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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방정교와 로마 가톨릭-콘스탄티노플 황제와 로마교황

꾸준하게 아래로부터 전파를 탄 가톨릭의 생명력은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보편적인’의 그리스 말 ‘카톨리케’ 어원인 가톨릭이 로마 종교로 합류했고, 박해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났다. 순교로써 박해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집권 세력은 공포심을 느꼈다.종교는 백성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종교끼리 느닷없이 동화되는 법은 없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서기 312년에 로마 북부 막센티우스에게 승리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드넓은 제국을 한곳으로 모을 구심점이 필요했던 그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뒤이어 서기 322년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공식 종교로 인정되었다.325년에 로마 상층부로 스며든 가톨릭이 392년에 일취월장 로마의 국교로 등극한다. 이로써 로마는 모든 종족과 동족이 하나의 종교 아래 흡수되는 정신적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다. 330년 그는 수도를 발칸반도의 동쪽 끝자락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 했다.이때부터 황제가 곧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 교회는 갈등의 링에서 본격적으로 맞붙는다. 기독교 정통성의 자부심이 충만한 로마 교회와 황제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콘스탄티노플 간의 대결 구도는 필연이었다. 콘스탄티노플로서 로마 교구는 안티오키아교구, 예루살렘교구, 알렉산드리아교구 등 하나의 교구에 지나지 않았다. 제정일치 시대 황제가 수도를 이전함으로써 교권도 함께 옮겨왔다는 뜻이다.수도가 옮겨간 뒤의 이탈리아반도는 폐허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476년 게르만 장수 오도아케르가 서쪽 로마를 점령하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서로마 교권이 차츰 높아지는 선순환을 낳았다. 굳이 콘스탄티노플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전파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경제와 교권마저 동방으로 옮겨간 뒤의 이탈리아 사람들 경쟁심리가 발동하면서 새로운 지도자를 찾게 되고, 당시 그리스도교 수장 로마 주교를 옹립하여 그에게 영적, 세속적 권위까지 안겨버린다. 막바지에 몰린 도시에 향수를 불러내 증오심을 자극했던 것이다.그러나 518년, 유스티아누스 1세가 황제에 오르면서 이탈리아 로마를 되찾는다. 그는 ‘신이 하나, 교회도 제국도 하나, 황제도 하나’란 구호를 내걸고 교회 분열을 봉합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 또한 임시봉합에 그쳤고, 그가 죽자 예수가 그랬듯 3일 만에 갈등이 부활하면서, 때마침 교리논쟁까지 불붙기 시작하였다. 즉,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 인간으로 보느냐를 두고 죽음도 불사했다.교리논쟁은 조선시대 파벌적 논쟁 이기론(理氣論)과 비슷하다. 이기론, 즉 이(理 스스로)와 기(氣 에너지)의 원리를 통한 세상 만물의 존재와 움직임에 대한 이론이다. 논쟁이 확산되자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으로 정립되면서 유학에 발전을 가져왔다고들 하는데, 두 이론의 차이를 그리 힘들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을 탄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 이때 사람이 간다고 생각하면 주리론, 말이 간다고 생각하면 주기론이다. 간단명료하지 않는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중국 주자가례를 두고 예송논쟁을 벌여 얼마나 많은 정적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동·서로마 분열의 결정적인 원인이 또 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4차 십자군이 교회 십자가를 내려 장검으로 사용했다.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주민을 살육하고, 약탈과 도시를 불사르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서로마 교황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신을 빙자한 경제적, 정치적으로 이용된 침탈이 분명해졌다. 역사적으로 동방의 정교와 로마 가톨릭 두 종교 간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동방정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274년~337년)가 비잔티움으로 로마의 수도를 옮기면서 시작된 동유럽 중심이 되는 신앙이다. 훗날 발칸반도 사람에겐 신앙을 넘어선 민족의 자존심이자 이민족 지배에 항거하는 절대적인 에너지원이다. 부활, 즉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뜻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상징이다. 부활절을 ‘동방의 날’, 즉 ‘이스트 데이(East Day)’라 부르며 표준, 원래 모습 그대로의 교회 ‘오서독스 처치(Orthodox Church)’라고 한다.로마 가톨릭에 있어서 교회란 구원의 장소다. 성직자는 구원을 실현하는 막강하고도 이상적인 영적 영역을 부여받았다. 교인의 공동체 교회와 그리스도 교리에 의해 성직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의 영역과 인간 세계는 엄연히 구별되고, 교회와 성당이 화려한 까닭은 신앙의 원천이기 때문이다.이와는 반대로 수평적 구조의 동방정교 성직자 개인적인 권위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신 앞에서 모두 동등한 지위라는 뜻이다. 생활 속 깊숙이 뿌리박힌 신앙의 실천이 중요했다. 하느님과 인간 세계의 분리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신이 함께한다는 종교적 개념 때문에 정교일치(政敎一致)는 당연했다. 불교 선종(禪宗)의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살짝 통하는 맛도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3-11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

김진국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7일 별세했다. 오늘 발인한다. 3김 내외가 모두 떠났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손 여사의 내조(內助)를 모범 사례로 꼽는다.손 여사는 YS 재임 기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다른 영부인들과 달리 고위직 부인들 모임을 모두 없애버렸다. 옷의 상표도 모두 떼고 입었다. 대신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 여직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챙겼다.손 여사는 1951년 결혼 이후 평생 YS의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필요할 때는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83년 YS가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할 때 외신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전파한 사람이 손 여사다. 90년 3당 합당 때는 최형우 전 의원 등이 합류를 거부하자 설득한 사람도 손 여사다. 그런 위기를 제외하면 상도동 집에서 매일 100명 가까운 비서와 방문객에게 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며 조용히 내조했다.‘김영삼 회고록’에는 93년 2월 24일, 청와대로 들어가기 하루 전 가족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YS는 “가장 큰 걱정이 친·인척”이라며 “이상한 사람들이 속을 다 내어줄 듯이 접근해서 너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개석 대만 총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총통이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며느리가 밀수와 사치를 일삼자 보석상자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그 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살했다.그런 YS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들 현철씨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 중 아들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손 여사는 한 번도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은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영부인도 내조형에서 전문가형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영부인을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영부인은 성공할 수 없다.이 책이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은 매리 링컨(16대)은 장갑을 사 모으는데 몰두했다. ‘대통령 부인’(Mrs. President)이라는 서명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줄리아 그랜트(18대)는 사치스러운 오락과 환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음성적인 자금을 모았고, 영부인의 권력을 이용해 부패 방지조사를 막았다. 제인 피어스(14대)는 사고로 죽은 아들과 대화한다며 백악관에서 강신(降神)회를 열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의 정치적 운영을 공개적으로 간섭해 영부인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우리는 아직 영부인이 설치면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씨로부터 13억 원을 받아 수사받자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라오스에서 대통령을 앞질러 행진한 것 등으로 비난받았다.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특검을 추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양평을 방문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격했다.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가 총선 최대 악재가 될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사과 대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그대로 한 위원장이 물러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혜경궁김씨’ 논란이 있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직자에게 음식을 대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공무원을 개인비서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에 ‘배우자실’이란 조직을 만들고, 부실장을 단수 공천했다 번복하는 소동도 있었다.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선출된 배우자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남편의 공적 활동을 간섭하거나, 자기가 선출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모범을 보여야 다른 부인의 일탈도 막을 수 있다.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0

