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는 1930년 한국에서 태어나, 소학교와 중학교를 경성에서 졸업하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던 것은 바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광풍과 패전이라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그가 첫 번째로 쓴 습작이라고 해도 좋을 ‘족보’가 바로 그 시기를 다룬 것으로, 제국주의적 폭력이 극에 다다랐던 1940년대 초 한국인에게 강요되던 창씨개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기억해둘 만한 지점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미술학교를 졸업했지만, 전쟁 동원을 피하려고 당시 경기도청 총무부에서 창씨개명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은 다니 로쿠로라는 주인공이 700여 년이 넘는 가문의 역사를 지키려고 창씨개명만은 거부하려고 하는 설진영이라는 이를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이제 쉰사오 세쯤 된 설진영은 소작미 2만석을 총독에게 헌납할 정도로 친일파로 자신의 가문 외에 아무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창씨개명을 강요하기 위해 윗선의 명령을 받고 그의 집을 방문했던 다니 로쿠로는 설진영의 딸 옥순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술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궤짝 가득 쌓여 있는 족보를 보여주며 성씨의 개명만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그의 태도에 한편으로는 공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답답해 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대단한 것처럼 내선일체나, 창씨개명의 대의를 내세우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목표 달성만을 독려하는 총무과의 과장이나 계장의 이중적인 태도에 반감을 갖는다. 결국 설진영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담당자들은 헌병을 동원해 그의 딸과 결혼하기로 한 남자를 고문하거나, 그의 손주들이 다니는 학교를 압박해서 창씨개명을 하도록 강요하고, 결국 그는 창씨개명 서류를 제출한 뒤 집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창씨개명이나 전쟁공출을 강제했는가 하는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어떤 문장보다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리 민족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을 광복 이전의 가장 어두운 분위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듯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경기도 총무부의 과장과 자신이 대물림한 족보를 지키기 위해 성씨를 바꾸는 것만큼은 거부하는 설진영 사이에서, 이 소설 ‘족보’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우유부단함은 양분된 현실 사이에서 이해를 도모하는 유일한 입장일 수밖에 없겠지만, 과장은 그런 그를 ‘비국민’으로 취급하고, 설진영의 가문 사람들은 그를 총독부의 앞잡이 정도로 취급한다. 친일과 반일 그 중간 어딘가에 끼어 있는 존재인 그는 유일하게 족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는 존재지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중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그의 존재야말로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증언한다.
8월은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뜻깊은 기간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하고 점령해서 식민지로 만드는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해 되새기는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그 쓰라린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그런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비국민’이라는 다른 자리와 다른 목소리로, 마찬가지로 폭력의 역사에 대한 폭로와 이해에 동참한다. 그 역시 기억할 만한 소중한 증언일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