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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시의 놀라운 효과

등록일 2024-06-03 19:00 게재일 2024-06-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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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통을 나누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는 독자들과의 소통 고리를 잃어버리고 표독하게 제 잘난 듯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미로로 질주하고 있다. 시인은 정치적 선동으로도 모자라 고발과 분열을 미덕으로 삼아 내뛰고 있다. 글로 쓰인 시가 시 본연의 운율과 가락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황혼에 물든 저녁녘 단 한 줄의 시 구절에 어깨를 들썩이는 독자를 찾으러 나서는 시인이 그립다.

말하듯 노래하듯 써야 시가 되는 언문일치와 결별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그물망이 직조되기 이전에는 가슴을 격렬하게 울리는 싱싱하고 푸른 토착어로 노래하듯 시를 쓴 작가들이 있었다. 소월이 대표적인 시인이다. 구전 전통의 우리 가락을 시작을 통해 안정된 시의 미학에 도달하였다. 한자어는 물론 외래음차표기조차 배제하여 쓴 그의 시는 노래하는 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민요적인 가락과 구어적 글쓰기의 결합으로 가장 전통적인 시혼을 우려내는 시작에 충실하였다. 김소월은 ‘개여울’, ‘가는 길’, ‘팔베개 노래’, ‘진달래꽃’에서 외래어나 외래어 음차표기나 한자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토착어 지향적인 자세를 일관하였다. 동시대의 만해나 이상화 등의 시인들과도 비교해 보면 매우 재미있다. 토착어로만 쓴 시들과 외래어나 한자어가 많이 뒤섞인 시들을 비교해 보면 시로서의 품격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상화 시의 경우에도 고유어로만 시어를 선택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자어가 뒤범벅이 된 ‘이중의 사망’을 비교해 보면 토착어 지향성의 시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을 치는 품격을 지녔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30년대 이후 시문학파나 생명파, 특히 청록파 시인들의 토착어 지향의 시작 경향이 이어져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자어를 선호하거나 외래어나 외래어음차표기를 선호하는 위세적 심층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시 쓰기에도 반영이 되었다. 사회 공간 속에서 지적이고 고급적 집단 무리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시에는 마치 조선조 양반과 평민층의 계급적 길항관계처럼 외래어나 한자어가 꿈틀거린다. 특히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게 두드러졌다.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민학운동이 촉발되고 상실된 실체로서의 민족과 고향을 강조하는 민족문학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시들이 판소리나 민중극과 함께 많이 나타났다. 특히 새마을운동으로 붕괴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잃어버린 고향과 고향의 재발견을 위한 방편으로 토착어 지향성을 보이지만 표준어라는 압박에서 자신의 구어의 맛깔을 온전히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시인협회 주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방언시집 간행이 계기가 되었던지 모티브 차원에서 이용되었던 방언이 시작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표준어를 수호하던 국립국어원이 오히려 토착적 방언시의 창작을 지원하고 주도하였다. 언어의 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국어정책의 중요한 축이라는 지향이 피상적으로 간간히 이용하던 방언 시어들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지식과 계급의 차등을 뛰어넘는 상실의 실체, 사라진 것들을 다시 호명해 내는 시적 기술로서 방언시가 나타났다. 토착 지향의 시인들이 방언을 활용한 노래하는 시, 말하는 시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였다.

방언으로 쓴 시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갖 감각 기관을 총동원시키는 시간 회귀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실한 사물과 상응하는 토박이 음성이 결합하는데 성공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방언으로 쓴 시편들은 시각적 텍스트인 문자로 잊어버린 옛 시간을 당겨오고 가물가물 사라진 기억을 호명하는 힘을 가진다. 떠나온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의 삶터를 개방해 준다. 눈으로는 지나간 시간이나 공간의 빛을 되찾아주고 귀로는 소멸된 소리를 토속적인 악센트로 불러온다. 코로는 증발되어버린 시큼하고 소똥냄새가 뒤섞인 공간의 냄새를 소환하고, 입으로는 소멸된 사물의 존재들을 호명해 온다. 시의 방언은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내고 불러오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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