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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따라 하기라니

김규인 수필가 살인 예고 건수가 480건을 넘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한 살인 예고가 빠른 속도로 번진다. 이를 중·고등학생들이 따라 하더니 초등학생마저 살인 예고한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살인 예고는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바람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마저 따라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만 간다. 많은 사람이 불안스레 지켜보는 와중에도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여기에 더하여 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촉법 소년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초·중등 학생들의 도를 넘는 이러한 행동이 사회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오른다. 민식이법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위인지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돈벌이하려는 행위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늘어나는 따라 하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국가에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고 횡단보도에 드러누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유치원에만 다녀도 알 수 있는 사회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이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하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회의 힘들고 아픈 사람도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그런데 막상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아도 마땅한 처벌법이 없어서 다시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인 예고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아울러 촉법 소년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소모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은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관련 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고 불안한 사회를 쳐다보기만 하는 건지. 권력을 잡는 일에만 열중인 국회의원들을 보면 할 말을 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 권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촉법 소년 교육은 일차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안전하여지려면 먼저 사회의 규범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국가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 한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받는다는 사실과 법을 지켜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깊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학부모는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자기 자식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살인 예고와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가 처벌받지 않아서인지 따라 하기가 늘어난다.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남의 이목을 끄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자신이 지키지 않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자신이 위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사회는 우리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생활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 인(人)자가 막대 두 개가 서로 기댄 것처럼 사회는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따라 하기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2023-09-04

고속열차를 타고 오가는 것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1일, 포항과 수서를 오가는 SRT 고속열차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포항역에서 서울 수서역까지 약 2시간 21분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강남권에 용무가 있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역이 서울~수도권과 더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2004년 KTX 경부선이 개통되며 서울~부산 2시간 반 시대가 열린 이후, 많은 환자들이 부산권 병원 대신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찾게 되면서 지역 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사례가 있다.이러한 환자 유출 현상은 단지 재정적 어려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출신 인재들이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동기를 약화시키게 되어 지역의료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지금 당장은 지역 병원과 서울권 병원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아주 가벼운 질병이 아니고서는 지역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대부분의 환자가 서울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이러한 문제는 지역 인재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지역의 위기와 지방 소멸을 우려하지 않는 지역은 없지만, 그 해결책으로는 고속철도나 공항과 같은 대형 교통인프라의 유치가 여전히 1순위로 내세워진다. 이러한 교통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서울~수도권과의 체감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역으로 사람과 자본이 대거 유입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와 고속철도는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지역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것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부족한 일자리와 경직된 문화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을 이탈하는 속도 또한 가속화될 수 있다.지역성은 중심(서울~수도권)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정체성이다. 지역을 지역답게 만드는 요소가 존재하며, 이것은 중심로부터의 상대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유지되기 어렵다. 필자의 작은할아버지가 1980년대 초 포항에서 일하실 때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포항과 서울 간의 물리적 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상대적·체감적 거리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 교통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킬수록 지역은 지역다움을 잃어가게 된다.그렇다면 지역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지역사회의 속도를 더더욱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수도권과 같은 메트로폴리스의 속도를 무비판적으로 지향하라는 뜻은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에 맞춰 정신문화의 진보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성차별적 문화,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 조직에서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을 타파하고, 지역사회와 문화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이 이런 문제에 염증을 느껴 지역을 떠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고속철도의 속도가 지역사회의 타성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2023-09-04

지오투어리즘, 울릉도

광활한 동해 가운데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섬 일대가 있다. 하늘이 허락해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이곳은 그날 날씨 상황에 따라 눈에 담을 수 있는 곳도 가변적이다. 최근에 대두되는 백두산 폭발만큼이나 초대형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곳, 울릉도 일대는 오늘도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려 사람들이 모여든다. 만약 운이 따른다면 독도에 발을 디디게 될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대개는 1만년 이내에 화산활동이 있었으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울릉도는 약 250만년 전에서 5천년 사이에 형성되었는데, 바닷속 해저화산에서 용암이 여러 차례 분출되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저화산이 섬이란 이름의 땅이 되던 모습은 2021년 8월 일본의 해저화산 폭발이나 2019년 통가의 해저화산 폭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섬은 대부분 바닷물에 의한 침식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영토 확장에 기여하기도 한다. 울릉도는 마지막 화산 폭발이 약 5천년 전쯤 안으로 조사되었고, 활동 주기가 3천년에서 7천년 사이로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에 지하 100㎞에 거대한 마그마방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온천이 없는 울릉도의 지하수 온도가 63~99℃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되었고, 지열 발전을 위한 연구에서도 1㎞ 땅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버블스프링’이라하여 마그마가 오래 머금기 어려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만하면 아직도 살아있음이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울릉도는 화산의 총길이가 3천m나 되지만 현재 물 위로 보이는 부분은 겨우 600m에서 1천m에 불과하다. 해저화산의 일부가 물 위에 보이는 형태인만큼 섬의 경사도가 심한 편이고 해식절벽이나 침식동굴, 부석 등 화산활동과 이후의 결과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저동·도동해안은 초기 화산활동의 지질구조를 잘 간직한 곳으로 주로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마치 치약을 길게 짜놓은 듯 길고 둥근 모양(베개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베개용암이라 부른다. 울릉도 개척항으로 유명한 학포해안은 해안을 따라 집괴암·응회암·조면암층이 분포되어 있는데, 집괴암과 응회암이 많은 지형은 침식되어 만(들어간 곳)이 되고, 단단한 조면암층이 많은 곳은 곶(튀어나온 곳)이 되었다. 해안절벽은 침식으로 붕괴되면서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졌으며 그 위로 국수처럼 길고 각진 기둥이 생성되어 주상절리를 이루었다. 향나무가 자생하는 대풍감이나 노인봉·송곳봉 그리고 국수바위에서도 잘 발달된 주상절리가 발견된다. 또 본래는 울릉도와 한 몸이었으나 이제는 동떨어진 섬이 된 코끼리바위는 높이 약 10m 아치형의 해식동굴이 코끼리의 코를 이룬다. 이러한 코부분이 침식되어 부서진다면 아마도 세 명의 선녀처럼 서 있는 삼선암이나 거북바위처럼 독립된 촛대 모양의 바위가 될 것이다. 이런 침식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관음도의 관음쌍굴도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구멍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전에 높아진 해수면에 잠겨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강물에 의해 침식된 지형은 울릉도 남부의 주요 상수원이 되는 봉래폭포와 용출소가 있다. 용출소는 지하수가 단단한 조면암을 만나 지표로 솟아올라 형성된 물웅덩이로 약 2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봉래폭포는 오르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풍혈(바람구멍)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울릉도 특유의 식생이 발달하여 여러 식물을 관찰하기에도 편한 장소이다. 사실 대다수 희귀식물은 성인봉 인근의 원시림에 주로 자생한다. 너도밤나무 숲·섬조릿대·솔송나무·섬단풍나무·섬피나무 등과 섬말나리·섬노루귀·섬바디 등 총 200분류군이 발견되었고 보존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원시림은 화산폭발때 발생한 부석이 비옥한 토양층을 형성하여 조성되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 죽도라 불리는 울릉도의 한 부속섬도 얇은 부석층으로 덮여있다. 울릉도 화산의 분화구에 해당되는 나리분지는 폭발 후 그 일대가 가라앉아 형성된 칼데라이자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화산 알봉을 품은 이중화산 분화구이다. 두 개의 칼데라가 겹쳐 만들어진 이곳은 울릉도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눈꽃축제가 열린다. 알봉은 점성이 강하고 끈적한 용암이 봉긋한 돔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마치 새의 알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분화구가 뚜렷하지 않아 살짝 패인 꼭대기를 분화구로 추정하고 있다.우산국·우릉도·무릉도·우릉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울릉도는 현재 지오투어리즘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화산으로 형성된 지질과 그 이후 침식된 세월의 흔적을 머금었으며, 독자적으로 자생한 원시림이 남아있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울릉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온 역사가 흥미를 더한다. 오늘도 하늘이 허락한 사람들은 잔잔한 바람과 고요한 파도를 만끽하며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9-04

바람과 함께 사라진 시대

1936년에 출판된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표지. 소설을 원작으로 그것을 영상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인공에 어떤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본디 독자의 꿈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독자가 꿈꾸는 소설 속 나만의 주인공을 현실 세계의 누가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꿈과 경쟁할 수 있는 현실이란 본디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하지만, 간혹 먼저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마치 그것 먼저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의 선후 관계를 바꾸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소설 원작이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고,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만 하면 어떻게 해도 그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만 떠오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본디 소설은 시각적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문자의 추상성과 그 연결을 통해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각인이므로, 그것은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시각화된 이미지가 현대인의 마음을 전유하는 시대라고 해도, 꿈속에 있던 그 이상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아마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1900~1949)의 원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2년 뒤에 나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을 연기했던 ‘비비안 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둘러싼 꿈과 현실 속 구체적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인식 너머로 사라져 버렸지만,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 오하라만큼은 오히려 사람들의 꿈 앞으로 나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오랜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꺼내 읽으며, 비비안 리가 스칼렛 오하라로서,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이 레트 버틀러로 미국 남북전쟁의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들이 독자들의 마음속 꿈에까지 걸어들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비비안 리(Vivian Leigh). 물론, 비비안 리가 없었어도,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스칼렛 오하라는 그 자체로도 모든 사람에게 각인될 만큼 멋진 주인공이다. 거친 남부의 타라 농장에서 살아가며 숙녀가 되는 가장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정열이 숨겨져 있다. 이 스칼렛 오하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성장해온 여성 작가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미국으로 옮겨와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실현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남북전쟁이라는 전통과 명분, 그리고 자본이 얽히는 시대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의 사랑은 계속해서 어긋나면서 계속 이어진다. 스칼렛은 자신이 사랑했던 애쉴리 윌크스에 대한 질투이자, 가문끼리의 거래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 번 결혼했으나 결혼 직후 남편이 죽어 바로 혼자가 되고, 전쟁으로 타라 농장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폐허만 남은 농장을 떠안는다. 농장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와중에, 스칼렛은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결혼한다. 스칼렛은 한 번은 가문 때문에, 한 번은 돈 때문에 결혼하고,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은 그렇게 부유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사랑보다 시대를 견뎌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스칼렛 오하라가 단지 로맨틱한 플롯의 일반적 주인공이었다면, 아마도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그 인물이 그토록 우리에게 각인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람과도 같이 시대는 사라지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니 말이다./홍익대 교수

