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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제는 사라진,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표지. 얼마 전 스웨덴 교육 당국은 태블릿으로 대표되던 디지털 교육 방식을 버리고, 다시 교실에 종이책과 연필을 비치하고 독서와 필기 연습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교육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지금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문자나 이미지적 정보 어떤 것이나 디지털로 옮겨질 수 있는 시대지만, 아이가 앞으로 배워갈 세상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 만큼, 반가운 의미를 지닌 결정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이 영위해온 모든 세계의 기반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옮겨지면서, 종이 위에 연필로 사각거리던 감촉이나, 우둘투둘한 캔버스 위에 채 다 발리지 않고 뭉쳐 있는 물감의 질감, 필름카메라의 철컥거리는 셔터의 소리 같은 한 없이 아날로그적인 감각까지도 흉내내어 디지털의 양적 해상도 속에 포착해내고자 하는 과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서걱거림이나 이질감, 기계장치의 맞물림 같은 감각을 디지털로 접한 세대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제 인간의 문화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여전히 책 속의 글자를 읽고, 이해하고, 글을 쓰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문득, 점점 손에 든 책의 무게가 해마다 더 무겁게 느껴질 때, 강단에서 노트북이나 태블릿 너머로 교수를 바라보는 학생들과의 사이의 공기가 조금씩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이제 대학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회에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 책의 시대의 변화를 절감한다. 이제 책을 벗어난 인간의 문화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그런 의미에서 2019년에 번역된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전병근 옮김, 교보문고)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는 종이책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전작 ‘프루스트와 오징어’(한국어 번역서명 ‘책 읽는 뇌’, 이희수 역, 살림, 2009)에서 인간은 결코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는 도발적인 발언을 통해, 그는 인간이 책을 매개로 뇌를 재배열하면서 후천적으로 읽는 뇌로 발전시켜 인류의 지적 발달을 이끌었다며 책 읽는 뇌와 창조성에 대해 논했던 바 있었다. 10년 만에 낸 이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여전히 읽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독자들을 향한 9개의 편지를 통해 급속히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디지털화되는 교육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집’을 떠난 독자들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사실, 많은 미디어 학자들은 인간이 불편하디 불편한 문자와 글쓰기, 책을 벗어나 이제 새로운 전자 시대 디지털로 전환된 새로운 구술성의 시대로 옮겨갈 것이라 예측한다. 인간이 인간의 감각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모해간다면 당연하게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보의 습득 과정에 배치되는 비가역적이고 선형적인 고정된 정보 묶음으로서의 책보다, 비록 디지털로 매개되는 것이라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임은 틀림 없는 사실일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이라는 불편한 미디어에 무언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매리언 울프의 말대로 그 불편하디 불편한 책에 적응해나가며 인간이 키워온 상상력이나 공감 등의 감정적 기반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 새로운 ‘인간’들이, 새로운 주체로서 사회를 채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공원 벤치에서, 카페 한 구석에서, 빈 강의실의 한 켠에서 책을 읽으며 고민하는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어쩐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9-25

우리 땅, 독도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져 있는 곳에는 ‘외로운 섬 하나’가 있다. 동해상 날씨가 좋아 배를 띄워도 가는 동안에 하늘이 변덕을 부려 운이 따라야지만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섬. 평소에는 해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어떨 때는 울릉도 해안에서 육안으로도 보인다는 섬. 사진으로, 방송으로 많이 보아 잘 아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정말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섬. 삼봉도·우산도·가지도·석도 등으로 불리다가 울릉도 방언 돌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어 지금은 독도라고 불리는 섬이 동해안에 있다.‘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와는 달리 독도는 ‘외로운 섬 하나’가 아닌 동도와 서도 그리고 그 주변으로 89개나 되는 바위섬이 한 무리를 이루는 해저화산이다. 신생대 네오기 플라이오세에 해저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커다란 해산이 생겼다. 그 해산 위에 아주 작게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독도다. 높이가 2천m 이상, 지름이 30㎞나 되는 거대한 해저화산이지만 바다 위에 드러난 독도는 동도가 99.4m, 서도가 174m로 매우 작다. 이마저도 오랫동안 파도와 바람에 침식되면서 지금도 아주 조금씩 깎여 나간다.바람과 파도에 의한 풍화와 침식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지형을 만들어낸다. 독도에는 4곳의 아름다운 지질명소가 등록되어 있는데, 독립문 바위·삼형제 굴바위·천장굴·숫돌 바위가 그곳이다.독립문 바위는 청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세운 독립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식동굴이 계속 깎여서 기다란 아치형 다리를 바다 위에 만들었다. 응회암과 주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삼형제 굴바위는 세 방향에서 시작된 해식동굴이 한 점에서 만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도 침식으로 인해 육지에서 분리된 시스택 지형으로 높은 파랑이 자주 덮쳐 바위 전체의 염분 비율이 높다. 당연히 식생은 자라지 못한다. 동도와 서도와 함께 삼봉도로 불리기도 하며, 높이는 44m이다.천장굴은 동도의 중앙에 우물처럼 움푹 파인 지형으로 노래 가사 ‘우물 하나 분화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처음에는 화산분화구로 인식되었으나 풍화와 침식으로 함몰된 지형으로 밝혀졌다. 독도에서 가장 유명한 사철나무가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숫돌바위는 침식에 약한 응회암질이 사라지고 단단한 조면암질 암맥부만 남아있는 지형으로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동도에서 생활하던 독도 의용수비대원들이 이 바위에 칼을 갈았다고 전해진다. 수평주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계단과 같은 모양이 촘촘하게 드러나며 높이는 12.6m다.아쉽게도 국제해양법상 독도는 섬이 아니라 암초로 분류된다고 한다.섬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을을 형성할 정도로 경제 활동이 가능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 지형을 뜻한다. 독도는 섬 자체 면적은 좁지 않으나 지형이 매우 가파르며, 평지가 거의 없고, 식수가 부족하여 사람이 살기에 원만한 환경은 아니다. 비와 눈이 자주 내려 연중 강수량은 고른 편이지만 습도가 높고, 안개도 자주 발생한다. 1982년 노래 가사에 적혀있듯이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으로 알려졌으나 기후 변화로 인해 2012년에는 ‘평균기온 십삼도 강수량은 천팔백’으로 가사가 바뀌었다. 아무튼 내륙에 비해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대략 거주민은 3천명 정도 등록되어 있지만 실 거주자는 약 60명이고, 그중 주민은 14명(2019년 기준)이며, 실질적인 인원은 독도를 관리하고 수비하는 인력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독자적인 경제 순환이 어려운 곳으로 볼 수 있기에 섬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인식과 달리 암초라고도 볼 수 있겠다.독도는 어로 활동이 금지된 지역인만큼 독자적인 식생이 풍부하다.대체로 비바람에 강하고 얕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들이 자생하는데, 해국·개밀·큰이삭풀·갯제비쑥·보리밥나무·사철나무·섬괴불나무·왕호장근·가는갯는쟁이·참소리쟁이 등이 있다.독도는 새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괭이갈매기·바다제비·슴새·알락할미새·섬참새 등 139종에 달하는 새들이 관측된다.예전에는 강치의 주 서식지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강치를 잡아 가죽(가방이나 모자)과 기름(항공유), 내장(의약품)을 활용했다고 한다.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절멸했는데, 현재 일본에서 동화책과 인형으로 제작되어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쓰이고 있다. 일본의 강치 활용은 황당하긴 하지만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기도 하다.독도에는 아름다운 지형과 독자적인 동식물이 있으며, 이를 지켜왔던 역사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 외롭지 않은 이 섬은 영유권 분쟁이 있는 만큼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독도는 우리 땅’이나 ‘제시카송(영화 ‘기생충’)’, 라이카코리아의 운동화, 독도마켓의 상품들처럼 마음에 와닿는 문화는 우리 땅 독도를 알리고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9-25

구미, 대구는 경제공동체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SK실트론, LG이노텍 구미에 조단위 대규모 투자’, ‘반도체 특화단지 구미 지정’, ‘방산혁신클러스터 구미 유치’이러한 구미산단의 경사가 있으면 누가 가장 좋아 할까. 그 수혜자는 누구일까. 구미시민인가. 구미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인가. 단언컨대 대구의 위성도시인 구미에 기업 신증설 투자가 일어나 고용이 늘어나고 GRDP가 증가하면 그 수혜는 구미도 구미지만 대구도 못지 않다고 본다. 유동인구 60만을 상회하는 구미에 직장을 두고 대구에서 출·퇴근 하는 인원만 수만여 명에다 구미에서 창출한 소득을 기반으로 대구에서 소비를 주도하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우리 회사 직원 30%도 대구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구미산단의 기업 대표자나 임원, 근로자까지 대구 수성구나 북구, 달서구, 성서 등에서 출·퇴근 하고 있으며, 기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그 뿐인가 구미기업에서 필요한 자재와 공구의 상당량은 대구에서 올라오고 있으며, 하다못해 ‘선산5일장’의 상인들도 대구에서 많이 온다. 필자는 어제도 대구 수성구에서 저녁을 먹고 왔으며, 대구는 제2의 고향이자 대구와 구미를 떼어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기업은 어떤가? 구미에 본사를 두고 대구에 공장을 두는 기업, 반대로 대구에 본사를 두고 구미에 공장을 두고 있는 기업도 허다하다. 요컨대 구미와 대구는 하나, 경제공동체라는 뜻이다.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평소에는 다툴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부부 사이라고도 할 만큼.구미는 대구가 없으면 지금과 같이 성장 할 수 있을까? 수만여 명의 근로자가 대구에 주거지를 두고 있는데 구미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대구는 구미가 없으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일자리와 소득창출의 기반인 구미가 없다면 대구는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다.큰 그림을 봐야한다. 우리 동네에서 공부 좀 잘한다고 으스대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의 경쟁, 더 넓게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좁은 시야에서 물문제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하며, 대구에 물을 주고, 양 지역 상생을 위해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다.구미는 알다시피 삼성, LG, SK, 한화, 도레이, 코오롱, 효성, LIG넥스원 등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로 이미 이들 대기업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어 신증설 투자가 용이하며, 실제로 최근 조단위 투자까지 일어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기업이 모여 있지 않은 지역에 임의로 대기업 공장을 지으려 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반대할 것이며, 기업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다.다시 말해 구미가 잘되는 것이 대구가 잘되는 것이며, 구미를 키워야 대구경북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고 본다.이러한 맥락에서 대구에서도 구미산단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같이 고민해주어야 한다.KTX, 백화점 등 어떤 인프라가 구미에 더 갖추어지면 구미기업 일자리가 늘어나 결국 대구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또한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라는 큰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이 파도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탈수 있을지 도로망, 철도망 확충과 시너지 극대화에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신공항을 거점으로 구미의 정주여건이 개선되고 물류경쟁력까지 키울 수 있다면 인구 증가는 물론, 기업 경쟁력이 한층 높아져 구미는 아주 매력적인 산단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본다.구미와 대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음은 분명하다. 기업으로 따지면 생산기지와 RD부서랄까. 연구개발 없이 생산할 수 없고, 연구개발을 아무리 잘한 듯 생산기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고 기쁘게 여기며 긴밀한 협력을 강화할 때 비로소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고 일자리가 넘치는 지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9-25

