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덕목, 즉 남성의 조력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기숙사 학생에 대한 템플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은 성장기 소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샬롯 브론테는 소설에서 여성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 의해 결정되고, 남성에게 헌신함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주성을 유지한다. 을묘일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많이 사랑받고 있는 책이다.을묘일주 남성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다. 여러 여자와 사귄 후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바람을 피우면 잘 걸리지 않는다고 고전에서 말한다. 여성은 연하의 남자와 사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남자를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녀 공히 배우자 운이 약한 편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성관계가 복잡할 우려가 있고, 유혹에 잘 넘어가기 때문에 냉정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을묘일주는 하늘에서 봄비가 내려 초목이 성장한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가 연상된다. 풀밭의 토끼는 근심이 없다. 얌전하고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주 일찍 일어나 토끼 굴에서 나온다. 토끼는 어려움이 닥쳐도 아주 냉정하게 잘 처리한다. 폴짝하고 뛰어 넘으며, 아주 큰 난관에 부딪쳐도 냉정하다.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으니 어려운 인생살이에 산을 만나도 잘도 넘어간다. 단, 남들 같으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쉬운 길을 토끼는 부들부들 떤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소심하고 겁먹는 기질이 있다.우리나라 고전 가운데 ‘별주부전’이 있다. 바닷속 용왕이 위독한 병이 걸렸다. 유일한 약이 토끼간이다. 충직한 신하 별주부는 용왕을 위해 토끼를 데려오지만, 위험에 처한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앙큼한 말로 용왕을 속이고 도망간다. 병에 걸린 용왕을 통해 조선후기 정치권력의 탐욕과 거짓을 풍자한 이야기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백성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매순간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어깨의 뻐근함이 가중될 뿐이다.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만을 고집한다면 만사가 힘겹고 점점 버티기조차 버거워질 것이다.사람들이 동물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과 어린아이는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살아간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근심도 권태도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의 행복을 선망하기 때문이다.

2023-08-23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정미영 수필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2023-08-23

산후풍과 산후조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최고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 행복의 순간을 가져가기 위해선 출산후 몸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현대는 뛰어난 의료 기술과 충분한 산후 관리와 영양 섭취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산후풍으로 고생 받는 산모는 존재한다.보통은 힘들게 출산후 충분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입맛이 없어 영양공급을 제대로 못해준 후 여름엔 에어컨을 많이 쐬거나 겨울엔 찬바람을 많이 맞아 산후풍에 걸려 고생한다. 증상은 몸살 감기 초기 증상이랑 아주 비슷해 감기인줄 알고 방치하거나 감기약을 먹다가 안되어 한의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 관절이 아프고 뻐근하며 몸이 시리고 심한 경우는 바람이 몸에 닿거나 물에 손이 닿는 것 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 특히 무릎 이하 하지쪽이 시린 경우가 많고 손목 무릎 손가락 관절이 다 아프다. 관절쪽의 증상 때문에 류머티스 검사까지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한의원에서의 치료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몸살을 풀어 주는 약 위주로 증상의 경중에 따라서 처방을 한다. 산후풍의 증상이 심하지 않는 경우는 몸을 보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약 위주에 황기를 겸해서 처방을 하면 서서히 개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를 보고 치료를 한다. 증상이 너무 심하면 관절과 몸살을 강하게 풀어주는 약을 쓴다. 이런 경우는 모유수유를 중지 시키고 처방을 한다. 약에 따라서 모유수유가 가능할 수도 있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출산 후 몸이 크게 아프지 않아도 어혈을 제거하고 몸을 보하는 약을 먹어주는 게 산후풍의 예방에 효과적이다. 처음엔 괜찮다가 몇 달 후 아파서 오는 경우도 있다.예방으로는 출산을 하고 나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덥다고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거나 직사로 바람을 쐬면 안 된다. 그리고 찬물에 샤워를 해도 안 되고 샤워 시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욕실에서 물기를 전부 다 닦은 뒤 나와야 한다. 몸이 조금이라도 으슬하거나 추위를 느끼면 긴옷을 입고 한기가 사라질 때까지 방을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좋다. 음식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고루 영양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너무 매운 음식이나 강한 음식 보단 간이 덜된 담백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속이 좋지 않으면 안그래도 좋지 않은 몸의 회복이 더뎌진다.산모의 몸이 좋지 않으면 아이 돌봄에 조금이라도 소홀해질 수 있고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도 건강한 산모보다 모유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또 산모의 몸이 그만큼 축이 난다. 너무 아픈 경우는 분유를 먹이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남편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몸은 아프다고 하니 잘 믿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산후풍은 생각보다 더 많이 아프니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 출산 후 몇 달간은 최대한 몸조리를 하고 가족들도 산모의 몸 회복을 우선시 하여 산모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산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큰다. 건강한 산모의 모유와 아이돌봄은 아이의 건강을 더욱 좋게 한다.