위성 정당, 우당(友黨), 제3 신당의 정치 지형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굳어져 버린 양극정치 하에서 제3당의 진출은 무척 어렵다. 22대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부터 위성정당과 제3 신당이 창당되었다. 이번 선거 전야에도 과거처럼 여러 개의 신당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왔다. 선거 후 소멸될 정당이 많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 흡수를 위한 급조된 신당이 이번 선거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위성 정당을 제외한 제3당이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여야가 시간에 쫓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여 위성 정당을 재탄생시킨 결과이다. 한편 여야의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새로운 3신당을 창당하였다. 이렇다보니 원래의 녹색정의당, 진보당 등 참된 의미의 제3세력의 정치 지형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한 달 앞 둔 시점에서 이들 위성정당이나 제3정당의 정치 지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지난 총선 후 여야 모두 그렇게 비판했던 위성 정당이 또다시 출현하였다. 집권여당의 ‘국민의미래’, 민주당의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급조된 정당이 창당된 것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던 여당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먼저 창당하였다. 민주당은 준연동제 채택에 대한 비판 때문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연합정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위성 정당은 준연동제라는 괴상한 선거제가 야합한 사생아이다. 모두 여야 거대 모당의 일란성 쌍생아이다. 이는 지역 선거 결과와 연동하여 비례대표를 분배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마저 훼손시킨다. 위성 정당은 비례대표 의원만을 많이 확보하고 사라지는 일종의 ‘떴다 방’ 정당이다. 여야는 지역구선거 결과에 더하여 46석의 비례대표를 먼저 차지하고 나머지 의석을 적절히 갈라먹는 방식이다. 결국 위성정당은 고질적인 양극 정치, 혐오정치를 더욱 가열시킬 뿐이다. 이 낭비적인 위성 정당의 탄생은 거대 양당의 책임 회피의 산물이다.위성정당은 서구 민주정치의 정당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야당을 변질시켜 만든 친여적 ‘사쿠라 정당’과도 성격이 다르다. 북한 일당 독재 체제하에서는 우당(友黨)이라는 정당이 존재한다. 북한 당국은 천도교 청우당과 사회민주당이 조선 노동당의 친구 정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자는 천도교라는 민족 종교 세력을 중심으로 후자는 사회 민주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으로 북한 노동당의 외곽 정당일 뿐이다. 이들 정당은 당규와 당 대표 등 정당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북한의 다당제를 외부에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 당국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노동당 독재로 미화시켜 사실상 일인 독재를 강화시켰다. 여기에 노동당의 들러리 외곽조직이 우당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노동당 일당 독재를 강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며 자유 민주국가의 다당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런 정황에서 송영길 대표가 옥중에서 ‘소나무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우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하였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고 조급한 발상이다.이번 총선 전야의 제3 신당 창당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대체로 당의 패권 경쟁에서 밀린 비주류와 공천 탈락자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하였다. 이준석의 ‘개혁신당’은 먼저 창당하였지만 당의 정체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혁신당은 여야를 넘나드는 김종인 공천관리 위원장을 영입하여 선거전에 임하나 그 당세는 정체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낙연 전 당대표는 ‘새로운 미래’를 창당하고 민주당 탈당자의 영입을 기다리고 있지만 당세 확장은 여전히 주춤거린다. 이준석과 이낙연 신당이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중도파나 무당파의 지지를 획득하기는 여러 한계에 부딪쳐 있다. 오히려 ‘조국혁신당’이 예상과 달리 중도파와 민주당 좌파의 지지로 급부상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정권의 심판과 검찰독재 청산이라는 당의 선명성을 내세운 결과이다. 선거 후 이들 역시 거대 양당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결론적으로 위성정당은 결코 거대 양당정치의 갈등 조절 수단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민의를 왜곡시키는 사이비 정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치 발전론적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존립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두 당 역시 정당 간의 친밀성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는 들러리 정당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식 우당은 정당의 본질이나 민주적 헌법적 질서에도 어긋난다. 그에 비해 제3당은 거대 양당의 극한적 대립 구도에서 갈등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그 필요성은 충분히 공유한다. 양당의 거대 구도 하에서 중간층의 선택 공간을 넓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극한 대결정치에서는 캐스팅보트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전야에 탄생한 ‘개혁신당’이나 ‘조국혁신당’ 등은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이들은 선거 후 합종연횡으로 거대 양당에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이번 총선 후에는 민간 차원의 제3 신당의 육성책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4-03-10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운동치료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치매(Dementia)는 지능, 언어, 학습 등의 인지기능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신경정신계 질환이기도 하다. 치매는 노인 10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하며, 환자 본인의 삶의 질 저하뿐만 아니라 가족의 부담, 국가의 부담 등 직간접적으로 미래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 관리하여 치매의 발병을 1년 정도 늦출 경우 44년 후에는 920만 명의 치매환자를 줄일 수 있어 조기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약물치료가 치매의 주된 치료지만, 최근 연구들에서 인지 재활, 행동 심리치료, 운동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 후 인지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계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운동은 뇌에서 수의적 움직임으로 뇌의 신경으로부터 말단 운동기까지 신호전달이 이루어져 인지기능을 높이기 때문에 치매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방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American Academy of Neurology에서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도 운동이 가장 효과적으로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고 보고하고 있다.운동의 종류 가운데 특히나 유산소운동은 신경세포의 성장과 분화 등에 관여하는 신경 호르몬을 증가시켜 뇌의 가소성을 증가시키고 신경노화에 관여하는 베타-아밀로이드와 같은 물질을 감소시키며, 해부학적으로는 기억력과 연관된 해마의 퇴행을 예방하고 용적을 증가시킨다. 유산소운동과 인지기능의 긍정적인 상관관계는 다양한 연구들에서 입증되고 있다. 유산소운동은 치매 환자나 인지기능 감퇴가 없는 노인 모두에서 인지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드러났다.다양한 종류의 단독 혹은 복합운동도 인지기능 개선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서 하루 15분에서 60분가량, 주 3~5회, 12주간 걷기나 자전거 타기, 공차기 게임 등의 운동을 시행한 경우 집중력, 기억력, 의사소통 능력, 집행 기능 등 전반적인 인지기능이 나아졌다. 유산소운동 단독 혹은 관절 가동범위 운동, 하지의 근력 강화 운동이나 유연성 운동 등의 복합운동도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에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걷기와 유산소운동, 가벼운 근력운동 등의 복합운동을 하루 50분, 주 3회 이상, 24주간의 프로그램을 시행한 연구에서도 대조군에 비해 18개월 뒤 인지기능이 현저히 좋아졌다.저항운동 혹은 근력강화운동이 인지기능의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유산소운동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노인에서 6개월간 중등도 또는 고강도 저항운동을 시행한 연구에서는 운동 후 단기 및 장기 기억력, 언어 추론 능력이 향상됐다. 고강도 저항운동과 미니 스쿼트, 미니 런지 등의 근력강화운동을 포함한 저항운동을 시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12개월 후 인지기능을 평가하였을 때 선택적 주의집중 및 집행 기능이 좋아졌다. 한편 여러 연구의 결과들을 통합하는 메타분석에서는 유산소운동을 단독으로 시행한 경우보다 유산소운동, 저항운동, 유연성운동을 포함한 복합운동을 했을 때 더 큰 인지기능의 향상이 나타났다.이같이 정상인, 치매 위험군, 경도인지장애, 치매 환자 모두에서 유산소운동 단독으로 혹은 저항운동을 포함한 복합운동을 시행했을 때 인지기능의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치매 환자의 운동 처방에 있어 유산소운동은 가급적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안전한 운동치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운동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 낙상 예방 교육, 균형 운동 등의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치매 환자를 위한 명확하게 정해진 운동지침은 없다. 다만 10년간의 추적 조사에서 하루에 60분 이상 활동량이 감소한 남자 노인의 경우 활동량을 유지한 노인에 비해 인지기능의 저하가 1.8~3.5배 빠르게 진행하며 활동량이 증가할수록 인지기능의 저하가 적게 나타났다. 운동량과 치매 위험이 역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연구의 결과가 있지만, 저강도에서 중등도의 운동은 인지기능의 감퇴를 35%, 고강도 운동은 38% 감소시켜 그 효과가 유사하다. 그러므로 치매 환자에게 무리한 고강도 운동보다는 실질적으로 시행 가능한 중등도의 운동이 권장된다.유산소운동의 경우 한번에 적어도 20~30분 이상 지속하는 것이 권장된다. 저항운동의 경우 주 1회, 혹은 주 2회 시행하는 경우 모두 비슷한 정도의 인지기능의 호전이 나타났다. 그런데 주 1회 시행하는 경우 근골격 손상이 현저히 많이 보고되고 있어 저항운동은 주 2회 정도 실시하고 스트레칭 등의 유연성 운동을 저항운동 전에 실시하는 것이 추천된다.치매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알츠하이머병이고 뇌혈관질환, 퇴행성질환 순이다. 이 질환은 운동이 부족하고 약한 데서 비롯된다. 결국 치매의 예방과 관리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운동만이 답이다.

2024-03-10

낭비 없는 행복한 삶, 여가생활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필자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테니스 할 때는 행복감을 느낀다. 테니스는 협업운동이어서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클럽활동을 해야 하는데 필자는 50명 수준의 회원을 운영하는 포항 영일테니스클럽에 속해 있다.지난 주말에 구장을 갔을 때, 다리미처럼 말끔히 정리된 녹색의 코트,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렬로 정돈된 개인 컵과 라켓들을 보면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정리 정돈의 흔적에 기분이 상쾌했다. 또한, 선임 회원이 새내기 회원에게 테니스 비결을 전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클럽활동이 회사 생활과 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낭비 없는 삶의 지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여가생활을 통해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곧 회사 생활을 잘하는 기반이 된다. 여가 활동의 장점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원 간 소통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땀 흘리는 신체적 활동을 통해 건강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대 사회는 많은 물질적 소유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삶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직장생활이나 여가생활이나 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 우선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고, 소유한 물건은 소중히 다루어 길게 사용하는 습관을 지닐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이며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다.둘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관심사에 집중하여 삶을 즐기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공유하는 것도 낭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다.셋째,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기반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타인과의 비교나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물질적인 소비와 소유에 의존하지 않고 내적으로 풍부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낭비 없는 행복한 삶의 열쇠라고 생각한다.낭비 없는 행복한 삶을 위해 고민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개인의 낭비 없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즉 시간 관리가 답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나이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야 하겠다. 이를 통해 좀 더 행복하고 뜻깊은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2024-03-10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유영희 작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나 실제 사용할 때는 사회적 약자한테만 쓰는 말처럼 들린다. ‘어르신’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그나마 그런 기분이 덜할 텐데, ‘어르신’을 ‘으르신’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부를 때는 대부분 톤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가만히 보면, 나이별로 붙이는 이름의 형식이 다 다르다. 대략 초등학생까지는 어린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까지는 시기를 나타내는‘년’으로 부르다가 65세 이상 노년은 갑자기 ‘어르신’으로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은 중장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용례에서처럼, ‘어른’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여기서도 ‘어르신 김장하’라고 하지 않았다.그러니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라기보다는 ‘늙은이’의 높임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같은 ‘이’라도 ‘어린’에 붙으면 높임, ‘늙은’에 붙으면 하대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린이’는 ‘어린 아이’를 높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이’는 그나마 가치중립적으로 그저 젊은 나이대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늙은이’는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늙은이’는 대부분 욕으로 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어가 ‘어르신’일 것이다.애당초 어른이라는 명사에 어떻게 ‘시’를 붙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어르신’의 어원은 16세기 ‘얼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얼운’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은 것이고, ‘어르신’은 거기에 존칭을 의미하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족보가 있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이 ‘어른’보다 낮춤말 같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 관계에서 마음을 담아 사용하는 존칭을 보통명사로 만들어서 존대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존대의 마음을 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위는 한없이 처량하다. 빈곤율 세계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65세만 넘으면 갈 곳이 없다. 호칭만 어르신이지, 그에 걸맞은 처지도 아니고 대우도 없다. 그저 호칭 인플레만 고공행진일 뿐이다. 이러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달가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어른’이 백번 낫다.공식적인 명칭에 존칭을 붙이는 해괴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좋게 보면, 긍정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속 없는 ‘긍정적’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2024-03-10