줄세우기 정치의 한계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이 쪼개지기 직전이다.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도다.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민주당이 168명(56.4%). 무소속 9명 가운데 7명도 사실상 민주당이다. 그러니 통과된 뒤 서로 ‘네 탓’으로 폭발 직전이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사퇴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더 개혁적인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더 민주적인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겠다”라고도 했다. 친명(친이재명)계가 말해온 대로 옥중 공천까지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더 개혁적…’이란 자신을 더 잘 따르는 후보들을 공천하겠다는 의지다.의원총회가 난장판이 됐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도 쫓아냈다. 이참에 친명계가 독주하겠다는 계산이다. ‘배신자’를 색출한다고 열을 올린다. 의원들 모두 실명으로 이 대표 영장 기각 탄원서를 내라고 한다. 국회에서 가결해놓고, 그 소속인 의원들에게 반대 탄원서를 내라니 이런 희극이 없다. 공산 전체주의에서나 보던 인민재판식 양심 고문이다. 위태위태하다.‘개딸’(개혁의 딸을 줄인 말로 극렬 이재명 지지자들)들이 부결 투표를 공언하지 않은 의원, 부결 여부를 묻는 문자에 답하지 않은 의원,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의원, 불체포특권 포기에 참여한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공격한다. 그러자 어기구 의원은 부결 투표 인증사진을 공개했다. 비밀투표에 어긋나는 어이없는 행동이다. 고민정 의원도 웃는 사진으로 공격받자 부결 표를 던졌다고 해명했다. 의정활동이 인민재판을 받고 있다.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아온 건 이재명 대표다. 자신의 짐을 민주당에 떠안기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특히 이 대표의 신뢰가 무너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그는 지난 6월 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표결 하루 전 불체포특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당당하게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던 약속을 석 달 만에 뒤집었다.검찰이 체포한다고 끝이 아니다. 법원에서 구속적부심을 거쳐야 한다. 최종적인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린다. 그런데도 부결을 호소한 데서 이 대표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법원도 검찰과 판단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겁을 먹은 행동이다.이날 부결 호소로 ‘방탄 국회’, ‘방탄 단식’이 아니라는 그의 말도 신뢰를 잃었다. 결백하다는 그의 주장을 믿던 사람들마저 흔들린다. 국회 표결이 필요없는 비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라고 요구해온 그의 의도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의 혐의와 관련한 모든 언행에 부정적인 색칠을 해버렸다.신뢰는 한꺼번에 무너진다. 회기, 비회기라는 잔수, 단식을 해가며까지 구속을 피하려는 안간힘…, 큰 정치 지도자의 의연함보다 잡초 같은 생존력만 보여줬다.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며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한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식의 이유로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파괴와 민주주의 훼손, 일본 핵 오염수 방류,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꼽았다. 그렇지만 체포동의안 통과 뒤 그런 요구는 모두 잊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마저 방탄의 핑계로 희화화했다.반란표가 나온 더 큰 원인은 공천 협박이다. 원외 친명 인사인 강위원 더민주 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은 투표 이틀 전 “이번에 가결 표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친명계의 독주를 통해 이런 압박은 계속돼왔다. 이날협박 발언이 내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내년 총선 공천이 친명계 일색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게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집권당의 분열로 가능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도 결국은 민주당의 분열이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여야 모두 강경 노선으로만 달린다. 장악력을 높이려고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선거의 승패는 몇십표, 심지어 한두 표로 갈린다. 선거 때마다 후회하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24

가뭄에 단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 때문에 신문이고 라디오고 간에 새 소식을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전연 들지 않는다. 누구를 찌르고, 죽이고, 도주하고, 자살하고, 사기 치고, 음해하고 등등 각종 사건 사고가 날마다 차고 넘친다. 참 흉악하고 무도한 세상이다. 6·25 한국동란이 끝난 지 어언 70년이니까 두 세대 이전에 전쟁으로 인한 살육(殺戮)이 멈춘 지 오래다. 그런데 흉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는 무엇일까?!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배고프고 헐벗었던 1960∼70년대에도 흉악범죄와 자살 혹은‘묻지마 범죄’는 드물었다. 그런데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자 국민소득 3만 달러 넘는다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온갖 흉사(凶事)는 상상을 초월한다.일부 전문가들은 고도의 압축성장과 경제지상주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고, 여기저기 쑤시는 정신의 통증을 제어하기 어렵다.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지식재산권 무역수지가 반기(半期) 기준으로 두 번째 많은 흑자(黑字)를 냈다는 것이다. 9월 22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수출 120억1천만 달러, 수입 116억9천만 달러로 3억2천만 달러 흑자를 냈다고 한다. 이번 흑자 규모는 2019년 하반기 3억5천만 달러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라고 전한다.지식재산권은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으로 나뉜다. 산업재산권에는 특허와 실용-신안권, 상표와 프랜차이즈권, 디자인권이 있으며, 저작권에는 문화예술저작권과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저작권이 있다. 올 상반기에 산업재산권은 10억 8천만 달러의 적자(赤字)를 기록했으나, 지식재산권은 15억2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문화예술저작권은 한국 영화와 음악, 이른바 케이팝과 콘텐츠 수출 호조로 흑자기조를 도출했다.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저작권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 수출 등이 호조세를 이뤄 흑자기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산업재산권은 꾸준히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며, 문학예술저작권은 흑자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지식재산권 분야의 도약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나는 오래전부터 지식재산권을 반대해왔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타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한국이 지식재산권 영역에서 지나치게 양보함으로써 ‘자유’라는 용어에 균열을 가져온 이후 반대하는 견해를 강화하게 되었다. 강대국이 도달한 지적-정신적 재산과 재화의 활용 기간을 50년에서 75년까지 인정해주는 협정은 너무도 폭력적이고 가진 자들의 입장만 고려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후진국은 영원히 후진국을 벗어날 방도가 없는 것이다.승자는 영원히 승자로 남고, 패자는 만고불변 패자로 남아야 한다는 족쇄가 최소 50년에서 최대 75년에 이르는 지식재산권 보호 규정이다. 이런 악조건을 뚫고 이뤄낸 지식재산권의 흑자 소식은 통쾌함과 통렬함을 한꺼번에 선물해줌으로써 가뭄에 단비 같은 느낌이다.

2023-09-24

인재영입, 삼고초려로

우정구 논설위원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그룹의 대표적 경영철학의 하나가 인재 제일주의다.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에서부터 이건희 회장, 지금의 이재용 회장에 이르기까지 인재를 가장 중시하는 경영을 모토로 하고 있다.삼성전자 이 회장은 지난해 취임식 때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 오라”고 말했다. 대만 TSMC의 엔지니어, 애플 출신의 칩설계사, 벤츠사의 디자이너 등 삼성에는 각국에서 불러들인 인재들로 모여 있다.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엔지니어, 연구자, 디자이너, 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일류 인재를 모으는데 전력한 CEO로 유명하다. 코카콜라에 눌려 있던 펩시콜라를 일으킨 펩시의 경영자 존 스클리가 그가 영입한 대표적 인재다.삼국지에 나오는 삼고초려는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선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촉한의 임금 유비가 허름한 초가집에 있던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인재영입의 중요성을 전해주는 대목이다.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기업간 인재영입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인재영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인재영입의 성과를 둔 논란도 적지 않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인재영입도 시동이 걸렸다. 국민의힘이 조정훈 시대전환대표 등을 영입하자 대폭 물갈이 설이 나도는 지역정가에도 긴장감이 나돈다는 소식이다. 인재영입은 말그대로 좋은 재목을 찾자는 것인데 명분과 실리가 맞는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삼고초려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24

민생과 민심

유영희 작가 언제 끝날지 암담하기만 했던 코로나19가 지난 8월 31일 인플루엔자와 같은 4급 감염병으로 전환됐고, 그 이후에도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는 대규모 이동이 일어날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기 어려웠으니 오랜만에 마음 놓고 회포를 풀 것이다.친한 사람과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빠지기 어렵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통령에 당선된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지난 1년 반 동안 얼마나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찬반이 분분할 것이며, 최근 단식을 감행한 이재명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의견도 극과 극을 오갈 것이다.정치는 어떤 사안이라도 정당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향이 많고, 일반인에게 전달되는 정보도 왜곡되거나 제한적이라 소통하기가 참 어렵다. 자기가 즐겨 듣는 미디어에만 의존하다 보면,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게 되고, 그만큼 양쪽 입장의 골은 깊어지고 대화는 끊어진다.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에서 민심은 미디어에 의해서 세뇌될 가능성도 많다. 그러니 민감한 정치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들리는 대로만 듣지 말고 조심스레 탐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최근의 가장 큰 이슈는, 지난 21일 제1야당 대표 이재명 의원에 대해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일일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대장동 등의 문제로 기소된 체포동의안이 한 표 차이로 부결된 후 백현동으로 다시 기소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았고, 이렇게 쪼개서 기소하는 검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일부 국민의 피로감은 이재명 때문이라기보다는 검찰의 전략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대장동 관련해서는 곽상도와 박영수의 혐의만 일부 증명되었을 뿐이어서 더 그렇다. 게다가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이 비명 계열의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결과가 백현동 문제나 대북 송금 등의 혐의 때문인지 친명·비명 통합에 실패한 리더십 부재 때문인지 혼란스럽다.다른 한편, 이재명 대표의 대응이 선뜻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상에 보장된 불체포 특권을 먼저 포기한다고 해놓고 이번에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것은 모순으로 보이는 데다 지난달 31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행보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의 강한 권고로 성과도 없이 24일간의 단식을 중단하고 보니, 방탄용이었느냐는 의심을 해소하기도 어렵다. 다만, 단식이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 혐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경제다. 지난 6월 OECD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3월의 2.6%에서 2.7%로 올린 반면, 한국은 1.6%에서 1.5%로 내려잡으면서, 취약계층 직접 지원과 재정건전성을 높일 것 등 여러 가지 권고했다. 이것은 대부분 정치력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민생이 해결되면, 민심은 돌아온다.