2023-08-23

효전(孝電)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으면 그냥요~라고 말한다. 나는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 인사를 대신하며 대화를 잇는다. 화젯거리가 있으면 길게 수다를 떨 때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로 지극히 일상적 안부를 묻고 대답하면서 짧은 통화를 끝낸다. 오히려 말할 거리가 없어 어색할 때도 많은 이런 전화, 꽤나 오래된 루틴이다.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갈 때쯤 해준 이야기다. 효문(孝蚊)이라는 말이 있단다. 조문효도(蚤蚊孝道)를 줄여서 하는 말이란다. 예전 어떤 사람이 효도하는 방법에서 나온 얘기였던 것 같다. 그는 여름밤 잠잘 때 파리와 모기를 쫓지 않았단다. 자기가 쫓은 모기가 부모를 물까 걱정해서 그랬단다. 또 어떤 이는 여름에 부모의 곁에서 굳이 윗옷을 벗고 잤단다. 그러면 모기가 젊은 자기의 피를 빠는 대신 부모를 물지 않을 것이라 부모가 더 편히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단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스갯소리 같긴 하지만 이 예화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효전(孝電), 효도전화다.이제 넌 집을 떠나 우린 자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난 매우 자주 널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 안부는 주기적으로 하자. 네가 공부하거나 친구랑 있거나 어쨌든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면 내가 하는 전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전화는 네가 하는 걸로 정하자. 난 너보다는 자유로우니 받는 게 더 쉽겠지. 그 전화를 나는 효전(孝電)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아주 짧은 안부 인사라도 좋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안부 전화가 햇수로 벌써 23년이 되었다. 대부분의 전화는 금요일 저녁참에 왔고, 아들임을 확인하면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라고 말하면서 받았다. 군생활을 하는 2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끊임없었던 일상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후, 결혼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효전은 계속되었다. 결혼 이후엔 이만 끊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아니어도 가족들의 SNS로 아들의 무사한 일상을 접할 다양한 방법이 많아졌기도 하다. 더 바빠진 일상 탓에 부담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그냥, 말 그대로 그냥 하는 전화일 뿐이라고 생각해선지 여전히 금요일 저녁엔 전화가 온다. 뭐 유난하고 알뜰살뜰하고 자상한 모자지간이어서도 아니다.금요일 저녁의 루틴 말고도 아들의 전화가 간혹 있다. 한글맞춤법이나 한자뜻풀이를 묻거나 손녀들의 깜찍스러운 언행을 자랑하듯 알려줄 때도 있다.-며느리를 통해서, 또는 SNS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대부분이긴 하다-그중 아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화가 하나 더 있다. 그날엔 평소보다 좀 진중한 목소리다. 나는 눈치채지 못한 채 어? 금요일도 아닌데 웬일?이라며 반갑게 받고 아들은 그냥요~ 라고 한다. 일상의 대화를 잠시 잇다 보면 아차 내가 네 생일을 잊었구나. 또 네가 먼저 전화를 하네. 내가 축하 전화를 먼저 해야 했는데, 난 아들 생일도 자꾸 잊어버리네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늦었다. 아들의 그냥요~라는 목소리엔 제 생일이면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웅숭깊은 속정이 다 녹아 있다. 참 무심한 엄마다.