만남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아가면서 우리는 만남과 별리(別離)를 경험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대사(一大事)다. 불가(佛家)에서는 그것을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로 명쾌하게 풀이한다. 인연이 생겨나면 만나는 것이요,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다. 고로 만남과 헤어짐에 특별한 의미와 희로애락을 부여할 까닭도 없는 셈이다.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은둔 생활자 혹은 러시아판 ‘히키코모리’다. 돈 때문에 휴학생으로 지내는 그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돈은 많지만, 사회적 이(蝨)에 불과한 전당포 노파 알료나를 살해하고자 한다. 타인의 돈을 부당하게 갈취해 부를 축적한 노파를 죽여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려고 기획하는 그는 러시아판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보인다.라스콜리니코프가 그런 기괴하고 낯선 사유에 빠져드는 계기는 사회적 고립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노파를 살해할 동기를 부(富)의 사회적 불평등과 공정한 분배에서 구하지만, 실제로 그의 사유와 인식에는 초인의식이 자리한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영웅이라 불린다. 사회적 불의와 악행의 표본인 전당포 노파를 죽임으로써 초인의 대열에 합류해보자는 계산이 그의 흉중에 깊이 자리 잡는다.그가 부조리하고 흉악한 범죄를 꿈꾸고 실행하는 배경은 고립무원(孤立無援)한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협소하다. 오랜 친구 라주미힌과 여동생 두냐 그리고 어머니 정도가 고작이다. 그는 온종일 다락방에 틀어박혀 완전범죄를 실행할 계책과 구체적인 방도에 골몰한다. 미침내 그는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타를 무참하게 살해한다.여기서부터 우리는 주인공의 급변하는 내면세계와 만난다. 살인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죄의식이 어느샌가 그를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섬망(譫妄)의 형식으로 밤마다 그를 괴롭히는 잠재의식의 심연에서 그는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그가 대면하는 구원의 손길은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한다.여주인공 소냐가 살인자의 내면 깊은 곳으로 틈입한다. 혼자였던 그가 자신의 왜곡되고 굴절된, 억압받고 학대받은 영혼을 하나둘씩 털어놓을 대상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발적으로 예심판사 포르피리를 찾아간다.라스콜리니코프를 칠흑 같은 사회적 고립과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견고한 격절(隔絶)에서 구해낸 것은 소냐였다. 의붓어미와 동생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 제 한 몸을 거리에서 팔아야 했던 소냐. 하지만 소냐는 그런 사회-경제적 모순과 침탈을 원망하지 않으며, 그 어떤 저항도 시도하지 않고 순응하는 인물이다.소냐와 만남으로써 라스콜리니코프는 회개하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다.고립무원으로 파괴된 자아를 타자와 만남으로써 구원하려는 그의 행로는 우리에게 ‘만남’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2024-03-10

꽃샘추위

우정구 논설위원 올겨울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변화가 심했다. 지난 11월부터 올 2월까지 내린 강수량이 236.7mm를 기록, 평년의 2.7배 수준이다.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온 비 때문에 겨울장마라고 부르기도 했다.역대급 비로 일조량이 부족한 각종 농작물은 생육이 부진하고 출하량도 모자라 일부 품목은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파는 1년 사이 50%가 올랐다. 2월 중 소비자물가지수가 다시 3%대로 돌아서 밥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도 들린다.이상기후는 엘니뇨 현상과 지구촌 온난화 등이 원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미국은 한파와 폭우로, 유럽은 이상고온과 이상저온이 오가는 등 기상 변동의 날씨로 혼란을 겪고 있다.이른 봄, 꽃이 피는 시기에 찾아오는 추위를 꽃샘추위라 한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이다. 보통 3월에서 5월 사이 찾아오는 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는 봄이 오면 시베리아 기단이 서서히 물러나는데, 가끔씩 기단이 일시적으로 강화되면서 한반도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이번 주에도 한두 차례 비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번 겨울 들어 사흘에 한 번씩 내린 비로 봄 가뭄은 걱정을 덜었지만 잦은 비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우려되는 농가들의 걱정이 크다.우리나라 속담에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봄에는 으레 봄추위가 있다는 말이다. 경칩을 지나고 봄이 왔다지만 아직도 아침에는 영하의 기온이고 하루 일교차가 10도 안팎이다. 환절기 건강관리에도 유의를 해야겠다.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변덕스런 날씨가 얄밉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3-10

저출산 늪에 빠져든 지구촌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서아프리카 국가인 니제르다. 출산율이 7.1명으로 공식 집계된다. 다음으로 말리(6.3명), 콩고(6.2명), 앙골라(6.1명), 중앙아프리카(5.9명), 소말리아(5.9) 등이다. 출산율 상위 10위까지가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이다.여성이 평균 4명 이상의 자녀를 낳는 전 세계 33개국 중 31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프리카 국가는 높은 출생률과 더불어 유아 사망률 또한 높다. 말리의 유아 사망률은 1천명당 100명에 이른다. 의료시설 부족과 빈곤 등이 원인이다.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대체출산율은 2.1명이다. 2.1명 미만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면 인구 수는 줄게 된다. 유엔 자료에 의하면 대체출산율 2.1명 미만으로 떨어진 국가가 2021년 기준으로 124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경제력 상위 15위 안에 국가들은 모두 합계출산율 2.1명 미만으로 조사됐다.저출산의 문제는 특정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이미 전 세계적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인구 1억명의 베트남도 출산율이 하락했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감소를 기록했고, 지난해는 합계출산율이 1.0명으로 추락했다.세계인구 1위 자리를 인도에 내준 중국에서는 저출산 대책으로 법정 결혼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의견도 공식적으로 나왔다. 현재 중국에서는 남자는 22세, 여자는 20세가 돼야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하다. 또 현재 12년의 의무교육학제를 9년으로 단축해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을 촉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인구 수는 곧 국력이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해 지금 세계 각국은 저출산 늪에서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07

TK, 정치 신인 어디 갔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치권의 22대 총선 후보 공천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내세워 큰 잡음 없이 마무리 국면을 맞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낙하선 공천 등 심한 공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공천 전횡을 주장하며 탈당이 잇따르고 있다.7일 현재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 지역 25곳의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23곳이 단수 공천 또는 경선을 확정했다. 2곳은 국민 공천을 한다. 공천 배제된 TK 현역 의원은 홍석준 의원 1명뿐이다. 김희국·윤두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병욱·임병헌 의원은 경선에서 패했다. 아직 남은 경선 및 국민 추천 지역에서 추가 탈락자가 나올 공산이 없진 않다.현재까지 진행된 TK 공천은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다. 21대 총선 때처럼 공천 파문은 없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공천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눈길은 별로 곱지 않다. 감동도, 혁신도 없었다. 국민 추천에서 인적 쇄신을 노리지만, 역부족인 듯하다.그간 확정된 국민의힘 공천자 가운데 온전한 새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신인이라지만 용산 출신이거나 총선과 지방선거 출마 이력이 있다. 신선미가 떨어진다. 지역 정치판에 새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전국적인 인물도 없다. 선거구 획정에 늑장 부리면서 신인 진출의 길목을 막았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인들은 현역들의 의정보고회를 뻔히 쳐다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없다. 당원 대상의 여론조사도 신인에겐 벽이다. 국민의힘은 애초 다선 물갈이를 내세우며 새 바람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헛구호에 그쳤다. 대신 초선들이 바가지를 덮어썼다. TK 초선들만 줄줄이 나가떨어졌다.지난 21대 총선 당시엔 몇 곳에 새 인물이 등장, 그나마 신선감은 있었다. 이번엔 경산의 조지연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외에는 젊은 피가 보이지 않는다.개혁 공천은 당 지도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소 시끄러울지라도 정치 신인과 덕망있는 인사의 전략적 배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수야 없지 않나. 안전 운행에 집중했다. 입법과 지역구 활동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지역 현역 의원들에 대한 교체지수도 외면했다. 존재감이 없다고 그렇게 비난받았는데도 말이다. 공천 막판 변화 조짐이 있지만, 기대치에 못 미친다.당 지도부는 공천을 주고 싶어도 줄만 한 신인들이 없다고 푸념했다. 정작 젊은 신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주지 않고 사람 없다는 핑계만 댔다. 국민의힘이 다시 꼰대 정당으로 회귀하고 있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이름을 걸어놓고 혁신과 감동 없는 공천 놀음에 빠졌다. 비례대표 공천에서 만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대난망이다. 20, 30대의 국정 지지도는 20%를 밑돈다. 당장 젊은 피가 필요하다. 물론 젊은 이준석을 내세웠다가 결별한 전력과 아픔이 있다. 그래도 젊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TK에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젊은 신인의 등장을 고대한다. 애 늙은이 같은 신인은 말고….

2024-03-07

신축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폐자원 수집업체

심한식 경북부 지역민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행정기관인 행정복지센터는 지역민에게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복지와 편익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주민 참여를 통해 주민자치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향상하는 구심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이를 위해 지자체들은 지역민을 위해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을 확장하거나 낡은 건물은 새롭게 신축하는 등 여러 각도의 정성을 쏟고 있다.특히 도시미관을 위해 많은 사업비용을 투자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미지를 심기는데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경산시도 지난 1990년 신축했던 남부동 청사가 낡고 주차장 문제 등의 민원이 제기되자 새로운 청사를 올해 12월 말까지 준공할 예정이다.신청사는 93억 원의 예산으로 현재 청사가 있는 신교동 73-1번지 일원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업무시설과 평생학습관 등 복합기능을 갖출 예정이다. 또 인근의 1천319㎡를 사들여 민원인을 위한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하지만, 신청사와 불과 70m 거리에 폐자원을 수집하는 219㎡의 A 업체와 305㎡의 B업체가 영업활동을 하고 있어 쾌적한 도시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다.물론 사유재산의 자유성은 보장되어야 하고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많은 지역민이 이용하는 행정복지센터 인근의 거리풍경은 이용객들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남부동은 지난 1월 말 현재 1만 9천여 명이 거주하며 앞으로도 발전 여건이 존재해 인구 유입의 가능성이 크다.경산시는 쾌적한 남부동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이들 업체에 매각과 이전 여부를 타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전 불가였다.요즘 사회는 ‘우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나’를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물질만능이 최우선 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하여도 다 함께 사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일 것이다.경산시와 폐자원 수집업체는 남아 있는 시간에 합의점을 찾아 기쁘고 쾌적한 마음으로 남부동 행정복지센터의 준공을 축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shs1127@kbmaeil.com

2024-03-07

선물과 뇌물, 그리고 미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좋은 마음으로 돈이나 물건 등을 건네는 것을 선물(膳物)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보내는 것도 선물이고,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내복을 사 드리는 것도 선물이다. 설날 손자에게 세뱃돈을 주는 것도, 스승의 날 은사님께 꽃을 달아 드리는 것도, 불우한 이웃에게 라면 한 상자 보내는 것도 선물이다. 그렇듯 선물에는 사랑과 존경, 축하, 인정 같은 선의가 담겨 있다.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뭔가 대가를 바라고 금품을 주는 것은 뇌물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에게 금품이나 혜택을 주었을 때는 대가성이 없어도 뇌물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후진국일수록 뇌물이 성행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건네는 촌지에서부터 관계기관 간부에게 취업을 청탁하는 뇌물, 부정이나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권력자에게 바치는 뇌물 등 힘이 있는 곳에는 뇌물이 꼬이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뇌물이 사회를 움직이는 윤활유라는 말까지 생겼을까.뇌물공여가 사회악인 것은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 폐해는 한 두 사람이 받는 불이익에서부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를 초래하기도 한다. 감리를 하는 사람이 돈을 받고 눈감아 준 부실공사로 공공건물이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뇌물이 없는 사회야말로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의 기반이라 할 것이다.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미국시민권을 가진 목사라는 사람이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명품 백을 주었다는 뉴스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인즉 ‘서울의 소리’라는 인터넷매체가 최재형 목사에게 명품 백을 사주고 손목시계에 카메라를 부착해서 ‘몰카’를 촬영하도록 모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 년 넘도록 가지고 있다가 총선이 다가온 시점에 터뜨린 저의에 대한 논란도 비등하고 있다.인터넷매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직자란 사람이 그런 짓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김건희 여사에게 올가미를 씌어 윤석열 정부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인 것인데, 최 목사는 여러 차례 북한을 들락거리며 주요 인사와 접촉하는 등 열성적으로 친북활동을 해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북한의 대남공작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준 명품 백은 선물로 포장을 했지만 사실은 선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뇌물이라고 할 만한 청탁도 없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선물이란 떡밥 속에 낚시 바늘을 숨긴 미끼였다. 그건 분명 현 정권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교활하고 사악한 공작이요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미끼에 물렸다고 특검으로 몰아간 야당도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터이다. 물론 김건희 여사도 다시는 그런 불찰이 없도록 매사 신중해야겠지만.