2023-09-04

당론으로 징계감 아니라고 말해보라

김진국 고문 가재는 게 편이었다. 국회 윤리위원회 제1 소위가 지난달 30일 거액의 암호화폐(코인) 보유와 국회 회의 중 투자로 비난받은 김남국 의원 제명안을 부결했다. 거센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을 끌다 결국 유야무야(有耶無耶) 끝나가는 셈이다. 국회 윤리위가 늘 그런 식이다.21대 국회 들어 49건의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실제로 징계받은 사람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하나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덕분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때 법사위원장석을 점거했다고 징계했다. 20대 국회 47건, 19대 국회 39건도 모두 흐지부지됐다. 그 가운데 75건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하지 않고 뭉개다 저절로 사라졌다.김남국 의원은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도중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 했다. 코인에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다. 부동산과 취업 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코인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 큰 손실을 봤다. 의원들에게 백지신탁을 요구하는 건 공직을 이용한 불공정 게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인은 주식보다 더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것도 국정을 수행하는 중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다. 외부 인사 8명으로 구성돼 그런 결론을 냈다. 그러나 윤리위 소위원회는 국민의힘 3명, 민주당 3명, 6명이다. 표결 결과 3 대 3이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이 모두 반대한 것이다.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코인 논란으로 지난 5월 탈당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지시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의 부도덕성은 결국 민주당의 책임, 이재명 대표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김 의원이 탈당한 것도 결국 눈속임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다시 복당시킨 데 이어 재산 축소 신고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은 김홍걸 의원을 출당했다가 복당시켰다. 명분이 없다. 지금도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박완주 의원, 정대협 공금 유용과 관련한 윤미향 의원, 돈 봉투 살포와 관련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처럼 움직인다. 탈당과 제명이 민주당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도 몇 달을 못 참고 복당시킨다. 국민의 눈만 잠시 속이자는 거다.민주당 의원들은 코인을 보유한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사람도 문제가 있으면 처벌하면 된다. 추가로 코인 거래 조사를 하겠다던 김상희·김홍걸·전용기 의원도 문제없다며 최근 조용히 끝내버렸다. 도긴개긴이니 모두 눈감아주자는 건 결국 의원들의 짬짜미다. 분노한 국민을 또다시 속이는 일이다. 더군다나 김남국 의원은 코인 보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법무부 장관 청문회처럼 심각한 국정 논의 중에도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했다.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진상 조사 과정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했다.또 김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핑계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는 있나. 지금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은 의원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는 왜 채우려 하나. 내년 4월 총선까지 무엇을 할 생각인가. 활동을 못 해도 억대 세비는 챙기겠다는 욕심인가.결국 국민 여론보다 의원끼리 의리가 중요하다. 다른 의원들도 그 정도 약점은 안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징계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정직하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문위는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는데, 의원으로 구성된 윤리위는 아무 이유도 없이 뭉개버렸다. 무용지물인 이런 윤리위로는 부패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결 의원들도 비공개회의에 숨어서 오물을 덮지 마라. 당당하다면 공개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밝혀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03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 사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며칠 전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핸드폰을 분실 했다.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자전거 앞의 바구니에 넣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탄다.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들어도 좋지만, 공간에 퍼지는 음악을 듣는 맛을 훨씬 좋아하기에 앞 바구니에 넣고 음악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커브를 돌 때 떨어진 듯한데, 그때 음악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음악을 듣고 있었으면 휴대폰이 떨어지면 음악이 중단되니까 인지했을 텐데라는 후회를 했다.“당분간 PC 카톡으로만 연락됩니다”…. 라고 여러 친구들, 그룹들에 연락한 후, 한 친구로부터 ‘구글 위치확인’서비스를 받아 보라고 하는 충고를 받았다. 근처 단골 핸드폰 가게에 가서 구글 서비스를 해보자고 하는데 구글 ID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단 더 찾아보자고 했다.자전거로 다닌 길을 두 번이 지나면서 계속 찾았지만 없었다. 그리고 1시간 반이 지났다. 점점 찾을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었다. 주변 경찰서에 가서 유실물 신고를 했다. 경찰서에서는 핸드폰은 찾는 경우가 많으니 염려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맨붕 상태는 계속 되었다.다시 집으로 돌아와 구글 ID/PW를 검색해서 다시 핸드폰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구글 위치 추적에 성공했다. 자전거로 다닌 길 어떤 커피숍에 있다고 나왔다.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커피숍에서는 주인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구글 위치에 여기라고 나온다고 나는 주장하고 그는 없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결국 그 커피숍 근처를 뒤지는데 없었다. 주인이 나와서 같이 찾기로 했다. 커피숍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 편의점은 월요일 휴일이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커피숍 주인이 “저 테이블에 있는 건 무어죠 ?”라고 외쳤다. 찾았다! 핸드폰은 거기 있었던 것이다.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1)구글의 기술력! 정확히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냈다. 정말 신기했다. (2) 한국민의 양심! 누군가 길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서 길거리 편의점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2시간 동안 손댄 사람이 없었다.다행히 그 편의점이 오늘 휴점 덕분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2시간을 그 탁자 위에 있었다는 건 한국민의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가져가도 팔기도 쉽지않고 절도로 체포될 수도 있고 아마 그 자리에 놔두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 핸드폰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건 선진국 영국,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문득 10년 전 독일 생활이 생각났다. 처음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동네에 도착해서 전차를 타는 방법을 모를 때 50유로의 티켓을 사면 한 달 동안 전차, 버스 등 교통수단으로 모든 시내 및 일정한 거리의 시외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을 한 교민이 알려줬다. 그 티켓을 끊어서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참 많았다. 우선 첫 시승 때 전차 내에서 첫 시승임을 스스로 기계로 체크하게 되어 있다. 양심적으로 하도록 돼 있어서 승객이 첫 구입한 티켓을 언제부터 사용하는가를 스스로 신고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티켓을 발행할 때부터 사용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첫시승 때 스스로 신고 하도록 돼있는 인상적인 시스템이었다. 열심히 한 달 동안 학교를 오가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전차, 버스를 탔지만 티켓검사를 한 번도 하는 경우가 없었다. 결국 승객들이 알아서 자기가 필요한 티켓을 구입하여 양심적으로 가지고 다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 처음으로 조사원의 티켓검사가 시작됐다. 나는 속으로 아마 여러 사람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건 한 달 내내 티켓검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단 한 사람도 티켓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또 한 번은 배를 타고 인근의 마을로 여행을 하는데 배 안에서 음식주문을 받아서 커피, 차, 식사 등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청구서도 없었다. 속으로 아마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그러나 배를 내릴 때 쯤 되니까 각자가 알아서 식사비용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기전까지 여러 정거장이 있었고 화장실이나 갑판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여러 번 떠났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대로 중간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음식값을 계산하라고 강요하는 직원도 없었다. 내리기 전에 알아서 양심적으로 계산하고 내리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과연 정직한 사회란 무엇인가를 실감했다.우리 사회도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 곳곳에 정직성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공공질서도 많이 좋아졌고 준칙성은 나의 젊은 시절보다는 훨씬 좋아졌다.이번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 그날은 한국인의 양심에 감동 받은 날이었다.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핸드폰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길은 날아갈 것 같았다. 신고취소가 필요하지 않을 듯해도 경찰서에 들러 찾았다고 보고 하고 유실물 신고를 취소했다. 경찰들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2023-09-03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로서 2042년까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계획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과 200여 개의 반도체 팹리스,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일간 전력수요는 2029년 0.4MW를 시작으로 2042년 7GW, 2050년엔 10GW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간 10GW는 우리나라 연간 최대 전력수요량(피크전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이 정도 전력을 공장이 돌아가도록 24시간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또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전부 재생에너지라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이 2030년까지 RE100(제품 생산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을 필두로 한 글로벌 IT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요전력에 대해 재생에너지 100% 공급을 바탕으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이 계획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첫 번째는 그 막대한 양의 전력을 용인까지 어떻게 가져오느냐는 문제다. ‘평택 반도체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당진시에서 평택 반도체단지까지 송전선로 34.2Km를 구축하는 사업이 당초 2015년 준공 계획이었지만 당진지역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준공하지 못한 사례를 볼 때, 전국에서 10GW 전력을 모아서 용인까지 끌어온다는 계획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두 번째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100% 재생에너지 공급이 필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공급대책은 없고 LNG, 원전, 석탄전력을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삼성전자의 주요고객인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며, 납품기업들에게도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2050년까지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고객 수요인 RE100을 2030년까지 못 맞춰 줄 경우, 2042년까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할까? RE100이 불가능하다면 삼성이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거듭 말하지만,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첫 단계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에 초점을 맞춰서 조성해야 한다. 필자가 그간 현장에 부딪히며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용인시와 반도체클러스터 인근 화성시, 안성시, 평택시 등 2~3개시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융복합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특화산업특구’를 지정해서 개발하면 농업진흥지역에서도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쌀농사만 짓는 농지에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지붕일체형 태양광으로 건설하는 스마트팜의 지붕과 수소연료전지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는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그러면 10G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농경지가 필요할까. 50KW의 전력생산이 가능한 첨단 스마트팜 1개동을 짓는데 150평의 농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1GW(100만K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00만평의 농지가 소요된다. 그러므로 10GW의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서는 3천만평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을 2027년부터 매년 200만평씩 15년간 조성하면 2042년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를 공급할 수 있다.첨단 스마트팜과 병행해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하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트에 100%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용인시 농경지가 2천200여 만평이니 화성, 안성, 평택 등 이웃 시들을 참여시키면 충분히 가능하다. 농민들의 평균 경작 면적이 약 3천평 정도 되므로 1만 농가를 참여시키면 부지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첨단 스마트팜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특화산업특구는 벌써 몇몇 군데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첨단 스마트팜에 협동조합 형태로 농민들이 농지를 가지고 참여하면 쌀농사에 비해 100배 정도 초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트는 용인시를 비롯한 주변 농민들에게도 전통적인 쌀농사에서 첨단 바이오산업에 참여하고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용인 반도체단지클러스터 주변 농지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경우 먼 지역에서 송전하느라 설치하는 송전탑 문제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도 없어질뿐더러, 원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 또한 줄일 수 있다. 더군다나 주변 농지에서 첨단 스마트팜 조성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게 되는 농민들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산업을 통하여 상상치도 못한 소득도 생기는 그야말로 기업과 지역 주민의 상생 발전모델이 될 것이다.

