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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행복경영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2024년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을 맞이하며 신년운세를 보거나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다. 필자도 신년운세를 보니 ‘새로운 것을 구하고자 하면 능히 구할 수 있으니, 답답해 하지 말고 밖으로 나서라, 금의환향 할 수 있고 문제들이 쉽게 풀릴 수 있다’라니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즐거운 시작이다. 행복은 희망과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여러가지 요건이 있겠지만, 개인의 가치관, 관심사, 사회적 연결, 성취감, 건강 등 다양한 측면에서 행복을 경험 할 수 있다. 행복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직장생활하는 사람에서 보면 삶의 시간을 일과 회식까지 연결하면 7할이 소요된다고 한다. 직장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삶이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에서는 행복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으며 금년부터 ‘행복중시경영’을 선언하는 기업이 많다.기업에서 행복경영은 조직 내에서 직원들의 행복과 만족을 중시하는 접근이다. 행복경영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겠지만 6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첫째, 의미있는 일이다.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가 의미있고 가치있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안된다면 의견을 수렴하여 제도화하여야 한다. 둘째, 열린 의사 소통이다. 효과적이고 개방적인 의사 소통은 직원들 간의 신뢰를 증진시키며 행복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셋째, 균형 잡힌 업무와 삶이다. MZ세대가 중심으로 가고 있는 요즘 워라밸이 중요한 요소다. 넷째, 자기계발 기회이다. 직원들에게 꾸준한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여 자기계발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과정의 실적을 인사로 연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섯째, 공정하고 인증받는 문화이다. 공정한 대우와 성과에 대한 인증은 직원들의 자부심을 증진시키고 행복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섯째, 리더십의 역할이다. 리더들은 직원들을 지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P사의 행복중시경영은, ‘개인의 성장과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일이다.직원들의 생각과 바람을 파악하고 개인의 성장과 행복한 일터를 위해 2030세대가 직원의 반을 넘어서는 변화된 조직에 맞는 ‘행복경영’을 추구해가는 것이다. 세계 일류기업의 기업문화를 보면, 직원의 성장 비전을 회사가 제시해 주고 도전하면 미래가 보이는 기업이다. 개인의 성장 루트도 직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프로인재상’ 등 회사의 특성에 맞는 인재상의 조건에 이르면 성장과 인증하는 기업문화이다. 기업에서 개인의 행복한 삶을 다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아침에 눈 뜨면 출근 하고 싶은 직장이 행복한 일터가 아닐까.학습과 기회를 공정하게 주고 실적에 따라 보상을 주는 것이다. 개인화 되어 있는 MZ세대 중심조직에서는 기성세대의 팀활동에서 젊은 세대의 개인활동으로 제도적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다.변화된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의 삶, 행복한 직장을 열어가는 길은 시대에 맞는 제도와 개인의 생각과 도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024-01-02

용이 날고 구름이 일어나듯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용의 신령스러움 때문인지 2024년 갑진년의 첫 해돋이는 베일에 가려졌다. 부산이나 강릉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새해의 첫 아침해를 볼 수 있었지만, 영일만과 호미곶 인근 지역에서는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대부분 해맞이를 할 수 없었다. 일출명소에서는 해맞이객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며 부산한 모습들이었으나, 끝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게 되자 서둘러 발길을 돌리거나 아쉬워하는 눈빛이 역력해졌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새해 첫날에 뜨는 해를 맞이하는 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산에서의 해맞이 상황도 비슷했다. 필자는 십수년째 새해 첫날 새벽에 포항의 관문격인 형산에 올라 해맞이를 하곤 했었는데, 올해처럼 해를 못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포항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거나 형산갓바위에 불공을 드리는 등으로 새해 새날의 설렘을 누리는 것 같았다. 약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순 없는 것 같았지만, 나름 뜻있고 진지하게 새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새벽에 일어나 쓴 신년휘호를 산정에서 펼치며 새해의 다짐을 되새겨 보기도 했었다.올해는 갑진년 용의 해에 어울리는 사자성어 ‘용상운기(龍翔雲起)’를 나름대로 선정해 연하장 겸 새해의 바람이나 목표로 삼아 몇가지 서체로 써서 지인 등의 분들에게 나눠줬다. 용이 날고 구름이 일어난다는 뜻의 용상운기는, 전쟁과 대립, 이변 등 격랑의 여울 같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용이 승천하며 빙빙 돌면서 날 때의 힘찬 기운으로 구름이 흩어졌다 모이며 일어나듯이, 매사에 힘차게 용솟음쳐서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청룡은 힘과 행운, 번영을 상징하기에 총선과 사회전반의 흐름,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 국제적인 정세 등에 용의 기상으로 지혜롭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기도 하다.용은 십이지 중 진(辰)은 유일하게 상상 속 동물인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영수(靈獸)로 다산과 농경사회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황제와 지배층 등 왕실 예복에 용의 문양이 자주 새겨져 위엄과 존엄성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갑진년의 갑(甲)은 천간의 첫번째로 큰 나무(大林木)를 뜻하고 진(辰)은 지지의 다섯번째인 토(土)인데 열두 달 중에 음력 3월에 해당되므로 나뭇잎을 싹 틔우는 희망의 흙을 상징한다고 한다. 따라서 2024년은 ‘큰 나무에 새싹이 돋는 희망을 향한 변화와 변혁의 시기’로 ‘혼란을 극복하며 피어나는 희망의 꽃봉오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새해 첫날의 잔뜩 낀 구름이 어쩌면 분쟁과 갈등, 혼란과 딜레마를 예고하는 암울함 인듯하지만, 구름 사이로 비치고 나타나는 밝은 햇살이 화합과 재도약을 모색하는 긍정과 희망적인 빛살로 비춰지리라 믿는다. 그래서 국민의 안위가 평온해지고 국운이 번성해지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2024-01-02

새해에는 꿈과 희망을

어린 시절, 나는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 같이 마법 소녀가 등장하는 만화를 좋아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에 정의롭고 강한 힘까지 가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동경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아닌가.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마트 한복판에 배 깔고 누워 엉엉 울기 신공으로 마법 소녀 변신 장난감을 얻어내는데 성공. 손에 넣은 요술봉을 힘차게 휘두르면서 외쳤다. 악의 무리는 내가 처단한다! 앙큼하게 포즈를 취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무력한 아이였으니. 정해진 학교에 가고 학원을 다녀와서 숙제를 마치고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 잠자리에 드는 삶을 반복해야만 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역시 텔레비전에서 등장하는 소녀들의 달콤한 목소리였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이 잔뜩 있어. 그러니 어린이 여러분, 우리 모두 희망을 꿈꿔요.어느덧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는커녕 허리 통증으로 골골대는 슬픈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내게 숨겨진 힘이라곤 종일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무적의 게으름과 동네의 숨은 맛집을 발견해 내는 신묘한 레이더가 전부다. 어렸을 때 꿈꾸던 미래는 이보다 훨씬 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빠진 만화처럼 내 삶도 맹숭맹숭한 느낌이다. 희망을 꿈꾸며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것까진 기대하지 않지만 축 처진 일상에 낙관이라는 마법의 가루 한 스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와하하 웃는다. 언제부터 꿈과 희망을 말하는 것이 유치한 일이 되었을까? 가족과의 대화는 늘 답답하게 끝이 나고 친구들을 만나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된다. 아무래도 다들 낭만 없이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무턱대고 꿈만 꾸면서 사는 사람을 이기적인 몽상가로 보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 참 현실감각이 없네, 하고 혀를 차면서 답답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꿈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돈에 대해 말하는 게 더 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꿈과 희망이라는 관념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거운 것이기에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마법 소녀를 꿈꾸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소설가라는 또 다른 꿈을 품게 되었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문학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읽고 쓰는 일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일들은 다 우습게만 보였다. 누가 쿡 찌르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공기가 과도하게 주입된 풍선 같았다. 저는 소설만 쓸 수 있으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괜찮아요. 그런 이야기를 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포기한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그때의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세계를 구하려는 마법 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기 자신을 내던져서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겠다는 어떤 결연함을 품고 있는 소녀들. 나는 이제 그들이 안쓰럽다. 어깨 위에 얹힌 짐이 너무나 거대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짊어지고 사는 아틀라스의 형벌을 스스로 경험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마법 소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건 세상을 구한다든가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정말이지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 같다. 내 삶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다. 시간이라는 파도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오랫동안 꼭 붙잡고 있는 꿈은 잘 살고 싶다는 마음. 잘 살고 싶다는 건 작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세상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우치는 중이다.거짓말처럼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운전 걱정부터 들고 가슴 아픈 사건을 보고서도 숨 한 번 길게 내쉰 뒤 다시 할 일에 몰두하는 새해 아침이다. 강력한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내 삶이 완전히 뒤바뀔 거라고 믿지 않지만 좋은 세상을 바라며 요술봉을 휘두르던 그때 그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각자가 품은 아주 작은 꿈, 그거면 한 해를 살아낼 충분한 동력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작년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기길 기대해도 좋겠다. 그러니 어른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모두 희망을 꿈꿔요.