2023-09-24

유연함의 힘, 겸손(謙遜)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한가위 추석이다. 추석에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친구들이 있는데 어떤 친구는 환한 얼굴이 있고, 어떤 친구는 온갖 고생의 흔적이 있는 어두운 얼굴이 있다. 이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인상(人相)은 ‘사람 얼굴의 생김새’로 관상(觀相)하고는 차이가 있다. 관상은 생긴 대로 사는 것에 중심을 두는 데 비해 인상은 사는 대로 생기는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한다.필자의 기억 속에 인상 깊은 사람이 한석규 님이다. 10여 년 전 TV 토크쇼 ‘힐링캠프’에 나와서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겸손한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느꼈다.그는 법구경의 구절을 인용해 “당신의 녹과 쇠는 무엇입니까? 녹은 본디 쇠에서 생긴 것인데 그 녹을 방치하니 점점 그 쇠를 갉아먹어 버린다. 이처럼 자만심의 녹을 경계하면서 끊임없는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다.그런 그의 연기는 나이와 시대가 지나도 녹슬지 않으며 물(水)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뜻으로 물의 미덕이 겸손이라고 한다. 물은 무엇과도 다투지 않는 유연함, 늘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 막히면 돌아가는 현명함, 더러움을 씻어주는 깨끗함,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포용력, 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라는 것이며, 이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고귀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수전 에쉬포드의 유연함의 힘에서 ‘겸손은 유연함의 힘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건 없이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필자는 골프공을 세상에서 제일 멀리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얼마나 멀리 보냈을까요. 라는 퀴즈를 냈을 때 타어거우즈, 400m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멀리 골프공을 친 사람은 1971년 아폴로 14호의 선장인 앨런 세퍼드이다. 그는 달에서 6번 아이언으로 약 4㎞를 쳤다. 골프공을 가장 멀리 친 기록을 물었을 때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골프공을 쳤는지에 대한 조건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조건의 틀 안에서 생각한다. 유연하게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없는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한다.애덤 그랜트 교수는 “겸손 없는 맹목적 자신감은 오만을 낳고 자신감 없는 겸손은 의심을 낳는다”라고 하였고,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겸손 리더십이 최고 꼭대기에 있는 제5의 리더십이라고 했다.자신감과 겸손은 상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 가지 요소를 보완적인 요소로 함께 갖추고 있는 리더야말로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자신감 있는 겸손의 리더십으로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유연하게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

2023-09-24

이념정치와 가치외교의 맹점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념정치란 정치에서 특정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정치를 말한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자유라는 단어를 수없이 강조하였다. 자유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이며 민주사회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가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에 추종하는 기회주의 세력을 자유주의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였다.20세기 후반 칼 포퍼는 ‘열린 사회의 적들’에서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개방된 사회의 적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최근 반국가 세력에 대한 규정과 인식, 이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 요구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다.누가 우리 사회의 반국가 세력이며 이의 청산은 가능할까. 정치 공동체의 갈등을 이념의 투쟁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는 정치에서는 협치나 화합을 기대할 수 없다.이념을 앞세운 갈라치기 정치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극한 대결의 정치를 조장한다. 반국가 세력을 제거하자는 이념정치는 진영 간 대결을 더욱 확산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은 최근 반국가 세력은 1+1이 2가 아닌 100이라고 선동 선전하는 세력까지 포함시켰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의 범주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야당이나 노동계나 시민운동 단체까지 포함시킨 듯하다.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체제를 공산 전체주의로 간주하고 반국가 세력으로 질타함은 반대할 사람이 없다.그러나 우리 내부의 정부 비판 세력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지나친 논리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다원성에 배치될 뿐 아니라 여야 상생과 협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이 같은 극한 대결의 정치에서는 참된 정치는 실종되고 승리를 위한 마타도어나 흑색선전이 난무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괴담이나 가짜 뉴스는 확대 재생산되고 정치적 진실은 가려져 왜곡될 뿐이다.흔히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 한다. 이념을 앞세운 국내 정치는 가치외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여기에서 전례 없는 한·미·일 3국 안보 및 외교적 결속이 선언되었다.국제 정치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이 통용된 지 오래다. 해방 이후 전통적인 한미 동맹이 우리의 안보의 구심축이 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한일 간의 안보 협력과 군사훈련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독도 영유권 문제, 강제 징용 보상 문제, 위안부 문제, 간토 대지진 희생자 문제 등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본의 선의에 기댄 한일 간의 외교적 타결은 아직도 국민적인 정서가 용납지 못한다.김정은과 푸틴의 군사협력, 한·미·일의 합동 군사 훈련은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동북아의 역 삼각 냉전 구도가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한국 정치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여야가 공히 상대를 거부하는 투쟁과 대결의 정치, 진영정치에 매몰된 결과이다. 이념의 정치는 홍범도 장군의 평가에서 보듯 현대사의 해석뿐 아니라 핵 폐기 오염 수 등 환경 문제까지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철 지난 이념 정치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고, 야당은 팬덤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여당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정적 제거용으로 이용했던 맥카시적 정치 술책을 재사용하고 있다. 야당 역시 자신들이 부패스캔들은 묻어두고 강성 지지층의 선동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는 남북 체제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지 오래다. 상대를 공산 전체주의나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는 정치 프레임은 이제 통용될 수 없다.여기에는 모든 정치 현안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이런 곳에서 정치적 갈등은 증폭되고 정치적 진실은 왜곡될 뿐이다. 주변에는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과 혐오주의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도 30% 대의 박스 권에 갇혀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지지율도 오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선수는 시합 중 시계를 봐서는 안 된다고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대통령의 임기는 이미 4분의1이 소진되었다. 내년 4월은 대통령의 중간 평가인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정치’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이쯤해서 집권 여당부터 대결의 정치를 지양하고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집권 여당의 이념적 갈라치기 정치, 야당의 열성적 팬덤 정치는 결과적으로 선량한 국민들을 포로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나. 내외의 경제와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여야 정치인들의 각성과 타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국민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의 대타협 정치의 결단이 요구된다.

2023-09-24

기후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2022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가 발전(發電)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1%였다. 2030년에는 21.6%, 2036년 34.6%를 달성할 계획이다. 2022년 기준 독일은 49.2%, 일본 25%, 미국 22%, 영국 38.9%, 중국 27.6%, OECD 평균 31.3%, 베트남 16.2%이다. 2030년 목표치는 독일 80%, 일본 38.9%, 미국 60%, 영국 44.9%, 중국 50%, OECD 평균 42,5%, 베트남 39.2%다. 2040년 목표치는 독일 100%, 일본 50~60%, 미국 100%, 영국 56%다.이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재생에너지만 두고 볼 때 한국은 확실한 후진국이다. 지난 8월 16일 유럽계 에너지 분야 전문 컨설팅업체인 에너데이타(Enerdat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8.1%로 44개 조사 대상국 중 사실상 꼴찌다.더군다나 윤석열 정부의 재생에너지 규제방침 속 한국의 재생에너지 미래는 더욱 암담한 실정이다. 1997년 12월 ‘기후변화 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후 김대중 대통령부터 현 윤석열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이 추진한 재생에너지 성적표는 8.1%로 낙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단어까지 만들며 탄소중립에 적극적이었지만, 2011년 블랙아웃을 겪은 뒤 내놓은 발전 대책으로 석탄화력 발전소 7기(7천260㎿)를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국제 에너지정책 연구기관인 클라이밋 에널리틱스는 한국이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2030년 이전까지 석탄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해야 된다고 권고하는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추진된 것이다.최근 석탄발전소 3기가 준공되고 4기가 준공을 앞두고 있다. 곧 좌초자산(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이 될 석탄발전소에 1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을 통해 탄소중립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원자력발전은 탄소배출이 거의 없으므로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에너지 재생을 통해서 기후재앙을 피하고자하는 에너지전환 취지에는 어긋난다.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부장관은 지난 4월 15일 독일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를 멈추는 기념식에서 “원자력은 3세대 동안 전력을 공급했지만, 이로 인해 핵폐기물 처리 부담은 3만 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자력의 위험은 궁극적으로 관리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더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마치 원자력 에너지가 탄소중립 완전한 해결책인양 말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2012년 이후 석탄발전소를 건설한 잘못된 전철을 되밟는 것이라 할 수 있다.지금 우리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재생에너지다. RE100과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고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원자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 한국이 에너지전환을 위해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100% 자체 조달하기 위해서는 국토의 3.5%, 농지의 24%에 달하는 토지와 약 2천조원 내외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첨단 스마트팜 건설과 첨단 스마트 그리드(분산 에너지 인터넷 기반 송배전망) 구축, 충분한 ESS(에너지저장장치) 설치, 전기차 지원과 전기 충전소 설치에 드는 비용이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후진국 탄소중립을 위해서 또 3천500조원 상당액(2조7천억 달러)을 부담해야 한다고도 한다.모두 5천500조원이 우리나라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필자는 이 엄청난 비용이 우리에게 상상 이상의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와 미래형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사회를 우리가 선도적으로 추진해 갈 때 우리나라는 에너지전환 시대 글로벌 선도국이 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의 디지털화한 제조업을 100% 활용하여 글로벌 에너지전환에 절대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앞으로 세상은 기후경쟁력이 경제경쟁력이고, 기후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우리나라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과정에서 기후경쟁력의 기회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산업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2042년 완공되고 그곳에 700만~1천만㎾의 재생에너지를 제때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3천만평의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하면 된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인근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함으로써 송전선로 건설비용과 송전탑 건설로 야기되는 민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인근 농지를 활용한 재생에너지 공급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입주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져 우리나라를 미래에도 여전히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농촌, 농민과 조화를 이루는 21세기형 첨단 반도체 산업단지로 거듭날 것이다.

