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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몇 일 전 한 언론이 포스텍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를 실어서 포스텍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포스텍의 구성원이 깜짝 놀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이 기사는 입시와 대학 발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국민들을 놀라케 한 사건이었다.한국대학을 걱정하는 일반 기사는 종종 접하고 그 기사에서 특정대학이 거론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 개의 특정대학을 집중적으로 난타하는 기사는 전무후무한 기사로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입시계의 SNS에서도 설왕설래가 되고 있다. 특정대학을 공격하는 기사 자체가 언론의 정도가 아니지만 그 기사에서 인용된 대부분의 데이터들이 오류 투성이라는게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포스텍의 교원 1인당 논문 실적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해외 유수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목표인 포스텍에 한국연구재단 등재지(KCI)를 기준으로 하는 ‘국내 논문 실적’을 들이대고 부진하다는 기사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포스텍, 카이스트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KCI 보다는 해외 저널 논문을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고 이러한 기준으로 교수 1인당 논문이나 인용 수는 포스텍은 한국에서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다.또한 타 대학 등과 논문숫자를 단순 비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연구력을 평가할 때는 교수 1인당 실적을 비교하는 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고 절대수를 비교 한다면 칼텍(CalTech)과 같은 세계적인 대학도 미국의 대규모 주립대보다 낮을 수 있는 것이다. 교수 1인당 논문 실적은 포스텍은 국내 타 대학, 과기대들보다 단연 앞서고 있다.기사는 포스텍의 중도탈락률에 관하여도 언급 하였는데. 중도탈락률은 의대광풍 등으로 중도탈락률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이나, 역시 타 과학기술원과 비교할 때 최저 수치이고 엘리트 대학 평균치보다 낮다. 중도탈락률의 상승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텍은 물론 전국 대다수의 대학이 처한 시대적 특수상황을 견강부회 형식으로 끌어다가 기자는 보도하였다.세계 대학 평가도 현재 새로운 지표들이 문제가 되어 QS 등도 지표를 수정한다고 선언했으며 잘못된 지표에 의해 일시적으로 하강 된 것이고, THE의 올해 소규모대학평가(재학생 5천명 이하)에서는 포스텍이 칼텍에 이어 2위로 평가되었다. 기사는 ‘서카포’는 옛말이라고 폄하했지만 인용한 김박사넷 SNS에서는 서카포, 영어로는 오히려 SPK가 일반적으로 이공계 최고의 대학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육성의 글로컬 대학의 이슈도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등은 응모할 자격이 없어서 안한 것이지 자격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했을 것이라는 게 SNS상에서 지배적인 의견이다. 포스텍이 대학 선정과 재단의 새로운 투자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려는 중요한 때에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는 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입시관련 SNS상에서는 해당 언론이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누가 보아도 특정대학을 폄하하기 위하여 허위 데이타를 끌어쓰는 방식에 대하여 그 의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학 차원에서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여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으로 알고 있다.이와 함께 대학이 계획하고 있는 포스텍의 미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외에 홍보하며, 구성원들이 더욱 대학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포스텍은 과거 세계 28위(THE 랭킹)로 단연 한국대학의 선봉장이었고, 카이스트와 홍콩과기대, 로잔공대 등을 누르고 ‘설립 50년 이하대학’ 세계 1위로 3년 연속 랭크된 대학이기에 전 세계 교육계의 관심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있다.최근 추진되고 있는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추진도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교의 위상이 의대 설립과 함께 크게 고취될 수 있고 뒤처진 한국 의과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포스텍은 그냥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포스텍은 이제 30년을 넘어 반세기를 향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그 정성과 땀을 바쳐온 교수와 구성원들에게는 포스텍은 그냥 ‘아무나의 직장’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나의 대학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은 아니었을 것이다. 먼훗날 우리는 “아무나가 아닌” 우리 한국의 과학과 경제발전, 그리고 지역과 연계한 창의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포스텍을 위해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였구나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총장의 새로운 시작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포스코의 슬로건중에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구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포스텍은 절대 흔들어서 흔들리는 대학은 아니다.37년 전 서울중심의 이땅에 지역에서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꿈은 하나씩 실현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 꿈의 실현은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2023-12-17

건강수명 연장, 나가노현에서 배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올해 우리나라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 명에 이르고 전체인구의 18.4%를 차치하고 있다. 고령인구의 비중은 2025년 20.6%를 기록한 뒤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경상북도는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경북의 고령인구는 62만 5000명으로 전체인구의 24%를 차지해 이미 2019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역별 고령인구 비중이 전남(25.1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특히 경북 의성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41% 이상을 차지해 전국 시군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머지않은 2045년에는 경북 전체인구 중 43.9%가 고령인구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오래 사는 것은 만인의 염원이자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장수 위험’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노후에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자칫 오래 사는 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아픈 상태로 오래 사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가 도래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준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아픈 기간이 오래 지속된다면 서민들에게 고액의 의료비와 간병비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보건의료정책이 치료 위주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또한 건강보건정책의 핵심을 예방과 진단, 맞춤형 건강법의 보급에 두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가 예방 중심으로 바뀌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으로 변해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 등 전반적인 각종 보건 의료정책이 계획대로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제는 국민 스스로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다. 남자가 80.5세, 여자가 86.5세로 남녀 간 6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73.1세로 10년 정도 짧다. 건강수명에서도 여자 74.7세, 남자 71.3세로 여자가 3.4년 더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도 80.5세, 70.3세로 10년 차이가 난다. 노인이 건강한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건강수명의 대명사가 된 일본 나가노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칼슘이나 비타민 D가 풍부한 우유나 유제품, 해산물, 콩류 등을 적극적으로 섭취하도록 하는 식생활 개선과 함께 노인을 대상으로 체조와 스트레칭, 근력운동 등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거기에다가 지자체의 주민센터, 보건소, 복지시설,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골다골증 등 건강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산책로, 둘레길, 체육시설 등에 ‘맞춤형 운동’을 집중적으로 보급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70대는 일생에서 신체 기능이 크게 약해지는 분기점과도 같은 시기다. 뼈와 근육 소실로 키와 힘,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노화 관련 연구 결과들을 모아 보면 40대 이후 키는 10년마다 약 1cm씩 줄어들다가 70대에 들어서면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근력은 60세 이후 연간 3% 정도 감소한다. 따라서 가벼운 낙상 사고에도 심한 부상이나 골절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의 기능도 약해져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매 등의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나이다.노년기 신체 기능 향상 및 만성질환 예방에 가장 손쉽고 이로운 방법이 운동이다. 체조와 스트레칭 운동은 몸의 구석구석을 자극시켜 신진대사 촉진에 도움이 되고, 빠르게 하면 유산소운동의 효과, 아주 천천히 하면 유연성 및 근력 향상과 재활에도 효과가 있다.규칙적인 체조 운동으로 체력이 향상되면 근력과 움직임의 향상, 심장의 수축력 증가, 당대사능력의 향상, 지방의 과다축적 방지 등의 효과뿐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 개선 등 이차적 효과도 있다. 이에 더해 체조와 스트레칭은 나이에 맞는 속도로 천천히 진행하면 골밀도 강화는 물론이고 목이나 무릎 등 관절 부위인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 게다가 심장에서 가장 먼 데서부터 하는 순서여서 심장이 약한 고령자들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그런데 기존 ‘국민체조’는 동작이 너무 단순하여 다소 운동 효과가 적으며 딱딱 끊어지기 때문에 다치기 쉽고, 또한 ‘새천년건강체조’는 국민체조에 비해 동작이 다소 복잡하여 혼자 동영상을 보고 외우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태권도에서 따온 옆차기 등은 고령자가 따라하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노년기에 자신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게 동작의 난이도 및 운동 강도를 상·중·하로 구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체조가 나가노현과 같이 우리 지역에서도 하루빨리 개발 보급됐으면 한다.

2023-12-17

‘네모난’ 나사못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사노라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들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을 가리켜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굴러들어온 행운이라고나 할까!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 덕분에 나도 청춘들처럼 유튜브와 친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천문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와 영성(靈性)과 관련된 영상 그리고 인문학이 나를 끌어당긴다.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귓전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절이 있다. “그는 동그란 구멍과 맞지 않는 네모난 나사못 같은 사람이었다.” 19세기 말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만연한 천편일률적인 사회 분위기를 ‘동그란’ 구멍으로 일반화하고,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를 ‘네모난’ 나사못으로 표현한 것이다.주지하듯이 서머셋 모옴(1874∼1965)은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자전적 요소에 기댄 ‘인간의 굴레’와 달리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와 원시주의를 대표하는 폴 고갱(1848∼1903)의 삶에서 소재를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다. 40살 나이에 다섯 아이와 아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선 낯선 사내 고갱.화가들이 대개 열여덟 살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너무 늦은 시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인간. 그는 무엇 때문에 세간(世間)의 비웃음과 의혹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 들어섰을까! 그를 인도한 등대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재능이 아니라, 그림을 하고 싶다는, 그림을 해야 한다는 내면의 강렬한 목소리였다.불과 15년의 생을 그림에 투척한 고갱의 작업은 훗날 앙리 마티스를 대표로 삼는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를 선두주자로 보는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그의 인생이 흥미로운 까닭은 머나먼 미지의 남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섬 타히티에서 열렬하게 타올랐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보면 타히티는 호주의 시드니와 칠레의 산티아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삼각형 가운데에 자리한다.서머싯 몸은 타히티의 고갱을 그저 그런 유럽인들과 확연히 다른 인간으로 그려낸다.그는 내 남 할 것 없이 누구나 ‘거기서 거기’ 가는 삶을 살아간 유럽인들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천착한 특별한 인간으로 고갱을 묘사하고 있다. 당대를 풍미한 지배적인 삶의 풍조를 비웃으며 ‘마이 웨이’를 외친 인간이 고갱이라고 몸은 주장한 것이다.소설 제목이 주는 엇박자가 낯선 독자를 위한 몸의 친절한 서한(書翰)이 있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 6펜스는 지상적(地上的)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무상한 것 그리고 지금과 여기를 의미한다. 달은 천상적(天上的)인 것, 정신적인 것, 영원한 것, 추상적인 것, 불멸하는 것과 영원무궁한 것을 뜻한다.날이면 날마다 땅만 보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천상의 달과 천체를 보며 영원을 꿈꾼 인간 폴 고갱이 ‘네모난’ 나사못이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리라. 오늘 밤에는 무슨 달이 뜨려는가?!