2024-01-02

너의 절망을 바라는

EBS에서 제작한 ‘대학입시의 진실’은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교육다큐멘터리이다. 총 6부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다른 나라의 제도와 문화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5부에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롭다. 해당 장면에서는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격차사회’라는 현상을 다룬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회자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부모의 학력과 연수입이 자녀에게 유전되는 상관관계를 표현한 단어이다. 평균적으로는 사립대학 루트를 밟은 부잣집 아이와 공립교육 루트를 밟은 가난한 아이의 교육비가 3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데, 이는 부모의 경제적 계층이 아이에게 세습되는 현상으로 직결된다.계층 이동의 통로가 막히면 사회의 역동성이 감소하고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다. 이는 자녀의 인식 수준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 있어 상속부자 자녀의 경우 47.3%가 긍정 응답을 한 반면, 비정규직2세의 자녀들은 9.4%만이 긍정 응답을 하였으며, 노력의 보상에 대한 믿음 역시 계층에 따라 각기 61.4%와 26.8%로 집계되었다. 가난의 책임에 대해서도 상속부자 자녀들은 52.2%가 개인의 책임이라 응답한 반면, 비정규직2세의 자녀들은 9.8%만이 개인의 책임이라 응답하였다.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도 상속부자의 74.1%는 긍정응답을 한 반면, 비정규직2세의 자녀들은 단지 23.2%만이 긍정응답을 하였다. 조금의 추상화를 거쳐 말하자면, 계층에 따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흥미롭다고 느낀 건 이와 같은 부분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사회가 불평등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제도도 모두에게 공정하게 작동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한 일본 니트족의 사례이다. 프로그램에서는 나다 요시후미라는 자발적 니트족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수입이 없음에도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 달 100만원 가량의 생활비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그는 미래 대신 지금의 행복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낮에는 파친코, 밤에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하는 그는 남는 시간에는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며 시간을 보낸다.비록 수입도 없고 생활도 궁핍하지만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그가 말하는 행복의 비결은 ‘3주 이후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에 그 이상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싫은 일이나 힘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기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꽤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저렇게 사는 것이 정말 좋은 삶인가? 불안하진 않은가? 그런 여러 종류의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놨기 때문이다. 만약 중병에 걸린다면? 혹은 사고를 당한다면?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신에게 불쑥 찾아든 불행에 그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어떤 재난과 불행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없을 그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내심 한심하다고, 혹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그는 자신의 현실에 가장 책임감 있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먼 미래에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을 막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삶인 것일까? 어쩌면 내심 나는 나의 삶의 상시적인 불행에 대한 보상을 그의 삶에 대한 힐난으로부터 찾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내심 그의 삶이 나보다 불행해지길 바라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라도 나의 삶을,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솔직해지자면, 나는 어느새 그에게 재난과 불행이 닥쳐오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현재를 긍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상하지, 그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과 나의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는 행복의 조건을 찾아낸 것이고 그것에 맞춰 삶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왜 그의 불행을 바라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문제는 행복의 조건도 삶의 방향도 선택하지 못한 ‘나’의 문제인 건 아닐까? 부지불식간에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나의 모습이 문득 씁쓸하기만 하다.

2024-01-02

테슬라도 ‘출산율’보고 공장입지 정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연말 이탈리아 집권 여당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탈리아에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이탈리아는 투자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출산 상황이 너무 걱정이다.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누가 이탈리아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탈리아의 합계출산율(2020년 기준)이 1.24명으로 우리나라(0.7)보다는 월등하게 높은데도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우리정부도 지난 2022년 11월, 머스크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화상면담에서 “한국은 아시아권 최우선 투자 후보지 중 하나”라고 밝힌 이후, 테슬라 전기차 공장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펼친 적이 있다. 항만시설과 여유산업부지가 있는 포항의 경우 유치팀까지 구성해 공장유치 사업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아마 윤 대통령도 저출산을 인류 최대의 위협요인으로 꼽는 머스크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 같다.삼성·현대 같은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공장입지를 정할 때 해당지역의 인구구조를 우선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구규모가 경제성장 잠재력과 동일시되는 이치다.우리사회의 인구위기에 대해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새끼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끼를 낳는 동물은 절대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없다. 상황이 좋아졌을 때 새끼를 낳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한국사람들은 진화적인 관점으로 기가 막히게 적응을 잘하는 민족”이라고 했다. 최 교수의 주장은 우리정부도 이제 적은 숫자의 국민으로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를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인구소멸’의 위험성을 너무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논리다.미국 CNN 방송은 최근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국방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저출산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저출산 위기는 학교 폐교수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새해에 또 전국의 33개 초·중·고교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전북이 1등(9곳), 경북이 2등(6곳)을 차지했다.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우리사회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불필요한 과잉 경쟁’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한국사회 저출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수도권 집중화다. 좋은 직장과 학교를 비롯한 모든 주요 자원이 수도권에 몰리니까 과도한 경쟁시스템이 유발되고,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청년들이 비수도권에서도 마음 편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구체적인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4-01-02

선거의 해

우정구 논설위원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7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세계 각국 언론도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가 치러질 올해의 지구촌 움직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는 지구촌에서 치러지는 각 나라 선거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24년 세계 경제를 전망하는 가장 큰 변수로 선거를 꼽았다. 특히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세계경제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권이 어떤 정책과 규제를 펼치느냐에 따라 시장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올 1월 가장 먼저 선거를 치르는 대만의 예를 보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후보의 당락에 따라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올 4월 10일은 22대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여야는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선거에 대비한 전열 정비에 여념이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사상 가장 극렬한 진영 대결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선거가 극렬하면 상대적으로 그 후유증도 큰 게 보통이다. 선거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근심도 덩달아 커지는 분위기다.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직업군과 계층·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유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선거의 결과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갈릴 수도 있다. 어느 선거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으나 이번 총선 만큼은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있어야 할 이유가 더 많은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1-02

지혜와 생명의 청룡처럼 도약하자

김진국 고문 새해 아침 동해에 해가 솟아올랐다. 갑진(甲辰)년의 시뻘건 해가 구름 낀 동해를 박차고 힘차게 떠올랐다. 2024년은 희망의 해다. 2023년까지도 절반은 코로나 팬데믹에 갇혀 있었다. 이제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은 뒤 처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가슴을 활짝 펴고, 일출을 볼 수 있게 됐다.갑진년은 푸른 용[靑龍]의 해다. 십이지 가운데 진(辰)은 용을 나타내고, 십간에서 갑과 을은 오행 중 청색이다. 동쪽과 나무를 상징한다. 나무는 오행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이 움트는 봄을 나타낸다.용은 용감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가진 전설 속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청룡은 살아 있는 나무와 생명, 봄의 기운을 안고 있어 창조적인 생각과 아이디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청룡의 기운을 받아 2024년에는 대한민국과 독자 여러분 모두 하늘 높이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물론 청룡의 기운만 믿을 수 없다. 모두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60갑자를 되돌려 보면, 1964년 갑진년에 한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전국이 들끓었다. 서울에는 계엄령이 내려졌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결정된 것도 이 해다.청룡은 도전적이고, 추진력이 강하지만, 그런 점이 독선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전쟁과 갈등의 화약 냄새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60갑자를 한 번 더 되돌리면 1904년. 그해에 러·일전쟁이 터졌다.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열강의 마지막 힘겨루기였다. 청·일 전쟁에 이어 또다시 이기면서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열정과 도전은 큰 성취를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잘못된 길을 걸으면 추락하는 원인이 된다.올해도 외부 환경이 밝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안보 위협은 여전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핵보유국이지만, 일부 지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경제는 엉망이다. 드러내놓고 연평도에 포를 쏘는 무모한 정권이 어떤 도발을 할지 알 수 없다.국제 환경도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국내에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개혁 과제들이 쌓여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가적 과제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커녕 소모적인 정쟁에 몰두한다.다음 세대가 희망을 품으려면 가장 먼저 청년 취업률부터 개선해야 한다.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 세계 최저수준인 합계출산율 0.78명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인구가 소멸하고, 지방이 소멸한다. 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긴다. 그런데도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다행인 것은 올해가 포스트 코로나의 경제 활기를 만들어낼 기회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고, 고금리 기조에도 변화가 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잘 살리고 기회로 만드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링컨의 지적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중요한 국가 어젠다를 선정하고, 여론을 만드는 것도 국민이다. 정치가 잘 되건 못되건 일정 정도 우리 책임이다. 우리가 비난하는 정치인을 선출한 것이 바로 우리다.국민이 정치에 개입하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수단이 선거다. 선거는 포퓰리즘에 휘둘릴 위험도 크지만, 이런 과제를 해결하고, 전진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과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도 올해 대통령선거가 있다. 우리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인기 없는 정치도 우리가 만들었다. 변화와 안정, 새로운 도약은 우리 손에 달렸다.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01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새해 첫날, ‘바람의 섬’ 제주에서 올레 길을 걸으며 ‘바람이 가르쳐주는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삶을 옭아매는 수많은 그물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의 가르침이 가슴을 때린다.우리는 ‘바람과 같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살고 있다. 내가 만든 그물에 내가 걸려 허덕이는 것이다. 서로를 연결하는 인터넷은 이제 서로를 옭아매는 그물망이 되었다. SNS는 소통할 수 있는 ‘개방적인 연결망’이 아니라 고기들을 가두는 ‘어망 (漁網)처럼 폐쇄된 그물’이 되고 있다. 적과 동지를 구별한 ‘진영의 일원으로서의 나’만 있을 뿐이다. ‘독립된 나’를 상실하고 진영에 ‘종속된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을 볼 수 없다. 오만과 독선이라는 그물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물 밖 세상이 잘못됐다고 아우성이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진보 꼴통’은 ‘보수’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보수 꼴통’은 ‘진보’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념과 진영의 그물에 걸린 탓이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밀(John S. Mill)이 지적한 것처럼 “검증되지 않는 신념에 자신을 복속시키는 경향성”에 있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노예의 길을 가는 어리석음이다.‘탐욕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의(大義)도 잃고 자유도 잃는다. 그물에 걸리는 이유는 물질적·외형적 가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돈·권력·명예가 목적이 되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은 근심꺼리가 되어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인들의 불행은 초심을 잃고 권력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서 온다. 권력·명예·자유를 모두 잃어버린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적 종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어떻게 하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물 자체가 문제다. 바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거름망’을 촘촘하지 않고 성글게 해야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사고의 유연성을 잃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자신을 옭아매는 수많은 ‘편견의 그물’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특히 권력자는 자신을 둘러싼 ‘예스맨(yes man) 그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통·혁신·변화를 가로막는 낡고 쓸모없는 그물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나아가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근력’도 키워야 한다. 성찰과 명상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수행을 통해 마음의 근력을 단련함으로써 자유·진리·평화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물질에 집착하면 ‘정신의 근력’을 키울 수 없고, 그물에 걸린 삶을 합리화하면 ‘바람의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자유인은 역경 속에서도 결코 자유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피는 희망의 꽃을 아는가. 엄동설한(嚴冬雪寒)에 피는 ‘매화의 기개’와 ‘동백의 열정’을 배워야 한다.