2023-09-24

희망을 보는 방식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단단한 몸통 위에,사람아, 사람아 단풍 든다.아아, 노랗게 단풍 든다. ―기형도, ‘병(病)’ 전문 (기형도 전집, 문학과 지성사)우리가 기억하는 기형도(1960~1989)의 시에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른바 ‘신화’가 되었던 기형도의 일화는 아프다. 시인의 연보에는 “1989년 3월 7일 새벽,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음”이라고 그의 마지막을 요약하고 있다. 도저한 부정적 세계관에 입각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단언한 김현의 언급을 시작으로, 그의 시를 새롭게 읽기 시작하려는 시도는 그가 떠난 지 30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그의 시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목표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에서 비롯한다.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기를 대상화하는 과정이 따른다. 이는 단순히 자기 내면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다. 이것은 대상화의 과정에서 자신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사유하는 인식의 행위에 성공할 수 있다. 소개하는 시 병(病)은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내 얼굴이 /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이를 뒤따르는 화자의 언술이다. “반 토막 영혼”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 “단단한 몸통”이라는 시구처럼 기형도의 시적 자아는 늙은 나무처럼 시간이 오래되어 그 의미가 퇴색된 이미지로 자신을 비하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생명력이나 자연의 순환 원리를 드러내는 것에 반해, 기형도의 시에 제시된 나무는 주로 썩은 나무나 버려진 나무처럼 생명력이 다한 형태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마치 시의 “주어를 잃고 헤매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처럼 주어를 잃었다는 것은 행동의 주체인 스스로를 상실했다는 것. 그리고 가지가 잘렸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움직임까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늙은 나무”는 단순히 자아 상실뿐만 아니라 무능하게 버려진 시체를 떠올리게 한다.시인의 어둡고 부정적인 자아 인식과 세계 인식의 태도가 읽는 이로 하여금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를 엿볼 때와 같은 놀라움을 준다. 우리는 그림자를 품고 살지만, 그것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아직 젊은 시인의 태도가 너무나도 치열하고 진지하기에 마치 고뇌하는 젊은이의 대명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고뇌의 힘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시인의 시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가슴도 까맣게 멍이 드는 것 같다. 이희정 시인 생전의 시인이 애독했던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에서 “모든 시대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동경한다. 혼란스러운 현재에 대한 절망과 우울함이 심각하면 할수록 그 동경은 더욱 강렬해진다.”고 했다. 우리는 기형도를 죽음을 노래한 부정적인 시인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부조리한 삶, 특히 구조적 모순이 심화 됐던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실험적인 시인이었다고 추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형도의 시는 신화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기계문명이 발전할수록 타인에게 무관심한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병病’은 소통이 단절된 채 쓸쓸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결핍과 상처의 초상이다. 사회 관계망 속에서 존엄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소외일 것이다.기형도 시인은 ‘짧은 여행의 기록’을 이렇게 적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보다 아름다운 삶을 향하여, 시인은 가을 밖 벤치에 앉아 희망을 보는 방식으로 우리를 부른다.“사람아, 사람아 단풍 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 든다”

2023-09-24

메이드 인 구미, 구미가 다시 뛴다!

김장호 구미시장 최근 미국에서 ‘메이드 인 구미’(Made in GUMI) 제품이 화제다. 출시 한 달도 안 돼 250t 규모의 물량이 완판되며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은 구미산 냉동김밥. 구미 식품업체가 찰지고 맛 좋은 구미 해평쌀로 만든 ‘메이드 인 구미’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한 것이다.비단 먹거리뿐이 아니다. ‘메이드 인 구미’의 저력은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70년대 금성사(현 LG전자)의 흑백 TV를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와 각종 전자제품이 구미에서 태어나 세계시장으로 진출했다. 삼성, LG, 코오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 구미를 기반으로 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앞으로 ‘메이드 인 구미’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날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지난 4월, 두 번의 실패를 딛고 방산혁신클러스터에 선정된 데 이어 7월에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특화단지에 지정되며 구미시는 호기를 맞았다.구미 방산혁신클러스터는 오는 2027년까지 총 사업비 499억원되고 반도체 특화단지는 생산 5조3천억원, 부가가치 2조8천억원, 고용 6천500여 명에 이르는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이에 따라 구미국가산단은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들 산업과 연관성이 큰 로봇·AI·메타버스 산업도 함께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부단한 혁신의 결과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각오로 혁신 또 혁신, 끊임없이 혁신하며 1년을 달려왔다. 자만해서는 결코 안 된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치열한 경쟁에 뒤지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만이 답이다.대한민국 근대화의 포문을 열었던 구미는 반도체산업 초격차로 새로운 지방시대에 앞장설 것이다. 생산 유발 5조4천억 원, 부가가치 유발 2조9천억 원, 일자리만 6천500여 명에 달하는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으로 구미는 또 한 번 격변할 것이다.방위산업 육성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첨단방위산업진흥센터와 방산특화개발연구소를 구축하고 앞으로 방위산업 부품소재 RD기관을 유치해서 구미를 명실상부한 K-방산 산업선도 수도로 육성해 나갈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추진하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두 축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구미만의 특화전략으로 기회발전특구를 성공시켜야 하고, 인력양성을 위한 구미만의 특화된 교육특구도 조성되어야 한다. 연구개발 인프라도 확충하고, 기업지원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부족한 학교도 늘리고 정주여건도 개선할 것이다. 물류산업 발전의 핵심 동력인 광역교통망도 확대할 것이다.반도체, 방산, 이에 더해 대구경북신공항 배후도시 구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지난주 열린 경상북도 첫 항공방위물류 박람회에 항공·방위·물류 관련 글로벌 기업과 기관들이 대거 구미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구미시가 강조한 것은 구미가 가진 강점과 체계적인 지원이다. 1969년 국가 최초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함께 성장한 구미가 앞으로 미래 50년을 이끌어나갈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다.때마침 지난달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킬러규제 개혁으로 신성장 도약을 창출하겠다고 역설하셨다.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킬러규제를 빠른 속도로 제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처럼 구미시 역시 기업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지원해 줄 생각이다.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방을 발목 잡는 킬러규제를 제거해야 한다. 구미만 하더라도 낙동강은 환경부에서, 구미공단은 산자부에서, 대학은 교육부에서 관리한다. 지방이 성공하려면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이 필요하다. 예산과 인허가에 대한 중앙정부의 과감한 권한이양이 선행되어야 대통령께서 강조하시는 지방분권을 통한 지방시대의 길이 열릴 것이다.이제부터 시작이다. ‘메이드 인 구미’, 메이드 인 부산’처럼 지역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도와주길 바란다. 오늘도 구미는 지방시대의 선두에 서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혁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메이드 인 구미’를 향해 구미가 다시 뛴다.

2023-09-24

사필귀정을 위하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흔히 하는 말 중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것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니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일(事)이란 세상사를 말하는 것이고, 세상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 사필귀정이란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말일 터이다. 인간세상을 고해(苦海)로 보는 불가의 다른 시각과는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모르겠지만.물리학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 사필귀정도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인간사(事)가 반드시(必) 바름(正)으로 돌아간다(歸)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다. 인류가 오히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사필귀정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 터이다. 유사 이래 수천 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온갖 범죄와 전쟁 같은 바르지 못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불변의 진리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이라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조차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협동하여 선(善)을 이루라’는 기독교 성서의 말씀처럼, 사필귀정은 우리가 목표로 삼고 매진해야 할 지상과제인 것이다.나라 안이 너무 혼탁해졌다. 좌·우로 갈려서 사활을 건 대결로 치닫다 보니 옳고 바른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특히나 좌파정권 5년 동안 저질러온 비리와 부정과 탈법과 반국가적 행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은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민심을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불법이나 파렴치한 짓을 해도 자기편이 한 것이면 용납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결사적으로 옹호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은커녕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무너뜨리는 패역이 아닐 수 없다.사필귀정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공동선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 각자가 각성하고 힘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불의한 세력과 싸우더라도 스스로의 정당성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게 없다는 것이 좌파들의 논리다. 그런 좌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공정과 상식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대중을 일시적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처럼, 바름(正)을 견지하고 있으면 일시적으로 선전선동과 포퓰리즘에 미혹된 민심도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지금의 싸움은 결국 여론전이다. 민심을 얻는 세력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의와 정의의 싸움이라면 민심의 각성여부에 승패가 달린 것이다.사필귀정의 실현은 이 시대의 당위다. 그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흥망이 내 삶과 직결되는 것일진대, 우리의 삶을 위정자들이나 특정 세력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물론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국민 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 기울어지고 무너지고 전도된 것들을 바르게 놓을 수 있도록 현정권에 적극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2023-09-21