2023-09-03

노화와 죽음을 넘어선다면?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럴 법도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의학과 약학, 여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눈부신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가장 자주 자극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일 것이다.인간에게 숙명처럼 내장된,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필멸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불사의 신! 연역법과 귀납법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논리. 그런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과학적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죽음을 앞두고 10년 세월 병원을 들락거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 신세를 진 끝에 인생과 작별하는 요즘 세태에서 보면, 노화의 종말과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40대에 찾아오는 노화의 첫 번째 제비를 20대나 30대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과 활기를 유지하면서 노화와 작별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망각하게 되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2017년 가을학기에 디지스트에 출강하면서 만난 뇌 전공 대학원생과 이 문제를 생각해본 일이 있다. 20대 중반의 청춘인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500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대학원생이 진지하게 제기하는 죽음의 공포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근자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나 선배 교수들과 노화의 역전(逆轉)과 영생불사 혹은 최소 150년 200년 살아가는 인생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아버지와 어머니는 150살, 아들딸은 120살, 손자는 90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하지만 세태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는 모두 30살 이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산아제한 포스터 문구가 ‘둘도 많다’로 바뀐 게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구촌 최악의 저출산 국가 운운하면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그래서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에 광속(光速)으로 다가오는 노화 역전과 무병장수 시대를 무작정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해보자는 게다.2천500년 전에 공자가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지 않았던가?!

2023-09-03

합계출산율 0.46명인 곳도 있다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2분기(4월∼6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0명으로 조사됐다. 작년 0.78명에서 역대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0.6명대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걱정스러운 분석이다.알려진대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일찍이 한국의 출산율 추이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로 꼽았고, 그 시기가 2750년이라 했다.1970년대 우리나라 한해 출생아 수는 100만명이었다. 이것이 50년후(2020년)에 와서는 30만명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작년에는 24만9천명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출생율이다.합계출산율은 한 여성(15세∼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다. 국가별 출산율 비교나 한 사회의 인구수 변화를 예측하는 중요한 자료다.이번 조사에서 대구는 전국 평균치에 못미치는 0.67명으로 나타났다. 시도별로 서울(0.53명), 부산(0.66명) 다음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또 전국 구군별로는 대구 서구가 0.46명으로 전국 두 번째로 낮았고 대구 남구는 0.49명으로 전국 하위 8위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보인 곳은 서울 관악구(0.42명)다.기초자치 단위별로 볼 때 상당수 지역은 이미 인구소멸이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청년층의 결혼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의 청년의식 조사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비율이 36%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65%는 결혼을 해도 자녀를 둘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인구 재앙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03

안다는 믿음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유명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sns에서, 요즘은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의 답에 확신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 나의 선택과 행동은 얼마나 일관성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자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수시로 자신의 뇌에 속기 때문이다.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2010년 스웨덴 총선거를 앞두고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응답자가 선택한 것과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고 바꿔서 보여주었다. 좌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낮은 소득세나 건강보험에 민간 개입 등 우파 성향의 답에 공감했다고 알려주고, 우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넉넉한 복지와 노동자 권리 선호 등 좌파 성향의 답에 응답했다고 바꿔서 알려주었다. 이때 평소 4분의 1만이 실수로 잘못 응답했다면서 답을 수정했고, 나머지 4분의 3은 바뀐 답에 맞게 그것이 자기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옹호했다고 한다.응답자에게 여러 인물의 카드를 보여주고 매력 있는 인물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그가 고른 것과는 다른 카드를 내밀며 당신이 고른 카드라고 속여도 대부분 못 알아채고 자기가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옹호하는 현상을 ‘선택맹’이라고 한단다.질문 문항이 500개가 넘는 다면적 인성 검사 MMPI에는 같은 질문이 여러 번 나온다. 체크한 답이 정말 자기 생각인지 일관성 있는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다. 나도 해본 적이 있는데 같은 질문이라는 기억은 나면서도 몇 번에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닉 채터의 말대로, 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인식과 기억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붙잡는 경향이 많다. 나의 지각과 기억과 인식이 확실하다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질문하는 수밖에 없다.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사람은 모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정량의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가설을 떠올리고 그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관찰하면 이런 자동적 행위를 의식하게 되고, 가설에 따르려는 본능에 저항하게 된다면서, 세상과 자신을 관찰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질문과 가설의 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지난주에 쓴 칼럼과 근거 자료를 여러 채널에 올려서 의견을 받았다. 그 의견을 모아 ‘방류하면 안 된다’, ‘방류해도 무방하다’로 표현을 바꾸어 다시 정리하였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가설을 내놓고 의견을 받으니 질문하는 힘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2023-09-03

눈으로 볼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옛날 중국 한나라의 황제인 선제는 서쪽의 강족이 틈만 나면 쳐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혀 근심이 많았다. 강족을 물리칠 장수로 76세의 백전노장 조충국을 불러들여 강족을 토벌할 대책을 묻자 “폐하! 백문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지요. 직접 보지 않고 방법을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강족이 자주 나타난다는 금성군으로 가서 살펴본 뒤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 현지에 가서 눈으로 살펴본 후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강족을 토벌하였다.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 성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블랙박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진입로를 혼동하여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지나친 길을 역으로 주행하다 일어나는 사고를 보게 된다. 얻게 될 시간상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기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도로 표면에 분홍색 혹은 녹색의 선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이를 노면 색깔 유도선이라고 하는데 도로의 진출입 지점을 색깔로 시각화하여 주행 경로 혼동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눈으로 직접 경로를 확인하며 주행할 수 있는 노면 색깔 유도선은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 처음으로 시범 적용이 되었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안산 분기점은 연간 2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던 곳이었는데 노면 색깔 유도선 적용 후 3건으로 줄어들었고, 2017년 국토교통부에서는 노면 색깔 유도선에 대한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비게이션과도 연동하여 “분홍색 유도로를 따라 주행하세요”와 같이 음성 안내를 들으면서 눈으로 보며 주행하니 경로를 혼동하여 일어나는 사고의 위험이 현저하게 줄었다.눈으로 본다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관리 수단으로 기업을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연구하고 활용할 필요가 크다. 핵심은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보이게 하는 수단은 인간의 오감을 포함하여 첨단 계측기들을 활용해야 더 넓은 범위를 사각지대 없이 관리할 수 있다. 배관 내부를 흐르는 물질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이로운지 해로운지 알 수가 없기에 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온도계나 압력계 등을 활용한다. 압력이나 온도를 알 수 있어야 환경에 적합한 조건으로 운전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더불어 배관 바깥 표면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물질의 이름과 흘러가는 방향 표시를 하여 위급한 순간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인간의 눈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은 볼 수 없기에 최첨단 카메라에게 양보하고, 위험 지역은 센서가 24시간 감시하게 하여 이상 시 알려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관리할 수 없어 늘 불안했던 사각지대가 있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는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23-09-03

어떤 동행

오랜 시간 등장해도 기억나지 않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단역으로 등장해도 오래도록 장면이 떠나지 않는 배우가 있다. 단역은 극적으로 등장해 선명한 사건을 남기거나, 가슴을 후벼 파는 강한 대사를 던지고 사라질 때 주연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다.작년 여름, 마른장마로 지쳐 있을 때 카톡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과자 몇 조각 욕심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더 열심히 교회를 나갔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25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닿았다. SNS 속에서 사십대 중반이 된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어릴 적, 살던 동네가 전부인 양 알았던 우리는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직업으로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8명의 어른들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정 무렵에 모였다. 마음과 몸은 자라지 않고 세월의 주름만 깊이 파인 듯 지금의 우리는 예전이나 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삶의 숙제를 풀어 놓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나 하나만 행복해지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느끼는 홀가분함이 좋다고 우리는 이야기 했다. 추억의 서랍을 활짝 열고 미어터지도록 눌러 담긴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며 마주앉았다. 목 놓아 건배를 나눴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사진관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열 명이 일자로 서서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우리 해마다 찍자. 한 명 남을 때까지”경애가 말하곤 ‘제일 먼저 사라지는 친구와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친구는 누가 될까’라고 보탰다. 아직도 우리에겐 올라 설 무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 했기에 까르르 대며 웃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하루 만에 모여 25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을 약속하며 눈물 나는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아내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오늘이 고비입니다. 기도해 주세요”한 달 후 문자가 날아들었다. 경애의 남편이었다. 경애는 희귀병을 앓았는데 최근 병이 악화되어 염증이 혈관까지 퍼졌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경애의 얼굴은 벌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우리를 보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힘겹게 한 마디 건넬 때마다 산소 호흡기에 뜨거운 김이 서렸다.얼마 후 경애는 떠났다.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없이 발지도만 끼적거렸다.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뜨거움이 울컥 올라 왔다. 빈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25년이라는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못 다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반갑고 설레던 마음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친구 한 명을 보내야 했다. 김경아 작가 경애의 영정사진 옆에는 얼마 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경애는 친구들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단다. 아무리 인생이 짧아도 스무 번은 더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친구 7명은 차마 ‘친구야 잘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애는 우리의 얼굴과 함께 초행길을 떠났다. 우리는 사진으로나마 경애와 함께 저 세상으로 동행했다. 늘 앞장서서 말하기 좋아했고 우리를 대신해 남자 친구들과 과감히 싸워 주었던 경애는 먼 길에도 앞장을 섰다. 짧은 추억과 사진을 함께 안고 떠난 경애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한 명 남을 때까지 사진을 찍자던 경애는 제일 먼저 사라진 한 명이 되었다. 내년이면, 경애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명씩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손 맞잡고 찍은 사진이 점점 여백으로 채워질 때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 여백을 채워가고 있으리라.우리는 모두 엔딩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렇듯 섬뜩한 변주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영화의 막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09-03