2024-01-01

새해 소망

홍석봉 대구지사장 새해 첫 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 소망을 염원한다. 가족과 애인의 건강과 사랑, 합격을 빈다. 동해안의 해돋이 명소마다 인파가 붐볐다. 해맞이는 어느덧 연례행사가 됐다.새해 소망을 비는 것은 서양에서 유래했다. 로마 신화의 신인 야누스(Janus)에서 비롯됐다. 야누스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는 얼굴이 두 개인 신이다. 새해의 첫달인 1월의 이름(january)도 야누스에서 따왔다. 로마인들은 새해 첫날 야누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소망을 빌었다. 이런 풍습이 기독교 문화권에 퍼졌다.새해 첫날 새 목표를 세우고, 나쁜 습관을 고치며 그해의 안녕을 빌었다. 고려시대에는 새해에 왕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해에는 더 나은 행실을 다짐하는 행사가 있었다. 일제시대 때 우리는 양력설을 신정이라고 부르고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일제의 정책에 반발,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이 때부터 새해에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안녕과 건강을 빌었다.우리나라는 새해 새로운 간지를 쓴다. 12간지(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다. 새해에 새로운 운명을 상징한다. 새해 자신의 운명을 좋게 하고, 좋은 일을 기원하는 것이 전통이었다.성인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2024년 새해 소망’을 물은 한 조사에서 1위는 ‘건강’(34.7%)이라고 답했다. ‘경제적 자유’(22.8%)와 ‘경기 안정’(8.8%)이 뒤를 이었다. 경제 보다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이어 평범한 삶, 내 집 마련, 여행 등 순으로 나타났다.청룡의 해 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엔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1-01

모험의 끝이 영광은 아닐지라도

유영희 작가 지난 연말에 ‘호빗’을 읽었는데, 다 읽고 보니 새해를 맞이하는 멋진 이벤트가 되었다. ‘호빗’으로 새해 모험을 떠나는 내게 큰 통찰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빗’은 마법사 간달프가 난쟁이 13명과 보물을 되찾으러 떠나기 전 호빗 족의 빌보를 합류시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치챘겠지만, 맨 나중에 합류한 빌보가 주인공이다. 빌보는 골목쟁이네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로 땅속 굴 생활에 만족하며 다른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저 이웃의 좋은 평판에 기대어 안락하게 살아간다.간달프의 재촉으로 모험 여행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빌보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향에 가고 싶어 하고, 난쟁이들의 무시에 마음 상하기도 하는 등 소심한 면이 많다. 그러다 절대 반지도 얻고 간달프가 없는 상황에서 일행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결국 빌보는 악한 용 스마우그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평화롭게 산다.‘호빗’에서 특이한 점은 빌보가 영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쟁이들에게서 엄청난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의 이웃은 빌보를 불편해하며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백미는 빌보가 모험을 성공으로 이끈 부분보다는 마지막에 이웃의 냉대에도 개의치 않고 시를 쓰며 만족스럽게 살아간다는 결말 부분인 것 같다. 이런 여정을 보노라면, 모험에 성공했다고 반드시 칭송과 영광이 뒤따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빌보도 모험의 대가를 바라기는 했으나, 나중에 자기 몫의 보물을 기꺼이 포기한 것을 보면, 빌보에게 잠재되어 있던 모험 정신이 발동한 면이 더 컸다.‘호빗’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새해에 시작하는 나의 모험 때문이다. 빌보가 제한된 곳에서 다른 세상은 모른 채 살았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까지 연구자와 강사로만 살며 다른 세상을 모르고 살았는데, 우연히 뜻 맞는 퇴직자 5명이 모여 창업하게 되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인지력이 떨어지는 인구 역시 늘어가고 있고, 우리 역시 언젠가는 인지력 저하를 걱정하게 될 것이라, 인지력 저하를 예방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창업하는 과정에서 창업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려운 순간이 수시로 찾아올 수도 있고, 동료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어쩌면 보물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호빗’을 읽노라니,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빌보처럼 용기낼 수 있을까, 빌보처럼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까, 빌보처럼 만족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지난 6개월을 돌아보니, 필요할 때마다 조력자를 만났고, 갈등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보물을 얻고자 시작하지만, 그 보물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이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보물이 적거나 이웃의 칭송이 없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생긴다. 안 쓰던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독자 여러분도 새해에는 잠재된 유전자를 발동시켜 모험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머무는 것보다 확실히 성장하게 될 것이다.

2024-01-01

새해엔 우리를 찾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새해가 밝았는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으로 경제는 심하게 흔들린다. 고금리, 고물가에 서민의 살림은 빠듯한데 전세 사기는 서민들의 삶을 옥죈다. 그 여파로 아파트 시장은 싸늘하게 식고 미분양된 아파트는 늘어나고 국가의 부담도 늘어난다.아파트 미분양은 금융권의 PF 대출로 인한 악재를 만들고, 애플 페이의 국내 상륙은 그들을 잔뜩 긴장시킨다. 국경이 장애가 되지 않는 수익 사업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한걸음에 달려간다.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업계의 사업다각화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늘어날 것 같다.불안한 마음 탓인지 묻지마 범죄와 흉기 난동은 마음 놓고 길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는지 한 사람과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부족한 안전 의식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일으켰고, 학부모들의 도를 넘은 간섭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자식을 가르치는 스승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더라도 인간적인 배려마저 그들은 잊었다.마약은 미성년자까지 퍼지고 ‘오징어 게임’에서도 살아남은 배우를 죽음으로 내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권해 마약 하는 사회가 됐다. 마약에 대항하는 강력한 법은 언제나 만들어지는지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심이 없고 정략적인 이용에만 바쁘다.빈대와 흰개미의 출현은 지금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마저 든다.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에게 철학을 가르쳤던 빈대는 붉은 반점과 가려움만을 준다. 지구가 아파서 빈대와 흰개미도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과거로 돌아가는 이 상황이 어색하다.지구는 높은 열에 자주 두통을 앓고 정신을 잃을 때는 물난리, 불난리에 자신을 태운다. 지구의 아픔은 언제쯤 고쳐질 수 있는지. 아무 생각 없이 일산화탄소만 발생시키고 쓰레기만 쏟아내는 사람들은 어제의 일을 다시 반복한다. 언제까지 지구가 견딜 수 있는 것인지. 달을 수백 바퀴나 돌고 있는 누리호는 지구가 가장 살기 좋은 별이라고 말한다. 우주에서 지구의 대체물을 찾기보다는 지구를 고쳐주는 것이 사람들의 도리가 아닐까.의사 증원 문제와 연금 개혁 법안은 2024년에도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이 모든 문제를 압도하는 인구 감소 문제 해결 실마리를 찾기에 정부는 바쁘다. 그런데도 결혼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만 늘어난다. 아이를 낳고 살기에 우리나라가 그렇게 힘든 나라인지, 많은 것을 갖추고서야 결혼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외적의 침입에 몸으로 맞서고, 힘든 농사일을 함께 풀어나가고, 경제 위기에 금을 모으고, 월드컵 경기에 붉은 옷을 입고 한 마음이 되었던 우리를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우리를 찾아야 한다. 잠시 개인적인 이익에 흔들려 잃어버린 우리를 다시 찾자. 강강술래를 부르며 손을 잡고 나아간다면 우리를 둘러싼 문제도 저절로 풀릴 것이니. 새해는 그렇게 맞고 싶다.

2024-01-01

한동훈 발 정치 혁신 가능할까

홍석봉 대구지사장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고금리·고유가·고환율 속에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고 정치는 정쟁으로 날밤을 지샜다. 그나마 손흥민 등 스포츠 스타의 활약이 위안이 됐다.세밑 어수선한 정국 속에 국민의힘이 법무부장관 출신의 50세 정치 신인을 여당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한동훈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연설은 통상적인 정치 연설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았다.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보수는 그의 연설에 환호했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 배지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직 동료 시민, 이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막고 운동권의 특권 정치를 배격하겠다고 공언했다. 불체포특권 포기자만 공천하겠다고도 말했다.‘선민후사’ 하겠다며 자기 희생의 의지를 보였다. 국민이 바라고 듣고 싶었던 외침이었다.그는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말만 앞세운 치적 자랑과 알맹이 없는 답변, 헛된 구호를 배격하겠다는 다짐이다. 한동훈 표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의 당찬 결의에 경의를 표하는 국민이 적잖다. 한동훈이 나오자마자 여당 지지율이 떴다. 단박에 차기 대선주자 1위로 올라섰다. 국민의 열망과 보수의 갈구가 만든 현상이었다. 한동훈 표 공정과 상식을 기대하는 국민이 적지않다. 정치경력이 없는 조선제일검이 검을 얼마나 잘 벼리고 써느냐에 달렸다. 국민은 정쟁을 일삼으며 금배지만 바라보는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다. 정치에 좌절했다. 하지만, 한동훈의 등장과 그의 선언은 국민에게 한가닥 희망을 주었다. 새 바람을 몰고 올 조짐이다. 국민의 기대도 크다. 국민의힘에 정치후원금이 쏟아지고 있다. 한동훈 효과다. 이젠 한동훈 표 혁신이 필요하다.한동훈의 등장은 정치 혁신의 신호탄이나 다름 없다. 정치권은 그동안 2030을 영입하는 의욕적인 정치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치판에만 들어서면 금방 낡은 정치언어와 문화에 젖어들었다. 이준석과 박지현으로 대변되던 세대교체는 혁신 무늬만 그리다가 말았다.반면 한동훈은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갖췄다. 참신성, 개혁성, 이미지 등이 남다르다. 정의의 칼을 휘두르며 부패와 부정에 맞선 경험이 있다. 정치권의 환부에 사정 없이 메스를 들이대도 될 듯 하다. 이참에 상향식 공천도 재고해야 할 것 같다. 노회한 정치꾼들이 공천권을 조자룡 헌칼쓰듯 휘두르게 놔두어서도 안 된다. 바야흐로 TK 정치권도 바람 앞의 등불이다. 소신 없이 눈치만 보던 정치인들은 좌불안석이다. 지역 정치권도 변화와 혁신이라는 대세의 흐름에 비껴 갈 수는 없다.한동훈 앞에는 장애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한동훈식 좌표설정은 연착륙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다. 비상하는 청룡처럼 우리 정치가 한단계 더 성숙해지길 소망한다.