맨발로 걷는 건강한 삶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요즈음 걷기운동이 우리들의 일상에 많은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 만 보 걷기’를 꾸준히 하고있는 지인도 있다. 지난주 철길 숲과 송도 솔밭과 해변을 걸었더니 약 2만 보가 된다. 싱그러운 숲의 내음과 선선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걷고 나면 땀 젖은 피로감보다는 오히려 몸속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다.지난 20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포항 GreenWay 아카데미 행사인 ‘맨발로 걷는 건강한 삶’이란 주제로 맨발 걷기 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의 강연이 있었다, 2시간가량 맨발 걷기에 관한 얘기를 듣노라니 그 효과가 신기하여 나도 한번 시작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선다. 맨발로 걷기를 ‘어싱’이라고 하기에 “무슨 말….?” 했는데 영어로 earthing-접지(接地), 즉 피부를 땅에 접촉하게 함으로써 우리 체내에 전기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냥 걷기보다 맨발의 경우 2배 이상의 효과가 난다고 한다. 그 접지가 이루어졌을 때, 항산화 작용으로 NK 세포(바이러스 및 암세포 대응 백혈구) 증가로 인해 암, 고혈압, 뇌졸중 등 심각한 질환도 벗어났다는 체험담도 여럿 들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압 효과, 뇌 기능 향상, 숙면 효과, 스트레스 해소 등 놀랄 만한 효과가 있으니 맨발로 걸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최소 10분에서 1시간가량 맨발로 흙 위를 걷는 운동이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며 전국 각 지역에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지자체들은 이에 호응하듯 산책로를 다듬어 주고 있다는데 벌써 지방의회 12곳에서는 조례 지정을 하여 국민의 건강한 삶을 보살피고 있으며 각종 축제도 벌어지고 있다.포항시는 그린웨이 추진과를 운영하며 2016년부터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전국 최초로 ‘걷기 좋은 길 맨발로(路) 30선 선정 도시’가 되어 살기 좋은 녹색도시로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북부에는 영일대해수욕장과 용한리 해변 모래길, 기계서숲과 흥해 북천수 숲길 그리고 천마지 둘레길 등 12곳이 있고 남구에는 송도 솔밭과 해도 도시숲, 포항운하길 그리고 오어지와 달전지 둘레길 등 18곳이 선정되어 건강을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맨발 걷기운동을 유도하고 있다.신발을 벗으면 발의 자유로움과 자세 균형 및 전자 흡수로 체온이 올라가 자연과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맨발로 산길을 걸을 때의 몇 가지 우려 사항도 알려준다. 먼저 걷기 전에 몸을 풀고 1~2m 앞을 주시하며 걷고 길 밖으로는 걷지 말고 파상풍 예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발바닥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인대와 근육, 뼈와 관절이 있고 또한 맨발 걷기는 가성비도 좋으니 일정한 계획을 세우고 집에서 가까운 맨발로를 찾아가서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면 좋겠다. 맨발로 입구에는 발바닥 모양의 알림판이 있는데 신발 벗고 들어가며 그 내용을 읽어보니, 혈액순환개선 up/ 뇌 건강 up/ 불면증 down/ 당뇨 down 등 7가지 효과가 적혀있다.곧 추분이다. 이제 밤의 길이가 길어지고 생명체들이 움츠려드는 계절에 자연 즉, 지구와의 접촉을 통해 숲속 길, 바닷가 길, 호수 둘레길 등을 맨발로 걸으며 건강한 삶을 살자.

2023-09-21

할 말은 하는 ‘장관’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무위원들은 수시로 국회에 불려가 호통 듣고 질책받기 일쑤다. 장관들은 국회만 나가면 어느 정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괜히 꼬투리 잡혀 봉변당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의 추궁과 우격다짐에 곤욕을 치른다. 일상화된 국회 풍경이다.한동훈, 박민식, 원희룡 3명의 장관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으로 국무위원이 된 이들이 국회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호통과 질책에도 상대를 직시하며 할 말을 한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는다. 직설적이다. 한 번 붙어보자는 결기가 묻어난다. 꼬박꼬박 대꾸하는 모습은 밉상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강단 있는 검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답변석에서 고심하며 상대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상대 주장에 논리 정연하게 맞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한다.교과서적인 답변에 무기력한 장관 모습은 없다. 아니다 싶으면 작정하고 덤벼든다. 지난 정권의 주축이었던 586 친북좌파들의 김정은·시진핑 바라기에 절망했던 보수가 환호한다. ‘이게 아닌데’하면서 답답해 했던 국민에게는 사이다 발언이다.대통령의 소신 발언과 쾌도난마식 질정(叱正)은 장관들의 투지를 일깨웠다. 말해야 할 때는 주저 없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아니다”고 외친다. 이들은 장관 1년 만에 싸움닭이 됐다. 박·원 장관은 정치인 출신이면서도 논쟁만 일삼는 정치인 모습이 아니다. 뚜렷한 주관을 말하고 야당의 집요한 공격에도 절대 굽히는 법이 없다.박민식 보훈부장관은 광주시의 정율성 공원과 관련, “6·25 남침 나팔을 불던 정율성에 기념공원을 받치느냐”며 전면 철회를 주장하고 질의하는 야당의원에겐 “어떻게 공산당원을 기리자고 하느냐”며 면박 준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 친일파 발언, 홍범도 장군 관련 발언 등 소신 발언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주장에는 결기가 느껴진다.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도 선이 분명하다. 양평고속도로와 관련,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사업 포기 엄포까지 하며 투사 면모를 보였다. 국무위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야당 의원에겐 전직 대통령 사례를 들며 단칼에 잘랐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상대방의 질의와 추궁을 탁월한 논리로 반박한다. 야당 의원의 체면과 입장은 단 한 푼어치도 고려하지 않는 면박에 상대는 말문을 닫고 만다. ‘피의자가 단식 자해로 사법 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는 안 된다’며 입원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도 상처에 왕소금을 뿌렸다. 당하는 처지에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고 기분 나쁘지만, 화를 속으로 삼킬 뿐이다. 한 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기피 인물 1호가 됐다.반면 국민은 시원해한다. 호통과 억지가 난무하는 국회에서 논리적으로 정면 대응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벌써 차기 여당의 지도자급으로까지 이름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무조건 상대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말대꾸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전문성을 앞세워 논리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예의 바른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장관이 정부와 국민에 신뢰를 준다.

2023-09-21

여전한 입시생의 서울 쏠림

우정구 논설위원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내용이다. 대입 준비에 올인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재수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매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조사는 최근 3년간 학업을 중단한 일반고 학생 수가 무려 3만8천명에 달한다고 했다.서울 강남 등 사교육 열풍이 거센 곳일수록 고교에서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이유는 더 충격적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본다는 것이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또다시 입시철이 다가왔다. 좋은 대학을 갈려는 학생들의 눈치 작전이 지금부터 치열해진다. 특히 서울소재 대학에 도전장을 내는 지방학생의 숫자에 따라 지방소재 대학은 지금부터 가슴앓이가 시작된다.지난 14일 마감한 2024년학년도 수시원서 접수결과에 따르면 올해도 지방소재 대학의 학생 모집은 매우 힘들 것 같다는 전망이다. 학생 자원이 대폭 줄어든 데다 서울쪽 선호가 여전하기 때문.수시원서 접수 결과, 지방소재 4년제 대학의 71%가 사실상 미달상태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116군데 지방대학 중 82개 대학이 6대 1 경쟁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수시모집은 학생 1명이 6곳 대학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계는 6대 1미만이면 사실상 미달로 본다. 특히 올해는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간의 경쟁률 격차가 더 벌어져 정부가 외치는 지방시대가 무색할 지경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란 말이 아직도 유효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좋은 대학·직장이 있는 서울로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언제까지 지방의 우수한 인재가 서울로 향해야 하는지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21

손녀가 가르쳐준 취미생활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서울의 큰손녀는 대구할매 집에 와 며칠씩 지내길 즐긴다. 휴가 때 온가족이 내려왔다가도 엄마 아빠를 졸라 굳이 혼자 남아 며칠을 더 묵는다. 이런 손녀가 기껍고 기특한 할배 할매는 단 며칠이라도 알차고 보람차게 보내도록 갖은 프로그램 궁리를 하며 계획을 짜느라 법석을 떤다. 경주 가서 문화재순례 스탬프를 찍자. 미술관과 박물관 체험프로그램도 신청하자. 제 생일을 미리 당겨 사촌동생들과 생일파티도 열어줘야겠다.그러나 정작 손녀는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소위 집순이라며 제 엄마가 귀띔한다. 그렇다면 문방사우를 꺼내 한자로 이름쓰기를 가르쳐 볼까? 같이 놀 장난감 빨대블럭과 젠가도 사 두었다. 그런데 손녀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제 놀이감을 챙겨가지고 오는 야무지고 빈틈없는 아이.2년 전 여름방학 때였다. 500 피스 퍼즐상자를 가방에서 꺼냈다. 아빠 어렸을 때 할머니랑 퍼즐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저랑 같이해요. 혼자 해보니 맞추기가 꽤 어려워요. 좋지 좋아 같이하자 나 이런 거 무지 좋아해. 조손이 엎드려 퍼즐 조각을 맞춘다. 실로 제 아빠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같이 놀았다. 유달리 게임에 진심인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를 떠올리며 손녀와 같이 퍼즐 조각을 맞춘다. 비교적 쉬운 조각은 손녀에게 넌지시 던져준다. 맞추며 기뻐하며 손뼉치는 손녀가 흐뭇하다. 함께 끼워맞추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마지막 퍼즐 조각은 손녀가 맞춰 끼워 완성하게 했다. 뿌듯해하며 사진 찍어 제 엄마와 아빠에게 보낸다. 어렵게 맞추었으니 액자에 넣어줄까 했더니 쿨하게 부순다. 서울 가져가서 다시 또 맞출 거라며 가방에 넣는다. 맞춘 후 며칠을 전시해두고 보는 나와는 다른 성격에 속으로만 놀란다. 손녀 떠난 후 나는 서점에 가는 남편에게 1천 피스 퍼즐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사고 맞추고를 반복하며 한동안 퍼즐에 푹 빠졌다. 퍼즐 상자를 세어보니 20개도 넘는다. 직소퍼즐로는 고흐의 명작시리즈도 많으나 제일 예쁘기는 미국의 유명한 달력작가 제인 우스터 스콧의 퍼즐이다.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그녀의 모든 퍼즐을 사모았다.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사보냈다. 허리 아파하는 나를 남편이 책망하자 마침표를 찍었다.올여름 방학에는 또 다른 취미거리를 가져왔다. 이름도 생소한 양모니들펠트. 할머니랑 같이 할 거라며 여러 개를 샀단다. 처음 보는 거라고 했더니 열심히 설명해 준다. 실뭉치를 돌돌 말아 바늘로 콕콕 찌르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요. 주로 강아지나 곰인형 같은 거 만들 수 있어요. 그림설명서가 있어도 실습으로 보여주며 꼼꼼히도 설명한다. 따라하다가 바늘에 찔려 피도 봤다. 작품(?) 얘기를 조곤조곤 나누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집에 있는 두 마리 강아지, 베리와 아키를 모델로 만들자며 사진 찍어 비슷하게 만들었더니 할머니 솜씨가 좋네요하며 칭찬도 아끼지 않는 속깊은 손녀 덕에 취미가 또 하나 늘었다. 같이 양모펠트공방을 찾아 구경하며 수강신청을 고민해봤다. 이번 추석에 손녀는 어떤 새로운 취미거리를 가져올까. 몹시 기다려진다.