주변에 ‘범우주적 세계’ 산재, 역설적인 ‘마음의 여유’

박진홍 부국장 반복되는 일상은 무척 따분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투털대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평범했던 주변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또다른 경이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우리 몸 안에 또 주변 곳곳에는 범우주적 세계들이 산재해 있다. 무심코 지나치고 있을뿐 모두 엄청난 세계이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긴다.과학자들은 “인체에 세포 37조개와 미생물 39조개가 있다”고 말한다. 세포 한 개 크기는 천문학적인 10-100μm다. 1μm는 100만분의 1m.너무나도 미세한, 이 각각의 세포들은 그러나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기관을 가지고 호흡과 운동, 성장 그리고 자기복제 즉 번식을 한다.인체 세포 37조개 중의 한 개에 불과한 이 세포 안에, 또다른 우주가 숨어 있는 것. 여기까지라면 현기증은 나지 않는다.하지만 39조개 각각의 세포 핵에, 상상도 하기 힘든 천문학적 분량의 유전 정보가 복사돼 있음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세포핵 이중나선구조 염색체 46개에는 사람의 성을 결정하고 골격을 만든 후 장기와 혈액을 운용하는 모든 방법이 프로그램화돼 있다. 또 뇌와 신경조직, 기질과 성격 등에 대한 유전 정보도 들어 있다.현대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35억년 전에 처음 출현한 세포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세포 결합 등 진화를 거친 끝에 현재의 유기체인 인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도킨슨은 “모든 동물은, 세포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낸 생존기계”라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도 했다.사람 역시 우리 몸 안 세포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세포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된 일종의 로봇’이라는 것.“사람의 생존과 번식 본능은 세포 유전자에 의해 조종 되며, 뇌에 의한 의식 역시 유전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이번에는 사람 혈액 적혈구에 있는, 그 숫자가 무려 60해개에 달하는 헤모글로빈의 세계로 가 보자.역시 인간의 사고로는 접근이 쉽지 않은 범우주적 나노의 영역이다.단백질 분자인 헤모글로빈 한 개는, 아미노산 574개로 구성돼 있고 다시 아미노산 한 개는 원자 수십개로 이뤄져 있다.인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수명은 120일. 매초마다 40조개가 생성되고 파괴된다.헤모글로빈도 인체 안에 있지만, 각자 살아 움직이는 독립 생명체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숙주(?)인 우리의 의식과는 무관한,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번식을 위한 남성 정자의 세계도 비슷하다.정자 길이는 40-50μm. 정자는 여성 자궁안에서 나선형으로 헤엄쳐 난자에 도달한, 단 한마리만 수정을 한다.한번 사정 때 쏟아지는 정자 수는 무려 2억-5억마리.더 놀라운 사실은, 정자 한 마리 한 마리의 세포핵에는 천문학적인 분량의 아버지 유전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것.여기에다 난자와 수정을 시도하는 정상 정자는 10%에 불과하다.나머지 기형 정자 90%는, 여성 자궁 내로 진입해 난자와의 수정을 시도하는 ‘다른 숫놈의 정자’의 경로를 방해하거나 죽이고는 산화한다.이쯤되면 리처드 도킨스 박사의 ‘인체가 우리 몸 이전에, 세포 유전자가 조종하는 살아 있는 로봇’이라는 주장에 일순 수긍이 가기도 한다.눈을 외부로 돌려보자. 그곳에도 무지막지한 규모의 우주가 있다.과거에는 단 한 개의 우주로 봤지만 최근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의 개념도 확장되고 있다.많은 천문학자들은 “은하계에 별 3천억개가 있고, 우주에는 은하계 같은 은하가 3천억개가 있다. 다시 이 세상에는 우주가 1개가 아니라, 3천억개가 있다”고 말한다.마이크로한 축소의 세계, 광대한 우주에다 억겁의 세월 앞에 사람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또 인생은 찰나와 같다.빡빡한 현실 속에서 범우주적 세계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

2023-09-03

호남 이단아들

홍석봉 대구지사장 호남과 호남인의 문제를 제기하며 호남 주류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호남 지식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전라도 출신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고 5·18에 대한 평가에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종군 위안부 문제와 간토 대학살 사건 등에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촉구하고 피해자를 돕는 일본의 양심과도 비견된다.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은식 의사와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 대표적인 인사다. 이들은 꾸준히 호남의 이탈을 꾸짖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양향자 의원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호남 각성을 촉구하는 외침이 우리 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전라도 시인 정재학은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국민에게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논객을 자처하며 통렬한 전라도 비판의 선봉에 서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 우파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광주의 정율성 추모는 반역이며 반역을 지시한 자들이 전라도 민주당”이라며 “전라도는 가엾게도 공산주의자들의 땅이 됐다”고 개탄했다.박은식은 호남통신이라는 글을 통해 잼버리 사태를 보고 호남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며 호남이 스스로 변해야 할 때라고 자아 비판했다. 그는 새만금공항부터 취소하자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김성수와 송진우를 배출한 호남이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를 뽑아주고,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도로와 공원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호남 독점을 비판하고 국민의힘 출신 신안군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거둬 들여야 한다고 단언한다.호남이 자신들이 만든 성에 갇혀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고 퇴행적인 행보를 계속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호남 지식인들의 생각이다.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이념의 벽이 나라 발전과 민주 시민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시각도 갖고 있다. 호남인들의 민주당 짝사랑이 지역에 독이 됐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정율성 논란과 원전 방류수 공방 등 정치판의 아귀다툼이 빛나는 성취를 일궈낸 한국의 자긍심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4류 정치는 낡아 빠진 이념의 틀에 갇힌 채 이전투구 중이다. 케케묵어 쉰내 나는 이념에 매달려 한국호가 방향타를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광주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며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달려갈 때 반대 방향을 택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호남 이단아들의 자기반성과 외침이 가슴을 친다. 어느 날 깨어보니, 아르헨티나의 길을 걷고 있어서는 안 된다.

2023-08-31

가을 전어

우정구 논설위원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전어라는 말이 있다. 제철에 먹는 음식이 맛도 있고 영양도 좋다는 뜻이다.청어과에 속하는 전어는 몸길이가 15∼31㎝ 크기로 동아시아 연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볼록한 배와 가로로 갈려져 나온 등지느러미가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며 주로 회, 구이, 찜, 젓갈 등으로 해먹고 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전어를 깍두기와 함께 담궈 먹는 전어깍두기도 있다.조선시대 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전어를 두고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좋아한 고기라 설명하고 제철 가격이 한 마리당 비단 한필과 맞먹는다고 했다. 또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에 상관없이 전어를 찾는다 하여 돈 전(錢)과 고기 어(魚)를 써 전어(錢魚)로 불렸다고 한다.전어는 계절적으로 가을 전어를 최고로 친다. 몸에 기름기가 많이 올라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가을 전어에 참깨가 서말 있다”는 말과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은 가을철 전어의 맛이 최고라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부터 몸속에 지방을 축적한 전어는 이때쯤 지방함유량이 평소의 3배에 달한다.해마다 한 더위가 꺾인 8월말 쯤 전국 곳곳에서 전어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삼천포, 광양, 마산, 사천, 하동 등지에서 전어축제가 열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로 소비가 움츠러들 것을 걱정했으나 예상밖으로 많은 인파가 몰려 축제를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오염수 파동 속에 기대 이상으로 축제를 잘 마친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오염수 논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마음 한쪽은 여전히 불편감에 휩싸여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31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이 침수되는 사고가 났다. 원전건물 4채와 격납용기가 손상되어 근해일대가 방사능 오염이 되었다. 그런 천재지변이 아닌 경우 원전에서는 오염수가 발생하면 ALPS(다핵종제거설비) 등의 처리과정을 거쳐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같은 방사성 물질을 배출 제한치 이내로 걸러낸다. 이때 걸러지지 않은 삼중수소에 대해서도 국제사회가 방류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방사능을 측정하는 단위를 베크렐(㏃)이라 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리터당 1만 베크렐을 방류 상한 기준으로 삼는다.일본 환경성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후 주변 바닷물을 조사한 결과,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류 다음 날인 지난 25일 오전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40㎞ 이내 11개 지점에서 바닷물을 채취해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모든 지점에서 검출 하한치인 리터당 7∼8 베크렐을 밑돈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모든 지점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검출할 수 있는 하한치를 밑돌아 인간이나 환경에 영향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것이 일본 환경성의 발표다. 그와 별도로 진행된 도쿄전력과 일본 수산청, IAEA의 조사에서도 모두 삼중수소가 기준치 이하를 나타내고 있다.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에 정치적 사활을 걸었다. 온갖 험악한 괴담으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데 진력했다. 12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오염수가 무방비로 바다에 유입되었을 때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처리와 희석과정을 거치고 IAEA가 철저히 검증까지 한다면 전혀 우려할 일이 아닌 줄을 저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그런 과학적 사실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광우병이나 사드전자파 괴담 때도 그랬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괴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야당과 좌파들을 보노라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란 말이 떠오른다. 겉으로는 가장 인간다운 척하고 있으나 속내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는 것이 수산업자들의 생계와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처럼 포장을 하지만 내막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오히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수산업자들이 폭망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비등해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야 저들이 저지른 비리가 묻히고, 당대표의 태산 같은 사법리스크도 희석되고 정부여당이 곤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여세를 휘몰아 내년 총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인 것이다.그들은 결코 방사능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준치를 넘어서 나라가 혼란에 빠져야 윤석열 정권을 뒤엎을 빌미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광우병파동 때와는 달리 민심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거듭되는 괴담에 대한 학습효과로, 민생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에 더 이상 속지 않을 만큼 국민들이 현명해진 것이다.

