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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농법

등록일 2024-07-10 18:21 게재일 2024-07-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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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3주 정도 비웠던 모두의 집에 들어간 순간, 와…. 말문이 턱 막혔다. 우물 부근엔 내 키보다 더 자란 뽀얀 개망초꽃이 뒤덮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도 마치 풀밭 같아 주인없는 폐가 느낌이었다. 작년 백일홍이 찬란했던 꽃밭터도 개망초꽃밭이 되어 있었다. 이를 어쩌나. 풀밭을 그대로 두나, 꽃밭을 만들기엔 너무 힘들고 시간도 늦었지 않을까 머릿속을 굴렸지만 답이 안 나왔다.

그러나 텃밭은 그렇지 않았다. 3월과 4월에 흙을 일구고 풀을 뽑고 퇴비를 섞어 찰진 텃밭을 일구었다. 작년 기승부리며 자란 풀 때문에 채소 재미가 적었기에 미리 대비한다고 검은 비닐을 사서 멀칭도 해두었다. 오일장 서는 곳마다 가서 사와 심은 채소 모종들은 키높이를 맞추어 심었다. 가장자리엔 키가 높이 클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그 앞줄엔 쑥갓과 고추모종을 나란히 심었다.

양배추, 오이와 콜라비는 앞쪽으로 몇 포기씩 줄을 맞추어 깔아주었다. 호박과 옥수수와 들깨는 담장 저켠으로 좀더 멀찍이 심었다. 자주 물 주러 가서 오목조목 자라는 모습을 즐기고, 하얀 고추꽃, 노란 오이꽃과 호박꽃을 흐뭇하게 보면서 왠지 큰 수확을 할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도 있었다. 양배춧잎, 콜라비잎, 들깻잎과 쑥갓을 따서 쌈 싸먹는 재미를 누리다가 5월 중순부터 거의 3주를 못 갔다. 미처 세우지 못한 고춧대를 아들에게 부탁했고 아들은 약속을 지켰고 사진까지 보내줬다. 그 덕분에 조롱조롱 맺혀있는 연두색 고추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많이 열렸다. 누렇게 달린 늙은 오이와 꼬부라진 오이가 여럿 뒹굴고, 그 옆엔 새끼손가락만한 오이가 꽃까지 단 채 여럿 맺혀있었다.

애기 머리통만큼 큰 자색 콜라비도 실하게 자라있었다. 자라다 무게를 못 이겨 흙 위에서 뒹굴고 있는 토마토는 잎 속에 붉고 푸른 열매를 감추고 있고, 익어 터져버린 열매가 땅 위에 그득했다. 마치 하얀 마가렛꽃처럼 앙증맞고 예쁘게 꽃 핀 쑥갓은 해맑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양배추는 넓고 푸른 잎마다 벌레들이 구멍을 내어 멀쩡한 게 없었다. 양배추에 농약을 심하게 친다더니 과연 그렇겠구나.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땅을 덮은 검은 비닐의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온 풀들과 엉겨있었다. 풀을 뽑아주지 못한 터에 이 사달이 난 거였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잎 사이를 비집고 방울토마토를 땄다. 다 자란 고추를 골라 따고, 늙은 오이와 젊은 오이도 비틀어 따고, 콜라비도 그 중 큰 놈을 하나 골라 뿌리째 뽑았다. 호박더미를 뒤지니 애호박도 숨어있어 두어 개 건졌다. 향기로운 들깻잎도 잎 넓은 것으로 몇 장 땄다. 순식간에 바구니 두 개가 그득했다. 고마워라 고마워라 감탄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수확한 채소들이 엄청났다.

방치농법이란 말을 듣고 옳다구나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확물이 생기니 딱이다 싶은 말이었다. 더 알아보니 자연농법이란 게 있다. 자연이 짓고 인간은 시중드는 농법이라고 한다. 게으른 농법이 아니라 예사농사보다 품이 더 많이 들 것 같았다. 난 그저 방치를 최소화해서 싱싱한 밥상을 차려준 채소들에게 고마움의 예를 갖출 정도의 위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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