2023-09-20

경제효과보다는 정치효과가 더 컸던 안전 체험관

김진홍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환동해위원회 위원 지난 연말 정년 은퇴를 하였기에 올해는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 생활을 즐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어가지 못하는 것을 알만한 나이인데도 마음 수양이 덜 된 탓인지 가끔 속에서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불편할 때가 적지 않다. 그 원인이야 그저 자기 욕심을 못 채운 미련 때문이다. 더구나 개인적 이득보다는 ‘대의’에 어긋나지 않고 충분한 ‘당위성’을 갖추고 있었던 사안이었기에 더욱 아쉽다.벌써 만 6년이 되어간다. 포항 북구 흥해지역에서 일어났던 지진 말이다.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겪었던 지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진 발생 이후 뉴스가 쏟아지고 또 포항시와 경상북도로부터 매일 피해 상황을 전달받는 동안 문득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지진에 대한 경제적인 피해를 계산해본 연구가 있나 하는 것이었다.온갖 연구자료를 뒤져보아도 없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재산 피해액이라는 것도 실제 겪은 피해자들이 느끼는 금액과는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의 담당 부서는 명문화된 기준규정에 따라 계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문제는 그러한 피해 기준을 매년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률이나 부동산가격 상승률을 적용하여 피해 발생에 앞서 보상이나 손해사정 기준을 개정해두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거의 반년에 걸쳐 지진 발생이 잦은 일본의 정부에서 피해액을 계산하는 수식을 어렵게 입수하고, 전문가들이 연구한 지진피해의 영향이나 분석기법을 파헤쳐서 연구한 결과(포항지진의 경제적 영향 추계 및 정책적 시사점)를 발표(2018년 5월)하였었다.나중에 특별법 제정이나 정부에 보상(배상)액을 요구할 때 이 연구 결과가 최저한도를 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소식에 개인적으로는 보람도 느꼈다.하지만 필자가 주목했던 점은 과거가 아닌 미래였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정책의 하나는 지진피해 지역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지진 체험 학습관을 건설하여 관광 상품화하라는 것이었다.그런데 ‘경북 안전체험관’의 발상은 분명 피해지역인 포항시 더 깊이 말하자면 북구 흥해읍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의 움직임과 올해 최종후보지 선정에 포항이 제외되었다는 소식에 기가 찼다. 이것은 후보지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다.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다. 답은 분명했다. 경제효과보다는 정치효과가 더 컸다는 이야기다. 지역의 모든 정책은 시정, 도정, 국정으로 연결된다. 시정이야 시장이 책임지지만 시의 영역을 벗어난 도정, 국정과 얽히면 정책은 연결고리인 국회의원 정도의 정치력이 중요해진다.포항시가 제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려면 최소한 행정과 정치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만 한다. 적어도 내년부터는 지역의 정치력이 더이상 엇박자가 아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한다.

2023-09-20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홍석봉 대구지사장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원불교는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나타내는 말’로서,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를 지나치게 탐(貪)하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라는 가르침으로 풀이한다.고대 선시에서 나온 말로 고려말의 고승 ‘나옹화상’의 누나가 지었다는 ‘부운 (浮雲)’에서 유례했다. 불교에서 연유한 말이기도 하다.‘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空手來空手去是人生)/ 낳을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 가(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낳는다는 것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이며(生也一片浮雲起)/ 죽는 것은 한 조각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니(死也一片浮雲滅)…./’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쓴 서예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걸려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이 글귀를 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건희 회장도 자신의 집무실에 이 작품을 걸어 놓고 늘 가까이했다. 2021년 이건희 회장과 유족은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손을 채운 다음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뜻의 ‘공수래(空手來),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라는 말을 남겼다.얼마 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는 생전 1조7천여억 원을 장학재단에 기부, 우리나라 기부문화에 이정표를 세웠다.‘영끌’ 등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게 현실이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간다. 욕심 부려야 하등 소용없다. 김연자의 노래처럼 산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20

우리 말이 위태롭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우리 말이 위태롭다.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도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글로 쓰고 말로 전한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느낌을 말에 실어 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세상에 배울 일이 많지만, 말하기와 글쓰기만 제대로 습득한다면 필요한 교육의 절반쯤은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품은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고, 남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하며, 품격을 싣고 안정감있게 표현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양이었다. 사회와 국가가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균형있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도 공동체 구성원의 건설적인 제안과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표현은 말로 해야 한다.그처럼 중요한 말이 흔들린다. 우선, 표현에 논리를 잃어간다. 조리있는 표현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논리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조직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말에 논리가 정연하면, 듣는 사람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쉽게 이해하고 정리된 응답도 가능하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말을 사용하면 논리보다 ‘한 방’을 찾게되어 정연한 표현구조는 힘을 잃는다.‘사이다’라 불리우는 공격포인트를 올리기 위하여 논리쯤은 쉽게 무시하고 만다. 말은 논리를 잃고 논리가 빠진 표현은 질서를 잃는다. 심각해야 할 사회적 담론을 단답형 공격형 어조로만 응대하다 보니 누구든 일방적 외침에만 의지할 뿐 의사소통에서 배우거나 얻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말이 품격을 잃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소통과정에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수다한 정책적 아젠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정치권은 우리 말을 훼손하고 격식을 잃게 만든다는 면에서도 책임이 크다.정치에도 공격 뿐 아니라 조정과 숙고, 협상과 타협의 묘를 기해야 할 가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언사를 직선적인 공격으로만 채우다 보니 우리 정치인의 언어는 품격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만 있다. 말이 격식을 잃어가면서 국민의 마음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민 앞에 노출이 빈번한 정치인의 언어는 시급히 그 품격을 가다듬어야 한다.말이 안정감을 잃었다. 보수도 진보도 자신들의 생각조차 안정감있게 전하지 못한다. 공격의 다급함과 수비의 분주함에 쫓기다 보니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생각을 다듬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정치권의 불안정하고 일회적인 언어의 난무를 날마다 만나는 국민도 의견을 조리정연하게 간추릴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공동체의 언어가 논리와 품격, 그리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선 정치권이 책임감을 느끼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 말의 높은 격조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국민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모두 중요하지만, 언어의 품격과 자존심만큼 우리의 바탕을 확인하게 하는 소양이 다시 있을까.

2023-09-20

기미일주(己未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여섯 번째는 기미(己未)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와 지지(地支)의 미토(未土)는 토(土)기운으로 뜨겁고 메마른 흙이다. 또한 정원이며 작은 텃밭이다. 동물로는 황금 양이다.기미일주는 항상 부지런하고 분주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며 독립적이고, 성격은 온화하다. 저돌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개척정신, 투쟁심, 명예심이 있어 어려움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칠전팔기의 각오로 값진 성과를 얻어내는 자질이 있다. 대체로 사회적인 일에는 끝까지 이루어내는 힘이 있으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은연중에 남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노련하지 못하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엄청나다. 허나 한 번 감정이 격해지면 물불을 안 가리고 울분을 터트리지만 항상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특유의 배짱과 뚝심, 용기로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하며, 자기 개발에도 충실한 사람들이다. 항상 부지런하고 분주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늘 공부를 많이 하고 교양을 쌓고 정신수양도 많이 한다. 손재주가 남달라 전문기술 분야로 진출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기미(己未)는 음기운인 토(土)이며, 흙이다. 흙은 만물을 낳아서 자라나게 하는 품성이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정화하기 때문에 더러움에서 깨끗함을 창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채근담 전집 2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굼뱅이는 몹시 더러우나 매미로 변하여 가을 바람결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으나 반딧불로 변화하여 여름밤 밝은 빛을 발한다/ 그러므로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늘 어두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굼뱅이는 징그럽고 더럽지만, 매미는 깔끔하다. 썩은 풀은 냄새나고 더러우나, 반딧불은 황홀한 빛을 낸다.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다. 매미는 땅 속에서 굼뱅이로 7년을 살다 매미로 된 후 일주일에서 삼주일 살고 죽는다. 반딧불의 알이 썩은 풀더미 속에 떨어지면 반딧불은 썩은 풀을 먹고 자란다. 여름밤의 반딧불은 무척 아름답다. 항상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씨앗은 땅 속으로 들어가 싹이 되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땅의 어둠을 견디어 낸다. 고난을 참아내면서 찬란한 결실을 이루어내는 것이다.인간의 마음도 그냥 내버려두면 욕망의 싹이 자라 어느새 잡초로 우거진다. 탐욕이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굼뱅이에서 매미로, 썩은 풀에서 반딧불로 탈바꿈하는 것과 같이 비록 지금 힘이 들지만 과거와 현재의 미혹과 속됨에서 벗어나 밝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배움과 수양을 통해 항상 깨어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기미일주의 남자는 배우자 덕이 없는 편이다. 밖에서는 무골호인이나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폭군 기질이 있다. 일복이 많아 분주하며 남의 일에 많은 신경을 쓴다. 여자는 고집이 있고 남자 알기를 우습게 보는 기질이 있다. 남편 복보다는 사회활동을 하는 게 적격이다. 남녀 모두 늦게 결혼을 하면 좋다. 사회적인 성공이 있더라도 배우자와 갈등이 있기 쉬우니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기미일주의 미(未)는 동물로 양(羊)이다. 소위 ‘사막 위의 별’이라 한다.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양(羊)의 기운은 가르치는 것과 돌보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거기다가 천간 기(己)라는 기운은 뻗어주고 확산하는 양(陽)의 기운을 수렴해서 챙기는 음(陰)의 기운으로 변동하는 변곡점의 기운이다. 사막의 안내자처럼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기운이 있다. 화수분 같은 사람이다.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사.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 해”라고 여우가 말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마르지 않는다. 땅 밑에서 물이 계속 솟아 올라오는 분지(盆地) 즉, 남방의 사막 오아시스가 바로 화수분이다. 오아시스는 원하는 일, 원하는 곳을 향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기미(幾微)이지 완성은 아니다.기미일주는 기운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다. 기미년(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의 억압에서 분연히 일어난 한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전개된 3·1운동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나아가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에 새로운 자각과 힘을 주어 민족 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중국에서는 3·1운동 영향으로 1919년 5월 4일 중국 북경 학생들이 일으킨 반일투쟁,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학생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 번진 소위 5·4운동이다.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등 각계각층이 참여해 서구 열강의 불공정한 태도에 분노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 행동이었다.한반도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중국은 5·4운동을 전개했지만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중국은 공산주의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민주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어 시민들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반면 독재체제에서는 국가의 권력이 우선되므로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시민의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해야 할지 자명하다.

