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손수 수놓았다는 베갯모를 여러 개 뜯었다. 낡고 헤져 흰 솜이 삐져나오기도 해서 더 두면 아예 자수조차 삭아 없어질 것 같았다. 간직하여야겠다. 싶었다. 새로 나온 신식 베개를 사 주겠다고 했더니 버려도 좋다고 했다. 조심히 뜯으며 가져간다고 했더니 엄마는 무슨 쓸모 있냐며 의아해했다. 표구사에 맡겨 자그마한 액자를 만들었다. 엄마는 우리집 복도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액자가 좋아 보였던지 올케들 주겠다며 두 개씩을 도로 가져갔다. 엄마의 손때 묻고, 그리운 우리 가족 땀내도 배어 있는 베개이니 삼 남매가 사이좋게 나누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드렸다. 그러나 오빠네나 동생네 집에 그 액자가 걸려 있는 걸 본 기억은 없다. 30년도 더 전이었다.
네모난 구봉침은 제법 큰 베개다. 붉은 비단 바탕에 오색 아(亞)자 테두리가 새겨져 있었다. 아홉 마리 봉황이 있어 구봉침이라는데, 자세히 보면 머리를 맞댄 두 마리 봉황 발 아래 일곱 마리 병아리가 놀고 있다. 자식 많이 두라는 의미의 신혼부부용 베개라고 했다. 작고 딱딱한 목침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이 한자로 새겨져 있었다. 여자용 둥근 베개에는 모란꽃이 피어 있거나. 꽃 가운데에 부귀(富貴), 다남(多男) 한자가 새겨진 것이었다. 베갯모 말고도 방안 한쪽 벽엔 홈스위트홈 십자수 횃대보도 있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예전 혼기 다 찬 집안 처녀들은 저녁마다 한 집에 모여 호롱불 아래에서 늘 수를 놓았다. 김서령의 유고집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에는 동네 여성들이 함께 모여 수놓고 바느질하는 풍경을 정답고 감칠맛 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놓은 수예품을 혼수로 가져와 시집에선 솜씨 평판을 받기도 했겠지. 중학교 가정 시간에 자수를 배웠고, 그걸 엄마에게 보이면 엄마는 힐끗 보며 말하곤 했다. “골물시럽게 그런 건 와 배우노.”
최민경 회장님 댁에 있는 이런저런 자수 소품들이 정겨워 보였다. 달력, 컵받침, 그릇받침, 의자 덮개에 새겨진 한 송이 꽃에 정감이 갔다. 자수가 하고 싶어졌고 곧바로 실행했다. 가까운 문화센터에 생활자수 강좌 등록, 수강한 지 넉 달째다. 몇 년이나 수강한 선배들이 있는 강좌에 초짜 티를 팍팍 내면서도 결강 하지 않고 열심히 다니는 것은 재미나기 때문이다. 수놓으면서 듣는 수강생들의 두런두런 세상 얘기가 재밌다. 꽃 자수 하나하나를 가리켜 ‘얘’라고 의인화해 말하는 선생님의 세상 막힘없고 수월한 자수 지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긴 그 수많은 자수 기법은 동서를 막론하고 수 백 년 여성들의 지혜의 집합이요, 솜씨의 농축 아니겠는가.
자수 도안은 대부분 꽃이다. 컵 받침에는 소담스레 꽃 핀 화병이 앉고, 노란 바늘꽂이에는 탐스럽고 수북한 꽃바구니가 얹혔다. 파란 주머니엔 한 다발 라벤더꽃이 피었다. 카네이션 브로치를 어설프게 만들어 고마운 분에게 선물도 했다. 어린이날 연휴에 온 손주들에게 자수 장미꽃을 보여주었다. 넷이 모두 가르쳐달라며 달려들길래 천을 잘라 나누어 스파이더웹로즈 스티치로 장미 한 송이씩을 새겨가게 했다. 큰 손녀 윤이는 지레짐작으로 아는 체를 한다. 할머니 치매 예방하려고 배우시는 거죠? 글쎄, 수놓기에 그런 이점도 있으려나···. 미니멀 인테리어를 꿈꾸던 내가 마음을 바꿔 머잖아 온 집안 곳곳을 시들지 않는 꽃장식으로 뒤덮을 것 같은 예상은 한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