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국민을 배신한 ‘네 탓’ 정치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행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이다.‘내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는 정치는 책임회피이며,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권력을 감당할 인격도 능력도 없는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행태가 가소롭다.‘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실패로 끝나자 그 책임을 둘러싼 네 탓 공방은 가관이었다. 전 정부와 현 정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여당은 전 정부와 전북도에, 그리고 야당은 정부여당의 비판에 집중했다.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고 마치 남 얘기하듯 현 정부를 비판했다.국제적 망신을 사고서도 반성은커녕 ‘네 탓 타령’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의 행태가 한심하다.‘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네 탓 공방은 결국 고속도로 추진을 중단시켰고,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서는 행안부·경찰·소방·서울시·용산구청 등이 서로 네 탓을 하면서 책임회피에 급급했다.또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책임소재를 두고서도 충북도·청주시·흥덕구청·경찰·소방이 낯 뜨거운 네 탓 공방을 벌였다.이처럼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이라는 책임회피 심리를 그린월드(A. Greenwald)는 ‘베네펙턴스(beneffectance) 현상’이라고 했다.성공에 대한 자신의 공로는 과대평가하는 반면, 실패에 대한 자기 책임은 과소평가하는 성향이다. 이는 자기기만의 ‘이기주의적 편향성’으로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찾아서 ‘핑계 만들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핑계를 통한 자기합리화는 제3자의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책임회피 및 책임전가일 뿐이다.특히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네 탓 타령’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최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1 더하기 1은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야당과 언론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야당 탓, 언론 탓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하는 국민은 서글프다. 야당과 언론의 역할이 정부여당의 견제와 비판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마찬가지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네 탓’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잘했다면 왜 정권이 교체되었는가? 남 탓하며 책임을 회피해왔으니 내 탓이 무엇인지를 알 리가 없었다. 민주당은 남 탓하기에 앞서 현재 수사 받고 있는 각종 비리와 의혹에 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소크라테스(Socrates)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집행권력과 입법권력을 나눠가진 여야 정치인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말이다. 정부든 국회든 권력을 가진 쪽에서 먼저 성찰하고 반성할 때 비로소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책임정치의 정신이요, 정치지도자가 가야할 길이다.

2023-09-11

수성구 프리미엄의 위력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수성구는 정주여건이 좋아 ‘주민 살기 좋은 곳’ 1순위, ‘대구의 강남’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각종 조사에서 대구시 9개 구·군 가운데 최고로 살기 좋은 지자체로 첫 손에 오른다.그 중에서도 수성구 범어 4동과 만촌 3동(범4·만3)은 수성학군의 대명사가 됐다. 이곳에는 경신고와 대륜고, 오성고, 정화여고, 대구여고 등 명문고가 밀집해 있다.최근까지 대구의 아파트 분양은 이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분양가가 대구의 타 지역 보다 월등히 비쌌지만 경쟁률은 높기만 했다. 소위 학군 프리미엄 때문이다. 주택경기 불황 속에서도 수성구 아파트는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입주를 앞둔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가 행정동 명칭을 두고 주민 갈등이 빚어졌다. 결국 의회가 개입, 수성구 중동과 수성동에 걸쳐 지어진 ‘A 아파트’의 소속 행정동 명칭을 수성동으로 결정했다. 신축 아파트가 2개 동에 걸쳐 있어 주민 요구로 특정 동을 선택한 사례는 지역에선 처음이다. 게다가 이 아파트 인근 주민들까지 같은 동으로 편입을 요구하고 나섰다.이 아파트는 부지 면적의 80%가 중동, 20%가 수성동에 걸쳐 총 303세대 6개 동 규모로 지어졌다. 아파트 전체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이 아니라 수성동으로 행정동 명칭을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시행사가 ‘수성동 아파트’라고 분양 광고 해 당연히 수성동 주민이 될 줄 알았다는 주장이다.결국 집값이 문제였다. 수성동은 중동보다 대구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범어동과 더 가깝다. 입주 후 수천 만 원의 집값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 아파트 인근 주민까지 수성동 편입을 요구, 파장이 일파만파다. 수성구 프리미엄의 위력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11

경주 남산과 열암곡사지

천년의 신라가 자리 잡았던 경주, 그곳에서도 남산은 영산(靈山)이라 불리며 예나 지금이나 신성하게 여겨진다. 이곳은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이래로 불사가 약 400개에 달하는 불국토이며, 현재에는 불자들이 꼭 둘러봐야 하는 성지이며, 역사학자에게는 신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자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함께 숨 쉬는 이야기의 보고이다. 또한 산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원한 바람에 땀 식히며 걷기에도 매우 좋은 곳이다.남산은 삼국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불교 유적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이기도 하다. 7세기에는 경주 중심가와 소통이 편하며, 지형이 완만하여 절이나 석탑 등의 건축을 조성하기 쉬운 북쪽 기슭부터 만들어지다가 점점 남쪽과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서남산 선방곡 초입이나 북남산과 인접한 구릉 하단에서는 주로 이때의 불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에 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하여 통일 신라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불교로 넘어간 8세기 불적은 도심 가까이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불국사·감은사·사천왕사·망덕사·감산사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애장왕 2년(806년) 새로운 사찰을 수도 내에 건립하는 것이 금지된 이후에는 지방이나 영산인 남산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9세기쯤부터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백운계를 비롯한 남쪽과 서쪽에서도 불사가 이뤄졌다. 신라가 저물어가던 이 시기에는 여러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왕권이 불안정하였다.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왕권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5E211 이상의 거대한 불상이 유행한 이유이기도 하다.9세기 이후가 되면 불상보다는 석탑이 선호된다. 하늘과 가깝고 높고 딱 트인 지형에 석탑을 세워 불국토를 건설하려 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새로 짓기보다 개축하고 보수하여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상황은 고려를 지나 조선 후기까지 계속된다.남산은 불사가 쌓여 온 세월만큼 많은 유적과 유물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그중에서 열암곡은 2007년 이후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이다. 고위산 남서쪽 백운계 본류의 오른쪽 열암곡에는 열암곡사지라는 절터가 있다. 이곳은 깨어지고 넘어진 불상이 많이 흩어져 있고 경사가 심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자 열암곡사지를 찾는다. 이곳은 2007년 정비하면서 발굴과 일대 조사가 함께 이뤄졌다. 더불어 흩어져 있어서 외면받고 방치되었던 석조여래좌상의 머리도 발견되었다. 열암곡사지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8세기 후반 불상들에 비해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신체 비례가 짧은 편이며, 어깨와 가슴은 좀 더 남성스럽고, 광배(불상 뒤를 받치는 꽃잎 모양의 석재)의 화염문이 8세기 후반보다는 세밀한 것으로 밝혀졌다.그리고 30E211 거리쯤 떨어진 곳에서 높이 5미터가 넘는 대형 마애여래입상을 찾아내었다. 마애여래입상은 발견 당시 앞으로 고꾸라진 채 바닥과 겨우 5㎝의 간격을 두고 버티고 있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폭 4E211, 높이 6.8E211, 두께 2.9E211 그리고 무게만 80t에 이른다. 그런 바위가 약 40도에 가까운 급경사면에 거꾸로 엎어져 있으며, 불상의 코가 겨우 지면에서 5㎝를 두고 뭉개지지 않은 것이다. 그 5㎝의 간격이 불상의 얼굴을 원형 그대로 살렸다.1천300년의 세월을 품은 기적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르 몽드’지(2007년 9월 13일) 1면에도 소개되었다. 지금도 남산 열암곡에는 2007년 발견된 그대로의 이야기가 유지되고 있다.사람들은 기적의 이야기를 보고, 기적을 빌기 위해 지금도 남산 열암곡의 험한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아유타하 왓 프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의 큰 보리수나무 뿌리에 박힌 불상 머리를 보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처럼 ‘5㎝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엎드리거나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 오똑한 콧망울을 확인하려면 몸을 숙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마치 부처에게 기도하며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세워진 마애여래입상보다 거꾸로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듯하다.남산은 오래된 만큼 많은 불교 유적이 있고, 그 속에 품은 이야기가 있다. 성지 순례하듯이 남산의 불사만 찾아다녀도 꽤 오랫동안 숲길을 걸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성지를 순례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역사적 탐구를 위해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따라 남산 숲속을 오르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힌다. 바람이 전해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서 걷는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9-11

