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참으로 수백, 수천 중에 하나나 둘 있는 것이 제대로 하는 사람이리라.
갈수록 수업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마음이 둘로, 셋으로, 다섯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제대로 해보려 하면 어디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자만할 수 없다.
기차를 타고서, 길을 가며, 그 여성 작가를 주제로 삼은 석사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심사 때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간 들여 찬찬히 읽으니 그 성취가 더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때, 계속해서 공부하기 어렵다 했던 말 떠올라, 어째서 그랬던가, 대학원이 시끄러워 그랬던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마음에 걸린다.
결국은 전화로 안부를 묻고, 논문 참 잘 읽었다 하고, 그때 왜 계속하지 않았던가 묻고, 사연을 듣고, 뭐라 격려라도 한 마디 전해주어야 했다.
며칠 후로, 나는 해당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그 여성 작가를 읽는다. 시베리아며 청도며 훌쩍 떠나기 좋아했던 작가, 아뿔싸, 서른한 살 나이로 요절해 버린 작가, 위병을 오래 앓던 이 여성 작가를 저세상으로 데려간 것은 췌장암이라 했다.
요즘에는 시간을, 박경리 선생 말씀하신 그 ‘두루마리’로 쓰기가 너무 어렵다. 조금 나가고 다른 데 빠졌다 다시 돌아와 조금 더 나간다. ‘혼명에서’는 그 얼마나 절실한 어둠의 노래인가. 그 ‘混冥’(혼명)이란 것은 한 덩어리의 어둠이요 혼돈한 어둠이라고도 한다는데, 도대체, 어려서 독학당에서 공부를 했다는 이 작가는 절체절명의 죽음 앞에서 무슨 뜻으로 이 ‘혼명’을 말한 것인가?
이 작가, 백신애(白信愛)는 1908년 5월 19일에 나서 1939년 6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혼명에서’가 발표된 것은 잡지 ‘조광’의 1939년 5월호다. 나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며 ‘최후’의 문장을 써나가는 작가의 존재를 실감치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삼엄한 죽음의 감정과 의식을 토대로 삼아 나는 이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독법을 찾아낸다.
수업이 있던 금요일, 저녁에 미국서 온 시인을 만나고 일찍 귀가해서, 토요일 문학 강의를 하나 하고는, 죽은 듯이 열다섯 시간을 잠에 빠져 들었다.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다. 몸살 때문일 수도 있고, 요즘 따라 삶이 더욱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요일, 파주의 창고에 가 이것저것 꼭 필요한 책들을 챙겨오는 중에 ‘백신애 작품집’이 들어 있다. 대구 사는 문주 형이 정성 들여 엮어 놓은 선집에 ‘광인수기’가 눈에 뜨인다.
‘광인’이라. 그렇지 않아도 나는 요즘 ‘광인’에 빠져 있는 참인 것을, 이번의 ‘광인’은 일생을 참고 참으며 살아온 한 여성의, ‘광인’ 된 이야기다. 이 작가, 백신애는, 삶의 실상을, 욕망의 움직임을, 허무를 무참히도 날카로운 언어로 헤집어 보일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가둬 두고 있는 인습과 제도의 ‘사슬’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자 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문제작 ‘꺼래이’, 이 작품에 새겨진 처절한 ‘고려인’들의 사연도 그런 욕망과 ‘광기’가 빚어낸 ‘방랑’의 산물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