2024-03-07

인구절벽에 ‘사라진 아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작년 6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후, 출생 미신고 영아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던 보건복지부의 결과가 발표됐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미출생 신고된 아기는 1만1천700여 명이고 그중 사망은 718명이라고 밝혔는데, 이 중에 2010~2014년에 태어났지만 신고 않된 아기는 9천603명으로 그 5%인 469명은 병으로 사망했고 생존자 6천248명 중 2천36명은 부모가 양육하고 3천714명은 입양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2천700여 명은 생사가 불명인데 어찌 되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출생신고는 생후 1개월 이내에 부모가 관할구청에 방문 신고해야 하며(호적법 제49조)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없고 과태료가 5만 원이다. 미등록 아기는 보육원에 버려지거나 하여 ‘사라진 아기’가 될 수 있고, 그동안 베이비박스에는 1천400명 정도가 버려졌으나 이 전수조사가 있고부터는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고 한다. 영아유기죄를 두려워한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대책으로 병원이 아기 출생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알리는 ‘출생통보제’와 임산부가 익명 출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보호출산제’가 있다.아이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한 저출산 시대에 여러 지자체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준다거나 청년 부부 결혼 장려금으로 500만 원을 주는 등 정부 지원 없이 전국의 지자체 90% 정도가 출산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또 여·야 모두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 즉 ‘아빠 휴가’를 1개월 의무화하고 휴가 급여, 육아휴직 급여도 제안하고 있다.OECD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이스라엘 2.90 미국 1.64 일본 1.33 평균 1.59인데 우리나라는 0.72로 세계 최저의 인구절벽 시대를 맞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25~49세 남성 절반이 미혼으로 사는 뉴노멀 세대는 경제·주거 문제, 자아실현이라는 개인적 생애의 추구로 말미암아 60년대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서 2000년에 출생 60만이 붕괴된 후 2010년 47만, 2020년 28만 명 선이 무너졌고 작년은 23만 명으로 역대 최저 출산을 기록하였다. 이는 환경 호르몬 등 오염과 사회진출 연령, 만혼과 이혼 증가, 불임·난임에 대한 거부감 감소 등의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미혼모의 복지 사각 환경도 감소시키고 의료비, 진료비뿐만 아니라 생계비, 출산용품비 등을 지원하여 안정적 육아에 도움을 주고 미혼모의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미혼모 가족의 출산 및 양육 실태 조사에 의하면 42% 정도가 금전적 어려움을, 15% 정도가 안정되게 지낼 곳이 없다는 호소도 있으니, 그들에 대한 교육과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병원 외 출산도 연간 100~200 명으로 추산하고 있고 연간 출생아 수는 8년 만에 반 토막이 나서 월 2만 명 이하이고 영유아 유기도 매월 10건 이상이 된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인구절벽 위기의 절박함에 단순 출산 장려도 중요하지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아기로 인해 미래의 삶을 두려워하는 산모들을 주거와 복지, 교육과 노동 정책으로 감싸주면, 사라지는 아기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한 사회환경이 될 것이다.

2024-03-07

천년의 시간을 머금은, 청도 적천사

청도와 밀양의 경계 짓는 화악산 둘레를 타고 가다가, 한 대의 차량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어느 순간 산자락 중앙에 옴폭하게 자리 잡은 작은 사찰을 마주한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도 좋다는 청도의 깊은 골짜기에 터를 잡은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4년(664)에 원효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로 먼저 세웠다는 천년고찰 적천사(磧川寺)이다.적천사는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심지왕사에 의해 중창되고, 고려 명종 5년(1175)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어 500여 명의 수행승이 참선하는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당시 적천사는 도적떼가 점거하고 있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남산에 올라 가랑잎에 호랑이 호(虎)를 적어 바람에 날려 보내니, 가랑잎이 호랑이로 변해 도적떼를 몰아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크게 번창했던 적천사는 임진왜란 때 화를 입어 소실되었고, 500여 명의 수행승은 운문사로 옮겨갔다. 현종 5년(1664)에 적천사를 다시 중건하면서 사천왕상을 조성하고, 숙종 20년(1694)에 태허선사에 의해 크게 중수되고, 다음해에 괴불탱 및 지주를 마련한다. 다시 대사찰로 자리매김하던 적천사는 구한말에 의병들의 모임 장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소로 활용되면서 축소되었다. 현재는 동화사의 말사 제9교구이다.적천사의 앞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천황사의 전나무·송광사 천자암의 곱향나무·내소사의 느티나무처럼 적천사의 암수 은행나무도 절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대단히 강렬한 인상이다. 높이(약 30m)는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도 풍성한 가지에 가려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둘레(약 10m)는 성인 여섯 명이 손을 잡고 둘러서도 온전한 원을 만들기에 부족하다. 특히 암나무는 대략 3m 높이까지는 한 줄기로 성장하다가 세 갈래로 가지가 나눠지며, 가지 사이사이에 혹이나 방망이처럼 생긴 유주가 발달했다. 한 컷의 사진은 물론 한눈에 담아내기에도 버거운 이 은행나무는 봄이면 세월이 무색하게 새로운 싹을 대거 피워내고, 여름이면 넓고 짙은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풍성한 은행잎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설원 위에 그 유려한 몸매를 드러낸다. 수령도 대략 천년에 가까운 800여 년을 적천사와 함께 견뎌왔으니 살아있는 화석이자 적천사의 역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적천사의 은행나무는 특이하게도 불교의 삼문, 일주문·천왕문·불이문 중 일주문으로 여겨진다. 즉, 적천사에는 흔히 절마다 일자로 세워져 있는 일주문이 없다. 조선 숙종 20년(1694) 절을 중수할 때 세운 비석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선종의 뜻에 따라서 적천사를 중건할 때, 사적기 대신 은행나무를 심어서 창건을 대신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적천사의 입구에 있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바로 보조국사 지눌이 평소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였다는 것이다.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계단을 오르면 두 번째 관문인 천왕문에 들어선다. 적천사의 천왕문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썹·주먹코·울퉁불퉁한 목주름이 무섭다기보다는 해학적이다. 이는 조선 후기 예술 작품의 특징으로 적천사의 사천왕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소조로 제작되던 사천왕상은 적천사의 사천왕상을 계기로 다시 목조로 바뀌게 된다. 적천사의 사천왕상은 나무 여러 조각을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4구의 어깨 각도나 옷의 주름·몸체의 모양이 거의 일치하여 일정한 제작틀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천왕문을 넘어가면 배롱나무 정원이, 그 뒤로 무차루라는 누각이 보인다. 무차는 ‘막힘이 없다’는 뜻으로 부처의 사상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이 누각에는 석조아미타불좌상(1653) 3구를 모셨고, 내부의 통창을 통해 대웅전을 바라볼 수 있다. 대웅전 좌우로 적묵당과 명부전이 있고, 대웅전 뒤로는 조사전과 영산전이 있다. 현재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6)이, 명부전에는 석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1676) 등이 모셔져 있다. 또한 1981년 천왕문 보수를 하다가 사천왕상 안에서 사리, 다수의 경전, 의류, 다라니경 등 대량의 복장기가 발견되었다.천년고찰은 천년에 해당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과 전통과 역사와 문화가 아우러져 이어져 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승들이 수도하는 공간이면서 찾아오는 이들의 힐링하는 공간이고, 투사들의 모임 장소이며, 여러 번의 소실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노거수가 지키는 장소이며 또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적천사 경내를 거닐며, 천년을 머금는다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3-06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

