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는 산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지만, 나는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 나무만큼 아름답고 착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목숨이 또 있겠는가? 이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하고 모든 목숨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나무들, 그 나무들은 저마다 모양과 빛깔과 크기와 생태가 다르지만 서로 어울리고 도와주고 채워준다. 그래서 모든 나무들이 다 제자리에 있어 제 할 일을 하면서 빛을 뿌린다.”
‘이오덕의 자연과 사람이야기- 나무처럼 산처럼’에 나오는 말이다. 청송이 고향인 이오덕 선생님은 아동 문학가이며 교육자로 평생을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교단에서 퇴직하는 그날까지 시골 학교만을 두루 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사셨다. 내가 선생님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까닭은 전 국민이 표준말을 강요받던 시대에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쓰던 입말 그대로 글쓰기를 하라고 가르쳤던 점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부모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기셨다.
이오덕 선생님은 많은 나무들 중에서 특히 감나무를 좋아하셨다. 선생님 기억 속 감꽃은 보릿고개의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꽃이었다. 푸른 잎을 매단 감나무의 노래는 참새들을 불러서 안아주고, 발밑으로 내려가 개미들이 가는 길을 밝혀주고, 지렁이와 다람쥐들이 한 식구가 되게 한다고 했다.
감나무 가지만큼 너그럽고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무는 없다고도 했다. 뻗어 나가던 가지가 다른 가지와 부딪칠 성싶으면 곧장 방향을 틀어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다시 뻗는다. 아름답게 하늘을 채운 겨울 감나무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무의 성자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러한 특성 덕분에 다른 과일나무와 달리 감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동시에는 감나무 못지않게 포플러나무를 예찬한 것들이 많다.
“눈부신 수만의 비늘을 단/ 물고기/ 호수에 잉어가 꼬리 치듯/ 하늘에는 포플러가 살아간다./ 파도 소리보다 더 찬란한 호흡으로/ 흐느끼며 헤엄치는/ 그 곁에 내가 서면/ 구부러진 허리가 죽 펴지고/ 겨드랑이에 푸른 날개가 돋는다.”- ‘포플러 1 전문’
이오덕 선생님이 교사 시절 잠시 머물렀던 화목초등학교 앞 넓은 신작로 양쪽으로는 키 큰 포플러 나무가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오가며 행복에 겨운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는 걸 선생님 펴내신 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포플러라는 이름은 라틴어 민중(Populus)에서 왔다고 한다. 가지를 옆으로 뻗지 않아 햇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다른 나무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포플러가 가진 특성이다.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가 포플러에 기대 살면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어떤 나무보다 애벌레를 많이 키워낸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서 으깨지면 특유한 향을 발산해 더 많은 애벌레와 곤충이 모여드는 것이다. 하늘 높이 키가 자라서 새가 안정감을 느끼고 둥지도 많이 짓는다.
그러고 보면 포플러는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들을 위해 사셨던 이오덕 선생님을 많이 닮은 나무다. 하지만 포플러에서 나온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엉뚱한 오해를 받고 나무는 가차 없이 베어졌다.
나는 이런저런 일로 선생님의 생가가 있던 현서면 덕계리를 자주 지난다. 사라진 생가 부근엔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오덕 작은 문학관이 있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무처럼 사셨던 선생님을 떠올리고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 길을 지나기 힘이 든다.
누구보다 나무를 사랑하고 자연을 노래했던 선생님의 고향에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까닭이다. 덕계리 주변 도로엔 그 옛날의 포플러 대신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봄이 지나 녹음 우거진 계절이 되어도 몇몇 나무에서는 초록빛을 볼 수 없었다. 주변 과수원에서 빛이 들지 않아 농사에 방해가 된다며 나무에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푸른 잎 하나 달지 못하고 맨 둥치로 서 있는 나무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그 길을 차들이 씽씽 내달린다. 볼수록 참담한 풍경이다.
나무는 지구별에 사는 생명체에게 베풀기만 하는 존재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므로 대기를 맑게 하는데 이는 지구 가열화를 늦추는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뿌리로는 토양을 고정시켜 바람과 물로 인한 침식을 막는다. 또한 토양 흡수를 통해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많은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생태계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오래전, 감나무 아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푸른 잎들 속에 숨어 어린 새소리를 듣고 감 잎사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을 본 이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세계에 와서 숨 쉬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나무를 헤치는 사람은 마음에 병이든 사람이다.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