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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까마귀

등록일 2025-12-14 10:36 게재일 2025-12-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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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시조시인

엷은 커텐 사이로 가만가만 들어온 햇살이 눈을 간지럽힌다. 빨리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아침의 행복한 순간이다.

맑은 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희망적이어서 좋고,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마음을 안정시켜서 좋다. 바람에 밀려 모양을 바꾸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이런 소소한 기쁨을 깨뜨리는 존재가 나타났는데, 바로 까마귀이다. 이 새는 가볍게 짹짹 대는 참새나 까치 소리에 익숙했던 내 잔잔한 하루의 시작을 흔들고 있다.

까마귀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 중 강원도에서 동아리 활동이 끝나는 날 오대산을 들렀다. 산 초입에 무리 지어 앉아 있던 새까만 새들을 보았고, 그 울음 소리를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그 새는 몸집도 상당히 컸다. 까마귀를 흉조라 말했던 어른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온통 검은색인 모습은 묘하게 위협적이었다. 꽤 오랜 동안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숲에서 살던 까마귀들이 도심에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숲의 개발은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았고 먹이를 찾아 도시로 나오게 된 것이라 했다. 열섬으로 인해 도심지의 온도가 산이나 들보다 높은 것이 그 새들이 도심지로 오는 이유라고 설명한 글도 있었다. 생태계의 변화는 까마귀의 생활방식조차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는다. 자연적인 성장으로 겪는 것도 있지만 달라지는 환경으로 오는 것도 있다. 어떤 변화는 작고 미세하여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는 반면 그 흐름이 격렬해서 몸을 맡기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발전의 속도가 빨라서 일상적인 삶의 양상도 많이 바꾸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은 가히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또한 더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고, 연결된 다양한 사물들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데이터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 데이터들을 모아 클라우드(Cloud)에 저장하고 인공지능으로 효과적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조차 그 빠른 속도를 맞추어 따라가느라 바쁠 것이다.

번역일을 하는 친구가 챗GPT를 사용하면서 느낀 AI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조만간 사라질 직업군 가운데 작가도 있다는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는데 며칠 전 뉴스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이 실시한 설문 조사가 소개되었다. 영국 소설가 10명 중 4명은 생성형 AI 등장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했다. 또한 85%의 소설가는 생성형 AI로 인해 향후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 소설가들은 장차 직업이 사라질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61%는 여전히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사용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민감한 순응은 변화에 가장 어울리는 대처법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배우기 힘들다는 이유와 첨단 기기를 많이 쓸 일이 없다는 이유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양한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그것을 활용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고 느꼈지만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며, 이제는 나이도 들었으니 조금은 모른 척하고 살아도 되지 않았나 하는 적당히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생활은 앞으로도 가속이 붙어 상상을 넘어서는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미 정보화시대는 빠른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에 빠르게 순응할지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배우고 익히지 않는다면 책임도 내 몫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생활터전이 위협받자 서식지를 바꾼 까마귀의 순응의 지혜가 마음에 다가왔다. 생존을 향한 열정을 보이는 모습이 처음으로 위협적이지도 무섭지도 않게 느껴졌다. 필요를 느끼면서도 게으름을 부렸던 나를 달래는 소리로 들렸다. 오랜 동안 미뤄왔던 챗GPT앱을 찾아서 비로소 휴대폰에 깔아본다.

부드러운 햇살이 창 깊이 들어와 아침을 밝혀주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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