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눌렀다. 둥근 기계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며 ‘작동기를 눌렀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묻는다. 그렇게 눌러야 하는 거냐고? 신호가 바뀌지 않고 있어 당황했다고 하신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횡단보도의 불이 초록 불로 바뀐다고 이야기했더니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다고 한다. 굉장히 놀라셨나 보다. 나도 그랬다.
이 년 전이었다. 낯선 동네를 처음 가는 날이었다. 앱을 통해 노선을 찾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야 해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퇴근 무렵의 강변로는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로 넘쳐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런 때는 아무리 여러 번 확인을 하고 왔어도 마음 한편은 늘 수선스럽다. 족히 2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한 사람이 전신대 옆에 있는 둥근 물체를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둥근 물체를 보니 보행자 신호 작동기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신문물이었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는 보행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 횡단보도 신호를 바꾸는 장치이다. 통행이 적은 도로나 교차로에서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버튼을 누른 후 약 20초 정도를 기다리면 초록 신호로 바뀌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르지 않으면 마냥 기다리고 있어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다. 철저히 보행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작동기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변화를 원할 때 그 결정을 하고 안 하고는 온전한 나의 의지이다. 작동기를 눌러야 신호등의 색이 변하듯이 내가 결정하고 움직여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이곳으로의 이사 결정이 그런 거였다. 연고가 없는 낯선 곳이라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에 생각은 많아지고 길어졌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주변의 만류도 강경했다. 오랜 동안 아니 거의 전 생애를 살아온 도시를 떠나 낯선 장소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커다란 변화 앞에서 오랜 시간 고민 후 마음을 굳혔다.
‘잠시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지만 바로 결과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옆의 아저씨는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눈길을 자꾸 주고 있다. 타고 갈 버스가 올 시간이 여유있는 나는 비교적 느긋하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생활에 젖어들고 적응하기 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다. 가끔은 향수병에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했고, 많아진 시간 앞에 놓여있는 무료함에 우울감이 들기도 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수필반에 등록했는데 강사분이 대학교 선배셨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과 변화가 시작되었다. 선배님을 통해 시조 쓰는 분들을 만나고 삶의 반경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살아가면서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누르듯이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 앞에 놓이게 된다. 변화의 결과를 알 수 없기에 그 선택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변화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늘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동기를 누르지 않으면 좋은 쪽이든 아니든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때론 늦게 눌러서 타고 가야 할 것을 놓칠 때고 있었고, 일찍 건너가 여유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드디어 ‘건너가도 좋습니다’ 라는 신호가 들렸다. 아저씨는 급한 걸음을 옮겼다. 막 정류장을 출발하려는 버스에 간신히 탑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쓰고 있던 양산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타고 가야할 버스가 저만치서 오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