정미영 수필가 연일 내린 비가 잦아들자마자 오어지 둘레길을 걷는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둘레길을 이제껏 한 번도 무결하게 걸어본 적이 없다.고즈넉한 오어사 경내를 둘러보고 원효교를 지날 때까지는 호기롭게 걷지만, 둘레길의 반 정도에서 발걸음을 되돌려 나오기 일쑤였다.오늘은 겨울 끝자락의 비바람에 대비해 모자를 쓰고 장갑을 챙기면서 기필코 끝까지 걷겠다고 다짐한다.얼마 전, 포스코갤러리에 다녀왔다. 특별기획전 ‘숲에서 발견한 위로 : 이너피스’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실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거닐었다. 첫 번째 여정인 사유의 숲을 지나 두 번째 여정인 치유의 숲에 도달했다. 실제 연주자 없이 빛과 소리가 어우러져, 피아노에서는 드뷔시의 ‘달빛’이 연주되고 첼로에서는 생상의 ‘백조’가 흘러나와 공간을 채웠다. 건물 안에 따뜻한 공기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공기 입자가 관람객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내 마음에 젖어든 ‘숲’의 기운을 음미하며, 마지막 여정인 동화의 숲에 다다랐다. ‘나만의 앨리스’를 찾아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치미술이 조성되어 있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통해 자기 발견을 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다양한 인물과 일을 경험하면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용기와 삶의 지혜를 키워나간다.문득 한 달 전에 남미 등반을 다녀온 옛 제자가 떠올랐다. 그는 대학 산악부 소속으로 남미 아콩카구아를 등반하기 위해 5명으로 YB원정팀을 꾸려 가족과 산악대원들의 응원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한국을 떠났다가 무사히 귀국했다. 나는 A4용지로 30쪽이나 되는 등반보고서를 운 좋게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첫날의 여정을 살펴보니 인천공항을 떠나 아디스아바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멘도사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50시간의 비행 후에 땅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시작부터 그들의 비행시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등반보고서를 다 읽었을 때쯤에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혼쭐이 났다. 베이스캠프에서의 고된 생활과 고소증을 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노력, 컨디션 난조로 몸과 마음이 지친 모습, 날씨를 살피며 등정 일정을 계획하느라 무작정 기다리던 일, 아콩카구아 정상을 밟은 자와 고소 증세로 정상을 밟지 못한 자들의 심리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광경을 상상해본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등반보고서 말미에 적힌 글이 인상 깊었다. “산악부에 참여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의 뒤만 쫓아가기 바빴던 파키스탄 PK39 BC트레킹부터 대장을 맡은 북알프스 종주, YB 아콩카구아 원정대의 일원으로 등반까지. 그 외에 산악부에서 보낸 크고 작은 순간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산악부가 제 삶의 전반을 바꾸었습니다. 산악부에 몸담으며 세상을 이겨 낼 훌륭한 무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니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다. 이상한 동물들과 마주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을 향한 믿음과 용기를 되찾고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그도 산악부의 일원으로 등반에 참여하면서 예상치 못한 시련에 부딪혔을 때 슬기롭게 극복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켰을 것이다.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본다. 나는 인생의 숱한 고비마다 어떻게 건너왔었나? 삶에서 생겨나는 문제의 답은 대부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혼돈과 두려움이 싫어 회피하려던 순간이 떠오른다. 만약 앞으로 나에게 고난이 찾아온다면 앨리스처럼, 옛 제자처럼, 자아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내어 현명하게 대처해야겠다. 또한 나의 가능성과 역량을 시험해 보는 일에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리라.나는 지금,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를 찾기 위해 둘레길을 묵묵히 걷는다.

2024-03-06

세상은 누구의 작품인가

장규열 고문 프랑스 작가 시몬 등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세상은 남자들의 작품이다’라고 비꼬았다. 중요한 권력은 모두 남자들이 쥐고 있으며 구체적인 경제 실천과 사회 운영도 거의 모두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고발하였다. 그리된 까닭을 이모저모 들어보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미사여구일 뿐 그 어떤 적절한 설명도 가당치 않다고 꼬집었다.미국 작가 캐롤라인 페레즈(Caroline Perez)도 저서 ‘보이지 않는 여성(Invisible Women)’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입안과 수립 과정이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점령당했다고 지적했다.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통계자료들도 ‘여성의 존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성이 거기에 있었음조차 도외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도시계획과 디자인의 과정, 사회문화정책의 논의와 입안 등에 있어 여성의 시각이 누락되지 않아야 할 것을 지적한다.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 national Women’s Day 2024)’이다. 올해의 슬로건으로 ‘여성을 위한 투자(Invest in women: Acc elerate progress)’에 방점을 둔다. OECD가 발표한 성별 간 임금격차는 평균 12퍼센트에 달한다. 잘 산다는 나라들에서조차 아직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12퍼센트를 덜 받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은 그 격차가 무려 31퍼센트로 회원국 가운데 꼴찌가 아닌가. 우리의 누이들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자들에 비해 31퍼센트나 덜 받고 지낸다는 발견은 놀랍지 않은가.여성의 존재가 무시될 뿐 아니라 가치마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성경은 이미 2천 년 전에 ‘신 앞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은 존재임’을 선포하였다. 그럼에도 아직껏 우리 기독교 일부 교단은 ‘여성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다. 남자만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저렇게 변했는데, 남자 목사들끼리 모여앉아 저따위로 결정하는 배포가 놀랍지 않은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찌할 것인가. 남성이 지배하면 당연하고 여성이 들어서면 이상하다 여기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남녀 간에 물리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더라도 인격과 인권 면에서 무시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평등하게 여겨지며, 아예 성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무시당하고 값싸게 취급되며 폭력까지 감내할 양이면, 우리의 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관련 과제들이 갈 길이 멀지만, 이제는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그동안 누리면서도 몰랐거나 무심했던 남성들이 나서야 할 차례가 아닌가.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세상을 함께 구하도록 소매를 걷어야 하지 않을까.올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을 위한 투자, 정책과 실행에 실천적인 제안과 역할이 논의되었으면 한다. 보부아르의 지적이 매서운 나침반이 되어 여성의 존재와 하는 일에 모두의 관심이 살아나야 한다. 여성이 살아야 세상이 일어선다.

2024-03-06

세계 최고 병원과 지방 병원

홍석봉 대구지사장 뉴스위크가 뽑은 ‘2024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 서울 아산병원 등 17개 한국 병원이 25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 의료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하지만, 235위에 오른 대구가톨릭대병원 1곳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권 병원’이다. 지방 국립대병원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 의료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일본은 지역 국립대 5곳이 이름을 올렸다. 250위 권에 든 병원의 절반이 지방 병원이다.최근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반발하는 의사 파업 속에 우리나라 지방 의료의 현실이 뉴스위크가 매긴 수치로 확인됐다. 서울은 의사와 환자가 넘쳐나는 데 지방은 의사를 못 구해 난리다. 지방 의대 출신 수련의들도 대부분 서울로 간다.환자들은 서울 원정 진료에 나선다. 속칭 서울 ‘빅5’ 병원은 환자들이 몰려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의료 서비스가 지방과는 천지 차이다. 게다가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풍부해진 임상경험 등 의사 실력도 차이가 난다.이렇다보니 지방에서는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기를 쓰고 빅5 병원을 찾는다. 병원 인근에 방까지 얻는 형편이다. 지방에도 실력 있는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더 나은 의사에게, 더 나은 진료를 받으러 서울로 간다. 서울 빅5는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수 개월씩 진료 대기가 일쑤다. 서울과 지방 간 의료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대구에서 정원 확충 등을 통해 지역 인재 중심의 의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립 의대와 지역 의대에 대한 시설 투자도 약속했다.의사 파업 속 세계 최고 병원 반열에 오른 한국 의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06

주간계획표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매년 3월과 8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시간표를 만드는 일이다. 네모난 표에 여러 개의 칸을 만든다. 구획된 칸 안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야간 9시 30분까지, 한 학기 동안 수업할 강의명과 강의실까지 상세히 적어 넣은 시간표다. 매주 책임져 강의해야할 시간은 보통 9시간인데 많으면 주 12시간이 넘기도 한다.강의의 종류는 서너 종류가 때론 버겁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의시간을 피해 적당한 시간을 잡아 학생과의 면담 가능시간도 반드시 정해 넣는다. 내가 연구실에 없을 때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연락처도 꼭 적어둔다. 석 장을 프린트해서 연구실 바깥문에다가 붙이고, 내가 앉은자리에서 시선이 닿는 바로 앞 벽에도 붙인다. 하나는 집에 가져가 냉장고에 붙여놓는다. 이렇게 25년 동안 시간표를 한 해 두 번씩 만들던 습관은 나의 머리와 몸에 깊이 배어있었나 보다. 3월이 시작되자 시간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은 2월경부터 조바심이 났다.코로나로 인해 은퇴 후의 버킷리스트를 거의 실행하지 못했다. 코로나를 벗어났어도 마찬가지였다. 2년 동안 손주들의 유치원 등하원 지원을 해주면서 버킷리스트는 자연 유예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23일자로 손녀가 유치원을 졸업하는 날, 드디어 나만의 시간표를 만들 수 있겠다며 생각하자 유예해 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목록을 꺼내 살폈다. 우선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을 찬찬히 훑었다. 요가, 필라테스, 실내클라이밍, 자전거 타기…. 주위의 강한 권유가 있어 수영을 선택하고, 마침 코로나로 문 닫았다 재단장하여 문 연 집 가까운 수영장을 바로 찾았다. 적당한 시간을 정하고는 매일 가야하는 빡빡한 일정을 만들어 버렸다. 처음엔 혹사일지 몰라도 몸에 배면 괜찮겠지 마음을 다잡는다.또 하나는 한글서예를 배우는 것이었다. 서예는 실은 작년 7월 시작했다. 그러나 손주들의 일정이 우선인지라 시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또는 손주 등하원 지원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지 종종 허리를 다치거나 감기를 앓는 등, 몸이 이기지 못할 경우가 생기자 자주 빠지게 되었다. 아예 해를 넘겨 좀더 자유로운 때를 기다려 미루기로 했던 거였다. 재도전으로 결심을 굳혔고, 집에도 연습 공간을 만들 여건이 되자 3월 1일부터 바로 시작하였다. 이제 매일 저녁 한 시간의 수영과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정도의 한글서예 시간이 확정되었다. 그러고도 메워야할 시간표의 빈 칸이 남아있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할라 우선 2개 과목으로부터 준비운동을 본다. 새 시간표에 적응하여 여유로워지면 내일배움카드로 유튜브아카데미도 등록할 참이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으면 일정계획을 세우고, 음식리스트를 작성하고, 맛집을 찾는 등 계획표를 만들곤 하는 나를 본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니는 MBTI가 J형인 거 같아요. 맞다. 난 정보를 수집하고 세부계획 짜서 실행하는 조직적인 성향인 ISFJ이다. 그런 성격이 다분하기도 하지만 실은 25년을 정해진 강의시간표에 맞춰 산 경험과 이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2024-03-06