2023-08-31

9월이 왔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9월이 왔다. 장마는 지나갔지만 남아있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오고 경북 북부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맑은 9월의 시작은 아니지만, 천천히 달려본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계절을 노래하고 골목길 흙담 너머로 노란 해바라기들이 벙긋벙긋 웃는다. 가을이 온 것이다.8일은 백로(白露), 하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과일이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인다. 황금 들판에는 키다리 허수아비가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고 빨간 고추밭에는 고추잠자리가 짝을 찾아 날아다니고 강둑과 산기슭에 핀 하얀 구절초는 붉은 부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먼바다에서는 10호 태풍 ‘담레이’는 소멸됐지만 9호 ‘사올라’는 또 동생 몇몇을 꼬드겨 올라올 것이라며 가을장마가 예보되기도 한다.지난 30일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이다.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편한 마음으로 농민들의 두레놀이가 열리곤 했는데, 100가지 곡식 씨앗을 늘어놓고 호미도 씻어 걸고 일 잘한 머슴들을 소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머슴날’이며 ‘풋굿’도 즐긴 중원(中元) 날이다. 남아있는 폭염과 가을장마 우려에 농민들의 얼굴은 밝지 않겠지만 그래도 황금빛 벼 물결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불교계에서는 1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날로서, 정성껏 백중기도 드리고 혼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5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백중에는 달과 해와 지구가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서로의 인력이 커서 해수면이 높아지는 ‘백중사리’ 현상이 발생한다지만 동해안 바닷가에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이 백중사리보다 더 염려된다는 것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에 대한 분노이다. 해양 오염의 런던협약에 따라 삼중수소 농도를 허용치 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겠지만 벌써 해양수산물을 기피하고 거래도 격감하고 있어 정부는 오염수 유입감시와 방사능 검사를 대폭 확대하여 해양계 손상을 막을 계획이다. 그러나 ‘핵 오염수 방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위험한 일은 없다’는 태도로 여야 공방은 국민 마음을 두 동강 내고 있지만 과학적 자료와 전문가 견해도 참고해야 한다. 공기 중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적다는 처리수 농도는 더 오염된 정치문제로 이어질 듯하다.8월의 끝날, 지구에 가장 가까워진 보름달이 크고 밝게 웃으며 9월을 맞이했다. 8월 초 유둣날에 떴었고 또 월말에 떠서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이라 ‘블루문’이기도 하여 ‘슈퍼 블루문’이 된다. 저녁 7시 반경에 떠올라 3시간 후 최대 크기로 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끝난다. 다음엔 14년 후에야 볼 수 있고 토성도 달 바로 위에 나타나는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경주 첨성대와 여러 천문대에서는 ‘달 보기’ 행사도 열린다.9월에는 결실의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걱정거리도 추수하면 좋겠다. 나도 집 뒤 언덕의 대나무 숲도 정리해야겠다. 나팔꽃들이 푸른 가을을 연주하고 잎들은 하늘에 하트를 그리고 있다.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비발디의 ‘사계-가을’을 들으며 손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고 싶다.

2023-08-31

7박 9일 출장과 포항의 새로운 가능성

김은주 포항시의원 “지금 포항은 철강 중심도시에서 수소와 이차전지 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항은 지역의 중소 도시지만, 유럽의 많은 과학자께서 포항에 주목해 주십시오”지난 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EKC 2023(유럽 한국 과학컨퍼런스 2023)’ 개회식에서 본 의원이 전했던 이야기는 지난 8월 11일부터 7박 9일 일정의 프랑스·독일 출장에서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철강중심 도시 포항이 새로운 산업으로 재편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지난 50여 년 포항시가 철강산업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산업 구조 패러다임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이차전지 특화 단지 선정, 수소 클러스터 예타 통과 소식은 포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이번 유럽 출장은 모처럼 들려온 반가운 소식과 함께 포항시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를 벤치마킹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무엇보다 이번 출장 기간 중 세 곳의 연구소 방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관계자들의 환대는 국경을 뛰어넘는 따뜻함 그 자체였다. 첫 번째 방문한 독일 율리히 연구센터의 수소경제연구소인 헬름호르츠 클러스터에서는 탄광 지역이었던 율리히 지역이 수소 시범지역으로 변화된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헬름호르츠 클러스터 관계자는 포항시에서 조성중인 수소 클러스터 사업에서 “연구 중심에서 탈피해 기업의 의견을 많이 수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뮌헨에 있는 막스 플랑크 재단본부(MPG) 방문과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의 MOU 체결에서는 포항시 전지 보국의 든든한 파트너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기관의 총책임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막스 플랑크 재단 본부의 경우 여성 연구자의 경우 남편과 가족들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은 부러운 대목이었다. 포항시에서도 글로벌 첨단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 성평등한 기업문화를 놓치지 말고 벤치마킹하길 바라본다.이번 출장에서는 포스텍과 포항테크노파크의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만난 포항분들이라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그중 한 분이 전한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포항은 훌륭한 RD(연구개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립대학과 민간 연구소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왔다. 포항시가 글로벌 과학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국가나 경북도의 전폭적인 지원이 중요한 부분이라 충분히 공감되었다.7박 9일이라는 길지 않은 출장에서 꼭 새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바로 헬름호르츠 연구소 관계자가 수소 시범 사업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open information(정보공개)’과 ‘communication(소통)’을 강조한 점이다.포항시도 앞으로 지역민들에게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소통의 과정을 거치기 바란다.끝으로 독일 프라운호퍼 관계자들에게 “포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첨단도시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첨단과학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전한 말이 이뤄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좋은 예감이 틀리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수고에 긍정적 에너지를 한번 힘차게 불어 넣어본다.

2023-08-30

대구치맥페스티벌의 진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30일부터 9월 3일까지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리는 ‘2023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대구를 치맥열풍 속에 몰아넣고 있다. 매년 7월 중순, 무더위 속에 열리던 축제가 두류운동장 공사 때문에 올해는 40일 가량 늦춰졌다.대구치맥페스티벌은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치킨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2013년 처음 열렸다. 햇수로 11년째다. 2020년과 2021년엔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열리고 있다.대구치맥페스티벌은 첫해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무더위로 소문난 대구에서 치맥페스티벌을 연다는 소식에 치킨과 맥주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27만 명이 현장을 찾았다.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어느덧 외국인 등 관람객 100만 명이 넘는 한국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 때마침 일기 시작한 치맥 열풍에 편승, 단박에 전국 축제로 등극했다.대구는 ‘치킨 성지’로 불린다. 교촌치킨, 땅땅치킨, 별별치킨, 종국이두마리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 대구에서 출발한 유명 브랜드가 많다. 치킨 문화의 산실이자 원조다. 여기에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등 치킨 관련 외식산업과 폭염이 축제 성공을 이끌었다. 여름밤 치킨과 함께 마시는 맥주는 궁합이 절묘하게 맞았다. 2015년부터는 대구치맥산업협회를 발족, 전문화를 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현장 생맥주 판매, 축제 캐릭터 개발, 이색 식음공간, 치맥비치존 운영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마련됐다. 올해는 체험·몰입형 킬러 콘텐츠가 곳곳에 배치, 세련미를 더했다. 치맥은 단순한 음주문화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문화의 중심이 됐다. 대구가 선도하는 치킨 문화의 진화는 계속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30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난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처서(處暑). 여름을 지나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예년에는 늘 그랬다. 처서를 지나 백로가 코앞인데 기온은 아직 고공행진이다. 2차 장마 소리도 들린다.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한 달이었다.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가을은 더디 오는가 싶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 부르더니 이제는 기후재난이라 적는다고 한다.폭염과 홍수, 폭우와 가뭄, 폭풍과 한파, 산불과 허리케인 등 기후가 초래하는 이상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올해 7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국립공원에서 섭씨 53도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란은 8월 초에 50도를 넘으면서 임시휴일을 선포하였다. 한겨울이어야 할 남반구 아르헨티나도 여름처럼 더웠다는 게 아닌가.기후가 재난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항공우주국 NASA는 인간이 주도한 지구온난화가 오래 지속된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가 자연현상 같지만, 실은 사람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탄소방출에 따른 대기오염, 에너지 과다사용에 따른 환경훼손 등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기후위기의 여파는 날씨와 기온에 머물지 않는다. 식품가격 상승이 불러오는 인플레이션을 푸드플레이션(Food flation)이라 부르는데 그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기후변화라는 게 아닌가.식량농업기구(FAO) 쌀가격지수는 7월에 전월대비 2.8% 올라 129.7을 기록하여 2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쌀 세계수출량 40%를 맡았던 인도가 최악의 가뭄으로 수출제한 조치에 들어갔다.극심한 고온 기후는 인류에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열질환의 가능성은 잼버리야영장에서 이미 목격하였다. 실제로 더워서 사망에 이르는 숫자가 홍수나 산불에서보다 많다고 한다. 일사병과 말라리아 등 심각한 질환에 인류는 다시 노출될 판이다.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하와이의 마우이섬은 올여름 엄청난 산불로 관광, 여행, 레저산업은 생각도 못했다. 오랜 가뭄과 고온다습한 대기에 지나가던 허리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빚은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그런 규모의 복합적인 기후재난이 다른 장소에서 재발할 확률은 점점 높아져 간다고 한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재난에도 국가와 지방자치제 차원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살피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미 발생한 자연재해를 맞아 대처하는 수준의 경각심으로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기후재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울 터이다.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해야 하고 자연재해를 맞아도 안전한 제반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건축관련 규정과 치수관련 시스템 등을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기후관련 재난에 국민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는 없다. 주변에 산재한 위험에 경계를 늦출 수 없으며 물과 공기 등 자연자원의 이용과 소비에 예민한 시민의식을 발동해야 한다.가을은 오고야 말겠지만, 걱정은 깊어만 간다.

