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고 의사는 두려움 때문에 약을 처방한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습관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크게 늘렸다. 속칭 ‘의료 쇼핑’ 방지책으로 내놓았다. 의료 과소비 방지와 합리적 의료를 위해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이용수는 15.7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5.9회보다 높다. 지난해 기준 연 365회를 초과한 외래진료자가 2천448명이다. 필요 이상 병원을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65세 이상 노년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2.7세다. 건강수명은 그보다 훨씬 낮은 65.8세다. 무려 15년을 여러 가지 질병과 사고로 말미암은 부상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다. 예전엔 비실비실 10년이라고 했는데 이젠 식생활 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15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장수가 축복이 아닌 세상이다.
나이가 들면 여러 질환을 한꺼번에 앓는 경우가 많다. 만성 질환은 하나의 약으로 완치되지 않아 여러 가지 약을 먹어야 한다. 노인은 약을 해독하는 간 기능과 소변으로 배출하는 신장 기능이 약하다. 약 농도가 젊은 층보다 더 높아져 부작용이 많이 나타난다. 복용하는 약물 간의 상호작용도 한 요인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10개 이상의 약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 91만 명, 2021년 108명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22년엔 117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라면 여러(다제) 약물 복용자는 더욱 늘 전망이다. 5개 이상 약을 처방받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입원 위험은 18%, 사망 위험은 25% 더 높다. 비슷한 약물이 중복처방 되거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병 고치려다 병을 얻는 셈이다.
불필요한 약물이나 노인 부적절 약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잘못된 처방은 되레 노인 건강을 위협한다.
노인들의 부적절 약물 복용은 장기적으로 신체 기능 저하를 촉진할 수도 있다. 투약 부작용이 더 많은 의료 이용과 또 다른 약의 처방을 부르는 도미노현상도 우려된다.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병 없이 살다가 죽는 것은 만인의 소망이다.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영양가 있는 식단, 규칙적 운동, 건강한 신체 질량 지수 유지, 금연, 금주를 건강 백세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다섯 가지 생활 방식을 실천하면 기대수명이 여성은 14년, 남성은 12.2년 증가한다고 했다. 식탁 위에 병원 약이 수북이 쌓여간다. 내과, 신경과, 안과, 정형외과, 종합 비타민까지. 얼마 전엔 눈 영양제가 추가됐다. 나이 들면 약을 달고 산다. 온갖 병치레를 하며 오래 살면 뭣하나. 늘어나는 약 봉지만큼 한숨도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