2023-12-17

은둔형 외톨이 청년

우정구 논설위원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8050문제가 핫이슈가 됐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의 8050은 이제 일본선 9060문제로 넘어가는 시대 상황을 맞고 있다.일본말의 히키코모루는 ‘틀어 박히다’는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루를 명사형으로 바꾼 신조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자녀가 취직을 못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고립형 청년을 두고 일본서는 이렇게 부른다.며칠전 우리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고립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이 일부 시행되고 있으나 정부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도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실제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립·은둔 위기의 청년이 약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39세 연령층 인구의 5% 수준이다. 이들 청년은 취업할 생각도 않고 집에 박혀 동영상 시청 등 온라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5%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자다. 고립 은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등 직업관련 어려움이 24.1%, 대인관계 어려움을 꼽는 사람이 23.5%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신체건강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고, 7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고립·은둔형 자녀가 늘면서 관련 부모단체가 만들어지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 엄마입니다”라는 책도 출간됐다.만시지탄이나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7

붕어빵

우정구 논설위원 동네 버스정류장 부근 모퉁이 등에 등장하는 붕어빵 노점을 보노라면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붕어빵은 한국인에게 겨울을 알리는 대표 간식거리다.원래 일본 도쿄 어느 가게에서 시작된 타이야끼(도미) 빵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도미는 비싸고 귀한 생선이어서 도미 모양으로 된 빵이라도 만들어 먹자고 생겨난 것이 시초가 됐다고 한다. 도미빵이 붕어빵 모양으로 변경된 것이 지금 우리 동네서 파는 붕어빵이다.193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져 벌써 90년 세월이 흘렀다.미국에서 밀가루가 많이 지원되던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에서 많이 유행했다. 저렴한 가격 탓에 서민들의 점심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붕어빵 노점은 쇠퇴하는 듯했으나 IMF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붕어빵은 쇠틀에 밀가루로 만든 반죽과 단팥소를 넣어 간단히 구워먹는 풀빵이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 불황기에 잘 등장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붕어빵 장사가 없어지고 경기가 나빠 실업자가 양산되면 길거리에 붕어빵 노점이 늘어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일종의 불황을 알리는 지표로 보기도 했다.올겨울 사라졌던 붕어빵 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중심으로 붕어빵 장사에 나서는 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노점도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의 숍인숍 형식의 점포도 늘고 있다. 대구에서 붕어빵 1개 가격은 700원이 주류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10년 전 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옛 추억을 느껴 볼 붕어빵이지만 서민경제가 나빠져 불쑥 등장한 것 같아 썩 반갑지만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4

‘공천 물갈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홍석봉 대구지사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여당의 위기가 내 책임”이라며 13일 사퇴했다. 친윤석열계 핵심인 3선의 장제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여당의 공천 물갈이 물꼬가 왕창 터졌다. 정치권의 ‘물갈이’ 신호탄이 됐다. ‘물갈이’는 정당 공천의 핵심이다. 현역 의원 대신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한다. 거물급의 불출마 및 공천 탈락과 명망 있는 정치신인의 등장은 그만큼 극적이면서도 유권자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공천 물갈이’는 어느덧 총선 승리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물갈이는 유권자의 요구다. 일부 직업이 된 묵은 정치인에 대한 경고다. 각 당 지도부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수준을 고심한다. 국민이 이해할만한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 및 대통령선거 경선구도 선점과도 관계가 있다.최근 4차례 총선에서 정당의 인적 쇄신 효과는 컸다. 대부분 승리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러진 21대 총선을 제외한 3차례 총선에서 확인됐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현역 의원 물갈이율 33.3%였던 민주당이 32.8%의 새누리당에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교체율 41.7%의 새누리당이 37.1%의 민주당을 이겼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현역 교체율 38.5%의 한나라당이 19.1%의 민주당을 이겼다. 현역 물갈이 폭이 승리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물갈이는 텃밭인 TK(대구·경북)가 주 대상이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TK에는 누가 공천돼도 당선된다. 당 지도부가 초선과 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했다. 21대 총선 때 TK의원 교체율은 64%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TK의원 물갈이 비율이 52%였다.22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5월 경북매일 여론조사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줄기차게 지역 의원 절반 이상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역대 물갈이의 가장 큰 희생양은 TK다. 최근 당 지도부에 진출, 활약하는 지역 의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존재감은 떨어진다.각종 지역 현안사업을 챙기고 새로운 사업을 끌어오기엔 힘이 부친다.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매번 정치 신인으로 교체하다 보니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한다.참신한 인물로 교체하는 인적 쇄신은 국민에겐 신선감을 주고 정당엔 개혁과 변화 이미지를 준다. 선거전에 그만큼 유리하다.하지만,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물갈이 대세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의 명분만 앞세운 섣부른 물갈이는 자칫 ‘공천 학살’로 비칠 수 있다.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초선 의원은 국회에서 ‘거수기’ 취급을 받을 만큼 존재감이 떨어진다. 정치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원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국민의 요구와 정치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교한 세팅 작업이 필요하다. 물갈이 해법 찾기가 지난해 보인다.

2023-12-14

하느님이 보우하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1일,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두 달 만이다. 다수의석의 야당이 이번에도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부결시키지 않을까, 가슴 졸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부결되어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가면 내년 초의 법관 인사는 물론 총선에도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천만다행으로 조희대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될 만한 흠결이 없어 야당도 차마 부결시키지를 못 했다.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을 보면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애국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금의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70년 세월은 애국가 가사처럼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역사였다. 미국의 일본 원폭으로 극적인 해방을 맞은 것에서부터, 비록 반쪽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것,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확립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대국을 이룬 것은 천지신명의 도움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삼권분립을 기본 체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를 위한 마지막 보루다. 사법부가 부패하거나 편중되어 제구실을 못하면 정의와 법치는 무너지고 혼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 정권 시절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법독립을 포기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편파적이고 관례를 무시한 코드인사와 고의적인 재판지연 등으로 공정과 정의를 무시하는 등 사법부와 법관의 위상을 바닥까지 실추시켰다. 이제 새로운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누적된 병폐들을 일소하고 법치 확립의 근간이 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세 기둥인 입법, 사법, 행정 중 어느 하나도 건실하지 못해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지금의 거대야당 행태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국회 다수의석의 야당이 어디까지 행패를 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결과가 뻔한 데도 묻지마 식으로 탄핵을 남발하고, 정부의 국회동의안을 온갖 구실로 부결하고, 터무니없는 구실로 정부 예산안에 비토를 놓는 등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패악질은 끝이 없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은 것처럼, 조희대 대법원장이 좌경화 법관들이 장악한 사법부를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은 입법부의 정상화다. 좌파 정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좌파 정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넘지 않기를 빈다. 그래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

2023-12-14

정치가, 정치인, 정치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계묘년을 보내며 교수신문에서는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 했는데 30% 정도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택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정치인의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라 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올바른 책무를 팽개치고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생각들을 대변한 것이리라. 다음으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골랐다. 자기 또는 자기편의 언행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 즉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 탓, 언론 탓을 해댄다는 것이다.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계는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 국민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뛰어든 모양새다. 정치를 하는 사람 즉, 정치인이란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의하는 사람으로 국가원수,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이익 도모를 실천하는 나라와 국민의 일꾼이다. 우리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정치가, 정치인 또 정치꾼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로 굳이 구별한다면 정치가는 Statesman, 정치인은 Politician이다. 정치가는 ‘국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언행이 공정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자신 또는 자기편의 이익만을 쫓는 모사꾼 즉 정치꾼’으로 폄훼되고 있는 느낌이다.프랑스 조르주 퐁피두는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많은 정치인은 정치꾼들로 보여진다. 자기 당 우선이고 국민권익은 나중이라는 태도로 공약을 쉽게 뒤집고 정당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의견을 짓밟고 있다.정치가의 자질은 도덕적이며 준법의식을 갖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국가 번영을 지향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좀 낮추어 정치인이라 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이 탄로가 나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우리나라는 정치인이라면 주로 국회의원을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정치에 대한 논리적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정치외교학, 법학, 행정학, 사회과학 등을 전공한 자가 얼마나 될까? 언론인과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정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좌관을 9명씩이나 데리고 있으니 전문성을 띤 사항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쌓아 특정 분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치엘리트가 많아야 국가백년지계를 설계하는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근대사에 정치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귀에 익은 정치인 거의 모두를 정치꾼이라 불러도 될 듯하니, 과연 정치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정치꾼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로 안보와 경제가 걱정스러우니 앞으로 참다운 정치개혁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정치가들을 뽑아야 할 것이다.