2023-08-23

보신탕의 종언(終焉)

홍석봉 대구지사장 개를 먹는 민족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중국이나 마야의 기록에도 남아있다. 프랑스도 1910년대 개고기집 사진으로 미뤄 개를 식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지 탐험가들도 극한 상황에선 썰매를 끄는 개를 잡아먹었다. 홍콩, 대만,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은 얼마 전 개 식용을 금지했다. 현재 식용 목적으로 개를 집단 사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개고기는 조선시대 평민들이 즐겨 먹던 고기다. 푸줏간에서 개고기를 함께 팔았다. 정조 대왕도 보신탕을 즐겼다. 먹을 것이 귀했던 전쟁 때는 중요한 양식이 됐다. 여름철 더위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기도 했다. 특히 복날에는 삼계탕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몸을 보신해 준다고 해서 ‘보신탕’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여름철 보양 음식의 상징이 됐다.우리의 오랜 보신탕 문화가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외국에도 우리네 보신탕 문화를 미개인 취급하며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대구 칠성시장에는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시장이 있다. 얼마 전 동물보호단체 ‘캣치독팀’이 칠성시장 개시장과 함께 전국 약 2천개 보신탕 업소를 고발하겠다며 행동에 나서 주목받았다.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도축과정이 동물학대와 동물권리 유린행위로 낙인찍혔다. 폐쇄를 촉구했다.국회도 개 식용문화 종식에 동참했다. 여야 국회의원 44명은 22일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연내 관련 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반려동물 인구 증가와 함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변화로 보신탕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보신탕 애호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세태변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3

힘든 청년, 병든 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병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까닭도 없이 죽이고 해치는 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책은 또 어떤가. 문제의 근본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엄정한 처벌’에 머물고 있다. 장갑차가 등장했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한다. 벌어진 폭력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엄정하게 대처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두고 형벌로 다루겠다는 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각 가운데 하수(下手)다. 하필 이 여름에 이런 일들이 줄을 이어 발생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날이 덥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해친다고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바보가 있을까.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미움과 욕설’로 가득한 세상이다. 국회가 들려주는 언어의 패턴은 혐오와 조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편가르기와 등돌리기가 정치행위의 상식이 되었다. 멋진 정치에서 경청과 타협, 토론과 양보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제 누구를 만나도 ‘어느 편’인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한 끝에 인간은 결국 홀로 남지 않을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존재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투표와 다수결이 소중한 까닭이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나라 안에 가득한 혐오분위기와 차별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전염되었다. 인정하고 포용하기보다 밀어내고 미워하는 기운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늑대’로 내몰리고 만다. 기회가 보이지 않고 기대할 것도 사라진 세상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듯 여겨질 터이다. 출처가 어딘지 분명치 않은 미움을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퍼붓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신의 힘든 처지를 그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사회적 병리현상은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 일탈현상으로 여겨 처벌로만 대처하다가는 사회적 골든타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하고 문화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편가르기의 폐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하여 사회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병든 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묻지마범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오늘, 사회적으로 차분히 문제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미래세대가 중요하지만, 오늘의 청년세대가 든든한 허리로 받쳐주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20대와 30대에 건강한 사회환경을 실현해 주어야 하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닦아낼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년에게 기대와 소망을 안기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8-23

국민의힘 당무감사, 黨勢확장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이 강도 높은 당무감사를 예고하면서 총선 공천작업이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다. 당무감사에서는 공천에 직결되는 정보가 체크되기 때문에,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총선 공천 부적격자’라는 출처 불명의 살생부가 당 내부 자료인 것처럼 떠돌고 있어 현역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총선때만 되면 물갈이 타깃이 됐던 TK(대구·경북) 현역들의 고심은 더 깊다. 역대 총선때마다 TK는 보수당의 텃밭인 탓에 오히려 물갈이 수준이 혹독했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TK현역 교체율은 64%에 달했다.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현재 전국 당협 실사를 앞두고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부산출신이며 의사인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은 “질의서를 논문처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을 꼼꼼하게 질의서에 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질의서에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의 당원 관리, 사고 여부, 평판, 도덕성, 인지도, SNS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현역 의원들의 경우, 점수화가 가능한 공천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의정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법안 실적, 출석률 등 정량적 평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과 국정과제 등에 부합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느냐 여부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텃밭인 TK지역에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경쟁력이 센 친박(친박근혜)계와 지명도 높은 무소속 인사들의 출마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TK 지역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 출마를 선언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TK지역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경산 출마가 유력시되는 데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영주·영양·봉화·울진 출마설이 있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선 “무소속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총선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함께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일부 TK 다선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설도 있어 여당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반윤·비윤계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거꾸로 노를 젓는다든가, 배에 구멍을 낸다든가 해서 침몰하게 한다면 그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없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배경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는 사실상 공천심사와 다름없다. 당무감사가 내부분열이 아니라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2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 중국경제