2023-12-28

운외창천(雲外蒼天)

우정구 논설위원 인류는 ‘희망’에 의존해 발전해 왔다는 말이 있다. 희망이 인류문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불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희망이라는 긍정적 기대감이 없었다면 과연 인류는 어떠한 삶의 궤적을 만들어 왔을지 궁금하다.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간은 희망과 꿈이 있기에 현재의 잘못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으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불경기 등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은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냈다.국내도 마찬가지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우리 경제를 압박한 이른바 3고 현상으로 기업은 기업대로 서민경제는 서민경제대로 힘들고 고달팠던 한해였다.중소기업인들이 내년도 경제를 바라보며 선택한 사자성어가 ‘운외창천(雲外蒼天)’이라고 한다.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르른 하늘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절망하면 안 된다”는 격려의 말을 할 때 잘 사용하는 표현이다. 희망을 잃지말고 난관을 극복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인들이 올 한해 많이 고생했음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새해를 앞두고 심기일전(心機一轉)이 필요한 때다.다가올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올해 못 이룬 모든 것을 소망하고 희망해야 한다. “세상이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말할 때 희망은 한 번 더 시도해보라고 속삭인다”는 서양의 격언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희망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28

이(利)와 의(義)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이맘때쯤이면 곳곳에서 송년회니 망년회니 하며 연말 모임으로 분주하다. 얼마 전, 그러한 모임 중 한 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모임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결국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바로 차기 회장단 선출 건. 원래는 임기 2년씩인데, 몇 년 전, 회칙을 ‘회장단 임기 1년, 단 1회 연임가능’으로 수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도 관례적으로 늘 2년씩 해 왔고, 향후 혹 회장이 1년 하더라도, 총무는 2년 하기로 이전 총회서 합의까지 했는데, 일 더 하기 싫었던 총무가, 규정을 들먹이며 1년 임기라 우겨댄 것이었다.게다가 말나올까 싶어 회칙도 안 가져온 채, 연임가능 단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말로만 규정이 1년이라며 우겨대다가, 한 술 더 떠서, 2년 한 이전 총무는 규정도 모르고 일 더 했단 식으로 회장, 총무가 손발 짝짜꿍이 되어 얘기를 하니, 새로 와서 모르는 이들은 그런 갑다 했지만, 아는 사람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전 총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툴툴대니 즐거워야 할 모임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돼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일 더 하기 싫다고 굳이 교묘하게 규정 운운하며 열심히 일한 이를 바보로 만들어 버릴 것까지야, 참.옛말에,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말이 있다. 장자가 쓴 ‘산목편’에 나오는데,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는 뜻으로,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된 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장자가 까치를 따라 밤 숲에 들어가니 까치는 사마귀를, 사마귀는 매미를, 매미는 시원한 그늘을 즐기고 있었는데, 각자 자신들에게 닥친 위험을 모른 채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사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눈앞 이익을 위해 원칙이나 도리를 잊고, 벼룩같이 남의 피를 빨아먹고 교묘한 짓을 자행하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지.몇 푼 이익을 더 챙기려고, 주인에게 상의도 없이 몰래 남의 땅을 침범해 보강토를 높다랗게 쌓아올린 건설업체가 글쎄, 며칠 전 쏟아진 비로 보강토가 와르르 무너져 내려 다시 보수하게 된 사건도 그렇고, 평소 수업자료도 준비 않고 학습 진도도 체크 않는 등 편하게 수업료만 따박따박 받아가던 취미반 악기 레슨 선생이, 수강생이 뭐 좀 있어 보였는지, 이제 두 번 레슨 받아 실력을 늘릴 때라며, 은근 돈 욕심을 내며 교사로서의 기본을 내팽개치던 모습도 그렇고.사실 당장은 눈앞의 이익이 주는 달콤함에 행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내 인생에 부메랑으로, 업보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삶의 이치다. 굳이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클로디우스가 자신의 형을 죽이고 왕위와 왕비를 차지하나, 결국 죽은 왕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익 앞에서 흔들린다. 그렇더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 기본적인 義를 버려서야 쓰겠는가. 인간이기에 이익에 흔들릴 수 있지만, 또 인간이기에 이익에 태연하고 의로움을 지켜낼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올 연말, 흥청망청 술판 대신, 견리(見利)앞에서 망의(忘義)하는 사람인지 최소한의 수의(守義)는 가능한 사람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마도 다가오는 2024년이 조금은 풍요로울 테니까.

2023-12-27

다시 걷고 운동하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생명체의 진화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기물이 모여 수억 번의 우연이 반복되어 유기물이 되고 유기물은 에너지의 수출입이 생기고 에너지를 저장하며 내보내며 생명을 유지했다. 다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로 이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유기물들이 생기고 이 유기물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타 유기물들을 흡수해 좀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고 또 환경에 맞게 살아 남아 발전했다. 생명체의 진화 방향은 각 환경에 맞게 최대한의 에너지 확보로 나아간다. 가만 있으면 죽었고 움직이면 살았다. 생명체로서 더 우수하다 아니다가 아닌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여 에너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보한 종은 살아남고 아닌 것들은 멸종했다.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포식자와 피식자간 격렬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때 발생하며 버려지는 에너지는 엄청 나지만 피식자는 잡히는 순간 죽으면서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고 포식자는 잡아서 에너지를 섭취하지 못하면 생명을 이어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모든 동물은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그에 최적화 되어 있는 동작을 수행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을 했으며 이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모두 죽었고 씨를 남기지 못했다. 2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에 맞춰 움직이고 활동을 했으며 이는 곧 생활이자 생존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대의 인간들의 반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목적수행을 위해서 앉아있어야 하고 서 있어야 한다. 실제 육체노동으로 목적수행을 하는 인간들은 한국에선 많지 않다. 이에 대부분이 운동 부족에 시달린다.움직여야 할 생명체가 움직이지 않으니 그에 따른 문제가 발생한다. 오래 앉아 있어 등과 어깨가 굽고 목이 앞으로 빠져 나온다. 많이 걷지 않으니 걷는 동작과 순서에 이상이 온다. 이에 따른 발 무릎 허리쪽의 부하로 관절의 부정렬과 변형이 발생한다. 당장 크게 아프지 않아도 온몸이 찌뿌둥하고 피로하다. 원인이 영양소 부족인가 싶어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지만 조금도 나의 몸의 불균형은 해소 되지 않는다.답은 하나 밖에 없다. 다시 걸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거창하게 할 필요가 없다. 집에 러닝머신 혹은 사이클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기능이 좋은 것 필요 없다. 제일 싸고 단순한 기능만 가진 제품을 사서 걷고 발을 구르면 된다. 밖에 나가면 더욱 좋다. 그냥 걸으면 된다. 이유를 가지지 말고 그냥 옷을 추려 입고 밖으로 나가자. 5만원 전후의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되고 자전거가 있으면 자전거를 타면 된다.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30분 걷다보면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된다. 피로하면 택시 타고 집에 와서 푹 자자. 다음날 퇴근 하고 집에서 밥 먹고 TV 보다가 그냥 옷을 추려 입고 나가자. 이미 본 뉴스 내용과 드라마가 TV에서 나오고 있다. 더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내 몸이 더 소중하다. 내 몸은 걸으면서 생존해 왔던 DNA의 후손이고 항상 채집과 사냥으로 운동을 하던 몸이었다. 나가자. 걷자. 달리자. 건강해지자.

2023-12-27

숨바꼭질

윤명희 수필가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갓길에 댔다. 서울 가는 남편을 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새벽길은 한산하고 음악듣기 참 좋은 시간이다. 옆자리를 더듬거린다. 손에 엉뚱한 것이 잡힌다. 탁자위에 둔, 차 열쇠와 같이 들고 나온 게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다. 평소 핸드폰을 꽂아두는 자리에 대신 빈 물병이 자리하고 있다.조수석에 앉은 남편이 발치에 차이는 빈 물병을 들고는 “여기 꽂아둬야지 내릴 때 갖다 버리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 물병 꽂으면서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나? 조금 전에 내려줬던 역 앞 버스정류소에 내 핸드폰을 들고 서 있을 것 같아 가던 길을 돌려 다시 갔다.보이지 않는다. 대합실까지 가보고 싶은데 새벽 배웅을 위해 서 있는 차들로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뒤따라오던 차의 불빛들이 비켜달라고 껌뻑껌뻑 위협을 한다. 떠밀리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유료주차장에 들어가려해도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나온 나는 주차비조차 없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불빛마저 반짝거린다.도로를 달리며 차선책을 생각했다. 핸드폰이 없으면 종일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데, 오늘은 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트북에 깔린 앱으로 남편에게 카톡부터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혹시 차 바닥에 떨어져있나 확인부터 했다. 없는 게 확실하다.방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되는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혹시 집에 두고 간 걸 착각 했나 해서 침대 이불을 털어보았다. 모니터 화면이 뜨자 남편에게 내 핸드폰 가져갔냐고 문자를 날렸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남편은 보지 않았다. 10분을 넘어서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집으로 오고 있는 거 아냐? 종일 핸드폰으로 일하는 내 사정을 잘 알기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생각은 회오리가 되어 나를 옥죄었다.다친 다리가 아파 서울 병원에 예약해 둔 남편이다. ‘딸애까지 휴가를 내서 서울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열차는 탔어요?’ 다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핸드폰이야 가져갔던 말든 열차는 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묵묵부답이다. 30분이 지나자 목발을 짚은 그가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올 것만 같다. 가족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누구든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읽는 이가 없다. 아직은 젊은이들이 일어날 시간은 아닌가보다. 시계를 쳐다보고 모니터를 흘낏거리며 온 집안을 다시 뒤졌다.동네 친구들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그들은 아무리 늦게 일어나더라도 지금쯤이면 화장실은 다녀올 시간이다. ‘누구 일어나신 분 없소?’ ‘왜? 나 아까 일어났어.’ 역시 금방 연락이 온다. 남편에게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이 더 이상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다.모니터에 남편이 떴다. 자기는 안 가져갔다는 짤막한 대답이다. 그는 벌써 목적지의 반을 통과하고 있었다. 차를 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의 회오리바람이 잦아든다. 그가 새벽 열차를 타기 위해 깬 잠을 다시 이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생각 속에서 허둥거렸다는 사실이 멋쩍다. ‘그럼, 핸드폰은?’ 또 다른 바람이 몰려왔다. 집안은 다 뒤졌고, 분명 차 안에는 없는 걸 확인했는데 남편이 차에서 내리다 차 밖으로 딸려나갔나? 그럼 이건 또 어떻게 찾지? 매번 찾아다니는 내게 짜증이 달라붙는다.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말이 까똑 까똑 난리가 났다. 모두 돌아가며 내게 전화를 하겠다고 한다. 누군가 소리를 듣고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집안에서는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문을 열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 의자를 한껏 뒤로 밀어 봐도 없다. 나 찾아보라는 소리는 약 올리듯이 울렸다. 운전석 의자를 사정없이 밀어댔다. 엉덩이는 치켜들고 얼굴만 감춘 개구쟁이처럼 한 귀퉁이 바닥에 엎드려있다. 그것이 내 가까이 숨어 있었다. 숨바꼭질이 끝나자, 아침이 고요하다. 또 언제 숨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2023-12-27