구원의 도착지점

‘더 웨일’ 포스터.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은 ‘십계명(十誡命)’은 행해야 할 두 개의 명령과 하지 말아야할 여덟 개의 금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으로써 신의 세계로 향하는 엄혹한 규칙이며, 행동과 함께 마음까지 살펴야하는 규범이다. 불교에서는 승려와 신자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계율로 오계(五戒)가 있다. 모두 ‘아니 불(不)’로 시작하는 부정어로 시작한다. 해야할 것보다 하지말아야할 것을 강조한다.하지만 인간은 쉽게 계명과 계율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계명과 계율의 궤도로 귀환한다. 인간은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할 것들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희열을 느끼고, 경건하거나 기쁨을 느끼거나, 맑거나 어지러운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간다. 계율과 계명이 아니어도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사회적 ‘규범’이 존재한다. 이 규범 또한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할 것을 정하고 칭찬과 형벌이 주어진다. 계율과 계명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규범은 순수하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계율과 규범은 항상 ‘후회’가 깔려 있다. 후회가 쌓이고 깊어지면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후회의 강도가 강해질 때 죄책감이 남는다.종교에서 죄책감은 반성과 회개, 기도를 통한 ‘죄사함’으로 해소된다. 규범의 죄책감은 결과의 강도에 따른 ‘형벌’에 의해 해소된다. 죄사함은 구원을, 형벌은 교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의 존재 여부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와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들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었다.‘후회’는 인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하는 선택의 결과다.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날 때 ‘후회’가 뒤따른다.‘후회’를 돌이켜 원상태로 되돌릴 것인가, 후회를 낳은 선택을 다른 선택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것인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충돌한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상반된 신념을 가진 이들과 충돌하고 화해하며 서로를 끌어 안는다.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은 과거에 내린 선택의 결과로 빚어진 지금, 후회를 두고 벌어지는 상반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낡은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면서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다. 제목처럼 고래만큼 비대한 초고도 비만자 찰리는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혼자 몸을 일으킬 수도 없고,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그가 머무는 한정된 공간 속으로 종교적 구원의 깃발을 든 이와 찰리를 돌보는 유일한 친구이자 간호사 리즈, 찰리의 딸, 그의 전처가 순차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아파트를 출입한다.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후회’라는 공통적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통해 그의 후회가 해소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 찰리에게 집중된다. 선택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고 후회로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누군가에게는 미안함으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증오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이 그렇다고 명쾌하게 나눠지지도 않는다.죽음을 직감한 찰리는 이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의 시간을 벗어나 적극적인 화해를 청하고자 한다. 화해에 대한 의지는 그의 동작만큼 굼뜨지만 그의 몸무게 만큼 무겁고 강력하다.“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걸!”이라는 찰리의 대사처럼 그 하나를 위해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선택이 후회로 남으면서 고통이 동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신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에 의해서 구원받는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그의 집안에 갇혀 가쁜 숨을 내쉬며 묵직하게 쌓아가는 화해의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비로소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대한 한 마리의 고래를 목격하게 된다. 화해했는가, 구원받았는가, 진정성이 얼마나 상투적인가라는 생각이 뒤엉킬 때, 벅차 오름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내린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9-11

민심에 길이 있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서 지난 5일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방문해 극단 정치를 자제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맥락을 보면 단식을 그만두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개딸’이 무서워서도 이런 충고를 하는 정치인이 거의 없다. 곧 총선이다. 공천도 받아야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대표를 비난한 게 아니다. 이 대표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김 의장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자 정치원로다. 국회의장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런 점에서 사심(私心)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언(苦言)이다.그의 말을 길게 인용한다. 김 의장은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며 “국민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하고, 잘못한다고 보질 않는다”라고 말을 꺼냈다.“벌써 두 번이나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전에 예고되거나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법안) 단독 처리를 반복하는 것이 과연 민주당을 위해서도 옳은 것인가. 여당이 아예 대안을 안 내놓으면 어쩔 수 없지만, 대안이 있는 경우엔 민주당이 주장하는 10개 중 5~6개만 살릴 수 있으면, 그래서 국민의 70~80%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가 아니겠나. 그래서 어떤 것이든 일방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조정 작업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민주당에서도 좀 협력해달라.”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는 불안하다. 정치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다수결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다수결로만 선택한다면 대통령 한 사람만 뽑으면 된다. 국회는 왜 구성하나. 국회의원들이 무조건 당론 투표만 하고, 대화도 타협도 없다면 정치는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같은 단점(單占) 정부에서는 국회가 거수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사사건건 정부와 국회가 충돌해 파국으로 갈 수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결국 양측이 모두 손해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정치인의 윤리와 소명 의식을 믿은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타협은 꼭 필요한 덕목이 다.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미리 경고한 법안을 여당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밀어 붙이면 법안이 국회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렇다고 거부권을 무력화할 만큼 재적의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고, 그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굳이 법안 단독 처리만이 아니다. 인사청문회도 야당은 반대, 정부는 임명 강행이 관행처럼 굳어간다. 여야의 대화가 실종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당과 대화를 포기하고, 야당 요구를 일체 외면하는 일방통행은 그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내년 총선은 또 하나의 고비다.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는 떠안은 것이지만 내년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 임기 전반기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에서 지면바로 레임덕이다.현행 헌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7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1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건, 윤 대통령이 2건이다. 여대야소였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적은 건 당연하다. 군인 출신이고, 권위주의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횟수는 가장 많지만 가장 타협적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야당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국회에 정치가 살아 있었다. 민심이 야 3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요즘 같은 정치로는 격렬한 지지자만 동조할 뿐 중간층은 외면한다. 단식으로는 뒤집을 수 없다. 김 의장의 지적대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얻어내려고노력할 때 민심도 얻게 된다. 중요한 것은 민심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10

운을 부르는 마법 정리 정돈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들의 집을 보면 매우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옷 모자 신발 등이 가지런하게 찾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자라서 집이 잘 정리 정돈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가 되면서 습관이 된 것이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부자들은 돈이 되지 않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항상 회색 티셔츠를 입는 이유에 대해 삶을 간단하게 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함이라 하였다.이는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아침 식사로 어떤 메뉴를 고를지 이렇게 간단한 결정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들고 인간은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인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 하며 건강이나 돈 등과 같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이를 잘 알고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인 것이다.제조현장의 정리 정돈도 이와 같은 이치로 사용하는 자재나 생산 물품이 잘 정리 정돈되어 있으면 필요한 물품을 작업자가 쉽게 찾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 동작에 소모되는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인 돈을 벌기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은 일을 편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며 조직은 이익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이를 보면 생산현장의 물품과 자재 류에 대하여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최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보관 장소나 창고는 없애고 필요할 때 바로 공급하는 것이다. 도요타는 이를 위해 설립 이후 지금까지 86년간 후공정이 요청시 생산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공정내 재공이 Zero인 연속 흐름생산을 추구하고 있다. 그 다음이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최소한의 필요한 자재를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하고 누구나 쉽게 찾고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다.이중 자재창고의 정리 정돈 방법을 소개하면 창고내 저장되어 있는 모든 물품을 드러내어 종류를 파악한 후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필요 없는 것을 버린다. 그리고 유사 품목 별로 구분하여 저장 위치와 방법을 정하여 적절한 적치대를 설치하고 주소를 정하여 자재를 보관한다. 보관된 각 자재는 품명, 코드, 규격·사양, 수량이 알 수 있도록 식별표를 부착하여 적정량을 관리한다. 창고가 여러 개소일 경우 Name Plate와 내부 배치도, 소화기 위치, 운영기준과 점검시트를 동일양식으로 적용 유지한다.정리 정돈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방치하면 더욱 관리가 안되고 상태가 나빠지며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이를 통해 생긴 좋은 기운이 행동에 작용하여 모든 일이 잘 풀려 운이 상승하는 개인과 회사 모두에 마법과도 같은 활동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9-10

책맹인류와 독서 예산 삭감

유영희 작가 지난 토요일 동네 도서관에서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김애란 작가를 초대해서 ‘소설,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애란 작가의 말 중에, 소설이란 한숨 같은 소리를 말로 바꾸고 그 이야기에 지위를 주는 것이라는 말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대접이 담겨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와의 대화는 독서를 자극하고 삶의 의미와 관계 맺음에 대한 통찰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서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책 문화 프로그램은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독서율이 꼴찌다. 19세 이상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EBS에서는 8월말부터 9월말까지 5주에 걸쳐 ‘책맹인류’를 10부작으로 방송하고 있다. ‘책맹인류’란, 문자는 해독했으나 긴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지난 수요일 방송된 ‘책맹인류’ 3부 ‘우리는 왜 읽지 않는가’에서는 세계적으로 독서율이 낮아지는 이유를 분석하고 일본이나 핀란드에서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주로 개인이나 민간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는데, 후속 방송에서는 미국, 영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일본. 많은 나라들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소개할 예정이다.그런데 우리 정부는 독서율을 높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 정부는, 올해 약 60억 원이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을 전액 삭감했을 뿐 아니라, 아예 예산 코드 1433-308을 없앴다. 결국 내년 독서 관련 예산은 ‘독서대전’, ‘지역독서대전’, ‘책읽는도시협회지원’ 등 일부 사업들을 위한 10억 원가량뿐이다. 체육기금을 활용하는 ‘책 읽어주는 문화 봉사단’ 예산 2억 원을 합해도 12억 원이라, 올해 독서 진흥 예산 약 114억 원에 비하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이 사라져서 작은 서점에서 진행하던 작가와의 대화나 문학 행사를 내년에는 하지 못하고,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청소년 독서를 위한 전국청소년독서토론한마당, 성인을 위한 독서동아리 지원, 장병을 위한 병영독서 활성화 지원도 모두 할 수 없게 되었다.이 중에서 병영 독서는 2년 간 참여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관심이 간다. 구독자 100만이 넘는 북튜버 김송은 어려서는 책을 읽지 않다가 군대에 가서야 지인 추천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군대에서도 독서는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데, 내년에는 전면 폐지되었으니 안타깝다.다행히 오늘 도서관 행사는 자치단체 예산이라 내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책 문화 행사가 많아지면 독서율이 올라가고 독서율이 올라가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된다. 정부는 내년 독서 예산안을 재고하기 바란다.