이쁘게 살을 빼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다시 또 봄이 찾아왔다. 여름을 이쁘게 보내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적은 칼로리를 먹고 많은 칼로리를 내보내면 된다. 절대 진리다. 가끔씩 많이 안먹는데 살이 안빠진다는 분들이 있는데 집요하게 물어보면 이것 저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 적게 먹고 많이 내보내면 살은 빠진다. 그러나 살을 뺄 때 어떻게 먹느냐 어떤 운동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3킬로를 빼도 누군 이쁘게 빠지고 누군 그렇지 않다.살을 뺄 때는 잘 먹으면서 빼야 한다. 대부분은 극단적으로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살을 빼면 건강도 나빠지고 살을 빼도 이쁘지 않고 금방 요요가 온다. 식사량을 줄여서 살을 빼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식사를 잘하면 자연스레 식사량이 줄고 근육은 유지된다.식사를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기를 먹고 탄수화물을 줄이면 된다. 식사를 하는 순서는 고기나 생선 혹은 단백질을 먼저 먹고 채소가 있으면 같이 먹어도 좋다. 탄수화물인 밥과 국수 빵은 먹지 않는다. 먹다가 물리면 숟가락을 놓으면 된다. 국은 절대 먹지 않는다. 물도 목이 마르지 않으면 일부러 많이 먹지 않는다. 밥과 국이 없이 고기와 채소만 먹으면 자연스레 음식이 적게 들어간다. 이렇게 한 달을 먹으면 자연스레 3~5킬로가 빠진다. 과일과 술은 먹지 않는다.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이뻐지려면 해야 한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옷도 고민하지 말자. 그냥 나가서 걷자. 아무 옷과 아무 신발을 신고 나가서 걷는다. 20~30분 정도 걷는 게 익숙해지면 한번 전력 질주를 해보자. 숨이 턱밑에 닿을 때까지 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배가 고프면 먹자. 라면 밥 국물 빵은 절대 안 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구워서든 쪄서든 양념해서든 먹으면 된다. 소금 충분히 치고 양념 발라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그리고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은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좋다. 근육 커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데 실제로는 몸이 이쁘게 다듬어진다. 여자들은 보디빌딩 수준으로 하지 않는 한 절대 근육이 커지지 않는다. 어떤 부위든 하면 된다. 재미가 없으면 사이클을 하자. 다리가 힘들고 땀이 나올 때까지 하면 된다. 이렇게 살을 뺄 때 음식조절과 더불어 운동을 하게 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정리하면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근력 운동과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건 음식 먹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고 바로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기가 아니라 밥과 빵 라면이 범인이다. 과일은 살을 찌우는 공범이다. 국물은 먹지 않는다. 물도 입이 마르지 않는 이상 많이 먹지 않는다. 물을 먹고 붓는 사람은 물을 많이 먹으면 붓고 살찐다. 안좋은 다이어트 방법이다.힘이 들면 한의원에서 다이어트 한약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검증된 방법이고 요즘은 다이어트환으로 나와 저렴하다. 부작용이 제일 적고 효과 높고 만족도가 높은 다이어트 방법이다. 입맛이 떨어지고 붓기가 빠진다. 식이요법 운동과 병행하면 최상의 효과를 낸다.

2024-03-06

‘태산명동서일필’

우정구 논설위원 국민의힘 TK 공천을 보고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을 쳤으나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 뿐이라는 뜻)이 떠오른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도 떠올랐으나 그보다는 ‘태산명동서일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중국의 고사 중에 ‘태산명동서일필’은 특이하게 서양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로마시대 계관시인 호라티우스가 “산들이 산고 끝에 우스꽝스러운 생쥐 한 마리를 낳았다”고 한 말을 중국 한문으로 의역한 것으로 전해진다.요란하게 떠벌였으나 결과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TK 공천을 앞두고 조사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현직의원을 바꿔야 한다는 대답이 대부분 60%가 넘었고, 경우에 따라 80%도 나왔다. 그래서 다른 곳은 몰라도 TK지역은 현직의원 물갈이 폭이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TK의원들의 긴장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와이프와 자식말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TK 중진의원의 희생론도 부상했다.당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TK 현역의원에 대한 시도민의 불신도 컸다. 의원직 수행 만족도 50%를 넘기는 의원이 별로 없었다. 존재감이 없거나 무능하다거나 비만 고양이 소리까지 듣는 비판도 나왔다.TK지역 4월 총선 후보 교체율이 역대급이 될 거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이유야 어쨌든 ‘태산명동서일필’꼴이다. 현재까지 현역 절반 이상이 생존했고, 재선 이상은 100% 공천을 받은 것이다.대폭 물갈이를 원했던 여론과는 상반된 결과에 유권자의 실망도 당연히 클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맞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05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 아이디어 좋다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대구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할 때가 됐다. 예컨대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앞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구상이다.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야하는 지방정부 단체장들에겐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홍보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해외 출장을 가보면 외국인에게 나를 소개할 유일한 수단인 ‘명함 콘텐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때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TK(대구경북)의 대표적인 홍보 자산이다.아직까지 우리나라 지방 정부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자치단체를 잘 대변하고 품격도 높일 수 있는 고유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곳은 별로 없다. 광주시가 컨벤션센터 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네이밍(이름짓기)하는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TK지역도 이제 세계 각 도시로 향하는 관문(공항이나 역, 항만) 명칭을 새롭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할 때가 됐다. 새마을운동과 한국근대화의 산실인 TK지역은 박정희 브랜드가 해외에 이 지역 정체성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나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 현충원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서 “박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줬다. 웅크리고 있는 국민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서 위대한 국민으로 단합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취임한 이후 전 세계 92개국 정상을 만나 봤지만 모두가 박 대통령께서 이루어낸 압축 성장을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고 했다.박정희를 해외 정상들이 모두 기억하고 인정해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난 인물로 브랜드화한 감동적인 추도사다.홍 시장은 지난 2021년 9월 대선후보 시절 “TK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김영삼 공항’으로, 호남 무안신공항은 ‘김대중 공항’으로 명명해 대한민국 4대 관문공항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 비수도권 도시의 하늘길에 전직대통령의 브랜드를 붙여 세계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 ‘박정희 공항’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전에서도 단골 메뉴가 됐다. 지난해 가덕도신공항 이름을 ‘이순신 국제공항’으로 결정해달라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안을 낸 경남도의회도 처음에는 ‘박정희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고민했다고 한다.세계 각국이 역사적 위인들의 이름을 공항 명칭 등으로 사용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일반적인 추세다. 홍 시장의 제안에 대해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박정희정신계승사업회(단장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도 적극 환영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공항이나 역광장을 새롭게 네이밍하는 절차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모양이다. 대구시민의 합의만 이뤄진다면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2024-03-05

봄 마중 섬 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 마중을 하듯이 새벽같이 남도로 향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이라 이런저런 봄 채비로 바빠도, 통영에서 불어오는 봄빛 바람을 쐬니 부드럽고 여유롭기만 했다. 기온이 살짝 올라가는 틈을 타 미세먼지가 복병처럼 도사려 안경에 서린 김 마냥 시야를 희뿌옇게 하는가 싶었었는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갈수록 해풍의 희석 때문인지 수평선과 섬들의 전망은 대체로 선명한 편이었다.갈매기들의 어설픈 외침이 환호처럼 들리고 바다의 흰 포말이 배웅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달려 접안한 곳은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연화도(蓮花島)였다. 경남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 해상에 위치한 연화도는 말 그대로 연꽃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북쪽 바다에서 바라보는 연화도의 모습은 꽃잎이 하나하나 겹겹이 봉오리 진 연꽃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 섬 중앙에 연화봉(212m)이 솟아 있고 동남쪽 해안에는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여 연화포구를 둘러싼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용이 대양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습의 용머리 바위가 통영8경의 하나일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연꽃 고이 접어/물 위에 띄어 놓고//자비로운 부처님/품 안에 안고//망망대해/흘러흘러 와 자리잡고//오늘도/누구를 기다리나//물 위에 떠 있는/연꽃잎’ - 최용순 시 ‘연화도’ 전문연화도항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연꽃잎 속으로 스며들듯 서서히 등산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길이 만만찮았지만, 이내 연화도항과 북쪽의 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서 숨결을 고르며 조망하는 경관은 섬산행의 설렘을 부추겼다. 울산과 마산 등지에서 왔다는 등산객들로 한적한 등산로가 붐비고,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대화하며 오르다 보니 금세 정상에 이르렀다. 넓직한 연화봉 정상에는 보기 드물게 아미타대불이 연화사를 향해 우뚝 서있고, 그 뒤로는 활달한 행서체의 주련이 걸린 팔각정이 망망대해의 운치를 더해주는 듯했다.정상에서 동남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용머리 해안은 연화도 절경의 압권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하얀 파도의 포말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고, 올망졸망 이어지는 연화열도는 마치 승천하려는 용의 용틀임같이 힘찬 기세를 모으는 듯했다. 반대쪽인 용두마을의 해변은 밋밋하고 고요의 바다에서 파도 한 점 일지 않아 길쭉한 용머리 능선을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의 양면성은 이렇듯 보채거나 서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 품고 보듬으며 제각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사회에서는 매양 매시 바람 잘 날 없이 아웅대고 티격거리며 갈등양상이 멈추지 않으니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는 도(道法自然)’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수년 전 주마간산 격으로 다녀온 연화도를 다시 찾아 산행과 아울러 싸목싸목 걸어가며 주위를 살피니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았음에라! 산이나 강, 섬이나 뭍을 찾는 곳 어디에나 늘 반기며 기댈 수 있는 심신의 안식처, 자연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병원과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망중한의 여유로 자연을 즐겨 찾자.