2023-08-30

녹슨 가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나이가 드니까 뭐든 편한 게 좋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까탈스러운 것이 없어지고 유연해졌다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생각하면 매사 좀 귀찮아졌을 수도 있겠다. 사람과의 사이도 그렇다. 무던해졌다. 한창 혈기왕성할 땐 규칙어기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내 기준의 상식에서 조금이라도 거슬린다 싶으면 가차없이 따지던 성깔도 엔간했다. 그 때문에 바른 말이랍시고 해서 고초를 겪은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젠 느긋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만다. 어머 내가 웬일이지? 스스로 느끼며 놀라기도 한다. 물론 절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지금도 있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어쩌랴 싶어할 뿐이다.옷입음새도 그렇다. 키도 작고 균형 없는 몸매에 어울리는 옷이 있으랴만 편한 옷을 좋아하는 내 취향까지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한 TPO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나름 노력해왔다. 목적에 맞게 색상과 모양까지 신경써 입었다. 애쓰고 돈도 들였다.그러나 이젠 더 이상 옷에 대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신세가 되자 내 취향껏 편안함을 추구하고 즐긴다. 집에서는 더하다. 언젠가부터 목덜미에 뭔가 거치적거리는 옷이 불편했다. 되도록 목 주위가 휑하니 드러나는 옷만 찾았다. 꺼내입는 옷들이 맨날 그 옷이 그 옷이다. 티셔츠들이 많아 아무거나 꺼내 입다가도 목이 좀 죈다 싶으면 곧장 다시 벗게 된다. 이 많은 티셔츠를 입지도 않고 버려야 하나. 새로 사지 않아도 입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궁리했다. 목덜미 부분을 가위로 오려내어 넓힐까. 박음질하지 않은 것을 멋으로 만든 옷도 있지 않은가. 정 안되면 감침질을 해서라도 입을 수 없을까 생각했다. 하고많은 시간도 있겠다. 한 번 시도해보자. 즐겨입었던 면티셔츠를 몇 개 꺼냈다. 둥근 목테두리를 전부 오려내어서 손바느질로 감치기엔 좀 힘들려나 싶었다. 만지작거린 끝에 앞섶 부분을 세모 모양으로 깊게 오려내고 그 부분만 감침질하면 수월하겠다는 궁리가 섰다.까짓 하다가 안되면 말 일. 뭐 시도해보자 싶어 반짇고리를 찾았다. 예전에 애들이 어릴 땐 늘 썼고, 또 남편의 흰 셔츠 단추를 달거나 바짓단을 공그르기하면서 자주 사용하던 반짇고리였다. 그러나 최근엔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열어보니 색색가지 실, 아이들 돌이며 백일날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흰 실꾸리 두 개, 올망졸망 여러 가지 단추통도 뚜껑이 열린 채로 있었다.크고작은 바늘이 꽂힌 동그란 바늘꽂이. 그 가운데 유난히 커다랗고 녹슨 가위가 자리잡고 있다. 여러 자질구레한 바느질공구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큰 무쇠가위는 엄마, 돌아가신 엄마의 가위였다. 요즘엔 스테인리스 가위에 손잡이 부분도 플라스틱으로 예쁘고도 사용하기 편한 가위들이 얼마나 흔한가. 그와는 달리 무겁고 불그스레 녹까지 슬어 볼품없는 엄마의 가위. 언제부터 나의 반짇고리에 들어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엄마의 가위. 내 열 살 무렵부터 기울어진 가세 탓에 삯바느질로 가정을 지탱했던 엄마가 무겁게 무겁게 썼을 가위였다. 엄마의 온기가 밴 가위는 녹슬어도 썩 잘 들었다. 나는 이 가위만큼이라도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딸이었을까.

2023-08-30

자연의 합주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동동거리면서 ‘동동팔월’이 지나가고 있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에 태풍까지 들이닥치면서 많은 피해와 상처를 남겼었는데, 가을의 초입에 적잖은 비와 노염이 이어지니 여전히 동동거리는 가슴을 재울 수 없는 듯하다. 거기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여야의 대립과 업계의 불안이 가중되어 갈수록 긴장과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답답하고 동동거리는 가슴으로 8월을 보내고 가을 마중을 해야 하는 걸까.복잡한 곡절의 세상사와는 아랑곳없이 이 맘 때가 되면 풀숲이나 수풀에는 가을의 전령사들이 앞다투어 목청을 돋우고 있다. 해뜨기 전부터 이른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한낮의 들판을 지나 저녁답의 들길과 밤중의 산기슭 언저리에까지, 단조롭거나 오묘한 화음으로 소리의 여울처첨 쩌렁쩌렁 흐르고 있다. 필설로 표현하기도 음계를 분간하기조차도 쉽질 않지만, 풀벌레 특유의 투명한 발성으로 자분자분 스며드는 음조는 어쩌면 지난 여름날의 습기를 말려내고 우수를 떨쳐내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처서 무렵 풀숲에는/왁자한 소리잔치//찌르륵 찌륵찌륵 또르르 또륵또륵 철썩 처얼썩 쪼르륵 쪼륵쪼륵 돌돌돌 도르르륵 차랑차랑 낭창낭창 괄괄하고 걸걸하니, 귀뚜리인가 여치인가 철써기인가 방울벌레인가 풀종다리인가 질라래비인가, 풀피리 소리 같고 양금을 두드리는 듯 만도린을 켜는 듯 파람을 부는 듯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일제히 울리고 퍼지고 튀어나고 번뜩이고 스쳐가고 파고들고 젖어 들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햇볕을 머금고 바람이 쓰다듬어 달빛과 주고받고 별빛이 내려앉은 맑고 또렷하고 구슬프고 처량한 듯 흐느끼다가 와글와글 자지러지는 풀벌레들의 목청~//악보도 지휘자도 없는/귀맛 좋은 합주곡’ -拙시조 ‘자연의 합주곡’전문이처럼 자연의 선율은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꾸밈없이 투박한 듯 순수하며 느닷없이 들쑥날쑥하기고 하지만,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대부분 별 것 아닌 것 같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조차 특유의 가락과 소리가 어울림조의 안단테 멜로디로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치유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하고 즐겨 찾게 되는 걸까?최근 공중파 TV프로그램에 풀잎, 나뭇잎이 악기가 되는 ‘풀피리’를 평생의 악기로 여기며 연주와 보급활동을 펼치는 ‘풀깨비’ 선생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일명 ‘풀피리 부는 도깨비-풀깨비’로 알려진 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요즘, 풀피리로 자연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12년 전 연습을 시작하여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풀피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풀피리를 통해 자연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이기도 한 풀피리(草笛)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수풀이나 언덕에서 풀피리를 불고 들으면서 풀벌레들의 합창과 하모니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환상적인 ‘자연의 합주’가 되지 않을까?

2023-08-30

콘크리트 굴

윤명희 수필가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비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찾아본다. 매번 대는 곳보다 먼 곳에 주차할 때면 벽에 새겨진 번호를 찍어두는데 오늘은 그마저 없다.짐은 놔두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차 키의 버튼을 눌러본다. 삑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내 차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하다. 다시 소리를 찾아 빠른 걸음을 걷는다. 지하가 이렇게도 넓었던가. 이젠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멈춰진 시간 앞에 섰다. 나는 길 잃은 개미가 되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옥죄어 온다.다시 한 층을 올라오다보니 차가 오르내리는 출입구가 보인다. 한 낮의 햇살이 입구를 막고 있다. 나는 지하 전등 불빛 아래 서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경사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햇살너머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다. 주전자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덮쳤다. 어지럽다.어릴 적, 동네 가운데 배꼽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치마를 폴싹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야 할 사내아이들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들은 담벼락 아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고무줄을 끊는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놀이가 시들해졌다. 막대기로 숭숭 솟아난 구멍을 헤집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디밀었다.개미들이 튀밥 터져 나오듯이 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하얀 알을 안고 나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막대기로 개미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의 눈도 따라 들어갔다. 땅 속에 있는 사거리가 부서지고 내리막길이 무너졌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개미들이 허겁지겁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한 아이가 물주전자를 들고 왔다. 도망가는 개미들의 머리 위로 폭포수를 퍼부었다. 허우적거리는 개미의 모습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굴속으로 빠르게 물길이 쏠렸다. 물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 어느 순간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우리의 발아래를 향해 질펀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도망가는 개미를 주시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도망가면 될 텐데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싶더니 또 저쪽으로 헤매고 있었다. 나라면 물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 달아날 텐데,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는 개미의 아둔함에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나는 나무막대를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그 개미 가까이에 댔다. 개미가 황급히 나무막대를 타고 올라갔다. 뒤따라 또 한 마리가 올라갔다. 나무막대를 조심스레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목숨을 손아귀에 쥔 위대한 조물주와 같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듯이 개미 또한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아이들이 주전자로 물을 부어 홍수가 났던 개미굴처럼 지난해 장마에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난리가 난 일이 있다. 개미가 허우적거렸던 것처럼 나는 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에 갇힌 이들을 기억한다. 물이 출렁거리는 지하주차장의 뉴스를 우리는 자연재난에 이어 인재라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은 철부지 아이들처럼 장난을 칠 리가 없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일이 자연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콘크리트 굴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2023-08-30