2023-09-10

조각 이불을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독자 여러분은 조각 이불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무늬와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조각 이불이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다. 조각 이불은 어린아이를 위한 이불로 사랑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기하학적인 질서로 배열돼있는 조각 이불은 따스함과 질서정연함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언제부턴가 나를 만들어온 여러 요인(要因)을 생각하게 된다. 퇴임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라는 청을 들었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준 여러분의 인내와 너그러움에 감사한다는 뜻의 말을 전한 것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그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와 친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 덕분에 어제와 오늘의 나와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슴 아픈 사건은 단연 교사들의 자살 행렬이다. 지난 7월 19일 스물세 살 먹은 서이초교의 어린 여교사 자살로 학부모와 학교장들의 온갖 행악질과 갑질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세상 살기가 쉬운 일이기만 하랴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악행을 거듭한 자들에게 대를 이어 악운(惡運) 있기를?!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에서 기인하는 ‘베르테르효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악행이 교사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학생들에게나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행사하는 저급하고 막돼먹은 폭력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다.어떻게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막말과 폭언과 폭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놓는 승냥이만도 못한 인간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냥 의기양양(意氣揚揚) 득의만면(得意滿面)하기 그지없는데, 교육부는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참석하느라 수업에 임하지 못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노라고 엄포나 놓았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교육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 삼주체(三主體)가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룰 때 성취될 수 있다. 교사의 권위와 교권을 무력화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단과 교권의 의미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교사가 있는 한, 교육은 만년 공염불(空念佛)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는 학생을,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과 지구와 우주가 돌아간다는 소아병적인 사고와 인식을 버려야 한다.조각 이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개개의 조각은 고유한 색깔과 무늬가 있지만, 내가 잘났으니 나를 따르라고 우기지 않는다.하나의 조각은 모두를 위하여, 모든 조각은 하나의 조각을 존중하고 어울려 조화로운 전체를 완성한다.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홀로 잘나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존재의의가 환해진다는 사실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좋겠다.

2023-09-10

전술핵 공격잠수함

우정구 논설위원 북한이 전술핵 공격잠수함을 전격 공개하면서 또 한번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 군은 “무리한 제조로 완성도가 떨어져 정상적 운용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핵무기가 수중의 잠수함에까지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다.이번 공개된 북한의 전술핵 잠수함은 수중에서 한국 전역은 물론 주일미군기지까지 기습 핵타격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전술핵 잠수함에는 총 10개의 수직발사관이 있어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을 최대 10기까지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한미가 기존에 구축한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북한은 기존에 배치된 70여척의 잠수함에도 전술핵을 탑재하고 김정은은 핵잠수함 도입까지도 호언장담하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의 핵전술잠수함 개발은 북한핵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에 주목이 된다. 지난 2010년 3월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잠수함의 어뢰 한 발로 우리 천안함이 폭침당하고 장병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핵전술잠수함에 의한 도발이 이뤄진다고 상상한다면 끔찍하다.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한국 독자 핵무장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민의 71%가 핵무기 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 된 바도 있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먹혀드는 분위기다.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비핵화 지위 및 비확산체제 지지라는 전제가 달린 주장이지만 북한의 핵위협에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핵추진잠수함에는 핵추진잠수함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준비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10

어른답게 살아가기

김병렬 울릉군 독도박물관장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려고 할 때 나를 밟고 지나가라면서 길에 누운 정치인이 있었다.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할아버지 그때 왜 그러셨어요”하고 손자가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내가 안목이 짧았다고 하면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까지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솔직한 분이시라는 자긍심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반면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했다면 손자는 픽 웃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더는 갖지 않게 될 것이다.엄마는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고 데모를 하고는 왜 저에게 수입 쇠고기만 사다가 요리해 주세요라고 아들이 질문하면 엄마는 어떤 대답을 할까? 사드가 설치되면 모두 통닭구이가 된다고 외치던 사람은 성주참외를 안 사먹는지 모르겠다.평택에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주민등록까지 옮긴 후 데모하다가 밀린 월세도 안 내고 슬그머니 사라졌던 사람들이 요즘은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또 어떤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돕겠다고 모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횡령하기도 했고, 또 이를 이용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피해 할머니들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게 뭐 있느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다.그런가 하면 어떤 국회의원은 총리에게 오염수가 섞인 바닷물을 마시겠는가 하고 질문했다. 그에게 그의 아들이 아버지는 오염수가 섞이지 않은 바닷물을 마실 수 있어요? 라고 하면 아들이 보는 앞에서 짠 바닷물을 마실 수 있을까?왜 자기는 오염처리수가 섞이지 않은 물도 마시지 못하면서 총리에게는 오염처리수가 섞인 바닷물을 마시라고 할까? 회의 중에 주식을 거래하고 코인을 구입한 국회의원이 자식들에게 수업시간에 딴 짓 하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특목고 폐지하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은 해외 유학 보내는 어른은 또 뭐고, 반일을 위해 모두 죽창을 들자고 했던 사람이 일제 볼펜을 쓰는 건 또 뭔가? 또 다른 반일주의자는 일제 샴푸를 쓰다가 들통이 나니까 샴푸를 안 쓴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가 사진이 공개되어 비웃음을 샀다.입만 열면 모든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만큼만 조사받겠다고 하는 건 또 뭔가? 이건 특권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누리는 일반적인 권리인가? 이분도 황제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황제처럼 성장했나? 모두 아이만도 못한 어른들 아닌가?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교정 밖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요즈음 광복회까지 나서서 난리다. 애초에 육사 교정에 이분들의 흉상을 세운다고 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다. 육사 교정에 세우는 흉상은 육사에서 세울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세운다면 누구를 세울 것인가를 결정해서 세우면 된다.그런데 육사는 배제된 채, 이전 정권에서 세우기를 원했고 자신들이 선정한 인물들의 상을 세웠다. 자신들은 이전 정권에서 세워놓은 각종 표석을 멋대로 옮겨 놓고, 자신들이 세워놓은 것은 자손만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 이런 멍청한 일이 또 있겠는가?더 한심한 것은 이 흉상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이 흉상을 만들라고 한 어른이 전 국민을 상대로 SNS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흉상들을 만들 때 누구누구를 만들라고 하지 말고 육사생도들이 본받을 만한 분들을 만들라고 했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만 해주면 된다.다음 달에 독도의 날이 있다. 독도의 날이 됐든 삼일절이 됐든 기회만 되면 머리띠 매고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가서 데모하는 어른들이 있다. 지금까지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독도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앞으로 80년이 흘러도 해결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아버지 때는 뭐하고 이런 어려운 일을 자기들에게 물려주느냐고 후대들이 물으면 지금의 어른들은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독도박물관장직을 맡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내 꿈은 일본의 어린이들이 한국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독도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어린이들도 일본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일본 동경의 다케시마 전시관을 구경하게 될 것 아닌가.한국의 어린이들은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본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 이 정도의 판은 어른들이 깔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2023-09-10

