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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과 멀어지기

등록일 2024-07-23 18:18 게재일 2024-07-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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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일회용품들.

젊었을 적 어머니에게 보자기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손가방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필요한 찬거리를 담아 나르는 든든한 함지와 같았다. 움켜쥐면 한 줌도 되지 않는 보자기는 시장을 볼 때도, 친정에 다니러 갈 때도, 학교 운동회 날에도 불룩한 보따리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했다. 어쩌다 종이에 싼 날생선이 들어있는 날은 보따리 한 귀퉁이가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아무도 모르게 보따리를 쌌다가 잠든 자식들을 보고 마음을 바꾼 적도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낡은 보자기는 세월의 애환이 깃든 물건이기도 했다.

장바구니가 흔해지면서 어머니는 더 이상 보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팔에 끼거나 어깨에 멜 수도 있는 장바구니는 묶었다가 풀었다가 머리에 이는 보자기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장바구니 안에는 더러 비닐에 싸인 물건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물기 있는 것들이 담겨있었다. 그 무렵 우리 마을엔 집집마다 짓던 밀 농사를 그만두었고 자연스레 방앗간에 길게 줄을 서서 국수를 빼던 일도 사라지게 되었다. 점방에 가면 색이 뽀얀 밀가루 포대며 예쁘게 포장된 말린 국수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편안함에 길들여졌고 거친 국산 밀가루보다 수입한 부드러운 밀가루가 더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봄과 가을로 나누어 경치 좋은 곳으로 희추(야유회)를 하러 갔다. 풍물을 앞세우고 솥단지며 양은그릇들을 이고 지고 떠났다. 희추를 하는 날만큼은 힘든 농사일을 잊고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신록 우거진 숲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흥이 오르면 강에 나가 유람선도 탔다. 마을 공동으로 쓰는 그릇이 있어 가득 모인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두레 자금으로 마련한 그릇은 마을의 잔치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푸짐하게 준비해 간 음식들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버리고 오는 쓰레기가 없어 마음 홀가분했다. 그 시절엔 모두가 먹거리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여겼고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까닭이다.

살기가 좀 나아지면서 일회용이란 말이 심심찮게 쓰였다. 대표적인 게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이었다. 나들이 때가 되면 일회용은 필수품처럼 따라다녔고 한 번의 쓰임이 있은 후 가차 없이 버려졌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일회용품은 예외 없이 따라왔다. 건너 마을에는 나무젓가락 공장이 있었다. 공장 마당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길게 누운 채 그득 쌓여있었는데 그 많은 나무가 사라지기 바쁘게 또다시 새로운 나무가 그득 쌓이곤 했다. 더 가까이엔 화장지 공장이 있었다. 공원들은 라면 먹은 그릇을 물 대신 일회용 휴지로 쓱쓱 닦아낸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떼로 몰려나와 점방에 외상을 긋고 공장장 흉을 봐 가며 주전부리를 했다. 일회용 물건을 만드는 그들 머리엔 어지간한 바람에도 꿈쩍 않는 하얀 먼지가 켜켜이 앉아있었다.

80년대 중반쯤 일회용 비닐팩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급격히 비닐과 친해졌다. 깨끗이 소독된 위생적인 비닐이란 이유로 마구잡이로 비닐을 애용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그릇들은 뚜껑 대신 비닐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아예 비닐에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시장에선 장바구니 든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빈 손으로 장을 보러 가도 상인들은 비치해 둔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비닐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고 지구는 대책도 없이 버려지는 그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비닐봉지 소비 발자국은 총 276억 개, 1톤 트럭 55만 대가 훨씬 넘는 양이다. 1인당 533개, 약 10.7 킬로그램이라고 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꼭 1장 반을 소비한 셈이다. 비닐은 자연분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땅에 묻으면 토양에 산소 공급을 방해하고 강한 불에 태우면 다이옥신이란 유독 물질을 대기 중에 배출한다. 그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바다로 흘러들어 가 바다 생물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비닐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는 자각으로 인해 2008년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이 만들어졌다. 과연 단 하루만이라도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일은 가능할까. 나는 습관처럼 비닐봉지에 든 채소를 사고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이중으로 포장된 즉석식품을 사 먹는다.

박월수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장마철이 돌아오니 쏟아지는 집중폭우가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그 정도가 강해진다.

지구가 몸살 앓는 시기를 지나 중병으로 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노모를 위해 장 보러 가는 길에 바구니부터 챙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회용은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어머니는 구순의 고개를 넘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당신 혼자서 식사를 차려 드신다.

먹을 만큼의 음식을 단출하게 만들고 어쩌다 남은 음식은 뚜껑을 덮어 보관한다. 비닐팩이란 말은 어머니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져온 비닐이 집안에 있으면 씻어서 말린 후 재사용하기 위해 접어서 보관한다. 사십 년은 족히 지났을 밥상보를 여전히 즐겨 쓰시는 어머니 곁에 누워 심상찮은 폭우 소리를 듣는다. 일회용과 멀어지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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