우정구 논설위원 덩샤오핑은 오늘날 중국 경제가 세계 2위 대국으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이 된 인물이다. 1978년 그가 펼친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40여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덩샤오핑의 어록 중 하나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지만 파리, 모기도 들어오는 법”이라 했다. 중국이 심천 등을 경제특구로 개방하자 곳곳에서 음란퇴폐 문화가 동시에 번져나갔다. 이에 일부 비판론자들이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자본주의의 쓰레기 문화가 유입된 탓이라고 비난하자 이에 그가 응답한 대답이다.1979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흑묘백묘론을 주장했다.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사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그의 개방 경제정책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로 유명하다.중국경제가 40여 년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덩샤오핑 이후 줄곧 성장하던 중국경제가 올들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부동산발 신용위기까지 겹치자 경기침체를 넘어 위기론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의 최대 부동산개발 회사인 비구이위안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부동산업계의 도미노 부도위기가 확산되고, 금융권으로 부실이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중국의 경제위기에는 시진핑의 장기 집권의 부작용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나 중국과 거래가 많은 한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이 우려된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한국 관광이 허용됐지만 경제위기 속에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유커들의 소비가 움츠러들 가능성도 높다. 실사구시를 추구한 덩샤오핑이 생각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2

광복절 기념史

광복.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빛(光)을 되찾다’의 의미에로 해석하곤 하는데, 실제 ‘광복(光復)’에서의 ‘광’은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예롭게’라는 뜻의 부사이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되찾다’라는 의미. 여기에는 2017년 김영민 교수가 칼럼을 통해 지목한 바와 같이 무엇을 회복하는가를 알려주는 목적어가 빠져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자결권, 자신에 대해 결정한 권리이다.우리가 지닌 정체성과 자결권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타자에 의해 위협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체성과 자결권이다.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의를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20세기의 관습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의 여러 국가와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헌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단군의 자식이라는 단일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정체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을까. 2010년을 전후하여 사학계에서 제기된 단일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면, 한반도는 상고시대 이래로 무수한 이방인의 방문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왜’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에서부터 북방 유목민족,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심지어는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종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국가 성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기획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는 의미이다.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단일 민족과 같은 허구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란 타자에 의한 위협 속에서 스스로의 결정권을 지켜내 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이다. 그러니 ‘광복’이란 단지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으로부터 국가적 역량의 문제와 전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는 사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에 뿌리 깊게 새겨진 상처로서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8월 15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다소 의아한 충격을 받았다.이날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언급을 반복하며, 광복절의 의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연설을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광복절이라는 것이 외부세력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되찾았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이 전혀 이해 못할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광복이라는 단어에 있어 그 대상이 일본 제국이었으며,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는 역사적 비극을 상기하자면, 이러한 대통령의 연설은 지나친 감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우리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광복하였는가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더욱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러한 대통령의 이어진 연사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명확한 대상 없이 이루어진 이와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해 활동해온 사람들을 순식간에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단지 반국가세력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무엇을 통해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가치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광복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결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말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 세우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자결권과 정체성의 의의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고,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23-08-22

풍요와 빈곤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건 사소한 일상이 아닐까. /언스플래쉬 요즘 나의 일상은 단출하다.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 대부분은 소설을 쓴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 식사를 마치면 강아지와 함께 작업실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저녁을 만들고 영화나 만화책을 보며 빈둥거린다.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나는 이런 일상을 간절히 원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 마감을 위해 새벽 5시에 책상 앞에 앉았고 개인적인 작업보다 그쪽에서 원하는 일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은 매일같이 쏟아졌으나 그것을 누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호교환, 그러니까 저쪽에선 월급을 주고 이쪽에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행위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꼈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면서 생각했다. 글만 쓰고 싶어.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아.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의 모양이 이제야 완성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누벼야 옳았다. 안온한 공간에서 오롯이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더없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매달 통장에 일정하게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모아둔 돈을 차곡차곡 까먹는 날이 늘어난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모든 직장인이 부르짖는 ‘자유’는 결국 ‘경제적 자유’임을. 통장에 찍힌 숫자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을.오랜만의 외식비가 과하지 않았나 안절부절못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결제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을 만나면 보풀이 일어난 속주머니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누구는 강남에 몇 평짜리 집을 샀고 누구는 보통의 연봉을 몇 주간의 여행에 썼다는 소식.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와 명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만 같다. 내 삶의 규모가 남들보다 터무니없이 작다는 게 실감 나는 날에는 누구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귀가하게 된다.우리 사회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나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의 지리멸렬한 가난을 겪었다. 이러한 과거를 딛고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그러나 여전히 청년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실제적 가난을 견디는 무수한 이들도 있으나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세상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어느 동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아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삶이 화려할수록 나 자신의 초라한 삶이 도드라져 보인다. 더 잘 살고 싶어서 힘차게 발을 굴러도 늘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그렇지만 풍요와 빈곤의 뜻을 자본의 논리에서 찾는 순간 많은 것이 무너지게 된다. ‘잘 산다’라는 개념의 동의어를 ‘돈이 많다’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고, 손에 쥔 것이 없더라도 그 안에서의 풍요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다. 무엇을 추구하고 또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작업실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팔월의 빛과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높고 푸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을 목격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낚지 않는 그물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름, 내 옆을 지키는 작가들의 문장과 부모님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만든 도시락 반찬, 반려견의 고요한 낮잠과 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는 낯선 이야기. 이 모든 게 나를 풍요롭게 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상이다. 불투명한 내일에 관한 불안도 끌어안아야 한다. 풍요도 빈곤도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23-08-22