도마도마, 도마뱀

뜰을 가로지르는데 뱀 조심 뱀 조심뱀 조심 팻말이 눈에 쏙 들어와서도마뱀 도마 위에 뱀, 그런 생각했어요.투명 플라스틱 컵 들고 들어온 사서선생님여기 이것 봐요 문 틈으로 숨어들어잽싸게 잡아 왔어요, 참 귀엽지 않나요?작은 도마뱀 한 마리 몸 구부리고 엎드려컵 바닥에서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어요.가녀린 갈색 꼬리가 길어서 애처로워요.빨리 내보내 주세요, 풀밭으로 어서요.양쪽으로 볼록거리며 할닥거리는 심장도마뱀 객주문학관 도마도마 뱀 뱀 뱀― 이정환, ‘객주문학관 도마뱀’ 전문 (가히 가을호, 2023)도마뱀이란 캐릭터는 공룡을 닮은 신비롭고 귀여운 외모 덕에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이다. 우리가 이 행성에 살기 전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종의 것이었다면 그것은 거대한 공룡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공룡들의 이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룡의 이름은 우리가 화석을 통해 알게 된 정보로 인간이 지었다.말 그대로 이름을 만들어 낸 수 천 년의 역사에 인간이 가진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도마뱀이 파충류지만, 모든 파충류가 도마뱀은 아니다. 공룡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다이너소어(Dinosaur)도 그리스어로 ‘무섭다(δεινό)’는 뜻의 데이노와 ‘도마뱀(σαυρος)’을 뜻하는 사브로스에서 유래되었다면 우리말 도마뱀은 어떤 조어법으로 탄생했는지 궁금해진다.여기 이정환 시인(1954~)이 작명한 도마뱀을 어린이들의 눈으로 탐색해 보자. 화자가 말하는 공간 객주문학관은 비교적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나는 청송에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시대 산악지형과 중생대 퇴적암과 공룡발자국지형 등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이곳에서 시인의 “눈에 쏙 들어 온” 것은 뱀 조심 팻말이다. 아이들을 기쁘게 할 기대감에 사서 선생님은 “잽싸게 잡아” 온 도마뱀을 투명 컵에 담아 온다. 관찰하던 아이들은 웬일인지 빨리 내보내 달라고 재촉한다. 왜 그랬을까? 물릴까 봐 무서워서일까? 아이들은 투명 컵을 통해 들여다본 도마뱀의 모습에 마음이 급했다. 이희정 시인 “몸 구부리고 엎드려” “컵 바닥에서 / 할딱할딱 /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모습에서 도마뱀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평생을 초등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과 보낸 시인은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선한 동심을 잘 읽고 있다. 시조가 가진 언어의 율동성을 다정다감한 대화체의 화법으로 “잽싸게” “할딱할딱” “볼록거리며” 등의 소리와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오래전 작은 아이의 도마뱀 일화가 떠오른다. 파충류에 흥미를 보이던 아이는 도마뱀 세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도마뱀의 집을 꾸며 주고 매일 들여다보며 먹이를 주곤 했는데 어느 날 한 마리가 죽어버렸다. 아이는 슬픔에 빠져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는데 무심결에 웃음을 보인 엄마에게 식탁을 두드리며 분노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떻게 도마가 죽었는데 웃을 수 있냐”고 항변했다. 아이의 슬픈 감정을 온전히 이해 하지 못했지만, 생명을 돌보는 갸륵한 심성에 감탄했다. 이후 아이는 남은 두 마리를 숲으로 풀어주었고, 더 이상 도마뱀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도마뱀이 가장 행복한 곳은 숲이란 것을 이해하고 갖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놓을 줄도 알았다.찰나의 모든 순간은 예술이 된다. 그림이든 시든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 긴 여름 전시회장에서 본 카라바조의 그림 ‘도마뱀에 물린 소년’ 또한 그랬다. 얼굴표정으로 혹은 손가락으로 순간의 감정 서사를 그리듯. 이정환 시인이 운율로 감았다 풀어내는 동시조, 도마뱀 또한 재치 있게 작명한 한 폭의 기특한 풍경이다.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객주 문학관 풀숲에선 오늘도 “도마도마, 뱀 뱀 뱀”

2023-09-10

역사적 인물의 평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인물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옷이나 생김새 등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학벌이나 지위나 재력 따위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념이나 종교적 시각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고정관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평가의 목적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시대와 문화적 배경,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 고려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우선은 그 인물의 업적과 그 업적이 시대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인물이 어떤 목표와 가치를 추구했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하고, 인물이 가진 통찰력과 지혜와 능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윤리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학적 증거와 연구를 판단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상황에서 그 역사 속의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극명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북한과 종북·주사파들이 일제치하의 친일행위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친일에 못지않게 공산주의에 동조나 가담 여부를 인물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최근 뒤늦게 불거진 광주시의 정율성공원 조성 문제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로 좌·우 양 진영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율성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조선인민군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팔로군행진곡 등 공산체제를 찬양·고무하는 작곡활동을 했으며, 6·25 때는 중공군을 따라와서 궁정악보 등 왕실관련 유물을 훔쳐 중국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중국에 귀화하여 중국 국적으로 살다 죽은 그가 대한민국과 광주시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 ‘정율성거리’를 만들고, 매년 기념음악회를 열고, ‘정율성공원’까지 조성하겠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홍범도 장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등 항일 무장투쟁을 한 독립군의 대표적인 인물 중의 일인이다. 독립군으로서의 그의 공적은 누구 못지않지만,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치산 대장 홍범도의 이름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는 묘비명처럼 그는 소련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간성들을 길러내는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동상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문재인 좌파정권은 공산·전체주의 시각에서 김원봉이나 신영복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존경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입장에서 공산주의와 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 업적을 높이 사고, 백선엽 장군을 6·25전쟁 영웅으로 기린다. 지난 역사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지금 정치권의 인물들에 대한 판단과 평가도 국운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2023-09-07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4일 학부모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등 여교사의 49재 날, 서울 여의도에서 약 2만 명의 교사와 시민들의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약 10만 명 이상이 동참하였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은 이 추모집회를 ‘교사들은 집단행동 불가’라는 공무원 복무규정의 위반이라며 집회 참가자에게는 파면, 해임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했으나 교사들은 오히려 자발적 결의로 연가 또는 병가를 내어 함께 모였고, 유·초·중등 교사 50만7천 명의 교권확립을 주장하며 질서 정연하게 마무리했다.매주 수만 명 이상 토요일 집회를 이어오면서 외친 것은 그동안 계속되어온 공교육 약화를 우려한 교육개선의 문제였다. 지난해 말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고 올해 8월 교원지위법이 발의되어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강화되고 교권침해범위가 확대된다. 지난 5년간 교권침해 사례는 매년 약 2천여 건이 발생했고 초등교사 대부분이 교직 생활 중 교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그중 반 이상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고 한다.이러한 교권침해 사례가 일어나면 피해 교원과 학생을 격리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에게 병가를 내게 하거나 전보 발령을 하는 등 교육청과 교권보호위원회는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등 2차 가해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명예퇴직이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교육계 소식이다.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 학습권과 교사 수업권, 교원의 존중 등이 법규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인의 공허한 약속일 뿐 구체적 학생지도와 징계 방법 등이 명시되어있지 않아서 오히려 아동학대로 의심받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 중 잔다거나 수업 방해와 지시 불응 등이 있는 경우에도 체벌이 불가하여 교내 청소나 반성문 작성을 시키면 비인권적이라는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학생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2014년 ‘아동복지법’이 통과된 후, 아동학대죄로 정직을 당한 경우도 많고 지난 3년간 전국에서 담임교사 129명이 학부모 요구로 교체되었는데, 이 중 102명이 초등교사라 한다.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3, 40대 젊은 층일 텐데 귀한 자식을 금쪽같이 키우다 보니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식은 제멋대로인 아동이 되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은 모르는 듯하다. 잘 못한 초·중등 아동의 인성교육에 필요한 훈육을 아동학대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사례가 많아서 교사들의 생활지도권 보장이 요즘과 같은 공교육 추락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호 대립하는 가치는 아니다. 정당한 생활지도를 통해 진정한 가르침을 주었을 때 선생님들 또한 자존감과 긍지를 가질 것이다. 이번 집회에서 “선생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를 외쳤으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큰 가치 속에 부모는 교육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기고 선생은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가르침을 주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를 이루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9-07

안동에 이민청을?

우정구 논설위원 2018년부터 경북도가 야심차게 운영하고 있는 ‘화요일 공부하는 모임’인 슈퍼화공 포럼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정례 행사를 가졌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인구소멸 문제와 관련해 경북도의 이민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이날 포럼 좌장을 맡은 경기대 김택환 교수는 “지방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독일 남부 보수도시 뉘른베르크처럼 경북 안동에도 이민청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한국장학재단 배병일 이사장은 “도청에 이민국을 신설하고 외국인 유학생 30만명을 유치하자”는 제안도 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선 사람을 모아야 하며 저출산 대책으로 소멸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단일 민족을 표방한 한국은 이민정책에 대해 보수적이다. 그러나 인구소멸의 문제가 심각히 제기되고 최근 이민자 증가가 늘면서 다민족,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시선이 조금씩 수그러들고는 있으나 외국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은 소극적이라 했다.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섰고, 2030년에는 300만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출산 장려만으로 인구절벽을 줄이기 어렵다”며 “이민정책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적극적 이민정책을 표방했다.슈퍼화공 포럼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것으로 보이는 경북의 인구문제를 푸는데 새로운 시각의 이민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민을 적극 수용,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북도의 이민정책에 변화가 올까. 기대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07