2024-03-05

화요일 첫 비행기는 뜬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매주 화요일 김포공항에서 포항으로 가는 첫 비행기는 뜬다.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포항 청하면에 위치한 스테인리스 가공 회사인 D사는 2013년 동반성장이란 이름으로 포스코의 지원을 받았다. 스테인리스 후판 고객사인 D사는 민주노총 계열의 포항에서 보기 드문 1년 파업을 한 사업장이고 그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에 패하여 노조 간부와 조합원은 3년째 급여를 차압 당하고 있었다. 여기에 혁신을 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서울 경기지역과 해외를 지원하고 있던 필자는 경영자문 역할의 스테인리스 부문장과 혁신 컨설턴트로 배치되었다. 사장과 첫 인터뷰에서 4가지 약속을 했다. ‘사장부터 빗자루를 든다, 혁신 인재를 양성하고, 매월 현장 Top 진단, 직원 변화관리 교육을 지속한다’였다. ‘부하직원들은 상사의 등을 보고 배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얼어 붙은 조직분위기를 해동하는 데는 Top의 빗자루를 드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본사가 서울에 있었지만 사장은 매주 화요일은 어김없이 첫 비행기로 포항 사업장을 찾는다. 현장 개선활동 격려와 솔선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사장부터 빗자루를 들고 공장 청소를 시작했고 직책보임자도 함께 나와 쓸고 닦았다. 처음에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달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날 즈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한 현장을 위한 문제해결 4개월 프로젝트의 활동 리더 인재양성을 하며 요소요소에 혁신의 불씨를 심어 나갔고, 현장 즉 실천 14팀의 Top 진단을 통해 ‘대화의 장, 격려의 장, 코칭의 장’을 만들어 가며 스스로 개선하는 조직 분위기를 조성했다.Top 진단 시 담배꽁초가 보여도 사장은 잔소리하지 않았고, 개선 내용을 경청하며 3개를 칭찬하면 1개 정도 코칭을 한다. 일로서 직원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숨어버리던 조직분위기는 어느 시간부터 직원들이 운전실을 나와 사장의 팔을 잡고 개선 활동 장소로 가는 변화가 일어났다. 전 직원 교육을 할 때 사장과 직책보임자도 참석했다. 노조 간부들 프로필을 소개 받았지만 선입견 없이 하고자 지웠고 그들의 입장과 그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하며 대화하듯 변화 관리 교육을 했다. 사장과 직원들이 하나의 방향을 보고 같은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지고 사장과 직원들의 생각이 다를 때 긍정적인 조직 문화는 요원한 것이다.말이란 인간만이 누리는 선물이다. 말 한마디로 자신을 세우기도, 넘어뜨리기도 한다. 한마디 말에 일의 성패와 흥망이 걸려 있기도 하다. 사장의 열린 마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직원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조직문화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은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데, 그 힘은 바로 말에 있다. 말솜씨에 따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D사의 혁신 성공의 비결은 사장의 진정성 있는 솔선 리더십과 직원 관점의 소통으로 신뢰를 쌓고 미래의 꿈을 심어준 결과다.

2024-03-05

“아이고 문디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도 재밌어야 한다. 메시지 전달을 너무 강하게 의식하면 시는 관념화하거나 교훈적이거나 독자를 계도하고 가르치려는 부담을 주게 된다. 시가 교훈적이거나 이념을 강요하는 시를 오탁번 시인은 시적 문맹이라며 시답잖다고 판단한다. 한때 시에다가 무슨 사상이나 이념이나 철학을 담아내어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 독자를 현혹시켜는 사이비 위장전입한 시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는 메시지는 가난하고 짓밟혀 사는 사람들을 발로 차지 말라는 엄청난 감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과연 시인 자신은 연탄재를 발로 차며 사는 변두리 사람이었을까? 타자와의 일체성을 잃어버린 위장자의 입장에서 서민을 교화하려는 허위성을 안고 있는 언어는 아닐까? 오히려 곡진한 고어나 변두리 사람들의 말 속에서 건져올린 말도 안 되는 우스개 수준의 시가 시적 허위의 엄숙성을 내치는 좋은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요 엄창 큰 비바리야’(2007)에 실린 권기호 시인의 시‘아이고 문디야’는 ‘보리문디’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어 “아이고 문디야”가 시어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재미있게 읽히는 시다.“태백산 돌기로 내려온 지판은 오래전 문경암층 방향 틀어/ 바람소리 물소리 이곳 음질 되어 영일만 자락까지 퍼져있었다.// 어메요 주께지 마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 부푼 배를 안고 부풀게 한 사내 따라/ 철없는 딸은 손사래치며 떠나는데//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 인연의 삼베끈 황토길 놓으며 어메는 목젖 세하게 타고 있었다.// 호박꽃 벌들 유난스런 유월 느닷없이 남의살 제 몸에 들어와/ 노을빛 먹구름 아득히 헤맨 딸에게 어메는 연신 눈물 훔치며/ 맨살 드러낸 산허리 흙더미 내리듯이 마른 갈대소리 갈대가 받듯이/ 토담에 바랜 정 골짜기에 쌓을 수밖에 없는데// 세월 흘러도 신생대 암층 고생대 지층이 받쳐왔듯이/ 풍화된 마음 먼 훗날 만나게 되면// 아이고 이 문디 우째 안죽고 살았노 아이고 어메요/ 우리 어메요/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이 시는 경상도에서도 아주 무지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곡진한 목소리를 시어로 불러내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문경에서 영일만까지 경상도의 음질이 된 사투리의 생생한 현장성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철없는 딸년이 아이를 배어 집을 떠나는 서사적 사연을 엮어낸 시적 대사는 농경시대 어두운 시절의 그림처럼 혹은 한 편의 연극처럼 슬프긴 하지만 내쳐버리지 못할 질긴 운명의 서사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보리밭처럼 밟혀 사는 무지랭이들의 육성이 마치 귀에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나서 부모 몰래 아이를 밴 딸년은 어메에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라고 내뱉는다. 그에 화답하는 어메는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라며 모녀간의 이별을 통곡한다. 안 죽고 살아서 다시 만나는 모녀의 관계는 마치 태백산맥의 지층이 영남의 역사와 공간을 유지해온 것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알몸으로 살아온 사람들, 농경제 공동사회에서 ‘문디’는 보리밭에서 아이들 간을 빼내먹고 산다는 나환자를 이르는 말이지만 경상도 방언에서는 ‘문디’는 항상 ‘아이고’라는 감탄사와 함께 호응을 이루어 원통하거나 한스러울 때 상대를 호명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을 담고 있는 울림의 관용구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며 독자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시인의 눈높이가 아니라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의 어메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딸년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들리는 세상의 소리다.시인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영남 방언의 음운변화와 아래아의 역사적 변천의 잔존형까지 시어로 녹여내었다.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라며 무지한 딸년이 남자를 만나는 광경을 산허리의 바람 부는 소리로 전환해내는 시어의 놀라운 위력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시인 권기호가 들려주는 투박한 경상도 소리가 과거의 시공간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온다. 딸년의 무지하고 원초적인 성은 도덕을 뛰어 넘어 어둠조차 견뎌내게 만드는 축제적인 제례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혼탁한 윤리나 도덕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2024-03-04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세상

지난 1월 16일 비즈니스 호텔에서 눈을 뜬 저는 호텔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공기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요. 이날은 작가 오시로 사다토시 선생님이 우리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오시로 사다토시는 1949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시 창작으로 시작해, 이후에는 소설로 장르를 확대하며 지금까지도 맹렬하게 활동하는 오키나와의 대표적 문인입니다. ‘저승의 목소리’ ‘게라마는 보이지만’ ‘1945년 비통한 오키나와’ 등의 소설은 환상적인 기법을 통해 오키나와전의 비극을 표현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지요.그의 소설에는 늘 전쟁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 억울한 망자들의 못다한 말을 담아내는 마음, 사라져가는 오키나와 말(시마고토바)을 쓰려는 의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키나와 소바를 파는 식당에서, 오키나와전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는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은 바로 제 손을 잡으며, 우리는 ‘친구’라고 뜨겁게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정한 문학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오시로 선생은 우리 일행을 오키나와의 대표 언론사인 ‘오키나와 타임즈’로 안내했는데요. 오키나와는 인구 150만 정도의 섬이지만, ‘오키나와 타임즈’의 규모는 한국의 그 어떤 언론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이런 언론사가 나하시에 하나 더 있다는 말을 들으며, 오키나와가 차지하는 사회·역사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 타임즈’에서는 시로마 아리 기자가 안내를 해주었는데요, 시로마 기자는 류쿠 대학 시절 오시로 선생님의 제자였으며, 현재는 ‘오키나와 타임즈’의 출판콘텐츠부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희에게 ‘일본 복귀’ 50주년을 기념하여 2022년에 출판한 ‘반복귀론을 다시 읽다(‘反復帰論’を再び読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책은 ‘오키나와 타임즈’가 발행했던 잡지 ‘新沖縄文学’ 18호(1970.12)와 19호(1971.3)에 수록된 ‘반복귀론(反復帰論)’ 관련 논문 8편을 수록한 것인데요. 그 중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쓴 ‘오키나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沖縄の友人への手紙)’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직접 통치 아래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던 오키나와인들은 미국의 군사지배보다 일본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2년에 ‘복귀’를 쟁취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의 우려처럼 ‘복귀’의 실제 모습은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약속한 복귀의 대전제는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미군기지가 조금의 손상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 미국의 군사기지가 그대로 남은 것은 물론이고 신기지가 건설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재일미군기지 전용시설의 74%가 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는 섬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지금도 오키나와 경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관광과 기지 관련 수입이라고 합니다.‘오키나와 타임즈’를 나온 우리 일행은, 오시로 선생님의 안내로 1959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키나와시사출판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오키나와의 사정을 일본 본토의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출판사는, 오늘날 아동용 도서 출판으로 유명한데요. ‘오키나와시사출판사’ 견학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3,4학년용 교재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 것들인데요.오키나와 어린이들은 자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키나와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발 딛고 사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교과서로 배우며, 일본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국가의 역사와 문화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향토에 대해서부터 배우는 것도, 올바른 세계시민이 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1월 17일에는 후텐마 기지, 헤노코 기지와 함께 오키나와의 대표 미군기지인 카데나 미 공군기지를 방문했는데요. 카데나 미 공군기지는 베트남전 당시 전략폭격기 B-52가 수시로 뜨고 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죠. 기지 건너편에는 4층 건물의 카페나 휴게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전망대에서는 드넓은 기지와 3,700m에 이르는 쭉 뻗은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잠시 머무는 사이에도 미군기가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전망대에 설치된 소음측정기에 나타난 숫자는 무려 100데시벨을 넘어서고는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보통 110데시벨 정도라고 하니, 근처에 사는 오키나와인들은 경적 소리와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어쩌면 평화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라는 소박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2024-03-04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김규인 수필가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유효 슈팅 하나를 기록하지 못한 졸전 끝에 대한민국은 요르단에 졌다. 선수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클린스만 감독의 무전술과 뒤이어 터져 나온 선수들의 다툼이 벌어진 것을 알고는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강인이 주장인 손흥민 선수와 다툼으로 손흥민은 손가락을 다쳤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선수의 하극상은 좀처럼 드물다. 결과적으로 무참한 경기 성적에 앞으로의 경기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른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경기력은 기본이고 태도도 중요하다. 특히 축구는 열한 명이 뛰는 단체경기가 아닌가. 서로 간의 호흡과 생각마저도 읽어주어야 하는 경기다.경기 결과는 무참했고 능력 미달의 감독은 경질되었고 문제를 일으킨 이강인 선수는 팬들의 비난에 휩싸인다. 그를 내세워 광고하는 회사마저 광고를 취소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팬들의 비난으로 마음이 황폐해지면 경기력도 떨어진다. 이런 사정으로 이강인은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도 점차 줄어든다. 프로구단은 경기력과 상품 가치가 떨어진 선수는 언제든지 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주의 사회인 유럽에서 성장한 이강인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은 언제든 자신에게 결과가 돌아온다.그나마 선배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사과한 건 천만다행이다. 영국에 있는 주장 손흥민을 찾아 사과하고 다른 선배들에 직접 사과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노력을 보인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운동하는데 생각이 많아지면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력은 떨어지고 몸을 다칠 가능성은 늘어난다.인생은 짧고 운동선수의 경기 출전 시간은 더 짧다. 그 기간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려면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젊을 때는 이 기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금방 지나간다.국가대표를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팬들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의 축구 인생도 끝나는 것을 젊은 선수들은 알아야 한다. 축구장에서 안 보이면 국민과 팬들의 마음에서 멀어진다. 팬들에게서 멀어진 선수의 상품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이고 그런 선수에게 프로구단은 돈을 투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축구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경기다. 팀을 믿고 팀에서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팀을 앞세워야 한다. 나 하나만 잘한다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팀이 하나가 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마다 원팀을 강조하고, 원팀을 이루기 위해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반복 훈련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지게 된다.축구경기에서 팀이 선수 개인보다 항상 앞에 있음을 감독도 선수도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을 앞세울 때 믿음도 팀도 무너진다. 불신의 참혹한 결과를 우리는 요르단전에서 보았다. 믿음이 사라지면 팬도 구단도 광고도 사라지고 비난만 남는다.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2024-03-04

