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21대 국회 후반기 2년 동안 정부 여당은 거대 야당에 질질 끌려가며 여소야대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여야는 지난 28일 정국의 뜨거운 감자인 ‘채상병 특검법’을 표 대결 끝에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이 많은 민주유공자법 등 5개 쟁점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4개 법안을 통과 하루 만에 거부, 폐기시켰다. 14번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국민연금 개혁안도 차기 국회로 떠넘겼다.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21대 국회는 2만5830건의 법안을 발의, 이 중 36.6%인 9454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여야가 사실상 합의했거나,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들까지 줄줄이 밀려났다.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법과 당 대표 방탄법만 반짝였다. 정쟁으로 날을 샜다.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민에 대한 신의 배반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바닥이다. 불신받는 대통령의 현주소다.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와 몽니도 한몫했다. 민주당의 ‘채상병 특검’ 재의결도 윤 대통령 불신에서 기인했다. 젊은 병사의 희생 원인을 밝히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는 것이 우선인데도 본말이 전도됐다. 야당은 ‘대통령 격노’만 부각시켜 윤석열 깎아내리기에 올인이다.
여야 간의 신의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정치판의 협치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장기화하고 있는 의정갈등도 신의 상실이 그 근저에 있다. 정부와 의사집단은 서로 불신하고 있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불신만 쌓여간다.
30일 문을 연 22대 국회도 21대 국회와 판박이가 될 공산이 커졌다. 정치판엔 암운만 가득 드리워져 있다. 여야 무한대치 정국 속에 입법폭주와 대통령 거부권이 맞부딪히는 충돌 사례는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특검법 재발의를 공언했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여야 충돌이 재연될 전망이다.
진(秦)나라의 재상 상앙(商鞅)은 큰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약속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사성어 이목지신(移木之信)이 나온 배경이다.
상앙은 법을 어긴 태자의 대부를 처형하고 태사를 형벌에 처했다. 이후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도적이 없어졌다. 백성의 살림은 풍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상앙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은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이 됐다.
신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개인 간은 물론 기업과 기업 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만 원만한 관계가 이뤄진다. 이목지신은 위정자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22대 국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으려나. 통렬한 자기반성과 쇄신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