병진일주(丙辰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세 번째는 병진(丙辰)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불길이 맹렬하게 타는 모습이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는 물을 머금은 옥토(沃土)다. 동물로는 붉은 용이다.병진일주는 물상으로 비옥한 대지 위에 떠있는 태양이 밝게 빛나는 모습이다. 거기에는 물이 있어 풀과 꽃들이 피는 생명력이 넘치는 땅이다. 마치 봄철 모내기하는 풍경이다. 만물을 생육하는 역할을 하고, 길러내고 치유하는 부성애나 모성애를 가지고 양육을 잘하는 일주다.예의와 신의가 잘 조화되어 있다. 예의를 중요시하며, 남을 존경하면서도 자기를 잘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다. 명랑쾌할하고 낙천적이며 불같은 성정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도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데 투명하고 성실 근면한 모습을 보이며 자상하고 친절하다. 타고난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 그것을 잘 단련시킬 수 있으므로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의 직업에도 강점을 보인다.병진일주의 태양은 식물이 잘 자라는 땅을 만나 아낌없이 키우는 것이 제 역할이다. 또한 묵묵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어 잘 베풀고, 어려운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대체적으로 주변의 평이 좋은 편이다.이런 인물로는 춘추시대 초나라에 손숙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쌍두사(雙頭蛇)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손숙오는 쌍두사를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밥도 먹지 않고 근심하자,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손숙오가 울면서 대답했다. “오늘 제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예부터 이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했으니 저는 곧 죽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물었다. “그 뱀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러자 손숙오가 대답했다. “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이 말은 들은 어머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내가 듣기로 남모르게 덕을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고,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한다.”여기서 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고사가 나왔다. 훗날 손숙오는 초장왕의 책사가 되었다. 용기와 지혜로 깊은 사려를 지녔던 인물이었다. 둑을 쌓고 많은 저수지와 개간지를 만들어 쌀 생산력을 증가시켜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힘썼다. 그는 맡은 일에 부지런했으며, 항상 청빈한 삶을 살았다.병진일주 여성은 기품이 있고, 외모가 수려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태어나면 남편과는 인연이 약해질 수 있다. 몸도 병약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남자는 자존심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잔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믿어줄 배우자를 선호하며,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편이다. 다른 이성에 눈을 돌리는 단점이 있다.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으니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편안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병진일주의 진(辰)은 동물로는 용이다. 변화무쌍한 용(龍)의 특성상 변덕이 심할 수도 있다. 용은 안다. 자신이 이제는 승천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해 왔다. 지금은 태양이 있으므로 비가 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병진은 아주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고독하기도 하다. 스스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승천할 기회는 온다는 것을.영국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1719년에 발표한 해양모험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고독과 기다림의 상징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체류한 기간이 무려 28년 2개월 19일이다.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탈출하는 날까지의 기간이다.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생존하면서 때가 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그 당시 1688년에는 영국이 군주제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들을 폐지시킨 명예혁명 정신은 계몽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다. 유럽인들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바다로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이며 모험이지만, 곧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대니얼 디포는 찰스 2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가 가톨릭을 신봉하자, 그를 폐위하자는 몬머스의 반란(1685)에 참가했으나 참패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추방되어 3년 간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윌리엄 3세가 이끄는 개신교 세력이 제임스 2세를 몰아내는데 성공을 하는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자, 디포는 영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했으나,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된다. 그러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다.알렉산더 셀커크라는 영국인 선원이 지금 칠레의 영으로 되어 있는 마사티에라는 태평양의 한 섬에 조난 되어 4년 간 생존한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자기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집필했다. 출간되자 크게 성공을 거둔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 자기 일을 만들어 거기에 몰두하면서 외로움과 싸우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모습은 캘빈주의를 따르는 철두철미한 장로교 신자의 입장에서 묘사된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시각이다.작가는 ‘우리가 소유하지 못해 느끼는 불평은 모두 우리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한다. 무인도에서는 오직 생존에 몰두하기에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항상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바쁜 와중에도 그런 시선을 피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인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력을 방해하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딴 곳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알고,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해볼 만한 시도이다.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를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3-08-30

상식 무너지는 사회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달랐다. 사흘 전만 해도 종일토록 그늘인 곳인데, 8월 첫 월요일 낮에 그늘이 없어졌다. 저절로 하늘을 살폈다.그랬다. 지난 금요일과 주말 사이 당국에서 공원 남쪽의 나뭇가지들을 쳐낸 것이다. 내 상식이 무너졌다. 뙤약볕 땅 달구는 삼복더위 한여름에 사람들과 새들, 곤충들에게 쉼터를 내주던 고마운 괴목(槐木) 가지를 무참히 잘라낸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기왕이면 여러 생명이 나무 그늘에서 무더운 여름을 쉬게 하고 난 뒤, 늦가을쯤 가지치기하면 어디가 덧이라도 날까.물론, 민원 등 당국은 어떤 연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처사는 상식(常識)에 어긋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공시설 설치, 유지보수, 거리 청소 같은 현장에서 비상식적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좋게 본다면 일반인과 전문가 혹은 당국의 관점 차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보는 시민의 눈엔 상식 무너지는 일들이다.이곳에선 가로수 가지치기를 4~5월에 많이 해왔다. 새 봄빛에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 가지들을 무참히 잘라냈다. 입던 새 초록 옷을 모두 벗김 당하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좋은 봄날을 신음으로 지새는 가로수의 고통을 눈 있는 시민들은 다 보았으리라. 자연에 가하는 폭력적 광경들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자연은 단순해 보여도, 안엔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는 상식의 실존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와 가해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 자연은 묵묵히 자기 치유를 해낸다. 때문에, 몸통만 흉물스레 남은 가로수는 다시 새 가지를 뻗어 낸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을 땐, 어김없이 반응하는 상식적 존재 또한 자연이다.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멸적 자연현상이 그 증거다.‘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 파행에다 태풍 카눈의 내습 예보에 엉망일 때, 군사작전 같은 발 빠른 대처로 잘 마무리된 평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지만, 티브이 화면에 비친 상암 월드컵 경기장 K-팝 공연에 참석한 각국 잼버리 대원들의 해맑은 웃음은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었다.이번 잼버리 파행 원인은 지자체의 동상이몽, 공무원의 무책임 등 여럿을 꼽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속엔 상식을 버린 당국자들이 있다 싶다. 상식이 무엇인가. 만인이 같게 보는 양식 곧, 기본과 같은 일일 게다. 삼복염천에 공원 나뭇가지를 치는 몰상식처럼, 자연의 상식을 버린 결과가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으로 나타난 것이리라.근래 우리 사회는 일부 세력이, ‘민주화’란 탈을 쓰고 상식 무너트리기를 암약해 왔다고 본다. 상식 무너진 곳은 전체주의 체제다. 법, 질서, 선거, 여론, 안보, 경제가 민주화란 미명으로 선동, 기만, 술수, 훼손, 조작의 도구가 된 현실 곧, 상식 무너지는 삶을 국민은 겪었다. 전체주의 망령이 어른거렸다. 민주화를 가장한 전체주의 추구 세력의 겉발림에 다시는 속지 않도록, 국민이 늘 깨어 행동하며 살아내야 할 때다.

2023-08-29

다시,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학기 ‘젠더문화론’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목적은 ‘페미니즘’을 남성·여성의 이항 대립에서 해석하지 않고, 일상에 퍼져 있는 혐오와 위계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이론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전장연)’시위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학생은 시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으며, 수업 중간에 수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자체 휴강을 한 학생도 있었다. 익숙한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수 학생은 끝까지 수업을 들으며 ‘일상의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에 학생들이 실제로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지난 대선의 쟁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정면에 내세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반페미니즘은 2021년 ‘국민의 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의 당선에서 시작되었다.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건 이준석 후보의 반페미니즘 전략에 이른바 ‘이대남’이 결집하며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나 공유되던 시각이 공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 이준석 전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비판하며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는 여성 혹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이 특권(?)을 갖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한다.정치권의 반페미니즘 기조를 환기한 이유는 최근 서울 시내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맥락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 좁히고 인권 보호를 단지 법의 권위에 기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은 법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인권 보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두 번째는 신림동 성폭행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3년 신림역 성폭행 사건은 대표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이다.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정신병을 문제 삼지만 문제의 핵심은 여성을 특정해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잠재적 가해자’로 남성을 지목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앞선 칼럼에도 썼듯 장갑차를 시내에 배치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공권력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20∼30대 남성 청년들이 가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타인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3-08-29

배달했던 시인

산문집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를 낸 지 1년이 됐다. 책과 관련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크고 작은 서점들에서 낭독회를 했다. 책은 우수출판콘텐츠, 문학나눔 도서, 오디오북 지원 사업에 잇따라 선정됐다.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제목 그대로 대학교 시간강사가 배달 라이더로 ‘투잡’ 하는 얘기다. 자기연민이나 과도한 페이소스 대신 유쾌함과 활달함, 성실한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군불 냄새 같은 걸 담고 싶었다. 다행히 독자들이 그걸 읽어주셨다. 감동적이라고, 위로 받았다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다고 말해주는 분들 덕분에 힘을 얻었다.“이 일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책에 썼다. 생활에 위기가 닥친 2021년, 글을 더 쓰거나 강의를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땐 몸으로 하는 정직한 노동이 필요했다. 인생에 그런 시기가 있다. 복잡함보다 단순함으로 기울어야 하는 때, 머리 쓰기보다 몸을 써야 하는 때, 아무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때. 그때 내가 선택한 게 배달 라이더였다.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그 일로 나는 나를 지켰다. 문학도, 대학 강의도, 낚시와 여행, 음악회 관람 같은 취미도, 당당한 자존감도 다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살이를 배우고, 길 위에서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보람도 맛봤다. 큰돈은 아니지만 경제적 소득은 물론이고, 소득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들을 보너스로 챙겼다. 그렇게 캄캄한 한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다.사람들이 묻는다. “요즘도 배달하세요?”라고. 안 한다. 책을 내고 나서 조금씩 빈도가 줄더니 이제는 완전히 그만 뒀다. 스쿠터는 장보러 갈 때나 탄다. 글 쓰는 지면이 더 생기고, 강의 시수가 늘고, 도서관과 서점에서 강연하는 등 배달을 대체할 돈벌이가 마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달 라이더의 삶을 충분히 살아냈고, 책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시절을 단정하게 정리한 까닭이다. ‘나’를 지켜 다시 ‘나’로 돌아온 것이다.사람들은 나를 ‘배달하는 시인’으로 부른다. ‘배달’에 찍힌 방점을 ‘시인’으로 옮겨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배달이 아니라 시여야 한다. 나는 시인이다. 배달을 하면 배달하는 시인이고, 운동을 하면 운동하는 시인이다. 때로는 요리하는 시인, 노래하는 시인이다. 나중엔 밸리댄스 추는 시인, 낙타 타고 사막을 건너는 시인, 화성 탐사하는 시인일 수도 있다. 무얼 하느냐가 아니라 무얼 쓰느냐가 중요한 게 나란 사람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되고 싶지 않다. 최대한 많은 삶을 살고 싶다. 내게 세상은 다채로운 경험들로 가득한 무한우주다.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배달하는 시인’ 얘기를 들려달라고 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제는 삶의 다음 혹은 다른 단계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배달 라이더는 누구나 하는 부업으로 유행하지만 보편적 인식에선 아직도 혀를 차며 연민하는 데가 있다. 가난 때문에 문학을 내려두고 육체노동을 하는 시인이라는 서사는 책을 쓰면서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전직이 아닌 현직 시인이고, 얼마나 벌어야 가난이 아닌지는 모르지만, 가난하지도 않다.중고 스쿠터를 장만해서 배달통을 달아야 했던 2년 전에 비해 지금 형편은 많이 낫다. 그럼에도 힘든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힘든 내색은 하지 않는다. 배달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일을 계속 하면 사람들은 내 시보다 생활을, 생활을 위한 노동을, 노동현장에서의 땀을 먼저 읽기 때문이다. 시에서도 구체적 현실의 핍진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시는 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을 그린다. 현실 너머에서 현실을 꿈꾸듯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린다. 내 시는 세계보다 아름답다.여름방학 동안 꽤 여러 편의 시를 썼다. 학술논문도 한 편 썼다. 도서관과 책방에서 대중 강연도 했다. 그러면서 잘 먹고 잘 놀았다. 전세사기 당한 것도 현명하게 대처해 잘 해결되는 중이고, 차를 바꿨고, 2학기에는 대학교 한 곳에 더 강의를 나간다. 나는 나를 지켰다. 배달 스쿠터 덕분에. 고맙다! 배달했던 시인의 뜨거운 작별 인사다.

