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처럼 시시(屎屎)한 시가 난무하는 때가 있을까? 인구 비율에 따른 시인들의 숫자가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기이한 시가 천국인 나라가 한국이다. 심지어 시인들을 배출하는 시인학교가 곳곳에서 난립하고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가난뱅이 시인이 넘쳐난다.
그런데 한 번 시인이 되면 마치 큰 벼슬이나 한 듯, 세상살이를 제 혼자 다 알고 있는 현자인 듯, 정치 패거리에 앞장서고 이념의 프로파간다로 자진 나서서 세파의 정치 물결을 타는 진짜 시시한 시인(屎人)들이 넘쳐난다.
경주에 사는 원로 김성춘 시인은 그 어느 시인보다 시가 어떠해야 하며, 또 시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려 깊은 생각을 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분이다. 특히 엄청나게 늘어난 시인들, 그리고 품새가 떨어지는 시를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지위를 가늠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현 세태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친구야 앙 그렇나? 시에 명답이야 많지마는 정답은 딱히 없는 기라/우리 삶이나 시나 생각하모 엇비슷 항기라 그래 어떤 시인은 말했잖/나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시에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사람들은 낡은 사람이라고 요새 시가 당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말을 너무 비틀어서 난감할 때가 참 만타카이 그거 다/‘낯설게 하긴’가 뭔가 그거 때문에 그렁 거 아이가 낯설게 하기 그거 다 씰 데 없는 소리 아이가/아 하늘 아래 새로운 기 어딨노 생각해 바라 마카 다 거기서 거기 아이가 사는 거나 시나 마카 다 그런 거지 요는/사물의 본질 그 내면을 잘 봐야 하는 거 아잉가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보면 되것나 앙 그렇나? 그러니 시란 자기가 찾/아서 자기가 깨닫는 묘한 거 아이가// 그런데…. 뭐라꼬? 낯설고 새로운 시가 아름답다꼬? 쉬운 서정시는 진부/해서 독자들이 식상해 한다꼬? 그건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 말이재,/산다는 거 잠시 꿈꾸다 아지랑이처럼 가는 거 아이가, 지금 당신 곁에 시/가 있는지 몰따 우짜든지 단디 해라이!” 김성춘의 ‘현곡(玄谷)에서’
김성춘 시인은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곡진한 목소리를 그대로 호소하고 전달하고 있는데, 시인에 대한 한탄과 아쉬움이 가득 담겨져 있다. 거창하고 무거운 시론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게 솔직한 말이 가슴을 후빈다. 너무나 진솔해서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고 싶은 시다. “우짜든동 단디 해라”고 경상도 말로 당부하는 원로 서정 시인의 호소가 묘하고도 실감난다.
문학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게 단순한 물질문화와 문명 변화의 요인도 있겠지만 김 시인은 그 결정적인 이유를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덜 다듬어진 시인들이 너무 많으며 시 같지 않는 시를 발표하는 잡지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예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 시든 신음의 비명을 내어지르는 시인(屎人)이 너무나 많은 현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언어는 무수한 대화가 만들어낸 브리콜라주다. 지역어를 소멸시키지 않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김성춘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암시해 주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인 살아 있는 방언으로 이 시대의 시론을 요약해 주고 있다.
참 시인이 할 일은 언어 속에 압축된 여러 갈래의 오랜 대화를 풀어내는 고난한 작업이며,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조그만 별꽃의 몫을 해내는 일이 시인이 해야 할 숙명적인 몫이다. 재미없는 시는 독자들이 외면하고, 엄숙한 교훈시는 재미없다.
독자들은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의 언어 표현 때문에 그 시를 재밌게 느낀다. 21세기는 참으로 난해한 시대이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이후 인간중심의 문명론 시대가 열리는 듯 했으나 이 또한 크리스퍼 N. 캠블이나 토머스 네일과 같은 과학철학 쪽의 반격을 받아 자연 전체 존재가 영원히 유동 상태라는 블랙홀 유물론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앎의 방식이나 존재 방식도 부정형 쪽으로 기울고, 왜소해진 문학인의 나갈 길은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김성춘 시인의 자전적 시론 “시 비슷한 시들이, 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난해한 시들이, 진짜 시 인양 시의 탈을 쓰고 착각하는 시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무거운 시들, 별것 아닌 내용을 심각하게 쓰고 있는 시들도 문제다”라는 말에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