2023-12-14

제자 찬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할매카페는 성업중이었다. 이화회, 매월 두 번째 화요일의 만남은 결성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공감의 대화로 화기애애했다. 한 달에 한번 그리운 이 만나 듯 기쁘게 만나지만 단 4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은 항상 아쉬웠다. 하루 말미를 얻어 가까운 경주로 가서 문화산책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시간을 늘인 만남과 대화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한 번 더 도발을 해봐요? 의기투합했다. 여전히 손주들을 돕는 임무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리저리 잴 것이 많았지만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엔 해외로 뛰죠.” 9월 모임에서 뜻을 모았다. 12월로 멀찌감치 날짜를 잡고 스케줄 조정을 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을 끼워 날을 잡았다.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시간이 허락잖고, 가까운 곳은 거의 다 경험한 터였다. 간 곳이라도 또 가면 돼죠.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이 중요하다잖아요? 모두들 동의하고 내가 제안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크루즈여행 어때요? “제자찬스를 써 볼까요?”응웬휴비엔은 내게 가장 의미있는 제자다. 재학 내내 센스있고 영특해서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었고 탁월한 성적으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어능력시험 6급도 독학으로 취득했다. 졸업 후 베트남에서 꽤나 탄탄한 중견기업의 영업부장직을 수행 중인, 성공한 제자다. 비엔은 내게 베트남 사랑을 가르쳐주기도 해서 난 한 예닐곱 번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방문했다. 그럼 어떠랴? 이화회 멤버와의 여행은 또 특별할 것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넣었고 단번에 환영의 콜이 왔다. 그 자리에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필요경비를 모았다. 막힘없이 일사천리였다. 베트남의 일정은 바쁜 비엔에게 맡겼다. 옵션은 럭셔리하되 할머니들임을 감안해 너무 고단하지 않게, 센스만점 비엔은 야무진 일정표를 메시지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정옥 교수님 베트남 여행 일정”.제자 찬스는 성공적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특별대우는 여행 내내,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덕에 우린 정말 단 한 번도 경험 못한 호사를 누렸다. 최고의 레스토랑, 전망좋은 호텔, 하롱베이 크루즈의 반짝이는 야경, 섬에서 맡는 바람의 향기는 패키지 투어로는 절대 경험 못할 여행이었다. 비 오는 하노이의 격한 환영이라는 비엔의 센스있는 유머까지도 즐거웠다. 그저 우리는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거둘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면 되었다. 여유로운 수다로 웃고 또 웃었다. 웃음소리는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골치아픈 정치 얘기도 연예인의 선정적 가십도 우리의 대화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TV를 켠 적이 없었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우린 또 하나의 동질성을 발견했다. 그 흔한 면세점 쇼핑을 어느 누구도 않는 거였다. 손주들 줄 과자 몇 봉지 살 뿐임에도 더없이 풍성한 여행이었다. 이렇게 품격있는 우리의 여행은 모두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덕분이었다. 비엔 정말 고마웠어.

2023-12-13

인체 중심부와 사지말단의 온도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의 체온은 36.5℃ 정도이고 중심 체온은 37℃ 전후로 유지된다. 피부쪽은 34℃ 가량으로 유지되고 사지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떨어진다. 심장에서 멀수록 피가 먼 곳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지 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낮아진다. 정상적인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므로 사지말단의 온도도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선천적으로 마르거나 약한 사람, 나이가 들거나 허리가 안 좋거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사지말단의 온도가 정상인에 비해서 더 낮다. 실제 적외선 촬영을 하면 온도가 더 낮을 뿐만 아니라 심한 사람은 차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시리다고 표현한다.특히 다리로 혈액순환이 안 되어 종아리나 발이 차고 시린 사람들은 겨울을 싫어한다. 평소에도 하지 쪽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종아리나 발이 저리거나 쥐가 자주 난다. 겨울이 되면 피부가 차가워지고 몸의 근육들이 수축해 혈액순환이 나빠져 증상이 더 심해진다. 심한 경우는 실제로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하루종일 발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경우는 시리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데 이럴 때는 온몸을 칭칭 감아도 시려워서 바람을 쐬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 시리다는 감각은 난치질환이고 치료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치료를 해야 한다.차거나 시린 증상은 결론적으론 혈액순환이 안되어서다. 따뜻한 심부 쪽의 혈액의 흐름이 하지로 원활하게 오지 못해서 혹은 양이 부족해서 막혀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발쪽으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니 차가워지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각각의 사람마다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을 해줘야 한다. 약하고 마른 사람은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살이 찌게해줘야 하고 나이가 들어 하지로 혈액순환이 안 되는 사람은 보약을 써야 하며 산후로 시리거나 찬 증상이 있는 사람은 몸의 찬 기운을 날리는 약을 써 산후풍을 해결해줘야 한다.위에서 말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외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보통은 몸이 약하고 마른 사람들이 이런 증상이 많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첫 번째는 삼겹살처럼 지방이 있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한다. 살이 찔수록 몸의 부피에 비해 체표면적이 적어져 열의 손실이 줄어들고 마를수록 체표면적이 늘어나 열의 손실이 늘어난다. 덩치가 커져야지 열의 손실이 줄고 지방과 근육량이 늘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살과 지방이 두루 잘 섞인 고기를 밥이라 생각하고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근력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 또 수정과 같은 계피를 달인 차를 자주 복용하면 좋다. 계피와 대추 생강을 섞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심하지 않는 경우는 한의원에 방문해 피부 쪽에 피를 내는 자락관법을 여러 군데 해주고 태반 약침이나 그에 맞는 약침치료를 10회가량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노인들이나 오래된 경우 혹은 심한 경우는 약처방을 3~6개월가량 길게 복용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쉬운 소리지만 몸이 찬 사람은 쉽게 해결이 안되니 개인의 노력이든 치료든 아주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은 찾아온다.

2023-12-13

대한(大寒)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24번째가 대한(大寒)이다. 태양의 황경이 300도에 위치한다. 다가올 대한(大寒)은 2024년 1월 20일(음력 12월 10일)이다.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이다.대한은 한 해를 마감하고, 입춘(立春)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다. 사주명리에서도 입춘을 기점으로 띠가 바뀐다. 대한(大寒)의 한자 뜻을 보면 ‘큰 추위’지만, 실제로는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는 시기다. 오히려 소한보다 춥지 않은 편이다. 대한에서 15일이 지나면 입춘이기 때문이다.대한은 음력으로 본다면 연말에 해당한다. 옛날 사람들은 대한을 계절이 바뀌는 때라 여겼다. 이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에 콩을 뿌려 악귀를 쫓아내고,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는 ‘해넘이’ 풍습이 있었다. 또한 ‘대한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는 속담도 있다. 대한의 다음 절기가 입춘이므로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이를 극복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다.제주도에는 새해 풍습으로 신구간(新舊間)이 있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에는 지상에 내려와 있던 신들이 하늘로 잠시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금기로 생각하던 일을 해도 아무런 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수리, 나무 베기, 묘소 고치기, 이사 등 생활 주변을 정리했다.명리에서 음력 12월은 축월(丑月)이다. 소한과 대한이 축월에 해당된다. 주역으로는 지택림(地澤臨)괘다. 상괘 곤(坤)은 대지를, 하괘 택(澤)은 연못을 상징한다. 대지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으로, 군주가 백성을 대하는 모양이다. 소위 군림(君臨)하는 형태다. 대지와 연못의 물이 서로 의존하는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마치 끝없이 백성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모습이다.괘 위에는 음효(陰爻) 4개가 있고, 아래로는 양효(陽爻) 2개가 올라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임(臨)은 크게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이롭다고 해석한다. 아직도 강한 음(陰)이 남아있어 양(陽)이 정지한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쌓는 시기임을 말하고 있다.명리에서 축월(丑月)에 태어난 사람은 대개 몸의 기운이 찬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다는 것은 응축하는 성향이 있어 억울한 감정이나 우울한 기분을 배출할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는 태도가 가장 큰 장점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사주에 축(丑)이 있으면 이와 같은 성향이 있어 끈기와 지구력이 좋은 편이다. 늘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많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12월 말이 되면 태양은 12차(次)를 돌고, 달이 기(紀)를 다 돌며, 별자리가 하늘을 일주하면 1년의 운행을 마친다고 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황도 부근을 따라 12개의 성수(星宿)를 정해 놓고 이들 각각을 차(次)라고 했다. 기(紀)는 달과 태양이 만나는 시점을 뜻했다.그러므로 이 시기에 농민들을 조용히 지내게 하면서 부역 같은 데 동원하는 일이 없게 한다. 천자는 공경대부들과 국가의 제도나 법을 정비하고, 시령(時令)을 논의하면서 새해를 기다린다. 그 당시 법은 세상의 규범이자,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다. 법을 세우는 것은 법을 어기는 자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고, 상을 주는 것은 마땅히 상을 줄 자를 위한 것이었다.법이 정해진 이후에는 규정에 합당한 자는 상을 주고, 규정을 어기는 자는 벌을 준다. 이때 존귀하다고 벌을 가볍게 해서는 아니 되며, 비천한 자라고 해서 형벌을 무겁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적인 길이 열리고, 사적인 길은 막히게 된다.그래서 추운 12월에 가을의 정령(政令)을 시행하면 때에 맞지 않게 이슬이 내리고, 갑각류 동물에게도 재앙이 미친다고 생각한다. 자연계의 변화는 인간사회에 나타날 수 있고,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연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계절에 맞는 정령을 시행하는 것이 그 당시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음을 엿볼 수 있다.그러므로 통치자는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족한 사람을 채워주면 이름이 나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징벌하고, 포악한 자를 막으면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주로 국가의 재난이나 그해 농사의 풍년이나 흉년에 대비한 것이다.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그 시대에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2023-12-13

