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비를 머금어 당장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어두텁텁한 구름 속에 들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전쟁의 기운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두를 풍경으로 만든다. 전쟁의 중심에서 누구와 싸우는지 알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도, 그 어두운 구름의 가장 가장자리에서 삶만은 여느 때나 다름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시선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전쟁의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고, 누구와 왜 싸우고, 지금 어떤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전쟁이 일으키는 찜찜한 분위기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 박경리(1926~2008)가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전에 썼던 ‘김약국의 딸들’(1962)이나 ‘파시(波市)’(1964)는 모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한국의 가장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과 통영에서 이어지고 있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가 그토록 깊고도 깊었기 때문인지, 막상 닥쳤을 때는 무언가 콱 막혀 전혀 명료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던 상처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나서야 터져 나오기 때문인지,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작가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전쟁의 가장자리이자, 작가의 고향이었던 통영의 바닷가에서.
이 중에서도 소설 ‘파시’는 1964년 7월에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당시 화단의 중진으로 성장하고 있던 화가 천경자(1924~2015)가 삽화를 맡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흥 출신인 화가 천경자와 통영 출신의 작가 박경리가 만나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국면인 한국전쟁을 겪는 여성들의 내밀한 역사를 그려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부산의 대청동에서 조만섭이라는 나이 든 남자와 수옥이라는 젊은 여자가 통영으로 들어가는 연락선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전쟁 이전에는 부유하게 살았지만, 전쟁 중에 월남하면서 가족을 모두 잃고 조만섭 손에 맡겨진 수옥의 안타까운 사연은 나중에서야 알려지지만, 박경리 작가의 필체로부터 수옥이 가지고 있는 불안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 스물한 살이나 되었지만 무엇을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이 오지 않는 수옥의 태도는 분명 말 한 마디를 잘못해서 죽어버리고 만 부모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까닭이리라. 그처럼 말 한 마디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수옥을 눈여겨 보고 있던 남자는 그녀를 노리고 접근한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수옥이 겪는 고난과, 조만섭의 딸 명화가 겪는 꿈의 좌절과 관계의 상실이다. 그런 이야기야 전쟁과 상관없이 인간 세계에서 늘 일어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여성들은 종종 소설의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난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공포를 유일하게 목격했던 수옥은 한 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내 수동적인 태도를 버릴 수 없다. 명화는 결혼이냐 유학이냐 하는 문제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끝내 좌중우돌하기만 한다. 그 때문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이 두 여성 주인공은 종종 독자들의 바람을 벗어나 시선의 바깥으로 사라져 풍경이 된다. 그들의 존재가 풍경이 되는 것은 단지 그 존재가 미미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는 박경리가 아닌가.
어쩌면 그들이 풍경이 되는 것은 소설이라는 글쓰기를 통해서는 그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욕망어린 시선으로는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을 다룬 소설이라는 제대로 볼 수 없는 도구로 그들을 보려고 하니, 그들은 풍경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과연 그렇게, 풍경이 된 여성들은 어떻게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송민호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