다름의 인정

최선희 경운대 교수 “매사 내 의견에 반응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법륜 스님 강의를 한 번 들어보세요.”목욕탕 찜질방에서 어떤 기혼 여성 두 분이 나눈 대화이다. 법륜 스님이 어떤 강의를 하는지 궁금해져서 유튜브 방송에서 스님의 강의를 들어보았다. 강의는 대부분 어렵고 힘든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이었는데, 스님이 설파한 주요 해결방안은 “다 달라서 그래요.”였다. 그렇다. 우리는 참 많이도 상대방의 다름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 그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 특성이 같지 않음은 당연한 사실인데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기준과 판단으로 평가하면서 타인의 성향이나 의견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학생들에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점을 물어보면,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라는 예를 들면서 두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는 분명한데, 우리는 특히 ‘다르다’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에 ‘틀리다’를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이 문제가 단순히 습관에 불과한 것일까.혹자는 사회가 각박해져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어감을 사용한다고 진단한다. ‘다르다’를 사용해야 할 곳에 ‘ㅌ’의 거센소리가 들어간 ‘틀리다’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단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이 좀 틀려.”라는 표현을 자주하곤 한다. 이것은 다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둘째 아이가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큰 아이하고 너무 틀려서 속상해요.”라는 부모의 하소연은 ‘다름’에 대한 수용과 인정의 부족이다. 우리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틀리다’고 생각 하는가.지금은 작고한 한 야구감독이 우수한 선수의 단 하나의 단점을 고쳐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일어난 실수를 방송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무수한 훈련과 채찍질로 자신이 지도했던 훌륭한 야구 선수의 단점을 고쳐주었더니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장점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한 것이다. 교각살우는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작은 흠이나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다르기 때문에 조화로울 수 있고 각양각색의 빛깔로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덤으로 ‘다르기’ 때문에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뿐인가. ‘다름의 인정’은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출발점이다. 지금 바로 표현해보자. 아내와 남편에게 “당신은 ~점에서 나와 다르게 특별해요.” 친구나 자녀에게 “~생각을, ~것을 다하다니 넌 정말 나와 달라. 그리고 특별해.”