무대

정미영 수필가 푸른 하늘 아래 단풍비가 내리는 느긋한 오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붉은빛의 나뭇잎이 내 가슴에 날아와 침전된 감정선 위에 앉는다. 기분 전환 겸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형산강변이다.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에서는 12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반별로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대 위에서 즐길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동안, 추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사노라면, 크든 작든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를 문득 풀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이가 없어도 독백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자기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오늘일까?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록 발라드 곡인 ‘Holiday’나 ‘Still Loving You’ 그리고 ‘Wind Of Change’를 보컬이 부를 때면 음색이나 창법이 원곡자와 비슷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을 열창하면 그의 성량과 고음에 거듭 열광했다. 리드 싱어의 노래는 축제 때 더 빛이 났다.관객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의 움직임에 끌림과 설렘을 갖지 못한다면, 공연하는 이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보컬의 섬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과 전율을 느꼈으므로 밴드는 뿌듯했으리라.밴드의 열정과 관객의 환호가 최고조 접점에 다다르면 축제도 공연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99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20대 청춘, 마냥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학업이나 취업, 사랑 등 저마다 가슴 한 켠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하루의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막하고 우울한 일이 겹쳤던 친구일수록 목청껏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했다.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 즉 정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학 밴드의 음악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규했던 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보컬과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길고도 열렬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의 공연은 끝났다.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운동장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주점에 들렀고, 나와 친구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학과 선후배가 운영하는 ‘일일찻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교양 과목 교수님을 뵈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무대의 화려한 환상에 속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이유인즉, 밴드 여성 보컬이 같은 과 친구였다. 축제가 열리기 얼마 전에 밴드 동아리실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리드 싱어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단다.친구는 나에게 자기 체면을 봐서 다가오는 축제 때 그에게 꽃다발을 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친구의 간절함에 못 이겨 장미꽃 한 송이를 공연 때 건넸다. 그 장면을 교수님께서 보신 것이었다.그 시절 무대에 서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직업인이 아니라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던 시절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쭈뼛거리며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요즘 학생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일이 빈번하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금 형산강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는 저들이 앞으로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2023-12-13

이제는 문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60년대에 상업창부(商業創富)라 하였다. 장사로 얼른 돈을 벌어야 했다. 80년대가 되자 과기창신(科技創新)이라 외쳤다.과학기술로 새로운 걸 만들자고 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문화창의(文化創意)의 기치를 걸었다. 이제는 문화로 뜻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사회주의롤 기조로 하면서도 시대마다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국가를 경영해 오는 기조를 그렇게 바꾸어왔다. 지난 세기를 건너오면서 상업과 과학기술에 운명을 걸었고 이제는 문화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문화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지정하고 국민총생산(GDP)대비 5퍼센트 정도를 문화로 채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문화확장정책의 한 가닥으로 눈에 뜨이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에도 문화가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21세기는 문화가 이끄는 시대임을 선포한 것이며, 여러 방면에서 풍성한 문화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국방이 나라를 운용하는 기본수단이지만, 문화의 텃밭이 넉넉해야 새로운 시대를 자신있게 열어갈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문화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는 세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혼란했던 시절에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주석이 이렇게 적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그토록 어지러웠을 국가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문화를 떠올렸을까. 어떻게 문화를 ‘힘’이라 적었을까. 그는 사람이 푯대로 삼아야 할 여러 지향점들 가운데 문화가 가장 높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것이라 내세울 문화가 우리에게 있는가. 문화를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얼마가 생각을 기울이는가. 정치와 경제로만 사람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며, 국방과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 독특하고 분명한 문화적 품격을 길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살피고 발굴하며 다듬어야 한다.지역은 어떠한가. 지역에 고유한 문화원형(文化原形)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하여 지역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모두 옛날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루하다. 문화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언제든 새롭게 피어나고 저절로 변화해 간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문화자산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문화다. 문화로 승부하고 상상력으로 겨루어야 한다. 이전과 다르고 남들과 다른 나라가 되고 지역이 되어, 문화가 힘이 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어려웠을 때 문화를 떠올렸던 까닭을 새겨야 한다.

2023-12-13

‘개딸’과 작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개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바꿔달라고 언론 등에 주문했다. “상대 진영이 우리를 프레임해 선동했기 때문”이라는 게 개명 이유다. 나쁜 이미지가 덧칠됐다는 것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당초 작명 의도는 괜찮았다. 당 대표까지 ‘우리 개딸, 개이모, 개삼촌’이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권과 언론 등에 폭력성이 부각된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미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자 이미지로 굳어진 명칭을 이제 와서 본인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바꾼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지는 알 수 없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줄임말이 성행한다. ‘심쿵(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놀라거나 설렌다)’‘맛점(맛있는 점심)’‘극혐(아주 싫어하고 혐오하다)’ 등은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이다. 이젠 성인들까지 사용하는 등 생활 속 깊숙이 침투했다. ‘개딸’도 이런 유형의 신종 줄임말이다. 줄임말의 부작용이 적잖다.얼마 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의 신설 역사 이름이 ‘부호경일대호산대’역과 ‘하양대구가톨릭대’역으로 결정돼 논란을 빚었다. 지역과 대학 이름을 함께 넣으면 대학도시의 이미지 개선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름 붙였다. 이후 “역 이름 떠올리다가 지하철 놓치겠다”, “역 이름이 암호같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은 사람이나 물체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제 작명 때 줄임말까지 감안해야 할 상황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3

온몸의 사랑

성현아 문학평론가가 경향신문 11월 22일자에 기고한 글 ‘무해함에 햇살 비추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비폭력적이고 잔잔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짚으면서 “무해함을 요구하는 독자 및 시청자에 맞춰 고통당하는 이들의 비명을 말끔히 도려낸 고요한 진공 공간만을 전시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점”을 우려하는 내용이다.성 평론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극적인 무해함보다 나의 유해함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무해함”의 예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언급했다. 정신병동 환자들을 편견 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던 간호사 ‘다은’이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호소하며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편견과 마주하는 장면에다 “편견이란 우리 몸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 소박한 내면의 촛불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다. 외부의 무엇과 부딪쳐 깨어질 때 비로소 번뜩이며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겹쳤다.“무해하기만 한 서사보다는 무해함의 허상에서 벗어나 다종다양한 해로움을 조명하되,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덜 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서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김초엽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떠올렸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배아디자인’이 상용화돼 부모들은 태어날 자녀의 신체, 성격 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성격의 결함이나 신체적 장애가 없이 탁월한 두뇌능력과 예술적 감성과 피지컬을 갖추고 태어난 이들은 ‘개조인’, 돈 없는 부모에게서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들은 ‘비개조인’이 된다. 개조인들은 지구 밖에 그들만의 완전무결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비개조인들은 가난과 질병과 전쟁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 지구에 남는다.무해한 유토피아에서 성년이 된 개조인들은 일종의 성년식으로 조상들의 행성인 지구에 순례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 견학을 간 개조인들 중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고, 주인공인 데이지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평화롭기만 한 유토피아엔 오히려 사랑이 없다는 것을,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은 사랑 없는 유토피아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사랑의 조건으로 ‘비대칭 관계’를 제시한다. 비대칭 관계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과 책임을 말하지만 상호 보완의 의미에 더 가깝다. 결핍이 없으면 채움도 없다. 나의 부족함을 당신이, 당신의 해로움을 내가 서로 감당하면서 끌어안는 것이다. 완벽하기만 한 사람들 사이에선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다. 연민과 사랑은 타인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순간에 불꽃이 튄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구정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땅에서 발을 뗀 채 마치 천사처럼 환하고 가볍고 평화롭기만 한 사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계신다. 이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는 원래 들리지 않았으며 걸을 수도 없어 침상과 한 몸으로 지낸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침대 위에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조명을 끈다. 그러면 방금 던진 스마트폰을 찾지 못해 어둠을 더듬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런 세계에 계속 갇혀 있구나’ 생각에 울컥한다. 감성이 풍부한 밤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꼬옥 안아드려야지. 그런데 면회를 가면 이상한 국면이 펼쳐진다.생각 속에서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던 할머니가 만져지는 눈앞의 현실에서는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고 냄새가 나고 끈적거리는 할머니인 것이다. 나는 할머니 몸에서 나는 악취와 분비물에 얼굴을 찡그리며 안는 것도 놓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그 냄새와 타액은 내게 유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냄새와 끈적거림을 참으면서 기어이, 끝까지 할머니를 끌어안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만 애틋하고 순정한 관념의 사랑이 아닌, 가까이 가 만지고 껴안고 견뎌대는 온몸의 사랑.

