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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이 만난 두 거장, 이문열과 박명재

등록일 2024-06-20 15:49 게재일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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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천주(南川州 옛 이천의 지명) 설봉산자락 마장면 장암리의 ‘부악문원’으로 발길을 향했던 적이 있다. 

문원은 우리시대의 대 문호이시며 서울장안의 지대를 '황금종이'로 탈바꿈 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하시고,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 초명(初名)은 이열(李烈)이신 이문열 대문호(작가)께서 인세로 장만하여 자신의 집필실부터 창작인을 위한 객사까지 겸비한 곳이다. 후학도 양성하고 있어 일명 ‘이문열 학숙(學塾)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말엔 고속도로가 늘 저속도로 되어 대형 주차장이 된 듯 한 도로에서 거의 긴급한 시간을 초조하게 허비하다가 약속시간 보다 30분을 넘게 지체하여 도착을 했으니, 도로 탓으로 돌리기에도 영 체면이 서지를 않았지만, 몇 달 전부터 굳게 한 약속을 속수무책으로 준비성이 없었음에 안면이 제대로 서질 않았다. 도를 넘는 실례를 범한 것이니 멋쩍었다. 

여하튼, 정원에는 참 붕어 몇 마리가 노니는 아담한 연못이며 그림 같은 낙락장송 몇 구루가 우뚝하니 서 있었고, 이미 문장으로 일가를 크게 이룬 자타공인하고 남은 두 대가이신 이문열 선생님과 영일만이 낳은 수재 동천東天 박명재 대감을 30분 넘도록 기다리게 한 위인이 바로 이 몸이었다. 

동천 선생과의 지중한 인연은 예전 포항 영일만 최고봉의 암자로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기도 영험처'로 경향 각지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원효성사와 자장율사께서 머물던 천 년 전의 초막인 자장암에서였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던 때에 전례 없던 전염병이 창궐하여 지구촌에 돌았던 근자의 지난시절, 일기도 고르지 않던 날 한 치의 앞도 구분키 어려워 가랑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가물가물 물안개가 자욱했던 그날, 예측불허의 인생길속 같은 운제산 자락 구비구비 벼랑 끝의 암자에, 급작스럽게 지나간 한 시절엔 이름 꽤 높은 고관으로 명예롭게 예편하시고 늘 나랏일에 바쁜 현직 국회의원께서 간당간당 떨어지기 직전 제비집처럼 매어달려 아슬아슬하고 험했던 험한 길을 방문하겠다니, 그 때의 순간 부족한 이 사람은 하필 그 좋은 날 제치시고 이런 시기에 이곳을 오시어야하나 하는 오지랖 염려도 없지를 않았으나, 예전 같으면 당상관인 이조판서(제9대 행정자치부 장관)를 지내고 대제학(대학총장)까지 역임한, 일흔에 다다른 현역 국회의원이 지나는 길에 들르겠다는데, 이를 마다하는 것도 크게 예의를 벗어나는 것 같아 엉거주춤하며 맞이했던 분이 동천東天 박명재 대감이었다.

그 때의 쉼 없는 폭포수 같은 지혜의 명철대오를 각인케 해주는 감로설법에 매료되어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져오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 시대의 거두들인 두 어르신의 당당한 존재감을 보여주듯이 문원 푸른 정원 앞마당에는 그 사계절 푸르른 낙락송이 마치 두 분 인 양 우뚝 서있었고, 한때 박 대감이 행정자치부 장관시절 인사과장직의 중요 요직에 발탁한 여장부로 현 이천시통령이 지불한 쌀 맛, 밥맛의 질이 전국에서 내놔라하는 널리 알려진 집에서 이문열 대문호와 박명재 대감을 모시고 이밥에 질긴 나물(?)로 배를 불렸던 그럭저럭 행복한 하루였다. 또 젊은 시절 만나 평생을 교류하고 있는 두 분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우정이 어떤가를 되새겨 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부악문원 수 만권의 서책 앞에 눈이 휘둥그레하여 있던 찰나에 이 선생 댁 여사님께서 지나는 말씀으로 "아끼고 귀중한 물건, 그러니 이보다 양질의 책은 경상도 땅인 영양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 광산문학관에 내려 보냈는데 근자에 이르러 화마에 모두 다 타버렸다"고 하셨다. 관련 인사들의 용심부족 탓이든, 관리 소홀 탓이든 간에 이를 듣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 올라 터지는 듯 했다.  

문원을 한 바퀴 돈 후 이문열 선생님으로부터 이런저런 내심을 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낙향이었다. 이 대문호께서야 고향으로 내려가 말년을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마무리하심도 한 생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 인구에게는 아직도 이문열 선생의 고전적이고 인문주의적이며 그가 발간한 오랜 책의 그 향내가 그저 그립다. 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윽하기만 한 문체를 만나고 싶고, 일필휘지 그의 글을 통해 이 퍽퍽하기만 한 디지털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인간 속마음을 통찰해 봤으면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그의 글을 바라고 기다리는 이들이 적잖다. 그러니 이 대문호께서 심호흡 한 번 크게 하시고 우리 속 심금을 시원하게 울려주길 빌고 또 빌어본다.   

수도권 과밀화는,'재화가 수도권으로만 집중한 현상'도 있겠지만, 서울이 '문화공화국'이라는 것에도 기인한다. 기실, 정책의 부족함과 소홀히 만든 결과일터다. 그 문화공화국도 지금 진보 진영이 죄다 장악했다. 그들의 일방적이고 배타적 편견과 곡해로 인해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이미 대가 중에 대가인 선생도 수시로 상처가 났다.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이 세상, 그리고 평가받지도 못하는 이 사회가 지랄 같다.

사람은 누구든 일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얘기, 그러니까 평소에는 오히려 더 가슴 깊이 묻어 두게 되는 하나의 얘기를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좀 어눌한 듯 하지만서도 이 선생께서 내뱉은 속내 한마디가 또박또박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이고 일도양단 식으로 우리 편 네 편 나누어 이전투구 하듯 흑백논리만 무성한 그 ‘SNS 문체’로 어찌 우리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의 '웅장미학'을 당해낼 재간이 있을까.

1980년대 우리 세대는 책은 좀 덜 읽고 데모만 해 인문학적 사고가 다소 부족했었음을 자인한다. 근데 그 모자람은 평생 갔다. 그렇다면, 2024년 지금은 어떤가. 책은 온데간데없고 여길 보나 저길 보나 온통 SNS 광풍이 휩쓸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나불거리기만을 거듭하며 편이나 가르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 그리고 어느 새 그들이 주인공이 되가는 시대가 됐다. 

이 사람이 구닥다리여서일까. 근래 들어 인문학적 사고를 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간혹 생각한다. 인문학이 좀 더 밝고 건전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하나 더 욕심낸다면, 그 인문학의 영역 확장 역할을 수고스럽지만 이 대문호께서 좀 해주시면 더없이 좋으련만. 

아 참, 솔직히 국보 같은 아니 국보 그자체인 국민작가에게 그에 걸 맞는 대접도 좀 해주라. 우리 시절에 그이 덕분에 사색의 위대함을 이토록 깨닫지를 않았는가.

이문열 선생님께서 그날 부악문원을 떠나는 이 사람에게 들려주신 천둥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들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탄탄 (전)불교중앙박물관장·현 동국대(와이즈캠퍼스)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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