우수(雨水)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두 번째가 우수(雨水)다.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도 2월 19일(음력 1월 10일)이 우수(雨水)다.우수(雨水)는 봄이 시작되었지만, 땅에 아직도 겨울의 기세가 드센 시기다. 절기로는 봄에 해당하지만, 찬 기운은 아직 물러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내리는 비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우수(雨水)는 눈 대신 비가 내리며, 강의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수에 내리는 비는 온 천지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24절기 가운데 비 우(雨)가 들어있는 절기는 우수(雨水)와 곡우(穀雨)다. 우수의 비는 겨울 추위를 녹이는 비이고, 곡우의 비는 씨앗을 뿌리라는 의미다. 이 시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봄 가뭄이 온다고 한다. 봄 가뭄이 닥치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기는커녕 말라 죽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봄비는 농사를 비롯한 만물의 생장에 큰 영향을 주기에 비 우(雨)를 넣은 듯하다. 특히 농경문화권에서는 농작물 수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실하다.우수에 내리는 비는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여주는 비다.‘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속담도 있다. 또한 언 땅을 녹여주면서 흙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을 깨우는 역할도 한다. 만물이 우수의 비로 인해 눈을 뜨고, 얼었던 흙도 윤기가 나기 시작하는 시기다. 농촌에서는 담벼락을 수리하고, 밭도 손질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음력 1월은 주역으로는 지천태(地天泰)괘에 해당한다. 지천태괘는 위로 음효 3개(☷)가 있고, 아래로는 양효 3개(☰)가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물상으로 보면 땅속에 숨어있는 양기가 땅 위로 올라오는 형국이다. 경복궁 교태전(景福宮 交泰殿)은 경복궁의 내전으로,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었던 전각이다. 전각의 명칭인 교태(交泰)는 지천태괘(泰卦)의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유래한 것으로,‘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에 있는 땅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에 있는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서로 화합하는 모습이기에 즐거울 태(泰)가 되는 것이다. 지천태괘의 반대는 천지비(天地否)괘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서 영원히 만날 수 없고, 화합할 수 없으니 아닐 부(否)가 되는 것이다.명리에서 인월의 인(寅)은 동물로 호랑이다. 시간으로는 새벽 3시에서 5시까지다. 어둠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특히 종교인들이 새벽예불이나 새벽기도로 하루를 여는 때다. 호랑이가 여명(黎明) 무렵에 먹이를 사냥하러 나서듯이 낯선 환경에도 두려움이 없고 진취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어려움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창의적인 일을 시작하면서 역동적이고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인월에 태어난 사람의 장점이기도 하다.새해를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즉, 한 해를 바르게 살려면 첫걸음이 반듯해야 하기에 정월이라 불렀다. 호칭 하나에도 교육적이고 자기성찰이 되도록 했던 것이 우리 문화의 전통이다. 2024년에는 설날(2월 10일)이 지나면 우수, 그리고 정월 대보름(2월 24일)이 이어진다. 1년 열두 달 중 가장 큰 달이다.이 시기에 달풀이 또는 월령체(月令體)라는 노래를 불렀다.‘정월(正月)이라 십오야(十五夜)에 망월(望月)하던 소년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봉양 늦어진다’는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정성 가득한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쥐불놀이, 달집태우기와 보리밟기 등 풍속을 즐겼다. 달집태우기는 달집이 훨훨 타야 마을이 평안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관광 또는 홍보 차원에서 행사하고 있다. 보리밟기는 서릿발에 뜬 보리를 살짝 밟아 통풍을 차단함으로써 뿌리가 마르거나 썩는 것을 방지하는 농사일의 한 가지다.옛날 농촌에서는 우수 즈음에 장(醬)을 담갔는데, 정월(正月)에 담그는 장을 으뜸으로 쳤다. 우수에 장을 담그면 약 40일 후인 청명과 곡우 사이(대략 4월)에 장물과 된장을 가를 수가 있어 된장을 발효하기에 최적의 날이 되므로 우수에 담근 장을 으뜸으로 쳤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이 시기에 장을 담가야 맛과 색이 변하지 않기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장 담그기가 행해졌다. 세월이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이때를 맞춰 장을 담그는 가정도 더러 있다. 시기로는 우수 전후 삼일, 정월 마지막 날인 오일, 그믐, 손 없는 날(음력 중 끝자리가 9와 0인 날)이다. 오전에 장을 담그면 장에 벌레가 생기지 않아 좋은 날이라고 여겼다.중국에서는 원소절(原宵節)이 정월 대보름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문 앞에 초롱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하여 불꽃놀이를 즐겼다. 마치 불타는 나무와 은색 꽃 같다는 뜻으로 화수은화(火樹銀花)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절기에 맞춘 놀이와 풍습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협동심과 향토 사랑을 키웠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를 맞이한 뒤 처음 보는 큰 보름달이다. 달은 여성과 대지와 물을 상징하므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많았다. 추운 겨우내 지친 몸과 마음을 춤과 노래로 달랬던 것이다. 오늘날 함께 즐겼던 절기 풍습이 점차로 잊혀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놀이와 풍습은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몸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2023-12-27

문과와 이과부터 사라져야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사람은 사람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 관해서 늘 궁금하다. 나는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다 보니, 사람을 유형별로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혈액형으로 사람을 제 종류로 구분하더니, MBTI는 인간의 성향을 열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문과와 이과로 나눈다. 공교육의 문턱을 나서는 어린 학생을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누어 오가지 못하게 설정하는 게 옳은 일일까. 다행히 최근에 수능은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형으로 치른다.그러면서도 수학과목에 통계와 확률을 선택하면 ‘문과’로 이해하고 기하와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로 본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뿌리깊은 인식구조가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문과와 이과 구분을 없앤다는 정책이 저 ‘선택’ 탓에 오히려 왜곡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가 사라지고 있어 교육계는 학교교육이 뒤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과를 선택하면 대학입시에 유리하여 문과 성향 학생들마저 이과 수학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과적 또는 문과적 성향의 구분이 과연 가능할까.학문과 전공분야에는 이과와 문과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선택지가 넘치도록 많다. 직장사회와 직업구조도 문이과를 구분하기보다 오히려 문과와 이과적 사고와 태도 가운데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문과적으로만 생각하거나 이과식으로만 사고하는 세상이 이미 아니다. 문과와 이과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누구나 겸비해야 하는 소양성향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개인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가질 수도 있고 덜 가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문과와 이과적 이해와 태도를 버무려 장착해야 한다.문제는 유형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가정살림은 이과인가 문과인가.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통합적이며 균형잡힌 사고가 날마다 필요하다. 상황을 분석해야 하고 사람을 읽어야 한다. 숫자에 밝아야 하고 느낌을 짚어야 한다.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미래예측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문과와 이과라는 벽을 치고 칸을 만들어 서로 오가는 일마저 불편해져 버렸다. 문과와 이과는 함께 나눌 이야기마저 궁핍해져서 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겪는다. 넘나들기 어려운 섬들이 생겼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능력을 따로 구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학생들이 균형잡힌 인성을 형성해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문학과 역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폭넓게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유네스코(UNESCO)는 네 가지 영역을 든다. 분석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상상과 창의(Creativity), 협력과 상생(Collaboration), 소통과 교류(Communication)라 한다. 문과나 이과의 구분은 보이지 않는다. 과목의 이름도 없다. 통합적으로 균형잡힌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우리 교육이 문과와 이과라는 케케묵은 구분부터 실질적으로 없애야 한다.

2023-12-27

수(手)개표의 부활

홍석봉 대구지사장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전자개표가 첫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신세계였다. 유권자가 투표한 투표지를 전자개표기(투표지 분류기)에 넣으면 광학센서가 기표 내용을 인식, 후보자별로 그 결과를 자동 집계했다. 기표 오류 투표지만 개표 요원이 수(手)개표했다.전자 투·개표는 1948년 제헌국회 선거 이후 50년 이상 눈에 익은 개표장 풍경을 확 바꿨다. 개표 요원들이 밤을 새며 분류·합산하던 작업을 기계가 대체했다. 자동 개표기의 등장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선 다시 수개표를 했다. 당시 비례대표 등록 정당 수가 역대 최대인 38개, 투표용지 길이만 51.9cm에 달해 투표지 분류기의 처리 한계를 넘어섰다. 할 수 없이 수개표로 진행한 것이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년 4월 총선부터 전수 수(手)개표를 도입키로 했다. 전자개표 뒤 사람이 투표용지를 전수 검사하는 방식이다. 전자개표기가 부정선거에 악용된다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다. 수개표가 시행되면 개표 과정의 투명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선거 결과의 지연 발표는 불가피하다. 21대 총선 직후 전자투개표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지난해 20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달 발생한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는 투개표 불신 우려를 키웠다. 독일과 프랑스 등 일찌감치 전자 투개표를 도입했던 선진국들도 수년 전부터 직접투표와 수개표로 바꿨다. 해킹 위험 때문이다.수개표는 인공지능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의 회귀다. 하지만 선거 부정 시비를 일소하고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 ‘소쿠리 투표’ 소동 등 선거 부실 관리로 불신을 초래한 선관위의 책임이 크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27

