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전쟁’이 되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함정에 빠진 탓이다. 승자의 독식은 패자의 박탈감과 분노를 불러온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이유다.
대화와 양보가 없는 승자독식 정치는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한다. 집행권을 가진 여당과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의 끝없는 전쟁이 그 생생한 증거다.
승자독식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선에서 득표율 0.73%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로 승리한 대통령이 집행권을 100% 독점하며,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 5.4% 차이가 의석수 1.8배 차이(민주당 161, 국민의힘 90)를 초래했다. 이처럼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하는 선거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
승자독식 제도에서는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 같은 정치’가 일상화된다. 다수결의 전제인 대화와 타협은 공허할 뿐이며, 이성과 양심은 설 자리가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증오 마케팅’으로 상대를 비난, 조롱하고 혐오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론이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을 심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자독식 전쟁’을 ‘승패공존 정치’로 바꿀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정신’과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정신적 측면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가치관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대소’(more or less)를 두고 벌이는 협상과 타협이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과 독선이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이다.
다음으로 제도적 측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혁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의원내각제 개헌까지도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서유럽국가들이 보여주듯이 다당제 연합정치와 같은 합의제민주주의가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꼼수 위성정당을 막고, 소선거구제의 사표를 줄이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 문제는 이미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에도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여 ‘폭탄 돌리기’만 계속하고 있다.
거대양당이 여론을 의식하여 개혁시늉만 할 뿐,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얻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거법 개혁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식인·시민사회·언론 등 여론의 압력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사시킨 것처럼, 개혁요구가 거세지면 정치권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거대양당의 ‘승자독식 전쟁 놀음’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에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