2023-12-12

나는 완벽하지 않아

최근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하다고 믿으며,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번번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지를 보며 이정도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가 다르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며 우울감으로 빠져 들기 쉽다며 짚어 주셨다.사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적 공허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실은 내 스스로 만든 완벽한 기준치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완벽주의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 때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는 그저 예의상 건네거나 또는 분위기상 듣기 좋은 말을 골라 건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의 정도까지 내 스스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고 늘 스스로 여겨왔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여도 남들 하는 만큼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최근에서야 점점 깨닫고 있는 건, 완벽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권하는 방법은 바로 완벽주의를 인정부터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이끌어 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기에 건강한 완벽주의의 장점을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리곤 건강이나 외모, 성공이나 행복에 관한 기준을 적어보고 지금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놔두고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지향하여 성공 확률을 높여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실수는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도 앞에서 실패는 반드시 따른다.두려움의 뿌리는 과연 내 깊은 곳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진다.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며 노력했을 뿐인데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늘 실패에 가닿을 때마다 나의 노력과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실패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다.요즘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었다. 그래서인지 늘 목표를 내 기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곤 했다. 높게 잡은 목표를 어떻게든 혼자서 잘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썼으나 일의 경험이 적은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점부턴 주위 타인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싶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하지만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실은 내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왜 그토록 일을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는지, 왜 해결할 수 없는 일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은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 기력이 빠져서 잠에 들기 바빴는지 이 모든 게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다.나는 완벽할 수 없다. 특히 혼자서는 더욱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실패할 수 있고 실패에 가까워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면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고 나 또한 그 도움을 받아 일을 잘 해결하면 된다.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우리 사이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일과 사람이지만 점차 조금씩 나와 타인을 믿으며 나아가다보면 점차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한 상태는 존재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온전한 상태는 존재할 것이다.

2023-12-12

‘장제원 희생’이 여권혁신의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그저께(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의 총선 험지출마 또는 불출마를 핵심으로 하는 6개 혁신안을 전달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당초 성탄절까지 활동시한으로 정했지만, 이날 조기 종료한 것은 여당 기득권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혁신위의 출발은 화려했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제 믿은 인요한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친윤핵심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3선)이 어제 국회에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지만,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40여 일간의 혁신위 활동은 여당 메인스트림의 구조화된 카르텔과 헌신정신 결여,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을 확인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당내 비주류 의원을 중심으로 ‘쇄신대상 1순위는 지도부’라며 공개저격하고 있음에도, 김기현 대표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혁신위를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로 인식하며 기득권을 붙잡는 모습을 TV중계처럼 지켜보는 유권자 마음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현 지도부체제가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 내년 총선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시즌2’로 갈게 뻔하다.최근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총선 판세분석 결과가 이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 지역은 강남과 서초, 송파 일부 등 6곳 정도라고 하니 충격적이다. 2020년 4·15총선 당시 서울 8석보다 당세(黨勢)가 더 쪼그라들었다. 당 기획조정국이 그동안 언론에서 발표한 각 정당 지지율과 지역별 지지율 등을 기준으로 판세를 분석한 데이터라고 한다.민주당은 지금 내년 총선에서 200석 확보를 거론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일을 주도한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번처럼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라고 했고, 정동영 상임고문도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했다.이들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로 판세분석을 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4년 전(민주당 180석 획득)과 비슷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민주당은 지금 내부에서조차 “도덕성은 평균이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됐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흐름에 밝은 당 상임고문들이 총선 석권을 자신할 정도로 민심을 얻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혁신위 조기종료 과정에서도 보듯, 여권은 강서구청장 참패 이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윤석열 대통령도 현 지도부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니, ‘여권 카르텔’은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내놓은 과제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여당이 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는 현 판세를 바꿀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이 여권의 고강도 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12-12

남우충수(濫竽充數)

우정구 논설위원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매년 12월에 발표하는 사자성어는 우리 시대 사회상을 잘 반영한 표현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교수신문은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올바름을 잊어 버린다”는 뜻이다.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교수들이 추천한 올해의 사자성어 중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우리 정치인의 부족함을 빗댄 말로 ‘남우충수(濫竽充數)’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넘칠 남(濫), 피리 우(竽), 채울 충(充), 숫자 수(數)의 ‘남우충수’는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유래는 이렇다. 중국 제나라 선왕이 300명의 악사를 모아 피리 합주를 자주 들었는데, 이때 남곽이라는 자가 피리 연주를 할 줄도 모르면서 악사 틈에 섞여 매번 흉내만 내면서 높은 녹을 받았다. 그러나 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합주보다 독주를 좋아해 연주자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 연주케 했는데, 이를 안 남곽이 미리 도망쳐 버렸다는 고사다.실력이 없으면 언젠가는 탄로가 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도 폐지하자는 국민의 원성이 잦다. 임기 4년 내내 존재감 없이 이 눈치 저 눈치보며 지내는, 존재감 제로의 국회의원들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다.언젠가 홍준표 대구시장은 “하루를 해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좀 뽑자”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능력 없이 자리만 지키는 국회의원은 뽑지 말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2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할까?

강지우 SF평론가 우리나라 SF 영화 ‘더 문’은 왜 흥행에 실패했을까? 국내 최초 달 탐사 영화로 개봉 전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 관객은 50만 명에 그쳤다. 시각 효과는 손색없었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위기 상황이 극의 긴장과 감동을 반감시켰다는 평이 많았다. 지난해 개봉한 ‘외계+인 1부’에서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김태리 등 배우들의 명연기가 감탄을 자아냈지만, 산만한 구성과 어색한 대사가 영화의 완성도를 해쳤다. 내년 초 개봉할 2부에서는 흥행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이런 작품들을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줄곧 품었던 의문에 대해 지난달 18일 개최된 ‘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는 김초엽 작가, 김겨울 작가, 이다혜 기자가 연사로 초청되었다. 많은 청중의 열띤 참여가 행사를 알차게 완성했다. 1부 북토크에서는 예비 작가들의 질문이 이어져 그야말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펼쳐지기도 했다. 2부 시네마 토크에서는 이다혜 기자가 ‘SF 영화의 휴머니티’를 주제로 강연했다. 보통 한국 SF 영화의 실패 원인으로 꼽히는 ‘휴머니즘’이 알고 보면 ‘인터스텔라’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SF 블록버스터의 중심 주제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은연중에 왜 한국 SF 영화는 ‘신파’를 못 넣어 안달이지? 라고 불평했던 터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실제로 휴머니즘을 탐구하는 SF는 요즘 한국 SF 문학계의 주된 흐름으로, 국내외에서 평론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결국 과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휴머니즘만이 한국 SF 영화의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SF 영화에는 큰 자본이 투입되기에 새로운 시도 보다는 기존의 공식을 따르는 시나리오가 채택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수효과 등 시각적, 기술적 부분에 치중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분위기가 더해져 이야기에는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도 한다. 결국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진부하고 빈약한 뼈대의 SF 영화가 나오게 되는 환경인 것이다.그러나 모든 한국 SF 영화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고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다.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 SF 영화가 충분히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절대적인 작품 수가 부족한 것이다. 미국 SF 황금기를 이끈 작가였던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장르에나 뛰어난 작품보다는 모자란 작품이, 성공하는 작품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훨씬 많다. SF 또한 그렇다. 다종다양한 SF 영화가 만들어져야 경험이 축적되고, 더 과감하게 경계를 여는 작품도 시도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 또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관객들의 꾸준한 관심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용감한 한국 SF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3-12-12

사진과 기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송년모임도 많아지고 소소한 만남도 잦아들게 된다. 대설 지난 겨울날씨답잖게 며칠간 봄날같이 포근하다가 하룻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흔들어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분위기에 가뜩이나 뒤숭숭해지는 마음인데, 날씨마저 어설프고 변덕을 부리니 거리엔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이 다급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를 핑계삼아(?) 일찌감치 식당이나 주점에 눌러앉아 차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더 오래 송년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회인, 동창·동문 모임, 계모임, 친구 등과의 모임에는 으레 연말에 한 차례씩 송년회 또는 망년회의 명목으로 각종 만남을 가지게 된다. 지내온 한 해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으니 뒤도 옆도 보면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자주 연락이나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살아가는 얘기와 한 해를 돌아보며 애환을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괴로움과 불행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갖는 모임의 망년회(忘年會) 보다는, 세월의 저편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길목에서 아쉬움과 고마움을 나누기 위한 모임의 송년회(送年會)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과 정겨움을 나누는 오붓한 분위기를 사진은 고스란히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아련한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 실상을 비교하여 세월의 주름 같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사진이다. 시간의 지층 속에 촬영 당시의 단면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하고 잊혀져 가는 기억과 생각을 다시 소환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진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진 한 장에 아련한 추억과 얽혀진 스토리가 배여 있기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 걸까?사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의 원천이며 지식의 보고이다. 무엇이든지 쓰고 그리거나 기호로 나타냄으로써 보거나 알게 되고 소통하고 기억하게 된다. 사진이 영상이나 이미지로 추억을 소환한다면, 기록은 문자나 기호로 생각이나 기억을 일깨워준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을 글자로 기록하고, 글로 기록하기 어려운 요소를 이미지로 드러낸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모바일 매체가 일반화된 현대는 빡빡한 양식의 문서보다는 글과 그림, 도표, 도형 등으로 간략 명쾌하고 단순하게 표출하는 이미지 메이킹을 필수적으로 여길 정도다.하루하루 쏜살같이 지나가는 일상을 추출하여 뉘엿뉘엿 세모의 나이테에 기록으로 남기고 사진으로 담아둔다면, 생생하고 풍부한 삶의 일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하고 사진 속에서 좋은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을 때 연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3-12-12

