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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2

등록일 2024-07-22 19:38 게재일 2024-07-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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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비바람에 머리가, 옷이 다 젖는 것도 모르고 나는, 우리는, ‘환상’ 속의 독도를 하나의 실체로 만나고 있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둘에, 여든아홉 개의 크고 작은 바위 섬들로 이루어졌다. 서도가 동도보다 조금 더 넓고 높다.

배는 섬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그 옆을 스쳐 돌며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얼굴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넋을 잃고 섬을 건너다 보았다. 배가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떠밀리며 오르내리는 까닭에 섬은 생생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비바람 속의 환영처럼 일렁였다.

마음 속에, 심중에 섬의 형상들을 깊이 심어두는 데 집중해야 하건만 우리는 사진을 찍는 데도 바빴다.

어느 분인가 섬을 보라며 정말 사람 같다고 하셨다. 가리키시는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한 수행자의 얼굴이 옆으로 보였다. 비바람 속의 수행자는 깊은 묵상에 들어 있었다. 저게 얼굴 바위일까. 그러고 보면 섬에 가까워지면서 서도 쪽의 코끼리 바위의 선명한 모습을 보았던 것도 기억에 또렷하다.

비바람 속에서 묵상에 잠긴 외로운 수행자를 뒤로 하고 울릉도로 돌아온 우리는 파김치 상태였다. 저녁식사 후 나와 이찬 선생의 숙소에 미국에서 오신 박시걸 시인 등 여럿이 모여 신원철 시인의 클라리넷 연주에 유튜브로 선곡을 해 들었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밤이 깊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울릉섬을 돌고 나리 분지로 들어가는 순례길에 나섰다. 버스 운전 기사분이 들려주는 울릉 섬에 딸린 죽도 총각 이야기며 섬의 정확한 수치들에 관한 이야기는 재밌고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리 분지는 섬의 한가운데 높은 곳에 들어앉은 아늑한 평지다. 고종실록에 섬에서 이 나리만이 관청을 둘 수 있으리라 했었다. 겨울 들면 출입이 어렵다는 이 독특한 화산섬 분지에서 우리는 막걸리 한 잔씩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막걸리 이름은 ‘씨껍데기’라 했다. 아하, 춘천 길에 ‘조껍데기’ 술이 있다면 나리 분지 길에는 ‘씨껍데기’로구나. 문득 시간강사 시절에 문흥술 선배한테 배운 강원도식 막걸리를 떠올리며 씨껍데기 주를 한 모금 마셔보는데, 약초 넣은 술은 전혀 달지 않고 시원스러웠다.

아름다운 성불사, 가수 이장희 집, 예림원, 수토역사 전시관 같은 명소를 고루 돌아 숙소 세미나실에서 우리는 이윽고 학술 논의를 한다. ‘우리 땅과 시의 영토’라는 주제로 박덕규 선배가 사회를 맡으시고, 최동호, 유성호, 양은창 교수, 그리고 내가 학술발표를 했다. 이 가운데 최, 유 두 분의 발표는 시문학 속의 울릉도·독도를 논의한 것이고 나의 발표는 우리 역사 속에 남아 있는 두 섬의 기록,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최근에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새로운 역사인식, 특히 고대사 인식을 중심으로 두 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

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독도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유치환 시인의 시 ‘울릉도’의 시비가 있다. 그는 해방 후의 어지러운 위기의 시대에 이 시를 썼다. 시는 역시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순례길. 나라와 역사와 시가 만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의 뱃길. 소중한 기억을 위해 짧게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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