2023-08-29

방 한 칸의 고독

월급날 오전, 월급 명세서가 이메일로 날아오면 곧장 계산기를 두드린다. 월급에서 가장 큰 부분은 월세로 나가고 다음은 고정 생활비와 지난달의 각종 경조사비 또는 기타 비용이 빠져 나간다. 마지막으론 월에 정해둔 일정 금액을 저축에 넣는다. 이 모든 게 단 이십 분 만에 빠르게 이어진다. 남은 금액으로 또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니, 조금 허무하다.전에 살던 방의 계약이 만료되고 나는 모아둔 돈으로 조금 더 큰 집이나 조금 더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도 7평 남짓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달라지는 것이라곤 방의 컨디션이 깨끗한지 또는 창문이 있는지 없는지, 햇빛은 얼마만큼 드는지 정도의 차이일 뿐. 아직까지도 머나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생활해야 한다.최근 유튜브에서 청년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통계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청년 고독사는 약 1100명, 한 해 평균 200명 정도다. 계속 되는 취업난과 경제적 빈곤이 원인으로 관계 단절과 사회적인 죄책감이 고립감으로 이어져 고독사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독사를 택한 청년들은 노력해도 희망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고 어떠한 기대도 없이 현실을 포기하고 만다. 도와줄 곳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는 한 청년의 말은 머리를 멍하게 했다.희망조차 꿈꿀 수 없게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현실적인 벽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0원으로 하루를 사는 ‘무지출 챌린지’ 또는 오픈 채팅방을 통해 서로의 절약을 독촉하는 ‘거지방’의 유행이 돌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소비자 물가 탓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의 생활이 급격히 위태로워진 탓이다.졸업 이후에도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는 126만명.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의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는 2020만7000개로 1년 전보다 45만7000개 증가했으나 20대 연령층의 일자리는 6만1000개가 감소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이 제시한 20대 고용률 또한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취업을 하면 금전적인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온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5년 동안 약 9개월 정도 일을 쉬었을 뿐 아르바이트, 취업사관학교, 인턴 등 여러 군데를 거치며 현재 작은 중소기업에서 원하던 직무의 정직원이 되었다. 젊은 날의 노력과 시간을 담아 지금의 내가 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방 한 칸을 못 벗어나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실에서 타협해야 하는 게 아직까지도 많기 때문이다. 넓고 큰 집, 여유롭게 갖추고 사는 살림살이, 여러 값진 경험과 물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이후의 삶 등을 위해 청춘의 시절에서 계속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곧 원룸의 문을 열어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방 한 칸짜리의 크기에서 강요되는 고립과 고독의 벽은 너무나 높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에 괴로운데 아무도 그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오늘도 출근 버스를 급히 오른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 30분이 넘는 거리를 서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함과 운이 따라 의자에 앉아갈 수 있다면 모자란 잠을 자거나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만원 버스의 광경을 모른 척 눈감을 수도 있다.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달라질 정도로 출근길 버스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면서도, 또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쉽게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원하는 직종의 업무를 시작 하게 되어 좋은 성과가 나면 기쁘고 뿌듯하지만, 때론 집에 들어와 방 한 칸에 앉아 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밤이 저물고 또다시 아침, 입을 앙다물고 힘없이 버스에 실려 가는 이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위해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이 버스 안에서 나만 이렇게 고립된 것일까? 생각하며 창가에 비친 나를 마주해 본다. 불투명한 유리창 탓에 이목구비가 잘 보이진 않아 나의 눈은 젊음으로 빛나고 있는지 생각하다보면 정말이지 더 미궁에 빠지고 만다.

2023-08-29

윤경희 청송군수의 ‘발상의 전환’

심충택 논설위원 올 추석에는 소비자들이 ‘꼭지달린 청송사과’를 맛볼 수 있게 됐다.청송군은 최근 국내 사과계통출하 조직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올가을부터는 꼭지를 자르지 않고 청송사과를 출하하기로 했다.청송사과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도 최고 명품으로 대접받으며, 이제 국내외 농산품 중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다.가락동 시장에 사과를 직접 출하하는 한 농민(청송군 부남면 대전동)은 “매년 첫 경매에서 청송사과 가격이 가장 높으니까 사과가격도 청송사과를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청송사과의 맛과 품질이 전국적으로 뛰어나다는 방증이다.대부분 사과농가들은 ‘꼭지없는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인다. 사과를 따서 상자에 바로 담지 못하고 과수원에 언덕처럼 쌓아둔 후, 많은 일손을 동원해 꼭지를 하나하나 따야 한다. 청송군에서만 사과 꼭지를 자르는데 들어가는 인건비가 한해 86억원에 이른다. 사과꼭지를 그대로 둘 경우 신선도도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생산자·구매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그동안 농가에서는 관행적으로 사과꼭지를 따는 힘든 작업을 반복했던 것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지난 21일 경북매일신문에 쓴 칼럼에서 “꼭지달린 청송사과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과 공판장, 대형유통업체에도 협조를 구했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볼 참이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친숙했던 꼭지없는 사과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단체장의 고민이 읽혀지는 글이다.윤 군수는 “첫걸음은 가장 어렵지만, 반대로 제일 용감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꼭지달린 청송사과의 긍정적 영향력을 전국의 사과유통시장 흐름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청송군 3선 단체장인 윤 군수의 ‘발상의 전환’은 여러 차례 주목을 받아왔다.윤 군수는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청송교도소(경북북부 제2교도소)를 방문한 법무부장관에게 여성교도소 청송유치를 제안했다. 법무연수원 청송캠퍼스와 교정아파트 건립이 전제된 제안이었다.청송군은 그전에 전국 어느 교도소도 거부했던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 코로나 확진자’들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물론 주민의사를 반영한 조치였다.윤 군수는 올 1월부터는 조례를 제정해 주왕산 등 관광지를 비롯해 군내 8개 읍면을 정기적으로 다니는 농어촌버스를 전면 무료 운행하는 놀라운 조치를 발표했다. 청송군 버스는 연령이나 소득수준, 주소지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인구소멸을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이지만,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단체장의 역량이 돋보인다.해외여행을 가보면 대부분 사과가 꼭지 달린 채로 유통된다. 일본은 사과꼭지를 솜으로 보호하며, 수박이나 멜론처럼 꼭지가 없으면 불량품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만 유독 꼭지없는 사과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민선단체장에겐 위기일 수도 있는 새로운 길을 뚝심 있게 개척하는 청송군수의 모험적인 혁신이 청송사과의 국내·외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9

스파이더 부츠

우정구 논설위원 지뢰는 일정구역 땅에 파묻어 놓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나 대상물을 살상 또는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폭발하는 지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중국에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때 보편화됐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대전차 무기로까지 활용도가 더 커졌다.지금의 지뢰처럼 폭발력이 강하지는 않으나 적군이 밟으면 피해를 입는 무기는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로마시대에 사용된 릴리아는 땅에 깔대기 모양의 구멍을 파고 그 가운데 날카로운 말뚝 하나를 박아둔 무기였다. 중국 전국시대에도 마름쇠, 귀전이란 이름으로 유사한 무기가 개발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파진포라는 지뢰가 있었다. 가마솥 크기만한 대형지뢰로 땅에 묻어두고 적이 건드리면 폭발하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위력의 무기였다.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 곤혹스런 문제로 지뢰를 손꼽는다. 전쟁 후 러시아가 매설한 지뢰밭 규모가 25만㎢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뢰지대로 생긴 것이다.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작년 러시아 침공 후 지뢰로 팔다리가 절단된 우크라이나군 수가 최대 5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뢰 제거작업에 풍부한 경험과 기술 등을 가진 한국의 지원을 수차례 요청한 바도 있다.스파이더 부츠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뢰 폭발로부터 자국군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신발이다. 신발 밑창에 다리 4개를 달아 군인의 발이 지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했다. 이 신발을 착용하면 발이나 다리가 절단되는 치명상은 피할 수 있다. 다만 한 켤레 비용(한화 53만원)이 너무 비싸 모금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전쟁의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