‘무탄소연합’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조홍식 기후환경대사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12월 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엑스포 시티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국제사회에 한국이 주도하는 ‘무탄소연합(Carbon-Free Alliance)’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 배경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므로 진보된 기후 기술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외에도 각 국가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탄소가 없는 모든 청정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COP28이 시작되고 여섯째 날인 12월 5일은 ‘에너지와 산업, 정의로운 전환, 원주민’을 핵심주제로 한 날이었다. 이날 한국의 산업통산자원부와 한국이 주도하여 결성한 ‘무탄소연합’이 주최한 무탄소에너지 계획 원탁회의를 그린존 B6 구역에 마련한 한국관에서 개최했다. 한국의 ‘무탄소연합’의 대표이자 무탄소에너지 특임대사인 이회성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게 무탄소에너지 인증체계 등 글로벌 규범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이렇게 우리나라가 COP28에서 ‘무탄소연합’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동참을 호소하는 부분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반응은 아직 뚜렷하지는 않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RE100 (Renewable Energy 100)’ 즉,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간 협약 프로젝트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무탄소에너지의 국제적 확산과 선진국-개도국 간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오픈 플랫폼(개방형 작업 공간)으로 ‘무탄소연합’의 결성을 이미 제안하였고, 이번 COP28에서 또다시 강조하고 동참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지난 10월 19일 제30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는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 추진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더욱 구체화했다. 이 계획의 추진 배경으로 전세계적인 에너지 분야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활용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탄소중립을 추진해야하고 기업부담도 경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CF(무탄소) 인증체계 구축 및 국제표준화 추진, ‘무탄소연합’ 출범, 글로벌 확산과 국제공동연구, 개도국 무탄소에너지 전환지원 등 협력 강화를 통해 국제적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주도해나갈 계획이다.대구경북에서는 2030년 이전에 신공항을 조성하고, 배후산단과 에어시티를 조성할 계획인데,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 공급방안은 ‘2050탄소중립 로드맵’ 아래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원자력과 수소 등에 의존도가 특히 높은 대구경북에서는 정부의 ‘무탄소연합’ 추진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2023-12-11

비석 문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비(碑)는 특정 사실을 기록, 후세에 전하는 조형물이다. 주로 돌로 만들었다. 비는 주(周)나라 황후의 능을 조성하고 묘광(墓廣)에 시신을 하관할 때 밧줄을 도르래에 걸어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설치했던 장치의 기둥인 비목(碑木)이 기원이라 전한다. 비목이 비석으로 발달했다. 한대(漢代)에 문자를 새겨 각석(刻石)이란 말로 쓰였다. 우리나라의 비석은 장례와 관련한 분묘 건축에서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의 입구에는 죽은 이의 평생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많이 세웠다. 우리나라 비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다.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비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통일신라시대는 태종무열왕릉비 등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는 고승들의 탑비가 많다. 조선시대 왕릉에도 신도비를 세웠다. 비석은 원래 종교적, 제의적 의미가 강했다.비의 종류는 송덕비, 하마비, 공적비, 열녀비, 효자비 등 다양하다. 진흥왕 순수비와 대원군의 척화비도 유명하다. 포항 중성리와 울진 봉평리의 신라비,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산불조심 비석 등 특정 목적의 비석도 있다.대구근대역사관이 ‘의연공덕비’를 상설 전시 중이다. 2003년 대구의 한 민가에서 발견돼 대구 종로에 세워져 있었다. 비석의 가치와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대구근대역사관에 안치됐다. 대구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자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의연금 사용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1900년 세웠다. 지역사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 문화재 등록도 할 예정이다.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출발한 국채보상운동도 한푼 두푼 낸 성금으로 이웃을 돕는 대구시민 정신에서 출발했다. 의연공덕비가 지역 이웃사랑의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1

짜가가 판친다

강길수 수필가 추위가 서너 번 지나갔음에도, 학교 담장의 장미꽃은 잘도 버틴다. 어떤 가지는 아예 새순을 뽑아 올리기도 한다. 환경변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12월 초에도 꽃을 피워야 하는 절박함으로 드러난 게 분명하다 싶다.지난 1일, 두 장 남았던 달력에서 한 장을 뜯어냈다. 올핸 유달리 달랑 남은 마지막 달력 한 장의 무게감이 크다. 11월 달력 한 장을 뜯어내며, 30년 전 히트했던 한 가수의 유행가 가사가 가슴에 여울졌기 때문이다. 가사 일부는 이렇다.“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야 야 야들아/내 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올해 12월을 맞으며, 1993년 대유행했던 노래의 가사가 왜 되살아 난 것일까. 내 마음에 비친 올 우리 사회의 모습이, 12월에 핀 장미꽃의 절박함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인터넷에서 당시 노래 동영상을 찾아 다시 시청해 본다. 노래하는 가수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 백치미를 연상케 하는 표정과 몸 율동이, 내내 풍자와 해학으로 넘쳐나 보인다.그 야릇한 모습이,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그해 우리 사회상보다는, 오히려 요사이 우리 사회의 초상(肖像)을 더 풍자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내 잠재의식은 이 가사를 소환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 일부의 짜가 곧, 가짜가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히며 때론 타인 삶을 불행하게도 해왔다.하지만, 그런 게 인간사회의 주현상은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말, 예전보다 ‘많은 짜가가 판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라의 헌법기관 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적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이다. 2017년 대선부터 선거마다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짜가 사전선거 데이터를 계속 발표해 놓고도, 많은 국민의 부정선거 제기에 대해 통계적 해명 한 번 못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올해 ‘도둑놈들’, ‘비밀지령 2-∞’ 등 대한민국 부정선거 연구서들이 연이어 나왔다. 또 ‘왜(歪) 더 카르텔’ 같은 다큐멘터리 영상물들도 나왔다. 이런 증거물들은 한결같이 ‘부정선거는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국난’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주류언론들이 ‘거악(巨惡) 청산의 혁명적 사회개혁’을 요구해야 정상 나라일 것이다. 한데, 그 주류언론들은 비겁한 침묵만 일삼고 있다. 대체, 왜일까.산업현장에서 일하며 정치에 무심히 살아왔던 나도, ‘부정선거’라는 말에 분기탱천했다. 나라 주인 국민이 선거주권을 빼앗기면, 국민 뜻이 아닌 가짜 체제가 서는 엄청난 반역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부정선거의 진실을 파악했다. 부정선거로 뽑힌 공직자는 짜가 곧, 가짜다. 가짜들이 국민을 수탈대상으로 삼는 온갖 악법을 만드는 광대놀음, ‘짜가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을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할까.12월의 장미꽃들이 내게 말한다. ‘국민이시여, 이제 짜가에 놀아나지 말고, 초겨울에도 꽃피는 우리 장미들의 민감한 반응을 따르세요. 그게 꽃길이랍니다. 무얼 근심합니까. 세상일은 시작이 반인데!’라고….

2023-12-11

대중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최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연예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다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출생율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논란이 되었다. 서 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 혼자 산다’, 불륜·사생아·가정 파괴 드라마가 너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개발해서 사회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처럼 대중문화를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미풍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무차별 살인이나 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자동차 도둑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인 ‘GTA(Grand Theft Auto)’나 ‘둠(Doom)’, ‘서든 어택’, ‘배틀그라운드’처럼 총기를 사용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들이 원인이자 원흉으로 지목된다. 범인이 이렇게 ‘폭력적인’ 게임에 심취하여 폭력성을 배양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게이머들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PC방의 전원을 강제로 내린 뒤, 비속어로 불만을 표시하는 게이머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지배 문화, 주류 문화의 시선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오락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기성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도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남성 동성애자 아이돌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신곡 ‘It’s OK to be me’가 ‘동성애’를 이유로 MBC에서 방송 금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저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 대중문화와 그 소비층을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필자가 어릴 때 어른들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니까 오래 보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이런 발상의 기저에는 대중을 한없이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대중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비판적 사고력도 없기에 대중매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문화연구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는 일상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문학이나 예술처럼 ‘고상한’ 것만을 문화라고 여기는 엘리트주의적 문화관을 비판하였다. 노동자 계급, 서민 계급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대중문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의미는 대중문화 작품 안에 완결된 채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 만나 ‘디코딩(decoding)’ 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정치가 고민해야 할 일은 대중문화에 대한 ‘저격’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각과 경험을 넓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2023-12-11