2023-08-22

墨香 피는 인사동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조석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와 또렷해지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한낮으로는 아직 노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도, 여름을 마감한다는 처서(處暑)가 오늘이고 보면 늦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난히 심한 무더위와 폭우, 태풍의 상흔이 안타까운 생채기로만 남긴 채 계절은 가을채비를 하고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의 넌더리가 우려스럽기만 하다.더위가 숙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늦더위보다 후끈한 열기로 서예와 문인화의 향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전국의 유망 서예작가 12명이 ‘월간 서예문화’의 초대를 받아 오늘날의 시대성을 살리면서 작가의 개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작품을 부스개인전 형태로 선보인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는 할당된 공간에서 독창성을 살린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의 개인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필묵의 세계화展’의 취지로 한국서예의 단면을 보여주고 다양성의 조화 속에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그룹전으로 열린 것이다.문화와 예술, 트렌드의 원천(源泉)인 서울에서 전국의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아감이 더욱 어렵고 그 보이는 것도 기이한 서예의 세계에 흠뻑 빠져, 오랜 세월 외곬스럽게 일궈온 한묵(翰墨)의 정념을 거침없이 넓고 깊게 펼쳐 보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작가 특유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전통서예의 재해석과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탐색하는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들고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과연 인사동(仁寺洞)은 전통문화의 거리답게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가 서린 소중한 공간이었다. 길거리마다 대부분 외국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갤러리나 전통음식점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왕래부절이었다. 큰길 옆으로 사이사이 이어지는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곳에는 화랑이나 필방,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카페 등이 밀집돼 있어서 독특한 멋이 있고 교류와 소통, 체험과 만남의 장소로 이상적이었다.그렇게 근사한 곳에서 작품전을 열고 새로운 분위기에 젖어드는 기회를 갖는 것은 정말 선물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생면부지의 관람객이 작품전의 느낌을 방명록에 일필휘지하고, 화려한 차림의 어느 외국인이 서예작품에 매료된 듯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며 이색적으로 환호하는가 하면, 각별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몇 번씩 다시 찾거나 특히, 풀잎 하나로 즉석에서 축하연주를 해주신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선생 등의 분들이 새삼 고맙고 정겹게 느껴진다. 인사동을 묵향으로 뜨겁게 달군 ‘2023 KOCAF’는 의미있는 진전과 좋은 추억으로 처서와 함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

2023-08-22

연애의 시대, 전찻길에 두고 온 사랑

‘나도향(羅稻香)’이라고 하면,‘뽕’이나 ‘벙어리삼룡이’처럼 향토적인 색채 짙은 작품을 몇 편 썼던 작가로만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신문에 본격적인 연애소설을 최초로 연재했던 사랑의 작가였다. 나경손(羅慶孫)이라는 본명을 두고, 소설을 쓸 때는 주로 벼의 향기라는 의미의 ‘도향(稻香)’이라는 필명을, 번역이나 평론을 쓸 때는 주로 ‘나빈(羅彬)’이라는 필명을 썼다.생원집에 하인으로 있던 벙어리 ‘삼룡이’가 주인집에 시집온 아씨가 부당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참다못해 복수하는 이야기나, 누에 먹일 뽕나무잎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아귀들의 수라도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1922년에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던 ‘환희’는 당시 일제에 강점된 한국에서도 연애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애는 인간들 사이의 마음의 문제지만, 그 실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연애편지를 쓰고,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들은 단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집안끼리 날짜와 사주를 맞추는 옛날의 제도에서 벗어나, 1920년대에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연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게다가 이 작품에는 1930년대 신문 삽화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석영(夕影) 안석주(安碩柱)가 처음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해서, 여러 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래 그림을 그렸던 안석주는 매일 그려야 하는 삽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너무 완벽한 유화 스타일의 삽화를 그리려고 하다 나중엔 힘이 부쳤는지 중도에 그만두었다. 나도향(羅稻香·1902~ 1927). 이 소설 ‘환희’는 가난한 고학생인 김선용에게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은행원 이영철이 자신의 동생 이혜숙을 소개해주려고 하며 시작된다. 어린 이혜숙은 가난하고 잘 생기지 못한 김선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영철이 일하는 은행의 은행장 아들 백우영에게 끌린다. 하지만, 모처럼 오빠의 소개인 만큼 김선용과 덜컥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해 버리지만, 난봉꾼 백우영에게 속아 덜컥 그에게 겁탈을 당하고 그만 그와 결혼하게 되고 만다. 김선용과 백우영 사이에 있던 이혜숙, 백우영과 이영철 사이에 있던 기생 설화를 둘러싸고 결국 누군가 죽고, 누군가 영영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야만 끝날 청춘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이 나도향의 ‘환희’는 연애로맨스소설의 클리셰인 연애삼각관계의 정석을 보여준 창작 소설의 첫 번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나도향은 전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주인공 마음의 미세한 결을 세밀하게 읽어낸다. 이미 사랑에 빠진 김선용은 이혜숙에게 가볼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면서 그 기로에서 기다린다. 내심으로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가 있지만, 일말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로 하여금 반대편의 플랫폼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다.뻔하디 뻔하고,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연애로맨스 이야기가 그렇게 매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그 뻔한 플롯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가슴 아려오는 이야기가 된다. 백 년 전 전찻길에서 사랑하는 이를 먼 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반대편 전차를 힐끔거리는 못난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