무너진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우리 사회가 교권침해로 홍역을 앓고 있다. 수만 명의 교사들이 참가,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지내고 ‘공교육멈춤의 날’ 행사를 가졌다.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었다. 이 와중에도 학생의 교사 폭행과 교사 자살 사건은 이어졌다.외신도 한국의 교권침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BBC는 “학업 성공에 모든 것이 달린 초 경쟁 사회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BBC는 “(교사들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학생들을 훈육하거나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고 교육현장을 비판했다.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지금은 학생들에게 훈육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교권침해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학부모들이 아동학대 고소는 사소한 것들이 누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교사와 아이들의 충돌과 교사의 과도한 언어 대응이 학부모의 분노를 촉발, ‘아동학대’ 나 ‘정서 학대’로 진행된다고 봤다.교육 붕괴의 근인은 가족 해체다. 가족 해체는 가정 붕괴로 이어진다. 가정교육을 못 받은 학생의 일탈은 교사의 지도가 어렵다. 그러다가 포기하게 되고, 학교 교육마저 무너진다. 이는 사회까지 연결된다. 결국, 밥상머리 교육이 문제다. 가정과 학교가 바로 서야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사교육에 찌들려 교실에서 잠만 자는 학생. 이를 나무라지도 못하는 교사 등 학교보다 학원이 우선되는 게 현실이다. 내신조차 사교육으로 넘어갔다. 수능점수에 학생의 인생이 좌우된다. 공교육은 형편없이 망가졌다.교육 붕괴는 연쇄 파급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오랫동안 벗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른다. ‘모방 범죄’까지 발생, 국민이 노심초사다.정치판도 무너졌다. 협상은 없고 이전투구만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 투자로 국민 분노를 산 김남국 의원을 퇴출하지 못하는 죽은 정당이 됐다. 이재명 당대표는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단식에 돌입했다. 출퇴근, ‘웰빙 단식’을 한다. 약자의 최후 수단인 단식을 희화화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친북 단체인 조총련 주최의 간토 대지진 학살 조선인 추모식에 참석, 지탄받았다. 정작 자신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거대 야당의 묻지마식 반대와 거부에 국정 운영이 비틀대고 있다.국가정보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 북한이 일부 좌파단체 등에 반대 투쟁 지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공산당이 버젓이 내놓고 활동하는 게 현실이다.교육계에서 다양한 교권침해 대책과 논의가 일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외신이 지적하듯 우리의 현실은 교육 붕괴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됐고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덕댄다. 사회가 중병이 들었다. 총체적 난국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2023-09-07

한글서예로 꽃핀 내방가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제14회 대구한글서예대축제 초대장과 도록을 받았다. ‘내방가사-한글서예로 담다’를 주제로 한 서예전이었다. 내방가사가 이렇게 꽃필 수도 있구나 싶은 반가움과 고마움에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어보고 싶었다. 마침, 짧은 인사말을 부탁받았기 때문에라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내방가사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문학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세종대왕 창제의 한글 덕분이다. 1443년에 창제 1446년에 반포된 한글, 훈민정음은 말 그대로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였다. 그러나 조선의 공식문자는 한자였다. 대부분의 남성 양반에 의한 지배문학 역시 한자였다. 그런 면에서 여성은 침묵을 강요당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30여년 뒤, 1580년대 난설헌 허초희라는 천재시인이 ‘규원가’라는 가사를 지었으나 문학에 관한 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200여 년 후, 1794년 경북 안동 하회에서 연안 이씨가 집안의 겹경사를 송축하는 가사 ‘쌍벽가’를, 연이어 1810년경 기행가사 ‘부여노정기’를 창작하면서 드디어 내방가사가 한국문학사에 점을 찍기 시작하였다.이후 경상도의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창작하고, 필사하고, 혼자 읽고, 돌려 읽고, 혼자 외고, 둘러앉아 낭송하는 향유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적으로는 친척 내에서, 더 넓게는 혼인관계를 통해 전파와 전승의 향유를 지속하였다.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작품 수가 6천여 편이 넘을 정도로 경북 여성들만의 특별한 문학이자 문화가 되었다. 창작과 낭송의 전통이 안채의 담장을 넘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80여년 후인 1997년, 이선자 회장이 창립한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덕분이었다. 특히 총 24회나 개최된 전국내방가사경창대회를 통해 내방가사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낭송 소리는 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고전문학인 내방가사가 현재도 향유되고 있는 현재성의 문학임을 증명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2022년 11월 16일, 내방가사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고,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에 부합되면서 여성공동체의 집단문학적 가치를 인증받은 셈이다. 이는 전적으로 내방가사를 잘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 덕분이다. 허난설헌으로 기산하면 443년, 연안이씨로부터는 229년의 내방가사의 역사에 이름없는 수많은 여성 작가들을 보태어야 한다. 내방가사전승보존회 이선자 회장의 노고와 대구한글서예협회 최민경 회장의 역량에 기대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인류사에서 기록물 등 수많은 무형유산들이 전쟁, 사회적 변동, 약탈 등에 의해 영원히 사라졌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에 비춰볼 때, 내방가사를 소중히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에게 우리 문학, 문화, 역사가 크게 빚지고 있다. 2023년 8월, 대구한글서예대축제에서 만난 서예작품들은 문학이 서예로 비상하는 내방가사의 새로운 역사의 장이었다.

2023-09-06

뜨거운 것에 데었을때 어떻게 할까?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땀이 뻘뻘 나는 더위에도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나라, 노곤한 하루 일과를 김이 펄펄 나는 국밥으로 마무리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이렇듯 뜨거운 음식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살면서 종종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린 아이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을 겪는데 이럴 때 떠올려야 할 것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화상을 입었을 때 손상의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물집이 생기지 않고 피부가 붉게 되어 통증만 있는 정도는 1도 화상에 속한다.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집이 생기면 2도 이상의 화상으로 치료 관리가 중요해진다. 2도 이상의 화상부터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물집의 크기가 크고 물집 아래로 비치는 색이 노랗거나 흰 경우 손상의 정도가 깊으므로 되도록 빨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화상을 입은 경우 먼저 흐르는 수돗물에 환부를 데어 열기를 가라앉히고 오염을 제거한다.화상으로 입은 상처에 세균 등이 감염되면 치료 기간도 굉장히 길어지고 흉터도 생기게 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물집의 관리이다. 갑자기 화상을 입으면 물집을 터뜨려야 할지 가만히 둬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물집 안에는 피부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되도록 물집을 간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물집의 크기가 크면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물집을 터뜨려서 안에 있는 물을 빼 주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환부 주위를 깨끗하게 소독해 주고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외부와 닿지 않게 거즈나 밴드 등을 이용해서 덮어준 상태에서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한의원에서 이런 화상 치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생소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화상을 치료하는 데 한방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서 하는 화상 치료로는 대표적으로 자운고 도포와 침 치료가 있다. 자운고는 자초, 당귀, 호마유, 밀랍, 돼지기름 등으로 만들어진 연고로 피부 질환에 많이 사용하는 외용제이다. 자초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청열 작용이 있고 당귀는 보혈 및 어혈을 제거하는 작용으로 피부 재생을 도와주며 나머지 정유 성분들은 보습을 도와준다. 화상에도 많이 쓰이지만 건조한 피부 질환에도 효과가 좋은 약이다.침 치료는 화상으로 상처가 난 부위 주변 테두리를 따라 얕게 자침하여 피부의 재생을 도와준다. 침의 자입으로 인한 미세한 손상이 회복되면서 주변 조직도 함께 회복되는 효과로 추측하고 있다.화상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한의원이 있을 정도이니 한방 치료의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피부의 상처는 관리에 따라서 짧은 기간에 깨끗하게 나을 수도 있지만 감염에 의해 다른 병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고 소독을 너무 과하게 하는 경우에도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니 급한 상황의 처치 후에는 꼭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도록 하자.

2023-09-06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기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지만 일자리에서 물러난 노인들은 길을 잃는다.정부가 짊어질 복지정책 부담도 재정적인 면에서 가볍지 않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지역에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빚어내 지역소멸의 위기감마저 가지게 한다. 인구위기는 남북한을 가리지도 않는다.2070년이 되면 남한은 3천600만, 북한은 2천400만 인구로, 2021년 대비 각각 70%와 9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위기의 그림자는 반드시 기회의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 65세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이전의 노령층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한국전쟁 후 사회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로 베이비붐세대(baby boom generation)라 불리운다. 급격하게 초고령화로 접어든 느낌이 드는 데에도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모두 겪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때어났지만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으며,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면서 거친 들판을 지나온 세대가 아닌가.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깊고 여러 정치적인 이념성향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며 배운 바가 있어 노후대비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이전 어느 노인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고령층’이 출현하고 있다.한국사회에 처음 나타난 세대가 아닐까. 역사상 처음으로 체력(體力), 지력(智力), 재력(財力)을 겸비한 세대라고도 한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진보로 인간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전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닌가. 국가경제 발전을 몸소 견인해 온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은퇴한 다음 일로부터 손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자조적인 삶을 유지하던 노인층이 아니다. 건강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다짐을 불태우는 세대로 보아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s)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게 아닌가. 인구 초고령화는 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초고령화를 위기요소가 아니라 기회인자로 보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적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대의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소비성향을 진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이를 세대 간 갈등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인구고령화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미래로서 ‘초고령화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마련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맞게 될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재정압박을 핑계로 회피하려 하거나 세대갈등의 빌미로 보아 배척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023-09-06