크리스마스 기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나를 포함, 모두가 행복했으면. 세상 돌아가는 데 무심한 나도 크리스마스에는 저절로 들썩인다. 산타클로스, 오색찬란한 트리, 흥겨운 캐럴, 코미디 영화, 외식, 선물, 데이트 등 동화적인 축제 분위기가 사람을 괜히 들뜨게 한다. 밖에 나가고 싶고,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 가고 싶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만30대의 마지막 성탄절에 약속 없이 집에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크리스마스이브 점심이다. 늦게 일어나서 고춧가루 팍팍 넣고 짜파게티 끓여 먹었다. 창문을 여니 간밤에 눈이 내렸다. 곱게 쌓인 눈을 보니 짜증부터 난다. 집단축제를 싫어하면서도 축제에 끼고 싶은 아웃사이더의 양가감정은, 낄 곳이 없다는 걸 아는 순간 비틀린 심술이 된다. 눈 대신 비나 실컷 와서 거리가 온통 질척거리면 좋겠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면 좋겠다. 건물 외벽을 통째로 성탄 특집 디지털 아트로 만들어 구경꾼이 넘쳐 나는 명동 백화점에 정전이나 되면 좋겠다. 그냥 다 망했으면 좋겠다.연휴의 나른함에 원고 마감을 깜박하고 있다가 급히 책상에 앉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 나 홀로 집에서 보냈다. 30대를 돌아보니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같은 걸 해본 기억이 없다. 낚시를 가거나 혼자 포장마차에서 허파볶음에 소주를 마시거나 티브이 보다 쓰러져 잠들었다. 대학 강사가 되면서부터는 성적 입력하느라 자체 가택연금이었다. 20대 때는 나가 놀기라도 했는데, 그래봐야 같은 공기 마시는 것조차 짜증나는 친구들이랑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술 들이부은 게 전부다. 오늘 저녁엔 뭐 할까. 그래도 성탄전야인데 소고기 구워서 와인이라도 마실까? 혼자라고 생각 말기, 힘들다고 울지 말기. 눈물이 앞을 가린다.몇 해 전 방영된 ‘공부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종종 생각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처음부터 저만치 뒤쳐진 채 출발한 흙수저라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서울 명문대 국문학과에 다니는 선혜씨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한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방세 치르고 공과금 내고 독서실 끊고 하면 생활비도 안 남는다. 근사한 외식이나 쇼핑은 사치다. 그런데도 그 빠듯한 용돈으로 엄마 선물부터 고른다. 착한 친구들은 이렇게 답답하도록 착하다.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 많고 멋 부리고 싶은 20대에 포기부터 배운다. 그래서 아예 밖에 안 나간다. 나가면 보이고, 보면 사고 싶어지니까. 유진목의 시 ‘누란’은 떠올릴 때마다 눈물 난다. “엄마 엄마는 맛있는 것 다 먹었어? 가고 싶은 곳 다 갔어? 하고 싶은 것 다 했어? 나는 못했어”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심리적 문제, 취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외출 없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 청년’이 서울에서만 13만 명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6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 빈곤에 의해 비생산적 활동인 사교 모임, 여행, 외식, 문화생활 등을 금지당하고, 그저 ‘살아 있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만 움켜 쥔 채 좁은 방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다. 무기력함이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마침내 너무 많은 결핍들은 아예 결핍을 무화시켜서 주체로 하여금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욕망 불구의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그것만이 돈 안 드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슴 설레는 축제가 아니라 찬란한 빛에 더욱 짙어지는 유폐, 춥고 초라한 그늘의 감정일 뿐이다.한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가장 좋아한 복음성가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가난한 영혼 억눌린 영혼 지극히 작은 영혼까지 주의 사랑을 전하리라. 아름다운 그 사랑을…. 주님 사랑 그들에게 전하리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주님 사랑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온 세상에 가득히.” 앞에서 몽니를 부렸지만 진심이 아니다. 주님 사랑은 됐고 축제의 흥겨움이나 온 세상이 함께 나누면 좋겠다. 수많은 선혜씨들은 왜 크리스마스의 들뜸까지 포기해야 하나. 그들은 가난한 영혼도 억눌린 영혼도 아니고 지극히 작은 자도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루만이라도 돈 걱정, 사치라는 죄의식 다 집어던지고 즐겁게 보내면 좋겠는데, 산타할아버지 가능해요? 안 울면 소원 들어준다면서요. 안 울게. 제발, 제발 좀 모두 행복하게 해줘요.

2023-12-26

마음의 서랍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서랍은 조금씩 깊어진다. /언스플래쉬 2023년도 끝나간다. 올 해는 조금 특별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예기치 못한 과거를 마주했을 땐 쓸쓸함이 감돈다.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과 방문했던 미술관 앞을 우연히 지난다거나 이제는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었던 카페를 예기치 못하게 들리는 등 과거의 시간과 현재가 불쑥 겹쳐질 땐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마주한 듯 난처해진다.A는 여전히 시를 쓸까? 늘 퀭한 얼굴로 유령처럼 미끄러지듯이 걷던 사람이었다. 말을 걸기 전까진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아서 처음엔 다가가기 참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늘 피곤한 얼굴로 다니던 거였다. 강의도 자주 빠져서 게으름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밤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읽으며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나와 A는 대학 졸업 이후 더 가까워졌지만 모종의 이유로 마음도, 거리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따금 A의 안부가 궁금해지지만 연락은 하지 않는다.어떤 일은 그대로 묻어두어 침묵으로 용서를 구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래서 나의 서랍 한 칸엔 미안한 사람들이 몇 있다. 미성숙함으로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 잘 지내고 있길 바라며, 그들의 건강을 조심스레 빌어본다.올 해의 나는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고 주기적인 상담도 받고 있다. 이런 변화를 소중한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알리며 조금 더 변화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스스로 마주하는 횟수도 점차 늘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미성숙한 것들, 강박에 가까운 것과 나의 취약점, 그리고 동시에 나의 장점 나만이 가진 특징, 나의 능력도 살펴보게 됐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다채롭고 특징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설렜다. 머릿속의 안개가 차차 걷히며 실체가 드러나는 기분이었고 그 실체는 생각보다 끔찍하지 않았으며 그 실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지 기대 되기 시작했다.물론 그날그날의 사정에 따라 머릿속의 안개는 포악한 뭉게구름이 되기도 하고, 소나기가 되어 급작스레 온 몸을 젖게도 한다. 눅눅하고 축축한 기분이 들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금 비가 멈추고 안개가 걷히길 기다린다. 그 시간 동안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시간은 당연하다는 듯 흐르고 변화하니까.이 시간들이 반복되며 여유를 보관할 마음의 서랍이 칸칸이 생겼다. 이젠 과거를 상기하며 불편한 외로움을 끄집어 내지 않을 수 있고, 지난 사람들의 안부를 죄책감 없이 빌어볼 수 있으며 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지고, 좋고 싫음을 구분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리곤 타인에 대한 사랑의 정의도 다시금 바라보고 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이해 받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해서 공허함을 느끼지 않는 것, 서로 다른 생각 앞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물론 내가 너무 다치지 않을 만큼 건강할 정도로만.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나는 본가로 향한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그리고 더 들어가서 영암까지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집에 가면 부엌 식탁 위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차려져 있다. 나를 기다리며 삼일 내내 장을 봤다는 엄마. 본가 왔을 때 많이 먹어두라며 툴툴거리는 아빠, 그리고 다섯 여섯 살 차이 나는 동생들까지 모여 가족의 형태를 이룬다.우리 가족이 만난 한 시간 정도는 늘 평화롭다. 하지만 그 이상이 넘어가면 우리의 대화는 또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인지할 때마다 나는 늘 커다랗게 자리한 화를 누르기 바쁘다. 하지만 곧 무력해진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고, 이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라는 걸 아니까. 사랑의 형태는 서툴고 어설프고 그래서 곧 깨어질 듯 불안정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화를 내며 도망치지만, 이젠 이 또한 보통의 사랑의 형태임을 안다. 그러니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저 멀리 있는 사랑을 불러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의 서랍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2023-12-26

아름다운 마무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숱한 희비와 애환의 사연으로 점철된 2023년이 서서히 세월의 바톤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새해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와있으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여겨짐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일까?개인별로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어쩌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지나간 날들은 한순간처럼 짧게만 여겨지고 다가올 날들은 녹록하지 않으니, 지난 일 탓하지 말고 오는 일을 쫓는 것(往事不諫 來者可追)이 중요할 듯싶다.저물고 마무리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서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피는 언덕이 아름답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즐겁게 퇴근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또한 한 해를 성찰하고 정리하는 송년의 자리가 의미 있으며,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모습에서 당당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이렇듯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잘되고 아름다워야 시작의 의미와 가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일의 끝맺음을 잘하여 좋은 결과를 거둔다는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강조하는 것일까?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게 되면 만감이 교차하여 달라지고 바뀌는 것들이 많아진다. 즉, 12월이 지나면 한 살 더 먹게 되어 한 학년이 올라가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고대하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날이 되기도 한다. 반면, 해를 거듭할수록 도전과 열정의 강건함이 수그러들고, 직장생활도 마무리되는 정년퇴임의 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듯이, 짧게는 한 해가 마무리되지만 길게는 오랜 일터의 삶을 마감해야만 하는 비장(悲壯)의 시간이기도 하다.‘또 한해가 가버린다고/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고마워하는 마음을/지니게 해주십시오//한 해 동안 받은/우정과 사랑의 선물들/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사랑하는 이들에게/띄우고 싶은 12월//…./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나를 키우는 모두가/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이해인 시 ‘송년의 시’ 중에서겨울과 12월은 만물이 완성되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 사물과의 만남의 기회는 줄어들고 헤어짐의 순간은 잦아들기만 하니 세월따라 강퍅해지는 마음 탓일까? 아니, 어쩌면 더 비우고 가볍고 단순해지려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것들은 마디마디 꺾이고 세월의 여울은 흐느끼듯 웅성이는데, 멀어지고 잊혀지며 보내야 하는 것들이 아집에 사로잡히는 마음뿐이랴. 매사에 인정과 감사함을 남겨 놓으면 훗날에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리라.남겨진 삶 동안 어쩌면 다시 못 올 계묘년이지만, 유난히 파란만장하고 다사다난 했었기에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토끼의 숨가쁜 뜀박질이 용의 힘찬 비상을 기약하는 도움닫기가 되어, 새해 첫날의 설렘이 일년 내내 기쁨으로 열리길 믿어본다.