2023-09-20

파랑새를 찾아다녀도 괜찮아

정미영 수필가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나에게도 그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년 시절부터 토끼풀이 모여 있는 풀밭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행복을 상징하는 앙증맞은 세잎클로버는 강변에 오보록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손바닥에 작은 잎을 나비 모양으로 펴놓고 들여다본다. 문득,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떠오른다. 마테를링크만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자, 그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나는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발간한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동화인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원래 희곡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 대부분이 중역본이거나, 원작을 짧게 요약하거나 동화로 고쳐 쓴 각색본이다.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다. 내가 기억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어로 중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틸틸과 미틸은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한참을 찾아다녔던 파랑새를 마침내 집에서 찾게 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줄거리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일 마지막이다.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내 품에 안긴 행복을 남에게 나눠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틸틸과 미틸은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파랑새를 기꺼이 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의 품에서 파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얼마 전에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상북도교육청 영일도서관에서 특강할 때였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는 첫날이었다.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것 드리고 싶어요”라면서 네잎클로버를 건네는 것이었다.나는 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네잎클로버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기가 조심스러웠다.“어머나, 이런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괜찮겠니?”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순수한 학생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내 마음이 행복했다.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인류, 사회, 가족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된다. 그런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면서.그렇다면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것이 가끔 삶의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틸틸과 미틸, 네잎클로버를 선물한 학생처럼, 타인에게 행운이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조던 피터슨이 말한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은 아닐는지.

2023-09-20

線넘은 이준석의 TK비난, 이유가 뭔가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총선(4월 10일)이 다가오면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대구·경북(TK) 비난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지지기반인 TK를 공격해서 뭔가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치러진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좌파진영이 TK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4·15총선을 코앞에 둔 2020년 3월 6일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를 통해 코로나 발생 원인을 대구시민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는 막말을 했다. 좌파시인 김정란은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라고 조롱했다. 당시 이런 발언들은 TK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좌파진영의 결속력을 높이는 도구가 됐다.이준석은 최근 MBC 정치대담 프로에 출연해 단골 비난 메뉴인 ‘TK 현역의원의 수준’을 언급하면서 TK지역민들이 마치 일반국민과는 동떨어진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그는 ‘TK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사회자 질문에 “요즘 들어 여론조사 기사를 보면 항상 붙는 2개의 문구가 있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층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어쩌고 저쩌고, 이게 모든 여론조사에 들어가 있는 문구”라고 대답했다. 마치 TK지역이 60대 이상 노인세대와 함께 타지역과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급한 것이다.이준석은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그 사례로 들었다. 노인세대와 TK지역에서만 흉상 이전에 대한 찬성률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경우, 항일투쟁에 앞장선 것은 맞지만, 러시아 스탈린체제에 부역한 공산당원이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는 유사시 북한과 최일선에서 맞서 싸워야 할 육사생도들이 매일 공산주의자 조형물을 보면서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본다.이준석은 한때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청년정치인의 역동성을 대변했다. 그는 대표로 취임한 이후 당의 외연을 호남까지 확장시키면서 국민의힘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 박지현의 성과도 대단하다. 민주당내 팬덤정치와 86그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박지현도 최근 단식 중이던 이재명 대표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표리부동하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청년정치인들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이준석 전 대표도 잘 알겠지만, TK지역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산실이다. 6·25전쟁 때는 북한과 중국공산당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는 TK지역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자유와 민주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탄생할 수 없었다. 이 지역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정치적인 판단대상이 아니다. 이준석이 정부·여당에 대해 비판일색인 다양한 방송 대담프로에 출연해 TK를 타깃으로 비난을 퍼붓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2023-09-19

세계 명주 안동소주

우정구 논설위원 안동소주의 세계화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구상하는 주요 사업의 하나다. 이 지사는 “안동소주는 세계 명주라 부르는 스카치위스키와 중국의 백주, 일본 청주들과 같이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오랜 전통의 술인데도 너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지난 2월 그는 안동소주 업계 대표들과 함께 스카치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스카치위스키의 성장 노하우 등을 벤치마킹하고 안동소주의 세계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국내서만 판매되는 안동소주를 세계시장으로 진출시키겠다는 그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도청 내에 전문가로 구성된 TF팀도 가동했다. 민속주인 안동소주를 국제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우리 고유 민속주가 단숨에 세계화 문턱에 들어서진 않겠지만 한류 분위기를 타고 국제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이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15일 경북도는 라오스를 방문해 현지 수출입공사와 안동소주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안동소주의 해외 진출의 물꼬가 조금씩 열리는 조짐이다.기록에 의하면 안동소주 1281년 일본정벌을 위해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한달동안 머물 때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1494년 만들기 시작한 위스키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진 술이다. 특히 안동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증류식 방법으로 제조돼 45도의 고도주이면서도 뒤끝이 깨끗해 인기다. 안동지역 명문가에 의해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전수돼 온 것도 술의 품격을 높여준다. 1987년 안동소주 제조법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88년에는 국가지정 8대 민속주로 지정됐다. 세계 명주 안동소주를 상상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19

외로움의 총합을 늘리지 않는 철도망으로

강지우 SF평론가 지난주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다. 40% 내외의 열차가 운행 중지되었다. 필자도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급하게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파업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은 수서행 KTX 운행, 궁극적으로는 KTX와 SRT의 통합 운영을 통한 지방 소외 해소다. 9월 초부터 포항역에서도 SRT를 탈 수 있게 되었으나 하루 2회 운영에 불과하며 대신 부산-수서 SRT 노선이 줄었다. 결국 지방민들이 겪는 불편의 총량은 줄이지 못한 채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기인 셈이다. 변두리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교통수단의 발달이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 갈 뿐”이라던 한 작품이 떠올랐다.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김초엽 작가의 베스트셀러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성간여행이 일상적인 우주 개척 시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안나는 먼저 이사한 가족을 따라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려 한다. 그런데 슬렌포니아로 향하던 ‘워프 노선’이 훨씬 빠른 ‘웜홀 통로’의 개발에 밀려 운항을 중단한다. 슬렌포니아 근방에는 웜홀 정류장이 없다. 별안간 안나와 가족은 빛의 속도로 가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거리로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안나 말고도 이산가족이 적지 않았지만, 우주 연방 정부는 그 외로움들을 무시한다. 그들을 일일이 고향으로 보내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제주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보통 서울이나 인천쯤으로 생각하지만, 제주도민의 체감상 더 먼 곳은 대전이라고 한다. 대전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포항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고속철을 타도 오송이나 대전을 거쳐 크게 돌아가야 하는 광주는 서울보다 40분 더 멀다. 2004년에 우리나라에 고속철이 처음 놓이고 20년이 넘도록 영호남을 직통으로 잇는 고속철도가 없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영호남의 오랜 갈등과 불균형한 발전은 이런 상황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최근 들어서야 진주-광양, 부전-마산 등의 노선이 이어지고 있다. 달구벌 대구, 빛고을 광주의 첫 글자를 따 두 도시를 잇는 ‘달빛고속철도’도 2030년 개통 예정이다. 그런데 수요와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려워 특별법 제정까지 필요하다고 한다.지난 6월 윤 대통령은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착공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보다 촘촘한 교통인프라 구축이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어느 곳의 교통을 먼저 확충할 것인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지방이 소외되지 않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리지 않는 교통인프라는 기술의 발전이 아닌 인간의 고민으로 이뤄갈 수 있다.

2023-09-19

‘나’의 영향력

개강이다. 시간 강사라는 특성상 한 여름을 일 없이 지내다 간만에 강의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무척 피곤하다.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유창한 척 말을 하자면 내가 마치 약장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첨단 기술이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글쓰기는 여전히 필요한 역량이라고 그러니 수업에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을 하고 있자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아마 이 피로감에는 한동안 하지 않았던 강의를 다시 재개하면서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학생들과 새롭게 한 학기를 시작하려니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고, 이전에 했던 강의 자료를 새로 배정받은 학과에 맞게 다듬고 고치는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 강사를 하기 전에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학생들에 맞춰 설명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수업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사전 작업을 요구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선생이라는 직업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나는 어떤 대답을 해주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이가 학기가 끝날 즈음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면 꽤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아서, 간혹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노력에 비해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마주할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만약에 조금만 더 재밌게 수업을 했더라면, 혹은 조금만 더 잘 설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이 아이의 미래가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책임감. 혹은 사명감. 아마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선생도 많이 만났지만, 나쁜 선생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개중에는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할 수 없다. 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가하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 안달이었던 걸까.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던 게 내 인생에는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 알려주고, 귀찮은 질문들에도 꼬박꼬박 웃으며 대답해준 좋은 선생님들. 내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계속 가다듬으려 애쓰는 건 그분들의 영향이 클 것이다. 만약 그때 그 순간 그 사람들이 해준 말과 행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 또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자꾸만 돌이켜보게 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물론 나는 아직 완벽한 선생님은 아니다. 그냥 조금 친절하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적어도 나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믿을 수 있고, 때로는 기댈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이건 내가 선생이라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가진 소박한 꿈이 아닐까 싶다.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쁜 선생도 있고 좋은 선생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소수의 사람들을 전체로 오해하곤 한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는 것임에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잣대 삼아 타인에 대해 판단하길 즐긴다. 당장 인터넷 뉴스의 댓글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의 인식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미치게 될지. 인간은 모두 사회적 동물이기에, 크건 적건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쯤 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삭막해진 세상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2023-09-19