재주는 곰이 부리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있다.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이익 보는 사람 따로 있을 때 하는 말이다.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곰과 호랑이 등 ‘곰 곡마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박지원 뿐만 아니라, 당시 청나라를 다녀온 실학자들이 곳곳에서 곰 곡마단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없는 유희단이었다. 독립신문에도 청나라 상인이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리게 했다는 기사가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속담은 대한제국 시기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한국이 양극재 수출로 번 돈 대부분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급성장에 따라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이 급증하고 있지만 양극재 수출로 번 돈이 리튬, 전구체 등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중국으로 상당 부분 흘러갔다. 양극재 제조용 원료 확보가 미국 IRA 대응은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해서도 중요해졌다.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액은 74억9천만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6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양극재 수출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77.7% 성장했다. 하지만 양극재 수출이 늘수록 원료인 리튬과 전구체 수입이 늘고 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특성상 무역수지가 악화됐다. 상반기 양극재 수출로 58억1천만 달러의 흑자를 봤지만 88%인 51억 1천만 달러가 원료를 수입한 중국에 돌아갔다.원료 공급선 다변화와 원자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 원자재 확보와 투자가 절실하다. MB정권이 추진했던 해외 원자재 확보 실패가 뼈아프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중국이 버는 상황이 답답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6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

2023-09-06

정사일주(丁巳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네 번째는 정사(丁巳)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와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같은 화(火)기운으로, 빛과 열이 혼합되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동물로는 붉은 뱀이다.정사일주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형상이지만, 해 질 녘의 모닥불이며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활동적인 불기운이 아니라, 정제된 불기운이다. 만사를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처리하여 처세에 능하기 때문에 큰일을 도모하고 성취하는 재능이 있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활동이 정열적이며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하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열정만은 남다르다.현실적 감각이 뛰어나 금전 감각이 밝은 편이다. 판단력도 좋아 종종 주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싫증도 빨리 내고 뒷심이 부족한 편이다. 초심과 달리 종종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하겠다.한편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존중해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낙천적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성격은 불같지만 쉽게 누그러지는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강한 상대를 보면 도전하고자 하는 승부욕도 가지고 있다.중국 춘추시대 위나라 임금인 문후가 사냥터를 관리하는 관원에게 사냥하러 갈 날짜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었다. 사냥하기로 한 날, 위문후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마침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위문후는 사냥하기로 한 날임을 기억하고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오늘 술도 기분 좋게 마셨고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어딜 가시려고 그렇게 차비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위문후는 “사냥터 관리인에게 오늘 내가 사냥 간다고 알려 놓았다오. 오늘 비록 술을 마셨고 비가 오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끝내 사냥터 관리인에게 가서 직접 이번 사냥은 쉰다고 말해 주었다.‘위문후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속에는 신분의 고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매몰된 사람은 쉽게 약속을 파기하는 경향이 있다.정사일주 남자는 경제력이 충분해도 지나친 욕심과 고집으로 배우자가 힘들어 할 수 있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여자는 성격이 화끈하며 치장과 변신에 능하고 독설도 서슴지 않기에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어야 만족하기에 고독하게 혼자 사는 경우가 있다. 남녀 모두 결혼은 만혼이 좋다. 부부다툼으로 인하여 이별수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져줄 수 있어야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정사일주는 보름달 아래 붉은 뱀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느낌이 강하고,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어딘가 비밀이 많고 속마음을 잘 비추는 법이 없다. 하지만 밝고 놀기 좋아한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버티는 악착같은 면도 있다. 쇠약하거나 시들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일주다. 뒷담화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포용력이 넘치고 친화적이라 인기가 좋은 편이다.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지만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또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이나 눈부시고 사치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 성공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며, 상대가 베푼 작은 선행도 감사하고 잊지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으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해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스콧 피츠제럴드 (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룬 미국 경제와 물질 만능주의가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군 입대와 가난 때문에 이별해야 했던 애인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당시 금주법을 악용하여 불법인 밀주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게 된다.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강 맞은편에 거대한 주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밤이 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불이 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녀와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연다. 언젠가 그녀가 방문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데이지는 부유한 톰과 결혼을 했고, 딸아이까지 있었다.개츠비는 우연히 자기 집 근처에 사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 닉을 만난다. 닉은 개츠비가 오래전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아직도 못 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닉을 통해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만난다. 개츠비는 인생을 걸고 데이지에게 모든 걸 바치려 하지만, 데이지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어느 날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랑한 사람은 톰이 아니라 자신이라며 언쟁을 벌이게 된다. 기분이 언짢은 데이지가 자리를 뜨자 뒤쫓아 간 개츠비는 그녀가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 도중에 톰의 정부 머틀을 차로 치어 죽이게 된다. 톰은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개츠비의 짓이라고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 데이지는 오지 않았다. 닉과 게이츠 아버지 등 두 세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 후 닉은 고향에 돌아간다.1920년대 미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치부를 드러내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이상을 쫓다가 신분 장벽으로 좌절된 한 젊은이의 삶을 담고 있다. 교활한 사람, 비겁한 사람은 간혹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들은 심오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너무도 단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100년이 지난 우리 사회도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로 출세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코인, 주식,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갈망하고 있다. 신분상승으로 인해 상류기득권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몰락의 길인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2023-09-06

‘빼박’의 국민연금

우정구 논설위원 “빼도 박도 못한다”는 우리말은 일이 난처하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의미의 관용어다. 한자 말로는 진퇴유곡 혹은 진퇴양난에 비유된다. 한때 인터넷상에는 이 말을 줄여 ‘빼박’이라 부르기도 했고, “할 수 없다”는 뜻의 영어 can’t를 붙여 ‘빼박캔트’라고도 불렀다.국민연금 개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개혁을 거부했다. 국민 눈치보기 내지 인기영합적 태도다. 누가 보더라도 고갈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이 인기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그룹이 연금개혁 시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시기는 늦춘다는 것이 골자다. 2055년 예상되는 연금 고갈 시기를 최장 2093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20세 청년이 90세가 될 때까지 연금이 소진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문제는 소득대체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인상되지 않으면 연금소득 자체가 초라해지기 십상이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연금 보험료 인상의 효과가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이 오가고 있다.그야말로 빼박도 못하는 개혁안이지만 그래도 여론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밀어붙여라고 하는 쪽이 우세하다. 복지부 산하 16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안을 내놓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후퇴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국민의 70%가 거세게 반대한 프랑스 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인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9-05

광역비자제도가 인구문제 해법될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어떤 자리에 가도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제다. 우리세대에서 국가소멸이 가시권 내로 들어온 탓이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세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지난해 연말, 역대 가장 낮았던 4분기 합계출산율(0.702명)과 관련한 사설을 쓰면서 ‘인구재앙’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걸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가 0.6명대로 떨어지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01명으로 더 떨어졌다. 통상 1분기에 아이를 가장 많이 낳고 해가 바뀌는 4분기에 가장 적게 낳는 점을 감안하면, 올 4분기에 0.7명대 마지노선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이미 대구는 출산율이 0.67명으로 서울(0.59명), 부산(0.66명)과 함께 0.6명대로 떨어졌다. 전국 17개 시도를 통틀어 출산율이 1명을 넘은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세종시의 출산율도 0.94명이다. 올 1분기만 해도 1.19명이었다. 충격적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1명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산율도 1.3명이다.미국 학자 조앤 윌리엄스는 EBS 다큐멘터리에 나와 한국 출산율 수치를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다”며 머리를 감쌌다.한국의 인구절벽은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중소도시 소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 대도시가 아니고는 산부인과·소아과를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일차적으로 초등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경북도를 예로 들면, 2023학년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32개교다. 이 중 14개교는 2~3년 연속 신입생이 없었다. 입학생이 1명뿐인 학교도 30곳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했다시피, 돈으로 저출산 추세를 막기는 불가능해졌다. 내년에도 저출산 극복예산으로 17조5천900억원을 책정해 놓았지만, 대부분 예산항목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이제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외국인 유치 쪽으로 전환할 때가 된 것 같다.정부는 경북도가 제안한 ‘광역비자’제도(시도지사가 외국인 노동인력, 유학생 유치를 위해 비자 발급 권한을 갖는 것)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지난해부터 광역단체장에게 비자발급권을 주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방대학에 외국인 유학생 1명이 입학하면 부모 2명에게 취업 비자를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현재 국회에는 임이자 의원(상주·문경)이 발의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시·도지사가 외국인 우수산업인력의 배우자·부모·자녀에 대한 비자발급을 법무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우선 이 법안이라도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켜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소멸 위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2023-09-05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도 맑고 높푸르러지니 바람의 결조차 달라져 한결 선선하다. 무성하게 자라던 초목은 성장을 멈추고 들판의 곡식은 정갈한 햇살을 받아 여물어간다. 아침 저녁의 선들선들한 기온에 한낮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가는 초가을, 알곡이 여물고 과실이 익어가는 9월은 열매달이라고도 한다. 어정거리던 칠월을 지나 동동거리던 팔월의 가슴을 선선한 바람 결에 쓸어 내리는 가을의 어귀로 접어들고 있다.‘지구의 손가락이 궁서체로/공중에 ‘가을’ 한 글자 적으면//무성해 소란스럽던 무더위는/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고//그간 쪼그라들었던 가을바람은/고추잠자리 날개 펼치듯/오금을 쭉 펴고 일어나지//풋풋한 가을이 자박자박 걸어오지’·남정림 시 ‘초가을’전문가을을 찬미라도 하듯이 도처마다 즐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자연의 합주곡마냥 정겹게 들린다. 하늘 높이 떠가는 흰구름이 바람의 시를 쓰고, 또렷하면서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풀숲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계절의 시계마냥 그냥 보이고 저절로 들리는 자연의 시와 음악이 넉넉한 세상의 배경이 되듯이, 사시사철 나눔과 베풂으로 사회 곳곳을 밝고 따스하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상을 숨쉬게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로 소리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음악회가 바로 내일(7일) 포항의 효자아트홀서 열리기에 이채롭고 신선하기만 하다.봉사활동하기 좋은 9월에 마치 자원봉사의 손길과 땀방울을 찬탄하는 양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향연이 벌써부터 설레고 기대된다. 필자도 조금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봉사자들은 자신의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보상이나 위안을 삼기가 머쓱했었는데, 이번에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 뮤직 콘서트가 오랜 준비 끝에 열린다기에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난타와 대중가요, 악기 연주, 시낭송, 밸리댄스 등의 자원봉사 출연진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1부),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는 사람들(2부), 봉사함에 행복한 당신이 있어(3부), 세상은 아름답습니다(4부)’ 등의 테마로 공연을 펼치는 것은 봉사자들의 노고와 기여에 대한 감사와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제공을 위한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출연진들 모두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로 나섰기에 한결 의의가 크지 않을까 싶다.가을 마중을 하듯이 밖에서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들려오고 안에서는 음악의 선율과 시의 향기가 흐르고 있으니 과연 가을의 길목에 어울리는 절묘한 하모니랄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화음인 듯하다. 아름다운 봉사의 손길이 문화와 예술로 승화되고 삶의 힘이 되듯이, 누구나 편하게 참여하고 부담 없이 어울려 자원봉사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를 기대해 본다. 봉사는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최상의 덕목이자 가없는 정성이다.