2023-12-26

팬이 만들어 가는 일본의 SF 문화

강지우 SF평론가 일본은 ‘오타쿠’의 나라로 불린다. 한 분야에 열과 성을 다해 파고드는 마니아가 많다는 뜻이다. SF도 예외는 아니다. 12월 초, 교토대 SF/환상문학 연구회가 주최하는 ‘교토SF페스티벌’이 온라인으로 열려 한국에서도 참가할 수 있었다. 300여 명의 참가자 중에는 장년층 여성도 눈에 띄었는데, SF 향유의 역사가 길어서인지 팬의 연령대가 우리나라보다 넓은 듯했다. 페스티벌에서는 작가나 평론가를 초청한 강연이 오후에 펼쳐지고, 밤에는 료칸 숙소를 통째로 빌려 방마다 주제(SF 초심자의 방, 공모전 준비 방 등)를 잡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요즘은 합숙 대신 디스코드 채팅을 활용한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다룬 주제 중에는 해외 퀴어 SF의 약진과 SF 작품의 아이디어를 산업계에 컨설팅하는 ‘SF 프로토타이핑’이 특히 흥미로웠다. 아마추어 SF 비평, SF 번역 등 동인지를 홍보하는 참가자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팬 활동이라 내심 부러웠다.한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명맥이 끊긴 SF컨벤션이 일본에서는 여럿 운영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행사는 무려 1962년부터 이어져 온 ‘일본 SF대회’로, 성운상 시상식이 열릴 정도로 대표성을 띈다. 매년 1천 명 이상 참가자가 몰리며 전성기에는 수천 명 이상이 운집했다고 한다. 일본SF작가클럽이 주최하는 ‘SF 카니발’은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일본 SF대상 시상식과 작가 사인회 등이 열린다. 올해는 황모과, 해도연 작가를 초청해 한일 SF 대담이 열리기도 했다.가을에 ‘교토SF페스티벌’이 열린다면, 봄에는 ‘SF세미나’와 ‘HAL-CON(하루콘)’이 열린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에서 이름을 땄는데, HAL의 일본어 발음 ‘하루’는 행사가 열리는 봄을 뜻하기도 한다. 2007년에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콘(세계 최대 규모의 SF 컨벤션) 스태프들이 운영하고, 켄 리우, 래리 니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도 초빙한다. 컨벤션 형태의 행사 외에 2001년부터 한 달에 한 번 ‘SF 팬 교류회’도 열리고 있다.이런 행사들에 참여해 보니 작가와 팬,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 없이 모두가 SF 팬이라는 정체성을 띠고 모여 즐겁게 어울린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SF 팬이었다가 작가, 평론가, 출판 편집자 등 SF 업계에서 일하게 된 이들도 많다. SF 팬덤이 SF 문화를 이끌어가는 양상이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특유의 마니아적 끈기와 열정이 깊고 견고한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PC통신 SF 동호회를 기점으로 SF 팬 커뮤니티가 여럿 있어 왔으나 그 활동이 이제는 많이 움츠러든 상황이다. 최근의 SF 붐은 SF 마니아가 늘어났다기보다는 기존 문학 향유층이 SF까지 섭렵하게 된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한다. 일본의 사례가 부럽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마니아 지향보다는 SF 애호층의 외연을 넓히는 방향으로 SF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 어떨까. 역사는 짧지만, 더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문화가 피어날 것이다.

2023-12-26

한동훈, ‘새 정치문화’ 보여달라

심충택 논설위원 어제(26일) 국민의힘 전국위 의결을 거쳐 공식 취임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의 첫 ‘정치적 작품’인 비대위원 인선작업에 들어갔다.오는 29일까지 비대위원 임명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누가 비대위원이 되느냐에 따라 한 위원장의 당 쇄신 구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많다. 한 위원장은 성탄 연휴기간 주변인사들로부터 여성·청년 인재를 중심으로 폭넓게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거론되는 인물들을 보면, 비대위가 젊음과 도덕성, 전문성으로 무장한 실력파로 구성될 것 같다. ‘한동훈 비대위’가 조만간 출범할 경우, 국민의힘은 전무후무한 정치적 에너지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운동권 중심의 ‘586 정당’이라는 퇴보적 이미지를 가진 민주당과는 대비되는 정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한동훈 비대위 효과’는 그가 위원장으로 지명된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국 유권자 1천6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차기 대통령감 적합도 조사에서 한 위원장이 45%를 차지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41%)를 4% 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그동안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각종 다자대결 조사에서 이 대표는 줄곧 선두를 유지해왔다. 한 위원장의 중도확장성이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사결과다. (자세한 조사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한동훈 비대위’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내일(28일) 당장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건희 여사 특검법안’을 단독처리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2010~2012년 사이) 범죄를 조사할 이 특검법은 이미 올 2월 법원이 1심선고를 한 사건이다.1심에서 도이치모터스 회장 권오수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주가조작을 실제로 담당한 직원은 징역2년을 선고받았다. 김 여사는 이들에게 통장을 맡긴 91명의 전주(錢主) 중 1명에 불과하며, 유일하게 기소된 전주 1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위원장은 “선전·선동하기 좋게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의 ‘제식구 감싸기’ 프레임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주목된다.‘인요한 혁신위’가 제안한 당 쇄신작업도 급하다. 국민은 지금 한 위원장이 어떤 혁신적인 정치문화를 선보일지 눈여겨 보고 있다. 한 위원장이 타깃으로 삼아야 할 혁신과제는 공천물갈이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 외연확대 등 산적해 있다.혁신과제 외에도 한 위원장만이 할 수 있는 숙제가 있다. 보수지지층 결집은 총선승리를 위한 필수과제다. 여당 스펙트럼을 넓히려면 어쨌든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과는 연대를 해야 한다. 이준석은 오늘(27일) 탈당한 후 1~2주 뒤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계획이다. 야당에게도 손을 내밀어 ‘대화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동훈 비대위’는 그동안 뺄셈정치를 해온 ‘용산’과는 차별화의 길을 걸어야 성공할 수 있다.

2023-12-26

간병지옥에서의 脫出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 각국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돌봄이 필요한 노년인구가 늘고 있다. 일찍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일본은 돌봄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지만 나이든 부모 간병을 둘러싼 사회 문제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간병을 하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작년 일본에서 출간된 ‘불효돌봄’이란 책의 저자는 “병들고 나이든 부모를 돌보는 데 자식이 착해야 할 필요가 없다”며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떠날 고민은 하지말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주장을 폈다.우리말에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도 부모 간병 문제로 고민하는 가정이 급격히 늘고 있다. 간병비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간병을 누가 할 것인지를 두고 가족이나 형제간 갈등도 심각하다.부모 병 구완을 위해 간병인을 쓰다보니 간병비 지출을 감당못해 간병파탄 환자가 늘고 있다. 부모 간병 때문에 퇴직하는 간병퇴직, 가족간 불화로 빚어지는 간병지옥, 심지어 간병살인까지 벌어지는 비극적 상황도 목격된다. 집안에 간병할 사람이 생기면 온가족이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전전긍긍이다.하루 간병비 14∼15만원 주고도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달이면 400만원이 훨씬 넘으니 병을 오래 끌면 수천만원 부담도 금방이다. 간병비 때문에 한가정이 망할 참이다.정부가 간병 경감방안을 내놨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와 요양원 입원 중증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이 그 내용이다. 막대한 예산이 따르는 문제라 쉽지는 않아 보이나 진작 손을 봐야 할 문제라는 데 이의는 없다. 간병지옥에서 탈출할 묘안이 나와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26

‘분산에너지’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시는 지난 19일 달성군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경권연구센터 주차장과 옥상에 시민햇빛발전소 10~13호기 설치를 완료하고 준공식을 개최했다. 2021년 11월 국가물산업클러스터 내 입주기업 (주)그린텍건물 지붕에 설치한 대구시민햇빛발전소 9호기가 가동된 이래 무려 2년 만이다. 2008년 9월 수성못에 설치된 대구시민햇빛발전소 1호기부터 이번 13호기까지 발전용량을 모두 합치면 이제 1천100kW로 1MW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 발전용량은 2023년 대구시 1일 최대 전력수요량 7.25GW에 비해서는 너무나 적은 양이다. 대구시는 전력 수요량의 단지 15%만 지역 내에서 공급하고 있다.이렇듯 대구시와 같이 전력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심한 지역은 내년 6월부터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법)’에 의해 일정 규모 이상의 신규개발사업 시행자와 신축시설의 소유자는 ‘분산에너지’ 설치의무 비율이 100%로 적용된다. 이는 이미 전력자립률이 100% 이상인 경북, 울산 등에서는 설치 의무비율이 25%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산법’에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지정하여 해당 지역 내에서는 생산된 전력 등 지역에너지를 직접 판매할 수 있게 하여 지역에너지 자립을 유도하고 송전망 건설 최소화와 전력계통 안정성을 도모하고자 한다.정부는 현재와 같이 서해와 동해 등 해안가에 건설한 대규모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원을 이용한 발전소에서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도시와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의 운영은 낮은 주민수용성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지역에서 생산하여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에너지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분산에너지’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분산에너지’는 ‘분산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설보다는 매우 작은 자가용전기설비, 발전설비(40E404 이하) 그리고 열에너지설비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CHP(열병합발전소), 태양광, 연료전지, ESS(에너지저장장치), VPP(가상발전소) 등 다양한 에너지 설비가 ‘분산에너지’로 설치될 수 있다. 그리고 ‘분산법’에는 ‘분산에너지’가 급속히 확대될 경우에 대비하여 배전망에 대한 관리 의무를 강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 ‘전력계통영향평가’ 실시의무도 부여하였다.많은 지역에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 내 ‘분산에너지 사업자’는 자유로운 전력거래를 통해 발전과 판매(배전)사업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특화지역’으로 지정받은 지역의 에너지와 탄소중립관련 융합기술개발과 관련 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새해에는 대구경북에서 ‘분산에너지’ 제도의 활용으로 지역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에서는 ‘누구나 햇빛발전 플랫폼 구축사업’의 활성화로 시민들의 햇빛발전소 건립 참여를 쉽게 할 필요가 있고, 경북에서는 ‘지역별 차등요금제’로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2023-12-25