어떤 답은 듬뿍듬뿍

최근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작업실에서 돌보는 식물에 관한 것. 이 생명력 넘치는 푸릇푸릇한 존재는 작업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다. 보고만 있어도 숲에 온 것처럼 충만해지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매일 부지런해진다. 작업실에 들르지 않는 날이면 화분들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무엇보다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인초는 하룻밤에 거대한 잎을 피워 내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잎이 다음 날이면 누렇게 변해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너희들, 정말 묘하게 예민하고 조용히 강인하구나. 여린 잎사귀를 매만지면서 생각한다. 식물 키우기는 정말이지 어렵다고.작업실에는 꽤 많은 식물이 있다. 키가 나를 훌쩍 넘어서는 여인초부터 고무나무, 홍콩야자와 크로톤, 고려담쟁이, 선인장, 다육식물까지. 작업실을 함께 꾸려가는 시인과 의기투합하여 하나씩 들여놓은 것이다. 식물에 대해 잘 알아서 들였다기보다 앞으로 알아가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사실 나는 뭔가를 키우는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혼자 산 지 십 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도 서투르다. 나의 반려견도 제대로 살피는 건지 알 수 없다. 식물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큰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공생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관심과 관찰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혀를 쯧쯧 찰지도 모른다. 뭔가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얼마 전부터 해피트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 놓여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던 녀석이라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나는 해피트리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놓아도 보고, 통풍을 위해 창가에 두고, 비 오는 날 밖에 내어놓아도 딱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식물 고수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해피트리가 갑자기 이렇게 시들시들해졌는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였다. ‘과습인 것 같습니다.’아, 그렇다. 식물을 키우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물의 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의 작업실에서 키우는 율마가 시들시들하다고 했을 때, 나는 ‘비 오는 날 내어 놓아라’는 답을 준 적이 있었다. 나의 식물들도 그렇게 해서 몇 번 살려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조언대로 동생의 율마는 비를 흠뻑 맞았고, 다음 날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했다. 뿌리까지 모조리 썩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신경 써서 물을 줬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해피트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녀석은 죽어버리고 말았다.그렇게 한 식물을 보내고, 나는 다른 식물들에 물을 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흙을 만져서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절대 물을 주지 않았고 분무도 조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크로톤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번 주 비 오는 날에 밖에 내어놓았던 게 문제였나. 작업실의 공기가 너무 습한 걸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돌 하나를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토요일 아침, 작업실 문을 여니 내가 그렇게나 고민했던 크로톤이 잎을 활짝 펴고 살아나 있었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친애하는 시인이 간밤 다녀간 모양이었다. 살펴보니 작업실 모든 식물에 듬뿍듬뿍 물을 준 흔적이 있었다. 식물들은 파릇파릇해졌고 잎사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답은 물이었다. 물을 아끼는 게 아니라 더 줘야 했다. 그간 엉뚱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물을 넘치게 주면 죽는다. 그러나 물을 주는 것을 두려워해도 안 된다.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그것은 비단 식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나를 지나쳐 간 무수한 관계들을 떠올렸다. 사랑을 아끼고 상대가 메마르지 않을 정도만 관심을 표했던 지난날의 나를 상기했다. 마음을 모두 쏟아 부으면 상대가 떠나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가 시들해진 것을 발견하면 당황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듬뿍듬뿍 물을 주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나는 상대를 떠나보내야만 했다.여전히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실패할까 봐 쉽게 겁을 먹고 해결 방식이랍시고 엉뚱한 대책을 내어놓는다. 어떤 순간은 일상적이지만 새삼스럽다. 식물로 인해 골치가 아프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운다. 햇볕과 물과 바람을 듬뿍듬뿍 맞고 나도 식물들도 자라나는 중이다.

2023-09-19

정주하고 싶은 경북을 위하여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경상북도는 지난 9월 14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비전 선포식에서 ‘청년이 살고 싶은 경북시대’ 실현을 위한 ‘경북형 6대 프로젝트’ 구상을 발표했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중에서도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기업에 취업해서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경상북도, K-U시티 프로젝트’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지역 인재의 유출은 비단 경상북도뿐 아니라 모든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일자리 부족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자리도 결국 지역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서울과 수도권이 지역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지역의 자율적인 생태계가 붕괴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중요한 것은 일자리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소프트웨어 자체를 바꿔 나가는 일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육 및 문화예술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지역 주민들이 물질적·정신적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인 생산인구 증가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정주하는 선순환 모델은 만들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경상북도의 K-U시티 프로젝트가 지역 생태계를 복원하고 정주하고 싶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외국인 유학생 1만 명 유치. K-드림(Dream) 프로젝트’에 관한 부분이다.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심각한 저출산 기조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이미 대부분의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문제는 이렇게 대학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한국어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야 실적도 되고 등록금 수입도 늘어나니 외국인 유학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턱이 낮으니 한국 대학은 진지하게 배움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체류를 위한 수단 정도로 여겨지게 된다. 많은 동료 교사·강사들이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여 강의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외국인 유학생 1만 명 유치를 진지하게 준비하고자 한다면 언어 능력과 학습 능력이 충분한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 그렇게 입학한 유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도울 전문 상담 인력, 그리고 부족한 한국어 학습을 담당할 한국어 교육 전담 인력의 확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외국인 유학생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학 교육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2023-09-18

이제는 선행 기사가 줄을 잇기를

김규인수필가 한 사람은 수레를 끌고 다른 사람은 우산을 씌워주며 나란히 걸어간다. 자신의 한쪽은 비를 맞으며 우산을 씌워주는 여인의 따뜻한 마음이 뜨겁게 다가온다. 수레를 끄는 노인의 느린 속도에 맞추어 함께 한참을 걷는다. 남을 위해 함께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몸은 비에 젖어도 마음은 따뜻한 선생님의 선행에 우리는 감동으로 물든다.그동안 여당과 야당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로 피로감은 늘어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우리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한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다툼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를 힘들게 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정치가 권력만을 바라볼 때 서민들의 삶은 기댈 곳을 잃는다.이제는 감정 노동자가 되어버린 교사는 점점 죄어오는 족쇄를 풀고자 거리로 나선다. 동방예의지국이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집요한 일부 학부모들의 요구는 교사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교사들의 현실에 우리는 너무 무기력하다. 학생들의 잘못한 행동마저도 지적할 수 없는 교사의 오늘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방송과 신문은 연일 새로운 기사를 쏟아낸다. 신문 지면을 가득 메운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 서민들에게 ‘묻지마 살인’, ‘성폭력을 위한 폭행과 살인’은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수없이 달린 감시 카메라를 피해 사건은 줄을 지어서 일어난다.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이어 일어나는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학교 앞 횡단보도 위에 드러눕기. 공공장소에서의 살인 예고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됨으로써 각종 범죄의 학습장이 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언론의 보도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독자들이 보고 읽도록 만드는 자극적인 표현이 범행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선행 기사를 찾아보니 길에 쓰러진 응급 환자를 구조한 버스 기사,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한 해군과 축구 코치, 꾸준하게 봉사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인기 연예인들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그들의 기사를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싣는다면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선행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신문과 방송에 실린 기사는 우리의 시선을 선행으로 쏠리게 하고 우리가 남을 위해 도와주는 것을 친숙하게 만든다.찾아보면 선행도 사건과 사고에 뒤지지 않게 많다. 물론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기사는 쓰기 나름이 아닐까. 선행이 다 같을 수는 없고 돈 많은 사람이 하는 선행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행이 더 많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신문 지면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작은 일 하나에도 소망을 품고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더 많이 웃기를 빈다.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밝아지면 서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리니. 이번 한가위에는 이웃과 풍성함을 나누는 그런 명절이기를 소망한다.

2023-09-18

‘저영향개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대구경북지역에는 9월 15일 전후와 이어진 주말동안 50㎖ 이상의 많은 가을비가 내렸다. 그리고 일최고 30℃ 이상의 날도 점차 줄어들면서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 아마도 2023년 여름은 역대 유례가 없는 극한의 집중호우와 산사태 그리고 폭염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달갑지 않은 역대급 기록은 내년에도 여지없이 깨질 것으로 우려된다. 계속 악화된 기후변화 문제가 완화될 여지는 별로 없고 반대로 무분별한 개발압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파멸의 길로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고, 브레이크를 작동해야 하듯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길은 내고 ‘저영향개발(LID)’이라는 신형 브레이크를 작동해야 한다.‘저영향개발’은 도시발전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빗물관리, 자연적 물의 침투 및 증발, 그리고 토지의 원래 생태계 복원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이를 통해 홍수위험 감소, 수질향상, 도시 열섬효과 완화 등 우리가 부딪친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더 나아가 ‘저영향개발’은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홍수피해 감소와 물관리 비용을 줄여 인프라 유지비용을 절감하고, ‘저영향개발’ 구역은 더 나은 생활환경과 자연경관 제공으로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가치를 높인다. LID 관련 프로젝트는 건설 및 유지보수 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자연환경 복원은 관광산업도 활성화시킨다. 환경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기업들은 LID 지역에 투자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처럼 ‘저영향개발’은 지역경제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촉진을 기대하게 한다.‘저영향개발’은 특히 물순환 관리에 보다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LID는 지표수의 자연적 침투를 통해 지하수 재충전을 강화하며, 지표면 처리를 통해 홍수 위험을 줄이며 빗물 유출을 제어한다. 자연스러운 여과 과정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물의 질을 개선한다. 아울러 습지의 보호와 복원을 통해 자연의 물순환을 지원한다. 결국 LID는 물의 지속 가능한 관리와 지역 생태계의 건강을 향상시킨다.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는 빗물정원, 침투지와 같은 LID 기술을 도시 곳곳에 구현하여 홍수와 물 오염을 줄였으며, 워싱턴주 시애틀시는 ‘도시의 녹색 인프라’ 계획에 LID 프로젝트를 도입하여 물 순환을 향상시켰다. 호주 멜버른시는 도시내 빗물을 수집, 재사용하고, 녹색공간을 확장하여 도시 열섬효과를 줄였다. 이처럼 이들 도시는 ‘저영향개발’ 전략을 도입하여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며 도시의 생활 품질을 향상시켰다.이들 도시처럼 대구경북에 ‘저영향개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법적기준 제정으로 LID지침을 확립하고, 도시계획에 LID를 통합하여 초기개발부터 반영해야 한다. 아울러 재정지원 확대를 통해 LID 프로젝트 활성화, 시민교육 및 홍보강화, LID 프로젝트 성과 모니터링 및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202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