2023-09-05

포항 하면 SF가 떠오르기를

강지우 SF평론가 2019년, 포항에서 ‘제1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열렸다. 육거리에 위치한 인디플러스 포항 영화관을 중심으로 SF 영화제, 토크콘서트는 물론 한국 SF 100년사 전시와 각종 부대행사가 알차게 펼쳐졌다. 필자가 SNS에 행사를 공유하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컨택트’와 ‘매트릭스’를 보고 우주과학자, 뇌과학자와 영화 속의 과학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과 우주로 확장하는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제1회’에 담긴 지속하고자 하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포항 SF 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찾는 관객이 다소 적었던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다.포항 SF 페스티벌은 포스텍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주관이었다. APCTP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 이론물리 연구소로, 세계적인 석학들이 물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동시에 이곳은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포항시와 함께 ‘포항 가족 과학축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바로 APCTP다.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해 저자 강연을 개최하며, 이공계 학생 대상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SF와의 인연도 깊다. 2008년부터 웹진 ‘크로스로드’에 SF 코너를 운영해 온 덕에, 지금은 거장이 된 SF 작가들이 데뷔 초기, SF를 발표할 마땅한 지면이 없던 ‘보릿고개’를 버티고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처음 SF의 매력에 빠진 것도 ‘크로스로드’에서 낸 SF 앤솔로지(여러 작가의 작품집)를 읽고서였다.APCTP가 위치한 포스텍도 SF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포스텍은 2020년부터 ‘포스텍 SF 어워드’를 개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SF작가 김초엽이 나온 대학이기 때문일까. 일반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여타 SF 공모전과는 달리, 이공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만을 참가 자격으로 받는 것이 특징이다. 이공계 전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SF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작가와 작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포스텍은 SF 작가의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SF, 오래된 미래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여섯 명의 연속 강연이 열렸다. 또한 ‘제1회 포스텍 SF 데이’에서는 맨부커상 후보에 빛나는 정보라 작가와 김겨울 작가의 북토크가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이처럼 포항과 SF의 연결고리가 여러 겹으로 견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연구의 최첨단을 이끄는 포스텍과 최첨단의 기술로 지어진 제철소가 일상처럼 가까운 도시.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미래를 꿈꾼다. SF적 상상력을 배양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제 ‘포항’ 하면 푸른 바다와 맛있는 해산물뿐 아니라 ‘SF’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곳,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SF 기반 문화 콘텐츠가 한껏 피어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제2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벌써 기다려진다.

2023-09-05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때 아닌 사상 논증이 한창이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이전 논쟁이 그 주인공이다. 요지는 이러하다. 흉상의 인물이 현 대한민국의 정신에 맞지 않으며,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던 사람도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국방부와 육사측은 독립운동보다는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대해서만 흉상을 비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흉상 철거 사유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여기까지만 보아서는 국방부와 육사의 발언은 꽤나 합당해 보인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 정권과 군사적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므로, 공산당 전력이 있는 사람을 육사의 정신을 표상하는 흉상으로 배치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으로 들리기 때문. 하지만 그 대상이 홍범도 장군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아한 구석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다. 홍범도 장군은 심지어 2016년 박근혜 정부 시기 해군 97전대 소속의 손원일급 잠수함에도 명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쟁은 단순히 육사의 흉상 이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잠수함 명칭 개변 및 국군사에서의 홍범도 장군은 흔적 지우기라는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홍범도 장군이 레닌 시기 소련 공산당 인사였음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당대 세계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홍범도 장군이 북방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1920년대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의 백군과 연합해 전선을 펼치고 있었기에, 만주 군벌 및 일본군과 대립하던 홍범도 장군으로서는 러시아 적군과 연합해 전선을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러시아 공산당은 향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친 스탈린 시기 공산당과는 사실상 다른 집단이며, 2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속해 있었다는 역사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들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것을 빨갱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빨치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정규 유격 게릴라 부대를 통칭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자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국방부측은 여기에 덧붙여 홍범도 장군이 사할린 한인 부대가 러시아 인민혁명군에게 제압당한 자유시 참변에 개입하였기에 진성 공산당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사학계에서는 해당 사건에 홍범도 장군이 개입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역사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그럼에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인사의 흉상 이전에 찬성하는 ‘제대군인자유노동조합’의 김영교 공동대표는 최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과 공동 진행한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육사 공산주의자 흉상 존치 규탄대회’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그의 무덤을 파묘해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흉상 이전 찬성 측의 발언과 근거를 확인하고 있자면, 흡사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논쟁과 임시 정부를 대한민국의 근간에서 부정하려했던 뉴라이트 계열의 논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육사와 국방부측에서 이와 같은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의 자리에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 밴플리트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려 계획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백선엽 장군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 소속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자서전에 직접 서술한 친일행위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더불어 맥아더 장군과 밴플리트 장군은 전쟁사와 한국사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육사의 정통성을 기리는 충무관 흉상으로 제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소의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역사에서는, 이 둘을 대체할 정도의 영웅이 없었다는 말인가?많은 부분에서 최근의 논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역사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특정한 인물이나 역사적 단체의 위상을 상향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 역사를 부정하고, 없는 역사를 만들면서까지 무엇을 위해 이런 행동을 행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힘든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없는 문제까지 만들어내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2023-09-05

‘복세편살’이라는 주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그 신조어를 접했던 건 바야흐로 십 년 전,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던 순간이었다.그녀는 “은강아, 복세편살하자. 복세편살.”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친구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언뜻 들으면 복(福)을 비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심오한 뜻이 내포된 사자성어 같기도 한 묘한 단어. 대충 좋은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야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네 글자로 줄여 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애들은 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구나. 애늙은이처럼 혀를 차는 것도 잠시, 그 말이 어찌나 중독성 있던지. 언제부턴가 나도 주문처럼 ‘복세편살’을 외치고 있었다.정말이지 그건 주문 같았다. 마음이 실타래처럼 엉키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댈 때면 마음속으로 ‘복세편살’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정말 주술적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이 단박에 해결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순간적으로 잔잔해지는 것도 경험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주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세상은 복잡하다.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것들이 자꾸자꾸 생겨난다. 변화의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대면보다 비대면 방식이 많아지고 1분 내외의 숏폼 영상을 넘기고 있노라면 20분 내외의 유튜브 영상도 길다고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며 노동세계 또한 완벽하게 변화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건 어떠한가. 타인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아서 어떤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선의로 건넨 진심이 난도질 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인간이 질서와 체계를 좋아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자연법칙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책상이 뒤죽박죽 상태가 되면 말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질서로 향한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은 단 한 순간도 내가 원하는 상태로 있어 주지 않는다.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슈테판 클라인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합적인 문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는 것이 종종 성공의 열쇠가 되어준다. 단순한 사고만이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모든 문제를 작은 걸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머리로는 알고 있다. 불필요한 생각을 멈추고 담백하게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저 ‘편하게’라는 말로 넘기기에 눈앞의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일이 다가왔을 때 마냥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감히 겪어보지 못한 사건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걱정을 멈추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조언은 어떤 면에서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렇듯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지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복세편살’을 외치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매사가 불안했고 작은 일에도 쉽게 넘어졌다. 선택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누군가 내 진심을 곡해할까 전전긍긍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뱉은 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간 얼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 담백하고도 다정한 말은 내게로 향하는 분명한 위로였다.나는 결심한다. 상대의 저의를 파악하는 것보다 상대의 눈동자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자. 어려운 상황에도 밝고 쾌활하게 웃는 사람을 그 모습 자체로 사랑하자. 그러한 시선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복잡한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편안해지리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이 다가온다고도 믿는다. 알다시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까. 그것이 꼭 불행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의 ‘복잡한 세상’이 ‘복(福)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2023-09-05