‘삼시두끼’

홍석봉 대구지사장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먹는 데 진심이었다. 식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끼니를 잇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식사했느냐”고 묻는 것이 인사였다. 성경에도 기근 이야기가 여러 곳 나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마태복음 구절도 당시 끼니 해결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였는지를 잘 보여준다.우리나라는 천재지변이 많았다. 왜적의 침범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가뭄과 홍수, 전쟁으로 말미암은 기근이 빈번했다. 식량난은 인간에게는 재앙이다.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북한은 1995년 8월 가뭄과 흉년이 겹쳐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다.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 한국에서 15만t의 쌀을 무상 원조받았다. 지금도 북한은 굶어 죽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9살 때 탈북한 20대 후반의 한 탈북민은 남한에 와서 “삼시세끼 먹을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1960년 대만 해도 우리 주변에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한 끝에 우리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선진국이 됐다. 지금은 각종 복지혜택과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돼 굶는 사람은 없다.우리네 식생활 습관이 크게 바뀌고 있다. ‘삼시세끼’는 옛말이 됐다. 요즘 한국인은 하루 평균 두 끼 정도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젠 ‘삼시두끼’라고 해야 할 판이다. 심지어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고 답한 이들도 있다. 체력 유지에 필요할 정도만 하는 식사가 됐다. 다이어트 열풍도 한몫했을 터다. 끼니가 생활의 보조 수단이 된 것이다. ‘삼시세끼’는 한 종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이 될 정도로 이젠 희화화됐다. 새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느끼게 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25

슬픈 크리스마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역사적, 종교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를 매우 중요한 축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단지 ‘빨간 날’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날이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즐겁게 보내는 것은 물론이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인 만큼 평소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살았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크리스마스 정신’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 아기 예수의 뜻을 기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환대하는 인류애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차원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선물을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 주위에 소외된 이웃은 없는지 살피는 마음이 필요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누군가가 취약계층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나 물품을 기부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이들이야말로 크리스마스 정신을 실천하는 이름 없는 천사들이다.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크리스마스 정신을 논하기 어려운 듯하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굶주림과 질병과 죽음의 공포로 신음하고 있다. 이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삶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이 잔혹한 현실 앞에서 크리스마스 정신은 무력하기만 하다.한국 사회의 상황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장기화된 경제불황과 산업구조의 변화,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인해 대다수 국민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 삶이 팍팍하니 이웃을 향하는 마음도 인색해지기 쉽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연탄 기부량이 목표치인 삼백만 장에 백만 장 가까이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한파의 습격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 형태와 난방비 부담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올겨울이 얼마나 힘겨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의 결실은 소수가 누리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라는 피해는 특정 계층에게 더 가혹하게 돌아온다. 슬픈 겨울이고 슬픈 크리스마스다.이 칼럼이 나갈 시점이면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크리스마스에만 발휘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겨울은 길고 봄이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경제를 살리는 일은 책임 있는 분들의 몫이겠지만, 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버티게 하는 힘은 서로에 대한 환대와 호혜의 정신에서 나온다. '라면의 상식화'가 아닌, 크리스마스 정신이 상식화된 새해를 기대해 본다.

2023-12-25

2023 세모에

강길수 수필가 올해가 일 주간도 못 남았다. 다시, 세모(歲暮)다. 올해 끝날, 12월 캘린더 한 장을 넘기면 제야의 종소리를 타고 새해 2024년이 밝을 것이다.생각해보면, 시간은 인간사회처럼 다사다난한 게 아니라 그저 강물처럼 유장하게 흐를 뿐이다. 그런 시간을 사람은 책력을 만들어 구분하고,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다. 1년 동안의 해, 달의 운행, 월식, 일식, 절기, 기상변동 등을 적은 책이 책력이란다. 인간은 왜 책력을 만들까. 영적, 이성적 존재여서 그럴까.사람은 자연 속에 태어나 영향을 받고, 주면서 살다가 결국 그 품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과정에서 터득한 천문(天文)의 한 분야가 책력이자, 캘린더이리라. 하여,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을 터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올해를 산 나도, 며칠 뒤 12월 캘린더를 넘긴다 생각하니 뭔가가 뒷등을 당기는 기분이다.2022년 2월, 러시아 침공으로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된다. 엎친 데 덮쳐 올해 하마스-이스라엘전쟁도 터졌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체제를 버렸음에도, 왜 서방과 척을 질까. 권력자들의 야욕을 이해할 수 없다. 따져 보면, 배다른 형제지간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아랍의 반목과 전쟁은 또 무엇일까. 인류의 집단지성 향상은, 과학기술 발전과 반비례한다는 말인가.우리 정치권은 왜 ‘좌우 대결’이란 헛된 프레임으로 역사상 가장 찬란히 이뤄낸 민족중흥의 복을 걷어차고, 쪼개기로 국민을 어둠으로 몰고 갈까. 한심하다. 우리 지성들과 언론들은 왜 부정선거, 여론조작, 통계조작 같은 사회 거악들의 본질적 문제들을 외면, 침묵하거나 빈 거짓된 말만 해댈까. 비겁하다! 설마 우리 사회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디스토피아(dystopia)가 스며든 게 아닐까. 무섭다. 오웰의 빅브라더가 이미, 우리 사회를 움켜쥐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드니 말이다.그 무엇이, 이 세모에 내 뒷등을 당길까. 올 한해를 곰곰이 돌아본다. 맞아, 그랬어. 그 말이 뒷등을 당겼던 거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었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 ‘입장 바꿔 생각하는 마음’ 말이다. 지난 한 해는 분명 나와 우리 집,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 나아가 지구촌도 역지사지를 더 잊은 한 해였다 싶다.‘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겨레의 삶에 연연히 흐르는 ‘품앗이 문화’를 말하리라. 아이들 어릴 때, 이 속담이 들어간 동요를 “옛말에도 있었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자!…”하고 씩씩하게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무리 세상이 돈, 권력, 야만으로 탁해져도 겨레의 마음에서 이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콩 한 쪽도 나누는 마음은 바로 역지사지 정신’이니까.비록 나라 안팎 사정이 녹록지 않더라도, 2023년 세모에 나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콩 한 쪽도 나누는 품앗이 문화 곧, ‘역지사지의 삶’을 연연히 살아온 우리 겨레이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국민은 2024 새해에도 부정, 비리, 조작, 야만적 폭거 같은 사회악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살아내리라 믿는다.

2023-12-25

하나의 낱말이 주는 청량감 하나의 문장이 주는 따뜻함

시의 언어가 주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한 권의 시를 낭독해보거나, 필사해보는 경험이 가장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내고 요약하는 방식의 독서에 익숙해져 있어서 언어가 주는 청각적 울림이나, 시각적 새김에 대해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다. 하나의 시를 낭독을 해보거나 필사를 해보면, 그동안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 기관을 쓰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어떤 시집이라도 좋겠지만, 이 겨울에는 이문재 시인의 시집 ‘혼자의 넓이’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은 창비에서 출판된 해당 시집의 표지이다. 가끔은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책에서 툭 떨어진 한 낱말이 일으킨 감정의 파문이 오랫동안 계속된다. 누군가 쓴 글의 일부였던 그 단어는 그것이 본래 들어 있던 맥락으로부터 빠져나와 불의의 순간에 그것을 읽는 내 맥락 속으로 뛰어든다.가끔은 어떤 문장이 유독 머리에 맴돌아 그 짧은 문장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작 몇 개의 단어를 엮었을 뿐인 그 문장은 머릿속에 그림처럼 새겨져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 엮어두었을 그 문장은 나를 그 속으로 끌여들여서 그 속에서 헤매도록 만든다.책을 읽을 때나,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또는 누군가의 SNS에 올라온 피드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자가 울림이나 새겨진 이미지를 읽고, 그 문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다. 이 당연한 과정은 어른이 되어 문해력이 높아지게 되면 망각되어 버린다.어린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고 나서, 그 뒤에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조금 더 읽는 연습을 하게 된다면, 눈으로만 보고 소리를 상상하지 않아도 의미는 저절로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부터, 그 소리의 울림을 상상하면서 읽는 것으로, 나아가 문자의 시각적 새김만을 눈으로 보고서 읽는 것으로의 변화는 음성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로 표기하는 한국어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 자체에는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안경에 묻은 티끌은 내가 그것에 신경을 쓸 때는 보이지만, 내가 그 안경의 렌즈 너머로 보이는 대상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그 문자들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의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글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한다. 소리를 내는 것이나, 소리를 내지 않고 시각적 새김만으로 읽는 것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떤 단어를 소리 내어 낭독해보거나, 어떤 단어가 새겨져 있는 방식에 주목해보면, 어색한 느낌을 준다.가끔은 그래도 스치듯 울리는 단어들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시집이나 에세이집 속의 단어가, 누군가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편지 속 단어가, SNS에 누군가 남겨둔 단어가, 이유를 알 수 없게 갑자기 마음속에 들어와 귓전에 생생한 울림을 남긴다. 눈 아래 멍울과도 같은 잔영을 남긴다. 스토리가 있는 소설이나, 지식과 논리가 담겨 있는 인문 교양서와 달리, 시집이나 에세이집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공감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글을 계속 읽어오고 문해력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읽어버리고 있던 ‘읽기’라는 과정을 새삼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사랑, 풀잎, 바람, 풍경…. 문득 마음속에 들어온 단어를 혀 위에 두고 굴리면, 왠지 새로운 감각으로 그 단어가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어가 새겨져 있는 방식에 신경을 쓰면서 읽다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새김으로 이런 단어가 되었을까 하는 낯선 느낌과 함께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조차 새삼스러워진다. 내 귀와 눈에 남아 있는 그 단어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청량감을 준다. 또한, 어떤 문장을 되뇌이다 보면, 그것이 연결되어있는 방식의 다정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너무나 바쁜 우리에게 그런 낯선 언어 감각의 훈련조차 사치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세상에 그런 단어, 문장 하나쯤 있다는 것은 어딘지 든든한 일이지 않은가.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