치열했던 공방전, 영천전투

영천은 한국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자 치열한 전쟁터였다. 1950년 파죽지세로 밀려 내려온 북한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영천전투는 보현산을 넘어 영천을 점령하려 한 북한군 제15사단을 국군 제2군단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9월 5일에서 13일까지 전력을 다해 공방전을 펼치고 끝내 영천을 확보하여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국군과 연합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한 대승리로 평가받고 있다.1950년 7월 14일 북한군이 금강 방어선을 넘자 워커 장군은 낙동강방어선을 말하며, ‘만약 이 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면 연합군과 한국군의 반격 작전은 실패할 것’이라 강조했다. 북한군은 8월에 다부동과 대구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 영천을 점령 후 다시 대구나 경주로 진격하고자 했다. 만약 영천이 점령되면 다부동 일대의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으며, 만약 경주로 진격한다면 부산교두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영천은 낙동강방어선을 형성하는데 핵심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비가 쏟아지던 9월 5일 새벽 1시, 북한군 제15사단은 전차 5대를 앞세워 총공격을 해왔다. 국군은 북한군에게 밀리다 분산 철수를 단행한다. 육군은 속절없이 뚫린 제8사단의 배속을 제1군단에서 제2군단으로 변경하여 병력을 보충한다. 9월 6일, 영천은 완전히 북한군의 차지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국군은 북한군에 밀렸음에도 다시 공격하여 영천을 탈환해 낸다. 또한 신녕의 317고지에서도 북한군을 방어해 낸다. 영천과 신녕을 차지하지 못한 북한군 제8사단은 전멸 상태로 패퇴하였다. 9월 7일, 국군은 일대를 수색하여 북한군 보급 차량 30여대를 파괴하고, 제73연대를 격멸하며, 139고지-130고지를 차지한다. 9월 8일, 북한군 제15사단이 다시 총공격을 감행하나 국군의 방어로 실패한다. 9월 9일, 국군 제8연대는 대구로 향하던 북한군을 저지하고 영천 시내로 진격한다. 이 과정에서 제5연대가 임포터널에 숨은 북한군 제15사단 포병연대를 섬멸한다. 9월 10일, 영천에서 경주 사이의 도로를 확보한 국군 제2군단은 영천 방면의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반격을 시작한다. 제7사단과 제8사단을 중심으로 자포동·도림동·완산동으로 진출했다. 또한 제19연대와 제21연대에서 적의 연락군관 2명을 생포하여 북한군 사령부의 위치를 파악한다. 9월 11일, 대의동에 위치한 북한군 제15사단의 사령부를 성공적으로 공격한다. 9월 12일, 북한군 제15사단은 전차·자주포 그리고 병력의 반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국군은 이를 계기로 자천을 탈환하였다. 9월 13일, 영천에서 북한군의 위협이 사라지자 국군 제8사단은 전술지휘소를 영천으로 북상시켰다. 9월 15일, 기다리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영천전투는 미군이 북한군의 8월 공세 후 인천상륙작전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허를 찔려 발생한 공방전이다. 북한군이 전력을 특정하여 집중하던 8월과 달리 9월에는 여러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가해 혼란을 유발했었다. 전달과 다른 전략으로 인해 처음에는 한국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영천을 비롯해 낙동강방어선이 밀려 위험해졌었다. 그러나 한국군이 북한군의 전략을 파악하고, 가용 전력을 끌어모아 반격을 시작하자 북한군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영천전투의 승리는 낙동강 등 병참선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했고, 이는 앞으로 수행될 국군과 유엔군의 작전 성공 가능성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불리는 국군과 유엔군의 북한군에 대한 총반격도 낙동강방어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영천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영천에는 전투와 관련된 장소가 여럿 마련되어 있으며, 언제든 방문하여 그들을 기릴 수 있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영웅들이 영천호국원에 잠들어있고, 전투호국기념관에서는 그 치열했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창구동 산자락에는 영천전투를 체험할 수 있는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가 있다. 전투전망타워 1층에서는 간략하게 영천전투의 역사를 살피고, 2층 전망타워에서 영천시가지를 한눈에 담아본다. 야외에 마련된 시가전체험장·연병장·고지전체험장·국군훈련장에서 군사훈련과 서바이벌게임을 체험하며, 공원에 마련된 길을 따라 민족통일염원비·영천지구전적비·영천지구전승비·충혼탑을 둘러보며 참전용사들을 기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체험프로그램이 단체 위주로 편성되어 있어 개인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영천전투와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고 체험한 이들은 오랫동안 전쟁영웅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체험의 문이 개인에게도 활짝 개방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2-11

탁자 위에서 스멀거리며 자라나는 공포

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끝도 없는 공포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참혹하고 무서운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나 게임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공포를 불러오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씨앗을 돋워 올려 좀 더 근원적인 공포와 마주하도록 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들려주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주는 오싹함에 코 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따뜻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괴담 같은 공포를 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포란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인 까닭이다.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미국 문학계에서 글쓰기를 통해 전달하는 공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그가 1898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적합한 유령 이야기로 쓴 중편의 이야기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은 귀신이나 유령을 직접적으로 다뤘던 흔한 괴담에서 벗어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공포라는 감각의 본질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이다.이 소설은 겨울 난롯가에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나누면서 긴 겨울밤을 채우고 있다. 누군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자, 더글러스라는 남자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자신이 40년 동안이나 비밀로 해 두었다는 자신의 조카인 두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여자가 죽기 전에 직접 써서 남긴 원고 속에 들어 있다. 더글러스는 크리스마스의 난롯가 앞에서 그 원고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그것을 듣는다.이야기는 한 여성이 블라이라는 시골에 가정교사가 되어 오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맡게 되는 아이는 마일스라는 남자아이와 플로라라는 여자아이 두 명이다. 그녀에 앞서 가정교사로 있던 제셀이라는 여성이 죽어 새롭게 가정교사를 찾게 된 것이라는 사정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이전 가정교사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두 어린 아이는 예쁘고 똑똑해서 나는 그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게 되지만, 그녀에게는 점점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마일스와 친했던 피터 퀸트라는 죽은 하인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플로라와 유독 친했다던 예전 가정 교사 제셀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들처럼 내 앞에 간혹 나타나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있는 시선으로 쳐다본다.이 작품은 이처럼 낯선 가족에 들어온 가정교사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현실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면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들려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공포는 그것만은 아니다. 헨리 제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의 빈틈이 존재한다. 가정교사는 결국 점점 미쳐가게 되는데, 누구도 그녀가 보는 유령을 보지 못한다. 과연 유령은 실재하는 것인가. 단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기엔 그가 아름다운 필체로 꼼꼼히 적어나간 이 글쓰기가 갖는 존재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이 가진 순진무구함이자 가끔씩 그들에게서 튀어나오는 사악함이나 잔인함은 유령이 그들을 잠식했다는 징표인가 아닌가. 나사(screw)는 회전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조이고, 나선들 사이의 틈 속에서 공포는 자라난다. 귀신이나 유령이 실재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틈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공포로 조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헨리 제임스는 보여준다. /홍익대 교수

2023-12-11

집권 후반기는 안정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국회의원 선거가 꼭 4개월 남았다. 내년 4월 10일이 22대 총선이다. 내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예비후보가 되면 합법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이제 현수막이 숨이 막히게 나붙게 된다.그런데도 아직 예비후보들이 출마할 선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5일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53개 선거구획정안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전체 지역구 수는 고정해놓고, 인구에 맞춰 조정한 정도다. 그런데 선거구가 줄어든 지역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관련 법 개정안을 내고, 법을 고쳐서라도 선거구 축소를 막겠다고 한다.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 획정 등 선거와 관련한 기본 규칙을 정하도록 공직선거법에 못 박아놨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선거 때마다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 선거법과 선거구를 확정했다. 그러니 예비후보 등록과 실제 출마 선거구가 바뀌기도 한다. 선거구는커녕 선거법의 큰 틀도 합의하지 못했다. 소선거구제로 한다는 원칙만 세웠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할지,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을지 논란만 벌인다.현행 선거법은 거대정당들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추한 경험을 안고 있다. 선거제도에서 ‘연동형’은 유권자의 투표와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이 비례하도록 배분하기 위해 고안됐다. 21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33.4%,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33.8%, 정의당 9.7%다. 그러면 국회에서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도 득표 비율에 비례하게 나누어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지역별로 1등과 2등의 표 차가 매우 다르다. 영호남처럼 1등과 2등의 차이가 큰 선거구가 있는가 하면, 서울·경기에서는 1천 표 이내의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갈린다. 당선자는 3분의 1 득표로 당선되고,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자기표의 가치를 얻지 못한다. 이런 경향이 비슷하다 보니 서울에서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민주당 53.5%,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41.9%였지만, 실제 얻은 의석수는 민주당 41석(83.7%), 미래통합당 8석(16.3%)이었다. 경기도에서도 민주당은 53.9% 득표로 86.4%(51석)의 의석을 얻었다.이 결과를 보면 어떤가. 국민의힘이 연동형을 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33.8% 대 33.4%)를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겼다. 완전한 연동형이라면 국민의힘이 원내 제1당이다. 그러나 비례 의석을 줄이고, 그 중에서도 연동되는 비례 의석은 더 줄여 ‘준연동형’으로 바꾸었다. 더구나 위성정당을 주도함으로써 사실상 제 발등을 찍었다. 탄핵을 몰아붙이는 3분의 2에 가까운 민주당 의석은 국민의힘이 만들어준 꼴이다.연동형은 군소정당이 목을 매는 제도다. 어떻게든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정작 선거법에 결정권을 가진 양대 정당은 부정적이다. 자기 의석을 줄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대 정당에서 목소리가 큰 텃밭 출신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압박 요인이 있는 연동형을 싫어한다. 연동형의 효과를 높이려면 비례 의석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구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사실상 개인적인 정치적 계산들이다. 포장만 그럴듯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가 곤욕을 치르는 건 선거법 협상에 실패한 결과다. 지금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환상을 판다. 소선거구제로, 비례 의석을 줄이고, 연동형을 배제한 병립형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선전한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선거법 협상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현행 준연동형으로 가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여지도 열어뒀지만, 그보다는 국민의힘과 손잡고 병립형으로 가자는 속셈이다. 20대 총선과 같은 제도다.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서울 판세는 21대 총선(41곳 중 8곳 당선)보다 더 어렵다(6곳 우세).위성정당을 막지 못하면 21대 총선꼴이 된다. 그러나 위성정당만 막는다면 윤석열 정부 후반기가 더 안정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과반을 얻어 독주한다는 환상보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않도록 막는 게 더 다급한 현재 판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0