신라 이사부 장군이 지켜온 독도·동해…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때

유충근 동해해양경찰서장 중국 당태종의 유명한 고사 중“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어떤 일을 이루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로 나라를 세우는 것과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는 내용이다. 어떤 일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해양패권의 경쟁 속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 재산 등을 지키며 한 발자국씩 더 발전하고 있는지 오늘 나는 생각해 본다. 동해시 묵호진동 13번지, 이는 동해문화원과 국가기록원 동해시청 등을 통해 찾은 동해해양경찰서의 시작인 묵호기지대의 창설지이다. 동해해경은 1954년 묵호진동 13번지에서 해양경찰 묵호기지대 발대식을 거쳐 2010년 현재의 청사로 이전하기까지 70년간 동해를 지키고 있다. 우리 동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신라시대 지증왕 13년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주에 군주로 임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군주로 임명된 이사부 장군은 동해 먼바다에 있는 우산국(지금의 독도와 울릉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사자를 여러 개 만들어 겁을 주니 우산국(울릉도) 사람들이 놀라 항복한 일화는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 장군의 지혜와 함께 신라 수군 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이사부 장군의 기백을 이어받은 동해해경은 2002년 3월 해양경찰 최대 경비함정인 5001함(삼봉호·독도의 옛 지명)을 인수해 독도와 동해북방해역까지 광활한 동해를 수호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23일 울릉도 북서방 117Km 해상에서 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가 침몰했을 때 동해해경은 삼봉호를 현장으로 보내 10여 일간의 수색 구조작업을 했다. 삼봉호는 거센 파도를 뚫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수색하던 중 러시아 선원 5명을 구조하고 1명에 시신을 수습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 러시아 현지에서도 큰 감동을 불러왔고, 감명을 받은 러시아 유명 화가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에 걸쳐 그린 유화작품(가로 16m, 세로 1m)을 동해해경에 기증했다. 그는“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 침몰사고시 최악의 기상조건에도 불구, 한국 해양경찰의 10여 일간의 생사를 넘나든 구조 활동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휴머니즘의 극치를 보여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는 대한민국 국가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14년 12월 1일에는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한 501 오룡호를 수색하고자 삼봉호는 해양경찰 역사 중 처음으로 해외 자국선박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38일간의 긴 수색작업으로 당시 평균 파고 4~5m 이상의 높은 파도와 초속 20m/s의 강풍이 부는 극한의 상황 속, 안타깝게도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국인 6명의 시신을 인도받아 고국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렸다..또한, 2021년 12월 울릉도 북동 131km 해상에서 5천t급 파나마 선적 화물선이 침몰해 3016 함(태평양 16호)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악천후 속 선원 18명 중 17명을 구조한 동해해경은 베트남 특명전권대사로부터 감사장을 전달받았고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내부적으로 동해해경은 동해 북방해역 등 광활한 해양영토에서 불법 조업 외국어선 대응역량을 강화해 국민이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또한, 동해를 방문하는 많은 국민에게 연안안전정책 홍보 등을 통해 안전의식을 키우고 연안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로운 레저 트렌드에 맞는 수상레저활동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고 시기에 맞는 특별단속기간을 정해 해양범죄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해양 마약사범 근절 등 해양수사 전문가 양성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동해해경은 묵호기지대 창설지 위치에 동해해경 표지석을 설치, 국민에게 동해해경 역사에 대한 홍보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동해해경은 지난 70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면서 성장해 왔고, 기본에 충실하고 현장에 강한 국민의 해양경찰이 됐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뽐내는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동해의 길잡이가 돼, 안전하고 깨끗한 동해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독도의 개척자 신라 이사부 장군은 지난 2012년도 표준영정으로 돌아와 삼봉호로 승선, 독도의 수호자 동해해경과 함께 독도와 동해바다를 굳건히 지켜 내고 있다. 동해해경을 지켜온 수많은 선배님과 592명의 든든한 소속 해양경찰관, 함정 18척, 그리고 이사부 장군, 그 기세를 오늘도 떠오르는 독도 동해의 태양을 보며 해양주권 수호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2023-09-05

‘마린머드’, 진주되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흙 속에 들어 있는 미네랄은 슈퍼박테리아, 살모넬라, 대장균 등 유해 세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해 준다. 진흙 속 다양한 무기질과 미량 원소 등 영양소는 항균 작용을 도와 각종 피부질환과 물리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진흙은 이렇듯 인체에 이롭다. 특히 해수와 오랜 시간 반응한 마린머드는 약리적 효능과 화장품 기능을 갖는다.경북 동해안 일대에 다량 분포한 ‘마린머드’가 뷰티산업 신소재로 떠올랐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이미 테라피(치료) 산업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린머드를 활용한 뷰티 테라피 산업은 건강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사해의 머드는 머드팩, 화장품, 테라피 용도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경제 가치만 1조 원에 달한다. 최근엔 알래스카 빙하머드도 출시됐다. 뷰티 테라피 산업분야에서 마린머드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경북 동해안의 후포분지는 왕돌초가 퇴적물의 이동을 막고 있는 해저 지형으로 양질의 머드가 대량 부존돼 있다. 지질자원연구원 포항센터는 울진 후포 앞바다에 마린머드가 8만ha에 36억t 가량 산재한 것으로 추정한다.경북도는 최근 마린머드의 보습과 주름 개선, 항산화, 항염, 미백 등 뛰어난 효능을 확인했다. 마린머드의 화장품 원료 공정개발도 마쳤다. 효능평가와 함께 중국과 미국에 국제 뷰티산업 원료등록을 하고 한창 제품을 개발 중이다.경북도는 동해안 마린머드가 충분한 산업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테라피와 의료제품 개발 등 국가지원 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관광 상품 개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령 머드축제를 뛰어넘는 울진의 마린머드 축제를 기다린다. 진흙탕 속에 흠뻑 빠져 맘껏 뒹굴 날을….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4

‘수소 도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4월 10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공동위원장인 국무총리 주재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 의지와 정책 방향을 담은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하였다. 그리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하였다.이 계획은 작년 8월부터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의 총 80회 회의와 연구·분석을 토대로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과기정통부, 기재부 등 20개 관계부처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였다.3월 21일 정부안 발표 이후 탄녹위와 관계 부처는 대국민 공청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 토론과 온·오프라인 국민 의견을 수렴하였다. 아울러,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 청취를 위해 과학기술계, 노동계·지역사회, 중소·중견기업, 청년·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토론회·간담회(공청회 포함 총 15회)를 개최하고, 기본계획(안)에 각계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 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4대 전략과 12대 과제를 제시하였다.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우리나라 중장기 감축목표는 2018년(6억8천600만t CO2eq) 대비 40% 감축된 4억3천700만t CO2eq으로 설정하였다. 이렇게 새로이 설정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부문별 감축 시나리오도 조정하였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산업 부문은 감축 후 목표배출량은 2억2천300(14.5%)만t에서 2억3천100(11.4%)만t CO2eq로 상향하였다.반면 태양광과 수소 등 청정에너지 관련 전환 부문 감축량은 확대(+400만t)하고 해외투자를 통한 국제감축 부문도 확대(+400만t) 하는 등 감축 수단별 이행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부문 간 감축목표량을 조정하였다.이렇게 윤석열 정부에서는 전환 부문에서 태양광과 더불어 수소 에너지와 관련하여 수소 생산·인프라와 수소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생산·인프라는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등 핵심기술 실증 및 수소액화 플랜트·수소 배관망 등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는 것이다. 수소 생태계는 내연차·선박·트램 등 수소 모빌리티 다양화, 수소 클러스터 및 ‘수소 도시’를 지정하는 것이다.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량 비중을 2018년 0%에서 2030년과 2036년에는 각각 2.1%와 7.1%로 확대할 계획을 발표하였다.토요타시(일본)는 ‘수소 사회’ 구축을 추진하며 연료전지 자동차와 수소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으며, 코펜하겐(덴마크)은 풍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포항시를 포함한 6개 지역을 ‘수소 도시’로 시범 조성할 계획이다. 2030년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함께 공항신도시와 K-2 후적지 등에도 ‘수소 도시’ 조성이 기대된다.

202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