국가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2월 2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주최한 ‘무학과 무전공’ 반대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은 전국교수연대회의에 참여한 각 교수 단체 대표들의 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교수 단체 대표의 발언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시위 진압 차량이 나타나고 경찰의 불법 집회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기자회견으로 신고된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구호 제창은 불법이라는 사실과 삼십여 명 규모의 구호 제창은 보통 그냥 넘어가지만, 중간에 울려 퍼진 ‘퇴진하라!’는 구호가 문제가 됐다는 점을 말이다.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외치는 구호에 놀라 시위 진압 차량까지 등장하는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정부의 의대 정원 이천 명 증원 발표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주가 지났다. 정부와 의사들이 각자의 논리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맞선 의사들의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서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어느 쪽의 시각이 옳은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사에서 읽게 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이번 사태에 대한 시각은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관계자 발언의 요지는 의대 정원 증원의 결정은 지역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법적 절차에 따른 합리적 발언일 것이다.그렇다면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의 구조에서 국가란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말한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을 시행하며 시스템을 만든다. ‘무학과 무전공’, ‘의대 정원 증원’은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정책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하지만 지금은 협의와 토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국가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잔소리 말고 따르라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려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호실 직원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쫓겨난 사건이나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장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원생이 강제로 쫓겨난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면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는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다.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3월이 되었다.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을 품은 2024학번 새내기가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학생들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토의 과정을 익히지 말고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2024-03-04

공무원 공부모임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도에서 시작된 ‘화요일에 공부하자’, 이른바 ‘화공’이 일선 지자체로 확산하면서 공무원 공부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구미시는 ‘수공’, 울진군엔 ‘목공’도 있다.최근엔 예천군이 가세했다. 예천군은 ‘퇴근길에 공부하자!’라는 야학을 만들었다.예천야학은 경북도청의 ‘화공’을 벤치마킹했다. 공무원들이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이해하고 군청 각 부서장 등 능력 있는 관리자를 육성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월 1차례씩 연간 10회 진행한다.울진군도 지난해부터 ‘굿모닝 목요특강’이라는 이름의 공부모임을 시작, 공무원과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경북도의 ‘화공’은 ‘경북의 발전을 위해 공무원부터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시대적 흐름을 주도해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공부모임이다. 지난해 화공은 모두 56회 진행됐다. 경제·산업·과학기술분야와 공공정책·혁신분야 등 온갖 분야를 아우른다. 인문소양·소통분야도 있다.그중 가장 많이 열린 분야가 경제·산업·과학기술 분야다. 경북도의 관심 분야와 일치한다. 화공에서 논의된 주제는 후속 연구와 공부를 통해 실질적인 정책 개발로 이어진다. 강사 대부분이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보니 공무원들이 안계를 넓히고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책에 반영, 톡톡히 효과를 보는 것이다.공무원의 머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부모임을 통해 배우고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이 빠르다. 공직자들의 사고를 일깨워 주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공무원들에게 소양 교육도 시키고 정책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공부모임의 확산을 기대한다. 그게 누이 좋고 매부도 좋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04

미셀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

방민호 서울대 교수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데, 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미셀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있다고 했다. 내 의지로는 지금 갈 수 없는 형편, 사람에 이끌려 외출을 감행했다.들라크루아라면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낭만주의 화가밖에 알지 못한 나였다.그 오랜 프랑스혁명의 지지자의 그림을 보러 가야 하나? 그런데 아니다.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 2월 26일 출생해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화가. 구글에서 이 화가를 검색하면 “the ‘naif’ style”(나이브한 스타일)의 프랑스 화가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naif’는 프랑스말, ‘naive’로도 쓰며, 영어의 ‘naive’와 같은 말이다. ‘naive’는 우리말로도 “저 사람 참 나이브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그 ‘나이브’다.블로그 ‘형설지공’에 이 프랑스말 ‘naive’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이 말은 라틴어 ‘nativus’, ‘태어난, 타고난, 자연적인’ 등의 뜻을 가진 말에서 나왔다.이 말은 “태어난 상태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단순하고 세련되지 않다”는 뜻이다.이른 봄, 아직은 추운 오후 네 시 반의 어스름을 뒤로 하고 한가람 미술관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아주 놀라고 만다. 거기에, 화가 자신이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라 부른 유년기의 파리의 풍경이 가득히 흐르고 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풍경화가이고, 파리와 그 인근의 거리 풍경을 평생에 걸쳐 그려온 사람이다.원래 ‘벨 에포크’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유럽, 평화를 누리며 경제나 문화가 급속히 발전한 유럽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파리, 나치가 점령하기도 한 전쟁 중의 파리가 포함된 시기를 ‘벨 에포크’라 불렀다고 한다.유럽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려는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바 ‘30년 전쟁기’라 부른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진 종교전쟁이 본래의 ‘30년 전쟁’(Dreißigjahriger Krieg)이라면, 이 새로운 ‘30년 전쟁’은 유럽 현대사를 보다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용어인 것이다.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이 전쟁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일까? ‘나이브’한 스타일의 화가라는 설명처럼 그는 사회·역사적인 흐름에는 그토록 둔감했단 말인가?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참상에 주목할 때, 어떤 사람은 전장을 헤치고 흐르는 삶의 온기, 활기 같은 것에 주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전시실 가득히 피어난 파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우리는 삶을 이렇게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사회적 관계망에 주목할 때 삶은 힘겹다. 하지만 각각의 개체들의 생명의 온기, 활기에 눈을 맞추면 삶은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 된다. 이 다르게 보는 각도에 삶의 숨은 희망이 있다.

2024-03-04

선거법을 의원들에게 맡겨놓아야 하나

김진국 고문 참 어이가 없다.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달 29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4·10 총선을 겨우 41일 앞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에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바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다.워낙 선거법 개정이 늦어 문제가 생기자 2015년 이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18대 총선(2008년) 때는 선거 47일 전, 19대 총선(2012년) 때는 선거 44일 전에 선거구가 정해졌다. 이 조항을 만든 뒤, 20대 총선(2016년)에는 42일 전, 21대 총선(2020년)에는 39일 전으로 더 늦어졌다.선거구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소선거구제로 갈지, 비례대표 선출을 준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선거법의 근본 틀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떻게 되든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된다. 지역구를 옮기든지, 없어져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정치 신인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연고를 끌어대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지역구가 바뀌면 의도하지 않게 ‘철새’ 꼴이 된다. 처음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잃는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선거구로 바뀌면, 돈만 들여 헛고생한 게 된다. 그렇다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다. 현역 의원들만 유리하다.가장 비겁한 것이 위성정당이다. 4년 전에는 촉박한 시간에, 처음 도입한 제도를 놓고 당황해 잘못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악한 짓인지 잘 알면서 저질렀다. 시간도 충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어떤 선거제도로 갈지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위성정당보다 더 위험한 선택을 했다.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때는 봉쇄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해하기 쉽게 ‘문턱조항’이라고도 한다. 일정 정도의 표를 얻지 못하면 의석을 주지 않는다. 극단주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는 독일은 문턱이 5%로 높다. 나치를 경험해 극우정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우리는 3%, 혹은 지역구 의석 5석이다. 2%를 넘으면 한 석 줘야 하지만 3%로 막아놓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 좌파들을 끌어모아 위성정당을 만들고, 비례 의석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도 단일화로 밀어준다. 민주당이 보증은 섰지만 어떤 후보가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책임도 안 진다. 애플에서 조악한 휴대폰에 아이폰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폰과 함께 팔아놓고, 성능도, 에프터서비스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그런데 이건 무책임정치 아닌가.선거구 획정 과정도 기가 막힌다.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은 서울·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씩 늘리게 돼 있었다. 나머지는 해당 시·도 안에서 조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전북 대신 부산에서 1석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버텼다. 결국 만만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 떼 전북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났다.지역구 국회의원 254명을 시·도별 인구 비율로 나눠보면 경기(-7석)·인천(-1)에서 8석을 빼 서울(+2석)·부산(+2석)·울산(+1석)·광주(+1)·전남(+1)·전북(+1석)에 나눠준 모양새다. 서울이 인구 19만5507명 당 의원 1명이다. 이것을 지수 100이라고 할 때, 경기는 116.2, 대구·경북은 100.8(19만7009명), 광주·전남·북은 90.9(17만7637명)이다. 서울이나 대구·경북보다 의원 10%를 더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면서까지 지역구를 지킨 전북은 89.7(17만5292명)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은 인구로 의원을 만든다. 서울보다 지수가 높은 건 경기(116.2)·인천(109.6)·제주(115.0)와 충청(101.4), 대구·경북(100.8)이다. 선거법을 의원들이 주무르게 하는 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