이민정책에 관심을

우정구 논설위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지목된 한국의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출산율 제고며 또 하나는 이민 유입이다.올해 말 국내 출산율이 0.6명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보면, 출산율 제고를 통해 인구를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현시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그렇다면 이민을 통해 인구를 늘려야 하나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반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 법적 제도적 문제뿐 아니라 국민정서 등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복지천국으로 소문난 스웨덴이 북유럽 최악의 범죄 국가로 추락한 과정을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인도주의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난민을 받아들여 현재 전체 인구(1천50만명)의 약 20%가 외국 태생의 이민족으로 구성돼 있다.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난민 중심의 범죄조직이 활개를 쳐 북유럽 최악의 범죄국가란 오명을 쓰고 있다. 스웨덴에 소재한 이민자 범죄조직만 50개, 조직원이 3만명이라 한다. 스웨덴 치안을 맡은 경찰 수보다 3배나 많다.이민정책은 국가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가에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 등과 같이 이민정책이 성공한 나라도 있다.정부와 여당이 이민청 설립에 적극적이다. 단일민족으로 수천 년 내려온 우리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찍을 정책이란 점에서 국민의 관심이 모아져야 할 정책이다. 인구 문제가 우리에겐 발등의 불이긴 하나 역사적 걸음을 뗄 이민청 설치에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0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겨울인데 한낮 기온이 18℃까지 올라간다. 이래도 괜찮은가, 생각하며 커피나무를 마당에 내놓고 화분에 흙을 북돋우고 한껏 물을 준다. 일주일 내내 거실에 있어서 답답하기도 한 것처럼 너른 이파리를 한껏 흔들어댄다. 커피나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잠시나마 밖에서 외기(外氣)와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만, 거대한 덩치의 길상천은 꼼짝할 수 없다. 남들보다 크고 무겁다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닌 셈이다.얼마간 미뤄둔 마당 정리를 마치고 훌훌 들로 나선다. 어느새 다가온 해거름이어서 멀리 서녘으로 길지 않은 겨울 해가 꼴깍, 소리 내고 사라지고 있다. 여름의 태양은 오래도록 하늘가에 흔적을 남기는데, 겨울 햇빛은 인색하다 못해 심술궂은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체의 작동과 운동에 인간의 의지나 바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으니 군소리 없이 바라보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따사로운 햇살과 달리 사납게 몰아닥치는 바람이 목덜미에 선선한 흔적을 남긴 후에야 미뤄둔 문제가 머리를 쳐든다.‘그대 마음은 어디 있는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육신 어느 다른 곳인가! 어느 양자물리학자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육신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의 뇌에 고작 0.0001%의 마음이 있을 뿐, 나머지 99.999%의 마음은 우리의 육신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두 손을 휘휘 저으면서 바람 속을 걷다 속삭인다. 그래, 나의 마음아, 너는 지금 나의 육신과 함께 가고 있느냐?!그렇다면 마음아, 너는 나의 앞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옆이냐, 위냐, 좌냐 우냐, 너의 위치를 알려다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묵묵부답 고요하다. 마음은 그런 나의 질문이 귀찮은 것인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냥하게 다시 묻는다. 나의 마음아, 나와 대화하는 게 귀찮지는 않은 것이냐?!그래도 마음은 대꾸하지 않는다. 이윽고 붉게 소멸해가는 햇살과 바람에 버티고 서서 태양과 작별하는 작은 구름장과 윙윙 소리 내며 질주하는 바람과 비어버린 들판과 대지의 수호신인 양 의연히 서 있는 전봇대를 사진기에 담는다. 세 장의 사진을 찍는 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10여 초, 하지만 사진에 담긴 풍경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 사진을 찍는 나의 마음이 사진 영상에 비친 피사체인 겨울 풍경을 변화시킨 것이다.내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눈과 시각중추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전권은 오직 마음이 가지고 있다. 마음이 어디를 어떻게 볼 것인지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 전자는 인간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波動)으로, 관측하면 입자(粒子) 형태로 ‘슬릿(slit)’을 통과하는 이른바 ‘이중 슬릿 실험’에서 나온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아주 미소한 입자인 전자가 관측 행위로 인해 빛의 영향을 받으면, 파동의 성질이 입자의 성질로 바뀌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나나 당신의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2023-12-10

‘평범한 삶 추구’, 중국 춘추 오패의 교훈

박진홍 부국장 인류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는 항상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더 나아가 ‘높은 자리’는 침탈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위태로운 삶의 숙명을 가졌다.진화론에 따르면 지구 모든 생명체는 ‘번식·생존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서로 충돌 하는 필연성을 보여 준다. 역사가 증명하듯,‘번식과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 역시 끝이 없다. .그러나 끝없는 욕망은 결국 불행으로 귀결됨을, 중국의 대표적인 권력 투쟁사인 ‘춘추 5패’에서 잘 드러난다.BC 1046년 중국 고대 주나라 무왕이 목야전투에서 은나라 폭군 주왕을 꺾고 중원 대륙을 차지하면서,‘중국인 마음의 고향’ 주나라 역사가 펼쳐진다.하지만 BC 771년 주 유왕은 애첩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 ‘외적이 쳐들어 왔다’는 양치기 소년 게임을 거듭하다, 실제 견융의 침략에 지방 제후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유린당하게 된다.유왕이 살해되고 도읍을 동쪽의 낙읍으로 옮기면서 서주의 역사는 끝이 난다.이때부터 동주와 함께 중국 춘추시대(BC 771∼BC 453년)가 시작된다. 봉건시대인 주나라 춘추시대의 특징은 힘이 약화된 왕실이 명목상 천하의 주인일뿐, 실제로는 지역 제후 가운데 회맹에서 맹주로 뽑한 패자가 천하의 주도했다.패자들의 명분은 ‘주왕실을 보호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였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은 계속됐다. BC 91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춘추시대 300여년동안 주왕이 봉한 제후국은 140여개국에 달했다.이 중 멸망한 나라는 60여개국, 살해된 군주가 40여명, 전쟁 횟수만 1천200회가 넘는다. 오죽하면 이때를 ‘국가가 봄에 건국했다가 가을에 지는 춘추(春秋)시대’라고 했겠는가!생존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晉)나라 문공(文公), 초(楚)나라 장왕(莊王),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 등이 당시 중국의 패자로 번갈아 등장하게 된다.중국 대륙을 호령하는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재력을 가진 ‘춘추 오패’.하지만 이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 화려한 이면에 참담한 현실도 그대로 드러난다.‘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해 부국강병에 성공하며 남방의 오랑캐들을 막아내 첫번째 패자로 등극한 제 환공.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제환공은 관중이 죽은 후 간신들에게 의지하다 ‘권력의 레임덕’에 빠지면서 별궁에 갇혀 굶어 죽고 만다. 두달간 장사를 못지내면서 시신의 구데기가 별궁 담장 밖으로 나올때 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두번째 패자 진문공의 삶도 기구하고 파란만장했다. 아버지 헌공의 젊은 애첩이 자신의 어린 아들 혜제의 태자 책봉을 도모하자, 진문공은 19년간의 춥고 배고픈 험난한 망명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이복동생 이오가 먼저 왕이 됐다. 그러자 진문공은 동생의 극심한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겨우 62세에 귀국, 9년간 왕위에 올랐다.세번째 패자 초장왕의 가족사는 처절했다.초장왕의 아버지 목왕은, 그의 아버지 성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성왕 역시 늦장가로 얻은 애첩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려 했다.이에 목왕은 ‘이복동생이 왕이 될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목왕을 자결케 했다.왕위에 오른 초장왕은 조정 대신들의 권력과 파워게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3년간 주색잡귀에 빠진 척하며 간신과 충신을 가린 후 일거에 정권을 장악한다.이때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가 ‘삼년동안 울지도, 날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다.네번·다섯번째 패자인 오 합려와 월 구천은 2대에 걸쳐, 서로 죽고 죽임에 시달리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기구한 운명이었다. 오 합려는 숙적 월나라를 침공하다 월 구천에게 대패한 후 부상으로 사망한다.이에 합려의 장자 부차는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 오자서의 도움을 받아 월나라를 재침공해 승리한다. 오나라로 끌려간 구천은 부차의 하인으로 전락해 목숨을 구걸한 후 매일 쓴 쓸개를 핥으며 심기일전,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구천에게 패한 부차는 자결한다.높은 자리나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은 항상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노자는 무위(無爲)사상을 통해 ‘다른 사람 보다 앞서면, 시기 질투를 받아 위험하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無爲)’고 했다.역사는 ‘평범한 삶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많이 보여준다.

20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